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호 닮은 방, 닮은 사람
- 작성일 2017-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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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 말
2017년 커버스토리는 <그곳>입니다. 문학 작품에 대한 감상을 이미지로 다시 되새기는 작업 속에서 폭넓은 독자층과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박완서와 아파트
정이현
박완서 선생의 연보에는 1981년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엄마의 말뚝2>로 제 5회 이상 문학상 수상, <도둑맞은 가난> 출간. 20년 간 살던 보문동 한옥을 떠나 강남의 아파트로 이사.
저 ‘강남의 아파트’는 잠실의 장미아파트이다. 1979년 완공되어 입주를 시작한 장미 1차 2차 아파트는 모두 3300세대가 넘는 대형 아파트단지가 되었다. 가끔 그 근처를 지날 때마다 어김없이 선생을 떠올리곤 한다. 저 똑같이 생긴 창문들 중 어디가 선생의 창이었을까. 거기서 내려다보던 풍경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 풍경은 지금 얼마나 바뀌었을까.
내가 아파트라는 공간에 처음 매혹된 것도 1981년 무렵이다. 가까운 친척이 방배동의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한 것이다. 그 집이 몇 동 몇 호였는지 아직도 선명히 기억날 만큼 아파트라는 공간은 내게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무엇보다 엘리베이터, 천천히 상승하던 그 네모난 상자가 갑자기 턱 멈추었을 때 숨이 멎을 뻔했다. 문이 열리자 나는 본능적으로 발밑을 보았다. 엘리베이터 바닥과 땅바닥의 수평이 아주 조금 어긋나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허공에 살짝 떠 있었다. 공포가 밀려왔다. 입 밖에 뱉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낯선 공포였다.
아파트의 내부는 정사각형에 가까웠다. 거실과 주방은 트여 있었고, 크고 작은 방들은 네모반듯했다. 거실에는 베란다라는 것이 붙어 있었다. 베란다에 나가 아래를 내다보았다. 아득했다. 관점(觀點)의 의미를 인지한 최초의 순간이었다.
종일 거기 붙어 선 채, 땅 위를 걸어가는 사람들의, 내가 모르는 생을 상상했다.
박완서 선생은 ‘얻은 것과 잃은 것’이라는 제목의 산문에 이사 전후의 심경을 남겨 두었다.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날 밤새도록 비가 왔다. 나는 내 초라한 이삿짐이 곤돌란가 뭔가 하는 괴물스러운 것에 매달려 비를 맞을 생각을 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아침까지 비가 멎어 줬으면 조바심하며 듣는 빗소리는 보통 때 무심히 듣던 빗소리하곤 달리 여러 갈래의 음색을 가지고 있었다.(중략) 앞으로 살게 될 11층 높이 아파트에선 빗소리를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새로운 환경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생생한 두려움을 더했다.’
그러나 11층 높이에 살아 보니 짐작과 달리 빗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마른땅, 축축한 땅, 흠뻑 젖은 땅, 폭우로 범람하는 땅마다 차바퀴 소리가 완연히 다르게 들려왔다는 것이다. 지내보기 전엔 알지 못했을 것들. 나 역시 11층에 오래 살았기에 그 문장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11층에는 11층의 방식이 있다. 이 산문을 펼칠 때마다 아래의 문장들을 반복해 읽는다.
‘사람 사는 일이 항용 그렇듯이 두려움도 예상했던 것보다는 전혀 예기치 않은 곳으로부터 왔다. 나는 쏟아 붓자마자 깊이 모를 깜깜한 나락으로 급전직하하는 고층의 쓰레기통이 그렇게 싫고 두려울 수가 없다. (...) 이 비인간적인 환경에 주민이 날로 늘어나는 것도 그런 편의시설 때문일 테고 나 역시 그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나 역시 그중의 하나일 뿐, 이라는 의식이 박완서 문학의 근간인 것은 아닐까.
내가 아파트에 살게 된 것은 1986년부터였다. 나는 막 사춘기의 초입을 지나는 중이었다. 아파트로의 이사는 간절히 바라던 것이었다. 그러나 기록하고 싶은 밤은, 아파트에서의 첫 밤이 아니라 주택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여섯 살 때부터 살던 집의 작은 내 방. 내일 이삿짐 트럭과 함께 집을 나서면 이 공간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음을 마지막에야 알게 된 것이다.
아파트에서의 일상은 그저 덤덤했다. 다른 많은 꿈들처럼, 아파트살이라는 꿈도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멀리 있을 때만 반짝반짝 빛났다. 아파트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조심성이라는 낯선 태도를 숙지해야 했다. 해가 지면 집 안에서도 조심조심 걸어 다녀야 했고, 낯선 이와 단둘이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는 일은 가급적 피해야 했다. 아파트 열쇠도 잊지 않고 꼭 챙겨야만 했다.
어느 날 늦은 하굣길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습관적으로 현관문을 열려는데 열쇠가 맞지 않았다. 아무리 애써도 열쇠가 구멍에 들어가지 않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안에서 문이 열렸다. 고개를 내민 것은, 처음 보는 아주머니였다.
“너는 누구니?”
내가 누구인지, 누구라고 말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제야 문 위쪽에 붙은 숫자를 확인했다. 우리 집은 1101호인데 그 집은 1001호였다. 어떻게 된 셈인지, 엘리베이터가 나를 한 층 아래에 내려준 것이다. 나는 다만 눈을 끔벅끔벅했다. 이 건물의 모든 문들이 똑같다는 사실을 그 뒤로 잊은 적이 없다.
박완서 선생의 소설에는 아파트가 많이 나온다. 아파트라는 형식을 한 ‘동일성의 연옥’에 대한 질문들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2012년 1주기에 맞춰 출간된 소설집 <기나긴 하루>에 재수록 된 단편 ‘닮은 방들’도 아파트를 배경으로 서사가 진행된다. 선생의 단편을 거의 다 읽은 줄 알았는데 이 작품은 여기서야 처음 읽게 되었다.
주부인 ‘나’가 아파트 옆집 여자의 삶을 똑같이 따라하다 삶 자체에 환멸을 느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겨우 남과 닮기 위해 하루하루를 잃어버렸다.(중략) 그런 그녀가 어느 날 (...)속 깊숙이 염통 가까운데쯤, 미칠 듯한 희열을 감춘 듯이 살갗은 반들대고 눈은 번들댔다. 나는 당혹했다. 기분이 영 잡쳤다. 우리가 어느 날 거울 앞에 섰을 때 허구한 날 거울에서 낯익은 자기 얼굴이 아닌 전연 생소한 얼굴이 비친다거나 자기는 분명히 찡그렸을 터인데 거울 속에선 웃어 보인다거나 할 때 우리는 얼마나 놀라고 기분이 나쁠 것인가.’ (239쪽)
‘나’는 옆집 여자가 혹시 몰래 간음이라도 하지 않나 의심한다. 그러나 옆집 여자를 달뜨게 한 것은 주택복권이었다. 옆집 여자가 복권에 당첨되어 그 아파트를 떠나게 되는 상상을 하며 ‘나’가 분노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그런 짓은 내가 하려고 한 건데 그 여자가 모조리 훔쳐다가 마치 제 것처럼 써먹겠지.’
타인이 내 은밀한 상상을 훔쳐가고 말리라는 은밀한 상상은 얼마나 부박하고 얼마나 절박한가. 그런데 그것을 누가 훔쳤나? ‘나’인가? 그 여자인가? 그 상상의 원본은 누구의 것인가? ‘나’인가? ‘당신’인가? 혼돈 속에서 우두커니, 그 섬뜩하게 닮은 방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적어도 이것만은 확신할 수 있다. ‘한국 문학과 아파트’에 대해 말해야 할 때, 박완서 선생의 이름을 떠올리지 않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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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호
- 2017-05-01
[단편소설] 중국인 부부 나푸름 한밤중에 물을 마시러 나간 아내가 자고 있던 나를 다급하게 깨웠다. “밖에 누가 있어.” 잠이 덜 깬 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이불 속에서 몸을 웅크렸다. 도대체 이런 밤중에 뭐가 있다는 거야. “정말 누가 있다니까.” 아내의 말은 신음처럼 녹아내려 귀에 달라붙었다. 더는 듣고 있을 수 없어 마지못해 몸을 일으켰다. 방에 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 누가 있는 게 뭐 어때서 그래. 우리 땅도 아니고 여긴 다, 남의 땅이잖아. 나는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말들을 삼키며 방 밖을 나섰다. 아내는 무섭다며 내 뒤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6월이었고 밤은 아직 쌀쌀했다. 침대 안에서 따뜻이 데워졌던 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직 온기가 남은 손으로 팔뚝을 쓸어내리며 아내가 가리키는 곳으로 갔다. 거실 창문 너머를 바라보니 밖에 정말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움직임이 없어 누군가가 대로변에 내놓은 너절한 쓰레기나 부서진 가구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음 순간, 내가 생각을 굳히기 전에 그것이 움직였다. 얇고 작은 무언가가 양옆으로 조금 흔들린 것이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밖은 무척 어두워 그림자와 사물마저 제대로 분간해 낼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오던 날, 늦은 저녁을 사오는 길에 집 주변에 늘어선 가로등 몇 개에 불이 나가 있는 것을 보았다. 이미 민원을 넣었다는 말을 이사 온 다음날에 들었는데 두 달이 지나도록 거리가 어두웠다. 이곳의 행정처리가 한국보다 몇 배는 느리다는 건 비자를 발급받을 때부터 어느 정도 체감한 일이었지만 이쯤 되면 답답한 수준이었다. “여기 사람들은 한국에서처럼 죽을 것같이 일하지 않아요.” 젊은 시절, 임신한 아내와 함께 이민을 왔다는 한인 교회 권사의 말이었다. 나는 그의 누렇고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살피며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권사는 가족과 함께 한국인 전용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아내의 말로는 이 지역 한인 중 가장 성공한 사람일 거라고 했다. 목사님이 괜히 권사 일을 맡긴 게 아니라니까. 그때 아내의 목소리에는 부러움이 잔뜩 끼어 있었다. “저기 좀 봐.” 아내는 어느새 내 옆으로 와 움직임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호기심이 두려움을 앞선 것이다. 그녀의 말대로 대로변에 나와 있는 그것은 꺼진 가로등 아래에서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윤곽이라도 구분해 내기 위해 미간을 좁히고 눈에 힘을 주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눈은 조금씩 어둠에 적응해 나갔다. 그곳에는 작은 사람이 서 있었다. 나는 조금 무서워졌다. 어쩌면 저 작은 사람이 영화에서 보았던 살인마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곧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그 작은 사람이 발자국을 뗄 기력도 없어 보이는 마르고 벌거벗은 노인이란 걸 알아챘다. 비슷한 때에 노인의 모습을 분간해 낸 아내의 입에서 신음 같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혐오와 의혹, 안도 따위가 뒤섞인 형태였다. 금방이라도 비틀어질
- 나푸름
- 2017-05-01
이 산이 작은 파도였을 때 김중일 어느 파도는 너무 일찍 밀려왔다. 어느 파도가 얼마나 일찍 왔는지, 일찍 올는지 알 수 없다. 일찍 온 파도를 뒤집어 작은 돛배처럼 도로 바다로 떠밀어보기도 했지만, 일찍 온 파도는 내 발목에 묶여있고, 내 다리는 무겁게 젖어있다. 내 다리에 그림자처럼, 지구 한 바퀴만큼 긴 파도가 끌린다. 특히 저 어린 파도는 유독 일찍 왔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이 산이, 아이 발등처럼 작은 너울이었을 때, 아이가 읽다가 엎어놓은 책이었을 때, 책을 잡던 작은 손등이었을 때, 그 손등에 입맞춤하던 엄마의 입술이었을 때, 콧등이었을 때, 솟은 젖가슴과 부푼 배였을 때, 기포였을 때, 티끌이었을 때, 수많은 키스이고 입김이고 손길이었을 때, 처음의 고백이었을 때, 속삭임과 휘파람이었을 때, 하나부터 열까지 다 우연이었을 때, 스침이었을 때, 옷깃 같은 파도였을 때, 한 아이 겨우 덮을 작은 이불 같은 흰 파도였을 때 너무 일찍 밀려온 파도가 겹겹이 쌓여 이 산이 되기 전, 울고 있는 한 사람을 간신히 건져 온 파도를, 파도와 파도를 천 일 넘게 덧대어 만든 이 산 한 척을 바다에 띄워, 오늘도 밀려오는 사람들 마중가야 할 텐데.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이 산이, 사람 키만한 작은 파도였을 때 파도처럼 솟은 무덤이, 무덤처럼 솟은 파도로 이 산까지 밀려올 때 무덤처럼 솟은 파도가, 파도처럼 솟은 무덤으로 쌓이고 쌓여, 해일처럼 치솟은 산비탈에 깊이 박힌 돌을 빼내듯, 움직이지 않는 이마와 어깨와 손등을 부여잡고 흔들 때 땅속에 평생 박혀 차갑게 젖은 돌 같은, 바다에 박힌 파도를 붙잡아 열어젖힐 때 파도 한 너울이, 한 사람이 매달린 벼랑처럼 밀려와 쉼 없이 내 눈가에 차오르고 있다.
- 김중일
- 2017-05-01
[글틴 스페셜_제12회 문장청소년문학상 우수상 수필 부문 수상작] 개와 남자와 달리는 사람 서윤호 내가 하루 일과 중 제일 좋아하는 일을 꼽으라면 달리기와 글쓰기이다. 둘은 꽤 상반되어 보이지만, 나에겐 비슷하다. 언제나 나에게 그 순간만큼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내가 어김없이 달리기 위해 근처 학교 운동장에 갈 무렵이었다. 가게들은 하나둘 문을 잠그고 가로등은 빈자리만 비추었다. 이미 어둑해진 운동장 어귀로 들어서니 귀퉁이의 철봉 가까이에 남자가 어렴풋이 보였다. 얼마 전에도 운동장에서 운동하던 이들이 많았기에 개의치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달랐다. 운동장에 들어섰던 이들은 대부분 뛰기는 싫고 운동은 해야 하기에 느릿느릿 걷는 중년들이었다. 그런데 남자는 철봉 근처에서 운동하고 있었다. 나는 밤공기를 마시며 뛰었다. 고맙게도 운동장엔 원 모양으로 인조잔디가 심겨 있어 그 길로 곧장 달리면 한 바퀴이다. 학교를 슬쩍 보면 조회대는 흰 조명이 비추었고 다른 쪽을 가스 가로등이 밝혔다. 내가 다시 남자를 바라본 것은 운동장을 다섯 바퀴 정도 돌았을 즈음이었다. 보통 운동장을 다섯 바퀴 정도 돌면 조금씩 숨이 가빠지고 처음의 긴장이 풀려 집중이 흐트러진다. 그런 가운데 남자가 보였다. 그는 분명 턱걸이를 하고 있었다. 철봉은 높이가 조금씩 높아지는 세 개가 솟아 있는데, 남자는 이 중 중간 높이 철봉에 매달렸다. 그 사람은 독특한 기구를 사용했다. 각각 목과 철봉에 연결하는 긴 고무 고리 같은 것이었다. 턱걸이하다 보면 목에 힘이 풀려 뻐근해진다. 그것을 막는 도구로 보였다. 그런데 기구를 착용한 모습은 마치 교수대에 매달린 사람 같았다. 낮이었다면 기구와 옷과 몸이 제각기 색을 띠었을 것이다. 그러나 밤은 그를 어스름한 그림자로만 보이게 했다. 어둠 속에서 목에 무언가를 건 이가 턱걸이를 하는 모습은 조금 우스웠고 기괴했다. 내가 운동장을 달리는 동안 그도 기구를 착용했다 벗었다 하며 턱걸이를 했다. 나는 쉼 없이 달렸지만 남자는 틈틈이 숨을 고르고 반복했다. 나와 그는 아무 말 없이 운동만 묵묵히 했다. 그때 학교에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도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핏 본 몸집은 작아 보였고 움직임은 재빨랐다. 나는 속도를 늦추고 학교 쪽을 계속 살폈다. 어둠이 일렁였다. 마침내 조회대 불빛 사이로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개였다. 도둑은커녕 개였다. 중간 크기의 개가 학교를 여유롭게 돌아다녔다. 나는 다시 달렸지만, 개가 운동장으로 내려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정작 개는 내려올 마음이 없어 보였다. 열 바퀴를 뛸 즈음까지는. 조회대 양옆에는 단이 높은 세 개짜리 계단이 차례로 있는데, 개는 조금씩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내려와서 달리는 나를 살피곤 했다. 문득 눈길이 신경 쓰여 개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면 개는 사라졌었다. 남자는 아직도 목을 맨 채였다. 처음에는 사십 바퀴를 뛰리라 마음먹었다. 평소대로라면 오십 바퀴를 뛰어야 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쉬다 며칠 전 다시 시작한 운동이었기에 스무
- 2017-05-01
[글틴 스페셜_제12회 문장청소년문학상 우수상 소설 부문 수상작] 나비 김재희 녀석이다! 나는 재빨리 녀석이 사라진 너머를 살피기 위해 주방 창문에 매달렸다. 싱크대가 가로막고 있는 그곳에 머리를 밀어 넣고 까치발을 했다. 가로 오십에 세로 삼십 센티미터가 될까 말까 한 좁은 창밖에는 인근 건물의 외벽이 완고하게 막아서 있었다. 중화반점과 부동산 그리고 미용실이 입점해 있는 상가 건물은 내가 사는 5층짜리 빌라보다 꼭 한 층 낮았다. 그래서 맨 꼭대기 층을 제외하면 나머지 세대의 베란다는 상가 건물에 막혀 있어 낮에도 저녁처럼 컴컴했다. 목을 뽑고 위를 살피자 건물 사이로 가려졌던 하늘이 손바닥만 하게 드러났다. 그나마 건물에서 건물로 가로지르는 각종 전선에 의해 하늘은 여러 조각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나는 위로 향했던 고개를 돌려 급하게 아래를 살폈다. 그리고 녀석이 달아났을 법한 곳을 열심히 찾았다. 거리의 반대편에 가려진 건물의 외벽은 지저분했다. 햇볕이 닿지 않은 곳이라 곳곳에 검은 곰팡이 얼룩이 보이고 옥상 물통과 연결된 호스를 감싼 보온재는 낡을 대로 낡아 흉측한 뱀의 허물 같았다. 아래로, 혹은 위로 이어진 전선과 배관을 훑어 나가던 내 시선이 3층의 창틀에서 멈추었다. 녀석이었다. 야옹! 에어컨 실외기에 도사리고 앉은 녀석은 시선이 마주치자 낮은 울음소리를 냈다. 밝은 노랑에 흰색 줄무늬에 어울리지 않게 녀석의 울음은 어딘지 침울한 분위기가 담겨 있었다. 어젯밤에도 녀석은 찢어진 방충망을 통해 뒤 베란다로 숨어들었다. 밤사이 은밀하게 움직였지만 나는 녀석의 존재를 알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녀석을 내쫓기 위해 일어나지 않았다. 너무 추워 이불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체온으로 덥혀 놓은 온기를 잃지 않으려면 가능한 이불 속에서 웅크린 자세를 유지해야 했다. 가스는 장기 연체로 공급이 중단된 상태였다. 고지서는 매달 배달되지만 나는 어떤 식으로 어디에 납부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수도세와 전기요금도 잔뜩 밀려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물과 전기는 아직 공급되고 있다. 대신 수도 검침원과 한전 직원이 여러 차례 초인종을 눌러 엄마를 찾았다. 어른 안 계시니 어른? 나이보다 체격이 작은 탓에 그들은 중학생인 나를 초등학생처럼 취급하려 들었다. 나는 가능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시선을 깔았고 잘근잘근 손톱을 씹었다. 대답 대신 고개만 가로저었다. 입술 위의 상처나 눈두덩의 멍 자국은 없는데도 나는 아직 사람들과 똑바로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어른이라면 엄마를 이야기할 터였다. 아빠가 없는 우리 집은 엄마가 유일한 어른이다. 그렇지만 엄마는 육 개월 전에 집을 나갔고 나는 정말 엄마의 행방을 몰랐다. 엄마 어디 가셨니? 언제 오셔? 검침원이 재차 물었지만 나는 역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더욱 고개를 숙이고 몸을 흔들어댔다. 알고 있다면 진작 알려주었을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나의 출입과 우리 집을 감시하는 그 험상궂은 아저씨에게도 실토했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자기 말대로 엄마를 어딘가로 끌고 가거
- 넌출월귤
- 2017-05-01
[기획] 포에트리 슬램이란? 시를 쓴 후 이를 슬램의 형태로 표현하는 것2차 대전 이후 시인과 래퍼들이 이를 세상을 향한 발화형태로 표현하기 시작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一 人 詩 爲 (일인시위) ‘취업난’ - Poetic Justice 캥거루족 김경주 나는 묻는다 성인이 되었지만 어미의 배주머니에서 사는 캥거루들에게너희들을 이런 캥거루족이 되게 한 건 누구의 탓인가? ~~~ 스무 살이 되어서 자유를 향해 나는 독립했지 책상에 앉아 식스팩보다 스펙을 쌓았어 자격증과 인턴십 어학성적 섞어 5년이나 대학을 다녔어 그리고 이력서를 한해에 백 개나 넣었어~ 한 해에 백번 넘게 낙오감을 갖는 거,너는 상상이나 해봤어? 하늘은 언제나 아름다웠는데 떨어지는 낙하산들에게 밟히고 나서야 알았어 출발지부터 다른 금수저 은수저를 따라잡기는 어렵다는 걸 하늘은 언제나 아름다웠는데현실은 점점 편리해지는데, 왜 사는 건 더 힘들어질까? 아하 beautiful my life 하우스 푸어, 프랜차이저 푸어, 카 푸어, 내 인생은 누가 몰래 만든 짝퉁 같아~ 누군가 쓰다가 버린 삶을, 다시 주워서 산다 해도 이보단 나을 거야내 이름은 big baby, big baby 2 이제 나는 더는 속지 않아! 무급인턴, 열정페이 같은 말 따위 기회라는 말로 청년들의 절박함을 악이용하는 너희들은 빚 권하는 사회를 만들어 버렸어 한 시간을 일해도 햄버거 하나를 사 먹을 수 없는 나라야 최저시급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느니 집으로 돌아가서 부모님께 빌붙는 게 나아 나를 집으로 돌아가는 연어족이라고 불러도 좋아 어른이 되어도 부모랑 사는 자라족이라고 불러도 좋아 가난을 벗어나려면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니야! 노력을 벗어나려면 가난해선 안 되는 게 여기잖아! 돈만 생기면 쉽게 써버리는 가난한 이들의 습관이라고?가난한 사람일수록 허영이 심하다고? 그럼 나는 묻는다 누구를 위해 우리가 저축을 해야지? 산수를 못해도 국민연금이 우리에게 못 돌아온다는 건 똥개도 아는 사실아하! beautiful my life 하우스 푸어, 프랜차이저 푸어, 카 푸어, 부모님의 연금에 빨대를 꽂자! 그걸 빨아먹고 살면 되잖아이젠 엄마 캥거루 주머니에서 나오지 않을 거야 척하는 너희들은 말하지 그렇게 살면 빈곤만 대물림 된다고? 이렇게 살다가 노인이 되어 버려진 똥개처럼~ 방에서 혼자 죽어버리면 그럴 일은 없잖아! 흙수저를 씻어서 자식에게 물려주긴 싫으니까!흙수저는 빡빡 씻어서 주어도 빡빡한 흙수저니까... 자 다같이 부모님의 연금에 빨대를 꽂자 그걸 빨아먹고 살 수 있잖아 나는 big baby, big baby엄마가 껑충껑충 뛰어온다~~~ Kangaroo Family Kyung ju Kim I ask, even though I became an adult Who is it that gets to decide who gets to be in the Kangaroo family?
- 2017-05-01
[단편소설] 제국의 위안부 박금산 한 달 전이었다. 그는 페이스북에 새 소식으로 올라온 글을 읽었다. 어떤 친구가 형사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저자의 소식을 링크로 걸어 놓은 글이었다. 그는 ‘좋아요’를 눌렀다. 출간한 책 때문에 소송에 걸려서 고생을 하다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니 저자에게 축하를 보내고 싶었다. 책 내용이 무엇이든, 책의 내용 때문에 저자가 법정으로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얼마나 미개한 일인지 그는 문화적 원시성에 분개하면서 저자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다. 잠시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좋아요’를 누른 후 몇 분 지나지 않아 ‘친구 요청’이 들어왔다. 프로필을 살피니 친구 요청을 보낸 사람은 그가 ‘좋아요’를 누른 소식의 당사자인 의 저자였다. 의 저자는 전화기를 계속 손에 들고 페이스북의 반응을 살피다가 ‘좋아요’가 반가워 곧장 친구 요청을 보낸 것 같았다. 그는 의 저자가 불쑥 집으로 찾아와 초인종을 누른 것 같아 당혹스러웠다. 요청이 신속했으므로 결정을 빨리 내려 줘야 할 것 같았다. 초인종이 울렸으니 집으로 들이든 방문을 거절하든 둘 중의 하나를 해야 했다. 그는 수락과 거절 사이에서 망설였다. 그는 저자가 느끼고 있을 외로움과 절박함을 덜어 주고 싶었다. 그는 친구 요청을 수락했다. 그는 친구가 되어 저자의 페이스북으로 들어갔다. 게시물은 대부분 책 때문에 겪은 고생의 흔적이었다. 저자는 일본어판으로 일본에서 큰 상을 받았는데 일본군 ‘위안부’ 희생자 아홉 명으로부터 고소를 당하면서 책 유통이 금지 당했고 아홉 명에게 배상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을 받았으며 명예훼손죄를 범한 것으로 실형을 구형받았다. 이번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함은 검사가 구형한 3년의 징역형은 법리적으로 옳지 않다고 판사가 판결을 한 것이었다. 저자의 페이스북에는 투쟁을 격려하는 친구들과 무죄 판결 이후에 축하하는 친구들의 글이 있었다. 저자는 억울한 처지를 알리면서 명예회복을 위해 국내외의 지인을 동원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누른 ‘좋아요’ 또한 선거로 따지면 저자의 당선을 지지하는 한 표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고소를 당하고 2년 넘는 시간이 지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니 그간 고생이 얼마나 많았을까. 변호사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그는 저자의 고통에 공감하며 게시물을 읽었다. 글들을 읽다 보니 끝나지 않을 싸움임이 밝혀졌다. 무죄 판결이 났다고 해서 그대로 종료되는 것이 아니었다. 저자는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언론의 기사를 링크해 놓고 있었다. 기사는 원고 측의 항소와 상고를 예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죄 판결이 난 이후 새로이 의 문제성을 지적하는 글이 저자의 페이스북에 답글의 형태로 달렸고 그것을 비판하는 글이 논쟁의 형태로 얽혀서 이어지고 있었다. 이번에 무죄 판결을 받은 재판의 내용은 의
- 2017-05-01
독서회 이영주 읽을 수 없는 문장처럼 생긴 것들이 가득해. 그녀는 망토를 벗었다.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는 손에 든 책을 술집 바닥에 집어던지고 발로 밟고 있었다. 고통 받지 말자. 읽고 토하자. 그녀는 곧 튀어나올 부호처럼 웃으며 내 발을 만졌다. 이렇게 엄지발가락이 튀어 오르니 맨발로 읽어야지. 발바닥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나라에 가보지 않고 그 나라의 불을 피우는 예언자처럼 모든 글자가 타올랐다. 나는 술집 바닥에서 조금씩 커져가는 불길이 되는 중이었다. 형태가 없는 것도 녹아서 재가 될 수 있구나. 아무리 불타올라도 차가운 발이 따뜻해지지 않았다. 깊이 들어가면 뭐가 있을까. 불길 한가운데 가장 깊은 어둠속에 담겨 있는 투명한 얼음. 그 나라에는 얼음으로 불길을 퍼뜨리고 쓰다 만 문장들이 후드득 떨어진대. 울음의 시작일지도 모르지. 그녀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눈을 비비자 술집의 모든 울음들이 테이블에서 타올랐다. 누군가 그녀의 발을 잡고 엎드렸다. 이것은 어떤 이의 몸의 조각인가. 도끼가 필요해. 그을린 짐승들이 몸을 뒤틀었다. 아무도 가본 적 없는 외딴 곳. 그 나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 2017-05-01
엄마의 과일청 이영주 문을 열어놓아도 당신은 나올 줄을 모릅니다. 달큰한 과육을 꾹꾹 눌러놓은 돌처럼. 부드럽고 향기로운 살들이 모두 녹아 없어질 때까지. 오랫동안 긴 젓가락을 넣어 저어 보았지요. 함께 나갈까요, 끝나지 않는 질문을 흘리면서. 이곳의 모든 것은 아무것도 부패하지 않고 고스란히 네 입으로 흘러갈 거란다. 당신은 병 속에서 자신의 손발을 꾹꾹 누르고 있습니다. 차곡차곡 쌓여서 썩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싶어 합니다. 울고 있는 순간에도 달짝지근한 눈물이 쏟아져 병 속의 당신이 핥을 수 있기를, 죽은 후에도 찻물을 부으면 다시 살점이 단단해지기를, 심장을 누르는 돌…… 뚜껑을 열어 놓아도 당신은 나갈 수가 없습니다. 나는 함께 나가자고 병의 입구에 바람을 불어넣었습니다. 아름다운 악취가 흘러나왔죠. 슬픔의 냄새란 병 속의 바람에서 퍼져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없어진 손발 대신 몸통으로 과육들을 빨아들이고 있네요. 나의 영혼에서 흘러나간 이 바람은 무엇인가요. 급속도로 모든 것이 썩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앉은뱅이처럼 병 속에서 일어날 줄을 모릅니다. 이곳에서 시작된 어지러운 바람. 스무 살에 살던 방이었습니다. 나뒹구는 모든 병들이 썩고 있었습니다.
- 2017-05-01
[글틴 스페셜_에세이] 마피아들 나하늘 그가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수상소감을 적어 왔다는 것이다. 정대훈 부장님은 ‘안 시켰으면 어쩔 뻔했어요.’라며 웃으셨다. 6년 전 이 자리에서 나의 수상소감을 듣던 사람들의 표정이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발화에 집중하던, 처음 경험해 보는 시간이었다. 행사장에는 나 말고도 10대 때 글틴에서 활동했던 스태프들이 몇 명 더 있었다. 양선형 소설가가 사회를 맡았고, 뉴스페이퍼의 김상훈 기자가 취재를 하러 오셨다. 6년 전 열아홉에 수상을 하러 왔던 이곳에, 이제 학생이 아닌 어른(?) 중 한 명으로 참여하고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열린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마로니에 공원이 왠지 아득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햇살을 맞고 있었다. 볕도 바람도 좋은 토요일 낮의 풍경. 수상자는 아니지만 함께해 준 글티너도 한 명 있었는데, 조용히 시상식을 보고 있는 그 학생은 어떤 글을 쓰고 있을지 궁금했다. 이 아이들은 왜 글을 쓸까. 나는 왜 글을 쓰게 되었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감히 아이들의 얼굴이 낯익다는 생각을 했다. * 열아홉에 글틴 캠프에서 했던 ‘마피아 게임’을 종종 떠올린다. 처음 보는 글티너들과 마피아를 하며 밤을 꼬박 새웠다. 생각해 보면 마피아는 슬픈 게임이다. 모두가 엎드려 있을 때 사회자에게 목 뒤를 손가락으로 찍힌 사람이 마피아가 된다. 나는 사회자가 나를 마피아로 고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무고한 시민이고 싶었다. 그러나 누군가 목 뒤를 찍었고 나는 마피아가 되었다. 그 순간부터는 나를 찌른 것이 어떤 손가락인지도 모른 채 마피아로서의 연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마피아로 지목되는 것을 즐기는 사람도 많았지만 나는 내가 마피아가 되는 턴을 견디기 힘들었다. 시민이나 경찰이 되어서 그저 명민하고 정의롭게 마피아를 색출해 내고 싶을 뿐이었다. 내 존재를 숨겨야 함을 원망하며 사회자를 올려다보았다. 체셔캣이라는 필명으로 글틴에 올렸던 시 에 ‘말없는 꼬마애였던 내가 말없는 여학생이 되는 동안’이라는 구절이 있다. 10대 시절 나는 비밀이 많았고, 그래서 말수가 적은 아이였다. 언니의 병이나 가정불화 같은 것에 대해 숨겨야 할 치부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마피아’로 지목된 사람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마피아는 살아남기 위해 자기 존재를 숨긴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 ‘선생님, 쟤 벙어리예요?’ 하고 묻기도 했다. 친한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나의 비밀들을 처음 털어놓은 것은 다름 아닌 ‘글’을 통해서였다. 그래서 글쓰기는 나에게 소중했다. *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나에 대해 얘기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이곳에 있었다. 시상식장의 아이들이 어딘가 낯익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열아홉 캠프에서 함께 밤을 지새웠던 친구들의 얼굴과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그 시간 그대로 나이 들
- 2017-05-01
[글틴 스페셜_제12회 문장청소년문학상 우수상 시 부문 수상작] 절망 백신 박재희 종합 검진 결과가 내게 B형 간염 항체가 없다고백신을 맞으라 하기에 병원을 찾는다 병원 엘리베이터 안 포스터엔 각 나이 대에 맞아야 할 백신의 이름이 적혀 있다 백신은 약한 균과 싸워 본 경험을 줘서 진짜로 아플 때 익숙해지게 하는 거라는데그 나이 때 한 번은 겪어 봐야 하는 아픔이란 걸까 나는 문득 절망 백신은 없나 생각한다 절망 항체가 내 몸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나게 할 내가 별거 아닌 일에 아파하는 건 정말 사람들 말대로 추락해 본 적 없어서인 건지실패 주사 한 방 맞으면 다 익숙해질 일인지 문진을 받으며 절망 백신에 대해 물을 순 없다 다만 아기 때 안 맞았던 걸까요, 하고 묻자 가끔 있어요, 항체가 생기지 않는 사람들 세 번씩 맞는 경우도 있는데요 뭐, 하는 답이 돌아온다 곧이어 주삿바늘이 팔뚝 안으로 들어오고아기 때 한 번 맞아 봤겠지만 여전히 따끔하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엔 백신 포스터가 여전히 있고 다시 한 번 절망 백신을 떠올린다 실패해 본 적이 없어서 지금 아픈 거란 이야기만 몇 번을 들어왔었는지, 그 몇 번 동안겪었던 실패는 실패조차 아니었던 건지를, 또, 아무리 겪어 봤어도호되게 앓아야 하는 병도 있는지를 생각한다 작가소개 / 박재희(글틴 필명 : 삼월누리) 1999년생. 2016년도 제12회 문장청소년문학상 우수상 시 부문 수상자(위 작품은 2016년도 사이버문학광장 글틴 시 게시판 9월 월장원 선정작으로 문장청소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입니다.) 《문장웹진 2017년 05월호》
- 박재희
- 2017-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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