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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라는 존재

  • 작성자 김윤지
  • 작성일 2023-11-20
  • 조회수 443

“살고 싶냐.”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퀴퀴한 담배내가 코를 찔렀고 나도 모르게 기침이 새어 나왔다. 19살 때의 일이었다.

아버지는, 뭐랄까, 엄격하신 분이었다.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했지만 남에게는 관대로우신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어머니께서 날 임신하시자 바로 금연과 금주를 시작하셨던 아버지가, 손에 담배를 들고 계셨다. 그것도 내 앞에서.

“아빠?”

난 왠지 모르게 밀려오는 불안감에 아빠를 불렀다. 알지 모르겠지만 사람의 불안감을 대부분 적중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네 엄마, 교통사고로 죽었대.”

아빠의 입에서 담배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차가운 공기와, 아빠의 따뜻한 숨결이 만나 그 연기와 섞인다. 순간 저 옆 도로에서 지나가는 자동차들조차 조용해진 듯했다.

“나참. 너 수능 끝났다고 이번에 네 소원 들어주기로 했잖아. 셋이서 여행 가는 거. 그거 준비하려고 마트갔다가 음주운전 차량에 부딪혔대.”

급작스러운 소식에 잠깐 현실에서 동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아내’가 아닌 ‘엄마’라는 표현이 참 이질적이었다. 난 잠깐동안 다리 아래 펼쳐진 한강을 보고 멍을 때렸다. 엄마가 죽었다고? 난 그 의미를 한참 동안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모든 내용이 이해된 순간, 끔찍한 담배내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속에서 참을 수 없는 울렁거림이 시작됐다. 그와 동시에 난 참을 수 없는 것들을 바닥에 게워내었다. 식도가 불타는 듯한 느낌에 휩싸이면서, 눈에서도 뜨거운 뭔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죽어, 아들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아니, 감정보다는 고통애 가까웠다.

아빠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귀에서는 알 수 없는 소리가 울려댔고 심장이 터질 듯이 아팠다. 저 아래 강에 들어가 온몸의 열을 식히고 싶었다. 폐가 고장난 듯이 날뛴다. 그 알 수 없는 고통에 나도 모르게 목에서부터 깊은 신음이 흘러나온다. 내 안에서 복받쳐 오르는 이 무언가를 토해내기 위해, 의미 없이 소리를 질러댔다. 가라앉은 공기 속에서 내 목소리만 들리던 그 잠깐에


짝-


무언가 마찰하는 소리. 서서히 밀려오는 뺨에서의 아픔과 동시에 한적한 거리를 가득 메웠던 그 시끄러운 소음이 멈췄다. 그리고 깨닫는다. 나 맞았구나.

“그래봤자 죽은 사람은 안 돌아와.“

그렇게 매정하게 말하는 당신이 미웠다. 그런데 이 세상에 미워할 수 있는 대상이 당신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난 그 품에 안길 수밖에 없었다. 아빠의 가슴팍에 얼굴을 처박고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자를 하염없이 그리워했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면서도 뼈저리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었다. 목이 메서 숨을 쉬는 게 곤란했다.

그 차디찬 공기 속에서도 아빠의 품은 따스했다. 내 울음은 거세져 갔지만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빠는 머리를 토닥이며 날 잔잔하게 달래주었다. 고통이 슬픔과 죄책감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아빠는 잠잠히 내 조용한 절규를 듣고 있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손이 날 천천히 끌어안았다. 그 다리 위에서 나는 여태 살아온 시간 중 가장 많이 울었다.

그때에는 우느라 바빠서 잘 몰랐지만 지금은 확실히 안다. 날 다정하게 감싸 안고 있던 그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래서 10년이 지난 지금도 난 가끔씩 생각하곤 한다. 따뜻한 품과, 떨리던 손, 아버지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김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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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윤지
  • 202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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