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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글 공모> "내생에 가장 기분좋았던 나눔은 ?"

  • 작성일 2009-04-01
  • 조회수 6,159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나눔추진단 문학나눔사무국에 인세로 나눔 후원을 실천하는 도서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은 일_Y브릭로드] 출간을 기념, 인터넷문학도시 문장(www.munjang.or.kr) 회원 여러분들을 대상으로 열리는 특별 이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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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07건

  • 익명

    2007 여름, 이토록 뜨거웠던 순간<br/><!--StartFragment--><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HCI Poppy; mso-hansi-font-family: HCI Poppy; mso-fareast-font-family: 휴먼명조"></SPAN> </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HCI Poppy; mso-hansi-font-family: HCI Poppy; mso-fareast-font-family: 휴먼명조"></SPAN> </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HCI Poppy; mso-hansi-font-family: HCI Poppy; mso-fareast-font-family: 휴먼명조"><FONT face=wooriDotum>“안녕? 난초야 ” </FONT></SPAN></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HCI Poppy; mso-hansi-font-family: HCI Poppy; mso-fareast-font-family: 휴먼명조"><FONT face=wooriDotum>“흐아! ” </FONT></SPAN></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HCI Poppy; mso-hansi-font-family: HCI Poppy; mso-fareast-font-family: 휴먼명조"><FONT face=wooriDotum></FONT></SPAN> </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left"><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HCI Poppy; mso-hansi-font-family: HCI Poppy; mso-fareast-font-family: 휴먼명조"><FONT face=wooriDotum>우리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FONT></SPAN></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left"><FONT face=wooriDotum><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HCI Poppy; mso-hansi-font-family: HCI Poppy; mso-fareast-font-family: 휴먼명조">2007년 중 가장 무덥던 여름, 나는 서울 시립 어린이병원에 봉사활동을 간 것이다. 이곳은 중증 장애를 갖고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이 주로 생활하는 곳이다. 내가 맡게 된 아이는 안면 희귀병을 앓고 있는 난초라는 아이였다. 아이는 뽀로로를 가장 좋아했는데 처음 나를 보고는 무서워서 계속 피하기 시작했다. 나는 하루에 두 세 번 씩 눈을 맞추는 일명 ‘얼굴 맞대기 놀이’를 계속 해줬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난초는 이제는 제법 나에게 와서 얼굴을 들이대기도 했다. </SPAN></FONT></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left"><FONT face=wooriDotum><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HCI Poppy; mso-hansi-font-family: HCI Poppy; mso-fareast-font-family: 휴먼명조"></SPAN></FONT> </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left"><FONT face=wooriDotum><SPAN lang=EN-US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HCI Poppy; mso-hansi-font-family: HCI Poppy; mso-fareast-font-family: 휴먼명조">나는 난초에게 쎄쎄쎄와 박수치기를 가르쳐주었다. 처음 난초 손에 내 손을 치자 때리는 것으로 오해한 난초는 또 다시 “으아아!!!”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이내 내가 하는 것을 자기도 보고 곧바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다섯 번 연속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의 리듬을 난초에게 알려주고 두 번째로 “계수나무 한 나무~ 하얀 쪽배에~”도 알려주었다.</SPAN><SPAN lang=EN-US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11pt; FONT-FAMILY: HCI Poppy; mso-hansi-font-family: HCI Poppy; mso-fareast-font-family: 휴먼명조"> </SPAN><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휴먼명조; mso-ascii-font-family: HCI Poppy; mso-hansi-font-family: HCI Poppy">난초는 생각보다 똑똑했다. 간호사분들은 난초가 그저 식탐만 강한 고집불통이라고 혼냈지만 그런 난초의 모습 뒤에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본 것이다. </SPAN></FONT></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left"><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휴먼명조; mso-ascii-font-family: HCI Poppy; mso-hansi-font-family: HCI Poppy"><FONT face=wooriDotum></FONT></SPAN> </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left"><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휴먼명조; mso-ascii-font-family: HCI Poppy; mso-hansi-font-family: HCI Poppy"><FONT face=wooriDotum>이어서 난초의 눈높이에 맞춰 내가 개발한 놀이를 통해 나는 아이와 점점 친해질 수 있었다. 그것은 ‘만세놀이’였다. 이 만세 놀이는 내가 개발한 것인데, 내가 만세를 하고 있으면 저기 맨 끝에서 난초가 달려와 나에게 안기는 놀이다. 난초는 만세놀이를 할 때만큼은 누구보다도 빨랐다. 달려와 안기는 속도는 거의 빛의 속도요, 뛰어오는 모습은 거의 환희 그 자체였다. 난초가 어떤 경계심 없이 무조건적으로 내게 자신을 맡기는 유일한 순간이기도 했다. 월요일마다 51병동에 있는 모든 아가들은 목욕을 한다. 목욕을 시키던 중 재밌는 일이 있었다. 잠깐 발을 헛디뎌서 두 손을 위로 올리고 넘어질 뻔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난초는 ‘만세 놀이’를 청하는 줄 알고 비누거품이 묻은 채로 나에게 안겨 옷이 다 젖었던 적이 있었다. (난초는 여전히 빵빵한 배를 두들기며 아무렇지 않게 뽀로로를 시청하며 즐거워했지만…) </FONT></SPAN></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left"><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휴먼명조; mso-ascii-font-family: HCI Poppy; mso-hansi-font-family: HCI Poppy"><FONT face=wooriDotum></FONT></SPAN> </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left"><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휴먼명조; mso-ascii-font-family: HCI Poppy; mso-hansi-font-family: HCI Poppy"><FONT face=wooriDotum>또 어느날은, 아침부터 간호사언니가 난초를 세워놓고 혼내는 것이 보였다. 언니는 기가 차단 듯이 “아니 얘가 글쎄 코 옆에 있는 상처 딱지 큰 게 있었는데 배고프다고 떼어 먹은 거 있죠?”라고 말하며 난초를 쥐어박았다. 나는 일단 방구석으로 난초를 데려갔다. 난초는 이미 눈물 투성이였고, 입에서는 빨간 피딱지 하나가 들어있었다. 간식으로 먹으려고 가져왔던 초콜릿 하나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나에게 걸려든 난초는 입안에 고이 넣어둔 딱지를 내게 주었고, 나는 달콤한 초콜릿을 주었다. 난초는 다시는 상처 딱지를 떼지 않겠다고 나와 약속했다. </FONT></SPAN></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left"><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휴먼명조; mso-ascii-font-family: HCI Poppy; mso-hansi-font-family: HCI Poppy"><FONT face=wooriDotum></FONT></SPAN> </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left"><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휴먼명조; mso-ascii-font-family: HCI Poppy; mso-hansi-font-family: HCI Poppy"><FONT face=wooriDotum>나는 ‘만세놀이는 거품목욕하고 있을 땐 하면 안 된다’, ‘치카 치카를 할 땐 언니를 발로 차선 안 된다’, ‘밥을 먹을 땐 친구 밥에 손을 넣고 빼앗아 먹으면 안 된다’, ‘뽀로로를 볼 땐 식탁에 올라가서 보면 안 된다. 화장실에 </FONT><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휴먼명조; mso-ascii-font-family: HCI Poppy; mso-hansi-font-family: HCI Poppy"><FONT face=wooriDotum>가서는 꼭 쉬야를 하고 뒤에 물을 내려야 한다’, ‘우유를 먹고 나면 입안에 넣고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꿀꺽 삼켜야한다’ 등등 몇 가지 규칙을 아이에게 알려주었다. </FONT></SPAN></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left"><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휴먼명조; mso-ascii-font-family: HCI Poppy; mso-hansi-font-family: HCI Poppy"><FONT face=wooriDotum></FONT></SPAN> </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left"><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휴먼명조; mso-ascii-font-family: HCI Poppy; mso-hansi-font-family: HCI Poppy"><FONT face=wooriDotum>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후 에도 난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정확히 한 달이 지나고, 다시 봉사활동을 하기위해 병원을 찾았다. 역시나 난초는 홀로 손으로 배를 치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난초를 와락 안으며 난초야 라고 했지만 난초는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도 2주마다 봉사활동을 갔지만 난초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지금도 난초는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두 손을 번쩍 들고 만세 놀이를 청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얼굴로 내게 달려온다. 난초와 함께 보낸 시간들은 내가 나누었던 그 어떤 시간들보다도 소중했던 나눔의 기억이 아닐까 싶다. 이것은 비단 난초에게만 나누어준 것이 아니라 나도 나눔을 받았기 때문이리라.</FONT></SPAN></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left"><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휴먼명조; mso-ascii-font-family: HCI Poppy; mso-hansi-font-family: HCI Poppy"><FONT face=wooriDotum></FONT></SPAN> </P><P class=바탕글 style="TEXT-ALIGN: left"><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휴먼명조; mso-ascii-font-family: HCI Poppy; mso-hansi-font-family: HCI Poppy"><FONT face=wooriDotum>여전히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난초를 위해 나는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련다. 난초에게 조금이나마 추억이 되었을 지난 그 시간들을 회상하며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안녕 난초야?</FONT></SPAN></P></SPAN>

    • 2009-04-10 15:20:38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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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나눔으로 만들어진 희망<br/><!--StartFragment--><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9pt">마트에서 그녀와 만났습니다. “Hello,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9pt">나의 물음에 그녀는 “필리핀”이라고 말하더니 이름은 엘리자베스이고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지갑에 들어있는 사진을 보여주며 그녀의 아이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참 외로웠나보다! 아이들을 무척 사랑하고 있구나!’</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 9pt">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던 나는 그녀에게 우리 센터의 아이들에게 영어공부를 가르쳐줄 수 있느냐고 물음에 그녀는 선뜻 대답해 주었고 전화번호만 받은 뒤 헤어졌습니다. 1년 후에 다시 그와 만났고 그녀와의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정말 재미있고 열정적으로 아이들과 지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을 좋아하는 그녀가 좋았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 날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에 그녀는 장기간 병원에 있어야 했고, 그녀를 돌보기 위해 남편과 시어머니는 농사를 포기하고 아이들을 돌보며 간호하며 지냈습니다. 두달이 넘어서야 백혈병이라는 병명이 나왔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이들과 남편과 시어머니를 위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희망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센터의 아이들이 쓴 편지를 읽어주고 또 아이들을 돌보며 그녀를 위로하였습니다. 그녀를 방공과 신문 매체에도 소개했었는데 그녀는 방송 중에 “아이들을 두고 갈 수 없으니 하나님 살려주세요!”라고 하였습니다. 목회를 하고 있는 남편과 저는 그녀와 그녀의 가족이 희망을 갖고 투병 생활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살기 위해 몸부림 치는 그녀가 마음이 아팠고 그녀와 아픔을 나누며 지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희망의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경북 영덕에 사시는 심마니 할아버지는 그녀의 방송을 보고 그녀를 불쌍히 생각하셨습니다. 그녀가 회복될 것이라고 믿는 편지와 함께 약초를 달여 보내주셨습니다. 그 약초는 ‘지치’라고 불리는 약초인데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이 약초는 중국과 북한에서는 백혈병의 특효약으로 알려진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이 약초를 손수 캐어서 달여 보내주셨고 매일 전화하시며 잘 먹냐고 확인하셨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서양의 의학만을 믿노라 하였지만 그런 할아버지의 정성과 우리의 사랑에 눈물을 흘리며 먹었습니다. 그녀를 살리기 위한 마음을 나누었던 할아버지의 정성과 우리의 사랑은 그녀를 회복하게 하였습니다. 그녀의 투병 생활로 알코올에 빠졌던 남편도 희망을 잃었던 시어머니도 열심히 나음을 믿으며 일상 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얼마전에는 나라에서 만들어준 전통 혼례식으로 새로운 삶을 살기 다짐을 하며 결혼식도 다시 했었습니다. 타국에서의 외로움을 함께 나누고 그녀의 고통과 아픔도 함께 나누며 사랑을 꽃피게 한 나눔의 시간들이 그녀가 이겨내야 할 힘을 갖게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큰 파도가 덮친다 해도 그녀와 나눈 아픔을 기억해내며 넘어가리라 다짐합니다. 내 생애 가장 소중한 나눔을 가졌던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SPAN></P>

    • 2009-04-10 15:13:27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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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안녕하세요,나는 0322입니다.<br/><P>안녕하세요. </P><P>문장의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좋은 글에 매번 감탄을 연발하는 20대 청년입니다.</P><P>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은 간절하지만 두터운 손에서 쏟아지는 자판 속 진부한 어휘들이 저를 부끄럽게 하는군요..ㅠㅠ아무쪼록 부족한 글, 허술한 글이지만 재밌게 읽어주세요^^</P><P> </P><P> '나눔'이라는 주제를 처음 접하고,  저의 머릿속을 강타한 기억들이라곤 고작 음료수 한 캔을 나눠먹었던, 과자 한 봉지를 나눠먹었던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먹을 것을 남과 나눈다는 것이 그렇게 썩 기분좋은 일은 아니었기에 솔직한 글이 나올 순 없겠단 생각이 들더군요.(ㅋㅋ) '이렇게나 내가 인색한 사람이었나'하는 한탄에 젖어 있을 때 즈음, 불현듯 책장 속 먼지덮인 앨범을 꺼내듯 조금씩, 그리고 점차 선명하게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소중하고 따뜻했던.. 그 날의 푸른빛깔 아름다웠던 '나눔'말이죠.</P><P> </P><P> 그 당시 제겐 조금은 독특한(혹은 굉장히 활동적인) 친구가 있었습니다. 뭐, 좀처럼 남들이  하지 않는 일들을 하는 그런 친구였죠^^ 어느날 그 친구가 저에게 매달 만원씩 함께 한 국제 아동 센터에 정기 모금을 하지 않겠냐고 물어왔습니다. 당시 제 한달 용돈은 고작 5만원. 한달 수입이 고작 5만원인 '일개'고등학생에게 만원은 상상을 초월하는 가치를 지닌 금액이지만 결국 약간의 선의와 우쭐함, 그리고 조금의 경쟁심으로 내겠노라 당당히 선언했죠. 저와 그 친구, 둘이 합해 고작 2만원. 저는 적어도 백단위, 천단위가 들어가야 기부니 모금이니 할 수 있지 않겠냐 투덜거렸지만, 그 친구의 믿음직스러운 면을 알고 있었기에 큰 불만없이 계속해서 정기 모금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P><P> </P><P>  한 학기가 지나고, 정기 모금이 서서히 세금고지서마냥 귀찮아지던 그해 여름, 저희들에게 작은 소포 하나가 도착했었습니다. 해외에서 온 소포라! 키는 훌쩍 크고 입술 주변에는 잔털이 수북히 났던 18살의 우리였지만 산타클로스에게 받은 예쁜 포장의 선물마냥 신나고 또 설레였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먼나라 방글라데시에서 도착한 그 소포에는, 4장의 편지와 2장의 그림, 그리고  맑은 웃음이 너무도 예쁜 한 소녀의 사진과 메마른 풀잎(어쩌면 꽃잎이 달려 있었을)팔찌 하나가 담겨 있었죠. 급한 마음에 해독가능한 한글 편지들 중 소녀가 직접 적은 삐뚤빼뚤한 편지를 한글로 번역한 글을 얼른 꺼내 읽어 보았었습니다.</P><P> </P><P>'안녕하세요, 0322아버지. (0322란 3반이었던 저희 둘이 매달 2만원씩 지원하겠다는 의미로 기부자명에 적었던 숫자입니다) 저는 **에요. 0322아버지가 보내주신 돈으로 저는 학교에 다니고 있구요 그림도 그릴 수 있습니다. 홍수가 나서 저희 집은 물에 잠겼지만 0322아버지가 있어서 저는 행복합니다......'</P><P> </P><P>편지에 담긴 내용들은 대충 이런 내용이었는데요. 편지를 읽고 난 뒤 우리 둘은 아무말 없이 양 입가엔 함박미소를 한껏 물고, 그저 물끄러미 소녀의 그림과 사진을 바라보았습니다. 아! 그날의 벅찬 감동을 글로 표현해 낼 수 있을까요? 나의 작디 작은 정성으로 먼 나라, 방글라데시의 까만 피부의 한 소녀는 학교를 다니고 점심을 먹고 이렇게 예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하면 할 수록 벅차오르는 나눔의 기쁨이 저를 가득채웠고, 범람하는 파도와 같은 감동이 흐르고 불어오는 미풍과 같은 따뜻함이 저를 감싼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의 작은 정성으로 먼 나라의 한 소녀는 밝은 희망을 가질 수 있었고 저희 둘은 그 이상의 나눔을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한 것입니다.</P><P> </P><P> 그 이후로도 그 소녀에 대한 정기모금은 계속되었구요 지금은 그 친구가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다른 기부단체를 통해 매달 일정 금액씩 나눔을 실천하고 있구요^^. 많은 사람들이 나눔에 대해서 어렵게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처럼 나눔은 우리 주변에서 작은 실천으로 이룰 수 있는일 같습니다. 누구나, 어디서나, 무엇을 하던 나와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싶다는 작은 마음만 가진다면 나눔이 좀 더 쉬워지고 세상은 더 많이 따뜻해지지 않을까요? 우리 모두 작은 나눔^^!! 함께해요~~~ </P>

    • 2009-04-09 09:44:10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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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위에서<br/><P>고등학교때부터 무슨맘이 불었는지 인도가 너무너무가고 싶었어요.</P><P>아마 그때 유시화 시인의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전 홍역에 앓는 아이처럼 공부는 그닥흥미가 떨어지고 연습장에 내내 글과 그림으로 도배를 해놨을때여서 어떻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진학하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네요.</P><P> </P><P>다만 대학교를 들어가자 마자 제일 먼저 한일은 오렌지색의 상큼한 머리와 다달이 아르바이트로 인도배낭여행 비용을 마련하는 길이었습니다. 1학년때는 아무래도 쉽지가 않아 결국은 2학년 여름 무작정 여행책과 그동안의 인터넷속 잡다한 이야기 보따리를 머리속에 넣고 부푼맘으로 출발 했습니다. </P><P> </P><P>인도 어땠냐고요???</P><P>뭄바이 공항으로 비행기가 착륙하는데 보이는 판자집들 지붕이 덜그렁 거리다 날아갈듯 하고, 내리자마자 풍기는 더운 내음 그리고 좀처럼 웃지않는 인도사람들에 기가 탁막혔습니다. 책에서 읽은 내용에 이런내용은 못봤습니다. 그래도 뭄바이라는 도시에서 시작한 인도는 극과 극이 였습니다. 그 더운 나라에서 정말 잘 차려입고 시원한 사무실에서 근무하시는 분들 그리고 대조적으로 팔다리를 잃고 구걸을 하는 사람들까지 </P><P>그때까지는 그냥 여행이었습니다. 인도의 계급사회인 카스트 중에서 외국인은 [수드라]천민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여행자들끼리 만나면 웃고 떠들었습니다. 중간중간 멋진 아잔타 동굴도 보고 아그라에 타지마할도 그리고 사막에도 다녀오고 여행자들을 만나고 또 헤어지고 만나고 헤어지고 새로운것들을 보다가 바라나시에 도착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캘커타가 가고싶어지는 거에요;;; 마더 테레사 그리고 캘커타 . 제게는 아무것도 없고 가방하나 뿐이었기에 무작정 마더테레사 미션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무엇에 이끌렸는지 다음날부터 간단한 교육을 받고 어린애들 대소변가려주는 일과 밥주는 일을 했습니다. 미션은 오전에만 봉사활동자를 받고 오후는 다 내보내는 곳이어서 오전에 늘 아이들에게 가서 밥먹고 같이 놀아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일주일되었는데 제표정이 그어느 곳에서 보다 너그러워진것을 느꼈어요. 처음보는 것들 그리고 신기한 일들 사이로 인도에서 마음을 놓지 못하고 팍팍하게 인도인을 대하던 모습은 어디가고 너그럽고 다른사람을 이해하는 모습들에 신기했습니다. </P><P>하지만 전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는 한국 학생 이제 남은 기간은 일주일. 다람살라를 포기하고 남은 기간도 캘커타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기로 한 그날. 저는 저에게 감동했습니다. 누구에게도 남아있어라, 너가 필요하다고 한것이 아니었고 제 생각으로 제의지로 남아서 누군가를 위해 있고 싶다고 한 날. 여기까지 이끌어 주신 그분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P><P>남은 일주일 아이들과 더 즐겁게 놀다가 저는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대학생활 중에 전공을 살려 보육원에 교사로 나가게 되었구요. </P><P> </P><P>인도. 그래서 저는 인도를 생각하면 인도에서의 제가 생각납니다. 노프라브럼을 외치는 인도인사이에서 강박관념 느끼고 빨리빨리를 외치던 류사랑에서, 아이들과 같이 눈마주치고 즐겁게 놀면서 마음의 너그러움을 찾은 류사랑으로</P><P> </P><P>인도를 생각하면 그때 사이다라고 이름지어준 눈안보이는 딸이 생각납니다. 팔찌에 새겨둔 사랑이엄마가라는 글을 눈도 안보이고 점자도 모르기에 당연히 모르겠지만 열심히 살아서 사이다에게 각막 이식수술을 시켜주겠다고 신에게 맹세했던 딸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더열심히 살아야겠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P><P> </P><P>그래서 지금 월드비젼에 소소한 정성을 보냅니다. 직장을 다닌다고 삶이 팍팍하다고 시간 내지 못하는 핑계속에 뭍혀서 살지만 매달 부산에서 4학년 꼬마에게 받는 편지와 말은 통하지 않는 콩고 어린이의 사진이 편지로 올때면 하루 직장의 스트레스로 찌뿌린 이마주름이 보톡스를 맞은것 처럼 쭉 펴집니다. 그리고는 시원하게 웃습니다. ^^</P><P> </P><P>처음엔 도와주는 것이라 느꼈지만 도와주면 도와줄수록 나를 구원하는 일이라는 것을 봉사와 나눔을 통해 배웁니다. 철없는 인도배낭여행 길에서 느꼈지만 이 나눔과 봉사의 마음을 평생 잃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P>

    • 2009-04-07 16:43:53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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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소녀의 시<br/><BLOCKQUOTE dir=ltr style="MARGIN-RIGHT: 0px"><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 size=3></FONT> </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아주 오래전 어떤 시인을 만났어요. </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그는 이름이 상당히 알려진 분인데</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책에 소개될 때마다 선그라스를 낀 사진이어서</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눈빛을 볼 수가 없었어요.</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아마 저는 그의 시 한줄에 마음이 심하게 흔들렸던 것 같아요.</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겨우 내 또래인 사람이 어떻게 그토록 달관한 세상으로 들어가고 말았을까.</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그것은 정직한 세계일까.</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똑같은 하늘을 이고 비슷한 세월을 살아왔는데 </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이 사람은 어떻게 이토록 마음이 한가할까 싶었어요.</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그를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어요.</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무엇보다 전 그의 눈빛을 보고 싶었어요.</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그냥 마주 앉아 잠시 그의 눈을 마주보다 돌아오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지요.</FONT></P><P><FONT face=wooriSaebom><FONT color=#702e01>어느날 기어이 그의 연락처를 알아내어</FONT> <FONT color=#8d3901>만</FONT><FONT color=#702e01>나러 갔지요.</FONT></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북한산 중턱의 레스토랑이었습니다.</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그는 실내로 들어서자 선그라스를 벗었고 </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나는 그의 눈을 들여다 보았어요.</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쏘는 듯 다이아몬드의 휘광성이 느껴지는 그 눈빛을</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바라보자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나는 두 아이의 엄마 였지만 겨우 서른 다섯이었고 </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결혼 후 낯선 남자와 단 둘이 식사를 해보는 것이 처음이었습니다.</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그는 아마도 내가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했습니다.</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어제는" 하고 말문을 열었습니다.</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아주 오래된 친구처럼, 난 어제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어, 하는 투였던 거지요.</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맑고 향기롭게'라는 단체에서 교통 봉사 활동을 한다더군요.</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한 달에 한 번 정도 장애우를 돕는 거랍니다.</FONT></P><P><FONT face=wooriSaebom><FONT color=#702e01>갈 데가 있는데 </FONT><FONT color=#702e01>형편이 여의치 않은 장애우에게 자동차를 몰고가서</FONT></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봉사를 하는 거예요.</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병원이라면 집에서 병원까지 데려다 주고 </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진료를 받도록 휠체어를 밀어주고</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진료가 끝나면 다시 집까지 데려다 주는 거지요.</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대개는 꼬박 하루를 바쳐야 한다더군요.</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그는  선그라스를 끼고 모자를 뒤집어 쓴 채 활동을 하기 때문에 대개의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한대요.</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FONT> </P><P><FONT face=wooriSaebom><FONT color=#702e01>그런데 어느 날 부천에서 한양대 병원까지 한 소녀를 태우고 가던 중에 </FONT><FONT color=#702e01>소녀가 시인을 알아챘어요.</FONT></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소녀는 발음이 명확하지 않았고 온 몸이 뒤틀린 중증의 지체부자유자였는데</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소녀의 손에 시인의 시집이 들려 있었어요. </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가는 내내 차 안에서 소녀는 그에게 시를 읽어주었어요.</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처음에는 발음이 명확하지 않아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자기가 쓴 시이니 다 외울 것 아닙니까.</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소녀가 읽는 시를 따라 그가 함께 읊었고 그러자 소녀는 그가 바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그 시인임을 알아본 것이지요.</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소녀는 시인을 알아보자마자</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발작을 일으키 듯 몸을 뒤틀며 괴성을 질러댔어요.</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이키키킥으히히힉프푸푸풉파!!!"</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손짓 발짓 몸짓을 아끼지 않고 좋아하는 감정을</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드러내기 위해 버둥거렸어요.</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시인은 제게 말했습니다.</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전 아직까지 그보다 더 아름다운 언어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그보다 더 아름다운 시를 본 적이 없습니다.</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소녀의 몸짓 그것이 가장 정직한 자기 표현이고 </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내면에서 저절로 우러난 노래 아니겠어요?"</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FONT> </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벌써 십 수년이 흘렀지만 나는 시인의 목소리가 어제처럼 생생합니다.</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그리고 그 소녀는, 한 사람에 대한 믿음과 존경을 표현하기 위해 온몸을 뒤틀며 소리를 질러대는 그 소녀는, 아직 내 안에도 꿈틀대고 있답니다. 그 소녀처럼 정직하게 드러내지 못해 오히려 숨막혀 하며 그 소녀를 그리워합니다. </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 </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 </FONT></P><P><FONT face=wooriSaebom color=#702e01> </FONT></P></BLOCKQUOTE><!-- end clix_content -->

    • 2009-04-04 15:5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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