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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

  • 작성일 2024-02-01
  • 조회수 380

   키메라

   - 캔버스에 피, 49cm x 175cm x 60kg


윤보성


   또 빨가벗겨진 채 버려졌구나

   온몸엔 촛농이 굳어져 있었지

   불꽃의 명암에 따라 보호색은

   예복과 상복 사이로 갈마들지


   애초에 성기가 없는 존재에게 

   인간의 금기는 기이할 뿐인데

   액자에 맞춰 잘려 나가고 있어  

   연출된 건 페티시의 복제품들

 

   빈 도화지를 사랑하려 했으나

   세상엔 흰색 연필만 남아 있네

   지우고 그려 본들 똑같을 테니


   광적으로 울고 웃는 실루엣들 

   악몽에서 깬 자화상이 다가와

   빛을 헌화하니 몽땅 타버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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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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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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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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