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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과 손등과 손

  • 작성일 2006-03-21

 

김현영

 


너의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일요일의 놀이공원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댄다. 아니다. 사실 나는 잘 모른다. 아주 어렸을 때 딱 한번 가보았을 뿐 그 후로는 솔직히 놀이공원에 가본 적이 없다. 휴일이면 수많은 연인이 놀이공원에서 그들의 연애를 과시하며 허술하기 짝이 없는 가족들이 그곳에서 만큼은 모처럼 가족행세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굳이 경험하지 않았어도 일요일 저녁 텔레비전 뉴스에 비친 놀이공원의 풍경을 보아온 것만으로도 그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무슨 랜드라고 불리는 놀이공원이 어쩌고저쩌고 농원이라고 불리던 시절, 나는 처음으로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곳에 가보았다. 동화책 속에만 존재하던 성들이 바로 코앞에 버젓이 서 있었고 온갖 동물들―실은 동물의 탈을 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춤을 추었으며 텔레비전 만화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주인공들은 심지어 내게 악수를 청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공중에서, 동굴 속에서, 그리고 땅 위에서 형형색색, 뱅글뱅글, 뺑뺑뺑…… 올라갔다 내려가고 외로 꼬였다 뒤집어졌다 돌다 말다 튀다 날다 하던 갖가지 놀이기구들. 그곳에서 나는 그림책과 텔레비전 만화를 보며 꿈꾸었던 모험들을 그저 시작하기만 하면 되었다. 나는 주인공이었고 그것도 멋진 주인공일 수밖에 없었으며 그 모험의 끝에서 반드시 아리따운 공주를 아내로 맞게 될 터였다. 그러나 어린 내가 미처 알지 못한 것이 있었다. 판타지와 공포가 실은 샴쌍둥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를 샴쌍둥이와 대면시킨 건 바이킹이란 놈이었다.

바이킹을 먼저 타자고 했던 건 물론 나였다. 비록 어렸지만 어쩌고저쩌고 농원의 멋진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바로 나였다. 그러나 그 당시 나를 그곳에 데려갔던 고모와 그녀의 애인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모험까지 감내하기엔 무리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는 주인공이었다. 눈앞에 닥친 시련을 반드시 성공으로 바꾸어야 했다. 나는 꼭 그것을 타야겠다고 떼를 썼고 나를 말릴 자는 아무도 없었다. 고모와 그녀의 애인은 어쩌고저쩌고 농원에서의 연애를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주인공인 동화의 조연 역할을 군말 없이 해내야만 했다.

워낙 오래 전 일이라 희미하긴 하지만 고모의 애인은 그놈의 바이킹을 타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건 너무 시시하지 않아?’ 라고, 조금은 비겁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던 것도 같다. 그 바람에 더할 나위 없이 빵빵했던 나의 모험심에서도 김새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곧 내가 해야 할 모험이 그토록 시시한 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나는 그놈의 바이킹에 올라탔다. 고집부린 끝에 얻어진 기회를 그냥 물려버리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 당시 내가 알고 있던 내 모습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나는 그것이 나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나와 다른 나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마침내 내 생애 최초의 바이킹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시할 따름이었다. 그 모든 게 다 고모의 애인 때문이었다. 내 마음의 건반엔 오직 ‘시’ 밖에 없었다. 시시하고 또 시시했다. 하염없이 시시한 가운데 비로소 나는 마음을 놓았다. 더 이상 모험도 없을 테지만 더 이상 무서울 것도 없었다. 마음을 놓는 순간 내 마음은 그대로 정지한 채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나의 내면이야 전혀 상관할 바 아니라는 듯 바이킹은 저 생긴 대로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시’밖에 모르던 마음이 전위 음악가라도 된 양 갑자기 난해한 화음들을 짚어대기 시작한 건 바이킹을 움직이고 있던 허공의 조류가 차츰 거세질 무렵이었다. 바이킹은 점점 더 지상으로부터 먼 곳으로 흘러갔고 파도는 광포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바이킹을 함께 타고 있던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닻을 가진 자는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나도, 내가 아닌 그 누구도 이 모험의 주인공이 될 순 없었다. 우리는 그저 비명이나 질러대면 그만인 엑스트라에 불과했던 것이다. 뭍에 두고 온 장난감과 솜사탕, 그리고 살아가는 데 있어 하등 쓸모없을 게 분명한 나의 자존심이 사무치게 그리웠지만 바이킹이 스스로 얌전히 귀항하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 녀석, 혼 좀 났냐? 또 탈래?

비틀비틀, 어리버리, 새하얗게 질려있는 내게 고모의 애인은 말했다. 그는 비겁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당당히, 아니다, 사실은 구역질이 쏟아지는 것을 겨우 참아가며, 그에게 대답했다.

또 타. 또 탈거야.

고모와 그녀의 애인은 ‘요 녀석 봐라’ 하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내가 결국엔 그놈의 바이킹을 또 타게 되었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또 타. 또 탈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말은 그렇게 잘 했지만, 나는 바지를 입은 채로 오줌을 질질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대소변 가리기 경력 4년차였던 내가 말이다. 그리고 비로소 알 것 같았다. 고모의 애인은 비겁했던 게 아니라 현명했다는 것을.

고모는 놀이공원 안에 있는 쇼핑센터에서 황급히 내게 입힐 바지를 사왔다. 그리고 고모에게서 새 바지를 받아든 그는 나를 들쳐 업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어린 마음에도 확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다. 오줌에 젖은 바지를 벗겨내고서 뒤처리를 해준 사람이 고모가 아니라 그였기 때문에 더더욱 부끄러웠다. 그는 현명했고 나는 어리석었다. 모든 동화의 끝에서 현명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의 은인이 된다. 어쩌고저쩌고 농원에서 벌어진 모험의 진짜 주인공은 진짜로 내가 아니었던 것이다.

감히 나한테 까불어? 너 애기였을 때 내가 똥기저귀도 다 갈아줬다 이 말씀이야. 한번만 더 까불어봐라. 네가 좋아하는 유치원 선생님한테 네 똥이 얼마나 굵은지 죄다 말해줄 테니까.

틈만 나면 나에게 그런 식으로 협박을 일삼던 고모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날따라 고모는 여느 때와 달랐다. 오줌 따위는 처음 본다는 듯, 자기는 생전 오줌 같은 건 안 싼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몰라, 난 몰라…… 그 소리만 연발하며 말이다. 애인이 아니라 친구와 함께 있었다면 아마도 고모는 그렇게 새침하게 굴진 않았을 것이다. 애인과 친구의 차이란 그런 것이었다. 물론 그날은 내 오줌보가 저지른 테러에 대처하느라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고모의 애인은 자신의 애인인 고모가 내숭의 여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그는 그녀의 어디까지를 얼마나 알고 있었던 걸까?

애인이란 어쩌면 애먼 사람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애먼 사람을 사랑하고 애먼 사람에게 사랑의 상처를 주는지도 모른다. 사랑의 눈으로 그를 알아봤으며 사랑의 마음으로 그녀를 이해했다고 하지만 알아본 만큼 못 봤으며 이해한 만큼 오해하는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가 사랑한 사람은 애먼 사람일 뿐인 것이다.

욘석아, 진짜 용감한 게 뭔 줄 알아?

뒤처리를 끝낸 후 고모의 애인은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바이킹을 탄다고 해서 저절로 용감해지진 않는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내 예상대로 말했다. 바이킹 잘 탄다고 허세를 부리는 것도 바이킹을 정말로 잘 타는 척을 하는 것도 모두가 용감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었다. 그리곤 이렇게 덧붙였는데 그건 예상 밖의 얘기였다.

진짜 용감한 건 말이다. 정직한 거야.

나는 갑자기 그가 멋있어 보였다. 그게 무슨 말인지 그 당장엔 알아듣지도 못했으면서 아무튼 그가 멋있게 보이는 것이었다.

고모부는 그럼 정직한 거야?

나는 물었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가 대답했다. 정말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고모의 지시대로 내가 때때로 고모부라고 부르기도 했던 그는 나의 진짜 고모부가 되지는 못했다. 나는 그가 너무 정직했기 때문에 진짜 고모부가 될 수는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생의 어떤 지점에서 정직함을 투기해버리거나 적당히 마모시키지 않는 이상 우리는 그 누구도 그 누구의 고모부가 될 수 없다. 결혼은 우리에게 고모부와 처조카,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이 되라고 요구한다. 더 이상 우리는 우리 자신일 수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날, 어쩌고저쩌고 농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모는 내내 그에게 짜증을 부렸다. 그깟 바이킹도 못타는 남자들을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고모는 분명 ‘남자들’이라는 말로 그 안에 나까지 끼워 넣긴 했지만 진정한 과녁은 내가 아니라 그였다. 그는 정직했고 정직했기에 용감했고 용감했으므로 멋있는 남자였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나의 고모부가 될 수는 없는 사람이었다. 친구와 애인이 각각 다른 행성에 살고 있듯 연애와 결혼도 서로 다른 은하에 속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면 할수록 가까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멀어질 뿐인가 보다.    

그날 이후로 놀이공원이라고 하면 그쪽으로는 오줌도 안 쌌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가 아니라 사실 나는 놀이공원 소리만 나와도 오줌을 찔끔 흘릴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일요일의 놀이공원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댄다. 허공에 길을 만들었다 지워가는 갖가지 놀이기구에 올라타 공포를 즐기는 사람들. 오래 전 나처럼 아이스크림이나 솜사탕 따위를 손에 든 아이들. 그러나 나는 모르겠다. 놀이공원의 연인들이 과연 자신들의 연애를 과시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가족들이 모처럼 가족행세를 하고 있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다. 나는 지금 일요일 저녁의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지금, 이 일요일에, 거의 20년 만에…… 놀이공원에 나와 있다. 게다가 내가 서 있는 곳은 롤러코스터 앞. 허공에서 560도 회전 곡예를 한다는, 그녀(갑자기 등장한 그녀, 누굴까?) 말에 의하면 바이킹보다도 더 재미있다는(내 표현으로 바꾸자면 바이킹보다도 더 무섭다는), 바로 그 롤러코스터 앞이란 말이다.

나는 지금 이곳에 한 시간째 서 있는 중이다.

오래 전 처음으로 놀이공원에 갔던 때, 딱 그때의 나만한 아이가 여러 차례 내 앞에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롤러코스터에서 하차하기 무섭게 다시 그것을 타기 위해 또 줄을 서는 아이. 내가 본 것만 해도 벌써 세 번째다. 어느 틈에 그 애는 손에 솜사탕까지 들고 있다. 아직 한 입도 뜯어먹지 않은, 첫사랑처럼 부풀어 있는, 연하늘빛 솜사탕.

나는 지금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나의 꼬마, 이미 오래 전에 헤어진 나의 첫사랑을.



나의 러브레터를


꼬마야, 보고 싶은 꼬마야!

내가 널 꼬마라고 불러서 놀랬니? 이 꼬마야!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때부터 너는 내 일기 속에서 언제나 꼬마였었다. 너는 몰랐지? 네가 꼬마였는지도, 그리고 나처럼 뭔가를 쓰는 일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일기를 썼다는 사실도.

꼬마라구요? 내가요? 그건 선배님이 너무 오버하는 거 아녜요? 우린 겨우 한 살 차이라구요.

네가 그 똘똘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게 들리는 것 같구나.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내 맘대로 상상해본, 너의 반응이다. 실제로 네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는 일이지.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너는 그렇다. 너는 자존심이 강한 아이잖아. 남에게 의지하는 것도 싫어하고 의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싫어하고. 아니니? 내가 잘못 알고 있니? 너는 나를 꼭 선배님이라고 불렀지. 죽어도 오빠라고 부르기 싫어했던 것도 너의 그런 성격 탓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의 오해니?

지금 내 여자 친구는 나를 오빠라고 부른다. 그녀로부터 처음으로 오빠 소리를 들었을 땐 신선한 샐러드를 먹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를 선배님이라고 밖에 부르지 않았던 네가 생각나서 더더욱 그랬다. 뭐랄까, 우리 사이가 한층 가까워지고 비로소 연인이 된 것 같았거든.

하지만 비로소 연인이 되었다는 느낌, 그런 게 과연 뭘까? 내 생애 처음으로 맛본 신선한 샐러드였지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샐러드 접시는 금방 텅 비어버리더구나. 이제 나는 아무리 샐러드를 먹어도 그 첫 맛을 느낄 수가 없다. 호칭 따위는 아마도 중요한 게 아니었나 보다. 그런데도 너와 나는 왜 호칭에 연연했던 것일까? 서로에 대한 우리의 감정, 그것을 담기에는 호칭 따위가 그다지 적절한 그릇도 아니었는데 말이야.

꼬마야! 그리운, 나의 꼬마야!

나는 그랬다. 나보다 키가 30센티미터는 작은 너를, 내 어깨에도 못 미치는 너를…… 나는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몰랐다. 그냥 너를 아끼고 보살펴주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바이킹도 제대로 못타는 주제에, 그토록 겁이 많은 주제에 말이다. 그리고, 너 또한 무조건 보호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나는…… 모르겠다. 나는 그냥 강해 보이고 싶었나봐. 내가 강해져야만 너를 잃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나 봐. 물론 너 또한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 너의 모습이 따로 있었겠지. 하지만 네가 나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하는지 보다 나는 내가 더 중요했던 것 같아.

너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 속에는 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너의 체구가 자그마하다는 사실, 나는 그것을 알리바이 삼아서 너를 보호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던 거야. 얼마나 우습니? 키가 큰 남자는 강하고 키가 작은 여자는 약하다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생각. 이미지가 만들어낸, 이토록 견고한 오해.

지금 내 옆에 있는 여자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오빠는 몰라, 정말 몰라.

그녀는 내가 자기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고 언제나 불만이다. 난, 인정한다. 그녀가 나를 모르는 만큼, 적어도 꼭 그만큼은 나도 그녀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다. 내가 속해있는 이 세상에 대해서도 나는 그러하다. 무언가에 대해서 내가 이만큼 알고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은 내가 꼭 그만큼의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기꾼이 자기는 사기꾼이라고, 강도가 자기는 강도라고 이마에다 써놓고 다니는 걸 너는 본 적이 있니? 아마 없을 거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보았을 거야. 사기꾼처럼 생긴 사람, 예민하게 생긴 사람, 시원시원할 것 같은 사람, 귀여워 보이는 애, 무식해 보이는 애, 둔하게 생긴 놈, 기타 등등. 그 모든 ‘할 것 같은’, 그 모든 ‘처럼 보이는’…… 그 사람의 본질과는 하등 상관없는 이미지, 편견, 오해.

그래서 나는 때때로 분열한다. 남들이 알고 있는 나와 실제 나와의 차이. 되고 싶은 나와 실제 나의 차이.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까마득한 거리. 그곳에서 우리의 사랑도 때때로 길을 잃고 헤매지. 그러다가 영영 떠나버리기도 하지. 빠이빠이, 내가 처음 사랑했던 당신은 이런 사람이 아니었어 라고 한결같이 말하며. 하지만 바로 내 눈앞에서 사랑이 떠나는 걸 보면서도 우리는 잡지 못한다. 꽃씨처럼 사소했던, 최초의 오해. 그것이 이미 비탈길을 구르는 눈덩이처럼 속력을 내며 점점 더 크게 불어났기 때문이지. 구르는 일을 멈추기 전에 사랑이 먼저 눈덩이에 치여 산산조각 났기 때문이지.

사랑에 눈이 멀었다는 말이 있다. 나는 한때 사랑이란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사랑이란 그를, 혹은 그녀를 보는 우리의 눈을 더욱 밝게 그리고 깊게 해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서로의 본질을 볼 수 있다면 사랑은 이미 성공한 거지. 설사 그 후에 우리가 작별을 하게 될지라도. 너를 잃은 후에 나의 가장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것이었다. 너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 너에게 나를 정직하게 드러내지 못했다는 것. 지금 나의 그녀로 하여금 때때로 오빠는 몰라, 정말 몰라 라는 말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 바로 그것이란다, 꼬마야.

네가 내 뒤를 따라오던 날이 생각난다.

그때 너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지. 나는 3학년이었고.

수능 시험을 100일 앞에 두고 있는 날이었고, 일요일이었다. 너는 굳이 학교에 나올 필요가 없는 요일이었지. 나는 고3이었으니까 강제적으로 등교해야 했고. 너도 기억할 거야. 너와 내가 함께 다녔던 그 고등학교의 살인적인 자율학습을 말이야. 아침 일곱 시에 등교해서 밤 열 시까지 우리는 그곳에 묶여 있어야 했잖아. 그리고, 고 3이 되면 밤 열 한 시까지 있어야 했지.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저녁 다섯 시까지였고. 근데…… 나는 알고 있었다. 고2였던 너, 나보다 일찍 하교해도 됐던 네가 그러지 않았음을. 고3인 내가 귀가를 한 후에야, 그제야 네가 학교를 떠났다는 사실을 나는, 내 뒤통수는, 알고 있었다.

3학년이 되고부터 내 뒤통수는 언제나 누군가를 보고 있었어. 그 사람은 자기가 나의 뒷모습을 보아왔던 거라고 말하겠지. 하지만, 아니다. 뒤통수에 와 닿는 그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는 순간부터 우리는 서로 소통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몸을 돌려서 그 사람을 보았는가 보지 않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토록 사소했던 기미. 그걸 먼저 느끼지 못하고서 내가 어떻게 너를 알아볼 수 있었겠니?

 내가 3학년이 되기 이전부터 네가 나를 보아왔던 거라면 솔직히 미안하다. 할 말이 없다. 내가 너를 눈치 챈 것은 3학년이 되었던 그 해 봄부터였다. 그 해에 너와 나의 교실은 같은 교사, 그리고 같은 층에 있었지. 교사의 중앙 현관에서부터 이어진 계단과 남자 화장실, 여자 화장실 따위가 가로막고 있긴 했지만.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강이 가로놓여 있다고 해서 강 건너의 그와 그녀에게 눈빛조차 보낼 수 없는 건 아니잖아. 그 눈빛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잖아.

그 해 봄은 온통 오렌지빛과 연두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해 봄에 너는 주로 그런 색깔의 옷을 입고 다녔어. 기억하니? 공연히 복도에서 서성거리며 나는 오렌지 색깔이나 연두 색깔을 찾고 있었다. 저 멀리에서는 하나의 점이었던 그 빛. 그러다가 내게로 다가오면서 내 주변을 온통 물들이던 그 빛. 너는 어떠니? 그 해 봄이 너에겐 어떤 빛깔이었니? 연보라, 베이지, 혹은 코발트블루……그러니? 그건 내가 즐겨 입었던 색깔이지. 너의 봄을 물들였던, 나의 색깔이지.

내 생에서 그토록 화사했던 봄은 다시 없구나, 꼬마야.

이미 봄부터 너를 알아보았으면서도 나는 그러나 너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폐가 몹시 나쁜 상태였다. 키도 크고, 좀 마른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건장한 체격이었던 내가 말이다, 폐가 아주 안 좋았단다. 담임선생으로부터 휴학을 고려하라는 충고를 들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웃기지 않니? 한창 때인 고등학교 3학년짜리가 폐가 안 좋다니,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몸이 아프다니 말이야. 그게 내 잘못이 아닌데도 아무튼 나는 뭔가 사기 치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 진짜 웃기지?

하지만 너는 점심시간마다 농구를 하고 있던 나를 기억할 거다. 그래, 나는 그랬어. 농구가 끝나고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가슴을 싸쥐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나는 고집스럽게 농구를 하곤 했다. 왜냐하면, 너에게 다가가진 못했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슴속에서 작은 폭죽들이 팡팡 터지는 것 같은 그 기분을, 나를 보고 있을 너의 눈빛을.

수능을 백일 앞둔 그 날, 네가 내 뒤를 따라오지 않았다면 나는 영영 너를 놓치고 말았을 거야. 나는 겨우 그것 밖에 안 되는 남자였어. 그런데도…… 이 바보 같은 꼬마, 왜 나를 좋아했니?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미안하다는 말뿐인데. 그걸 감춰보려고 있는 척, 잘난 척, 강한 척 했던 건데. 바보 녀석.

그 날, 너는 언제나처럼 나를 그저 바라보기만 한 게 아니라 작정한 듯 나를 따라왔지. 나라고 몰랐겠니. 무심한 척 교문을 나섰고, 무심한 척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어갔지만 사실 나는 조금 비틀거리고 있었다.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표면으로부터 한 10센티미터쯤 붕 떠서 걷고 있었다. 그래서였어. 돌발적으로 내가 오락실로 들어가버린 것은. 중력에서 벗어난 나의 걸음…… 들키면 안 될 것 같았어. 너무 쪽팔려서 다시는 네 앞에 나타나지 못할 것 같았다고. 그리고, 일순 난감해진 너의 표정. 뒤통수로 다 봤다. 너를 당황하게 해서 미안하고 미안했지만, 그런 내가 한심하기 짝이 없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수습이 안 되더라고. 이미 오락실에 들여놓은 발을 다시 물릴 수가 없더라고.

오락실에서 보낸 시간은, 지옥 같았다. 나는 무턱대고 기계에다가 동전을 집어넣었고 계속 나가떨어지기만 하는 나의 파이터 캐릭터를 멍청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화면에는 금방 게임 오버 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마치 편집증 환자처럼 나는 계속해서 동전을 밀어 넣었고 끊임없이 나가떨어졌다. 얻어맞고 또 얻어맞았다. 맞아 죽어도 싸다는 생각, 했다.

오락실을 나왔을 때는 이미 어두운 밤이었다. 이젠 끝났다는 걸, 무언지 모르지만 하여간 끝났다는 걸, 나는 알았다. 내 삶의 여러 페이지가 아무 의미 없이 왕창 넘어가버렸다는 느낌, 그 상실의 느낌. 나는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선배님!

내 등 뒤에서 너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내 뒤통수로 너를 보던 시간들을 지나 이제 나는 너의 목소리까지 들을 수가 있게 된 것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었을 나의 뒤통수, 그곳에다가 눈과 귀를 달아준, 너. 나의 꼬마.

나…… 말이니?

그때 내 목소리는 조금 떨렸던가. 그래, 그랬겠지. 떨렸겠지. 나 말이니? 나 말이니, 꼬마야! 그렇게, 하마터면 나는 그렇게 꼬마야 라는 말을 붙일 뻔했으니까.

다행이다. 다행이다. 아직 오늘이야.

내가 너를 향해 돌아섰을 때, 너와 내가 처음으로 둘이 마주보고 섰던 그 순간에, 네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바로 그거였다. 그래, 정말 다행이었다. 뭐가 다행이라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너와 내가 조금씩 의미가 달랐겠지. 하지만 네 말대로 나는 정말 다행이었다. 아직, 오늘, 이라서…….

내일까지도 선배님이 안 나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어요. 내가 뭘 좀 계산을 했는데 그게 말이죠, 내일이 되면 다시 해야 되거든요. 정말 잘 됐어요, 다시 계산하지 않아도 되니까. 자요, 선배.

그렇게 말하면서 너는 내게 무엇인가를 내밀었다. 한편으론 얼떨떨하게 또 다른 한편으론 당연하다는 듯이 나는 그것을 받았다. 아주 오래 혼자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그런데도 너의 표정은 조금도 지친 것 같지가 않더구나. 너의 말투도 그렇고. 그래서 나는 아무 저항 없이 그것을 받았던 것 같다.

지금에서야 이런 얘기를 하려니 좀 늦은 감이 든다만, 넌 참 이상한 아이였다. 처음 보았는데도 처음 같지가 않고 여러 번 만나도 처음 만난 것 같은, 정말 이상한 아이였다. 나도 그랬니? 그렇다면 너도 나만큼이나 편하고도 힘들었겠구나. 멋쩍은 상황에서 친근하게 굴어주면 당연히 편안해지지. 하지만 한껏 가까워져도 좋을 그런 순간에 낯선 얼굴로 앉아 있으면…… 힘들지. 넌 좀, 아니, 아주 많이 그런 편이었어. 스스로가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던 나에게는 더더욱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네가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불안했거든. 아아, 이 녀석이 드디어 내 정체를 눈치챘구나. 내가 얼마나 별 볼일 없는 놈인지 알아버렸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구. 그래서 나는 너에게 마음껏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너는 왜 그랬니? 내겐 너무 예쁘기만 했던 이 자식아, 너는 왜 그런 거니?

아무튼, 네가 그 날 자연스럽게 내게로 왔기 때문에 나는 정말 마음이 놓였다.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만 같았다.

이게…… 뭐니?

뭐긴요. 당연히 술이죠. 백, 일, 주. 그런데요, 선배님. 이름이 뭐예요?

그 순간 나는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꼬마야. 어떻게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뒤따라왔던 거냐.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가 있었단 말이냐. 엉뚱하고 맹랑하기 짝이 없는 이 꼬마님아.

내가 이름을 말해주자 너는 여러 번 그 이름을 소리내서 불러보았지. 너의 그 입술에, 혀에, 그리고 심장에 새겨두려는 사람처럼 말이야.

아무개, 아무개, 아무개…… 그렇구나, 아무개였구나.

아직도 내 귓가를 맴도는 너의 목소리. 내게 이름이 있다는 사실이 그때만큼 뿌듯했던 적은 없었다. 그리고 쑥스러웠지. 그 와중에 어떻게 너의 이름을 물어볼 수가 있었는지, 어떻게 다음 주말의 약속을 잡기까지 했는지 난 참 신기하다. 내가 그렇게 대범해질 수가 있었다니 말이야. 물론 다 네 덕분이었지. 너무도 자연스러웠던 너 때문이었지.

이제 100일 남았네요. 아니죠, 아니죠. 아직도 100일이나 남았어요. 8,640,000초나 남았다구요, 우와! 그때까지 파이팅, 이름도 모르는 선배님!

네가 준 조그마한 술병과 초콜릿 속에서 찾아낸 엽서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제야 네가 계산했다는 게 뭔지, 아직 오늘이어서 다행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 나는 알 수가 있었다. 99일이나 93일, 뭐 그렇게 남았더라면 계산하기가 한층 복잡해졌겠지. 그러니 얼마나 다행이냐. 계산하기 편한 100일 전에 우리가 만난 게.

그 날 밤, 나는 비로소 알게 된 너의 이름을 여러 번 소리내서 불러보았다. 아무개, 아무개, 아무개…… 그렇구나, 아무개였구나. 네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서로의 이름을 나누어 가진 것만으로도 전부를 가진 것만큼이나 충만하던 밤이었다.

물론 나는 지금의 그녀와 여러 가지 선물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 만나지 몇 년째 되는 날, 밸런타인데이, 화이트 데이, 빼빼로 데이, 크리스마스, 생일, 이런저런 기념일…… 선물을 주어야 할 날도 받아야 할 날도 많고 많다. 때때로 아주 근사한 선물을 주고받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멋진 선물을 받아도 그때만큼 벅차지는 않더구나. 연애가 시작되는 것은 길들일 수 없는 감정이 우리 안에서 야생마처럼 날뛰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그것을 유지하는 데는 형식이 필요하다. 함부로 남의 땅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울타리를 치기도 하고 야생의 본능을 억누르고 사는 그를 달래기 위해 당근을 내밀기도 하지. 이제 야생마의 근육은 물렁물렁해지고 눈빛은 흐려졌다. 우리도 같이 시들어간다. 그걸 빤히 보면서도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는구나. 왜냐하면 연애의 형식은 이미 우리의 새로운 유전자가 되어버렸으니까.

그때가 그립다, 꼬마야. 서로의 이름조차 모르면서도 좋아할 수 있었던 순수가…… 정말, 그립다.

그 날 이후로 너와 나의 주말은 동일한 추억으로 가득 차게 되었지. 같은 길을 걷고, 같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영화를 보았지. 학교에서부터 너의 집에 이르기까지의 그 기나긴 길, 그 무렵에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를 위해 함께 기도했던 성당, 야간 자율학습 중에 잠깐씩 만나서 커피를 마시곤 하던 자판기 앞, 컵라면을 나누어 먹었던 일요일의 교내 매점, 자습 시간마다 책상을 복도로 들고 나와서 저 멀리에 있는 서로를 느끼며 공부하는 척 했던 우리들…… 나는 다 기억한다. 아직은 서로에게 줄 것이 더 많았던 그 시간들. 그러나 우리가 서로에게 주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정말로 모든 것을 다 주었던 것일까?

모르겠다, 꼬마야. 너는 어땠는지 몰라도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가 너에게 보여준 것은 나의 반쪽뿐이었다. 초라하고 볼품없고 별 볼일 없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은 철저히 숨겼던 것이다. 그래서였다. 수능 시험 결과가 나오고 대학 입시가 모두 끝난 후에 내가 돌연 잠적했던 것은. 물론 모모한 대학에 합격하긴 했었다. 하지만 나는 부끄러웠다. 내가 네 앞에서 좀 잘난 척을 했어야지. 좀 머리 좋은 척을 했어야지. 네 앞에서 허세를 부린 게 부끄러워서 네 앞에 나타나지 못했다. 그리고, 재수 생활을 시작했던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너 역시 그 동안 나를 찾지 않았더구나. 내 마음을 이해했던 거니? 아니면 그동안 만나기는 했지만 네가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 충격을 받았던 거니? 나를 원망하기라도 했니? 아무도 몰래 내가 재수 생활을 하고 있던 그 일 년 동안, 너는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정말 궁금하구나. 너를 다시 만나고도 차마 너에게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내가 어떻게 물어볼 수 있었겠니. 질문을 하기 전에 나를 먼저 설명해야 했을 텐데. 네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반쪽을 드러내야 했을 텐데.

하지만 너는 아니? 비록 헤어져 있긴 했지만 나는 한 순간도 너를 잊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의 다이어리에는 네 연락처가 언제나 맨 윗줄에 적혀 있었다. 네가 고 3 수험생이 되어서 맞게 된 수능 100일 전, 그날은 학교까지 찾아갔었다. 언젠가의 너처럼 조그마한 술병과 초콜릿을 들고서. 그리고, 너를 보았다. 밤 11시, 자습이 끝나고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 무리 속에 파묻혀 있던 너.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나는 너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너는 슬리퍼로 된 실내화를 벗고서 하얀색 운동화에다가 발을 꿰고 있었지. 나는 네가 한시라도 빨리 운동화를 다 신고서 어서어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기를 간절히 바랬다. 마침내 운동화를 다 신은 네가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러나 나는…… 차마 네 얼굴을 보지 못하고 휙…… 돌아서고 말았다. 한 10킬로미터를 그대로 전력질주하기라도 한 듯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돌아선 그대로 그곳을 떠났다. 너무나 보고 싶었지만 차마 볼 수 없었던 너를 뒤로 한 채.

그 후로도 나는 종종 너를 보았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너를, 내 앞에 잠시 정차하고 있던 버스에 타고 있는 너를, 우리들이 함께 걸었던 길을 혼자서 느릿느릿 걷고 있는 너를, 친구들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영화관으로 들어가던 너를…… 나는, 보았다. 그건 우연일 때도 있었고 나의 의지였을 때도 있었다. 네가 문득 나를 발견하기를 바랐다. 아니다. 절대로 네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게 두 개의 마음이 언제나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나는 조금은, 힘들었다.

너는 언제나 그런 나를 스쳐서 지나갔지. 한 번도 나를 보지 않았지. 아주 짧은 순간 내 앞에 머물렀다가 곧 인파에 휩쓸려 사라져가던 너. 너는 부표처럼 선명했다. 하지만 참 이상하지. 나는 그토록 선명하게 떠 있는 너를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만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주변에 있던 익명의 사람들, 그들에 대해서는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너만은 모르겠더라. 나는 너를 모른다, 너만 모른다…… 어쩔 수 없었던, 내 마음의 웅성거림이라니.

내가 너를 보고 있다는 걸 너는 알았을까? 그래서 너는 그렇게 나를 스쳐지나갔던 걸까? 내가 모르는 어느 순간, 나도 그렇게 너를 스쳐갔던 거니? 그러니, 꼬마야? 너도 나를, 나만을, 몰랐던 건 아니니?

그러나, 정말 다행이다.

너무도 힘들었던 그 일 년을 견디고서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물론 우리의 재회는 순전히 너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처음 내게 왔던 것처럼 너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또 다시 나를 찾아왔지. 어제도 만났던 사람처럼, 겨우 하루 만에 다시 만나는 사람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내가 굳이 그 돌발적이었던 잠적에 대해서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아도 되게끔 말이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참 고마웠다. 그리고 이렇게 뒤늦게 나는 그때의 내 심정을 네게 알리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그래도 되겠지. 그래야 할 때가 온 거겠지.

나랑 똑같은 대학 1학년 학생이 된 너. 너는 조금 변했더구나. 커다란 귀걸이를 하기도 하고, 매니큐어를 바르기도 하고, 찢어진 청바지나 정장을 입기도 했지. 내 생일인데 내 선물은 안 사오고 우리 엄마 갖다 주라며 붉디붉은 칸나 한 다발을 사오기도 했지. 그리고 예전과 달리 너는 나에게 가끔씩 편지를 쓰기도 했다. 살면서 되도록 흔적을 남기지 않겠다던 네가, 그러려면 편지 같은 건 쓰면 안 된다고 말하던 네가, 말이다. 예측할 수 없는 어느 날인가 과사무실에 도착해 있던 너의 편지. 첫 번째 편지, 두 번째 편지…… 그렇게 순서가 매겨져 있던 너의 편지. 그걸 받은 날이면 마치 복권에 당첨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지. 무슨 편지를 너는 논문처럼 쓰냐고 핀잔을 준 적도 있었지만 사실 그건 어디까지나 장난이었어, 꼬마야. 기쁘기 짝이 없던 내 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던 거라고. 편지를 볼 때마다 나는 매번 놀랬어. 이 쬐그만 꼬마 녀석이 어떻게 이런 심오한 생각을 하는 것일까 하고. 그래서 솔직히 기가 죽은 적도 있다. 내가 답장을 한 번도 못 썼던 것은 그래서였다. 나의 밑바닥이 드러날까봐 심히 걱정이 되었다 그 말이다. 그러니까 네가 편지를 쓴 건 잘못한 거다, 꼬마야. 알았냐? 잘못을 깨달았는지 어느 날부턴가 너는 편지를 쓰지 않더군. 물론, 농담이다. 한 통의 답장도 쓰지 않는 나, 편지를 받고도 논문 썼냐고 놀리기만 하던 나에게 너는 지쳤겠지. 그래서 더 이상 편지를 쓰지 않았겠지. 맞냐? 어쨌거나 너의 편지는 일곱 번째 편지, 그게 마지막이었다.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후로 나의 복권은 언제나 꽝!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그 무렵의 너는 또 어땠더라? 그래, 그렇다. 너는 예전과 달리 농담도 잘 했다. 해 질 무렵의 카페나 술집, 그곳의 유리벽 너머로 거리를 내다보며 몰래 카메라를 보는 것 같다고 재미있어 하던 너. 끝없이 재잘재잘 떠들어대던 너. 이 촐싹아! 그때의 너를 나는 그렇게 불렀었지. 놀리듯이 촐싹이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나는 그렇게 재잘거리는 네가, 내 앞에 있는 네가, 보기 좋았다.

참, 말문이 막혔을 때의 너의 버릇도 생각난다.

뭔가 할 말을 찾지 못했을 때 너는 난데없이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려 보이곤 했지. 씨익 웃으면서 말이야. 언젠가는 전공 기초 수업 시간에도 그랬다지. 교수님이 어려운 질문을 던졌고 난감해진 너는 그 교수를 향해서 무의식중에 브이를 그려 보였다며? 흐흐흐, 못 말린다. 못 말려. 아무튼 나도 너의 그 브이에 전염이 되어서 한동안 여러 사람 황당하게 만들고 다녔다. 술 좀 작작 마시고 다니라는 잔소리를 듣고도 브이, 그놈의 머리를 안 자르려면 이걸로 묶고 다니라고 엄마가 유치찬란한 고무줄을 내밀었을 때도(나는 그때 머리를 기르고 다녔지. 네가 좋아했던 어느 록커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그가 마음에 안 들었지만 네가 좋다니까 그의 머리 모양을 따라했던 거야) 브이, 택시비가 모자라도 브이, 독감에 걸려 주사를 맞으면서도 브이. 브이, 브이, 브이…… 내 한 시절의, 이니셜.

너는 딴청부리는 데도 선수였다. 내가 손 좀 내밀어보라고 하면 너는 항상 이랬지. 손바닥, 아님 손등? 어떤 거? 그래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곤 했어. 내가 손잡고 싶어한다는 걸 정말 몰랐던 건 아니겠지, 이 꼬마 악당아! 나는 손바닥이나 손등 중의 하나가 아니라 너의 손 전체를 원했다. 내 심정을 몰라주는, 혹은 모른 척 하는 네가 그때는 진짜 야속했다. 순전히 나의 오해였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지만 암튼 그땐 그랬다.

그리고 또 있다. 너와 나의 첫 입맞춤.

네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서 처음으로 월급을 받았던 날이었지. 크게 한번 쏘겠다고 쾌활하게 말했던 날이었지. 황혼에서 새벽까지, 우리가 그토록 긴 시간을 함께 있었던 것도 처음인 날이었지. 너의 집으로 가는 길. 마치 정밀한 지도를 제작하기라도 하려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그 길을 몇 번이나 왕복했는지 모른다. 너의 집 앞에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수십 번 반복했어도 나는 너를 들여보내기가 왜 그리 어렵던지.

키 큰 플라타너스 나무가 도열해 있던 그 길, 그리고 그 중에 한 나무, 선택받은 우리의 플라타너스 나무 한 그루. 보름달이 떠올라 너의 이마를 환하게 비추던 깊은 새벽.

키스하고 싶어. 용기를 내어 나는 말했다. 너는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이나 가만히 있었다. 내 말을 듣긴 들은 건지 의심이 갈 정도로 너는 묵묵부답이었다. 한참이나, 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나는 그 시간이 실제로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게는 한없이 길게만 느껴졌다. 우리의 머리 위로 뜬 달에 다녀오고도 충분할 정도로 길고 긴 시간이었다. 한참이나 고개를 숙이고만 있던 너는, 언제나 내 앞에서 조잘조잘 떠들던 네가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던 네가, 아니었다. 해도…… 되겠니? 나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었다. 그제야 너는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나를 쳐다보지는 않았다. 나를 보는 대신에 너는 끝없이 이어진 가로수길, 어둠에 파묻힌 그 길의 끝을 보고 있었다. 우하하하. 네가 사내아이들처럼 위악적인 웃음을 터뜨린 것은 그때였다. 뭐라구요? 키스? 우하하하. 그리고 웃음 뒤에 이어지던 너의 말. 키스가 세상에서 가장 웃기는 단어이기라도 한 것처럼 너는 웃고 또 웃었지.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얼른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단지 불안할 뿐이었다. 그래, 불안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날아다니던 것은 군 입대 영장이었다. 너의 웃음과는 하등 상관없는 영장이 하필이면 그때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너에게 말하지 못했던, 나의 그 오래된 불안이. 그, 그럼, 뽀뽀는 해도 되니? 나는 좀 더듬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진짜로 더듬거렸던가?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이번에도 또 네가 웃어버리면 어떡하나…… 초조했다. 하지만 참 다행이었지. 너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다행이었다. 또 거절당했다면 나는 정말로 빠져나갈 곳이 없었을 테니까. 내 입술은 나비처럼 가볍게 너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의 나비는 순조로운 비행을 할 수가 없었다. 너와 나는 30센티미터 넘게 키 차이가 났었지. 너무나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너의 입술. 게다가 너는 고개까지 숙이고 있었다. 입맞춤을 하겠다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던 너였지만 그러나 너는 나의 나비를 쉬게 할 꽃잎은 여전히 감춰둔 채였다. 나는 또 말해야 했다. 저어, 고개 좀 들어볼래? 그리고서야 우리의 짧은 입맞춤은, 이루어졌다. 어떤 여운이 거기에 남는 것이 두려웠을까? 너는 나를 거기에 두고서 달려갔지. 끝없이 이어진 가로수길, 어둠에 파묻힌 그 길의 끝을 향해. 나는 버림받은 플라타너스 나무처럼 하염없이 그곳에 서 있었다. 너를 따라갈 수도 없었고 그곳을 떠날 수도 없었다. 플라타너스 나무와 함께 그곳에 붙박인 듯이 서서 나무들과 함께 깊은 새벽의 달을 바라볼 뿐이었다. 달은, 보름달. 어느 한 부분도 감추지 않고 투명하게 자신을 몽땅 보여주고 있었지만…… 나는 알 것 같았다. 내가 볼 수 있었던 건 언제나 달의 앞면뿐이었다는 사실을. 달의 뒷면을 나는 영영 볼 수 없으리라는 잔인한 진실을. 그리고 나는 곧 군대에 가게 되었지.

폼 나는 대학에 가고 싶었던 나의 욕망, 군 입대에 대한 두려움, 한때나마 형편없이 나빴던 나의 건강 상태, 너를 그리워하지 않은 척 했던 것……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너에게 감춰왔던 나의 뒷면. 그래, 또 있구나. 언젠가 내가 술을 마시고 술김에 학교에서 인천 바다까지 걸어간 적이 있었다고 했지. 그건 거짓말이었다. 낭만으로 가득 찬 젊은 치기, 뭐 그런 것을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내 마음이 만들어낸, 거짓이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업혀서 집에 들어갔고 잔소리를 들었으며 멀쩡하게 손에 쥐고 있던 안경을 스르르 놓치는 바람에 깨뜨려 먹고 말았다. 그게 진실이다. 그리고, 내 팔목에 그려진 어지러운 상처 자국. 어쩌다 싸움이 붙었고 그 와중에 팔로 유리창을 관통하다가 생긴 상처라고 그랬었지? 역시나 진실이 아니구나. 나는 중학생 시절에 이웃집에 사는 여자아이를 다치게 한 적이 있었다. 장난을 친답시고 3층 베란다에 서 있던 그 애를 밀어서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 애는 평생 다리를…… 절게 되었다. 나는, 나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애를…… 좋아했었다. 하지만 나는 ‘에드워드 가위손’ 같은 존재였다. 내 손은 가위손, 사랑하는 사람을 만지려고 하면 상처부터 입힐 수밖에 없는. 원망으로 얼룩져 있던 그 애의 눈을 잊을 수가 없구나. 끝까지 나를 용서하지 않았던 그 애의 두 눈을, 잊을 수가, 없구나. 나는 어렸고 어떻게 해야 좋은지 알 수가 없었다. 팔목의 상처는 그 시절에 생긴 것이다. 자학이 아닌 다른 방법을 나는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너에게 나의 어두운 면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나의 꼬마, 너 또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의 앞면 밖에 보지 못했던 거야. 너에 대한 내 사랑이라는 것은 언제나 그렇게 반쪽뿐이었던 거야.

나는 다시 한번 너와의 첫 만남을 떠올린다.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세상의 전부를 가진 것처럼 충만했던 그 날을 기억해본다. 어느 시처럼, 우리가 서로의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우리는 서로에게 꽃이 되었지. 잊을 수 없는 하나의 의미가 되었지. 그러나 또한 나는 반문해본다. 꽃처럼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던 너. 너의 고유한 꽃말은 무엇이었을까? 너의 이름을 알고서 너의 모든 걸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나의 착각이 아니었을까? 내 앞에서 언제나 재잘재잘 떠들던 너. 혹시라도 너는 자신의 뒷면을 감추기 위해서 그렇게 떠들어댄 게 아닐까? 너도 나처럼 반쪽의 사랑을 했던 건 아닐까?

너무나 그리운 그 시절의 꼬마야!

첫 입맞춤 후에 너는 왜 그렇게 성급히 나를 떠나버렸니? 한 여자의 첫 입맞춤. 그 비밀을 나는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지금 내 옆에 있는 그녀와 때때로 키스를 나누지만, 아니 이미 그것은 하나의 일상으로 굳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알 듯 모를 듯 하다. 첫사랑을 이해 못한 사람의 비극이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다. 나의 꼬마, 그 시절의 너를 다시 만난다면 의외로 너무 쉽게 그 비밀을 풀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꿈꾸는 것이다. 이제는 네가 대답할 차례라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건 나의 첫 편지. 7년 만에 처음으로 너에게 보내는 답장이다. 이제 나는 진정 용감한 사람이 되고 싶다. 달의 뒷면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보고 싶다. 첫사랑조차 이해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내가 지금의 그녀를 이해할 수 있겠니?

다시 만나자, 꼬마.

제대로 사랑하자, 우리.



꺼내 읽는 우리들의 손


일요일의 놀이공원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댄다. 롤러코스터 아래에서 첫사랑을 기다리고 있는 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첫사랑의 그녀를 얼른 알아볼 수 있을지 자신이 서지 않는다. 다시 시작하기에는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두려워진다. 그때로부터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변했을 것이다. 최초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 그 사이로 건조한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건널 수 없는 사막이 생겨버린 건 아닐까. 아직 우리에게 늙은 낙타나마 남아 있긴 한 것일까. 

공포의 시간 속으로 한 무리의 손님을 가두어두었던 롤러코스터가 이제 그들을 내려놓고 또 다른 운행을 준비하고 있다. 방금 롤러코스터에서 내린 아이, 이미 세 번씩이나 그것을 탄 아이가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다시 줄을 선다. 내가 처음으로 놀이공원에 왔던 그때, 꼭 그때의 나만한 아이. 첫사랑처럼 부풀어 있던 솜사탕을 어느 틈에 다 해치웠는지 손에는 빈 막대뿐이다. 첫사랑의 흔적…… 그것도 사랑일까.

“꼬마야, 그거 이리 줘라. 형이 버려줄게.”

나는 공연히 아이의 손에 들려 있는 솜사탕 막대에다가 핑계를 붙인다. 그 애의 부모인 듯 싶은 남녀가 그런 나를 의심스런 눈으로 바라본다. 내가 무슨 유괴범이라도 되는 양. 그래도 나는 알고 싶다. 유괴범으로 몰리는 오해를 무릅쓰고서라도, 세상의 모든 오해 속에 갇히게 될지라도 알고 싶은 것이다. 무섭기 짝이 없는 롤러코스터를 이 아이는 어째서 계속 탈 수 있었는지를.

“이게 그렇게 재미있니? 안 무서워?”

“안 무서워. 재밌어.”

아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데?”

“올라갈 때. 기차가 올라갈 때가 제일 신나.”

뜻밖의 얘기다. 롤러코스터가 안겨주는 스릴이 정점을 향해 올라가는 데에 있다고 말하는 아이를 나는 처음 보았던 것이다.

“에이, 거짓말. 꼭대기에서 떨어질 때가 가장 재밌는 거 아니냐?”

“그러니까 아저씨는 바보야. 그치, 엄마?”

대답 대신 아이는 정말로 답답하다는 듯 작디작은 주먹으로 가슴께를 톡톡 쳐가며 제 엄마를 보고 그렇게 말한다. 어른한테 바보라고 말하는 거 아니야. 아이의 엄마는 짐짓 나무라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 나는 꼬마야, 아저씨가 아니라 형이라고…… 그렇게 말하려다 만다. “올라가야 떨어지지, 바보야!”

제 엄마가 주의를 주었건만 그 애는 나를 가리켜 바보라고 부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정말이지 요즘 것들은 맹랑하기 짝이 없다니까! 나는 속으로 부르짖는다. 그런데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는 것 같은 이 기분은 뭐란 말인가.

그렇다, 이 꼬마 녀석아! 나는, 이 아저씨는…… 정말 바보로구나.

롤러코스터가 새로운 운행을 시작하고 있다. 정점을 향해 힘겹게, 힘겹게 올라가는 롤러코스터. 그것을 그저 보고 있을 뿐인데도 나는 직접 타고 있는 것과 다름없는 긴장을 느낀다. 롤러코스터의 정점. 긴장의 극점. 지극히 짧은 한순간. 곧 내리막길이 나타날 테고 우리는 공포에 찬 비명을 질러대겠지. 배추씨보다 작은 판타지 한 알을 바오밥나무처럼 위협적인 공포 식물로 자라나게 하는 허공의 길. 상승과 추락, 환희와 고통, 쾌락과 공포가 그 길에선 언제나 한몸이었다. 위대한 뭔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투신하기 위해 우리는 정점을 열망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추락하고 또 추락하는 것만이 이 생이 우리에게 허락한 유일한 역할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두 번의 만남은 두 번의 이별을, 다섯 번의 만남은 다섯 번의 이별을 의미한다는 걸 알면서도 또 다른 만남을 꿈꾸는 게 아닐까.

롤러코스터는 드디어 560도 회전이라는 가공할 묘기를 선보이며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쾌락인지 공포인지 알 수 없는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롤러코스터의 황홀하고도 무시무시한 공중 곡예를 감상하며 이미 세 번씩이나 그것을 탔던 아이도 덩달아 소리를 질러댄다. 나는 하염없이 그 애를 바라본다. 이 녀석을 나는 처음 보는 것만 같다.

그때, 누군가가 나의 어깨를 툭툭 친다. 나란 존재를 이루고 있는 모든 세포들에게 일일이 모닝콜을 해주고 있는 듯한 이 손놀림. 나는, 이 손을, 기억한다. 군에 입대한 후 이등병 딱지를 달고서 처음 나왔던 휴가. 한없이 외로운 모습으로 서성거리던 기차역. 이렇게 등 뒤에서 나의 어깨를 툭툭 치던 손길이 있었다. 선배, 나예요. 손의 주인이 말했다. 그러나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단지 뒤통수만으로 어떤 존재를 보고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이미 상실해버린 뒤였다. 나는 직접 몸을 돌려 손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밀물처럼…… 한 존재가 내게 들이닥쳤다. 나의 꼬마, 나의 첫사랑. 그녀가 다시 내게로 온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용케 나를 찾아낸 것이다.

“오빠, 놀이공원은 정말 싫다며? 어째 오버하시는 것 같은데…….”

그녀가 말한다. 어제도 만나고 하루 만에 또 다시 만나는 사람처럼. 우리는 정말로 어제도 만났다. 어제 나는 그녀에게 내 생애 첫 러브레터를 주었던 것이다. 그녀, 언젠가부터 나를 오빠라고 부르기 시작한 그녀에게. 만남과 이별을 거듭하며 또 이렇게 새롭게 만나야만 하는 그녀, 나의 꼬마에게.

“나랑 같이 롤러코스터 타보는 게 소원이랬잖아. 오빠가 돼가지고 그런 소원 하나 못 들어주겠냐. 그나저나 넌 어쩜 그렇게 날 잘도 찾냐?”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커서 안 알아보려야 안 알아볼 수가 없다구요. 그러니까 늘 나만 억울하지. 매번 내가 찾은 거 아나 몰라. 명심해. 다음엔 일부러라도 못 알아볼 테니까.”

“설마 그렇게 심한 배신을 때릴까, 꼬마?”

나는 그녀의 볼을 가볍게 꼬집으며 말한다. 꼬마라니, 정말 싫다고 그녀는 투덜댄다. 키 작은 것도 서러운데 꼬마가 뭐야, 고개 좀 들어보래서 내가 얼마나 자존심 상했는지 알아…… 그녀의 투정은 끝없이 이어진다. 미안하다, 꼬마야. 네 허락도 없이 널 꼬마라고 부르면서도 나는 내가 무릎을 꿇고 입맞출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네가 고개를 들어야 한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난 내가 아니라 나의 일부일 뿐이었다. 

“알았어, 알았어. 미안하다, 미안해. 그러니까 그만하고 손 좀 줘보세요.”

 이제는 제법 의뭉하게 굴 줄도 아는 나.

“어떤 거? 손바닥, 아님 손등?”

오래전 나의 꼬마로 시작해 지금은 수경재배 하는 양파처럼 내 컵 속으로 들어온 그녀, 결코 지려 들지 않는다. 무수히 많은 그녀의 겹, 겹, 겹들. 겹과 겹 사이에 놓인 존재의 매운내 때문에 우리는 자주 눈물 흘리게 될지도 모른다. 네가 뿌리내리기엔 내 컵이 너무 작아 결국 내 존재가 깨져버리는 날이 올런 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는 아니? 그 모든 게 다 우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옛날 버릇 또 나오네. 자꾸 이러실 겁니까?”

“내가 뭘? 쑥스러우니까 그러지…….”

그녀는 말끝을 흐린다. 생애 최초로 사랑에 빠진 아이처럼 그녀의 뺨이 복숭아빛으로 물든다. 쑥스럽다니, 먼저 내게 다가오고 나를 잃었을 때마다 또 다시 나를 찾아나선 네가 쑥스럽다니…… 나 만큼이나 바보 같은 너. 그래, 그것도 너다. 너는 무수히 많은 너인 것이다. 나는 이제야 너를 알겠다. 너를 전부 알 수는 없을 거라는 사실도 비로소 인정할 수 있겠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끝이 없을 수 있는 이유, 그것도 알 것 같다. 그토록 많은 너를 다 사랑하려면 이 생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나 짧은가.

나는 너의 손을 꼭 잡는다. 손바닥도 손등도 아닌 너의 전부를.

우리는 롤러코스터를 타기 위해 줄을 선다. 생애 첫 바이킹이 그대로 마지막이 되어버렸던 기억을 삭제하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허공을 걷는다. 《문장 웹진/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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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오

히데오 서장원 히데오에겐 몇 가지 비밀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그의 친부가 일본인이며 그가 어린 시절을 일본 교토에서 보냈다는 것이다. 어느 저녁나절, 한적한 거리를 걷던 중에 히데오는 이 사실을 내게 말해 줬다. 이후 히데오는 어린 시절에 대해 조금씩 더 들려주었고, 나중에 나는 히데오의 생애 초반에 일어난 일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꿸 수 있게 됐다. 히데오가 태어난 곳은 교토 외곽으로, 한국 사람들이 떠올리는 여행지 교토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주택가였다. 히데오는 그곳을 자세하게 기억하지는 못했다. 습한 여름 날씨나 우듬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나무들에 대해 말하면서도 그것이 정말 자기 기억인지 교토에 대해 보고 들은 뒤 상상해 낸 이미지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덧붙이곤 했다. 교토에서 있었던 일 중 히데오가 확실하게 기억하는 건 모두 나쁜 경험이었다. 이를테면 초등학생 시절 책상 가득 자이니치나 조센진, 총 같은 단어가 적혀 있던 풍경이나 동급생 남자애들이 그의 가방을 걷어차며 드리블 시합을 했던 일, 그를 조롱하려고 반 아이들이 케이팝 노래를 개사해 불렀던 일, 그런 사건들. 한번은 같은 반 아이들에게 얻어맞아 코뼈가 부러진 적도 있었다. 그날 저녁에 히데오의 부모는 아들을 위해 나고야로 이주하는 일을 의논했다. 히데오의 아버지는 아들을 불러 앉히고 나고야에서는 어머니가 한국 사람이란 사실을 숨겨야 한다고 경고했다. 히데오는 그 말에 깜짝 놀라서 식탁 앞에 앉아 있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말에 동의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히데오가 아는 한, 히데오의 어머니는 자신이 한국인임을 숨기려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어머니는 눈을 내리깔고 남편도 아들도 바라보지 않았다.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여기서 계속 살 거니까, 그렇게 하기로 하자.” 그날 밤, 히데오는 코의 통증과 식도로 넘어오는 피, 어머니의 고요한 얼굴과 나고야에서 보낼 새로운 나날의 환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만 히데오의 부모는 나고야행을 두고 갈팡질팡했고, 히데오로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 이혼을 결정했다. 이혼 후 히데오의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경기도의 친정으로 돌아갔다. 이후 히데오는 일본인 아버지와 일본에서의 삶을 철저히 숨겼다. 나에게 고백하기 전까지 누구에게도 자신의 첫 번째 이름 히데오를 말해 주지 않았다. 내가 히데오를 처음 본 건 연극원 강의실에서였다. 아직 벚꽃도 피지 않은 3월, 나와 히데오를 포함해 여덟 명의 학생이 강의실에 책상을 둥글게 붙여 앉았다. 그해 연극원에서는 입학이 예정된 학생들을 모아 15분 내외의 단막극, 일명 “짤막극”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신설했다. 입학 전에 그룹별로 모여 공연을 준비하고, 3월 개강과 동시에 연극원 소극장에서 공연을 올리는, 이색적인 신입생 환영회라 할 수 있었다. 학보사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신입생 그룹 중 하나를 인터뷰하기로 결정했는데, 그해 들어 나에게 처음

  • 관리자
  • 2025-06-01
그리고 밤과 가을이

그리고 밤과 가을이 김연수 1 지난여름, 정기에게는 세 가지 고민이 있었다. 하나는 눈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 길을 걸어갈 때면 날벌레들이 달려드는 것 같아 혼자 손사래를 친 적이 여러 번이었다. 기사를 쓰려고 책상 앞에 앉으면 머리 뒤쪽에서 번개 같은 게 번쩍이기도 했다. 노안이 찾아온 건 벌써 몇 년 전의 일이었다. 그때 안과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안경도 새로 맞췄다. 나이가 들면 서서히 시력이 나빠지리라고만 생각했지, 거기에 더해 전에 없던 것들이 보이는 증상까지 생길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런 처지가 되고 보니 책 읽는 일이 힘들어졌다. 평생의 즐거움이었던 독서가 성가신 일이 되면서 생활은 성기어지고 마음은 허술해졌다. 더 오래전, 나이가 들면 활자 같은 건 멀리하고 자연을 벗 삼아 소일하며 세속적 가치관에 물든 마음을 고치리라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은근히 노년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그런 시절은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두 번째는 포항에서 에너지공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딸 민지와의 관계가 점점 멀어진다는 점이었다. 그건 서울과 포항이라는 지리적 거리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작년에 집을 새로 구하면서 민지는 아빠인 정기에게 도와달라고 부탁을 해 왔다. 그 과정에서 이사의 이유가 언제부터인가 짝꿍처럼 붙어 다니던 여자 선배 희선과 같이 살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그는 알게 됐다. 그는 민지와 희선이 단순한 선후배 사이가 아닐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몇 번 딸에게 희선에 대해 물었지만, 민지의 반응은 모호했다. 그러다가 정기는 그 일에 대해 더 묻지 않게 됐다. 한 번은 민지가 “나는 아빠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앞뒤 대화의 맥락으로는 그 일에 대한 답변이 아니었음에도 정기는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질문의 대답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마지막 고민은, 자신이 담당한 부고란에 누구의 죽음을 다룰 것이냐는 점이었다. 최종 후보는 미국의 SF 소설가와 전 여당 대표, 둘 중 하나였다. 아무도 읽지 않는 신문 부고란에 누구를 쓰든 무슨 상관이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기에게는 앞의 두 고민만큼이나 심각한 고민이었다. 앞의 두 고민은 과거의 일에서 비롯된 결과를 수습하는 것이었지만, 세 번째 고민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정기는 생각했다. 과연 소설가냐, 정치인이냐. 정기의 고민은 여름만큼이나 깊어졌다. 2 노트북 화면 너머로 신문사 후배인 은영이 지나가고 있었다. “휴가는 즐거웠어?” 정기가 알은체를 했다. “줄곧 비만 내렸잖아요. 태풍이 온다는데 어떻게 해요?” 잔뜩 낯을 찌푸리며 은영이 말했다. “태풍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으면 가지 말았어야지.” “그런 거 따지고 들면 아무 데도 못 가죠. 태풍 지나갈 때 제주 안 있어 봤죠? 그게 진짜 여름이더라구요. 바람이 몰아치는데, 어휴, 엄청났어요. 그러더니만 휴가 마지막 날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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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날

바람 부는 날 정기현 단지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펜스와 인접한 아파트 건물들은 가로등 불빛을 받아 그 형태를 짐작할 수 있었으나, 단지 안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어둠의 수심이 깊어져 모든 것이 감추어졌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긴긴 태양 볕 아래 그 흉물스러움을 남김없이 드러내던 여름과는 달리, 겨울의 단지는 어딘가 의뭉스러워 보였다. 이야기를 가득 품은 고성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내가 살고 있는 주택 앞,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재건축 단지라는 별칭이 붙은 아파트 단지는 조합원과 건설사 간 충돌로 공사가 중단되어 짓다 만 아파트 건물들이 2년 동안 그대로였다. 1만 5천 가구를 수용할 수 있다며 대대적으로 착공에 들어갔던 대규모 단지는 2차선 통행로를 중심으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문득 그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이번 겨울부터였다. 출근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까지 가려면 펜스가 세워지기 전보다 30분씩은 더 둘러 걸어야 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아직 잠에서 온전히 깨어나지 못한 상태로 정류장까지 걸을 때면 아파트 중앙 통행로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솔바람, 산들바람 아니고 토네이도에 가까운 세기였다. 물론 토네이도를 직접 겪어 본 적은 없지만···. 사람 하나는 거뜬히 날려 버릴 듯 기세 좋은 바람이었다. 단지 바깥은 바람 한 점 없이 잠잠했으므로, 이는 분명 바람길을 잘못 낸 시공 탓에 불어 대는 건물풍일 터였다. 거센 바람에 펜스가 흔들리며 콰챵- 하는 소리를 낼 때면 살을 에는 새벽녘 추위도 어쩐지 더욱 견디기 어려워져 굳게 잠긴 펜스를 원망하게 되었다. 자물쇠를 열고 단지 가운데 통행로로 다닐 수 있다면 그 끝의 버스 정류장에 금세 도달할 텐데. 아침마다 30분씩은 더 자고 나올 수도 있을 텐데. 내게는 바람쯤이야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다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는 문제였다. 한파 특보 경보 문자가 알람보다도 일찍 울려 잠을 깨웠던 날, 나는 빌라 현관을 벗어나 오른쪽 인도로 걷는 대신 길 건너 펜스 쪽으로 향했다. 펜스 출입구에는 주먹만 한 자물쇠가 굳게 걸려 있었다. 화풀이라도 하듯 자물쇠를 세게 두 번 당겨 보았는데 그것만으로도 자물쇠가 훌렁 풀려 버렸다. 펜스 안쪽으로 손을 쏙 넣어 자물쇠가 걸려 있던 걸쇠를 풀고 출입문을 열자 눈앞에 펼쳐진, 소리로만 접하던 바람의 길. 이용자가 나 혼자뿐이라 길은 실제 너비보다도 광활해 보였다. 건축 자재들, 내부 설비들이 군데군데 널브러져 있었고 고목처럼 주차되어 있는 승합차도 몇 보였다. 길 가장자리에도 단지로의 진입을 막는 펜스가 설치되어 있어 잠시 길과 나뿐인 세계에 진입한 것만 같았다. 통행로는 야트막한 고갯길이었다. 바람은 듣던 대로 거세었다. 나는 두 손으로 외투를 꼭 여민 채 거센 바람에 맞서 걸었다. 두 발이 동시에 떨어지는 순간 바람에 휘말려 공중으로 붕 떠오를 것 같아 한 발이 떨어지면 다른 한 발은 땅에 꼭 붙어 있도록 의식하며 걸어야 했다. 고갯길의 고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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