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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인생

  • 작성일 2011-06-30

 

하루의 인생

 

김현영

 

 



 



 

태양이 뚝 떨어졌어요.

그리곤 와장창 깨졌지요.

오늘 아침 나는 분명히 눈을 감고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타는 태양이 보였어요. 눈꺼풀을 덮는 것만으론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세계가 있었던 거예요. 그것도 바로 내 집 천장에 말예요. 눈감았는데도 보이는 강렬한 그 빛을 피하기 위해 나는 잽싸게 오른쪽으로 몸을 돌렸어요. 그와 동시에 태양이 뚝 떨어졌어요. 나의 왼쪽 어깨와 흐트러진 머리칼을 살짝 건드리며.

순간 몸을 돌리지 않았다면 태양은 그대로 내 품에 안겼을 거예요.

나는 그대로 타버렸을 거예요.

곧이어 와장창 소리가 들렸고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내 오른편에서 자고 있던 남편도요. 희끄무레한 독일제 전구가 여전히 천장에 매달려 있더군요. 그이와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불을 밝히지 않았으니 당연히 전구는 버려진 아궁이처럼 차디찼을 테지요. 만져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뭔가 이상했어요. 내가 왜 저 전구를 보고 있어야 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어요. 그건 남편도 마찬가진 것 같았어요. 우리는 멀뚱히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지요.

따지고 보면 겨우 몇 초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그때만큼 서로를 유심히 봤던 적도 없었던 것 같아요. 멀뚱하지만 유심했던 눈빛. 멀뚱한 동시에 유심할 수 있던 시간. 불가능하기에 가능했던 영원. 돌이켜보니 그때가 바로 그런 순간이었어요. 동등하게 우리에게 던져진 어려운 질문 앞에 벌벌 떨면서도 함께였기에 조금은 덜 외로웠던.

그런데 지금은 당신과 함께인데도 너무 외롭네요. 지금 이 문제를 풀기에 당신과 난 좋은 파트너가 아닌 모양이에요. 당신과 난 어쩌다 이렇게 잘못 연결된 것인지요.

잠시 후 방문이 열리고 문틈으로 아이들의 얼굴이 먼저 들어왔어요.

엄마, 무슨 일이야?

푹 잠긴 목소리로 큰애가 물었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왕왕 울음을 터뜨리며 작은애가 침대 쪽으로 달려왔어요.

저리 가. 오지 마. 다쳐.

갑자기 남편이 소리를 질렀어요. 일시정지 버튼이라도 누른 듯 작은애의 움직임이 멈춰졌고 울음 소리가 소거되었지요. 그와 반대로 나의 현실감각은 비로소 플레이되기 시작했어요. 유리파편들로 어질러진 방바닥과 침대 한귀퉁이가 그제야 눈에 들어오더군요. 독일제 전구를 덮고 있던 불투명 유리 전등갓이 산산조각난 것이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전등갓을 고정시키는 나사가 어느 틈에 느슨해졌던 모양이더라고요. 항상 천장에 매달려 있었던 전구가 생뚱맞아 보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어요. 전구를 갈아 끼우는 그 잠깐이 아니고선 목격할 일 없는 전등갓 너머의 세계가 불현듯 내 집 천장에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었으니까요.

자다가 얼굴 위로 형광등 떨어질까 봐 잠도 못 잔다는 미친놈 얘긴 들어 봤어도 진짜로 자는 동안 형광등이 떨어졌단 얘긴 들어 본 적도 없다. 나 원 참.

비교적 크기가 큰 파편부터 치우기 시작하며 남편이 말했어요. 우리를 향해 낙하했던 건 형광등이 아니라 전등갓이었지만 사실 별 차이는 없었죠. 아무런 예고도 전조도 없었던 건 마찬가지니까요. 아, 눈을 감아도 보였던 강렬한 태양이 전조라면 전조였을까요.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몸을 돌려버린 덕분에 아무런 화상도 입지 않았으니까? 0.1초의 시차를 두고 꾸었던, 일종의 예지몽?

헐~.

남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큰애 입에선 그런 말이 튀어나왔어요. 좀 전에 푹 가라앉았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더군요. 다행이었어요. 그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데 필요한 말이 다만 ‘헐’일 뿐이라니 다행이고말고요. 왕왕 울며 이쪽으로 오다가 일시정지 상태로 얼어 있던 작은애도 그제야 큰애 쪽으로 되돌아갔어요. 옳은 플레이였죠. 이건 그애들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 그러니 그애들이 뒤치다꺼리 할 필요도 맘을 다칠 필요도 없는 일. ‘헐’ 하나면 충분한.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내 새끼들.

아직까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고 해서 앞으로도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겠지요. 그렇지 않고서야 그날 아침 난데없이 전등갓이 떨어졌으려고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 번 일어났던 그 일이 또다시 일어나리란 보장도 할 순 없어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기에 오직 단 한 번만 일어나고 마는 건지도 모르지요.

인생을 다 살아 본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별로 없는 듯해요. 인생은 언제나 더 큰 생의 일부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있는데 못 찾는 게 아니라 답이란 애초에 없는 거라면 답을 찾느라 허둥댈 시간에 나는 그냥 살겠어요. 어떤 문제지가 주어져도 이제부터 내가 쓸 답은 ‘헐’ 하나뿐예요. 정말이지 그럴 수 있음 좋겠어요.

그걸 가르쳐주려고 큰애가 내게 왔던가 봐요.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여긴 내가 치울 테니 영은아, 넌 나가서 애들 좀 챙겨 줘라.

남편 말대로 나는 나왔어요. 여섯 시도 안 되었더군요. 보통 여섯 시 반에 하루 일과를 시작하니까 평소보다는 이른 아침이었지요. 그러니 바쁠 건 없었어요. 남편과 같이 치우고 나서 할 일을 해도 충분했지요. 다만 난, 그이가 미안해하는 것 같기에 그곳에서 떠나 줬던 거예요.

어젯밤 우리는 하필이면 침대 발치 쪽에 머리를 두고 잠을 청했어요. 침대 헤드는 당연히 전등과 거리가 먼 쪽의 벽에 닿아 있었죠. 침대가 놓인 방향에 맞춰 몸을 누이고 잤더라면 떨어지는 전등갓을 피하기 위해 내가 굳이 온몸을 돌릴 필요까진 없었을 거예요. 무릎만 살짝 구부려도 됐을 테지요. 하지만 어젯밤 남편은 허리가 아프다고 했어요. 오래도록 한쪽 방향으로만 놓여 있던 스프링 매트리스 때문이었어요. 두어 달에 한 번쯤은 위아래 방향을 바꿔 줘야 매트리스가 그간 견뎌낸 우리의 하중도 골고루 분산됐을 텐데 그러지 못했거든요. 당연히 꺼진 곳이 점점 더 꺼져 갔어요. 매트리스가 태어나던 날의 쾌적한 수평은 사라진 지 오래였어요. 그런 데서 계속 자다 보면 어느 날엔 허리가 아플 수도 있는 일이었지요.

그이는 매트리스의 방향을 바꾸는 대신 그 하룻밤만 우리가 거꾸로 자보자고 했어요. 그이는 혼자서 매트리스를 옮겨야 한다고 생각했나 봐요. 나랑 같이 해도 됐을 텐데 그조차 미안했나 봐요. 혼자 해야 하는데 혼자 할 수 없을 만큼 허리가 아팠던가 봐요. 그이는…… 그런 사람이에요.

남편이 허리 아프다고 말하기 전에는 왜 몰랐을까요. 사물이 균형을 잃으면 몸의 균형도 깨져버린다는 사실을요. 그러니 정말 미안해할 사람은 그이가 아니라 나예요. 예방할 방법을 알고 있었음에도 일이 벌어지기 전에는 예방할 생각 따위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이에게 너무 의존한 탓인지도 모르겠어요. 그이는 그렇거든요. 남들이 못한 일에 대해 자기 자신이라도 했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자책하는. 맞아요. 좋은 사람이죠. 그런 성향에 기대어 사느라 예방주사 같은 거 왜 맞아야 하는지 모르고 살았어요. 당연히 이 세상에 대해서도 내 인생에 대해서도 아무런 면역력이 생기지 않았겠지요. 것도 모르고 내가 타고난 건강 체질인 줄 알았지 뭐예요. 인생이 예기치 않게 가져다주는 질병에 걸릴 사람들은 미리 정해졌다고 착각했지 뭐예요.

당신과 내가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미리 정해진 일은 아닐 겁니다. 당신이 아프다면 아픈 것도요.

인생에서 이미 일어난 일들이 잘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라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은 그 밑에 깔린 자갈길인지도 몰라요. 정말로 미래가 궁금하다면 아직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부터 헤아려야 하는지도. 우리가 가진 게 아니라 갖지 못한 것, 우리가 남에게 준 것이 아니라 주지 않은 것, 우리가 웃었던 시간이 아니라 웃지 않았던 시간…… 그런 것들이 자갈이 되고 쌓이고 쌓여 우리의 미래로 가는 길을 만들어낸 건 아닐까요. 가질 수 없는 하나 때문에 수많은 다른 것들을 소유하게 되고, 절대로 주고 싶지 않은 어떤 것을 지키기 위해 넉넉히 베풀 수도 있었던 건 아닐까요.

그이는 허리가 아픈 적 없었기에 언젠간 허리가 아플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가 한 번도 침대에서 거꾸로 자보지 않았기에 어제만큼은 그럴 수도 있었던 거예요. 전등갓 또한 어느 날 갑자기 추락하기 위해 그동안 추락하지 않았을 테고요. 그러니 누가 누구에게 미안하달 것도 없는 일이지요. 굳이 말하자면 인생이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해야겠지만 어쩌겠어요, 인생이 본래 그렇게 생겨먹은 것을요. 인과관계 없음의 인과관계라고나 할까요.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여보, 당신도 꼭 알아야 해.

오늘 아침에도 난 가마솥에다 밥을 지었어요. 잘 길들여진 4인용 가마솥에다가요. 작년에 생협을 통해 공급받은 것이었지요. 길들이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더군요. 걸핏하면 녹이 났고 그때마다 기름칠을 해 가스불에 굽는 과정을 반복, 또 반복했어요. 덕분에 밥 짓는 일에서조차 매너리즘에 빠질 겨를이 없었죠. 밥을 짓고 솥을 씻고 말리는 모든 순간이 첫 데이트처럼 긴장됐으니까요. 마침내 난 가마솥에 길들여졌어요. 어떻게 해야 그의 생에 녹이 슬지 않는지 터득하게 되었어요. 그러니 내가 가마솥을 길들였다는 말은 곧 내가 그에게 길들여졌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 말. 길들이는 것이야말로 길들여지는 것.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달리느라 가지 못했던 길이 바로 그 아스팔트 도로 밑에 자갈길이 되어 깔려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였나 봐요. 잘나가는 연예인들이 최첨단 신형 전기밥솥을 앞에 두고 밥 한번 먹자거나 집에서 쿠쿠하라고 유혹해도 흔들리지 않았던 것. 홈쇼핑 쇼호스트들이 밥솥보다 더 솔깃한 사은품을 줄줄이 끼워주며 거머쥐라, 소유하라 떠들어대도 귓등으로도 안 들었던 것. 본능적으로 난 알았던 것 같아요. 난 항상 멀고 먼 어떤 날의 밥을 그리워했어요.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립다는 유명한 시가 있지요. 밥이 내겐 꼭 그랬어요. 할머니의 시골 부뚜막에 붙박이가구처럼 걸려 있던 가마솥. 그 밥만이 내겐 정말 밥이었어요. 그러니까 난 오래도록 굶은 셈이었지요. 내 몫의 가마솥을 갖기 전까지는요.

아무튼 나 같은 사람이 꽤 많았나 봐요. 일 년에 두 차례 생협에선 조합원을 대상으로 가마솥을 주문받아 제공하는데요, 선착순으로 정해진 인원 안에 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그러니 난 제법 부지런했다고 할 수 있겠죠. 최소한 가마솥에 대해서 만큼은요. 그만큼 굶주렸단 소릴 수도 있고요. 밥이 남아돌 정도로 넘쳐나는 세상이었지만 그만큼 내게는 밥이 없었으니까요. 이상한 말이지만 정말 그랬어요. 아스팔트 도로가 앞으로 쭉쭉 뻗어 갈수록 그 밑에 자갈길도 함께 연장될 수밖에 없듯이요.

이 이상한 말을 어쩐지 당신은 알아들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내가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항상 굶주려 있었듯 당신도 당신이 알 수 없는 어떤 이유에서 아프다면 아픈 건지도 모르니까요.

할머니의 시골 부뚜막엔 아기들 목욕통만큼이나 커다란 가마솥이 붙박이가구처럼 걸려 있었어요. 그 솥이 내려와져 있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밥때가 되면 밥이, 명절엔 조청이, 잔칫날엔 꽃 모양으로 잘라낸 당근을 넣은 닭볶음 같은 것들이 솥을 배부르게 했어요. 그게 아니라도 솥에선 항상 물이 끓고 있었죠. 솥은 부뚜막에서 내려온 적도 없었지만 비어 있던 적도 없었어요. 언젠가 내려오는 날이 비는 날이고 비는 날이 내려오는 날이었겠지요. 할머니의 시골집이 어떻게 헐렸는지 모르는 난 다만 추측할 뿐이에요.

그 집을 꼭 ‘할먼네 집’이라 부르며 명절이나 방학엔 ‘할먼네 집’에 간다고 신나서 떠들 정도로 그 집을 친근하게 여겼던 나지만 그곳에서 직접 살아 본 기간은 고작 두 달 정도예요. 일곱 살의 가을이었어요. 영문도 모른 채 나는 거기 맡겨졌어요. 부모가 있음에도 고아가 된 기분이었죠. 할머니의 가마솥 밥이 그 시절 나의 엄마였고 밥을 다 퍼내고 나면 황금빛으로 솥바닥에 깔려 있던 누룽지가 그 시절 나의 아빠였어요. 그때 난 결심했어요. 난 저 솥처럼 붙박이가 될 것이다, 나는 언제나 내게 밥을 해줄 것이다……. 그런 게 바로 진짜 어른일 거라 믿었으니까요.

내 몫의 가마솥을 갖게 되고서 나는 비로소 내가 나의 엄마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먼저 자기 자신의 엄마와 아빠가 되어야 어떤 자식의 엄마와 아빠도 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렇다고 해서 엄마와 아빠를 원망한다는 얘긴 아니야. 가마솥이 내내 같은 자리에 걸려 있었다는 게 정말 말이 되는 말일까. 부뚜막에서 내려 닦고 말린 후 새로 걸었던 날, 많았을 거야. 다만 내가 못 봤을 뿐. 엄마에게도 엄마가 그리운 날 많았을 텐데, 아빠에게도 아빠가 절실한 날 많았을 텐데, 끝끝내 나는 그냥 자식일 뿐이었어.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했어. 엄마와 아빤 당신 부모님들께 훌륭한 자식이었는데 말이야. 14년 전에 먼저 가신 할머니도 그건 인정할 거예요. 그러니 원망할 대상이 꼭 필요하다면 그건 바로 나야, 엄마. 잊지 마세요, 아빠.

오늘 아침 식구들은 여느 때와 같이 내가 지은 가마솥 밥을 먹고 출근을 하고 등교를 하고 어린이집엘 갔어요. 밥을 먹으며 남편은 심지어 농담도 했어요. 꿈속에서 나를 향해 낙하하던 태양을 품에 안았다면 틀림없이 셋째가 생겼을 거라고요. 큰애가 그 얘길 듣더니 픽 웃으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로또나 사세요, 완전 대박이라니까. 그 옆에서 작은애는 후렴을 읊듯 대박, 대박 해댔고요. 남편은 출근길에 정말로 로또를 샀어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난 알아요.

이렇게 당신을 만나게 된 탓에 그만…… 알게 돼버렸네요.

아무튼 그이는 당첨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기 위해 그것을 사야 했을 거예요.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이란 이런 거라죠. 아주 맑은 날 벌판에서 번개를 맞아요.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죠. 근데 번개를 맞고도 멀쩡해요. 곧이어 또 번개를 맞아요. 비로소 응급실로 실려가죠. 여전히 목숨엔 지장이 없어요. 다만 진정이 필요할 뿐이에요. 그렇게 도심의 병원에서 진정을 취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뱀이 나타나요. 그리곤 그 뱀에게 물려 죽어버려요. 바로 그런 확률. 수학적으로야 어떤 확률이든 가능하겠지요. 하지만 추상의 확률을 구체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면 도무지 인과관계라곤 찾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되곤 하죠.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그이는 믿고 싶었을 거예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고. 전등갓이 추락하는 일은 다만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다고.

남편 말마따나 꿈속의 태양을 품어버렸다면 그 꿈은 태몽이 되었을까요.

그걸 품지 못해 겨우 0.1초의 예지몽이 되어버린 걸까요.

가끔 이런 꿈들을 꿔요. 이가 모조리 빠져서 입안이 빠진 이들로 가득해요. 이물감에 뱉어 보지만 뱉어내는 족족 또 다른 이들이 입안을 가득 채워요. 며칠 연속 그런 꿈을 꾸다 치과를 찾으면 충치 하나가 도져 있지요. 어느 꿈에선 방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던 장롱이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그 육중한 발을 내 가슴에 올려놓아요. 숨이 막혀 깨어 보면 남편의 머리가 명치를 꽉 누르고 있어요. 나도 모르게 있는 힘껏 그이를 밀쳐내면 그이는 그 순간 토네이도에 휩쓸린 꿈을 꾸다가 대기 밖으로 튕겨나가기 직전 꿈에서 깨어나요. 꿈이 현실에 개입하기 위해선 아무래도 그런 식의 과장이 필수인 모양이에요.

한편으론 이런 꿈도 있다고 하죠. 꿈에서 죽은 이를 만났는데 그가 가자는 대로 따라가면 정말로 죽게 되는 거라고요. 충치 하나를 알리기 위해 그토록 요란해야만 했던 꿈에 비하면 참 담백하기 그지없는 꿈이에요. 현실에 개입하려는 꿈은 대부분 과장된 어법을 필요로 하지만 그 현실이 죽음일 경우엔 예외인 것 같아요. 죽음의 현실이란 건 꿈과 다르지 않기에 과장 따위가 필요 없는지도. 꿈에서 깨지 않은 채 꿈의 끝까지 가게 되면 그것이 곧 죽음인가 봐요. 꿈을 꾼다는 자체가 이미 죽음의 세계에 한 발을 들여놓았다는 뜻인가 봐요.

난 지금도 궁금해요. 추락하는 태양을 피하지 않고 품에 안았다면 나는 정말 어떻게 됐을는지. 대부분의 태몽이 그러하듯 태양을 품는 순간 꿈에서 깨어나고 얼마 뒤 셋째 아이의 소식을 듣게 됐을까요? 혹은 떨어지는 전등갓에 맞아 그 자리에서 어떻게 돼버렸을까요? 꿈에서 만난 죽은 이를 따라가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꿈에서 깨지 못한 채 꿈의 끝까지 가버렸을까요? 하지만 꿈의 끝이란 뭘까요? 죽음? 죽음의 죽음?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이곳에서 잠이 들었다가 꿈을 꾸고 그 꿈에서 만난 죽은 이를 따라간 사람들이 정말로 죽는 거라면 그들은 그 어느 곳에서도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는 걸까요? 그렇다면 죽음이란 영원히 꿈속에 갇혀버리는 것? 꿈의 끝까지 가는 게 아니라?

내가 참 질문이 많네요. 왜 아니겠어요. 당신과 난 대답할 수 없는 대답을 하기 위해 이렇게 만난 거잖아요. 오버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당신이 내 입장이라면 당신도 분명 이럴 거예요.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오늘 아침 가마솥에다 밥을 한 건 두고두고 후회가 되네요. 물론 후회할 줄 알았다면 안 그랬을 테지만요. 난 어느 쪽이냐면요, 처녀 시절 화이트데이 같은 때에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맛본 랍스터 요리보다 엄마가 평소 상에 올리던 나박김치나 김구이 같은 걸 더 그리워하는 편이에요. 어디에나 있는 음식이지만 어디에도 없는 맛이거든요. 그리고 오늘만 맛볼 수 있는 것과 언제든 맛볼 수 있는 것의 진정한 차이는 더는 그것을 먹을 수 없게 됐을 때 비로소 명확해진다고 봐요. 아무래도 후자 쪽의 상실감이 더 크지 않겠어요. 어느 한쪽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난 탓에 만날 수 없게 된 연인들보다 여전히 같은 서울에 살고 있음에도 더는 만날 수 없게 된 연인들이 더 안타깝듯 말이에요.

가장 그리운 건 언제나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이 아닐는지.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립다는 그 시처럼. 멀고 먼 날의 시골 부뚜막에 걸려 있던 나의 그 가마솥처럼.

우리 애들이 그런 그리움을 갖게 될까 봐 솔직히 마음이 좋지 않군요.

그런데 그 시 말이에요. 그 시가 어떻게 시작돼서 어떻게 끝이 나는지 확실치가 않네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그것은 시의 처음인가요, 끝인가요. 시의 어디쯤 자리 잡고 있든 간에 핵심 구절임에는 틀림없는 건가요. 핵심도 아닌데 나 혼자만 핵심인 양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핵심이든 아니든 어째서 그 시는 유독 그 한 구절로만 내게 남아 있는지요.

고등학생 시절엔 「목마와 숙녀」처럼 긴 축에 드는 시도 단숨에 외어버리곤 했어요. 박인환 시인을 좋아하던 영어 선생님 앞에서 외운 그대로 낭송한 적도 있지요. 수업 도중 선생님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노래 한 곡 하겠다고 했어요. 지루해진 수업 분위기를 환기시킬 요량이었죠. 라는 노래였어요. 분명 그날 배운 영문법과 관계가 있는 노래였는데 어떤 문법이었는지는 가물가물해요. 처음 듣는 노래였어요. 기억해야 할 영문법은 기억나지 않는데 그날 처음 딱 한 번 들었던 그 노랜 지금까지도 제 기억 속에서 끝없이 반복재생 중이에요. 그러니 한 번은 한 번이 아니고 순간도 순간이 아닌 것이지요. 고교 3년 동안 영어수업 시간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어요. 그런데도 그 많았던 시간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그 순간만 영원하네요.

난 시간을 낭비한 걸까요, 압축한 걸까요.

당신은 내가 낭비해 버린 시간들을 일깨워 주고 싶은 건가요, 압축된 나의 시간을 풀어 주고 싶은 건가요.

노래가 끝나고 선생님은 우리더러 답례로 시를 읊어 보라고 했어요. 잠시 환기되는가 싶던 아이들 표정이 다시금 탁해지더군요. 선생님이 자진해서 노랠 부른 것까진 좋았는데 난데없이 시라니 그야말로 시시했던 것이죠.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갔어요. 영어 성적이 좋지도 않은 주제에 말이에요.

밤 열한 시까지 이어지던 야간자습 시간에 다른 애들은 영어 단어를 외우느라 연습장을 한 권씩 써버리곤 했는데 난 안 그랬어요. 왠지 그럴 수가 없어서 그러지 못했어요. 대신에 난 맘에 드는 시들을 찾아 적고 또 적었어요. 각기 다른 글씨체로요. 하나의 시에 가장 어울리는 글씨체를 찾을 때까지 쓰고 또 썼지요. 시는 절로 외워졌어요. 그러니까 난 시라면 자신 있었어요. 시만 안 시시했던 거예요. 선생님이 불렀던 그 노래도, 불현듯 노래를 불렀던 그날의 선생님도, 시만큼이나 안 시시했던 거예요.

유일하게 손을 들었기에 당연히 지명되었지요. 수많은 시들이 동시다발로 떠올랐어요. 할 수만 있다면 메들리를 부르듯 끝없이 읊어대고 싶었어요. 수업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릴 때까지. 내 인생이 다 끝날 때까지.

「목마와 숙녀」를 선택한 건 필연이었어요. 너무 짧은 시는 안 되었어요. 나의 시가 고작 입시용 영어단어 몇 개로도 번역이 가능한 그런 것이길 원치 않았으니까요. 그렇다고 너무 길어도 곤란했지요. 시를 읊는 그동안이 누구에게도 지루한 시간이어서는 안 되니까요. 적당히 긴 시여야만 그걸 읊는 나도 조금은 특별해 보일 것 같았어요.

나는 한 잔의 술도 마시지 않은 채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그 교실의 아이들은 외롭지도 않았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했지만 선생님께선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운 듯 결국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울고 말았죠.

송영은이라고 했니?

선생님이 물었어요. 질문이었지만 질문이 아니었어요. 시낭송이 끝난 순간, 아니 시작되던 순간에 이미 내 이름은 선생님에게 각인이 됐는걸요. 내가 필연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가 우연히도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의 시였으니 말예요. 필연과 우연이 만났으니 그것은 필연인가요, 우연인가요.

그 순간부터 선생님은 영어과목 점수도 별로였던 날 무조건 예뻐하셨어요. 관심과 사랑을 받다 보니 덩달아 내 영어 실력도 점점 좋아지더군요. 언젠가부터 나도 다른 애들처럼 영어단어를 외우기 위해 연습장을 소비하고 있더라고요. 그 전에는 내가 왜 그럴 수 없어서 그러지 못했다는 것인지 전혀 기억도 나지 않더라고요.

영어 점수가 일취월장한 덕에 부모님이 친척들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좋을 정도의 대학에도 갈 수 있었어요. 나름 괜찮은 결과였죠. 아이러니한 결과이기도 하고요. 선생님은 분명 시 때문에 날 예뻐했는데 결과적으로 난 시를 잃고 영어 점수를 얻었으니 말예요. 그럼에도 선생님은 여전히 날 예뻐했으니 우린 결국 그러려고 서로에게 관심과 사랑을 보였던 걸까요. 우린 가야 할 곳에 간 걸까요, 전혀 엉뚱한 곳에 도착해 놓고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걸까요. 계속해서 내가 연습장을 시로 채웠더라면, 그러다가 어느 날부턴가는 내 시를 쓰기 시작했다면 진짜 가야 할 그곳에 갈 수도 있었을까요. 정말로 우리가 불시착했을 뿐이라면 그건 필연의 결과인 우연일까요, 우연의 결과인 필연일까요.

확실한 건 그때 그 교실의 아이들처럼 내 인생도 더는 외롭지 않게 됐지만 외롭지 않은 만큼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해졌다는 사실이에요. 나는 아주 오래 그렇게 살았어요. 심지어는 한 잔의 술을 마셨을 때조차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으니까요. 나쁘진 않았어요. 나쁠 수가 없었어요. 그 무엇에 대해서도 질문하지 않는 삶인데 나쁠 리가 있겠어요. 이제와 생각해 보니 질문할 게 없어서 질문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뭘 질문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삶이었지만요. 그래서 내가 오늘 이리도 질문이 많은가 봐요. 그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그러나 언젠가는 꼭 했어야 할 질문들이 방학숙제처럼 잔뜩 밀렸으니 말예요.

송, 영, 은? 송영은! 근데 쟤가 그 송영은이가 맞아? 맞나?

일요일 아침. 그러니까 내일 모레가 되겠군요. 그래요, 내일 모레. 선생님은 텔레비전 교양오락 프로그램에 나온 날 알아봤어요. 긴가민가하셨지만 그게 어디예요. 거의 20년 만인데다 그마저도 아주 잠깐이었는걸요. 20년 뒤의 송영은을 보고 20년 전의 송영은을 떠올렸다는 그 자체가 놀라운 일이지요. 선생님이 먼저 날 알아봐 줬기에 나도 알았던 거랍니다. 내일 모레, 선생님이 텔레비전에 나온 날 알아보리란 사실을요.

이상하게 들리는 말인가요?

하지만 지금 나의 시간은 어쩔 수 없이 그러해요.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흐르지 않아요. 여러 개의 방이 있는 공간이 일테면 시간이지요. 어떤 방에서 난 가마솥에 밥을 지어요. 또 다른 방에선 첫사랑과 이별을 해요. 한 번도 방문이 열려 본 적 없는 구석방에선 시를 쓰고 있을지도 몰라요. 남의 시를 필사하는 게 아니라 나의 시를요. 지금 이 순간 누가 어떤 방문을 여느냐에 따라 오늘 하루가 결정되는 거예요. 오늘은 다만 오늘이 아니고 하루도 겨우 하루가 아닌 거지요. 무에 가깝게 축소될 수도, 무한히 확장될 수도 있어요. 그러니 미래도 과거와 현재를 거쳐야만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오늘 하루 속에 다 들어 있는 것이지요. 따지고 보면 별로 이상하지도 않아요. 선생님이 알아봤듯 20년 뒤의 송영은이 20년 전의 송영은이니까요.

그리고 오늘 나의 방문들은 대부분 열려버렸어요.

그것만큼은 당신과 내가 이렇게 만난 덕분이라고 해둘게요.

오늘 하루, 행복할 것 같은데요.

선생님이 보고 있는 텔레비전 속에서 내가 그렇게 말해요. 간단한 코멘트를 요청한 피디에게 내가 했던 말도 그게 전부였어요.

행복할 것 같으냐? 그럼 됐다. 어쩌고 사는지 모르겠다만 행복하다면 됐지.

선생님이 내 코멘트에 대해 또 코멘트를 하시네요.

방송용 멘트는 아니었어요, 선생님. 결코 의례적으로 한 말이 아니었는데 말하자마자 공교롭게도 거짓말이 되어버렸지만요. 결국 선생님은 거짓말을 들으신 셈이네요.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립다. 제가 그 구절만 기억하고 있듯 선생님도 행복할 것 같다는 저의 그 말만 기억해 주세요.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립다. 그것이 시의 처음이든 끝이든 핵심이든 아니든 어쨌든 그게 빠지면 시는 완성되지 않을 테니까요. 오늘 하루, 행복할 것 같은데요. 그 말이 제 인생의 핵심이든 아니든 제 인생이었음에는 틀림없는걸요. You mean everything to me. 행복할 것 같다는 저의 그 말이 선생님에겐 ‘You’가 되기를. 알아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

공중파 방송인 데다 꽤 장수하고 있는 인기 프로그램인데도 선생님 말고는 나를 알아본 사람들이 얼마 없네요. 섭섭하단 소린 아니에요. 어쩌면 나도 당신과 별반 다르지 않은 존재인지도 모르겠어요. 내 이름 석 자도 함께 전파를 탔지만 누구도 선뜻 나를 떠올리지 못하잖아요. 이름이 있어도 무명씨와 다를 바 없지요. 그런 게 바로 고독일까요. 고독이 혹시 당신을 아프게 한 건 아닐까요.

대번에 날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역시 식구들뿐이겠죠. 하지만 우리 식구들은 내일 모레 텔레비전을 볼 겨를이 없을 거예요. 종일 텔레비전 밖에 있는 나와 함께 있어야 할 테니까요. 실은 우리 식구들은 내가 그 프로그램에 나왔는지도 몰라요. 말해 준 적 없으니 당연하지요.

이른 아침부터 난데없이 전등갓이 떨어지긴 했지만 오늘도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하루였어요. 식구들이 모두 나간 후 늘 하던 대로 청소를 하고 빨래를 널고 산책을 나왔지요. 아파트 단지를 지나 천변에 조성된 공원 쪽으로 가는 코스였어요. 휴일도 아니고 일주일에 한 번 아파트 단지에 장이 서는 날도 아닌데 오늘따라 유난히 사람들이 많더군요.

무슨 일인지 아파트 단지 입구에 방송국 차량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어요. 카메라를 든 남자가 오리걸음으로 무언가를 좇아가며 촬영 중이었고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그런 그를 좇고 있더군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아주 고요했어요. 나도 절로 나란 존재의 볼륨을 최저치로 낮추게 되더라고요.

카메라에는 프로그램 로고 스티커가 붙어 있었어요. 〈놀라운 TV 동물의 세계〉. 10년이 넘도록 장수하고 있는 프로그램이지요. 우리 애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고요. 필살기를 자랑하는 애완동물이 출연한 날이면 온종일 아이들의 애완동물 타령에 시달려야 했어요. 반면 전문가의 행동교정이 필요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한 동물이 출연한 날엔 모처럼 내 목소리가 당당해졌고요. 일요일 아침마다 아이들과 함께 그 프로그램을 즐겨 본 덕에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라는 생소한 직업도 알게 되었고 모피 옷과 식용 동물의 불편한 진실도 목격하게 되었지요. 애완동물을 반려동물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애쓰는 태도도 나쁘지 않았어요. 재밌는 데다 교육적이기까지 하니 아이들과 함께 보면 딱 좋은 프로그램이지요.

오늘의 동물은 오리였어요.

왜 저렇게 힘든 자세로 촬영을 하나 싶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가 카메라에 담아야 할 것이 바로 그 오리였으니까요. 어미 오리를 선두로 갓 태어난 아기 오리 다섯 마리가 생애 처음으로 한 모금의 물을 먹기 위해 개천 쪽으로 생애 첫 이동을 하는 중이었어요. 큰애 말마따나 완전 대박이었죠.

오리는 아파트 단지의 어느 화단에 알을 낳았다고 해요. 중간 평수가 몰려 있는 구역에 조성된 화단이었죠. 화단은 어른 무릎 정도의 높이로 원형이었어요. 회양목으로 둘러싸인 덕분에 화단의 정중앙은 요새와 다를 바 없었지요. 10년 가까이 이 아파트에 살았음에도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난 몰랐네요. 왜 아니겠어요. 내 방 천장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바로 나인걸요.

알은 원래 여덟 개였어요. 어미는 부리로 알을 굴려 가며 골고루 따뜻하게 품기 시작했지요. 그럼에도 어떤 알은 좀체 온기를 유지하지 못했어요. 어미는 차가운 알을 계속 품는 대신 부리로 깨버리는 쪽을 택했어요. 남은 알은 일곱 개. 시간이 흐르고 첫 번째 알에서 기척이 들려요. 새끼는 알 속에서 어미는 알 밖에서 껍질이 깨질 때까지 쪼고 또 쪼아요. 그렇게 하나, 둘…… 새 생명들이 이 세상에 당도하네요. 하지만 셋, 넷, 다섯…… 거기까지예요.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알은 여전히 알일 뿐이에요.

오리가 되지 못한 알들은 모두 죽은 걸까요?

여전히 알일지라도 어쨌든 어미의 몸에서 나왔으니 이미 태어난 것 아닌가요. 꼭 알을 쪼고 나와야만 태어났다고 할 수 있는 건가요. 그럼 부화되지 못한 알은 죽은 채 태어난 것? 부화되지 못했기에 태어나자마자 죽었다고 할 수도 있겠고요. 몇 번을 태어나야 우린 정말로 태어날 수 있을까요. 또한 몇 번을 죽어야만 정말로 죽게 되는 걸까요.

나는 궁금해요. 당신과 충돌한 순간 난 알에 갇혔으니까요.

두 개의 알을 버려 둔 채 다섯 마리의 새끼만 데리고 어미 오리는 개천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어요. 아파트 단지를 나서는 순간부터 난관의 연속이었죠. 오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자동차들의 질주. 차도와 확실히 구분되는 보도조차도 오리들에겐 쉬운 코스가 아니었지요. 차도에서 보도로 올라가기 위해 새끼들은 제 키에 맞먹는 높이의 턱을 올라가야만 했으니까요. 천신만고 끝에 개천 근처에 도착했네요. 방죽을 만난 새끼오리들은 걷기를 포기한 채 온몸을 굴려 방죽 아래로 내려갔어요. 드디어 개천에 입수. 하지만 이곳은 아직 절반은 인공 개천이에요. 인공적으로 조성된 조류 탓에 오리들 입장에선 래프팅을 해야만 통과할 수 있는 급류가 곳곳에 숨어 있었지요. 급류에 휩쓸렸다 추락하길 거듭한 끝에 마침내 오리들은 인공 개천의 끝, 자연 하천에 당도했어요. 그곳이야말로 그들이 가야 할 곳이었어요. 그들이 원래 존재했던 바로 그곳이었어요. 그들은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알을 깨고서 기어코 그 세계에 도착한 것이었어요.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박수와 함성이 터져나오네요. 물론 나도 보탰지요. 어쩐지 눈물이 나는 광경이에요. 용케 내 눈물을 알아본 피디가 코멘트를 부탁하는군요. 난 거절하지 않아요. 심지어는 절대 편집하면 안 된다는 농담 섞인 협박마저 날려요. 인상적인 코멘트를 한 것도 아니면서. 오늘 하루, 행복할 것 같은데요. 겨우 그 말만 한 주제에. 최종적으로 편집되지 않은 걸 보면 그래도 꽤 진정성 있게 들렸나 봐요. 그게 아니라면 다만 방송용으로 적합했거나. 내 입장에선 둘 다 맞아요. 난 오늘 하루, 행복하길 바라요. 그리고 내가 원한 건 언제나 무난한 것들뿐이었어요. 공중파 방송이 대부분 무난하듯 말이에요. 난 그런 사람이에요. 더구나 이건 우리 애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이잖아요. 그러니 미리 말해 주지도 않을 거예요. 그만 한 깜짝 선물도 없을 테니까요.

물론 내일 모레, 우리 애들은 이 프로그램을 못 볼 거예요. 하지만 언젠가는 보게 될 거예요. 워낙 인기 프로그램이라 유선이나 케이블 채널에서도 자주 재방송을 해주거든요. 아, 정말로 깜짝 놀랄 만한 깜짝 선물이 되겠군요. 어쩌자고 그런 선물을. 후회를 부를 일이 또 하나 늘었네요. 행복할 것 같다고 하지 말고 그냥 행복하다고 말할 걸 그랬어요. 애들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내 부모님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식구들에게 내가 해야 할 말은 행복할 것 같은 게 아니라 행복하다는 것이었어요. 미안하다, 얘들아. 여보, 난 행복해. 진심이야, 엄마. 그게 전부예요, 아빠.

오리걸음에 맞춰 걷느라 평소와 같은 거리를 산책했는데도 시간은 더 많이 걸렸더군요. 서둘러야 했어요. 작은애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와야 하는 시간은 늘 그렇듯 정해진 것이었으니까요. 그 이후의 스케줄도 마찬가지고요. 산책 시간을 내 맘대로 늘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죠. 하지만 시간 조절만 잘한다면 산책코스만큼은 얼마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었어요.

천변공원은 오늘 산책의 반환점이 아니라 새로운 기점이었죠. 나의 산책이 언제나 그랬듯 말이에요. 천변공원을 기점으로 우리 동네가 아닌 남의 동네로 갔어요. 내가 아는 남들이 사는 동네도 아니에요. 내가 알지 못하는 남들만 사는 동네죠. 아파트 단지 일색이라 눈에 보이는 풍경은 사실 그게 그거예요. 심지어는 상가에 입주한 프랜차이즈들도 거의 흡사한걸요. 다만 내 마음의 풍경이 조금 다를 뿐. 산책의 진짜 목적은 바로 그것이었어요.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해진 나는 이제 더 이상 외롭지 않다고 했지요? 아무렴요. 난 혼자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래서 난 자꾸만 고독해졌어요. 이상한 말이지만 정말로요. 고독하기를 그만두려면 다시 외로워져야만 했어요.

하루 중 내가 혼자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어차피 정해져 있었지요. 시간을 늘릴 수 없다면 공간도 시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혼자가 될 시간에 그야말로 혼자가 되기 위해 나는 철저히 내가 혼자일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어요. 야간 자습시간마다 영어단어대신 시를 외웠던 날들처럼 말이죠. 날마다 낯선 동네를 산책한 것 같지만 실은 다 같은 외로움의 장소였던 거예요. 고독하기 싫으면 외로워져야 하니까요.

오늘도 난 남들의 동네에 있어요. 그렇지만 익숙한 풍경이에요. 아파트 단지와 단지 사이, 아파트 단지와 상업지구 사이, 상업지구와 관공서지구 사이. 그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소규모 공원들. 크게 다르지 않은 수종. 비슷한 정자. 하나 같은 패션. 똑같은 벤치. 나 또한 특별하지 않아요. 나는 잠시 그곳에 앉아 있어요. 하지만 나는 달라요. 그곳에서 나는 혼자거든요. 다들 삼삼오오거나 둘인데 나만 하나거든요.

그래서 당신은 내게로 오지요. 내게만 오지요.

공원 초입에서 당신은 0.1초 정도 두리번거리네요. 자신을 고정시키는 나사가 느슨해진 걸 눈치 챈 전등갓도 이대로 떨어져 버릴까 말까 0.1초쯤 망설여요. 태양이 가장 뜨거울 시각이에요. 그런데도 태양은 겨우 핀 하나에 의지해 하늘에 걸려 있어요. 곧 떨어질 것 같아요. 그렇게 보여요. 익숙한 풍경은 그대론데 순식간에 낯설어졌어요. 공원에 있던 모두가 당신을 쳐다봐요. 당신의, 미친, 존재감.

그런 당신이 나를 봐요. 나만 봐요. 순간 내가 아는 사람인가 싶어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헷갈려요. 태양을 피하기 위해 몸을 돌려야 하는지 그대로 품어 줘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새 당신은 성큼 내게로 와요. 지독한 술 냄새가 한 발 먼저예요. 코가 뚫리자 귀도 뚫려요. 비명 소리가 들려요. 삼삼오오거나 쌍쌍으로 함께 달음질치는 소리도 들려요. 나만 혼자 붙박이처럼 거기 있는 소리마저 들려요. 들을 수 없는 소리들 듣고 보니 눈도 번쩍 떠져요. 당신의 손에는 뭔가가 들려 있어요. 너무 무뎌서 오히려 더 고통스러울 것 같은 그런 것이에요. 이제야 난 그걸 보아요. 실핏줄이 모조리 터진 당신의 눈이 내 눈앞에 있어요. 대체 며칠이나 못 잔 건가요? 묻고 싶지만 묻지 못해요. 씨발, 내 잘못이 아니잖아. 묻지도 않았는데 당신이 답해요. 헐~ 전등갓이 추락해요. 레드 썬! 태양을 품에 안기 무섭게 난 그만 잠이 들어요. 결국 난 태양을 품어버렸어요. 하지만 그건 내 잘못도 아니에요. 나는 잠꼬대를 해요. You mean everything to me.

이상한 꿈을 꿨어요. 처음 만난 당신이 나를 죽이는 꿈. 처음 만난 당신과 내가 동시에 같은 질문을 하는 꿈. 내 잘못이 아니잖아. 내 잘못도 아니에요. 다만 변명 같았지만 실은 질문이었지요. 그럼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요? 우리는 정말 무고한가요?

나는 시를 잃고서 외롭지 않게 되었어요. 더는 단독자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리고는 무명씨가 되었어요. 외롭지 않기에 고독한 그런 사람이 돼버린 거예요. 그 무엇에 대해서도 질문하지 않았기에 내 삶은 무난해졌지요. 당신의 삶은 아마 너무도 지난했을 거예요. 그래서 그 무엇에 대해서도 질문할 겨를이 없었을 거예요. 내 삶은 무난하고 당신의 삶은 지난했지만 당신도 나만큼이나 질문하지 않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당신은 불현듯 내게로 추락했을 거예요. 당신 또한 단독자임을 증명하고 싶었을 테니까요. 어느 꿈속에서 처음 만난 당신과 나. 다른 인생을 살아왔을 당신과 내가 서로 다른 입장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같은 질문을 던진 것도 그래서였을 거예요.

레드 썬!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신호를 보내요. 나는 꿈에서 깨어나요. 나는 난막 같은 것에 갇혀 있어요. 꿈에 보았던 그 공원이 난막 밖으로 펼쳐져 있어요. 모든 게 다 보여요. 오늘 하루뿐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보여요. 하지만 어떻게 해야 난막 밖으로 나갈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네요. 난막은 비눗방울처럼 내가 움직이는 대로 자유자재로 모양을 바꾸지만 결코 터지지는 않네요. 아직도 난 꿈을 꾸고 있는 걸까요. 그 꿈은 어떤 꿈인가요. 내가 살아 있는 꿈인가요, 죽어 있는 꿈인가요.

레드 썬! 또 신호가 와요. 내 안에 존재하는, 아직 부화되지 못한 알 하나를 비로소 감지해요. 그것이 보낸 신호예요. 알 속에 갇혀 있는 내 안에 또 다른 알 하나가 갇혀 있네요. 그러고 보니 꿈에서 난 태양을 품에 안았어요. 내가 살아 있는 꿈속에서 난 또 꿈을 꾸었지요. 내가 죽는 꿈이었어요. 내가 죽어 있는 그 꿈속에서 나는 또 꿈을 꾸었어요. 낙하하는 태양을 그대로 품에 안는 꿈이었어요. 나는 타버리지 않았어요. 남편 말대로 그건 정말 태몽이었나 봐요. 레드 썬! 막내가 될 이 아이가 이젠 알을 깨고 나갈 때가 됐다며 자꾸만 신호를 보내네요. 어서 빨리 꿈에서 깨라고요. 그래야 태어날 수 있다고요. 하지만 난 어떤 꿈에서 먼저 깨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이 정말로 태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모피용으로 사육되는 너구리는 평생을 철창에 갇혀 살아요. 그가 철창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날은 평생에 단 하루뿐이에요. 바로 그가 죽는 날이지요. 어떤 송아지는 태어나서 열두 시간이 다 되도록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해요. 열두 시간이 지났어도 마시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예요. 탄생 후 정확히 열두 시간이 경과되는 그 순간 그는 동맥이 끊겨요. 그리고는 부드러운 송아지 가죽 구두로 재탄생해 버려요. 그 하루가 바로 그들 인생의 전부였던 거예요.

나의 오늘 하루는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하루였어요. 하지만 그런 하루는 존재하지 않아요. 하루는, 하루도 같은 날이 없어요. 그래서 하루인 거예요. 하루가 인생의 전부인 거예요.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이 하루가 오늘 나의 인생이었어요. 

 

《문장웹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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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소설

끝나지 않는 카마린스카야

끝나지 않는 카마린스카야 신종원 작품 번호 1번의 정확한 명칭은 떠돌이 노인이다. 1902년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초연된 막심 고리키의 희곡 『밑바닥에서(На дне)』의 주연 인물 루카를 본뜬 것으로 추정된다. 작품 번호 1번은 작가가 1970년대 트란스옥시아나 지방에서 순회공연을 벌였던 타지크인 유랑 극단 소속 무대 미술가로 근무하던 시절 처음 제작한 연극 인형이다. 작품 활동 후기에 만들어진 인형들이 책장을 넘기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동작은 물론 짧은 거리의 보행 기능까지 수행했던 반면, 루카는 그 자신의 하중마저 오롯이 떠받치지 못하는 상태이다. 중앙아시아학회 김정훈 교수는 회고전 기념 비평문에서 보조 지지대 없이는 잠시도 서 있을 수 없는 이 인형의 원본이 제정 러시아 말기의 어느 슬라브족 순례자가 아니라 신약 성경의 주요 저자, 성 루가라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작가의 타계 이후 수집된 경력 초기 작업 노트들에서 복음서 속 의료 기록들을 전사한 문구가 몇몇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각재를 마름질하고 합성수지를 꿰매어 붙이는 과정이 전부인 기초 목공 기법을 영적 외과술의 영역으로 받아들이기라도 했던 걸까? 천 번의 조각과 천 번의 봉합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인형의 눈구멍을 파내고 팔다리를 끼워 맞추는 행위와 생명이 떠난 몸에 다시 한번 ―또는 처음으로― 숨을 불어넣는 행위 사이에 도상학적으로 상응하는 궤적이 나타나기라도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 주위를 떠도는 기체 상태의 영혼이 별안간 붙잡혀 숨통 깊숙이 하강할 때, 좁고 어두운 기도에 울려 퍼지는 연식음은 어떤 모양의 다이어그램을 형성하는가? 몸은 시시때때로 벗어나려고 아우성치는 나선형 회전체를 가두어 두기 위해 설계된 파라볼로이드 모양의 감옥에 지나지 않을 뿐인지도 모른다. 아브람체보의 특산 공예품이자 텅 빈 통으로서 마트료시카 인형들이 어떻게 인체를 조롱하는지 상기하라. 1970년대 후반, 연방의 중앙기관에 고용된 이후 주문 생산된 작품들이 공산 혁명식 테일러리즘의 입김 아래 무거운 덩어리와 앙상한 구동부만으로 이루어졌던 반면, 루카는 원본 인물을 존중하려는 조형적 표현으로서 삭풍에 일그러진 주름 하나하나를 실리콘 피부 위에 간직하고 있다. 무엇보다 루카는 작가가 일생 동안 폐기하지 않은 하나뿐인 인형으로서, 작품 목록 가운데 유일하게 소장품 관리인의 주기가 남아 있었다. 이어지는 괄호 안의 문장이다. (수탁자는 표제를 혼용하거나 임의로 변형하는 등의 오기입으로 보존 정보가 훼손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이전 수탁자들도 작품 번호 1번의 이름이 루카가 아니라는 사실을 곧잘 잊었던 모양이다. 작품은 전고 168센티미터, 전폭 52센티미터, 중량 24.5킬로그램 규격의 전신 인체상 및 부속 요소로 구성된다. 작품을 설치할 때는 상체를 전방으로 약 15도가량 숙여야 하며, 양손 관절 내부의 철사들을 지팡이 머리에 고정시켜 노화된 본체 프레임을 지지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조작해야 한다. 지팡이는 조형물 본체와 일체형으로 결착되어 있으므로, 무리하게 힘을 주어 뽑

  • 신종원
  • 2026-04-01

문장웹진 소설

완벽한 이야기

완벽한 이야기 박진호 푹푹 찌는 날씨 탓에 간이 화장실에서 뿜어 나오는 냄새가 더 지독했다. 화장실 옆 연병장 구석에는 이미 본부 인원 사십 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행보관 얼굴은 평소보다 더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일요일 아침부터 부대 전 인원을 집합시킨 걸 보면 또 무슨 심기가 꼬인 게 틀림없었다. 나는 빠릿하지 못한 이등병 소리를 들을까 싶어 티 나지 않게 슬쩍 무리 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위병소에서는 아침마다 식당의 잔반을 수거해 가는 트랙터의 모터 소리가 들렸다. 잔반통의 누린내를 맡은 건지 아니면 이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인 건지 청산이와 계백이가 군견 철장 안에서 짖어 댔다. “범인은 알아서 튀어나와.” 행보관이 손가락으로 간이 화장실 옆을 지나는 콘크리트 배수로를 가리켰다. 거기엔 손바닥 크기만 한 거뭇한 물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덫에 걸린 쥐나 두더지 같기도 했다. 햇빛을 받은 표면이 몸을 뒤틀 때마다 청록색으로 반짝였다. 행보관이 팔을 한 번 휘젓자 유려하게 움직이던 덩어리가 일시에 공중으로 흩어졌다. 수십의 파리 떼에 엉겨 있던 속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저기서 작게 욕이 터져 나왔다. 모양이며 크기며 주위에 널브러진 휴지 조각이며 그건 누가 봐도 사람의 똥이었다. 날아올랐던 파리들이 일사불란하게 다시 하나의 덩어리로 뭉쳤다.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배수로는 깨끗했으니 모두가 잠든 밤사이 누군가 싸지른 게 틀림없었다. “안 나오면 오전 내내 전부 군장 메고 연병장 뺑뺑이다. 좋은 말 할 때 빨리 나와.” 7월 한여름, 그것도 일요일 오전부터 군장을 돌고 나면 오늘은 물론이고 다음 주 내내 근육통과 몸살로 고생할 게 뻔했다. 하필 오늘따라 주간 근무도 잡혀 있지 않아 빠져나갈 구석이 없었다. 다들 정체 모를 범인을 원망하면서도 한편으론 어딘가 켕기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도와 시기의 문제였을 뿐 부대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된 이후로 언젠가는 터질 거라 예상했던 일이었다. 이따금 길을 잘못 들어선 사람들은 우리 부대를 지방 도시의 작은 초등학교 정도로 오해하곤 했다. 머드축제로 유명한 도시였고 인근 기차역에서 렌터카를 빌려 해수욕장을 검색하면 서너 번째 추천 경로로 부대 근처 비포장도로가 뜬다고 했다. 호기심에 후순위 경로를 택한 사람들은 어김없이 길을 헤매다 부대로 연결되는 막다른 길에서 차를 세웠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시골 학교의 정취에 취해 담장 너머로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댔는데, 이를 저지하는 게 위병소 앞을 지키는 경계 근무자들의 주요 일과 중 하나였다. 뒤로는 야트막한 야산이, 옆으로는 논과 슬레이트 지붕을 덧씌운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작은 부대였다. 철망을 얹은 담장 안에 연병장과 2층짜리 적갈색 벽돌 건물이 자리 잡고 있어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시골의 작은 분교로 착각할 만했다. 외부인들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이곳 대대에 있는 오십여 명 모두는 해안 초소에 파견 나간 다른 중대들을 지원하는 행정병들이었으므로 가끔은 군

  • 박진호
  •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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