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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순원과 함께하는 ‘커피 무한상상 글쓰기 이벤트’

작성일 2008-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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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은비령>, <그 여름의 꽃게>, <수색, 그 물빛 무늬>의 소설가 이순원과 함께하는 ‘커피 무한상상 글쓰기 이벤트’!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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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커피를 상실한 시대 그 누가 이런 시대를 상상했으랴. 커피가 멸종하리라고.하워드 슐츠가 자살한 시대를.브라질이 미국보다도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될 시대를.다이아몬드가 크기별로 커피콩과 교환될 시대를.그런 시대에서, 나는 살고 있었다.<?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 </o:p>그를 보았을 때, 그는 입가에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붉은 안개에 뒤덮여서. 나는 그의 목매무세를 단정하게 고치고 검지 하나를 그의 목에 살며시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한 생명의 멈춤을 확인했다. “죽었습니다.” 주변은 조용했다. 누군가, 흰색 분필을 쥐고 그의 몸 주변에 재단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몸을 따라 흰 뱀이 그려지고 있었다. 붉은 안개에 뒤덮인 흰 뱀. 자살은 아니고, 타살이었다. 분명 의도적인 일일 것이다. 목 뒤의 대동맥을 스스로 끊을 수 있는 건 통아저씨가 아닌 이상 불가능할 테니까. 건장한 남자. 나이는 아마도 22세쯤 되보임. 옷차림새는 단정한 걸 보아 아마 일격에 사망.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였다. 바지 주머니가 나와 있었다. 아마도 강도 살인 사건 같았다. 길을 지나가다가 운나쁘게 누군가에게 걸린 거겠지. 억세게 운나쁜 녀석. 이 길을 가던 사람이 나였다면 분명 내가 이 피범벅인 현장에 누워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옆 반 재수없게 생긴 검시관이 내 몸을 툭툭 건드렸겠지. 기분 나빠. 그 녀석 손도 제대로 씻는 것 같지 않던데. “저….발견된 게 있나요?” 여경관이다. 이런 사건에 여경관이 투입되다니 이상한 일인데. 나는 남녀평등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여자를 이런 곳에 보내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건 마치 여자를 군대에 보내지 않는 거랑 같은 이유야. 나쁜 것과 더러운 것은 봐야할 사람만 보면 돼, 그 이외에 그 누구도 볼 필요가 없어. 그건 마치, 내가 부검의가 된 이유와 같은 이유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시체 외에 발견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흉기도, 발자국도, 심지어 그 흔히 발견된다는 지문 조차도. 이쯤이면 아마 90%는 종결됬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아무것도 없는 사건을 파헤치는 건 단물이 쪽 빠진 껌을 밤새 씹어대는 일이랑 비슷한 일이니까. 이제 곧 시체는 운반되어 검안실로 옮겨질 것이다. 몇번 칼질 후에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뱉어내면, 이제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범인을 잡을 수 없다 싶으면 다른 사건으로 넘어 가겠지. 신문에 잘 내보낼 수 있는 간첩사건이나, 납치사건 같은 걸로. 그런 생각을 하자, 시체가 마치 나를 노려보는 듯 했다. 화내지마 친구, 이런 시대에 태어난 너가 잘못한 거야. 부검실에서 흰 장갑을 쭉 당겼다. 누군가 말했지, 의학은 진보하면 진보할수록 사람을 살려낼 거라고. 그 말을 누가 했든, 틀린 말이야. 의학은 진보하면 진보할수록 더 많은 사람을 죽여낼거야. 진보하면 진보할수록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할 테니까. 내가 장담할 수 있지. 이런 말을 하는 나를 원망해선 안돼 친구들, 이런 시대에 태어난 너와 내가 잘못한 거야. 부검실에 누워 있는 그는 자는 듯이 누워있었다. 다른 곳은 딱히 볼 필요가 없었고, 목뒤의 상처만 자세히 살펴보았다. 목뒤의 상처는 예리하고 작은 칼과 같은 걸로 난 것이었다. 면도칼 정도로 생각하면 될까.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은 범인이란 말씀이야. 뒤에서 노린 거라면 허점을 틈타 범행을 저지른 걸텐데 이렇게 작은 칼로 사람을 죽일 생각을 했단 말이야? 나 같았다면 식칼정도 되는 크기의 칼 정도는 들고 있었을 텐데. 이런 사람을 노렸다면, 실패할 경우 죽는 건 범인 자신아니야? 자기 실력을 과신하는 타입인 건가? 베인 자국을 유심히 살폈다. 범인은 왼손잡이 인 것 같다. 자상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그어져 있으니까. “검시관님 잠시만 이쪽 좀 봐주시겠습니까?” 부검시관이 나를 불렀다. 그는 얼굴을 가리키고 있었다. “입술에 붉은 것이 묻어있습니다. 립스틱인 것 같습니다.” 분명, 그의 입술에는 자연색이 아닌 붉은 느낌이 남아있었다. 휴지로 묻혀보니 분명 립스틱이다. “그리고 또, 목 옆에서 이런 것도..” 어두운 청색의 실쪼가리. 둘 다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는 지 모르겠다. 이 남자의 입술에서 립스틱이 발견됬다는 것은 애인이 있었다는 이야기일까? 아냐,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어쩌면 이 남자가 크로스드레서일지도 모르겠어. 그 날도 옷을 갈아입고 은밀한 즐거움을 즐긴거지. 그러다 립스틱을 깜박하고 지우지 못한 거야.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 집으로 돌아가다 안타깝게도 조그만 칼을 가진 살인마한테 그만 다 털리고 목숨을 내놓은 걸까. 불쌍하군. 부검이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 휴지에 물을 묻혀, 그의 얼굴을 깨끗이 닦아주려는 순간, 난 코에서 익숙하지 못한 냄새가 나는 걸 느꼈다. 뭘까? 그의 얼굴에 가까이 내 얼굴을 대어보니, 익숙하지 않은 냄새가 순간 코에 스쳤다. 커피 향이다. 죽기 전에 커피를 마신 건가? 이 사람은 뭐하는 사람인거지? “잠깐, 부검시관, 이 사람 신원검사를 해봤나?” “예, 별 특징없는 20대 청년입니다.” 별 특징없는 20대 청년이 커피를 마셨다고? 웃기고 있네. 분명 이 청년은 재벌가 쪽 사람이거나, 부장 이상의 직책을 가진 사람에 틀림없다. 아니면 경찰 중에서도 경정 이상의 사림이거나, 머리가 매우 뛰어나서 정부종합커피기획사무실 같은 곳에서 일하는 걸지도 모르고. 어찌되었든 이 사건은 커질 것이 분명해. 내가 장담할 수 있지. 잠깐. 생각해보니까, 이상하잖아. 뱃속에서는 커피 성분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게다가, 커피를 마셨으면 커피 냄새가 더 강해야 하는 거 아냐? 혹시 커피껌이나 전자커피를 마신건 아닐까? 하는 의혹이 순간 들었지만 분명 그건 아니었다. 커피껌과 전자 커피는 이런 향을 내지 못한다. 이런 에스프레소 향은 분명 진짜 커피다. 그건, 내가 일곱살 때 아버지 몰래 지갑에서 돈을 꺼내서 친구들과 모아서 딱 한번 커피를 마셔본 기억이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분명, 이건 진짜 커피다. 그런데 왜 배 속에 커피가 남아있지 않은 거지? 커피로 입만 헹구고 뱉었나? 그때, 뒤에서 문이 열렸다. “검시 중입니다. 나가주세요.” “잠시만요..” 조금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여자였다. 아까 나와 함께 사건을 검사하러 나왔던 여자. “드릴 말씀이 있는데, 잠시 나가서 이야기할 수 있나요?” 힐끗 뒤를 돌아봤다. 부검시관은 열심히 시체를 손질하고 있었다. 어차피 결과는 다 나왔으니, 딱히 남은 건 정리 뿐이리라. 그럼… “…..10분만 주시죠.” 흰 장갑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피비린내. 어떤 검시관들은 검시 한번 할 때마다 사흘은 잠도 못자고 밥도 못 먹는 다는데, 난 검시하고 10분만에 여자와 같이 밥먹으러 갈 정도로 정신력이 강하다. 모르지, 체질일지도. 애초에, 검시를 했다고 밥을 못먹을 거라면 검시따위는 때려치는게 나을 거야. 라고 생각하는 내가 거울앞에 보인다. 흰 가운을 집어 던져버린다. 가운에는 핏방울이 튀어있다. 거울 속 나는 더 이상 검시관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나의 남자고, 하나의 사람이다. 어디에도 시체를 주물럭거리던 모습이 남아있지 않다. 누가 말했지, 나는 숨을 쉬는 단백질인형이라고. 느낌이 없다고. 천만에, 내가 느낌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일곱 살 때 아빠 돈을 훔쳐 아이들과 커피를 사마시는 것 같은 짓은 안했을거야.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단백질 인형과 사람의 차이는 숨을 쉬느냐가 아니고 성욕이 있느냐라고. 넥타이까지 깔끔하게 정돈한 내가 화장실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 변기 옆 자판기가 보인다. [안전한 사랑을 하세요.]. 주춤거리다 밖에 있던 여성이 생각난다. 나는 단백질 인형이 아니다. “와주셨네요, 감사합니다.” 그녀가 웃는다. 나는 그녀에게 이유를 묻는다. 왜 나를 불렀냐고. 그녀는 식사를 하면서 대답하겠다고 말했다. 어디가 좋을까. 그녀는 나를 카페테리아로 데려왔다. 그녀가 내게 뭘 주문할거냐고 물었고, 나는 전자 커피 한잔과 커피껌 둘, 그리고 스테이크 한 그릇을 주문해달라고 부탁했다. 카페테리아에는 사람이 붐벼 있었다. 그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전자 커피를 마시거나, 커피껌을 씹으면서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커피란 건 자판기에서도 쉽게 뽑아마실 수 있는 것이었으며, 심지어 커피전문점들이 전 세계를 넘어 활발히 영업을 했다는 믿기힘든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아마 커피 금단현상들이 만들어 낸 환상속의 이야기들이리라. 그녀는 일어나서 카운터로 가서 주문을 했다. “전자 커피 하나와, 커피껌 둘, 그리고 스테이크 하나랑….” 그녀가 살짝 망설이더니 말했다. “….에스프레소 한잔.” 순간 카페테리아 안의 모든 사람이 카운터 앞에서 주문을 하는 그녀에게 시선을 모았다. 그 중 귀가 어두운 노인 한 둘은 자신이 잘못 들었겠거니 하면서 다시 고개를 돌렸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점원도 고개를 덜덜 떨면서 물었다. “에스프레소.” 그녀도 긴장된 얼굴로, 하지만 당당하게 주문을 다시 말했다.점원은 그녀에게 사인을 받고 그녀에게서 금액을 받은 후 (그녀가 낸 금액은 아마 내 한달 치 월급 정도 될 것이다. 생각해보니 오늘이 월급날인데, 그녀는 설마 오늘 받은 월급을 다 써버리겠다는 건가?) 긴장된 손으로 커피 기계를 작동 시켰다. 우웅~! 거리는 소리와 함께 커피 기계는 작동되고 손님들은 모두 이 기계가 작동되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서 노인네 한 명이 “난 작년에 저 기계가 작동되는 걸 봤지. 그 후에 죽기 전에 저게 다시 작동되는 걸 보다니, 정말 꿈만 같구만.” 이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점원은 전화를 걸어 바리스타를 불렀고, 20분후 바리스타는 놀란 얼굴로 카페테리아에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하나, 하나가 다이아몬드 가격에 필적한다는 커피콩 스무 알이 들려있었고, 우리는 모두 그 커피콩에 정신을 팔아버려야 했다. 바리스타는 조용히 커피 기계를 쓰다듬으며 먼지를 지워갔다. 이윽고, 기계의 구동음이 사라지자 바리스타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커피콩을 하나씩 기계에 넣어갔고, 주변 사람들은 침을 꿀걱 삼킨 채 떨어지는 커피콩을 하나하나 놓칠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커피콩이 전부 담기자, 바리스타는 뜨거운 물을 붓고, 커피잔으로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커피를 신중히 바라보며, 마치 한 방울만 커피잔 옆으로 떨어지길 바라듯이 커피잔을 살짝 흔들고 있었다. 커피가 다 담기고, 바리스타 손의 커피는 천천히 저어지고, 그녀에게 건네졌다. 그녀가 카운터에서 내가 있는 자리까지 다가오는 동안 모두의 시선은 그녀의 손에 집중되었다. 그녀의 다리는 아름다웠지만, 그 순간 그건 아무런 매력 요소가 되지 못했다. 어린 아이들은 그녀 주위에서 코를 킁킁거렸고, 나조차 코를 쭉 내밀고 있어야 했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사람들은 입맛을 쩝쩝 다시며 그녀를 바라보고, 그 앞에 앉아있는 나를 바라보며 부럽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커피를 사 마실수 있을 정도의 여자를 앞에 두고 있어서 부럽다는 건지, 아니면 이 커피가 내가 사는 것인 줄 착각하고 내 경제력을 가늠하며 부러워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꽤나 대단하신 분이시군요. 몰라뵜습니다.” “아녜요. 오늘 월급을 받았을 뿐인데요. 당신도 사 드실 수 있잖아요.” 그렇다. 그녀는 남편이나 남자 친구가 있어 생활이 해결될 지도 모른다. 먹고, 사는 것은 남편이나 남자 친구의 도움으로 해결하고, 자신의 월급으로는 커피를 마시는 사치를 부릴 수 있는 걸 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나조차 여성에게 시샘이 나고, 부러워졌다. 그녀는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그녀 앞에 나는 전자 커피를 마시며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결국 먼저 전자커피를 다 마신 나는 커피껌을 씹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데….무슨 일로 저를 뵙자고 하셨는지…” “아, 그게요…” 그녀는 급히 에스프레소를 들이킨다. 저런, 아깝게! 목으로 한달 월급이 흘러간다. 그리고 서둘러 나가자고 나를 재촉하면서 먼저 나가버린다. 그녀가 놓고 간 커피잔을 유심히 바라본다. 바닥에 커피가 몇 방울 남아있다. 사람들은 나를 바라보다, 다시 커피잔을 바라보다 하는 걸 반복하고 있었다. 제길. 나는 돌아섰고 돌아서자 마자 사람들이 그녀의 커피잔으로 달려들었다. 나가자, 그녀는 나를 이끌고 길거리를 걸었다. 나는 조용히 그녀를 보았다. “…..오늘 참 많이 힘들었어요. 여러가지를 갑자기 느꼈거든요.” 아까 시체를 본 이야기를 하는 건가. “…..아까 보신 그 시체 있죠?...그거 제 남자 친구에요.” "!" “처음 봤을 때, 그대로 무너질 뻔 했어요. 실제로 무너졌을지도 몰라요. 실은, 이틀 전에 심하게 싸웠거든요. 바람 피는 것 같은데… 핸드폰을 봐도 모르는 사람 번호가 잔뜩이고, 그래서 심한 소리 몇마디를 했더니 그대로 어디론가 가버렸어요.” 그녀의 눈망울에 투명한 유리구슬이 고인다. 이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될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나 이제 어떻게 하죠…” 어느새 골목길이다. 주변을 살펴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내게 살짝 기대왔다.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말해야 하는 걸까. 모르겠다. 그냥 우는 그녀를 바라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것 같다. 그리고…그녀가 내게 입을 맞춰 왔다. 입에서 에스프레소 향이 흘렀다. 씁쓸하지만, 내가 기억하던 7살 때의 맛과, 내가 오늘 부검한 그 사내의 입에서 나던 냄새와 같았다. 향기로웠다, 눈을 감아버렸다. 입안에서 커피 향이 혀를 지나 입 천장을 훑고 지나갔다. 그 사이 손은 그녀의 등을 감쌌고, 주머니에서는 아까 화장실에서 [안전한 연인의 사랑]의 느낌이 났다. 그 순간, 목 뒤에서 뜨거운 느낌이 났다. 눈을 떠버렸지만, 이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왜…..” 입에서 신음과 함께 어리석은 한마디가 쏟아져 나왔다. 내 앞에 있을 그녀에게서 아무런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일어서기 위해 비틀거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만일 그도, 이렇게 죽은 거라면 입에서 커피 냄새가 났지만 커피에 대한 아무런 것도 몸에서 발견되지 않은 것이 이해가 됬다. 다시, 그녀가 나에게 안겨올 때 그녀가 엄지손가락을 주먹에 숨기고 있던 것이 기억났다. 이렇게 안긴 자세에서, 목뒤를 베었다면 오른손잡이더라도 왼손잡이처럼 벨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또, 지금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어두운 청색인 경찰복이라는 것까지 생각이 미치자 온몸에 힘이 빠지고, 그대로 길거리에 누워버렸다. 그녀가 내 바지를 더듬는 느낌이 들고 주머니에서 지갑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아, 어쩌면 그녀의 커피는 그녀의 전 남자친구의 월급일지도 모른다. 나를 죽인 건 그녀가 아니다. 커피를 상실한 시대였다. 
- 2008-09-15 22:57:06
익명

커피를 상실한 시대 그 누가 이런 시대를 상상했으랴. 커피가 멸종하리라고.하워드 슐츠가 자살한 시대를.브라질이 미국보다도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될 시대를.다이아몬드가 크기별로 커피콩과 교환될 시대를.그런 시대에서, 나는 살고 있었다.<?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 </o:p>그를 보았을 때, 그는 입가에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붉은 안개에 뒤덮여서. 나는 그의 목매무세를 단정하게 고치고 검지 하나를 그의 목에 살며시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한 생명의 멈춤을 확인했다. “죽었습니다.” 주변은 조용했다. 누군가, 흰색 분필을 쥐고 그의 몸 주변에 재단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몸을 따라 흰 뱀이 그려지고 있었다. 붉은 안개에 뒤덮인 흰 뱀. 자살은 아니고, 타살이었다. 분명 의도적인 일일 것이다. 목 뒤의 대동맥을 스스로 끊을 수 있는 건 통아저씨가 아닌 이상 불가능할 테니까. 건장한 남자. 나이는 아마도 22세쯤 되보임. 옷차림새는 단정한 걸 보아 아마 일격에 사망.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였다. 바지 주머니가 나와 있었다. 아마도 강도 살인 사건 같았다. 길을 지나가다가 운나쁘게 누군가에게 걸린 거겠지. 억세게 운나쁜 녀석. 이 길을 가던 사람이 나였다면 분명 내가 이 피범벅인 현장에 누워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옆 반 재수없게 생긴 검시관이 내 몸을 툭툭 건드렸겠지. 기분 나빠. 그 녀석 손도 제대로 씻는 것 같지 않던데. “저….발견된 게 있나요?” 여경관이다. 이런 사건에 여경관이 투입되다니 이상한 일인데. 나는 남녀평등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여자를 이런 곳에 보내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건 마치 여자를 군대에 보내지 않는 거랑 같은 이유야. 나쁜 것과 더러운 것은 봐야할 사람만 보면 돼, 그 이외에 그 누구도 볼 필요가 없어. 그건 마치, 내가 부검의가 된 이유와 같은 이유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시체 외에 발견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흉기도, 발자국도, 심지어 그 흔히 발견된다는 지문 조차도. 이쯤이면 아마 90%는 종결됬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아무것도 없는 사건을 파헤치는 건 단물이 쪽 빠진 껌을 밤새 씹어대는 일이랑 비슷한 일이니까. 이제 곧 시체는 운반되어 검안실로 옮겨질 것이다. 몇번 칼질 후에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뱉어내면, 이제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범인을 잡을 수 없다 싶으면 다른 사건으로 넘어 가겠지. 신문에 잘 내보낼 수 있는 간첩사건이나, 납치사건 같은 걸로. 그런 생각을 하자, 시체가 마치 나를 노려보는 듯 했다. 화내지마 친구, 이런 시대에 태어난 너가 잘못한 거야. 부검실에서 흰 장갑을 쭉 당겼다. 누군가 말했지, 의학은 진보하면 진보할수록 사람을 살려낼 거라고. 그 말을 누가 했든, 틀린 말이야. 의학은 진보하면 진보할수록 더 많은 사람을 죽여낼거야. 진보하면 진보할수록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할 테니까. 내가 장담할 수 있지. 이런 말을 하는 나를 원망해선 안돼 친구들, 이런 시대에 태어난 너와 내가 잘못한 거야. 부검실에 누워 있는 그는 자는 듯이 누워있었다. 다른 곳은 딱히 볼 필요가 없었고, 목뒤의 상처만 자세히 살펴보았다. 목뒤의 상처는 예리하고 작은 칼과 같은 걸로 난 것이었다. 면도칼 정도로 생각하면 될까.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은 범인이란 말씀이야. 뒤에서 노린 거라면 허점을 틈타 범행을 저지른 걸텐데 이렇게 작은 칼로 사람을 죽일 생각을 했단 말이야? 나 같았다면 식칼정도 되는 크기의 칼 정도는 들고 있었을 텐데. 이런 사람을 노렸다면, 실패할 경우 죽는 건 범인 자신아니야? 자기 실력을 과신하는 타입인 건가? 베인 자국을 유심히 살폈다. 범인은 왼손잡이 인 것 같다. 자상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그어져 있으니까. “검시관님 잠시만 이쪽 좀 봐주시겠습니까?” 부검시관이 나를 불렀다. 그는 얼굴을 가리키고 있었다. “입술에 붉은 것이 묻어있습니다. 립스틱인 것 같습니다.” 분명, 그의 입술에는 자연색이 아닌 붉은 느낌이 남아있었다. 휴지로 묻혀보니 분명 립스틱이다. “그리고 또, 목 옆에서 이런 것도..” 어두운 청색의 실쪼가리. 둘 다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는 지 모르겠다. 이 남자의 입술에서 립스틱이 발견됬다는 것은 애인이 있었다는 이야기일까? 아냐,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어쩌면 이 남자가 크로스드레서일지도 모르겠어. 그 날도 옷을 갈아입고 은밀한 즐거움을 즐긴거지. 그러다 립스틱을 깜박하고 지우지 못한 거야.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 집으로 돌아가다 안타깝게도 조그만 칼을 가진 살인마한테 그만 다 털리고 목숨을 내놓은 걸까. 불쌍하군. 부검이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 휴지에 물을 묻혀, 그의 얼굴을 깨끗이 닦아주려는 순간, 난 코에서 익숙하지 못한 냄새가 나는 걸 느꼈다. 뭘까? 그의 얼굴에 가까이 내 얼굴을 대어보니, 익숙하지 않은 냄새가 순간 코에 스쳤다. 커피 향이다. 죽기 전에 커피를 마신 건가? 이 사람은 뭐하는 사람인거지? “잠깐, 부검시관, 이 사람 신원검사를 해봤나?” “예, 별 특징없는 20대 청년입니다.” 별 특징없는 20대 청년이 커피를 마셨다고? 웃기고 있네. 분명 이 청년은 재벌가 쪽 사람이거나, 부장 이상의 직책을 가진 사람에 틀림없다. 아니면 경찰 중에서도 경정 이상의 사림이거나, 머리가 매우 뛰어나서 정부종합커피기획사무실 같은 곳에서 일하는 걸지도 모르고. 어찌되었든 이 사건은 커질 것이 분명해. 내가 장담할 수 있지. 잠깐. 생각해보니까, 이상하잖아. 뱃속에서는 커피 성분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게다가, 커피를 마셨으면 커피 냄새가 더 강해야 하는 거 아냐? 혹시 커피껌이나 전자커피를 마신건 아닐까? 하는 의혹이 순간 들었지만 분명 그건 아니었다. 커피껌과 전자 커피는 이런 향을 내지 못한다. 이런 에스프레소 향은 분명 진짜 커피다. 그건, 내가 일곱살 때 아버지 몰래 지갑에서 돈을 꺼내서 친구들과 모아서 딱 한번 커피를 마셔본 기억이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분명, 이건 진짜 커피다. 그런데 왜 배 속에 커피가 남아있지 않은 거지? 커피로 입만 헹구고 뱉었나? 그때, 뒤에서 문이 열렸다. “검시 중입니다. 나가주세요.” “잠시만요..” 조금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여자였다. 아까 나와 함께 사건을 검사하러 나왔던 여자. “드릴 말씀이 있는데, 잠시 나가서 이야기할 수 있나요?” 힐끗 뒤를 돌아봤다. 부검시관은 열심히 시체를 손질하고 있었다. 어차피 결과는 다 나왔으니, 딱히 남은 건 정리 뿐이리라. 그럼… “…..10분만 주시죠.” 흰 장갑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피비린내. 어떤 검시관들은 검시 한번 할 때마다 사흘은 잠도 못자고 밥도 못 먹는 다는데, 난 검시하고 10분만에 여자와 같이 밥먹으러 갈 정도로 정신력이 강하다. 모르지, 체질일지도. 애초에, 검시를 했다고 밥을 못먹을 거라면 검시따위는 때려치는게 나을 거야. 라고 생각하는 내가 거울앞에 보인다. 흰 가운을 집어 던져버린다. 가운에는 핏방울이 튀어있다. 거울 속 나는 더 이상 검시관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나의 남자고, 하나의 사람이다. 어디에도 시체를 주물럭거리던 모습이 남아있지 않다. 누가 말했지, 나는 숨을 쉬는 단백질인형이라고. 느낌이 없다고. 천만에, 내가 느낌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일곱 살 때 아빠 돈을 훔쳐 아이들과 커피를 사마시는 것 같은 짓은 안했을거야.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단백질 인형과 사람의 차이는 숨을 쉬느냐가 아니고 성욕이 있느냐라고. 넥타이까지 깔끔하게 정돈한 내가 화장실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 변기 옆 자판기가 보인다. [안전한 사랑을 하세요.]. 주춤거리다 밖에 있던 여성이 생각난다. 나는 단백질 인형이 아니다. “와주셨네요, 감사합니다.” 그녀가 웃는다. 나는 그녀에게 이유를 묻는다. 왜 나를 불렀냐고. 그녀는 식사를 하면서 대답하겠다고 말했다. 어디가 좋을까. 그녀는 나를 카페테리아로 데려왔다. 그녀가 내게 뭘 주문할거냐고 물었고, 나는 전자 커피 한잔과 커피껌 둘, 그리고 스테이크 한 그릇을 주문해달라고 부탁했다. 카페테리아에는 사람이 붐벼 있었다. 그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전자 커피를 마시거나, 커피껌을 씹으면서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커피란 건 자판기에서도 쉽게 뽑아마실 수 있는 것이었으며, 심지어 커피전문점들이 전 세계를 넘어 활발히 영업을 했다는 믿기힘든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아마 커피 금단현상들이 만들어 낸 환상속의 이야기들이리라. 그녀는 일어나서 카운터로 가서 주문을 했다. “전자 커피 하나와, 커피껌 둘, 그리고 스테이크 하나랑….” 그녀가 살짝 망설이더니 말했다. “….에스프레소 한잔.” 순간 카페테리아 안의 모든 사람이 카운터 앞에서 주문을 하는 그녀에게 시선을 모았다. 그 중 귀가 어두운 노인 한 둘은 자신이 잘못 들었겠거니 하면서 다시 고개를 돌렸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점원도 고개를 덜덜 떨면서 물었다. “에스프레소.” 그녀도 긴장된 얼굴로, 하지만 당당하게 주문을 다시 말했다.점원은 그녀에게 사인을 받고 그녀에게서 금액을 받은 후 (그녀가 낸 금액은 아마 내 한달 치 월급 정도 될 것이다. 생각해보니 오늘이 월급날인데, 그녀는 설마 오늘 받은 월급을 다 써버리겠다는 건가?) 긴장된 손으로 커피 기계를 작동 시켰다. 우웅~! 거리는 소리와 함께 커피 기계는 작동되고 손님들은 모두 이 기계가 작동되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서 노인네 한 명이 “난 작년에 저 기계가 작동되는 걸 봤지. 그 후에 죽기 전에 저게 다시 작동되는 걸 보다니, 정말 꿈만 같구만.” 이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점원은 전화를 걸어 바리스타를 불렀고, 20분후 바리스타는 놀란 얼굴로 카페테리아에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하나, 하나가 다이아몬드 가격에 필적한다는 커피콩 스무 알이 들려있었고, 우리는 모두 그 커피콩에 정신을 팔아버려야 했다. 바리스타는 조용히 커피 기계를 쓰다듬으며 먼지를 지워갔다. 이윽고, 기계의 구동음이 사라지자 바리스타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커피콩을 하나씩 기계에 넣어갔고, 주변 사람들은 침을 꿀걱 삼킨 채 떨어지는 커피콩을 하나하나 놓칠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커피콩이 전부 담기자, 바리스타는 뜨거운 물을 붓고, 커피잔으로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커피를 신중히 바라보며, 마치 한 방울만 커피잔 옆으로 떨어지길 바라듯이 커피잔을 살짝 흔들고 있었다. 커피가 다 담기고, 바리스타 손의 커피는 천천히 저어지고, 그녀에게 건네졌다. 그녀가 카운터에서 내가 있는 자리까지 다가오는 동안 모두의 시선은 그녀의 손에 집중되었다. 그녀의 다리는 아름다웠지만, 그 순간 그건 아무런 매력 요소가 되지 못했다. 어린 아이들은 그녀 주위에서 코를 킁킁거렸고, 나조차 코를 쭉 내밀고 있어야 했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사람들은 입맛을 쩝쩝 다시며 그녀를 바라보고, 그 앞에 앉아있는 나를 바라보며 부럽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커피를 사 마실수 있을 정도의 여자를 앞에 두고 있어서 부럽다는 건지, 아니면 이 커피가 내가 사는 것인 줄 착각하고 내 경제력을 가늠하며 부러워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꽤나 대단하신 분이시군요. 몰라뵜습니다.” “아녜요. 오늘 월급을 받았을 뿐인데요. 당신도 사 드실 수 있잖아요.” 그렇다. 그녀는 남편이나 남자 친구가 있어 생활이 해결될 지도 모른다. 먹고, 사는 것은 남편이나 남자 친구의 도움으로 해결하고, 자신의 월급으로는 커피를 마시는 사치를 부릴 수 있는 걸 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나조차 여성에게 시샘이 나고, 부러워졌다. 그녀는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그녀 앞에 나는 전자 커피를 마시며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결국 먼저 전자커피를 다 마신 나는 커피껌을 씹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데….무슨 일로 저를 뵙자고 하셨는지…” “아, 그게요…” 그녀는 급히 에스프레소를 들이킨다. 저런, 아깝게! 목으로 한달 월급이 흘러간다. 그리고 서둘러 나가자고 나를 재촉하면서 먼저 나가버린다. 그녀가 놓고 간 커피잔을 유심히 바라본다. 바닥에 커피가 몇 방울 남아있다. 사람들은 나를 바라보다, 다시 커피잔을 바라보다 하는 걸 반복하고 있었다. 제길. 나는 돌아섰고 돌아서자 마자 사람들이 그녀의 커피잔으로 달려들었다. 나가자, 그녀는 나를 이끌고 길거리를 걸었다. 나는 조용히 그녀를 보았다. “…..오늘 참 많이 힘들었어요. 여러가지를 갑자기 느꼈거든요.” 아까 시체를 본 이야기를 하는 건가. “…..아까 보신 그 시체 있죠?...그거 제 남자 친구에요.” "!" “처음 봤을 때, 그대로 무너질 뻔 했어요. 실제로 무너졌을지도 몰라요. 실은, 이틀 전에 심하게 싸웠거든요. 바람 피는 것 같은데… 핸드폰을 봐도 모르는 사람 번호가 잔뜩이고, 그래서 심한 소리 몇마디를 했더니 그대로 어디론가 가버렸어요.” 그녀의 눈망울에 투명한 유리구슬이 고인다. 이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될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나 이제 어떻게 하죠…” 어느새 골목길이다. 주변을 살펴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내게 살짝 기대왔다.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말해야 하는 걸까. 모르겠다. 그냥 우는 그녀를 바라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것 같다. 그리고…그녀가 내게 입을 맞춰 왔다. 입에서 에스프레소 향이 흘렀다. 씁쓸하지만, 내가 기억하던 7살 때의 맛과, 내가 오늘 부검한 그 사내의 입에서 나던 냄새와 같았다. 향기로웠다, 눈을 감아버렸다. 입안에서 커피 향이 혀를 지나 입 천장을 훑고 지나갔다. 그 사이 손은 그녀의 등을 감쌌고, 주머니에서는 아까 화장실에서 [안전한 연인의 사랑]의 느낌이 났다. 그 순간, 목 뒤에서 뜨거운 느낌이 났다. 눈을 떠버렸지만, 이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왜…..” 입에서 신음과 함께 어리석은 한마디가 쏟아져 나왔다. 내 앞에 있을 그녀에게서 아무런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일어서기 위해 비틀거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만일 그도, 이렇게 죽은 거라면 입에서 커피 냄새가 났지만 커피에 대한 아무런 것도 몸에서 발견되지 않은 것이 이해가 됬다. 다시, 그녀가 나에게 안겨올 때 그녀가 엄지손가락을 주먹에 숨기고 있던 것이 기억났다. 이렇게 안긴 자세에서, 목뒤를 베었다면 오른손잡이더라도 왼손잡이처럼 벨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또, 지금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어두운 청색인 경찰복이라는 것까지 생각이 미치자 온몸에 힘이 빠지고, 그대로 길거리에 누워버렸다. 그녀가 내 바지를 더듬는 느낌이 들고 주머니에서 지갑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아, 어쩌면 그녀의 커피는 그녀의 전 남자친구의 월급일지도 모른다. 나를 죽인 건 그녀가 아니다. 커피를 상실한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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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그남자의 사정(事情)..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아니..벌써 우리 결혼에 권태기가 들이닥쳤단 말인가..!!! 짜짜잔~~!!!(음악효과) 나와 희주가 결혼한지 벌써...6개월하고 15일하고..10시간이 지났다.. 남들은 결혼한지 5년에서 10년 이후에권태기가 생기고 갈등이 생긴다는데... 나의 첫 사랑이자 첫 아내이자 영원한 사랑인 희주는 울면서 집을 나가 버린 상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어지럽혀진 거실에 앉았다.희주와 결혼하면서 끊었던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잠궈놓은 책상서랍에 숨겨진 담배를 꺼낼까...아냐..지금은 더욱 강력한 것이 필요해...그런 나에게 결혼 선물로 받은 겉표지가 화려한 양주가 반짝반짝 빛을 내며 유혹하는 것이 보였다.아~~~!!!!하지만....난 술은 못한다.. 젠장..!!!!!결국 난 주방에 가서 아내가 애지중지하는 에스프레소 기계를 바라봤다. 희주는 아침일찍 출근하기 전에 에스프레소를 뽑아서 마신다.나에게도 미소지으며 권하기도 했다.하지만 결혼 전에 ㅇㅇ카페에서 마신 에스프레소의 끔찍한 기억에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거절했었다.설탕 프림 잔뜩 들어간 일명 다방커피에 입맛이 다져진나에게 너무 썼기 때문이다...쓴건 정말 싫다...그래도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서 카페인이 필요했다..결국 희주가 알려준 대로...아니..실은 생각나는데로...기계를 작동시켰다. 우리가 왜 싸웠을까...아니 무엇이 희주를 집 나가게 한 걸까...회사일이 힘들었던 걸까..아니면 엄마가 전화해서 뭐 해달랬을까..아까 우리가 왜 싸웠지??? 아니다..싸웠다기 보다는 희주가 뭐라 하다가 갑자기 울어버린 거다..그리곤 휑~하니 나가버린 것이었다..이런 젠장.. 나는 희주의 커피잔에 에스프레소를 담아 나왔다.아파트 베란다로 나가 밤하늘과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마셨다. 처음 느낌은 뜨거웠다...였다.그래 나와 희주는 뜨겁게 사랑했다.둘의 눈이 마주치자 '파지직'하고 전기스파크가 튀었으니까..물론 친구녀석들은 내 얘기에 코웃음치고 비웃어댔다.팔불출 미친놈 콩깍지 씌인 놈...기타등등그래도 난 희주를 사랑한다..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두번째 느낌은 역시 씁쓸했다..였다.그래 우린 결혼하고 나서 서로에게 좀 소흘했다.서로 일 때문에 바빴고 퇴근해서도 서로의 얘기를 하기 보다는 집에서 편하게 쉬고 싶었다.희주는 늦게 퇴근하고 오면 나에게 뭐라고 했다.청소 좀 해주지...설겆이 좀 해주지..밥 좀 해주지..세탁기 좀 돌려주지..하지만 나는 '그걸 꼭 내가 해야해?'라고 하며방으로 들어가 잠들어 버리곤 했다.난 희주의 잔소리보다 웃음소리가 더 좋은데.. 세번째 느낌은 텁텁하다..였다.희주의 얼굴을 보면 뭔가 가슴에 맺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왜 이런 감정이 드는 걸까.. 난 에스프레소를 몇 모금 마시고싱크대에 갖다 버렸다. 그리곤 거실을 서성이다가 희주가 던지고 간 가방을 바라봤다.얼마나 힘껏 던졌으면 내용물이 다 쏟아졌을까..거기에서 연애할 때도 늘 갖고 다녔던 낡은 다이어리를 발견했다. 나는 그냥 몰래... 다이어리를 한장 펼쳤다. 이럴수가...이럴수가..온통 내 험담 뿐이었다....!!!!!! 아니..아니었다..몇 장을 더 읽어 내려가다 보니..난 정말로 나쁜 놈이었다..차마 내가 했던 행동들에 상처받은 희주의 글을더이상 읽을수가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나때문에 힘들어 하다니... 몰랐다..아니 모른 척 했을지도 모른다.여자들은 다 그렇게 사는거 아닌가?? 왜 이리 유난스럽게 굴까??이런 못된 마음도 나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 서슴없이 생겨났다. 하지만..잘못 된 것이란걸 안다.나도 알고 ..하늘 땅도 알고..희주도 알고..이래선 평생을 영원히 사랑하기 위한 결혼이 아니라평생을 영원히 부려먹기 위한 결혼이 아닌가..울 엄마처럼 고생 안 시키기로 했는데..울 아빠처럼 엄마를 힘들게 안하기로 했는데..이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어느 순간..내 눈에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빼꼼히 나와있는 지갑을 발견했다.지갑이 없으니 멀리 가진 못했을 것이다.요즘 초가을 날씨엔 해지면 추운데..난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 에스프레소 기계의 사용설명서를 읽었다.사용법은 알겠는데...맛있는 커피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그래도 커피를 뽑아서 결혼할때 구입했던...예쁜 머그컵에 담아 뚜껑을 덮었다. 그리곤..아파트 현관을 나와 뒷동산으로 향했다. 이 집을 처음 얻고 나서 둘이 자주 데이트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나자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나는 벤치에 앉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는 희주를 발견했다.마구 달려가 마구 안아주고 미안하다 하고 싶었지만뜨거운 머그컵이 흔들려서 그럴 수가 없었다. "오늘 밤...별이 참 밝지?" "바보...구름 낀거 안보여???" 희주는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역시 희주는 나때문에 화가 난 것이 분명하다. "..그럼 다시..할께...저 커피배달 왔는데요..꽃띠 꽃미남 장동간이라고 합니다." 나의 강력한 라이벌의 이름을 대자 희주가 삐쭉거리며 고개를 돌렸다.그리곤 내 손에 들려있는 머그컵을 보며 말했다. "이게 뭐야??" "음...장동간이 만든 일품 에스프레소.." "너..그 기계 고장 났음 가만 안둘꺼야.." "..혹시나 고장났으면 더 좋은거 사줄께.." "치.." 희주는 내가 내민 머그컵을 잡고 뚜껑을 열더니 향기를 맡았다. "음..좋다." "좋아?" "응..향기 좋아." "나 용서할 정도로 좋아." 그 말에 희주의 눈이 슬퍼졌다. "왜 그런말을 해..??" "나..당신이 나간 후에 이 에스프레소 마시면서 생각해 봤어. 처음엔 뭐가 잘못된 건지 몰랐는데...내가 원흉이더라구.." 희주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손에 들린 머그컵을 내려봤다. "미안해..희주야..결혼하고 나서 너한테 소흘했던 거..너를 힘들게 했던 거.. 이렇게 해서는 안되겠다 싶더라구. 이제부터 나도 집안일을 같이 할께.. 그동안 힘들게 해서 정말로 미안해. 그러니까 화 풀고 커피마시고 집에 가자." 희주의 눈에 눈물이 한방울 두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네가 변했다고 생각했어. 연애할때는 그렇게 배려하고 챙겨주고 자상했던 네가 결혼하고 나니까 나를 귀찮게 생각한다고 생각했어. 내가 가사도우미를 하려고 사랑하는 너랑 결혼 한 건 아니잖아. 바뀔지도 모른다고 바뀔꺼라고 믿으며 하루하루 버텼는데... 오늘은 회사일도 잘못되어서 힘들었는데 집에 와보니까 당신은 소파에 누워서 TV보면서 왜 이리 늦게까지 싸돌아 다니냐며..말할때.. 당신이 밉고 이 집이 싫어서 정말이지 뛰쳐나가고 싶었어.근데 막상 나오니까 지갑도 안갖고 왔지 뭐야..나 정말로 바본가봐..흑흑흑.." 나는 희주 옆에 앉아 나보다 작은 그녀를 꼬옥 안아줬다.그녀의 손이 흔들리면서 뜨거운 커피가 손에 튀었지만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미안해..희주야.." 나는 한동안 희주를 안고 토닥이다가 옷 소매로 희주의 코를 닦아주었다. "흥흥..옷이 더러워졌잖아.." "괜찮아..세탁기가 빨아줄텐데 뭐.." 우린 식어버린 커피를 나눠 마시며 뒷동산을 내려왔다. "희주야.." "응??" "나 바리스타 자격증 한번 따볼까봐.." "갑자기 왜 바리스타??" 나는 희주의 어깨를 꼭 안고 말했다. "혹시라도 네가 슬플때..힘들 때마다 내가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줄 수 있게 말이야." 희주는 입가에 웃음이 가득 띄우며 말했다. "그럼 난 너를 위해 뭘 배울까???" 난 잠시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한식요리..나도 밥다운 밥이 먹고 싶어..어때?!" 희주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괜찮아..밥은 전기밥솥이 해줄 테니까..말이야.." 그렇게 그들의 화해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인사말.. 벌써 두편째네요.. 이건 추석 지내고 와서 그냥 막 적은거랍니다. 여전히 서툴고 오타도 있겠지만요..^^;; 이제 마감일이 다 되었고 결과 발표만 기다리게 되네요.. 모든 분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기를 빌께요.. 
- 2008-09-15 22:43:33
익명

그남자의 사정(事情)..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아니..벌써 우리 결혼에 권태기가 들이닥쳤단 말인가..!!! 짜짜잔~~!!!(음악효과) 나와 희주가 결혼한지 벌써...6개월하고 15일하고..10시간이 지났다.. 남들은 결혼한지 5년에서 10년 이후에권태기가 생기고 갈등이 생긴다는데... 나의 첫 사랑이자 첫 아내이자 영원한 사랑인 희주는 울면서 집을 나가 버린 상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어지럽혀진 거실에 앉았다.희주와 결혼하면서 끊었던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잠궈놓은 책상서랍에 숨겨진 담배를 꺼낼까...아냐..지금은 더욱 강력한 것이 필요해...그런 나에게 결혼 선물로 받은 겉표지가 화려한 양주가 반짝반짝 빛을 내며 유혹하는 것이 보였다.아~~~!!!!하지만....난 술은 못한다.. 젠장..!!!!!결국 난 주방에 가서 아내가 애지중지하는 에스프레소 기계를 바라봤다. 희주는 아침일찍 출근하기 전에 에스프레소를 뽑아서 마신다.나에게도 미소지으며 권하기도 했다.하지만 결혼 전에 ㅇㅇ카페에서 마신 에스프레소의 끔찍한 기억에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거절했었다.설탕 프림 잔뜩 들어간 일명 다방커피에 입맛이 다져진나에게 너무 썼기 때문이다...쓴건 정말 싫다...그래도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서 카페인이 필요했다..결국 희주가 알려준 대로...아니..실은 생각나는데로...기계를 작동시켰다. 우리가 왜 싸웠을까...아니 무엇이 희주를 집 나가게 한 걸까...회사일이 힘들었던 걸까..아니면 엄마가 전화해서 뭐 해달랬을까..아까 우리가 왜 싸웠지??? 아니다..싸웠다기 보다는 희주가 뭐라 하다가 갑자기 울어버린 거다..그리곤 휑~하니 나가버린 것이었다..이런 젠장.. 나는 희주의 커피잔에 에스프레소를 담아 나왔다.아파트 베란다로 나가 밤하늘과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마셨다. 처음 느낌은 뜨거웠다...였다.그래 나와 희주는 뜨겁게 사랑했다.둘의 눈이 마주치자 '파지직'하고 전기스파크가 튀었으니까..물론 친구녀석들은 내 얘기에 코웃음치고 비웃어댔다.팔불출 미친놈 콩깍지 씌인 놈...기타등등그래도 난 희주를 사랑한다..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두번째 느낌은 역시 씁쓸했다..였다.그래 우린 결혼하고 나서 서로에게 좀 소흘했다.서로 일 때문에 바빴고 퇴근해서도 서로의 얘기를 하기 보다는 집에서 편하게 쉬고 싶었다.희주는 늦게 퇴근하고 오면 나에게 뭐라고 했다.청소 좀 해주지...설겆이 좀 해주지..밥 좀 해주지..세탁기 좀 돌려주지..하지만 나는 '그걸 꼭 내가 해야해?'라고 하며방으로 들어가 잠들어 버리곤 했다.난 희주의 잔소리보다 웃음소리가 더 좋은데.. 세번째 느낌은 텁텁하다..였다.희주의 얼굴을 보면 뭔가 가슴에 맺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왜 이런 감정이 드는 걸까.. 난 에스프레소를 몇 모금 마시고싱크대에 갖다 버렸다. 그리곤 거실을 서성이다가 희주가 던지고 간 가방을 바라봤다.얼마나 힘껏 던졌으면 내용물이 다 쏟아졌을까..거기에서 연애할 때도 늘 갖고 다녔던 낡은 다이어리를 발견했다. 나는 그냥 몰래... 다이어리를 한장 펼쳤다. 이럴수가...이럴수가..온통 내 험담 뿐이었다....!!!!!! 아니..아니었다..몇 장을 더 읽어 내려가다 보니..난 정말로 나쁜 놈이었다..차마 내가 했던 행동들에 상처받은 희주의 글을더이상 읽을수가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나때문에 힘들어 하다니... 몰랐다..아니 모른 척 했을지도 모른다.여자들은 다 그렇게 사는거 아닌가?? 왜 이리 유난스럽게 굴까??이런 못된 마음도 나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 서슴없이 생겨났다. 하지만..잘못 된 것이란걸 안다.나도 알고 ..하늘 땅도 알고..희주도 알고..이래선 평생을 영원히 사랑하기 위한 결혼이 아니라평생을 영원히 부려먹기 위한 결혼이 아닌가..울 엄마처럼 고생 안 시키기로 했는데..울 아빠처럼 엄마를 힘들게 안하기로 했는데..이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어느 순간..내 눈에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빼꼼히 나와있는 지갑을 발견했다.지갑이 없으니 멀리 가진 못했을 것이다.요즘 초가을 날씨엔 해지면 추운데..난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 에스프레소 기계의 사용설명서를 읽었다.사용법은 알겠는데...맛있는 커피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그래도 커피를 뽑아서 결혼할때 구입했던...예쁜 머그컵에 담아 뚜껑을 덮었다. 그리곤..아파트 현관을 나와 뒷동산으로 향했다. 이 집을 처음 얻고 나서 둘이 자주 데이트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나자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나는 벤치에 앉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는 희주를 발견했다.마구 달려가 마구 안아주고 미안하다 하고 싶었지만뜨거운 머그컵이 흔들려서 그럴 수가 없었다. "오늘 밤...별이 참 밝지?" "바보...구름 낀거 안보여???" 희주는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역시 희주는 나때문에 화가 난 것이 분명하다. "..그럼 다시..할께...저 커피배달 왔는데요..꽃띠 꽃미남 장동간이라고 합니다." 나의 강력한 라이벌의 이름을 대자 희주가 삐쭉거리며 고개를 돌렸다.그리곤 내 손에 들려있는 머그컵을 보며 말했다. "이게 뭐야??" "음...장동간이 만든 일품 에스프레소.." "너..그 기계 고장 났음 가만 안둘꺼야.." "..혹시나 고장났으면 더 좋은거 사줄께.." "치.." 희주는 내가 내민 머그컵을 잡고 뚜껑을 열더니 향기를 맡았다. "음..좋다." "좋아?" "응..향기 좋아." "나 용서할 정도로 좋아." 그 말에 희주의 눈이 슬퍼졌다. "왜 그런말을 해..??" "나..당신이 나간 후에 이 에스프레소 마시면서 생각해 봤어. 처음엔 뭐가 잘못된 건지 몰랐는데...내가 원흉이더라구.." 희주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손에 들린 머그컵을 내려봤다. "미안해..희주야..결혼하고 나서 너한테 소흘했던 거..너를 힘들게 했던 거.. 이렇게 해서는 안되겠다 싶더라구. 이제부터 나도 집안일을 같이 할께.. 그동안 힘들게 해서 정말로 미안해. 그러니까 화 풀고 커피마시고 집에 가자." 희주의 눈에 눈물이 한방울 두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네가 변했다고 생각했어. 연애할때는 그렇게 배려하고 챙겨주고 자상했던 네가 결혼하고 나니까 나를 귀찮게 생각한다고 생각했어. 내가 가사도우미를 하려고 사랑하는 너랑 결혼 한 건 아니잖아. 바뀔지도 모른다고 바뀔꺼라고 믿으며 하루하루 버텼는데... 오늘은 회사일도 잘못되어서 힘들었는데 집에 와보니까 당신은 소파에 누워서 TV보면서 왜 이리 늦게까지 싸돌아 다니냐며..말할때.. 당신이 밉고 이 집이 싫어서 정말이지 뛰쳐나가고 싶었어.근데 막상 나오니까 지갑도 안갖고 왔지 뭐야..나 정말로 바본가봐..흑흑흑.." 나는 희주 옆에 앉아 나보다 작은 그녀를 꼬옥 안아줬다.그녀의 손이 흔들리면서 뜨거운 커피가 손에 튀었지만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미안해..희주야.." 나는 한동안 희주를 안고 토닥이다가 옷 소매로 희주의 코를 닦아주었다. "흥흥..옷이 더러워졌잖아.." "괜찮아..세탁기가 빨아줄텐데 뭐.." 우린 식어버린 커피를 나눠 마시며 뒷동산을 내려왔다. "희주야.." "응??" "나 바리스타 자격증 한번 따볼까봐.." "갑자기 왜 바리스타??" 나는 희주의 어깨를 꼭 안고 말했다. "혹시라도 네가 슬플때..힘들 때마다 내가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줄 수 있게 말이야." 희주는 입가에 웃음이 가득 띄우며 말했다. "그럼 난 너를 위해 뭘 배울까???" 난 잠시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한식요리..나도 밥다운 밥이 먹고 싶어..어때?!" 희주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괜찮아..밥은 전기밥솥이 해줄 테니까..말이야.." 그렇게 그들의 화해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인사말.. 벌써 두편째네요.. 이건 추석 지내고 와서 그냥 막 적은거랍니다. 여전히 서툴고 오타도 있겠지만요..^^;; 이제 마감일이 다 되었고 결과 발표만 기다리게 되네요.. 모든 분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기를 빌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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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커피랜드 UFO 모양의 건물에 반구형(半球形)의 천정으로 둘러싸인 커피랜드 공장 내부는 여기저기 용접건에서 뿜어대는 아크광이 번쩍이고, 불길한 소음으로 가득차 있었다. 공장의 중앙통로를 지나 사무실로 통하는 입구 쪽으로 가던 한국남은 제조 로보트들의 범상치 않은 행동을 발견했다. 그들은 수십년 동안 칠성커피를 이끌어 온 불평불만 없는 근로자들이었으며, 엄청난 커피 생산량을 말썽없이 거뜬히 뽑아내는 장인들이었다. 그러나 그 충실했던 일꾼들이 무언의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공장장! " 그는 통제실을 향해 볼멘소리로 외쳤다. "사장님, 이제 오십니까?" 통제실내에서 바쁜 듯 계기판 사이를 왔다갔다 하던 공장장은 그를 보자 잔뜩 겁을 집어먹은 표정을 하고 뛰어나왔다. "무슨 일이야?" "글쎄, 저것들이 한 30분 전부터 저렇게 아우성치고 야단입니다. 이송된 커피 원료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면서 말이죠." 그는 반장을 옆으로 밀치고 통제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나, 각종 제어 시스템의 이상 유무를 나타내는 계기판의 램프들은 모두 정상인 파란빛으로 켜져 있었다. 한국남은 통제실을 나와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그의 등쪽에서 적의를 품은 것 같은 로보트들의 팔이 휙휙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할까요? 녹색 슈트를 입은 젊은 공장장이 그의 뒤를 쫓아오며 물었다. "놔두게. 망령이 씌운거야." 공장장은 그의 말을 못 알아들은 듯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쳐다 보았다. 한국남은 아무런 지시 없이 그곳을 벗어나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는 그의 할아버지가 있는 11층 밀실로 올라갔다. 오랫 동안 공기 정화가 안된 듯 누리척지근한 냄새가 위로부터 밀려왔다. 그는 지난 몇개월 동안 이곳에 올라오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몇번의 의견 충돌이 있은 후 그는 일부러 이곳 출입을 삼가해 왔다. 그가 할아버지로부터 이 회사를 물려받은지 17년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그는 할아버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엔 그가 어렸기에 아직 경험이 없어서 할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그는 항상 배후에서 그의 의사결정에 간섭하는 이 할아버지의 유령이 귀찮아졌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그의 눈 앞에 접근금지구역이란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그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었으며, 그 유폐된 공간에 여든 여덞살 먹은 유령이 서성거리고 있다는것을 이 공장의 어느 누구도 몰랐다. 그는 그 구역 안의 어두운 통로를 지나 바랜 푸른 빛을 띤 밀실 문 앞에 섰다. 문은 그를 탐지한 후 자동으로 열렸다. 열 평 남짓한 내부가 어슴푸레하게 드러났다. 중앙에는 유리로 된 돔 형식의 캡슐이 있었고, 그 뒤에는 각종 장치들이 병풍처럼 펼쳐 있었다. 그는 그 캡슐의 유령을 향해 외쳤다. "이제, 그 장난 그만 두십시오. 저도 이젠 못 참겠습니다." 캡슐 안에서 일시 전기방전이 일어나는 듯하더니 마치 음성합성장치에서 흘러 나오는 듯한 기괴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만은 내 말을 따라야 한다. 적우단(赤羽團)과 맺은 발주계약을 파기해라 !" "그건 안됩니다 ! 미국에서 인수 거부하여 창고에 쌓여 있는 7백톤의 커피를 생각해 보세요. 그것 때문에 우리는 지금 부도 직전까지 자금에 몰려 있습니다. 그놈들은 10여년간 우리의 협력업체인 양 떠벌려 왔지만 우리가 계속 엄청난 외형 신장을 거듭하여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 가자, 그들은 위협을 느낀 겁니다. 그래서 우리 회사를 눌러 버리려고 야비한 책략을 쓴거죠. 저는 톤당 가격의 절반까지 낮춰가며 그들과 굴욕적인 협상을 했지만, 그들은 시험가동에서 하자를 보인 물품을 아무리 보완하고 가격을 낮춰도 매입할 수 없다는 겁니다. 작년부터 이 건에 우리가 투자한 막대한 돈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살모사처럼 우리의 목을 노렸던 것입니다. 이제 방법은 가축사료나 진배 없는 물품을 아주 후한 가격에 쳐주는 미국에게 납품하는 겁니다." "너도 알다시피 모든 로보트들은 나의 분신들이다. 모든 생산공정은 나에 의해 언제나 완벽하게 통제되어 왔지. 여기에 눈곱만큼의 하자도 용납되지 않았어. 결국, 넌 내게 애당초부터 거짓말을 했던거야. 일본과의 계약은 있지도 않았어 ! 네가 나를 속이기 위해 만든 각본이지. 그 회사는 3년 전 불법으로 되어 있는 우주생물학병기를 제조하다 적발되어 화성식민지공화국에 의해 이미 강제 폐업 되었지. 난 자체 통신시스템을 가동해 어떤 신용조사회사에 조회하여 그 사실을 알아내었다. 자, 이래도 일본을 운운할테냐?" 한국남은 낭패한 기색과 분노가 뒤범벅이 된 묘한 표정이 되었다. "대단하시군요 ! 좋습니다. 할아버님의 말씀이 다 맞습니다. 그러나 제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우리의 커피를 인수해 가기 위해 이란은 엄청난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정상 가격의 2배에다 일시불 결재 입니다. 이번이 우리 칠성커피가 비약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만 !" 말문이 닫힌 한국남은 상기된 채 캡슐을 노려 보았다. "넌 벌써 잊었느냐 ! 네 부모를 공중에서 잿가루로 만든 분리파의 무리들을 ! 그 세네르인들 중에서도 가장 극렬한 놈들의 집단이 적우단이야 !" "저도 압니다. 하지만, 벌써 수십년이 흘렀습니다. 할아버님의 사고의 돌은 인간과 같이 시간에 따라 감정이 삭혀지지 않습니다. 그걸 아셔야 합니다. 그 돌 속에 입력된 할아버님의 격렬한 감정은 용해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 그대로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것은 경제논리에 맞지 않습니다." "뭐라구 ! 이 못된 놈이 !" "흥분하지 마십시오. 그동안 전 차마 이 얘기를 미뤄 왔으나 이젠 말씀 드려야겠습니다. 할아버님은 의학적 사망 이후 20년 동안 이 커피 공장의 모든 것을 통제해 오셨고 회사 경영에도 일일이 관여하여 오셨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어린 나이에도 아무 어려움 없이 할아버님의 경험을 습득해 가며 별탈 없이 지금까지 이 회사를 꾸려 왔습니다. 그러나 이젠 한계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할아버님의 사고의 돌도 이젠 썩은 물과 같습니다. 이 회사를 위해 더 이상의 가치가 없습니다. 이제, 칠성커피를 제게 일임하십시오. 황우성 박사와도 의논이 되었습니다. 설마 황박사와의 약속을 잊지는 않으셨겠죠?" "황우성 박사 !" "그렇습니다. 머지 않아 황박사가 보낸 사람이 이곳엘 올겁니다." "왜, 그가 사람을?" "그야 저도 모르죠." "네가 감히 나를 없애려고 !" "할아버님의 지친 영혼을 위해섭니다. 그렇지만 전 창업주이신 아버님의 소망대로 이 회사를 세계 제일의 대기업으로 성장시킬 겁니다. 절 믿어 주세요." 한국남은 뒷걸음치며 밀실 출구로 나아가자, 이 공간에서 오랫동안 탈출하지 못한 바닥에 깔린 부패된 공기가 천천히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한국남의 퇴장 신고에 캡슐의 유령은 아무런 대답 없이 죽음과 같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다시 짙은 어둠 속에 갇힌 유령은 그의 의식 속에 주렴처럼 이어지는 과거의 잔영들을 보았다. 전쟁의 신 마르시스가 지표면을 뚫고 그의 끔찍한 나신을 드러냈다. 그의 입김으로 하늘에 죽음의 오로라가 사방으로 뻗쳤으며, 그의 날개는 엄청난 회오리를 일으켜 붉은 모래폭풍이 하늘 수백 킬로미터까지 솟구쳤다. 그의 발이 옮겨감에 따라 크레이트와 같은 넓고 깊은 구덩이가 생겼으며, 그에게 반항하다 녹아버린 무리들의 시체가 끈끈한 유체로 되어 구덩이에 가득 고였다. 신의 배 안에서 진폭되어 나오는 고막을 찢는 우뢰는 산을 떨게 했으며, 협곡 사이에 숨은 무리들은 그들의 내장이 터졌다. 화성의 남반부에 위치한 마루촌의 한 방공호에서 난사되는 형형색색의 섬광에 눈이 부셨다. 그것은 신이 연출하는 죽음의 스펙트럼이었다. 귀에는 마치 지옥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했다. 서기 2323년 지구의 연합군은 여름철의 대황운기를 틈타 당시 열세에 놓여있던 화성식민지군을 도와 세네르인들의 산업 및군사기지에 맹격을 가했다. 지구의 식민지 정책에 반기를 들고 독립을 요구한 이 분리주의자들은 한때 화성의 절반까지 장악했으나, 이날 대접전에서 크게 패했다. 그 이후 쫓고 쫓기는 지루한 전쟁이 5년 동안 계속 되었으며, 화성은 거의 폐허가 되었다. 양측 사망자만도 백만명이 넘었다. 최후의 승리는 지구연합군과 식민지군에게 돌아가고 대부분의 세네르인은 투항했으나, 극렬파인 적우단은 화성과 목성 사이의 붉은 소행성으로 화성 재탈환의 기회를 노리며 도피했다. 지상 800킬로미터 상공에 떠 있던 한사장의 커피 위성공장에서는 이렇게 전쟁이 지속되는 시기에도 공장을 가동하여 커피를 생산하고 화성식민지군에게 납품해서 많은 돈을 벌었다. 그는 공습이 예상되면 재빨리 공장에 대기한 우주셔틀을 타고 지상의 방공호로 대피했다. 그리고 공장이 무사하기를 기도했다. 서기 2263년 그가 고향인 지구를 떠나 돈을 벌기 위해 이곳 행성으로 오면서 가진 것이라곤 구닥다리 우주선 한 대와 약간의 사업 밑천이었다. 그나마 우주선은 엔진 고장을 일으켜 연착륙을 못하고 엘리시움 평원에 비상착륙을 했다. 그가 병원에서 깨어났을때 그의 두 다리는 절단되어 없어지고 인공다리가 붙어 있었다. 그 이후 여러가지 악조건 밑에서도 창업의지를 버리지 않고 얼마 후 자신의 공장을 설립했다. 바로 커피 공장이었다. 이미 2121년에 한반도에서 겨울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지구촌에 커피 재배가 하루가 다르게 생산량이 줄어들자 이곳 행성에 배수진을 쳤던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며 돈을 모았다. 혈혈단신이었던 그는 생활력이 강한 이곳 식민지 여자와 결혼도 했다. 그러나 그 아들이 성장해서 자기의 뒤를 이을 무렵에 세네르인의 지구왕복선 피격으로 아들 내외가 목숨을 잃었다. 화성의 태양 고원 부근에 추락한 왕복선은 처참한 잔해만 일부 남아 있을 뿐, 아들 내외의 시신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 후 그는 지구에 있어 화를 면한 손자를 마루촌의 어느 탁아소에 맡기고 오로지 공장일에만 전념했다. 전쟁 중에 벌어들인 돈으로 회사의 규모는 급격히 커졌다. 식민지 재건국에서는 전쟁 때 그의 협력과 이후 산업재건의 공로로 훈장을 수여했고 그는 제법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 무렵 그와 황우성 박사와의 숙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황박사와 그는 고교 동창으로 그 시절에는 보기 드문 단짝이었다. 그러나 졸업 후 서로 갈 길이 달라 소식이 끊기고 말았는데, 황박사는 지구에서 인공신경생물학을 전공해서 이 계통의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고, 한사장은 실업전문대학으로 진학해서 졸업 후 몇몇 성이 차지 않는 직장을 전전하다 위험은 많지만 그만큼 기회도 많다고 생각 되었던 화성으로 왔던 것이다. 황박사는 그의 명성으로 주변이 시끄러운 지구를 떠나 연구에만 전념하기 위해 이곳 화성의 남반부에 위치한 마루촌에 도착하여 첨단의 실험장비들이 갖춰진 연구소를 세우고 정착했다. 이 소식을 들은 한사장은 주저없이 황박사를 만나고자 그의 연구소를 찾아 갔다. 그리고 환갑을 넘긴 서로의 얼굴을 뜯어보며, 밤새도록 지난날 겪었던 많은 회포를 주고 받았다. 한사장의 입지전적인 얘기가 끝나고 황박사의 얘기가 시작 되었는데, 역시 외곬 과학자답게 연구에만 전념해 온 탓에 아주 단조로웠던 삶을 얘기했다. 그러나, 박사가 얘기를 자신이 하고 있는 연구쪽으로 화제를 돌리자, 한사장은 야릇한 흥분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제2의 인간 ! 그게 정말 가능하단 말인가?" "현재로선 완벽하진 않지만 거의 가깝지." 박사는 무균 실험실로 들어가 검은 색에 약간 푸른 빛이 돌며 엄지 손톱만한 물건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그 물건을 그의 코 앞에 갖다 대었다. "중세의 연금술사들이 찾아 헤매던 신비의 돌보다 더 놀랄만한 능력이 이 안에 있다네. 이 소자(素子) 하나가 인간 의식의 샘물인 신경원 5백만개에 해당하지. 이거야말로 금세기 최대의 소재혁명이라네. " "왜 아직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았나?" 하고 묻자 박사는 좀전의 의기양양했던 표정에서 다소 신중한 얼굴이 되었다. "생각해 보게. 2070년경에 인간의 두뇌를 닮은 병렬정보처리장치보다 더 진화 된 P-9 뉴런 컴퓨터를 개발한 이후 세상이 얼마나 시끄러었나. 악의 무리들은 이것을 이용해 무혈의 전사인 사이버로보트를 생산해 내고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면서 인류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지.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심각했던 것은 뉴런학의 부산물이었네. 이것을 완성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밝혀지고 검증되어야 했던 인간 의식의 메카니즘이 냉혹한 과학자들에 의해 낱낱이 해부되고, 그들의 왜곡된 학설로 인간의 존엄성은 여지없이 난도질 당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문제는 자네가 지금 보고있는 이 소자로 만들어질 유비쿼터스 뉴런컴에 비하면 현재까지의 모든 인간을 흉내낸 컴퓨터는 유아의 걸음마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야." 박사는 그에게 와인을 권하고 그가 사양하자 한 잔 들이켠 후 말을 이었다. "현재의 뉴런컴은 인간과 같이 자유연상의 그림을 그리고, 사고에 의해 도출된 결과를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이상적인 인공지능의 단계에까진 거리가 멀지. 그것은 의식의 알맹이를 담는 그릇, 즉 기억 소자가 문제였던거야. 용량의 절대한계가 있었고 또한 인간 의식의 시간에 따른 순차적인 원인반응에 대한 연구가 미진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지. 그러나, 내가 사고의 돌이라고 명명한 이 소자는 이와같은 한계를 단숨에 극복한거야. 이것은 전혀 새로운 개념으로 봐야하네. 이 소자엔 무한량의 정보가 마치 우주의 블랙홀처럼 엄청난 밀도로 집적될 수 있지.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각기 다른 수많은 차원의 방들이 이 안에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야. 또한 이 다차원의 정보들은 필요시 언제라도 전지적 자극에 의해 반추될 수 있는 것일세. 만일, 이 사고의 돌로 만들어진 유비쿼터스 뉴런컴이 세상에 알려지면, 머지 않아 인간의 머리를 한 어떤 무시무시한 괴물이 태어난다는 것은 뻔한 이치야. 그리고, 사회적으로 얼마나 많은 물의가 일어나겠는가? 내가 젤 고민하는 것 중의 하나가 그런 사태를 방지하고자 여기서 은둔하며 더욱 완벽해질 때까지 연구하기 위해서지." "그럼, 자네는 그 컴퓨터를 만들어 보았나?" "아직 만들지는 않았지만 이곳에서 곧 착수해 볼 계획이네. 한가지 문제가 있긴 하지만.....이거, 자네한테 오늘 너무 많은 말을 하는군." 박사는 겸연쩍게 웃으면서 이 얘기를 끝내려 했으나, 이미 호기심이 크게 발동한 한사장은 그 연구에 대한 박사의 얘기를 계속 졸랐다. "허 ! 이거, 자네의 끈질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군." 하면서 박사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으나, 물러설 것 같지 않은 한사장의 태도를 보고 얘기를 계속했다. "글쎄, 그 문제란 유비쿼터스 뉴런컴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의 뇌가 있어야 한단 말이야." "뭐 ! 사람의 뇌 !" 한사장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렇다네. 이 사고의 돌을 이용해 할 수 있는 일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지. 난 그 중 첫번째로 인간의 뇌를 반영구적이고 완전에 가까운 이 컴퓨터에 복제하는 연구를 하기로 한거야. 이것이 실현되면, 육체는 죽어도 정신적으로 영원히 사는 인간을 재창조하는 셈이지." "그럼, 그 뇌를 제공한 사람은?" "그 뇌에 가해지는 전기적 충격으로 그의 뇌와 육체는 쓸모없이 되어 버리네. 그것은 의학적으로 사망이 되네만, 유비쿼터스 뉴런컴으로 옮겨간 그의 정신은 살아남게 된다고 볼 수 있지." "정말, 믿기 어려운 얘기군 !" "이것은 아까 내가 말한대로 그 유기체에 대한 법적 문제를 비롯하여 사회적으로 많은 파문을 일으키게 될 것이 자명하네." "그렇다면, 어떤 형태로 유비쿼터스 뉴런컴에서 정신이 살아남게 되나?" "물론, 정신적으로 아무리 빛나고 있다해도 유기체의 특성인 목적에 따른 행동이 없다면 죽지도 못하는 그 영혼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 따르겠나? 그에겐 쾌락도 없고 공포도 없지.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는 어떤 뚜렷한 목적하에 존재해야 된다는거야. 예를 들어, 빛나는 지식을 가진 과학자의 두뇌를 이 컴퓨터에 복제한다면 인류에게 아주 도움이 되겠지." 그날 박사와 작별하고 공장으로 돌아가면서 한사장은 머릿속에 어떤 망상과도 같은 이무기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차창으로 보이는 거대하고 웅장한 그의 공장을 지켜보면서 한사장은 갑자기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결국 한사장은 그 복제와 더불어 또 하나의 자신의 기발한 계획을 제안했다. 그것은 박사도 감탄할 정도로 치밀하고 사업가다운 발상이었다. 한사장은 자신이 복제된 유비쿼터스 뉴런컴을 통해 커피랜드 공장을 완벽하게 자신이 통제하고 회사 경영도 이끌어 간다는 것이었다. 그가 세부 내용까지 계획을 설명해가자 박사는 그의 계획에 충분한 가능성을 시사하면서도 그의 무모한 짓을 만류하는 입장이었다. "미리 말해 두지만, 만일 이것이 성공하더라도 훗날 어떤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이 생기거나 또한 자네 아들이 합당한 이유를 들어 유비커터스 뉴런컴의 해체를 원할 경우 난 그것을 행할 걸세. 그것은 자네 영혼을 괴롭히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지." 한사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좋네." 하고 동의했다. 며칠 후, 그의 복제된 의식이 살아났을 때 그는 엄청난 공허감을 이기지 못해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박사는 그의 감정파를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제어했다. 일단은 성공이었다. 박사와 음성장치를통해 전과 같이 얘기를 주고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손자 한국남은 새로운 할아버지 모습에 너무 놀란 나머지 한동안 밀실엔 얼씬거리지도 못했으며, 박사가 그간의 경위를 충분히 설명했지만 그가 할아버지라는 것을 받아들이는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뭏든 그 후 17여년 동안 그의 계획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져 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자신을 대하는 손자의 태도가 달라져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사건건 손자와 의견 대립이 생겼고, 최근 적우단과의 계약은 그들의 갈등을 더욱 심화 시켰던 것이다.그리고 급기야는 오늘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의 영혼은 짙은 어둠 속에서 밑도 끝도 없는 공허감을 느꼈다. 그는 공장 맨 꼭대기에 설치된 망원렌즈를 통해 수많은 별들이 명멸하는 우주를 바라보았다.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는 깊은 영혼의 한숨을 쉬었다. 그의 건조한 의식 속에 삭혀지지 않는 분노가 타올랐다. 그로부터 5일 후 녹색빛으로 번들거리는 비행기 한대가 공장에 도착했다. 비행기의 몸체에는 적우단을 상징하는 거대한 붉은 날개가 새겨져 있었다. 세명으로 구성된 시찰단은 공장의 플랫폼에서 내부로 통하는 고속 모노레일을 타고 한국남과 칠성전자의 임원들이 대기하고 있는 3층 홀로 들어왔다.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저희 공장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공장이 아주 휼륭하군요. 소문에 여기가 최고의 무인자동화 공장이라고 하던데, 과연 듣던 바 그대로군요." "별 말씀을." 그들은 공장의 어마어마한 규모와 로보트들의 일사불란한 작업에 정신이 팔린 듯, 한국남의 설명에는 아랑곳 없이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정말, 굉장하군요 ! 마치 웅장한 오케스트라 같습니다." 싸늘한 쇳덩어리들은 마치 그 속에 영혼이라도 담겨 있는 듯, 극도의 절제된 동작과 섬세한 놀림으로 자동이송기 위에 재료를 깍고 연마하며, 각 라인마다 우뚝 서 있는 작업감시 로보트는 사람의 눈과 같이 생긴 여러개의 인공렌즈를 통해 자기 라인에 설치된 제조 로보트들의 동작을 철저히 감시하고 통제하고 있었다. "이곳은 다른 공장에서는 불가능한 전천후 작업시스템이 로보트들에 의해 수행되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로보트들은 자기의 고유 반복작업 이외에도 모두 하자발견기능이 있어 자기에게 주어진 재료에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흠이 있으면 바로 반송시켜 버립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책임감이란 것이 입력되어 자기 선까지 온 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거죠. 이것은 우주의 악조건에서 견뎌야 하는 커피의 결함을 거의 제로로 줄입니다." 한국남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그들의 얼굴에서 만족 그 이상의 빛으로 흐르는 것을 보며,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에 안도 했다. 더구나 시찰단장은 그에게 광자엔진의 추가납품계약의 뜻마저 넌지시 비춰왔다. 무인공장시찰이 30분 정도 지나고, 일행이 다른 작업장으로 가려고 걸음을 옮길 때였다. 갑자기 공장 내부를 환하게 비추던 조명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이내 꺼려 버리고, 칠흙 같은 어둠 속에 일행은 갇혀 버렸다. "걱정 마십시요 ! 곧 다시 밝아질 겁니다. " 한국남은 그들을 안심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들의 불만은 이내 터져나오고 기계들의 굉음이 점점 거칠어 가자, 그들은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한국남은 불길한 망령이 어둠 속에 부유하는 것을 느꼈다. 이런, 기어코 ! 그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삼켰다. 갑자기 옆에서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시퍼런 빛들이 사방에서 몰려왔다. 그것은 마치 흡혈귀의 독이 오른 안광 같았다. 어둠의 싸늘한 팔이 그들을 뒤흔드는 것이 보였다. 규칙적으로 울리는 금속성의 소음은 처절한 비명과 어우러져 더욱 소름끼치도록 했다. 기계들은 자신들의 비정한 속성을 무시무시한 치차음(齒車音)으로 노정시키며, 그들에게 주어진 특별 재료를 요리했다. 사자가 지휘하는 죽음의 교향곡이 절정을 지나자, 주위가 눈부시게 밝아 왔다. 한국남은 눈에 먹이를 먹고 채 입도 닦지 않은 처절한 광경이 들어왔다. "당신들은 지금 모두 공장을 떠나시오 !" 한국남은 자신의 임원들에게 명령했다. 그들은 산산조각이 난 세 구의 시체를 보고 하얗게 질려 아무 말없이 도망치듯 뒷걸음질쳤다. 혼자 남게 된 한국남의 눈에서 형언할 수 없는분노의 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몸을 돌려 비상통로로 나왔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비상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엘리베이터에 탄 그는 무엇인가 망설이듯 인디케이터사인 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하4층을 눌렀다. 지하 4층에는 재고품의 창고가 있는 곳이었다.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전사들의 개인화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거기에서 두 자루의 광선총을 포장을 뜯고 끄집어냈다. 그리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17층으로 올라갔다. 이상하게도 밀실의 문은 열려져 있었다. 그는 뱀처럼 번들거리는 두 자루의 광선총을 캡슐의 유령을 향해 쳐들었다. 방아쇠를 당기자 펑 하면서 캡슈이 터졌다. 한국남은 그 안의 모든 것이 완전히 녹아 흘러내릴 때까지 방아쇠를 놓지 않았다. 공장의 유령이 사라져 버린 다음날 공장에 혼자 남아 있는 한국남은 깊은 시름에 빠져 있었다. 이 커피랜드 공장에서 살해된 시찰단장을 비롯한 세명의 적우단원에 대한 문제였다. 여러가지 모면할 방법을 궁리 했으나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들이 타고 온 비행기의 송수신기에 계속 적우단의 붉은 소행성에서 보내는 발신음이 울렸다. 그는 그 송수신기를 부숴버렸다. 그리고 우주선을 공장의 지하창고에 일단 숨겨 놓았다. 그러나, 한국남은 파견된 시찰단이 이곳에서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이 곧 그들에 의해 발각될 것이고 격분한 적우단이 이 공장을 공중분해 시키려고 이곳으로 올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그들과의 사업은 제쳐두고라도 이와같은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은 할아버지의 망령을 저주했다. 한국남이 9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복잡한 심정으로 실내를 왔다 갔다할 무렵 갑자기 아래의 무인공장에서 공장 전체를 쩡쩡 울리는 금속성 소음이 들려왔다. 그 소리는 틀림없이 공장의 로보트들이 가동되고 있는 소리였다. 한국남은 사무실 좌측 벽의 작업감시 스크린에 스위치를 넣었다. 공장 전층의 작업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모든 로보트들이 엄청나게 큰 무언가를 일제히 만들어 가고 있었다. 이럴수가 ! 자신이 어제 녹여버린 텔레코즘센터가 다시 살아났단 말인가? 할아버지의 망령이 다시? 한국남은 어제의 일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으나 알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눈 앞에서 텔레코즘센터가 사라져 버리자 통제실로 내려와 수동으로 모든 조업을 중단 시켰었다. 그는 일단 통제실로 내려갔다. 수동제어기는 어제 그대로 조업중지로 조작이 돼 있었다. 그는 컴퓨터의 프로그램을 살폈다. 조작이 끝나자 스크린에 작업지시사항이 나타났다. 그것은 놀랍게도 2년 전에 일시 생산한 적이 있던 K-7 행성간 미사일의 작업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스크린에 나타난 작업지시일자를 보니 그저께, 그러니까 정확하게 사고가 일어나기 전날 밤 자정에 모든 로보트들에게 명령이 하달됐던 것이다. 시행일자는 물론 바로 오늘 이 시각이었다. 끝으로 수정불가란 단어가 붉은 빛으로 깜박이고 있었다. 한국남은 아버지의 망령이 아직도 살아 떠도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텔레코즘센터의 마지막 명령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그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머리가 복잡해졌다. K-7 행성간 미사일은 화성식민지공화국의 특별주문으로 아홉 대만 한정생산해서 극비리에 납품한 적이 있었다. 이 미사일 두 대면 웬만한 행성 하나는 가루를 낼 수 있는 가공할 병기였다. 한국남은 짚이는게 있어 로보트들의 작업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작업장의 입구는 이미 두터운 문으로 봉쇄돼 있었다. 다른 모든 작업장도 마찬가지 였다. 그는 태양광발전기가 있는 15층으로 전원을 차단하기 위해 올라갔으나 역시 용이주도하게 봉쇄돼 있었다. 그는 어쩔수 없이 사무실의 스크린을 통해 그들의 행동만을 지켜봤다. 가동 시작 세 시간이 조금 넘자 그들은 미사일의 각부분을 조립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자동제어장치가 로보트들에 의해 미사일에 부착 되었다. 완벽하게 조립된 미사일은 고속레일을 타고 1층의 우주 플랫폼으로 이송되고 있었다. 이 무렵 황우성 박사는 그의 새로운 연구 주제인 유비쿼터스 뉴런컴의 3차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난 것에 대해 안도하면서 연구실 문을 나와 투명한 벽으로 둘러처지고 주위에는 각종 식물들이 자라나는 휴게실로 들어갔다. 청정한 공기가 코 끝을 간지럽혔다. 그가 그곳에 있는 널찍한 안락의자에 깊숙히 앉아 오늘 자신이 행한 실험을 재음미하고 있을 때였다. 하늘에서 갑자기 노란 섬광이 쏟아져 내려왔다. 마치 초신성(超新星)의 폭발과도 같은 주홍색 불꽃이 피는 것을 그는 보았다. 그리고 그곳의 위치를 가늠하면서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잘 가거라, 붉은 소행성아 !' 
- 2008-09-15 21:46:04
익명

커피랜드 UFO 모양의 건물에 반구형(半球形)의 천정으로 둘러싸인 커피랜드 공장 내부는 여기저기 용접건에서 뿜어대는 아크광이 번쩍이고, 불길한 소음으로 가득차 있었다. 공장의 중앙통로를 지나 사무실로 통하는 입구 쪽으로 가던 한국남은 제조 로보트들의 범상치 않은 행동을 발견했다. 그들은 수십년 동안 칠성커피를 이끌어 온 불평불만 없는 근로자들이었으며, 엄청난 커피 생산량을 말썽없이 거뜬히 뽑아내는 장인들이었다. 그러나 그 충실했던 일꾼들이 무언의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공장장! " 그는 통제실을 향해 볼멘소리로 외쳤다. "사장님, 이제 오십니까?" 통제실내에서 바쁜 듯 계기판 사이를 왔다갔다 하던 공장장은 그를 보자 잔뜩 겁을 집어먹은 표정을 하고 뛰어나왔다. "무슨 일이야?" "글쎄, 저것들이 한 30분 전부터 저렇게 아우성치고 야단입니다. 이송된 커피 원료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면서 말이죠." 그는 반장을 옆으로 밀치고 통제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나, 각종 제어 시스템의 이상 유무를 나타내는 계기판의 램프들은 모두 정상인 파란빛으로 켜져 있었다. 한국남은 통제실을 나와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그의 등쪽에서 적의를 품은 것 같은 로보트들의 팔이 휙휙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할까요? 녹색 슈트를 입은 젊은 공장장이 그의 뒤를 쫓아오며 물었다. "놔두게. 망령이 씌운거야." 공장장은 그의 말을 못 알아들은 듯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쳐다 보았다. 한국남은 아무런 지시 없이 그곳을 벗어나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는 그의 할아버지가 있는 11층 밀실로 올라갔다. 오랫 동안 공기 정화가 안된 듯 누리척지근한 냄새가 위로부터 밀려왔다. 그는 지난 몇개월 동안 이곳에 올라오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몇번의 의견 충돌이 있은 후 그는 일부러 이곳 출입을 삼가해 왔다. 그가 할아버지로부터 이 회사를 물려받은지 17년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그는 할아버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엔 그가 어렸기에 아직 경험이 없어서 할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그는 항상 배후에서 그의 의사결정에 간섭하는 이 할아버지의 유령이 귀찮아졌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그의 눈 앞에 접근금지구역이란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그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었으며, 그 유폐된 공간에 여든 여덞살 먹은 유령이 서성거리고 있다는것을 이 공장의 어느 누구도 몰랐다. 그는 그 구역 안의 어두운 통로를 지나 바랜 푸른 빛을 띤 밀실 문 앞에 섰다. 문은 그를 탐지한 후 자동으로 열렸다. 열 평 남짓한 내부가 어슴푸레하게 드러났다. 중앙에는 유리로 된 돔 형식의 캡슐이 있었고, 그 뒤에는 각종 장치들이 병풍처럼 펼쳐 있었다. 그는 그 캡슐의 유령을 향해 외쳤다. "이제, 그 장난 그만 두십시오. 저도 이젠 못 참겠습니다." 캡슐 안에서 일시 전기방전이 일어나는 듯하더니 마치 음성합성장치에서 흘러 나오는 듯한 기괴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만은 내 말을 따라야 한다. 적우단(赤羽團)과 맺은 발주계약을 파기해라 !" "그건 안됩니다 ! 미국에서 인수 거부하여 창고에 쌓여 있는 7백톤의 커피를 생각해 보세요. 그것 때문에 우리는 지금 부도 직전까지 자금에 몰려 있습니다. 그놈들은 10여년간 우리의 협력업체인 양 떠벌려 왔지만 우리가 계속 엄청난 외형 신장을 거듭하여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 가자, 그들은 위협을 느낀 겁니다. 그래서 우리 회사를 눌러 버리려고 야비한 책략을 쓴거죠. 저는 톤당 가격의 절반까지 낮춰가며 그들과 굴욕적인 협상을 했지만, 그들은 시험가동에서 하자를 보인 물품을 아무리 보완하고 가격을 낮춰도 매입할 수 없다는 겁니다. 작년부터 이 건에 우리가 투자한 막대한 돈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살모사처럼 우리의 목을 노렸던 것입니다. 이제 방법은 가축사료나 진배 없는 물품을 아주 후한 가격에 쳐주는 미국에게 납품하는 겁니다." "너도 알다시피 모든 로보트들은 나의 분신들이다. 모든 생산공정은 나에 의해 언제나 완벽하게 통제되어 왔지. 여기에 눈곱만큼의 하자도 용납되지 않았어. 결국, 넌 내게 애당초부터 거짓말을 했던거야. 일본과의 계약은 있지도 않았어 ! 네가 나를 속이기 위해 만든 각본이지. 그 회사는 3년 전 불법으로 되어 있는 우주생물학병기를 제조하다 적발되어 화성식민지공화국에 의해 이미 강제 폐업 되었지. 난 자체 통신시스템을 가동해 어떤 신용조사회사에 조회하여 그 사실을 알아내었다. 자, 이래도 일본을 운운할테냐?" 한국남은 낭패한 기색과 분노가 뒤범벅이 된 묘한 표정이 되었다. "대단하시군요 ! 좋습니다. 할아버님의 말씀이 다 맞습니다. 그러나 제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우리의 커피를 인수해 가기 위해 이란은 엄청난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정상 가격의 2배에다 일시불 결재 입니다. 이번이 우리 칠성커피가 비약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만 !" 말문이 닫힌 한국남은 상기된 채 캡슐을 노려 보았다. "넌 벌써 잊었느냐 ! 네 부모를 공중에서 잿가루로 만든 분리파의 무리들을 ! 그 세네르인들 중에서도 가장 극렬한 놈들의 집단이 적우단이야 !" "저도 압니다. 하지만, 벌써 수십년이 흘렀습니다. 할아버님의 사고의 돌은 인간과 같이 시간에 따라 감정이 삭혀지지 않습니다. 그걸 아셔야 합니다. 그 돌 속에 입력된 할아버님의 격렬한 감정은 용해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 그대로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것은 경제논리에 맞지 않습니다." "뭐라구 ! 이 못된 놈이 !" "흥분하지 마십시오. 그동안 전 차마 이 얘기를 미뤄 왔으나 이젠 말씀 드려야겠습니다. 할아버님은 의학적 사망 이후 20년 동안 이 커피 공장의 모든 것을 통제해 오셨고 회사 경영에도 일일이 관여하여 오셨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어린 나이에도 아무 어려움 없이 할아버님의 경험을 습득해 가며 별탈 없이 지금까지 이 회사를 꾸려 왔습니다. 그러나 이젠 한계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할아버님의 사고의 돌도 이젠 썩은 물과 같습니다. 이 회사를 위해 더 이상의 가치가 없습니다. 이제, 칠성커피를 제게 일임하십시오. 황우성 박사와도 의논이 되었습니다. 설마 황박사와의 약속을 잊지는 않으셨겠죠?" "황우성 박사 !" "그렇습니다. 머지 않아 황박사가 보낸 사람이 이곳엘 올겁니다." "왜, 그가 사람을?" "그야 저도 모르죠." "네가 감히 나를 없애려고 !" "할아버님의 지친 영혼을 위해섭니다. 그렇지만 전 창업주이신 아버님의 소망대로 이 회사를 세계 제일의 대기업으로 성장시킬 겁니다. 절 믿어 주세요." 한국남은 뒷걸음치며 밀실 출구로 나아가자, 이 공간에서 오랫동안 탈출하지 못한 바닥에 깔린 부패된 공기가 천천히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한국남의 퇴장 신고에 캡슐의 유령은 아무런 대답 없이 죽음과 같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다시 짙은 어둠 속에 갇힌 유령은 그의 의식 속에 주렴처럼 이어지는 과거의 잔영들을 보았다. 전쟁의 신 마르시스가 지표면을 뚫고 그의 끔찍한 나신을 드러냈다. 그의 입김으로 하늘에 죽음의 오로라가 사방으로 뻗쳤으며, 그의 날개는 엄청난 회오리를 일으켜 붉은 모래폭풍이 하늘 수백 킬로미터까지 솟구쳤다. 그의 발이 옮겨감에 따라 크레이트와 같은 넓고 깊은 구덩이가 생겼으며, 그에게 반항하다 녹아버린 무리들의 시체가 끈끈한 유체로 되어 구덩이에 가득 고였다. 신의 배 안에서 진폭되어 나오는 고막을 찢는 우뢰는 산을 떨게 했으며, 협곡 사이에 숨은 무리들은 그들의 내장이 터졌다. 화성의 남반부에 위치한 마루촌의 한 방공호에서 난사되는 형형색색의 섬광에 눈이 부셨다. 그것은 신이 연출하는 죽음의 스펙트럼이었다. 귀에는 마치 지옥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했다. 서기 2323년 지구의 연합군은 여름철의 대황운기를 틈타 당시 열세에 놓여있던 화성식민지군을 도와 세네르인들의 산업 및군사기지에 맹격을 가했다. 지구의 식민지 정책에 반기를 들고 독립을 요구한 이 분리주의자들은 한때 화성의 절반까지 장악했으나, 이날 대접전에서 크게 패했다. 그 이후 쫓고 쫓기는 지루한 전쟁이 5년 동안 계속 되었으며, 화성은 거의 폐허가 되었다. 양측 사망자만도 백만명이 넘었다. 최후의 승리는 지구연합군과 식민지군에게 돌아가고 대부분의 세네르인은 투항했으나, 극렬파인 적우단은 화성과 목성 사이의 붉은 소행성으로 화성 재탈환의 기회를 노리며 도피했다. 지상 800킬로미터 상공에 떠 있던 한사장의 커피 위성공장에서는 이렇게 전쟁이 지속되는 시기에도 공장을 가동하여 커피를 생산하고 화성식민지군에게 납품해서 많은 돈을 벌었다. 그는 공습이 예상되면 재빨리 공장에 대기한 우주셔틀을 타고 지상의 방공호로 대피했다. 그리고 공장이 무사하기를 기도했다. 서기 2263년 그가 고향인 지구를 떠나 돈을 벌기 위해 이곳 행성으로 오면서 가진 것이라곤 구닥다리 우주선 한 대와 약간의 사업 밑천이었다. 그나마 우주선은 엔진 고장을 일으켜 연착륙을 못하고 엘리시움 평원에 비상착륙을 했다. 그가 병원에서 깨어났을때 그의 두 다리는 절단되어 없어지고 인공다리가 붙어 있었다. 그 이후 여러가지 악조건 밑에서도 창업의지를 버리지 않고 얼마 후 자신의 공장을 설립했다. 바로 커피 공장이었다. 이미 2121년에 한반도에서 겨울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지구촌에 커피 재배가 하루가 다르게 생산량이 줄어들자 이곳 행성에 배수진을 쳤던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며 돈을 모았다. 혈혈단신이었던 그는 생활력이 강한 이곳 식민지 여자와 결혼도 했다. 그러나 그 아들이 성장해서 자기의 뒤를 이을 무렵에 세네르인의 지구왕복선 피격으로 아들 내외가 목숨을 잃었다. 화성의 태양 고원 부근에 추락한 왕복선은 처참한 잔해만 일부 남아 있을 뿐, 아들 내외의 시신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 후 그는 지구에 있어 화를 면한 손자를 마루촌의 어느 탁아소에 맡기고 오로지 공장일에만 전념했다. 전쟁 중에 벌어들인 돈으로 회사의 규모는 급격히 커졌다. 식민지 재건국에서는 전쟁 때 그의 협력과 이후 산업재건의 공로로 훈장을 수여했고 그는 제법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 무렵 그와 황우성 박사와의 숙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황박사와 그는 고교 동창으로 그 시절에는 보기 드문 단짝이었다. 그러나 졸업 후 서로 갈 길이 달라 소식이 끊기고 말았는데, 황박사는 지구에서 인공신경생물학을 전공해서 이 계통의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고, 한사장은 실업전문대학으로 진학해서 졸업 후 몇몇 성이 차지 않는 직장을 전전하다 위험은 많지만 그만큼 기회도 많다고 생각 되었던 화성으로 왔던 것이다. 황박사는 그의 명성으로 주변이 시끄러운 지구를 떠나 연구에만 전념하기 위해 이곳 화성의 남반부에 위치한 마루촌에 도착하여 첨단의 실험장비들이 갖춰진 연구소를 세우고 정착했다. 이 소식을 들은 한사장은 주저없이 황박사를 만나고자 그의 연구소를 찾아 갔다. 그리고 환갑을 넘긴 서로의 얼굴을 뜯어보며, 밤새도록 지난날 겪었던 많은 회포를 주고 받았다. 한사장의 입지전적인 얘기가 끝나고 황박사의 얘기가 시작 되었는데, 역시 외곬 과학자답게 연구에만 전념해 온 탓에 아주 단조로웠던 삶을 얘기했다. 그러나, 박사가 얘기를 자신이 하고 있는 연구쪽으로 화제를 돌리자, 한사장은 야릇한 흥분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제2의 인간 ! 그게 정말 가능하단 말인가?" "현재로선 완벽하진 않지만 거의 가깝지." 박사는 무균 실험실로 들어가 검은 색에 약간 푸른 빛이 돌며 엄지 손톱만한 물건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그 물건을 그의 코 앞에 갖다 대었다. "중세의 연금술사들이 찾아 헤매던 신비의 돌보다 더 놀랄만한 능력이 이 안에 있다네. 이 소자(素子) 하나가 인간 의식의 샘물인 신경원 5백만개에 해당하지. 이거야말로 금세기 최대의 소재혁명이라네. " "왜 아직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았나?" 하고 묻자 박사는 좀전의 의기양양했던 표정에서 다소 신중한 얼굴이 되었다. "생각해 보게. 2070년경에 인간의 두뇌를 닮은 병렬정보처리장치보다 더 진화 된 P-9 뉴런 컴퓨터를 개발한 이후 세상이 얼마나 시끄러었나. 악의 무리들은 이것을 이용해 무혈의 전사인 사이버로보트를 생산해 내고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면서 인류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지.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심각했던 것은 뉴런학의 부산물이었네. 이것을 완성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밝혀지고 검증되어야 했던 인간 의식의 메카니즘이 냉혹한 과학자들에 의해 낱낱이 해부되고, 그들의 왜곡된 학설로 인간의 존엄성은 여지없이 난도질 당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문제는 자네가 지금 보고있는 이 소자로 만들어질 유비쿼터스 뉴런컴에 비하면 현재까지의 모든 인간을 흉내낸 컴퓨터는 유아의 걸음마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야." 박사는 그에게 와인을 권하고 그가 사양하자 한 잔 들이켠 후 말을 이었다. "현재의 뉴런컴은 인간과 같이 자유연상의 그림을 그리고, 사고에 의해 도출된 결과를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이상적인 인공지능의 단계에까진 거리가 멀지. 그것은 의식의 알맹이를 담는 그릇, 즉 기억 소자가 문제였던거야. 용량의 절대한계가 있었고 또한 인간 의식의 시간에 따른 순차적인 원인반응에 대한 연구가 미진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지. 그러나, 내가 사고의 돌이라고 명명한 이 소자는 이와같은 한계를 단숨에 극복한거야. 이것은 전혀 새로운 개념으로 봐야하네. 이 소자엔 무한량의 정보가 마치 우주의 블랙홀처럼 엄청난 밀도로 집적될 수 있지.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각기 다른 수많은 차원의 방들이 이 안에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야. 또한 이 다차원의 정보들은 필요시 언제라도 전지적 자극에 의해 반추될 수 있는 것일세. 만일, 이 사고의 돌로 만들어진 유비쿼터스 뉴런컴이 세상에 알려지면, 머지 않아 인간의 머리를 한 어떤 무시무시한 괴물이 태어난다는 것은 뻔한 이치야. 그리고, 사회적으로 얼마나 많은 물의가 일어나겠는가? 내가 젤 고민하는 것 중의 하나가 그런 사태를 방지하고자 여기서 은둔하며 더욱 완벽해질 때까지 연구하기 위해서지." "그럼, 자네는 그 컴퓨터를 만들어 보았나?" "아직 만들지는 않았지만 이곳에서 곧 착수해 볼 계획이네. 한가지 문제가 있긴 하지만.....이거, 자네한테 오늘 너무 많은 말을 하는군." 박사는 겸연쩍게 웃으면서 이 얘기를 끝내려 했으나, 이미 호기심이 크게 발동한 한사장은 그 연구에 대한 박사의 얘기를 계속 졸랐다. "허 ! 이거, 자네의 끈질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군." 하면서 박사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으나, 물러설 것 같지 않은 한사장의 태도를 보고 얘기를 계속했다. "글쎄, 그 문제란 유비쿼터스 뉴런컴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의 뇌가 있어야 한단 말이야." "뭐 ! 사람의 뇌 !" 한사장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렇다네. 이 사고의 돌을 이용해 할 수 있는 일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지. 난 그 중 첫번째로 인간의 뇌를 반영구적이고 완전에 가까운 이 컴퓨터에 복제하는 연구를 하기로 한거야. 이것이 실현되면, 육체는 죽어도 정신적으로 영원히 사는 인간을 재창조하는 셈이지." "그럼, 그 뇌를 제공한 사람은?" "그 뇌에 가해지는 전기적 충격으로 그의 뇌와 육체는 쓸모없이 되어 버리네. 그것은 의학적으로 사망이 되네만, 유비쿼터스 뉴런컴으로 옮겨간 그의 정신은 살아남게 된다고 볼 수 있지." "정말, 믿기 어려운 얘기군 !" "이것은 아까 내가 말한대로 그 유기체에 대한 법적 문제를 비롯하여 사회적으로 많은 파문을 일으키게 될 것이 자명하네." "그렇다면, 어떤 형태로 유비쿼터스 뉴런컴에서 정신이 살아남게 되나?" "물론, 정신적으로 아무리 빛나고 있다해도 유기체의 특성인 목적에 따른 행동이 없다면 죽지도 못하는 그 영혼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 따르겠나? 그에겐 쾌락도 없고 공포도 없지.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는 어떤 뚜렷한 목적하에 존재해야 된다는거야. 예를 들어, 빛나는 지식을 가진 과학자의 두뇌를 이 컴퓨터에 복제한다면 인류에게 아주 도움이 되겠지." 그날 박사와 작별하고 공장으로 돌아가면서 한사장은 머릿속에 어떤 망상과도 같은 이무기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차창으로 보이는 거대하고 웅장한 그의 공장을 지켜보면서 한사장은 갑자기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결국 한사장은 그 복제와 더불어 또 하나의 자신의 기발한 계획을 제안했다. 그것은 박사도 감탄할 정도로 치밀하고 사업가다운 발상이었다. 한사장은 자신이 복제된 유비쿼터스 뉴런컴을 통해 커피랜드 공장을 완벽하게 자신이 통제하고 회사 경영도 이끌어 간다는 것이었다. 그가 세부 내용까지 계획을 설명해가자 박사는 그의 계획에 충분한 가능성을 시사하면서도 그의 무모한 짓을 만류하는 입장이었다. "미리 말해 두지만, 만일 이것이 성공하더라도 훗날 어떤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이 생기거나 또한 자네 아들이 합당한 이유를 들어 유비커터스 뉴런컴의 해체를 원할 경우 난 그것을 행할 걸세. 그것은 자네 영혼을 괴롭히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지." 한사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좋네." 하고 동의했다. 며칠 후, 그의 복제된 의식이 살아났을 때 그는 엄청난 공허감을 이기지 못해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박사는 그의 감정파를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제어했다. 일단은 성공이었다. 박사와 음성장치를통해 전과 같이 얘기를 주고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손자 한국남은 새로운 할아버지 모습에 너무 놀란 나머지 한동안 밀실엔 얼씬거리지도 못했으며, 박사가 그간의 경위를 충분히 설명했지만 그가 할아버지라는 것을 받아들이는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뭏든 그 후 17여년 동안 그의 계획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져 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자신을 대하는 손자의 태도가 달라져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사건건 손자와 의견 대립이 생겼고, 최근 적우단과의 계약은 그들의 갈등을 더욱 심화 시켰던 것이다.그리고 급기야는 오늘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의 영혼은 짙은 어둠 속에서 밑도 끝도 없는 공허감을 느꼈다. 그는 공장 맨 꼭대기에 설치된 망원렌즈를 통해 수많은 별들이 명멸하는 우주를 바라보았다.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는 깊은 영혼의 한숨을 쉬었다. 그의 건조한 의식 속에 삭혀지지 않는 분노가 타올랐다. 그로부터 5일 후 녹색빛으로 번들거리는 비행기 한대가 공장에 도착했다. 비행기의 몸체에는 적우단을 상징하는 거대한 붉은 날개가 새겨져 있었다. 세명으로 구성된 시찰단은 공장의 플랫폼에서 내부로 통하는 고속 모노레일을 타고 한국남과 칠성전자의 임원들이 대기하고 있는 3층 홀로 들어왔다.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저희 공장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공장이 아주 휼륭하군요. 소문에 여기가 최고의 무인자동화 공장이라고 하던데, 과연 듣던 바 그대로군요." "별 말씀을." 그들은 공장의 어마어마한 규모와 로보트들의 일사불란한 작업에 정신이 팔린 듯, 한국남의 설명에는 아랑곳 없이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정말, 굉장하군요 ! 마치 웅장한 오케스트라 같습니다." 싸늘한 쇳덩어리들은 마치 그 속에 영혼이라도 담겨 있는 듯, 극도의 절제된 동작과 섬세한 놀림으로 자동이송기 위에 재료를 깍고 연마하며, 각 라인마다 우뚝 서 있는 작업감시 로보트는 사람의 눈과 같이 생긴 여러개의 인공렌즈를 통해 자기 라인에 설치된 제조 로보트들의 동작을 철저히 감시하고 통제하고 있었다. "이곳은 다른 공장에서는 불가능한 전천후 작업시스템이 로보트들에 의해 수행되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로보트들은 자기의 고유 반복작업 이외에도 모두 하자발견기능이 있어 자기에게 주어진 재료에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흠이 있으면 바로 반송시켜 버립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책임감이란 것이 입력되어 자기 선까지 온 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거죠. 이것은 우주의 악조건에서 견뎌야 하는 커피의 결함을 거의 제로로 줄입니다." 한국남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그들의 얼굴에서 만족 그 이상의 빛으로 흐르는 것을 보며,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에 안도 했다. 더구나 시찰단장은 그에게 광자엔진의 추가납품계약의 뜻마저 넌지시 비춰왔다. 무인공장시찰이 30분 정도 지나고, 일행이 다른 작업장으로 가려고 걸음을 옮길 때였다. 갑자기 공장 내부를 환하게 비추던 조명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이내 꺼려 버리고, 칠흙 같은 어둠 속에 일행은 갇혀 버렸다. "걱정 마십시요 ! 곧 다시 밝아질 겁니다. " 한국남은 그들을 안심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들의 불만은 이내 터져나오고 기계들의 굉음이 점점 거칠어 가자, 그들은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한국남은 불길한 망령이 어둠 속에 부유하는 것을 느꼈다. 이런, 기어코 ! 그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삼켰다. 갑자기 옆에서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시퍼런 빛들이 사방에서 몰려왔다. 그것은 마치 흡혈귀의 독이 오른 안광 같았다. 어둠의 싸늘한 팔이 그들을 뒤흔드는 것이 보였다. 규칙적으로 울리는 금속성의 소음은 처절한 비명과 어우러져 더욱 소름끼치도록 했다. 기계들은 자신들의 비정한 속성을 무시무시한 치차음(齒車音)으로 노정시키며, 그들에게 주어진 특별 재료를 요리했다. 사자가 지휘하는 죽음의 교향곡이 절정을 지나자, 주위가 눈부시게 밝아 왔다. 한국남은 눈에 먹이를 먹고 채 입도 닦지 않은 처절한 광경이 들어왔다. "당신들은 지금 모두 공장을 떠나시오 !" 한국남은 자신의 임원들에게 명령했다. 그들은 산산조각이 난 세 구의 시체를 보고 하얗게 질려 아무 말없이 도망치듯 뒷걸음질쳤다. 혼자 남게 된 한국남의 눈에서 형언할 수 없는분노의 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몸을 돌려 비상통로로 나왔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비상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엘리베이터에 탄 그는 무엇인가 망설이듯 인디케이터사인 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하4층을 눌렀다. 지하 4층에는 재고품의 창고가 있는 곳이었다.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전사들의 개인화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거기에서 두 자루의 광선총을 포장을 뜯고 끄집어냈다. 그리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17층으로 올라갔다. 이상하게도 밀실의 문은 열려져 있었다. 그는 뱀처럼 번들거리는 두 자루의 광선총을 캡슐의 유령을 향해 쳐들었다. 방아쇠를 당기자 펑 하면서 캡슈이 터졌다. 한국남은 그 안의 모든 것이 완전히 녹아 흘러내릴 때까지 방아쇠를 놓지 않았다. 공장의 유령이 사라져 버린 다음날 공장에 혼자 남아 있는 한국남은 깊은 시름에 빠져 있었다. 이 커피랜드 공장에서 살해된 시찰단장을 비롯한 세명의 적우단원에 대한 문제였다. 여러가지 모면할 방법을 궁리 했으나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들이 타고 온 비행기의 송수신기에 계속 적우단의 붉은 소행성에서 보내는 발신음이 울렸다. 그는 그 송수신기를 부숴버렸다. 그리고 우주선을 공장의 지하창고에 일단 숨겨 놓았다. 그러나, 한국남은 파견된 시찰단이 이곳에서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이 곧 그들에 의해 발각될 것이고 격분한 적우단이 이 공장을 공중분해 시키려고 이곳으로 올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그들과의 사업은 제쳐두고라도 이와같은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은 할아버지의 망령을 저주했다. 한국남이 9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복잡한 심정으로 실내를 왔다 갔다할 무렵 갑자기 아래의 무인공장에서 공장 전체를 쩡쩡 울리는 금속성 소음이 들려왔다. 그 소리는 틀림없이 공장의 로보트들이 가동되고 있는 소리였다. 한국남은 사무실 좌측 벽의 작업감시 스크린에 스위치를 넣었다. 공장 전층의 작업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모든 로보트들이 엄청나게 큰 무언가를 일제히 만들어 가고 있었다. 이럴수가 ! 자신이 어제 녹여버린 텔레코즘센터가 다시 살아났단 말인가? 할아버지의 망령이 다시? 한국남은 어제의 일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으나 알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눈 앞에서 텔레코즘센터가 사라져 버리자 통제실로 내려와 수동으로 모든 조업을 중단 시켰었다. 그는 일단 통제실로 내려갔다. 수동제어기는 어제 그대로 조업중지로 조작이 돼 있었다. 그는 컴퓨터의 프로그램을 살폈다. 조작이 끝나자 스크린에 작업지시사항이 나타났다. 그것은 놀랍게도 2년 전에 일시 생산한 적이 있던 K-7 행성간 미사일의 작업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스크린에 나타난 작업지시일자를 보니 그저께, 그러니까 정확하게 사고가 일어나기 전날 밤 자정에 모든 로보트들에게 명령이 하달됐던 것이다. 시행일자는 물론 바로 오늘 이 시각이었다. 끝으로 수정불가란 단어가 붉은 빛으로 깜박이고 있었다. 한국남은 아버지의 망령이 아직도 살아 떠도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텔레코즘센터의 마지막 명령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그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머리가 복잡해졌다. K-7 행성간 미사일은 화성식민지공화국의 특별주문으로 아홉 대만 한정생산해서 극비리에 납품한 적이 있었다. 이 미사일 두 대면 웬만한 행성 하나는 가루를 낼 수 있는 가공할 병기였다. 한국남은 짚이는게 있어 로보트들의 작업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작업장의 입구는 이미 두터운 문으로 봉쇄돼 있었다. 다른 모든 작업장도 마찬가지 였다. 그는 태양광발전기가 있는 15층으로 전원을 차단하기 위해 올라갔으나 역시 용이주도하게 봉쇄돼 있었다. 그는 어쩔수 없이 사무실의 스크린을 통해 그들의 행동만을 지켜봤다. 가동 시작 세 시간이 조금 넘자 그들은 미사일의 각부분을 조립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자동제어장치가 로보트들에 의해 미사일에 부착 되었다. 완벽하게 조립된 미사일은 고속레일을 타고 1층의 우주 플랫폼으로 이송되고 있었다. 이 무렵 황우성 박사는 그의 새로운 연구 주제인 유비쿼터스 뉴런컴의 3차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난 것에 대해 안도하면서 연구실 문을 나와 투명한 벽으로 둘러처지고 주위에는 각종 식물들이 자라나는 휴게실로 들어갔다. 청정한 공기가 코 끝을 간지럽혔다. 그가 그곳에 있는 널찍한 안락의자에 깊숙히 앉아 오늘 자신이 행한 실험을 재음미하고 있을 때였다. 하늘에서 갑자기 노란 섬광이 쏟아져 내려왔다. 마치 초신성(超新星)의 폭발과도 같은 주홍색 불꽃이 피는 것을 그는 보았다. 그리고 그곳의 위치를 가늠하면서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잘 가거라, 붉은 소행성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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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커피 중독」(소설) <A name="[문서의 처음]"></A> #Begin... 2020년대, 지구의 기상변화로 커피의 품귀현상이 발생했다. 이것은 세계의 대혼란을 가져왔으며, 여러 과학자들과 커피 전문가들은 커피를 다시 새롭게 재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년 후…. 한국에서 한 커피 전문가가 자신이 개발한 기술로 현대식의 온실을 만들었고, 그것을 이용한 커피 재배가 특허를 받고 현지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존의 커피와는 달랐으며, 세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말았다…. 그리고 세계에서도 한국형 커피는 수입금지 품목이 되어 매니아들 사이에서만 통용되게 되었다. #1 2035년, 한국. 새로운 문제가 한국을 들이닥쳤다. 바로, '커피 중독증'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 이것은 예전부터 사회에 만연해오던 담배 중독, 인터넷 중독, 알콜 중독 등과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로 국민들에게 다가오게 되었다. 이 사람들은 하루에 3L 이상의 커피를 마시고 있으며, 마시지 않으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커피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 심지어는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죽고 말 것이라는 강박관념이 그들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현대 과학자들은 치료법을 밝혀내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한 과학자는 1주일동안 커피와 환자를 분리해놓는 실험을 했으나, 결과는 치명적 이었다. 고쳐지기는 커녕, 환자의 사회성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고, 요실금이 나타났다. 그리고 환자에게 다시 커피를 복용하자, 3일 만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 밖의 실험도 실시되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그 전에 문제가 된 이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겠다. 약 5년 전, 한국에서 커피가 대량 재배되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세계의 커피를 독점하려는 욕심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시도되기는 하였으나, 여러 악조건으로 실패했던 국내 커피 재배! 드디어 이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커피 전문가인 이원형씨는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기술로 특허를 받고,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러나 이 한국형 커피는 당시 너무나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 탓으로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그리고 3년 뒤, 이원형씨의 새로운 기술로 저가 커피를 재배하는 데에 성공했으며, 대한민국 곳곳에 보급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몇 개월 만에, 이 커피는 '중독'이라는 부작용을 가져온 것이다. 이 한국형 커피의 중독현상은 다른 커피 중독과는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꼭 마약처럼, 먹으면 그 순간의 기분이 매우 좋아진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중독을 일으킨 주범이 아닐까? 그리고 마음이 편해져서 밤에도 잠이 잘 온다는 것이다. 분명 여타의 커피와는 다른 것이 틀림없다. 불안하고 예민하며, 잘 흥분하고, 소변량이 증가, 소화불량 등의 증상은 다른 것과 비슷하다. 문제는 '여타의 커피 중독'은 몇 일간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간단히 치료 가능하나, 이 '한국형 커피 중독'은 그렇게 함으로써 더 큰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하석만 박사는 오늘도 고민하고 있었다. 어떡하면 이 중독증을 고칠 수 있을까? 이 중독이 계속되면 몸에도 몹시 해롭고, 우울증이나 다른 심각한 증상들을 야기 시킬 가능성도 있다. 어서 빨리 해결법을 찾아야 했다. 사실 박사는 이미 '이미지 치료법'이라는 치료 방법을 개발했다. 박사가 직접 개발한 기계를 이용해서, 환자가 램 수면 상태에 이르렀을 때, 기계를 통해 커피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 즉 질병에 대한 사진이나 자료에 대한 이미지를 보내서 각인시킨 다음 환자가 커피와 대면했을 때 이미지가 떠오르게 되며 스스로 그것을 멀리 하게 되는 방법이었다. 그러다 보면 점점 커피 섭취량이 줄어 들 것이다. 그러나 실용화하기 직전에,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이 방법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한동안 커피를 끊지 않고 복용해야만 하는데ㅡ나쁜 이미지를 환자에게 효과적으로 상기시키기 위해ㅡ환자가 커피를 복용하면 기분이 좋아지므로 그 전날의 치료 내용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데에 있었다. 실제로 박사가 개발한 방법은 하루나, 몇 일만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2달간의 치료 일수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하석만 박사가 이렇듯 '커피 중독'의 치료에 매달리게 된 원인은 그의 아내에게 있었다. 박사의 아내 이미영은 심각한 커피 중독증에 걸려 있었다. 하나 뿐인 아들, 진석을 미국의 대학교로 유학 보내고, 하루 종일 연구소에서 살다시피 한 남편. 미영은 외로웠던 것 같다. 그러다가 자칭 커피 매니아인 친구로부터 커피 모임에 참가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 곳에서 시음한 한국형 커피의 맛에 흠뻑 빠졌고, 오늘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석만은 깜짝 놀랐다. 아내가 커피에 의지하고 있었다니…. 자아가 약할수록 어떤 것에 의지하게 되기 쉬운 법이다. 석만은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 이었지만, 쉽게 화를 내거나, 화장실에 들락거리는 횟수가 늘어가는 그녀를 볼 때마다 그녀를 향한 석만의 마음이 타들어갔다. 어느새 집에는 커피 박스가 몇 박스나 쌓여 있었다. 이 연구를 시작한 지도 5개월이 지났다. 아내는 이미 커피를 손에서 못 뗄 정도가 되어 있었다. 아내를 생각하니 그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는 지금 ○○연구소 제 5 연구실에 있었다. "박사님, 왠 한숨입니까?" 그의 조수인 이창훈 이었다. 그는 작년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들어가는 대신 이 연구소에 취직해, 정식으로 석만의 조수가 되었다. "아내를 생각했네." "걱정 마십시오! 사모님은 꼭 나으실 테니까요." 창훈이 이 연구에 가담한지도 어언 3개월이다. 그는 원래 대학원 입학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나, 석만의 사정을 듣고 그의 연구에 적극 동참하게 되었다. 이 듬직한 젊은이에게 그는 늘 고마운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고맙네. 나도 그럴 거라 믿어. 그런데… 의외로 저 기계를 실용화시킬 대안이 진전되지 않아서 말이지…." 석만은 힐끗 구석에 위치한 기계를 보더니,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그러게 말이에요…." 그 뒤 두 사람 사이에는 미묘한 침묵만이 가득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날 밤, 창훈이 돌아가고 나서도 석만은 연구실을 뜰 수가 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집에 돌아갈 수 없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왠지 오늘밤은 아내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아내에게 커피 중독을 고쳐주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도 그랬다. "내가 커피 중독 이라구요?" "그래. 꽤 심각해. 요즘 너에게 나타나는 증상들 대부분이 중독 현상 때문에 나타나는 거야." 진지한 분위기의 석만이 무색해질 정도로 미영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난 늘 그랬어요. 당신 오늘 술이라도 한 거예요? 이상한 말을 다 하는군요." 아내의 태도에 석만은 어이가 없어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것 역시 커피중독증 환자의 증상 중 하나였다.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할 수 없고, 지극히 정상이라고 믿는 것. 행여 라도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몸이 안 좋아졌다고 생각하고 커피를 더 많이 먹게 되는 것이었다. 그 뒤로 석만은 아내 앞에서 그와 비슷한 이야기는 일절 꺼내지 않았다. 그나저나 언제 저 기계를 사용해 볼 수 있는 걸까…. 이것은 그의 굉장한 야심작에 틀림없었다. 성공한다면 그의 아내를 고칠 수 있는 것은 물론,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을 터였다. 그 부분에서는 매우 자신감을 갖고 있다. 개발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계를 구상한 뒤에는 자연스레 재료나 구조를 생각하며 막힘없이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바로 직전에 장애물에 걸린 것이다. 마치 기세 좋은 달리기 주자가 1등으로 달리다가 도착점 바로 앞에서 발이 꼬여 넘어져 버리는 것처럼. 이 기계를 제대로 작동하는 날이 오기는 하는 걸까. 쓸데없는 걸 만든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석만의 눈이 감겨 왔다. 그래, 내일 생각하자. 한 숨 자고 나면 묘안이 생각나게 될 지도 모른다. 이윽고 그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2 "박사님, 박사님!!" 누군가가 석만을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무거운 눈을 밀어 올리자, 눈앞에 창훈의 얼굴이 보였다. "아, 박사님! 드디어 깨어나셨군요! 박사님께 보고할 중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뭔가?" 그의 반짝거리는 눈과 신나 보이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석만의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알아냈습니다!! 박사님의 기계를 사용할 방법을, 알아냈다구요!" 지금 석만과 창훈은 연구실의 테이블에 마주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다. 창훈은 뜨거운 차를 후후 불어 한 모금 들이마시고 석만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아까의 흥분은 조금 가라앉은 상태였다. "음…. 우선, 우리의 문제는 한국형 커피를 먹으면 기분이 좋아져서 이미지를 잊게 된다ㅡ 이런 거였죠. 그렇다면,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은 한국형 커피를 마시면 나타나는 흥분을 억제하는 방법이 없을까ㅡ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아무리 성분을 조사해도 여타의 커피와 다른 점은 전혀 나오지 않았죠." "그렇지. 그것이 우리를 좌절하게 만들었지." 그렇다. 석만과 창훈이 한국형 커피에 대해 아무리 조사해도 다른 점이라곤 커녕 여타의 커피들과 똑같았던 것이다. "네. 그런데 제가 어젯밤에 콜라를 마시다가 모르고 그것을 실험하던 한국형 커피에 쏟아 버렸습니다. 버릴까 생각하다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 넘겨버렸죠. 그리고 오늘 아침에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연구실로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표본을 만들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았더니ㅡ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거죠!" 창훈의 말투와 표정에서 그가 느꼈을 흥분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 했다. "거기에는 새로운 성분이 있었어요! 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콜라 속의 성분과 반응해서 나타난 거죠! 아시겠습니까? 카페인은 흥분제 역할도 합니다. 그러나 카페인보다 더 효과가 있는 물질이 있었던 겁니다! 이것은 알려진 바가 없기에, 우선 저는 '뉴카페인'이라는 이름을 붙이겠습니다. 아무튼, 이 뉴카페인이 콜라 속에 들어있는 탄산가스, 색소와 반응하여 저의 눈에 현미경을 통해 나타나게 된 것이죠." "뉴카페인이라……. 굉장하군, 대단한 성과야! 그럼 그것을 색출해내면 기분이 좋아지는 현상이 사라지겠군?" 창훈의 눈이 번득였다. "그렇죠! 제 말이 그 말 입니다! 저흰 이제 성공한 겁니다!" 석만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창훈을 따라 현미경을 보고나서야, 조금씩 실감이 나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를 누르고 있던 아내에 대한 죄책감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 뒤의 연구는 순조로웠다. 미리 개발해 둔 기계는 잘 작동했으며, 이제 환자에게 이미지 치료를 시행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계가 사회에 등장하기 전의 첫 번째 환자는 그의 아내, 미영이 되었다. "그럼 당장 사모님을 부르도록 하죠!" "그러도록 하지. 그런데…, 이 치료를 2달 정도 계속해야 할 텐데, 그 동안 아내에게 뭐라고 해야 하지? 아내는 자신이 중독증에 걸렸다는 것도 전혀 모르고 있네." "음…. 아! 이런 건 어떨까요? 사모님도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는 건 알고 계실 테니, 그 증상이 나쁜 병이라는 말을 해서 치료를 계속 받게 하는 거죠. 새로 개발 된 방법이라면서." 괜찮은 방법이었다. 미영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건강에 민감해져 있을 테니ㅡ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한국형 커피를 먹으면 건강이 좋아진다고 믿는다는 것이다ㅡ분명 치료를 받을 것이 틀림없다. 바로 미영에게 전화를 걸어 연구실로 오게 했다. 도착하자마자 미영은 가방에서 물통에 가득 담긴 커피를 꺼내 컵에 따라 마사기 시작했다. 이제 치료를 하면 곧 아내의 그런 모습이 없어질 거라 생각하자 석만은 괜히 마음이 두근두근 거렸다. 테이블에 미영, 창훈, 석만 세 사람이 앉았다. 그 앞에는 창훈이 준비한 차가 놓여져 있었다. 미영은 차 쪽은 보지도 않고 커피를 마시느라 바빴지만. "여보……. 사실 당신은 지금 병에 걸려 있어." 석만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요즘…. 이상한 증상들이 나타나고 있지 않아? 불안하거나, 예민하고 소변이 많아지고 소화도 잘 안되고…. 그런 것들." "네, 사모님. 잘 생각해 보세요." 옆에서 창훈이 거들었다. "확실히 그런 게 있긴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거죠? 그냥 피곤해서일 거예요." 석만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확실히 병이야. 그것도 심각한. 난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어." "정…말인가요? 내가 병이라구요?" 미영이 믿기 시작했다. 석만은 속으로 승리의 브이를 그렸다. 여보, 이게 다 당신을 위한거야. "그래. 하지만 걱정하지마. 아마 내가 당신을 고칠 수 있을 거야. 그 병을 고치기 위해 이미 연구실에 기계를 들여 놓았어." "잠깐, 아직 실감이 안 나는 군요. 기계까지라니…. 믿을 수가 없군요. 내가 대체 무슨 병이죠?" 아뿔싸, 생각해 놓지 않았다. 석만은 창훈 쪽을 보며 도움의 눈길을 보냈다. "아, 사모님! 그 병은 요즘 새로 나타난 희귀병으로, 아직 이름은 정해져 있지 않은, 이름 없는 병이에요. 그래서 사모님이 보통의 병원보다는 저희 연구소에서 집중적인 치료를 받으시기를 부탁드리는 거예요. 아, 그래도 저 기계의 효과는 믿을 수 있답니다. 이미 몇 명이 저 기계로 치료 받고 완치 되었거든요." 역시 이 녀석은 둘러대기의 달인이다. 석만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군요. 음…. 저 기계로 치료 받아서 완치될 수 있는 거라면…. 여보, 부디 치료해 주세요!" "그래. 잘 생각했어. 당신을 고치도록 죽을힘을 다 해 볼게." 치료는 순조로웠다. 미영의 허락을 받아내고, 미영이 자는 동안 이미지 치료를 시행했다. 그 동안 창훈은 커피 속의 뉴카페인을 색출해냈다. 미영은 치료가 끝나고 일어나면 바로 커피ㅡ뉴카페인이 제거된ㅡ를 마셨다. 일주일이 지나자 치료의 효과가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박사님! 성공입니다! 사모님의 하루 커피 섭취량이 1.5L정도로 줄었어요!" "정말인가? 이것 참 대단하군! 자네, 정말 잘해주었네. 이게 다 자네 덕분이야." "아닙니다, 박사님. 다 박사님의 공로이지요. 이제 완치될 때까지 잘해보자구요!" 석만은 뿌듯했다. 자신의 발명품이 성공적으로 사람을 치료해 가고 있는 것이다. 미영이 고쳐지는 것도 이제 꿈만은 아닐 것이다. 미영이 완치되면 이 기계를 사회에 발표하는 것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석만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3 "꺄악!" 달콤한 잠에 빠져있던 석만은 갑자기 들려온 고음의 비명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 날도 역시 연구실에서 미영의 치료를 끝내고 새벽에 돌아온 후였다. 이미 뜨거운 태양이 상공에 걸려 있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다. "왜 그래?" 거실로 나가자 미영이 부엌 바닥에 앉아 있었다. 이마가 땀에 흥건히 젖어있었다. "아, 여보…." 석만을 보자마자 미영이 매달려 왔다. 석만은 어리둥절 했지만 잠자코 그녀를 안아 지탱해 주었다. "이상해. 깜짝 놀랐어…. 자다가 목이 말라서 일어났더니…. 커피를 마시려고 하는데 커피 속에 이상한 손이 보이잖아. 너무 놀랐어……." 미영은 혼비백산한 모습으로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았다. "커피 속에 손이 있었다고? 잠결에 잘못 본 거겠지. 그럴 리가 없잖아." "응…. 그런 가봐. 내가 너무 정신이 없었던 것 같아. 나 이제 씻을게." 미영은 석만에게서 떨어져서 욕실로 향했다. 석만은 어딘가 모르게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부엌 식탁위에 커피가 든 컵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치료도 이제 한 달가량에 접어들었다. 창훈의 보조와 함께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으나, 요즘 들어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창훈의 보고로 인해 더 확실해졌다. "박사님…. 이상합니다. 한 달이 지났는데 섭취량이 1L 이하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사모님은 계속커피를 드시고 계세요." "음…. 이것이 침체기가 온 게 아니겠는가. 한 달만 더 계속하면 집사람의 커피 섭취가 완전히 줄어들 거야." "네…. 그건 그렇겠지만 말이죠…." 이상한 일은 그날 밤에 또 일어났다. 집에 돌아와서 침대에 누워 쉬고 있는 석만의 귀에, 또 다시 미영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무슨 일이야?!" 침실을 뛰쳐나간 석만의 눈에, 전과 같은 모습으로 주저앉아 있는 미영의 모습이 비쳐졌다. 심지어 머리를 감싸 쥐고 온 몸이 와들와들 떨리고 있는 상태였다. "여…, 여보…. 역시 내가 이상한 것 같아요! 이번엔 커피 속에 눈알이 동동 떠 있었다구요!! 날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어요…. 무서워요, 무서워…." 손과 눈알이라니…. 재빨리 컵 안을 살펴보았지만 짙은 색의 커피가 담겨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 이건 환각증세가 아닌가?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석만은 몸을 숙여 떨고 있는 미영을 안아주며 머릿속으로는 온갖 의문과 부딪치고 있었다. 치료는 잘 되어가고 있는 게 아니었단 말인가! 이것은 무슨 일이란 말인가! 다음 날, 성만은 바로 연구실로 향했다. 어젯 밤에 아침 일찍 연구실로 오도록 창훈을 호출해 놓았다. 예상대로, 창훈은 이미 연구실에 도착해 있었다. "교수님, 무슨 일입니까? 부작용이라니….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창훈은 경악하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발명한 기계를 이용한 치료로 미영이 나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큰 착각이었다. 미영은 환각 증세에 빠졌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2번이나 반복되었다. 우연이 아니라는 징조다. "집사람이…. 환각 증상에 빠졌어." 창훈의 눈이 휘둥그레 지며,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커졌다. "환각이라고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환각이 일어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어떤 증상입니까? 어떻게 나타난 것입니까?" "커피야. 커피를 보고…. 그 속에 손이 있다거나, 눈알이 떠다니고 있다고 말했네. 커피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다 보니 그게 실제로 보이게 된 게 아닌가 싶네…." 그것이 어젯밤 그가 낸 결론이었다. 잠재의식 속에 각인된 부정적 이미지가 미영의 눈 앞에 나타나서 현실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그럼….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는 좌절한 듯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며 석만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치료를……. 중단해야겠지…." "박사님…. 분합니다! 전…. 너무 분합니다! 이제 다 성공할 거였는데! 여기서 그만둬야 한다니…. 전 너무 분합니다……. 박사님……. 분해요…." 창훈이 울부짖었다. 어느새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제일 분한 사람은 석만 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연구실 안은 창훈의 울음소리만이 가득했다……. #4 치료를 중단했으나, 환각 증세는 한동안 계속됐다. 그 동안 미영은 커피 속에서 핏덩어리를 봤다느니, 입술이나 귀가 있었느니 하는 것을 석만에게 토로했다. 그 때마다 석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다독이고,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치료를 시행했던 기간인 한 달이 지나자 미영의 환각 증세는 잦아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커피는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다. 분명 커피 중독은 확실히 치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달라졌다. 말 수도 줄어들고, 생기도 잃었으며, 외출도 줄어들어 하루 종일 집에서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걱정이 된 석만은 아내의 친구를 몇몇 불러보긴 했지만, 나아진 건 없었다. 예전의 아름답던 아내는 없어져 버렸다. 그로 인해 석만은 더 큰 죄책감에 빠져, 무력감에 젖어 있었다. 그러던 중, 진석이 한국에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집에 잠깐 놀러 온다는 것이었다. 석만은 지금까지도 진석에게 미영에 대한 얘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아들이 걱정으로 외지에서 힘들어 할까봐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그가 오면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그때 얘기하자, 석만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당일, 진석의 비행기 시간에 맞춰 석만과 미영은 집을 나섰다. 미영은 여전히 얼굴이 파리했으며 석만은 수염이 수북하게 자랐고 주름이 늘어 예전보다 훨씬 더 나이 들어 보였다. 아마 그것은 미영에 대한 죄책감에 따른 스트레스가 원인 이었으리라. 플랫폼을 나오면서 부모를 발견한 진석은 깜짝 놀랐다. 그의 부모는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단순히 나이가 든 것만이 아니라, 내면 속의 더 심오한 무언가가 달라진 듯한…. 자신의 부모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진석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엄마! 잘 지내셨어요? 아빠는 제가 없는 동안 왜 이렇게 늙으신 거예요?" 진석은 자신의 그런 생각을 부모가 눈치 채지 않도록 일부러 밝게 행동했다. 그럴수록 더 잘 알게 되었다. 부모의 태도는 똑같았지만, 중요한 뭔가가 달랐다. 나중에 기회를 봐서 물어봐야 겠다고 생각하며 진석은 부모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진석아, 미안하구나. 엄마가 피곤해서 쉬어야 할 것 같다…. 니가 오자마자 이래서 미안하다." "아니에요, 엄마. 들어가서 쉬세요." 미영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지친 듯한 얼굴로 침실로 들어갔다. 석만은 거실의 소파에 기대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 이 동네는 얼마나 변했으려나~" 그렇게 말하며 베란다로 나가서 창밖을 바라보던 진석은 이윽고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베란다 구석에 처음 보는 박스가 여러 개 쌓여있었다. "아빠! 이 박스 왠 거예요?" <A name="[문서의 처음]"></A> #Begin... 2020년대, 지구의 기상변화로 커피의 품귀현상이 발생했다. 이것은 세계의 대혼란을 가져왔으며, 여러 과학자들과 커피 전문가들은 커피를 다시 새롭게 재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년 후…. 한국에서 한 커피 전문가가 자신이 개발한 기술로 현대식의 온실을 만들었고, 그것을 이용한 커피 재배가 특허를 받고 현지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존의 커피와는 달랐으며, 세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말았다…. 그리고 세계에서도 한국형 커피는 수입금지 품목이 되어 매니아들 사이에서만 통용되게 되었다. #1 2035년, 한국. 새로운 문제가 한국을 들이닥쳤다. 바로, '커피 중독증'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 이것은 예전부터 사회에 만연해오던 담배 중독, 인터넷 중독, 알콜 중독 등과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로 국민들에게 다가오게 되었다. 이 사람들은 하루에 3L 이상의 커피를 마시고 있으며, 마시지 않으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커피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 심지어는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죽고 말 것이라는 강박관념이 그들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현대 과학자들은 치료법을 밝혀내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한 과학자는 1주일동안 커피와 환자를 분리해놓는 실험을 했으나, 결과는 치명적 이었다. 고쳐지기는 커녕, 환자의 사회성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고, 요실금이 나타났다. 그리고 환자에게 다시 커피를 복용하자, 3일 만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 밖의 실험도 실시되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그 전에 문제가 된 이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겠다. 약 5년 전, 한국에서 커피가 대량 재배되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세계의 커피를 독점하려는 욕심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시도되기는 하였으나, 여러 악조건으로 실패했던 국내 커피 재배! 드디어 이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커피 전문가인 이원형씨는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기술로 특허를 받고,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러나 이 한국형 커피는 당시 너무나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 탓으로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그리고 3년 뒤, 이원형씨의 새로운 기술로 저가 커피를 재배하는 데에 성공했으며, 대한민국 곳곳에 보급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몇 개월 만에, 이 커피는 '중독'이라는 부작용을 가져온 것이다. 이 한국형 커피의 중독현상은 다른 커피 중독과는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꼭 마약처럼, 먹으면 그 순간의 기분이 매우 좋아진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중독을 일으킨 주범이 아닐까? 그리고 마음이 편해져서 밤에도 잠이 잘 온다는 것이다. 분명 여타의 커피와는 다른 것이 틀림없다. 불안하고 예민하며, 잘 흥분하고, 소변량이 증가, 소화불량 등의 증상은 다른 것과 비슷하다. 문제는 '여타의 커피 중독'은 몇 일간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간단히 치료 가능하나, 이 '한국형 커피 중독'은 그렇게 함으로써 더 큰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하석만 박사는 오늘도 고민하고 있었다. 어떡하면 이 중독증을 고칠 수 있을까? 이 중독이 계속되면 몸에도 몹시 해롭고, 우울증이나 다른 심각한 증상들을 야기 시킬 가능성도 있다. 어서 빨리 해결법을 찾아야 했다. 사실 박사는 이미 '이미지 치료법'이라는 치료 방법을 개발했다. 박사가 직접 개발한 기계를 이용해서, 환자가 램 수면 상태에 이르렀을 때, 기계를 통해 커피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 즉 질병에 대한 사진이나 자료에 대한 이미지를 보내서 각인시킨 다음 환자가 커피와 대면했을 때 이미지가 떠오르게 되며 스스로 그것을 멀리 하게 되는 방법이었다. 그러다 보면 점점 커피 섭취량이 줄어 들 것이다. 그러나 실용화하기 직전에,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이 방법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한동안 커피를 끊지 않고 복용해야만 하는데ㅡ나쁜 이미지를 환자에게 효과적으로 상기시키기 위해ㅡ환자가 커피를 복용하면 기분이 좋아지므로 그 전날의 치료 내용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데에 있었다. 실제로 박사가 개발한 방법은 하루나, 몇 일만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2달간의 치료 일수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하석만 박사가 이렇듯 '커피 중독'의 치료에 매달리게 된 원인은 그의 아내에게 있었다. 박사의 아내 이미영은 심각한 커피 중독증에 걸려 있었다. 하나 뿐인 아들, 진석을 미국의 대학교로 유학 보내고, 하루 종일 연구소에서 살다시피 한 남편. 미영은 외로웠던 것 같다. 그러다가 자칭 커피 매니아인 친구로부터 커피 모임에 참가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 곳에서 시음한 한국형 커피의 맛에 흠뻑 빠졌고, 오늘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석만은 깜짝 놀랐다. 아내가 커피에 의지하고 있었다니…. 자아가 약할수록 어떤 것에 의지하게 되기 쉬운 법이다. 석만은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 이었지만, 쉽게 화를 내거나, 화장실에 들락거리는 횟수가 늘어가는 그녀를 볼 때마다 그녀를 향한 석만의 마음이 타들어갔다. 어느새 집에는 커피 박스가 몇 박스나 쌓여 있었다. 이 연구를 시작한 지도 5개월이 지났다. 아내는 이미 커피를 손에서 못 뗄 정도가 되어 있었다. 아내를 생각하니 그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는 지금 ○○연구소 제 5 연구실에 있었다. "박사님, 왠 한숨입니까?" 그의 조수인 이창훈 이었다. 그는 작년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들어가는 대신 이 연구소에 취직해, 정식으로 석만의 조수가 되었다. "아내를 생각했네." "걱정 마십시오! 사모님은 꼭 나으실 테니까요." 창훈이 이 연구에 가담한지도 어언 3개월이다. 그는 원래 대학원 입학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나, 석만의 사정을 듣고 그의 연구에 적극 동참하게 되었다. 이 듬직한 젊은이에게 그는 늘 고마운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고맙네. 나도 그럴 거라 믿어. 그런데… 의외로 저 기계를 실용화시킬 대안이 진전되지 않아서 말이지…." 석만은 힐끗 구석에 위치한 기계를 보더니,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그러게 말이에요…." 그 뒤 두 사람 사이에는 미묘한 침묵만이 가득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날 밤, 창훈이 돌아가고 나서도 석만은 연구실을 뜰 수가 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집에 돌아갈 수 없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왠지 오늘밤은 아내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아내에게 커피 중독을 고쳐주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도 그랬다. "내가 커피 중독 이라구요?" "그래. 꽤 심각해. 요즘 너에게 나타나는 증상들 대부분이 중독 현상 때문에 나타나는 거야." 진지한 분위기의 석만이 무색해질 정도로 미영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난 늘 그랬어요. 당신 오늘 술이라도 한 거예요? 이상한 말을 다 하는군요." 아내의 태도에 석만은 어이가 없어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것 역시 커피중독증 환자의 증상 중 하나였다.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할 수 없고, 지극히 정상이라고 믿는 것. 행여 라도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몸이 안 좋아졌다고 생각하고 커피를 더 많이 먹게 되는 것이었다. 그 뒤로 석만은 아내 앞에서 그와 비슷한 이야기는 일절 꺼내지 않았다. 그나저나 언제 저 기계를 사용해 볼 수 있는 걸까…. 이것은 그의 굉장한 야심작에 틀림없었다. 성공한다면 그의 아내를 고칠 수 있는 것은 물론,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을 터였다. 그 부분에서는 매우 자신감을 갖고 있다. 개발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계를 구상한 뒤에는 자연스레 재료나 구조를 생각하며 막힘없이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바로 직전에 장애물에 걸린 것이다. 마치 기세 좋은 달리기 주자가 1등으로 달리다가 도착점 바로 앞에서 발이 꼬여 넘어져 버리는 것처럼. 이 기계를 제대로 작동하는 날이 오기는 하는 걸까. 쓸데없는 걸 만든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석만의 눈이 감겨 왔다. 그래, 내일 생각하자. 한 숨 자고 나면 묘안이 생각나게 될 지도 모른다. 이윽고 그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2 "박사님, 박사님!!" 누군가가 석만을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무거운 눈을 밀어 올리자, 눈앞에 창훈의 얼굴이 보였다. "아, 박사님! 드디어 깨어나셨군요! 박사님께 보고할 중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뭔가?" 그의 반짝거리는 눈과 신나 보이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석만의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알아냈습니다!! 박사님의 기계를 사용할 방법을, 알아냈다구요!" 지금 석만과 창훈은 연구실의 테이블에 마주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다. 창훈은 뜨거운 차를 후후 불어 한 모금 들이마시고 석만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아까의 흥분은 조금 가라앉은 상태였다. "음…. 우선, 우리의 문제는 한국형 커피를 먹으면 기분이 좋아져서 이미지를 잊게 된다ㅡ 이런 거였죠. 그렇다면,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은 한국형 커피를 마시면 나타나는 흥분을 억제하는 방법이 없을까ㅡ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아무리 성분을 조사해도 여타의 커피와 다른 점은 전혀 나오지 않았죠." "그렇지. 그것이 우리를 좌절하게 만들었지." 그렇다. 석만과 창훈이 한국형 커피에 대해 아무리 조사해도 다른 점이라곤 커녕 여타의 커피들과 똑같았던 것이다. "네. 그런데 제가 어젯밤에 콜라를 마시다가 모르고 그것을 실험하던 한국형 커피에 쏟아 버렸습니다. 버릴까 생각하다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 넘겨버렸죠. 그리고 오늘 아침에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연구실로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표본을 만들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았더니ㅡ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거죠!" 창훈의 말투와 표정에서 그가 느꼈을 흥분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 했다. "거기에는 새로운 성분이 있었어요! 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콜라 속의 성분과 반응해서 나타난 거죠! 아시겠습니까? 카페인은 흥분제 역할도 합니다. 그러나 카페인보다 더 효과가 있는 물질이 있었던 겁니다! 이것은 알려진 바가 없기에, 우선 저는 '뉴카페인'이라는 이름을 붙이겠습니다. 아무튼, 이 뉴카페인이 콜라 속에 들어있는 탄산가스, 색소와 반응하여 저의 눈에 현미경을 통해 나타나게 된 것이죠." "뉴카페인이라……. 굉장하군, 대단한 성과야! 그럼 그것을 색출해내면 기분이 좋아지는 현상이 사라지겠군?" 창훈의 눈이 번득였다. "그렇죠! 제 말이 그 말 입니다! 저흰 이제 성공한 겁니다!" 석만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창훈을 따라 현미경을 보고나서야, 조금씩 실감이 나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를 누르고 있던 아내에 대한 죄책감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 뒤의 연구는 순조로웠다. 미리 개발해 둔 기계는 잘 작동했으며, 이제 환자에게 이미지 치료를 시행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계가 사회에 등장하기 전의 첫 번째 환자는 그의 아내, 미영이 되었다. "그럼 당장 사모님을 부르도록 하죠!" "그러도록 하지. 그런데…, 이 치료를 2달 정도 계속해야 할 텐데, 그 동안 아내에게 뭐라고 해야 하지? 아내는 자신이 중독증에 걸렸다는 것도 전혀 모르고 있네." "음…. 아! 이런 건 어떨까요? 사모님도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는 건 알고 계실 테니, 그 증상이 나쁜 병이라는 말을 해서 치료를 계속 받게 하는 거죠. 새로 개발 된 방법이라면서." 괜찮은 방법이었다. 미영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건강에 민감해져 있을 테니ㅡ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한국형 커피를 먹으면 건강이 좋아진다고 믿는다는 것이다ㅡ분명 치료를 받을 것이 틀림없다. 바로 미영에게 전화를 걸어 연구실로 오게 했다. 도착하자마자 미영은 가방에서 물통에 가득 담긴 커피를 꺼내 컵에 따라 마사기 시작했다. 이제 치료를 하면 곧 아내의 그런 모습이 없어질 거라 생각하자 석만은 괜히 마음이 두근두근 거렸다. 테이블에 미영, 창훈, 석만 세 사람이 앉았다. 그 앞에는 창훈이 준비한 차가 놓여져 있었다. 미영은 차 쪽은 보지도 않고 커피를 마시느라 바빴지만. "여보……. 사실 당신은 지금 병에 걸려 있어." 석만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요즘…. 이상한 증상들이 나타나고 있지 않아? 불안하거나, 예민하고 소변이 많아지고 소화도 잘 안되고…. 그런 것들." "네, 사모님. 잘 생각해 보세요." 옆에서 창훈이 거들었다. "확실히 그런 게 있긴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거죠? 그냥 피곤해서일 거예요." 석만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확실히 병이야. 그것도 심각한. 난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어." "정…말인가요? 내가 병이라구요?" 미영이 믿기 시작했다. 석만은 속으로 승리의 브이를 그렸다. 여보, 이게 다 당신을 위한거야. "그래. 하지만 걱정하지마. 아마 내가 당신을 고칠 수 있을 거야. 그 병을 고치기 위해 이미 연구실에 기계를 들여 놓았어." "잠깐, 아직 실감이 안 나는 군요. 기계까지라니…. 믿을 수가 없군요. 내가 대체 무슨 병이죠?" 아뿔싸, 생각해 놓지 않았다. 석만은 창훈 쪽을 보며 도움의 눈길을 보냈다. "아, 사모님! 그 병은 요즘 새로 나타난 희귀병으로, 아직 이름은 정해져 있지 않은, 이름 없는 병이에요. 그래서 사모님이 보통의 병원보다는 저희 연구소에서 집중적인 치료를 받으시기를 부탁드리는 거예요. 아, 그래도 저 기계의 효과는 믿을 수 있답니다. 이미 몇 명이 저 기계로 치료 받고 완치 되었거든요." 역시 이 녀석은 둘러대기의 달인이다. 석만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군요. 음…. 저 기계로 치료 받아서 완치될 수 있는 거라면…. 여보, 부디 치료해 주세요!" "그래. 잘 생각했어. 당신을 고치도록 죽을힘을 다 해 볼게." 치료는 순조로웠다. 미영의 허락을 받아내고, 미영이 자는 동안 이미지 치료를 시행했다. 그 동안 창훈은 커피 속의 뉴카페인을 색출해냈다. 미영은 치료가 끝나고 일어나면 바로 커피ㅡ뉴카페인이 제거된ㅡ를 마셨다. 일주일이 지나자 치료의 효과가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박사님! 성공입니다! 사모님의 하루 커피 섭취량이 1.5L정도로 줄었어요!" "정말인가? 이것 참 대단하군! 자네, 정말 잘해주었네. 이게 다 자네 덕분이야." "아닙니다, 박사님. 다 박사님의 공로이지요. 이제 완치될 때까지 잘해보자구요!" 석만은 뿌듯했다. 자신의 발명품이 성공적으로 사람을 치료해 가고 있는 것이다. 미영이 고쳐지는 것도 이제 꿈만은 아닐 것이다. 미영이 완치되면 이 기계를 사회에 발표하는 것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석만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3 "꺄악!" 달콤한 잠에 빠져있던 석만은 갑자기 들려온 고음의 비명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 날도 역시 연구실에서 미영의 치료를 끝내고 새벽에 돌아온 후였다. 이미 뜨거운 태양이 상공에 걸려 있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다. "왜 그래?" 거실로 나가자 미영이 부엌 바닥에 앉아 있었다. 이마가 땀에 흥건히 젖어있었다. "아, 여보…." 석만을 보자마자 미영이 매달려 왔다. 석만은 어리둥절 했지만 잠자코 그녀를 안아 지탱해 주었다. "이상해. 깜짝 놀랐어…. 자다가 목이 말라서 일어났더니…. 커피를 마시려고 하는데 커피 속에 이상한 손이 보이잖아. 너무 놀랐어……." 미영은 혼비백산한 모습으로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았다. "커피 속에 손이 있었다고? 잠결에 잘못 본 거겠지. 그럴 리가 없잖아." "응…. 그런 가봐. 내가 너무 정신이 없었던 것 같아. 나 이제 씻을게." 미영은 석만에게서 떨어져서 욕실로 향했다. 석만은 어딘가 모르게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부엌 식탁위에 커피가 든 컵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치료도 이제 한 달가량에 접어들었다. 창훈의 보조와 함께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으나, 요즘 들어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창훈의 보고로 인해 더 확실해졌다. "박사님…. 이상합니다. 한 달이 지났는데 섭취량이 1L 이하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사모님은 계속커피를 드시고 계세요." "음…. 이것이 침체기가 온 게 아니겠는가. 한 달만 더 계속하면 집사람의 커피 섭취가 완전히 줄어들 거야." "네…. 그건 그렇겠지만 말이죠…." 이상한 일은 그날 밤에 또 일어났다. 집에 돌아와서 침대에 누워 쉬고 있는 석만의 귀에, 또 다시 미영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무슨 일이야?!" 침실을 뛰쳐나간 석만의 눈에, 전과 같은 모습으로 주저앉아 있는 미영의 모습이 비쳐졌다. 심지어 머리를 감싸 쥐고 온 몸이 와들와들 떨리고 있는 상태였다. "여…, 여보…. 역시 내가 이상한 것 같아요! 이번엔 커피 속에 눈알이 동동 떠 있었다구요!! 날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어요…. 무서워요, 무서워…." 손과 눈알이라니…. 재빨리 컵 안을 살펴보았지만 짙은 색의 커피가 담겨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 이건 환각증세가 아닌가?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석만은 몸을 숙여 떨고 있는 미영을 안아주며 머릿속으로는 온갖 의문과 부딪치고 있었다. 치료는 잘 되어가고 있는 게 아니었단 말인가! 이것은 무슨 일이란 말인가! 다음 날, 성만은 바로 연구실로 향했다. 어젯 밤에 아침 일찍 연구실로 오도록 창훈을 호출해 놓았다. 예상대로, 창훈은 이미 연구실에 도착해 있었다. "교수님, 무슨 일입니까? 부작용이라니….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창훈은 경악하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발명한 기계를 이용한 치료로 미영이 나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큰 착각이었다. 미영은 환각 증세에 빠졌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2번이나 반복되었다. 우연이 아니라는 징조다. "집사람이…. 환각 증상에 빠졌어." 창훈의 눈이 휘둥그레 지며,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커졌다. "환각이라고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환각이 일어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어떤 증상입니까? 어떻게 나타난 것입니까?" "커피야. 커피를 보고…. 그 속에 손이 있다거나, 눈알이 떠다니고 있다고 말했네. 커피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다 보니 그게 실제로 보이게 된 게 아닌가 싶네…." 그것이 어젯밤 그가 낸 결론이었다. 잠재의식 속에 각인된 부정적 이미지가 미영의 눈 앞에 나타나서 현실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그럼….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는 좌절한 듯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며 석만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치료를……. 중단해야겠지…." "박사님…. 분합니다! 전…. 너무 분합니다! 이제 다 성공할 거였는데! 여기서 그만둬야 한다니…. 전 너무 분합니다……. 박사님……. 분해요…." 창훈이 울부짖었다. 어느새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제일 분한 사람은 석만 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연구실 안은 창훈의 울음소리만이 가득했다……. #4 치료를 중단했으나, 환각 증세는 한동안 계속됐다. 그 동안 미영은 커피 속에서 핏덩어리를 봤다느니, 입술이나 귀가 있었느니 하는 것을 석만에게 토로했다. 그 때마다 석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다독이고,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치료를 시행했던 기간인 한 달이 지나자 미영의 환각 증세는 잦아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커피는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다. 분명 커피 중독은 확실히 치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달라졌다. 말 수도 줄어들고, 생기도 잃었으며, 외출도 줄어들어 하루 종일 집에서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걱정이 된 석만은 아내의 친구를 몇몇 불러보긴 했지만, 나아진 건 없었다. 예전의 아름답던 아내는 없어져 버렸다. 그로 인해 석만은 더 큰 죄책감에 빠져, 무력감에 젖어 있었다. 그러던 중, 진석이 한국에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집에 잠깐 놀러 온다는 것이었다. 석만은 지금까지도 진석에게 미영에 대한 얘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아들이 걱정으로 외지에서 힘들어 할까봐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그가 오면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그때 얘기하자, 석만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당일, 진석의 비행기 시간에 맞춰 석만과 미영은 집을 나섰다. 미영은 여전히 얼굴이 파리했으며 석만은 수염이 수북하게 자랐고 주름이 늘어 예전보다 훨씬 더 나이 들어 보였다. 아마 그것은 미영에 대한 죄책감에 따른 스트레스가 원인 이었으리라. 플랫폼을 나오면서 부모를 발견한 진석은 깜짝 놀랐다. 그의 부모는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단순히 나이가 든 것만이 아니라, 내면 속의 더 심오한 무언가가 달라진 듯한…. 자신의 부모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진석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엄마! 잘 지내셨어요? 아빠는 제가 없는 동안 왜 이렇게 늙으신 거예요?" 진석은 자신의 그런 생각을 부모가 눈치 채지 않도록 일부러 밝게 행동했다. 그럴수록 더 잘 알게 되었다. 부모의 태도는 똑같았지만, 중요한 뭔가가 달랐다. 나중에 기회를 봐서 물어봐야 겠다고 생각하며 진석은 부모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진석아, 미안하구나. 엄마가 피곤해서 쉬어야 할 것 같다…. 니가 오자마자 이래서 미안하다." "아니에요, 엄마. 들어가서 쉬세요." 미영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지친 듯한 얼굴로 침실로 들어갔다. 석만은 거실의 소파에 기대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 이 동네는 얼마나 변했으려나~" 그렇게 말하며 베란다로 나가서 창밖을 바라보던 진석은 이윽고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베란다 구석에 처음 보는 박스가 여러 개 쌓여있었다. "아빠! 이 박스 왠 거예요?" <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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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사랑에 빠지게 하는 커피  옛날에 어떤 왕이 조그만 왕국을 통치하고 있었다. 이 나라는 너무너무 조그마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 말고는 따로 할 일이 별로 없었다. 사람들은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일터로 갔다. 일을 하다가 점심을 먹고 다시 나머지 일을 했다.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강한 햇빛을 피해 나무 그늘에서 아주 잠깐 낮잠을 자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녁밥을 먹을 때까지 일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저녁밥을 먹고 나면 해가 져서 컴컴했고, 사람들은 그 때서야 일을 멈추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역시 즐길 일이 없어서 거울 속 자기 모습만 우두커니 보다가 잠자리에 들고는 했다. 조그만 왕국의 사람들은 대체로 행복했다. 일을 해서 먹고 살 수 있었고, 자기 몸을 뉘일 집도 있었다. 삶은 매우 단순했고, 사람들은 만족스러워했다. 번 돈을 쓸 곳도 없었기에 재산도 모을 수 있었고, 삶이 조금 지루하다 싶을 때에는 자기 자신에게 선물을 하면서 즐거워하곤 했다. 만약 이 왕국에 조금 덜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왕 그 자신이었다. 물론 행복한 백성들이 있었기에 왕도 행복했다. 왕도 백성들처럼 일을 했고, 자신의 손에 의해 밭에서 자라나는 작물들을 보면서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행복한 왕국의 행복한 왕에게도 사소한 고민이 있었으니, 이 왕국의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단순한 생활 속에서 백성들은 자기 자신에게 너무 만족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자신의 기쁨을 누구와도 나누려하지 않았다. 누구도 사랑에 빠지지 않았고, 누구와도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를 낳으려 하지도 않았다. 사랑에 빠질 만한 어리석은 사람이 없다면 왕국은 곧 사라져버릴 판이었다. 흔들리는 촛불을 켜두고 거울로 자신을 바라보면서 매일 밤 왕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사랑에 빠질 수 있게 할까. 왕의 고민을 덜기 위해, 코끝이 빨간 한 신하가 묘안을 냈다. 백성들에게 와인을 마시게 하면 됩니다. 술은 분별력과 경계를 흐리고, 사람들이 쉽게 사랑에 빠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왕은 밭일을 하면서 모아두었던 돈의 삼분지 일을 떼어내어 각국의 유명한 와인을 사왔다. 그리고 하루 일과를 마친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코끝이 빨간 신하의 말마따나, 백성들은 와인을 마시고 서로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나서 사람들은 새로 생긴 술집에 들러 돈 없이도 와인을 얻어 마실 수 있었다. 흔들리는 와인을 앞에 두고 술잔이 오갔고, 사람들은 술을 마시며 처음으로 상대방의 존재 때문에 웃을 수 있었다. 밤마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탄생했고, 왕 또한 와인을 마시면서 기뻐했다. 와인은 사랑을 불러왔고, 이 사랑은 왕국을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왕은 웃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와인을 마시고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술을 마실 때에는 서로를 열렬히 사랑했다. 하지만 술에서 깨어나면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자신이 사랑에 빠졌었다는 사실도,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이 누구인지도 다 잊어버렸다. 아침이 되면 망각과 말다툼과 미움이 일어났고, 하루도 채 가지 못하는 사랑은 매일 밤 일어났다 스러지기를 무수히 반복할 뿐이었다. 왕은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렇게 덧없는 사랑으로는 왕국을 유지할 수 없어. 거울로 자신의 빨개진 코끝을 보며 왕은 다시 조금 불행해졌다. 왕의 근심을 해결하기 위해, 화려한 옷을 입은 한 신하가 묘안을 냈다. 백성들이 향수를 뿌리게 하면 됩니다. 향수는 상대방의 존재를 환기시키고 상대방에게 매력을 부여합니다. 왕은 모아둔 돈의 삼분지 일을 또 떼어내 외국산 비싼 향수를 사왔다. 그리고 왕궁 앞 분수에 향수병들을 늘어놓고 백성들이 마음껏 향수를 쓸 수 있게 했다. 화려한 옷을 입은 신하의 말처럼, 백성들은 향수를 뿌리고 서로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다. 우연히 만난 타인의 향기에 이끌려 사랑을 고백하고 청혼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많은 결혼식이 열렸고, 왕 또한 백성들의 무수한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기뻐했다. 향수는 사랑을 불러왔고, 이 사랑은 왕국을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왕은 웃었다. 하지만 곧 문제가 생겼다. 향수를 뿌리고 결혼한 사람들은 곧 그 향기를 잊어버리거나 상대방의 향수에 질리기 시작했다. 결혼한 사람들의 향기가 다른 경우에 그 향기들은 서로 섞여 어울리지 못했고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고약한 냄새와 언쟁을 만들어냈다. 향기가 같은 경우에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향수에 너무 빨리 익숙해져서 그 향기를 망각했고, 상대방의 존재가 사라졌다고 생각하자마자 실망을 느끼고 헤어졌다. 이렇게 질리는 사랑은 사람들에게 필요 없어. 향수를 뿌렸던 화려한 옷을 벗어버리며 왕은 거울로 자신의 슬픈 얼굴을 바라보았다. 왕의 슬픔을 덜기 위해 한 농부가 찾아왔다. 이제는 사라지고 전설로만 남아있는 커피를 마시면 됩니다. 커피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상대방에게서 이야기를 이끌어냅니다. 단어들이 오가면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그리고 상대방에 대해 알게 됩니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몇 백 년 전 커피가 온 세상을 지배했을 때에 사람들은 너무 이야기를 많이 했고 너무 사랑에 자주 빠졌었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너무 행복했던 나머지 일을 하지 않았다. 넘쳐나는 커피 찌꺼기와 줄어드는 곡식 생산량에 결국 온 세상의 왕들은 커피를 없앴고 커피나무를 모두 불살라 버렸다. 하지만 농부는 아무도 모르는 첩첩산중 한 구석에 커피나무를 몰래 심어두고 키워오고 있었다. 이제 이 커피나무라면 사람들에게 사랑을 다시 불러올 수 있을 것이었다. 왕은 모아두었던 재산의 나머지를 털어, 농부에게서 커피나무를 샀고 자신의 밭에 직접 심었다. 커피를 길러내어 하얀 꽃도 피우고 빨간 커피콩을 길러냈다. 수확한 커피콩은 왕이 직접 구웠고, 갈색으로 잘 로스팅 된 원두를 조심스럽게 갈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물을 먹은 원두가 부풀어 오르듯 천천히 뜸을 들이는 사랑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핸드드립을 가르쳐주었다. 상대방을 보자마자 그 첫눈에 자신의 일생을 거는 열정적 사랑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에스프레소를 가르쳐주었다. 빨리 시작하고 빨리 끝내고 금방 다시 시작할 가벼운 사랑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인스턴트커피를, 한 사람만 바라보면서 감정의 한 방울이 떨어지길 오랫동안 바라는 사랑을 위해서는 더치커피를 가르쳐주었다. 사람들은 함께 커피를 만들며, 커피와 함께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누며 사랑에 빠졌다. 상대방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하는 와인이나 상대방의 존재만을 알아차리게 하는 향수와는 달리 커피는 상대방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이끌어냈다. 뜨거운 물을 부어도 추출될 때까지 기다려야하는 커피처럼 그들의 마음은 망설임을 기다려야했지만 그만큼 맛도 깊었고 여운도 오래 남았다. 커피는 마시는 법뿐만 아니라 커피를 만드는 법부터 배워야했다.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만큼, 그 사랑은 잊힐 수 없었고 질릴 수도 없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커피를 따라주며 왕은 행복해했다. 커피는 사랑을 불러왔고, 이 사랑은 왕국을 행복하게 할 것이라고 왕은 맞은편에 앉아있는 사랑하는 이에게 말했다. 다만 문제가 또 발생했다. 원두찌꺼기처럼 남는 사랑의 찌꺼기의 처분이 문제였다. 매일매일 산더미처럼 커피 찌꺼기들이 쌓였다. 사랑이 결실을 맺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행복한 결말로 끝나지 않은 사랑이 더 많았다. 함께 마시던 사랑을 떠나보낸 사람들은 집 안에 쌓여가는 원두 찌꺼기를 어떻게 하지 못한 채, 그 향을 맡으며 그 촉감을 느끼며 지나간 사랑을 떠올렸고 눈물을 흘렸다. 아무런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제 커피 찌꺼기는 모든 사람의 집에 산더미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왕도 자신의 궁전에 산처럼 쌓여있는 원두 찌꺼기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해결책을 발견해야한다고 느꼈다. 그리움과 슬픔에 빠져있던 왕은 고심한 끝에, 사랑하며 만들어냈던 원두 찌꺼기를 커피나무를 키우는 데에 쓰기로 했다. 사랑이 한 번 지나가고 남은 감정들은 까맣게 남아 지워지지 않는 향기를 풍기지만, 다른 새로운 사랑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는 있었다. 대신 옛 커피의 찌꺼기에서 새로운 사랑이 싹터도 예전 사랑은 완전히 잊히지 않고 커피를 마실 때마다 그 옛사랑의 아픔이 가끔씩 올라올 터였다. 하지만 사랑이 없는 것보다는 나았고 쉽게 흩어지거나 망각되는 사랑보다는 가치가 있다고 왕은 사라진 자신의 사랑에게 말했다. 왕은 비록 커피 때문에 자신의 전 재산을 날렸고 커피와 사랑을 주었던 이도 결국 떠나버렸지만 백성들의 행복도 얻었고 자신의 사랑도 발견했다. 그 사랑은 영원히 지속될 수도 있었고 자신에게서 떠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이 홀로 남겨 진다해도 왕은 커피를 마시며 그 사랑을 추억할 수 있을 터였다. 상대방의 눈에서 자신을 볼 수 있었기에 더 이상 거울을 볼 필요가 없었던 왕은 보이지 않는 이에게 찻잔처럼 방그란 미소를 띄웠다. 
- 2008-09-15 20:14:52
익명

사랑에 빠지게 하는 커피  옛날에 어떤 왕이 조그만 왕국을 통치하고 있었다. 이 나라는 너무너무 조그마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 말고는 따로 할 일이 별로 없었다. 사람들은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일터로 갔다. 일을 하다가 점심을 먹고 다시 나머지 일을 했다.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강한 햇빛을 피해 나무 그늘에서 아주 잠깐 낮잠을 자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녁밥을 먹을 때까지 일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저녁밥을 먹고 나면 해가 져서 컴컴했고, 사람들은 그 때서야 일을 멈추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역시 즐길 일이 없어서 거울 속 자기 모습만 우두커니 보다가 잠자리에 들고는 했다. 조그만 왕국의 사람들은 대체로 행복했다. 일을 해서 먹고 살 수 있었고, 자기 몸을 뉘일 집도 있었다. 삶은 매우 단순했고, 사람들은 만족스러워했다. 번 돈을 쓸 곳도 없었기에 재산도 모을 수 있었고, 삶이 조금 지루하다 싶을 때에는 자기 자신에게 선물을 하면서 즐거워하곤 했다. 만약 이 왕국에 조금 덜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왕 그 자신이었다. 물론 행복한 백성들이 있었기에 왕도 행복했다. 왕도 백성들처럼 일을 했고, 자신의 손에 의해 밭에서 자라나는 작물들을 보면서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행복한 왕국의 행복한 왕에게도 사소한 고민이 있었으니, 이 왕국의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단순한 생활 속에서 백성들은 자기 자신에게 너무 만족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자신의 기쁨을 누구와도 나누려하지 않았다. 누구도 사랑에 빠지지 않았고, 누구와도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를 낳으려 하지도 않았다. 사랑에 빠질 만한 어리석은 사람이 없다면 왕국은 곧 사라져버릴 판이었다. 흔들리는 촛불을 켜두고 거울로 자신을 바라보면서 매일 밤 왕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사랑에 빠질 수 있게 할까. 왕의 고민을 덜기 위해, 코끝이 빨간 한 신하가 묘안을 냈다. 백성들에게 와인을 마시게 하면 됩니다. 술은 분별력과 경계를 흐리고, 사람들이 쉽게 사랑에 빠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왕은 밭일을 하면서 모아두었던 돈의 삼분지 일을 떼어내어 각국의 유명한 와인을 사왔다. 그리고 하루 일과를 마친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코끝이 빨간 신하의 말마따나, 백성들은 와인을 마시고 서로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나서 사람들은 새로 생긴 술집에 들러 돈 없이도 와인을 얻어 마실 수 있었다. 흔들리는 와인을 앞에 두고 술잔이 오갔고, 사람들은 술을 마시며 처음으로 상대방의 존재 때문에 웃을 수 있었다. 밤마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탄생했고, 왕 또한 와인을 마시면서 기뻐했다. 와인은 사랑을 불러왔고, 이 사랑은 왕국을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왕은 웃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와인을 마시고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술을 마실 때에는 서로를 열렬히 사랑했다. 하지만 술에서 깨어나면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자신이 사랑에 빠졌었다는 사실도,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이 누구인지도 다 잊어버렸다. 아침이 되면 망각과 말다툼과 미움이 일어났고, 하루도 채 가지 못하는 사랑은 매일 밤 일어났다 스러지기를 무수히 반복할 뿐이었다. 왕은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렇게 덧없는 사랑으로는 왕국을 유지할 수 없어. 거울로 자신의 빨개진 코끝을 보며 왕은 다시 조금 불행해졌다. 왕의 근심을 해결하기 위해, 화려한 옷을 입은 한 신하가 묘안을 냈다. 백성들이 향수를 뿌리게 하면 됩니다. 향수는 상대방의 존재를 환기시키고 상대방에게 매력을 부여합니다. 왕은 모아둔 돈의 삼분지 일을 또 떼어내 외국산 비싼 향수를 사왔다. 그리고 왕궁 앞 분수에 향수병들을 늘어놓고 백성들이 마음껏 향수를 쓸 수 있게 했다. 화려한 옷을 입은 신하의 말처럼, 백성들은 향수를 뿌리고 서로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다. 우연히 만난 타인의 향기에 이끌려 사랑을 고백하고 청혼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많은 결혼식이 열렸고, 왕 또한 백성들의 무수한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기뻐했다. 향수는 사랑을 불러왔고, 이 사랑은 왕국을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왕은 웃었다. 하지만 곧 문제가 생겼다. 향수를 뿌리고 결혼한 사람들은 곧 그 향기를 잊어버리거나 상대방의 향수에 질리기 시작했다. 결혼한 사람들의 향기가 다른 경우에 그 향기들은 서로 섞여 어울리지 못했고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고약한 냄새와 언쟁을 만들어냈다. 향기가 같은 경우에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향수에 너무 빨리 익숙해져서 그 향기를 망각했고, 상대방의 존재가 사라졌다고 생각하자마자 실망을 느끼고 헤어졌다. 이렇게 질리는 사랑은 사람들에게 필요 없어. 향수를 뿌렸던 화려한 옷을 벗어버리며 왕은 거울로 자신의 슬픈 얼굴을 바라보았다. 왕의 슬픔을 덜기 위해 한 농부가 찾아왔다. 이제는 사라지고 전설로만 남아있는 커피를 마시면 됩니다. 커피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상대방에게서 이야기를 이끌어냅니다. 단어들이 오가면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그리고 상대방에 대해 알게 됩니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몇 백 년 전 커피가 온 세상을 지배했을 때에 사람들은 너무 이야기를 많이 했고 너무 사랑에 자주 빠졌었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너무 행복했던 나머지 일을 하지 않았다. 넘쳐나는 커피 찌꺼기와 줄어드는 곡식 생산량에 결국 온 세상의 왕들은 커피를 없앴고 커피나무를 모두 불살라 버렸다. 하지만 농부는 아무도 모르는 첩첩산중 한 구석에 커피나무를 몰래 심어두고 키워오고 있었다. 이제 이 커피나무라면 사람들에게 사랑을 다시 불러올 수 있을 것이었다. 왕은 모아두었던 재산의 나머지를 털어, 농부에게서 커피나무를 샀고 자신의 밭에 직접 심었다. 커피를 길러내어 하얀 꽃도 피우고 빨간 커피콩을 길러냈다. 수확한 커피콩은 왕이 직접 구웠고, 갈색으로 잘 로스팅 된 원두를 조심스럽게 갈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물을 먹은 원두가 부풀어 오르듯 천천히 뜸을 들이는 사랑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핸드드립을 가르쳐주었다. 상대방을 보자마자 그 첫눈에 자신의 일생을 거는 열정적 사랑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에스프레소를 가르쳐주었다. 빨리 시작하고 빨리 끝내고 금방 다시 시작할 가벼운 사랑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인스턴트커피를, 한 사람만 바라보면서 감정의 한 방울이 떨어지길 오랫동안 바라는 사랑을 위해서는 더치커피를 가르쳐주었다. 사람들은 함께 커피를 만들며, 커피와 함께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누며 사랑에 빠졌다. 상대방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하는 와인이나 상대방의 존재만을 알아차리게 하는 향수와는 달리 커피는 상대방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이끌어냈다. 뜨거운 물을 부어도 추출될 때까지 기다려야하는 커피처럼 그들의 마음은 망설임을 기다려야했지만 그만큼 맛도 깊었고 여운도 오래 남았다. 커피는 마시는 법뿐만 아니라 커피를 만드는 법부터 배워야했다.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만큼, 그 사랑은 잊힐 수 없었고 질릴 수도 없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커피를 따라주며 왕은 행복해했다. 커피는 사랑을 불러왔고, 이 사랑은 왕국을 행복하게 할 것이라고 왕은 맞은편에 앉아있는 사랑하는 이에게 말했다. 다만 문제가 또 발생했다. 원두찌꺼기처럼 남는 사랑의 찌꺼기의 처분이 문제였다. 매일매일 산더미처럼 커피 찌꺼기들이 쌓였다. 사랑이 결실을 맺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행복한 결말로 끝나지 않은 사랑이 더 많았다. 함께 마시던 사랑을 떠나보낸 사람들은 집 안에 쌓여가는 원두 찌꺼기를 어떻게 하지 못한 채, 그 향을 맡으며 그 촉감을 느끼며 지나간 사랑을 떠올렸고 눈물을 흘렸다. 아무런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제 커피 찌꺼기는 모든 사람의 집에 산더미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왕도 자신의 궁전에 산처럼 쌓여있는 원두 찌꺼기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해결책을 발견해야한다고 느꼈다. 그리움과 슬픔에 빠져있던 왕은 고심한 끝에, 사랑하며 만들어냈던 원두 찌꺼기를 커피나무를 키우는 데에 쓰기로 했다. 사랑이 한 번 지나가고 남은 감정들은 까맣게 남아 지워지지 않는 향기를 풍기지만, 다른 새로운 사랑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는 있었다. 대신 옛 커피의 찌꺼기에서 새로운 사랑이 싹터도 예전 사랑은 완전히 잊히지 않고 커피를 마실 때마다 그 옛사랑의 아픔이 가끔씩 올라올 터였다. 하지만 사랑이 없는 것보다는 나았고 쉽게 흩어지거나 망각되는 사랑보다는 가치가 있다고 왕은 사라진 자신의 사랑에게 말했다. 왕은 비록 커피 때문에 자신의 전 재산을 날렸고 커피와 사랑을 주었던 이도 결국 떠나버렸지만 백성들의 행복도 얻었고 자신의 사랑도 발견했다. 그 사랑은 영원히 지속될 수도 있었고 자신에게서 떠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이 홀로 남겨 진다해도 왕은 커피를 마시며 그 사랑을 추억할 수 있을 터였다. 상대방의 눈에서 자신을 볼 수 있었기에 더 이상 거울을 볼 필요가 없었던 왕은 보이지 않는 이에게 찻잔처럼 방그란 미소를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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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광장누리집(대표)

소설가 이순원과 함께하는 ‘커피 무한상상 글쓰기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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