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자본주의를 그리다
- 작성일 2013-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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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자본주의를 그리다
– 소설가 서유미 인터뷰
고봉준
마지막 인터뷰의 대상은 소설가 서유미다. 이 결정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작’과 ‘끝’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것들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마지막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끝’이라는 것이 심리적 압박으로 다가왔다. ‘끝’을 함께할 작가를 선정하는 일은 ‘시작’을 함께하는 작가를 선정하는 것만큼 어려웠다. ‘인터뷰’라는 형식이 비록 작가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가십 정도일지 몰라도, ‘모든’ 작가를 인터뷰하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거기에는 선택의 시선이 개입하기 마련 아닌가. 그렇다면 인터뷰를 진행하는 나 자신은 물론이고 인터페이스를 통해 인터뷰를 읽을 독자들에게도 조금이나마 설득의 요소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쩌면 처음에 생각한 ‘끝’은 서유미 작가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런 결정 없이 진행해 온 인터뷰였으니 애초에 정해진 ‘끝’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서점에서 우연히 펼쳐든 『당분간 인간』이라는 소설집이 이 인터뷰의 결정적 계기였다. 서유미 소설가의 미덕은 자본주의적 현실의 일상에 밀착된 문제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 문제로 말미암아 자본주의적 욕망과 일정한 거리두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소설적 문제의식과 경향이 곧바로 문학의 ‘가치’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그 둘 사이에는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 나는 『당분간 인간』에서 그 ‘어떤 것’을 느꼈다. 이 작품집에서 작가는 시대를 담는 자신만의 문법을 발견한 듯하다. 『당분간 인간』의 작가, 그녀를 만났다.
▶ 고봉준 :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두 개의 질문으로 가벼운 몸 풀기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국문학을 전공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대학 다닐 때는 어떤 학생이셨나요? 대학 생활, 등단 무렵까지의 문학수업은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서유미 : 너무 멀어서. (웃음)
▶ 고봉준 : 기억이 안 나세요? (웃음) 국문과를 나오셨는데요, 보통 국문과에서 창작을 하는 학생들은 드물잖아요?
▶ 서유미 : 단대 국문과가 고전이 강한 편이어서……. 암튼 공부를 잘 안 하는 학생이었어요. 비 오면 학교 안 가고……. (웃음) 좀 그런 편이었어요. 방탕은 아닌데, 게으르고 좀 그랬던 거 같아요. 지나고 나서 후회할 때도 많았는데, 어떤 사람의 인생에는 약간 늘어져 있는 시기랄까, 바닥에 붙어 있는 시기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면에서는 나름 의미가 있었던 거 같아요. 졸업할 때 외환위기(IMF)가 터졌거든요. 토익 공부를 하거나 이러진 않았지만 시대적인 불운까지 겹쳐서 취직할 상황도 아니었고, 과외도 하면서 지냈는데, 오히려 그렇게 지내게 되니 글 쓰는 일에 대한 열망이 생기더라고요. 그 전에는 좀 느슨하다가…….
▶ 고봉준 : 그럼 대학 다닐 때도 글을 쓰겠다,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있었던 거네요?
▶ 서유미 : 글 쓰려고 국문과를 갔었으니까요. 그때는 문창과가 워낙 적었으니까요. 꼭 소설가가 되겠다 는 건 아니었고 막연하게 글 써서 먹고사는 사람? 그때는 기자를 많이 염두에 두었어요. 실제로 4학년 때는 약 반년 동안 잡지사 아르바이트도 했었고요. 근데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글 쓰는 게 주가 아니고 잡무가 주어더라고요. 그래서 이건 아니다 싶어서 금방 포기했죠. 그러다가 역시 4학년 때 교내 문학상에 소설이 당선되었어요. 그래서 ‘소설가도 하면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좀 안이한 생각을 하다가(웃음), 정식으로 회사를 다닌 것은 아니지만 돈을 벌면서부터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커지더라고요. 학교 다닐 때 좀 열심히 할 걸 하는 생각도 좀 들고요. 그 후에 취직해서 회사 다니면서도 (그때는 잡지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신춘문예를 많이 할 때라서) 열심히는 못 쓰면서 겨울만 되면 왠지 해야 할 것 안 하는 것 같은 느낌에 계속 시달리면서 몇 년간 회사 생활을 했어요.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같은 과 선후배 사이인 신랑과, 그 전에도 그런 얘기 서로 나누긴 했는데) 나이가 이제 서른이 넘으니까 주변 어른들 이야기(자기 원래 이런 사람 아니었고, 내 인생 이렇게 될 줄 몰랐다는 이런 식의)에 많이 공감이 되더라고요. 어느 순간 우리도 서른이 넘고 금방 저렇게 50대가 되면 인생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겠다 싶으니까 겁도 나고, 어차피 가진 것도 없으니까 버릴 것도 없는데 원 없이 한번 글을 써볼까, 그래야 나중에 후회라도 안 하니까, 해서 2005년에 서울 집을 정리하고 원주로 갔어요.
▶ 고봉준 : 글을 쓰기 위해 원주로 가신 거예요?
▶ 서유미 : 2년 동안 그냥 원 없이 읽고 쓰자, 그동안 일도 많이 했으니까 좀 쉬기도 하면서. 이런 생각으로 2년 동안 원주에서 지냈어요.
▶ 고봉준 : 2007년에 계간《문학수첩》에 장편이 당선되어 등단을 하셨는데, 또 제1회 ‘창비장편문학상’도 받으셨어요. 같은 해에 두 개의 상을, 그것도 일종의 신인상을 두 개 받은 셈인데 거기에 대한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 서유미 : 하나는 마감이 6월이었고, 하나는 9월이어서 신인상을 받고 그냥 바로 또 낸 셈이었어요. ‘창비’를 뒤늦게 알았어요. 미리 알았다면 어쩌면 ‘창비’에 먼저 내거나 그랬을 수도 있었을 텐데, 어쨌든 재등단이라기보다는 두 편의 장편을 그때 이미 다 완성을 했었던 거죠.
▶ 고봉준 : 원주에서의 2년 동안?
▶ 서유미 : 네. 그때 두 편을 썼었고, (문단 시스템은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두 편이 다 책이 됐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보냈어요. 저도 저에게 일어난 일이지만 제 일 같지 않은……. (웃음)
▶ 고봉준 : 기적 같은?
▶ 서유미 : 그건 정말 꿈같은 일인 거죠. 어떻게 살면서 그런 일이 있었을까? (웃음)
▶ 고봉준 : 지금은 소위 문단 ‘시스템’에 대해 좀 익숙해지셨어요?
▶ 서유미 : 그건 아닌데 어떻게 하면 책이 나오는구나, 이 정도는 좀 알게 되었죠. 내가 두 권 분량의 작품이 있다고 두 권의 책이 나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이런 걸 좀 아니까요.
▶ 고봉준 : 작품에 대한 이야기 좀 해볼까요? 어쨌든 등단작은 『판타스틱 개미지옥』입니다. 백화점에 관한 이야기고요. 백화점의 꽃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세일기간, 그곳에서 근무하고, 또는 구매하고 있는 여성들, 현대인들의 물질적 욕망에 관한 이야기라고 읽어도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처음 읽으면서 에밀 졸라의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실제로 백화점이라는 공간이 이 세상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으로 쓰신 건가요? 작품 구상 과정 좀 들려주세요.
▶ 서유미 : 처음 생각했던 건 대학교 때였어요. 그때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깜짝 놀랐어요. ‘아, 여기가 그냥 하나의 월드구나! 아무것 없이도 이 안에서 충분히 사람이 먹고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약간 소름이 끼쳤죠. 그때는 학생이라 단편을 쓸 때였는데 그때 생각으로도 이것을 단편으로는 못 쓰겠다 생각했어요. 언젠가 꼭 한번 써봐야지 하고 계속 묵혀 두었거든요. 그러고 나서 나중에 첫 장편을 써야 되는데 가장 먼저 떠올랐어요. 제가 이걸 써야겠다고 생각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첫 장편이니까 배경이 좁고 한정될수록 쓰기가 좀 매력적인 데다가 그 백화점이 제가 처음에 생각했던 그 월드, 공화국 같은 느낌이었어요. 아, 이걸 가지고 자본주의에 대해서 한번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 고봉준 : 자본주의적 물신의 세계인 ‘백화점’을 중심으로 한 작품을 등단작으로 썼다는 건 조금 의외였어요. 아무래도 주제가 무거운 것 같았거든요.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건 미처 몰랐어요. 아르바이트생의 눈에 비친 백화점 풍경이라…….
▶ 서유미 : 아르바이트를 안 했다면 아마 상품을 사는 사람 입장에서 가질 수 없는 것에 훨씬 더 무게를 두었을 텐데, 아르바이트 경험 덕에 거기서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쓸 수 있었던 거 같아요.
▶ 고봉준 : 공식적으로는 두 번째 소설인 『쿨하게 한 걸음』도 비슷한 시기에 쓰셨다고 하셨는데, 그럼 이 작품도 본인의 30대가 포함되어 있는 작품인가요?
▶ 서유미 : 그렇죠.
▶ 고봉준 : 그럼 원주에서 원주 생각은 안 하고 서울 생각만 한 거네요?.
▶ 서유미 : 아이러니한 게, 원주에서 지내며 쓴 작품들이 사실 굉장히 도시적이잖아요. 백화점 이야기도 그렇고, 30대 성장통도 결국 도시 얘기여서. 제가 원주 가서 느꼈던 것 중 하나가 도시 안에 있을 때는 오히려 도시가 잘 안 보인다는 거였어요. 하지만 조금 떨어지니까, 원주만 해도 아직 도시와 시골이 공존하는 곳인데, 훨씬 선명하게 그림이 보이고 쓰기에도 훨씬 좋았었죠. 지하철만 해도 그냥 타고 다니며 출퇴근할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떠나서 머릿속으로 그리니까 그림도 훨씬 선명하고 의미도 더욱 분명히 다가와서 쓰기가 더 수월했던 거 같아요.
▶ 고봉준 : 판타스틱 개미지옥』과 『쿨하게 한 걸음』을 쓰실 때 스케치라든가 자료조사는 많이 하셨어요? 아니면 기억에 의지한 재구성에 가까웠나요?
▶ 서유미 : 저는 단편을 먼저 쓰고 시작을 하는 편이에요. 초고처럼 단편을 뽑아 놓고 나서…….
▶ 고봉준 : 일종의 ‘틀’ 같은 걸 만들고 시작하신다는 얘기군요.
▶ 서유미 : 취재 다니면서 작업하는 편은 아닌데, 필요한 것은 조사도 하고 물어도 보고 그렇게 하는 편이에요.
▶ 고봉준 : 세 번째 작품은 『당신의 몬스터』예요. 이 작품도 역시 소비에 관한 얘기잖아요? 사람들은 누구나 속물임을 숨기려고 하지 않지만 때로는 그걸 위장하기 위해 여러 행위를 하게 되는데, 읽으면서 마음에 들어온 멋진 표현이 ‘사람들 마음에 몬스터가 있다’라는 거였어요. 어떻게 보면 전반적으로 여기에 등장하는 노숙자, 작곡가, 여배우, 회사원 같은 사람들이 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도 감내할 수 있다는, 이것은 어쩌면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대가로 무언가를 얻게 되는 현대판 파우스트 같았거든요. 그리고 그게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고요. 돈과 소비가 모든 것이 되는 세상에 대한 비판으로 읽히기도 했어요.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이 세 작품 다 출구가 없다는 거였어요. 출구가 없다는 것이 작가가 보는 세상의 진짜 모습이겠죠?
▶ 서유미 : 그런 거 같아요. 사실 단편들도 그렇지만 출구가 없다거나 디스토피아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고, 자본주의 안에서 작은 나사와도 같은 인간에 대해서 써보자, 라고 생각했을 때 이미 저 스스로 출구는 없다고 답을 내리고 썼던 것 같아요. 쓰고 나서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 고봉준 : 평론가가 아니라 독자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여기 나오는 캐릭터는 사실 비슷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어서 반복된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이 반복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왠지 이런 악한 것들을 반복해서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에게 선(善)하게 살아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었죠.
▶ 서유미 : 그럴 수 있을 거 같아요. (웃음) 특히 『당신의 몬스터』의 경우,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욕망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컵에 든 물과 같아서 누구에게나 컵도 있고 물도 있는데, 수위도 저마다 다르고, 물이 넘쳐서 컵을 삼켜버리는 것처럼 욕망(자기 안의 몬스터)이 스스로를 삼켜버리는 순간이 오면 누구나 이렇게 될 수 있다, 이런 거였어요.
▶ 고봉준 : 작가 인터뷰에서 제가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어요. 소설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우선순위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 서유미 : 약간 바뀌는 거 같아요. 앞의 장편들을 쓸 때는 이야기적인 재미, 그러니까 제가 가진 작은 철학(자본주의 안의 인간, 자본주의가 얼마나 비정한가와 같은)을 어떻게 재밌게 풀어낼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면, 요즘은 그보다는 작품 속 인물이나 결이 되는 문장의 깊이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쓴 작품들을 다시 한 번 보면서 아, 이게 달라지고 있구나, 내 손을 떠난 예전의 나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고봉준 : 세 편의 장편이 모두 도시와 자본주의에 관한 이야기예요. 의도한 것인가요?
▶ 서유미 : 의도했던 건 아니에요. 가장 흥미롭고 쓰고 싶던 걸 쓰다 보니 교집합이 많이 생긴 것 같아요. 비록 인물이나 상황은 다르지만.
▶ 고봉준 : 딱히 386 세대에 포함되는 것도 아닌데(웃음), 왜 이렇게 자본주의에 대한 증오나 비판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해보았어요.
▶ 서유미 : 아마 IMF, 회사생활, 20대 후반에서 30대를 넘어가는, 지나온 그때가 회상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 즈음이 자본주의 안에서 격변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친구들을 만나도 얘가 학교 다닐 때 어떤 애였다, 라는 의미는 사라지고 어느 회사 다니고, 얼마 번다, 집이 어디고…… 이런 게 완전한 가치가 되는 걸 보고 비정하고 무섭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 고봉준 : 현대사회를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로 그려내고 있는 작가가 많지는 않지만 여러 명 있잖아요. 조금씩 다르게 세상을 보는 거 같고, 출구 문제에 대해서도 다르고, 경쟁으로 보느냐 폭력으로 보느냐 저마다 다르겠죠. 그런데 전통적인 소설의 독자들 가운데 다수는 이런 디스토피아적인 감수성을 좋아하지 않는 듯해요. 현대사회가 그렇다는 걸 부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미 그러한데, 왜 그런 세상의 모습을 소설에서 반복해서 확인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만일 그런 질문을 직접 받는다면 뭐라고 답하시겠어요?
▶ 서유미 : 그건 소설가들이 늘 고민하는 문제인 것 같아요. 어렵죠. 세상이 힘든 것 다 아는데, 꿈과 희망을 주는 결이 밝은 걸 쓰는 게 좋은가? 뭘 써야 될까? 그런 고민 많이 해요. 현실을 해부해서 나만의 현미경으로 본 것을 보여주기 위해 더 까야 할 것인가? 영원한 고민인 것 같아요.
▶ 고봉준 : 젊은 세대의 독자일수록 재밌다,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 같고, 일정한 나이 이상이 되면 불편하다, 굳이 이렇게 써야 하느냐는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아요. 생물학적인 연령과 독서 느낌을 일반화하면 위험하겠지만, 경험적으로는 그런 것 같아요. 대개 후자에 속하는 분들은 문학교육을 전문적으로 받았거나 작가 지망생 경험이 있었던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최근 한국 소설의 경향이 그분들이 소설에 대해 갖고 있는 기대감과 일치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반응을 하기도 하죠. 이제 『당분간 인간』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작품은 다른 작품들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는 걸 느끼면서 읽었어요. 2010~2012년에 발표된 작품만 묶었고 (작가의 말에) 두 편을 뺐다고 되어 있던데, 최근 들어 단편을 쓰신 건지, 아니면 주제라든가 이런 것 때문에 뺀 건지 궁금했어요.
▶ 서유미 :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쓴 작품들을 실었고, 2007년, 2008년에 쓴 두 작품을 뺐어요. 주제 때문이라기보다는 좀 고치다가 버렸어요. 너무 미숙해서.
▶ 고봉준 : 혹시 그 작품들이 신춘문예 투고작들은 아니었나요?
▶ 서유미 : 그건 아니었어요. 장편 쓸 때 같이 썼던 단편들이거든요. 출판사에 ‘뺄까요?’ 하고 물어봤더니 흔쾌히 동의하시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나만 빼고 싶었던 게 아니구나, 모두가 빼길 원하는구나, 그런데 빼고 나니까 공교롭게 주제가 다르긴 다르더라고요.
▶ 고봉준 : 확인할 수 없는 작품이니 더 궁금하네요. 어떤 내용의 작품인지 조금만 알려주실 수 있나요?
▶ 서유미 : 하나는 ‘문장 웹진’에 발표한 작품인데요. 20대 초반의 어린 커플이 놀이공원에서 길을 잃어버린 아이를 봐주다가 부모에게 연락을 해서 결국 찾아 줬는데, 고맙다고 하고 그냥 가버리자 열 받아서 정말로 그 아이를 유괴한다는, 굉장히 치기어린 작품이었어요. (웃음)
▶ 고봉준 : 굉장히 재밌는 발상인데요? (웃음)
▶ 서유미 : 그걸 제가 못 써가지고요. (웃음) 두 번째는 고통에 관한 얘기였어요. 소리에 대한 고통인데, 제가 쓰는 거와는 조금 다르긴 했지만 나중에 꼭 써보고 싶은 주제예요. 조금 어렵더라고요.
▶ 고봉준 : 장편과 단편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지만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 고유성이 사라진 느낌이 들었어요. 인물들이 이니셜 또는 번호로 표기되는 경우도 많고요. 장편과 단편을 비교할 때 인물의 호칭이나 이름을 부여하는 방식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은 왜 그런 걸까요?
▶ 서유미 : 단편을 쓰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장편에는 여성 화자를 즐겨 쓰는데, 단편에는 남성 화자가 주로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었어요. 단편과 장편이 어떻게 다를까? 같은 이야기인데, 분량의 차이는 분명히 아닌데, 이건 저처럼 장편으로 등단한 작가들이 가지는 기본적인 고민인 것 같아요. 단편이 틀이 좀 확고하게 정해져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이야기를 꽉 짜다 보니깐 인물이 하나의 부속품처럼 느껴지고, 하려는 이야기 안에서 인물에게 깊이 들어가지지 않더라고요.
▶ 고봉준 : 아마도 인물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인물이 놓여 있는 상황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된다, 이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 서유미 : 네.
▶ 고봉준 : 또 하나의 큰 차이가 있어요. 장편은 전통적 방식(리얼리즘적 방식)으로 쓰인 데 반해 단편은 비리얼리즘적 방식으로 쓰였는데, 비유하자면 카프카적 부조리한 느낌도 들고, 이런 게 작가의 의도겠죠? 앞의 세 편을 전통적 방식으로 썼다가, 단편에서는 소설 문법의 변화를 주는 게 쉽지 않을 텐데요?
▶ 서유미 : 어렵죠. 몸이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른 것 같아요. 설계도 훨씬 꼼꼼하고요. 장편은 이야기를 크게 잡고 인물도 크게 설정하고 물 흐르듯이 기본 골자를 주되 애드립 치고 싶으면 쳐라, 이런 느낌이라면, 단편은 꽉 짜인 대본인 거죠. 제 작품을 다시 볼 때 밑그림을 세게 그린 것을 조금만 지울 수 있다면 세련되고 더 좋은 단편이 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아직도 그걸 잘 모르겠어요. 설계한 게 다 보이는 느낌이더라고요.
▶ 고봉준 : 아직까지 서유미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한 본격 평론이 나오지 않아서 속단할 수는 없지만, 저는 자본주의의 무가치함과 부조리함을 드러내는 방식으로는 장편보다도 단편이 더 파워풀하다고 느꼈어요. 뭐랄까, 문학적으로 센 느낌?
▶ 서유미 : 훨씬 문학적인? (웃음)
▶ 고봉준 : 장편은 영화로 만들면 딱일 것 같았고, 단편은 더 문학적인 고민이 많이 들어간 이야기처럼 느껴졌어요.
▶ 서유미 : 장편은 좀 더 리얼리티가 살아 있게, 흐르게, 자유롭게, 상징도 걷어내고 이야기로써 쓰고, 단편은 틀을 잡고 상징도 넣고 더 힘을 줘서 그렇게 쓰자, 라고 저도 모르게 구분하는 것 같아요.
▶ 고봉준 : 소설집에 실린 작품 가운데 「타인의 삶」은 제목을 바꾸셨어요. ‘감시’의 문제를 다뤘고, 카프카적 느낌도 살짝 들었어요. 용도에 대한 고민 없이 반복적 행동을 하는 장면은 관료사회에 대한 알레고리처럼 읽히기도 하고요. 가장 재밌게 읽은 작품은 「검은 문」이었어요. 마치 영화 〈 큐브 〉와 같은, 분명히 출구가 있는데 그곳이 출구인지 아닌지 확정적이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공포가 있고, 양면성이 있을 것이라고 읽었어요. 사람들이 숫자에 대한 강박이 있는데, 그건 우리가 갖고 있는 숫자에 대한 강박(아파트 평수, 자동차 배기량 등)을 연상시키더군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압축하면, 조그만 공간 안에 영문도 모르고 갇혀 있다는 건데, 그건 정말 영화적인 것이거든요. 한편으론 카프카적이고 한편으론 영화적인 발상, 〈 올드보이 〉 비슷한, 어떻게 착상하셨어요?
▶ 서유미 : 사실은 ‘동굴이론(플라톤)’처럼 생각했었어요. 뭐가 실체이고 뭐가 그림자인지 모르는 그런 것에 대해 문득 생각하다가 이 이론을 다 담아서 쓸 수는 없지만 갇힌 공간과 두려움에 대해 써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으로 하나씩 그림을 만들어 갔었거든요. 사실 이 작품이 서평 올리시는 분들의 글을 보면 제일 모르겠다고 하는 작품 중 하나예요. 제 소설이 어렵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아마도 딱딱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저도 개인적으로 되게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 고봉준 : 세 권의 작품들(장편)은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주로 문장 형식으로 드러난다면, 이 소설집에선 그게 주로 장치로 다뤄져서 그런 것 같아요. 마지막 질문이네요. 창작자들의 자의식이라고 해야 될까요? 어떤 작가들은 대중과 부딪히는 지점을 많이 만들기 위해 편한 구성을 하는 경우가 있고, 어떤 작가들은 작품세계의 자율성 때문에 자기관계성 같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데, 제 느낌으로 세 권의 장편은 대중적 코드가 강했고 소설집은 그것과는 다르다고 느꼈는데, 실제로 작품을 쓰실 때 또는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 어떤 느낌을 갖고 계세요? 소설은 어떠해야 한다, 라고 생각하시는 게 있나요?
▶ 서유미 : 둘 다 소중한 가치이고, 두 방향 중 어느 하나에만 부합해서 쓰더라도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대중의 구미에 맞춰서 유치하지 않게, 세련되게 쓰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문학적 가치를 충분히 구현하는 일도 굉장히 어렵잖아요. 사실 작가에게는 누구나 그 둘 다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하지만 그게 실은 글을 망치는 지름길인 것 같더라고요. 이도 안 되고 저도 안 되는……. 사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이번에는 대중에게 맞춰 보겠어’라든지 ‘이번에는 문학적 기량을 펼쳐 보겠어’, 이럴 수는 없는 거잖아요. 굉장히 어려운 것이긴 한데. 저는 쓰고 싶은 것이 있으면 리스트를 적어 놓거든요. 그리고 계속 머릿속에서 생각해요. 이걸 쓴다면 어떻게 쓸까? 그중에는 물론 태생적으로 대중적인 이야기를 품고 있는 발상도 있고 문학적인 것도 있죠. 감성 자체가 이야기적인 게 잘 쓰일 때가 있고, 도식화된 안에서 꽉 짜인 것을 쓰면서 즐거움을 느낄 때도 있어서, 제 경우는 가장 쓰고 싶은 게 올 때 쓰는 것을 선호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저도 역시 두 개의 욕심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이야기에 가장 잘 맞는, 이야기 자체가 갖고 있는 걸 잘 구현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고봉준 : 만일 누군가가 서유미 소설의 장점은 가독성이 높은 것인데, 단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그 장점이 곧 단점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잘 읽힌다는 건 소설의 미덕인데, 바로 그 미덕 때문에 때로는 심각한 이야기들이 그냥 소비될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이 점은 좀 고민해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 서유미 : 차기 장편을 쓰면서도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이야기라는 게 달리는 부분이 있으면 반드시 멈추는 부분도 있어야 하는데, 독자로 하여금 숨을 돌리면서 앞의 이야기를 정리해 주는 지점도 있어야 하는데, 내 글은 계속 달려가는구나, 끝까지. 열심히 달려가고 독자는 숨가쁘고……. (웃음) 그 완급조절이나 내 이야기 안에서 어디서 달리게 하고 어디서 생각하게 할 것인지 보여주는 게 필요하면서도 어렵더라고요.
▶ 고봉준 : 그런 면에서 저는 단편이 더 좋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 작가가 장편을 쓸 때는 이런 호흡이었는데, 단편을 쓸 때는 다른 호흡이어서 비집고 들어갈 데가 없다는, 흠잡을 데도 없다는 느낌이요. 장편이 이야기 중심이었다면, 단편은 구성 중심이다, 라고 말해도 될까요? 그런데 의도적으로 장편을 고집하신 건가요? 전업 작가로 생활을 하며 쓰다 보니 그렇게 되신 건가요?
▶ 서유미 : 그런 건 아니었어요. 신춘문예도 몇 번 내봤지만 잘 안 됐어요. 등단 무렵(2005~2007년 사이)에 장편상이 많이 생겼어요. 그때는 등단이 목적이었으니까, 등단을 준비하면서 이야기가 기니까 장편으로 준비한 거고, 단편은 단편을 쓰는 몸을 만드는 과정에서 만들었다가 두 편은 실패작으로 버렸던 거고, (작품집에 수록된 단편들은) 어떻게 보면 트레이닝 과정에서 나온 셈이죠.
▶ 고봉준 : 네. 이제 제가 준비한 질문이 끝났네요. 긴 시간 좋은 이야기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서유미 : 수고하셨습니다.
《문장웹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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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REWIND] 얼음이 어는 순간과 얼음이 녹는 순간, 그 슬픔의 음역 -강성은의 「고딕 시대와 낭만주의자들」(《문장 웹진》 2008년 6월호) 최하연(시인, 前 문장웹진 편집위원) ‘글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생각하면―.’ 떠오른 첫 문장은 이랬다. 이 첫 문장의 그 앞 문장은 없으므로, 돌아갈 곳이 없으니, 불능의 세계인데, 나는 없는 출발점으로 자꾸 돌아가고 있다. 어쩌면 나는 몇 덩어리의 문장을 쓴 뒤에, 원래의 첫 문장을 지우고 다시 썼는지도 모른다. 쓰던 글을 재차 읽어 가며 마지막 문장을 쓰고 나면, 그땐 첫 문장을 또 고치게 될까. 그렇게 고친 문장이 사실 저 앞의 문장이라면―아니 고친 뒤에 읽어 보니 아까 것이 나은 듯싶어 고민 끝에, 원래대로 돌려놓은 문장이라면―출발점 없는 출발점은 글 안에 있고, 여전히 불능한 첫 문장은 불능을 모른 채 남게 될 것이다. 2008년 5월호 문장 웹진엔 강성은의 시 「고딕 시대와 낭만주의자들」이 실려 있다. 이 글의 진짜 출발점은 사실 여기이다. 뾰족한 첨탑 위에 갇힌 누군가 구름에 편지를 써요 그럴 때 구름은 검은 빗방울을 뚝뚝 떨어뜨리지요 구름의 얼룩진 편지를 읽은 어떤 이들은 울음을 멈추고 검은 강물 속으로 몸을 던집니다 도시엔 무서운 전염병이 돌고 녹색의 박쥐 떼가 공중을 날아다닙니다 창백한 입술을 잃은 자들은 곧 두 손과 머리털을 잃고 두 눈알과 심장을 잃었지요 점점 희미해져 우리는 우리를 잃었지요 당신과 나의 비밀 이야기는 입속에서 입속으로 공기와 밤의 중얼거림을 통과하고 얼룩진 편지는 얼룩 고양이가 물고 밤의 담장 너머로 사라집니다 우리는 내일의 날씨를 예측할 수 있지만 내일의 악몽을 점칠 수는 없었어요 빗방울은 때로 격렬하게 내립니다 한 방울 뒤에는 수천만 우주의 모든 물방울들이 뾰족하고 오래된 첨탑 위의 편지는 전해 오는 이야기 속에서 날마다 더 아름다워져 갑니다 우리는 첨탑 위로 답장을 보내는 법을 모르고 얼음이 어는 순간과 얼음이 녹는 순간 슬픔의 음역을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고딕 시대와 낭만주의자들」 전문 회고가 실패의 알리바이를 지워 내듯, 전망이 이 지울 수 없는 실패의 유예이듯, 지속 가능한 내일에 대한 일반의 믿음 또한 불능을 모르는 불능의 세계이다. 이 세계는 언제나 힘이 셌다. 우리는 그것을 산문의 세계로 불렀고, 시는 산문의 세계로부터 이격해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나아가 그곳에서 늘 첫 문장을 시작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가 “내일의 날씨를 예측할 수 있지만/ 내일의 악몽을 점칠 수는 없”는 것처럼, 그렇게 시작한 시는 늘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산문의 세계로 붙잡혀 돌아오는 “내일의 악몽”이다. 이 정황에는 하나의 커다란 허방이 있다. 누가 누의 내일이 될 수 있는가. 혹은 되어야만 하는가. 시인은 “얼음이 어는 순간과 얼음이 녹는 순간 슬픔의 음역”을 발견한다. 그런데 빙점은 과연 물의 내일일까, 얼음
- 관리자
- 2025-08-01
[에세이] 스물의 체스 유지혜 생애 처음 체스를 배웠다. 체스는 내 왕을 사수하면서 상대의 왕을 공격하는 전략 게임이다. 내 편에는 총 16개의 기물이 주어진다. 앞줄에는 폰(pawn)이 줄지어 서 있고, 뒷줄에는 왕, 퀸 등 다양한 말들이 대칭을 이루며 자리하며 각 기물마다 고유한 움직임이 있다. 킹(king)은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움직임이 적다. 생존이 최우선 인지라 보통 다른 말들의 보호를 받으며 자리를 보존한다. 반면 작은 몸집으로 제일 많이 싸우는 건 앞줄의 작은 말 폰(pawn)이다. 그러나 나는 폰의 쓸모를 무시했다. 한 칸씩만 움직이는 폰이 지루했기 때문이다. 대각선을 가로지르는 비숍(bishop)으로 판을 압도하고 싶었고, L자로 움직이는 나이트(knight)로는 상대가 시야에서 놓친 구석을 공격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나는 근사하고도 빨리 이기고 싶었다. 결국 큰 말을 무리하게 내세우다 졌다. 그때 게임을 같이 두던 상대가 내게 말했다. 폰, 이 쫄병을 쭉쭉 내보내는 것도 중요해. 하찮아 보여도 얘가 뭘 지켜줄지 몰라. 체스판처럼 인생에도 전략과 기세, 무엇보다 여러 번의 기회가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너무 빨리 망하지 말라고, 인생에는 젊음이라는 폰이 주어지는 줄도 모른다. 폰처럼 젊은 날은 가치는 적은 대신 여러 개이기 때문이다. 아직 무엇이 될지 모르는 인생의 한복판에서 기껏해야 한두 걸음 내딛는 시기. 젊음은 헐값에 좋은 것을 쟁취할지도 모를 기회이다. 하지만 스물엔 그 누구도 전지적 작가 시점에 있지 않다. 앞수를 읽는 노련함은 없다. 가장 작은 몸집으로 큰 세상을 향해 나가는 폰의 시점일 뿐이다. 스스로의 위치조차 가까스로 가늠할 수 있을 뿐. 좀 더 가면 헐값에 잡아먹힐 것 같다는 불안이 몰려올 수도 있다. 더 대범했어도 되었다는 건 순전히 그 시기를 지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갓 성인이 된 2011년, 나에게도 스물이라는 핑계로 얼떨떨한 용기를 냈던 기억이 있다. 나는 대학에 진학하지도, 술을 마시지도, 첫 애인을 사귀지도, 여행을 가지도 않았다. 대신 압구정에 있는 모델 학원을 등록했다. 어릴 적부터 사람들은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인 내게 모델을 권했기 때문이었다. 지망했던 대학에 불합격한 나에게는 아득할 만큼 시간이 많았다. 뉴코아 아울렛에서 5만원을 주고 산 빨강색 게스 구두를 신고 몸매를 드러내는 옷차림의 나는 한쪽 벽 전면이 거울인 연습실에서 워킹을 연습했다. 우리 기수에는 타고난 것으로 먹고 살고자 하지만 그렇다 할 독기는 보이지 않는 이십 대 초반 언저리의 남녀가 모여 있었다. 자신감이 충만한 건지 없는 건지 분간하지 어려운, 겉멋이 잔뜩 들었지만 그로 인해 활기찬 사람들이었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몇몇 친구들과 나는 금세 친해졌다. 그들은 당시 유행했던 발렌시아가 가방을 어디서 제일 싸게 구할 수 있는지를,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립스틱의 품명을, 이마 보톡스의 효과를 알았다. 그들은 어른의 세계에 진입한 이들이었으나 나는 아니었다. 다들 택시를 타고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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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날마다 한 걸음 고수리 상경했던 날을 기억한다. 버스를 타고 다섯 시간을 달려 강남터미널에 도착했다. 대합실을 나서자마자 길을 잃었다. 인파 속에 덩그러니 나 혼자. 서울 한복판에 뚝 떨궈진 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서울의 첫인상은 삭막한 회빛, 그리고 몹시 추웠다. 눈이 푹푹 내리던 강원도는 사방이 희고도 따뜻했는데. 나는 목도리를 둘둘 고쳐 매고 한 걸음 내디뎠다. 서울은 복잡하구나. 시끄럽구나. 무심하구나. 아무도 웃지 않는구나. 애꿎은 지하상가를 헤매다 얽히고설킨 출구를 빙빙 돌다가 겨우 개찰구를 찾아 전철표를 샀다. 전철을 타 보는 것도 혼자선 처음 해 보는 일이었다. 덜컹덜컹 흔들리는 전철 손잡이를 붙들고 서서 노선도를 올려다보았다. 풀빛으로 주욱 이어진 선을 따라 도착할 역사는 ‘온수(溫水)’. 따뜻한 물이라는 이름이 그나마 위안처럼 스몄다. 온수역에 내려 자취방을 찾아갔다. 대로변 가로 이어진 인도를 한참 걸어가다가 멈춰 섰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새겨진 해태상을 맞닥뜨렸을 때, 기이한 위화감에 사로잡혔다. 돌아보니 ‘안녕히 가십시오 서울특별시입니다’라는 표지판이, 바로 맞은편에는 ‘어서 오십시오 경기도 부천시입니다’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나는 경계에 서 있었다. 아니, 이 기이한 기분의 실체는 기시감일지도. 불안하고 난처한 마음 한구석에 익숙하고도 지긋한 체념이 몰려왔다. 나는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서울과 부천 사이에 그어진 경계선을 한 걸음 넘어섰다. 거기에 내가 살 방이 있었다. 내 사정 역시 고학생들의 유구한 상경의 역사와 다를 바 없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고, 집안 형편이 어려웠고, 집세는 감당할 수 없으니, 학교 근처에 가장 싼 방을 수소문해 들어갔다. 상경해 처음으로 얻은 방은 월세 18만 원짜리 남녀공용 고시원 방이었다. 한낮에도 침침한 복도를 걸어가 방문을 더듬어 열 때마다, 엄마가 이 방을 안 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형광등부터 켰다. 창문 없는 길쭉한 방. 방문을 걸어 잠그고 웅크려 누우면 어둡고 눅눅한 관 속에 눕는 기분이었다. 얇은 합판을 덧대어 가른 방은 방음이 되지 않았고, 간간이 들리는 기침 소리와 통화 소리, 텔레비전 소리에 사람들이 나란히 누워 살아 있구나 실감했다. 아침마다 등교하는 대학교는 서울시 구로구 온수동에 있었다. 밤마다 돌아가는 고시원은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에 있었다.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고등학교 시절에도 그랬다.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3년을 유학하고, 졸업 후에 잠시 강원도 삼척시에서 지냈다. 삼척은 엄마의 고향이자 내가 중학교 시절을 보냈던 도시지만, 거기도 선뜻 내 고향이라고까지 말하긴 어려웠다. 나는 오래전부터 떠돌며 살았다. 아무도 모르게 함구해야 할 사정이란 게 삶을 짓누를수록 나는 가벼워져야 했다. 짐 하나만 꾸리면 잠시나마 살아갈 사람처럼, 짐 하나만 꾸리면 언제라도 사라질 사람처럼. 갑작스럽고 비밀스럽게
- 관리자
- 2025-08-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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