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숲
- 작성일 2011-09-01
- 댓글수 0
안개숲
김규린
자작한 숲에서 밥물 뜸들듯
뭉근히 익어 가는 하느님
나를 빌려 묵시하는 눈빛이
수틀처럼 따뜻하다
도란도란 옛투의 수를 놓는 꽃과 나무들
식물들이 지나는 한 땀
돌아오는 한 땀
바늘길 위에 뿌려지는
끈적이풀 같은 마음
운명의 가지는 없는 사람을 선명하게 켜들고
오지랖 넓게 나를 비춘다 나를
내포한다
서늘하고 섬약한 지구 한 장 무게가
가지 끝에 실린다
그것을 잡아 고요히 찢어 본다
올올이 찢겨 나간 채
소용돌이치는 몇 마디 줄기들이 퍼덕이고 있다
바람이 풀어 놓은 바다가
숲에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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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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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5-08-01
불면증 장혜령 사우디아라비아의 모하메드 빈 살만 왕자는 거울 도시 프로젝트1)를 발표했다. 홍해를 떠다니는 친환경 산업단지, 인공 호수와 스키장과 골프장이 있는 친환경 관광단지와 친환경 리조트, 그리고 이 모든 꿈을 낱낱이 비춰줄, 총길이 170km 높이 500m의 저탄소 친환경 거울 도시! 당신은 최근, 한국 대통령2)이 사우디 왕자를 찾아가 친환경 꿈 산업 계약에 사인한 일을 알고 있는가3)? 이것은 그저 사우디 왕자 혼자 외롭게 꾸는 꿈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 자신도 모르게 꿈의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거울 도시를 밝힐 100% 저탄소 친환경 재생 에너지 생산에 일조하고 있다.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진실을 하나 더 말해 볼까? 이 저탄소 친환경 거울 도시를 위해서는 매일 거울에 부딪혀 살해될 빛과 모래와 바람과 새들과, 그들의 핏방울을 걸레로 닦아 줄 저탄소 친환경 걸레 여자들이 필요하며, 그들의 그림자들이 항의 집회를 하기 위해 지금 우리의 꿈속으로 날아오고 있는 중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인 20%가 만성불면증에 시달린다고 보고하는 대한수면연구학회 통계 지표의 진짜 원인이다. 1) ㅇㄱㄹㅇ☞ www.neom.com 2) 구) 대통령. 3) 「韓-사우디 21조 투자 협약‧‧‧ “대규모 방산 협력 논의”」, TV조선, 2023.10.23.
- 관리자
- 2025-08-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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