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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가 들어간 토마토 수프

  • 작성일 2024-04-01
  • 조회수 1,069

   양파가 들어간 토마토 수프


김나현


   1


   엄마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원룸 안에서 그 냄새를 해결하지 못할 거라고 했지만, 결국 양파가 들어간 토마토 수프를 끓였다. 수프는 메인 재료가 양파와 토마토가 맞나 의심이 들 만큼 동그란 기름이 둥둥 떠 있었다. 돼지고기에 붙은 비계 때문이거나 양파를 볶을 때 버터가 들어간 탓인 듯했다.

   “이렇게 먹어야 제 맛이야.”

   제 맛? 양파가 들어간 토마토 수프에 과연 그런 게 있을까? 엄마의 기분에 따라 혹은 우리 가족의 재정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수프의 맛이었다. 그러고 보면 금전적 여유가 있을 땐 소고기가 잔뜩 들어가곤 했다. 여유랄 게 없을 땐 몇 조각의 고기만 들어간 야채수프에 가까웠다. 그 수프는 마녀 수프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다이어트 음식으로 각광받기 훨씬 전부터 우리 집의 시그니처 메뉴였다. 다른 집 엄마들이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를 특기로 내세울 때, 엄마는 양파가 들어간 토마토 수프를 주력으로 삼았다. 깊은 맛의 토마토 수프, 따뜻한 쌀밥, 그 위에 계란 프라이를 올리면 특별히 다른 반찬이 필요하지 않았다. 

   엄마의 수프에 특별한 비법은 없었다. 냉장고 안의 남은 재료에 양파와 토마토를 넉넉히 넣고 끓일 뿐이었다. 그래서인가 그 수프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양파가 들어간 토마토 수프가 되었는데, 어떤 이들은 종종 그것을 토마토가 들어간 양파 수프라고 부르기도 했다. 어쨌거나 내가 먹어 본 어떤 수프도 엄마가 만든 수프 맛을 따라오지 못했다. 이웃들이 엄마의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해도 그 맛은 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것은 엄마의 장기이자 우리 집의 자랑이었다. 


   그 수프가 이제 내 신경을 건드렸다. 방 안에 겹겹이 쌓인 냄새 때문에 짜증이 밀려왔다. 어떤 냄새든 밀폐되면 지독해진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주방 후드의 환풍기를 켜고 침대를 밟고 올라가 창문을 열었다. 쌀쌀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들이마시자 어딘가 모르게 매캐함이 밀려왔다. 그건 이웃집에서 흘러온 담배 냄새 따위가 아니었다. 공기 질이 좋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도로변 오피스텔은 어쩔 수 없었다. 미세먼지가 있든 없든 주위는 옅은 안개에 휩싸여 흐릴 때가 많았다.

   “그만 내려와. 상이나 펴.”

   접이식 탁자를 펼치고 엄마와 마주 앉으니 다섯 평 원룸이 꽉 차는 듯했다. 받침대에 냄비를 내려놓은 엄마는 할 말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편안히 수프 맛을 음미하기에는 엄마의 눈치가 보였다. 나는 무슨 소리를 들을까 내심 마음을 졸이며 먼저 입을 열었다.

   “저번 집보단 낫지 않아?”

   그 집은 방충망에 벌레가 자주 들러붙었다. 작은 날벌레도 아니고 엄지만 한 크기였다. 그게 집으로 날아 들어오곤 했다. 오래된 주택의 2층집에 딸린 셋방이었다. 화장실은 밖에 있었다. 부엌은 없었다. 그에 비하면 여긴 화장실이 집 안에 있고 부엌도 딸려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줄곧 말이 없었다. 한동안 이어진 침묵에는 그 돈을 갖고 겨우 이런 곳밖에 구해지 못했느냐는 불만이 감돌았다. 이 공간을 막상 두 눈으로 확인하니 뭐라고 해야 할지 갑갑하기만 한 것 같았다. 이건 나름대로 최선이었다. 엄마도 알았을 것이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동하지 못한 상황일 테다. 처음엔 나도 그랬다. 부엌과 화장실을 포함한 다섯 평 원룸이 나름대로 우리의 최선이었단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했다. 

   “냄새 진짜 안 나가네.”

   나는 참지 못하고 일어나 현관문을 열었다. 복도에서 한기가 몰려왔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산다니?”

   “그러니까 만들지 말라고 했잖아. 이런 데서 누가 요리를 해?”

   엄마는 “이제 좀 낫나?” 하면서 괜히 말을 돌렸다. 엄마한테는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2천만 원을 더 보태면 주방과 생활공간을 나누는 일곱 평짜리 분리형 원룸에 들어갈 수 있었다. 평당 천만 원이 더 붙는다는 계산은 어떤 합리적인 근거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집에 붙은 가격표는 합리로 따져 조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걸 나도 진즉 깨달은 바 있었다. 어쨌거나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돈은 이 다섯 평 원룸의 전세금이 전부였다. 내가 직장인 대출로 끌어온 돈과 적금을 더하면 1억 3천이었다. 그 돈으로 회사 근처에 전세를 구하는 건 어림도 없었다. 회사에서 동쪽으로 밀려날수록 집값이 저렴해진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더 이상 밀려나고 싶진 않았다. 

   그즈음 엄마와 통화를 하다가 무심코 직장 동료에게 들은 얘기를 꺼냈다. 내가 받을 수 있는 대출에 7천만 원을 더 보태면 회사 앞 원룸 전세를 구할 수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니까 도합 2억이 있으면 출퇴근 지하철에서 모르는 사람의 어깨와 팔뚝과 종아리에 닿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다달이 갚아야 할 이자는 그동안 지출한 월세보다 훨씬 저렴했다.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만 해도 나는 엄마가 무산의 그 집을 팔아버릴 줄은 몰랐다. 25평에 방은 셋, 화장실 하나인 아파트였다. 그 집은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해부터 살기 시작한 곳이었다. 부엌 옆에 딸린 다용도실 창과 거실 쪽 베란다 창을 열면 맞바람이 통해서 기름내 가득한 요리를 해도 금방 냄새가 빠지는 집이었다. 월세와 전세만 살던 우리 집이 처음으로 가진 자가였다. 엄마가 지역 소식지에 실린 부동산 매물을 보고, 그 어떤 신중함도 없이 직감에만 의존해 덜컥 계약한 집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십일 년을, 부모님은 십육 년을 살았다. 8년 동안 대출금을 갚아 완전히 우리 가족의 것으로 만든 주거 공간이었다. 엄마는 더 이상 집 문제로 고생할 일은 없을 거라고 믿었고, 그 아파트를 산 자신의 결정을 두고두고 기특하게 여겼다.

   엄마가 나의 전세 자금을 보태 주기 위해 그 아파트를 팔고 이웃 단지의 16평 아파트로 이사했을 때, 그리고 7천만 원의 차액을 나에게 주었을 때, 나는 부모의 경제력이 얼마나 큰 해결책이 되는지를 실감했다. 그런 결단이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고마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차마 입 밖으로 내놓아선 안 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 결단을 5년 전만 해줬어도 회사 인근에 지어진 신축 오피스텔 방을 아예 매입할 수 있었을 텐데······. 이미 지나간 시간이고 당시에는 이렇게까지 집값이 치솟을 줄 몰랐지만, 막상 그만한 돈을 손에 쥐고 과거를 돌아보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덕분에 회사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다섯 평 원룸을 구할 수 있었다. 솔직히 나는 혼자 살기에 이 정도는 충분한 면적이라고 생각했다. 무산에 살 때는 이보다 훨씬 작은 내 방에서 생활했다. 거기서 공부도 하고 잠도 자고 밥도 먹고 드라마도 보고 다 했다. 그렇지만 나에게 주어진 이 다섯 평은 엄마의 성에 차지 않는 듯했다. 엄마는 그 돈이면 무산에 작은 아파트를 한 채 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맞은편 상가 앞의 백목련 나무가 움을 틔우긴 했어도 아직 겨울이었다. 문을 열어 두니 찬바람에 실내 기온이 내려갔다. 다행히 아까보다 냄새는 줄어들었다. 현관을 닫고 창문도 닫았다. 보일러를 켰다. 

   우리는 식사를 마친 후 스마트 모니터로 넷플릭스를 켜두고 따뜻해진 몸을 쉬고 있었다. 피가 아니라 수프가 흐르는 듯 몸이 나른했다.

   “이럴 거면 무산에 내려오지 그래?”

   엄마는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바닥에 누워 말했다. 그러면서 어릴 때 옆집 살던 태경이 무산으로 돌아와 공무원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또래 여자애치곤 유난히 키가 컸던 태경이 번뜩 기억났다. 얼마 전에 엄마는 태경의 엄마를 목욕탕에서 우연히 만났다고 했다. 들어 보니 태경은 특수직 공무원 같은 거라 돈을 꽤 많이 번다고 했다. 내 기억에 태경은 대학에 들어가면서 서울에 갔다. 나와 달리 태경은 서울만 고집했다. 그런 태경이 언제 다시 무산에 내려왔을까. 

   “그래도 젊은 사람한테는 여기가 나으려나?”

   엄마는 도리질을 하며 혼자 이런저런 셈을 해보고 있었다. 결국 태경이 제가 살아 보려는 곳에서 자리를 못 잡았으니 고향에 내려온 게 아니냐고, 방금 전의 생각을 뒤집었다. 나는 대학까지는 무산에서 졸업한 후 취업을 하면서 서울로 올라온 케이스였다. 무산에는 마땅한 취직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별수 없는 선택이었다. 영어과를 나온 내가 처음에 들어간 곳은 중소 규모의 식품 회사였다. 맡은 건 번역 업무였다. 수출입 서류를 번역하던 직원이 육아 휴직에 들어가 공석이 된 자리였다. 어차피 번역기를 돌려 초벌을 뽑아낸 후 용례가 적절한지 검수하고 수정하는 일이라 영어 실력이 뛰어날 필요는 없었지만, 공인된 영어 점수를 자격 요건으로 삼고 있었다. 졸업을 위해 받아 둔 영어 점수가 제대로 쓸모를 발휘한 것이었다. 1년 후 육아 휴직을 마친 직원이 돌아와 그 일을 정리해야 했지만, 부장의 소개로 다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그게 지금껏 다니고 있는 식품 컨설팅 회사였다. 직접 상품을 만드는 건 아니지만 트렌드를 분석해 제품과 레시피를 기획하고 그것을 개발이 가능한 업체에 판매하는 일을 하는 곳이었다. 이전 회사에 다닐 때 수출입 관련 서류를 수도 없이 읽으며 자연스럽게 업계의 흐름을 익혀 둔 게 도움이 되었다. 내가 들어올 때만 해도 설립한 지 2년도 되지 않은 회사였지만, 현재는 해마다 매출을 올려 가면서 규모를 키우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성과는 회사의 성장과 비례하지 못했다. 기억에 남을 만한 성과를 낸 적이 없었다. 입사 동기 두 명이 나보다 한 단계 올라가는 동안, 두 번이나 승진에서 밀려났다. 입사 6년 차였다. 대박은 아니어도 중박 아이템 정도는 나와야 했다. 더 이상 내년에는 더 잘하자 각오를 다질 형편이 아니었다. 해가 지날수록 조바심만 더해 갔다. 그런 까닭인지 나도 여기에 제대로 뿌리내린 건 아니란 느낌이 자주 들었다. 그렇지만 엄마는 자꾸 태경과 비교하면서 내 처지가 더 낫다며 편을 들었다.

   “내가 뭐가 더 낫다고······.”

   오히려 무산에서 안정적인 직업을 얻은 태경이 부러웠다. 나의 푸념을 듣고도 한참이나 엄마는 말이 없었다.

   “엄마?”

   그사이 엄마는 옅게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침대로 올라오라 해도 바닥이 좋다며 드러누워 버린 엄마는 슈퍼맨이 하늘을 날 때처럼 한 팔을 위로 쭉 뻗은 채였다. 발아래 화장대가 바짝 붙어 있어 불편할 터였다. 그런데도 버릇인지 팔을 쭉 뻗어야만 잘 수 있는 모양이었다. 손가락 끝이 벽에 닿을락 말락 했다. 나는 그 팔을 조심히 이불 안으로 넣어 주었다. 혹시나 차가울까 엄마가 깔고 누운 이불 아래 손을 집어넣었다. 바닥은 아주 따뜻했다. 이 원룸은 지난날 내가 거쳐 온 다른 주거 환경에 비하면 아주 쾌적한 편이었다. 면적에 비해 그다지 합리적이지 못한 전세가가 엄마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점만 빼면 흡족한 조건이었다. 회사도 가깝고 교통도 좋고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동네에 위치하고 있었다. 건물도 깨끗하고 보일러가 신식이라 샤워 물도 바닥도 금방 따뜻해졌다. 그러고 보면 내가 대출과 엄마의 돈을 끌어 모아 사들인 것은 이곳의 편리와 단축된 출퇴근 시간, 그리고 이 공간이 주는 온기 같은 게 아닌가 싶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산 것이 아니라 잠시 빌린 것이지만. 


   2


   오전에 팀장이 비건 메뉴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아 보자고 했을 때, 나는 수프 이야기를 꺼냈다. 다들 양파가 들어간 토마토 수프라고 하면 바로 이해하지 못해서 ‘마녀 수프’라고 다시 말하니 금방 알아들었다. 비건 푸드나 다이어트 식품이나 검색량이 꾸준한 편이긴 했지만 마라탕이나 탕후루의 인기에 비할 수는 없었다. 일전에 팀장은 자극적인 음식에 대한 관심이 저물고 다시 웰빙이나 비건을 지향하는 흐름이 올 거라고 말했다. 비건 메뉴를 내년 아이템으로 미리 선정한 것은 비건을 선호하는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만약 예상이 맞아떨어지면 취향이 아닌 혜안이라고 금방 바꿔 말하게 될 터였다. 팀장의 생각은 상식적인 발상이긴 했다. 어떤 메뉴든 시간이 지나면 관심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니 머지않아 자극적인 맛에 대한 인기도 점차 줄어들 것이고 최근 빅데이터에서도 그런 흐름이 눈에 띄는 추세였다. 하지만 ‘마녀 수프’ 검색량은 한참 유행하던 시절에 비해 거의 바닥을 칠 정도로 줄어 있었다. 그래도 얘기를 듣더니 팀장은 촉이 온다고 했다. 그 아이템이 좋은 건 다이어트라는 테마와 붙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팀장은 나에게 ‘마녀 수프’와 연관한 요리 레시피와 음식점 리서치를 주문했다. 만약 모든 시그널이 맞아떨어져 내년에 ‘마녀 수프’가 업계의 키워드로 떠오른다면, 그래서 내가 제시한 기획이 먹태깡처럼 별안간 인기를 끌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뚜렷한 성과가 나오면 이 땅에 발을 붙인 느낌이 좀 들까. 그러나 마녀 수프에 호의를 보이던 팀장의 관심은 금방 다른 곳을 향했다. 그녀는 다른 동료에게서 동물성 재료를 최대치로 줄인 케이크 밀키트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더니, 밀키트 업체와 유명 베이커리 협업에 흥미를 보였다. 그 동료는 쑥맛, 흑임자맛, 단호박맛 등 진정한 비건보다는 비건처럼 보이는 맛을 내세웠다. 그건 가식적인 기획이었다. 동물성 재료가 아예 안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말해 쑥맛 케이크는 쑥이 아니고 흑임자맛 케이크는 흑임자가 아니지 않는가. 그러나 아무도 그 동료의 아이디어에 딴지를 걸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인가 꺼내려 입을 벌리기도 전에 오, 이거 좋은데요? 하는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영아, 집에서 밥 먹을 거야?”

   퇴근 무렵 엄마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부모의 전화를 받는 게 잘못된 일도 아닌데 다른 직원이 볼까 민망해서 복도로 급히 나왔다. 입을 손으로 가린 채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췄다. 아마도 하루 종일 방에 누워 스마트 모니터로 넷플릭스나 티빙을 보았을 엄마였다. 그사이 대화할 상대가 없었을 테니 몇 시간 만에 처음으로 입을 열었을 거다.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나 저녁에 약속 있어.”

   “누구랑?”

   엄마한테는 2년간 사귄 한성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부모에게 애인의 존재를 밝히지 않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괜히 연애 얘기를 꺼냈다가 결혼하라는 소리를 듣게 될까 앞선 걱정을 한 탓이었다. 게다가 언제부터인가 연애란 너무 사적인 영역이 되어버려 가족에게 말하기에는 더욱 껄끄러운 주제가 되어 있었다. 

   엄마에게는 대충 회식이 있다고 둘러댔다. 

   “오피스텔 1층 내려가면 반찬 가게 있어. 먹고 싶은 거 몇 개 사둬. 호수 달아 놓으면 외상 되니까 이따 들어가면서 결제할게.”

   “그래? 된장국 끓일까?”

   “된장국? 요리 안 돼. 냄새 나잖아.”

   “너 올 때쯤이면 냄새 안 날 거야.”

   “아니. 방에 냄새 배잖아.”

   “페브리즈 뿌려 둘게.”

   “집에 페브리즈 없어.”

   “아래 편의점에 있는 것 같더라.”

   접점이 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엄마가 알아서 해.”

   나는 엄마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페브리즈 뿌릴 때 환기하고.”

   “알았어. 이만 끊어. 일해.”

   엄마는 마음이 급했는지 내 말을 더 듣지 않고 전화를 툭 끊어버렸다. 


   3


   “아직도 집에 계셔?”

   약속시간보다 20분 늦게 도착한 한성이 자리에 앉자마자 엄마의 근황부터 묻는 것이 개운치 않았다. 한성의 ‘아직도 집에 계셔?’의 그 ‘도’가 자꾸 신경 쓰였다. 마치 당연히 가야 할 사람이 ‘아직도’ 가지 않았다는 걸 강조하는 것만 같았다. 

   엄마가 내 원룸에서 지낸 지 3일째였다. 원래대로라면 엄마는 동네 마트에서 재고 파악을 하고 있어야 했다. 상황이 변한 건 열흘 전이었다. 마트 앞 도로의 소화전이 터져 근처 상가까지 물난리가 난 것이었다. 상가의 가게들은 사태가 수습될 때까지 무기한 휴업에 돌입했고, 엄마가 일하던 마트도 휴업 보상금을 받아낼 생각으로 최대한 시간을 끌어 볼 심산인 듯했다. 이참에 엄마는 휴가라 생각하고 기분전환 삼아 나를 찾아왔다. 아빠는 어떻게 하고? 혼자 집에 있어? 그렇게 물었을 때, 엄마는 다 큰 어른인데 뭘 걱정하느냐 했다. 그러고 보니 아빠한테서 연락 한 통 없었다. 엄마 역시 언제 내려갈 거라 말하지 않았다. 

   “이번 주말에 어떡하지?”

   한성은 주말 데이트를 걱정하고 있었다. 한성에게 엄마는 애인의 방을 점거한 불청객이지 않을까. 실제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의 말투에선 시종일관 무례한 기운이 묻어났다.

   “아무래도 주말까진 집에 계실 거 같아.”

   “그럼 우린 어디로 가? 모텔?”

   한성은 자기 입으로 내뱉은 그 단어가 어색한지 뒷덜미를 긁적거렸다. 우리는 사귀는 동안 모텔에 갈 일이 없었다. 모텔에서 할일은 내 자취방에서 할 수 있었고 여행을 갈 때는 한성이 예약한 호텔에 묵었다.

   “모텔도 괜찮을 거 같지 않아?”

   “난데없이 무슨 모텔이야.”

   은밀한 의미를 담은 듯 ‘모텔’이란 단어를 발음할 때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아닌 게 아니라 입가에 걸린 미소가 보기 싫을 정도로 능글맞았다. 

   “갈래? 갈 거야?”

   그는 아이처럼 보채는 척을 했다. 이럴 때 한성은 좋게 말하면 순수하거나 앳되어 보였다. 그러고 보면 서른이 넘은 남자가 앳된 티를 낼 때가 있는 건 아마도 독립하지 않은 채 부모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란 생각도 들었다. 물론 한성의 입장에서 보면 독립하지 않는 게 실리적인 선택인 것이었다. 직장 가까운 곳에 부모의 집이 있는데 굳이 자취를 할 필요는 없었다. 집 아닌 다른 곳에 발 뻗고 누우려면 노숙이 아닌 한 그게 다 돈이었으니까.

   솔직히 말해 나는 한성이 부러웠다. 듣기로는 15년 전 그의 부모가 무리한 대출을 받아 S동에 아파트를 샀다고 했다. 처음에 한성이 사는 아파트 이름을 들은 날,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부동산 앱에 들어가 부랴부랴 검색을 해보았다. 15년 전에 3억 5천만 원이던 아파트가 그즈음에는 12억이 되어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영어 학원 새벽반에서 만난 한성과 사귀기로 결심한 데는 그 12억이 결정적 요인이 된 게 아닌가 싶었다. 온갖 외화 시리즈를 섭렵하고 외국어 공부에 취미가 있다는 공통점으로 잘 통하긴 했지만 S동의 그 아파트가 없었다면 과연 그와 사귀었을까.

   “하여튼 이번 주에는 못 만나. 엄마랑 나들이 갈 거야.”

   나는 모텔 이야기를 슬쩍 뭉개버렸다. 주말에 엄마랑 나들이를 간다는 핑계로 한성을 만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자 뜻밖의 홀가분함이 찾아왔다. 꾸역꾸역 데이트 장소로 우리 집을 선호하면서도 타인의 방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그를, 그 좁은 원룸에 냄새가 배건 말건 치킨을 주문하고 속옷만 입은 채 부모의 집에서 벗어난 자유를 누리는 그를, 이번 주말에는 안 봐도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 어머니랑 맛있는 거 먹어. 좋은 데도 가고.”

   그제야 한성은 해야 할 말을 찾은 듯했다. 

   “그게 다야?”

   나는 한성을 뚫어져라 보았다. 왠지 그런 말을 할 때는 작은 성의라도 보여주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문득 그에게 용돈을 바라는 자신이 한심했다. 이건 너무 속물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가 애인의 엄마에게 그 정도 선심도 쓰지 않는 게 실망스러웠다.


   4


   엄마는 된장국을 끓이지 않았다. 그래도 나한테 필요할 거라며 페브리즈를 사왔다. 오피스텔 1층 반찬 가게도 들렀다. 반찬을 네 팩 샀다. 감자조림, 무조림, 깻잎 장아찌, 양파 절임. 엄마는 반찬을 사면서 가게 사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까지 소개받았다고 했다. 갑자기 무슨 사연인가 들어 보니, 반찬 가게 사장이 건너편 상가에서 백반집도 운영하고 있는데 거기서 사용할 식재료 손질을 도와달라고 했단다. 

   “근데 최저 시급이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엄마는 자랑스러운 듯했다. 

   “이런 것도 서비스로 주더라.”

   엄마는 검은 비닐봉지를 부스럭거리며 투명한 통을 꺼냈다. 알록달록한 젤리가 가득 들어 있었다. 패키지를 보니 비타민 젤리 같았다.

   “이런 걸 서비스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데?”

   “이게 무슨 젤리인 줄 알아? 그 사장 아들이 만든 거라더라. 그 사장 아들이 지금은 강원도에서 공무원이라는데 너보다 두 살 많아.”

   또 시작이구나 싶었다. 엄마는 누굴 만나든 이렇게 대화를 시작하고 보는 식이었다. 우리 딸이 서울에서 회사 다녀요, 그런데 아직 결혼을 안 했어······.

   “그 아들도 아직 결혼을 안 했대. 서울로 출장을 자주 온다는데. 여기 근처에도 자주 온대.”

   “어휴, 그런 얘기 좀 그만해.”

   그러나 엄마는 내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벌써 그 아들이 오 년째 애인이 없고, 원래 다니던 제약 회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그만둔 후 강원도에서 공무원이 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제약 회사 연구원들이 많이 버니? 연봉이 일억 가까웠다던데.”

   “정말? 그걸 왜 그만둬?”

   “다 운명이지.”

   “무슨 운명?”

   “다 자기 짝 만날 운명 아니냐. 네 나이가 서른넷이지? 서른넷이면 괜찮아. 요새는 늦게들 가잖아.”

   엄마의 말은 순식간에 다른 방향으로 튀었다. 그러고 보니 작년만 해도 엄마는 똑같은 문장을 ‘서른셋’으로 바꿔 말했다. ‘아직 서른셋이면 괜찮아’라고. 내년에는 ‘서른다섯이면 괜찮아’라고 하겠지. 분명 그럴 것이다. 나는 내년에도 결혼하지 않을 예정이니까. 

   “이게 그 아들이 제약 회사 다닐 때 만든 영양제야.”

   “유통기한 지난 거 아니야?”

   플라스틱 통을 두른 스티커를 아무리 둘러봐도 날짜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이게 서울 사람들한테 좋은 거라고 하더라. 특히나 여기 사는 사람들이 필요한 거라던데?”

   이 맥락에는 앞도 뒤도 없었다. 도대체 서울 사람들한테 좋은 영양제가 무엇이란 말인가. 더군다나 특히 여기 사는 사람들이 필요로 한다는 것은······.

   “어디에 좋대?”

   “뭐, 몸에 좋겠지.”

   엄마는 젤리 두 알을 손바닥에 털더니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새콤한 맛이 난다고 했다. 새콤 맞아? 시큼 아니고?

   “그 사장을 보니까 사람이 괜찮더라. 보통 엄마가 괜찮으면 아들도 괜찮거든.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한번 만나 볼래?”

   엄마는 엄마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

   “엄마 거기서 진짜 일해? 할 거야?”

   나도 궁금한 것만 물었다.

   “그럼 안 돼?”

   엄마가 돌아가지 않을 생각인 듯했다. 아무래도 아빠랑 싸운 것 같았다.

   “집에는?”

   “응?”

   아무리 그래도 지금의 1인분짜리 집에서 두 사람이 계속 살 순 없었다. 

   “엄마, 집에는 안 가?”


   5


   금요일에 팀장에게 중간보고를 했다. 팀장은 자주 보고를 하는 걸 선호하는 듯 했다. 자신이 먼저 묻기 전에 페이퍼 한 장이라도 들고 찾아오는 사람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지난해 승진에서 또 밀린 뒤로 나도 좀 영악해지기로 결심한 터였다. 

   “어, 왔어요?”

   팀장이 회전의자를 내 방향으로 조금 돌렸다. 고개는 들지 않은 채 손에 든 파일을 훑고 있었다. 마흔 중반이 넘은 팀장의 정수리 부근이 작년보다 훨씬 비어 있었다. 미혼인 그녀는 몇 년 전부터 퇴근 후 재테크 스터디를 열심히 다니더니, 작년에 회사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조성된 신도시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다. 그때 그녀는 무주택자 미혼 여성이 어떻게 신규 분양을 받을 수 있는지 술술 풀어 놓으면서, 나한테 2억을 주고 전세를 살 생각이었다면,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와서 무조건 매입을 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돈은 팔자나 운명이나 다름없다면서, 그걸 그렇게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고 했다. 일을 할 때는 한 번도 나를 호되게 꾸짖은 적 없는 사람이었는데, 그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한숨을 푹푹 쉬면서 회사에서 지하철로 한 시간 떨어진 동네의 허름한 빌라 한 채를 매입했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착각인지 몰라도, 이후 그녀가 나를 볼 때마다 그 눈빛에 한심함이 깃들어 있는 듯했다. 혹시 그것이 내가 작년에도 승진 심사에서 탈락한 이유가 아닌가도 싶었다. 

   그래도 괜한 자격지심은 나를 채찍질하는 동력이 되었다. 나는 팀장이 지시한 리서치 외에도 마녀 수프 판매를 위한 3가지 버전을 준비했다. 마녀 수프 블록, 마녀 수프 과립, 마녀 수프 가루. 이 3가지는 형태만 다를 뿐 1인분으로 소분된 패키지로 판매한다는 전략이었다. 이걸 기본으로 나중에 관련 제품을 출시한다면 과자나 빵 등에 맛 베이스로 첨가할 수도 있었다. 내 설명에 팀장은 보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소분 패키지가 강점이 되겠어요.”

   팀장에게는 그것이 눈에 띈 모양이었다. 사실 보여주고 싶은 건 벌써 판매 전략까지 염두에 두는 나의 세심함이었다. 이런 업적이 은은하게 축적되어 한 사람의 평가를 만들어낼 터였다. 물론 그런 게 쌓이고 있는 걸까 의심이 들 때도 있지만.

   팀장은 내 파일을 다른 서류 위에 무심히 올려 두었다.

   “지금은 좀 밋밋한데. 더 마음을 건드리는 게 있으면 좋겠어요. 뭔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게 없을까요? 어쨌거나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얘기해 봐요.”

   나도 모르게 그녀를 빤히 보고 있었는지 “자리로 그만 돌아가셔도 돼요.”라는 말을 들었다. 네, 하고 물러난 후 모니터 앞에 앉자 왼쪽 머리가 지끈거렸다. 마음을 어떻게 건드려야 하는 건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 의문에 휩싸인 순간, 비건의 맛만 표방한 그 케이크 밀키트 기획을 맡은 동료가 옆을 지나가면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에게는 과연 마음을 건드리는 무엇이 있는 걸까. 한참 모니터를 보고 있으니 슬슬 편두통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6


   엄마는 다섯 시에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누워 있었다. 몸에서 양파 냄새가 올라왔다. 엄마는 하루 종일 양파를 깠다고 했다. 그 사장이 악덕이고 망할 년이라고 했다. 눈물 콧물 쥐어짜며 양파만 까라고 하니 누가 그런 일을 하겠냐며, 못 참고 도망간 아줌마를 대신해 순진한 자신을 꼬여낸 거라고 했다. 도중에 그만두면 일당을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해서 결국 약속한 시간까지 양파를 까다가 온 것이라 했다. 엄마는 뒤늦게 올라오는 분을 이기지 못한 채 씩씩거렸다.

   “내가 고용노동부에 신고해 줄게. 딱 기다려.”

   고용노동부 전화번호를 키패드로 입력하자 휴대폰 연락처에 ‘퇴직금’이라는 이름으로 그 번호가 이미 저장되어 있었다. 한때 나도 억울한 고용인 중 하나였던 것이다. 첫 회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할 때 퇴직금을 적립하지 않아서 못 주겠다던 일이 떠올랐다. 고용부에 전화를 걸어 접수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장에 한 달 치 월급 정도가 들어와 있었다. 왜 줄 수 있으면서 못 준다고 했을까. 왜 이렇게 세상에는 할 수 있는 걸 못 한다는 사람이 많을까. 아마도 그 반찬 가게 사장도 할 수 있는 걸 못 한다고 하지 않았을까. 당장 신고해서 본때를 보여주자고 하자, 엄마는 내 휴대폰을 빼앗았다.

   “신고까지 할일 아니야. 그냥 화가 난다는 거지. 돈도 받았고. 또 양파도 받았어.”

   엄마는 냉장고 앞에 놓아 둔 검은 봉지를 가리켰다. 그 안에 깐 양파가 수북했다. 냄새는 엄마의 몸뿐 아니라 그 봉지 속에서도 올라오고 있었다. 

   “엄마, 내일 놀러 갈래?”

   놀러 가자는 말에 엄마의 얼굴에 돌연 화색이 돌았다. 숨길 수 없는 들뜬 기운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가고 싶은 곳이 있냐고 물었다. 엄마는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건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회사와 집 근처 말고 잘 다니지 않았다. 데이트를 하더라도 멀리 나가지 않았다. 한성이 마다않고 내가 사는 곳으로 찾아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는 기분이 내키면 근처 카페를 가거나 외식을 했지만, 보통은 집에 누워 영화나 예능을 보는 식이었다. 

   나는 ‘서울 여행’을 검색했다. 가장 상단에 뜬 블로그에 들어갔다. 가족끼리 서울에 올라와 광화문 광장에서 사진을 찍고 경복궁을 구경한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딱 이렇게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우리는 블로그에 나온 경로대로 움직였다. 광화문 광장을 거닐고 세종대왕과 이순신 동상 앞에서 사진도 찍고 경복궁도 둘러보았다. 나중에는 다리가 무거워져서 서울 여행인지 걷기 대회인지 알 수가 없었다.

   늦은 점심으로 파스타를 먹고 디저트로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광화문 근처 고디바 매장 2층에 앉아 있었다. 엄마랑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하얀 바지에 무스탕을 걸치고 고디바 매장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홀린 듯 따라 들어온 것이었다. 그 남자는 하나에 만 원이 훌쩍 넘는 초콜릿 파르페를 시켜서 2층 중앙 자리에 혼자 앉았다. 엄마와 나는 그 남자를 흘끔 보다가 서로 눈을 마주치며 눈웃음을 지었다. 그 남자가 자리를 뜨자 엄마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면서 입을 열었다.

   “혼자는 민망해서 못 들어오겠어. 너 없으면 어떻게 여길 들어와. 난 딸 있어서 좋아. 이런 데도 오고.”

   사실을 말하자면, 엄마가 내 소매를 잡아끌면서 우리도 여기 갈래? 하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엄마는 자꾸 “이런 건 무산에 없어.” 하면서 고디바, 고디바가 무슨 뜻이야, 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초콜릿 사갈까?”

   “비싸던데?”

   “괜찮아. 매일 먹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여섯 피스가 든 초콜릿 상자를 선택했다. 그런 후 밖으로 나와 정처 없이 걸었다. 엄마는 휴대폰에 내장된 만보기 앱을 보더니 벌써 만 오천 보 넘게 걸었다며 다리가 팍팍하다고 했다. 저녁을 먹기에는 시간이 애매해서 팥죽집에 들어갔다. 다리를 쉬어 주면서 단팥죽을 작은 그릇으로 두 개 시켜 먹었다. 엄마는 전반적으로 음식 맛은 무산이 더 낫지만 서울은 뭐든 정갈하게 나와서 좋다고 했다. 만보기 앱에는 벌써 만 팔천 보가 찍혀 있었다. 

   “이렇게 걸어야 하니 다들 건강하겠어.”

   엄마는 서울 사람들이 많이 걸어서 건강하겠다고도 했다. 나는 아닐 거라고, 무산이 공기가 좋으니 무산 사람들이 더 건강할 거라고 말했다. 엄마는 언젠가 신문에서 서울 노인들이 더 오래 산다는 기사를 봤다고 했다. 그게 많이 걸어서 그런 걸까? 나는 병원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니겠냐고 했다. 엄마는 그것도 맞지만 자기 말도 맞을 것 같다며 갑자기 소녀처럼 까르르 웃었다.

   “이렇게 다른 데 와보니까 알겠어. 무산은 참 걸을 데가 없는 동네가 됐어.”

   집에 돌아가기 위해 역으로 걸어가면서 엄마는 헬스클럽 반년 치 회원권을 끊은 얘기를 했다. 

   “헬스클럽을? 엄마가?”

   “기계가 좋더라. 앞에 핸드폰 고정해 놓고 계속 걸을 수 있어. 유튜브 보면서.”

   엄마는 걸으려고 헬스클럽에 다니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 명절에 집에 내려간 일이 떠올랐다. 집에서 잠만 잤더니 하도 찌뿌둥해서 산책이나 하려고 밖으로 나왔다가 보도블록이 불쑥불쑥 솟아난 걸 보았다. 공사를 하려다 만 것인지 펜스만 둘러진 채 보도블록이 제거된 길이 이어졌다. 그나마 산책로를 조성해 놓은 길도 상황은 좋지 않았다. 깔아 놓은 우레탄이 드문드문 벗겨져 가로수의 뿌리가 드러난 곳이 많았다. 이웃 동네 쪽으로 걷다 보니 건설사 부도로 건물이 올라가다 만 현장의 가림막이 떨어져 바람에 나부꼈다. 앞을 잘 보고 걷지 않다가는 펄럭이는 천에 얼굴을 맞을 것 같았다. 아주 걸을 수 없게 된 길은 아닌데 미묘하게 자꾸 신경이 쓰였다. 그러다가 목줄 없는 하얀 개가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내 종아리까지 오는 제법 큰 개였다. 개는 총총 앞으로 나아갔다. 아무리 둘러봐도 개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인도와 산길이 면한 지점이었다. 개는 좌우를 둘러보더니 산 입구 쪽으로 폴짝 올라섰다. 혹시 유기되었다가 들개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목줄도 없는 큰 개가 산으로 갔다고 경찰에 전화를 걸어 신고했다. 경찰은 유기견은 자기들 소관이 아니므로 소방서에 신고를 하라고 했다. 그래서 소방서에 다시 신고했다. 구조대원은 나에게 “개는 잡아 두셨나요?” 물었다. “아니요. 개는 가버렸는데요.” 그러자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 개를 붙잡아 두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개를 구조하러 갈 수 있다고 했다. 그게 맞는 말이긴 한데 이상한 말이기도 했다. 개를 어떻게 붙잡고 있지? 앞으로는 산책할 때 개 사료를 한 줌씩 갖고 다녀야 할까······. 어쨌거나 소방대원은 개를 찾아 산으로 가보겠다고 했다.

   예전 같지 않았다. 그 길이, 우리 동네가, 무산이. 

   그것은 쉰을 넘긴 후로 매일 한 시간씩 동네 산책을 나서던 엄마가 갑자기 헬스클럽 회원권을 끊은 이유와 연결되는 것 같았다. 엄마도 나랑 똑같이 어느 순간 그 길을 걷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을 테다. 목줄 없는 개의 미래와 이 도시가 방치되었다는 느낌에서 벗어나 산책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었을 테다. 여기 당연하게 존재하던 깨끗함과 안전함을 그리워하면서.


   7


   집으로 돌아오자 엄마는 먼저 씻는다며 욕실로 들어갔다. 그사이 한성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혹시나 엄마가 들을까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외투를 걸치지 않아 맨살이 드러난 손과 목이 차가웠다.

   “어머니랑 어땠어?”

   “좋았어. 걷고. 고디바도 가고.”

   “고디바?”

   한성이 갑자기 낄낄 웃었다. 

   “왜 웃어?”

   “고디바는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 있잖아? 특별한 데를 갔어야지.”

   한성의 말을 듣고 나니 우리 모녀가 고디바 2층에 앉아 있던 시간이 별 의미 없는 일처럼 여겨졌다. 엄마가 무산에는 이런 게 없다며 소녀처럼 들떠 있던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한심하게만 보였을까? 

   “엄마는 거기가 제일 좋았대.”

   아주 나중에 서울에서 무슨 구경을 했나 추억하면, 우리끼리 기분을 내려고 작은 사치를 부려 초콜릿을 사던 순간이 먼저 떠오를 것 같았다. 

   “그래. 초콜릿이 맛있긴 하지.”

   한성은 눈치를 보는 듯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런 후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한성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먼저 입을 열었다.

   “언제 내려가실지는 모르겠어.”

   이번에도 그가 ‘아직도’ 안 가시느냐 물으면 참지 못하고 언성이 높아질 듯했다. 

   “다음 주에도 우리 안 만나?”

   그는 종일 심심해서 견딜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집에서 부모와 있는 것이 갑갑해 점심을 먹은 후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고 했다. 집 앞 스타벅스에 아이패드를 들고 가서 넷플릭스로 <성난 사람들>을 자막 없이 본 후 집 주변을 걸었다고 했다. 

   그의 집 주변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로드뷰로 찾아본 적이 있어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아파트 단지 앞에는 넓은 호수 공원이 있었다. 공원 입구에는 로스터리 카페와 스타벅스가 사이좋게 자리 잡았고, 공원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 좋은 건물에는 예약조차 힘든 프렌치 레스토랑이 있었다. 내가 그 식당에 가보고 싶다고 했을 때, 한성은 그곳이 자기 집과 너무 가까워 갈 수 없다고 했다. 혹시라도 길에서 부모님을 마주치면 서로 당황할 거라고 했다. 나도 그런 장면을 원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이유로 거길 못 간다는 말도 내심 납득할 수 없었다.

   “넌 좋겠다.”

   통화를 하면서 한성이 사는 아파트를 부동산 앱에서 검색해 보았다. 그 아파트는 이제 16억이 되어 있었다.

   “뭐가 좋아?”

   아마도 내가 16억짜리 아파트가 부러워 미칠 것 같다 말하면, 한성은 그 아파트가 자신의 소유가 아니고 부모의 집일 뿐이라 대꾸할 것이다. 오히려 자신은 독립된 공간을 가진 사람들이 부럽다고, 서른이 넘어서도 부모의 눈치를 봐야 하는 자기 처지가 답답하다고 하소연할지 모른다. 그런 징징거림이 누군가에겐 그저 교만으로 비칠 것이란 사실을 모른 채로. 

   “당분간 전화는 못 할 것 같아.”

   “무슨 소리야?”

   “엄마가 우리 사이를 눈치 챈 것 같아. 누군지 한번 보자고 해. 그건 너도 원하지 않지?”

   한성은 몇 초간 말이 없더니 시무룩한 투로 알았다고 답했다. 

   “당분간 톡으로만 연락해.”

  가끔은 무슨 말인가를 상대에게 건네고 나서야 내 진심을 알아차렸다. 나는 한성과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한성을 보면 그 얼굴에 16억이란 숫자만 떠오를 것 같았다.


   8


   엄마는 압력 밥솥을 꺼냈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밥은 어떻게 해먹을 거냐며 엄마가 급한 대로 집에서 쓰던 걸 부쳐 준 가재도구 중 하나였다. 밥솥은 서너 번 사용하다가 더 이상 쓰지 않게 되었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분식집에서 포장을 하거나 배달을 시켜 먹는 일이 많아져 밥을 할 일은 거의 없었다.

   엄마는 내가 집에 없는 동안 곳곳을 뒤져 본 모양이었다. 싱크대 하부장에서 그 밥솥을 발견하고 반가워 일부러 손닿는 곳에 빼놓았다고 했다. 냉장고 야채 칸에 쌀도 들어 있었다.

   “언제 이런 걸 다 사뒀어?”

   내가 샤워를 하는 동안 엄마는 쌀을 불려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하니까 사람 사는 것 같지?”

   엄마는 집에서 밥만 해먹을 줄 알아도 사람 사는 모양이 난다고 말했다. 반찬 가게에서 사온 네 팩의 반찬은 찬장 구석에 있던 유리 용기를 꺼내 각각 담아 두었다. 

   엄마는 밥솥으로 밥을 하고 남은 토마토 수프를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계란을 부쳤다. 김이 오르는 밥 위에 수프를 붓고 반숙 계란 프라이를 올리자 군침이 돌았다. 갑자기 허기가 밀려왔다. 나는 굶주려 있던 사람처럼 밥을 입에 마구 퍼 넣었다.

   “그러다가 밥그릇에 코 빠지겠어.”

   엄마는 사등분한 감자조림을 밥 위에 올려 주며 말했다. 

   “저번에는 냄새 난다고 짜증만 내더니.”

   “그건 그때고.”

   나는 민망함을 감추려 능청을 떨었다. 한참 밥을 먹는데 엄마의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는 눈을 가늘게 뜨고 휴대폰을 멀찍이 떨어뜨려 화면을 보았다. 

   “누구야?”

   “너희 아빠.”

   “아빠? 뭐래?”

   “자기가 잘못했대.”

   “싸웠구나?”

   “싸우긴······.”

   그제야 엄마는 진실을 말해 주었다. 짐작한 대로 엄마가 날 찾아온 이유는 단순한 기분전환이 아니었다. 

   엄마는 돌이켜보면 시시한 이유로 아빠랑 싸운 것이라 했다.

   도로의 소화기가 터진 이후, 마트에 물난리가 나고 엄마는 산책을 나갈 때 말곤 집에만 있었다. 아빠도 집에만 있었다. 그러니까 둘은 집에만 있었다. 아침에도 마주 보고 점심에도 마주 보고 저녁에도 마주 보았다. 잠을 잘 때는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나흘째 되던 날, 아빠가 엄마에게 말했다. “당신이 일을 안 하니까 이상해.” 그건 5년 전, 아빠가 정년퇴직을 했을 때 엄마가 아빠에게 한 말과 같았다. 엄마가 마트에서 일을 시작한 건 생활비에 보탤 목적이기도 하지만, 설령 남편이더라도 하루 종일 누군가와 한 공간에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을 것이다. “당신이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니까 좀 그러네.” 아빠는 돌려서 말한다고 한 것인데 엄마는 발끈했다. “그럼 나보고 어디 있으라는 거야?” 아빠는 손사래를 치면서 “그런 게 아니라 친구들도 좀 만나고 그러란 거지.”라고 했다. 그 역시 엄마가 5년 전 아빠에게 한 말과 비슷했다. 엄마는 갈 데가 없었다. 목욕탕에 가거나 노래 교실에 다니면서 얼굴을 익힌 이웃들이 있지만 그들에게 그냥 시간이 났으니 같이 놀자고 말하는 게 껄끄러웠다. “나랑 있는 게 싫으면 당신이 나가.” 엄마는 아빠에게 그렇게 말했다. 사실 아빠도 갈 데가 없었다.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 프로그램에 신청을 하려고 갔더니 60대 중반인 아빠는 완전히 젊은 축에 속해서 낄 틈도 없었다.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헬스클럽에 가서 러닝머신을 타고 땀을 흘려도 속이 풀리지 않았다. 답답한 속을 안고 집에 돌아가면 더 우울해지기만 했다. 그대로 두었다간 화병이 날 것 같아 엄마는 짐을 싸들고 서울로 올라왔던 것이다.

   이것은 엄마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였다. 그러나 나는 그 이야기에 숨어 있는, 엄마가 나에게는 절대 말하지 않을 또 다른 이야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때 아마도 아빠의 입에서 ‘그러니까 왜 그 집을 팔아서······.’ 하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았을까. 아빠는 이전보다 줄어든 공간에서 두 사람이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을 테다. ‘이사를 하는 건 당신도 동의했잖아.’ 엄마는 억울했을 테고 ‘내가 무슨 동의를 해? 집 문제는 항상 당신 마음대로 했지!’ 하면서 아빠도 묵혀 둔 서러움을 내비쳤겠지. ‘다섯 평짜리 방 하나 얻는 데 그 돈이 말이 돼? 고작 그거 얻어 주려면 집은 왜 팔았어? 왜?’ 엄마는 콧방귀를 뀌었을 테다. ‘요새 그 정도가 무슨 큰돈이나 되는 줄 알아?’ 엄마의 일침······ 아빠의 침묵······ 그런 대화가 두 사람에게 전혀 없던 일은 아니었으리라.

   그래도 아빠가 먼저 잘못했다고 말해 준 걸로 엄마는 속이 풀린 듯했다. 

   “내일은 갈 거야. 팔도 제대로 못 뻗는 방에 더 빌붙을 염치도 없고.”

   숟가락 위로 양파 절임 한 조각이 올라왔다. 나는 말없이 그걸 입에 넣고 오래 씹었다. 짠맛이 나다가 단맛이 나다가 신맛이 났다. 

   “엄마.”

   ‘미안해’ 그런 말은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돈 많이 벌어서 엄마 돈 갚을게’ 그런 약속도 할 수 없었다. 확신할 수 없는 미래를 담보로 내세울 만큼 천진한 시기는 지나버렸다.

   “왜?”

   엄마는 빈 그릇을 싱크대에 가져다 두면서 돌아보았다.

   “내일 갈 거면, 수프 좀 만들어 주고 가.”

   “냄새 나서 싫다며?”

   “그래도 만들어 줘. 내가 하면 그 맛이 안 나.”

   엄마는 어휴, 변덕,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냉장고로 향했다. “혹시 몰라서 사뒀는데······.” 냉장고 문을 닫고 돌아선 엄마의 품에 그때의 깐 양파와 언제 샀는지 모를 완숙 토마토가 안겨 있었다. 


   9


   엄마는 고디바 초콜릿을 아빠에게 기념 선물로 준다면서 한 피스도 건드리지 않았다. 포장을 뜯지도 않은 채 구겨질까 조심히 가방에 넣었다. 냄비에 있던 수프를 소량으로 용기에 나눠 담았다. 

   “끓이는 건 귀찮으니까 먹을 만큼만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어.”

   그러고 보니 궁금했다. 

   “엄마, 우리 언제부터 이걸 먹기 시작한 거지?”

   “기억 안 나?”

   엄마는 내가 어린 시절 비염이 심해서 항상 입을 벌리고 다녔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어렴풋하게 생각이 났다. 코가 막히니 입을 열어 숨을 쉬어야 했고 말할 때도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그게 아이들의 놀림거리까지 되었다. 엄마는 그게 싫어서 나를 데리고 동네에 있는 모든 이비인후과와 소아과를 돌았다. 그러다가 어느 의사에게서 몸속 염증을 없애려면 식습관이 중요하다는 말과 함께 약 대신 야채수프를 처방받았다. 바로 그날, 엄마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양파와 토마토를 냄비에 넣고 끓였다. 

   그 중 내가 생생히 기억하는 건 엄마가 처음으로 그 수프를 내 국그릇에 덜어 주던 순간이었다. 맛있니? 엄마가 물었을 때, 이게 맛이 있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 파악할 수 없을 만큼 그 수프는 생소한 맛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을 한 그릇 비우고 또 비웠다. 며칠을 먹고 먹어도 질려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것은 내 몸의 염증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었을 테고, 그래서 코가 막히는 일이 줄었을 테고 놀림거리가 되는 일도 점차 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 집에는 양파가 들어간 토마토 수프 냄새가 떠나지 않았으리라.

   “그 의사가 참 명의였는데 말이지.”

   추억에 젖을 시간은 없었다.

   “엄마, 이제 나가야겠다. 그만 짐 챙겨.”

   “반찬은 쉬기 전에 먹고. 여기 옆에 반찬 가게 또 있더라. 1층 말고 거기로 가.”

   “내가 거길 왜 가. 안 가니까 걱정 마.”

   “그 양심 없는 아줌마한텐 인사도 하지 말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엄마의 캐리어를 끌었다. 


   이른 아침이라 거리는 한산했지만 한 시간만 지나도 출근하는 인파로 북적거릴 터였다.

   “혼자 터미널 갈 수 있어? 택시 안 타고 가도 돼?”

   “지하철 타면 금방 가. 여기가 그거는 좋더라. 환승 안 해도 되는 거.”

   엄마의 입에서 처음으로 이 집이 좋다는 소리가 나왔다. 환승 없이 터미널까지 갈 수 있는 교통편이야말로 7천만 원을 보태서 만든 편리 중 하나라고, 나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얼른 들어가. 출근 안 할 거야?”

   “택시비 준다니까. 고집도 세.”

   “올 때도 잘 왔어. 걱정 말고 가.”

   엄마는 캐리어 손잡이를 한 단계 더 길게 뽑더니 들들 끌며 앞으로 나아갔다. 몇 걸음 못 가서 뒤를 돌아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조심히 가. 앞에 잘 보고.” 

   엄마는 지하철역까지 캐리어를 끌고 가면서 세 번이나 나를 돌아보았다. 나보고 얼른 들어가라며 손을 저었다. 나는 엄마가 코너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엄마가 챙겨가지 않은 물건이 책상에 남아 있었다. 반찬 가게에서 가져온 비타민 젤리 약통이었다. 주황색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아 보니 시큼보다는 새콤에 가까운 향이 났다. 

   엄마를 배웅하느라 일찍 일어난 참이라 평소보다 여유로웠다. 그대로 책상에 멍하니 앉아 있으니 지난밤의 일이 떠올랐다.

   엄마는 잠들어 있었고, 나는 남아 있는 토마토 수프 냄새를 빼려고 창문을 살짝 열어 둔 채 휴대폰으로 쇼츠를 넘겨보고 있었다. 길고양이를 구조한 영상이나 강아지가 애교를 부리는 영상에 ‘좋아요’를 몇 번 눌렀더니 동물 관련 영상이 자주 떴다. 영상을 넘기다 보니 원래 작은 품종인지 손바닥보다 조금 크고 북슬북슬 하얀 털을 가진 귀여운 포메라니안이 나왔다. 그 강아지 앞에는 작은 모형의 돈가스 한 판이 놓여 있었다. 그것은 강아지가 먹을 수 있는 재료로 만든 돈가스였다. 신기하게도 사람이 먹는 돈가스와 모양이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크기가 강아지의 몸 크기에 비례해 작았을 뿐이다. 강아지는 혀를 날름거리다가 돈가스 조각을 물어 입안에 넣고 우적우적 씹어댔다. 얼마나 야무지게 먹는지 보고 있는 나도 군침이 돌 정도였다. 너무 귀여워서 또 ‘좋아요’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문득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아지가 있으면 애인은 없어도 될 것 같았다. 사람이 아니라 강아지와 반려한다면, 산책로는 필요해도 넓은 집은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닌가? 강아지야말로 활기찬 이동이 가능한 충분한 넓이가 필요한 걸까······. 아무래도 강아지를 키워 본 적이 없어 내 생각의 흐름은 꼬여만 갔다. 그렇게 옆으로 돌아누운 채 문득 바닥에 누워 잠든 엄마를 내려다보았다. 엄마는 그때처럼 팔을 쭉 뻗고 있었다. 나는 휴대폰 화면에서 나오는 빛으로 엄마의 팔을 비춰 보다가 뭔가 이상하단 걸 알아차렸다. 그렇게 쭉 뻗은 엄마의 손이 며칠 전만 해도 벽에 닿았는데 이제는 닿지 않았다. 엄마가 누운 위치가 달라졌을까. 그럴 수는 없었다. 아래 화장대가 놓여 있으므로 엄마가 더 내려갈 공간은 없었다. 몸을 반쯤 일으키고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인 채 나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혹시 엄마의 몸이 줄어든 건 아닐까?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팔은 줄어든 듯했다. 그것은 미묘한 변화였다. 그날 엄마의 손끝이 벽에 닿을까 조마조마하게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면, 그 팔을 내 손으로 직접 이불 안으로 끌어넣어 주지 않았다면 무심코 지나쳤을 것이다. 혹시······ 설마······ 점차 엄마의 몸이 줄어들었다는 불안한 확신이 나를 사로잡았다. 휴대폰 화면을 톡 건드려 꺼지지 않게 한 후 은은한 빛에 엄마의 팔을 다시 비췄다. 얼마나 줄어든 걸까. 정말로 줄어든 것이라면, 도대체 무엇이 엄마의 몸을 줄어들게 한 걸까. 

   그때, 머릿속에서 불이 켜지듯 무언가 떠올랐다. 나는 하나의 단서를, 엄마가 영양제를 서비스로 받아올 때 나에게 들려준, 저 비타민 젤리의 효용을 기억했다. 서울 사람들한테 좋다더라는, 특히 여기 원룸 사는 사람들이 필요로 한다는 그 약의 효과를 말이다. 그것은 혹시 몸을 줄어들게 하는 게 아니었을까. 몸을 줄이고 욕망을 줄이고 우리가 소유한 공간을 적당하다고 느끼게 하는 것······. 어째서인지 그것은 이 원룸의 전셋값 책정 기준보다 합리적인 생각으로 여겨졌다. 그렇지만 정말 그런 것이 있을 수 있나. 혹시나 가능하다면 나는 내 몸을 꼭 절반만 줄이고 싶었다. 1인분의 공간에서 두 사람이 살아도 좋을 만큼만.

   약통에서 젤리 한 알을 꺼내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귤 맛이 났다. 물론 귤 맛이지 귤은 아니었다. 씹다 보니 사과 맛도 났다. 물론 사과 맛이지 사과는 아니었다. 


   실은 어젯밤 엄마가 잠투정을 부리며 살짝 구부러진 팔을 쭉 뻗었을 때, 그 손가락이 벽에 닿을 듯 말 듯했고 내가 그 손을 다시 이불 속에 넣어 준 것을 잊지 않았으므로, 나는 이 모든 착각을 털어내고 약통을 비운 후 분리수거함에 버렸다. 그러나 내 머릿속을 잠시 휘저어 놓은 그 한밤의 착각들이 조악하나마 실은 달콤했다는 걸 떠올리면서, 우리 집의 자랑이자 엄마의 시그니처 메뉴, 누군가 호기심을 보인다면 기꺼이 이 맛을 보게 해줄 양파가 들어간 토마토 수프 하나를 출근 가방에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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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식물원 하가람 식물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다이아몬드 모양의 철골로 둘러싸인 거대한 유리 온실에는 열대와 지중해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이국적인 식물이 자란다고 했다. 한 달 전 나는 식물원 근처에 있는 여러 호텔을 찾아 은규에게 링크를 보냈다. 보통 때의 그라면 어디든 좋다고 했을 것이다. 레스토랑도, 카페도, 동네의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조차도 모조리 내 선택에 맡기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날 은규는 이미 예약한 곳이 있다고 하여 나를 놀라게 했다. 은규가 보내 준 링크를 열어 보았다. 넓은 통유리 창 너머로 식물원과 공원이 내다보이는 스위트룸이었다. 나는 조금 들뜬 채 답장했다. — 우리가 만난 지 곧 1년이래. 믿어져? 1년이라는 시간은 내게 유별났고 은규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는 것이었다. 그가 전에 사귄 여자친구는 단 두 명인데 각각 4년, 5년을 만났다고 했다. 매번 석 달도 채 넘기지 못하는 나와는 달랐다. 이따금 은규에게 이전 연인들에 대해 물었다. 그들이 어떤 성향의 사람이었고 어떤 외양을 가졌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응응, 하며 대꾸해 주던 은규는 내가 그녀들의 음악 취향이나 살던 동네처럼 구체적인 정보까지 캐묻자 태도를 바꾸었다. 기억 안 나. 그는 말했다. 다 옛날이야기라고. 그 후로는 이전에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그녀들을 생각했다. 눈, 손톱, 말투, 그리고 신발. 나와 닮았을지, 닮았다면 얼마나 닮았고 다르다면 무엇이 다를지도. 상상을 이어 가다 보면 늘 한 가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은규는 한 번도 애인과 잠자리를 가진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여자와 밤을 보내는 일이 오늘 그에게는 처음이었다. 서른을 넘긴 남성에게서 보기 드문 경우였지만 그가 처음인 게 좋았다. 그 점이 무엇보다도 나와 그녀들을 구분 지어 주는 것만 같았다. 차창에 머리를 기대었다. 햇볕에 데워진 창문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인터넷으로 보았던 화려한 꽃과 기다란 나무들을 떠올렸다. 노랗고 푸르고 분홍빛이 맴도는 공간을. 여름 휴가철이었고 도로는 차들로 빽빽했다. 졸음 껌을 씹는 은규를 보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운전하고 싶었는데.” “다음에. 너 힘들어.” 은규가 말했지만 나는 안다.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그는 내게 차를 맡기지 않을 것이다. “보면 놀랄걸? 너무 잘해서?” 나는 허리를 세운 채 한 손으로 반원을 그려 보았다. 휙휙. 입으로 소리 내며 운전대를 쥔 그를 따라 했다. 그가 웃었다. 머릿속으로 주행하기. 그것은 나만의 놀이였다. 캠퍼스 변두리에 있는 H관 1층, 5평 남짓한 주차관리실에서 상상력을 충족시켜 줄 만한 것은 많지 않았다. 먼지 쌓인 커피믹스와 낡은 소파, 책상 위에 시간별로 놓여 있는 분홍색, 파란색, 노란색 주차권들. 지겨운 서류, 서류, 서류. 드물게 실장이 자리를 지키는 날이 아니면 대체로 혼자 그곳에서 일했다. 사람들이 찾아와 주차권을 사거나 정기 등록을 마친 후 돌아가면 나는 모니터에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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