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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노래자랑

  • 작성일 2024-02-01
  • 조회수 1,967

   전국노래자랑


이예린


   1.


   오늘 시애는 다시 이십대가 되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잠이 덜 깬 채로 거울 속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어제 본 뉴스가 떠올랐다. 오늘부터 만 나이가 도입된다고 했다. 다음 달이 시애의 생일이므로 겨우 보름 남짓일 뿐이었지만 어쨌든 이십대였다. 이십대라니,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고, 사실 그건 서른이 되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시애뿐 아니라 갑자기 한두 살씩 어려진 사람들 모두가 같은 마음이겠지. 모두 다 같이 어려지니 대단한 이점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도 시애는 까먹지 않으려 애쓰듯 새로 부여받은 제 나이를 몇 번씩 곱씹어 보았다. 그렇게 하면 완전히 다른 마음가짐이 되어 새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는 것처럼. 

   이불을 개고, 짧게 스트레칭 하려는데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애는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일곱 시도 안 되었는데······. 어젯밤 엄마는 시애에게 일찍 일어나 할머니 아침 식사 좀 차려 드리라고 신신당부했다. 시애는 알았다고 대답하긴 했지만, 불가능하리라는 걸 알았다. 할머니는 언제나 꼭두새벽에 일어났고, 단둘이 있을 때면 할머니가 시애의 식사를 챙겼다. 평소에 전적으로 엄마에게 주방을 맡기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할머니에게는 그게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마 시애가 할머니보다 일찍 일어나 식사 준비를 했더라도 잠귀가 밝은 할머니에게 칼과 도마를 금세 빼앗겼을 것이다. 무엇보다 할머니는 시애가 주방에 들어서면 불안해했다. 목이 말라서 냉장고 문만 열어도 무얼 하느냐고 추궁하듯 캐물었다. 그러면 시애는 ‘물 마시려고요.’ 하고 이유도 모른 채 자꾸 변명했다. 할머니의 그런 태도는 손녀를 아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자신의 역할과 영역을 빼앗길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에 가깝다고 시애는 늘 생각했다. 

   할머니는 압력밥솥 앞에서 주걱을 들고 서 있었다. 시애가 나오자 조급해졌는지 재빨리 밥솥 추를 빼는 게 보였다. 뚜껑에서 김이 요란하게 올라왔다. 시애는 아침 인사를 한 뒤 냉장고로 향했다. 엄마가 만들어 둔 밑반찬들을 꺼내 하나씩 식탁에 올렸다. 수저도 나란히 놓고, 정수기에서 물을 떠다가 할머니 자리에 두었다. 국은 없었다. 엄마는 시금치를 넣고 된장국이라도 끓여먹으라고 했지만, 할머니가 그냥 먹자고 해서 냄비를 꺼내려다 도로 집어넣었다. 시애는 평소 아침을 먹지 않았다. 그러나 할머니와 단둘이 있는 날엔 어쩔 수 없었다. 할머니 혼자서 드시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이것 좀 먹어 봐, 엄마가 맛있게 무쳐 놨어.” 

   할머니는 자꾸만 나물을 먹어 보라며 반찬 통을 시애 쪽으로 들이밀었다. 대부분 당신이 하천가나 뒷산에서 캐온 것들, 혹은 시장에서 싸다며 한보따리씩 사온 것들이었다. 시애는 알겠다고 대답하며 열심히 집어 들었지만 쉬이 넘기지는 못했다. 참나물, 취나물, 미나리, 방풍나물에 씀바귀······ 한 번 데친 뒤 통깨 마늘 참기름 국간장과 참치액, 혹은 고추장 양념을 넣고 버무린 초록색 이파리는 시애에겐 죄다 비슷해보였다. 제철 나물이 아무리 맛있다지만, 몇 주 동안 냉장고를 오간 반찬들에 처음 만들었을 때의 온기와 감동은 없었다. 유리용기 표면에 맺힌 물방울만 봐도 차갑고 시들시들한 식감이 느껴졌다. 생기라고는 조금도 없는 이파리들을 보자 안 그래도 없던 식욕이 완전히 사라졌다.

   “시애 너 씀바귀 좋아하잖아, 그치? 어릴 때부터 참 잘 먹었어. 그 쓴 걸.”

   시애는 나물을 열심히 씹으며, 그리고 오늘따라 씹는 소리가 지나치게 큰 것 같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애는 나물을 좋아했고 씀바귀도 물론 잘 먹었지만, 그러나 다른 반찬보다 특별히 더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어른들이 신기해하니까 일부러 과장되게 잘 먹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어린 시애에게는 그런 게 몇 가지 있었다. 칭찬 받고 싶어서,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취급을 받고 싶어서, 짐짓 어른스러워 보이려고 애쓰던 일들. 

   “오늘 전국노래자랑 보러 가실래요?”

   반의 반 공기만 퍼놓은 밥을 겨우 다 비우고서 시애는 입을 열었다. 할머니는 젓가락으로 참나물을 한 움큼 집어 들다가 시애를 마주 보았다. 쩝쩝거리는 소리가 멈췄다. 

   “너는, 가고 싶어?”

   할머니의 유구한 화법이었다. 질문한 사람에게 똑같이 되물어서 본인의 의중을 절대 내비치지 않는 애매한 화법. 사람을 헷갈리고 지치게 만드는 화법. 가고 싶으냐고요? 당연히 전 별로 안 가고 싶죠. 좋아하는 프로그램도 아니고, 초대가수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걸요. 그러나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고, 시애는 할머니 가신다면 저도 같이 갈래요, 하고 에둘러 말했다. 할머니는 여전히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번 주말에 동네에서 전국노래자랑 공개녹화가 진행된다는 정보를 알려 준 건 엄마였다. 할머니 모시고 한번 다녀오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달리 할일도 없던 시애는 그러겠다고 했다. 프로그램에는 조금의 흥미도 없었지만 할머니를 모시고 어딘가 함께 다녀오는 건 좋은 이벤트일 것 같았다. 전국노래자랑이라니, 오랜 팬이라면 놓치고 싶지 않을 기회일 터였다. 할머니가 일요일 열두 시만 되면 어김없이 텔레비전 앞으로 가 9번 채널을 튼다는 걸 모르는 가족은 없었다. 시애가 기억하기로는 유치원도 다니지 않던 때부터였으니까, 아마 그보다 훨씬 오래전, 어쩌면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애청자였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할머니는 좋다 싫다 특별한 반응 없이 뚱한 표정이었고, 시애는 좀 답답해졌다. 할머니의 화법에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보러 가요, 할머니. 전국노래자랑을 언제 또 직접 보겠어요. 결국 먼저 말을 꺼낸 건 시애였고, 그래 그럼 가자, 할머니의 대답은 그게 전부였다. 어쩐지 시애가 할머니보다 더 가고 싶어 하는 모양새가 된 것 같았다. 가고 싶기는 한 걸까, 사실 별로 안 내키는데 괜히 말을 꺼냈나, 온갖 생각이 들었지만 그만두었다. 좋으면서 말로만 그러는 거야, 남들 눈치 보느라. 평생을 그렇게 사신 양반이야. 그렇게 말하던 아빠를 떠올리면서.

   시애는 빠르게 빈 그릇을 설거지했다. 할머니는 냉장고에 반찬통을 집어넣으면서 시애에게 자꾸만 물었다. 시애 너 정말로 갈 거야? 보러 가고 싶어? 그렇다고 몇 번이나 대답했는데 왜 계속 묻는 걸까. 할머니의 물음은 어딘가 어린아이의 것과 닮아 있었다. 도돌이표처럼 끝도 없이 되풀이되는 질문들. 대화의 맥락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이해하지도 못할 거면서 묻는 질문들. 대화에 어떻게든 끼고 싶다는 의욕만 가득한 질문들. 그건 듣는 이들에겐 질문이라기보다 참견에 가까웠고, 그리하여 누구도 할머니에게 친절히 대답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사실 시애가 거슬렸던 건 질문 자체보다는 목소리였을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는 언젠가부터 걸걸하고도 날카로운 금속 같은 목소리를 냈다. 약해진 성대 힘을 억지로 쥐어짜 내는 듯한 소리였다. 전화를 받거나 누군가 찾아올 때면 할머니는 여보세요나 누구세요 대신 ‘예(와 에의 중간 정도 되는 애매한 발음이었다)’라고 성대를 긁어내듯 대답했다. 시애는 그게 상대방에게 화내는 것처럼 들리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2.


   프로그램의 녹화 시작 시간은 두 시였고, 체육공원까지는 집에서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십 분이면 도착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삼십 분도 더 전에 집에서 나왔다. 사람 많고 정신없을 게 뻔하니 일찌감치 가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할머니의 주장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 날씨에 삼십 분 전은 너무 이른 듯했지만, 시애는 굳이 토 달지 않았다. 겁도 많고 그만큼 걱정도 많고, 그리하여 뭐든 철저히 해야만 하는 할머니의 성격을 잘 알았다. 할머니는 베란다 창고에서 고이 접어 둔 검정 비닐봉지를 꺼내왔다. 얼마나 오랫동안 접혀 있던 건지 쭈글쭈글했지만, 그래도 펼치니 아주 크고 짱짱했다. 이 방 저 방을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며 할머니가 이것저것 챙기는 모습을 시애는 거들지도 말리지도 않은 채로 가만히 보았다. 생수 두 병과 접이식 의자, 등산 방석, 모자, 손수건과 양산 각각 두 개씩. 그 모든 것들이 봉지 안에 차곡차곡 담겼다. 

   “이건 왜 챙기셨어요?”

   시애가 야외용 접이식 의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할머니는 사람이 구름떼같이 몰릴 게 분명하니 깨딱하다가는(할머니는 늘 ‘까딱’을 ‘깨딱’이라고 발음했다) 자리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면 여기에라도 앉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삼십 분 전에 출발하잖아요. 자리가 없지는 않을 거예요. 아마 다른 가족이었다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시애도 그러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핀잔처럼 들릴 것 같았고, 자신마저 할머니에게 핀잔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이미 너무 많은 이들이 할머니를 면박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애의 눈에 할머니는 아들 내외와 함께 살기 시작한 후로 예전보다 훨씬 위축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파트 단지 밖으로 나오자마자 쏟아지는 햇빛에 눈을 찡그렸다. 몇 걸음 떼지도 않았는데 정수리가 벌써 뜨끈했다. 시애와 할머니는 양산을 하나씩 나누어 들었다. 누가 봐도 체육공원으로 향하는 사람들(선글라스와 선 캡, 팔 토시 등 햇빛을 가리려고 만반의 준비를 갖춘 복장이었다)로 가득해서 시애는 조금 놀랐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전국노래자랑을 보러 간다니. 아무리 국민프로그램이라지만, 이 더위에 이토록 많은 노인들을 움직이게 하는 행사였다니. 뭘 몰라도 한참 몰랐구나, 싶었다. 콧잔등과 인중에 점점 땀이 맺히는 게 느껴졌다. 시애가 봉지에서 손수건을 꺼내려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비닐봉지를 빼앗으려 들었다. 집에서 나올 때부터 시애의 손에 들려 있었는데, 이제야 깨달은 모양이었다. 시애가 봉지를 뒤쪽으로 뺐다.

   “그냥 제가 들고 갈게요. 무거워요.” 

   “무거우니까 할머니가 들어야지. 줘, 이리.” 

   “별로 안 멀잖아요. 괜찮아요.”

   “이리 달라니까.”

   할머니는 봉지 손잡이를 한사코 놓지 않았다. 손아귀 힘이 굉장했다. 

   “남들이 보면 흉본다니까.” 

   그 말과 동시에 할머니는 비닐봉지를 제 쪽으로 홱 잡아당겼다. 시애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힘이 풀렸고, 그대로 할머니에게 내어주는 모양새가 되었다. 도대체 뭘 흉본다는 거지. 사람들이 흉보는 쪽은 도리어 시애가 아닌가. 아무래도 할머니는 시애를 다섯 살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할머니를 아무것도 못 하는 노인 취급하고 있는 건 시애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외식하러 갔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할머니의 팔을 부축하듯 붙잡았더니 탁, 하고 때리듯 뿌리친 적이 있었다.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할머니가 불쾌해했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 일이 떠오르자 시애는 비닐봉지를 다시 빼앗지 못했다. 힘은 또 어찌나 좋은지. 하여간 노인네 힘도 좋아, 하는 문장이 무의식중에 떠올랐다. 이 말이 왜 떠올랐을까. 드라마에 나왔던 대사 같은데. 아니, 드라마가 아니라 영화였던가. 뭔가 좋은 뉘앙스는 아닌 것 같고······. 그러나 한참을 고민해도 떠오르지 않았고, 찜찜함을 안은 채로 시애는 팔 안쪽을 문질렀다. 봉지 손잡이에 쓸려서 팔뚝에 벌건 자국이 남아 있었다. 자신을 시애의 보호자라 여기는 듯한 할머니의 태도가 시애는 어처구니없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어처구니없어하는 스스로가 우습기는 마찬가지였다. 시애는 할머니의 보호자가 될 수 있는가.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할머니를 부양할 돈도 능력도 없고, 심지어 얼마 전에는 할머니가 주시는 용돈을 덥석 받기까지 했는걸.

   오늘따라 할머니의 걸음이 느렸다. 안 그래도 느린데, 지나치게 주변을 살피며 걷고 있었다. 며칠 전 일 때문이리라고 시애는 짐작했다. 엄마와 할머니 시애 셋이서 함께 마트에 가는 길에 하마터면 할머니가 자전거에 부딪칠 뻔했던 일. 똑바로 보고 다녀야 할 거 아냐. 일흔 쯤 되었을까 싶은 노인은 퉁명스럽게 쏘아붙이고 순식간에 반대 방향으로 멀어져 갔다. 자전거전용도로도 아니었고, 할머니는 똑바로 보며 걷고 있었으며, 앞뒤로도 멀쩡하게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는데, 그는 오로지 할머니만을 향해 윽박질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그래서 엄마도 시애도 무어라 대꾸하기는커녕 입조차 열지 못했고. 뭐라도 한 마디 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똑같은 상황이 다시 온다고 해도 별반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언젠가부터 시애는 화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도 입을 다무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엄마도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시애는 이따금 궁금했다. 이건 유전일까. 내내 참고 견디기만 하는 두 사람의 성정이 시애에게까지 이어져 온 것일까. 그리고 고부 관계인 이들에게서 한꺼번에 물려받은 것이라면, 자신은 그들보다 더 미련하게 참는 사람일까. 회사에서 부당 대우를 당하고도 멍청하고 조용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도망치듯 나온 건 그래서일까. 유전이 맞는 거라면, 언제부터 이어져 온 걸까. 엄마의 엄마도, 혹은 할머니의 할머니도 그런 사람들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걷는 동안 땀은 더 많이 났고 어느새 공원이 나타났다. 아까보다 훨씬 더 많은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


   입구에서 현수막 아래에 선 직원들이 물과 일회용 종이 모자를 나누어주었다. 시애와 할머니도 줄을 서서 하나씩 받았다.

   “하나 더 줘 봐요.”

   할머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시애는 뒤를 돌아보았다. 할머니가 손을 내밀며 직원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적의로 가득 찬 눈빛과 채근하는 말투에 시애는 숨이 막혔다. 물과 모자는 당연히 한 사람당 하나씩만 받을 수 있었고, 시애 또래로 보이는 직원은 곤란한 얼굴로 안 되는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할머니의 완고한 표정을 보자 피로감이 몰려왔다. 시애는 곧장 다가가 할머니를 말렸다. 

   “할머니, 집에서 물 두 병이나 가져왔잖아요. 더는 필요 없어요.” 

   할머니는 그제야 가져왔지, 참, 하고 중얼거리며 시애를 따라 걸음을 뗐다. 시애는 직원을 향해 어색하게 미소 지어 보였다. 직원도 상냥하게 웃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시애는 직원의 눈빛에서 묘한 위로와 동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아마 시애도 같은 표정이었을 것이다. 저희 할머니 때문에 난감하셨죠,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고생 많으시네요. 짧게 목례를 주고받는 동안에 그런 대화를 나눈 기분이었다. 조금도 손해 보려 하지 않고, 어떻게든 제 몫 혹은 그 이상을 챙기려고 아등바등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시애는 매번 낯설었다. 젊은 시절 장사를 했던 영향일까. 할머니는 스무 살 무렵 할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야반도주를 했다. 상경 후 처음으로 얻은 셋방에는 작은 창고가 딸려 있었고, 그 안에 쓰지 않는 기름틀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말했다. 우리 이걸로 장사를 한번 해봅시다. 젊은 부부는 시장에서 깨를 사다 기름을 짜서 팔기 시작했다. 장사 첫날에 전부 동이 났다고 했다. 얼마 후에 부부는 방앗간을 차렸고, 그 돈으로 자식 넷을 낳아 길렀다. 시애는 기름을 짜고 고춧가루를 빻고 떡을 뽑으며 장사하는 조부모의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시애가 태어났을 무렵 두 사람은 이미 은퇴한 지 오래였으니까. 그러나 시장에 갈 때마다 상인들을 마주칠 때면 익숙한 피로감을 느꼈다. 그들의 눈빛은 할머니의 것과 닮아 있었다. 무어라 딱 잘라 말할 순 없지만, 타인에 대한 적의와 불신으로 가득했다. 자신의 울타리 바깥에 있는 모든 이들을 악인이라 단정 짓는 눈. 틈을 보이는 순간 등쳐먹을 거라는, 순진하게 있다가는 순식간에 눈뜨고 코 베일 거라는 믿음이 담긴 눈.

   어쩌면 그게 아닐 수도 있지. 어느 누구라도 나이가 들면 염치가 사라지고 안하무인이 되어버리는 걸지도 몰랐다. 그리하여 시애도 종국엔 그런 모습으로 늙어 가는 걸까. 제 행동을 객관적으로 되돌아보지 못하고 뭐가 잘못된 건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큰 소리로 자기 말만 내뱉는 뻔뻔함만 남는 것일까. 어쩔 수 없이 그런 노인이 되어버리는 걸까. 할머니의 굽은 등과 휘어진 다리가 눈에 들어왔고 시애는 조금 우울해졌다. 한낮의 체육공원은 여느 때보다 소란스러웠고 해는 조금씩 더 강하게 내리쬐는 중이었다. 정신없이 몰려든 인파와 커다란 카메라 장비들 사이로 할머니가 느리게, 그러나 쉬지 않고 걸어갔다. 무릎이 아파 이제는 오래 걷지 못하는, 절뚝거림이 점점 심해져 가는 할머니. 시애는 그 모습을 뒤따라갔다. 어렵지 않게 따라잡을 수 있었다. 



   3.


   다행히 할머니가 우려했던 일은 없었다. 앞쪽 자리는 만석이었지만(시애는 기함했다. 이렇게 더운데 저들은 얼마나 일찍부터 와 있던 걸까.) 중간 이후부터는 여유로웠다. 혹시 카메라에 잡히면 어쩌지 싶어 최대한 뒤쪽으로 가고 싶었지만 시애보다 한 뼘이나 작은 할머니에게 그런 제안을 할 수는 없었다. 중간 즈음으로 혼자 타협을 봤다. 커다란 카메라 장비들 바로 뒤쪽이라 TV에 출연하게 될 일은 없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할머니가 비닐봉지에서 등산 방석 두 개를 꺼내어 탈탈 털고는 하나는 제자리에, 다른 하나는 시애의 자리에 놓아 주었다. 시애의 자리에 손수건까지 깔려고 해서 시애는 손을 저으며 거절했다. 저는 괜찮아요, 할머니 깔고 앉으세요. 아냐, 나도 괜찮아. 두 사람은 손수건 없이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두 시가 되기 십 분쯤 남았을 무렵, 아래위로 검은 옷을 입은 진행요원이 무대 위로 올라와 주의사항을 안내했다. 특히 일사병에 유의하라는 등의 안전수칙을 여러 번 강조했다. 혹시 몸에 이상이 있거나 주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경호요원을 불러 달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시애는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아직 한여름까지는 아니었지만, 두 시의 볕은 충분히 뜨거웠다. 그늘 하나 없는 이곳에서 몇 시간 동안 꼼짝 않고 앉아 있어야 하는데 과연 괜찮을까. 안 더우세요? 시애가 묻자 할머니가 괜찮다고 했다. 

   “너는, 덥지 않아?” 

   “저도 괜찮아요.” 

   “그래, 너무 힘들면 할머니한테 말해. 집에 가자.” 

   시애가 해야 할 말인데 할머니에게 선수를 빼앗긴 기분이었다. 시애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할머니도 집에 가고 싶으시면 바로 말씀하세요. 그때 사회자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마이크를 들고서 안녕하세요, 하고 약간 쉰 목소리로 크게 인사를 하자 순식간에 공기가 바뀌었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가벼운 유머, 호응과 박수를 이끌어내는 능숙한 진행에 시애는 단번에 압도되었다. 관객석에서 빵 터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오랜 터줏대감이던 사회자가 세상을 떠나고 그 자리에 후임으로 들어온 젊은 여성 코미디언. 아주 노련하고 능숙해 보였지만, 그 부담감이 어떨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다만 응원하는 마음으로 그의 모습을 열심히 눈에 담았다. 그런데 전국노래자랑의 오랜 팬인 할머니는 바뀐 사회자를 어떻게 생각할까. 시애는 문득 궁금해졌다. 

   “예전에는 송해 아저씨가 진행했는데. 근데 이제는 안 계시니까, 그게 마음이 쓸쓸해.” 

   시애가 묻지도 않았는데 할머니는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말했다. 혼잣말 같았지만 어쩌면 시애에게 말을 건넨 것 같기도 했다. 시애는 그러게요, 하고 대답했다. 사회자는 곧바로 첫 번째 참가자를 소개했고, 무대가 시작되었다. 참가자들이 올라와 인사를 하고, 저마다 준비한 노래를 부르고, 그중 몇몇은 사회자와 만담처럼 우스꽝스러운 대화를 나누고, 중간에 초대가수가 축하무대를 하는 방식으로 녹화는 진행되었다. 솔직히 재미있진 않았고, 더 솔직해지자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가고 싶어졌다. 참가자들의 말장난이나 슬랩스틱 개그는 시애의 웃음코드와 전혀 맞지 않았고, 그들이 부르는 곡들의 대부분은 시애가 잘 모르는 트로트였다. 이대로 두 시간 내내 뙤약볕 아래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벌써 지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시애는 녹화 내내 사회자의 모습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는 정말이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일에 임하고 있었다. 출연자든 초대가수든 할 것 없이 열렬히 박수를 치고 어깨를 들썩이며 호응했다. 카메라가 그를 비추지 않을 때조차 그런 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내리쬐는 땡볕 아래에서 정장을 입은 채로 일초도 쉬지 않고서 움직였다. 멀리서도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 게 시애는 좋았다.

   무대가 끝날 때마다 시애는 할머니를 한 번씩 슬쩍 보았다. 할머니 역시 그다지 즐거워 보이지는 않았다. 시애만큼, 아니 어쩌면 시애보다 더 무뚝뚝한 반응이었다.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뚱한 얼굴로 정면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눈을 느리게 깜박이며, 참가자들의 개그에 미동조차 없었고 박수도 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지루해하시는 건가? 끝나려면 족히 두어 시간은 더 남았을 텐데. 게다가 할머니는 물을 너무 많이 마시고 있었다. 시애가 알기로 이 근처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공원 입구까지는 가야 할 텐데. 여기서 화장실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기에는 너무 먼데······. 화장실 안 가도 괜찮으세요? 시애가 묻자 할머니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왜, 화장실 가고 싶어? 시애도 고개를 저었다. 지루하지 않아? 할머니가 시애의 표정을 읽으려 애쓰는 게 느껴졌다. 재밌어요. 시애가 최대한 웃어 보이며 답했다. 할머니는요? 응, 나도 재밌어. 할머니는 싱겁게 대답하고는 다시 무대를 보았다.

   “할머니, 할머니가 좋아하는 가수 나왔다!”

   시애는 하마터면 뒤를 돌아볼 뻔했다. 높고 경쾌하고, 그리하여 듣는 것만으로도 시원하게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시애와 할머니 바로 뒷자리였고, 마찬가지로 손녀와 할머니 단둘이서 온 듯했다. 두 사람의 살가운 ― 반말로 나누는 ― 대화를 시애는 훔쳐들었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손녀의 선명한 목소리와 정확한 발음 때문에 저절로 귀에 꽂혔다.

   “할머니, 이거 노래 제목이 뭐더라?” 

   그러자 무어라는 대답이 되돌아왔는데, 웅성거리는 현장 소음과 음악에 묻혀서 시애에게까지 들리지 않았다. 시애는 옆을 슬쩍 보았다. 할머니는 알고 있으려나. 왠지 그럴 것 같았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할머니가 어떤 가수를 좋아하는지 궁금해 해본 적조차 없다는 걸 시애는 그제야 깨달았다. 오늘 나온 초대가수들을 할머니는 다 알고 있을까. 그중 특별히 좋아하는 가수도 있을까. 빨간색 원피스를 입은 가수는 연달아 세 곡을 불렀다. 마지막에는 그가 입고 있는 원피스만큼이나 쨍하고 발랄한 목소리로 크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사회자가 무척 열심히 한다고, 예쁘게 봐달라는 이야기를 덧붙이기도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시애는 마음이 좋아졌다. 나 혼자서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구나. 자신의 온 에너지를 쏟아부어 가며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구나. 그래서 주위의 동료와 선배, 어른들에게도 예쁨을 받는구나. 시애는 어쩐지 안도감이 들었다. 비록 노래 제목은 끝까지 알 수 없었지만.


   참가자들은 쉴 새 없이 무대 위로 올라오고 내려갔다. 예선을 거쳐 올라온 만큼 다들 노래를 꽤나 잘했고, 개인기나 무대매너도 상당했다. 이 따분하고 아무것도 없는 동네에 저렇게나 많은 실력자들이 있었다니. 저런 끼를 어디다 숨기며 지내 온 걸까. 그들은 자기소개마저도 활기차고 발랄하고 거침없었다. 입시 스트레스를 날리고 싶어서 신청했다는 여고생들도 있었고, 아홉 번의 예선 탈락을 거쳐 열 번 만에 무대에 올랐다는 여든 노인도 있었다. 이 동네에서만 십 년 넘도록 버스를 몰았다는 운전수, 십오 년 만에 처음으로 식당 문을 닫고 나왔다는 백반집 사장······. 무대 위에 특별한 사연 하나 없이 올라온 이는 없었다. 라디오에 소개되는 것처럼 적당히 가공되고 정형화된, 훈훈하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은 이야기들. 시애가 지금 저 무대 위에 오른다면 무어라고 자신을 소개하게 될까. 어떻게 하면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 있을까. 그러나 아무리 골몰해 봐도 그려지지가 않았다. 

   “할머니, 저 애기 좀 봐봐······ 너무 귀엽다! 그치?”

   뒷자리에 앉은 손녀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고, 

   “뭐라고? ······다섯 살이래. ······아니아니, 다섯 살.” 

   할머니의 대답은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손녀의 또랑또랑한 목소리를 들으며, 두 사람의 관계가 무척 다정하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대화를 들을수록 시애는 어쩔 줄을 몰랐다. 머리를 높이 땋아 양 갈래로 늘어뜨린 여자 아이는 아이돌이 입을 법한 배꼽티에 테니스스커트 차림이었다. 아이가 말할 때마다 니 삭스에 달린 레이스 프릴이 작게 흔들렸다. 오늘 무슨 노래 부를 거예요? 아모르파티요. 다섯 살의 입에서 또박또박 나오는 ‘아모르파티’라는 단어에 관객들은 환호하며 깔깔거렸다.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시애는 좌중을 휘어잡는 아이의 깜찍한 몸짓에 약간 괴리를 느끼면서도 열심히 박수쳤다. 아이는 거의 자신의 상체만 한 마이크를 두 손으로 꼭 쥐고서 노래했다. 그 귀여움에 주위가 한층 환해지는 것만 같았다.

   시애가 저 나이였을 무렵엔 TV에 나오는 어린이를 보는 게 괴로웠다. 맹랑하고 깜찍하고, 아이답지 않은 재능을 가진 이들을 마주할 때면 시애는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어졌다. 아이돌 춤을 곧잘 따라 추거나 카메라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눈물을 흘리거나 미국 아이처럼 영어를 내뱉거나, 혹은 고등수학 문제를 거침없이 푸는 아이들. 누군가 시애와 그들을 대놓고 비교하지 않았는데도 명치 부근에 커다란 돌덩이가 들어와 박힌 것만 같았다. 질투와 패배감이라는 감정을 그때는 몰랐다. 스스로가 특별하지 않다는 걸 깨닫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래서 시애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려 딴청을 부렸다. 괜히 심드렁한 척을 했다. 그건 시애 나름의 소극적인 반항이었다. 

   할머니는 전국노래자랑에 어린이 참가자가 등장하면, 손녀의 입에 참외나 단감, 혹은 포도 따위를 넣어주며 어김없이 말을 걸어 왔다. “시애야, 쟤 좀 봐봐. 너랑 동갑이래. 둘이 친구네.” 직접 만난 적도 말을 나눠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친구라는 거지? 시애는 묻고 싶었지만 잠자코 있었다. 그러고는 어김없이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주말마다 시댁에 시애를 맡기느라 쩔쩔매는 엄마의 모습을, 시애는 어렸지만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 댁에 가기 전이면 엄마는 시애를 붙잡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말씀 잘 들어야 해. 괜히 말대꾸하지 말고. 무조건 네, 하고 대답해. 시애는 어른들 말을 잘 듣는 어린이였다. 그 덕에 응석 부리지 않는 얌전한 손녀가 될 수 있었다. 달리 말하면 애교도 넉살도 부릴 줄 모르는 무뚝뚝한 손녀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할머니가 시애에게 건넸던 모든 말들은······ 어쩌면 손녀에게 친근하게 말을 붙여 보려던 부단한 노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할머니 나름대로 시도한, 그러나 실패해 버린 어설픈 농담 같은 것이었을지도. 노래를 모두 마친 뒤 관객들에게 배꼽 인사를 하는 아이를 보며, 시애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아이는 땋은 머리를 달랑대며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조부모의 품으로 와락 달려드는 아이를 보자 시애는 갑자기 딴청을 부리고 싶어졌다.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4. 


   어느덧 해는 아까만큼 뜨겁지 않았고, 시애는 그제야 좀 살 것 같았다. 다만 팔에 선크림 바르는 걸 깜박한 게 걱정이었다. 많이 타려나. 시애가 제 팔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할머니가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왜, 지루해서 그래?” “아뇨, 재밌어요.” 시애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멍하니 앞만 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계속 손녀를 신경 쓰고 있던 걸까. 자리를 한 번 고쳐 앉았다. 방석을 깔았는데도 플라스틱 의자는 딱딱했다. 꼬리뼈가 욱신거렸고, 허리도 쑤셨다. 할머니는 괜찮을까. 그때 갑자기 할머니가 손을 뻗어 왔다. 그리고 시애의 속마음을 읽은 것처럼 목과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안 힘들어? 덥지? 시애는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조금 놀랐지만 티내지 않으려고 잠자코 있었다. 할머니의 손은 뜨겁고 부드럽고 약간은 축축했다. 

   자, 오늘의 마지막 참가자입니다! 무대 위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올라왔다. 어른 넷과 아이 둘. 여태까지 나온 참가팀 중 가장 많은 인원이었다. 사회자가 어떤 관계인지 묻자 가운데 서 있던 젊은 여자가 마이크를 들었다. 남편과 아들 둘이고요, 여긴 저희 엄마, 그리고 외할머니세요. 와, 그럼 증조할머니부터 손자까지 무려 4대가 함께 살고 계신 거네요? 사회자가 호들갑스럽게 물었다. 여자는 가족끼리 소중한 추억을 남기고 싶어 나왔다고 덧붙였다. 엄마 옆에 딱 붙어 서 있던 작은 아이가 씩 웃어 보였다. 개구쟁이 같은 웃음이었다. 앞니가 있어야 할 두 자리가 텅 비어 있었고, 그걸 보자 시애도 아이를 따라 웃음이 나왔다. 

   반짝이 재킷을 입고 폭탄머리 가발을 쓴 아빠와, 같은 옷차림에 하트 모양 선글라스를 쓴 엄마.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형제는 태권도복을 맞춰 입고서 나란히 서 있었다. 큰 아이는 밤 띠, 작은 아이는 노란 띠. 두 아이 모두 빨간 테의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어서인지 눈이 한층 더 크고 동그래 보였다. 똘똘하게도 생겼네. 시애는 형제의 동그란 뒤통수를 마구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전주가 흘러나오자 대가족은 제각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할머니와, 한복 차림으로 덩실거리는 증조할머니. 두 형제는 열창하는 부모 옆에서 개다리춤을 추고 있었다. 정말이지 우스꽝스러웠다. 보기만 해도 얼굴이 달아오르는 광경이었다. 시애는 당장이라도 어딘가에 숨고 싶어졌다. 그러나 속으로 무어라 이러쿵저러쿵 떠들든 시애와는 전혀 상관없었다. 시애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들에게는 조금의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이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더할 나위 없이 화목하고 유쾌했으며, 여자의 말마따나 지금 이 순간 즐거운 추억을 쌓고 있는 듯했다. 물론 그런 완벽한 가족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누구든 알게 모르게 걱정거리 한두 가지, 혹은 그보다 많이들 껴안고 있겠지마는. 

   아들 내외와 살기 시작한 후로 할머니 입에는 ‘돈’이라는 단어가 완전히 달라붙어 버렸다. 사업을 두 번이나 말아먹고 지금 하는 일도 변변치 않은 아들의 경제 사정이 할머니의 가장 큰 걱정거리인 것 같았다. 눈치를 보느라 정작 아들 앞에서는 한 마디도 못 하고, 오로지 엄마와 시애에게로 쏟아졌지만. “시애 애비가 돈을 잘 벌어야 할 텐데.” 할머니의 한탄에 엄마는 대꾸하지 않았고 시애는 침묵을 견딜 수가 없어서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아빠는 셋째였지만 장남이나 마찬가지였다. 큰아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홍역으로 죽었고, 의절한 둘째 딸은 제 아버지 장례식 이후로 간간이 안부전화가 오기는 했지만, 이제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였다. 사남매 중 가장 공부를 잘했던 셋째 아들에게는 아파트까지 팔아 사업자금을 대주었는데 돌아온 건 빚뿐이었다. 이혼한다만다 시끄럽더니 제 자식 영어 공부 시킨다며 캐나다로 훌쩍 떠나버린 막내며느리. 그 덕에 막내아들은 기러기아빠가 되었고 손자 얼굴 못 본 지도 몇 년째였다. 그리고 잘 다니던 직장을 돌연 관두고 집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무뚝뚝한 손녀. 누가 보아도 화목이나 행복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무대 위의 저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부러워할까. 좋아 보인다고 여길까. 혹은 꼴사납다며 속으로 혀를 차고 있을지도 몰랐다. 

   엄마는 할머니가 다른 사람 흉을 너무 많이 본다고 했다. 동네 친구들을 만나거나 안양에 사는 동생 집에 다녀오는 날이면, 할머니는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모든 이들을 흠집 냈다. 그걸 들어야 하는 게 고역이라고 했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엄마도 함께 깎아내려지는 것 같다고. 전해 듣는 시애에게도 고역처럼 느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어쩌면 할머니는 매번 그런 식으로 위안 삼아 왔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지 않나, 저들의 처지에 비하면 나는 양반이지······. 동의할 수도 없었고, 동의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다만 그게 오랫동안 할머니가 자신의 행복을 가늠해 오던 방식인지도 몰랐다. 뇌병변이 있는 아들 때문에 여든 넘는 나이에 자식 병수발을 들어야 하는 처지도 아니고, 남편의 외도로 마음고생 해본 적도 없으니까. 형제 모임에 나갈 때마다 식당 계산서를 못 본 척하느라 쩔쩔매지 않아도 되니까. 작년 건강검진 이후로 처방전에 더 많은 치매 예방약이 추가되었지만, 병세가 심해져도 자신을 돌봐줄 아들내외가 있으니까. 그들과 다 같이 살 수 있는 집이 있으니까. 그러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렇게 여기고 있을지도 몰랐다. 무대 위의 대가족을 할머니는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얇고 희끄무레한 막이 쓰인 듯 탁한 눈으로.

   어디선가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어머머, 하는 소리와 함께 앞좌석에서 종이모자가 날아왔고, 그와 동시에 시애가 쓰고 있던 모자도 벗겨져 뒤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시애는 발아래에 차인 모자를 주워들어 앞쪽 사람에게 건네주었다. 뒤를 돌아보자 뒷사람이 시애와 같은 자세로 모자를 내밀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두 시간 내내 목소리만 들었던 이의 얼굴을 마침내 마주할 수 있었다. 시애 또래로 보이는 여자. 그 옆에 앉은 노인 역시 할머니 또래였다. 두 사람은 별다를 것 없이 아주 평범하고 다정해 보였고, 그래서 좋아 보였다. 그때 옆에서 할머니가 시애의 팔을 툭툭 쳤다. 

   “이제 그만 가자.”

   “지금요? 아직 안 끝났는데······.”

   할머니는 다 끝나고 일어나면 늦는다고, 사람들이 몰려 정신없을 테니 일찍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초대가수의 무대가 이제 막 시작됐는데, 이 타이밍에 일어나면 너무 눈에 띄지 않을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자리를 뜨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할머니는 급하게 짐을 챙기고 있었다. 집에서 가스밸브 잠그는 걸 까먹고 나온 사람처럼, 요의가 급한 사람처럼 허둥거렸다. 시애도 덩달아 조급해졌고, 엉겁결에 일어나 할머니를 뒤따라 나왔다. 비닐봉지는 변함없이 무거웠다. 할머니는 이번에도 시애에게서 비닐을 우악스럽게 낚아채 갔고 시애는 아무 말 없이 할머니에게 내주었다. 아휴, 사람이 어찌나 많던지. 깨딱하다간 늦어서 고생했을 거야. 서둘러 일어났으니 천만다행이지. 할머니는 공원을 빠져나가는 동안 같은 말만 반복했다. 끊임없이, 끝도 없이, 영영 끝나지 않을 듯이. 시애는 건성으로 네네, 대답하다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많이 힘들지? 얼른 집에 들어가서 쉬자.”

   “안 힘들어요.”

   순간적으로 짜증 섞인 대답이 튀어나왔다. 동시에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는데, 시애는 단번에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시애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많이 힘드셨냐고 시애는 약간 누그러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아니, 나는 괜찮지. 다른 게 아니고······ 시애 니가 피곤할까 봐 그런 거지. 할머니는 그렇게 대답한 뒤 멋쩍은 듯 웃었다. 그건 할머니의 대처 방식이었다. 웃음으로 무마하는 것. 청소한답시고 집 안 좀 뒤집어 놓지 말라며 아들이 잔소리할 때, 어디에 두었는지는커녕 어떻게 생겼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클렌징 폼이나 냄비받침 혹은 주방 가위를 찾느라 온 식구들이 집을 뒤질 때, 자신 때문에 며느리가 한숨을 내쉴 때, 사람들이 제 말을 무시하며 투명인간 취급할 때, 그리고 손녀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 있을 때도. 할머니는 매번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 시애에게는 그 웃음소리가 슬프게 들렸다.

   “저도 안 피곤해요. 그리고 할머니랑 이런 거 보는 게 처음이잖아요. 그게······ 좋았어요.”

   할머니가 시애를 힐끗 보더니, 싱겁게 대답했다.

   “응, 나도 좋았어.”

   여전히 아리송한 표정과 목소리였다. 할머니는 이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시애도 천천히 그 속도에 맞추어나갔다. 


   몇 개의 횡단보도를 건너고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가는 중에도 무대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어느새 수상자가 발표되고 있었다. 자 그럼, 인기상은······ 장려상은······ 사회자는 약간 쉰 듯한 목소리로 우렁차게 수상자를 발표했고 박수갈채가 연달아 쏟아졌다. 시애는 차례로 불리는 이름과 노래 제목을 들으며, 오늘 내내 보았던 무대 위 참가자들과 매치시켜 보려 애썼다. 그러나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새 죄다 까먹어버린 것처럼 희미하기만 했다. 참가자들의 얼굴도 각자의 직업도 사연도, 그들이 부른 노래조차도. 머릿속에서 모든 게 뿔뿔이 흩어져 갔다. 공원에서 멀어질수록 사회자의 목소리는 조금씩 작아져 이제는 웅얼거리는 소리로만 들려왔다. 1등 상은 누가 받았을까. 시애는 잠깐 상상해 보다가,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의미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5.

 

   “여기에 씀바귀가 다 피어 있네.” 

   그 말에 시애가 뒤를 돌아봤다. 할머니가 아파트 화단 쪽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시애는 되돌아가 할머니의 시선이 닿는 곳을 함께 보았다. 철쭉이며 제라늄 같은 화려한 꽃 아래에 키 작은 노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곳은 이 주변에서 가장 최근에 지어진 고층 아파트였다. 엄마가 늘 ‘대장 아파트’라고 칭하는 아파트. 동네에서 매매가가 가장 높아서 그렇게 불린다고 했다. 시애는 그 단어의 어감이 싫었다. 

   “이래서 안 뽑고 놔뒀구나.” 

   “꽃을 왜 뽑아요?” 

   “이게 잡초거든. 보통 화단에 잡초가 피면 다 뽑지. 보기에 풍신나니까.” 

   그렇구나. 시애는 끄덕였다. 아이고, 노랗게도 예쁘게 폈네. 감탄하는 할머니의 눈이 반짝였다. 시애는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오랜만에, 아니 어쩌면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여기 보면, 죄다 한 방향으로 누워 있잖아. 해를 받으려고, 고개를 내밀고 있는 거야.” 할머니는 손을 비스듬히 기울이며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꽃들이 죄다 양지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처음 안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이곳을 하루에 몇 번이나 지나다녔는데 모든 게 생경하기만 했다. 어떤 꽃들이 피어 있는지도, 씀바귀꽃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식물들이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하는지도. 처음 보는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 것 같았다. 그것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할머니로 인해서.

   “저건 뭔지 알아?” 

   할머니가 들뜬 목소리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아파트 단지 바로 앞, 횡단보도에 마주해 있는 나무였다. 시애가 고개를 저었다.

   “감이야.”

   “저게 감나무라고요?” 

   시애가 놀라서 되묻자 할머니가 갑자기 빵 터졌다. 시애는 할머니가 왜 웃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럼 감나무지. 그걸 이제야 알았어? 그게 그렇게 깜짝 놀랄 만한 일이었어?”

   할머니는 또다시 시애를 어린애처럼 여기고 있던 것이다. 자신을 다섯 살처럼 대하는 것 같은 말투에 시애는 다시 어쩔 줄 모르는 기분이었지만, 그러나 평소처럼 불쾌하거나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쟤 좀 봐봐. 시애 너랑 동갑이네.”라고 말하던 할머니와 똑같은 말투와 표정이었기 때문일까. 그리고 그 순간, 할머니에게 가끔은 어린애처럼 굴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 여길 건 없었다. 하룻밤 사이에 다시 이십대가 되었어도, 혹은 아무도 시애를 이십대로 여기지 않는다 해도 할머니에게는 영원히 다섯 살일 터였다. 어떤 것들은 영영 변하지 않는 법이었다.

   그나저나 정말 저기에 감이 열릴까. 여기에 감나무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어야겠다고 시애는 다짐했다. 가을이 되면 열매가 맺히는지 유심히 살펴봐야지. 그때도 할머니와 함께 볼 수 있었으면, 오늘 같은 작은 이벤트가 또 있었으면······. 할머니는 여전히 화단에 서서 씀바귀를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주름진 목덜미 사이로 땀이 맺혀 있었는데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오로지 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시애로서는 알 수 없었고, 영원히 모를 것이었다. 그러나 굳이 알 필요는 없지. 중요한 건 지금 할머니와 함께 조그마한 달걀노른자 같은 꽃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 햇빛을 받으려 온힘을 다하는 씀바귀 꽃들에, 그 생생한 생명력에 감탄하고 있다는 것. 적어도 그건 자명해 보였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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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7-01
소금 샹들리에

소금 샹들리에 정한아 호주에 사는 김이 오랜만에 귀국해서 친구들이 다 같이 모이기로 했다. 4명이 만나는 건 대략 7년여 만이었다. 방을 잡고 밤새 보자고 해서 오기 직전까지 망설였는데, 남편이 등을 밀었다. 정민이와 자신에게도 내가 없는 날이 필요하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정말 밤새 전화 한 통 없었다. 친구들과는 대학 동기였다. 전공은 문예 창작이었는데, 나는 2학년까지 다니고 학교를 그만뒀다. 그렇지만 정작 작가가 된 사람은 나뿐이라고 친구들이 투덜거렸다. 나는 작가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십 수 년 전 내가 낸 단 한 권의 책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세 명 모두 미혼이었고,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예전 그대로인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철 지난 옷차림에 좀처럼 대화에도 섞이지 못했지만,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다.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에 술자리도 즐거웠다. 좋은 친구들이었다. 7년 전 정민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 그들은 자신의 일처럼 울어 줬고, 이후에도 종종 아이의 간식과 선물을 집으로 보내 줬다. 서서히 연락을 거둔 것은 내 쪽이었다. 애써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힘에 부쳤을 뿐, 그들에게 섭섭한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집이 아닌 곳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었다. 다들 술에 취해서 침대로 간 뒤에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 cctv 속 거실은 엉망이었다. 엎어진 식판, 사방에 흩어진 블록 조각, 길게 늘어진 옷가지들. 남편은 불도 끄지 않고 아이를 재우러 방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나는 정지화면 같은 그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해 뜰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맛집마다 대기가 길어 종로의 좁은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앞장서 구글 맵을 보며 걷던 김이 갑자기 작은 서점 앞에서 멈춰 서더니 책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지난 이사 때 내 책을 분실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책을 다시 보내 주겠다고 김을 달랬다. 다섯 평도 안 되어 보이는 그 작은 서점에 내 책이 있을 리는 만무했기 때문이다. 김은 막무가내로 서점에 들어갔다. 할 수 없이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가 전면 책장에 전시된 내 책을 발견했다. 죽은 친구를 만났다고 해도 그처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애 씨!” 그곳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우아한 노부인이었다. 린넨 바지에 화이트 셔츠, 큼지막한 호른 목걸이를 한 여자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반장님?” 나는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여자는 성큼성큼 내 앞에 다가와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안은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오래전 나와 함께 공부했던 문우였다. H 백화점 문화센터 소설 창작 교실의 반장. 친구들이 책을 구경하는 사이 나는 그녀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ldqu

  • 관리자
  • 2024-07-01
그동안의 정의

그동안의 정의 최예솔 작정하고 사라진 사람은 작정하고 찾아야만 한다. 나는 윤정수를 작정하고 찾지 않았다. 보통의 남매 사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윤정수와 나를 그냥 보통 남매, 라고 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윤정수는 나보다 4년 먼저 태어났다. 그리 적지도, 그리 많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 차이 덕분에 윤정수와 나는 딱히 친해지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정수는 중학교에 갔고,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윤정수는 고등학교에 갔다. 물론 윤정수와 내가 영 친해지지 못한 건 우리의 나이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윤정수는 내게 없는 사람에 가까웠다. 말수도 없고 센스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공부머리도 없고 돈도 없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나? 아무튼 남매 사이에 정이라도 있었다면 걱정이라도 했을 텐데 그럴 이유조차 없었다. 쥐뿔도 없는 윤정수니까. 특이사항이라곤 개그맨 윤정수와 동명이인이라는 것 정도밖에 없는. 그러니 윤정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갔다고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었지. 뭐 내가 찾는다고 윤정수가 나타났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나는 막연히, 어련히 때 되면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윤정수는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죽은 것은 아니다. 윤정수가 죽었다. 내 나이가 이제 서른이니까, 윤정수는 서른넷에 죽었다. 이제 내게 남은 혈육은 없다······ 아닌가? 고모. 그렇게 부르지 마. 왜요. 낯설어. 저도 고모가 낯설어요. 윤현수는 맹랑하다. 윤정수와 장현아의 딸이라고 해서 윤현수. 그거 좀 유치하지 않니? 물었을 때 윤현수는 뭐 어때요 엄마아빠말곤 모르는데, 하고 대답했다. 이제 나도 아는데? 하니까 이젠 고모도 모르는 척해 달라고 했다. 참 나 어디서 이런 게 굴러왔는지. 현수야. 네. 네 엄마 입국 날이 언제라고 했지? 다음 주 토요일이요. 아직 한참 남았네. 고모도 고모 할일을 해요. 시간 금방 갈걸요. 알겠다 그래. 윤현수를 데리고 온 사람은 장현아다. 이제는 나흘쯤 됐으려나. 아침부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서 나가 봤더니 장현아가 윤현수의 손을 붙잡고 서 있었다. 장현아는 다짜고짜 윤정수를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오랜만에 듣는 윤정수의 이름에 잠깐 벙쪘다가 네, 저희 오빠네요, 하고 대답했다. 조카입니다. 그날 장현아의 대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건 도저히 내가 아는 사람이 뱉을 만한 말이 아니어서 대사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겠다. 아직도 문득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윤현수가 정말 나의 조카가 맞고 장현아가 정말 나의 새언니가 맞을까. 가족관계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되는 거라면 이제까지 윤정수와 나는, 또 윤정수와 나와 우리의 부모는, 왜 이렇게 흩어지거나 죽거나 혼자 남을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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