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따뜻함의 멘토링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4-01-31
  • 조회수 457

2024년 1월 29일 난 고등학교 신입생 예비소집일이라 고등학교에 갔다. 고등학교는 우리 집에서 마을 버스를 타고 3-5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그래서 버스를 탈 때 긴장을하게 될 확률이 커 엄마와 동행을 하기로 했다. 설래면서 불안한 그런 이상한 마음을 가지고 버스에 발을 옮겼다. 버스 안에는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학생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 사람이 많아서일까? 평소보다 더 긴장이 되어 기침이 더 많이 나왔다. 비타민을 물고 참아보려 했지만 기침은 계속 나오고 머리는 핑핑 돌고 심장은 쿵쾅 쿵쾅 탭댄스를 췄다. {이 때 천식 호흡기 치료제인 벤토린 에보힐러의 부작용으로 가슴이 뛴 것 보다 더 뛰었다.} 불행중 다행인 것일까? 내가 서 있는 자리 바로 앞에 나와 같은 학원을 다녔던 친구가 앉아 있었고 내 뒤에 또한 같은 중학교를 다녔던 친구가 서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많음의 압박 때문인지 머리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학교에 도착해서 임시반을 찾아 강당에 앉았다. 그 때 역시 긴장 때문에  내 몸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머리는 돌고 기침은 계속 나오고 심장은 탭댄스를 췄다. 내 주위에는 모두 처음 보는 얼굴들 뿐이었다. 아마 그 사람들은 내가 기침을 계속 하고 있으니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몸을 구기고 앉았다. 누군가의 웃는 소리, 누군가의 발 소리 모두 내 신경에 자극을 줬다. 한시라도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 지옥같은 시간은 1시간동안 지속 되었다. 나에게 이 1시간은 1달의 시간처럼 길고 길게 느껴졌다. 자리에 앉아 있는 내내 신경을 세우고 눈치를 보니 다른이들 보다 시간이 길게 느껴졌던 것 같다.


 오리젠테이션식의 길고 긴 1차 예비소집이 끝났다. 나는 끝과 동시에 계단의 봉을 잡고 천천히 내려왔다. 머리는 어지럽고 몸은 추웠다. 감기가 들어온 것일까? 아님 독감이 아직 덜 괜찮아졌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는 모두 내 떨림에서 온 심미적인 것이었다. 엄마는 떨렸다는 나를 보고 "이러면 학교 어찌다니려고 그래." 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이렇게 계속 눈치를 보면 어찌 학교를 다닐 수 있을까. 나도 엄마와 같은 생각이라 옛날 중3 담임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나만 생각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떨림을 가지고 마을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버스가 19분 뒤에 온다는 것을 보고 엄마와 슬슬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얼어붙었던 내 심장과 마음을 정리했다. 그러던 중 아침에 봤던 시 멘토님들의 댓글을 다시 정독해 보고 싶어졌다. 여러 시가 멘토링을 받았지만 김선오 멘토님이 써주신 댓글이 내 차갑게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줬다. 내 맘을 녹여준 멘토링의 작품은 {알약을 목에 넘길 때}, {아침을 기다리는 새벽 아이},{불안}이다.  김선오 멘토님의 여러 멘토링 중 알약을 목에 넘길 때의 댓글이 내 맘에 많은 울림을 줬다. "댓글을 읽어보니 희찬님의  현재 상태와 마음이 잘 담겨 있는 시라고 느꼈어요.세상으로부터 상처 받는다고 느껴질 때 글로 쓰며 마음을 달래는 것은 좋은 선택입니다.:::치열하게 글을 쓰는 동안 점점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될거에요. 시와 함께 하기를 언제나 응원합니다."  이 댓글 덕분에 나는 잠시 동안 떨리던 내 마음을 잠재울 수 있었다. 또한 작품 불안에서 기관지병의 아픔을 시로 쓴 이상 시인을 추천해 주셨다. 그 덕분에 난 내 상황과 비슷했던 시인을 간접적으로 시 세상에서 만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김선오 멘토님의 따뜻한 멘토링에 나는 떨린 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 수 있었다.


 나는 김선오 멘토님의 멘토링으로 목표가 생겼다. 나중에 좋은 작가가 되어서 글틴에 다시 돌아와 멘토링을 하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멘토님들처럼 따뜻한 조언으로 내가 받았던 따뜻함을 전달하고 싶다. 물론 성인이 되기까지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3년이겠지만 이 목표를 가지고 글을 쓰고 싶다. 이것이 따뜻한 멘토링과 마음이 준 선물에 대한 보답인 것 같다.

추천 콘텐츠

이방인

우리는 모두 사는 방식이 다르고 살아온 방식이 다르다. 그래서 각자의 성격, 취향, 행동들이 다른 것이다. 한 마디로 개인이라는 내면적 국가가 있고 사회는 이 국가에 들리는 타국인들과의 상호작용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이 사람을 좋아하는 외향적인 사람들에게 있어 효율적이고 기쁨이겠지만 나처럼 내향적인 사람에게는 너무 힘들다. 특히 남들과 달리 지병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 이는 더 잔인하고 무서운 상호작용 방식이다. 나는 나와같이 내향적이고 남들과 다른 사람을 외향, 내향이 함께 어울리는 개인 국가 사이의 어울리지 못하는 이방인이라고 말을 한다. 이방인의 사전적 개념은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방인은 남들과 다른 모습과 생각을 가진 사람, 즉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알베르 까뮈의 소설 에서 부터 시작 되었다. 까뮈의 은 남들과 달리 부모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은 뫼르소가 겪는 일을 서술한 책이다. 여기서 이방인의 개념은 타국인이 아닌 대중적인 사고와 생각이 다르거나 보통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난 이방인은 단순 외국인이 아니라는 것과 평범하지 않은 비평범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사고적 개념을 확립했다. 그래서 난 남들과 다른 나를 이방인이라 칭한다. 올해 3월 본례 지병인 기침이 있던 나는 고등학교 적응이 힘들었다. 이방인이라는 자의적 인식 때문일까? 나는 반 친구들과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개학 첫날에는 소화도 되지 않고 미친듯 몸이 떨렸다. "떨지마, 눈치 보지마, 어깨 펴."라는 엄마의 말도 솔직히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 내가 그당시 의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책 뿐이었다. 그래서 그 주간에는 은유의 을 읽었지만 그 내용들은 스쳐지나가 지금은 책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 다음날도 그 다다음날도 나는 친구들이 무섭고 두려워 말을 잘하지는 못했다. 3월은 매일,매일 힘들어 지옥같은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3월 13일 글틴에 잠시 들어왔는데 2월달에 쓴 시 이 장원이 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시는 내향적인 사람이 살아가는 마음을 서술한 시로 지금의 내 모습을 과거에 본듯 그린 것 같았다. 반 친구들이 무서웠지만 또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방인이라는 생각에 쉽게 다가가지는 못했다. 이 모습이 내가 과거에 쓴 시에 잘 담아져 있어 보는동안 신기했다. 그리고 잠시 내가 이방인이 아니었다면이라는 우울감도 함께 몰려왔다. 이후 19일날은 내 문우 필명 김희수가 글틴 소설부분 장원을 했다는 소식에 기뻤다. 그러나 이 기쁨도 학교가 끝나고 난 이후 피로를 이기지는 못했다. 31일 나는 박서련 멘토의 책 을 읽고 독후록을 작성했다. 위 책에는 내가 알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말이 있었다. 바로 "가끔 생각나요. 나에게 차가운 얼굴을 보여 준 사람들. 그렇지만 사실은 그냥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사람들이 내게 냉담한 표정을 지었던 게 아니라 내 마음이 그런게 아니었을까"라는 구절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많은 생각을 했다. 특히

  • 송희찬
  • 2024-05-26
사랑을 쓰다

3월 가정 시간 우리는 '사랑'과 부모가 됨에 따른 것을 배웠다. 3월의 마지막 가정 시간 "다들 조별로 사랑 노래 하나 생각하렴. 다음 시간에 사랑 노래 부를거야." 선생님의 말씀에 가사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왜냐 우리반 28명 중 3명을 제외한 모두가 내향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들 노래 부르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그것은 나도 똑같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있었다. 내가 싫어하는 주제인 '사랑'을 가지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내가 아는 사랑 노래하고는 뮤지컬 의 과 강성희의 , 박애리의 마지막으로 뮤지컬 의 , 애국가 뿐이었다. 과연 친구들이 위 노래를 알까 걱정을했다. 역시나 내 걱정대로 위 노래 중 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후보에 를 넣었지만 선생님께서 "부처님 사랑, 예수님 사랑, 나라 사랑 노래는 하면 안된다."라고 말을 하셨다. 선생님의 말씀에 다들 웃으면 한편으로 '큰일났다'라는 생각이 훅 들어왔다. 여러 고민을 하던 중 최종 고른 곡은 동요 이었다. 다들 이 노래가 왜 사랑 노래인지 궁금해했다. 이 노래가 사랑 노래인 이유는 가사 "사랑해 널 사랑해 오늘은 말할거야"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조는 이 노래를 부르고 창피한 모습으로 자리에 들어갔다. 그러나 다행히 마지막 조도 동요 을 불러서 창피함은 한결 나았다.그러나 나는 위 수업에 궁금증이 생겼다. 왜 친구들이 선택한 노래는 왜 다 밝고 활짝 핀 꽃같은 노래인 것인가? 처음 조가 불렀던 도 그렇고 우리 조가 불렀던 도 그렇고 마지막 조가 부른 도 그렇고 왜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 노래는 다 밝은 것인가? 또 사랑의 반대인 이별은 왜 다 슬픈 노래인 것일까? 나는 그 질문이 생겼다. 이 질문 때문이가 난 사랑 노래, 이별 노래가 싫다. 사랑 시와 이별 시 모두 싫다. 연애 소설 두 손들고 활짝 뛸 정도로 싫다. 나는 사랑이면서 슬프고 이별이면서 기쁜 그런 작품이 좋다.그래서 난 사랑의 양면성을 보여준 앞써 친구들이 몰랐던 노래가 훨씬 좋았다. 내가 몰라서 그런 것인지 아님 현실을 몰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 취향은 확실히 사랑을 경계한다. 일단 '사랑'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겠다. 사랑이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내가 주의 깊게 본 것은 귀중히 여기는 것과 아끼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고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꼭 밝은 것은 아닌 것 같다. 그 이유는 사람을 깊게 파고 파면 사람의 본성을 볼 수 있는데 그 본성이 꼭 착한 마음 선선설이 아닌 선악설같은 악한 존재일 수 있기 때문이다.이는 사회 문제인 데이트 폭력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랑의 매'라고 불리는 말도 있듯 사랑은 모진 것을 모질다 말해 줄 수 있는 그런 것도 포함 되는 것인데 과연 그것이 밝을 수만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우리가 부모에게 모진 것을 지적받으면 "사랑을 받아 즐거워"라고 말하는 사람은 적다. 보통은 "아 씨 내가 뭘 잘못해서 그렇지?"라고 말한다. 이 행위에 대하여 거부

  • 송희찬
  • 2024-05-25
개학 첫 주

2024년 3월 3일 고등학교 입학 하루 전이다. 이 날 난 글을 많이 써보겠다는 마인드로 생활을 했다. 수필도 한 편, 소설도 한 편, 비평도 한 편 그리고 시는 타 공모전 것 까지 5편 이상 쓸 계획이었다. 왜냐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면 글을 쓸 여유가 적어지고 남들 다 공부하는데 홀로 글을 쓰며 공부를 느슨하게 하면 않될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든 욕심에는 그 것을 막는 초기 단계들이 있다. 신은 우리가 욕심을 가지고 살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벨탑을 부스고 탐욕의 악마 바알제붑과 같은 것을 만들었다. 나도 이 막음 단계에 들어간 것 같았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는 고등학교 입학의 불안이라는 아이를 낳게 되었다. "왜 시가 써지지 않아!" 나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러자 엄마는 "그럴 때는 쓰지 않는거야." 라고 답을 했다. 나는 엄마의 그런 말에도 글을 쓰려고 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손과 몸이 떨리고 이상했다. 이를 엄마도 느꼈을까? "쓰지말고 어서 자. 너무 떨지마."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할 수 없이 글을 쓰지 못했다. 글을 쓰면 쓸수록 학교에 대한 불안이 많이 커져갔기 때문이다.2024년 3월 4일 입학이다. 하늘은 무거운 것만 같았다. 나는 부들부들 떠는 몸을 가지고 아침밥을 먹었다. 그러나 소화는 평소와 달리 쉽게 되지 않았다. 아마 긴장이라는 아이가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계속 "떨지마 그리고 눈치 보지 마. 어깨 펴!" 라고 말을 했다. 나는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엄마에게 보내고 집을 나가 버스에 발을 옮겼다. 버스에는 옛날 학원 친구였던 K가 있었다. K와 나는 가벼운 손 인사를 주고 받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 지금 내가 죽을 것처럼 많이 힘들기 때문이었다. 무엇에 홀린듯 심장은 계속 지진을 만들고 숨은 계속 과호흡 상태가 되었다. 이를 막아보려고 숨을 크게 셔보지만 효과는 거의 없었다. 약간의 작은 눈물이 흘러나올 때 쯤 학교 앞 버스 문이 열렸고 나는 발을 땅에 놓을 수 있었다. 나는 이 마음을 가지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생각보다 많이 힘드네."라고 말을 했다. 엄마는 나에게 "떨지 마. 괜찮아. 이 것을 이겨내야 해."라고 말을 했다. 나도 안다. 그러나 모르는 척 하고 싶다. 내가 무작정 학교와 친구들을 피하면 은둔형 외토리 즉 히키코모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이가 되기 싫었고 사회 생활을 잘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나는 숨을 천천히 들이키기로 했다. 해결 방안은 바로 독서다. 나는 책가방에서 은유의 이라는 책을 피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친구들의 시선과 내 기침{틱 성 기침+감기 기침}이 어울려져 책의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2024년 3월 5일 긴장의 하루가 또 지난 새로운 불안의 날이다. 이 날은 7교시 처음부터 끝까지 내 힘으로 버텨야 한다. 정신과에서 어제 받은 신경안정제를 먹고 학교로 출발했다. 그러나 내 불안도는 감소되지 않고 일정했다.7교시 영어 독서 수업 OT까지 끝

  • 송희찬
  • 2024-03-09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
  • 난바다

    개인적으로 저는 시가 단순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분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 분야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송희찬님이 대단하면서도 멋있게 느껴지네요! 저는 제 가족 중에서도 제 친구 중에서도 선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지 송희찬님 글을 무의식적으로나마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늘 꾸준히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4-02-01 00:12:06
    난바다
    0 /1500
    • 송희찬

      @난바다님 안녕하세요~ 좋은 말씀 고마워요~^^ 아직 부족한 제 시를 좋게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 2024-02-01 07:43:28
      송희찬
      0 /1500
    • 0 /1500
  • 송희찬

    어쩌다 보니 김선오 멘토님께만 감사함을 나타낸 것 같은데 다른 멘토님들께도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 덕분에 글이 늘었고 많이 밝아졌어요.^^

    • 2024-01-31 22:28:19
    송희찬
    0 /1500
    •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