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호 박상순의 왕십리, 박상순의 모란
- 작성일 2017-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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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 말
2017년 커버스토리는 <그곳>입니다. 문학 작품에 대한 감상을 이미지로 다시 되새기는 작업 속에서 폭넓은 독자층과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김상혁
나의 은사 문혜원 선생님은 시를 칭찬하는 데 인색한 편이다. 선생님으로부터 성실하다, 똘똘하다 같은 칭찬은 몇 번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선생님이 내 시에 대해 썩 마음에 든다 말한 적은 거의 없다. 어쩌면…… 단 한 번도 없을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좋은 시가 있으면 입으로 좋다, 나쁘다 하지 않고, 차라리 그것에 대하여 글을 쓴다. 그런 선생님이 별 거리낌 없이 좋다 말하는 시인이 박상순이었다. 시인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기도 전부터 나는 시인의 이름을 자주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시집을 열심히 읽었고, 언젠가 나도 시인이 되어 그를 만나면 ‘작품 잘 읽었습니다!’ 하고 인사해야지 다짐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어디가 어떻게 좋은 줄도 모르고 오랫동안 박상순을 읽고, 박상순에 대해 생각했던 것이다. 또 ‘말도 안 되게 촌스럽고 시적인 이름이야!’ 같은 생각으로 ― 흡사 김행숙 시인을 떠올릴 때같이 ― 괜히 마음 떨리곤 했던 것이다.
어느 술자리에도 박상순은 없었다. 새 시집도 나오지 않았다. 우리 집엔 『6은 나무 7은 돌고래』(민음사),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세계사), 『Love Adagio』(민음사)가 각각 대여섯 권씩은 있었다. 밖에 가지고 다니며 읽어서 너덜너덜해진 거 한 권, 책장에 꽂혀 있는 깨끗한 거 한 권, 친구 놀러오면 선물로 주려고 따로 빼둔 게 서너 권. 물론 그사이 「목화밭 지나서 소년은 가고」가 현대문학상을, 「즐거운 사람에게 겨울이 오면」이 현대시작품상을 받긴 했다. 아니, 나는 그래서 더 조급했다. 어떤 독자에게 박상순은 여전히, 철로 위를 위태롭게 걸어가는 저 녹색머리 소년으로 남아 있거나, ‘빵공장’으로부터 23년이 흘러 ― 그에게 빵공장은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특정 시점(時點)을 환기한다 ― 이제는 강원도가 싫다 말하는 앳된 청년으로 기억될 터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박상순은 빵공장으로부터 조금 더 멀어져 있었다. 『Love Adagio』 때보다 조금 더, 조금씩 더.
나는 초조했던 것이다. 그의 수상작들과 「왕십리 올뎃」, 「내 봄날은 고독하겠음」을 시집으로 읽을 수 없어서. 이 좋은 걸 나만 알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에. “계단을 내려가면 강입니다”(「네가 가는 길이 더 멀고 외로우니」)를 읽고, 계단을 다 내려갔는데 보드라운 흙이 아니라 강줄기를 맞닥뜨리는 삶이란 얼마나 참담한가 생각했다. 2015년 어느 잡지에서 박상순의 시 「샤를로트 엘렌」을 읽다가 “나, 먼저 갈게”란 구절에서 거의 울 뻔했던 것도 기억한다. 친구들 다 떠나고 산기슭 빈집에 홀로 남아 ‘나 먼저 갈게’란 말 ― 떠난 친구들이 내게 했던 ― 을 되뇌는 ‘나’의 청승이 영 잊히지 않았다. 한번은 시인의 두 번째 시집에서 “나는 피를 뽑는다. 그녀의 옷가지를 허리에 둘둘 감고 오후 2시에서 3시를 넘기며 이 세계의 끝에 쓰러진 그녀의 피를 뽑는다. 어느 날 강변에서 그녀가 내 허리에 규산(硅酸)을 바르던 그때처럼.”을 읽고 ‘규산’이란 단어가 며칠 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나는 왕십리와 모란에 갈 때마다 박상순을 떠올려야 한다.
모란에 갔었음. 잘못 알았음.
그곳은 병원인데 봄날인 줄 알았음.
그래도 혹시나 둘러만 볼까, 생각했는데, 아뿔싸
고독의 아버지가 있었음. 나를 불렀음.
환자용 침상 아래 납작한 의자에 앉고 말았음.
괜찮지요. 괜찮지. 온 김에 네 집이나 보고 가렴.
바쁜데요. 바빠요. 봐서 뭐 해요. 그래도 나 죽으면
알려줄 수 없으니, 여기저기, 여기니, 찾아가 보렴.
옥상에 올라가서 밤하늘만 쳐다봤음. 별도 달도 없었음.
곧바로 내려와서 도망쳐 왔음.
도망치다 길 잃었음. 두어 바퀴 더 돌았음.
가로등만 휑하니, 내 마음 썰렁했음. 마침내 나 죽으면
알려줄 수 없는 집, 여기저기 맴돌다가 빠져나왔음.
모란에 다시 갔음. 제대로 갔음. 길바닥에 서 있었음.
내 봄날이 달려왔음. 한때는 내 봄날, 스무 살이었는데, 이젠
쉰 살도 넘었음, 그래도 내 봄날의 스물두 살 시절,
남산공원 계단을 내려오던 그날에, 내 두 눈이 번쩍 뜨이고
내 가슴속의 쇠구슬들이 요란하게 덜커덕거렸음.
분홍 신, 남빛 치마 잊히지 않는, 계단을 내려오던 내 봄날.
앗, 봄날, 아, 봄날, 그날 오후 내 봄날이, 봄날, 봄날, 봄날.
여기도 봄날, 여기도 봄날. 봄날을 속삭였음, 세월은 갔음.
모란에 갔었음. 봄빛 다 지고, 초가을에 갔었음. 쉰 살 넘은
내 봄날을 다시 만났음. 밥 먹었음, 차 마셨음. 손 내밀었음.
내 손등, 봄날 손등. 찻잔 옆에 모아 놓고 보니, 마음만 휑했음.
그래도 내 봄날은 아름다웠음. 다정하고 쌀쌀했음. 그 봄날이,
죽기 전에 다시 올게, 네 죽음을 지켜줄 그 누구도 없다면.
봄날이 내게 말했음, 누가 있겠음? 나 혼자 밥 먹었음.
내 봄날만을 생각했음. 푸르른 나뭇잎 하나
억지로, 쉰 살 넘은 내 봄날의 가방 속에 넣어 주고……
파도소리 들리는 바닷가 유치원의 점심시간.
요리사가 된 내 봄날이 아침부터 요리를 하고
뒤뚱대고, 자빠지는 아장아장 새싹들이 오물오물 점심을 다
먹고 나면, 바닷가 빵집 지나, 섬마을 우체국 지나 쉰 살 넘은
내 봄날이 파도소리 들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길에 모란이 있었음. 그 길에서, 긴 총 옆에 놓고
비탈에 누워 있었음. 총알은 없음. 오래전 남산공원
계단에서 덜커덕거리던 내 가슴속 쇠구슬들이 단거리 대공포
총탄이 되고, 무거운 포탄이 되니, 가슴이 무거워서 누워 있었음.
가을도 내 옆에, 총알 없는 빈 총처럼 뻗어 있었음.
가슴이 무거워서 나자빠져 있었음. 그런 모란에 갔었음.
잘못 알았음. 그곳은 병실인데 또 잘못 알았음. 아뿔싸,
겨울이 왔음. 창밖엔 크리스마스트리 반짝이는데, 누가 있겠음?
아직도 치료 중인 내 봄날, 이번엔 고독의 할아버지가 부르셔도
환자용 침상 아래 이 끈적한, 납작한 의자엔
앉지 않겠음. 내 봄날은 고독하겠음. 누가 있겠음?
― 「내 봄날은 고독하겠음」 전문
13년 만에 드디어 네 번째 시집 『슬픈 감자 200그램』(난다)이 나왔다. 박상순 시인은 요즘 명사형 종결어미 ‘-음’을 즐겨 사용한다. 처음에 나는 그게 그저 독특하고 재밌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시인의 낭독회에서 저 수많은 ‘-음’으로 이어지는 시 몇 편을 직접 들어 볼 수 있었다. “여자가 소리쳤음. 왕십리? 옆자리에 앉아 있던 달걀 같은 여자가 따라 내렸음. 왕십리? 두 여자는 그녀들끼리 마주 보고 소리쳤음. 왕십리?”(「왕십리 올뎃」) 관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시인은 잠시 미소 짓더니 시를 계속 읽었다. “그래도 왕십리는 왕십리. 뿌리치고 걸었음. 비 내리는 왕십리를 마냥 걸었음. 가을 왕십리.” 관객의 산발적인 웃음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낭독회였고, 그 산발적인 웃음이 이내 슬픈 침묵으로 변하는, 정말 이상한 낭독회였다. 꼭 줄다리기 같았다. 왕십리. 그랬음. 왕십리. 저랬음……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음 속에서, 관객들은 아주 웃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아주 울지도 못한 채, 시인의 목소리에 꼼짝없이 사로잡혀 있었다. 박상순의 시는 장난기와 애교 넘치는 소년의 콧소리였다가, 어떤 끔찍한 이유로 그 소년을 빼앗긴 청년의 신음이기도 했다.
『슬픈 감자 200그램』에서 단 한 편의 시를 낭독해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내 봄날은 고독하겠음」을 펼칠 것이다. 시인에게 ‘빵공장’이 단순한 공간이 아니듯, ‘모란’ 역시 어떤 공간이자 동시에 어떤 시간이다. 모란은 병원이다. 인생의 ‘봄날’이라는, 그 한때의 ‘시간’이, 다 늙어빠진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병원. 그런 봄날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괜찮지요. 괜찮지. 온 김에 네 집이나 보고 가렴. 나 죽으면 알려줄 수 없으니, 여기저기, 여기니, 찾아가 보렴.” 하고 말이다. 그렇게 다 죽어 가는 추억에 사로잡힌 자가 내뱉는 ‘아뿔싸’라는 탄식은 얼마나 적절한지. 나는 왕십리에서 자주 놀았고 모란에도 매일 갔었다. 왕십리는 강의하던 곳이고 모란엔 옛날 애인이 살았다. 하지만 두 도시를 매일 들락거리면서도 박상순의 시를 읽었을 때만큼 강렬한 느낌은 받지 못했다. 박상순의 슬픔이 왕십리에 쏟은 내 열의와 모란에 쏟은 내 정열을 다 덮어버렸다. 어쩔 수 없지 않나? 모란 어느 찻집에서 시인과 마주 앉은, 시인의 늙은 봄날이, “죽기 전에 다시 올게, 네 죽음을 지켜줄 그 누구도 없다면.” 하고 말했다는데 말이다. 내가 이 슬픈 걸 읽었는데. 어쩔 수 없지 않나, 모란이 박상순의 도시라는 거.
문장웹진 9월호 살펴보기
[기획] 독자모임 - 아프고, 아프다 참여 : 정홍수(사회, 문학평론가), 장수라, 이영순, 김보배, 김지윤 정홍수 : 두 번째 자리네요. 네 분 의견을 모아 함께 이야기할 작품을 정했습니다. 강화길의 「손」(『문장웹진』 8월호), 김애란의 「가리는 손」(『창작과비평』 2017년 봄호),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소설집 『오직 두 사람』, 문학동네, 2017), 권여선의 「손톱」(『문학과사회』, 2017년 봄호), 이렇게 네 편의 단편입니다. 김애란과 강화길의 작품 제목에는 흥미롭게도 공통적으로 ‘손’이 등장하는데, 그 단어의 일차적 의미는 다릅니다만 비슷한 테마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손」, 강화길, 문장웹진 2017년 8월호 [caption id="attachment_139821" align="aligncenter" width="230"]「가리는 손」, 김애란, 『창작과비평』 2017년 봄호/소설집 『바깥은 여름』, 문학동네 2017년[/caption] [caption id="attachment_139822" align="aligncenter" width="230"]「오직 두 사람」, 김영하, 소설집『오직 두 사람』, 문학동네 2017년[/caption] [caption id="attachment_139823" align="aligncenter" width="230"]「손톱」, 권여선, 『문학과사회』 2017년 봄호[/caption] 이영순 : 편견이라는 부분에서 그랬어요. 「손」에서는 나라는 화자가 사실은 알고 보면 편견에 사로잡혀 아이들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끝에 가서는 뒤집히고요. 「가리는 손」도 목격자인 아들이 혼혈아라는 점 때문에 가해자의 위치와 동일선상에 놓이는 것 같습니다. 정홍수 : 그 편견을 요즘 많이 쓰이는 ‘혐오’라는 말로 바꾸어 생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자기’ 또는 ‘우리’라는 울타리를 만들고는 그와 다른 것을 불신하고 배제하고, 심지어는 가해도 하는 양상 말이죠. 여성혐오라는 것도 사회적으로 큰 의제이고요. 두 소설에서도 다문화 가정, 피부 색깔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편견, 불편한 감정들이 바닥에 깔려 있죠. 재미있는 게, 「손」의 경우에는 그 가해와 피해의 구도가 일단 겉으로는 역전되어 있죠. 거기에 믿을 수 없는 화자의 시선이 겹쳐지면서 간단치 않은 문제의 국면을 드러냅니다. 김애란의 「가리는 손」에서도 노인에 대한 폭행을 목격한 뒤, 아이의 손이 가렸던 게 웃음인지, 경악인지 하는 질문을 반전처럼 던지면서 문제의 복잡하고 착잡한 국면으로 우리를 데려가죠. 장수라 : 「가리는 손」에는 ‘얼룩’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와 관련해서 ‘얼룩의 관성’하고 ‘청결의 관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회적 약자로서의 그늘이 ‘얼룩의 관성’에 연결된다면, 엄마가 자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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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9-01
[비평in문학] ‘여성, 노동’같은 전통적인 주제에서 시작해 ‘문체, 주체’와 같은 비평 키워드나 ‘번역, 상호텍스트성’같은 문학적 키워드, ‘환상, 무의식’같은 인접학문 그리고 ‘빅데이터, 가상현실’같은 미래용어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문학의 키워드는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비평in문학]의 새로운 비평 기획입니다. 번역의 역설 - 번역을 둘러싼 네 가지 오해 조 재 룡 어머니의 혀에 파묻혀서 고립할지, 순수언어로 탈피해서 고립할지 양자택일하는 길뿐인가요? 정말 그런가요? 사시키 아타루1) * 번역은 ‘지(知)’를 교류하게 만드는 ‘문(文)’의 ‘활동’이다. 그러니까 인류의 지식과 사유는 번역을 통해, 번역 안에서 어디론가 이동하고 어느 지점들을 횡단하는 것이다. 번역은 ‘지’를 ‘문’의 순환을 통해 ‘다시’ 위치시킨다. 번역은 이렇게 언어와 사유를 변형시킨다. 이 양자의 변형은 동시에 일어난다. 번역은 언어와 사유가 언어와 사유일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 이러한 순간들을 우리는 ‘고안(invention)’의 순간이라고 부른다. 번역은 고안의 산물들을 현재에 위치시키는 과정이다. 번역에 의해, 번역 안에서 일어나는 이 고안의 순간들은 그러나 자주 감추어진다. 번역은, 역사 속에서가 아니라, 차라리 ‘이론의 공화국’에서, 그러니까 ‘추론의 세계’2)에서, 자주 제 흔적을 지워내야 하는 운명에 사로잡혀 기이한 방식으로 표상되기 때문이다. 번역의 역설은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흔적을 지워내려는 이데올로기에 번역이 포섭되는 순간은, 한편으로 번역이 자신의 특성을 실토하거나 최소한 고지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역설이 또다시 역설을 불러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번역은 역설이라는 이름하에, 역설로 인해 시련을 겪고, 바로 이런 시련을 통해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드러낸다. 끊임없이 번역에 ‘부정성’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이 시련이다. 번역은 역설의 산물이며, 오해에 사로잡히는 고유한 역설적 성질로 인해 자신의 특성을 드러낸다. 1) 사시키 아타루, 『춤춰라 우리의 밤을 그리고 이 세계에 오는 아침을 맞이라라』(김소운 옮김), 여문책, 2016, 71쪽. 2) 이 글은 이론을 다룬다. 그러니까 이 글은 오롯이 추론에 의지한다. 번역을 다룬 기존의 글들, 특히 『번역의 유령들』과 『번역하는 문장들』(2010, 2016, 문학과지성사)에 묶인 글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을 취하기로 한다. 1. 번역의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번역의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가? 번역가가 번역에서 감행하는 저마다의 선택은 자주 ‘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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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9-01
반창고 임승유 버리고 올게 네가 무거운 것을 끌고 나간 후에 나는 저녁을 가장 사랑했다. 저녁은 무겁고 무엇보다도 전부였기 때문이다. 어떤 색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네가 들어와 환하게 드러난 자리를 쓸고 닦는 동안 손가락으로 숲을 가리키면 숲은 더 들어가고 더 깊어져서 감자와 설탕을 먹었는데 그만 일어나 그런 말을 들으면 이제 감자가 한 알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여기서 나가려면 문을 열기만 하면 된다.
- 관리자
- 2017-09-01
타월 임승유 타월을 꺼냈다. 있은 지 한참 됐는데 쓸 데가 없어서 해변에 가지 않았고 오늘 아침에 꺼내 놓은 새 것 냄새가 났다. 오래된 냄새도 함께 났다. 오래 생각하면 오래 있게 될 거야. 어제 뜬 태양이 오늘 또 떠서 밝고 환하고 부드럽고 부피가 있으며 흡수력이 뛰어나므로 언제 끝낼지 모르는 언덕처럼 두 다리를 끌어당겨 한쪽으로 돌아누우면 언덕은 완만한 언덕 언덕을 넘어서면 멀리 해변이 보였다.
- 관리자
- 2017-09-01
[단편소설] 하기, 되기, 하기 이상희 1 “판다라고요?” 재오는 커다란 눈을 느리게 끔뻑이면서,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불안한 자세로, 비명을 지르듯이 말했다. 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재오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는데, 그것은 어떻게 판다일 수 있나, 라는 불신보다는, 판다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막막함 같은 것에 가까웠다. 재오가 계발원을 찾은 것은 노량진 일대에 뿌려진 광고 전단 덕분이었다. 합격을 원하는 자, 내면의 시체를 깨워라. 재오가 그 전단을 받은 것은 9급 공무원 시험에서 세 번째로 불합격 통보를 받은 지 며칠이 지나지 않은 때였다. 재오는 불합격의 이유를 알려고, 그래서 내면의 시체든 뭐든 끌어안으려고 이곳에 오긴 했지만, 판다라는 말을 들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전형적인 판다입니다. 거울을 보세요. 둥글고 커다란 몸에, 눈 주위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죠? 또 성생활이 활발하지 않고, 사교적이지 않은 성향에…… 당신이 판다라는 증거는 무수히 많습니다.” 원장은 안경을 고쳐 쓰고 판다를 쳐다보듯 재오를 쳐다보았다. “그건 수험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 것 같은데요. 살도 찌고 다크 서클도 내려오고…….” 재오는 어떻게 해서든 판다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모든 수험생이 당신 같은 판다는 아니지요.” 원장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말했다. 재오는 수치심을 느꼈다. 지방대를 나와서 취업에 실패하고 공무원 시험에 떨어진 것도 모자라서 판다라니. 재오는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좌절할 것 없습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죠? 어떤 의미에서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판다가 되어야 합니다. 축복받으신 거예요.” 원장은 계발원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판다다운 지망생일수록 합격 가능성이 높으며, 공무원 중 상당수가 판다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따라서 정말 판다가 된다면, 비로소 합격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원장은 재오에게 계발원 생활을 처방했다. 재오는 자신의 신체를 타인에게 양도하는 계약서에 서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입원 서류에 사인을 했다. “계발원 생활을 처방받은 원생들은 예외 없이 3단계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합니다. 1단계는 진정한 자신이 되기 위한 일상적인 ‘실천’이고, 2단계는 미래에 도래할 자신의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그려 보는 ‘명상’이며, 3단계는 정체성을 찾기까지의 방황을 고백하고 자신을 공중에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3단계 프로그램을 수료하고 나면, 원생들은 꿈꾸던 자신으로 완료됩니다. 재오 님의 경우에는 판다가 되는 것이죠.” 원장은 302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고, 고개를 홱 돌렸다. 원장의 뒤를 따르던 재오가 놀란 듯 제자리에 멈추어 원장을 쳐다보았다. “물론
- 관리자
- 2017-09-01
자하문 밖 조용미 윤동주 하숙집을 지나 박노수 미술관을 지나 수성동 계곡으로 올라간다 서울의 한 부분을 내려다본다 우리는 사대문 안에 있다 비해당 집터 있던 곳이라고, 인문학적이고 문제적 인간 안평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 한다 마치 그가 나의 오랜 연인이었던 것처럼 말한다 그의 글씨와 그림과 고뇌에 대해 시냇물처럼 소곤소곤 많은 말을 쏟아낸다 컴컴한 북악을 바라보며 내 이야기를 듣는다 아무래도 사대문 안이 좋겠다고 한다 우리는 자하문 밖에 있다
- 관리자
- 2017-09-01
일요일 조용미 일요일은 나란히 앉아 있다 각자 비스듬히 앉았다 우연히도 다른 장소의 같은 시대에 산다 한 접시에 붙어있는 계란프라이 두 개를 정확하게 반반씩 나누어 먹는다 커피와 녹차를 마신다 일요일은 둥근 테이블에 앉아 오래 책을 읽는다 소리 나지 않게 문을 닫았다 조용하게 손을 씻었다 문 밖과 문 안에서 잠시 보았다 일요일은 눈앞에 자꾸 보이는 슬개골을 만져보게 된다 얼굴은 보지 않게 된다 자연스러운 일요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움직일 때마다 문 안과 문 밖에 서 있게 된다 다른 장소의 일요일로 이동한다 서걱서걱한 일요일 송곳니 같은 인수봉을 바라본다 철학이 없는 일요일이 계속된다
- 관리자
- 2017-09-01
[단편소설] 거짓말게임 강지영 피디 님은 후레시맨 기억하세요? 역시, 그럴 줄 알았다니까. 팔공 년 원숭이 띠면 저랑 갑이었네요. 저는 변신로봇이나 요술봉 휘두르는 미소녀보다 후레시맨을 훨씬 좋아했어요. 사실 제가 그 다섯 용사 중 한 명이거든요. 거봐, 역시 안 믿으시네. 세상에 이런 일이 피디쯤 되면 산전수전, 볼꼴 못 볼꼴 다 겪으셨을 텐데 뭘 이 정도로 그렇게 놀라세요? 어차피 떠날 생각이니까 다 털어놓는 거예요. 후, 더운데 맥주 한 캔 할까요? 드세요, 딱 한 잔만. 마시고 모르는 남남처럼 헤어지는 겁니다. 진짜 후레시맨이 맞냐고요? 맞다니까 그러시네. 모든 슈퍼히어로들이 그렇듯, 저도 변신 전의 스펙은 아주 심플합니다. 나이는 서른여덟, 백수에 돌싱이죠. 지금이야 허구한 날 구들장 등지는 신세지만 몇 년 전까지는 번듯한 직장도 있고 등허리에 스매싱 날려 줄 마누라도 있었습니다. 매월 10일이면 또박또박 통장으로 월급이 입금되고, 아내 몰래 사놓은 주식을 매일 조금씩 팔고 사는, 비트코인 시세에 가슴 조리는 평범한 사내였죠. 지금은 뭐가 달라졌냐고요? 직장이 사라졌으니 월급통장도 비었고, 그게 비어 가니 아내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내는 결혼할 때 혼수로 장만해 온 냉장고와 대형 텔레비전, 소파와 영국산 접시 세트를 트럭에 싣고 이악스럽게 제 뺨을 후려쳤습니다. ‘그래, 히말라야가 그렇게 좋든? 그 좋은 히말라야 가서 네팔 여자하고 애 싸지르고 오순도순 잘살아 봐라!’ 하며 말이지요. 그나마 손에 쥐고 있던 주식을 팔아 야금야금 지금껏 버티고 있지만 최근엔 아주 고무적인 변화도 생겼습니다.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쳐도 아깝지 않을 그 무엇이 곧 찾아온단 말입니다. 뭐긴요? 히말라야죠. 우리 옆집에서 제가 아파트 옥상에 로프 걸고 등반하는 거 보고 제보했다면서요. 돌아이라서 미친 짓 한 게 아니라 진짜 등반 연습이었다고요. 저 그렇게 실없는 놈 아닙니다. 히말라야는 이제 제 인생의 전부가 되었고 지금 네 명의 동료들도 짐을 꾸리고 있어요. 생각만 해도 주책없이 가슴이 설레고 눈물이 다 찔끔거리네요. 가긴 가네요, 히말라야. 동료들요? 당연히 있죠. 후레시맨은 원래 오총사잖아요. 우리 다섯은 같은 회사에 근무했습니다. 입사 시기도 비슷하고 서울 토박이다 보니 이래저래 한 덩어리로 뭉치게 된 친구들이죠. 근무시간 중에도 가끔 옥상에 올라가 커피를 마시며 짤짤이를 하고, 주식 배틀과 스타 배틀로 친목을 다지고, 없는 핑계 만들어 매일이다시피 술을 퍼마시는 그런 무리였죠. 직장 생활 무슨 낙이 있나요? 피디 님도 직장인이니까 잘 아시면서 뭘. 그렇게 죽고 못 사는 오총사가 한 날 한 시에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연봉에 불만이 있다거나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서는 아니었습니다. 우린 그럭저럭 현실에 만족했고 회사가 망하거나 그 비슷한 지경에 이르러 정리해고가 되지 않는다면 그냥 대리에서 과장 되고 과장에서 부장 되고, 그러다 한직으로 밀려나면 치킨집이나 하자고 술김에 도원결의까지 했으니까요. 우리가 어째서
- 관리자
- 2017-09-01
[비평in문학] ‘여성, 노동’같은 전통적인 주제에서 시작해 ‘문체, 주체’와 같은 비평 키워드나 ‘번역, 상호텍스트성’같은 문학적 키워드, ‘환상, 무의식’같은 인접학문 그리고 ‘빅데이터, 가상현실’같은 미래용어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문학의 키워드는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비평in문학]의 새로운 비평 기획입니다. 소통과 치유의 나르시시즘: 새로운 연대를 위한 가능성 김서영 1. 나르시스 칸타타: 연대의 가능성을 위하여 폴 발레리(Paul Valéry)의 「나르시스 칸타타(Cantate du Narcisse)」에서 나르시스를 사랑하는 님프는, 자신의 모습과 사랑에 빠진 나르시스의 모습에서 “물의 맑은 수의의 싸늘함(le froid du limpide linceul de l’onde)”1)을 느낀다. 귀찮게 구는 님프에게 역정을 내며 나르시스는 “그대는 나의 고독을 온통 더럽혀 놓았어(Vos avez corrompu toute ma solitude).”2)라고 말한다. 이것은 프로이트의 『나르시시즘 서설』3)을 정확히 요약하는 장면이다. 프로이트는 왜 이 논문의 제목을 서설(Einführung/introduction)이라고 지었을까? 나르시시즘에 관련된 본론을 집필하기에 앞서 서론적 해설을 썼다는 말일까? 그러나 프로이트 전집 중 나르시시즘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개진되는 작품은 이 논문 단 한 편뿐이다. 그렇다면 서설의 의미는, 어떤 내용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위해 나르시시즘이라는 키워드를 도입으로 삼겠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어떤 내용’이란 무엇일까? 물론 그것은 정신분석학의 체계 전체를 뜻한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 지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출발하는 중심이 바로 나르시시즘이다. 이러한 사유의 여정을 거치며, , ‘비평in문학’ 코너에서 “새로운 시대, 문학의 키워드는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게 되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나르시시즘’이었다. 이 글의 목적은 나르시스 신화에서 그리고 있는 자기애적 폭주와,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가 혁명적 유토피아의 이미지로 제시한 오르페우스와 나르시스의 긍정적 함의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어떻게 연동되어 있는지 밝히고, 그러한 이론 체계 속에서 정신분석이 오랜 비판들을 돌파할 수 있도록 조력하여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정신분석은 혁명의 시간을 사는 우리들에게 소중한 이론적 동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실천적 도구이다. 남근선망, 거세공포를 넘어 우리의 이야기는 나르시시즘에서 시작된다. 2017년 한국해석학회 제118차 춘계 학술발표회에서 강호숙은 「보수교단 내 성차별적 설교에 대한 여성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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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9-01
[단편소설]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임성순 운명은 뜻밖의 형태로 찾아온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랬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던 황금기가 갑자기 끝나버린 것은 어느 재벌의 비자금 수사 때문이었다. 특검이 출범하고, 일가의 상속문제가 세간의 관심을 끌더니, 끝내 안주인의 미술 창고가 하나 열렸다. 기자들이 몰려갔고,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였으며,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우르르 박스를 들고 나왔다.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그림을 소유했다는 그녀의 걸작 컬렉션이 일부나마 빛을 보았다. 그리고 팝아트 거장의 걸작 소유권을 놓고 서로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거창하게 출발해 유야무야 된 이 소동의 마지막은 미술계를 긴급 진단하는 기획기사로 장식되었는데 ‘이대로 좋은가.’로 시작되는 기획기사는 온갖 미학과 정치학, 팝아트의 역사 등등의 썰을 풀며 시작되었지만, 결국 핵심은 웃으며 눈물 흘리는 여자의 그림 가격이었고, 지금은 얼마나 뛰었을지 가격조차 알 수 없는 그 그림의 진짜 소유주가 누구인가에 대한 추측으로 마무리되었다. 아무리 읽어 봐도 이대로 좋다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미술계 말석에서나마 이름을 팔아먹고 살았던 내 돈줄도 그렇게 갑자기 막혔다. 예년 같았으면 갤러리가 문 닫을 시간에 비서와 함께 나타나 트럭째 그림을 싣고 가던 큰손들이 일제히 내 전화를 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는 말은 비슷했다. “알잖아. 요즘 분위기.” “이 사람아, 비 오는데 괜히 비 맞을 일 있나.” “내가 바빠서. 요즘 그림 볼 시간이 없어.” “창고가 꽉 차서…… 알잖아. 김 교수.”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순 없었다. “제 후배라서가 아니라 진짜 물건이라니까요. 아시잖아요. 제가 이사님한테 아무나 소개 안 하는 거.” “보장한다니까요. 딱 5년, 5년만 가지고 계시면 저한테 고맙다고 절하실걸요.” “이럴 때가 기회라니까요. 다들 이렇게 엎드려 있을 때, 과감하게 들어오셔야 나중에 재미 보시지.” 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전에는 개관 전날 밤 미리 와서 볼 수 없느냐, 도록만 보내주면 살 그림들 번호를 찍어 주겠다고 하던 이들이었다. 그들 모두 거짓말처럼 연락을 끊었고 4개월을 준비했던 후배의 첫 개인전은 그림 석 점도 채 팔지 못한 채 끝났다. 내가 나서서 기획하면 늘 완판을 해왔고 그것이 내 은밀한 자부심이었다. 그 모든 것이 고작 그림 창고가 한 번 열린 일로 처참하게 박살나 버렸다. 그렇다고 그 일가의 여주인에게 불만이나 원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였다. 사실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 상당수는 어떤 형태로든 그녀가 만들어준 것이기 때문이다. 고미술품에 대한 강렬한 수집욕을 자랑했던 그 일가의 창업주를 따라 미술계에 뛰어든 그녀는 현대미술에 대한 높은 안목과 그보다 더 대단한 지갑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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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9-01
유리 김정환 사탕처럼 달기 위하여 몸이 너를 향해 한 없이 줄어든다. 식물이 이렇게 사랑할 것이다. 당분이 다 빠져나간 것을 본 후에도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화가들이 이렇게 사랑할 것이다. 색 쓰고 색을 쓰며 온몸이 투명한 유리의 타자로 될때까지 사랑은 계속된다. 시인들이 이렇게 사랑할 것이다. 한 행보다 더 가는 몸의 마지막 남은 성가신 의미가 유리로 될 때까지. 누구든 무엇이든 사랑의 종말이 음악을 뺀 모든 것이다. 더 섬세하게 현악과 관악을 제외한. 성악과 타악이 좀 야하고 좀 무관하다, 유리의 통과와. 그 만리장성이라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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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9-01
새 김정환 나보다 더 강력한 근육이다. 나보다 더 이유가 분명한 부리다. 나보다 더 목적이 뚜렷한 시선이다. 나보다 더 불길한 운명이다. 나보다 더 엄혹한 중력이다. 그래서 어디에나 있는 새. 나 몸무게 없다. 연민 없이는. 한 천 년 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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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9-01
[serialization] 우리는 게임을 한다 -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 오리지널 염성진 Good Game 한국이 스타크래프트에 푹 빠졌던 때를 게이머라면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회상할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가 놓인 경기장에서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펼치던 선수들, 화려하게 펼쳐지던 게임 속 전투의 모습, 또 그것에 매료되어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꿈꾸는 아이들까지. 이러한 영향으로 한국 게이머들에게 ‘민속놀이’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한 스타크래프트가, 올해 여름 ‘리마스터’ 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리메이크가 원작을 기반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리마스터는 게임의 밸런스와 같은 내적 요소들을 수정하지 않고 그래픽이나 사운드 등을 현재 게임의 질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말하는데, 때문에 스타크래프트의 리마스터는 20년 가까이 된 스타크래프트의 역사를 존중한다는 뜻으로도 비추어져 올드 게이머들의 큰 지지를 받기도 했다. 바둑이나 장기 같은 장수 게임이 쉽게 변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면 스타크래프트가 리마스터 될 정도로 ‘재미있는 게임’이 된 데에는 어떤 비결이 있을까. 게임 자체의 높은 완성도는 물론이고, 대전 게임의 특성을 살려 생겨난 프로게이머 문화 등 많은 게이머들이 동의하는 이유들이 있겠지만, 오늘 나는 그 재미를 스타크래프트의 캠페인 모드, 즉 스토리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영어를 조금도 할 줄 모르던 어린 시절 컴퓨터에서 튀어나오던 낯선 말들은 무엇이었는지. 테란, 저그, 프로토스 세 종족이 광활한 우주에서 벌이는 일들이 리마스터라는 이름으로 나를 찾아왔다. 도망자들 스타크래프트는 플레이어가 자신 휘하의 세력을 키우고 전투를 하는 것까지 모두 실시간으로 컨트롤해야 하는 실시간 전략(Real-Time Strategy) 게임이다. 때문에 캠페인 모드는 플레이어가 각 종족이나 세력의 일원으로서 임무를 맡고, 그렇게 이야기에 직접 참여하면서 게임 캐릭터들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에피소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테란, 저그, 프로토스 순서로 플레이하게 되며, 플레이어는 우선 식민지를 상대로 폭정을 펼치는 테란 연합의 행정관이 되어 식민지 행성 마 사라를 공격하는 프로토스 외계 함대로부터 거주민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행성 현지의 보안관인 짐 레이너를 만나고, 행성을 습격하는 저그 무리와 조우하게 된다. 레이너는 공격받는 주민들을 위해 저그 기지와 감염된 테란의 건물을 파괴하지만, 지원군을 보내준다던 연합은 핵심 시설을 파괴했다는 이유로 레이너를 체포해 버린다. 마 사라를 향한 저그의 공세는 계속되고, 연합 역시 이 사태를 방관하는 중 ‘코랄의 후예’라는 극단주의자 단체의 대표 아크튜러스 멩스크가 생존자들을 탈출시켜 주겠다는 제안을 보내온다. 플레이어는 연합에게 무법자로 낙인찍힐 것을 각오하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멩스크의 계획에 협력하기로 한다.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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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9-01
[기획] 포에트리 슬램이란? 시를 쓴 후 이를 슬램의 형태로 표현하는 것.2차 대전 이후 시인과 래퍼들이 이를 세상을 향한 발화형태로 표현하기 시작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一 人 詩 爲 (일인시위) ‘고독사’ - Poetic Justice DNR 김경주 내 가슴엔 문신이 하나 있어 DNR(do not resuscitate)이라는 글씨야 의학용어로 심폐소생술을 거부한다는 뜻이야 내 심장이 멈추면 더 이상 날 살려 주지 말아 줘 멀리 있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이제 그만 해줘 나는 매일 밤 잠들기 전 화장을 하고 자곤 해 마지막 화장일지 모르기 때문에 곱게 하고 싶어벽에 돌아누워 화장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눈물을 흘려 어느덧 내 머리칼은 흰 폭설로 하얗게 변했어 이불 속에 누워서 삶이 가여워서 나는 웃곤 해 다시 아침이 온다면 살아서 웃음이 날 것 같아 열심히 삶을 속여도 늙는 건 못 막아열심히 삶을 속여도 늙는 건 못 막아 밤이면 발이 차가워지고 별이 차가워지고 눈물이 차가워지곤 해 내 쇄골은 빗물이 가득 고일 만큼 파였어 심장이 멈추어 자연스럽게 죽을 수 있다면 행운이야가장 인간다운 자연사라고 하니까 방구석에서 지내다가 죽어서 썩어 발견되긴 싫어 내 앞가슴의 문신을 읽어 줘 DNR do not resuscitate 열심히 삶을 속여서 여기까지 왔지만 이제 난 이불 속에 누워서 삶이 가여워서 웃곤 해아침이 온다면 살아서 웃음이 날 것 같아 DNR Kyung ju Kim There is a tattoo on my heart. It says DNR. In gastroterminology this means please do not engage in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If my heart stops beating please don’t try to save me. I don’t want to be a burden on my kids.Cures that prolong life have no meaning. I quit them. Before I go to bed I urinate. I don’t know if this will be my terminal urination, so when I pee I wish to pee beautifully.I turn toward the wall. Because I can’t pee, I cry. All of a sudden my hair has greyed into a blizzard. Hiding under the sheets, my life has gone to shit. I feel bad for myself so I laugh. If I live to see another day, what a joke. Even if you trick life, you can&rsq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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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9-01
모델수업 강정 * 나를 바라보는 당신의 눈 속에서 지난 밤 꿈을 본다 돼지와 박쥐가 함께 서성대는 목조 건물은 짓다가 말았거나 무너지다 만 형국이었다 당신 눈 속에서 그 풍경은 에메랄드 빛 광선으로 절멸하고 있다 * 나를 그리고 있는 당신의 손끝엔 담비 털로 만든 붓이 떨고 있다 다른 손엔 여러 색채를 한데 짓눌러 시간의 살점으로 뭉개버린 팔레트가 들려있고 당신의 입은 혼잣말을 연신 중얼거린다 북향 창으로 스민 빛이 쪼개지는 소리 같다 내 입가의 잔주름들이 당신에겐 빛의 거품처럼 보이나보다 * 캔버스 건너 하얀 면에 누가 들어서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당신은 알고 있을까 당신은 내 얼굴을 조목조목 뜯어보며 춤추듯 움직일 뿐, 나는 좀체 숨쉬기가 힘들다 고사 상에 오를 돼지머리라도 되려고 간밤 꿈이 그리 질척거렸던 걸까 박쥐가 훑고 간 목덜미를 당신은 자꾸만 이리저리 훑어보며 킁킁거린다 신의 사냥개의 먹이라도 된 기분, 캔버스 너머 벽면이 목숨 걸고 올라야 할 암벽처럼 죄어온다 * 얼마나 오랫동안 앉아 있었을까 시간이 가없는 수평으로 늘어져 팔레트 위 물감들이 색색의 구름으로 부푼다 그 더께 진 살점들을 붓으로 떠내어 당신은 서쪽을 향한 나를 동향의 공백 위로 옮겨 놓는다 그림자를 떼어 창을 가린 듯 사위가 급격히 어두워진다 핀 조명 받은 광대처럼 당신은 온몸으로 팔레트가 되어 당신만의 빛기둥 안에서 너덜너덜 춤춘다 * 전 생애의 절반이 한나절 만에 떼어져나갔다 이제 움직일 수 있고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다 당신은 캔버스를 마주보며 벽면 쪽으로 물러서고 나는 당신 앞에서 당신이 덧칠해놓은 내 살점들의 파동을 본다 어디 먼데를 홀로 다녀왔다가 한참 만에 마주한 거울 속 같기도 죽기 전에야 시야에 떠오르는 전 생애의 일그러진 잔상 같기도 하다 쌍욕과 순정마저 한 몸으로 으깨져 처음 보는 색조를 낳았다 얼굴을 더 가까이 대어본다 돼지똥 냄새와 박쥐울음소리가 넓적한 평면에 깊디깊은 동굴의 공명으로 몸속을 파고든다 * 당신에게 말 걸려 고개를 돌린다 배후엔 누더기를 걸친 해골이 음화처럼 너울거릴 뿐, 당신은 없다 전 생애를 삼킨 벽면만 짓다가 말았거나 무너지다 만 형국이다 그림에 손을 대어 본다 오래 전 아팠던 상처가 물컹물컹 손끝에 묻어난다 나는 나를 죽인 자를 죽인 자가 되어 있었다
- 관리자
- 2017-09-01
불을 껴안은 여인 강정 하반신이 차가워지면 무서운 이야기들이 생겨납니다 악마도 천사도 제가 만들었지만 정작 저는 저 자신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남자의 옷, 남자의 탈을 뒤집어썼으나 그 무엇을 사랑하려 할 때마다 상반신만 허공에 떠 보이지 않는 낮별을 찾아 떠돕디다 등이 뜨겁군요 머리에 들러붙은 불을 허리 아래로 내려 지상의 음험한 비밀들을 뿌리내리려 하고 들려줘선 안 될 이야기들을 꽃피우려하는 얼어붙은 하반신을 불태워주세요 썩은 잉걸처럼 흘러내린 머리털을 벗겨 빛나는 태양과 같은 비율의 원구를 되살려 주세요 오래 전 바다 속에서 활개 치던 유선형의 다리들이 불더미 속에서 다시 춤추게 하고 싶습니다 몸과 정신이 오로지 한덩이인 우주의 유충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화석이 되어서라도 명징한 과거의 징표로 오래도록 죽어 있고 싶습니다 하반신이 모두 타면 허리 위로는 저절로 불이 되어 태양의 흑점 속에 빨려 들어갈 겁니다 하나의 넋이 살다 갔다는 오래 전 소식은 이곳과는 전혀 다른 어느 태초의 밀림 속에 암갈색 양치식물로나 번성할 것인즉, 모두 불태워주세요 살아있었다는 흔적은 그저, 태양이 꺼질 때까지 불타고 있었다는 믿지 못할 소문으로나 떠돌게 놔두세요 하반신이 차가우면 무서운 이야기들이 다시 생겨납니다 몸의 빙하기를 적도의 끈으로 결박해 오래오래 불태워주세요
- 관리자
- 2017-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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