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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소리 공개방송 발표 신작시] 클래식

  • 작성일 2014-04-01
  • 조회수 992

 

[문장의 소리 공개방송 발표 신작시]

 

 

클래식

 

 


임경섭

 

 

 

 

 

    형은 기타를 연습하네
    엄마는 습관처럼 아프고
    형은 습관처럼 기타를 연습하네

 

    음악 선생인 아버지는 형이 딴따라가 될까 봐 장롱 위에 기타를 올려놓았지 엄마가 입원을 하는 동안 형의 키가 자란다는 걸 몰랐던 모양이야

 

    부모가 집을 비울 때마다
    숨겨 둔 음악이 빈집을 채우네

 

    누나는 피아노를 시키면서 왜 형은 기타를 못 치게 할까?
    피아노는 장롱 위로 올라갈 수 없으니까

 

    엄마는 앰뷸런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고 아버지도 한동안 보이지 않았네

 

    똑같이 의대 나온 사람들인데 왜 여기 의사들은 엄마의 병을 고칠 수 없을까?
    서울엔 의사들이 흰 건반처럼 많으니까
    누나가 서울에서 레슨 받는 이유를 모르겠니?

 

    엄마가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어지고 바닥엔 머리카락들과 먼지들이 많아지기 시작하네

 

    이게 도대체 사람 사는 집 맞아? 이놈의 여편네는 왜 청소도 안 하고 누워 있는 거지?

 

    엄마가 죽을병에 걸린 걸 알면서도 형은 지껄이네
    아버지가 있지도 않은 집 안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걸어 나오네

 

    형은 기타를 올려놓고 아버지처럼 바닥을 닦기 시작하네 많은 게 좋은 거라고 알면서도 집을 닦아내기 시작하네

 

    습관이 습관들을 닦아내기 시작하네

 

 

 

 

   《문장웹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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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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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익명

    [...] - 신작시 「클래식」 감상하러 가기 [...]

    • 2014-04-16 10:33:10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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