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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불룩이

  • 작성일 2008-03-06
  • 조회수 1,126

문학동네

 

우리 이웃들의 소소한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스케치하는 작가 이인환이 어른을 위한 동화 『내 친구 불룩이』를 펴냈다. 장애아 불룩이와 강아지 깜돌이의 시선을 통해 그리는, 때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기도 한 어른들 세상의 이야기는 지금의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만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래도 아직 버리지 못할 희망 하나를 선사한다.

너덜너덜 내 마음, 쓰다듬어줘

  ‘왕언니’와 살고 있는 강아지 깜돌이의 가장 친한 친구는 ‘불룩이’다. 늘 볼을 불룩하게 부풀리고 있는 불룩이는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어려운 장애아다. 불룩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건 같은 반 친구 김영이와 깜돌이뿐. 술집 ‘청수장’의 작부였던 불룩이 엄마는 불룩이를 버려둔 채 결혼해 떠났고, 혼자 남은 불룩이를 거둬준 것이 ‘청수장의 왕언니’ 할머니였다. 
  불룩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깜돌이와 불룩이는 ‘본부’로 뛰어간다. 집과 아래채 청수장 사이 언덕 중간쯤에 움푹 들어간 곳에 만들어놓은 그 ‘우리들의 본부’에서 둘은 군인놀이도 하고, 밑으로 펼쳐진 시내 풍경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본부’에서 불룩이는 더이상 어눌한 장애아가 아니다. 그곳에서 불룩이는 ‘백곰 일병’에게 호령하는 훌륭한 지휘관이 된다.

  그런데 간혹 불청객이 본부로 찾아온다. 대개는 화장실을 찾아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올라오는 어른들이다. 화장실을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불룩이와 깜돌이 옆에 털썩 주저앉아 신세한탄을 늘어놓는 것이다.
  백미러 만드는 회사 사장님이라는 아저씨는 지금 거래하고 있는 자동차회사 과장의 친척이 백미러 회사를 차리는 바람에 아저씨 회사의 거래를 빼앗기게 생겼다고 한숨을 쉬고, 월드컵을 앞두고 있는 축구선수 아저씨는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욕만 먹는 수비수 신세를 한탄한다. 청수장 샐쭉이 언니는 이 세상엔 아직도 가슴 떨리는 진정한 사랑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간직한 채 언젠가 나타날 인연을 기다리고 있고, 별볼일 없는 시인 아저씨는 그래도 시는 인생이라고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시상이 떠오른다면 비틀비틀 언덕 아래로 내려가고, 정년퇴임을 앞둔 한학 교수님은 불룩이와 깜돌이 앞에서 마지막 강의를 한다.

  불룩이와 깜돌이는 이들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줄 뿐이다. 뭔가 말을 건네려 해도 어른들은 불룩이와 깜돌이가 하려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그저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수밖에. 하지만 그렇게라도 자신들의 속내를 털어놓고 한결 홀가분해지는 마음으로 언덕을 내려가는 어른들의 뒷모습에 왠지 모를 애틋함이 느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불룩이 엄마의 남편이라는 사람이 불룩이네 집으로 찾아오는데……

당신의 상처를 어루만져줄 이는 누구인가요?

  『내 친구 불룩이』에 등장하는 이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혹은 ‘평범’에서 조금 모자란 인물들이다. 내일을 걱정하고, 사랑에 가슴 아파하고, 잃어버린 무언가를 그리워하며 한숨 한번 내쉬는 우리의 이웃들이다. 이들은 모두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제각기 깊은 곳에 감춰왔던 응어리들을 풀어줄, 마음 털어놓을 그 누군가를…… 굳이 호들갑스럽게 맞장구쳐주지 않아도,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지 않아도 괜찮다. 이들에게, 그리고 지금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아무 말 없이 우리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줄 사람, 지친 몸 일으켜 돌아가는 뒷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줄 사람, 오직 그뿐이다. 불룩이와 깜돌이가 그랬듯, 이제는 우리가 주변 이웃들을 보듬고 응원해줄 차례이다. “힘내라, 힘! 힘내라,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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