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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그림 엄마

  • 작성일 2010-09-26


물그림 엄마

한지혜

 
 


엄마는 극장에서 죽었다. 객석에 앉은 채로 발견되었다. 영화를 보다가 지루했는지 재미있었는지 웃었는지 울었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호흡이 멎었다. 그 날 상영된 영화는 <안개 속의 풍경>이었다. 예술영화였고 관객이 많지 않았다. 엄마가 앉은 자리는 스크린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맨 앞자리였다. 굳이 그 자리에 앉기 위해 엄마에게 일어나 달라고 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므로 엄마가 언제 그 자리에 앉았고, 언제 죽었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엄마가 영화를 보기는 했을까. 그 날 상영된 영화는 엄마가 절대 보지 않을 영화도 아니었지만, 엄마가 일부러 볼 만한 영화도 아니었다. 때문에 장례를 치르는 동안 엄마의 동료들은 엄마가 영화를 보다 죽었는지 아무도 몰래 쉬기 위해 잠시 객석에 앉았다가 죽었는지 여부를 놓고 팽팽하게 맞섰다. 엄마는 그 극장의 청소부였다.
논쟁을 종식시킨 건 나였다. 나는 팽팽한 이견 가운데에 뛰어들어 엄마는 영화를 본 것도 아니고, 쉬고 있던 것도 아니며 단지 결코 이루지 못했던 자신의 꿈을, 자신의 생을 통해 완성시키기 위하여 일부러 미학적 완결을 택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다소 어렵게 말했지만 내 주장의 요지는 간단했다. 배우를 꿈꾸던 엄마가 배우가 되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하여 일부러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죽음을 택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설명하려면 엄마의 꿈이 뭐였는지를 사람들에게 공개해야 하는데, 그건 아무래도 엄마가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 꿈이란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부분이 아니던가. 그래서 엄마의 꿈이 뭐였는지에 대한 내용은 빼고 엄마의 죽음을 설명하려다 보니 내가 들어도 모호하고 장황한 진술이 되었다. 
엄마의 동료들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하여 사람들은 내 말을 두고 다시 토론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저렇듯 엉뚱하고 뜬금없는 설명을 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갑자기 어미를 잃은 슬픔에 겨워 딸아이가 잠시 실성한 것 같다는 쪽과 배운 사람들의 말은 원래 어려운 법이라며 내 말을 이해한 척하는 쪽으로 나뉘었다. 그들의 새로운 논쟁은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나도 더 이상은 끼어들지 않았다.
 


*

엄마의 꿈은 배우였다. 영화배우도 좋고, 연극배우도 좋고 철마다 옷을 갈아입듯 그렇게 다른 인생을 살아 보고 싶다고 했다. 한 가지 인생을 사는 일은 너무 지루한 일이라며 엄마는 종종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엄마가 파란만장한 삶을 원했던 건 아니다. 엄마가 해 보고 싶은 역은 로맨스와 멜로 그러니까 대략 신파로 묶을 수 있는 장르의 주인공이었다. 엄마가 원한 건 결국 연애였던 것이다. 외모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엄마의 취향은 상당히 소녀스러웠다. 외모만 놓고 보자면 영화든 연극이든 로맨스든 멜로든 엄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엄마에게 말한 적은 없다.
서로의 취향에 대해 절대 간섭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건 엄마와 나 사이에 존재한 일종의 불문율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만 엄마의 취향을 경박하다고 생각했다. 비웃음이나 업신여김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어떤 안도감에 가까웠다. 상대의 취향이 내가 배우거나 따라하고 싶은 수준의 고급 취향이 아니라는 사실은, 반드시 당신을 상대하지는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고, 동시에 적당한 무관심과 거리두기에 대한 좋은 핑계이자 변명이자 구실이 되었다.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속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것이 엄마와 내가 평생을 함께 살면서 한 번도 싸우지 않은 비결이라면 비결이었다.
그런 식의 경계와 거리두기가 관계에 평화를 준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 사람은 엄마의 애인이자 나의 아빠인 남자다. 엄마와 내가 허물고 싶었던 유일한 경계이기도 하다. 정확하게는 그 남자의 호적이 한때 우리의 목표였다. 엄마와 나는 그야말로 손에 손을 맞잡고 어떻게든 남자의 호적 안으로 들어가 보려 쓸 수 있는 모든 애를 썼다. 사랑도, 애정도, 관심도, 상속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단지 호적만을 원한다고. 호적에만 넣어 주면 그 다음에는 당신이 어디에 가서 누구랑 무얼 하며 어떻게 살든지 상관없다고 했다. 그러나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에게는 그저 호적이었지만, 남자에게는 호적이 사랑과 애정과 관심과 상속 그 모든 것의 대명사였다.
남자에게 호적이 그런 의미라는 걸 엄마와 나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알았다면 노력하지 않았을까. 아니다. 알았어도 들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 남자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엄마와 나 둘만으로 이어진 세계는 어딘가 불안정했다. 삼각형의 한 귀퉁이를 잃어버린 것처럼 짝이 맞지 않았다. 우리를 균형 있게 잡아 줄 공통점으로 연결된 또 하나의 귀퉁이가 필요했다. 우리는 그 귀퉁이를 당연히 엄마의 애인이자 나의 아빠인 남자라고 생각했다. 호적은 그래서 생각났다. 우리는, 우리를 완성시켜 줄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두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증명 때문에 우리는 꼭짓점 하나를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 버림받지 않고, 헤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넘보지 말아야 할 각자의 세계 혹은 구역이 있다는 걸 배우고서야 말이다.
경계를 넘으려다 결국 버림받게 된 과정은 치사함의 연속이었지만 남은 게 아주 없지는 않았다. 호적이라는 고지를 정복하기 위해 싸우는 동안 엄마와 나는 그토록 바라던 평화와 안정 대신 전우애를 얻었다. 함께 싸우고 함께 패배한 자의 쓰라린 연대라고나 할까. 엄마와 나는 세상 유일한 가족이면서 동시에 전우였다. 그리고 꼭짓점을 잃어버린 두 개의 평행선이었다. 엄마와 나는 더 이상 가까워지지 않았지만 더 이상 멀어지지도 않았다.
그런 연유로 엄마가 죽고 장례를 치르면서도 나는 엄마가 결코 내 옆을 아주 떠날 수는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일종의 예감이었는데 틀리지 않았다.
장례를 치르고 일 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엄마가 찾아왔다.
 

*

그 때 나는 생애 첫 비행기를 타고 홍콩으로 가고 있었다. 가을이었는데, 비가 많이 내렸다. 빗물 때문에 활주로가 미끄러워 착륙이 여의치 않다고 했다. 승무원들의 굳은 표정이 조종석의 긴장감을 고스란히 전해 주었다. 덜컹, 비행기가 한번 흔들릴 때마다 손잡이를 잡은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얼마나 긴장했던지 캐리어를 끌고 비행기 출입문을 빠져나오는데 등이 다 아팠다. 아프다 못해 뭔가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느낌 같기도 했다.
그 느낌 때문에 나는 게이트를 빠져나오다 말고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커다란 창유리 밖에 우리가 방금 타고 내린 비행기가 서 있었다. 그 뒤로 긴 활주로가 비에 젖은 그림자처럼 누워 있었다. 겨우 빠져나온 위험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것도 본능일까. 죄를 지은 사람만 현장에 다시 가는 건 아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람도 자신이 빠졌던 구덩이를 반드시 한 번은 돌아보게 된다. 소금 기둥이 되건 모래 기둥이 되건 말이다. 그 날 나는 소금 기둥이 되지는 않았지만, 대신 어둠과 더불어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눈처럼 하얗고 안개처럼 희붐한 형체 하나를 보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없었는데, 창에 이마를 대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엄마였다. 찰랑찰랑 젖은 활주로에 서서 엄마가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선뜻하기는 했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무섭다기보다는 좀 뭉클했는데, 엉뚱한 장소에서 옛 사랑을 만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다시 만나리라 예상은 했지만 이런 방식일 줄은 몰랐다. 공항이라니. 활주로라니. 그 곳도 먼 이국이라니. 의외의 장소였다. 통유리에 이마를 대고 나는 한참 동안 엄마를 들여다보았다. 그 모습이 이상해 보였던지 지나가던 안내요원이 다가와 무슨 일인지 물었다. 나는 비 구경을 하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비 구경은 밖에 나가면 훨씬 잘 할 수 있다며 입국 수속하는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미심쩍은 눈길이기는 했지만 내가 순순히 따라나서자 더 이상 다른 질문은 하지는 않았다.
엄마를 다시 만난 건 그날 밤 호텔에서였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더니 엄마가 침대에 앉아 TV 리모컨을 들고 이리저리 채널을 맞추고 있었다. 어제 만나고 오늘 또 만난 사람처럼, 살았을 때 엄마에게 늘 하던 것처럼 나는 퉁명스럽게 말을 건넸다. 
한국에서 죽은 사람이 왜 홍콩에서 헤매.
헤매긴 너 따라왔지.
염라대왕이 나도 데려오래?
저승사자 놔두고 그 일을 왜 내가 하누.
그럼 왜 따라왔어.
너 보러 안 왔다.
나 아니면 누구?
대답 대신 엄마가 물었다.
극장에는 안 가냐? 
극장?
응. 극장 가고 싶다.
뭐 하러?
주윤발 보러.
주. 윤. 발?
그래 여기에 산다더니 TV에도 안 나온다. 혹 집은 아니? 온 김에 실물이나 보고 갈까.
지금은 미국에 살걸. 할리우드.
안타까운 듯 엄마가 입맛을 다셨다.
대신 그쪽에는 장국영이 살잖아. 장국영도 못 봤어?
사내가 사내다워야지. 장국영이는 계집 관상이라 싫다.
아이처럼 입을 삐죽 내미는 습관도 여전했다. 피식, 웃어 주려고 했는데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실은 마음 한쪽이 아릿했다. 하마터면 주윤발을 보고 싶은 게 아니라 아빠가 보고 싶었던 건 아니냐고 물을 뻔했다. 난 잘 모르겠는데, 엄마는 아빠가 주윤발을 닮았다고 했다. 아니다, 아빠가 먼저 태어났으니 주윤발이 아빠를 닮은 거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엄마의 장례식 때 아빠를 부르지 않았다. 연락처도 몰랐지만, 연락해야 할 명단을 작성하면서 단 한순간도 아빠를 떠올리지 않았다. 아빠라는 존재는 내게 흔적도 없이 지워진 지 오래였다. 마지막 가는 길에 적어도 둘 중 한 사람은 상대에게 안녕을 고하고 싶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자체를 해 보지 않았다. 내가 아빠를 부르지 않아서 서운했던 걸까. 엄마는.
극장에 가고 싶다고 했지만 우리는 극장에 가지 않았다. 대신 거리를 돌아다녔다. 거의 대부분이 영화 속에 등장한 배경이었다. 극장에 간 거나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귀신인데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움직이지 않고 자박자박 나와 함께 움직였다.
도착한 날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우리가 떠날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야시장도 열리지 않았고, 한참 헤맨 끝에 겨우 올라간 빅토리아 피크에서는 야경이 보이지 않았다. <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이 말한 버리기 아까운 야경은 상상으로나 그려야 했다. 그래도 우리는 끝없이 비슷한 골목과 그 골목이 나오는 영화들을 떠올렸다. 엄마는 생각보다 많은 영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정보의 양도 질도 엄마가 나보다 훨씬 수준이 높았다. 한번은 침사추이 근방의 복잡한 골목을 걷다가 문득 엄마가 물었다.
홍콩에는 정말 킬러가 살고 있을까.
글쎄,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대답했다.
홍콩에는 정말 귀신이 살고 있지.
재미있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엄마는 소녀처럼 깔깔깔 하늘을 보며 웃었다.
 


*

엄마의 인생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극장전이다. 태어나자마자 극장에 버려졌고, 극장에서 만난 남자와 눈이 맞아 나를 가졌으며, 남자에게 버림받은 후 극장에서 청소를 하는 일로 연명하며 나를 키웠다. 극장에서 나를 낳지 않았던 것이 유일한 예외였다고나 할까.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엄마는 극장에서 배웠다. 그런 면에서 그 시절 유행하던 영화가 하필 신파였던 건 엄마에게 있어 가장 큰 불운이었다. 친구 따라 강남은 가도, 영화 따라 연애는 하면 안 된다는 걸 엄마는 몰랐다. 그저 처음에는 모든 게 영화 같았고, 그래서 황홀하기만 했다.
선글라스에 바바리코트를 입고 일 주일에 한 번 극장에 오던 남자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엄마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처음에는 미혼이라고 했다. 이내 유부남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넘지 말아야 할 선 같은 건 이미 없었다. 그래서 엄마는 그가 유부남임을 알게 된 이후에도 여전히 함께 여관에 갔고, 여관비가 모자라면 엄마가 살던 방에도 갔고, 그러다 보니 아이를 가졌고, 그러고 나자 남자가 조금 시간을 갖자고 했다.
그 시간이 이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라고 믿었던 엄마는 남은 운명의 수레바퀴를 혼자서 계속 돌렸다. 진통이 찾아온 순간에 걸었던 전화를 남자는 받지 않았지만, 엄마는 그 것조차 죽어라고 이혼해 주지 않는 남자의 아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혼자 분만대에 누워 엄마는 오래 전에 버려진 사람이 남자의 아내가 아니라 자신임을 애써 부인하며, 오직 남자에게서 질긴 아내를 떼어 놓는 심정으로, 머릿속으로는 이미 몇 천 번도 더 잡아 보았던 그녀의 머리끄덩이를 쥐어뜯는 상상을 하며 아랫도리에 힘을 주었다. 그 힘이 어찌나 셌던지 서너 번 끙, 하고 나니 내가 나왔다고 했다. 4킬로의 우량아를 세 번 만에 쑥 낳을 정도로 힘껏 머리끄덩이를 잡았는데도, 여전히 그 마누라는 남편을 놓지 않았다.
홀로 아이를 낳고 나서야 엄마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영화적 공식대로라면 이제 남자의 재벌 부모가 아이를 빼앗으러 오거나 자신에게 불치병이 생기거나 그런 처지를 동정한 또 다른 남자가 나타나야 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남자는 오지 않았고, 또 다른 남자는 더더욱 오지 않았으며 엄마에게 생긴 병은 수유와 우울로 인한 폭식이 가져온 비만뿐이었다.
엄마가 극장에서 일했으니 나도 극장에서 자랐다. 극장 관리인은 질색을 했지만, 워낙 숨어서 노는 요령이 좋았던 탓에 나중에는 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다. 어떤 날은 내가 뒤에 앉아 있는데도 모르고 아이 없이 출근하니 좀 좋으냐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마주치지 말아야 할 몇몇 사람만 피하면 됐다. 화장실에 숨어 있기도 하고, 아무도 없는 계단에서 공기놀이도 하고, 매점에서 팝콘을 얻어먹기도 했다.
상영이 끝나고 엄마가 객석 청소를 하러 들어가면 나도 따라 들어갔다. 영화마다 부모의 반대에 부딪친 청춘들이 걸핏하면 불치병에 걸리던 시절이라 객석을 치우다 보면 한 줄에 하나쯤은 손수건이 떨어져 있었다. 색깔도 무늬도 다양한 그야말로 형형색색의 손수건들이었다. 처음에는 분실물 습득함에 넣어 두었지만, 손수건 따위를 찾으러 다시 오는 사람은 없었다. 일 주일이 지나도 찾는 사람이 없는 손수건은 우리 차지였다. 엄마는 손수건으로 본을 뜨고 솜을 넣어 인형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인형을 위한 옷도 스카프도 머리띠도 심지어 이불마저도 모두 손수건으로 만들었다.
드문 일이지만 어린이용 영화를 하는 날도 있었다. <콩쥐팥쥐> 같은 고전물을 각색한 애니메이션이나 <해돌이 대모험>처럼 목적이 뚜렷한 반공영화가 대부분이었지만, 드물게 순수창작영화도 있었다. 어린이용 영화가 걸리면 돌아다니지 않고 하루 종일 빈 객석에 숨어 영화를 보았다. 고만고만한 아이들 틈이라 가장 안전했기 때문이다. 막상 영화는 썩 재미있지 않았다.
그래도 <뽀빠이와 토순이의 세계일주>는 잊을 수가 없다. 뽀빠이 이상용과 꽃처럼 어여쁘던 어린 시절의 윤유선, 윤유선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을 잘생긴 남자아이가 출연하는 영화였다. 좌충우돌 세계 여행기였는데, 그 시절의 영화가 그러하듯 낯선 환경을 대한의 기개로 씩씩하게 이겨 나가는 내용이었다. 세부적인 영화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처음으로 해 보는 세상 구경이었다. 그 때까지 내가 알고 있는 미지의 세계란 <걸리버여행기>나 <15소년 표류기>에 등장하는 세계가 거의 전부였다. <뽀빠이와 토순이의 세계일주>를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보면서 나는 비로소 바깥세상에 거인이나 난쟁이 혹은 해적만 사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배를 타고 나간다고 해서 무조건 무인도에 도착하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일인데, 그 때는 신기했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장면은 영화의 엔딩이다. 세계를 한 바퀴 돌고 무사히 돌아온 세 사람이 오랜만에 한국 음식을 먹는 장면이었다. 이국의 풍경과 이국의 사람들에게는 대담했지만 낯선 음식까지는 공략하지 못한 그들. 역시 우리 입에는 우리 음식 뭐 이런 대사를 주고받으며 수북하게 쌓인 음식을 무서운 속도로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냉면 대접이었는지 커다란 접시였는지 음식을 담은 그릇이 빠른 속도로 쌓였다. 나는 그 무한한 식사가 부러웠다. 배를 곯은 적도 없는데 허기가 지던 시절이었다. 여행이란 돌아와서 풍성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거구나 싶었다. 그 때부터 내 꿈은 세계일주였다.
그런데 나는 세계일주가 일주일 동안 세계를 여행한다는 뜻인 줄 알았다. 세계라는 곳이 딱 그 정도의 크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 주일 정도만 돌면 전 세계 어린이를 다 만날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나중에 <8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책 제목을 보고서 대체 돌아다니며 뭘 했기에 세계를 한 바퀴 도는 데 80일씩이나 걸리나 조금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내가 극장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사이 엄마는 나와 함께 아빠의 호적에 들어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우연한 재회를 가장해 다시 연애를 하던 모양이었다. 엄마는 여전히 아빠가 그의 아내와 마지못해 살고 있다고 믿었다. 이제 나까지 있으니 조금 더 강하게 아빠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엄마는 나에게 도움을 구했다. 무슨 내용인지 이해할 수도 없는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며, 내가 해야 할 역할과 대사를 설명했다. 몇 번의 연습을 거치고 난 후 나는 레이스가 주렁주렁 달린 하얀 원피스에 커다란 핑크색 리본 머리띠를 하고 아빠를 만나러 갔다. 아빠는 나를 보자마자 눈이 번쩍 뜨이는 모양이었다. 머리꼭지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훑어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출발 신호였다. 뒤로 달려! 외친 사람도 없는데 아빠는 바로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았다. 뿐만 아니라 내 얼굴에 아빠 닮은 흔적이 하나도 없으니 누구 애인지 알 수도 없다는 말로 엄마를 거품 물게 했다.
엄마는 분도 나고 억울함도 풀기 위해 시위성 동반자살을 계획했다. 아빠에게 보낼 유서도 준비했다. 잘못했노라 참회하며 모녀를 잡으러 등장하는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유서에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죽을 건지 구체적인 장소와 날짜를 적을 까닭이 없다.  마지막 미련이고, 마지막 환상이었다.
그런데 유서를 우체통에 넣으려는 순간 엄마는 선글라스에 바바리코트를 입고 담배인지 이쑤시개인지를 입에 질끈 물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너무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유서를 떨어뜨릴 뻔했다. 선글라스 너머로 그 남자가 가만히 엄마를 들여다보았다. 우체통 옆 포스터 속이었다. 주윤발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 극장에서 엄마에게 처음으로 데이트 신청을 했던 남자의 얼굴이었다. 엄마는 벽에 붙은 해진 포스터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쓰다듬은 건 포스터인데, 지나온 많은 세월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더라고 했다. 모든 것이 끝났구나 비로소 실감을 했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물에 빠져 죽는 대신 마지막으로 아빠를 만나기로 했다. 아빠는 태릉 근처에서 갈빗집을 한다고 했다. 주소는 알고 있었지만 가 본 적은 없었다. 사장이라더니 카운터가 아니라 뒷마당에 앉아 있었다. 여러 개의 화덕에 숯을 넣고 불을 피우는 중이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바바리코트를 날리던 우수 어린 세월은 간 데 없고, 입으로 후후 센 바람 불어 번개탄을 피우느라 처덕처덕 탄가루를 얼굴에 묻힌 아빠는 그저 초로의 사내였다.
우리가 식당에 들어서자 그는 얼굴에 검댕이 묻은 줄도 모르고 그저 놀라 눈만 끔벅거렸다. 엄마는 정중앙에 있는 가장 넓은 테이블에 그 집에서 제일 비싼 고기를 시켰다. 아빠는 숯불을 가져와 테이블에 있는 화덕에 넣었다. 엄마는 아빠가 피워 온 숯불에 양념 가득 묻은 고기를 지글지글 구워서 나에게도 먹이고 엄마도 먹었다. 헛배 부르면 안 된다며 다른 밑반찬은 먹지도 못하게 했다. 밑반찬 따위 먹을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맛있는 고기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노릇노릇 달콤한 고기가 입에 닿기도 전에 스르르 녹았다. 세계를 한 바퀴 돌고 나서 먹는 만찬이 이보다 황홀할까. 우적우적 날름날름 제비새끼처럼 나는 쉬지도 않고 고기를 받아먹었다.
사정 모르는 식당 안주인, 그러니까 아빠의 아내는 우리가 고기를 더 주문할 때마다 아빠에게 부지런히 판을 갈게 했다. 서비스라며 직접 이것저것 가져다 주기도 했다. 아빠는 손을 덜덜덜 떨며 석쇠를 바꾸면서도 끝내 우리를 모른 척했다. 저 따위 때문에 내가 죽겠는가, 고작 저 인생 때문에 이 어린 목숨을 버리겠는가, 목구멍까지 차오르게 고기를 구워먹은 후 엄마는 손수건으로 코를 팽 풀어 손수건마저 식당에 버리고 왔다. 처음 데이트하던 날 아빠가 흘리고 간 손수건이었다. 
 


*

홍콩에서의 여행 이후 엄마는 내가 극장에 가거나 여행을 떠날 때마다 램프의 요정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나타났다. 일행이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았다. 언제 엄마가 나타날지 몰라 점차 혼자만의 일정을 계획하게 되었다.
살아 있는 엄마와는 한 번도 같이 간 적 없는 여행을 죽은 엄마와는 다니고 또 다녔다. 경주도 가고, 제주도도 가고, 필리핀도 가고, 태국도 갔다. 여행지에서 마음에 드는 극장을 발견하면 반드시 들렀다. 무슨 영화를 하든, 무슨 공연을 하든 상관없었다. 미처 못한 숙제를 벼락치기로 해치우듯 우리는 떠나고 걷고 꿈처럼 아련한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멜로도 보고, 스릴러도 보고, 공포물도 보고, 애니메이션도 보고, 코미디 영화도 봤다. 뮤지컬이나 발레 가끔은 오페라를 보기도 했다. 죽은 엄마는 살았을 때보다 더 생기가 넘쳤다. 게다가 쓸데없는 잔소리와 궁상도 보이지 않았다.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울 수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러다 문득 엄마가 나타나는 횟수가 줄었는데, 내가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아무 때나 불쑥불쑥 나타나던 엄마도 애인과 함께 있을 때면 잘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다 나타났다가도 모르는 사람처럼 멀찍이 떨어져 서 있다가 말 한 마디 건네지 않고 후닥닥 사라졌다. 나는 혹 애인이 엄마의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조심스레 물어 봤더니 별 거 아니라는 듯 이렇게 대답했다.
남녀상열지사에는 끼어드는 게 아니란다. 부모가 됐든, 귀신이 됐든 말이지.
연애가 한결 편해졌다. 여행도 같이 가고 여관에도 다녔다. 피임에는 소홀하지 않았지만 덜컥 아이가 생겼다. 어미 팔자 닮으려고 하느냐 엄마는 화를 냈지만, 내가 만나는 남자는 유부남은 아니었다. 아이가 생겼다고 말하자 잠시 당황하기는 했으나 이내 청혼을 했다. 책임은 질 줄 아는구나 다행이다 말하면서도 엄마는 여전히 불만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러면서 잠깐 내 손을 쓰다듬었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처음으로 엄마가 귀신 같았다.
결혼식장에 온 엄마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건 정말 유감이다. 엄마는 정말 귀신처럼 진한 화장을 하고 나타났다. 게다가 어디서 그런 걸 구했는지 촌스럽고 빳빳하고 진한 색감의 한복도 차려입었다. 귀신이면 귀신답게 그냥 소복이나 입지, 하며 아무도 모르게 면박을 주었을 정도였다. 그래도 엄마가 와 준 게 고맙고 좋기는 했다. 남편이 만세 삼창 복창을 할 때, 나는 엄마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하객들은 내가 울자 부모석 비워 놓고 입장한 신부가 제 처지 비관하여 우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 나를 가여워하며 따라 우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은 그런 이유가 아니었지만, 울기는 엄마도 같이 울었다.
 


*

신혼여행은 그저 그랬다. 미 서부. 샌프란시스코로 들어가 LA 방향으로 이동하는 일정이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과 그랜드캐니언, 라스베이거스의 호텔과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돌아보기로 했다. 렌터카로 알아서 이동하는 자유여행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렌터카 회사에서는 우리가 예약했던 차가 없었다. 대신 그들은 중형 일제차를 권했다. 이왕이면 벤츠나 BMW를 내 주지. 나는 작게 투덜거렸지만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차를 받았다. 운전은 그의 몫이었다. 나는 면허가 없었고, 있다 한들 운전을 할 수 있는 컨디션은 아니었다.
10월의 샌프란시스코는 추웠고, 요세미티에서는 급기야 눈이 왔다. 그랜드캐니언의 일출은 아름다웠지만, 해가 완전히 뜬 후 다시 보니 그저 똑같은 풍경의 바다일 뿐이었다. 곳곳에 설치된 전망대 어디를 보든 비슷비슷한 변주곡이었다. 이동하면서 머문 숙소들도 비슷비슷한 모형틀로 한꺼번에 찍어낸 것처럼 엇비슷했다.
차에서는 내내 졸았다. 남편은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보조석에 앉아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설핏 보이는 창 밖 풍경으로 시간이나 달려온 길의 거리를 가늠했다.
어느 길이었던가. 몇 번을 자다 깨도 같은 길이었다. 아득한 거리에 누워서 따라오는 산맥의 모양조차 똑같았다. 너무 같아서 취하거나 홀린 기분이었다. 몇 분을 달렸는지 혹은 몇 시간을 달렸는지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한순간 몸 안에서 뭔가 움직였다. 뭐랄까. 아주 작고 미세한 어떤 파동이었다고나 할까.
만약 말이야.
응?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태동이라는 게, 물방울이 터지는 그런 느낌이라면 말이야.
응.
지금 막 내 뱃속에서 뭔가 터졌어.
펑, 은 아니었지만, 퐁,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래도 박하를 씹은 것처럼 뱃속이 순간 화해졌다. 임신 20주였다. 책에 적혀 있는 것보다 몇 주 늦은 태동이었다. 감격할 정도의 느낌은 아니었지만, 약간은 신기하고 또 조금은 황홀했다. 그 느낌을 최대한 잘 전달하고 싶어 나는 무대에 선 배우처럼 말했다. 지금 막, 다음에 잠깐 쉬었다가 내. 뱃. 속. 에. 서는 숨을 고르듯 천천히 또박또박 그리고 뭔가 터졌어는 탄성처럼 빠르고 짧고 강하게 내뱉었다. 그런데 정작 남편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응. 짧게 대답했던가. 입을 달싹거리는 것 같았는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목소리를 조금 높여 다시 말했다.  
태동이 있다니까. 지금 막 아기가 움직였다고!
어, 그래. 아파? 차 세워 줄까?
느릿느릿 무심한 대답이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눈앞에 휴게소처럼 보이는 오두막이 나타났다. 남편이 그 곳에 차를 세웠다. 차문을 열자 이번에는 뜨거운 열기가 몸에 달라붙었다. 달력은 10월인데, 계절이 겨울로 갔다 여름으로 갔다 저 홀로 널을 뛰었다. 이틀 전에 요세미티를 지나면서 만난 눈보라가 다 허상 같았다.
여긴 덥네.
사막이니까.
그제야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다지 사막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스라한 산을 배경으로 누워 있는 길은 온통 스산하고 마른 땅이었다. 그렇지만 영화나 TV에서 자주 봤던, 행상을 태운 낙타들이 가로질러 갈 것 같은 모래둔덕은 보이지 않았다. 드문드문 모래벌판이 보이고, 시야를 넘어서면 무덤 같은 모래둔덕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눈앞에 펼쳐진 풍경만으로 판단하기에는 사막이라기보다 황무지 같았다.
뭐 좀 마실래?
남편이 물었다. 목이 마르기는 했다. 건식 사우나에 들어온 것처럼 따갑고 메마른 열기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이 손잡이를 당겨 문을 여는 순간 마음이 바뀌었다. 안에 틀어놓은 에어컨 냉기 때문이었다. 잠깐 닿았을 뿐인데도 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과장되게 싫은 내색을 하며 휴게소 문을 닫았다. 남편은 그러는 나를 보고 그저 어깨를 한번 으쓱거릴 뿐이었다.
휴게소 앞에는 작은 넓이의 데크가 있었다.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지만, 더위 때문인지 앉아 있는 사람은 없었다. 현관에서 데크로 이어지는 계단에 안내문이 서 있었다. Death Valley. 우리가 달려온 길의 이름인 모양이었다. 황량한 풍경과 어울리는 이름이기는 했다. 죽음의 계곡에서 생의 첫 발길질을 느끼다니. 어쩐지 쓸쓸했다.
서늘한 실내 대신 햇빛이 달궈 놓은 데크의 나무 의자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나는 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보온병을 꺼내 뚜껑을 열고 뜨거운 물을 따랐다. 뜨거운 햇빛이 정수리를 콕콕 찔러 댔다. 내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물인지 공기를 부유하는 열기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입덧 때문에 차가운 건 전혀 먹을 수 없었다. 한여름에는 40도를 가뿐하게 넘는다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나는 호호 불며 뜨거운 물을 마셨다. 차를 타고 오는 동안 내내 일렁거리던 속이 천천히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조금 있으면 이마저도 결국 토해 내겠지만, 당장은 살 것 같았다. 햇빛 따위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임신을 한 후로 더위를 참지 못하던 체질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마치 아이를 가진 게 아니라 태양을 삼키기라도 한 것처럼 참을 수 있는 건 열기밖에 없었다. 체온도 음식도 뜨거운 건 괜찮은데, 조금이라도 식은 건 죄 비리거나 역하거나 소름이 돋았다.
입덧은 엄마가 살았을 때 이미 예고했다. 집안 내력이라고 했다. 엄마도 나를 가졌을 때 석 달 열흘을 먹은 것도 없이 토하기만 했다고 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떴는데, 잘 차려진 한정식이 먹고 싶으면서 입덧이 끝났다고 했다. 석 달 만에 입덧이 끝나다니 부러웠다. 하기야 책에서도 16주 길어야 18주면 대개의 입덧은 끝난다고 했다. 나는 임신 5개월이 넘어가는 중인데도, 여전히 물도 삼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는 한정식을 먹기는 했을까. 아이 낳고 미역국에 고기 한 번 넣어 보는 게 소원이었다는데, 각종 나물에 생선구이, 전이며 고기가 올라가야 할 한정식을 먹었을 리 없다. 입덧이 끝난 기념으로 한정식이 생각났다 한들 차려먹거나 사 먹을 돈도 없었을 테고, 혹여 돈이 있었다 한들 야윈 몸으로 그 상을 차리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먹었어도 먹지 못했어도 안쓰러운 일이다. 그러하니 부럽다는 말 취소.
남편은 금세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얼음이 가득 든 음료수를 들고 진열된 기념품 사이를 산책하듯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막 한가운데 임신한 아내가 앉아 있다는 생각은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져 있는 사람 같았다.
나는 앞에 있는 의자에 다리를 올리고 비스듬히 누운 자세를 취했다. 아직 배가 나오지 않아 자세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었다. 그 상태로 눈에 초점을 풀고 일부러 멍한 상태로 풍경을 바라보았다. 복사열 때문에 이글거리는 풍경이 물 속에 담가 놓은 것처럼 한층 더 흐려졌다. 아련하기도 하고, 어려서 많이 보던 화질 나쁜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멀리, 아주 멀리는 아니고, 아주 조금 멀리서 하얀 그림자가 부스스 다가왔다. 엄마였다. 세상에나. 무슨 엄마가 딸 신혼여행을 다 따라오나. 어이가 없어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남녀상열지사에는 안 낀다더니.
극장은 안 가냐?
가지.
어디에 있는데?
여기.
나는 다음 행선지인 라스베이거스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지도에 구멍이 뚫리지 않을까 싶을 만큼 힘껏 꾹꾹 누르면서 그렸다.
그래, 그럼 거기까지만 따라가자.
거기까지만?
고개를 들어 엄마를 봤다. 엄마는 나를 외면했다. 처음이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엄마는 늘 내 눈을 보고 말했다. 나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했다. 눈 보고 말해라. 거짓말하는 사람이나 눈 못 보는 거다. 느이 아부지 왜 평생 선글라스 끼고 사나 했더니 그래서 그런 거였다. 눈을 봐라, 말을 할 때는 상대의 눈을 보는 거다. 그런데 엄마가 내 눈을 보지 않았다.
무슨 뜻이야?
평생 너만 따라다니며 살 수는 없지 않니.
살기는. 이미 죽어 놓고.
귀신도 명이 있다.
어디로 가는데?
어디로든.
환생해?
미친. 안한다, 환생.
왜?
살아도 보고, 죽어도 보고, 한 번씩 했으니 됐다.
그럼 어디로 가는데?
나도 모른다.
거짓말.
사람이든 귀신이든 제 갈 길은 결국 모른다.
..................
.......... 나중에 극장에서 보자.
자리에서 일어난 엄마는 다시 햇빛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마치 증발하는 수증기처럼 사라졌다. 그 사이 휴게소 문이 열리면서 찰랑찰랑 얼음을 가득 채운 두 번째 아이스커피를 들고 남편이 나왔다. 그는 내 얼굴을 보더니 우느냐고 물었다. 사막이라더니 모래바람이 부네. 나는 손등으로 눈을 문질렀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슬프지도 않았다. 그저 좀 이상했다. 죽어서 다시 만난 사람과 또 헤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 없었다. 죽은 사람과 만나서 극장에 가고 여행을 다니는 일보다 헤어지는 일이 더 이상했다.
 

*

 
엄마와 헤어진 후 입덧이 더 심해졌다.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들를 수 있는 화장실은 거의 다 들렀다. 빈속에 뜨거운 물만 부어 댔으니 나올 것도 없었다. 위액조차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속은 울렁거리고, 목은 타는 것 같고, 구역질이 쏟아지는데, 허기가 졌다. 다리가 떨려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을 때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설상가상 우리가 라스베이거스에 진입하는 순간 한 방울씩 듣던 비가 폭우로 바뀌기 시작했다. 사막 위에 지어진 도시라 좀체 비를 보기 힘든 곳이라고 했는데, 도로가 물바다로 변해 있었다. 도착한 날 공연을 예약해 둔 터였다. 체크인하고 방에 들어가 누웠더니 공연 시작 시간까지는 30분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몸도 최악으로 치닫고, 도로 사정마저 그렇게 변하자 남편은 극장을 포기하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남편보다 내가 더 간절히 공연을 포기하고 싶었다. 오슬오슬 몸까지 떨리는 중이었다. 오는 길에 엄마를 만나지 않았다면, 극장에서 만나자는 말만 듣지 않았다면, 거기까지만 따라오겠다는 말만 듣지 않았다면 당연히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혼자 첫발을 내딛는 어린아이처럼 힘겹게 그러나 우뚝 서서 기어이 극장이 있는 MGM 호텔로 향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우리가 본 공연은 일종의 서커스 쇼 였다. *KA는 불을 상징한다고 했다. 인디언 원주민의 이야기 같았지만, 태초의 인류에 대한 잠언 같기도 했다. 쫓고 쫓기는 선과 악의 대립인 듯 보이기도 했고, 육체와 정령의 반목 같기도 했다. 이질적인 두 요소는 끝없이 갈등하고, 끝없이 서로를 원했는데, 그리하여 그들이 끝내 돌아섰는지 결국 합쳐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모든 것이 평화롭게 끝났다.
극장 무대가 하늘로 솟구치고 그 높은 하늘 아래에서 슬프기도 하고, 처연하기도 한 인디언 혹은 오래된 정령 같은 무엇이 위태롭게 아래로 떨어질 때 내 뱃속에서도 무언가 아주 작고 미약한 무언가가 움직였다. 작은 물방울처럼 퐁퐁 시작해 북을 두드리듯 둥둥거리는 울림으로 바뀌었다. 안에서 터진 한 방울의 물은 몸 전체를 노곤하게 적시더니 어느 순간 눈 밖으로 흘러 나왔다. 끊이지 않는 한 방울의 물이 줄줄 몸 밖으로 새어 나오면서 문득 파도처럼 일렁거리던 속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배가 고팠다. 미친 듯이 배가 고팠다. 쇠라도 삼킬 것 같은 맹렬한 식욕이었다. 무대 위를 뛰고 구르며 비상하던 배우들은 꽃잎인 듯 낙엽인 듯 떨어지며 비상하더니 이내 사라졌다. 어느 순간 암전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뱃속의 물방울은 북이 되었고, 입덧도 사라졌다.
극장에서 두 번째 태동을 느낀 순간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는데, 그것은 엄마가 사라질 때 펑, 하는 느낌과 처음 태동을 느끼는 순간의 펑, 하는 느낌이 매우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사라지는 모습이 한 방울의 물이 온 우주로 흩어져서 사라지는 모습을 닮았다면 태동은 한 방울의 물이 온 세상을 적시는 그런 느낌이었다. 우리의 삶이란 결국 물방울로 태어나 물방울로 흩어지는 걸까. 하나의 물방울이 다른 물방울을 만나 시내가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되어 흐르다가 다시 저 홀로의 몸으로 구름이 되었다가 누군가는 빗방울이 되고, 누군가는 이슬이 되어 저마다의 땅에 닿듯 그렇게 돌아오고 돌아오는 것일까.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다. 엄마는 극장 밖에도 없었다. 도로가 물로 넘쳐나는 중이었다. 사막에 지어진 도시라 폭우도 물난리도 거의 없던 일이라고 했다. 남편이 차를 가져오는 동안 나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거대한 물 그림을 구경했다. 생각해 보니 죽은 엄마를 처음 만났던 홍콩에서도 이렇게 비가 왔다. 엄마를 만났던 날은 맑은 날보다 비가 오는 날이 더 많았다.
엄마는 왜 오지 않은 걸까. 오기는 왔었던 걸까. 혹 극장을 잘못 찾은 건 아닌지 나는 폭우 속에 잠긴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골목을 뚫어져라 살폈다. 빗물 때문에 밖은 온통 검게 얼룩져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오기는 왔는데, 벌써 다른 세상의 무언가가 되어서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건지도 몰랐다. 이제까지 만난 엄마가 모두 허상 같았다.
뭘 그렇게 유심히 봐?
어느 틈에 차를 가지고 온 남편이 차창을 내리며 물었다.
신기루.
웬 신기루.
사막이잖아.
싱겁긴.
둘러댄 말이지만 뱉고 보니 그럴 듯했다. 사막 위에 쌓아올린 도시이니 어쩌면 도시 자체가 신기루인지도 몰랐다. 남편은 차에서 우산을 가지고 내려 나에게 차 문을 열어 주었다. 엄마는 오지 않고, 엄마 대신 뱃속의 물방울들이 자꾸 터졌다.
나는 물방울처럼 사라진 엄마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무대였다면 꽤 멋진 퇴장이다. 배우를 꿈꿨던 사람다운 미학적 종결이다. 어떤 꿈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내 꿈도 그렇게 될까. 여행 같은 삶이라니 진부하고 고루한 은유였지만, 결국 그렇게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다음 시간을 낯선 세계처럼 살며 늙어갈 것이다. 물방울처럼 한 생명이 태어나고, 물방울처럼 한 삶이 사라지듯 그렇게 생이 흘러갈 것이다.
사막의 물 속으로 남편이 시동을 걸었다.  《문장웹진 10월호》
 
 

* KA는 고대 이집트 종교에서 영(靈)을, 사후의 부활을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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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4

용4 민병훈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면 창문 너머로 은빛 알루미늄 패널들이 보인다.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공사 중이고, 나는 밀리오레 건물 12층에서 그것을 늘 아래로 내려다본다. 직선이 없는 곡선으로만 채워지는 비정형의 패널들을 보며 완성된 모습을 상상한다. 거대한 우주선이 되어 사람들을 싣고 날아가는 게 아닐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얼마 전 일을 그만둔 사람은 유니폼 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은색이 뭐야, 갈치 같잖아. 나는 창밖으로 태양 빛에 반사되는 패널과 거울 속 유니폼을 번갈아 본다. 무전기를 챙겨 탈의실을 나선다. 이어폰을 귀에 꽂자마자 용1이 용14를 찾는 목소리가 들린다. 야, 대답 안 해? 같은 층에 배정받은 용13이 대신 다급하게 대답한다. 배터리 교체 중입니다. 용15부터 용1까지, 수신 상태를 체크하고 현재 위치를 보고한다. 무전을 할 때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내 차례에서 나는 발음을 조금 흘린다. 용5니까. 용5가 될 때까지 삼 년이 조금 넘게 걸렸다. 나는 경륜 경기를 송출하는 브라운관의 전원을 켠다. 희망나눔 전자카드를 손에 쥔 사람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창구와 가까운 자리에 앉기 위해 항상 우리보다 더 일찍 도착해 줄을 선다. 객장에서도 건축 현장이 보인다. 커다란 크레인이 패널을 지붕에 안착시킬 때 금속성의 타격음이 무전기의 노이즈와 함께 겹쳐 들려온다. 용1이 개장, 이라고 소리친다. 또 왔어요. 누군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다. 나는 용9에게 너무 가까이 가지 말라고 말한다. 가면 난리 친다. 멀리 있어. 폐장 직전 큰돈을 걸었다가 잃고는 의자를 던지며 난동을 부린 적이 있다. 그때 나를 포함한 세 명의 보안요원이 그를 엘리베이터로 끌고 갔다. 손발을 움직이지 못하자 내 얼굴에 침을 뱉었다. 나는 볼에서 턱으로 흘러내리는 침을 닦지 않았다. 건물 밖으로 쫓아낼 때까지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팀장은 손수건을 건네며 내게 참을성이 좋다고 말했다. 이런 일은 잘 참아야 돼. 침을 닦자 손수건에서 옅은 술 냄새가 났다. 약 있는지 확인해. 생수통에 소주를 담아 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것을 약이라고 부른다. 식당가에서 밥을 먹다가 가방에서 소주를 꺼내 몰래 컵에 따라 마시는 걸 본 적이 있다. 은갈치 같은 새끼들. 우리를 향해 들으라는 듯이 말하곤 그날은 객장에 오지 않았다. 나는 용9를 불러 그가 앉은자리를 확인하라고 말한다. 노란 걸 마시던데요. 건물 앞에서 아침에 무료로 나눠준 음료일 것이다. 명절을 앞두고 본부에서 직접 기획한 행사였다. 계속 주시하라고 말한 뒤 객장을 천천히 돌아본다. OMR 구매표와 컴퓨터 사인펜을 손에 쥔 사람들이 고개를 젖혀 브라운관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배당판이 움직인다. 단승과 연승, 복승과 쌍승의 배당률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화면에 표시된다. 이번 경기는 쌍승식 역배당에 배당률이 높게 형성된 것 같다. 이제 곧 바닥에는 베팅에 실패한 경주권이 쌓일 것이다

  • 민병훈
  • 202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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