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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호 픽션 기술자들과 그들의 시대

  • 작성일 2018-03-01
  • 조회수 943

기획의 말

2018년 커버스토리는 <문학과 일>입니다. 문학 작품에 대한 감상을 이미지로 다시 되새기는 작업 속에서 폭넓은 독자층과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픽션 기술자들과 그들의 시대

서희원

독일관념론의 대가 헤겔은 『법철학』에서 공동체의 윤리를 ‘인륜(人倫)’이라고 부르면서, 인륜은 가족, 시민사회, 국가라는 세 가지 단계를 거치며 변증법적으로 발전해 간다고 주장하였다. 헤겔에게 국가는 특정한 문화의 발전 혹은 세계정신이 구체화된 최종적 단계의 것으로, 개인은 보편적 공동체인 국가와 대립하지 않고 그 안에서 자유를 실현하며 또한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완전하게 보장해 주는 토대가 된다고 하였다. 자신의 관념 속에서 안락하게 자급자족할 수 있었던 헤겔은 『정신현상학』의 어딘가에 자신만만한 어조로 이렇게 적었다. “진리는 전체이다(Das Wahre ist das Ganze/The whole is the true). 그러나 전체는 그 발전을 통해 자신을 완성하는 본질이다.”

자신이 가진 사유와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나치 치하의 1930년대 독일에서 지적 활동을 전개할 수 없었던 아도르노는 망명지였던 미국에서 암울한 지식인의 내면에 반영되는 짧은 상념을 『한줌의 도덕』이란 책으로 묶어내었다. 이 책에서 아도르노는 헤겔의 변증법적 사유와 역사적 총체성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이렇게 쓴다. “전체는 허위이다(Das Ganze ist das Unwahre/The whole is the false).”1) 아도르노에게 변증법은, 비록 그 사유의 시작이 지배계급의 철학에 대한 비판과 저항에서 출발했을지라도, 언제나 성공적으로 공세를 역전시키는 논증의 기술로, 지배의 수단이었으며 가진 자들에 봉사하고 전체를 변호하는 형식적 기술로 판단되었다. “변증법의 진리나 허위는 방법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과정에서 그 의도에 있다.”2)라는 아도르노의 지적은 정확하다.

1) T. W. 아도르노, 『한줌의 도덕_상처입은 삶에서 나온 성찰』, 최문규 옮김, 솔, 1995, 74쪽.
2) 아도르노, 같은 책, 344쪽.

우리 시대의 탁월한 이야기꾼이며, 부드럽고 유머러스한 문장 곳곳에 단단하고 날카로운 뼈가 있어, 넋 놓고 읽을 수 없는 지적인 소설을 쓰는 이기호라면 헤겔과 아도르노의 이 문장을 이렇게 받아칠 것이다. “전체는 허구이다(The whole is the fiction).” ‘혁명과업을 완수’하고 ‘조국근대화’를 위해 황소처럼 일하겠다는 박정희와 ‘정의사회구현’을 외쳤던 전두환, 그리고 ‘국민성공’을 외쳤던 이명박, ‘국민행복’을 속삭였던 박근혜 정권의 시간을 직간접적으로 통과한 상식적인 한국인이라면 “전체는 허구이다.”라는 이 문장에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의 편린들이, 억압 받은 인간들의 고통이 담겨 있다는 사실에 동감할 것이다. 되돌아보면 한국의 근현대사는 모두 거대한 허구에 불과했고, 모든 진실은 억눌린 인간들의 고통 속에만 있었다.3) 그 순간에 모든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이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없다고 외쳤던 그 많은 국가적 담론들 중 상처 입은 인간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회고(回顧)를 정면으로 받아낼 수 있는 것이 과연 몇이나 될 수 있는가?
중요한 것은 그때는 거짓이었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의 진실은 그때의 그것이 진리이고, 허위였다는 판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 그 자체가 고안되고 만들어지는 거대한 허구의 과정이라는 점에 있다. 좀 더 비극적인 것은 세계가 하나의 ‘픽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하여도 인간은 ‘픽션’의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 1999)>의 메시아 ‘네오’가 전지전능한 힘을 갖고 있다고 하여도 컴퓨터가 만든 가상 세계를 통한 매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파괴하여도 시스템의 에이전트(다른 말로 하자면 매트릭스의 공무원)인 스미스 요원이 다시 회귀하는 것처럼, 우리가 세계에 접근하려면 인간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언어적 구축물, 즉 ‘픽션’에 의한 매개를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3) 김수영이 「거대한 뿌리」에서 거친 어조로 말했던 ‘국가/개인’, ‘역사/문학’의 대조가 이와 다르지 않다. “비숍 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은밀도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 치안국/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 일본영사관, 대한민국관리,/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김수영, 「거대한 뿌리」, 『거대한 뿌리』, 민음사, 1995, 99~100쪽.

이기호가 2014년에 출간한 장편 『차남들의 세계사』는 반공을 국시로 하는 국가 이데올로기를 창안하고 구체화했던 픽션 기술자(fictioneer)들과 이들이 날조한 서사의 주인공으로 선택되어 간첩으로 전락하는 인간들의 비참한 운명을 담아내고 있다. 1979년 12월 12일 쿠데타에 성공하고, 1980년 9월 1일 대한민국의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전두환은 정권이 가진 빈약한 지지기반을 다지기 위해 ‘공포’를 광범위하게 조성한다. 멀쩡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불량배가 되고, 빨갱이가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기호의 표현에 따르자면, “국정 목표가 수사였고, 국정 지표가 체포였던”4) 그런 “누아르”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1980년 8월부터 1981년 1월 사이, 우리의 누아르 주인공(전두환을 지칭한다 ― 인용자)이 영장 없이 체포한 사람은 모두 6만 755명이었다.(하나, 일단 잡아들이고 본다.) 그중 3,252명은 재판에 회부했고(둘, 죄를 만든다.) 3만 9742명은 재판 없이 그냥 삼청교육대라는 목공 체조 전문 교육 시설로 보내버렸다.(셋, 죄를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게 만든다.)”(16쪽) 일단 잡아들인 후 죄를 만들고, 벌을 받으며 죄를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역설의 사법 체계는 제5공화국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에서 얼마든지 예시를 들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끔찍하게 느껴지는 사실이다. 이것은 카프카의 장편 『심판』에 나오는 재판 과정이나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하얀 여왕의 법정과 다르지 않다. 앨리스는 자신이 경험한 ‘이상한 나라’보다 더 괴상한, 모든 것이 뒤집혀진 ‘거울 나라’의 여왕에게 자신이 도착한 곳의 체계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왕의 시종이 있어. 지금 벌을 받아서 감옥에 갇혀 있지. 재판은 다음 주 수요일에나 열릴 거야. 당연히 범죄는 가장 나중에 저질러지지.”5) 앨리스는 여왕에게 죄 없는 인간이 받는 처벌의 부당함을 항변하지만 여왕은 앨리스에게 앞선 처벌을 통해 사라지는 범죄의 가능성이 훨씬 낫다고 말한다. “하지만 네가 벌 받을 일을 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좋은 거야. 좋고말고, 그럼 좋고말고, 좋고말고. ”6)

4) 이기호, 『차남들의 세계사』, 민음사, 2014, 16쪽. 이후 이 책의 인용은 간략한 쪽수를 인용문 옆에 병기하겠다.
5)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거울 나라의 앨리스』, 최인자 옮김, 북폴리오, 2005, 281쪽.
6) 루이스 캐럴, 같은 책, 282쪽.

한국의 권력자들도 여왕처럼 말한다. “그게 더 좋은 거야. 좋고말고, 그럼 좋고말고, 좋고말고.” 그리고 그 밑에서 일신의 영달을 도모했던 사법기관 종사자들은 기꺼이 공범이 되기를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충성을 보였다. 이기호의 표현처럼, “검찰은 검찰대로, 경찰은 경찰대로, 안기부는 안기부대로, 보안사는 보안사대로, 서로 경쟁하듯 수사하고 체포하느라 구치소와 교도소는 늘 포화 상태였”(15~17쪽)다. 관료주의 기구의 종사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권력자의 “그게 더 좋은 거야. 좋고말고.”라는 말에 “좋은 게 좋은 거죠.”라고 화답하며 거대한 허구를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그들에게 수치심과 부끄러움은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는, 죄 없는 사람들을 죄인으로 날조하는 끔찍한 일을 자행하고 있다는 양심의 고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남들 다하는 일을 다른 사람만큼 수완 좋게 하지 못한다는, 자신의 능력을 이 조직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 승진도 못 하고 있다는, 직업적 자책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현대 사회의 비극을 만들어내는 관료주의적 폐해를 비판하며 이렇게 말했다. “공무원들은, 자기네 나라의 통치자가 우연히 꿈꾸게 된 나라의 운명이 어떤 것이든 이를 추구할 가장 효율적인 수단을 찾을 수 있다고 자부한다. 때로는 문화적 광명의 추구에 뿌리를 두고 있을 수도 있고, 제국주의적 정복, 진정으로 평등한 사회질서의 추구 또는 성경 율법의 적용에 바탕을 두고 있을 수도 있다.”7)

7) 데이비드 그레이버, 『관료제 유토피아』, 메디치, 2016, 67쪽.

『차남들의 세계사』는 “이 땅의 황당한 독재자 중 한 명인 전두환 장군”(11쪽)이 “문화적 광명의 추구”도, “제국주의적 정복”도, “진정으로 평등한 사회질서의 추구”도, “성경 율법의 적용”도 아닌 ‘빨갱이’ 없는 ‘정의사회’를 꿈꿨던 시절과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공무원들이 불철주야 땀 흘려 일하던 시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서사의 중심에는 1982년 3월 18일에 있었던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보다 정확히는 사건을 주도한 문부식과 김은숙이 “도피하고 있던 원주 카톨릭 문화관에서 담당 신부인 최기식 신부의 권유를 받아들여 자수”(18쪽) 한 이후 수사 당국이 관련자를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원주 지역에서 자행한 광기 어린 보복이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의 이름과는 달리 진정 운이 없는 친구”(21쪽)였던 소설의 주인공 ‘나복만’은 작은 교통사고 때문에 원주경찰서에 들렀다가 경찰 “실무자의 단순한 실수이자 착오이자 오타”(39쪽)로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동조자 명단에 들어가게 되고, 이를 유심히 바라보던 안기부 과장 ‘정남운’에 의해 거대한 간첩 사건의 주인공으로 전격 발탁이 된다. 정남운이 근무하는 ‘안기부’에 대해 이기호는 이렇게 설명한다. 1961년 박정희에 의해 창설된 ‘중앙정보부’가 1981년 전두환에 의해 그 명칭이 ‘안전기획부’로 바뀌었고, 그 업무 또한 ‘정보 및 보안 업무의 조정 감독 기능’에서 ‘정보 및 보안 업무의 기획 조정 기능’으로 변경되었다고.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면…… 예전에는 그냥 ‘감독’만 하던 것을 아예 ‘기획’부터 하자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주어진 로케이션 안에서만 정보를 캐내려 하지 말고, 로케이션 자체를 새롭게 만들어버리라는 말씀, 정보를 아예 만들어버리라는 말씀.(더 넓게는 평론을 하지 말고 창작을 해서 교도소를 채우라는 뜻 되겠다.) 그러기 위해선 더 많은 수갑과, 더 많은 선글라스와, 더 많은 예산과, 더 많은 각목과, 더 많은 상상력이 필수적일 터.”(177쪽)

고아이자 문맹이며, 자신과 똑같은 처지의 애인 김순희와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만을 소망하고 있는 택시기사 나복만을 정남운은 “더 많은 수갑과, 더 많은 선글라스와, 더 많은 예산과, 더 많은 각목과, 더 많은 상상력”을 동원해 방대한 간첩 서사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낸다. 정남운이 만든 픽션에 따르자면 나복만은 1953년 월북한 후 대남 공작원이 된 아버지와의 운명적인 만남, 아버지의 의식화 교육을 통해 깨닫게 된 미제의 신식민지인 남한의 모순, 미군 부대와 원주 인근 군부대에 대한 정찰, 자신과 같은 ‘형제의 집’ 출신 고아들에 대한 세뇌 공작과 이적 단체 결성, 월북과 노동당 입당, 원주 지역 지식인들과 연계한 혁명 전선의 구축 등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특급 간첩이다. 비록 그가 단 한 번도 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고, 몇몇 단어 외에는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까막눈에 불과할지라도 정남운은 너무나도 끔찍한 폭력을 통해 그를 첩보영화에나 나올 법한 걸출한 스파이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한 선과 악의 대립구도로 나복만과 정남운을 형상화하지는 않는 이기호의 방식이다. 이기호는 정남운을 가정에 충실한 가장이자 자애로운 아버지로, “모범적이고 예의 바른 시민”(180쪽)으로, 말 그대로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는 “평범하고 특색 없는 서른여섯 살의 옆집 아저씨 모습”(180쪽)으로 서술하고 있다. 정남운은 “고등학교 때부터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100번도 넘게 읽”고, 대학 시절 문학회 활동을 하며 “여러 편의 소설을 썼”(182쪽)던 문학도이며, “개봉동에 있는 야학에서 국어 교사”(183쪽)로 일하기도 했고, 공장으로 “위장 취업”(183쪽)을 했던 이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세상에서 출세하고 남들보다 더 잘살고 싶다는 그의 열망을 위한 한낱 도구에 불과했다. 위장 취업 때문에 연행된 “중앙정보부 이문동 청사”(183쪽)에서 정남운은 자발적으로 자신이 속했던 모든 조직의 동료들을 밀고하고, 이 일을 계기로 중앙정보부에 취직하게 된다. 그리고 정남운은 자신이 가진 문학적 소양을 적극적으로 발휘해 “1976년부터 1979년 사이 중앙정보부 국내 정보반에 소속되어 가히 경이적이고 환상적인 실적”(180쪽)을 거두게 된다. “그 기간 동안 그가 ‘작살낸’ 구로 공단 노조 숫자가 모두 스무 곳에 달하고, 불법 연행 및 구금한 노조원 수가 어림잡아 300여 명에 달”(181쪽)했다.

이기호의 표현처럼 정남운은 화목한 가정의 자애로운 아버지이며, 주변 사람들의 좋은 친구이고 이웃이다. 그리고 우리는 얼마든지 그런 사람을 주변에서 찾을 수 있다. 누군가는 김기춘이나 우병우를 떠올릴 것이고, 누군가는 조윤선을 생각할 것이며, 누군가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그와 흡사한 관료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것이다. 영화 <1987>을 본 사람이라면 박처원 치안감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정남운’이 ‘바로 그 사람 하나’가 아니라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끝없이 분열하는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처럼 우리 시대의 너무 많은 사람들이 국가의 픽션을 한 조각씩 써내려갔다. 또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런 픽션에 매혹되어, 장터의 이야기꾼 앞에 앉은 아이들처럼 넋 놓고 들었고, 이에 열광했다. 이기호는 국가의 픽션을 쓴 사람과 이를 아무런 의심과 고통 없이 들은 모든 사람을 “괴물”이라고 호칭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그들에겐 나복만의 고통 또한 다음에서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한, 하나의 스토리에 지나지 않았다. 고통은 하나의 도구일 뿐. 고통은 하나의 과정일 뿐……. 그래서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들어 보아라. 정작 말하기 어렵고, 쓰기 힘든 것은 고통 그 자체이다. 스토리를 멈추게 하고, 플롯을 정지시키는, 그런 고통이 사라진 이야기란, 그런 고통을 감상하는 이야기란, 사파리 버스에서 내려보는 저녁놀 붉게 물든 초원과 아무런 차이가 없지 않은가!”(238쪽) 영혼 없는 픽션 기술자들의 시대는 그 픽션을 소비하는 대중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모든 것이 날조된 허구의 사회에서 진실된 개인의 삶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국가가, 역사적 총체성이, 필연성과 보편성을 토대로 하고 있는 시민 공동체의 이상이, 모두 허위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진실의 조각들을 찾을 수 있는가? 아도르노는 발터 베냐민이 「역사철학테제」에서 지금까지의 역사는 승리자의 관점에서 기술되었고, 이제는 이 역사의 결을 거슬러 패배자의 관점에서 씌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던 말에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인식은 일련의 승리와 패배의 불행한 연속성을 서술해 내야 하지만 동시에 그와 같은 승리와 패배라는 역동 관계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 도중에 머물러 있던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 말하자면 변증법에서 벗어난 버려진 잔여물과 맹목적인 부분들에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 무력하게 비본질적으로, 동떨어진 채, 우습게 보이는 것이 패배자의 본질이다. 지배적인 사회에 의해 발전된 잠재력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운동 법칙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 바로 그 지배적인 사회를 넘어서는 힘이다. 이론은 비스듬한 것, 불투명한 것, 붙잡을 수 없는 것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그러한 것들은 그 자체 시행착오적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역사적인 역동 관계의 계획을 교묘하게 좌절시킬 수 있기 때문에 결코 노화되지 않는다. 그런 것이 바로 예술에 잘 나타난다.”
진실은 영혼 없는 픽션 기술자들이 날조해 냈던 국가의 거대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 속에, 국가의 폭력을 잊지 않기 위해 나복만이 평생을 간직했던 “발뒤꿈치 상처”에서 떨어진 “왼발 오른발, 각각 가로 21센티미터, 세로 11센티미터 정도 크기의 딱지”(239쪽)에 편린처럼 담겨 있는 것이다. 예술은 잘 보이지 않는 고통과 패배의 조각들을 모아 한 시대의 진실을 그려내는 것이다. 그렇다. 그런 것이 바로 『차남들의 세계사』에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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