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민들레문학특강 참여 후기]죽음과 다시 태어남에 대하여

  • 작성일 2013-10-04
  • 조회수 616

[민들레 문학특강 참여후기]

 

 

죽음과 다시 태어남에 대하여

 

 

김해자

 

 

 

 

    경찰복 비슷한 차림의 젊은 경비 둘이 입구를 지키고 섰는 시립 00센터는 사회복지사 몇 빼고는 다 남자였다. 200명 중 반은 알코올 의존증 재활자요 반은 정신장애를 앓고 있다 했다. 조울증 사회불안 정신분열 강박장애 환청 환시 과대망상 등 소위 진단된 수많은 병명 중에 두셋은 기본으로 갖추고 있는 우리들의 글쓰기 주제는 죽음으로 시작되었다.
    어제 내 친구 제만이가 죽었다고 하더군요, 느릿느릿 전라도 사투리로 말하는 52살 한 씨는 오전 전화로 친구의 죽음을 전해 들었다 했다. “10시 50분경 인천에 있는 친구 김인석에게 전화를 했더니…… 인석이와 제만이는 객지 나와 만난 첫 친구였어요. 14살에 집 나와 군대 때문에 잠깐 들른 고향의 부모님보다 형제보다 더 가깝게 지냈어요.” 인천 창영동에서 두 친구들과 지낸 연탄 방 이야기가 이어졌다. 하루 전에 겪은 친구의 죽음은 과거를 불러내는 실마리가 되었는지 한 씨는 14살로 돌아가 있었다. 식당 청소해 주고 얻어먹던 이쑤시개가 나오던 꿀꿀이죽과 여인숙이 보이는 골목에서 신문을 덮고 자던 잠자리와 아이스께끼 공장과 식당과 방수와 철일 등이 파란만장하게 펼쳐졌다. “그렇게 온갖 데를 전전하며 굴러왔는데, 여태까지 전세방 한번 살아 본 적이 없네요. 거리에서도 살았고 시설에서도 많이 지냈고 좋을 땐 월세 방과 고시원 여인숙 같은 데…… 그런 데가 집이었네요.”
    41살 김 씨가 말을 이었다. “며칠 전에 아는 형이 죽었죠. 시설에서 만난 형이에요. 형, 혁띠가 좋아 보인다. 나 주면 안 돼? 물었더니 그냥 바로 끌러서 주더군요.” 죽은 형은 욕심이 많아서 뭘 잘 안 주는 사람이라 했다. 건물 높이 올라가 떨어졌다고 했다. “재활한다고 돈도 모으고 무지무지 열심히 일했거든요. 노숙할 때 그 형 이름으로 누가 빚을 냈나 봐요. 그 형 앞으로 빚이 억이 넘었대요.” 죽기 전 몸 부둥켜안고 몸싸움하며 놀던 이야기가 이어졌다. 지금 내가 찬 혁띠가 형이 차던 건데, 형은 어디로 갔을까요, 영안실 가서 분명히 봤는데도 실감이 안 나요, 조용히 말하는 그의 눈이 창 밖으로 향했다. 눈가를 만지며 약 때문에 오래 집중을 못 하겠어요, 그의 말 끝에 나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선생님, 비가 오네요, 나무가 젖고 있어요.”
    두 번째 수업하던 날, 40살 이 씨가 글을 써왔다. “나는 지난 4년을 병마와 싸웠다. 하지만 나의 육체는 철저하게 그놈에게 패했다. 하루 20시간을 누워서 절망하고 원망하고 후회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살아 숨만 쉬고 있을 뿐 희망을 잃은 썩은 고깃덩어리였다. 컴퓨터를 리셋 하듯 내 인생도 리셋 하고픈 어리석은 망상이 내 정신을 지배했다. 하루 24시간 내내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비바람 치는 겨울 이곳에 서 있다. 드디어 기회가 내게 찾아왔다. 신고 있던 신발을 벗고 주변을 살폈다.” 2013년 2월 1일 오후 4시경이었다. 결국 그는 한강에 투신했고 의식을 찾았을 때 그는 이승에서도 다시 리셋 할 길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다시 태어난 나’라고 불렀다.
    컴퓨터를 잘 다뤄 다른 친구들 워드를 몇 장씩 써주는 놉에 종사하던 43살 김 씨가 장문의 글을 써온 건 세 번째 시간이었다. 글은 의외로 쉽사리 털어놓기 어려운 아픈 사연으로 시작되었다. 목사와 불륜에 빠진 아내와 이혼했는데 어느 날 보니 자신이 죄인이더라는 이야기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의 죄인 앞에서 원고의 입장이었는데, 졸지에 피고의 입장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그의 방황과 고통은 몇 년 동안 지속되었다. “결국 아버지가 정신병원에 집어넣었죠. 이때 문득문득 내가 예수라는 망상에도 사로잡혔어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몇 번째 병원행인지는 모르겠는데 입원하자마자 빨간 CP제를 복용하고 쓰러져 있다가 의식을 차려 보니 간호사가 피를 뽑고 있었죠. ‘아니, 예수의 피를 이 여자가 멋대로 뽑다니. 큰 조직이 보내서 인간복제를 해서 예수를 찍어내려고 하는 걸 거야. 막아야 돼.’ 그때 나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어요.”
    47살 이 씨는 알코올 의존증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나는 과정을 밟고 있는데 국제장애인축구대회에 출전하느라 세 번째부터 수업에 들어왔다. 그는 청소년기에 친구들과 ‘씻지 못할 죄’를 지어 소년원 생활을 하며 평생 술과 마약과 여자와 도박으로 도피해 다녔다 했다. 신용불량과 이혼과 우울증과 희귀병인 베체트병 진단과 집행유예 등 한 사람에게는 너무 많은 시련을 겪었다. 불과 얼마 전에 그는 죽으려고 막걸리 한 통과 굵은 밧줄을 들고 다니며 날마다 죽을 자리를 찾아다녔다 했다. 유서까지 쓰고 난 후 막 결행하려던 순간 이혼한 아내에게서 온 전화 한 통이 그를 살렸다고 했다. “‘바닥을 친다는 것’은 집이 없어서 바닥이 아니구요, 사업에 망하고 이혼을 해서도 아니에요. 내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무력한 상태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렸어요. 그게 바로 바닥이었어요. 그렇게 엎드려 내가 본 게 뭔지 아세요? 나처럼 무력하고 아픈 사람들이었어요. 내 옆에 한없이 늘어서 있는 나 같은 사람들을 발견한 거죠.”
    한 씨는 글쓰기 수업을 하는 도중 뇌졸중으로 쓰러져 일흔이 넘은 큰누님 댁으로 들어갔다. 우산을 지팡이 삼아 비 오는 날 마지막 수업에 온 이 씨는 힘이 없어 자주 넘어진 다리의 상처를 보여줬다. 글씨를 잘 못 쓰니 선생님이 내 이야기 좀 받아 써주세요, 역시나 아직 어눌한 말투였다. “나는 일하고 싶어요. 비록 지금은 오른손이 말을 안 듣고 오른 다리에 힘이 없지만요. 식당이나 시설 어디서든 내 손으로 일을 해서 사람들을 먹이고 싶어요. 사람 구실을 하고 싶어요.” 그는 알코올 의존증에서 벗어나 술을 끊고 새 인생을 시작할 때 찾아온 병이 안타깝다 했다. 움푹 파인 얼굴과 옷과 따로 노는 살점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그는     “기어이 일어나 건강한 몸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말하며 우리 모두에게 몸에 좋은 생과일주스를 사줬다.
40살 이 씨는 자살하려다 다시 살아났으니 그 전에 살던 것과 정반대로만 하면 다시 태어난 것이나 마찬가지라 했다. 허리 통증과 무력증 때문에 하루 20시간을 누워 지내던 그 전의 자신은 죽고 지금은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 4시간 운동하고 6시간을 배우고 공부하며 열심히 산다고 했다. “말과 행동과 여러 가지 삶의 고비마다 예전과는 반대로 결정하면서 산 지 6개월이 지났죠. 6개월 전 내 모습을 아는 이들은 아마 나를 알아보지 못할 거예요. 나 자신조차 지금의 내가 믿기지 않으니까요.” 그는 말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간단하다고. 태어나기 위해 죽는 수고를 겪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이 바뀌면 우리의 인생도 바뀐다고.
    “예수에 미치긴 했는데 곱게 미쳤다” 농담해도 웃으며 받아들이는 43살 김 씨는 나를 세상에서 망하게 한 사람이 예수라 했다. 그래도 내게 영원한 비전을 선사했죠, 아무것도 아닌 나의 헛된 의로움이 다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비전이 생겼어요, 말하던 그는 예수 안에서 사는 게 좋다 했다. 지금 내 앞에 앉은 사람이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이 맞나 늘 의심될 정도로 평화롭고 넉넉한 표정과 느긋함이 몸에 밴 그는 지금 시설에서 공부를 하며 자격증도 따고 사람들도 열심히 도우며 산다. 인생에서 겪은 그 무엇도 후회하지 않는다 했다.
    46살 이씨는 다시 살아 자신이 평생 죄의식과 부끄러움과 거부에 대한 두려움으로 도망 다녔다는 것을 깨달았다 했다.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품어 안는 것이자 나와 같은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젠 예전처럼 로또를 사며 일확천금을 꿈꾸지 않아도 미래를 향한 희망이 있고 행복해요. 달라진 건 하나도 없는데 삶에 애착이 생겼어요.” 세상을 돌아보면 감사할 일들이 지천에 깔렸고 고마운 분들이 널려 있다는 것을 바닥을 치면서 보았다고 했다.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 덕에 살아났듯이 자신도 무언가를 돕고 싶다고 했다. 술에 빠져 살았던 두 명은 사이다를 마시고 예수에 미친 사내와 내가 술을 마시던 마지막 자리에서 이 씨는 말했다. “고마워요. 과거를 돌아보며 글로 정리하다 보니 저도 꽤 괜찮은 점이 많은 인간이더군요. 그걸 보게 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문장웹진 10월호》

 

김해자

추천 콘텐츠

육지에서 쓴 일기

[에세이] 육지에서 쓴 일기 최진영 20240528 4박 5일 동안 육지에서 여러 일정이 있어 오늘 제주에서 서울로 왔다. 앞으로 며칠간 약속과 약속 사이, 출발지와 도착지 사이 시간이 날 때마다 이 창을 열고 단상을 써보려고 한다. Are you checking in? pm04:45. 여긴 충무로의 호텔. 3년 전 제주로 이사 간 뒤 처음으로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왔을 때 숙박한 후 매번 이 호텔만 이용하고 있다. 경기, 인천 지역에서 저녁 행사를 해도 근방 호텔을 잡지 않고 여기로 온다. 새로운 호텔을 검색하고 선택하는 게 번거로워서. 합리적인 위치나 가격을 따지려다가 검색 지옥에 빠져서 몇 시간을 고민한 뒤 결국 이 호텔을 예약했던 경험으로 깨달은 바가 있다. 시간이 돈이다. 더 저렴한 호텔을 찾으려 애쓰지 말고 검색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자. 점심시간 무렵 충무로 일대 분위기는 조금 묘하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거리를 걷는 외국인들과 점심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이 뒤섞이는 거리. 라디오 주파수를 돌리듯 여러 나라의 언어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서울역, 명동, 한옥마을, 남산, 종로가 가까운 곳이어서 외국인 관광객이 정말 많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호텔 투숙객 중 한국인은 나뿐인 것 같다. 한 달에 두어 번은 와서 2박 이상 하니까 나름 단골이랄 수도 있는데 프런트 직원들은 매번 나를 처음 본 손님처럼 대한다(호텔의 특성이겠지?). 체크인할 때도 내게 영어로 말을 건넨다. “give me your passport.” 그럼 나는 “제 이름은 최진영입니다”라고 한국어로 대답한다. 성공한 인생 오늘 아침 9시쯤 택배 문제 때문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전화를 받자마자 놀란 목소리로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느냐”고 물었다. 내 용건에 개의치 않고 엄마는 거듭 물었다. 전화를 끊고 뿌듯해서 신나게 웃었다. 내 나이 이제 마흔이 넘었는데 아침 9시에 엄마에게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느냐”는 말을 들을 수 있다니, 이번 생은 성공한 것 같아서. 그건 바로 내 투쟁의 결과다. 거의 20년을 프리랜서로 살면서 남들 다 출근하는 시간에도 ‘성인 평균 적정 수면시간’을 사수하며 꾸준히 늦게 일어나는 생활양식을 차곡차곡 쌓아 온 결과 마침내 엄마도 나의 생활 패턴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아침 9시에 전화하면 깜짝 놀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게 진정한 성공 같다. 긴장감 저녁에 북토크를 할 예정이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거나 낭독할 때는 별로 긴장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긴장하는 순간은 따로 있다. 예를 들면 비행기 탈 때. 기내 짐칸에 캐리어를 올리다가 무거워서 또는 실수로 떨어트려서 누군가를 다치게 할까 봐 매번 긴장한다.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알지만 식은땀이 난다. 캐리어를 끌고 에스컬레이터 탈 때도 마찬가지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넘어지거나 캐리어를 놓치는 구체적 상상에 시

  • 관리자
  • 2024-07-01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

[에세이]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 제이크 레빈 소개 거의 12년 동안 나는 한국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지난해부터 강의하는 교사의 내면적 생활과 관련된 일기와 같은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외국인 교수로서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낯설고 이방인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한국 문화에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교수의 삶은 익숙하지 않다고 믿는다. 학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고 다른 교수의 마음도 이해하기 어렵다. 다른 강의실에 들어갈 때마다 새로운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이전에 만나지 못했던 민족을 만나는 것 같이 나는 죽을 때까지 방랑자처럼 매일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 학교에서는 현실에 경험한 것이 꿈꾸는 것 같고 꿈꾸는 것이 더 현실처럼 느껴지듯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가끔은 사라진다. 이 산문은 시나 소설이 아니고 현실의 기록도 아닌 교사로서의 삶의 내면적 반응이다. 교사는 인간이다. 가끔 사회가 인문대 교사의 인간중심주의를 억압한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의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계산하지만 인문학과 시의 영향력은 계산될 수 없는 가치다. 인간중심주의 가치를 점점 찾기 힘든 사회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문화를 배워야 한다. 이 모순적인 긴장의 환경에 존재해야 한다. 학교의 목적은 타인의 인간성을 인정하는 것에 있다. 이 산문은 한 인간의 존재하는 기록이다.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이라는 제목은 완전한 이해가 불가한 타인의 인간성을 발견하는 것에서 왔다. 이 기록은 내 개인적 경험과 전해 들은 동료 교사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으며 영어로 작성한 문장을 나의 소중한 학생 김혜인이 나와 함께 번역하였다. 지우개 머리 어떤 날 나는 대답하기 위해 여기 있고, 어떤 날 나는 오직 듣기 위해 여기 있다. “질문 있어?” 많은 학생들이 질문의 형태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그다지 어려울 것 없는 예술을 배웠다. 그런 질문에 대답하는 유일한 방법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질문자가 자신의 질문에 답변하는 동안 사용감 있는 지우개처럼 커피를 홀짝이며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것을 느껴 보라. 학생들의 목소리는 배경소리가 되어 가다가, 불현듯 보이스 오버. 지우개는 부러지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얼룩을 견딜 수 있을까? 숭고한 느낌 지난 몇 주간, 를 듣는 학생들은 책상 아래 숨어 있었다. “교수님, 저희는 불확실성에 머물고 있어요.” 그들은 말한다. 일정 기간 동안 불확실성에 머문 뒤, 한 학생이 책상 아래서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저는 숭고한 느낌을 얻었어요.” 그들이 말한다. “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압도당해 죽음이 무섭고 두려워요.” “이제 제 핸드폰 돌려주시겠어요?” 정적. 학생이 나를 응시한다. 정적. 나는 천천히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학생을 응시한다. 흰 두루미 “주말 잘 보냈니?&r

  • 관리자
  • 2024-07-01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에세이]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김용언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고, 열심히 읽고, 그에 관한 잡지를 만들고, 또 가끔은 관련 공모전 심사를 보면서 언제나 느끼는 바가 있다. 한국에서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이해도는 여전히 심각하게 척박하다는 점이다. 가장 모순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은 ‘장르 문학’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다. ‘(그냥) 문학’1)의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소설들은 굳이 ‘장르 문학’이라고 불린다. SF, 판타지, 미스터리/스릴러, 로맨스, 공포, 무협 등의 꼬리표가 붙고 낱낱이 분류되며 ‘문학은 문학이지만 그냥 문학이라고 부르기보단 그 안의 장르로 명명되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장르 문학에 속하지 않는 작품은 그냥 문학이 아니라 ‘비장르 문학’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순문학 역시 일종의 장르임을 인정하면서 모든 작품을 ‘장르 문학’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닐까? 예전 한국 문단에서는 ‘순(純)’이라는 단어가 참여 문학/민중 문학 등의 대립항처럼 불렸다고 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참여 문학/민중 문학도 ‘그냥’ 문학에 포함된 것 같다. 아무튼 거칠게 말해서 ‘장르’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과 현실 자체에 집중하는 소설을 ‘그냥’ 문학으로 호명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장르’로 호명되는 특정한 이야기들에는 그 장르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가 있고 또 그 안에서 통용되는 특정한 규칙이 존재한다. 그런 약속된 구조와 규칙을 이용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그 결과물이 ‘그냥’ 문학으로 불릴 수 없고 장르 문학으로만 불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장르 문학도 문학임을 인정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그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받아들여 달라고 애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 장르 문학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자꾸 찾아온다. 이를테면 한국 작가의 소설이 해외로 번역되었을 때 현지 리뷰들을 찾아보면, 스릴러/미스터리/공포 등의 명칭을 명확하게 부여하면서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기존 등단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때 ‘추리적 기법을 활용한’ 또는 ‘경계를 넘어선 상상력을 발휘한’ 등의 애매모호한 문구로 시작할 때가 많은데, 해외에서는 자신들에게는 낯선 작가의 번역 작품의 특성을 단번에 설명하기 위해 ‘이것은 스릴러다’ 또는 ‘이것은 공포소설이다’라고 알려준 다음 그 작품의 특성이 어떤 점에서 새롭고 멋진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장르 문학과 장르 아닌 ‘그냥&r

  • 관리자
  • 2024-07-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