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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밥

  • 작성일 2014-01-01

 

 

저승밥

 

 

이시백

 


 

 

 

삽화-저승밥

 

 

    바람이 불면 한데나 다름없이 찬기가 무시로 드나드는 창문 틈새에 밥풀로 이겨 붙인 신문지 조가리가 너풀거리는 소리에 심기섭 씨는 문득 눈을 떴다. 일찌감치 불이 사그라진 아궁이에선 온기 한줌 남지 않은 방 안에선 숨을 내쉴 때마다 허연 김이 풀풀 내뿜겼다. 비거덕거리는 몸을 겨우 움직여 창문을 여니 밤새 내린 도둑눈이 하얗게 덮여 있었다.
    밤새 바람에 낭창거리며 귀신 우는 소리를 내던 갈매나무 가지도 눈발을 얹고 언제 그랬냐 싶게 새치름히 얌전을 떨고 있다. 여름 더위가 가시기 무섭게 마른 잎을 마당에 수북이 내려놓고 밤새도록 버스럭거리더니, 이제 나목이 되어서는 밤마다 회초리 치는 소리를 내며 가뜩이나 없는 잠을 빼앗기 일쑤였다.
    나무 중에서도 영 쓸모없는 나무였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에도 내려뜨린 그늘이란 것이 옹색하기 짝이 없어 그 아래 몸을 들이밀 여유도 모자라고, 비쩍 마른 가지라는 것은 꺾어다 불쏘시개를 하기에도 변변찮으며, 쥐똥만 하니 매단 열매란 것은 어디 입에다 넣고 씹어 볼 겨를도 없이 빈약하기만 하다.
    오늘은 기어이 그 보잘 것 없는 나무를 베어버리고 말리라 밤새 다짐을 해두었건만 막상 눈발에 바들바들 떠는 모습을 대하자니 차마 그도 쉽게 할 짓이 못 되었다. 이불에 반쯤 몸을 담은 채 심 씨는 눈에 자욱이 지워져 가는 바깥을 하릴없이 내다보았다.
    명규가 몇 해 전에 차나무를 심겠다며 까 내려 벌겋게 언 살을 내보이던 건너 산기슭도 모처럼 목화솜 같은 눈을 푸근히 덮었다. 한동안 조상 묘 앞자리까지 차나무 꽂는 걸 유행 삼더니 얼마 전부터는 난데없이 불어 닥친 커피 바람에 오래 묵은 차밭까지 까뭉개는 판이었다. 자발머리없이 일을 벌이고 다니는 데는 뒤처지지 않는 사람이면서도 돈 되는 일에는 늘 뒷북을 치고 마는 명규였다.
    군불이라도 땔까 싶어 이불에서 빠져 나와 바자울 주변을 얼쩡거려 보지만, 청솔가지 한 줌 남지 않았다. 입동 무렵에 명규가 동네 과수원에서 전지한 잔가지들을 한 짐 실어다 준 뒤로는 감감무소식이다. 불내라도 맡으면 몸이 녹을까 싶어 밭에 나가 고춧대를 사르고 있는데 하늘에서 끼룩거리는 소리가 우르르 쏟아진다. 고개를 뒤로 꺾고 치어다보니 쇠기러기들이 떼를 지어 날아가는데, 정확히 기역자를 꺾어 그리고 남진하고 있었다. 누가 청하거나 부르지도 않으련만 때가 되면 제 길을 오고가는 기러기가 가상하기만 하다. 공활한 하늘을 거리낌 없이 날아가는 새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심 씨의 심경은 착잡하기만 하다.
    “바람 부는디 뭘 태우신댜?”
    난데없는 사람 소리에 돌아보니 이장이 가뜩이나 짧은 목을 옷깃 속으로 잔뜩 오그라뜨린 채 마당에 훌쩍 들어선다. 식전부터 들이닥친 이장의 출현에 심 씨는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다. 명색이 한동네에 산다고 해도 마을 사람들과는 소 닭 보듯 데면데면하게 지내 온 처지였다.
    “밭두렁 태우기 금지두 모르시나베.”
    타다 남은 고춧대를 집어 들고 담배를 댕긴 이장은 잔소리부터 한 자발 늘어놓는다. 차도 못 올라오는 산꼭대기에 외따로 사는 사람을 떡이라도 나눠주려 숨 가쁘게 올라왔을 리는 만무하고, 해마다 햅쌀로 말가웃씩 거두는 릿세나 재촉하러 온 모양이라고 심 씨는 내심 가늠을 했다.
    “그나저나 지름차두 못 올라오는 디서 뭘 때구 지내신대?”
    빤히 사정을 알면서도 건성으로 건네는 말이 고약스럽기 짝이 없다. 지난겨울에 뒷산에서 말라죽은 나무들을 여남은 그루 베어왔다가 이장이 면에다 신고하는 바람에 이리저리 불려 다닌 적이 있던 터였다.
    “워뜨케 결정을 허셨슈?”
    눈발에 매운 연기만 내고 시르죽어 가는 불가에 버팅기고 서서 버석거리는 손바닥만 비벼대던 이장이 가뜩이나 작은 눈을 실그러뜨리고 지나가는 말처럼 내어놓는다. 결정이라. 심 씨는 비스듬히 흩날리는 눈발에 자꾸 뒤로 물러서는 먼 산의 풍경만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내도 중간에 끼어서 여간 부대끼는 게 아니래니께유.”
    “엄동설한에 무슨 결정을 할 수 있겠수?”
    그 말에 이장의 눈이 대번에 샐쭉해진다.
    “그 야그 나온 기 제비가 지지배배거리구 새끼 칠 때유. 쇠똥구리츠럼 자꾸 떠다민다구 될 일이 아뉴.”
    쇠똥구리처럼 떠다밀 무어라도 있다면…… 심 씨는 담배라도 있다면 한 개비 물고 싶은 심정이 간절했다.
    “내가 뭘 받아 먹구 봐 주는 거 아니냐는 소리까정 듣구 있다니께유?”
    벌써 여러 차례 들어 온 소리였다. 심 씨는 이장이 빨갱이를 들먹이지만, 속이 뒤틀린 사정이 따로 있다는 것쯤은 일찌감치 짐작하고 있었다. 한때 심 씨를 찾아오던 사람들이 놓고 가는 과일 보따리며 돈 봉투에서 얼마큼씩 떼어 인정으로 바치던 것이 끊기고부터 그가 표변한 것이었다.
    “네미, 하다못해 담배 한 보루래두 받아 먹었으믄 억울허지나 않것네.”
    “이 보오. 내가 집주인에게 사정을 해볼 테니 좀 기다려 주우.”
    “집주인허구 야그는 진작에 끝나버렸다니께 자꾸 그라시네. 석태 아부지 장례 치르구 나서 그 가족덜헌티 물으니께 동니서 결정허는 디루 따르기루 혔다구 발써 멫 번이나 말쌈을 드렸슈?”
    “한동네서 지낸 지도 벌써 몇 해가 되는데 사정 좀 봐주우.”
    “사상 문제에는 워쩔 도리가 웂슈. 아, 내헌티두 빨갱이 싸구 돈다구 무어라 헙디다.”
    사상이라는 말에 심 씨는 더 무어라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질기기로는 쇠심줄보다 더하고, 모질기로는 쇠끝보다 더한 것이 사상이었다. 눈발에 하얗게 덮여 가는 산 아래 풍경에 눈을 줄 뿐, 거기에다 무슨 말을 덧붙이겠는가.
    “워짯든 이달 말꺼정은 오사마리럴 져야 혀유.”
    이쪽의 대답이 없자 이장은 이 달 말까지 집을 비우지 않으면, 그다음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자신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소리를 제 열에 들떠 지껄이고는 오던 길을 되밟아 내려갔다.
    심 씨는 이장이 피우다 내던진 담배꽁초를 집어 들어 몇 모금 빨았다. 푸르스름한 담배 연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입술이 뜨거워질 때까지 담배를 빨아대던 심 씨는 새삼 자신이 추레하게 느껴졌다. 산등성이에 새파랗게 떠오르던 새벽별을 바라보던 눈에는 세월의 이끼가 무성하고 노쇠한 육신은 더러운 버릇만 늘어 갔다.
    이제 이곳도 떠날 때가 된 것이다. 심 씨는 이곳을 처음 찾아오던 날의 심경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이곳으로 살러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산정의 바람은 매서웠고, 몸을 기댈 온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건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다. 한기에 몸을 얼리고 어딘가에 쓰러져 각박한 삶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인적이 끊긴 겨울산은 삭풍이 짐승처럼 울부짖고, 이 쓰러져 가는 움막집에 다다른 것은 비스듬히 해가 기울 무렵이었다. 산자락은 금세 시커먼 산 그림자에 덮이고, 한기는 바늘처럼 온몸을 찔러댔다. 온종일 산자락을 헤매며 뒤졌지만 흐려진 기억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생각 같아선 아무데나 누워서 그대로 잠이 들고 싶었다. 자꾸 가물거리는 정신을 채잡고 심 씨는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라고 되뇌었다. 탈진한 채 자꾸 감겨드는 잠의 유혹을 그는 혀를 깨물며 참아냈다. 이리 편하게 눈을 감을 수는 없었다. 지옥 같은 징역살이 중에도 종내 떨쳐지지 않던 기억들을 되살려내지 못한다면 죽어서도 영면에 들 수 없을 터였다. 삭정이들을 긁어모아 불을 지피며 그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온기에 몸을 녹이자 허기가 밀려왔다. 그러나 그는 품에 든 쌀을 꺼내어 씹을 수가 없었다. 탈진한 몸은 그의 의지와 달리 이내 까무룩 잠 속에 빠져들었다.
    꼼짝없이 얼어 죽었을 그를 흔들어 깨운 것은 명규였다. 토끼 올무를 놓으러 왔던 명규가 빈집에서 스며 나오는 연기를 보고 왔다가 그를 발견한 것이다. 입이 얼어 무어라 답도 못 한 채 그는 명규가 피운 불김에 몸을 녹여 질긴 목숨을 되살려야 했다. 어쨌든 그는 생명의 은인인 셈이었다.

 

    눈발은 더욱 굵어지며 꺼칠하니 비어 있는 산들을 뒤덮어 나갔다. 눈발 속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소나무들의 푸른빛이 처연하기만 하다. 흑백으로 변해 가는 풍경들은 처절한 소리들을 되살려냈다. 자욱한 눈발도 그 소리들을 덮지는 못했다. 가파른 산비탈에 점점이 박혀 있는 검은 바위들과 살을 찢는 듯 날카로운 바람소리. 원귀처럼 울부짖는 바람이 골을 오르내릴 때마다 진저리를 치며 쌓인 눈들을 흩뿌리던 조릿대의 푸른 흔들림. 얼어붙은 개울과 밤새 허기와 두려움에 떨던 골짜기들은 실금 하나 놓치지 않고 고스란히 그의 눈앞에 생생하니 되살아났다. 이제는 희미해져도 좋으련만 날이 갈수록 그것들은 더욱 생생해져 갔다.
    그때였다. 눈발 속으로 시커먼 그림자들이 어른거렸다. 심 씨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잔뜩 웅크렸다. 골짝에 납작 엎드려 기어오르는 그림자들은 사람의 것이 분명하였다. 흐릿한 눈에 힘을 주고 은밀히 움직이는 것들을 지켜보니 그것은 얼룩덜룩한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틀림없었다. 심 씨는 턱 숨이 막힐 뻔했다. 앞에 총을 움켜쥐고 가파른 산자락을 기어오르는 군인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나무와 바위 뒤에 몸을 숨기면서 조심스레 올라오는 군인들은 분명히 심 씨의 집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자신도 책임지지 않겠다던 이장의 이야기가 퍼뜩 머리를 스쳤다. 설마. 그러나 심 씨의 다리는 벌써부터 후들거리며 떨고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심 씨는 본능적으로 자세를 낮추었다. ‘탕!’ 총성이 울렸다. 심 씨는 땅바닥에 엎드린 채 정신없이 기기 시작했다. 다시 토벌대가 산을 뒤지며 빨갱이를 소탕하러 들이닥친 것인지도 몰랐다. 적어도 그가 알기에 세상은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었다. 세상은 터럭만치도 믿을 게 못 되었다. 그의 귓가에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포성과 비명이 되살아났다.
    어떻게 집 안으로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심장이 달음박질치며 숨이 턱까지 차올라 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심 씨는 떨리는 손으로 명규에게 전화를 넣었다.
    “여봐. 여기 웬 군인들이 몰려왔어.”
    밥상을 받고 있다는 명규는 노인의 다급한 목소리에 아랑곳도 않고 한가하기만 하다. 군인들이 총질까지 한다고 다급한 목소리로 몇 번을 되뇌고서야 마지못해 올라와 보겠노라고 했다.

 

    북에서 정치지도원으로 내려와 남부군 1전구에 속해 있던 심 씨는 나중에 대오가 흩어지며, 지리산 자락의 4지대로 편입되었다. 수백 명에 달하던 동지들은 토벌대에 포위된 채 토끼 몰듯 퍼붓는 포격 속에서 스러졌다. 깊은 산중으로 숨어 들어가 가까스로 목숨을 연명한 이들도 얼어 죽거나 굶어 죽었다. 포위망을 뚫고 지리산을 넘은 것은 여남은 명도 되지 않았다. 끊어진 선을 이으러 이리저리 헤매다가 허기에 지쳐 숨어든 농가에서 모처럼 따스한 밥을 얻어먹고 깜박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농가 주인의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관들에게 둘러싸인 뒤였다. 급히 달아나던 동료들은 심 씨가 보는 앞에서 모두 경관의 총에 맞아 죽고, 다리를 다쳐 미처 피하지 못했던 그는 방 안에서 붙잡혔다.
    사람의 목숨은 질긴 것이었다. 소가 끄는 마차에 줄이 묶여 걷다가 쓰러져 언 땅에 질질 끌려 다리 한쪽 살이 다 짓뭉개졌는데도 그는 용케 살아남았다. 흩어진 부대의 상황을 알아내기 위해 살려 둔 목숨은 모진 매질 속에서도 끊어지지 않았다. 차라리 죽기를 바란 적이 한두 번이던가.

 

    전화를 끊고도 한참이나 지나서야 탈탈거리는 경운기를 끌고 명규가 당도했다.
    “뭔 일이래유?”
    “아, 군인들이 총질을 하면서…….”
    건성으로 집 주변을 둘러본 명규는 시답잖은 얼굴로 두덜거렸다.
    “있긴 뭐가 있다구 야단유. 개미 새끼 한 마리 안 뵈는디.”
    그 소리에 용기를 내어 밖을 살피니 과연 군복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눈에 띄질 않는다. 다행이기는 하지만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안심이 되지 않아 심 씨는 명규를 좀 더 붙들어 둘 심산으로 이장 이야기를 꺼냈다.
    “이장이 다녀갔어.”
    이장이라는 말에 명규는 당장 심기 사나운 얼굴로 찢어진 눈을 잔뜩 찌푸린다.
    “뭐래유?”
    “이 달 말까지 집을 비우라대.”
    “제 집두 아닌디 워째서 지깢 놈이 찧구 까분대여.”
    “말로는 집주인네하고도 이야기가 되었다며…….”
    “아가리가 궁금허니께 지랄을 떠는 겨유.”
    대수롭지 않게 콧등으로 흘러 넘기고는 명규가 경운기에 시동을 거는데 난데없는 총성이 우르르 들려온다.
    “뭐여, 언놈들이 남의 동네에 들어와 총질을 헌대.”
    뒤미처 집 뒤편의 산등성이에서 요란한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명규는 두덜거리며 바깥을 살피러 나갔다. 다시금 방망이질을 치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한 채 심 씨는 서둘러 방으로 들어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팥죽 변하듯이 변하는 게 세상인심이었다. 산 속에 들어와 바깥과 발길을 끊은 채 산 지가 까마득한 터에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지도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다고 세상을 그를 가만히 놓아 둘 리가 없었다. 사람은 가만히 제자리에 있건만 세상은 바구미 먹은 쌀 키질 하듯이 그를 들까불기 일쑤였다.
    버려진 채 비어 있던 남의 집에 들어와 산 지가 벌써 십여 년이 넘었지만 별 문제가 없더니 작년부터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빨갱이 동네라고 소문이 났다며 이장이 찾아와 투덜거릴 때만 해도 술김에 하는 소리로만 여겼던 것이다.
    알다 모를 것이 세상일이었다. 빨갱이를 문둥이보다 더 흉하게 여기던 세상이 어느 때부턴가 멀쩡하게 생긴 이들이 떼를 지어 심 씨를 찾아왔다. 입에 올리기도 거북한 빨치산 시절의 이야기들을 들려달라며 대학교수들이 찾아오고, 소설 쓰는 이며, 신문기자들이 뻔질나게 찾아왔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놀라웠다. 그도 미처 모르는 나팔부대며, 청천강 부대의 투쟁담들을 늘어놓으며 목청을 높여 빨치산 노래들을 불러대기도 했다. 『태백산맥』이라는 소설이 세상에 나오고, 「남부군」이라는 영화를 보고 찾아왔다는 대학생들도 줄을 지어 몰려왔다. 명규는 제 일처럼 앞장서서 그들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왔다. 이따금 돈 봉투를 쥐어주고 가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 돈들을 심 씨는 명규에게 모개로 맡겼다. 읍내 나갈 차편도 어렵지만 굳이 산 아래를 내려갈 마음이 나질 않았다. 그걸로 명규는 쌀과 찬거리를 사다 넣어 주었다.

 

    운이 좋게 유엔군 손에 넘겨진 심 씨는 재판이란 것도 받을 수 있었다. 국방경비법 32조, 33조에 따라 무기형을 받고 대구, 광주, 대전 등지를 전전하며 이어진 사십여 년의 옥중생활은 돌아보기도 끔찍했다. 전향서를 들이대며 하루에도 서너 차례씩 퍼붓는 매질은 차라리 참을 만했다. 푹푹 삶아대는 삼복중에 며칠씩 먹을 물을 주지 않은 교도관들은 그가 보는 앞에서 물을 바닥에 쏟아 보였다. 눈앞에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전향서를 쓰라고, 형식뿐인 전향서에 도장만 꾹 누르고 나가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라고 꼬이던 그들의 회유는 뱀보다 간악했다. 며칠씩 음식을 주지 않고 굶기다가도,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여 단식을 할라치면 강제로 입에 재갈을 물리고 음식을 쑤셔 넣었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하는 게 그들의 소임이었다.
    그렇다고 심 씨가 그들의 회유나 고문에 굴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것이라면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었다. 정작 그를 괴롭히는 것은 세월이었다. 눈빛이 형형하던 청년이 추레한 노인으로 늙어 가는 동안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세월은 그라는 존재도, 그 참혹한 삶과 울부짖는 비명들도 소리 없이 지워 갔다. 사라진다는 것, 백두산처럼 드높던 신념과 고고한 사상도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 그 참혹한 일들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으며, 스스로의 기억마저 흐려져 간다는 것. 그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몇몇 사람이 전향서를 쓰고 떠났다. 매질에 못 이기거나, 어린 아들이 빨갱이 자식이라고 동네 아이들에게 나무에 묶인 채 나무총으로 찔리고 살았다는 소식을 듣거나, 죽음을 눈앞에 둔 노모에게 얼굴이라도 보여 드린다며 그들은 전향서에 지장을 눌렀다. 대한민국의 국가발전을 가슴 깊이 깨닫고 감동하여 나의 잘못을 뉘우치고…….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동지들의 눈을 마주 보지 못했다. 변절자라고 외치는 소리도 세월과 함께 잦아들었다. 그에게는 밖에서 기다리는 노모도 남아 있지 않았고, 나무에 묶여 놀림을 당할 자식도 없었다. 바늘로 생살을 쑤시고, 뼈가 부러지도록 맞는 매질도 그를 굴복시킬 수는 없었다. 오로지 그를 괴롭히는 것은 가슴에 박힌 차가운 쇠못뿐이었다. 검던 머리가 백발이 되고, 흐려진 눈이 침침해질수록 가슴에 박힌 못은 날을 세우고 그를 무시로 찔러댔다. 그는 쇠못을 가슴에 박은 채 전향서를 쓰고 말았다.

 

    “어여들 들어와여.”
    밖에 나갔던 명규가 머리에 함박 얹힌 눈을 털며 누군가에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종용한다. 그 뒤를 따라 군복 차림들이 쭈뼛거리며 들어선다. 그들이 가슴에 안은 총에 뱀을 본 듯 내려앉는 심 씨의 가슴은 아랑곳도 않고, 명규는 선뜻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문 앞에서 주춤거리는 사람들을 제 집처럼 등을 떠밀어 끌어들였다.
    “이 추운 산중에 워디 눈발 피할 데가 있것슈. 변변찮아두 사람 사는 집이니께 걱정들 말구 들어오래니께.”
    마지못해 집 안으로 들어서는 군복 차림의 젊은이 몸에서는 무럭무럭 김이 올랐다. 심 씨는 영문을 몰라 눈만 동그랗게 뜨고 총을 든 장정들을 살펴볼 뿐이었다.
    “아, 서바이불유.”
    서바이불? 듣고도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심 씨에게 명규가 답답하다는 듯 얼굴을 찡그린다.
    “있잖유. 장난감 총으루 병정놀이 허는 거.”
    장난감 총으로 병정놀이를 한다는 말이 더욱 괴이하여 심 씨는 잔뜩 의심 어린 눈으로 군복 차림들을 살필 뿐이다.
    “자, 이 으른으루 말씀드리자믄, 일찍이 지리산 자락에서 활동하던 빨치산 출신이유. 빨치산! 들어는 봤것지?”
    빨치산이라는 말에 군복 차림의 젊은이들은 신기한 짐승이라도 보듯 호기심 섞인 눈으로 심 씨를 살펴보았다.
    “지금은 은퇴하구 행색이 영 그러지만, 한창 시절엔 저 산골짜구를 앞 마당츠럼 뛰댕기구 산봉우리 서넛쯤은 단걸음에 내달렸던 으른유.”
    아직도 군복 차림들의 정체를 알지 못해 경계하는 눈빛을 풀지 않던 심 씨는 사람을 앞에 놓고 지껄여대는 명규의 장광설이 거북하기만 했다.
    “이 할아버지가 진짜 빨치산예요?”
    “그렇대니께. 나팔부대 이현상이 밑으서 싸우던 양반유.”
    “안성기 나오는 「태백산맥」 영화의 그 빨치산요?”
    어디선가 가느다란 여자 목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앳된 여자가 군복을 차려 입고 빤히 심 씨를 바라보고 있다. 앞가슴에는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우르르 쏟아질 것처럼 보이는 소총이 가로걸려 있었다.
    명규는 군복 차림들이 서울의 어느 대학에서 온 서바이벌 동호회원들이며, 그 서바이벌이라는 것이 전쟁놀이를 취미로 삼는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딱총 소리나 내는 영화에다 댈간? 눈앞에서 진짜 빨치산 야그를 들어 보래니께. 월매나 살 떨리구 실감이 나는디.”
    검불을 긁어모아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어느 결에 꺾어온 청솔가지를 꾸역꾸역 밀어 넣으며 명규가 지껄여댔다.
    조금 정신을 수습한 심 씨가 집 안에 그들먹하니 들어선 군복 차림들을 돌아보니, 하나같이 앳된 얼굴들이었다. 한창 나이의 젊은이들이 어디 놀 것이 없어 눈발 퍼붓는 산중을 오르내리며 전쟁 놀음을 한단 말인가.

 

    연기가 매캐하게 들어찬 방 안에 앉아 있던 심 씨의 눈앞으로 군복 차림의 앳된 병사가 다가온다. 정만이라고 했던가. 고성 어딘가가 집이라던 정만은 산중에 들어선 부대원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렸다. 남루한 군복이 커서 소매는 두 겹이나 동여매고, 어깨에 둘러멘 총은 땅에 닿을 듯했다. 열여덟이라고 했던가. 얼굴의 솜털도 가시지 않은 정만은 하모니카를 잘 불었다. 보급 투쟁에서 돌아와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가질 때면 으레 앞으로 불려나가 하모니카를 불었다. 돌아가며 군가를 부르던 대원들도 나이 어린 정만이가 부는 『고향 생각』만은 무어라 말리지 않았다.
    정만이가 총을 맞고 쓰러진 것은 빗점골에서 한창 토벌대에게 몰려 쫓길 때였다. 사흘 밤낮을 퍼부은 포탄에 일찌감치 대오는 무너지고, 뿔뿔이 흩어져 퇴로를 찾으러 이 산 저 산으로 뛰어다닐 때였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느라 뒤따라오던 정만이 총에 맞은 것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때, 뒤에서 울부짖는 정만의 목소리가 들렸다. 총알이 관통한 복부에선 선지피가 물컹물컹 솟구치고, 뒤를 쫓는 토벌대의 총알들이 빗발치듯 쏟아졌다. 포기하고 돌아서는 심 씨에게 정만이 소리쳤다. 가지 마시라요. 내 잘 걸을 수 있어요.
    아직도 심 씨는 얼굴이 흰 소년이 가느다란 손가락을 모아 쥐고 불던 하모니카 소리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할아버지, 진짜 빨치산 맞아요?”
    어느 결에 방 안에 빙 둘러앉은 군복 차림들 가운데 아까 보았던 여자가 턱을 받치고 묻는다. 심 씨는 무어라 대꾸를 할 수가 없어 멀거니 그녀의 솜털이 송송한 얼굴만 마주 볼 뿐이었다.
    “총도 쏴봤어요?”
    그 말에도 심 씨가 답이 없자 명규가 끼어들어 지껄여댔다.
    “그걸 말이라구 혀? 총 안 쏘는 빨치산이 워딨간?”
    “그럼 사람도 쏴봤겠네요?”
    이번에는 구레나룻이 긴 청년이 총을 가슴에 끌어안고 물었다. 그 말에 모두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심 씨의 대답을 기다렸다.
    “젊은이들은 어째서 총질하는 놀음을 하오? 그기 재미있소?”
    “스릴 있잖아요.”
    “스릴?”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보다 훨 실감나거든요.”
    “뽀대도 나고…….”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젊은이들의 말에 심 씨는 할 말을 잃었다.
    “전쟁이 무슨 재미로 하는 줄 아오?”
    “그래도 쪼개져 있을 바에는 한방 하고 나서 통일하는 게 낫지요.”
    그중에 제법 나이가 들어 뵈는 구레나룻이 헛기침을 하며 점잖게 말을 내어놓는다.
    통일이라. 심 씨는 눈을 씻고 보아도 주름 한 줄 잡히지 않은 앳된 얼굴들을 난감한 얼굴로 둘러보았다.
    “그래 통일을 위해 전쟁 놀음이라도 하는 거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유비무환이란 말도 있잖아요.”
    조국 해방을 위해 총을 들고 나서던 때가 딱 저만 한 나이였다. 심 씨는 검버섯이 피고 주름이 잡힌 제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군가를 부르며 산 능선을 내달리던 젊은 날의 기백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조국은 여전히 허리가 잘린 채 나뉘어 있었다.
    “배고프다. 저녁 식사 집합!”
    누군가의 외침에 짊어졌던 걸망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한다. 여기저기서 내어놓은 것이 금세 산더미처럼 쌓인다. 라면에, 뜨거운 물에 쪄내는 이밥에, 물만 부으면 끓여지는 된장찌개로 한바탕 집 안이 지지고 볶는 음식 냄새로 호사를 누린다. 먹을 게 없어 쥐도 찾지 않던 움막집에 때 아닌 잔치가 벌어진다.
    긴 의자를 뒤집어 놓고 그 위에 차린 밥상은 보기만 해도 푸짐하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쌀밥이 요술 방망이처럼 뚝딱 차려진다.
    “자, 드세요.”
    곁에서 쥐어주는 숟가락을 선뜻 받아들지 못하고 심 씨는 눈부시게 흰 쌀밥을 곤혹스러운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토벌대에 이리저리 쫓길 무렵이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춥고 바람이 매서웠다. 짧은 겨울 해는 순식간에 산허리를 넘고 총알보다 무서운 한기가 닥쳐왔다. 그러나 추위보다 무서운 것은 허기였다. 토벌대의 청야작전(淸野作戰)으로 인근 마을들은 소개되었고, 채 거두지 못한 논밭의 곡식들은 불살라졌다. 불도 피우지 못한 채 입에 털어 넣던 쌀 한 줌으로 하루를 버텨야 했다. 그마저 떨어지고, 얼어붙은 산에서는 나무껍질마저 벗길 것이 없었다. 며칠을 굶고 불무장등(不無長嶝)을 넘을 때였다. 얼마 남지 않은 대원들은 굶주림과 추위에 지쳐 이제 밤이 되면 꼼짝없이 얼어 죽을 판이었다. 다행히 바위너설 틈새의 비트를 발견하고 그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 안에 머물렀던 대원들은 어디론가 몸을 피한 듯 비트 안은 비어 있었다. 그때, 바위 틈바구니 깊숙이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시신 두어 구가 보였다. 앞주머니에 부러진 놋쇠 숟가락을 꽂은 채. 몽당 숟가락은 빨치산의 증표였다. 한기를 견디지 못해 얼어 죽은 듯 시신은 바위에 기댄 채 돌처럼 차갑게 굳어 있었다. 경황이 없어 시신을 수습도 못 한 채 버려두고 달아나면서도, 시신들의 입에는 쌀알이 물려 있었다. 얼마나 단단하게 얼어붙었는지 그것은 돌덩이처럼 입속에서 굳어 있었다. 마지막 가는 사자가 저승에 이를 때까지 입에 물려주는 저승밥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잠이 들면 저처럼 바위에 기대어 얼어붙을 목숨들이지만 허기는 용서가 없었다. 와들와들 이를 마주치는 한기와 싸우면서도 허기는 끊임없이 그들을 유혹했다. 그리고 누군가 그 시신의 입속에 담긴 쌀알을 긁어내기 시작했다. 그 차갑게 얼어붙은 쌀알들을 입에 넣고 씹는 대원들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렀다.
    “저 밑에 빨치산 격퇴지라고 말뚝 세워 놓은 거 봤슈? 여그가 말하자믄 나팔부대 본거지였다 이거여. 저 아래 곰바위 밑이가 마즈막 남은 빨치산 비트가 있던 디구, 비트 몰러? 비밀 아지트. 여그 우쪽 조릿대밭이서 이현상 대장이 사살된 지점여.”
    달력 종이를 찢어다가 볼펜으로 지도까지 그려 가며 빨치산 주둔지를 설명하는 명규의 모습이 징그러워 심 씨는 차마 마주 볼 수가 없었다.
    어지간히 배를 채운 젊은이들이 걸망에서 술을 꺼내 놓았다. 잔을 채워 건네주는 걸 심 씨는 사양했다. 그들은 돌아가며 술잔을 비웠다. 깡통에 퍼 담아 온 숯불을 가운데 두고 벌겋게 술이 오른 젊은이들은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다시 그에게 술잔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마다하지 않았다. 입안으로 들어간 술이 싸하니 목구멍을 적신다. 어깨에 잔뜩 힘을 준 구레나룻이 군가 비스름한 노래를 부르고나서는 불쑥 심 씨에게 노래를 청한다.
    “빨치산 노래 한 곡 해주시면 안 돼요?”
    기다렸다는 듯이 박수가 터져 나온다. 처음 겪는 일도 아니었다. 전에 명규를 앞세우고 심 씨를 찾아오던 이들도 하나같이 술자리가 벌어지면 노래를 청했다. 마지못해 부르면 그들은 숙연한 자세로 경청했다. ‘눈보라는 밀림에 우나 마음속엔 피 끓는다’와 같은 노래에 그들은 환호했다. 개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그런 광경을 마주할 때마다 심 씨는 당혹스러웠다. 세상이 뒤집혀 해방천지가 도래라도 했단 말인가. 설령 그런 날이 왔을지라도 그들이 과연 눈보라 치는 산자락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람들의 심경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이 호의든, 악의든 그 참혹한 시절의 노래에 감격하는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옥중에서 소지들의 혹독한 매질과 교도관의 끈질긴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던 그가 전향서를 써낸 것은 이곳을 찾아오기 위해서였다. 그가 전향하겠다고 했을 때, 옥중의 장기수 동지들은 ‘혁명의 사상을 더럽히지 말라’고 소리쳤다. 사상은 이미 아득하기만 했다. 그가 옥에서 풀려나고 몇 해 되지 않아 옥중의 미전향 장기수들은 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현지를 사수하라던 당은 전쟁이 끝나기 무섭게 남쪽의 빨치산 세력을 쓸어냈다. 그렇다고 이 썩어 빠진 대한민국을 동경한 것은 더욱이 아니었다. 북에서도 버림받은 사상이 남에서야 오죽하랴. 그의 눈에는 오로지 얼어 죽은 시신의 입에 물려 있던 생쌀의 참혹한 기억만 남아 있었다.
    그는 이미 죽은 셈이었다. 일찌감치 그 자리에서 죽었을 목숨을 연명하는 것이 구차할 뿐이었다. 그는 이 추악한 삶을 단절하기 위해 옥에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아직도 그의 뱃속을 그들먹하니 채우고 있던 언 쌀의 기억들을 만나러 산으로 돌아왔다.

 

    “참고 견디는 고향 마을, 만나러 가자 출진이다.”
    거푸 마신 술기운을 빌려 부른 노래는 여전히 어색하다. 앙코르를 연호하며 박수를 치는 젊은이들 틈에서 다시 명규가 끼어든다.
    “빨치산들헌티는 세 가지 금기가 있어. 연기, 능선, 소리여. 밥 지을 때두 연기가 안 나게 바짝 마른 싸리나무럴 쓰구, 이동헐 때두 능선 위루는 다니덜 않은 벱여. 아까 본께 죄다 산등성이 위루다 뻘뻘거리구 뛰다니든디 그러다간 당장 총알밥 드시는 중이나 알아 둬.”
    요란스러운 명규의 허풍이 금과옥조라도 되는 양 모두 귀를 세우고 듣기 바쁘다.
    “아무리 서바이불이래두 군복 입구 총을 쥔 입장에서는 실전츠럼 혀야 허는 거 아니것어? 좌우당간 오늘 서바이불은 지대루 혔구만. 진짜배기 빨치산 선상을 만났으니 말여.”
    “맞아요. 내년 봄에 서바이벌 동호회 베틀이 있거든요. 작년에는 준우승을 했는데 올해는 꼭 우승을 먹어야 되걸랑요.”
    “베틀이구 비틀이구 간에 총싸움은 빨치산이 젤여. 빨치산은 세 번 죽는단 말은 들어 봤어?”
    알 턱이 없는 군복 차림들은 고개를 받쳐 들고 명규의 말을 기다린다.
    “맞아죽고, 굶어죽고, 얼어 죽는 게 빨치산여. 그런 정신으루만 허믄 우승은 따논 당상 아니것어.”
    더 이상은 듣고 있기 거북해 심 씨는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섰다. 밖으로 나오니 쨍한 한기가 온몸으로 달려들었다. 눈발이 가신 밤하늘에 박혀 있는 별들이 바르르 떨리는 소리가 귀에 와 닿는 듯하다. 오랜만에 마신 술로 불콰해진 몸에 찬바람을 한바탕 끼얹고 나니 정신이 버쩍 들었다. 방 안에서 목청을 높여 떼 지어 부르는 노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이가 맞지 않아 반쯤 열린 문틈으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명규가 젊은이들과 어울려 주먹을 흔들어대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내다보였다.

 

    옥에서 풀려나 이 산자락에 숨어 들어와 산 뒤로 그는 틈이 날 때마다 산을 뒤져 흩어진 유해들을 수습했다. 삭아버린 뼛조각이며, 누군가의 몸을 꿰뚫었을 총알이며, 바위틈에 적혀 있던 편지까지 정성껏 모아 산등성이를 파고 묻어 주었다. 이미 삭아버려 형체도 알 수 없이 흩어진 뼛조각이지만 그 가운데 저승밥을 빼앗긴 이의 것도 들어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불무장등(不無長嶝)이라고 불리는 산등성이에는 버려진 무덤들이 부스럼처럼 널려 있었다. 묘비도 없이, 연고도 없는 무덤들은 이 능선에서 죽어간 빨치산들을 묻은 곳이라고 전해 왔다.
    이곳으로 돌아와 심 씨는 혼자서 그 무덤들을 보살폈다. 바람에 뭉개진 봉분에 흙밥도 얹고, 한식이나 중추절이면 이밥을 지어 그 앞에 바쳤다. 향을 피우고 제를 지내며 절을 올렸다. 언제인가. 무덤을 찾은 이들과 마주친 적이 있다. 그들은 어디에서 들었는지 그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는 눈치였다. 돗자리를 깔고 절을 올리면서도 그들은 그에게 눈빛 한번 주지 않았다. 제를 지내는 동안 그는 먼발치에서 지켜보았다. 음복술을 돌리던 어느 늙수그레한 노파가 그를 향해 ‘배신자’라고 내뱉었다. 그는 변명하지 않았다. 앞서 그가 따라 놓았던 술잔과 향초들은 풀숲에 팽개쳐져 있었다.

 

    아침밥을 라면으로 때운 젊은이들이 짐을 싸들고 집을 나섰다. 마지막으로 기념사진을 찍자는 말에 심 씨는 감기를 핑계로 사양했다. 방 안에 웅크리고 앉은 그에게 군복 차림의 젊은이들이 일렬로 늘어선 채 거수경례를 붙였다.
    “우승하면 꼭 찾아올게요. 충성!”
    심 씨는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얼굴로 그들을 엉거주춤 바라만 볼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이들을 배웅하러 나간 명규가 무언가 승강이를 벌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동네 야비군 중대장헌티 안보교육을 들어두 일당 십만 원은 쥐어줘야 허는디, 진짜배기 빨치산을 만나구 오만 원이 뭐여. 하룻밤 숙박비두 안 되는걸.”
    심 씨는 참담한 마음에 차마 밖을 내다볼 수가 없었다.

 

 

 

 

 

   《문장웹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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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오

히데오 서장원 히데오에겐 몇 가지 비밀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그의 친부가 일본인이며 그가 어린 시절을 일본 교토에서 보냈다는 것이다. 어느 저녁나절, 한적한 거리를 걷던 중에 히데오는 이 사실을 내게 말해 줬다. 이후 히데오는 어린 시절에 대해 조금씩 더 들려주었고, 나중에 나는 히데오의 생애 초반에 일어난 일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꿸 수 있게 됐다. 히데오가 태어난 곳은 교토 외곽으로, 한국 사람들이 떠올리는 여행지 교토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주택가였다. 히데오는 그곳을 자세하게 기억하지는 못했다. 습한 여름 날씨나 우듬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나무들에 대해 말하면서도 그것이 정말 자기 기억인지 교토에 대해 보고 들은 뒤 상상해 낸 이미지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덧붙이곤 했다. 교토에서 있었던 일 중 히데오가 확실하게 기억하는 건 모두 나쁜 경험이었다. 이를테면 초등학생 시절 책상 가득 자이니치나 조센진, 총 같은 단어가 적혀 있던 풍경이나 동급생 남자애들이 그의 가방을 걷어차며 드리블 시합을 했던 일, 그를 조롱하려고 반 아이들이 케이팝 노래를 개사해 불렀던 일, 그런 사건들. 한번은 같은 반 아이들에게 얻어맞아 코뼈가 부러진 적도 있었다. 그날 저녁에 히데오의 부모는 아들을 위해 나고야로 이주하는 일을 의논했다. 히데오의 아버지는 아들을 불러 앉히고 나고야에서는 어머니가 한국 사람이란 사실을 숨겨야 한다고 경고했다. 히데오는 그 말에 깜짝 놀라서 식탁 앞에 앉아 있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말에 동의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히데오가 아는 한, 히데오의 어머니는 자신이 한국인임을 숨기려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어머니는 눈을 내리깔고 남편도 아들도 바라보지 않았다.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여기서 계속 살 거니까, 그렇게 하기로 하자.” 그날 밤, 히데오는 코의 통증과 식도로 넘어오는 피, 어머니의 고요한 얼굴과 나고야에서 보낼 새로운 나날의 환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만 히데오의 부모는 나고야행을 두고 갈팡질팡했고, 히데오로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 이혼을 결정했다. 이혼 후 히데오의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경기도의 친정으로 돌아갔다. 이후 히데오는 일본인 아버지와 일본에서의 삶을 철저히 숨겼다. 나에게 고백하기 전까지 누구에게도 자신의 첫 번째 이름 히데오를 말해 주지 않았다. 내가 히데오를 처음 본 건 연극원 강의실에서였다. 아직 벚꽃도 피지 않은 3월, 나와 히데오를 포함해 여덟 명의 학생이 강의실에 책상을 둥글게 붙여 앉았다. 그해 연극원에서는 입학이 예정된 학생들을 모아 15분 내외의 단막극, 일명 “짤막극”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신설했다. 입학 전에 그룹별로 모여 공연을 준비하고, 3월 개강과 동시에 연극원 소극장에서 공연을 올리는, 이색적인 신입생 환영회라 할 수 있었다. 학보사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신입생 그룹 중 하나를 인터뷰하기로 결정했는데, 그해 들어 나에게 처음

  • 관리자
  • 2025-06-01
그리고 밤과 가을이

그리고 밤과 가을이 김연수 1 지난여름, 정기에게는 세 가지 고민이 있었다. 하나는 눈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 길을 걸어갈 때면 날벌레들이 달려드는 것 같아 혼자 손사래를 친 적이 여러 번이었다. 기사를 쓰려고 책상 앞에 앉으면 머리 뒤쪽에서 번개 같은 게 번쩍이기도 했다. 노안이 찾아온 건 벌써 몇 년 전의 일이었다. 그때 안과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안경도 새로 맞췄다. 나이가 들면 서서히 시력이 나빠지리라고만 생각했지, 거기에 더해 전에 없던 것들이 보이는 증상까지 생길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런 처지가 되고 보니 책 읽는 일이 힘들어졌다. 평생의 즐거움이었던 독서가 성가신 일이 되면서 생활은 성기어지고 마음은 허술해졌다. 더 오래전, 나이가 들면 활자 같은 건 멀리하고 자연을 벗 삼아 소일하며 세속적 가치관에 물든 마음을 고치리라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은근히 노년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그런 시절은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두 번째는 포항에서 에너지공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딸 민지와의 관계가 점점 멀어진다는 점이었다. 그건 서울과 포항이라는 지리적 거리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작년에 집을 새로 구하면서 민지는 아빠인 정기에게 도와달라고 부탁을 해 왔다. 그 과정에서 이사의 이유가 언제부터인가 짝꿍처럼 붙어 다니던 여자 선배 희선과 같이 살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그는 알게 됐다. 그는 민지와 희선이 단순한 선후배 사이가 아닐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몇 번 딸에게 희선에 대해 물었지만, 민지의 반응은 모호했다. 그러다가 정기는 그 일에 대해 더 묻지 않게 됐다. 한 번은 민지가 “나는 아빠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앞뒤 대화의 맥락으로는 그 일에 대한 답변이 아니었음에도 정기는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질문의 대답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마지막 고민은, 자신이 담당한 부고란에 누구의 죽음을 다룰 것이냐는 점이었다. 최종 후보는 미국의 SF 소설가와 전 여당 대표, 둘 중 하나였다. 아무도 읽지 않는 신문 부고란에 누구를 쓰든 무슨 상관이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기에게는 앞의 두 고민만큼이나 심각한 고민이었다. 앞의 두 고민은 과거의 일에서 비롯된 결과를 수습하는 것이었지만, 세 번째 고민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정기는 생각했다. 과연 소설가냐, 정치인이냐. 정기의 고민은 여름만큼이나 깊어졌다. 2 노트북 화면 너머로 신문사 후배인 은영이 지나가고 있었다. “휴가는 즐거웠어?” 정기가 알은체를 했다. “줄곧 비만 내렸잖아요. 태풍이 온다는데 어떻게 해요?” 잔뜩 낯을 찌푸리며 은영이 말했다. “태풍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으면 가지 말았어야지.” “그런 거 따지고 들면 아무 데도 못 가죠. 태풍 지나갈 때 제주 안 있어 봤죠? 그게 진짜 여름이더라구요. 바람이 몰아치는데, 어휴, 엄청났어요. 그러더니만 휴가 마지막 날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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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날 정기현 단지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펜스와 인접한 아파트 건물들은 가로등 불빛을 받아 그 형태를 짐작할 수 있었으나, 단지 안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어둠의 수심이 깊어져 모든 것이 감추어졌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긴긴 태양 볕 아래 그 흉물스러움을 남김없이 드러내던 여름과는 달리, 겨울의 단지는 어딘가 의뭉스러워 보였다. 이야기를 가득 품은 고성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내가 살고 있는 주택 앞,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재건축 단지라는 별칭이 붙은 아파트 단지는 조합원과 건설사 간 충돌로 공사가 중단되어 짓다 만 아파트 건물들이 2년 동안 그대로였다. 1만 5천 가구를 수용할 수 있다며 대대적으로 착공에 들어갔던 대규모 단지는 2차선 통행로를 중심으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문득 그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이번 겨울부터였다. 출근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까지 가려면 펜스가 세워지기 전보다 30분씩은 더 둘러 걸어야 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아직 잠에서 온전히 깨어나지 못한 상태로 정류장까지 걸을 때면 아파트 중앙 통행로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솔바람, 산들바람 아니고 토네이도에 가까운 세기였다. 물론 토네이도를 직접 겪어 본 적은 없지만···. 사람 하나는 거뜬히 날려 버릴 듯 기세 좋은 바람이었다. 단지 바깥은 바람 한 점 없이 잠잠했으므로, 이는 분명 바람길을 잘못 낸 시공 탓에 불어 대는 건물풍일 터였다. 거센 바람에 펜스가 흔들리며 콰챵- 하는 소리를 낼 때면 살을 에는 새벽녘 추위도 어쩐지 더욱 견디기 어려워져 굳게 잠긴 펜스를 원망하게 되었다. 자물쇠를 열고 단지 가운데 통행로로 다닐 수 있다면 그 끝의 버스 정류장에 금세 도달할 텐데. 아침마다 30분씩은 더 자고 나올 수도 있을 텐데. 내게는 바람쯤이야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다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는 문제였다. 한파 특보 경보 문자가 알람보다도 일찍 울려 잠을 깨웠던 날, 나는 빌라 현관을 벗어나 오른쪽 인도로 걷는 대신 길 건너 펜스 쪽으로 향했다. 펜스 출입구에는 주먹만 한 자물쇠가 굳게 걸려 있었다. 화풀이라도 하듯 자물쇠를 세게 두 번 당겨 보았는데 그것만으로도 자물쇠가 훌렁 풀려 버렸다. 펜스 안쪽으로 손을 쏙 넣어 자물쇠가 걸려 있던 걸쇠를 풀고 출입문을 열자 눈앞에 펼쳐진, 소리로만 접하던 바람의 길. 이용자가 나 혼자뿐이라 길은 실제 너비보다도 광활해 보였다. 건축 자재들, 내부 설비들이 군데군데 널브러져 있었고 고목처럼 주차되어 있는 승합차도 몇 보였다. 길 가장자리에도 단지로의 진입을 막는 펜스가 설치되어 있어 잠시 길과 나뿐인 세계에 진입한 것만 같았다. 통행로는 야트막한 고갯길이었다. 바람은 듣던 대로 거세었다. 나는 두 손으로 외투를 꼭 여민 채 거센 바람에 맞서 걸었다. 두 발이 동시에 떨어지는 순간 바람에 휘말려 공중으로 붕 떠오를 것 같아 한 발이 떨어지면 다른 한 발은 땅에 꼭 붙어 있도록 의식하며 걸어야 했다. 고갯길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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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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