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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모두와 우리에게 보내는 편지-{영화:디어 에반 핸슨}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4-04-14
  • 조회수 410

평범한 일상이 변주 되었다. 3월은 개학의 첫 달이다.그래서 나는 긴장을 많이했다. 왜냐 나는 남들과 달리 기침이라는 특이 케이스가 있어 학교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학교를 가기 며칠 전부터 몸은 떨리는 등 이상한 증상이 막 보였다. 기침 때문에 민원이 들어오면 어떻게 하지? 이것으로 혼자만 남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물론 1달이 지난 4월인 지금도 난 누군가의 시선이 두렵다. 그러나 이는 내가 이겨나가야 하는 방향이다. 그래서 돌격을 하며 적응을 하려 노력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남들에게 기쁘지 않으면서 웃는 척을 하며 말을 이어나가는 그런 친구 NPC 1과 같은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마음 한 편은 외롭다. 이처럼 나와 타인을 속이면서 외로움을 이겨보려고 노력은 하지만 정착 마음 한 편은 계속 외로운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번에 본 영화인 디어 에반 핸슨의 주인공 에반 역시 나와 같은 외로움을 느끼는 한 사람이었다.


 영화의 시작은 나와 같은 일상의 변주로부터 시작되었다. 바로 개학이라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싫어하는 그 날이 온 것이다. 극 I형이면서 사회 불안장애를 가진 에반은 학교로 등교했다. 에반에 한 쪽 팔에는 깁스가 감겨져 있었다. 때는 개학전 여름날 에반은 나무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한참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고통에 몸을 실었다. 이는 초반에 들려온 음악인 Waving through a window에서의 가사 "만약 텅 빈 숲 속에서 혼자 남게 된다면 나는 누굴 찾을까? 또 누가 와줄까?" 에서 나왔듯 에반은 스스로 떨어져 누군가 떨어진 자신을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10분 넘게 떨어진 자리에 누워 있던 것이다. 나는 이런 에반의 행동이 짠하게 보였다. 왜냐 오프닝으로 나왔던 위 넘버가 너무 밝은 분위기였고 등교를 하는 에반의 얼굴은 물에 젖은 고양이만양 계속 긴장 되있는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내가 만약 숲 속에 혼자 걸으면서 길을 잃게 된다면 과연 날 진정하게 절실한 마음으로 찾아 줄 이가 있을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가족을 제외하고 찾아줄 이는 없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영화는 계속 흘러가고 큰 소리가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코너라는 아이와 에반이 싸우고 있었다. 이유는 에반이 긴장이 되었는지 옅은 망가진 미소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를 본 코너는 화를 내며 다른 곳으로 갔다. 에반은 이 때문에 불안했는지 화장실에서 신경 안정재로 보이는 약을 떨어트리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불안한 에반의 얼굴을 카메라가 비추고 작은 여러 문장들과 함께 카메라는 에반이 지내온 새학기부터 지금까지의 일과 교실의 학생들을 보여주며 에반이 쓰는 자기 자신의 편지를 읽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편지의 내용은 에반이 새학기에 얼마나 많이 힘들었는지 말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코너의 여동생 조이의 이야기도 담아져 있었다. 에반은 이를 프린트하여 자신의 집으로 가져가려 했다. 그러나 기다리는 중 코너가 에반에게 다가와서 자신의 이름을 깁스에 써주고 편지를 보게 되었다. 편지를 본 코너는 자신의 동생인 조이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는 것을 보고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편지를 에반에게 뺏어가서 주머니에 놓았다. 이를 보고 에반은 인생에 있어 아주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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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코너의 부모님이 교장실에 찾아와 에반을 찾은 것이다. 에반은 떠는 마음을 가지며 코너의 부모를 만났다. 코너의 부모들이 그를 찾은 이유는 다름이 아닌 코너가 자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코너가 마지막에 주머니에 남겨진 유서가 코너와 에반이 싸운 날 코너가 가져간 에반 자신에게 쓴 편지였다. 이를 보며 코너의 부모는 에반을 코너의 유일한 친구라고 오해를 했다. 에반은 사실을 말하려고 하지만 코너를 잃은 상실이 큰 부모에게는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할 수 없이 자신과 코너는 서로 의지했던 유일한 친구였다 말을했다. 이를 들은 코너의 가족은 에반에게 마음을 열고 아들처럼 대해줬다. 그리고 코너를 추모하는 연설에서 에반은 연설을 하게 되었다. 이 때 내 감정은 과연 에반이 딜루전과 같은 망상 쪽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을 하게 되었다. 또한 이 때 자신들이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코너의 부모에게 거부감이 느껴졌다.


 에반은 연설을 할 때 사람들의 시선 반 그리고 거짓이라는 사실의 반 때문에 떨려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졌다. 거짓말이기 때문에 코너에 대하여 할 말이 없었던 그는 할 수 없이 자신이 외로웠을 때의 감정을 읊으며 사과 과수원의 이야기를 했다.  그 넘버가 You will be found로 "어둠이 쏟아져 올 때 의지할 친구가 필요할 때 더 버틸 수가 없을 때 널 찾을게요.::::햇볕을 피하지 말아요 다시 일어날 수 있어요. 주위를 둘러 보아요. 널 찾을게요."라고 말을 했다. 이는 거짓이 아니다. 어찌보면 사실이다. 생활의 변주 속에서 자신이 느낀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표현했기에 난 거짓으로 보지 않고 에반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는지 마음을 어루어 만지며 나도 그러면서 눈치를 보고 혼자 진실과 거짓이 섞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날 그리며 눈물이 흐르게 했다. 이는 영화 내부에서도 똑같았다. 모두들 에반의 말을 좋아했고 에반 덕분에 사회적으로 잘 보이지 않는 내향적이며 외로운 아이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에반의 말 덕분에 위로를 나처럼 받은 아이들이 나타났다. 그래서 영화 속 세상에서는 코너를 추모하는 사과 과수원을 만들기 위해 알라나가 나서 후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후원금은 모두 모이지 않았다. 그래ㅅ서 할 수 없이 알리나가 에반을 추궁하여 유서를 보고 SNS에 올렸다. 이를 보고 난 얼굴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왜냐 이것을 올리면 비난을 받는 것은 코너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에반 또한 이를 알고 알리나에게 빨리 지우라고 했지만 그 때는 늦었다. 에반은 홀로 외롭게 울었다. 본인의 거짓말 때문에 코너의 가족들이 욕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이 욕 먹고 아파하는 것을 보는 것은 누군가에게 있어 외롭고 아픈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 에반의 엄마인 하이든이 와서 그에게 "늘 옆에 있을게"라고 말을 했다. 그 넘버가 바로 "So big, So small"이다. "너의 곁에 언제나 모든개 커 보일 땐 작아질 때까지, 모두 커 보일 땐 작아질 때까지,작아질 때까지"그리고 "엄마가 네 맘을 몰라줘서 미안해."라는 등의 말을 했다. 사실 에반이 외롭고 쓸쓸했고 거짓으로 아픔을 덮을라고 했던 이유는 부모 때문이었다.  엄마는 매일 바빠 집에 없었고 아빤 어릴 때 집에 나갔으니 에반은 자신을 돌봐줄 누군가 함께 있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더 거짓말을 했었다. 그러나 자신이 외로울 때 옆에 있어준 코너의 가족이 더 이상 자신 때문에 아파하는 것을 보기 싫어서 사실을 밝히고 미움 받는 외톨이가 되기로 했다.


 그러나 그의 곁에도 사람이 있었다. 바로 엄마인 하이드와 코너의 동생 조이였다. 이 둘은 에반의 진심에서 들어난 외로움을 보았고 그가 진심으로 코너에게 사과를 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를 용서하고 안아줬다. 그 덕분에 코너는 죄책감이랑 외로움에서 약간은 벗어날 수 있게 되며 영화의 스크린은 엔딩 스크린으로 바뀌게 되었다.


 영화가 끝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며 약간의 위로를 받았다. 외로운 사람들과 삶의 변주를 맞이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강하다. 아무리 외롭고 힘들어도 거짓말을 하지말고 자신답게 살아라! 라는 말을 전달하는 것 같다. 또한 주변을 둘러보면 자신의 뜻을 알아봐줄 사람이 찾아올거라 말하는 것 같다.그러나 에반과 코너 가족이 코너에게 하이드가 에반에게 관심을 조금 더 줬다면 그들이 변하지 않았을까? 이 영화는 우리에게 외로워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듯 다가가 달라 부탁하고 있다. 그럼 그들이 외로워 거짓이라는 가면을 쓰지 않고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외로운이들에게 함께 관심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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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는 정신과 건물을 포함한 그 옆 건물까지 모두 학원으로 꽉 채워져있다. 그 곳을 갈 때마다 웃음기 없는 무표정한 학생들을 많이 본다. 특히 진료가 끝난 19시 쯤에는 돌덩이같은 가방을 등에 업고 버스에서 내리거나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친구가 막 학원에서 끝나 본인보다 더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등에 업고 가는 등의 행동을 보기도 한다. 이들을 보면 나는 학원을 다니지 않는 나와 다른 무언가가 등에 추가되어 있다고 생각이 든다.. 등에 무거운 짐이 추가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솔직히 난 모르겠다. 아니 아는데 모르는 척 행동하는 것이다. 시간은 거슬러 올라가 내가 학원을 다녔던 중2 시절 우리 가족은 코로나적 어려움과 더불어 아빠 사업의 어려움으로 집이 많이 힘들어졌다. 그래서 그 때 학원 원장 선생님께 엄마께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져 수업을 이어가기 힘들 것 같아요."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가족은 당연히 그만두라고 하실줄 알았는데 원장 선생님은 나를 안았다. " 제 월급에서 까더라도 제가 가르칠게요. 공부할 마음이 있는 아이를 막으면 안되잖아요."와 같은 말을 하셨다. 그래서 기침이 시작 되기 전까지 난 그 학원을 다녔다. 원장 선생님은 가끔 책값을 받지 않으시거나 책값에서 만원을 빼서 주시거나 체험학습 때 나에게 3만원이라는 돈을 주시면서 "가죽지마. 힘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원장 선생님의 선의에 많이 감사했다. 지금도 이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마음 한 편으로 죄송하고 시험을 잘 쳐야 한다는 부담감이 많이 생겼었다. 어찌보면 내게는 집안의 어려움과 더불어 학업이라는 큰 부담이 생겼던 것 같다. 김애란의 소설집 의 이라는 작품의 주인공 수인은 옛날에 재수생이었다. 집안 형편도 좋지 않아 서울에 있는 작은 독서실이었던 사임당 독서실에서 잠을 잤다. 다른 재수생들이었다면 재수 학원이나 일반 고시원애서 생활을 했겠지만 수인의 가족도 우리 가족처럼 힘들게 하루, 하루를 살아갔기 때문에 그녀의 등에도 짐이 있었다. 바로 부모님과 학업이라는 어느 사람에게는 무겁고 어느 사람에게는 가벼운 그런 무게가 등에 있었다. 수인은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 "아마 언니 눈에 제 뒤태도 비슷하게 보였겠죠? 우리 둘 다 꿈 말고도 이고 있는 것이 많으니 {290p]"이런 말이 있었다. 우리 모두의 뒤태는 수인의 말처럼 모두 비슷할 것이다. 어린이와 학생들에게는 부모와 학업이라는 짐이 있을 것이고 청년들은 생개와 친구가 있을 것이고 중년에게는 가족과 생계라는짐이 있을 것이고 노년에는 죽음과 사랑이란 짐이 있을 것이다. 이 때 수인이는 그저 열심히 사는 것으로 위 짐들을 내려 놓으려고 했다. 수인은 이런 짐들을 학원 강의, 다단계 회사 등 살인을 제외한 나머지 일들을 물, 불 가리지 않고 했다. 그러나 그 꿈은 위 책의 제목처럼 非 행운의 늪에 빠졌다. 다단계 회사에서 비 인륜적 행위들을 당하고 마지막에는 결국 본인을 사랑해줬던 제자 혜인을 다단계 불행의 늪에 빠지게 함으로 몸에 이고 있는 짐보다 더 한 죄책감이 더 생겼다. 특히 혜미가 자살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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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의 묻은 트라우마 그 안의 자신 {영화: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폭풍수면! 꿈 꾸는 세계 대돌격}

트라우마란 사전적인 의미로 재해 뒤 생기는 비정상적인 심리적 반응을 의미한다. 나는 비빔밥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초등 1학년 시절 비빔밥을 먹고 토를 하며 쓰러진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비빔밥 특히 산채 비빔밥을 먹지를 못한다. 나처럼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가끔 꿈에서 그 상황이 등장을 하기도 한다. 이를 알아주듯 애니메이션 에서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악몽을 꾸는 보라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에서 보여준다. 이를 보고 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중 제일 먼저 생각이든 것은 트라우마에 대하여 당서자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였다. 영화의 시작은 짱구 아빠와 엄마의 꿈으로부터 시작이 된다. 짱구 아빠는 영웅이 되어 명애를 얻고 짱구 엄마는 잘생긴 남자를 만나는 꿈을 꿨다. 이를 그저 스쳐 지나가는 개그 포인트로만 보면 의미는 없겠지만 이들을 자세히 드려다 보면 그 의미는 영화의 주제의식에 대한 복선이 된다. 이 장면 현실에서 그들이 얻을 수 없는 희망, 탐욕이라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트라우마를 만들 매계체이기도 한다. 그 이유는 중반부 꿈의 물고기에서 어른들이 버려지고 악몽의 세계로 그들이 들어갔을 때의 표현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처음에는 그들이 꿈 속에서 가진 것을 빼앗았지만 꿈에서 더 나아가서는 그들에게 있어 현실에서 소중하고 전부인 것들을 꿈 속에서 전부 빼앗아간 표현들이 있다. 예를들어 짱구 아빠가 현실에서 제일 소중히 여기는 가족을 직장 후배인 고뭉치에게 빼았긴 것이 있다. 이처럼 꿈의 세계가 나타난 것은 떡잎 유치원에 보라라는 여자아이가 전학을 온 이후부터였다. 보라는 우울하고 차가운 그런 아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보라의 주요 색은 보라다. 이 색의 상징적 의미는 몽황적 신비로움과 마력과 요술 그리고 초자아가 있다. 여기서도 주제의식에 대한 복선이 있었다. 바로 초자아라는 상징어에 있다. 초자아는 정신의 한 측면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초자아를 도덕적으로 보는 관점이다. 여기서 양심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는 보라가 자신 때문에 죽은 엄마에 대하여 양심적으로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을 비하하며 용서하지 않아 시작 된 악몽에 대하여 양심으로 죄책감에 들고 있어 더 깊은 트라우마를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어긋난 양심으로 생긴 죄책감이 짱구와 친구들 그리고 짱구 가족을 만나며 죄책감을 안아주는 법과 자신을 성장시키며 자신을 비하하지 않는 양심이 생기며 자아적으로 또 성장했다는 주제의식과 결말에 대한 복선을 이름과 성격에서부터 내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라는 악몽을 지우고 트라우마를 피하려고 꿈 속 세계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지만 이 또한 완벽한 해결법이 아니었다. 그래서 보라는 직법 악몽을 먹는다는 환상의 맥을 찾으려고 짱구와 함께 꿈 속 물고기에게서 나와 악몽 세계로 나왔다. 이를 볼 때 트라우마는 부모가 지워줄 수 없는 것이라고 해석 할 수 있다. 짱구의 도움으로 악몽이랑 보란 직접 마주하게 되었는데 이 때 짱구라는 맥을 찾았다. 이로서 악몽을

  •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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