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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에 꽂은 작은 안테나

  • 작성일 2008-03-10
  • 조회수 1,003

문학동네

 

문학 난시청지역에 안테나 달기
미디어-텍스트-현실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유쾌한 문학 산책

소설가 김형경은 정여울을 두고 “학자로 살기에는 타고난 끼가 몸을 들쑤시고, 딴따라로 살기에는 이미 먹물이 많이 든 이 아가씨는 두 세계의 경계에서 독특한 자기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간 ‘미디어 헌터’라는 별칭으로 다양한 매체에서 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칼럼을 써온 정여울은, 이 책에서도 미디어와 대중문화라는 거대한 벽화 속에 숨은 문학의 기미를 차근차근 탐측해나간다.
‘가장 일상적인 미디어와 가장 일탈적인 문학을 접속하여’ 미디어-텍스트-현실 사이의 공고한 경계를 허물어내는 것이 정여울이 꿈꾸는 비평의 지형도. 하여 이 책에서는 대중들이 열광하는 미디어 속의 세계와, 툭하면 ‘문학의 위기’라는 ‘수세적인 영토 구획법’으로 그늘에 갇히는 문학이 선연하게 대비되고, 다시 오묘한 지점에서 접속한다.
1부에서는 강영숙의 『리나』를 텍스트로, 우리 시대의 국경과 민족주의의 장벽에 대해 짚어본다. 또한 ‘빈곤의 박물지를 향한 미완성 노트’에서는 지난해 대중들이 한마음으로 지지했던 <거침없이 하이킥>의 이준하가 이룬 주식 대박으로 인한 인생역전, 그리고 <쩐의 전쟁>에서처럼 하드고어적 감수성으로 빈곤의 문제들을 뒤트는 미디어를 날카롭게 응시하며, 이렇게 가난의 근본적인 원인이 가려지고 왜곡되는 현실 속에서 우리 문학은 어떻게 이 시대의 빈곤을 감당해내고 있는지를 윤성희, 김애란, 배수아의 소설을 통해 분석한다.
2부에서는 2000년대 한국 문단을 이끌어가는 젊은 작가군의 작품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한유주, 김유진, 김태용 등의 젊은 작가들에 대한 지지와 공감과 더불어, 미디어와 광고, 인터넷과 같은 휘황한 매체에 포섭된 동시대 젊은이들이 이들의 작품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괴리감과 폐쇄성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낸다.
3부에서는 김영하, 오수연의 작품들과 함께, 80년대 계급투쟁과 노동운동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을 드러낸 뒤 오랜 침묵 끝에 다시 신작을 내놓으며 신자유주의 시대의 계급과 노동의 조건을 묻고 있는 방현석의 소설에 대해 논하며, 4부에서는 성장소설의 새로운 고전으로 꼽히는 권여선의 『푸르른 틈새』를 텍스트로 자전적 글쓰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사한다.

지금-여기 우리 문학의 DMZ

‘소설, 내 슬픔의 DMZ’와 같은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듯, 이 책은 수필이나 소설을 연상케 하는 섬세한 감수성이 고동치며, 양심을 찌르는 시대정신 또한 인상적인 평론집이다.
정여울은 소설이 자신의 ‘슬픔과 기쁨의 DMZ’라고 말한다. 그 DMZ에 오롯이 서서 지금 이 시대를 살아내는 작가들과 그들이 그린 현대인들을 응시하는 정여울의 시선에는, 우리 문학의 현장성과 시대성이 생생히 반영되어 있다.
‘문학이 영상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도태되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는 평론가, ‘대중문화와 격리된 영역에서 독야청청한 문학보다는 대중문화 속에서 마음껏 인용당하고 패러디당하는’ ‘책의 영토를 탈출한 문학이 더 사랑스럽다’는 평론가, 미디어와 문학 사이, 유쾌한 도발과 묵직한 담론 사이의 경계를 경쾌하게 오가는 젊은 평론가 정여울의 『내 서재에 꽂은 작은 안테나』는 책장 곳곳마다 아슬아슬하고 첨예한 이 시대의 지뢰를 품고 있는 뜨거운 평론집이다.

언제나 비평의 도입부가 가장 어려웠다. 세상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남몰래 빛나는 문학을 세상과 가장 밀착된 현란한 미디어와 연결시키는 일로부터, 나는 시작하려 했기 때문이다. 가장 일상적인 미디어와 가장 일탈적인 문학을 접속하여, 다시 지금-여기의 현실이라는 거대한 장으로 끌고 나오는 것. 그렇게 미디어-텍스트-현실의 삼각관계를 끝없이 가속화시키는 것이 내가 꿈꾸는 비평의 지형도였다.
(……)문학이 저 홀로 독립국임을 천명하며 다른 문화와 뒤섞이지 않는 것보다는, 대중문화 텍스트의 곳곳에서 숨은그림찾기의 버섯이나 국자처럼 귀엽게 숨어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 문학이 유아독존으로 오롯이 ‘최고’이기보다는, 화장한 시체처럼 온 누리에 퍼져 있어 무엇이 문학인지 분간해낼 수 없는 것이 더욱 ‘문학적인’ 존재 양식이 아닐까. 문학이 아침저녁으로 받들어야 할 신줏단지라면, 문학이 혁명의 무기이기‘만’ 하다면, 그 고결함 주위로 나 같은 ‘행인 3’은 다가갈 수 없었을 것이다.

-책머리에 중에서

정여울
1976년 서울 출생. 서울대 독문과 졸업, 동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2004년 봄 『문학동네』에 「암흑의 핵심을 포복하는 시시포스의 암소―방현석론」을 발표하며 평론가로 데뷔했다. 이후 『공간』『씨네21』『GQ』『출판저널』『드라마티크』등에 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글을 쓰며 문화라는 거대한 벽화 속에 숨은 문학의 기미를 찾아가고 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하며, 라디오 프로그램 <시사플러스> <문화야 놀자> 등의 게스트로 출연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 함께 쓴 책으로 『국민국가의 정치적 상상력』, 옮긴 책으로 『제국 그 사이의 한국 1895~1919』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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