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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박상순의 왕십리, 박상순의 모란

  • 작성일 2017-09-01
  • 조회수 3,422

기획의 말

2017년 커버스토리는 <그곳>입니다. 문학 작품에 대한 감상을 이미지로 다시 되새기는 작업 속에서 폭넓은 독자층과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박상순의 왕십리, 박상순의 모란

김상혁

나의 은사 문혜원 선생님은 시를 칭찬하는 데 인색한 편이다. 선생님으로부터 성실하다, 똘똘하다 같은 칭찬은 몇 번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선생님이 내 시에 대해 썩 마음에 든다 말한 적은 거의 없다. 어쩌면…… 단 한 번도 없을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좋은 시가 있으면 입으로 좋다, 나쁘다 하지 않고, 차라리 그것에 대하여 글을 쓴다. 그런 선생님이 별 거리낌 없이 좋다 말하는 시인이 박상순이었다. 시인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기도 전부터 나는 시인의 이름을 자주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시집을 열심히 읽었고, 언젠가 나도 시인이 되어 그를 만나면 ‘작품 잘 읽었습니다!’ 하고 인사해야지 다짐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어디가 어떻게 좋은 줄도 모르고 오랫동안 박상순을 읽고, 박상순에 대해 생각했던 것이다. 또 ‘말도 안 되게 촌스럽고 시적인 이름이야!’ 같은 생각으로 ― 흡사 김행숙 시인을 떠올릴 때같이 ― 괜히 마음 떨리곤 했던 것이다.

어느 술자리에도 박상순은 없었다. 새 시집도 나오지 않았다. 우리 집엔 『6은 나무 7은 돌고래』(민음사),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세계사), 『Love Adagio』(민음사)가 각각 대여섯 권씩은 있었다. 밖에 가지고 다니며 읽어서 너덜너덜해진 거 한 권, 책장에 꽂혀 있는 깨끗한 거 한 권, 친구 놀러오면 선물로 주려고 따로 빼둔 게 서너 권. 물론 그사이 「목화밭 지나서 소년은 가고」가 현대문학상을, 「즐거운 사람에게 겨울이 오면」이 현대시작품상을 받긴 했다. 아니, 나는 그래서 더 조급했다. 어떤 독자에게 박상순은 여전히, 철로 위를 위태롭게 걸어가는 저 녹색머리 소년으로 남아 있거나, ‘빵공장’으로부터 23년이 흘러 ― 그에게 빵공장은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특정 시점(時點)을 환기한다 ― 이제는 강원도가 싫다 말하는 앳된 청년으로 기억될 터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박상순은 빵공장으로부터 조금 더 멀어져 있었다. 『Love Adagio』 때보다 조금 더, 조금씩 더.

나는 초조했던 것이다. 그의 수상작들과 「왕십리 올뎃」, 「내 봄날은 고독하겠음」을 시집으로 읽을 수 없어서. 이 좋은 걸 나만 알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에. “계단을 내려가면 강입니다”(「네가 가는 길이 더 멀고 외로우니」)를 읽고, 계단을 다 내려갔는데 보드라운 흙이 아니라 강줄기를 맞닥뜨리는 삶이란 얼마나 참담한가 생각했다. 2015년 어느 잡지에서 박상순의 시 「샤를로트 엘렌」을 읽다가 “나, 먼저 갈게”란 구절에서 거의 울 뻔했던 것도 기억한다. 친구들 다 떠나고 산기슭 빈집에 홀로 남아 ‘나 먼저 갈게’란 말 ― 떠난 친구들이 내게 했던 ― 을 되뇌는 ‘나’의 청승이 영 잊히지 않았다. 한번은 시인의 두 번째 시집에서 “나는 피를 뽑는다. 그녀의 옷가지를 허리에 둘둘 감고 오후 2시에서 3시를 넘기며 이 세계의 끝에 쓰러진 그녀의 피를 뽑는다. 어느 날 강변에서 그녀가 내 허리에 규산(硅酸)을 바르던 그때처럼.”을 읽고 ‘규산’이란 단어가 며칠 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나는 왕십리와 모란에 갈 때마다 박상순을 떠올려야 한다.

모란에 갔었음. 잘못 알았음.
그곳은 병원인데 봄날인 줄 알았음.
그래도 혹시나 둘러만 볼까, 생각했는데, 아뿔싸
고독의 아버지가 있었음. 나를 불렀음.
환자용 침상 아래 납작한 의자에 앉고 말았음.
괜찮지요. 괜찮지. 온 김에 네 집이나 보고 가렴.
바쁜데요. 바빠요. 봐서 뭐 해요. 그래도 나 죽으면
알려줄 수 없으니, 여기저기, 여기니, 찾아가 보렴.
옥상에 올라가서 밤하늘만 쳐다봤음. 별도 달도 없었음.
곧바로 내려와서 도망쳐 왔음.
도망치다 길 잃었음. 두어 바퀴 더 돌았음.
가로등만 휑하니, 내 마음 썰렁했음. 마침내 나 죽으면
알려줄 수 없는 집, 여기저기 맴돌다가 빠져나왔음.

모란에 다시 갔음. 제대로 갔음. 길바닥에 서 있었음.
내 봄날이 달려왔음. 한때는 내 봄날, 스무 살이었는데, 이젠
쉰 살도 넘었음, 그래도 내 봄날의 스물두 살 시절,
남산공원 계단을 내려오던 그날에, 내 두 눈이 번쩍 뜨이고
내 가슴속의 쇠구슬들이 요란하게 덜커덕거렸음.
분홍 신, 남빛 치마 잊히지 않는, 계단을 내려오던 내 봄날.
앗, 봄날, 아, 봄날, 그날 오후 내 봄날이, 봄날, 봄날, 봄날.
여기도 봄날, 여기도 봄날. 봄날을 속삭였음, 세월은 갔음.

모란에 갔었음. 봄빛 다 지고, 초가을에 갔었음. 쉰 살 넘은
내 봄날을 다시 만났음. 밥 먹었음, 차 마셨음. 손 내밀었음.
내 손등, 봄날 손등. 찻잔 옆에 모아 놓고 보니, 마음만 휑했음.
그래도 내 봄날은 아름다웠음. 다정하고 쌀쌀했음. 그 봄날이,
죽기 전에 다시 올게, 네 죽음을 지켜줄 그 누구도 없다면.
봄날이 내게 말했음, 누가 있겠음? 나 혼자 밥 먹었음.
내 봄날만을 생각했음. 푸르른 나뭇잎 하나
억지로, 쉰 살 넘은 내 봄날의 가방 속에 넣어 주고……
파도소리 들리는 바닷가 유치원의 점심시간.

요리사가 된 내 봄날이 아침부터 요리를 하고
뒤뚱대고, 자빠지는 아장아장 새싹들이 오물오물 점심을 다
먹고 나면, 바닷가 빵집 지나, 섬마을 우체국 지나 쉰 살 넘은
내 봄날이 파도소리 들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길에 모란이 있었음. 그 길에서, 긴 총 옆에 놓고
비탈에 누워 있었음. 총알은 없음. 오래전 남산공원
계단에서 덜커덕거리던 내 가슴속 쇠구슬들이 단거리 대공포
총탄이 되고, 무거운 포탄이 되니, 가슴이 무거워서 누워 있었음.
가을도 내 옆에, 총알 없는 빈 총처럼 뻗어 있었음.
가슴이 무거워서 나자빠져 있었음. 그런 모란에 갔었음.

잘못 알았음. 그곳은 병실인데 또 잘못 알았음. 아뿔싸,
겨울이 왔음. 창밖엔 크리스마스트리 반짝이는데, 누가 있겠음?
아직도 치료 중인 내 봄날, 이번엔 고독의 할아버지가 부르셔도
환자용 침상 아래 이 끈적한, 납작한 의자엔
앉지 않겠음. 내 봄날은 고독하겠음. 누가 있겠음?

― 「내 봄날은 고독하겠음」 전문

13년 만에 드디어 네 번째 시집 『슬픈 감자 200그램』(난다)이 나왔다. 박상순 시인은 요즘 명사형 종결어미 ‘-음’을 즐겨 사용한다. 처음에 나는 그게 그저 독특하고 재밌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시인의 낭독회에서 저 수많은 ‘-음’으로 이어지는 시 몇 편을 직접 들어 볼 수 있었다. “여자가 소리쳤음. 왕십리? 옆자리에 앉아 있던 달걀 같은 여자가 따라 내렸음. 왕십리? 두 여자는 그녀들끼리 마주 보고 소리쳤음. 왕십리?”(「왕십리 올뎃」) 관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시인은 잠시 미소 짓더니 시를 계속 읽었다. “그래도 왕십리는 왕십리. 뿌리치고 걸었음. 비 내리는 왕십리를 마냥 걸었음. 가을 왕십리.” 관객의 산발적인 웃음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낭독회였고, 그 산발적인 웃음이 이내 슬픈 침묵으로 변하는, 정말 이상한 낭독회였다. 꼭 줄다리기 같았다. 왕십리. 그랬음. 왕십리. 저랬음……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음 속에서, 관객들은 아주 웃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아주 울지도 못한 채, 시인의 목소리에 꼼짝없이 사로잡혀 있었다. 박상순의 시는 장난기와 애교 넘치는 소년의 콧소리였다가, 어떤 끔찍한 이유로 그 소년을 빼앗긴 청년의 신음이기도 했다.

『슬픈 감자 200그램』에서 단 한 편의 시를 낭독해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내 봄날은 고독하겠음」을 펼칠 것이다. 시인에게 ‘빵공장’이 단순한 공간이 아니듯, ‘모란’ 역시 어떤 공간이자 동시에 어떤 시간이다. 모란은 병원이다. 인생의 ‘봄날’이라는, 그 한때의 ‘시간’이, 다 늙어빠진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병원. 그런 봄날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괜찮지요. 괜찮지. 온 김에 네 집이나 보고 가렴. 나 죽으면 알려줄 수 없으니, 여기저기, 여기니, 찾아가 보렴.” 하고 말이다. 그렇게 다 죽어 가는 추억에 사로잡힌 자가 내뱉는 ‘아뿔싸’라는 탄식은 얼마나 적절한지. 나는 왕십리에서 자주 놀았고 모란에도 매일 갔었다. 왕십리는 강의하던 곳이고 모란엔 옛날 애인이 살았다. 하지만 두 도시를 매일 들락거리면서도 박상순의 시를 읽었을 때만큼 강렬한 느낌은 받지 못했다. 박상순의 슬픔이 왕십리에 쏟은 내 열의와 모란에 쏟은 내 정열을 다 덮어버렸다. 어쩔 수 없지 않나? 모란 어느 찻집에서 시인과 마주 앉은, 시인의 늙은 봄날이, “죽기 전에 다시 올게, 네 죽음을 지켜줄 그 누구도 없다면.” 하고 말했다는데 말이다. 내가 이 슬픈 걸 읽었는데. 어쩔 수 없지 않나, 모란이 박상순의 도시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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