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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의 바다 (제1회)

  • 작성일 2014-05-01

 

 

구암의 바다 (제1회)

 

 

 

김언수

 

 

삽화-구암의-바다-김언수

 

 

    1

 

    구암(狗巖)의 건달들은 아무도 양복을 입지 않는다.
    부산이라는 이 세계적인 항구 도시에는 부두에 쌓인 컨테이너 숫자만큼이나 건달들이 즐비하고, 건달들은 개나 소나 모두 양복을 입는다. 알다시피 건달이란 인간들은 처자식 밥은 굶겨도 자기 양복은 빳빳하게 다려 입고, 점심값이 없어 하루 종일 밥을 쫄쫄 굶을지언정 구두 닦을 돈은 남겨 두는 한심한 족속들이니까. 하지만 구암의 건달들은 구두를 닦기 위해 밥을 굶는 법이 없다. 구암의 건달들은 아예 양복이 없고, 양복이 없기에 구두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해운대, 광안리, 영도, 남포동, 완월동, 서면, 온천장 가릴 것 없이 부산 바닥의 모든 건달이 무슨 장례식에 온 하객들 마냥 검정 양복을 입고 쓸데없이 우르르 몰려다니지만, 하다못해 밀수품을 실은 러시아 선박을 기다리며 부두 노동자들의 녹슨 드럼통 옆에서 곁불이나 쬐고 있는 감천항의 건달들도, 후미진 텍사스 골목에서 늙은 창녀들의 등이나 처먹는 부산역의 건달들도 양복을 입고 다니지만, 심지어 할 일이라고는 일절 없어 방죽 위에 낚싯대를 툭 걸쳐 놓고 낙동강을 따라 둥둥 떠내려 오는 청둥오리나 하루 종일 구경하다 해가 지면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오는 부산의 저 머나먼 변방 명지 건달들도 밤이 오면 멋진 양복을 꺼내 입고 가로등만 멀뚱멀뚱한 논두렁길을 으스대며 걸어 다니지만, 구암의 바다에서 양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건달은 아무도 없다.
    혹시라도 구암의 바다에서 양복 입은 건달을 만났다면 그것은 필시 세탁소에서 빌려 입은 양복으로 맞선을 나갔다가 팔뚝에 새긴 조잡한 용 문신 때문에 그 자리에서 바로 퇴짜를 맞고 돌아온 건달이거나, 잘 아는 술집 누나의 세 번째 결혼식을 축하해 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결혼식장에 들렀다가 돌아온 건달일 것이다.
    왜 유독 구암에서만 이런 요상한 풍습이 생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군가는 처자식이 밥을 굶는 판국에 양복은 뭔 얼어 죽을 양복이냐, 세탁소에 양복 맡길 돈이 있으면 차라리 애기들 반찬값이나 보태겠노라는 생활에 대한 준엄한 인식이 구암의 건달들 사이에 널리 퍼졌기 때문이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본시 건달의 주업은 빈둥거리는 것인데 양복 입고 빈둥거리는 것도 어디 하루 이틀이지, 이게 대체 사람이 할 짓인가?" 따위의 건달의 정체성에 대한 또렷한 자각이 다른 동네 건달들보다 일찍 싹텄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러니까 이 얼토당토않은 의견들을 종합해 보면 구암의 건달들이 양복을 입지 않는 것은 부산 바닥의 가장 가난한 동네에서 깡패 짓을 하고 있다는 것, 즉 자신들이 처한 핍진한 처지에 대한 준엄한 통찰 혹은 처절한 자기반성을 통해 실용성과 생활력을 중시하는 올곧은 풍속이 부산의 그 수많은 건달 중에 유독 구암에서만 선구적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인데, 이게 무슨 지나가는 미친개도 피식 웃을 소린가.
    그나마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양복 입고 설쳐대는 건달들이 추리닝을 입고 설쳐대는 건달보다 먼저 감옥에 가고 더 오래 감옥에 있더라'는 미신이 구암의 건달들에게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라는 말일 것이다. 통계적으로 볼 때 그 말은 일리가 있다. 확실히 양복을 입고 설쳐대는 건달은 추리닝을 입고 설쳐대는 건달보다 더 눈에 잘 띄고, 더 한심해 보이며, 그리하여 감옥에 갈 확률이 더 높다.

 

    만리장 호텔의 주인이자 구암 암흑가의 실질적 보스인 손 영감은 건달의 복색에 대해 일찍이 다음과 같은 일장연설을 쏟아낸 적이 있다.
    "나라가 힘들면 국민들 중에 제일로 힘든 건 우리 건달들이지. 암, 그거야 두말하면 잔소리고. 그런 맥락에서 지난 50년이 우리 건달들에겐 참 힘겨운 시절이었지. 어디 뒤숭숭한 일들이 좀 많았나. 식민지에, 전쟁에, 쿠데타에, 그러니 나라의 주인이 몇 번이나 바뀌었겠냐 이 말이야. 일본 놈들에다, 러시아 놈들, 미국 놈들, 그러다가 군인 놈들. 나라가 뒤집어지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시팔, 만만한 게 홍어 좆이라고 만날 우리 건달만 잡아 족치지 않던가. 똥 눈 놈은 비단 방석에 앉히고 방귀 뀐 놈만 곤장질 한다고, 정치하는 놈들이란 게 매양 그렇더라고. 그런데 내가 왜정 때부터 죽 지켜보니까 아, 감옥에 일등으로 잡혀가는 놈들은 죄다 양복쟁이 건달이더라고. 식민지 시절에 일본 순사한테 일등으로 잡혀간 놈들도 다 양복쟁이 건달들이지, 미군정 때 헌병들에게 일등으로 잡혀간 놈들도 다 양복쟁이 건달들이지, 어디 그뿐이냐 박정희가 정권 잡고 사회 청소할 때 우르르 잡혀간 놈들도 양복쟁이 건달들이고, 전두환이 쿠데타 일으키고 분위기 전환 삼아 깡패들 잡아들일 때 일등으로 끌려간 놈들도 다 양복쟁이들 아니더냐. 거 뭐시냐, 요 몇 년 전에 노태우가 범죄와의 전쟁인가 지랄인가 한다고 우리 애기들까지 우르르 잡아갈 때도 딱 보면 다 양복쟁이 건달들인 기라. 아미동 칠복이 놈 말이야. 그놈도 양복 입고 폼 내는 거 참 좋아라, 했지. 그래서 내가 칠복이 놈 볼 때마다 늘 타일렀거든. 칠복아, 행실 그러는 거 아니다. 건달이 양복 입어서 좋을 거 하나 없다. 폼은 잠시고 감옥은 평생이다. 내가 칠복이 놈한테 그렇게나 말했는데 악착같이 내 말을 안 듣더니, 요번에 봐라 다른 놈들은 잡혀가도 1, 2년 길어야 3, 4년인데 아미동 칠복이 패거리만 15년씩 안 받았나. 그게 다 양복 때문인 기라. 추리닝 입고 잡혀가면 그냥 잡범이지만 양복 주머니에 사시미칼 넣고 있다가 잡혀가면 그게 조직폭력이고 병적인 사회 암인 기라. 아니 할 일도 없는 건달들이 무슨 교복 입은 고등학생들처럼 단체로 시커먼 양복 맞춰 입고 이리로 우르르 저리로 우르르 몰려다니는데, 경찰들 눈에 띄냐 안 띄냐? 나라를 바로잡으려고 애쓰시는 저기 위에 높으신 분들이 시커먼 양복 입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깡패 새끼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 을매나 짜증이 나겠나 이 말이야. 내가 늘 말하잖아. 건달은 그저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는 게 성숙하고 아름다운 자태라고. 건달이 폼 나면 뭘 할 거며, 또 유명해져서 이름을 날리면 또 뭐 할 기고? 건달이 양복 입고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나고 나면 갈 데라곤 감옥밖에 없는 기라. 그리고 까놓고 말해서 할 짓이라고는 건들거리는 것밖에 없는 건달한테 양복이 대체 왜 필요하노?”

 

    건달은 그저 쥐 죽은 듯이 조용히. ‘가오’를 목숨같이 여기는 건달들 입장에서는 다소 체면이 깎이는 말이지만 오래 살아남고 싶은 건달들이라면 손 영감의 이 연설을 가슴에 깊이 아로새겨 둘 필요가 있다. 살다 보면 구구절절 옳은 말이고, 탁견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어쨌거나 그는 살아남았으니까. 열여덟 살에 깡패 세계에 입문한 뒤 지난 50년 동안 구암의 이 더러운 바다에서 매춘을 하고, 밀수를 하고, 마약을 팔고, 물건을 훔치고, 불법도박장을 운영했지만 손 영감은 살아남았다. 서슬 퍼런 박정희 밑에서도 살아남았고, 삼청교육대 광풍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노태우가 범죄와의 전쟁을 벌였을 때 전국의 모든 폭력 조직 두목이 일제히 잡혀 들어가서, 범죄단체 결성 혹은 범단수괴라는 무시무시한 죄목으로 15년씩 언도받았지만, 손 영감은 거기서도 빠져나왔다. 매춘 알선, 무전취식 및 갈취라는 갱단 두목이 받기에는 다소 머쓱한 죄목으로 고작 8개월을 살았을 뿐이다.

 

   구암의 이 더러운 바다에서 50년 동안 살아남은 자로서 손 영감은 자신의 오른팔이자 만리장 호텔의 지배인인 희수에게, 그리고 구암의 바다에서 싹수가 보이는 몇몇 건달에게 늘 이런 말을 했다.
    “그때 나랑 같이 건달 세계로 들어온 놈들 중에 지금 살아 있는 놈이 어딨노? 다 뒈졌다 아이가. 칼 맞아서 뒈지고, 도끼에 찍혀 뒈지고, 감옥에서 콩밥 먹다 얹혀서 뒈지고, 소리 소문도 없이 뒈지고, 온다 간다 말도 없이 뒈지고. 와 뒈졌겠노? 다 까불다가 뒈지는 거다. 건달이 까불고, 폼 잡고, 어깨에 힘주면 그냥 소리 소문도 없이 휙 가는 기라. 그러니 희수야, 건달의 일이란 게 여리박빙(如履薄氷)인 기라. 얇은 살얼음 위를 걷듯이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는 기라. 무슨 말이냐. 건달로 살아남으려면 그저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는 것밖에 없다는 말이다. 진짜로 잘 먹는 놈은 소리 소문도 없이 조용하게 먹는 법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이 ‘본시부터 처묵은 놈은 말이 없다.’ 라고들 안 하나. 그리고 내가 걱정이 되아서 이참에 한 마디 더 하자면, 거 애기들보고 몸에 문신 좀 새기지 말라고 그래라. 와 쓸데없이 몸에다 그림을 처 그리고 지랄들이고. 건달인 거 광고하고 다녀서 좋을 게 뭐가 있노? 부모님이 주신 깨끗하고 보들보들한 살결 그대로 살면 목욕탕에서도 환영받고 얼마나 좋냐 이 말이다.”

 

 

    2

 

    한 지방 검사는 법정에 손 영감을 세우고서 만리장 호텔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구암에서 일어나는 모든 범죄는 만리장 호텔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자는 만리장 호텔의 주인입니다.”
    그러나 이 패기만만한 젊은 검사는 만리장 호텔에서 시작되는 범죄에 대해 그 어떤 명쾌한 증거자료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중 몇 개라도 찾아냈다면 손 영감을 30년 동안, 아니 맘만 먹으면 3백 년이라도 감옥에 처박아둘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털만큼 많은 죄목 중에서 이 패기만만한 젊은 검사가 찾아낸 유일한 증거는 매춘 알선과 무전취식뿐이었다.
    만리장 호텔은 구암 해수욕장 중앙에 백사장을 따라 200미터나 펼쳐져 있는 2층짜리 호텔이다. 만리장, 이름도 유치찬란한 이 호텔은 1913년 구암의 아름다운 바다와 빽빽한 해송들을 보고 한눈에 반해버린 일본인들이 구암유원주식회사라는 것을 만들고, 조선 최초의 해수욕장을 세우면서 지어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80년 전 일이다. 2층짜리 일본식 목조 건물이었던 것을 한국전쟁 직후 시멘트로 다시 보수한 것을 제외하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그때 만리장 호텔의 실질적인 주인은 일본인 야쿠자들이었다. 부산의 인구가 고작 30만이었는데 일본인이 6만 명이나 살던 기묘한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이 호텔은 조선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부산으로 넘어온 일본인들의 유흥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 시절이 구암 바다의 유일한 전성기였는데 주전자 섬으로 가는 케이블카도 있었고 3층짜리 다이빙대도 있었고 해변과 작은 돌섬을 연결하는 구름다리도 있었다. 부산 바닥에 전차 한 대 없던 1913년을 상상해 보면 외줄에 매달려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케이블카는 눈이 휘둥그레지는 장관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라에서 방구 좀 뀐다 하는 고관대작들도 여름 성수기에 만리장 호텔을 예약하려면 호텔 지배인에게 뇌물까지 갖다 바쳤다 하고, 한여름이면 전국에서 몰려온 30만 명의 인파가 횟집, 유곽, 판자촌에서 흘러나온 똥오줌이 잔뜩 섞인 더러운 바다에서 수영을 했다고도 한다.
    야쿠자들은 만리장 호텔을 일본인 명의로 하는 것에 다소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자 바지 사장을 하나 뒀는데 그가 바로 손 영감의 조부인 손흥식이었다. 손흥식은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지만 머리가 총명하고 몸이 잽싸서 야쿠자들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그리고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일본인들이 허겁지겁 자기네 나라로 도망가야 했을 때 손흥식은 만리장 호텔을 슬쩍 자기 걸로 삼켜버렸다. 그 시절 일본인을 주인으로 모신 많은 조선인 마름이 혼란스러운 시국을 틈타 일본인 집이나 사업체를 스리슬쩍 자기 것으로 만든 것처럼 말이다.
    손흥식은 야쿠자들 밑에서 배운 선진적인 노하우로 제법 많은 돈을 벌었다. 그는 만리장 호텔을 효율적으로 경영하면서 일본인이 남기고 간 유곽들, 술집, 도박장도 접수해서 세력을 넓혔고 항구에 자기만의 밀수 루트도 가지고 있었다. 부산에 임시정부가 생긴 한국전쟁 때는 미군부대에서 빼돌린 전쟁물자와 구호물자로 막대한 이윤을 남기기도 했다. 1945년부터 1960년까지 손흥식은 그의 전성기를 마음껏 누렸다. 만리장 호텔 근처의 숙소엔 200여 명의 건달들이 상주하고 있어 무슨 군대를 연상케 했다. 오죽했으면 ‘낮의 황제는 이승만, 밤의 황제는 손흥식’이라는 말이 떠돌았을 정도였다.
    한창 잘나가던 손흥식은 1960년 2월 난데없이 경찰에게 끌려가 삼일 밤낮을 두들겨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와선 이틀 만에 죽었다. 얼마나 맞았는지 장례를 치르려고 염을 할 때 몸에 멍 자국이 없는 곳이 없었다고 했다. 이승만 정권의 2인자인 이기붕에게 밉보인 대가였다. 높은 분들이 보호해 줘서 돈을 벌 만큼 벌었으면 알아서 갖다 바쳐야 하는데 알아서 갖다 바치지 않았다는 것이 죄였다. 사실 갖다 바치긴 했는데 이기붕이 보기에 손흥식의 성의가 조금 부족했다는 것이 죄였다. 이기붕은 그해 3월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한 달 후 4·19 혁명이 일어나자 전 가족과 함께 권총 자살을 했다.
    조부의 어이없는 죽음을 목격한 후 손 영감은 건달이 유명해지고 세력을 넓힌다는 것이 권력 앞에서 실로 아무것도 아님을, 설치고 까부는 건달은 모난 돌 마냥 언제고 정을 맞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니 건달은 그저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는 게 성숙하고 아름다운 자태라는 손 영감의 건달론은 그의 조부로부터 배운 뼈아픈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손 영감의 아버지는 손정민이라는 키가 크고 뼈가 굵은 강골의 사내였다. 그는 술을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하고 의리를 좋아하고 돈 쓰기를 좋아하는 전형적인 경상도 사내였다. 친구들이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당하면 손정민은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나서서 도와주었다. 하지만 이 멋진 사내는 채 서른도 안 된 젊은 나이에 광복동 한복판에서 미군들과 시비가 붙어 싸움질을 하다가 칼을 맞고 죽었다. 손정민이 무슨 이유로 미군과 시비가 붙었고, 또 어떤 이유로 칼까지 맞고 죽게 되었는지는 구경꾼들마다 하는 이야기가 다 다르다. 미군이 한국 여자를 거리에서 추행하려 해서 그랬다는 말도 있고, 친구의 술집에 들어와 행패를 부리는 미군을 말리다가 그렇게 됐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손 영감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아주 간단하게 말했다.
    “개폼을 잡다가 죽은 거지. 건달이 쓸데없이 폼을 잡으면 그렇게 훅 가는 기라.”

 

 

    3

 

    오전 열 시. 만리장 호텔 테라스에 두 사내가 앉아 있다. 한 명은 만리장 호텔의 주인인 손이고 다른 사람은 호텔 지배인 희수다. 손 영감은 기분이 좋아 보이고 희수는 잠이 덜 깬 얼굴로 기분이 나빠 보인다.
    “할 말 있으면 밤에 좀 부르소. 밤일하는 건달이 무슨 아침에 회의를 합니까?”
    희수가 투덜거렸다. 희수는 커피를 조금 마시고 속이 쓰린지 인상을 썼다.
    “빈속에 커피가 뭐고? 나처럼 인삼차 같은 거 마시거라. 몸에 좋은 거다.” 손 영감이 말했다.
    “몸에 좋은 거 영감님이나 많이 챙겨 드이소.”
    “에이, 그 새끼, 애써 챙겨 줘도 틱틱 거리기는.”
    “할 말이 뭔데요?”
    “뭐 별건 없고. 어제 구 형사랑 세무서 사람들이랑 몇 시까지 술 마셨드노?”
    “말도 마이소. 새벽 다섯 시까지 마셨어요. 아, 징그러운 새끼들. 공짜 술이라고 집에 안 가. 갈빗집 갔다가, 룸빵 갔다가, 가라오케 갔다가, 호텔방 갔다가, 겨우겨우 아가씨랑 호텔방에 쑤셔 넣었더니 구 형사 그 새끼는 술 취해 가지고 울고불고 얼마나 진상 짓을 하는지.”
    “그 산적 같은 새끼가 왜 울었는데? 금마 주사가 우는 거가?”
    “좆이 안 선다고 안 그랍니까? 그 새끼 원래 술 취하면 잘 서지도 않으면서 아가씨가 못생겨서 안 선다는 둥, 발목이 가느다란 여자로 바꿔 달라는 둥, 자기는 발목이 가는 여자와 야광 콘돔이 있어야 흥분을 한다는 둥, 팬티 바람으로 호텔 복도를 뒹굴면서 혼자 울고불고, 젊을 때 자기도 고생 많이 했는데 이제 살 만하니 좆이 안 선다고, 참 내, 지 좆이 안 서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그래도 세무서 사람들은 모범 학생들처럼 얌전하게 생겼던데?”
    손 영감의 말에 희수가 피식 웃었다.
    “아가씨들 말이 그 모범 학생들에 비하면 구 형사는 아주 양반이랍디다.”
    손 영감도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룸 아가씨들이 어제 고생이 많았구만. 시팔, 이놈의 나라는 많이 배운 놈일수록 어떻게 인간이 안 되고 전부 변태가 되노.”
    손 영감이 잔을 들어 흔든 다음 인삼차를 마셨다. 희수도 남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 습관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거 아침에 약수터 친구들이랑 호텔 커피숍에서 곰탕 좀 드시지 마이소. 명색이 호텔 커피숍에서, 그게 뭡니까? 격 떨어지게. 다른 사람들 우아하게 커피 마시고 있는데 노인네들 넷이서 깍두기 우걱우걱 씹고 있으면 장사가 되겠어요?” 희수가 말했다.
    “근데 이 새끼가 아침부터, 와 남 밥 묵는 거 가지고 시비고? 친구들이 곰탕집에서 먹는 거랑 호텔에서 먹는 거랑 맛이 다르다고 안 하나?”
    “곰탕이 다 그놈이 그놈이지, 다르기는. 노인네들이 아침부터 곰탕이나 묵고 있으니 우리보고 만리장 여관이라고 안 합니까?”
    “야이, 시발 놈아, 내 호텔에서 곰탕 한 그릇도 못 먹냐?”
    “아 됐소 마. 영감님 호텔이니, 호텔을 곰탕에 푹 말아 자시던가. 알아서 하이소. 그건 그렇고 후식이 건, 그거 어떻게 정리할랍니까?”
    “에헤이, 결산 다 끝난 이야기 갖고 또 왜 이라노. 내가 말 안 했나? 후식이한테 한 장 받았다니까. 그거 고스란히 너한테 주는 거라니깐.”
    “영감님. 어제 후식이하고 제가 통화했습니다. 후식이가 그러더만 영감님한테 분명히 두 장 줬다고.”
    “아! 거 후식이 그 입 싼 새끼, 공업용 미싱으로 주둥이에 오바로크를 치든가 해야지. 사람 쪽팔리게.” 손 영감이 머쓱한지 고개를 슬쩍 돌렸다. “아니, 후식이한테 받기는 두 장 받았는데, 거기 구청이랑 경찰 일 보는 그 새끼가, 그 새끼 이름이 뭐였지? 그래 본호, 하여간에 본호 금마가 행사 당일에는 경찰들 기름칠 해놔야 한다고 하도 떼를 써서, 우짜노 글로 3천은 가야지, 또 김 영감 그 골통 새끼 중개료 안 주면 삐치잖아. 우짜노 그래서 글로 한 2천 가고.”
    “그럼 남은 5천은요?”
    “5천이야, 여기저기 잡비 쓰고, 또 여기저기 또 뭐냐, 밀린 거 그거 갚고.” 손 영감이 흐지부지 말을 흐렸다.
    “거 돈도 많으신 분이 왜 그랍니까? 요즘 애들 줄 거 안 주고 일 시키면, 일 안 합니다. 옛날 같은 줄 압니까?”
    “그러니까 어쩌자고?”
    “다 달라고 안 할 테니 3천만 더 내놓으소.”
    “3천? 야가, 내가 3천이 어디 있노?” 손 영감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말했다.
    “그럼 나도 안 할랍니다. 뭐 남는 게 있어야지. 괜히 뺑이만 치고.”
    “너도 단가 그놈한테 8천에 치라매. 그럼 너한테 한 2천은 떨어지잖아.”
    “단가가 얼마나 빠꿈이인데 이런 구질구질한 일을 8천에 할라 합니까? 안 합니다.”
    손 영감이 심히 짜증스럽다는 듯 괜히 몸을 비틀었다.
    “이 나이에, 이 노구를 이끌고 전라도까지 갔다 와서 겨우 따온 오다다. 너 3천 주고 나면 나는 뭐 남노? 기름 값도 안 빠지겠네.”
    “영감님, 저 오늘 생일이에요. 아침에 미역국도 못 먹었어요.”
    “와? 니 마누라가 미역국 안 끓여 주더나?”
    “우리 마누라님 집 나간 지 여러 날 됐습니다. 이 나이에 월세 살고 있는 남편 뭐 예쁘다고 미역국을 끓여 줍니까?”
    “니가 못나서 미역국 못 처먹은 걸, 와 나한테 탓을 하노.”
    “영감님이 존나게 일만 시키고 돈을 안 챙겨 줘서 그렇다 아입니까? 청춘을 다 바쳐 충성을 했건만 남은 게 뭡니까?”
    “청춘을 다 바쳐 충성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니가 돈 못 모은 게 어디 내 탓이가? 남들 고기 묵는다고 들떠서 밖으로 나갈 때 풀이라도 처묵겠다고 덩달아 기어 나가니까 돈을 못 모으지. 달마다 들어오는 돈 차분하게 저축했으면 와 돈이 없노?”
    “풀이고 고기고 나는 모르겠고, 3천 더 안 주면 안 할랍니다.”
    “알았다. 알았다. 아이, 짜증나는 새끼. 2천. 더는 안 돼.”
    “언제 줄 건데요?”
    “아, 준다. 내가 네 돈 떼먹나?” 손 영감이 버럭 화를 냈다.
    그만 하면 되었다는 듯 희수가 슬쩍 웃으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손 영감은 남은 인삼차를 마시고 담배를 한 대 물었다.
    “그리고 용강이 새끼 자꾸 달라붙는데, 말로 합의가 안 돼요.” 희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용강이? 그 필리핀 새끼들 데리고 다니는 놈?”
    “필리핀이 아니고 동남아연합이라고 필리핀, 베트남, 태국, 미얀마 막 섞여 있는 애들이에요”
    “얼마나 달라는 건데?”
    “돈을 달라는 게 아니라 가게 하나 내자고 그러네요. 여름에 파라솔 두 타스하고.”
    “두 타스면 스물네 개? 햇빛 가리는 거?”
    “아뇨. 술도 파는 큰 파라솔.”
    “스물네 개면 얼만데?”
    “여름 해수욕 시즌에 장마 안 길고 햇빛 짱짱하면 한 3억은 떨어집니다.”
    “완전 도둑놈 새끼네. 약 몇 봉지 넘기고 여기서 완전히 터를 닦으려고 하네.”
    “조용히 처리할까요?”
    희수의 말에 손 영감이 깜작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직인다고? 야가 언제부터 이리 용감무쌍해졌노. 사람 목숨이 장난이가?”
    “에이, 죽이긴 누굴 죽입니까? 왼쪽으로 해서 발목이나 하나 끊는 거지예.”
    손 영감이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에 잠겼다.
    “동남아 애들이랑 붙으면 골치 아플 낀데. 걔들은 무대포잖아.”
    “붙으면 안 되죠. 용강이 새끼만 날리고 동남아연합 애들이랑은 따로 합의 봐야죠.”
    “용강이 놈 날리고 합의가 되겠나?”
    “돈만 주면 합의 되지요. 동남아연합이랑 용강이 새끼랑 뭐 짜달시리 피를 나눈 끈끈한 사이라고.”
    “동남아연합인가 걔들이 쓸 만한가?”
    “쓸 만합니다. 일 무식하게 잘하고, 싸고, 뒤탈도 없고.”
    “우리 애들이랑 섞으면 말 많을 긴데. 가뜩이나 일거리가 없다고 아우성인데.”
    “요즘 애새끼들 다들 빠져 가지고, 험한 일은 하나도 안 하려고 하면서 돈만 받아 처묵을라고 그래요.”
    손 영감은 잠시 말을 끊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희수야.”
    “말씀하이소.”
    “더러운 손으로 안경알을 만지지 마라.”
    손 영감이 사뭇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희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뭔 뜻인데요?”
    “더러운 손으로 안경알을 만지면 안경알이 더러워지잖아.”
    “그러니까, 그게 무슨 뜻이냐고요?” 희수가 다소 짜증을 내며 말했다.
    “뜻은 무슨. 안경알이 더러워지면 눈도 침침해지고, 또 닦아야 되니 귀찮고. 뭐 그렇다는 말이지.”
    “아, 진짜. 진지한 토론 중에 그놈에 김빠지는 소리 좀 하지 마이소. 뭔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그러니까 어떻게 하자고요?”
    “좀 더 지켜보자. 요즘같이 뒤숭숭한 시국에 일 벌이면 안 좋다. 니가 용강이 놈 한 번만 더 찬찬히 달래 봐라. 여름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까.”
    손 영감의 말에 희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하실 말씀은 없지예? 없으면 저 일어날랍니다.”
    “자려고?”
    “자야죠.”
    “그래 올라가서 좀 쉬라. 그나저나 생일인데 밥도 못 묵어서 우짜노. 호텔 주방에 시켜서 미역국 하나 끓이라고 할까?”
    “됐어요. 내 팔자에 미역국은 무슨.”

 

 

    4

 

    희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자기 방으로 들어왔다. 만리장 호텔 2049호실. 호텔의 맨 끝 방이고 창문 옆에 비상계단이 있어, 여차하면 도주하기 좋았다. 도주해 봐야 어디 갈 데도 없지만 그것이 어떤 안도감을 줬다. 문을 열었을 때 방 안에는 여전히 술 냄새가 가득했다. 테이블 위에는 어젯밤에 마신 캔 맥주, 빈 양주병, 안주 접시와 과일 껍데기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그것을 보자 울컥하고 속에서 메스꺼운 것이 올라왔다. 로비에 있는 마나 놈을 불러서 청소를 시킬까 했지만 이내 귀찮은 생각이 들어서 그만뒀다. 화장대 위에는 여자가 놔두고 간 스타킹 한 짝이 말린 채 있었다. 스타킹 한 짝만 신고 돌아간 여자는 누구였을까? 희수는 어젯밤 자기 방에 들어온 여자가 누구였는지 떠올려 봤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호텔 룸살롱에 있는 여자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역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처구니없다는 듯 희수가 피식 웃었다. 희수는 화장대 위에 있는 스타킹을 휴지통에 버리고 담배를 한 대 물었다. 화장대 거울 속에 한 사내가 있었다. 이제 에누리 없이 마흔 살이다.
    “마흔!”
    깡패 짓을 하기에는 너무 많은 나이라고 희수는 생각했다. 하지만 마흔하나에도 마흔둘에도 별수 없이 깡패 짓을 해야 할 것이다. 열일곱에 이 바닥에 들어와서 이 나이를 처먹도록 아직 집 한 칸도 장만 못 했다. 모은 돈도 없고 마땅한 기술도 없다. 설령 다른 기술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나이에 어딜 가서 뭘 할 것인가. 마흔, 변두리 깡패들의 중간 보스, 만리장 호텔의 지배인, 집 한 칸 없이 월세 집에 살고 있는 전과 4범의 사내. 바람 난 마누라와 아버지를 뱀처럼 징그럽게 생각하는 두 딸. 그게 희수의 현주소였다.
    ‘희수야, 희수야, 정신 좀 차리자. 네 나이도 이제 마흔이다. 어디서 칼 맞기 전에 한몫 잡고 이 생활 청산해야지.’
    피곤이 몰려왔으므로 희수는 침대에 누웠다. 밤새 켜져 있었던 텔레비전에선 대통령이 기념식수를 심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잠을 못 자서 그런지 목이 칼칼했다. 희수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고 대통령 내외가 나무를 심는 장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살찐 백구 두 마리가 삽질을 하는 대통령 사이를 발랑거리고 있었다.
    "또 나무를 심는구나." 희수가 중얼거렸다.
    희수가 어린 시절을 보낸 모자원에서는 식목일에 단체로 생일 파티를 했다. 5월에 태어난 아이건, 12월에 태어난 아이건 모자원 아이들의 생일 파티는 1년에 한 번뿐이었다. 구청에서 나온 사람들이 벌거벗은 산에 나무를 심고 무슨 큰 자선을 베풀 듯 생일 파티를 열어 주는 것이다.
    열댓 명의 아이들이 있고, 작은 케이크가 있고, 일곱 개의 초가 있다. 왜 초가 일곱 개인지는 모른다. 다섯 살짜리도 있었고 열한 살짜리도 있었는데. 모자원 아이들의 나이를 평균해서 일곱 개를 꽂은 건지도 모른다. 아니라면 제과점에서 주는 대로 그냥 꽂았을 수도 있다. 어쨌건 초를 꽂고 다 같이 생일 노래를 부르고 그리고 하나, 둘, 셋 구령에 맞춰 열댓 명의 아버지 없는 아이들이 그 작은 케이크를 향해 모두 후 하고 촛불을 끄는 것이다. 그래서 식목일이 오면 항상 생일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아무도 따로 생일을 챙겨 주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생일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제 나이에 맞게 생일 케이크에 초를 꽂은 적도 없었고, 아침에 미역국을 받아먹은 기억도 없었다. 희수는 대통령 내외와 그 사이를 돌아다니는 두 마리의 백구와 그리고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앙증맞은 기념식수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오후 네 시였다.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려대고 있었다. 희수가 짜증을 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전화기를 들자마자 무슨 굉장한 일이라도 터진 것처럼 마나가 떠들어댔다.
    “희수 행님, 큰일 났습니다. 단가 행님이 화가 잔뜩 나가지고 희수 행님 어디 있냐고, 희수 형님 찾기만 하면 죽여 버린다고, 지금 손에 사시미칼을 들고, 피범벅이 되어서, 로비에서 마구 소리 지르고, 아주 난리도 아닙니다.”
    말벌처럼 앵앵거리는 마나의 목소리를 들고 있자니 짜증이 났지만 희수는 그냥 참았다. 어차피 말해 봐야 말귀도 못 알아먹는 놈이었다.
    “단가가 칼을 휘둘러서 누가 다쳤냐?”
    “아닙니다.”
    “그럼 왜 피범벅이 되었는데?”
    “아니, 누가 다친 게 아니라예 단가 행님이 칼을 휘젓다가 자기 칼에 자기가 좀 찔렸습니다. 그러니까 피범벅까지는 아니고 그냥 피가 좀 난 거지예.”
    짜증이 났지만 희수는 그냥 참았다. 얼마 전에 의사가 고혈압이니 화를 내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좋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늙은 의사는 화를 한 번 낼 때마다 수명이 한 시간씩 줄어든다는 걸 명심하라고 말했다. 희수는 화를 참기 위해 길게 한숨을 쉬었다.
    “마나야. 별일도 아닌 일로 호들갑 좀 떨지 마라. 나 피곤하다.”
    “죄송합니다, 행님.”
    “나 좀 씻을 테니까, 단가한테 30분 있다가 보자고 그래. 그리고 커피 한 잔 들고 와. 진하게."
    "밤늦게까지 술 마시고 속도 허전하실 텐데 해장국이라도 한 그릇 들고 갈까요? 아침에 철진이 엄마가 시래기 해장국 만들어 왔는데, 아, 맛이 좋아요." 뭐가 좋은지 마나가 신이 나서 말했다.
    "그냥 커피면 돼.”
    “그래도 시장하실 텐데. 해장국이 싫으면 계란 프라이랑 토스트 같은 거라도 들고 갈까요?”
    그때 갑자기 그토록 애써 참았던 짜증이 폭발했다. 희수는 전화기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야이 닭대가리 새끼야, 내가 그냥 커피면 된다고 그랬지? 똑같은 말을, 시발 몇 번이나 하게 만드노."
    "죄송합니다. 커피 챙겨서 올라가겠습니다." 한껏 부풀어 오른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금세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마나가 대답했다.
    마나는 호텔 로비에서 일한다. 스물일곱 살이다. 늘 하나마나한 짓거리를 하거나 하나마한 말을 씨부려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하나마나라고 부른다. 그러다 귀찮아서 그냥 마나라고 부른다. 분위기를 못 맞추고 어디서나 실없는 소리를 씨부려대는 것만 빼고 나면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다. 성실하고 심성도 착한 놈이다. 일도 잘하는 데다 아주 정직하기까지 해서 호텔 돈을 빼돌리거나 호텔 룸살롱이나 가라오케에 새로 영업을 트려는 주류업자나 청과물업자들에게 뒷돈을 받는 일도 없다. 놈은 그저 끝없이 실없는 소리를 씨부려대야 하는 슬픈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뿐이다.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 단가는 이미 방에 들어와 있었다. 단가의 와이셔츠에 피범벅까지는 아니고 핏방울이 살짝, 맺혀 있었다. 숨 쉴 틈도 안 주고 단가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희수 형님, 이건 진짜 아니지. 큰 거 한 장 준다고 해놓고 8천 7백이 뭐고 8천 7백이. 9천이면 9천, 한 장이면 한 장이지, 8천 7백은 뭔 애매모호한 계산법이냐고. 어잉? 천 3백은 어디서 싹둑 잘라 먹었노.”
    “오바 좀 하지 마라. 좀 조용히 오면 안 되냐? 그리고 그거 내가 잘라 먹은 거 아냐. 위에서 벌써 잘라 먹고 왔더라니니까. 그쪽에 경찰이랑 구청 쪽에 뭐 좀 처먹이고 김 영감 중개료니 뭐니 준다고 해서 진짜 우리한테 떨어진 게 한 장이야.” 희수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면서 말했다.
    “행님아, 요즘 버스비가 얼만지는 아나? 짜장면 값이 얼만지는 알고?”
    “짜장면은 또 뭔 개소리야?”
    “내가 답답해서 안 그라나. 8천 7백 가지고 애기들 서른 명 모아서 저 멀리 대한민국 최남단까지 가서 용역 작업을 한다. 이게 말이 되나?”
    “왜 말이 안 되냐. 8천 7백이면 작업 다 하고 네 모가지로 3천은 떨어지겠구만.”
    “3천은 지랄. 단가가 안 나오는데 단가가. 거꾸로 내 돈을 쑤셔 박아도 한참은 모자라겠구만.”
    “뭐가 단가가 안 나와. 이리저리 비비고 뭉개고 하면 대충 나오겠구만.”
    단가가 주머니에서 종잇장 하나와 계산기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이거 봐라. 내가 결산 다 해왔다. 여기서 십 원 한 장 빠질 데가 있는지 행님이 직접 봐라.”
    희수가 단가가 정리한 종잇장을 슬쩍 읽어봤다.
    “봉고차 5백? 아, 이 새끼. 5백이면 봉고차를 아주 사겠다. 그리고 애들 서른 명 가는데 뭔 봉고차가 다섯 대야. 12인승이라매. 세 대면 딱 되겠네.”
    “세 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12인승이면 유치원 애들을 데리고 타도 빡빡한데 그 오랑우탄만 한 애기들을 봉고차 세 대에 우째 다 태우노. 장비는 안 들고 가나? 쇠파이프 택배로 부칠까? 그리고 이게 대포차예요. 번호판 갈아 끼우는 값도 들어 있는 거고. 부산에서 원정 왔다고 광고할 일 있소.”
    “밥값 천만 원. 이건 또 뭐고. 밥값이 천만 원이냐? 이 양심에 털도 안 난 새끼야? 철거민 좀 밀어내고 어디 잔치 치를 생각이냐?”
    “요즘엔 이런 험한 일 하고 나면 다들 룸빵 한 번씩 돌려요. 뭐 우리 때처럼 소주에 족발 한 점 묵고 끝날 줄 압니까.”
    “인건비 1000 + 1000+ 1500 은 또 뭐야? 인건비 계산이 왜 이리 복잡해?”
    “애기들은 두당 30만 원이니까 서른 명이면 1000. 아미동 중간 대가리들은 자기 애들 인솔해서 오니까 3백만 원씩은 줘야지. 구암 애들은 2백만 원씩이고.”
    “뭔 30이야? 얼마 전까지 20이던데.”
    “요즘에 누가 20만 원 받고 이런 일 합니까? 차라리 노가다 판에 나가지.”
    “아미동 애들이 3백 달래?”
    “아미동이야 우리 식구가 아니니까 3백은 줘야죠.”
    “개새끼들, 와서 빈둥거리기나 할 거면서 3백은. 에이 난 모르겠다.”
    희수가 보다가 짜증이 나서 종잇장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단가가 종잇장을 재빨리 줍더니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딱 1억 100만 원이 나온 계산기를 희수에게 내밀었다.
    “이거 보이소. 경비로 딱 1억 맞지요. 행님이 봐서 알겠지만 더 뺄 것도 없다 아입니까. 한 5천은 더 받아야 되는 건데, 그냥 3천만 더 쏘아 주이소. 그래야 우리도 일할 맛이 나지. 내가 들어 보니까 이런 일은 오다가 최소한 두 장 이상으로 떨어진다더만.”
    “솔직히 나한테 떨어진 돈이 딱 9천이다. 영감님이 천만 원 삥 뜯어가서.”
    “손 영감? 영감님이 이런 일에 삥을 뜯어 갑니까?”
    “자기가 늙은 노구를 이끌고 전라도까지 가서 따온 오다라고 천만 원 떼더라고. 어쩌냐?”
    “돈도 많은 양반이 진짜 너무하네.”
    “단가야. 솔직히 나 이걸로 3백만 원 먹는다. 그래서 9천에서 3백 빠진 8천 7백이야. 후식이 그 새끼가 하도 부탁해서 안면 때문에 할 수 없이 하는 거야. 나도 남는 거 좆도 없다니까. 이번 일은 미안한데 이 정도에서 대충 넘어가자. 요즘 형이 진짜 힘들어서 그래.”
    “이번만 넘어가자, 넘어가면 또 이번만 넘어가자. 난 못 한다. 이거 무슨 자원봉사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애들만 졸라 뺑이치고, 현장 가서 멍들고, 사고 나면 옴팡 뒤집어쓰고. 나 안 해.”
    “아 그 새끼. 대신 해수욕 시즌에 파라솔 한 세트 줄게.”
    “한 세트? 열두 개짜리?”
    “여덟 개짜리.”
    “어디? 구름다리 쪽으로?”
    “위치는 나중에 다시 정하고. 하여간에 그것 받고 하려면 하고 말라면 말아라. 니가 안 한다면 나는 두꺼비 쪽 알아볼 테니까.”
    “지랄, 두꺼비가 잘도 하겠다. 그 새끼가 눈 끔뻑거리는 거 말고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뭐 있어요?”
    단가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계산을 하고 있을 거다. 단가라면 8천 7백으로도 한 2천은 남길 거고 거기에 보너스로 파라솔도 생긴다. 남는 장사다. 잠시 후 계산이 끝났는지 단가가 입을 열었다.
    “파라솔 줄 거면 나는 통닭 할란다. 파라솔은 번거롭기만 하고, 여름에 해산물도 금방 상하고, 또 장마라도 길어지면 재료값이니 아줌마들 인건비니 붕 뜨고. 통닭이 간편하고 최고다. 가마솥 큰 거 하나 빌려서 기름 넣고 튀기기만 하면 되니까.”
    “통닭은 이미 다 찼다.”
    “통닭이 다 차는 게 어디 있노? 해수욕장 뜨거운 모래사장에서 수십만 명의 인파들이 간절히 통닭을 기다고 있구만.”
    “전부 다 통닭 처묵고 배부르면 사람들이 회 먹나? 멍게 먹나? 횟집 상인들이랑 포장마차에서 하도 지랄들을 해가지고 이번에 통닭도 숫자 맞췄다.”
    “에이, 시팔, 파라솔은 귀찮은데.”
    단가가 투덜거렸다. 단가가 투덜거린다는 것은 8천 7백에 하겠다는 뜻이다. 희수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쇠파이프 안 된다. 각목으로 들고 가라.”
    “하이고, 행님. 각목이 나무라서 더 안전할 것 같지요? 현장이 안 그래요. 차라리 쇠파이프가 안전하다니까. 쇠파이프는 들고만 있어도 움찔움찔하는데 나무 막대기에는 사람들이 겁을 안 먹어. 겁을 안 먹으니 그냥 들이대. 그냥 들이대는데 어떻게 사고가 안 나노?”
    “그래서 저번에 두 명이나 머리를 터트리고 왔냐? 그거 병원비랑 합의금 넣고 아주 박살났다. 이 새끼야. 이번에도 사고 나면 너나 나나 진짜 고생만 하고 똥물 뒤집어쓰는 거다. 알겠나?”
    “내가 알아서 잘할게요. 나 원래 잘한다 아입니까? 대신 파라솔은 좋은 자리로 주이소?”
    “알았다.”
    이야기가 다 끝났다는 듯 단가가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희수도 단가의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리고 창가로 가서 창문을 열었다. 아직 성수기가 오지 않아서 구암의 해변은 텅 비어 있었다. 여름이 오면 저 해변은 휴가를 온 사람들로 꽉 찰 것이다. 구암의 사람들은 여름에만 돈을 번다. 모두들 관광객을 상대로 여름 장사를 해서 한몫씩 목돈을 움켜쥔다. 그리고 그것으로 일 년을 먹고 산다. 하지만 여름은 짧다. 그 돈으로는 다음 여름까지 버틸 수 없다. 그래서 여름이 끝나면 당구장, 다방, 여관방 곳곳에서 도박판이 벌어진다. 서로가 서로의 살을 뜯어먹고 싸우면서 구암의 사람들은 금세 가난해진다.
    “용강이 알지?” 희수가 물었다.
    “용강이? 동남아 애들 우르르 데리고 다니는?”
    “그 새끼, 손 좀 봐야 되겠는데.”
    “용강이가 왜요?”
    “동남아연합 데리고 여기서 터를 잡으려고 해서.”
    “얼마나 손보려고?”
    “발목 하나 자를까 싶어서. 사람 있나?”
    “용강이 쉽지 않은데.” 단가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용강이는 발목 하나 잘린다고 그만둘 놈 아이다.”
    “그 새끼가 그렇게 독하나?”
    “용강이 나이가 우리보다 한 10년 위잖아, 월남전 갔다 왔다 하더라. 지 입으로 맨날 베트콩 죽인 이야기 씨부리고 다니는데 다 믿을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월남전 전우앤가 뭔가 그 새끼들도 심각하고 게다가 동남아연합 애들, 걔네들 얼마나 갈찌마오들인데. 개들 물불 안 가린다. 할 줄 아는 건 좆도 없고 심성만 졸라 착한 우리 애기들 데리고 걔들이랑 전쟁 못 한다.”
    “전쟁은 무슨, 그냥 용강이만 제낄 거야.”
    “그러니까 내 말은, 용강이는 발목 하나로는 안 되고, 일할 거면 그냥 파묻어야 된다. 그래야 행님한테 뒤탈이 없다.”
    “달자 요즘도 칼 쓰나?”
    “달자 행님은 나이가 많아서 이제 안 되고, 그 아들내미가 계속 그 일 하는 갑데.”
    “정육점 하는 아들?”
    “저번에 바나나 배급 때문에 전쟁 나 가지고 온천장 시끄러울 때 거기 중간 간부 두 놈 죽었잖아? 그게 그 아들내미 작품이라던데.”
    “그걸 왜 나만 모르지?”
    “이런 고급 정보를 아무나 알고 있으면 내 같은 놈은 뭐 묵고 사노?”
    “고급 정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내가 아무나냐 이 개새끼야.”
    “달자 형님한테 내가 슬쩍 떠볼까? 아들내미 일하는지?”
    “아직. 영감님 오다가 안 떨어졌다.”
    “그냥 용강이한테 파라솔 몇 개 주라. 이거 김밥 옆구리 터지듯 삐져나오면 행님이나 나나 인생 훅 간다.”
    “파라솔 몇 개로 끝날 것 같으면 주지. 용강이가 그걸로 끝내겠나?”
    “아 시발, 용강이 그 새끼는 남에 동네 와서 대체 왜 그라는데?”
    “동남아 애들이 갈 데가 여기밖에 없거든. 감천은 러시아 애들이랑 일하고, 중앙동은 중국 애들이랑 일하고, 해운대 광안리는 일본 애들이랑 일하니까.”
    “용강이 제끼면 동남아 애들은 우리가 거두고?”
    “거둬야지.”
    “동남아랑 섞이면 우리 애들이 지랄 안 하겠나?”
    “지랄하겠지.” 희수가 담담하게 말했다.

 

    지랄해도 어쩔 수 없다고 희수는 생각했다. 자기 밥그릇을 지키려면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구암의 바다에는 허섭스레기들 말고 아무도 없었다. 쓸 만한 놈들은 대부분 잡혀가거나 돈 벌이가 되는 곳으로 떠나갔다. 이제 더러운 숙소 생활을 하려는 건달들도, 자기들끼리라도 마음이 통해 단단히 뭉쳐 있는 애들도 없다. 자기 몸은 사리면서 계산만 재빨리 돌아가는 빠꿈이들뿐이다. 단가는 소파에 있는 신문을 몇 장 뒤적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 주아미가 내일 출감한다는데. 들었어요?”
    “들었어.”
    “애들이 신이 나서 감옥 앞에 마중 간다고 지금 구암 바다가 텅 비었어요. 햐, 역시 뜨거운 피. 그놈의 인기는 좀처럼 사그라지지를 않네. 형님도 갈 거요?”
    “너는?”
    “난 바빠서 안 되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럼 일 보이소. 나 갑니다.”
    “이번 일 많이 못 챙겨 줘서 미안하다.”
    “파라솔 약속이나 꼭 지키소.”
    “그리고 단가야?”
    “왜요?”
    “담배는 놔두고 가라.”
    “에이 시발, 좀 사서 피지.”
    단가가 호주머니에 있는 담배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투덜거렸다. 그리고 호텔 방을 빠져나갔다. 희수는 다시 담배를 한 대 물고 바다를 바라봤다. 바다라는 건 멍하게 바라보기 좋은 곳이다. 희수는 바닷바람을 타고 정신없이 흩어지는 담배 연기를 바라보며 “뜨거운 피가 나오는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그의 이름은 주아미였다. 하지만 구암의 사람들은 모두 그를 뜨거운 피라고 불렀다.

 

 

    5

 

    오늘 새벽 뜨거운 피가 감옥에서 나왔다.
    4년 만의 출감이었다. 물론 감옥 앞에 마중을 나가는 짓거리 따위는 하지 않았다. 희수가 마중을 나가지 않아도 뜨거운 피의 열렬한 패거리들이 전날 밤부터 감옥 앞에서 자동차 경적을 울리고 빈 술병을 감옥 담벼락에 집어던지며 난리를 피웠을 것이다. 안 봐도 뻔하다. 희수는 지난 몇 년 동안 출소하는 놈들을 마중하러 감옥 앞에 간 적이 없었다. 심지어 손 영감이 출소했을 때조차 가지 않았다. 희수는 출소하는 날의 감옥 앞 풍경이 싫었다.
    이 지역의 감옥들은 죄수들을 새벽에 출감시킨다. 심지어 자정이 넘자마자 바로 나오는 놈들도 있다. 일단 복역 날짜를 다 채우고 나면 단 몇 시간도 감옥에 머물기 싫다고 생떼를 부리는 죄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고작 몇 시간뿐인데도 그런 놈들의 뗑깡은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이 동네의 건달들은 전날 밤에 감옥으로 마중을 나간다. 새벽의 축축한 공기, 술 냄새를 풍기는 피곤한 얼굴들, 기다리는 것 말고 할 짓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으므로 모두들 담배만 피워댄다. 이제 곧 누군가 감옥에서 나온다. 고생했으므로 보상을 해줘야 한다. 나오는 놈이 중간 간부급이라면 고민이 깊어진다. 살림이 뻔한데 뭐로 보상을 하나. 결국 각자의 주머니에서 조금씩 걷어내야 한다. 술집 하나를 통째로 넘겨야 할지도 모르고, 잘 돌아가는 마사지 방이나 오락실을 넘겨야 할 수도 있다. 애들 관리하랴, 여기저기 처먹이랴, 그렇지 않아도 살림꾸리기가 팍팍한데 허리띠를 한 칸 더 졸라매야 할 판이다. 젠장 할, 한 몇 년 더 푹 처박혀 있다 나올 것이지 벌써 나올 게 뭐람. 모두들 짜증이 난다. 하지만 시간은 어김없이 지나가고, 철문도 어김없이 열리며, 누군가는 복역을 마치고 나온다. 기다리던 건달들이 환호를 하고 과장된 포옹을 한다. 술병을 깨고, 요란하게 경적을 울린다. 물론 이 반가움이야말로 노회한 선배 건달들이 물려준 유치한 연극이다. 반가워하는 데 돈 드는 거 아니니까. 애기들 우르르 끌고 가서 자동차 경적 몇 번 울려 주면 그만인 일이다. 하지만 젊은 건달들은 곧잘 이런 환호에 속는다. 심지어 감동받아 우는 놈도 있다. 그래서 금세 자기가 번호표를 잘못 뽑은 대가로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고 나왔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웃기는 일이라고 희수는 생각했다. 이런 일에 감동을 많이 받는 놈일수록, 의리가 있니 진짜 사내니 하는 되도 않은 칭찬에 어깨가 으쓱한 놈일수록 다음에 감옥 갈 번호표를 받을 확률도 높아진다. 젊은 날의 희수도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네 번이나 감옥에 갔었다.
    어쨌거나 희수는 감옥 정문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헛지랄들이 싫었다. 담배 연기, 술 냄새, 어슬렁거림, 그 요란함이 싫었다. 게다가 검은 비닐봉지 안에 들어 있는 불결하고 미지근한 두부도 아주 질색이었다. 그런 모든 것이 희수의 네 번이나 되는 수감생활과 그에 관련된 나쁜 기억들을 한꺼번에 떠오르게 했다. 희수는 어떤 지독한 교도관과 사이가 몹시 좋지 않았는데 그 질긴 악연 때문에 그의 수감생활은 한없이 피곤했다. 희수는 출소를 하면 그 교도관을 죽여 버리겠다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출소를 하고 나자 감방과 관련된 것을 떠올리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와서 그냥 관둬버렸다. 그놈으로선 아주 운이 좋은 것이다.
    하지만 뜨거운 피가 출감하는 날이라면 그 거지발싸개 같은 감옥 앞이라고 하더라도 한 번쯤은 다시 가볼 용의가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를 댈 것도 없이 희수는 그놈이 몹시 보고 싶었다. 희수는 뜨거운 피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늘 그놈을 곁에서 지켜봤었다. 뜨거운 피에게는 아버지가 없었고, 그놈의 엄마인 인숙과 희수는 같은 모자원 출신에다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여기서 말하긴 뭣 하지만 희수는 인숙에게 지은 죄가 좀 있었다. 아버지가 필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인숙은 그것을 빌미로 은근히 협박을 하거나 협박이 통하지 않으면 징징대며 애원을 했다. 그래서 희수는 없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뜨거운 피의 초등학교 입학식에 가야 했고 또 졸업식에도 가야 했다. 한번은 중학교 담임선생이 급히 아버지를 찾는다고 해서 교무실에 간 적도 있었다. 물론 인숙이 찾아왔을 때 희수는 학교 교무실이라면 딱 질색이라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인숙이 만리장 호텔까지 찾아와 제 가슴을 쥐어뜯고 바닥을 치며 한 시간이나 울어대는 탓에 어쩔 수 없었다.
    사건의 요는 뜨거운 피가 싸움질을 했다는 것이다. 사실 싸움은 뜨거운 피가 눈만 뜨면 하는 짓거리이므로 새삼 대수로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곱 명이나 병원에 실려 갔다는 게 문제였고, 그중 두 명은 턱관절이 부서져서 병원비가 많이 나왔다는 게 문제였다. 자기보다 두 학년이나 높은 3학년 형들을 패서 엄중한 학교의 기강에 망신을 준 것도 문제였고, 그 형아들이 공교롭게도 해마다 상장과 트로피를 잔뜩 안겨 주며 학교의 이름을 드높이던 유도부여서 이번 전국체전에는 탁구부 후보 선수라도 불러 머릿수를 채우지 않는 한 참가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였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들을 일거에 닥치게 만드는 문제 중의 문제는 그 유도부원 일곱 명 중에 한 명이 하필이면 재단이사장의 손자라는 점이었다. 뭐, 재단이사장의 손자라는 것을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는 것은 아니므로 뜨거운 피를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어쨌거나 이쯤 되면 수습하기에는 이미 선을 넘어도 한참 넘어버린 것이다. 인숙은 여기저기서 급히 구해온 돈뭉치를 내밀며 돈이 모자라면 더 구해올 테니 제발 뜨거운 피가 학교만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희수에게 사정했다. “이게 어디 나에게 사정한다고 될 일이가?” 하고 희수는 말했다. 하지만 인숙의 왕방울만 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희수는 할 수 없이 신문지에 볼품없이 돌돌 말려진 돈뭉치를 들고 그 빌어먹을 교무실로 가야 했다.
    나무젓가락처럼 깡마른 몸에 금테 안경을 낀 담임은 희수보다 어려 보였다. 담임은 뜨거운 피에 대해 이놈은 200번을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인간이 될 놈이 아니라는 둥, 애써 키워 봐야 결국 깡패나 될 게 뻔하다는 둥, 학교 같은 데 보내면 다른 애들에게 피해만 끼치니 일찌감치 공사판 같은 데나 보내 기술을 배우게 하는 것이 낫다는 둥, 막말을 늘어놨다. 이놈은 선배도 몰라보고, 선생도 몰라보고, 어른도 몰라보는데 이런 인간을 두고 공자님께서도 심히 개탄하며 짐승과 다를 바 없다 하여 개잡놈이라고 칭하지 아니하였던가, 자기 담당 과목은 윤리인데 윤리란 게 인간에게나 쓰임이 있는 것이지 이놈 같은 짐승한테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정말 윤리 선생으로서 한계와 회의를 느낀다, 따위의 얼토당토않은 푸념도 늘어놨다. 뜨거운 피는 희수와 담임 사이에서 죄인처럼 앉아 있었다. 희수가 그렇게 풀이 죽어 있는 뜨거운 피를 본 것은 평생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희수는 담임이 책상을 탁탁 칠 때마다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죄송하다는 말을 후렴구처럼 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놈의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서라도 단단히 일러 놓겠다고 사정하다시피 말했다. 하지만 담임은 희수가 하는 말을 듣고 피식 웃더니 이놈한테 그게 통할 것 같소? 솔직히 개돼지도 매를 대면 말을 듣습니다. 하지만 이놈한텐 그런 게 안 통하지요. 짐승만도 못하다는 말이 달리 있는 게 아닙니다. 바로 이런 놈을 두고 하는 말이지요. 그러니 까마귀나 닭새끼를 가르쳐도 하다못해 딱정벌레나 지렁이를 가르쳐도 이놈보다는 한결 보람이 있을 게요, 하고 말했다. 담임의 연설은 그칠 기세가 아니었다. 학교 선생님한테 할 말은 아니지만 정말이지 말이 존나게 많은 새끼였다. 그래도 한 시간까지는 어째 들어줄 수 있었는데 한 시간이 넘어가자 희수의 인내심도 슬슬 바닥이 났다. 담임이 이사장님의 결단도 단호하고, 교무회의에서도 이미 퇴학을 결정했다는 이야기를 할 때까지도 희수는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했었다. 그런데 애비 없는 자식 놈들은 결국 다 이 모양 이 꼴이라는 얘기를 하자 희수도 폭발하고 말았다. 희수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서 애비 없는 자식인 줄 알면서 왜 굳이 있지도 않은 아버지를 학교에 오라고 했냐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희수가 책상을 쾅 하고 치자 담임은 뱀눈처럼 가늘게 눈을 치켜뜨고 희수를 파르르 노려보더니 이 사람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큰 소리를 지르느냐며 마치 옆에 있는 다른 선생들더러 들으라는 듯 자기가 더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희수는 선생에게 삿대질을 하며 뭐? 200번을 다시 태어나도 인간이 안 돼? 듣자듣자 하니 그게 아직 좆털도 안 난 아이에게 선생이란 작자가 할 소리냐고, 그리고 한창때 아이들끼리 싸움질을 할 수도 있는 거지 이사장의 아들 새끼는 좆에 금테라도 두르고 태어났나? 뭐 그렇게 숭고하고 대단한 놈이라고 주먹 몇 대 맞은 걸로 애를 퇴학까지 시키느냐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그러자 담임이 대뜸 희수의 멱살을 잡고선 뭐? 이사장의 아들 새끼? 이 깡패 새끼가 어디 비교할 때가 없어서 이 짐승 같은 놈과 귀하디귀한 이사장님의 아드님을 비교하느냐며 욕지거리를 퍼붓기 시작했다. 담임이 멱살을 꽉 잡고 이리저리 희수의 목을 흔들자 와이셔츠 단추 몇 개가 후드득 떨어졌다. 술집 여자처럼 길게 기른 손톱으로 어찌나 세게 움켜쥐었는지 목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희수는 너무나 화가 나서 담임을 바닥으로 패대기쳤다. 말라깽이 담임은 어이쿠, 하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더니 캐비닛 어딘가에 콕 처박혔다.
    물론 내가 참았어야 했다, 고 희수는 생각했다. 하지만 욕설을 먼저 한 것도 선생이었고, 목에서 피가 나도록 멱살을 잡은 것도 선생이고, 내 잘못이라고는 두 손으로 멱살을 잡고 아귀처럼 물고 늘어지는 선생을 내 몸에서 떼어낸 것밖에 더 있냐? 라고도 희수는 생각했다. 그리고 에이 시팔, 모르겠다, 그 정도면 할 만큼 한 거지, 라고도 생각했다. 어쨌거나 그것으로 뜨거운 피의 짧은 학교생활은 끝이 났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인숙은 희수에게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교무실 소동이 있은 지 일주일쯤 후에 뜨거운 피가 만리장 호텔로 찾아왔다. 뜨거운 피는 호텔 바 끝에서 신문을 읽고 있는 희수 곁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더니 그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한참 동안이나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왜? 또 무슨 사고 쳤냐?” 희수가 물었다.
    아니라는 듯 뜨거운 피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아저씨.”
    “나 바쁘니까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이제부터 아버지라고 불러도 돼요?”
    어이가 없어서 희수가 뜨거운 피를 한번 바라봤다.
    “밥 잘 처먹고 뭔 개소리야? 너랑 나랑은 피 한 방울 안 섞였는데 아버지는 뭔 얼어 죽을 놈의 아버지?”
    "아저씨한테는 아들이 없고, 나는 아버지가 없잖아요?"
    "그런데?"
    "아들 하나 낳아서 이만큼 살찌우려면 분유 값만 해도 얼만데, 아저씨한테는 공짜로 아들이 하나 생기고 나는 공짜로 아버지가 하나 생기고, 이보다 더 좋은 장사가 어디 있겠어요?"
    “야이, 골통이 텅 빈 새끼야. 자식 키우는 데 분유 값만 드냐? 이것저것 들어가는 돈이 얼마나 많은데? 게다가 네가 어디 보통 놈이냐? 네 엄마가 네 밑으로 쑤셔 놓은 합의금만 모았어도 지금쯤 집 한 채는 샀겠다."
    제가 생각해도 뭔가 민망한 모양인지 뜨거운 피가 천장을 한 번 올려다보고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운동화 앞굽으로 바닥을 슬슬 문질렀다. 뜨거운 피의 운동화는 낡고 더러웠다. 운동화의 엄지발가락 부분은 닳아서 뜯어져 있었고 끈도 풀어져 있었다.
    “칠칠치 못한 새끼야. 너는 왜 맨날 운동화 끈을 풀어서 질근질근 밟고 다니냐? 그러니 니 인생도 풀어진 끈처럼 맨날 그 모양이지.”
    “볼 때마다 묶는데 금세 또 풀려버려요.”
    희수가 신문을 접고 의자에서 일어나자 뜨거운 피는 머리라도 한 대 때리려는 줄 알았는지 몸을 움찔했다. 희수가 허리를 숙여 운동화 끈을 잡았다.
    “자 봐. 손가락을 넣고 이렇게 매듭을 단단히 지어야 끈이 안 풀리지. 이렇게 꽉.”
    뜨거운 피는 희수가 매준 운동화 끈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봤다. 잘 묶였다는 건지 어쨌다는 건지 별 이유도 없이 뜨거운 피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뜨거운 피는 한참을 더 머뭇거리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저씨한테 돈 달라고 안 할 테니 그냥 내 아버지 해요. 돈 안 들이고 공짜 아들 생기면 나쁜 장사 아니잖아요?"
    듣고 보니 별로 나쁜 장사가 아닌 듯도 해서, 사실은 학교 문제로 그놈에게 지은 죄도 있고 해서 희수는 몹시 귀찮다는 표정으로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알았다. 알았으니 이제 그만 꺼져라. 나 일해야 된다.”
    그러자 뜨거운 피는 인사를 꾸벅하더니 사탕이라도 한 움큼 입안에 넣은 것처럼 신이 나서 밖으로 달려 나갔다. 생각해 보면 10년도 넘은 일이다. 아마 희수와 뜨거운 피 둘 다에게 지금보다는 훨씬 좋은 시절이었을 게다. 건달 짓거리 말고 뭔가 좀 건전하고 떳떳한 일을 하며 살아갈 수도 있었을 시절이었다. 하긴 말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지금이랑 별다를 게 없는 인생이었을 게다. 우리처럼 배배 꼬인 놈들의 인생은 항상 그런 거라고 희수는 생각했다. 어쨌거나 그날 이후로 뜨거운 피는 희수의 아들이 되었다. 마치 농담처럼 말이다.

 

 

    6

 

    인숙이 뜨거운 피를 낳은 것은 열여덟 살 때였다. 그때 인숙은 완월동 창녀였다. 창녀가 애를 배는 것도 이상한 일이고 누구의 씨인 줄도 모르는 그 애를 굳이 낳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열여덟 살의 인숙은 고집을 부렸고 사창가 쪽방에서 산파를 불러 애를 낳았다.
    인숙과 희수는 아버지 없이 엄마들만 모여 사는 모자원이라는 곳에서 같이 자랐다. 모자원은 한국전쟁 직후 늘어난 전쟁미망인들을 위해 설립되었다는데 희수가 어릴 때는 전쟁미망인보다 늙고 병들어서 갈 곳 없는 창녀들이 더 많았다. 여자들과 아이들밖에 없었지만 도둑도 들지 않았고 건달들이 괴롭히지도 않는 곳이었다. 훔쳐갈 물건도 등쳐먹을 그 무엇도 없는 가난한 동네였기 때문이었다.
    모자원은 학교 교실처럼 하나의 지붕 아래 열 개의 가구가 긴 복도를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조였다. 그런 건물이 여섯 동 정도 있었으니 다 찼으면 예순 가구 정도가 모여 사는 셈이었다. 미군 부대에서 나온 벽돌로 지은 외벽은 페인트칠도 되어 있지 않았고, 성인 남자가 없는 탓에 제때 수리를 못 해서 슬레이트로 된 지붕 곳곳에선 비가 샜다. 각각의 집에는 부엌 하나와 쪽창문이 있는 작은 방이 하나씩 있었는데, 그 집 식구가 세 명이든 열 명이든 모든 집의 크기와 구조는 동일했다. 집과 집 사이의 벽은 무척이나 얇아서 밤에 잠이 들면 옆집 소년이 몰래 자위하는 소리조차 들릴 정도였다.
    막상 집이라고 해봐야 부엌과 방뿐이었으므로 나머지는 모두 공동시설을 이용했다. 공동 화장실, 공동 목욕탕, 공동 세면장, 공동 빨래터, 공동 우물, 유일하게 텔레비전이 있던 공동 휴게실…… 그곳은 뭐든지 공동이었다. 보일러도 공동이었고, 연탄도 공동이었다. 심지어 빨래판, 비누, 세숫대야도 공동이었다. 그러니 어쩌다 운이 좋은 늙은 창녀가 남자라도 하나 꼬셔서 모자원으로 데리고 온다면 그를 공동 아버지로 써야 할 판이었다. 실제로 아주 간혹 그런 사내들이 있었다. 사창가 뒷방에 처박혀서 술이나 퍼마시는 기둥서방들과는 달리 산중턱에 있는 이 모자원까지 여자를 따라온 사내들은 대부분 착했고 성실했다. 다리를 절었던 문 씨 아저씨와 마술을 할 줄 알았던 천 씨 아저씨들이 그런 사내들이었다. 문 씨는 목수였고 천 씨는 가라오케나 카바레에서 공연을 하는 마술사였다. 절름발이 문 씨 아저씨는 매우 부지런한 사람으로 잠시도 쉬는 법이 없었다. 비가 오거나 공사판에 일거리가 없어 쉬는 날이면 그는 절름거리는 다리로 모자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쉴 새 없이 무언가를 고쳤다. 펌프를 고치고, 부러진 탁자 다리를 새로 만들고, 난간을 고쳤다. 모자원 아줌마들이 수없이 귀찮게 해도 문 씨 아저씨는 짜증을 내는 법이 없었다. 이 과묵한 사내는 막걸리 한 잔에도 지붕을 고쳐 줬고 삶은 고구마 두어 개에도 부엌 배관을 수리해 줬다. 문 씨 아저씨가 모자원에 있는 동안 이 절름발이 사내와 같이 사는 베지밀 아줌마는 마치 여왕처럼 으스대며 살았다. 아침에 줄을 서지 않고도 공동 화장실을 제일 먼저 이용했고, 우물이나 공동 목욕탕을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마술사 천 씨 아저씨는 심심한 모자원 아이들을 위해 간혹 마술을 보여줬다. 모자원 꼬맹이들 앞이라고 대충 하는 마술이 아니었다. 아이들 앞에서 공연을 할 때면 그는 카바레에서 할 때와 똑같이 정식 마술사 복장을 하고 얼굴에 분장을 하고 긴 마술모자를 썼다. 그의 마술모자에선 정말 비둘기가 날아올랐고, 마술사의 손에서 사라진 동전이 아이들 엉덩이에서 커다란 풍선이 되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언제나 사탕 한 알을 한쪽 눈으로 집어넣은 다음 반대쪽 애꾸눈 잭의 검은 안대에서 수십 개의 사탕이 쏟아지는 마술이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사탕들을 주워 호주머니 속에 쑤셔 넣고 또 입속에도 넣었다. 천 씨 아저씨의 마술이 가짜였는지 모르지만 사탕들은 모두 진짜였다. 그래서 그토록 재미난 마술 공연이 끝난 허전함 속에서 쪽쪽 빨아 먹는 그 사탕은 오래도록 달콤하고 또 달콤했다.
    하지만 늙은 창녀에게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는 법이다. 어느 날 문 씨 아저씨는 공사판 상판에서 발을 헛디뎌 바닥으로 떨어졌고, 허리가 부러진 채 모자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끙끙 앓는 소리를 내다가 월요일 아침에 죽었다. 문 씨 아저씨는 모자원을 위해 그토록 많은 일을 해줬건만 모자원이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천 씨 아저씨는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어느 날 모자원을 떠났다. 그리고 몇 년 후에 깡통시장 건달들에게 칼을 맞아 죽었다. 아마 약을 팔거나 밀수품을 빼돌리다가 들켰을 것이다.

 

    인숙이 모자원에 들어온 것은 열세 살 때였다. 희수는 인숙을 처음 본 순간부터 그녀를 사랑했다. 인숙이 일곱 명의 동생들을 데리고 모자원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실로 참담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모자원의 재래식 화장실 앞에서 인숙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하고 있을 때부터, 하지만 이내 단호한 표정으로 양동이에 물을 채워와 화장실 대청소를 하고 동생들을 일일이 챙겨 대소변을 누게 할 때부터 희수는 인숙을 사랑했다. 솔직히 희수는 그때까지 텔레비전에서 말고는 그렇게 예쁜 아이를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예쁜 아이가 낙동강 이남에서 가장 더러운 재래식 변기통을 앞에 두고 씩씩하게 빗자루 질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인숙의 엄마는 꼼장어 가죽 벗기는 일을 했다. 웃기게도 그 시절엔 꼼장어 고기는 버리고 가죽만 벗겨서 지갑이나 혁대를 만드는 공장에 팔았다. 물론 벌이는 시원찮았다. 하지만 남은 꼼장어 고기를 구워 먹을 수도 있었고 바닷가에 즐비한 선술집에 팔 수도 있었으므로 모자원의 많은 여자들이 그 일을 했다. 여자들의 품삯이 더없이 낮은 시절이었으므로 모자원의 엄마들은 밤낮 없이 일해야 했다. 모자원의 다른 엄마들처럼 인숙의 엄마도 늘 집에 없었으므로 동생들을 돌보는 것은 인숙의 차지였다. 인숙은 밥을 해서 동생들을 먹이고 빨래를 하고 이따금 엄마가 하는 꼼장어 껍질을 벗기는 일을 도왔다. 꼼장어는 껍질이 벗겨진 후에도 열 시간도 넘게 살아 있었고, 핏물에 젖어 꿈틀거리는 꼼장어의 붉은 살은 끔찍했다. 인숙은 그 꼼장어들을 고무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으로 양동이에 집어넣었다. 그때 인숙의 나이는 고작 열세 살이었다.
    그때 희수의 나이도 열세 살이었다. 그때 희수는 인숙의 엉덩이를 보겠다고 모자원의 친구들과 합판으로 된 여자 화장실 벽에 드라이버로 구멍을 뚫거나 그 냄새나는 화장실에 친구들과 쭈그리고 앉아 인숙을 기다렸다. 엄마 지갑에서 돈을 훔쳐 담배를 샀고, 천마산 아이들이나 해수욕장 아이들과 구슬치기를 해서 딴 돈으로 국제시장 골목으로 일본 포르노 만화책을 사러 다녔다. 충무동 대형 슈퍼에서 초콜릿을 훔치다 걸려 경찰관에게 끌려왔을 때 희수의 엄마는 “어쩜, 양아치스러운 것은 지 애비랑 머리부터 발끝까지 똑 닮았냐.” 하고 펑펑 울었다.
    그때 인숙은 일곱 명의 동생을 돌봐야 하는 어른이었고 희수는 아직 어린애였다. 인숙이 어른이었고 희수가 어린애였으므로 인숙은 희수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고 말 한 마디 건네지 않았다. 모자원 흙바닥에서 구슬치기 따위를 하고 있으면 인숙은 꼼장어 껍질이 들어 있는 양동이를 들고 가며 한심하다는 듯 모자원 사내아이들을 쳐다봤다. 하지만 인숙이 모자원 사내아이들에게 그토록 냉담했던 것은 아이들이 한심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꼬맹이들과 놀아 주기에 인숙은 너무나 바빴다.

 

 

 

 

   《문장웹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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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오 서장원 히데오에겐 몇 가지 비밀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그의 친부가 일본인이며 그가 어린 시절을 일본 교토에서 보냈다는 것이다. 어느 저녁나절, 한적한 거리를 걷던 중에 히데오는 이 사실을 내게 말해 줬다. 이후 히데오는 어린 시절에 대해 조금씩 더 들려주었고, 나중에 나는 히데오의 생애 초반에 일어난 일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꿸 수 있게 됐다. 히데오가 태어난 곳은 교토 외곽으로, 한국 사람들이 떠올리는 여행지 교토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주택가였다. 히데오는 그곳을 자세하게 기억하지는 못했다. 습한 여름 날씨나 우듬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나무들에 대해 말하면서도 그것이 정말 자기 기억인지 교토에 대해 보고 들은 뒤 상상해 낸 이미지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덧붙이곤 했다. 교토에서 있었던 일 중 히데오가 확실하게 기억하는 건 모두 나쁜 경험이었다. 이를테면 초등학생 시절 책상 가득 자이니치나 조센진, 총 같은 단어가 적혀 있던 풍경이나 동급생 남자애들이 그의 가방을 걷어차며 드리블 시합을 했던 일, 그를 조롱하려고 반 아이들이 케이팝 노래를 개사해 불렀던 일, 그런 사건들. 한번은 같은 반 아이들에게 얻어맞아 코뼈가 부러진 적도 있었다. 그날 저녁에 히데오의 부모는 아들을 위해 나고야로 이주하는 일을 의논했다. 히데오의 아버지는 아들을 불러 앉히고 나고야에서는 어머니가 한국 사람이란 사실을 숨겨야 한다고 경고했다. 히데오는 그 말에 깜짝 놀라서 식탁 앞에 앉아 있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말에 동의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히데오가 아는 한, 히데오의 어머니는 자신이 한국인임을 숨기려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어머니는 눈을 내리깔고 남편도 아들도 바라보지 않았다.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여기서 계속 살 거니까, 그렇게 하기로 하자.” 그날 밤, 히데오는 코의 통증과 식도로 넘어오는 피, 어머니의 고요한 얼굴과 나고야에서 보낼 새로운 나날의 환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만 히데오의 부모는 나고야행을 두고 갈팡질팡했고, 히데오로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 이혼을 결정했다. 이혼 후 히데오의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경기도의 친정으로 돌아갔다. 이후 히데오는 일본인 아버지와 일본에서의 삶을 철저히 숨겼다. 나에게 고백하기 전까지 누구에게도 자신의 첫 번째 이름 히데오를 말해 주지 않았다. 내가 히데오를 처음 본 건 연극원 강의실에서였다. 아직 벚꽃도 피지 않은 3월, 나와 히데오를 포함해 여덟 명의 학생이 강의실에 책상을 둥글게 붙여 앉았다. 그해 연극원에서는 입학이 예정된 학생들을 모아 15분 내외의 단막극, 일명 “짤막극”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신설했다. 입학 전에 그룹별로 모여 공연을 준비하고, 3월 개강과 동시에 연극원 소극장에서 공연을 올리는, 이색적인 신입생 환영회라 할 수 있었다. 학보사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신입생 그룹 중 하나를 인터뷰하기로 결정했는데, 그해 들어 나에게 처음

  • 관리자
  • 2025-06-01
그리고 밤과 가을이

그리고 밤과 가을이 김연수 1 지난여름, 정기에게는 세 가지 고민이 있었다. 하나는 눈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 길을 걸어갈 때면 날벌레들이 달려드는 것 같아 혼자 손사래를 친 적이 여러 번이었다. 기사를 쓰려고 책상 앞에 앉으면 머리 뒤쪽에서 번개 같은 게 번쩍이기도 했다. 노안이 찾아온 건 벌써 몇 년 전의 일이었다. 그때 안과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안경도 새로 맞췄다. 나이가 들면 서서히 시력이 나빠지리라고만 생각했지, 거기에 더해 전에 없던 것들이 보이는 증상까지 생길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런 처지가 되고 보니 책 읽는 일이 힘들어졌다. 평생의 즐거움이었던 독서가 성가신 일이 되면서 생활은 성기어지고 마음은 허술해졌다. 더 오래전, 나이가 들면 활자 같은 건 멀리하고 자연을 벗 삼아 소일하며 세속적 가치관에 물든 마음을 고치리라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은근히 노년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그런 시절은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두 번째는 포항에서 에너지공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딸 민지와의 관계가 점점 멀어진다는 점이었다. 그건 서울과 포항이라는 지리적 거리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작년에 집을 새로 구하면서 민지는 아빠인 정기에게 도와달라고 부탁을 해 왔다. 그 과정에서 이사의 이유가 언제부터인가 짝꿍처럼 붙어 다니던 여자 선배 희선과 같이 살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그는 알게 됐다. 그는 민지와 희선이 단순한 선후배 사이가 아닐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몇 번 딸에게 희선에 대해 물었지만, 민지의 반응은 모호했다. 그러다가 정기는 그 일에 대해 더 묻지 않게 됐다. 한 번은 민지가 “나는 아빠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앞뒤 대화의 맥락으로는 그 일에 대한 답변이 아니었음에도 정기는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질문의 대답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마지막 고민은, 자신이 담당한 부고란에 누구의 죽음을 다룰 것이냐는 점이었다. 최종 후보는 미국의 SF 소설가와 전 여당 대표, 둘 중 하나였다. 아무도 읽지 않는 신문 부고란에 누구를 쓰든 무슨 상관이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기에게는 앞의 두 고민만큼이나 심각한 고민이었다. 앞의 두 고민은 과거의 일에서 비롯된 결과를 수습하는 것이었지만, 세 번째 고민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정기는 생각했다. 과연 소설가냐, 정치인이냐. 정기의 고민은 여름만큼이나 깊어졌다. 2 노트북 화면 너머로 신문사 후배인 은영이 지나가고 있었다. “휴가는 즐거웠어?” 정기가 알은체를 했다. “줄곧 비만 내렸잖아요. 태풍이 온다는데 어떻게 해요?” 잔뜩 낯을 찌푸리며 은영이 말했다. “태풍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으면 가지 말았어야지.” “그런 거 따지고 들면 아무 데도 못 가죠. 태풍 지나갈 때 제주 안 있어 봤죠? 그게 진짜 여름이더라구요. 바람이 몰아치는데, 어휴, 엄청났어요. 그러더니만 휴가 마지막 날이 되

  • 관리자
  • 2025-06-01
바람 부는 날

바람 부는 날 정기현 단지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펜스와 인접한 아파트 건물들은 가로등 불빛을 받아 그 형태를 짐작할 수 있었으나, 단지 안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어둠의 수심이 깊어져 모든 것이 감추어졌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긴긴 태양 볕 아래 그 흉물스러움을 남김없이 드러내던 여름과는 달리, 겨울의 단지는 어딘가 의뭉스러워 보였다. 이야기를 가득 품은 고성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내가 살고 있는 주택 앞,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재건축 단지라는 별칭이 붙은 아파트 단지는 조합원과 건설사 간 충돌로 공사가 중단되어 짓다 만 아파트 건물들이 2년 동안 그대로였다. 1만 5천 가구를 수용할 수 있다며 대대적으로 착공에 들어갔던 대규모 단지는 2차선 통행로를 중심으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문득 그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이번 겨울부터였다. 출근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까지 가려면 펜스가 세워지기 전보다 30분씩은 더 둘러 걸어야 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아직 잠에서 온전히 깨어나지 못한 상태로 정류장까지 걸을 때면 아파트 중앙 통행로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솔바람, 산들바람 아니고 토네이도에 가까운 세기였다. 물론 토네이도를 직접 겪어 본 적은 없지만···. 사람 하나는 거뜬히 날려 버릴 듯 기세 좋은 바람이었다. 단지 바깥은 바람 한 점 없이 잠잠했으므로, 이는 분명 바람길을 잘못 낸 시공 탓에 불어 대는 건물풍일 터였다. 거센 바람에 펜스가 흔들리며 콰챵- 하는 소리를 낼 때면 살을 에는 새벽녘 추위도 어쩐지 더욱 견디기 어려워져 굳게 잠긴 펜스를 원망하게 되었다. 자물쇠를 열고 단지 가운데 통행로로 다닐 수 있다면 그 끝의 버스 정류장에 금세 도달할 텐데. 아침마다 30분씩은 더 자고 나올 수도 있을 텐데. 내게는 바람쯤이야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다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는 문제였다. 한파 특보 경보 문자가 알람보다도 일찍 울려 잠을 깨웠던 날, 나는 빌라 현관을 벗어나 오른쪽 인도로 걷는 대신 길 건너 펜스 쪽으로 향했다. 펜스 출입구에는 주먹만 한 자물쇠가 굳게 걸려 있었다. 화풀이라도 하듯 자물쇠를 세게 두 번 당겨 보았는데 그것만으로도 자물쇠가 훌렁 풀려 버렸다. 펜스 안쪽으로 손을 쏙 넣어 자물쇠가 걸려 있던 걸쇠를 풀고 출입문을 열자 눈앞에 펼쳐진, 소리로만 접하던 바람의 길. 이용자가 나 혼자뿐이라 길은 실제 너비보다도 광활해 보였다. 건축 자재들, 내부 설비들이 군데군데 널브러져 있었고 고목처럼 주차되어 있는 승합차도 몇 보였다. 길 가장자리에도 단지로의 진입을 막는 펜스가 설치되어 있어 잠시 길과 나뿐인 세계에 진입한 것만 같았다. 통행로는 야트막한 고갯길이었다. 바람은 듣던 대로 거세었다. 나는 두 손으로 외투를 꼭 여민 채 거센 바람에 맞서 걸었다. 두 발이 동시에 떨어지는 순간 바람에 휘말려 공중으로 붕 떠오를 것 같아 한 발이 떨어지면 다른 한 발은 땅에 꼭 붙어 있도록 의식하며 걸어야 했다. 고갯길의 고

  • 관리자
  • 202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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