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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술 경매를 하는 까닭

  • 작성일 2007-07-31

 

내가 미술 경매를 하는 까닭




김남희





“네, 다음 작품은 인동욱 작가의 <세상 생각>이라는 작품입니다. 이번 옥션에서 가장 치열한 입찰이 예상되는 작품 중 하나인데요, 저희 옥션에서 팔리기엔 사이즈도 너무나 커서 미안한 생각이 다 드네요. 인동욱 작가는 집에 참 관심이 많은 작가입니다. 평생의 소원이 자신의 집을 직접 짓는 거라고 하고요, 평상시에도 작품 제작 외에는 아르바이트로 건축 현장에서 직접 일을 하기도 하고 거기서 영감을 얻어 또 작품을 제작하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작품의 대부분이 인간의 희로애락이 담겨있는 집의 형상입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 높고 낮은 언덕을 따라 자리 잡은 키 작은 집들이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는데요, 이번 작품은 이색적으로 수많은 터널들이 한 화면에 가득하네요.”

액자 가격만 해도 정말 만만치 않을 것 같은, 내 키보다도 훨씬 큰 그림이 옥션에 출품되었다. 노르스름한 화면 가득 매운 터널 입구들 속에는 어떤 사연들이 있을까? 굳게 다문 단호한 입, 작지만 따뜻한 눈을 가진 인동욱 작가의 그림은 친근한 서울의 풍경 속에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어 인기가 높다.

드디어 내 어설픈 작가와 작품 소개가 끝나고, 그의 작품가가 6만원부터 시작된다. 10만원, 15만원, 30만원, 45만원, 역시 예상했던 대로 올라가는 속도가 엄청 빠르다. 어떤 성질 급한 분이 금세 50만원이라고 외쳐버린다. 그에 질세라 여기저기에서 일고여덟 명이 50만원을 외친다. 옥션파티가 벌써 다섯 번째지만 이렇게까지 열띤 경우는 처음이라 조금 당황이 되었다.

스튜디오 유닛의 옥션파티에서는 출품된 모든 미술작품들이 똑같이 6만원을 시작가로 경매를 한다. 그리고 상한가인 50만원을 부르는 사람이 두 명 이상 있으면 스케치북과 매직을 갖다 주고, 원하는 가격을 써서 동시에 들게 한 다음, 가장 높은 가격을 적은 입찰자가 낙찰을 받도록 한다. 보통은 많아봐야 두세 명쯤 되는 사람들이 상한가를 불렀었는데, 저렇게 여기저기서 팻말을 들고 있는 광경을 보니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대로 미술이 붐은 붐인가 보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라 미리 준비한 스케치북이 모자라는 데다 함께 온 사람들끼리 가격을 얼마라 적을지 의논하느라 경매장 안이 몹시 어수선했다.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내 마음이 갑자기 복잡해져서 엉겁결에 “모두들 진정해주세요!”라고 말이 튀어나왔다. 작가인 우리가 매해 힘들게 두 번의 옥션파티를 열고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작품을 내놓는 것은 백화점 타임 세일처럼 작품을 팔아치워야 하는 게 아니라, 작품 판매 그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인데 그 순간에는 그런 것은 중요치 않은 것 같아 겁이 나고 마음이 갑갑해졌기 때문이다. 그림을 자세히 보시고 잠재력 있는 작가의, 정말 마음에 드는 작품을 신중하게 사달라고 감히 당부드렸다. 경매장은 잠시 조용해졌지만, 이와 아랑곳없이 그 작품은 역대 최고가로 팔렸고 초반의 기세를 몰아 이날의 옥션에서는 많은 작품들이 상한가를 넘는 가격으로 주인을 찾아갔다.

사실 상한가를 넘는다 해도, 이 옥션파티에서 팔리는 작품들의 가격은 실제 작품의 가격과는 많은 차이가 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션마다 많은 작가들이 소중한 작품을 기증하여 그 수익금으로 매년 젊은 미술 작가들의 축제를 벌인다. 지금에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의 작품을 사겠다고 경매장을 가득 매우고 있지만 불과 3년 전만 해도 젊은 작가들은 설 자리가 전혀 없었다.


나 역시, 분명히 화가가 되고 싶어서 힘들게 미대를 갔건만, 막상 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여기저기서 취업하고 자리잡아가는 친구들 속에서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분명 화가는 직업이 맞을 텐데, 내가 하고 싶던 일이 이게 맞을 텐데 소속도, 시작도, 끝도, 어느 누구의 관심도 ‘졸업’을 마지막으로 갑작스럽게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갑자기 내 작품을 더 이상 누구에게도 보일 일이 없고, 전시되지도 않고 그 어떤 평가도(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더 이상은 없었다. 그래서 어처구니없게도 의욕적이었던 학교 ‘졸업 전시회’가 마지막 전시가 된 동기들도 참 많았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서 졸업한 지 2년이 다 되도록, 나는 미련도 버리지 못하고 그림 한 점도 완성하지 못한 채 미술계의 언저리에서 얼쩡거리기만 했다. 그러다가 어느 여름, 나랑 꼭 닮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림이 참 그리고 싶었지만 아무도 받아주지 않던 그 시기에 우리는 예술가의 위대한 자존심 같은 거 버리고 싼 가격이어도 좋으니 경매로라도 팔아서 우리 힘으로 전시를 열기로 했다. 그때 생각했던, 일반 사람들도 부담 없는 그림 가격 6만원~50만원이 지금까지 우리가 처음의 마음을 잊지 않도록 지켜온 경매의 룰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비장했던 것 같아서 웃음이 난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우린 3년째 작가들의 축제인 오픈스튜디오 전시를 열 수 있었고, 여러 신진작가들은 기획자를 만나서 새로운 전시에 참여할 기회를 얻거나 평생 작업하며 성장할 것을 옆에서 함께 응원해줄 팬을 만난 경우도 꽤 있었다. 이 옥션파티에서 처음으로 작품을 사보는 사람들도 많아서, 그들도 우리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작품을 사갔던 것 같다. 그래서 좀 아름답지 않거나 덜 성숙된 것도 진정성이 느껴지는 작품들은 좋은 주인을 찾아갔다. 하지만 이번 옥션파티에선 지금껏 해 온 4회까지의 경매와 분위기가 달리 우리 손을 떠난 작품은 미술 ‘상품’이라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했다. 깊이 있는 작품도, 상업성이 다소 떨어지는 것은 시작가에도 팔리지 않아 충격을 주었다.

경매장을 가득 매운 손님들의 열기에 목이 타 가끔 얼음물을 들이키며 진행한 옥션이 중반을 훌쩍 넘어 내 작품의 차례가 되었다. 작년 장마 때 그렸던 파란 그림 <당신이 잠든 동안에>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그림 그리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대상은 많은 영감을 주고, 여러 가지 모습으로 그 속에 등장하기 마련인데, 내 그림 속에서 그 사람은 깊은 최면에 걸린 것처럼 큰 새가 앉은 집의 지붕 아래에서 잠들어 있다. 집 바깥에 큰 태풍이 와서 나무가 흔들리고 온 세상이 물에 잠겨가도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듯이 고요히 잠들어 있고 절망한 내가 비와 함께 하늘에서 내리고 있다. 이 그림을 그릴 때 참 안타깝고 마음이 아파서 그랬는지 그림도 영락없이 슬프다. 잠시 한숨을 쉰 다음, 떨림을 감추고 더듬더듬 내 그림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가끔 내 그림이 어렵거나 심오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은 너무 적나라하고 직접적이어서 일부러 감추거나 은유로 표현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말로 설명하고 싶진 않았지만, 뭐 어쩌랴. 점점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말을 이어갔다.

여느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작품 하나하나가 내 분신이고 조각이어서 보낼 때는 늘 사가는 사람에 대한 고마움과 심란함이 교차한다. 더군다나 이번에 내놓은 그림은 아끼는 작품이지만 색도 내용도 어두워 보이니까 분명히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주지도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주최측이면서 동시에 작가인 나는 이번 옥션에 이 작품을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마지막 선택의 순간까지 고민이었다.

좀 길어진 설명을 끝으로 6만원부터 경매가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경매에 내놓은 것도 아니고, 어두운 그림이니까 (사람들은 대부분 밝은 그림을 좋아한다) 당연히 비싼 가격에 팔리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늘 경매가 시작되면 심장이 머릿속에서 뛰는 것만 같다. 어찌 흘러갔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예상했던 것과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가격으로 낙찰이 되었다.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바로 다음 작품이 나왔고, 다시 평정심을 되찾고 나머지 작품들에 대한 설명을 차분히 마쳐 모든 경매는 그럭저럭 잘 끝났다.

여느 때처럼, 옥션파티 뒤에는 힘난 작가들, 좀 좌절한 작가들, 그리고 낙찰 받은 손님들과 실패한 손님들의 무성한 무용담을 비롯해서 함께 파티를 만드느라 스태프로 수고한 동료 작가들의 많은 이야기들이 남았다. 그리고 우린 다시 일상생활 속으로 돌아왔다.

이제 나는 9월에 아주 자그마한 공간에서 열리는 첫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개인전’이라는, 그것도 ‘첫 번째 개인전’이라는 사실이 부담스러워 준비하는 요즘이 힘들다. 그런데 이번 옥션에서 그 파란 그림을 사가신 분이 다행히 그것을 좋아해주셔서 가끔 힘내라는 압박의 전화를 주신다. 누군가가 지켜봐주고 기다려준다는 것은 참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다.


아직 그 어떤 것도 정해지지 않았던, 키도 지금보다 한참 작았던 소녀였을 때, 나보다 훨씬 감수성이 예민했던 한 녀석을 떠올리게 된다.

“내가 제일 두근거리는 순간은 낮의 풍경에 저녁이 깔리기 시작하는, 그 파란 순간이다. 너도 그 ‘순간’ 알아? 굉장히 짧은 찰나야. 그 시간에 대체로 사람들이 일을 끝내고 어딘가로 갈 준비를 시작해. 어떤 날엔 느끼지도 못한 채로 밤이 되기도 해. 내가 언제를 얘기하는지 알지?”

물론 알고 있었다. 친구가 말했던 그 ‘파란 시간’은 나도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느끼는 날이면, 까무잡잡한 얼굴에 진한 눈썹이 예뻤던 내 짝이 소곤거렸던 게 기억났다. 그때도 이미 내 꿈은 화가였는데, 손끝으로 끼적이는 재주는 조금 있었지만, 항상 눈이 꿈꾸고 있는 것 같은 풍부한 표정의 그녀를 볼 때마다 내 스스로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이제 내년이면 함께 삼십대를 맞이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지만, 우린 딱 그만큼 나이를 먹은 채 너무나 오랜만에 얼굴을 맞대고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벌써 한 가정의 엄마이자 번듯한 학원 원장 선생님이 된 그녀가 삶이 지치고 재미가 없다고, 아직도 안개 속을 걸어가는 것 같은 나에게 말했다. (이미 많은 것을 이뤘지만) 아직도 자신이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하다며 그 먼 여정을 생각하면, 맞는지도 헷갈리고 벌써부터 지친다고 했다. 한참 넋두리를 늘어놓다가 문득 해이해진 자신을 다잡아야 한다며 반성을 하고 이내 또 한숨을 쉬었다.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나는 그렇게 토닥였다.

“나는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는 네가 부럽다. 결혼하지 말고 평생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 아주 늦게 하던가.”

그렇게 그녀도 나를 토닥였다.

“대신 대충하지 말고 제대로 해.”

“아이고, 알았다고~. 또 원장 티낸다.”

함께 한숨을 쉬다가 말고 같이 “흡!”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모두들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지면서 나름의 방식 속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조금은 궁금해하면서, 자꾸 자신만 길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어디에도 가이드라인 같은 것은 없기에 늘 막막한 마음으로 다음 스텝을 생각하고 여차하면 원래 내가 가고자 했던 길이 뭐였는지 놓치기 일쑤다.

어쩌면 우리가 옥션을 시작하게 된 것도, 가만히 있으면 길을 잃고 그대로 침몰하는 것만 같은 끔찍한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뭐라도 해야 했던, 살아 있음을 증명하려는 몸부림이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막막함은 그 다음의 길로 가는 데서 어쩔 수 없이 겪는 몸살 같은 것이다.문장 웹진/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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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고 자빠졌네

시 쓰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누군가에게 자주 두들겨 맞았고, 누군가에게 가끔 린치를 가하던 시절이었다. 이웃 여고 문예부 아이들이 어쩐지 예쁠 거 같아서 문예부실을 전전했다. 그리고 백일장에 나가곤 했다. 물론 남달리 예쁜 아이는 없었지만, 어쨌든 17세 남녀가 교복을 입은 채로 노래방에서 듀스나 룰라, 혹은 투투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모습은 남달리 아름다웠다. 되도록 빨리 노래방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사바사바, 시를 썼다. 빨리 써야 했다. 시는 최초의 노래였으므로. 엉덩이를 두드리듯, 천사를 찾아. 발라드를 부르며 감정 과잉에 빠지는 철수에게 영희는 이렇게 말한다. 시 쓰냐? 그때 우리는 원고지를 눕히던 누런 잔디에서, 어두운 노래방에서, 혹은 밀도가 높은 교실에서 어떤 감정 속에 놓여 있었을까. 난 누군지 또 여기는 어딘지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분노에 가득 차 교복을 줄이고 담배를 숨기고 몰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수채화 대신에 야간 자율 학습 감독을 주로 하던 미술 선생은 또 말했다. 또, 또 시 쓰냐? 시화전 제출 작품에서 피 흘리는 고등어를 그려 놓고 ?어느 고딩의 죽음?이라 제목을 붙이며 나는 전위를 담당한 듯 당당했다. 부끄러움이 없는 남자였다. 미술 선생에게 욕을 먹을 때에도, 맞을 때에도 나는 부끄러움을 몰랐다. 대한민국 학교 다 족구하라 그래. 시 쓰고 자빠졌다, 정말. 정말이란 말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본다. 오래 생각하는 버릇은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최대한 짧고 단순하게 사고한 것으로 보이는 일들이 생각보다 빠르고 무식하게 벌어지고 있다. 정말? 시집을 묶어내던 중에 바위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 그 부엉이는 정말 새였을까. 도심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었다. 그 망루는 정말 구름이었을까. 모두 정말이냐고 정색하며 물어 볼 만한 일들이었다. 분노가 치민다. 지금 나와 싸우자는 건가? 그런데 싸우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아니다. 싸움은 끝났다고, 이제 싸움이 아닌 경쟁의 시대라고 배웠다. 나는 그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화가 났다. 사실 싸움보다 훨씬 경쟁이 무서웠다. 사건은 이미지가 되는 순간 거짓말이 된다. 이 모든 게 차라리 멋진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지만, 이것은 너무나 끔찍한 거짓말. 난삽한 이미지.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 그러므로 차라리 보이는 게 진실이라고 믿어 본다. 이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진실이 시의 배후가 되어 시에 맘껏 개입해도 나는 좋다. 시가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기꺼이 네가 그렇게 하라. 가져간 나의 반쪽! 때문인가. 이제 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리얼리스트 되자. 모던한 리얼리스트가 되자. 모더니스트가 되자. 리얼한 모더니스트가 되자. 장난하느냐고? 그렇다면, 불길한 장나니스트라고 해 두지 뭐. 꼴에 시랍시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시가 좋다. 그리고 시가 밉다. 사랑하고 미워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처음 증상을 보일 때는 이렇게 데뷔를 하고 시를 쓰리라 짐작하지 못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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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15
일본 소설, 한국 시

일본 소설, 한국 시 한성례 한국에서 일본소설의 베스트셀러 현상 한류바람이 뜨겁게 일본 열도를 달구기 시작한 2000년 이후부터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해왔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많은 작가가 나올 정도로 한국은 일본소설 홍수 시대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일본소설가들조차도 왜 일본소설이 한국에서 그렇게나 많이 팔리는지 몹시 궁금해 한다. 이에 대한 일본 신문의 인터뷰나 원고의뢰가 있을 적마다 나는 현재 한국에서의 한국시에 비유해서 설명을 한다. 이전에도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종종 많이 팔렸다. 70년대 중반에 첫 출간된 무라카미 류(村上龍)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해적판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출판금지서임에도 안 읽은 사람이 없을 만큼, 문학이나 예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필독서이고 바이블이었다. 1999년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어 커버에 비닐을 씌워 19세 미만 구독불가로서 출간된 후에도 쇄를 거듭하며 읽히는 소설이다. 또한 1989년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란 이름으로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소설은 당시 크게 각광을 받았고 지금도 계속해서 읽힌다. 당시 한국은 민주화 쟁취와 맞물려 자의식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향하던 시기였다.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상태여서 사회,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했고, 급변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감, 고독, 상실감 등이 당시 한국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과 겹쳐지면서 이 소설에 크게 공감했다. 더욱이 하루키의 가독성 높은 문장은 금방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한편으로 문학의 구도자 같은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의 소설도 여러 편 번역 소개되었는데, 이는 주로 문학 창작자들이 마니아였다. 하지만 일본소설의 인기는 단편적일 뿐 전반적인 경향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구소설이 중심을 이뤘다.그러던 것이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쓰지 히토나리, 히라노 게이치로, 요시다 슈이치 등 젊은 작가와 미야베 미유키, 스즈키 코지,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미스터리 소설과 나오키 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 수상작이 2000년 이후에 대거 한국에 번역 소개되었고, 대형서점에는 코너가 별도로 마련될 만큼 일본소설은 인기를 끌고 있다. 왜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일본소설은 재미있다. 독자를 의식하고 소설을 썼다는 게 금방 느껴진다. 말하자면 자신의 상품을 사줄 소비자의 위치에서 창작을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비현실적인 주인공을 통해 현실에서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의 일탈을 꿈꾸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일본소설의 주인공 젊은이들은 특별한 목표도 없고, 무기력하며 수동적이고, 나약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과 기존 질서에 따르지도 않고, 세상을 약간은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보편적인 부와 명예, 사회적인 안정 등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독특한 상상력과 가독성 높은 문장도 한 몫 한다. 최근 일본과 한국에서 밀리언셀러 판매 기록을 갱신하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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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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