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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태어났어요

  • 작성일 2024-04-01
  • 조회수 344

   방금 태어났어요 


이시유


   30분 전에 태어났어요 보채지 말아요 아직 사람의 말은 몰라요 망아지처럼 히잉 히잉 우는 게 전부예요 당근이 좋아? 황금이 좋아? 묻는다면 둘 다 싫어요 


   맑은 망아지의 눈망울로 히잉거리는 것 나의 특기 와그작 당근을 삼키며 머리에 왕관을 쓰는 것 나의 특기 그치만 아아 30분 전에 태어났는걸요? 선도 악도 마땅히 삼켜 봐야 하는걸요? 지구의 역사를 100년으로 축소한다면 98년쯤 지나서야 인류의 등장 그러니까, 인류 따윈 지구의 막내뻘 갓 걸음마를 띤 애새끼 오오 마땅히 죄도 빛도 누려 봐야 하는걸요? 


   부엉이에겐 착한 부엉이 나쁜 부엉이 없고 개새끼에겐 죄악의 개새끼 구원의 개새끼 따로 없다지만 오오, 30분 전 태어난 그것에겐 테레사의 그것과 흡혈귀의 핏줄 교묘히 섞인 DNA 흐르고 있는걸요? 누구의 탓도 아닌걸요? 본시 그러한 성정 안고 태어난 종속들 지나친 죄책감 필요치 않은걸요? 


   갓 태어난 너 걸맞게 절망하고 번뇌하고 기뻐하고 사람의 말 따윈 알 게 뭐요 히잉 히잉 몸부림치면 되는걸요? 그게 우리의 봄인걸요? 뭐가 되고 싶어? 자라서 뭐 될 거야? 따위의 지루한 질문들 (-적어도 너,는 안 될 거예요) 천진하게 노래하면 되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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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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