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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

  • 작성일 2024-03-01
  • 조회수 401

   하오 


김선재


   신발 끈을 고쳐 묶고 일어서니 

   저녁이었다 


   울던 까마귀들이 날아올랐다 

   나무 계단이 

   나뭇가지를 닦으며 

   내려갔다 


   아무도, 라고 말하면 길어지는 그림자 

   길어져 봤자 그림자 

   기다려 봤자 


   그림자 


   눈코입을 지우고 돌아섰을 때 


   풀숲에는 바스락거리는 숨과 검은 수면을 떠다니는 입과 순서를 기다리는 절벽이 차례차례 떨어지고 있다 상상하기 좋았다 귀는 맨 마지막에 닫히니까 모자는 남겨 두고 


   손이 발이 되고 

   덤불이 깃털이 되고 

   사나운 돌멩이가 가뿐하게 떠오르면 


   사방이 길은 아니고 

   버려진 우산처럼 우두커니   


   접힌다 

   내려온 만큼 

   가파르게 기우는 

   어둠 속에서 


   밤새들이 내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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