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수는 레벨업
- 작성일 2024-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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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아홉수는 레벨업
이나리
1.
한동안 웹소설을 많이 읽었다. 웹소설은 이천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인소’(인터넷소설)와 달리 핸드폰으로 보기 때문에 서사의 호흡이 색다르다. 일명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으로 불리는 특정 서사 조건이 강하게 작용한다. 물론 ‘회빙환’이 최근에 유행하는 웹소설의 고유한 특징은 아니다. 가령 ‘환생’은 불교와 힌두교의 종교적 교리에서 나온 윤회전생의 개념으로 이미 친숙한 서사적 요소다.
‘회귀’는 또 어떤가. 오래된 영화 중에 <사랑의 블랙홀>(1993)이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필은 계속해서 반복되는 하루를 겪는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자살이라는 선택까지 시도하지만 반복되는 시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필이 반복된 하루 안에 갇혀서 깨달은 것은 삶의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점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친절해지는 것. 그제야 필은 회귀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시간의 흐름을 누릴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필에게 회귀는 일종의 저주와 같다. 회귀에 관한 이러한 관점은 이 영화뿐만이 아니다. 영화 <나비효과>(2004), <7번째 내가 죽던 날>(2017), <트라이앵글>(2018) 등은 타임루프물로 불리며, 반복되는 시간을 주인공이 겪는 형벌처럼 묘사한다.
그러나 웹소설에서 등장하는 회귀는 이와 다르다. 주인공이 겪는 ‘루프’는 형벌이라기보다는 인생의 기회이고 다른 선택지다. 말하자면, 이미 오답 노트를 모두 작성한 주인공에게 문제 풀 기회를 다시 준 셈이다. 주인공에게는 이미 모범답안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삶을 더 행복하게 끌고 나갈 수 있는 안전이 보장된다.
큰 맥락을 보자면 ‘빙의’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이 읽었던 책 속으로 들어가 해당 등장인물에 빙의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은 안전할 수밖에 없다. 미래를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웹소설의 독자로서 나는 이 ‘안전한 불확실함’에 빠져들었다. 주인공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흥미진진하게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회빙환’의 요소들로 인해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안전장치를 믿었다. ‘안전한 불확실함’이라는 이 모순적인 요구를 충실히 지켜주는 서사라니. 서사의 본질은 불확실성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확실하게 안전하기를 바라는 모순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내 현실이 팍팍할수록 그들의 안전한 모험은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2.
미래를 안다는 것. 그건 인간사에서 항상 선망하는 능력이 아닐까. 누구나 미래를 알고자 한다. 알지 못한 상태로 미래를 기다리는 현재는 너무 불안하기 때문이다. 불안은 고통스럽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그중 하나는 선지자, 웹소설 방식으로 말하자면 예지자를 찾는다. 하늘이 내린 신통한 능력을 발휘해서 미래를 예지해 주는 존재를 찾고 기대게 되는 것이다. 내가 그랬다.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내 삶이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어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극에 달했을 때, 결국 내 생 최초로 무당집을 찾게 되었다는 말이다.
나는 오랫동안 아팠다. 병명은 몰랐다. 나는 내가 우울하고 기력이 없는 게 소심한 성격 탓이라고만 여겼다. 사람을 대하는 게 어렵고 조용한 방 안에 혼자 있는 게 더 편한 건 내향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러다 어렵게 방문한 정신과에서 내 병명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양극성 기분장애, 더 흔한 말로는 조울증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었다. 의사는 내게 소아 우울증도 있었으리라 추측했다. 그러니까 아주 오래된 마음의 병이었던 거다. 치료 시기를 놓친 터라 그 병은 대인기피증까지 따라붙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때 의사의 진단명에 큰 위로를 받았다. 내가 못난 탓이 아니라 내가 아팠기 때문이구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너는 성격이 왜 그 모양이냐고 혼냈던 엄마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부모, 자식 간에 닮은 구석도 있겠지만 성격만은 너무나도 반대로 생겨먹은 탓에 내 유년기는 엄마와의 대립으로 항상 날이 서 있었다. 그런데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나는 병이 있었다고, 무척 많이 아팠노라고 엄마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말할 수 없었다. 엄마는 죽었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엄마는 오랜 투병을 끝냈다. 엄마가 와병한 지는 오래였고, 마음의 준비도 마친 터라 견딜 만했다.(사실 아직도 견딜 만하다고 최면을 걸고 있는지도 모른다) 화장 후 납골당에 안치했기 때문에 가족에게 남겨진 건 없었다. 상속될 재산도, 알량한 보험금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데도 서류는 끊임없이 필요했다. 상속분이 없는데도 없다는 걸 증명하는 서류는 수십 장이 필요했다. 모두 사망 신고를 위한 서류였다.
그즈음 마음을 많이 나누었던 친구와 연을 끊었다. 평소 나는 친구들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엄마가 아팠다는 말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위독해지고 나서야 어렵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그런 내게 그녀는 말했다.
너는 말을 정말 재수 없게 한다. 그렇게 갑자기 말하면 내 기분이 어떻겠어?
그 말을 들은 나는 복잡한 마음이었다. 친구가 내 불행을 들을 준비가 되었는가 가늠해야 한다는 건 낯설었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 말한 건가, 이 친구가 싹수가 없는 건가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로부터 3일 뒤, 엄마의 장례를 치렀다. 그 친구에게 연락하지는 않았다.
3.
장례를 치르고 얼마 뒤, 산부인과 검진을 통해 내 자궁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다. 자궁근종이었다. 흐린 화질의 초음파로도 큼직한 근종이 일곱 개는 보인다고 했다. 이 정도 개수면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그동안 통증이 없었냐는 의사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늘 아프긴 했다. 그렇지만 항상 삶에 쫓겨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여자라면 으레 생리통이 있고, 나는 그게 좀 심한 체질이라고만 생각했다. 최근 들어 허리 통증이 심했지만 운동 부족이라고만 치부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다 근종 때문이라는 거다.
엄마는 삼십 대 중반에 자궁을 적출했다. 엄마 역시 근종 때문이었다. 나는 다행히도 신체 기관을 적출한다는 무시무시한 처방은 피할 수 있었다. 근종만 떼어낼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이것도 유전력이냐고 물었다. 의사는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엄마의 유산이 여기 있었구나.
나는 흑백의 초음파 화면을 보면서 생각했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걸 남긴 거다. 유전적인 형질 그 자체를. 엄마는 내가 엄마 딸이라는 걸 세포 단위로 새겨버린 것이다. 그래서 내 애도는 쉽지 않았다.
4.
수술을 위해 입원했다. 부인과 병동이라 아빠를 부를 수도 없었기에 오롯이 혼자였다. 수술 동의서에 서명하면서 입원 기간을 안내받았다. 수술도, 입원도 내 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전신 마취도 마찬가지였다. 여느 드라마처럼 주마등처럼 기억이 스쳐 지나갈 시간은 없었다. 수술을 시작하자마자 순식간에 잠들었기 때문이다. 깨어나 보니 수술의 기억은 없고 배에는 개복 흔적만 남아 있었다.
수술이 끝난 직후 간호사는 나를 격렬하게 깨웠다. 가물거리는 의식을 겨우 잡으니 간호사는 내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환자분 이름이 뭐예요, 몇 년생이에요, 몇 살이에요 등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환자의 의식을 깨우기 위한 매뉴얼이었던 모양이다. 겨우 대답을 이어 가고 있던 차에 간호사는 인상적인 질문을 했다.
가족은 누구 누구 있어요?
나는 힘겹게 대답했다.
아빠와 여동생이요.
내 대답에 간호사는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엄마는요? 엄마는 없어요?
이 무슨 순수한 패륜적 질문인지. 의식이 다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도 나는 웃음이 터졌다. 나는 이제 엄마 없는 ‘무엇’이 되어버린 것이다.
남들 다 있는 엄마가 나한테만 없는 것처럼, 나는 혼자서 입원 생활을 버텼다. 퇴원하는 날 아침에 39도까지 열이 오르면서 입원 기간이 늘어났을 때말고는, 이 역시 견딜 만했다.
퇴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았다. 이건 좀 견디기 어려웠다. 그동안 내가 잃은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친구와 엄마, 근종(이건 아쉽지 않지만)까지 잃었는데 너마저.
5.
불행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는 더 이어질 불행을 감당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이렇게 많이 울어 본 적이 없었다. 한 해 동안 모든 에너지가 다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그래서 무당을 찾게 되었다. 처음으로 체험하게 된 무속신앙이었다.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도착한 당집은 평범한 주택가 한가운데였다. 흔한 빌라의 4층에 목적지인 당집이 있었다. 겉보기에는 너무 평범해서 무당집이라는 걸 짐작하기 어려웠다. 조심스럽게 건물 입구로 들어섰다.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향 냄새가 코를 찔렀다.
거창한 굿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차하면 부적은 써야 할지도 모른다는 결심이 있었다. 평소 나는 그런 일들을 ‘빨간 펜으로 이름을 쓰면 죽는다’ 정도의 미신처럼 여겼다. 그러나 생을 관장하는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내게 불행을 잔뜩 몰아주었다고 느끼는 순간, 내가 붙잡을 힘 또한 불확실한 속성일 수밖에 없었다.
눈물 반, 한숨 반의 내 이야기를 인내심 있게 들어 주던 무당은 한참 후에 입을 뗐다.
아홉수예요. 끝났어요.
6.
다시 웹소설로 돌아가자. 웹소설은 제목까지 안전하다. 웹소설의 제목은 주인공과 장르,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주요한 사건이 모두 암시된다. 가령,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백덕수, 2011), 『나 혼자만 레벨업』(추공, 2017), 『무림세가 천대받는 손녀딸이 되었다』 (마루별, 2020) 등 인기 소설의 제목을 살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주인공이 어떤 신분인지, 어떤 장르의 이야기인지, 주요 사건은 무엇인지 모두 제목에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자는 ‘안전’하게 소설에 진입할 수 있다. 혹시나 소설 내용이 취향에 맞지 않아 재미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덜어 주고,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맛’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 안전한 서사는 결말까지 이어진다. 소설 속 인물들은 회귀를 통해서 데뷔 과정을 수행해 살아남고, 이 세계에서 레벨업을 해 세상을 구한다. 빙의, 환생을 통해서 더 이상 천대받지 않고 사랑받는 존재로 이 세계를 살아간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해피엔딩뿐이다.
무당의 마지막 한 마디는 마치 웹소설 제목 같았다. 내 모든 불행은 아홉수에서 기인된 것이라는 확언은 해피엔딩까지 보장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홉수가 끝났으니 이 소설의 주인공에게 들이닥쳤던 불행도 끝이 났다. 불행 서사가 끝나면 모든 주인공이 으레 그러하듯, ‘행복하게 잘살았습니다’로 연결된다.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단기간에 내가 겪은 이 모든 상실이 ‘아홉수’라는 단어 하나로 연결되고 나니 그렇게 속이 후련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 삼십 대는 끝났다. 아직 완벽하게 복구되지는 않았지만 내 삶은 회복 중에 있다. 소설 주인공에게 위기와 고난은 항상 주인공을 성장시키는 장치가 된다. 내 아홉수도 내 삶에서 레벨업 요소가 되길 기대한다. 다음 아홉수는 아직 요원하니 그사이에 ‘안전한 불확실함’을 확실하게 누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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