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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 「직선과 원」

  • 작성일 2015-02-18
  • 조회수 2,299


김기택, 「직선과 원」





옆집에 개가 생김.
말뚝에 매여 있음.
개와 말뚝 사이 언제나 팽팽함.
한껏 당겨진 활처럼 휘어진 등뼈와
굵고 뭉툭한 뿌리 하나로만 버티는 말뚝,
그 사이의 거리 완강하고 고요함.
개 울음에 등뼈와 말뚝이 밤새도록 울림.
밤마다 그 울음에 내 잠과 악몽이 관통당함.
날이 밝아도 개와 말뚝 사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음.


직선 :
등뼈와 말뚝 사이를 잇는 최단거리.
온몸으로 말뚝을 잡아당기는 발버둥과
대지처럼 미동도 않는 말뚝 사이에서
조금도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는 고요한 거리.


원 :
말뚝과 등거리에 있는 무수한 등뼈들의 궤적.
말뚝을 정점으로 좌우 위아래로 요동치는 등뼈.
아무리 격렬하게 흔들려도 오차 없는 등거리.
격렬할수록 완벽한 원주(圓周)의 곡선.


개와 말뚝 사이의 거리와 시간이
이제는 철사처럼 굳어져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음.
오늘 주인이 처음 개와 말뚝 사이를 끊어놓음.
말뚝 없는 등뼈 어쩔 줄 모름.
제자리에서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달리기도 함.
굽어진 등뼈 펴지지 않음.
개와 말뚝 사이 아무것도 없는데
등뼈, 굽어진 채 뛰고 꺾인 채 달림.
말뚝에서 제법 먼 곳까지 뛰쳐나갔으나 곧 되돌아옴.
말뚝 주위를 맴돌기만 함.
개와 말뚝 사이 여전히 팽팽함.


▶ 시_ 김기택 - 김기택(1957~ )은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났다.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해서 등단했다. 시집으로 『사무원』 『갈라진다 갈라진다』 등이 있다.


▶ 낭송_ 김동훈 - 배우. 극단 '두목' 소속.


배달하며

개와 말뚝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그 사이에 ‘직선과 원’이라는 도형이 생기지요. 우선 개와 말뚝 사이의 직선은 등뼈와 말뚝 사이의 최단거리를 보여주는데,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 거리는 줄거나 늘지 않아요. 그 직선은 발벌이와 관련해 생긴 긴장과 팽팽함을 보여주지요. 원은 말뚝의 예속과 수모에서 벗어나 저 멀리 도망가려는 등뼈들의 궤적을 보여줍니다. 말뚝은 꿈쩍도 않고, 그 주위를 맴돌기만 하는 삶이란 노예의 삶이겠지요. 예속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일까요? 줄을 끊는 자유를 선택하는 것이지요. “전쟁을 일으키는 삶을 살라!”고 한 것은 철학자 니체입니다.

문학집배원 장석주



▶ 출전_『소』(문학과지성사)

▶ 음악_ Backtraxx - Terror Tune

▶ 애니메이션_ 제이

▶ 프로듀서_ 김태형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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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10406김주원

    제목이 시에서 잘 볼 수 없는 특이한 제목이였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 시에서 강아지와 말뚝의 관계는 중학생 때의 한 친구와 나의 관계를 떠오르게 했다. 그 친구와 나는 매일 사소한 것으로 다투고 멀어졌지만, 다음날이나 그 다음날정도 되면 화해를 하고 이 시처럼 원래의 거리로 돌아왔다. 이 때문에 목줄이 사라져도 개와 말뚝 사이의 거리가 팽팽하다는 말과 말뚝에서 해방되더라도 여전히 굽어진 등뼈가 정말 인상적 이여서 이 시를 선택했다. 또, 원과 직선으로 한정된 궤적을 보여주면서 개와 말뚝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거나 멀어지지 않는다는걸 강조한 것이 마지막에 말뚝이 없어도 개와 말뚝 사이의 거리가 여전하다는 것을 부각시켜준다.

    • 2018-11-05 09:40:37
    10406김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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