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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 작성일 2012-01-27
  • 조회수 1,502

 

[2011년 공모마당 연간 최우수상 / 장르부문]

 

 

벌레

 

조성희

 

 

 

 

 

  어둠 속에 눈동자가 떠 있다. 미약한 안광을 뿌리면서 쉴 새 없이 확장과 수축을 반복한다. 이윽고 목매단 사람처럼 잦아드는 비명소리를 낸다.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근육이 제멋대로 턱을 죄어 온다. 어금니가 산산조각 나서 잇몸을 찢어발길 것 같다. 다리를 움직여 보지만 제자리에서 뒤뚱거릴 뿐이다. 눈동자가 더욱 발광을 해대자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시커먼 이끼덩어리가 흘러내린다. 눈동자 주위에 희멀건 흰자위가 불거진다. 이윽고 눈동자는 발광하기를 멈추고 똑바로 내 눈을 노려본다. 가시덩굴 같은 시선이 녹슨 철망 틈으로 기어 나온다. 이윽고 내 눈알을 더듬으며 틈을 찾는다. 눈물샘을 비집고 들어와 천천히 휘감는다. 시신경과 뒤얽히며 서서히 몸 깊은 곳으로 침입한다. 눈동자가 다시 비명소리를 낸다. 나방파리들이 일제히 수챗구멍에서 날아오른다. 다리 배 얼굴에 앉기 시작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단지 이 비명소리를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샤워기는 계속해서 뜨거운 물을 뿜어댄다. 물을 충분히 마신 수챗구멍이 수년 먹은 때와 체모의 썩은 냄새를 올려내기 시작한다. 숨이 막힌다. 토악질이 나오려고 한다. 가까스로 입을 벌리지만, 목구멍에 코르크 마개가 끼워진 것처럼 아무것도 들이마실 수가 없다.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가 방문을 열고 있다. 곧이어 묵직한 가방을 털썩 내려놓더니 발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환기구 너머의 눈동자가 다시 발광하며 내 어깨 너머를 노려본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린다.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넘어진다. 최대한 고개를 숙이지만 가볍게 뒤통수를 부딪친다. 깁스한 왼팔까지 허우적거리다가 목욕의자가 잡힌다.

  뒤늦게 등과 머리가 아파 오며 눈앞이 멍해진다. 어느새 비닐이 벗겨진 깁스가 축축하게 젖어든다. 뒤늦게 기어오른 비명이 재빠르게 입을 열고 뛰쳐나간다. 목욕의자를 팽개치곤 손톱으로 미끈거리는 타일을 긁으며 겨우 일어선다. 욕실 문을 젖히며 싼 맛 나는 공기 속에 온몸을 던진다.

 

  “선생님.”

  현수가 퀭한 눈에 힘을 주었다. 그는 이 모텔에서 여자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을 믿는지 그것의 생김새를 족히 두 시간은 캐물어대고 있었다. 마치 자기 마누라 귀신이기를 바라는 것처럼.

  “눈밖에 안 보였다니까. 고양이겠지.”

  “선생님.”

  푸켓에서는 처음으로 현수와 눈을 마주쳤다. 다크서클이 팬더 눈두덩만큼 덩어리져 있어서, 흰자가 흑인만큼이나 돋보이고 있었다. 꼴에 금융계에서 일해서인지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고 있었는데, 오래된 디자인만 골라 입은 것이 얼마나 촌스러운지, ‘이것이 바로사체, 이것은 구짜……’ 하던 코미디 방송이 떠오를 정도였다. 게다가 삐쩍 마른 그의 몸 때문에 마치 말 그대로 옷을 ‘걸어 놓은’ 것 같은 안쓰러운 몰골이었다. 일전 사무소에서 그를 처음 보았을 때는 석 달 열흘은 더 굶은 팬더 같았다. 책상 밑으로 허리를 숙이고 웃음을 참느라 정말 혼이 났었다. 하지만 지금은 흡사 뚜껑 열린 맨홀을 보는 듯했다. 그 속에서 희멀건 눈이 데굴, 구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도 모르게 코를 훌쩍였다. 그것은 분명히 고양이나, 아무튼 이런 동남아에나 있을 법한 동물이 틀림없었다. 하수구에서 기어 나왔다가 들키면 경기를 일으키면서 바람 빠지는 소리로 위협하다 제풀에 자지러져서 도망치는 그런 종류.

  “선생님.”

  현수가 말했다. 이 녀석은 일부러 나와 눈을 맞추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울컥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눈알을 움찔움찔 굴리며 내 눈 뒤에 있는 뇌라도 들여다볼 기세다. 정말 짜증이 치민다.

  “당신 마누라가 장화야 아니면 홍련이야? 태국까지 배타고 왔어?”

  “탐정 양반, 말 좀 조심하면 안 됩니까?”

  현수의 어머니가 쏘아붙였다. 이 아줌마는 생기기는 전원주인데 아들 덕에 꽤 세련된 차림을 하고 있었다. 한눈에도 아들 덕에 호강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흘겨보다가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슬쩍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시장 변두리에 처박힌 싸구려 모텔 아니랄까 봐 노점상 아줌마의 뒤통수가 보였다. 그 어깨 너머로 삼륜차 택시가 툭툭, 희한한 엔진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삼륜차가 지나간 자리에서는 늙은 오랑우탄처럼 얼굴이 펑퍼짐한 중년이 서 있었다. 그는 추레한 젊은이들에게 설교를 하고 있었는데 젊은이들은 도살장 대기표라도 받은 듯 비참한 표정들이었다. 그 옆에 선 코쟁이 커플은 노점상의 원색 천막 아래에서 구부정하게 서서 국수를 빨아들였다가 발작적으로 뱉어내자 어처구니없게도 내 기분이 가벼워졌다. ‘마오 사이 팍치’(향채를 빼주세요), 저들은 태국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마법의 주문을 모르고 있었다. 갑자기 카레를 얹은 게 요리가 떠올랐다. 살은 발라먹고 소스에 밥을 비비면 신라호텔 풀코스가 부럽지 않게 먹을 수 있다. 아니, 더 맛있다.

  “그리고 말 좀 해주세요.”

  “거, 정말이라니까요.”

  “확실해요?”

  “아니 이 사람들이! 나 당장 짐 싸고 위약금 요구해도 할 말 없는 거 알아요 몰라요?”

  아줌마가 고개를 숙이더니 사과를 깎기 시작했다. 과도는 전기톱마냥 불안하게 흔들렸다. 나는 아줌마 얼굴이 보기 싫어 냉장고로 향했다. 냉동실에 넣어 두었던 캔맥주를 꺼내 단숨에 들이마셨다. 살얼음과 진한 알코올이 뒤섞이며 목구멍을 얼려 놓았다.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명치까지 아려 왔다. 빈 캔을 구기면서 고개를 돌렸다. 침대 가장자리에서 서로 등을 돌리고 걸터앉은 아들과 어머니. 견딜 수 없는 짜증이 솟았다. 애당초, 내가 팔도 못 쓰면서 태국까지 온 이유부터가 그랬다. 불륜 증거 사진 찍다가 떠밀렸는데 하필 개인택시에 치어서 의뢰인, 의뢰인 남편, 택시기사와 실랑이를 하기를 삼일 걸러 하루씩 4주, 또 4주 동안 돈만 까먹고 지내는 와중, 태국에서 바나나 튀김 사러 모텔을 나갔다가 실종된 아내를 찾아달라는 의뢰가 들어오길래 덥석 물어버렸다. 그들은 팔 부러진 것도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대충 현지 경찰에게 업혀갈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내가 쓸 항공권까지 예매해 버린 건 예고편,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서야 현수가 하룻강아지 옹알이 같은 소리로 사실은 십이 년 전 사건이며 현지에서는 수사종료 된 지 십 년째라는 중요한 사실을 밝혔던 것이다. 비행기는 이미 바다 위를 날고 있었고 계약서는 사무실 금고 속에 있었으니…….

  겨우 맥주 한 캔인데 이상하게 취기가 올랐다. 새 맥주를 땄다. 현수가 말하길 태국에 오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었지,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하는데 십이 년 전 실종사건에 왜 굳이 나를 고용했지? 캔 하나를 또 비우자 못 견딜 만큼의 두통과 함께 머릿속에도 살얼음이 끼었다. 단서도 없는 십이 년 전 사건이라면 셜록 홈즈도 명함을 집어넣을 것이다. 덤으로 현수 빼고는 말도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꽤 많은 호랑말코들이 현수를 거쳐갔으며, 한결같이 공짜 바캉스에 돈까지 벌었다. 제대로 된 탐정이라면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건 태국에 오고서야 한국에 전화해서 들은 이야기다. 오죽 급했으면 나 같은 불륜 전문에게 매달렸을까, 불쌍한 녀석 등쳐먹는 기분이 썩 언짢았다. 그래도 자세한 이야기도 없이 덜컥 비행기로 몰아넣은 의뢰인 잘못이 더 컸기 때문에 가짜 사이먼 쇼도 구경하면서 나름 바캉스 기분으로 지내고 있었는데, 며칠 전부터 이 모자가 신경질적으로 돌변해서는 시간이 없다고 들볶기 시작했다. 관광비자 기한이야 문제가 없지만 현수는 승진이 결정된 마당에 휴직을 한 터라 빨리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모자의 짜증을 받아내면서까지 푸켓에서 빈둥거리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죽부인 끌어안고 한 편에 200원짜리 비디오나 보고 있자니 방이 쓰레기통처럼 느껴져서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드세요.”

  아줌마가 사과 접시를 내밀었다.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럼 확인을 해봅시다. 철망 열어서 뭐든지 동물 흔적이 나오면 그걸로 끝이에요. 귀신이어도 난 여기까지 할 겁니다. 그 뒤엔 푸닥거리를 하든 엑소시스트를 부르든 마음대로 해요.” 나는 현수를 보았다. “플래시랑 건전지, 아무거나 일자 드라이버 사와.”

  현수는 시키는 게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머뭇거리더니 마지못해 방을 나갔다. 아줌마도 누가 상전이냐는 표정을 슬쩍 지었지만 곧 얼굴을 바꾸었다. 그래요, 당신 아들이 왕이요. 나는 욕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하필이면 벽에, 그것도 눈높이에 환기구가 뚫려 있었다. 벽에 낼 법한 조그만 것도 아니고 천장에나 뚫어 놓는 종류다. 바닥에는 내가 붙잡았던 목욕의자가 나뒹굴고 있었다. 모세가 앉았다 간 것도 아닌데 가운데가 쩍 벌어진 의자였다. 이질감이 느껴졌지만 이유를 알아서 뭐 해, 세 번째 캔을 땄다.

  현수가 돌아왔다. 기념품 도매상에서 산 듯한 장난감 같은 것들을 내놓았지만 상관없었다. 깁스를 한 팔에 싱하 맥주를 끼우고 남은 손으로 모퉁이 나사를 풀어냈다. 나사는 드라이버의 손잡이가 먼저 돌아갈 만큼 단단하게 물려 있었다. 땀이 뻘뻘 흘렀지만 현수도, 현수 아줌마도 침만 삼키고 있었다. 못마땅했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고양이가 확실하다. 무엇보다 이번 것과 똑같은 경우를 겪은 적이 있었다. 오래 전 극장에서 귀신 나오는 영화를 본 날이다. 그날 잠을 자는데 하필 고양이가 가슴 위에 올라앉아서는 골골거리며 더운 숨을 뿜어댄 것이다. 귀신이 아니라 고양이였을 뿐이지, 영화에서 귀신이 등장할 때의 상황과 소리가 정말 똑같았다. 잠결에 놀라선 온 힘을 다해 팔을 휘둘러서 고양이를 후려쳤는데, 비록 도둑고양이 새끼를 꼬셔서 이름도 안 붙인 것이지만 짬타이거(군대 잔반을 먹고 호랑이처럼 덩치가 커진 고양이) 못지않게 삼 년을 살찌웠는데, 그날 부로 영영 나가버렸다. 내가 뭘 데리고 있든 다 이런다. 어쨌거나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이다.

  나사가 세 개 남았다.

  내가 눈알처럼 생긴 자라를 봤던가. 그런 적은 없는데, 이번에 본 건 무슨 솥뚜껑이냔 말이냐.

  나사가 두 개 남았다.

  사실 비디오에서 본 적 있다. 천 년 동안 참은 트림을 뽑아내며 기어오는 귀신 말이다.

  나사가 한 개 남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그 눈을 갖고 그런 소리를 내는 동물은 내가 알기로는 없다. 태국 시내에서 돌아다닐 동물이야 너무나 뻔하다. 점점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계집애처럼 겁을 먹어서 잘못 보았을 수도 있지. 하지만 따끈따끈한 기억을 되살려 보아도 그건 사람의 눈 같았다. 그럼 사람이라고 치자. 환기구를 기어 다닐 사람이…… 있다. 거지나 도둑놈이 사람 없는 줄 알고 들어오다 나에게 들킨 거다.

  나사가 모두 풀렸다.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목에 걸리는 느낌이 썩 좋지 못했다. 적어도 내 눈만은 거지나 도둑놈일 수가 없다는 걸 믿고 있었다. 사람이 그런 눈을 할 수는 없다. 그런 소리 또한…… 철망에 손가락을 끼워 잡아당겼다. 통짜 쇠로 만든 것인지 무겁게 떨어졌다.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시고 플래시를 비추어 보았다. 철망 근처에 물이끼들이 빈곤하게 끼어 있었을 뿐 이상할 것 없는 환기구 속 풍경이 드러났다. 뒤돌아서 실망한 얼굴들을 마주보며 고소해 해주었다. 그때 미약한 바람이 불어와 뒤통수를 후려쳤다.

  환기구는 말만 환기구지, 본래 용도는 숨구멍이다. 그러니까 실제로 이렇게 바람이 불어오는 일은 없다는 이야기다. 환기통로 끝을 향해 플래시를 비추었다. 우측으로 꺾여 있었을 뿐 짐승 털은커녕 발자국을 낼 먼지 카펫도 없었다.

  “뭐예요?”

  현수가 어깨 뒤로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현수에게 플래시를 건네며 환기통로 끝을 가리켰다.

  “저기 꺾인 데 보이지. 저기까지만 가서 뭐가 있는지 보고 와.”

  그러자 현수가 나를 쳐다보았다. 표정이 사람 놀리는 원숭이처럼 느껴져 욕지기를 안주 삼아 캔을 비운 뒤 힘껏 던졌다. 캔이 벽에 부딪혀 맥주방울과 거품을 뿌리며 떨어졌다.

  나는 쥐어짠 걸레 같은 표정을 지으며 가위로 깁스를 잘랐다. 돌아와 입을 벌린 환기구 앞에 의자를 받쳐 놓았다. 반쯤 몸을 집어넣자, 뒤에서 현수 아줌마가 팔은 괜찮으냐고 걱정스레 물어 왔다. 탐정은 서비스업이다, 서비스업이다…….

  “위험수당 추가됐습니다.”

  환기통로에 들어왔다. 오른팔로만 기어가며 플래시로 바닥을 비춰 보았다. 벌써부터 땀으로 셔츠가 축축해졌다. 우라질 태국으로 피서 오는 놈들 머릿속을 이해할 수 없다. 한국보다 더워 죽겠는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오는 거야? 어쨌든 바닥에는 짐승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발자국도, 발톱 자국도 아니었다. 뭐랄까 일주일쯤 목욕을 시키지 않고 비계만 먹인 페키니즈가 온통 나뒹굴며 기름기를 묻혀 놓은 것 같았다. 냄새는 그런 페키니즈가 풍길 만한 개 비린내였다. 다행이다. 덩치 크고 기름기가 질질 흐르는 까만 털의 유기견이 틀림없다. 흰자위가 있는 것도, 눈알의 크기나 냄새도 설명이 된다. 신음소리도 성대수술을 당한 개라면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발자국이 없었다. 바닥에 난 자국도 털북숭이 뱀이 아닌 이상은 나지 않을 법했다. 환기통로가 꺾인 곳까지 기어와서 건너편으로 플래시를 비추었다. 벽이 마주했다. 방향을 틀자마자 환기통로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던 것이다. 깊이는 사람 키 정도였는데, 지금까지의 환기구 통처럼 칸마다 이음새가 튀어나와 있었다. 바닥에는 발톱 자국이 드문드문했다.

  무슨 종인지는 모르지만 동물인 것 같았다. 역시 겁을 먹고 잘못 본 게 맞다. 실소하며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여기서부터 먼지가 벽지처럼 사방에 들러붙어 있었고 바닥에는 기어 다닌 흔적이 잔뜩 나 있었다. 바닥을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털은 발견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온몸에 먼지를 묻히며 기어가기 시작했다. 삼 분 정도 더 기자, 갑자기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환기구가 바깥과 연결된 모양이었다. 좀 더 기어가자 바람이 멎었다. 대신 똥을 지렸다가 비벼 닦은 듯한 갈색 자국들이 바닥과 벽에 나 있었다. 트위스터 게임을 하듯 온몸을 비틀며 지나가자 드디어 통로가 끝났는데, 대신 또 하나의 구멍이 입을 벌렸다. 공사를 하다가 덮어버린 듯한 땅굴이 나타난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땅 속으로 연결된 환기구라니? 게다가 천장은 콘크리트로 막혀 있었고 좌측으로부터 연결되다가 만 수도관이 튀어나와 있었다. 우측에는 아기나 들락거릴 만한 배수로가 나 있었는데 짓다 만 듯했다. 축축한 흙바닥엔 노래기나 진드기 같은 것들이 한 움큼씩 뭉쳐 다니고 있었다. 역시 발자국도 털도 없었다. 때마침 전구가 닳았는지 건전지가 닳아버렸는지, 플래시가 꺼져버렸다. 핸드폰을 꺼내 액정 빛에 의지했다.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내려가서 수도관 안쪽을 비춰 보았지만 핸드폰 액정으로는 코앞이 한계였다. 혹시나 해서 일회용 라이터를 꺼냈지만, 밀도 높은 어둠 속에서는 한 발짝이 전부였다. 포기하고 라이터 끝으로 바닥을 헤집어 보았다. 웬 뼈다귀가 튀어나왔다. 개가 묻어 놓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메스꺼움이 밀려 들어오더니 결국 토악질을 하고 말았다.

  그동안 맥주에 취해 있었던 것일까? 구토 덕에 정신을 차리고 나니 뼈다귀 형태가 분명하게 보였다. 크기는 한 뼘에 못 미치며, 짐승의 다리뼈라 하기엔 너무 가늘었다. 군데군데 이로 갉은 자국이 있었는데 골수를 빨아먹으려 했는지 모서리에다 내리친 흔적도 남아 있었다. 뼈는 이미 백골에 가까울 정도로 부패해서 일부분이 바스러져 있었다. 잘 됐다. 뼈를 가지고 땅을 헤집기 시작했다. 조그만 뼈 조각들이 나타나더니 발가락뼈 같은 것도 나타났다. 곧 큼직한 것이 뼈끝에 걸렸다. 마구 헤집었더니 두개골이 튀어나왔다. 사람의 것이었다. 욕도 튀어나왔다.

  욕을 반도 내뱉기 전에 짖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뼈를 떨어뜨렸더니 웬 송아지만 한 개가 낚아채곤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잡종 도사견같이 생겼는데 하수구 구멍을 비집고 나온 듯했다. 도사견은 멍청하기 그지없는데 꼴에 성질이 더러워서 사람 깨나 무는 놈이다. 차라리 똥개가 낫다. 나는 그놈의 눈을 쏘아보며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개가 뒷걸음질 치더니 배수로가 아닌 수도관으로 들어가 버렸다. 쫓아서 플래시를 비추었지만 곧 사라지고 말았다.

  현수의 아내일지도 모르는 인골 위에 토하는 꺼림칙한 짓을 하긴 했지만, 덕분에 경찰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유기된 인골까지 나오면 현수의 사건도 다시 수사를 해줄 것이다. 그런데 인골이 정말 현수의 아내로 밝혀진다면? 갑자기 몸이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셔츠 속으로 빈대가 기어 들어온 것 같았다. 서둘러 환기구로 들어가려 하자 귀를 찢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개의 것이었다. 수도관 너머로 핸드폰을 내밀었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개의 몸이 수도관에 부딪히는지 투닥거리는 소리만 울려 왔다. 수도관의 너비, 개의 몸집, 싸울 때 위협하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적당한 동물이라곤 악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태국에서도 하수구에 악어를 버리는 게 유행인가? 몸집이 작은 종류거나 개는 잡을 만큼 적당히 자란 놈이겠지. 한달음에 재빨리 환기구로 돌아왔다. 핸드폰의 단축번호를 누르자 첫 신호음이 끝나기 전에 그가 전화를 받았다.

  “경찰에 연락해. 인골을 찾았다. 팔뼈랑 두개골. 악어 같은 것도 있는 것 같아.”

  현수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핸드폰을 통해 힘겹게 게워냈다. “악어요?”

  “어. 두개골은 위턱에 금니 하나 있어. 어금니, 마주봤을 때 왼쪽이야.”

  전화기 너머가 고요해졌다. 내가 위로 꺾인 곳에 도달하자 현수가 말했다.

  “세라믹으로 한 건 확인했어요?”

  이게 무슨 소리야?

  “세라믹?”

  “결혼하기 전에 미연이랑 같이 치과에 갔었어요. 어금니 바로 앞에도 크라운을 씌웠는데, 그때는 세라믹으로 했거든요. 확인했어요?”

  고개를 숙이고 떠올려 보았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다른 것보다 희거나 반질거렸던가? 모양이 완전했던가?

  “어차피 경찰 올 거 아냐. 그때 봐.”

  “보고 오시죠.”

  현수 놈은 사람 입에 걸레를 물리는 데 재능이 있었다. 욕이 튀어나오기 전에 핸드폰을 닫았지만 내 욕 소리는 욕실까지 울렸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것으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잔뜩 웅크려서 방향을 틀고 다시 기기 시작했다. 거의 끝에 다다를 즈음 손에 미끈거리는 것이 만져졌다. 내가 밟은 진흙은 아니었다. 핸드폰 액정을 앞으로 향했다. 죽은 개의 머리가 혀를 빼물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팔을 휘둘렀다. 개 머리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환기구 밖으로 떨어졌다.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내밀어 살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가능한 환기구를 나가지 않고 팔을 뻗었지만 개 머리에는 닿지 않았다. 상체를 빼서 주둥이를 잡자마자 재빨리 끌어당겼다. 천천히 뒤로 기면서 개 머리의 절단면을 보았다. 가죽이 살보다 많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무서운 힘으로 뜯어진 것 같았다. 또 욕이 튀어나왔다. 머리를 놓고 미친 듯이 기었다. 거의 엎드려서 달리다시피 했다. 그러다 위로 꺾어지는 부분에 머리를 부딪쳤다. 또 욕이 나왔다. 이게 다 현수 놈 때문이다. 차라리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200원짜리 비디오나 보는 게 나았다. 머리를 문지르며 고개를 드니 발톱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무심코 지나쳐서 올라가려다 움직임을 멈추었다. 발톱 자국이 묘하게 넓었다. 손을 대어보니, 내 것보다 좁긴 했지만 육식동물이 낼 만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가장 선명한 자국 옆에다 힘을 주어 긁어보았다. 너비만 다를 뿐, 완전히 똑같은 자국이 생겨났다.

 

  돌아오자마자 철망을 닫고 나사를 끼운 뒤 현수 모자를 몰아냈다. 이등병 시절보다 더 빨리 샤워를 했다. 방으로 나오자 현주 아줌마가 울상을 한 채 맥주 캔을 내밀었다. “수고했어요.” 거절하고 냉장고를 열었다. 분홍색 과일주스를 꺼내 마셨는데 이가 녹아버릴 만큼 달았다.

  “확인했어요?”

  현수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고개를 저었다.

  “경찰 불렀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숨을 내쉬며 침대 위에 주저앉자 재빨리 현수가 달라붙었다.

  “왜…….”

  “돌아버리는 줄 알았네. 악어도 아니고 하여간 이상한 게 있어. 되돌아갔더니 말이야, 그게 말이지 황소만 한 개 머리를 그냥 잡아 뜯었더라고. 그걸 나 보라고 떡 올려놨는데 너 같으면 가고 싶겠냐?”

  “그러니까.”

  “너 같으면 가고 싶겠냐고.”

  “아니 제 말은.”

  “살아 있는 개 대가리를 뜯어 놨다니까! 힘으로! 어두워서 보지도 못했다!”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현수가 울기 시작했다. 미연아 미안해, 나 때문에 어쩌고 저쩌고……. 나는 드러누워서 베개로 귀를 틀어막아 버렸다.

  나는 그것을 사람이라고 믿기 싫다. 하지만 모든 정황은 그것이 사람이라고 소리쳤다. 손톱 긁은 자국이나 눈의 크기, 경고의 의미로 개 대가리를 올려놓은 짓하며…… 아마도 내가 땅을 헤집는 동안 수도관 저편에서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혹 야자수가 아니라 사람 머리를 따는 원숭이가 있다고 해도 개와 싸우면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을 리가 없다. 갑자기 학대당한 원숭이가 사람을 죽이는 일이 종종 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원숭이는 지능이 높으니까 경고의 의미로 개 대가리를 올려놓을 수도 있었겠지. 사람의 학대와 도시가 만들어낸 괴물. 그건 그것대로 공포스러운 일이다. 소름이 돋는다.

  …….

  그새 깜빡 잠들었던 것일까? 현수의 목소리는 형편없이 쉬어 있었고 부르짖던 사람은 미연에서 엄마로 바뀌어 있었다. 모래라도 들이부은 것 같은 눈을 비비며 베개를 치우자 환기구에 머리를 들이미는 아줌마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현수 놈은 멀거니 서서 어린애마냥 징징 짜면서 가지 말라고 중얼거렸다. 어처구니가 없고 화가 나서 대번에 달려가 뺨을 후려쳤다.

  “야이 개새끼야, 니 엄마 아냐?”

  환기구에 들어가 버린 아줌마의 다리를 잡아당겼다. 다치는 것도 감안하고 힘껏 잡아당기자 아줌마가 치마가 뒤집힌 채 미끄러져 나왔다. 하지만 아줌마가 양쪽 벽에 손을 대고 버티기 시작했다. 나는 두 다리를 껴안고 끌어당겼다. 나잇살이 뒤룩뒤룩 붙은 허벅지, 시장에서 샀을 법한 살구색 거들 팬티 옆으로 빠져나온 엉덩이가 얼굴을 문질러댔다. 심호흡을 한 뒤 온 힘을 다해 뒤로 넘어지며 끌어당기자 겨우 빼낼 수 있었다. 문제는 아줌마가 내 위로 떨어진 것도 모자라서 왼팔을 깔고 앉아버린 것이다. 준비도 못하고 깔려버린 나는 일 분쯤 바닥에 엎어진 채 꿈틀거렸다. 부러진 뼈에 신경이라도 있었던 듯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숨통이 트이자마자 현수 아줌마에게 다그쳤다.

  “거기 뭐가 있을지 알고 기어 들어가? 그렇게 키우니까 애새끼가 이 모양이잖아!”

  “내가 말이요, 애가 이렇게 되도록 아무것도 안 한 게 말이요…….”

  현수 아줌마는 그저 눈물만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담배. 담배가 필요하다.

  손짓 발짓으로 담배를 사왔더니 경찰들이 와 있었다. 현지인이나 배낭을 멘 월드 와이드 뜨내기들도 몰려들어서 고개를 빼들고 있었는데, 좁아터진 모텔 문 안을 들여다보려고 서로 밀어대는 통에 난장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묵고 있는 모텔은 꽤 작았다. 아니, 작다고 말하기에도 애매했다. 방이라고는 어지간한 모텔 사이즈의 2인용 방이 두 개에, 배낭여행객들이 뒤엉켜 자는 햄스터 우리 같은 방이 하나뿐이었는데 이게 상당히 넓었다. 배낭여행객들 상대하기에는 적당했지만 왜 방을 이렇게 나누어 두었는지는 짐작이 되지 않았다. 부대시설로는 코인 세탁기와 캔 음료 자판기, 둥근 테이블 하나와 플라스틱 의자 세 개를 구비하고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을 대중탕의 것과 구분이 힘든 카운터 앞에 늘어놓았고, 테이블 위에는 휴게실이라고 매직으로 써놓은 작은 화분을 놓아두고 있었다. 그래서 서너 명 정도가 들어가면 앉아 있던 사람도 일어서야만 했고, 비좁아서 게걸음을 해야 할 정도였다. 이런 공간에 경찰 다섯 명이 들어가 있었다. 그들에게 밀려난 나머지 세 명은 사람들을 막아서서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신참 같았다. 그냥 입 다물고 담배나 피웠다면 이 정도까지 소란스러워지진 않았을 텐데.

  온 힘을 다해 인파 속을 헤엄쳤다. 드디어 정문에 다다르자 가슴팍이 땀으로 흥건한 경찰이 거칠게 밀쳐냈다. 나를 가리켰다가 방 쪽을 가리키며 손가락질을 자꾸 해서 겨우 들어올 수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현수를 통역 삼아 경찰관이 질문을 시작했다.

  현수가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남자가 한 이야기가 사실인가?”

  “응.”

  “샤워실에서 뭘 봤지?”

  대답하기 앞서서 담뱃갑을 꺼냈는데, 인파를 비집고 오는 통에 있는 대로 눌려져 있었다. 어설프게 생긴 경찰이 담배를 내밀었다. 피워 봤더니 말똥 맛이 나서 그냥 납작해진 말보로를 꺼내 물었다. 역시 똥 맛이 났다.

  “눈. 신음소릴 내길래 놀라서 밖으로 나갔지.”

  “환기구에서 본 걸 확인하려고 들어갔다고 이 사람이 말했는데, 왜 곧바로 신고를 안 했나?”

  “동물인 줄 알았어. 그런데 저 친구가 귀신이라고 난리를 치더라고.”

  “어떤 동물?”

  “원숭이?”

  “귀신이란 건 무슨 이야기인가?”

  “저 친구 마누라. 십이 년 전에 여기서 실종됐어.”

  현수가 굳은 표정으로 내 말을 통역했다. 그러자 경찰의 표정도 굳어졌다. 경찰은 현수에게 따지듯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현수가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제가 여기 경찰들한테 좀 유명하거든요. 정신병자 하나가 매년 와서 쇼를 한다고. 나 때문에 우리나라 대사관이랑 마찰이 있어서 경찰서장이 승진도 못 했어요.”

  경찰이 고함을 빽 지르곤 일어섰다. 그러곤 침을 튀기며 소리를 질러댔는데 아마도 연례행사에 걸린 것 같으니 돌아가자는 내용 같았다. 다른 경찰들은 현수를 쳐다보더니 화난 표정과 신기하다는 표정을 섞어 지었다.

  대부분의 경찰이 방문 쪽에 모였지만 샤워실에 들어갔던 자들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들여다보니 환기구 아래 앉아 잡담을 하고 있었다. 어설픈 놈이 가서 담배를 나눠주고 함께 피우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어.”

  현수가 말했다. 사실 현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십이 년 동안 이런 짓을 했다면 두 배쯤 이상한 놈이 돼버렸을 테니까.

  담뱃갑을 꺼내 멀쩡한 것을 찾기 시작했다. 그나마 통통한 것이 있었지만 반이 찢어져 있었다. 한 모금도 빨지 않았는데 필터까지 타버리고 말았다.

  “어쨌거나 저기에 들어갔잖아. 개 머리랑 두개골도 찾을 테니까 네 이야길 들어줄 거야. 그…… 턱에 의치도 확인이 될 테고. 아니면 단서라도 찾을 수 있겠지.”

  “미연이가 틀림없어요.”

  현수가 울먹였다. 나름대로 위로해 줄 양으로 새 담배를 물면서 현수를 보았는데 염병할, 그놈의 표정은 오히려 기뻐하는 듯했다. 이젠 신음소리 비슷한 숨까지 몰아쉬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린 채 그놈을 보았다. 담배가 떨어졌다. 왜인지 모르지만, 고개를 내려 현수의 사타구니를 보았다. 얇은 반바지 밑에서 불뚝 솟아오른 물건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현수 아줌마가 어쩔 줄 몰라 하면서 그놈의 다리 위에 수건을 덮었다. 기분이 더러워진 나는 괜히 냉장고를 열었다. 맥주도 주스도 떨어지고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생수통을 집었는데, 바로 옆의 욕실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욕실에선 환기구로 들어갔던 경찰이 돌아오는 중이었다. 그는 한쪽 팔로만 기어오고 있었다. 다른 팔로는 무언가를 끌고 있었는데 뼈를 모은 자루 같았다. 그가 구멍 밖으로 손을 내밀자 나머지가 끄집어냈고, 드디어 자루라고 생각했던 것이 미끄러져 떨어졌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것은 자루 따위가 아니었다. 인후부가 없어진 경찰의 시체였다.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일까? 안도? 공포? 해방감?

  그저 더러울 뿐이다. 될 대로 되라는 생각이 들어 침대로 가서 걸터앉았다. 피곤했지만 오히려 각성제를 맞은 듯 정신이 말끔해지기 시작했다. 이틀쯤 밤을 새다가, 담배연기를 들이마시다 보면 어쩌다 한번 번득이곤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환기구에서 나온 경찰은 죽은 동료가 앞을 막고 있어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냥 캑캑거리면서 버둥거리다가 늘어지길래, 플래시를 비춰 봤더니 이미 목 울대 부근이 뜯겨 나가고 없었다고 했다. 나는 한 시간쯤 누워 있다가 현수와 함께 아줌마 방으로 옮겼고, 환기구 속에서 겪은 일에 대해 자세한 증언을 한 뒤 비누 맛이 나는 컵라면을 먹고 곯아떨어졌다.

 

  경찰이 가장 빨리 움직일 때는 경찰이 죽었을 때라는 것은 태국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이들은 순식간에 시장 일대의 수도관이나 하수도 입구를 완벽히 봉쇄해 버렸다. 이상한 건 수도관 조사를 담당했던 자들이 푸르뎅뎅 스머프 얼굴로 기어 나왔다는 것인데, 현장을 감독하던 경관에게 보고를 하려 하자 웬 형사가 와서 그들을 데려가 버렸다는 점이었다. 또 다른 인골이라도 발견한 듯했다. 그 뒤로는 파견 나온 인원들까지 합세해 하수도를 조사하는 데 열의와 성의를 다했다. 그런데 온 하수구를 뒤져 놓고도 찾아낸 것이라곤 내가 발견한 개 머리 하나와 인골 일인분이 전부였다. 인골은 미연의 것이 아니었다. 그 소식을 들은 현수는 또다시 맨홀 같은 눈을 하고선 말을 잃어버렸다.

  다음날 경찰들은 옆 동네 하수구까지 들어가서 시체를 세 구 발견해 냈다. 모두 남자인데 두개골에 총상에 의한 골절이 있었고 엄청나게 썩어 있어,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는 폭력조직의 소행 같았다. 일주일 동안 하수도를 헤엄쳐 다닌 경찰들도 결국 지쳐버렸는지, 맨홀이나 하수도 입구에 자물쇠를 달아 놓고 얼마간 감시를 세우는 것으로 마무리하려는 것 같았다. 현수가 울면서 사정했지만 경찰들은 십이 년 전에 당했다면 뼈도 남지 않았을 거라며 포기하라고 했다. 나는 죽은 경찰의 부검 결과를 알고 싶었지만 그저 맹수라고만 할 뿐 알려주지 않았다. 매스컴에도 원숭이로 추정되는 맹수가 사람을 습격했으니 조심하라는 말밖에 없었고, 원숭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찾아가 도망친 놈이 없었는지, 학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하수구 출구의 뻘 속에서 늙은 오랑우탄의 시체가 발견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은 이 오랑우탄이 성대를 다쳐서 소리를 낼 수 없는 상태였다는 점, 오랑우탄은 늙을수록 성질이 사나워지는데 사람에 의해 성대를 다쳤다면 충분히 사람을 공격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오랑우탄 킥복싱에 이용되며 학대당하다가, 킥복싱 쇼가 금지당하자 버려진 녀석이었다는 동물원 직원의 증언, 하수구 구멍에서 팔을 내밀어 음식쓰레기를 주워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는 양아치 같은 남자의 증언을 곁들이며 이번 사건의 범인으로 발표했다.

  뭉툭해진 손톱을 보았다. 미친놈들, 차라리 하수구 타잔이나 모글리가 했다고 해라! 어쨌거나 뉴스를 보면서 현수의 해석을 듣자니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그것이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도사견 일도 그렇고, 경찰의 목도 그렇고 모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눈곱만큼이라도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면, 이미 확인할 길이 사라졌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수도관에 갔다 온 경찰들은 무언가 발견한 표정이었는데 구린내 나는 형사가 와서는 입을 막았지 않은가. 게다가 오랑우탄을 가지고 진상을 꾸며냈으니, 저들은 적어도 그것이 뭔지 알았고 그래서 덮어버린 것이다.

  수챗구멍을 후비는 듯한 냄새가 난다. 하지만 그것이 하수구 타잔이라 해도 미연의 실종과는 관계가 없었다. 미연은 시장에 바나나 튀김을 사러 나갔다가 실종되었으니까. 게다가 계약서상으로 의뢰는 완수된 상태였다. 깁스를 일찍 푼 팔 상태도 좋지 않았고, 여긴 외국에다, 경찰들이 덮어버린 것을 파헤칠 힘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위험한 일은 사양이었다. 현수나 아줌마에겐 안됐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귀국 전에 뿌빳뽕커리를 배불리 먹는 것뿐이었다. 카레 소스를 듬뿍 끼얹은 게 요리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여행용 가방에서 깨끗한 정장을 꺼내 입고 거리로 나섰다.

  현수와 갔었던 레스토랑을 찾아간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손가락 두 개를 세웠다. “뿌빳뽕커리.”

  기다리고 기다려서 요리가 등장하자, 현수 아줌마도 함께 등장했다. 아줌마 얼굴을 볼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고개를 삐딱하게 돌리며 혀를 찼다. 그녀는 당연한 듯이 맞은편에 마주앉더니 핸드백을 껴안았다.

  “따라왔어요?”

  아줌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주저하는 듯하다가 거침없이 말을 쏟았다.

  “저기, 조금만 더 있어 주면 안 돼요? 이번이 마지막인데, 이렇게 돌아가면 우리 현수 너무 안됐잖아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게 다리를 쪼갰다. 살을 빼먹고, 껍질에 묻은 소스를 핥았다. 게 두 마리를 돼지처럼 쩝쩝거렸지만 아줌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 좀 해줘요. 당신 그런 양반 아니잖아요.”

  그럼 내가 어떤 양반인데?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서 입으로 가져가던 게 다리를 내려놓았다.

  “끝낼 때는 이렇게 끝내는 게 최고거든요. 더 매달려 봐야 미련만 남습니다.”

  “그러니까.”

  말투가 묘했다. 나는 게살을 빼먹으면서 아줌마를 올려다보았다. 아줌마는 화분 깨뜨린 아이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하. 나는 접시에서 소스를 덜어내 밥그릇에 쏟고 비비기 시작했다. 다 비빈 뒤에는 게 몸통을 쪼개서 와작와작 씹어 먹은 뒤 안에 들어 있던 국물을 끼얹었다.

  “그러니까 뭐요? 단서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데?”

  아줌마는 괜히 곁눈질을 하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미연이요, 없어지기 전까지 내가 준 목걸이를 하고 있었어요.”

  아줌마가 핸드백에 손을 넣었다. 잠시 뒤 떨리는 손에 걸려 나온 것은 은제 목걸이였다. 두 개의 동그라미가 뫼비우스의 고리처럼 맞물린 장식이 달려 있었다. 얼씨구? 그녀를 바라보는 내 눈빛이 게슴츠레해지자 아줌마가 당황하면서 설명했다.

  “티파니 건데 어버이날 때 현수가 사준 거예요. 미연이가 마음에 들어 하길래 현수가 똑같은 걸 사줬어요. 항상 하던 거다 보니 놓고 오긴 뭐해서…… 현수 볼 때는 항상 백 속에 넣고 있었어요.”

  “그럼 여기 와서 목걸이 보인 적은 없다 이거죠? 오기 전에도?”

  “예.”

  아줌마가 목걸이를 매만졌다. 나는 생각을 매만졌다. ‘그것’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생각을 해보면, 이 동네 경찰들이 수도관 안에서 무얼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인골들일 가능성이 있었다. 가장 현실적이다. 아무래도 관광지다 보니 사건이 더 커져서 푸켓 경제에 타격이 가는 일을 막고 싶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태국 자체의 이미지를 지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관광객 중 소리 없이 사라지는 하나 둘에 나 자신이 당첨된다면? 나 같으면 태국엘 가느니 냉장고 문을 열고 앉아 있는 걸 택할 것이다. 어쩌면 수도관 안에 미연의 인골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십이 년이나 현수의 말을 무시하고 미루고 거부하던 것과 십이 년간의 무능함이 국제적으로 알려지는 것이 싫었을 것이다. 이건 그냥 가능성의 하나라는 걸 설명해 주고 수도관 안에 들어갔다 온 다음 목걸이를 주면, 반쯤 미친 모습을 보였던 현수의 상태라면 납득할 수도 있다. 문제는 더 이상 경찰을 끌어들이지 않는 것이다. 현수가 목걸이를 가지고 또 경찰 옆구리를 찌르면 과학수사를 동원하거나 이미 했던 결과를 내놓든, 없는 걸 만들어서 내놓든 반박할지도 모르고, 오히려 기소를 당할 수도 있다. 이번엔 아예 싹을 자르려고 들 것이다. 그럼 나는 위증에 공무집행방해 어쩌고저쩌고 국제범죄자가 되어서 태국 교도소에서 야자수나 따야 한다. 나무 아래는 간수가 쇠좆매라도 흔들며 낄낄거릴걸. 하지만 설득만 잘하면 되지 않을까? 혹시나 일이 커져도, 난 모른다고 잡아떼면 될 테다. 계약도 끝났고 하수구에 들어갔다 온 것은 현수 자신이 한 일로 하라고 각서를 쓰게 하면……. 물론 각서란 게 효력이 없긴 하다. 그리고 돈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미연이랑 사이가 좋았어요?”

  “고등학생 때부터 연애결혼이었거든요. 미연이는 현수가 취직하기 전엔 절대 결혼 안 한다고 버텨서 현수랑 싸웠지요.”

  “아니, 아줌마랑.”

  볶은 카레소스에 비빈 밥을 푹 떠먹었다. 아줌마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 미연이 때문에 이 꼴이 되었으니 과거가 어쨌든 지금은 증오스러울 테지. 뭐든지 결과가 전부다.

  밥을 씹으면서 아줌마 얼굴을 보았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몇 년 전이던가, 아마 내가 군 영창에서 나왔을 때 면회를 온 사람이 지은 표정이었다.

  “알아서 해도 됩니까?”

  아줌마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건 내가 위험해서 비용이 좀 드는데.”

  “그건 제가 드릴게요. 저, 얼마예요?”

  “의뢰비용과는 별도로 백 프로, 선금이요. 계약서는 못 써요. 이거 잘못하면 내가 앞으로 일을 못하게 돼. 경찰에는 절대 연락하면 안 돼요. 현수한테 주의를 줘. 알겠어요?”

  “너무 비싼 거 아니에요?”

  또 혀를 찼다. 모자가 명품으로 도배를 했는데 뭐가 문제야?

  “아줌마, 난 생명을 두 개 걸어야 하거든요. 목이 뜯겨서 죽어 나온 경찰 봤어요 안 봤어요. 그리고 아까 말했잖아요. 직업생명도 걸어야 한다니까. 내가 이 나이에 백수 되면 연금이 나오겠어요 뭐가 나오겠어요? 가진 게 몸뚱이밖에 없어서 이 짓을 하는 건데. 현수가 나 취직시켜 줄 거야?”

  “…….”

  아줌마는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든 깎아 볼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짜증이 났다.

  “아줌마도 비용 같은 거 따져 보고 왔을 거 아니에요. 브랜드 있는 탐정사무소였으면 두 배는 나왔을걸.”

  아줌마는 잠시 고민하더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해요.”

  “목걸이 주시고. 이거 다 먹으면 은행부터 갑시다. 어차피 아들 몰래 하는 거잖아요.”

  은행에선 영어가 통하겠지. 목걸이를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그새 뜨뜻해진 목걸이가 허벅다리에 닿아 불쾌했다.

 

  아줌마와 돌아오니 현수가 ‘휴게실’에 앉아 파일을 보고 있었다. 이건 현수가 오 년째부터 만든 일종의 포트폴리오인데, 한국에서 이 모텔에 예약했을 때의 일부터 바로 작년까지 수사했던 내용들을 정리한 것이었다. 미처 기록하지 못했던 것은 기억을 떠올려서라도 서술해 놓고 있었다. 시장이 점점 커지고 주변 풍경이 변하는 과정까지 자세하게 촬영한 사진도 붙어 있었다. 어쨌거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서 대충 훑어보고 돌려줘 버렸던 것이다.

  아줌마는 머뭇거리다가 먼저 들어가 버렸다. 나는 현수와 마주앉아 담배를 빼물었다. 파일을 넘기던 현수는 못 견디겠는지 모텔을 나가버렸다. 나는 현수에게 할 말을 생각하며 담배를 피워 물다가, 그동안 보이지 않던 작은 앨범을 발견했다. 현수가 두고 간 파일의 표지 밑에서 튀어나온 손때 묻은 사진첩이었다. 펼쳐 보니 미연과 찍은 사진들이 있었다. 학예회 사진이나 소풍, 수학여행, 졸업사진에서 스티커 사진, 축소한 결혼사진들이 정연했다. 미연은 어릴 때부터 성격이 좋았는지 항상 웃고 있었다. 얼굴이 좀 감자 같아서 호감 가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가장 마지막 장에는 태국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이 있었는데, 바로 이 모텔 이 장소에서 찍은 것이었다. 그다지 바뀐 것은 없었지만 카운터에는 게이 대신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런데 남자의 머리 위를 가리키는 화살표와 함께 ‘쏨차이 트림트라꾼, 선샤인 콘티넨탈 호텔’이라는 메모와 별이 네 개 그려져 있었다. 선샤인 콘티넨탈은 여기에서 오 분 거리에 있었다. 가까운 만큼 이 호텔에 대한 이야기는 나도 알고 있다. 이제 내부 인테리어를 끝마쳤고, 며칠 뒤 오픈 행사와 함께 문을 열 예정인 관광호텔이다. 이걸 일 년 전에?

  현수가 돼지고기 소시지와 바나나 튀김 따위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돌아왔다. 그는 봉지를 내려놓기가 무섭게 말했다.

  “엄마랑 무슨 얘기 하셨어요?”

  나는 바나나 튀김을 집었다.

  “수도관이 이상하다고.”

  “경찰이 조사했잖아요.”

  “조사는 했지. 그런데 조사하고 나온 놈들이 경관한테 보고를 하려고 하니까, 어슬렁거리던 형사가 가로채 가더라고.”

  “그럼 수도관 안에!”

  현수가 벌떡 일어섰다. 바나나 튀김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앉으라고 손짓을 하곤 담배를 새로 빼물었다.

  “그건 아무도 몰라. 그보다 이건 뭐야?”

  앨범의 마지막 장을 가리켰다. 그러자 현수가 앨범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이건 상관없는 거라서 빼뒀어요.”

  “이거 뭐냐니까.”

  “메모요, 요전에 조사한 거예요. 이 남자가 여기 주인이더라고요.”

  현수를 쳐다보았다. 현수는 팬더 같은 눈을 끔벅거리며 이 아저씨가 무슨 상관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현수를 향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뒤편의 카운터를 가리켰다.

  “주인인데 왜 한 번도 안 보였어?”

  “원래는 호텔 주인이라서 그래요.”

  “무슨 호텔?”

  “여기 적혀 있는 호텔이요. 관광호텔인데 여기에선 두 번째로 커요.”

  양미간을 짚으며 이마를 찌푸렸다.

  “이 남자, 혹시 호텔을 직접 지었나? 이 모텔도?”

  현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몰라요. 작년에 고용한 탐정이 혼자서 알아 온 거라.”

  “이거 알아 온 사람은 뭐라고 하던?”

  “전혀 관계없더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관계가 없을까? 욕실에 있었던 환기구 통은 호텔이나 큰 오피스 빌딩에나 설치할 만한 대형이었다. 옮긴 방에도 똑같은 게 있었으니, 호텔을 짓다가 남은 자재를 이용했다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로 큰 관광호텔을 경영하면서 왜 시장 한가운데에 모텔을 지었을까? 돈 벌 생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듯한 방 배치는? 이상한 건 환기구만이 아니었다. 욕실에 있었던 목욕의자가 그랬다. 이런 종류는 일본의 풍속업소에서나 쓰는 것이었다. 창의력 대장은 아니지만, 내 상상은 이 아저씨가 주변에 홍등가나 러브호텔 따위를 경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까지 뻗어 나갔다. 이것이 상상이든 추리든 간에 드디어 일을 하게 되어 기쁘기까지 했다. 문득 진짜로 관련이 있어서 수사가 늘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쏨차이라는 남자가 사건의 관련자라는 것보다 태국 하수구에 에일리언이 산다는 이야기가 더 현실적이라는 건 나도 인정한다.

  꼬치에 꿰인 소시지를 먹으면서 의자에 한껏 기대앉아 밖을 보았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한 배낭여행객이 나를 지나쳐 문을 열고 나갔다. 미닫이식 유리문이 열리며 끽끽 소리를 냈다. 카운터를 맡고 있던 게이가 또 오라고 인사를 하는 듯했다. 지나갈 때마다 코맹맹이 소리로 이상한 말을 해서 거슬리지만 꽤 이쁘장한 녀석이었다. 한국 트랜스젠더 바에 들어가면 ‘귀요미’는 떼놓은 당상이지 싶다.

  초록색 환타를 마시다가 바로 그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윙크를 해오길래 사레들릴 뻔했다. 입술을 닦으며 말했다.

  “작년에 고용한 탐정은 이름이 뭐였어?”

  “연…….”

  “뭐, 그 미친놈…….”

  도중에 입을 닫았다. 설마 그 녀석이 이따위 의뢰를 받아들이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놈은 무지무지하게 계산이 빠른데, 절대로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는데 주제에 모험도 할 줄 알아서 가끔 큰 건수를 올리는 놈이었다. 꽤 오래 전에 같이 일하긴 했지만 그때는 선후배 관계였기 때문에 거리낄 것이 없었다. 헤어지고 난 지금은, 뭐랄까 관계를 유지할 구실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이다.

  “여자였는데요.”

  “알아.”

  현수의 핸드폰으로 국제전화를 걸었다. 일 분 정도 기다려도 받지 않았다. 다시 걸어서 일 분쯤 기다리자, 자다 일어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사막 같은 말투였다. 잠시 망설이다가 어렵사리 말을 건넸다.

  “난데.”

  “왜.”

  “현수 알지. 작년에 푸켓에서 십일 년 된 실종사건 조사해 달라고 한 사람.”

  “아는데.”

  “쏨차이라는 남자 말이야. 네가 조사했지?”

  “그런데.”

  “말 좀 해봐.”

  “태국이야?”

  “어. 그런데 선샤인 말이다. 어디 보자…… 이틀 뒤에 오픈인데 작년에 왔으면서 어떻게 알았어?”

  “그냥.”

  “별 네 개면 일급 호텔 아냐? 인테리어도 안 한 상태였을 텐데 이건 어떻게 알았어? 쏨차이란 놈한테 뭐가 있으니까 이렇게까지 조사한 거 아냐. 뭐야?”

  “말하면…….”

  “십 프로 줄게. 영수증도 돈 주면서 보여줄 테니까.”

  “손 떼면 말해 주고.”

  손을 떼면? 의외였다. 하랑은 내가 쏨차이란 놈이 뭐길래, 라고 생각을 해볼 틈도 주지 않았다. 높낮이도 없는 평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쏨차이 트림트라꾼은 츠렌이야. 호적상 이름이 워낙 기니까 평상시에 부르려고 붙이는 이름. 젊을 때부터 그 지역 폭력배를 거느리면서 매매춘이나 이권다툼에 손을 댔어. 시장 전체가 거의 그놈의 돈줄이라고 보면 돼. 그런데 십사 년 전에 호텔을 지으면서 조직을 넘버 투에게 넘겼어. 그건 명목상이고 섭정을 계속하면서 돈을 긁어모았지. 작년에는 옆 건물을 사들여서 신관 구관으로 연결했지. 그때를 기준으로 조직은 완전히 넘버 투에게 넘겨버렸고. 그 호텔 작년에도 영업하고 있었어. 오픈이라면 신장개업이겠지.”

  “그리고?”

  “그 지역 경찰서장이랑 경찰청 간부가 그놈이랑 엮여 있어. 피 섞고 의형제까지 맺었다는데.”

  맥이 풀렸다. 손 놓을 만했다.

  현수를 쳐다보았다. 현수는 귀를 쫑긋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귀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던데 현수가 그런 모양이었다.

  주저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인신매매도 하나?”

  “돈 되는 거면 다 했겠지. 그래도.”

  “그래도?”

  “왜 하필 외국인을 납치하겠어? 단체관광이면 한 시간 내로 신고가 들어갈 텐데. 재수 없어서 외교 문제까지 뻗치면 그놈이랑 나눠먹는 경찰들도 괴로워질걸. 사람이야 외국에서 속여 가지고 데려오는 일은 많지만 그건 업으로 삼는 국제조직이 따로 있어. 어쨌든 그놈은 그 바닥에서만 놀았어. 그만큼 수비도 확실해.”

  “그래서 손 놨어?”

  “푸켓 세계적인 관광지야. 그 안에서 일평생 해먹을 정도면 얼마나 철두철미한지…….”

  현수를 보았다. 그는 피부만 남기고 모두 토해버릴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잠깐 바꿔 주세요.”

  그가 말했다. 나는 핸드폰을 꺼버렸다.

  “있어 봐.”

  기분이 뒤숭숭했다. 이래서야 유일하게 혐의를 씌울 만한 놈은 쏨차이란 남자밖에 없질 않은가? 공권력 없이는 건드릴 수 없는 녀석이었다. 설마 있다손 쳐도 대한민국 외교부에 무얼 바라겠나. 미연이가 미국인이었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졌겠지만.

  나는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티파니 목걸이를 확인했다.

 

  하루가 지났다. 현수 아줌마를 배웅하고 온 우리는 즉시 경찰들이 열어 둔 땅굴로 갔다. 수도관 구멍은 벽돌로 메워져 있었다. 다행히 뒷골목에서도 구석에 위치한 터라 부수면서 남의 눈을 피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일부러 시선을 끌 필요도 없었다. 현수에게 신호를 준 다음 수건으로 둘둘 만 정을 수도관 가장자리에 대고 망치로 두들기기 시작했다. 황당하게도 매우 꼼꼼하게 발라져 있었다. 십여 분은 족히 망치질을 해서야 대부분의 벽돌을 치울 수 있었다.

  쉬면서 왼팔을 주무르고 있자 현수가 콜라를 주었다. 비닐봉지에 담아서 빨대를 꽂은 것이었지만 태국의 유리병 수거 정책 때문에 다들 이렇게 마시는 터라 불평은 하지 않았다. 얼음이 모두 녹아 싱거워져 있었지만 덕분에 숨도 쉬지 않고 모조리 마셔버렸다.

  충분히 쉰 뒤 수도관을 앞에 두고 심호흡을 했다. 악취가 밀려들었다. 가죽장갑을 고쳐 끼고 한국에서 가져온 슈어파이어 플래시를 들었다. 앞부분에 톱니 모양의 캡이 달려 있어 호신용으로도 쓸 수 있는 모델이었다. 헤드램프도 머리에 썼다.

  “기대는 하지 마. 그리고 뭔가 찾아내도 그게 끝이야. 알지?”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헤드램프를 켰다. 헤드램프는 역시나 꼬마전구보다 약간 더 밝은 정도였다. 플래시를 켜고 수도관 안으로 손을 내밀었다. 회색 콘크리트 관 속은 역시나 회색이었다. 바닥에는 흙먼지가 점점이 뭉쳐 있을 뿐이었다. 이상하게 퀭해 보였다.

  수도관 안에는 드문드문 매직으로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증거물을 수집하기 전에 사진을 찍느라 그려 놓은 것이다. 큰 것도 있었고, 작은 것도 꽤 있었다. 수도관 천장까지 둘러보면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오리걸음을 계속했다. 벌써부터 허벅지가 아프기 시작했다. 계속 걷다 보니 오 미터쯤 앞에 틈이 보였다. 수도관과 수도관을 연결한 틈새가 벌어진 것이었다. 땀을 흘리며 가보니 손가락 하나 정도는 들어갈 만큼 넓었다. 게다가 파보지도 않은 것 같았다. 손가락을 끼워 넣어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적당히 판 다음 안주머니에서 목걸이를 꺼냈다. 한번 완전히 묻은 다음 이리저리 문질러서 꺼냈더니 체인 틈새에도 골고루 흙이 묻혀 나왔다. 한숨을 쉬고 재킷 주머니에 목걸이를 넣으려 했다.

  그런데 무언가를 끄는 소리가 수도관을 타고 미끄러져 왔다. 잠깐 몸이 굳어버린 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바닥은 이 수도관 바닥이고, 끄는 물건은 흙을 넣은 포대자루나 쌀자루라기에는 너무 가볍다. 그런데 옮기는 자가 힘이 없는지 조금씩 끌었다가 멈추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혹시 내가 본 그것이 아닐까? 어떻게 경찰들의 수색에도 발견되지 않았지? 제길, 이건 내 전공이 아니다. 재빨리 헤드램프와 플래시를 끈 다음 숨을 죽였다. 눈이 어둠에 적응하길 기다렸지만 이렇게 어두워서야 소용이 없었다. 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핸드폰을 꺼내 바닥을 비추며 조금씩 앞으로 가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아 수도관이 끝나는 부분에 도착했는데, 점점 밝아지더니 모텔 것과 같은 토굴이 나타났다. 흙을 파헤쳐 놓고는 제대로 덮어 놓지 않고 있었다. 구조는 비슷했지만 위쪽으로부터 완만한 경사를 만들며 내려온 환기구 통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그것 외에는 사방이 막혀 있었다. 엎드려서 안을 보았다. 환기통로 바닥에는 모텔 쪽에서 본 것과 같은 흔적이 나 있었다. 여기가 본거지다. 나는 수도관과 환기구 사이에 서서 잠시 고민한 뒤 환기구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왕이면 경찰이 훑고 간 자리보다야 저 안에서 발견했다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그러나 우선 경찰 발자국부터 확인해야 했다.

  완만한 경사의 환기통로를 기어오르자 곧 갈래길이 나타났다. 둘 모두 흔적이 있었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환기구 통에 난 마디 열 몇 칸을 기어가자 앞이 막혔다. 통로는 위를 향해 있었다. 몸을 배배 꼬면서 일어서 보니, 마디마디마다 딛고 올라간 흔적이 있었다. 따라서 딛고 올라갔더니 곧 수평으로 뻗은 통로가 나왔다. 새까만 먼지들이 덮여 있어 기어 다닌 자국들이 어지럽게 겹쳐 있었다. 경찰들이 만들어 놓은 것 같았는데 그들이 남긴 자국은 첫 번째 환기구멍에서 끝나 있었다. 구멍을 닫고 있는 철망으로 내려다보니 인조대리석을 깐 복도가 보였다. 어떤 빌딩인 것 같았다. 철망을 열고 내려갈까 하다가 거꾸로 기어가 갈림길 반대편을 통해 올라왔다. 반대편으로는 경찰이 오지 않은 듯했다. 계속 기어서 첫 번째 모퉁이를 돈 다음, 가장 처음 나오는 철망에서 귀를 기울여 보았다. 조용했다. 철망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보았다. 건물에는 아무도 없었다. 버려진 것 같았다. 어쨌거나 그 거리를 다시 기어서 돌아가는 것은 사양이었기에 복도로 뛰어내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창문은 죄다 두툼한 목제 팔레트 조각으로 못질이 되어 있었고, 복도에는 방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모두 문이 없었다. 방이나 복도의 넓이 등으로 보아 상급 모텔인 것 같았다. 나는 현수에게 전화를 하며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나다. 뭘 찾았는데. 목걸이야.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 줄까?”

  현수가 말해 달라고 대답했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동그란 고리 두 개 연결된 장식이 달렸고, 안쪽에 티파니라고.”

  현수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실버라고도 찍혀 있어요? 스털링 실버?”

  “어.”

  “어디서 찾으셨어요?”

  “환기구. 수도관 타고 갔더니 나온 환기구에 있었어.”

  나는 창문에 다가가 팔레트 틈새를 들여다보았다. 거리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아파트 공사할 때 둘러놓는 철제 담벼락뿐이었는데 높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저기요.”

  “왜?”

  현수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이 본 그거, 혹시 미연이 아닐까요? 미연이가 살아서…….”

  정말 화나게 하는 친구다. 나는 송화부를 막고 욕을 했다.

  “야, 미연이가 경찰 목을 그렇게 물어뜯을 애냐? 개는 어떻고. 생각을 해봐, 사람이 왜 환기구 속에서 그런 짓을 해.”

  정문을 찾아냈지만 두꺼운 철제인데다 쇠사슬이 감겨 있었다.

  “안 되겠다. 문도 막아 놨네. 빠루(쇠지레) 좀 들고 찾아와.”

  “왜요? 어디예요?”

  “몰라. 환기구에서 뛰어내렸더니 무슨 건물인데 버려진 것 같다. 창문도 막아 놨어. 내다보니까 아파트 공사할 때 쓰는 담벼락 같은 걸 둘러놨네. 공사업체에 전화하든지 해서 들어와. 거기서 멀진 않을걸.”

  “물어서 찾아갈게요.”

  전화를 끊고 뒷문을 찾았다. 금방 찾을 수 있었지만 역시 막혀 있었다. 발로 차도 꿈쩍하지 않았고, 일층을 돌아다니며 도구로 쓸 만한 걸 찾았지만 병따개도 찾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계단에 걸터앉아 쉬면서 담배를 끄집어냈다. 왼팔이 욱신거리며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담배를 피우니 조금 나아지는 듯했다.

  한참 기다리자 현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찾아온 모양이었다.

  “개구멍 찾았어요. 어디예요? 이거 혼자선 못 부술 거 같은데.”

  그런데 다른 남자의 목소리도 들렸다. 전화기 속이 아니었다. 그는 나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달려오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잠깐만.”

  복도에서 고개를 내밀어 보았다. 누런 셔츠를 입은 멸치 하나가 뛰어오고 있었다. 팔이고 다리고 시커먼 먼지가 잔뜩 묻어 있어 나처럼 환기구를 기어 다닌 것 같았다. 표정이 범상치 않았다. 설마 그걸 보았을까? 그보다 어디서 들어왔는지가 궁금했다. 곧 코앞까지 와서 침을 튀기기 시작했다. 똥을 먹고 왔는지 입 냄새가 끔찍했는데, 말을 할 때마다 얼굴을 들이미는 것이 나름 위협인 듯했다. 심상치 않아서 일어섰더니, 내 손의 핸드폰을 발견하고는 표정이 바뀌었다. 그러더니 핸드폰을 후려쳐 버렸다.

  “뭐야, 이 씨…….”

  욕을 다 할 수 없었다. 그놈이 내 턱도 후려친 것이었다. 잠깐이지만 눈앞이 깜깜해졌다. 정신을 차리자 벽에 기댄 채 계단에 주저앉아 있었고, 그놈이 나를 밟고 있었다. 화가 났다. 언제더라, 술에 절어서 오징어처럼 흐물거리면서 토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술 취한 어린놈이 왜 토하냐면서 달려든 적이 있었다. 그렇게 얻어맞은 건 약과였다. 나는 왼팔을 휘둘러 그놈의 다리를 쳐내려 했다. 그런데 그놈이 순식간에 다리를 빼더니, 내 머리카락을 잡고 다른 손을 휘둘렀다. 절로 억 소리가 나올 정도로 매운 주먹이었다. 요즘은 멸치도 무에타이를 하나? 하긴 오랑우탄도 킥복싱을 하는 나라다. 말 된다. 온 힘을 다해 일어서서 녀석을 밀어붙였다. 그런데 이놈이 내 목뒤를 잡아 누르면서 옆으로 나를 휘둘렀다. 이제 무릎으로 배를 차겠군? 본능적으로 왼손을 내려 무릎을 막으려 하면서 오른팔을 뒤로 뺐다. 그러자 그놈이 손을 풀더니 옆구리에 발차기를 했다. 왼팔을 바짝 붙여서 박았지만 내장이 삶은 소시지처럼 터지는 느낌이었다.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었지만 깡으로 버티며 비틀거렸다. 급히 양복 주머니를 뒤져 플래시를 꺼내 들었다. 녀석이 다가오면서 목을 잡으려고 두 팔을 내밀었다. 나는 플래시를 들어 멸치의 눈을 겨냥하고 꼬리의 똑딱 버튼을 눌렀다. 백오 루멘짜리 빛이 번득였다. 대낮이지만 일시적으로 눈을 멀게 하기에는 충분한 세기였다. 멸치가 눈을 가리며 팔을 휘저었다. 나는 플래시를 왼손으로 바꿔 쥐며 천천히 물러섰다. 오른손으로는 허리띠를 풀어 한 번 감아쥐었다.

  멸치가 시야를 회복했는지 눈물을 글썽이며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허리띠로 멸치의 머리를 후려쳤다. 통쇠 버클이 부딪히며 잔인한 소리가 났다. 멸치가 두 팔로 머리를 감쌌다. 나는 돌팔매처럼 허리띠를 돌리기 시작했다.

  비틀거리던 멸치가 팔을 풀더니 권투선수처럼 가드를 올렸다. 나는 허리띠를 휘둘러 멸치의 앙상한 팔을 후려쳤다. 멸치가 비명을 지르더니 앞으로 튀어나왔다. 플래시를 들어 멸치의 얼굴을 겨냥했더니, 녀석이 본능적으로 얼굴을 가렸다. 나는 주로 관절이나 뼈가 두드러진 부분을 겨냥해서 허리띠를 계속 휘둘렀다. 멸치는 비명을 지르기 바빴다. 중간에 악을 쓰면서 달려들긴 했지만, 플래시로 눈을 비추자 벽에다 머리를 처박아 버렸다. 허리띠 버클로 등을 후려쳤다. 등뼈에 맞았는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 평상시라면 더 때리기 미안할 지경이었지만 그건 평상시에 그렇고.

  드디어 멸치가 잔뜩 웅크린 채 두 팔로 얼굴을 가렸다. 멸치가 뭐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띠를 쥔 손을 내렸다. 멸치가 팔을 내리자, 입을 잘 닫고 있는 걸 확인하곤 구둣발로 턱을 올려 찼다. 멸치가 넘어진 뒤에는 머리를 밟았다. 그제야 녀석의 팔다리가 축 늘어졌다. 멸치라서 칼슘이 많아서 그런가 튼튼한 녀석이다.

  뭐든지 맞고 난 다음 아픈 법이다. 턱은 부러진 것 같았고 옆구리엔 구멍이 난 것 같았다. 왼팔은 아예 움직이지도 않았다. 주저앉고 싶었지만 한 손으로 멸치를 뒤집은 다음 셔츠를 벗겼다. 왼팔을 덜덜 떨면서 무릎에 셔츠를 끼웠다. 셔츠를 세로로 몇 번 꼰 다음 팔을 묶었고 바지는 발목까지 내려놓았다. 주머니를 뒤져 보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동료가 돌아다니다 발견할 것에 대비해 빈 방에 끌고 가서 숨겨 두었다. 이젠 맞지 않은 곳까지 아프기 시작했다. 바닥에서 따로 놀고 있는 핸드폰과 배터리를 주웠더니, 배터리와 몸체를 고정시키는 돌기가 부러져 있었다. 손으로 눌러 고정해서 현수에게 전화를 했다. 바로 뒤에서 벨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서 돌아봤더니 창문을 막은 널빤지 틈새로 현수의 눈알이 번득이고 있었다.

  “저 새끼들이야.”

  나는 턱을 문지르며 말했다.

  “뭐?”

  “저 새끼들이 납치한 거야.”

  “아, 그럴지도 모르지. 빠루 가져왔지? 일단 창문부터 뜯어. 아파 죽겠다.”

  “여기 잡혀 있을 거야.”

  “뭐?”

  맞은 것도 아닌데 눈앞에 번개가 쳤다.

  “미연이는 없겠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라도 있겠지.”

  최대한 상냥하게 말해 보려 애썼다.

  “야, 목걸이 찾았잖아. 일단 나갔다가 경찰 부르자. 그리고 저놈은 관계없을 수도 있어. 빈 건물이니까 살고 있던 양아치겠지.”

  “아니, 저 새끼들이야. 목걸이 여기서 찾았다면서요, 그럼 저 새끼들이 한 거야. 여기다 숨겨 놓고 있었겠지.”

  나는 널빤지를 붙잡았다.

  “왜 이래, 나 아파 죽겠다니까. 이거 봐, 팔 부러진 거 같아.”

  현수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선생님, 탐정이니까 증거 같은 것도 찾을 수 있죠.”

  “야, 야, 십이 년 전에도 이 건물이 비어 있었겠어? 어떻게 사람을 숨겨. 내 상태 좀 보라니까.”

  “여기가 십이 년 전에 무슨 건물이었는지 알아요?”

  “야!”

  “호텔요. 선샤인 콘티넨탈.”

  내 머리는 소리굽쇠가 아닌데, 사정없이 흔들리며 띵하고 울려 왔다.

  정말 쏨차이가 납치를 했다는 건가? 외국인을 왜? 그것보다, 쏨차이가 인신매매를 한다 쳐도 버젓이 영업 중인 호텔에 가둬 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만약 사람이라면 잡혀 있다가 환기구에 숨은 피해자라고 볼 수 있지만 그 행동을 설명할 수는 없다.

  “쏨차이 그 새끼야. 미연이를 보는 눈초리가 묘했어.”

  “야, 그걸 어떻게 알아. 일단 창문 좀 뜯어 봐. 나가서 경찰 부르자.”

  “그 새끼는 경찰이랑 붙어먹는다면서요. 우릴 묻을걸요.”

  “야, 증거가 있으면 경찰도 어떻게 못해. 목걸이 찾았잖아. 부하 같은 놈도 잡았잖아.”

  “선생님, 뉴스 못 봤어요?”

  현수가 말을 이었다.

  “오랑우탄이래요, 미친. 없는 걸 만들어서 매스컴까지 속이는데 목걸이 가지고 뭘 하게요.”

  목걸이 이야기가 나오자 가슴이 뜨끔했다.

  “대사관도 있잖아. 대한민국 대사관!”

  현수가 다시 말했다.

  “그놈들은 한술 더 뜨거든요. 그런데 선생님, 이 건물 철거할 거래요. 오늘 아침부터 통행이 통제됐고요. 기계도 와 있어요.”

  “무슨 소리야.”

  “아무거나 증거 찾아서 전화하세요. 그럼 창문 따드릴게요.”

  현수가 정말 미친 것 같았다. 나는 널빤지를 두드리며 소리 질렀다.

  “야, 야! 빨리 이거 안 부숴? 미연이 어떻게 됐는지 알았잖아, 처음부터 이러기로 해서 내가 온 거 몰라? 너 이러면 살인이야 살인! 나 팔도 부러졌다니까!”

  그러자 현수가 말했다. 낮고, 거의 속삭이는 듯한 말이었지만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음산한 목소리였다. 명백히 살의가 담겨 있었다.

  “선생님, 이거 아세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연이한테 사준 거는요, 백금이었거든요. 플래티넘 몰라요, P-L-A-T-I-N-U-M, 99.9퍼센트.”

  발걸음 소리가 났다. 멍청히 서 있던 나는 발걸음을 쫓으며 고함을 질러댔다.

  “이 벌레 같은 놈, 너……!”

  “너 임마, 동갑이면서 꼬박꼬박 반말 할래? 나보다 멍청하면서 니가 탐정이냐? 내가 미연일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알아!”

  현수가 오히려 고함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나도 지지 않고 고함을 질렀다.

  “사랑은 개뿔, 지랄하지 마 자식아! 너 보상금 타려고 이러는 거지, 돈도 많은 놈이 응? 너 그때 해골바가지 미연이 거라면서 흥분하는 거 다 봤거든? 10년 넘게 삽질한 게 아까워서 발악하는 거잖아, 이 변태새끼야!”

  현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창문에 붙어 널빤지 틈을 보았지만 현수는 그림자도 없었다. 주먹을 들어 올렸지만 옆구리 통증에 주저앉아 버렸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제자리에서 뛰어오르는 것으로는 어림없는 높이였다. 적어도 의자, 의자 하나만 있으면 환기구를 통해 건물을 나갈 수 있었다. 현수는 이 건물이 철거될 거라고 했는데, 인근에 통제가 시작되었다면 분명히 오늘이 철거일이다. 마음이 급해졌다. 달리기 시작했다.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나를 지나쳤다. 복도를 미끄러지며 멈춘 다음 플래시를 꺼내 들고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혹시 주차장으로 통해 있다면? 주차장 입구는 막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하는 기대를 깨뜨렸다. 주방인 듯한 공간과 창고가 전부였는데 조리대는커녕 국자나 종이박스조차 없었던 것이다. 갑자기 오만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나도 그 해골처럼 되는 건가?

  결국 일층으로 되돌아왔다.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발자국과 말소리가 들려왔다.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간 다음 플래시를 껐다. 계단이 꺾어지는 부분에 엎드려서 눈만 내놓고 숨을 죽였다. 그러자 소리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청색 제복을 입고 있었는데 무전기를 통해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는 몇 마디를 더 하더니, 무전기를 꺼버렸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열쇠를 꺼냈다. 정문 열쇠인 듯했다. 나는 손을 들며 그를 부르려고 했다. 그때다.

  그가 앞을 보더니 큰 소리로 무어라 말을 했다. 손가락질을 하더니 더듬더듬 허리의 무전기를 붙잡았다. 그러자 모퉁이 저편에서 갑자기 나타난 벌목도가 그의 어깨를 찍어버렸다. 벌목도를 잡은 손등은 오래 전 화상을 입었었는지 녹아내린 피부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쩍 소리를 내며 빠지더니 다시 날아와 목을 찍었다. 나는 입을 틀어막으며 잽싸게 웅크렸다.

  벌목도가 모퉁이 너머로 사라졌다. 곧이어 한 남자가 나타났다. 온몸에 비계를 한 겹 두른 듯했는데 괴상한 가면을 쓰고 있었다. 들창코에 눈이 우락부락하고, 누런색과 시뻘건색의 얼굴에다 인중에 뿔이 솟은 가면이었다. 그놈은 남자의 시체를 발로 툭툭 차더니 벌목도로 시체를 가리키며 뒤를 돌아보았다. 곧 가면을 쓴 남자 세 명이 왔다. 그중에 한 명은 자루를 가지고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잡았지만 꺼낼 수 없었다. 다시 켰다간 신호음 때문에 위험했다.

  가면 쓴 남자들은 시체에서 옷과 소지품들을 모두 벗겨냈다. 돈과 시계는 각자 나누어 가졌다. 자루를 든 녀석은 옷이나 신발 따위를 자루 속에 넣었다. 남자를 죽인 녀석이 벌목도를 쳐들었다. 놈은 남자의 목을 몇 번이고 내리쳤다. 남자의 목이 떨어지자 머리채를 잡아 주웠고, 자루를 든 녀석에게 내밀었다. 자루 든 녀석이 자루를 벌렸다. 안에는 오래된 뼈다귀들이 들어 있었다. 녀석들은 머리통을 넣은 다음 몸통은 내가 있는 계단으로 밀었다. 의외로 구르거나 하지 않자 한 놈이 나와서 뒤집어 버렸다. 남자의 시체는 투덕거리며 굴러 떨어져 코앞에서 멈추었다.

  그들이 사라진 뒤 한참 뒤에야 핸드폰을 켰다. 시체의 팔다리나 배, 등, 상처나 점이 있는 부분 등 특징이 있는 부분을 죄다 찍은 다음에야 지하에서 올라왔다. 나는 구두를 벗었다. 까치발로 옆방에 갔지만 역시나 창문이 막혀 있었다. 화장실에 난 환기구로 들어갈 수 있을까 싶어 가보았더니, 형편없이 비좁은데다 세면대고 뭐고 모두 떼어가고 없었다. 벽에 주저앉아 왼팔을 문질렀다. 면도칼로 썰어내는 듯한 통증과 함께 감각이 돌아오고 있었다.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현수의 말이 맞다. 쏨차이 그놈이다.

  비척거리며 일어나선 대책 없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옥상에 나가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오르던 중 엘리베이터를 발견했는데 꽤 구식이었다. 문 위의 숫자를 보자 이 건물이 칠층짜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층에 다다르자 바로 아래층에서 메아리가 울려 왔다. 가면 쓴 놈들이 떠드는 소리였는데 엄청나게 화가 난 듯했다. 묶어 놓은 멸치가 발견된 모양이다.

  재빨리 계단을 뛰어올랐다. 먼지투성이가 된 양말 때문에 미끄러웠다. 흥분한 목소리들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육층에 다다랐다. 계속 올라갔다. 칠층에 도달했다. 더 올라가면 옥상으로 가는 문이었지만 위에서 빈 통이 구르는 소리가 났다. 급히 멈추려다가 복도에 미끄러지고 말았다. 하필 왼팔부터 넘어졌다. 허우적거릴 시간도 없이 어금니를 깨물며 일어섰다. 그리고 보았다.

  놈들 중 하나였다. 두 팔은 늘어뜨린 채, 시커멓게 입 벌린 환기구에 머리를 처박고는 천천히 몸을 흔들고 있었다. 흔들, 흔들, 그러다 갑자기 두 손을 들어 천장을 마구 치기 시작했다. 나는 계단을 돌아볼 것도 없이 달려가 의자를 붙잡았다. 놈의 발이 머리 위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고함소리와 발소리들이 계단을 달려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겨우 방 한 칸을 더 도망친 다음 몸을 던졌다. 발소리들이 올라왔다. 놈들은 고함을 지르면서 무기로 천장을 마구 치는 듯했다. 나는 거실의 환기구 아래 의자를 받쳤다. 철망을 쳐내고 뛰어올라 매달렸다. 생각한 것보다 끔찍한 고통이 왼팔을 물고 발버둥 쳤다. 속으로 악을 썼다. 구석에 웅크리고 있다 붙잡히느니 아픈 게 낫지. 환기구 속은 먼지 때문에 미끄러웠지만 튀어나온 마디에 손가락을 걸 수 있었다. 다리를 버둥거리다가 가까스로 기어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묵직한 것이 다리에 매달렸다. 젠장, 이 말을 내뱉기도 전에 끌려 내려갔다.

  녀석은 한 놈이었다. 그 녀석이 발을 들어 나를 마구 짓밟기 시작했다. 오른손으로 발을 잡아 보려 했지만 요리조리 빼면서 걷어차기까지 했다. 주먹만 한 울화통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왼팔로 바닥을 짚고 일어서며 놈의 허리를 껴안았다. 넘어뜨리고 두 주먹을 쳐들었는데, 정작 올라간 것은 오른쪽뿐이었다. 왼팔은 축 늘어진 채 덜덜 떨고만 있었다.

  곧 나머지 놈들이 몰려왔다. 모두 다섯이었는데 각자 손도끼나 벌목도, 삽 따위를 가지고 있었다. 막대기 끝에 나이프를 묶은 창을 가진 녀석도 있었다. 창끝엔 피가 묻어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들이 동시에 떠들어대며 무기를 쳐들었지만 내가 욕을 하자 일순 조용해졌다. 그들은 서로 쳐다보더니 떠들어대기 시작했는데, 내가 외국인이기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잠시 뒤 벌목도를 가진 녀석이 입을 열었다. 그 녀석이 이야기를 하자 다른 녀석이 제각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나를 부축해서 열린 환기구 밑으로 데려갔다. 환기구 근처 천장에는 창으로 찔러서 생긴 구멍이 잔뜩 나 있었다. 아래에는 방금 죽은 자가 쓰러져 있었는데 그의 목은 괴상하게 꺾여 있었고, 목울대가 목 안에서 뜯어진 것처럼 불쑥 불거져 나와 있었다. 그 틈으로 살이 말려 들어가 있었고 피가 조금씩 새나오고 있었다.

  벌목도 든 녀석이 해골 자루를 묶은 밧줄을 풀었다. 그것으로 내 발을 묶더니 손짓을 하며 무엇을 원하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열 손가락을 써서 머리에서부터 밑으로 훑어 내리더니, 환기구를 가리키곤 기어가는 흉내를 냈다. 그리고 나를 가리키며 손으로 무언가를 잡는 흉내를 냈다. 그는 쳐든 주먹을 자기 앞으로 가져온 다음, 내 발을 묶은 밧줄을 끊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막힌 창문을 가리켰다(이러는 도중 온몸에 멍이 든 멸치가 가면 한 명과 함께 나타났다). 환기구 속을 기어 다니는 ‘그것’을 잡아오면 풀어 주겠다는 뜻 같았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내 주머니를 뒤지더니 핸드폰과 플래시, 지갑을 가져갔다. 그는 플래시가 마음에 드는 듯 켰다 끄기를 반복하더니 허리띠에 끼워 넣었다. 지갑과 핸드폰은 목이 잘렸던 사람의 것과 같은 수순을 밟았다.

  그는 내 다리를 묶은 밧줄을 창 든 녀석에게 쥐어주었다. 창잡이는 벌목도로 창대를 뚝 끊어서 짧게 만들더니 자기 핸드폰과 함께 멸치에게 넘겨주었다. 아뿔싸, 나를 개처럼 앞세우고 자기는 뒤에서 잡겠다는 생각 같았다. 그가 환기구 아래 의자를 세우고 손짓을 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결국 멸치와 함께 환기구 속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비참함을 씹으며 한 팔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아래에서는 기어가는 소리를 듣고 가면 쓴 것들이 따라오고 있었고, 뒤에서는 멸치가 낄낄거리면서 창으로 엉덩이를 쑤셔대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뻗어 멸치의 얼굴을 찼지만 닿지 않았다. 멸치가 폭소를 터뜨렸다.

  바로 앞에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갈림길이 나타났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려 했지만 멸치가 끈을 잡아당기며 낮은 목소리로 무어라 말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별수 없었다. 앞으로 기어가자 곧 양쪽으로 갈래길이 나왔다. 고개를 빼서 살펴보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기어간 흔적이 나 있었다. 왼쪽에는 철망이 열려 있었는데 주위에 손자국이 어지러웠고 창구멍으로 빛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구멍에 도착해 주변 흔적들을 보았다. 핏자국이 나 있었다. 창에 찔렸으리라. 핏자국 외에도 올이 가는 빗자루로 쓸어간 듯한 흔적이 있었는데 머리카락 자국이었다. 철망에도 긴 머리카락이 몇 올 엉켜 있었다. 흑발이었다.

  멸치가 끈을 잡아당기며 재촉했다. 나는 철망을 닫고 핏자국을 따라 기었다. 먼지 때문에 재채기가 났다. 십 미터쯤 앞을 보니 바닥에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 옥상으로 향하는 곳 같았다. 어떻게든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지만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았다. 오른팔은 속이 빈 것처럼 힘이 다 빠졌는데 어깨까지 통째로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프기까지 했다.

  햇빛이 비치는 곳에 도달해 위를 쳐다보았다. 예상대로 옥상으로 통해 있었고 철망도 닫혀 있지 않았다. 갑자기 전역할 때 올려다본 강원도 하늘이 생각났다. 정말이지 하늘이 그보다 실감나게 아름다웠던 적이 없었다.

  허벅다리 속으로 뭔가가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곧 화끈거리는 느낌과 함께 격통이 느껴졌다. 멸치가 창으로 다리를 찌른 것이었다. 그놈은 입으로 손을 가리고 키득거리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는 나를 보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창을 잡은 주먹으로 바닥을 치면서. 나는 먼지와 뒤섞여 끈적하게 뭉친 핏자국을 보았다. 화보다 슬픔이 밀려왔다.

  핏자국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결국 바닥의 자국에 의지해 기어가는 도중, 갑자기 앞에 난 자국엔 옅게나마 먼지가 깔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새로 난 자국은 지금 내 자리에서 끊겼다는 뜻이 다. 뒤로 물러나 바닥을 살펴보려 하자 멸치가 뒤에서 창끝을 들이댔다. 욕을 중얼거리며 바닥을 가리켰다. 그러자 바닥이 쇠 긁는 소리를 내며 우그러들기 시작했다. 바닥은 내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꺼져버렸다.

  가까스로 환기구 통 마디를 붙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멸치가 히죽거리면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놈은 하나씩 내 손가락을 강제로 펴면서 경기를 일으키듯이 발작을 하며 웃었다. 안간힘을 다해 왼팔을 들어 보았지만 통증만 느껴질 뿐이었다. 결국 나는 핀볼 구슬처럼 이리저리 부딪히며 떨어져 내렸다.

 

  정신을 차리니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뚜껑이 가슴 위에 올려져 있었다. 집어 보니 평범한 환기구 통의 일부와 다르지 않았지만, 이음매가 약간 달랐다. 자세히 보니 환기구 통 끝을 막는 뚜껑이라고 생각되었다. 옆으로 밀어 놓고 몸을 일으키니 사방이 시커먼 콘크리트 벽이었다. 객실을 배치하다 생긴 빈 공간으로 생각되었다. 다행히 온몸이 아프기만 했을 뿐 더 다친 곳은 없었다. 나는 허겁지겁 다리의 끈을 풀기 위해 손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고통이 왼팔을 비틀었다. 왼팔을 보자 아무렇게나 꺾어져 있었다. 한국에서 부러졌었던 자리 그대로 부러져 있었다. 입술을 깨물며 왼팔을 붙잡았다. 그런데 손바닥에 뭔가가 붙어 왔다. 흰 돌인 것 같아서 다리에 문질러 떼어버렸지만, 그것이 구르는 것을 보자 생각이 바뀌었다. 그것은 손뼈의 조각이었다.

  뼈 조각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바닥에는 다리뼈가 몇 개 나뒹굴고 있었는데 그 외에도 도금이 벗겨져 녹슨 메달이나 피 묻은 머플러와 알아볼 수 없는 넝마조각, 빈 지갑과 쓰레기봉투가 널려 있었다. 하지만 내 눈길을 잡는 것은 벽을 메운 무수한 무늬들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읽을 수 있었다. 벌레, 벌레, 벌레, 미안합니다, 벌레, 벌레, 벌레…….

  몇 번이나 겹치고 겹치며 쌓아 올린 피의 문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릴 기세로 나를 굽어보았다. 나는 압도당했다. 무의식적으로 뒤로 기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그 위에 군림하는 두 개의 글이 드러났다. ‘나는’. 그것이 나를 내려다보더니 벽에서 튀어나왔다. 나풀거리며 떨어져 내렸고, 뒤이어 글자의 산이 무너져 내리며 나를 덮쳐왔다.

  비명을 지르며 뒤로 기어 도망쳤다. 갑자기 매끄러운 촉감이 손끝에 와 닿았다.

  한 장의 사진이었다.

  피와 먼지로 더러워진 사진에는 여행 중인 듯한 자매가 찍혀 있었다. 키가 큰 쪽은 머리를 뒤로 묶고 반팔 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큼지막한 배낭을 메고 있었다. 작은 쪽은 빨간 모자를 썼는데, 여행이라기보단 피크닉이라는 느낌으로 얇고 하늘하늘한 분홍 민소매 셔츠를 걸치고 있었다. 기껏해야 고등학생, 동안이라면 졸업반으로 보이는 아이였는데, 손에는 누런 두리안 과육을 뭉쳐 놓은 나무젓가락을 들고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엔젤 모텔 간판이 있었다. 갑자기 턱이 떨리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었다. 차라리 자살을 하지! 나라도 자살을 했을걸! 절로 아, 신음소리가 나오며 눈앞이 흐려졌다.

  멸치가 위에서 소리 질렀다. 감상에 빠져 있을 틈이 없었다. 사진을 주머니에 넣고 다리의 끈을 풀기 시작했다. 그러자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멸치였다. 멸치가 환기구 통 마디를 디디며 엉거주춤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헐거워진 끈을 통째로 벗겨내곤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으로 환기구가 하나씩 뚫려 있었다. 왼팔이 부러진 것이 한스러웠다.

  눈앞에 보이는 곳으로 기어 들어갔다. 곧 등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멸치가 멍청해서 엉뚱한 환기구로 들어갈 것을 기대했지만 부질없었다. 멸치를 피해 조금 더 기어가자 위로부터 철제 케이블이 늘어뜨려진 장소가 나타났다. 고개를 빼보니 음식용 엘리베이터 같았다. 엘리베이터는 바로 아래층에 정지해 있었는데 무언가에 의해 철판이 우그러져 있었다.

  케이블을 붙잡고 우측 통로로 팔을 뻗었다. 모퉁이에 손가락을 건 다음, 다리를 모아 벽을 딛고는 힘껏 차서 몸을 밀어냈다. 드디어 멸치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방향을 바꾸어 웅크렸다. 급해진 멸치의 무릎이 환기구 통을 찍으며 퉁퉁거리는 소리를 냈다. 곧 모퉁이로 창끝이 튀어나와 흔들거렸다. 내가 기다리는 건 아닌지 고민하는 듯했다. 이윽고 멸치가 케이블을 잡고 창을 내밀었다. 기다렸다. 드디어 멸치가 얼굴을 내밀자 창끝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중심이 불안정했던 멸치가 당황하면서 환기구 통 마디를 붙잡았다. 그놈의 얼굴에 더러운 발바닥을 대고 천천히 밀기 시작했다. 멸치가 사색이 된 얼굴로 양말에 침을 묻히기 시작했다. 놈이 뭐라고 사정을 하든지 상관이 없었다. 다만 태국에 와서 밥 먹는 것 다음으로 즐거웠다.

  바퀴벌레를 짓이기듯이 천천히 멸치의 얼굴을 짓밟았다. 멸치는 축축해진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꼴에 자존심 챙기는지 비명소리는 아끼며 떨어졌다. 텅 하는 소리가 비명 대신 기어 올라왔다.

  고개를 내밀어 떨어진 멸치를 보았다. 끈 잘린 꼭두각시처럼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채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손이 나타났다. 손은 회색에 가까웠고 군데군데 검댕이 묻어 있었다. 손은 멸치의 가슴팍을 잡아 눌렀다. 이윽고 머리가 나타났다. 더럽고 긴 흑발을 가진 머리였다. 머리는 비명을 지르는 멸치의 목을 물어뜯었다. 몇 번을 연거푸 물어뜯었다. 그러곤 꿀렁꿀렁 솟는 피를 마시는 듯했다. 나는 경악하면서 그것을 보았다. 팔, 어깨나 목덜미를 보니 여자였다. 주머니 속의 사진이 생각났다.

  “어이!”

  그러자 그것이 깜짝 놀라서 나를 쳐다보았다. 머리카락이 쏟아지며 그녀의 얼굴을 가렸다. 그녀가 비명을 질렀지만 바람 새는 소리만 들렸다. 그녀의 입안을 보인 것 같다. 혀가 뭉텅 잘린 채 혀뿌리만 남아 꿈틀거리는.

  여자는 바람소리를 내며 사라져 버렸다. 허겁지겁 창으로 발을 묶은 끈을 자르고 아래로 떨어뜨렸다. 환기구 마디를 디디며 엘리베이터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가 출렁거렸다. 엎드려서 그녀가 사라진 환기구를 보았다. 갈림길이 나타나는 곳까진 꽤 길었지만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멸치의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끄집어냈다. 폴더를 열었지만 태국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다시 창을 주워 쫓아가기 시작했는데, 첫 모퉁이를 돌자 전화벨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찾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핸드폰을 꺼내 종료 버튼을 누르고 에티켓 모드로 바꿔 놓았다. 환기구 저편에서 고함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핸드폰이 가슴팍에서 떨기 시작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저 여자를 구해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신원만 밝히면 가족에게서 사례금 깨나 나올 터였지만, 마음은 도망치자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명백한 것은, 사라진 여자를 쫓아가기만 하면 도망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환기통로의 구조를 모두 아는 듯했다.

  여자의 흔적을 쫓았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환기통로에 달라붙은 먼지 카펫이 얇아지고 있었다. 갈림길이 나타날 때마다 흔적을 찾아내는 데 시간을 써야 했다. 게다가 가면 쓴 놈들마저 환기구 속으로 쫓아 들어오고 말았다. 그들의 목표는 이제 여자에서 나로 바뀌어 버렸다. 나는 열심히 환기구를 기어 다녔다. 곧 주변에서도 텅텅거리며 가면 녀석들이 기어 다니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원래 느리긴 했지만, 속도를 더 낮추고 천천히 기어가기 시작했다. 모퉁이를 도니 저편에서부터 환기구 철망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객실을 관통하는 환기통로인 것 같았다. 조금 기어가자 저편의 철망이 들썩거렸다. 손이 튀어나와 철망을 올렸다. 그 틈새로 태국어가 흘러나왔다. 황급히 되돌아가서 모퉁이로 몸을 숨겼다. 그런데 저편에서 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가까웠다. 창을 꼬나 쥐고 여차하면 찌를 준비를 했다. 그런데 머리 위에서 무언가를 끄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보았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환기통로가 머리 위에 있었다. 재빨리 올라가서 마디를 디디고 섰다. 위층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러면 소리가 너무 많이 난다. 나는 창을 아래로 향하고 두 다리로 버티고 섰다. 가면 쓴 놈의 머리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볼썽사납게 뒤뚱거리면서 지나가다가 바로 밑에서 멈추었다. 그의 전자시계가 삑삑거리고 있었다. 동시에 핸드폰 벨도 울리고 있었다. 멸치의 것도 진동하고 있었다. 또다시 만감이 교차했다. 먼지투성이 구멍 속에서 손도끼에 머리를 찍힌 다음, 무너져 내린 건물 아래에서 눌린 돼지머리 꼴로 발견된다? 개나 비둘기에겐 자선사업이 될지도 모르지. 눈을 감으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뚱뚱한 놈이 재빨리 전화를 받더니 놀란 목소리를 냈다. 목소리가 컸다. 허겁지겁 핸드폰을 끄더니 엎드린 채로 달리기 시작했다. 가까운 곳의 철망을 열고 뛰어내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머리 위에서도 어떤 놈이 당황해서는 무릎으로 환기구 통을 찧고 있었다. 나는 다시 내려와 모퉁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무도 없었다. 다만 굽이진 환기통로 어딘가에서 또 한 명이 철망을 열고 뛰어내렸다. 나는 멍하니 숨을 쉬다가 중요한 사실을 떠올렸다. 철거! 드디어 시간이 된 것이다. 눈앞의 철망을 붙잡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 여자를 구해야 하나.

  쿵, 가까운 곳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뭔가가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육중한 사슬의 마찰음이 들렸다. 그 소리는 점점 멀어졌다가 다시 다가왔고, 더 큰 굉음과 함께 강렬한 진동을 던져 왔다. 그 안에는 자루 끄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나는 철망을 잡아당기던 손을 놓았다. 그 여자가 가까이 있었다. 본능적으로 그 소리를 향해 기어갔다. 쿵, 또 소리가 났다. 계속 기었다. 막다른 통로가 나타났다. 바닥에는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 위를 올려다보았다. 칠층을 지나 옥상까지 곧장 연결된 통로가 있었다. 쿵, 소리가 쫓아왔다. 나는 통로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반쯤 오르다 보니 오른팔에 경련이 일기 시작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온 힘을 다해 고함을 질렀다. 물론 내용은 욕이었다.

  쿵, 소리가 발바닥을 건드렸다. 안간힘을 다해 통로를 올랐다. 겨우 칠층에 다다르자, 드디어 드러누운 채 꼼짝도 못할 지경이었다. 입에서 온통 쓴맛이 나고 눈앞도 희뿌옇게만 보였다. 나는 먼지투성이 공기를 마시며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숨을 쉬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내 정수리에 누군가의 숨이 닿고 있었다. 쇠 냄새와 일주일은 방치한 음식물 쓰레기통 냄새가 뒤섞인 역겹고 괴상한 숨이었다.

  여자다.

  언제 목을 물어뜯을지, 손으로 붙잡을지 몰랐다. 나는 오른손을 덜덜 떨며 안주머니를 뒤졌다. 주머니 깊숙한 곳에서 흙 묻은 목걸이가 손끝에 닿았다. 잡으려 했지만 목걸이는 번번이 손가락을 빠져나갔다. 서너 번, 헛손질을 더 하고서야 목걸이를 꺼낼 수 있었다. 목걸이를 잡은 손을 머리 위로 쳐들었다.

  정수리에 와 닿던 숨결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쿵, 소리가 바로 옆까지 쫓아왔다. 질끈 감은 눈을 떴다. 아무것도 없었다. 오른쪽에서 텅, 하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내밀어 보니 아래로 내려가는 통로가 있었다. 중간이 끊어져 있었지만 옆 건물에서 나온 환기구와 맞닿아 있었다. 거의 추락하듯이 통로를 미끄러져 내린 뒤 기어가기 시작했다. 살고 싶다. 쿵, 소리가 등 뒤까지 쫓아왔다. 통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다리 셋 달린 개처럼 달렸다. 이윽고 벽에 부딪혀서 널브러지고 말았다. 쿵, 소리가 제자리에서 발을 굴렀다. 쿵, 또다시…….

 

  두런두런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대와는 달리 병원이 아니었다. 여전히 환기통로 속이었고, 내가 왔던 방향에는 또 다른 환기통로가 아니라 허공이 자리 잡고 있었다. 기어가서 밖을 내다볼까 했지만 추락사를 자초하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입으로 숨을 내쉬자 멋대로 신음소리가 났다. 목이 불타고 있었다.

  품을 뒤져 핸드폰을 꺼냈다. 오후 일곱 시였다. 정확하진 않지만 수도관에 들어간 뒤 네 시간은 지나 있었다. 태국 경찰번호 191을 입력하니 여경이 전화를 받았다. 선샤인 호텔, 킬러, 키드내핑, 머더러 등 영화만 봤으면 알 법한 영어들을 지껄였다. 여경은 장난전화인 줄 알고 짜증난다는 투로 태국말을 했다. 하지만 한국말을 좀 했더니, 그제야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깨달았는지 어드레스? 어드레스? 주소를 물어 왔다. 나는 ‘선샤인 호텔’을 몇 번 반복한 뒤 전화를 끊었다.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기어갔다. 철망을 내려다보니 객실이었다. 속옷만 입은 태국 여자 두 명이 침대 위에 앉아서 다리를 까닥거리며 과자를 먹고 있었다. 철망을 열고 뛰어…… 아니 떨어졌다. 여자들은 괴물이라도 본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벽에 달라붙었다. 여자들보다 과자봉지 옆의 환타에 눈길이 갔다. 낚아채서 어린애처럼 마구 흘리며 단숨에 마셔버렸다. 여자들이 비명을 멈추고 이불을 끌어다가 몸을 가렸다. 그들에게 핸드폰을 던져 주며 말했다.

  “나 한국 사람. 코리안. 아이 니드 폴리스, 폴리스.”

  여자 중 하나가 핸드폰을 줍더니 꽤 길게 통화를 했다. 제대로 신고를 하는 모양이다. 그녀가, 아니 가슴을 보니 실리콘 티가 확 나는 게 둘 다 게이였다. 아무렴 어떠랴, 반가운 나머지 감개무량하다. 그가 쭈뼛쭈뼛 핸드폰을 내밀며 나름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무슨 일인지 묻는 듯했지만 나는 방문을 가리키며 나가라고 말했다. 그러자 두 게이가 자기네들끼리 중얼거리더니, 옷을 주워 입고는 핸드백을 가지고 방을 나갔다.

  방문을 잠그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경찰이 오기 전에 쏨차이의 부하가 먼저 올 것이 틀림없었다. 다행히 문은 안쪽으로 밀어서 여는 방식이었다. 뭔가 문을 막을 것이 필요했다. 침대가 먼저 눈에 들어왔지만 어림도 없었다. TV를 옮기려 해보았지만 왼팔이 말썽이었다. 거대한 가지처럼 부어올라서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TV를 당겨 떨어뜨렸다. 한 손으로 굴렸다가 밀다가 하면서 문 앞에 가져다 놓았다. 다음으로 침대 앞에 붙어 있는 다용도 서랍장이 만만해 보였지만 TV보다 무겁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팔 하나로는 이도 저도 옮길 만한 것이 없었다. 없기는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곧 누군가가 열쇠를 끼웠는지 문 손잡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문이 열리고 손이 나타났다. 살찐 굼벵이 같은 손가락이 달려 있었다. 헉헉거리며 문으로 달려갔지만 걷는 것이 더 빠를 정도였다. 곧 화상의 주인이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농구공이라도 집어넣은 듯한 배, 돼지 다리처럼 출렁거리는 허벅지를 가까스로 검은 양복 속에 끼워 넣고 있었다. 칼라 위로 두른 두툼한 목살 위에 화상 자국이 있는 대머리를 얹어 놓고 있었는데 그 머리가 나를 보더니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온몸을 던져 그를 밀어냈지만, 그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볼썽사납게 뒤로 나뒹굴고 말았다. 그가 방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등 뒤로 한 명이 따라 들어와 덤벼들었다. 그 또한 호텔의 안전요원처럼 입고 있었지만 역시 어설프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나는 뒷걸음질 치면서 문 밖을 보았다. 호텔 손님들이 잔뜩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게이들도 보였다. 내가 미쳤지.

  손에 잡히는 걸 모두 집어 던졌지만 쓸모없는 짓이었다. 한 녀석이 나를 껴안았다. 다른 녀석이 다리를 붙잡았다. 이놈들은 미친놈이라도 잡아가는 것처럼 끌고 가려 했다. 있는 힘껏 발버둥 치며 헬프 미를 외쳤지만 모두가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뭔가가 위로부터 털썩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의 표정이 공포로 질리기 시작했다. 공중에 들려 있던 내 등이 바닥에 닿았다. 누군가가 머리를 걷어찼다. 연거푸 걷어찼다. 내 다리를 잡고 있던 남자는 오줌을 지리면서 주저앉았다.

  머리를 걷어차던 남자는 더 이상 다리를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의 몸 위에 여자가 엎드려 있었고, 목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는 케첩을 쥐어짜듯이 걸쭉한 피를 흘리며 경련했다. 잠시 숨을 고른 나는 창문가에서 이불을 끌고 오다가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보았다. 알몸의 그녀는 어쩔 줄 모른 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나마 달려 있는 다리에서 피를 흘리면서, 창잡이의 창에 회가 떠진 피부를 덜렁거리면서. 이걸 보라지! 풋풋했을 가슴은 돼지 껍데기처럼 굳고 갈라졌고 날씬했을 배는 악어의 등처럼 끔찍해! 이걸 좀 보라지!

  이불을 끌어와 그녀를 가렸다. 한쪽 팔로 침대 위로 끌어올렸다. 나는 침대에 기대었다. 그녀를 감싼 이불을 몸 앞으로 끌어와서 묶었다. 근육이 젤리처럼 흐물흐물해졌지만 그녀는 놀랍도록 가벼웠다.

  업고 일어섰다. 죽은 남자의 허리에서 내 플래시를 발견했다. 가까스로 빼낸 다음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줄줄이 늘어선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당도했고, 올라탄 나는 벽의 손잡이에 여자를 받쳐 놓고 닫힘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히기 시작하자 반대편 엘리베이터에서 경찰들이 튀어나왔다. 열림 버튼을 향해 손을 뻗어 보았지만 문 닫히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일층에서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를 나오자마자 정면에 프런트가 나타났다. 서 있는 직원들이 나를 보았다. 그녀들은 깜짝 놀라며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고개를 돌렸다. 넓은 공간에 사람들이 잔뜩 앉아 있었다. 그들은 앞에 설치된 무대를 보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나는 발을 끌며 그들에게 걸어갔다. 그들은 무대 위의 한 남녀를 보고 있었는데 감동했는지 눈물을 글썽이는 자도 있었다. 턱시도를 입은 늙은 오랑우탄 같은 남자, 웨딩드레스를 입고 휠체어에 앉은 반신불수의 여성. 삐쩍 말라 종잇장 같은 살갗이 주름진 목에는 샹들리에 불빛에 반짝이는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두 개의 고리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은빛 목걸이, 은과는 다른 깊이 있는 광택.

  걸어갔다. 금혼식을 축하하는 커다란 케이크를 밀쳐내 쓰러뜨리고 대신 여자를 올려놓았다. 만인이 보는 앞에서 이불을 벗겼다.

  사람들을 보았다. 비명만 지르고 있었다. 젖어 번들거리는 눈들, 하지만 공포가 아닌 혐오,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수많은 눈들. 나는 그 시선을 외면하지 않았다. 다만 손가락을 들어 쏨차이를 가리킬 뿐이었다.

 

 

  2011년 07월 16일 월드 베스트 토픽 헤드라인

 

 

  “푸켓의 악마!

  외국인 여행자만 납치해 사지를 절단한 인두겁 쏨차이 트림트라꾼 검거”

 

 

  8월 27일은 태국 역사상 가장 끔찍한 날이었다. 이날 푸켓의 선샤인 콘티넨탈 호텔에서 벌어진 난투극에서 왼팔과 오른다리, 왼쪽 발목이 없는 귀신 같은 형상을 한 여자가 나타나 한 남자의 목을 물어뜯어 죽이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 여인은 혀가 잘렸기 때문에 말을 하지 못했다. 경찰이 건네준 연필과 수첩에 한 낙서를 통해 자신이 일본 사람이라는 것만 밝혀졌을 뿐이다. 권위 있는 의사의 조사 결과 이미 중증의 정신이상 상태란 것이 밝혀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한편 현지 경찰은 현장에 있었던 한국인 사립탐정의 증언을 바탕으로 당일 철거했던 구 선샤인 호텔에서 발견한 한 장의 사진을 입수하는 데 성공했다. 사진을 바탕으로 여인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일본과 협력한 경찰은 여인의 이름이 메구미이며, 언니와 함께 7년 전 푸켓으로 여행을 왔으며 엔젤 모텔에 묵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녀와 동행한 언니는 당시 28세였으며 이름은 유리코, 역시 쏨차이에게 희생되었는지는 불명이다. 메구미는 당시 18세였다고 한다.

  구 선샤인 호텔과 신 선샤인 호텔에서 발견된 옷과 인골, 신체의 일부들은 메구미가 언젠가 쏨차이의 악행과 희생자들을 알리려는 의도로 숨겨 왔을 가능성이 있다는 조사팀의 견해가 있었다. 조사팀은 메구미는 주로 음식 쓰레기나 룸서비스로 운반되는 음식을 훔쳐먹으며 연명했지만, 감시가 심할 때는 버려진 신체의 일부를 뜯어먹으며 견뎌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엔젤 모텔에서 발견된 인골도 그녀가 숨겼으리라 추정되며, 발견된 인골은 모두 14명분이다.

  이 모든 사건 뒤에는 쏨차이 트림트라꾼이라는 희대의 악마가 숨어 있었다. 그는 푸켓타운을 지배하는 암흑가의 보스로, 뿜와리 요카룸이라는 아내가 있었다. 그는 주로 푸켓타운의 이권다툼이나 매춘을 통해 이익을 얻었으나, 자신의 아내가 사지를 움직일 수 없게 되자 돌연 장애인이나 기형아에게 기괴한 묘기를 부리게 하는 프릭쇼와 장애인 구걸단을 시작했다. 아내의 사지마비에 대한 슬픔을 타인의 희생으로 풀어내는 방식은 그가 사람의 탈을 쓰고 있지만 명백한 악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수사가 곤란한 외국인, 그것도 동양인만을 노린 방식은 그가 철저히 이성적으로 범죄를 계획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어 온 태국 사회가 경악하고 있다.

  한편, 이 사건을 해결해 낸 장본인은 익명을 요구한 정의로운 두 명의 한국인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달려들어, 쏨차이 트림트라꾼이 과거의 악행을 묻으려는 듯 모든 증거를 말살하고 다시 태어나려는 날 그의 정체를 밝혀냈다.

  그들 중 한 명은 사설탐정으로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했다. 그는 쏨차이의 부하에 의해 팔이 부러지고 다리를 찔리는 등, 전신에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인간애를 발휘하여 메구미를 구해 냈다.

  나머지 한 명은 사립탐정에게 사건을 의뢰한 로맨티시스트로, 1996년 푸켓타운에 신혼여행을 왔다가 아내를 잃어버린 남자다. 그는 십이 년 동안 매년 사립탐정을 대동하여 푸켓에서 아내를 찾았고, 그동안의 수사기록을 제공하는 등 탐정의 수사에 적극 협조, 악마 쏨차이 트림트라꾼의 실체를 밝혀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에게는 슬픈 일이지만 아내의 유골은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아내에게 선물했던 목걸이가 뿜와리 요카룸의 목에 걸려 있었다는 사실은 그의 아내 역시 쏨차이에게 희생되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쏨차이와 함께 외국인 납치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그의 부하들은 법정 최고형이 선고될 것이 분명하다.

  쏨차이의 아내가 ‘따이한’의 자손인 것이 이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는 불분명하여 아직 조사 중에 있다.

  전 세계가 경악한 이 사건에 대해 태국 국왕 푸미폰 아둔야뎃은…….

 

 

  기사 더 보기

 

 

 

《문장웹진 2월호》

 

  

 

  

   수상소감 / 조성희

 

 

 

이 게으른 가슴에도 새싹이 돋기를.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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