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주’라는 조각퍼즐
- 작성일 200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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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주’라는 조각퍼즐
김근
나는 시인 김경주와 친하지 않다. 친하지 않다는 말은 가깝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몇 년 동안 우리는 꽤 가깝게 지냈다. 그러나 단둘이 만나 술 마셔본 적도 없다. 속엣얘기를 주고받은 바도 없다. 언젠가 내게 ‘새가 되어 날아갈 것 같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그 말은 나보다는 김경주에게 소용되는 말인 듯하다. 그에 비하면 나는 붙박이 나무 같다. “바람이 불자/새들이/자신의/꿈속으로 날아”(「바람의 연대기는 누가 다 기록하나」)가듯이 그는 훌쩍 언제든 날아가버릴 것만 같다. 그의 감각적인 언어가 더듬는 것은 “삶이/닿지 않은 곳에만/가서” 젖는 메아리일지도 모른다. 관계는 위태롭다. 위태로움의 그 긴장이 우리를 아직도 만나게 하는지 모른다.

그는 요즘 자주 파란 트레이닝복 차림이다. 수염도 깎지 않은 채 나타나기가 다반사다. 푸른빛의 반팔을 밝은 긴 소매옷에 겹쳐 입은 차림이다(김경주가 반팔 티셔츠를 입은 걸 본 적이 없는 듯도 하다). 그는 집이 없다. 뭐, 물론 나도 집이 없긴 마찬가지지만, 그에게는 월세나 전세로 얻은 집도 지금 아예 없다. 급작스럽게 그렇게 됐다. 책과 짐들은 이삿짐센터에 보관된 상태다. 얼마 전 세 들어 살던 집이 재개발로 헐리게 돼 급하게 집을 비워야 했다고 한다(그의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의 집에 가봤다거나, 그의 고양이들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 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집을 누구한테도 잘 안 보여준다. 그나마 이전에 살던 집의 모양이라도 겨우 보게 된 건 TV를 통해서였다. 잠시 시인 강정이 구성작가로 일했던 프로그램이었다. 희한하게 젊은 시인들의 생활이 공중파를 타고 전국으로 떠다녔다. 그가 모았다는 피규어들 역시 구경하지 못했다. 그의 시를 통해서 우리는 그의 삶을 단편적으로 짐작할 뿐이다. 그러다 「열두 개의 마트로시카」(《문예중앙》2006년 겨울호) 같은 글에서 뒤통수를 얻어맞는다). 요즘 그는 후배 집과 작가회의 사무실을 전전하며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이상도 하지. 그에게는 이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모양이다. 갑작스럽게 집이 헐려버리는 일 따위. 그래서 다시 떠도는 일 따위. 정주하지 못하는 바람같이.
그에게는 오토바이가 하나 있다. 그가 ‘애마’라고 부르는 83년식 60cc 콜레다 윙카다. 라이방 선그라스에 항공점퍼를 입고 단발의 퍼머머리를 휘날리며 그가 한창 오토바이를 타고 다닐 때였다. 며칠째 침울함이 그의 얼굴에서 가시질 않았다. 이유를 물었더니, 180만원을 구할 일이 막막해서 그렇다고 했다. 느닷없이 무슨? 얘기인즉슨, 이랬다. 집에서 술을 한잔 하다가 담배가 떨어져 담배를 사러갔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편의점까지 걸어가도 되는 걸, 굳이 그는 오토바이를 탔다고 했다. 편의점 못미처에서 경찰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물론 몰랐겠다. 무면허에 음주운전까지, 시쳇말로 딱 걸린 거다. 결국 그대로 경찰서에까지 가게 됐다. 밤새 그는 거기 있었다고 했다.
경찰관 : 직업이 뭐야?
김경주 : 시인인데요.
경찰관 : 뭐?
김경주 : 시인이라구요(그는 정말 직업으로 댈 만한 게 시인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아는 바와 같이 보험회사들은 시인을 직업으로 치지 않는다. 그나마 소설가는 일용직 노동자로 쳐준대나).
경찰관 : 네가 시인이면 내가 서정주겠다. 너 같은 놈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어.
김경주 : (혼자 궁시렁거리며) 쳇, 인터넷 검색창에 이름만 쳐봐도 알 수 있는 걸…….
벌금이 200만원이 나왔는데, 여차저차해서 180만원으로 깎은 거라며 그는 뻐겼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그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난다. 그는 “속도와 방향이 같아질 수 있는(있다고 생각하는) 젊음이 밤마다 자신의 바이크를 몰고 폭주로 도로를 달리지만 가장 빠른 스피드를 낸다고 해서 남보다 먼저 도달할 수 있는 인생이 어딘가 있을 리 없다. 오히려 인생보다 먼저 도착해서 우리는 허무해지는 순간을 목격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의 방향은 존중되어야 한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나는 언제나 길 위에 있어야 했다”(《문장 웹진》6월호 「K군의 바이크 전성시대」)고 쓴 적이 있다. 그는 남들과 같지 않은 길을 자신만의 속도로 가고 있다. 그의 방향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를 처음 만난 건 2004년이었을 거다. 봄이었나. 그는 어느 날 불쑥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인사동 술집에서 동인 모임 뒤풀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문예중앙》술자리를 파하고였댔나. 그의 학교 선배인 시인 최승철 등과 함께 예정에 없이 우리 술자리로 왔다. 보기 드물게 잘생긴 외모였다. ‘누나시인’들이 자꾸 말을 걸었으나 그는 부끄럼을 타는 듯 말수가 적었다. 그 전에 나는 그를 만나려고 여러 차례 시도를 했다. 그의 첫 시집에서는 빠졌지만, 나는 그의 신춘문예 등단작 「꽃 피는 공중전화」에 반했었다. 그가 궁금했다. 그가 등단하던 해 봄 마침 광주에 가게 될 일이 생겼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다. 광주에서 일을 다 마치고 서울행 기차에 올랐을 때야 비로소 그와 통화가 됐다. 할 수 없이 우리는 다음을 기약했다. 다음에 전화를 걸었을 때 그의 전화기는 아예 꺼져 있었다. 오래 통화가 되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난 뒤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 겨우 통화가 됐다. 인도에 다녀왔다고 했다. 지금은 여수라고 했다. 여수에서 일을 한다고. 서울에 한번 올라오라고 같이 술 한잔 하자고 내가 말했다. 그즈음 동인에선 그의 시 「내 워크맨 속 갠지즈」를 돌려 읽었다. “내 몸의 이역(異域)들은 울음들이었다고 쓰고 싶어지는 생이 있다”에서 나는 아팠다. 그해 크리스마스 무렵이었나. 그와 다시 통화가 됐다. 그때 그는 다음해 2월에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동인에서 그걸 두고 ‘김근의 삼고초려’(?)라고들 한다. 그리고 불쑥 그는 나타났고 여태 동인을 함께하고 있다.
사실 그는 우리를 끊임없이 웃게 만들었다. 시인 이병률이 시인 김선우의 현대문학상 시상식 술자리에서 “저 순정만화처럼 생긴 애는 누구냐?”고 물었을 정도로 분명 눈에 띄는 외모였지만, 그와 가까운 ‘누나시인’들은 그를 두고 ‘입만 열면 환상이 깨진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편의점에 갔는디, 아가씨한테, 여 빠떼리 좀 달궈주셔요, 했드만, 예? 예? 해불잖어. 울 동네선 빠떼리 달군다고 허는디. 으매, 폭폭해불드랑게. 아따, 충전이요, 충전! 긍께사 알아듣더라니까. 나 참. 헤헤헤.” 그의 사투리는 전라남도인지 전라북도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는다. 어쨌거나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의 말이 우릴 한동안 웃겼다. 꼭 사투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도에 다녀온 뒤 어머니 병환 때문에 산부인과에 동행했다가 공교롭게도 거기서 말라리아가 발견되는 바람에 한 달 동안 산부인과에 입원했었다는 이야기도 꽤 여러 날 또 우리를 배꼽 잡게 만들었다. 첫 시집이 발간된 뒤 그와 인터뷰해본 모일간지 기자 말마따나 그의 말은 관계를 스스럼없이 만들어주는 장점은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내 우주에 오면 위험하다”(「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고 말하며 그는 슬며시 우리를 경계한다. 그의 우주로 제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어떤 위험을 감수해야 할까.

안현미 첫 시집 출간을 축하는 술자리에서 시인 이영주가 울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김경주가 이영주의 우는 곁으로 와서 함께 울었다. 이영주가 수술을 하느라고 혈액형 검사를 했더니 서른 해 넘게 B형으로 알고 있던 혈액형이 AB형으로 판명돼, 같은 B형이라고만 여기고 있던 김경주가 이영주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만나는 사람들마다한테 억울함을 호소하던 게 그 전이었는지 그 후였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날 그들이 왜 울었는지는 여태 의문으로 남아 있다. 하긴 그날 사건이 많긴 했다. 시인 O는 울다가 웃기를 반복했고 시인 P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경찰서를 들러 응급실로 갔고 시인 L은 시인 K와 심하게 다퉜다. 급기야 안현미가 “야, 여긴 날 위한 술자리거든.”이라고 소리칠 정도였으니, 그 둘이 왜 울었는지는 그 많은 사건들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김경주의 첫 시집 출간 술자리에서는 정작 김경주가 중간에 사라졌다. 시인 조연호와 윤석정이 밤새 찾으러 다녔지만 결국 못 찾았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김경주가 깨어난 곳은 거기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의 어느 주차장이었다고 한다. 그가 그날 왜 사라졌는지도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이다.
김경주를 매우 아끼는 시인 김정환이, 얼마 전에 “김경주는 너무 댄디”라고 말했다. 김경주는 없는 술자리였다. 김경주와는 작가회의에서 오래 같이 일했다. 일주일에 한번 만나는 일도 잦았다. 그는 뛰어난 기획자였고, 헌신적으로 일했다. 그의 차림새나 생활방식 혹은 생각의 어떤 면에서 우리는 댄디즘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의 ‘댄디’가 때론 문인들 사이에서 오해를 부르고, 충돌을 낳은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러나 단지 ‘댄디’만으로 파악할 수 없는 부분도 김경주에게는 많다. 예의 그 술자리에서 김정환은 내게 다시 ‘김근이랑 김경주를 반반씩 섞어놓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경주는 알겠는데, 나는 어떻다는 것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왜 하필 김경주와 나를 섞어보려고 했을까. 김정환의 이 말에는 선배시인으로서 김경주에게 품어온 애정과 우려가 동시에 들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가 부러웠다.
나는 김경주와 친하지 않다. 그는 자주 여기 없고, 다만 나는, 김경주라는 조각퍼즐의 단지 몇 조각만을 손에 쥐고 있는지 모른다. 여기 소개하지 못한 퍼즐 조각도 여러 개 있긴 하다. 살면서 내게는 더 많은 퍼즐 조각들이 생길지 모른다. 그러나 퍼즐을 완성하기 위한 결정적인 조각들은 빠트린 채 그것들을 어떤 위치에 끼워 맞춰야 할지 지금처럼 그때도 고민할 것이다. 미완성 퍼즐인 채로, 그래도 오랫동안, 김경주는 내 가까이 있으리라는 예감은 든다. 그때 미완성의 난감함 앞에서 나는 혹 이렇게 중얼거리게 될지도 모른다. “분별할 수 없는 꽃들의 통로처럼 나는 어떤 불귀로 그것을 그려 넣어야 할까?”(「당신의 잠든 눈을 만져본 적이 있다」)《문장 웹진/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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