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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

  • 작성일 2023-04-21

첼로

채길우

전통의상을 차려 입은 고산지대 아낙은

말도 통하지 않는 여행객들에게

자신이 키운 돼지를 팔려고 했다.

피부병 걸린 껍질이 들고 일어나

문드러지고 변색된 돼지는

허약하고 작았지만

아낙은 튼실하고 문제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앞발을 한데 붙들어 품에 들어올린 후

양 무릎으로 돼지 허리를 죄어 괬다.

아낙이 돼지의 희멀건 배를

한 손으로 쓰다듬어 주고

돼지는 날선 비명이 드리운

그림자만큼 긴 울음을 터뜨려

거품 문 입으로부터 공명하듯

침이 질질 흘러내리는 동안

햇살을 등지고 서서

현이 끊어진 채 풀풀 날리는

빛과 털과 텁텁한 공기

이상하리만치 아름다운 이국적

선율의 여러 가지 절망들이

눈부시도록 투명해

먼 나라의 허기와 영원까지도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처럼

낮고 오래 지속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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