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사랑 없이는 깰 수 없는 유일한 꿈이었다.
- 작성일 202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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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사랑 없이는 깰 수 없는 유일한 꿈이었다.
- 춤추는 무당 당골 이심과 춤추지 않는 무당 오키나와 영매 유타의 사진에 대하여
한정현
기생 아니고 무녀예요.
무당이라고요, 아저씨. 이 여자한테 그랬다간 저주받는다고요. 어쩌려고요? 팔아먹게? 그런 말을 했던 이는 곧 어흥, 하는 표정을 짓는다. 얼굴을 잔뜩 구기면서 말하는데도 생생한 눈빛이 빛난다. 사내는 입을 반쯤 벌리고 그이의 얼굴을 바라보다 퍼뜩 정신이 들었는지 되레 큰소리다. 내, 내가 억지로 잡아끌었나! 누가 이 얼굴에 돈을 내겠어! 그 말을 하면서도 사내는 손목이 잡힌 이심이 아니라 그이의 얼굴을 힐끗거린다.
나도 그냥 기생은 아니죠. 아저씨 그렇게 내 얼굴 빤히 보면 돈 내야 돼. 알죠?
아닌 게 아니라 그이가 입고 있던 소맷자락이 그것을 알려준다. 잘 다린 소맷자락에 수가 놓여 있다. 초량권번. 사내는 돈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아까보다도 낮은 자세로 어느새 이심의 손목을 놓고 슬그머니 물러선다. 사내가 놓아 준 이심의 손목은 줄이 그어진 듯 붉다.
공창제도는 한참 전에 없어졌지만, 부산이든 서울이든 이젠 사창제도가 판을 쳐요. 미군들에게 매매 놓아 주는 곳도 많고요. 몰랐나요?
어느 누가 꿀이라도 한가득 따라 놓은 걸까. 남북이 서로 총을 겨누며 싸운 지 1년이 넘고 보니 거리마다 향기는커녕 악취가 진동했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향을 품고 있구나. 이심은 공창이 뭔지도 사창이 뭔지도 몰랐다. 이 부산이라는 곳에 오기 전까지. 다만 저건 알았다. 그이가 들고 있는 소매 끝에 달린 초량권번이라는 이름. 이 사람은 북쪽이 밀고 내려올 때 군예대로 온 최승희의 제자일까, 아니면 호남 제일 이매방의 제자일까. 이심은 문득 건너의 그이가 자신과 비슷한 또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심은 아마 저이가 권번에 들어갈 무렵 시집을 갔을 거다. 세습무라는 것은 보면 희한했다. 부모가 전라도 세습무인 당골이라 한들 그 자식이 당골이 될 수는 없었다. 신과 인간을 잇는 것이 그들의 업, 인간사 그 모든 번뇌 속에서 자신의 삶은 없는 한 맺힌 자리라 그런 것일까. 기이하게도 당골은 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로 이어지는 거였다. 그렇다면 이심은? 남원 가재골 3대 당골 이심은 어떠한가. 이심은 제 발로 그 집에 들어갔다. 이심은 신이 아닌 한 인간에게 모든 걸 걸고자 했다. 한여름 빨래터에서 땡볕을 지고 일하는 이심에게 다가와 부채로 가만히 빛을 막아 주던 그 소년에게 모든 것을 걸고자.
사라진 것이 네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처음 해변에서 홀로 하얀 천을 두르고 기녀들이나 추던 입춤을 휘날리듯 추던 그 누군가. 어느 집 기녀가 저리 고울까. 종일 마른 볕에 앉아 빨래를 하던 이심에게는 꿈같은 광경이었다. 어지러움에 잠시 이심이 감았던 눈을 뜨고 보니 어느새 그 꿈이, 아니 그가 웃으며 부채로 빛을 가려 주고 있었다. 뜻하지 않게 빛나던 그것은, 윤슬이 아니었다. 그의 춤이었다. 이심은 저도 모르게 저 말을 중얼거렸다. 소년은 가만히 미소를 머금었다. 예로부터 남쪽 지방 박수무당은 남자여도 여자 옷을 입고 점을 봐야 하는 전통이 있어서 모두가 천대하는 자리였다. 이심은 그가 지리산골에서 온 박수무당이란 것을 알았지만 끄떡없었다. 도리어 그렇게 구박만 하던 자신을 시집보내면서 그가 박수무당이라고 홀대하는 부모가 한없이 미울 뿐이었다. 이심에게 그 소년은 그저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때리지 않고 존대를 해주는, 어떤 말을 해도 다 알아듣는 지기와 같았다. 허구한 날 기녀들의 옷을 입고 춤을 추는 놈, 남자 구실을 못 하는 사내, 밤마다 수동무와 히히덕거린다던데. 사람들의 말에도 이심은 끄떡없었다. 그래, 이심도 알고 있었다. 이심이 느끼기에 지기는 분명 자신을 아꼈지만 다른 집 남자들처럼 이심과 몸을 섞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이심의 지기는 그런 사람이었다. 오일장에서 이심이 고운 비단이라도 만지작거리는 날이면, 다음 굿을 하고 나면 꼭 이 옷을 사주겠다고 말해 주는 사람. 버는 돈은 모두 상황전에 올려야 하잖아요, 이심이 말하면 쉿 하고는 그럼 우리 신 몰래 하면 되죠, 장난스레 웃어 보이던 사람. 이렇듯 평생의 지기를 가졌으니 누구도 부럽지 않을 이심이었다. 그래서 시어머니인 가재골 2대 당골이 굿판을 열어 박수무당인 지기에게 신이 실리게 할 때조차 그게 뭔지도 모르고 열심히 그 옆에서 북을 쳤다. 사람들이 굿판을 보다가 이심이 흥을 돋우는 걸 칭찬하면 남편과 시어머니는 이심보다도 뿌듯해 해주었다. 물론 그리 다정한 시어머니도 굿판의 춤을 가르칠 때만큼은 아주 서슬 퍼런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한 많은 여인들의 입이나 다름없단다, 신이 잘 들어 주시도록 신명을 내야지. 그러나 이심에게는 승무도, 살풀이춤도, 검무장군춤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굿판이 펼쳐지면 흡사 날아오르듯 춤을 추는 시어머니와 그 춤을 본 사람들이 흐느껴 울며 마음을 풀어내는 것만이 대단해 보였다.
이심아, 신은 사실 욕심쟁이란다. 인간이 뭐라도 가졌다고 보이면 가만 두질 않으시니 그게 하나 걱정이구나.
어머니가 이리 말할 때도 이심은 세상 천지에 지기 하나밖에 없는 자신과 결코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지기에게 대체 신이 가져갈 것이 무엇인가 싶었다. 그래, 그땐 몰랐다, 이심은 자신이 가진 것이 무엇인지를. 신이 가장 게걸스레 탐내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말이다. 후방이라 전쟁이 난 줄도 몰랐던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어느 날부터인가 보도연맹이라는 말이 돌았다. 그런데 보호하고 도움을 준다던 그들이 사람들에게 묻고 다녔던 것은 딱 하나였다. ‘북이야, 남이야?’ 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마을 사람 대부분은 대답을 듣지 못했다. 대답을 듣기도 전에 빨갱이가 되어 모두 죽었다. 마을 한가운데 보름마다 제를 올리던 천 년 된 나무가 잘려 나갔고 우물물은 붉게 물들었다. 국군들이 일본도를 들고 사람을 죽인다는 말이 허다하게 흘러나왔다. 이심은 그날 집으로 돌아와 부리나케 짐을 꾸렸다. 남원은 시내까지 국군하고 미군들이 들어와 길을 막았다고 했다. 그러나 지기는······ 보름달 아래서 지기는 흰색 치마저고리를 두르고 한참이나 춤을 추었다. 평소 추던 입춤이 아니었다. 그건 살풀이였다. 죽은 영들을 달래 주는 춤. 이심은 차마 그 춤을 막지 못했다. 다만 그날 밤 이심은 곤히 잠든 지기의 등 뒤에서 이리 중얼거렸다.
윤슬은 너무나 아름다워. 그런데 말이야. 나 하나를 알게 된 것 같아. 그걸 손에 쥐려고 가서 보면 거기엔 아무것도 없는 바다 한가운데였을 뿐이었어.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적이 없던 이심이었다. 꿈이었다, 그것은. 오로지 사랑 때문에 깼던 꿈. 그런데 그날 이심은 지기에게 그 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기척을 듣고 일어난 지기가 영문을 모른 채 이심을 가만히 안아 주며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저, ‘그래서 아름다웠던 게 아닐까요? 아름다울 때 사라져 버려서요’. 이심은 얼핏 그제야 무언가를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아름다움에 대하여, 아니 어쩌면 삶에 대하여.
그즈음 신분제 폐지와 미신 타파 사업 때문에 도리어 가짜 무당이 판을 치기 시작하고 있었다. 경기도에 만신이 있고 또 화랭이가 있는 것처럼 남도 땅에는 당골과 무당이 있었고 제주에는 심방들이 가내신과 산신을 받들고 있던 터였다. 당골은 본디 신이 내려오지 않았으나 신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사람들이었다. 굿을 벌일 수 있는 것도 오로지 당골이었다. 강신무들은 그저 영혼의 말을 전달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미신 타파가 시작되면서 많은 당골들이 무녀가 아닌 기녀의 삶을 선택했다. 그 틈을 타서 굿판을 열어 돈을 버는 가짜 강신무들이 생겨났다. 그리 살아야 하는 게 운명이라면 진짜 신을 섬기고 싶었던 지기여서 그랬을까. 가짜들이 나타나자 도리어 진짜가 보이기 시작해서였을까. 지기에게서 아무도 원하지 않은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진짜라는 건 어쩌면 그리 아름답지 않은 것일지도 몰랐다.
이승만이가 나라를 팔아먹는구나, 한강 다리를 무너뜨리고 빨갱이도 아닌 사람들을 다 죽인다, 지 편이 아니면 미국 편이 아니면 다 죽인다. 모두가 더 죽을 거다.
그러게, 그때 이심은 지기 입을 손으로라도 막아야 했을까. 누군가 지기가 한 말을 고발했다. 이심은 지기의 얼굴이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숨이 가빠 왔다. 그들은 무당이라고 하니 당골을 생각한 모양이었다. 여자들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그날 지기는 가만히 이심을 안고 등을 몇 번 쓸어 주고는 이심에게 자신이 숨겨 놓은 옷을 가져다줄 수 있냐고 물었다. 이심이 그 옷을 찾으러 간 사이 이심과 지기가 살던 그 집에 보도연맹원들이라는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이심은 그 옷을 지리산골 어느 암자에서 찾았다.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열어 보지 말라 하여 걸음을 서둘렀으나 암자의 비구니가 이심의 팔을 잡았다. 이심은 무심하지만 확고한 그 눈빛에 걸음을 멈추었고 이내 보자기를 풀었다. 쌓여 있던 것은 흰 소복이었다. 춤을 사랑한 건 당신이잖아요. 이심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심은 그날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눈이 붉은색으로 변할 때까지 눈물이 흘러내렸으나 지기가 준비한 흰 소복을 입고 비구니 암자에서 승무를 추었다. 살풀이를 추었다. 다음날 집으로 돌아갔을 때 마을에는 남아 있는 사람이 없었다. 우물은 붉은 피로 새빨간 물만 가득했다. 태워져 멀리 가버렸을까, 지기의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혹시 권번에서 사람 뽑는 거 알고 있나요? 이거.
이심은 가빠 오는 숨을 겨우 참으며 그이를 돌아봤다. 권번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이심은 언젠가 목포에서 온 양장을 입은 여인이 찾아온 일을 떠올렸다. 평생의 지기가 아직 곁에 있을 때였다. 강신무이기에 지기는 굿판에서 춤을 추진 않았다. 다만 굿판이 끝난 다음에 역에 천막을 쳐놓고 몰래 추곤 했는데 관객들은 늘 있었다. 소문이 그리 난 모양이다.
이매방이라는 춤꾼도 남성이에요. 하늘에서 내려온 춤선생이라고들 하는 사람이에요.
여인이 말해 준 이매방이라는 사람은 무당도 아닌데 살풀이춤과 승무, 장검무가 뛰어나고 북춤은 마치 신이 들린 것 같다고도 했다. 특히 남성인데도 기녀가 추던 입춤을 춘다는 거였다. 그러고도 천대를 받지 않아요? 이심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그 여인은 싱긋 웃어 보였다. 여성성 있는 건 자랑이 되어야지요. 여성성이 있어야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어요. 이매방 선생은 남성인데도 권번에 들어가 기녀들에게 춤을 배웠거든요. 우리 목포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지요. 그러면서 그 여인은 남편을 다시 바라보고는 이심에게 작은 종이를 쥐어 주었다. 내 주소지예요. 저는 무용연구소에서 조교로 일해요. 남편분께서 아주 재능 있으세요.
이심은 그때 남편이 천대받지 않고 그 좋아하는 여성들의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에 마음이 달떴다. 내가 만들어 줄게, 신이고 뭐고 내가 데리고 갈 거야. 이심은 그날로부터 시어머니의 굿판 수업에 열심이었다. 어엿한 당골이 되고 집안의 가장이 되어 남편이기 전에 평생의 지기인 그를 권번에 입학하게끔 돈을 벌고 싶어서였다. 인간이니 받은 걸 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유망한 춤꾼이자 바른말을 하던 강신무였던, 이심의 평생지기인 그는······ 치마저고리를 두른 특유의 고운 자태를 보고 여성으로 착각한 국군에 의해 강간당한 후 불태워졌다고 듣기만 했다. 그래도 당골은 살아계셔서 다행이에요, 그런데 저는 잊을 수가 없어요. 가재골의 대부분 여성들이 그리 죽었으니, 살아남아 이것을 이심에게 말해 준 이는 그만 미쳐 날뛰다 우물에 뛰어들고야 말았다. 이심은 그가 뛰어든 우물이 여전히 붉은색인 것을 기억했다. 그런데 권번이라니······ 이제야 권번이라니······ 이심이 눈물을 삼키며 그이가 내민 전단에 손을 뻗었을 때였다.
유타 아기씨! ユウタさん、お嬢さん! ここで何してるんですか? ずっと探してました。
골목 끝에서 짐 가방을 든 소녀가 끙끙거리며 다가온다. 거기, 정미니? 유정미 맞지? 이심은 둘의 대화에 눈을 가늘게 떴다. 분명 일본어였다. 그러나 일본인 기녀는 창기밖에 없다고 하였는데. 그러나 그것을 묻기도 전에 이심은 주저앉을 뻔했다. 찰나에 빛나던 그이의 눈. 이심은 세습무인 당골이니 신적인 예언도, 영가의 기운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신이 실렸던 누군가의 눈빛은 기억한다. 본래 인간이 기억하는 건 딱 두 가지다. 증오와 사랑. 증오에 죽음 가까이 갔던 이심이었는데······ 그때까지 머뭇거리던 이심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눈앞에 있는 그 사람에게 한 발자국 다가섰다.
나무아미타불
신령님이 보우하사
나무아미타불 신령님이 보우하사
허씨 가주 무슨 사연 깊어 허귀잡신 되어 이승을 떠도시오
나 허승완이 1950년 11월 20일 남원 가재 마을 마을회관 앞에서 허귀잡신 되었소다
국군 미군 마을 사람 꿇어앉혀 그날 군대 안 간 마을 남자 모두 죽었으니 찾아보오
나무아미타불 신령님이 보우하사
나무아미타불 신령님이 보우하사
유타는 아까부터 여자의 등 뒤에 서 있는 젊은 영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이것은 학살의 기운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유타에게는 누구보다 익숙한 기운이었다. 그래, 유타라는 이름, 이것은 분명 본토의 이름이 아니다. 오키나와에는 두 가지 종류의 무당이 있었다. 신당의 제사를 지내는 사제와 죽은 영가들과 소통을 하는 영매. 영매들을 두고 유타라고 불렀다. 본래 유타는 신과 소통을 하는 게 아니라 죽은 영들과 소통을 하다 보니 사사로운 이야기들을 전해 줄 때가 많았다. 그러나 본토가 패망하고 미군이 들어올 때 오키나와에 거대한 학살이 시작되었다. 본토로부터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집단 자결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그러면 오키나와도 본토 사람들과 같아질 수 있다고 했다. 오랜 시간 오키나와 사람들은 조선인들과 함께 본토인들에게 노예 취급을 당하고 있었다. 인간이 될 수 있다니, 오키나와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어제까지 동료로 지내던 조선인을 고발했고 자신들의 배에도, 자식들의 배에도 칼을 댔다. 물론 그것은 거짓이었다. 그리 죽은 자들이 너무 많아지니 유타들에게도 많은 이야기가 한 번에 쏟아졌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쌓인 한을 달래 주는 것이 유타들의 몫이 되었다. 여자의 등 뒤에도 필시 학살로 죽은 영가가 있다. 그런데 이 영가, 다른 영가들과 좀 달랐다. 영가가 말하고자 했다면 진즉 영매인 자신에게 먼저 붙었을 것이고 한을 품었다면 그 역시 자신과 같은 영매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 숨었을 것이다. 유타는 조선 남쪽과 제주에도 오키나와와 비슷하게 세습무 당골과 심방, 강신무인 무당이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당골과 심방들은 사제처럼 세습되어 그 제를 올리는 사람이고 무당들은 신이 들린 사람이라는 것을. 그런데 이 여인은······ 등 뒤의 영가도 느끼지 못하는데 신의 기운과 예인의 습관이 동시에 어려 있으니 당골인가 보다. 본래 조선은 강신무가 굿판을 벌이면 벌전을 받는다 하여 오로지 춤출 수 있는 무녀는 당골뿐이라 하였다. 유타는 자신이 이 여인에게 끌린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저, 임자는······ 일본 사람인가요? 아니면······ 예인, 이신가요?
유타는 퍼뜩 눈앞에 다가온 이심을 바라보았다. 이심이 움직이자 그의 뒤에 서 있던 영가가 이심 곁에 다가와 선다. 이 영가는 유타에게 관심이 없다. 이 영가는 자신의 죽음보다도 이심을 걱정하고 있던 거다. 여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여인, 나에게서 이 영가의 기운을 보았구나······ 유타는 갑자기 온몸에 열기를 느꼈다. 누가 몸에 불을 지른 듯했고 칼로 성기를 쑤시고 배를 가르는 느낌에 견딜 수 없는 치욕과 살이 뜯기는 육체적 고통을 함께 느꼈다. 이 고통 속에서도 서로를 찾는 이들의 모습은 유타의 가슴을 내려앉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놀랍게도 유타의 과거를······ 부르는 듯한 통곡으로 바뀌었다. 그러게요, 저는······.
유타는 말끝을 흐리며 이심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번엔 골목 끝에서 제 몸만한 가방을 끌고 다가오는 권번 식모의 딸 유정미도 한 번 바라보았다. 자신을 찾아 헤매게 해서 미안했다. 하지만 쉽사리 이 여인과 젊은 영가를 두고 발걸음을 떼기가 어려웠다. 유정미는 유타와 이심을 번갈아 보다 이내 입을 다물었다. 유정미는 남다르게 영민한 아이였다. 세 살 때 유타가 끼적이는 것을 유심히 보더니 일본어를 깨치고 소설까지 읽던 아이. 언젠가 소설가가 되겠다고 했다. 영민한 유정미는 가만히 가방을 내려 두고 둘을 기다리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어느새 유타 곁으로 과거가 다가와 주저앉아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잊지 못한 과거는 본디 이승을 떠나지 못한 영가와 같으려니 말도 많고 속도 시끄럽기 마련이다.
유타가 생각하기에 인간 사내들은 신의 모습을 닮았고 그 신은 일본 본토나 미군 놈들 같은 제국을 닮았다. 장군신이 인간에게 내려오면 그 아래의 신들은 신이면서도 그 인간을 건드리지 못했다. 신은 그 권력의 맛을 따라 제멋대로였다. 아무나 마음에 든다고 집적대는 권력 있는 사내나 제국과 비슷하달까. 무엇보다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인간에겐 참으로 가차 없었다. 어째서 최고의 신이라는 것은 모두 장군이나 왕과 같은 권력 있는 남성일까. 할머니 신들은 가내신으로 하대를 받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것을 보아 온 유타는 그래서였을까. 유타는 확실히 그런 신의 대리인은 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어머니, 유란이는 최승희처럼 되고 싶어, 어머니 최승희 알아? 나 그 춤을 봤어. 자, 칼을 이렇게 들고 말이지.
유타가 오유란이던 시절, 그의 어머니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활짝 미소를 보이며 어린 딸을 꼭 안아 주었다. 이 에미가 그렇게 해줄게. 아무렴, 미모도 몸짓도 우리 유란이가 낫지. 이 에미가 꼭 무대 위를 훨훨 날게 해줄게. 그러면 유란은 얼른 어머니 앞에서 굿판에서 보았던 장군춤을 흉내 냈다. 어머니, 이것 봐. 춤판에서는 칼도 아름다운 무기가 돼. 그랬다. 굿판이든 춤판이든 그곳에서의 칼은 살기가 아닌 예기가 느껴지는 거였다. 에구, 무서워라. 세상을 호령하시는 장군님이 납시었네. 어머니는 그리 농을 치며 웃었고 그렇게 어머니가 기뻐할수록 유란은 진짜 예인이 되고 싶었다. 무엇보다, 할 수만 있다면 어머니도 그 신이란 것에서 그만 해방시켜 주고 싶었다. 아니, 그게 정말 신이었을까. 지독히 어머니를 옭아매던 무언가.
유타의 어미는 본래 조선인이었다. 경상남도 지리산골 지역에서 가장 유명했다던 강신무, 비록 첩첩산중이었으나 그의 영기는 천 리를 본다 하여 부산에서도 대구에서도 점사를 들으러 몰려왔다. 특히 오덕순은 사람을 낫게 하는 점쟁이라 유명했다. 예로부터 조선에서는 무녀와 의녀가 똑같이 천대받았다고 하였던가. 모두 사람을 살리는 일이요, 기쁘게 만드는 일이었건만 남편이 아닌 다른 사내들과도 말을 섞는다 하여 어느 순간부터 천기 취급이지 않았다던가. 그게 아니면 모두 하대 받는 계급의 여인들이라 그러했을까. 오덕순은 마을에서 무녀이기도 하고, 의녀이기도 했다. 심지어 일본인들마저 죽을병에 걸리면 오덕순을 찾아왔다고 하니. 한의사였던 중인 애비처럼 되고 싶었으나 이미 패망한 조선의 마지막이란 그런 때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점쟁이가 된 천하 명의 의녀 오덕순. 이 신의 작은 대리인은 본래 유란의 핏줄이 아니었다. 일본 무역상의 현지처는 유란을 낳고 열흘 동안 하혈을 하다 죽고야 말았다. 아픈 여인의 영을 제대로 거두지 못했으니 네 소임을 못 했다 꾸짖는 신의 호령에 유란을 거두었다. 조선 천지, 모진 삶에 아프지 않은 여성들이 없었다. 그것은 일본에서 조선으로 온 여성들이라도 매한가지였다. 현지처가 되지 않으면 호텔 여급이나 후쿠오카와 가까운 부산 유곽의 매매촌에서 몇 십 원에 옷을 벗어야 했다. 예로부터 남성인 의사는 만나기도 힘든 여성들의 아픈 곳을 풀어 주는 것이 당골과 무당의 일이려니 유란을 낳은 이가 죽었을 때 신이 그런 말을 한 것은 오덕순에게는 당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빙의는 신으로부터가 아니라 품은 그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오덕순은 어린 유란이 혼자 글자를 깨우치고 뒷발을 들고 당골의 춤을 흉내 낼 때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가끔은 신이 부르는 소리도 잊었다. 점차 점쟁이가 아닌 예인의 어머니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어쩐 일일까. 오덕순은 자꾸만 눈앞에서 신들이 유란을 탐내는 걸 보았다. ‘저 아이는 네 것이 아니다, 그 마음을 버려라.’ 왜였을까. 오덕순은 처음으로 신에게 화가 났다. 나를 속였구나. 오덕순은 그제야 신들이 왜 자신에게 유란을 거두라는 것인지 알았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것은 그다지도 불가해한 것이다. 오로지 사랑을 품은 인간만이 파도 앞에서도 목숨을 내놓고 바다를 향해 걸어가니······.
본디 인간 영가라는 것은 미련이 넘쳐 오백 년이 흘러야 자기가 죽은 줄 안다고 한다. 그러니 인간의 생에 남은 영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욕심 많은 놈들, 어디 내 딸을 훔치려고. 평생을 신에게 숨 죽였던 오덕순이었으나 유란을 향해 손을 뻗는 신에게는 저도 모르게 날을 세웠다. 그래, 오로지 인간만이······ 사랑을 품은 인간만이 신을 이길 수 없음을 알고도, 자신의 운명을 알고도 신에게 대항한다. ‘본토든, 서울이든 부산이든 요즘은 이리 춤을 추는 여자들을 두고 예술가라고 그런답디다!’ 오덕순은 점차 신보다 인간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어느 일본인 마담의 막힌 혈을 뚫어 주었을 때였을 것이다. 그즈음 조선 땅에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나라님을 대신한다는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나타났고 모두를 평등하게 해주겠다며 신분제가 폐지되었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그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하늘에는 단 하나의 신만이 있다고 천명하였다. 이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것이 존재한단 말인가. 저 오백 년 된 나무에게도 영이 있고 마당을 돌아다니는 누렁이에게도 마음이란 것이 있다. 집 안의 물건에도 각자의 사연이 고여 영을 만든다. 그 모든 것이 아니라며 당골과 무당들을 잡아 가둔다 하였다. 천민에서 벗어나면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도 알려주어야 나라님이시지. 춤을 추는 무당인 당골들은 기녀가 되는 경우가 꽤 있었다. 문제는 도리어 돌팔이 점쟁이들이 굿을 할 줄 안다며 판을 벌였고 괜한 진짜 무당들은 사기꾼 취급을 받는다는 거였다. 오덕순이 보기에 어차피 세상은 거꾸로 가는 지경이었다. 오덕순은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해준 일본인 마담을 찾아갔다. 그날 일본인 마담은 오덕순에게 오키나와를 들먹였다. 본토로 갈 돈이 없다면 차라리 오키나와라는 섬이 어떠냐는 거였다. 본토는 여성이 사제가 되지 못하지만 오키나와는 다르다는 거였다. ‘거긴 여기 조선과 비슷해, 여성들이 당골이고 남성들은 치마를 둘러야 겨우 신의 눈에 드는 곳이야, 조선인들이 아주 많아. 푼돈이라도 모아야 본토로 가지 않겠어?’ 마담이 연결해 준다는 그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오덕순은 곧장 짐을 꾸렸다. 아니, 신은 그런 것은 오덕순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조선 여자들에게 일을 준다며 일본인들이 현지로 끌고 가 군부대에 넘긴다는 그런 소문들, 인간도 아는 그런 소문을 신은 알려주지 않았다. 두메산골 사람들은 알 수가 없었다.
어머니, 그거 알아? 일본 저기 공장 위에 커다란 불이 떨어질 거고 사람들은 녹아내릴 거야. 걱정 마, 어머니. 본토는 끝장이야.
오키나와로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오덕순은 그 일본인 마담이 자신에게 알려준 것과 무언가가 영 다르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집은 무너져 갈 듯한 바닷가 초입이었다. 바닷가를 둘러싸듯 있는 고무나무가 아니었으면 진즉 날아갈 집이었다. 오덕순은 어떻게든 일본인 마담과 연락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근근이 점사를 풀어 겨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그래도 유란에게 내색하진 않았다. 자신은 고구마로 대충 배를 채워도 유란에게만은 쌀밥을 챙겨 먹이고 간식으로 떡이며 과일을 준비하던 오덕순이었다. 그래야 팔다리가 튼튼해져서 춤을 잘 추지, 오덕순은 그날 유란이 가장 좋아하는 따끈한 가래떡 구이를 만들고 있었다. 직접 뽑아낸 거였다. 귀한 조청을 얻어온 참이었다. 오덕순은 가래떡 구이가 타는 줄도 모르고 그런 말을 하는 유란을 멍하니 돌아보았다. 그 무렵 유란은 본격적으로 기이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오유란은 자꾸 어떤 말들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는데 정작 본인은 자신이 한 말을 기억도 못 했다. 누군가를 보면 자꾸만 어깨가 아프고 기침을 했다. 자꾸 자신의 목에 어떤 남자가 와서 커다란 장군의 칼을 밀어 넣으려 하는 것처럼 아프다고 울었다. 하루는 오덕순에게 업어 달라며 크게 울었는데, 발목이 마비되는 것 같은 아픔에 도저히 춤을 출 수가 없다는 거였다. 그것은 어린 오덕순이 겪은 것과 비슷한 증상이었다. 오덕순은 그것을 거부하려 얼마나 애썼던가. 그러나 지독한 것이 신이니 심지어 오덕순은 일제가 물러간 자리에 산속 빨갱이를 잡아낸다고 미군과 국군이 한바탕 마을로 들어왔을 때, 그들을 색출한다고 일어났던 학살에서마저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모든 것을 똑똑히 다 보고도 살아남은 오덕순은 그제야 신에게 굴복했다. 신은 그에게 목숨을 준 대신 다른 걸 요구했다. 모든 기억을 다 안고 사는 것이 바로 형벌이려니. 그래, 자신만이 그 형벌을 짊어지면 모두 끝날 줄 알았건만.
그러나 그 독한 세계는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아니, 신의 세계를 따라 한 인간의 세계가 끝도 없이 전쟁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죽여서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오덕순은 오키나와로 이주하고 처음으로 점사복을 꺼내 입고 뒷마당에 자리를 폈다. 오덕순은 신을 쫓아버리겠다고 다짐했다. 당골 없이 강신무가 씻김을 준비한다는 것은 벌전이 떨어질 일이었으나, 벌전이······ 그날 밤, 오덕순의 집으로 누군가 들이닥쳤다.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었다. 물은 건 하나였다. 조선인이지?
그날 오덕순은 어디로 끌려간 것일까. 무수한 조선 여인들이 밤중에 맨발로 오키나와 섬 어느 군부대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만 있을 뿐이었다. 오덕순은 유란을 바라보는 사내에게 긴급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이 아이는 일본인이에요. 본토인이에요. 유란의 얼굴 생김을 뜯어보던 사내 둘이 고개를 끄덕이며 오덕순만 데리고 나섰다. 유란아, 엄마가 해놓은 가래떡 구이 먹고 기다려, 알았지? 하나씩 먹어야 배가 안 아파. 하나씩 씹어 먹고 꿀물도 먹어. 곰방 올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오덕순은 돌아오지 않았다. 유란은 오덕순을 기다리며 가래떡을 하나도 먹지 않았다. 어머니가 오면 같이 먹어야지. 고구마며 쌀이며 하나도 먹지 않고 그저 방 안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유란은 어느 순간 아프지 않았다. 대신 누군가 발밑에 불을 댄 듯 몸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아 기운이 넘쳤다. 허겁지겁 오덕순의 방으로 들어가 무복을 끌어안은 날, 유란은 오덕순이 어느 군인에게 깔려 허덕대는 것을 보았다. 오덕순 곁으로도 무수한 여인들이 있었다. 조선인 아니면 오키나와 사람들이었다. 모두가 칼을 쥐고 스스로 그것을 배에 가져다 댔다. 소스라친 유란은 저도 모르게 부엌으로 가 손에 잡히는 대로 칼을 쥐고 뛰어 나왔다. 조선 무당의 무복을 둘러 입은 채 양손에 칼을 쥔 유란은 맨발로 어딘가를 향해 뛰었다. 본토 놈들이, 미군 놈들이 여자들을 데려간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조선 여자들을, 오키나와 여자들을 무조건 끌고 간다는 거였다. 우리 엄마 내놔, 우리 어머니 내놔! 유란은 자신의 발이 이끄는 대로 뛰었다. 거기가 어딘지도 몰랐다. 어느 토굴 같은 곳에서 빛을 봤을 때였다. 유란은 비명을 내지르며 그 앞을 지키던 군인들에게 달려들었는데, 그랬는데.
몇 날이 흘렀을까. 유란은 오덕순 없이 홀로 나하의 작은 절에서 깨어났다. 우리 어머니는요? 유란의 말에 노로(사제)는 고개를 저었다. 류큐 왕국이 절명한 후 얼마 남지 않았다던 노로 중 한 명이었다. 백발의 노로는 유란의 얼굴을 씻듯이 쓸어 주었다. 그날, 그 동굴에서 불이 나서 모두가 죽었단다, 천황폐하 만세라고 말하며 남자들이 배를 그었어. 여인인 네가 입구에서 발견된 것은······ 신의 가호란다. 노로는 네가 본토인이라 그렇다는 말을 삼키고 있었다. 노로의 그 말을 들은 유란은 단번에 자신의 칼로 자신의 손목을 그었다. 그러나 칼은 번번이 깊게 들어가지 않았고 유란은 죽지 않았다. 노로는 유타의 그 모습을 모두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멸망한 왕국의 대리인다웠다. 이 모든 절망은 힘없는 자들에게 반복되니······ 죽기에 실패한 유란으로부터 멈출 수 없는 목소리가 자꾸만 흘러나왔다.
조선 여자들과 오키나와 여자들을 다 갖다 바치라고 했어. 아무것도 몰랐어, 그 사람들. 오키나와 사람들도 몰랐어. 그냥 시키는 대로 했어. 그게 천황을 위한 길이라고, 그게 오키나와가 본토가 되는 길이라고 했어. 본토 놈들하고 미군 놈들 다 거짓이야, 다 거짓이야. 이제 오키나와의 심장에, 조선의 한가운데 미군들이 들어올 거야.
그 목소리는 다름 아닌 학살로 숨진 오키나와인들과 조선인들의 소리였기에, 어느 순간부터 조선인들도 유란에게서 억울한 죽음의 목소리를 듣고자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죽으려고 해도 자신은 이제 죽어버린 오덕순을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유란은 자신의 이름을 버리기로 결심했다. 마지막 노로가 유란의 머리에 비녀를 꽂아 제를 올리고 유타로 명해 주었다. 유타가 되면 어느 날 오덕순이 영으로라도 찾아와 줄까 봐. 그러나······ 유타가 된 후에도 유란은 자신이 마지막으로 본 것을 잊을 수가 없었다. 신은 유타가 되어 그곳에 눌러앉을 것을 명하였으나 인간 오유란은 그저 오덕순과 끌려간 여인들의 마지막 그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유란은 살아서 신 곁에 있으니 죽어서 영이라도 어머니 곁에 있고 싶었다.
유란아, 저게 뭔지 아니? 아름답지? 빛이 반사되는 거야. 저게 윤슬이라는 거야.
어머니. 저거는 곧 없어지잖아. 나는 없는 건 싫어.
유란아,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분명 존재하는 게 있단다.
그게 뭐야. 치, 중요한 건 전부 눈에 보이는 것이던걸? 예쁜 옷도, 멋진 무대도 모두.
유란아, 그럼 이 에미가 너를 사랑하는 건 어때? 네가 춤추는 걸 좋아하는 마음은 어때? 그건 안 보여서 유란이 그거 안 좋아해?
아니야, 어머니. 유란이는 그게 제일 귀해. 춤 안 춰도 돼. 유명해지지 않아도 돼. 어머니, 다시 나랑 살자. 살아와서 나랑 살자. 유란이가 가래떡도 하나씩 천천히 먹고 꿀물도 마실게.
우리 고운 유란이. 에미는 안 보여도 네 옆에 있는 거야. 알았지?
아냐, 엄마. 그건 싫어, 그건 싫다고. 나도 데려가. 부산으로 가는 배 안에서 까무룩 잠들었던 유란은, 아니 유타는 꿈에서조차 오덕순에게 하지 못한 말들에 목이 아프도록 눈물이 차올랐다. 시신이라도 찾아 오덕순과 살던 그 지리산골에 묻어 주고 싶었는데, 모두 한 토굴에서 죽여 불을 질렀으니······ 그리고 패망한 일본군들은 오키나와를 버렸다. 유타는 어느 밤 남몰래 홀로 부산으로 가는 배를 탔다. 노로는 유타를 막지 않았다. 대신 칼 한 자루를 내어주며 이런 이야기를 해줬을 뿐이었다. 유타야. 조선의 기녀라는 것은 게이샤와 비슷하지만 또 달라서 눈에 띄는 예인이 될 수 있다고 하더구나. 그 기녀들 중 진주권번에 한금화라는 자는 독립운동도 하였다고 들었다. 조선에서는 그런 기녀들이 여럿이라고 하더구나. 그날 유타는 노로로부터 군부대에 연예인들과 예인들이 춤을 추니 높은 미군 눈에 띌 수 있다는 말도 들었다. 유타는 전쟁 중인 조선에 미군 최고사령관이 들어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닌 척하더니 슬그머니 끼어 있는 본토 군대도 조선에 다시 들어가 있다고 했다. 그 미군 놈과 본토 놈을 한 번에 죽여야겠다. 유타가 생각한 건 오로지 그거였다.
나무아미타불 신령님이 보우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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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의 세타니가 이리 서글피 우는 것이니
저는 산청골 땅을 밟지도 못하고 에미 품에서 죽어간 새티니요만은
배가 곯아 이리 목청이 틔었소다
어느 가주 어린 자식 앞세우고 죽었는가
1951년 2월 7일이요.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
지리산 공비 토벌작전 ‘견벽청야’ 외쳤으니 전쟁 나간 남자 없는 우리 마을 우리 애매 거기서 죽었소다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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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천지 곡소리가 넘쳐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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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일본인이 아니라 오키나와 사람이라며?
유타가 모아 놓은 돈을 겨우 맞춰 권번의 입소비를 마련하여 들어갔을 때였다. 그날, 유타에게 말을 붙인 그 선배는 유타보다 먼저 권번에 들어온 선배였다. 곧 군예대로 선발되어 나갈 거라는 선배 자리를 두고 다들 알게 모르게 긴장하고 있던 터였다. 배정자처럼 일본으로 튀거나 최승희처럼 북으로 튀어서 죽는 거 아니야? 시기에 휩싸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선배는 아무 내색 없이 연습에만 매진하는 사람이었다. 누가 저 지엄한 자리의 후배가 될까. 이매방으로부터 직접 사사받았다던 선배는 춤을 추는 것 외엔 그 누구와도 말을 잘 섞지 않았다. 사실 유타도 선배가 떠난 검무의 주인공 자리가 궁금했다. 그래서 그 선배가 자신을 보자고 했을 때 혹시, 하는 마음이 먼저 나왔다. 그러나 유타에게 돌아온 질문은 뜻밖이었다. 선배의 그 물음에 유타는 자신이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오키나와 사람인가? 사실 조선에서 산 것보다 오래 살았으니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그전에, 나는 조선인인가, 본토인인가. 선배는 유타를 가만히 보다 이렇게 말했다.
너, 호남검무가 뜻하는 게 뭔지 알아?
선배는 유타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전쟁에 나가는 여성 장군을 위한 춤이야. 조선 여성 장군을 위한 춤이라고. 하지만 유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조선에 여성 장군이 있을 리가. 가면을 쓰고 추는 검무가 본디 장군을 위한 춤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여성 장군을 위한 춤이라고는······ 그러나 그 말을 하는 선배의 눈빛과 말투에는 자랑스러움이 있었다. 바깥세상에서는 남자만이 장군이 될 수 있지만 이 굿판, 춤판에서는 안 그래. 유타는 자신도 모르게 그 확고함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골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한을 풀어 주는 사람들이지, 한을 풀러 온 사람들이 아니야. 네 춤에는 살기가 느껴져.
유타가 놀라 그녀를 바라봤을 때였다. 우리 어머니도 저기 지리산골에서 사람들의 억울함만 풀어 주다 돌아가셨어. 굿판과 춤판에서의 칼은 누굴 죽이라고 하는 게 아니야. 네가 오키나와 사람이라면 알겠네, 조선인들에 대해서.
얼마 뒤 그 선배는 군예대가 되어 군부대 무대에 나갈 준비를 하며 자신의 자리에 유타를 추천했다. 유타는 권번에 들어가자마자 오로지 춤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모두가 잠을 자던 시간에도 혼자 눈 쌓인 마당에 나가 춤을 추었다. 발끝으로 무게를 견뎌 날아갈 듯해야 하는 입춤은 그런 추위를 견뎌야 더 좋았다. 눈 오는 날은 기이하게도 사방이 고요하니 승무를 준비했다. 비구니의 한이 담긴 그 춤은 숨을 죽이듯 춰야 할 것 같았다. 유타는 항상 그 선배가 후배들에게 당부하던 말들을 잊지 않았다. 7시간 넘는 연습 시간을 지키라는 것도, 그즈음 먹고살기 힘들어진 기녀들이 요리집에 나가는 것을 두고서는 뭐라 하지 않았으나 어디에 있든 너희가 예인임을 다시 한 번 기억해 보라는 것도 항상 염두에 뒀다. 길바닥에서 천막을 치고 공연을 했던 이매방처럼 모든 공연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도. 그러나 단 하나, 유타는 살기를 버릴 순 없었다. 그리 죽어가던 사람들을 어찌 잊고 살아가라는 것일까. 자신의 어머니를 하루라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자신은 오로지 죽기 위해 춤을 췄다. 스스로를 위한 살풀이를 준비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이심에게는 선배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
전 예인이에요. 초량권번의 기녀예요. 그리고 저는 일본 본토 사람이 아니라 저기 오키나와 사람이에요. 그러니 저와 권번으로 가세요.
그런 말을 하며 유타는 가만히 손목의 옷을 걷어 올렸다. 검으로 그은 자국이 한가득이었다. 이심이 놀라 저도 모르게 유타의 손목을 잡았지만 유타는 피하지 않았다. 그래요. 그렇지만, 그래도.
살아가야죠.
이심의 눈에서 기어이 눈물이 떨어졌다. 이심이 유타가 내민 손수건으로 잠시 눈물을 닦을 때였다. 유타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을 보았다. 이윽고 자신이 쓰고 있던 챙이 큰 모자를 벗어 사임의 얼굴에 빛이 곧장 쏟아지는 걸 막아 주었다. 순간 이심은 저도 모르게 평생의 지기였던 그의 이름을 낮게 중얼거렸다. 뜻하지 않게 빛났던 그것은, 어쩌면 사라져 버리는 윤슬이 아니었을지 몰랐다. 결국 누군가를 아껴 주는 그 마음이었을지도······. 이심은 곧 유타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유정미라 불리는 조그마한 꼬맹이는 이심을 힐끗거리긴 했지만 그 눈에 나쁜 기미가 전혀 없었다. 울지 마요. 유정미의 조그마한 목소리에 이심은 고개를 깊게 끄덕이며 부러 씩씩한 모습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그래, 울지 말자. 울지 말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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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의 애기씨요, 허귀잡신 수살귀가 되었느냐
1951년 3월 외공리의 유씨 집안 무남독녀 유성자요, 그날 밤 일본도를 든 군인들의 칼을 피해 마을 앞의 내천에 뛰어들었으니 그리하여 수살귀가 되었소다
억울한 이 내 저승길에 함께 가줄 길동무를 기다리오
수살귀가 된 것은 이 내 잘못 아니라오, 우린 그저 그 마을에 살아서 죽었소다
나무아미타불 신령님이 보우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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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초량권번의 스타 유타가 데리고 들어온 ‘굴러 들어온 돌’, 그렇지만 박힌 돌보다 살풀이를 잘 춘다는 의문의 초량권번의 신입 수련생, 홍이심. 기명 홍이화. 이심이 기명을 받자마자 유타가 그녀를 데리고 간 곳은 사진관이었다. 처음 보는 사진관의 빛에 이심은 몸까지 떨 정도로 놀랐으나 기이하게도 그것은 무섭지는 않았다. 사진관에 온 사람들은 참 천차만별이었다. 누군가는 미군이 들어오면서 만들라고 명한 신분등록증을 만들려고 온 것 같았고, 또 누군가는 가족끼리 단란한 모습을 남기려고 큰마음을 먹고 온 것 같았다. 어느 노인은 죽을 날을 받았다며 카메라 앞에 섰다. 유타를 힐끔거리는 어엿한 아가씨들은 아무래도 동래권번의 기녀들인 모양이었다. 가진 것이 무명저고리뿐이었던 이심이 괜히 쭈뼛거리자 유정미가 작은 손으로 팔을 잡아끌었다. 왜? 이심이 그리 묻자 유정미는 사진관 한쪽으로 기어이 이심을 끌어당겼다.
이거, 유타 상이 빌려주래요.
이심은 유정미가 보여준 옷에 저도 모르게 입을 반쯤 벌렸다. 처음 보는 양장이었다. 숨이나 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허리가 쏙 들어가서 밥을 괜히 다 먹었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웃음이 다 났다. 내가 이런 걸 어떻게······ 이심이 손사래를 치자 이번엔 유정미가 다시 그 조그마한 손으로 척척 옷을 대 보여준다. 무슨 소리여요, 최승희 저리 가라고만요. 미국 대통령 부인보다 아주 멋져요! 어찌 이리 말을 재미나게 잘할까? 나중에 이야기꾼이 되면 인기가 최고겠어. 문득, 지기와 자신 사이에 아이가 있었다면 이 또래였을까 싶었다. 이심은 유정미가 입히는 대로 한번 따라 보았다. 그렇게 유타가 빌려준 옷차림을 하고 카메라라는 것 앞에 처음 서보았다. 단지 옷일 뿐이었는데도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영 자신감이 올라붙었다. 사진사도 앳된 여자 사진사라 마음이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요, 정말 홍이심이가 아니라 홍이화 같네요.’ 자신의 모습이 낯선 이심이 겸연쩍어하며 그리 말하자 유타는 도리어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이제 이심이 아니라 이화를 보여주는 거예요. 이심은 그런 말을 하는 유타를 돌아보았다. 언제부터인가 유타에게서 지기가 보이지 않았다. 유타는 그냥 유타였다.
자, 이제 찍습니다. 사실 이화가 된다 했다 한들, 어린 시절부터 가꾼 기녀들에 비해 홍이심의 외모는 눈길을 끄는 편이 아니었다. 다만 그녀가 칼과 부채와 방울을 들면 마치 다른 이가 되는 듯했다. 특히 남장을 하고 화랭이춤이나 장군춤을 추면 남달랐다. 저도 모르게 시어머니에게 배웠던 굿판의 동작들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이심이 남원 가재골 세습무 3대 당골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이심은 특히 유타와 함께 검무를 출 때면 살풀이나 승무를 출 때와는 다른 편안함을 느꼈다. 마치 한 쌍의 검이 되는 기분이었다. 문제는 유타였다. 유타는 이심과 같으면서도 달랐다. 아마도 이심은 전혀 모를 테지만 유타와 이심이 함께 춤을 추면 그곳에 몰려드는 건 사람뿐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타는 이심과 춤을 추면 신들이 더 몰려드는 기분이었다. 본디 세습무인 당골이라는 것은 강신무와 사람들 앞에 신을 데려다 놓는 게 아니던가. 아무래도 영매인 유타와 짝패를 이루는 노로와 같은 역할이라 그런 것일까. 둘이 장검무를 출 때면 사람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유타도 이심과 춤을 출 때면 복수고 뭐고 자꾸만 이렇게 함께 공연이나 다니는 게 어떤가 싶을 정도로 한패같이 느껴졌지만,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붙는 신을 눌러야 했고, 그렇기에 그 신명 속에서도 자주 마음이 휘청거렸다. 유타는 이심만 보면 말하고 싶은 영이 목구멍을 손으로 벌리며 넘어오는 기분이었다. 너 쟤랑 놀면 너가 저 애 대신에 죽어! 쟤는 옆 사람 잡아먹고 사는 애야! 자꾸 네가 바른말 하게 만들잖아! 유타는 자신이 원하는 걸 안 해줄 때 신이 골질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유타는 그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오덕순에 대해 생각했다. 신의 뜻을 알았으면서도 신에게 끝까지 자신을 내주지 않으려 했던 그 마음을. 신의 대리인이 되어 부귀영화 누리기보다는 차라리 인간이 되어 죽기를 선택한 그 마음을.
그러나, 그럼에도. 운명을 짊어진 유타는 점차 홀로 있을 때 멍하니 벽을 바라보는 날들이 늘어 갔다. 이심과의 공연이 끝나는 밤이면 더 그랬다. 그런 유타 곁으로 이심의 젊은 영가가 다가와 가만히 눈물을 흘리곤 했다. 왜 나를 위해 울어 주는 거예요? 학살로 죽은 영가들은 참으로 기이했다. 왜 신처럼 무엇을 바치라고 하지 않은가, 이들은. 그저 들어 주길 바라는가. 왜 남은 이들을 걱정하는가. 그러나 문득 문밖에 서성이는 그림자에 유타 곁에 있던 영가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가만히 문을 열어 보니 이심이 두고 갔는지 아직 식지 않은 가래떡 구이가 놓여 있었다. 역시나 유타는······ 살아남을 이심의 한이 더 걱정되었으니 아무래도 그 영가가 그 마음을 알아 눈물을 흘린 모양이었다. 유타는 솟아오르는 식은땀을 눌렀다. 살기가 목을 타고 넘어왔다. 미군 총사령관이 부산 앞바다에 떠 있는 군함들과 군부대의 사기를 위해 방문한다는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다. 부인사진관에서 그것을 듣지 않았던가. 좀 더 참아야 했다. 마릴린 먼로라는 유명 가수가 중부전선에 다녀가고 군인들의 사기가 부쩍 상승했다고 하니 아무래도 제2의 수도라고 불리는 부산에 주둔하는 군인들의 마음도 달래 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군부대 안에서는 또다시 공연 준비가 한창이었다.
나무아미타불 신령님이 보우하사
나무아미타불 신령님이 우리 조선 보우하사
지리산골 창귀가 어이하여 발이 묶였는가
저는 1950년 9월 10일 거창골에 최덕신이 들어올 때 죽었소다
삶아 그 물을 마셔도 시원찮을 최덕신이 자신이 호랑이라 하여 사람도 호랑이도 일본도로 죽였으니 신령님이 보우하사
불쌍한 우리 영을 달래주오
나무아미타불 신령님이 보우하사
유타와 이심의 호남장검무는 이 날의 마지막 무대였다. 아침에 유타는 맑은 세숫물에 비치는 자신을 보았다. 거기엔 영이 실리는 영매도 아니고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예인도 아닌 그저 조금은 수척한 얼굴을 한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 세수한 후에는 서랍 속 일본도를 꺼내 보았다. 그 손이 떨려 왔다. 이내 잘 다려진 검무복도 챙겨 넣었다. 이것은 조선 당골이 입던 옷이라지. 그리고 별도로 유타의 무복을 챙겼다. 나란히 두고 보니, 유타의 어깨가 다 뻐근했다. 조선과 오키나와의 한이 서린 무게 때문이려나. 어머니, 도와줘요. 유타는 신이 아닌 오덕순을 찾았다
임자, 저 좀 봐요.
생각에 잠겨 있던 유타를 현실로 돌려놓은 것은 이심이었다. 어째서일까, 무대가 코앞인데 이심은 검무복도, 머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였다. 오늘 유타와 이심은 호남장검무 공연을 하기로 하였는데 이심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은······ 방울이었다. 부채였다. 이심은 유타에게 무엇을 내쫓고 싶은 것일까.
임자, 일본도를 가지고 호남검무를 춘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그것은 살의가 어린 검이에요.
유타는 이심의 얼굴을 보자 또 목구멍 사이로 목소리가 비집고 나오는 걸 느꼈다. 이 여자부터 죽이라니까! 그러다 한편에서는 또 다른 목소리가 넘어왔다. 우리만큼이나 불쌍한 조선인이구나. 위령비를 같이 쓰는 처지 아니냐. 유타는 묵묵히 목소리들을 삼켰다. 그사이 이심은 유타의 팔을 부러져라 잡았다.
임자, 이렇게 하면 임자가 죽는 거예요. 이미 죽은 사람들, 나도 그 사람들 생각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래도, 그래도. 잊어요. 그만했으면 됐어요. 고운 사람이 너무 아까워. 그래요. 나는 나쁜 년이에요. 그냥, 그냥 내버려두고. 이제, 우리 그냥 살아요.
멈춰 선 유타가 이심을 봤을 때 이심은 방울과 부채를 바닥에 내던지고는 어린아이처럼 한참을 소리 내서 울었다.
내 지기도 불쌍하고 임자 어머니도 불쌍하기는 매한가지예요. 그날 우리 동리에서 죽은 사람도, 임자의 섬에서 죽은 사람들도. 사람을 그리 죽이고도 빨갱이라고 하는 놈들은 멀쩡하다는 것도 미치고 폴짝 뛸 일이에요. 그래도 임자 내 말 좀 들어 주세요. 내가 세습무로서 배운 게 있어요. 강신무들은 신의 말을 전하는 사람들이지 신이 아니에요. 아니, 그것도 아니고. 우리는 그냥 사람이에요. 살고 싶은 사람들이라고요.
유타도 알고 있었다. 어떤 무당들은 신의 위치에 자신을 두었다. 비단 음양사들과 같은 점쟁이들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도처에 있었다. 본토 놈들이나 미국 놈들, 그들은 자신들이 신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을 그리 죽였을 것이다. 반대로 신의 선택을 거부한 사람들도 죽어야 했다. 오덕순이 그랬지, 그리고 아마······ 이심의 지기라는 그도 그랬을 것이다.
임자, 제발. 저를 살리고 이제 저를 버리고 가려고 하시나요. 제발. 우리 시어머니나 지기를 빼고 나를 인간으로 대해 준 사람은 임자가 처음인데.
유타는 순간 이심에게 그럴까요, 춤이나 추며 우리 그렇게 살까요. 이런 말을 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신의 말을 들어서가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유타는 이심의 손을 천천히 떼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유타의 등 뒤로 이심이 제발, 제발 사정하는 소리가 가득했다. 저라도 혼자 추겠어요. 유타는 그저 그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유타는 애당초 섬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신의 말을 어겼다. 절대 이 계획은 성공할 수 없다는 공수는 이미 받은 참이었다. 그럼에도 유타가 섬을 나온 것은······ 참 웃기는 일이었다. 신의 말을 어겨야 비로소 인간이 되는 것 같았으니까. 그 모든 것을 보고도 참아내는 것도 인간의 삶이겠지만, 그 모든 것을 보고 더는 참을 수 없는 것도 인간의 삶이었다.
마지막 무대가 다가오는데도 이심이 방에서 나오지 않자 유정미가 종종걸음이다. 유타는 막내인 유정미를 불러 세웠다. 이화 님이 아프시면 그냥 두련. 차라리 잘 된 것일지도 몰랐다. 죽을 무대였다. 칼보다는 총이 빠른 것은 당연했다. 본토 놈들이 처음 조선을 침략했을 때, 그 7년 왜란에서 조선인들은 칼을 쓰고 본토 놈들은 총을 들었다지 않은가. 이건 이심이 알려준 이야기였다. 남쪽 사람들은 그래서 왜놈들 한갓 안 무서워해요! 치사해, 원래 그놈들이. 그래도 얼마나 많은 조선인들이 그때 죽었던가, 얼마나 많은 류큐 왕국 주민들이. 그래, 그래서 유타가 혼자 무대에 오를 작정을 한 것이기도 했다. 유타는 무대 위에 서자마자 처음엔 자신의 검이 향할 미군의 자리를 확인했다. 큰 무대라 그런지 사진사들도 여럿이었다. 낯익은 부인사진관 막내 사진사가 있었다. 난리통에 저 어린 여자 사진사가 피해를 보지 말아야 할 텐데. 안쓰러운 마음으로 유타가 한참이나 그를 바라보자 그가 유타에게 입 모양으로 무언가를 말하려 애쓰기 시작했다. 유타가 조심스레 다가가 보니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여주었고 순간 유타는 그 사진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것은, 그 언젠가 무대 위의 유타와 이심이었다. 뜻하지 않게 찍혔던 날이었다. 사진을 보니 그날의 많은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호남검무를 추던 날이었다. 대부분 이런 곳에 오는 사진사들은 무대 위의 사진이나 박수를 치는 미군 장교들의 모습을 함께 담았다. 유타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부인사진관의 막내 사진사는 싱긋 웃어 보였다. 문득, 유타는 공연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는데 박수가 쏟아지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이심이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한숨을 내쉬면서도 유타 곁에 다가와 섰다.
임자, 생각해 보니까 내가 어제 꿈을 다 꿨지 뭐예요.
꿈에서 나랑 춤추지 말라 하죠?
잘 아셨네요.
그러면 조상님 말씀 잘 새겨들으셔야 해요.
유타의 말에 이심은 갑자기 허허, 하는 목소리를 다 내보인다. 진짜 장군신이라도 오시려나······ 실제 하는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그 선배가 말한 여성 장군신 말이다.
그래서 내 일전에 이미 임자에게 가지 말라 사정하지 않았냐 말이에요.
그러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제 독무대도 볼 만은 하여요.
이심은 가만히 다시 유타를 돌아보았다. 목소리는 떨리지 않는데 눈가가 붉었다.
조상님들은 그러한데! 내 평생지기는 다른 말을 헙디다. 근데 아주 이제 지기 그만둬야겠어요, 제가.
유타가 갸우뚱하면서도 이심 주위를 살폈다. 이심에게 평생지기에 대한 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그러니까 이심의 남편, 박수무당이던 그이. 그리고 유타에게는 이심을 한없이 따라다니는, 가끔은 이제 유타마저 걱정해 주는 그 영가. 그 영가는 늙지 않는데 이심은 나이를 먹어 가니 그보다 슬픈 일이 또 있으랴. 유타는 그가 여성을 사랑한 게 아닌 이심이라는 한 인간을 사랑했다는 걸 기운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이 임자와 내 손을 딱 연결해 주더라고요. 나는 조상신보다 내 지기가 더 믿음직스러우니까. 내 조상신은 나 계집이라고 쳐다도 안 보는데 꼭 이런 때만 간섭질이고요. 내 지기는 안 그래, 저를 살렸어요. 본래도 내 지기 말대로 하면 신은 못 되어도 인간은 되더라니까요?
이심은 씩 웃어 보였다. 항상 이심을 쫓아다니던 그 젊은 영가, 이심의 지기도 어느새 곁에 다가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늘은 둘 다 울지 않는구나. 유타는 더는 이심을 말리지 않기로 했다. 오덕순도 아마 그렇게 했을 거였다. 신 대신 진짜 인간이 되길 바랐을 것이다. 문득, 이심이 해주었던 왜란 이야기의 끝이 생각났다. ‘아니, 왜놈들은 말이에요. 그러고도 저버렸잖아요? 요기, 저 남쪽 바다에서 아주 줄행랑을 쳤잖아요? 아주 하찮어.’ 유타는 이심을 바라보았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다 동시에 칼을 들었다. 진짜 칼을 들고 무대에 선 것은 사실 유타도 처음이었다. 가만히 보니 이심의 칼끝도 날이 선 채 빛나고 있었다. 이거는 조선 칼이랍니다. 이심이 그리 입 모양으로 말하고 있었다. 무대 바깥에서는 부인사진관의 신입 사진사가 그들이 칼을 드는 동시에 카메라를 들었다. 멋들어진 여성 소설가가 꿈이라는 권번의 막내 유정미도 품에서 끼적일 무언가를 꺼내어 들더니 한껏 기대에 부푼 얼굴이다. 자, 이제 모든 것이 기록될 참이었다. 비록 이것은 유타의 마지막 춤이 되겠으나 저 카메라 셔터가 눌러지게 된다면, 유정미가 무언가를 쓴다면 누군가는 어떻게든 우리를 기억하겠지. 유타는 일본도를 들어 정확히 미군을 겨냥했다. 괴물은 괴물로 없애야 한다. 이심이 조선 칼을 꺼내어 들었다. 무슨 말씀, 괴물도 인간이 처단해야지요. 그저 한낱 기녀의 춤이라고 생각한 미군과 일본군 장교 출신의 군인은 기쁜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그것은 사랑 없이는 결코 깰 수 없는 유일한 꿈이었습니다.”
1951년, 초량권번 어느 기녀의 일기 중
여자의 사진은 여자가 찍습니다. 1923년 이런 포스터 문구와 함께 진고개에 문을 연 부인사진관은 일제가 패망하고 전쟁이 터진 후 초량까지 내려가서 그 명맥을 유지했다. 순천엔 비너스 사진관, 부산 초량엔 이 부인사진관. 사실 그즈음 많은 사진사들이 전장으로 불려 나갔다. 미국에서는 최초의 여성 종군기자가 들어왔다가 여자라는 이유로 쫓겨나기도 하는 둥 소란이 일어날 정도였다. 이러한 때에 부인사진관 3대 수석사진사 김동희는 어떤가. 그이는 현장에 남기로 했다. 전쟁 현장이 아닌 생활 현장에, 제2의 수도라는 부산 초량에 말이다. 전쟁이 끝나자 이 부인사진관도 다시 서울로 올라온 참이었다. 진고개는 어느새 충무로가 되어 있었다. 애당초 일제가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신분등록제 때문에 사람들은 사진을 찍혔다. 영혼을 빼앗는 불빛이라며 꺼리던 조선 선비들도 별수 없었다. 그것은 제국의 조선 관리 비결. 본래 기록이라는 것이 그런 거였다. 잊고 싶지 않아서, 억울해서 기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 그것은 어떤 감시의 대상을 만드는 일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미군은 확실히 일제보다 한 수 위였다. 내외법을 만들어 여성의 사진은 여성 사진사에게 찍게 만든 일제와 달리 미군은 자신들이 나서서 단지 감시용은 아니라는 듯 선전했다. 하긴,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여성 포로에게 나눠준 게 아마 립스틱이었다지. 본래 가장 아름다운 것과 흉악한 것은 언제나 짝패였으니······. 전장에서 죽은 자도, 피란처에서 고급 무용을 관람하는 장교들도, 춤을 추는 예인들도, 사창가에 팔려가는 사람들도 카메라 렌즈 앞에 서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여러분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남겨드립니다.
충무로 필동 골목에 터를 잡은 부인사진관의 장사가 성황을 이뤄 건물 2층으로 확장한 날, 김동희는 발품을 팔아 직접 제작한 포스터를 새로 붙였다. 전쟁이 끝나자 서울 거리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활기찼다. 사상범으로 죽어 나간 사람들 때문에 핏물이 흥건했던 골짜기들과는 완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댄스홀과 극장은 연일 성황이었다. 김동희조차도 얼떨떨할 정도였다. 김동희가 포스터로 만든 사진은 중부 전선에 공연을 왔다던 마릴린 먼로였다. 사진은 대부분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찍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이 전부가 아니었다. 남들에게 보여지지 않은 부분에 더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저는, 그 배우처럼 보이게 찍어 주세요. 찍히면 영혼이 바뀐다고요? 아, 그럼 이왕이면 미군 신부로 바꿔 주세요. 나도 아메리카 좀 가보게요.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러 와서 이리 깔깔거렸다. 하지만 실은, 이리 웃기라도 해야 했다. 식민기와 전쟁을 거치며 한몫 잡은 이들 외에 사람들에게 전쟁의 종식이란 그런 거였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가 돌아왔으나 무엇을 보았는지 괴로워했고 나라에서 보상이란 없었다. 남은 이들은 생계를 책임지느라 이미 뿔뿔이였다. 활기차 보이는 서울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치기 직전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춤이라도 추고 영화라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몇 되지 않았다. 사진관에 올 때면 최대한 좋은 옷을 가져와 그런 유명인들을 흉내 내 웃으며 사진을 찍으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여기 부인사진관만 보면 가난도 뭣도 없는 줄 알겠어요, 한데 저 옷은 뭐예요?
부인사진관의 1등 조수이자, 국문학과 학비를 벌러 이곳에서 일하는 유정미는 등 뒤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저절로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왜 안 오시나 했다. 여순옥. 일제 땐 조선 기생들 가슴 사진을 찍어 잡지 팔던 친일파. 성공한 기생들도 서울에 집이 여러 채라고 어떤 남자 기자들은 씹어댔지만 그들이 어디 남의 영혼 팔아 돈 벌었던가. 그들은 갈고닦은 춤으로 성공했다지만, 무덤도 황궁 앞에 쓴다던 여순옥이야말로 남의 몸 팔아 돈을 챙긴 사람이었다. 일제가 패망하자마자 이번에 그 무덤은 하와이로 바뀌었다. 미군에게 조선 여자들 사진을 찔러 넣었다고 했다. 내 조국은 여자의 가슴이고, 또 돈이야. 그런 말을 부끄러움도 없이 하는 여순옥은 어차피 김동희나 유정미나 자신을 싫어하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부인사진관에 오는 것은 그 유명한 ‘자유부인’들이 뭘 입고 원하는지를 보고 싶은 거였다. 이혼율이 사상 최대를 찍고 있는 서울 바닥의 유행은 댄스홀의 주 고객 자유부인들이 이끌고 있었으니까. 사실 부인사진관 입장에서는 무시할 수만은 없는 고객이긴 했다. 어느 순간부터 여순옥의 눈에 못 띄면 유행에 별 볼일 없는 가게라는 소문이 돌곤 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니 유정미는 고개를 얕게 저으면서도 여순옥이 가리킨 곳을 볼 수밖에. 아. 그런데 저 옷은······.
나 저거 입어 볼래요.
여순옥이 어찌나 빠른지 유정미도 재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슬쩍 본 김동희의 얼굴에 당혹감을 넘어선 어떤 분노까지 서렸으니까. 전쟁통 초량에서부터 부인사진관의 3대 사장을 맡고 있는 김동희는 말 그대로 신여성이다. 대만이나 도쿄에서 유학을 한 건 아니었지만 이미 초량에서 미군들에게 최고 인기가 있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자유부인들과는 좀 다른 쪽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즈음 자유부인과 함께 서울에서 눈에 띄는 여성들이라면 문학 여학생들이었다. 이도저도 아닌 유정미는 여순옥이 자유부인파라면 김동희는 후자의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사진을 배우면 사람들마다 갖고 있는 특유의 느낌을 주의 깊게 보게 되어서 생긴 버릇이었다면 또 그게 완전히 무시할 건 아니었다. 김동희는 항상 셔츠에 바지, 거울처럼 빛나는 단화 차림이다. 유정미는 김동희를 잠시 바라보다 물색없이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최대한 빠르게 여순옥을 따라잡았다. 그러나 기어이 여순옥이 걸려 있던 그 옷을 낚아챘다.
저거는 못 입습니다, 부인.
아니, 정미 씨도 그렇고. 우리 사진사님까지 왜 그러셔요. 딴 계집도 아니고 내가 찍은 건데. 그리고 사진관에 전시해 놨으면 입는 거지, 왜 못 입어? 나중에 저기 인사동 갤러리에서 전시할 때도 이러실 작정이에요?
전쟁 직전 조선일보가 여성 유망 직종으로 ‘사진사’를 꼽는 바람에 손에 꼽을 정도였던 여성 사진사들이 꽤 늘어난 서울이었다. 전쟁통에 주춤하긴 했으나 이화여전엔 사진과도 생겼을 정도지 않은가. 그때부터 갈고닦은 여성들의 사진전이 우후죽순 열리는 참이었다. 오히려 김동희가 잠잠하여 모두들 단독전을 기다리는 눈치랄까. 유정미보다 빠른 김동희의 제지에 여순옥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투덜거리자 오히려 기다리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다. 김동희가 어느새 굳어 있던 입 꼬리를 풀어내고 안경을 쓰며 미소를 지었다. 이 여자는 또 왜 이래, 설레게. 여순옥은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다 퍼뜩 다시 옷으로 시선을 돌린다.
아 이 옷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요. 이거 그냥 무당 옷이잖아요.
네, 그렇지요. 그런데 이것은 그냥 무당 옷이 아니고 주인이 있는 옷이라서요.
주인요? 어느 집 대단한 무당인데 그래요?
무당이 아니고요. 예인이요.
여순옥이 눈살을 찌푸린다. 이 피란처 예인 중에 내가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하지만 여순옥은 촉이 있는 사람이다. 슬쩍, 옷을 쥔 손에 힘을 뺀다.
뭐, 우리 아티스트께서 거짓말 하실 분도 아니시구. 이야기나 들어 봅시다. 누군데요?
순간 자리에서 일어난 김동희가 가까이 다가서자 천하의 여순옥이 웬일일까. 순간 눈을 잠시 피했고 그 틈에 김동희는 여순옥의 귓가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그 무당. 독립운동가인데 그래도 괜찮아요?
본토 사람도 아니고요. 여순옥은 독립운동가라는 말에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여자 독립운동가? 아니, 걔들은 그 잘난 선비의 나라 왜 좋아하는 거야? 여자라면 개방적인 서구 문물을 환영해야지. 그리고 본토 사람이 아니라고? 뭐야? 조선인을 말하는 거야, 아니면 저기 그 오키나완지 뭔지 미군이 있다는 섬을 말하는 거야? 여순옥의 생각을 보고 있기라도 한 듯 김동희는 어느새 얼굴을 바꾼다.
농담이고요, 그저 아주 대단한 예인이시라서요.
저 도도한 김동희가 인정하는 대단한 예인이라니. 더 좋다. 가슴골을 아주 깊게 드러낸 무당 얼마나 야하고 좋아? 용산이랑 파주에 있는 미군 놈들 아주 뻑 가겠네. 가만있어 봐, 오키나와 여자면 더 좋은 거 아냐? 거기 미군이 얼마나 많아? 여순옥은 흥미가 돋았는지 의자까지 끌어 앉았고 김동희는 잠시 그런 그를 보다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사연 없는 사진이란 없죠.
한 예인에 관한 이야기죠. 아니······ 두 예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본래 사진관에는 이야기가 많은 법이다. 뜻하지 않게 빛나던 한순간을 담아내고 나면 나머지 이야기는 역시 보는 사람들의 몫. 꾸며내려면 꾸며내기 좋은 것도 이야기와 좀 닮았달까. 그러나 역시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담아내는 것이니 어떤 면에서는 도리어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게 보이고 들리는 무당의 일 같기도 했다. 그래서 일제는 사진으로 조선을 다 찍으려 했으면서도 항시 반대로 그 사진을 찍은 사진사들을 감시하곤 했다지. 스승인 김동희는 줄타기를 잘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전쟁이 터지곤 뭐랄까, 스승이 이전보다는 조금 더 무언가에 적극적이랄까. 유정미가 슬쩍 두통을 느끼려 했을 때였다. 아. 스승님이시여. 사진 찍어서 돈 벌자면서요······ 진짜 이야기를 해버리시면 어쩌나요······.
“오늘 영업 안 하시나요? 저 사진 좀요!”
모여든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문 쪽으로 쏠렸다. 어느 미군이 서 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금발의 여성이다. 그런데 군복을 입고 있지 않은가. 여성 종군기자가 들어왔다더니 그이인가. 순식간에 사람들 시선이 모두 그쪽으로 쏠리고 유정미가 얼른 그에게 다가선다. 역시 한반도 최고의 주인공은 미군이시지. 이어지는 김동희의 말이 걸작품이다. 이런, 저 손님이라면 순옥 님도 이해하시지요?
아, 아니, 저기 그래서요!
여순옥은 말을 하다 말고 일어서는 김동희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이렇게 가시면 어떻게 해요! 그래서, 이거 누구 옷인지, 어느 예인인지 알려줘야 내가 가서 섭외를 하든 말든 하죠! 그래야 내가 돈 벌지! 여순옥의 다급한 물음에도 김동희는 어깨를 으쓱했다. 여순옥은 여간 다급했던지 저도 모르게 김동희의 손에 넘어간 무복의 끝을 쥐어 잡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순간 저도 모르게 무언가 눈앞으로 반짝이는 것이 지나가는 걸 보았다. 누가 내 사진이라도 찍은 걸까, 내 허락도 없이 날 찍는다는 게 이런 건가. 여순옥이 불쾌감에 빛을 막으려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였다. 이건······ 여순옥은 언젠가 그걸 본 적이 있었다. 아직 여순옥이 여순자이던 시절, 애비가 자신을 팔아넘기듯 몰락한 양반집에 시집보내기 전이었을 거다. 여순자가 사랑했던 것은 섬진강물에 비춰지던 윤슬이었다. 저렇게 아름다운 게 좋아. 저건······ 여순옥이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그 빛을 잡으려 했을 때였다. 어느새 빛은 실루엣의 형태가 되었고 곧 그것은 두 명의 여성의 모습이 되었다. 한 명은 손에 부채와 방울을 들고 흰 저고리 치마 차림이었고 한 명은 눈에 익지 않은 이국의 옷을 입은 사제의 모습이었다. 순간 두 여인이 장검을 꺼내 들고 여순옥에게 다가왔다.
한 번이라도 내가 되어 봐요, 당신도.
장검을 휘두르는 두 여인의 춤은 눈부실 정도였다. 그러나 칼끝이 여순옥의 목에 닿았을 때 여순옥은 혼비백산하며 주저앉고 말았다.
어머, 괜찮으세요? 순옥 님!
여순옥이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떴을 때였다. 어째서였을까. 순간 김동미와 유정미가 그 여인들로 보인 것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부인들과 아까 들어왔던 미군마저 와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얼굴이 벌게진 여순옥은 저도 모르게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벌떡 일어섰다. 여순옥은 그러니까 옷도 빼앗기고 이야기도 끝까지 못 들을 처지였다.
제가, 지금 부인사진관 일이 너무 밀렸네요. 그만.
여순옥이 괜찮아진 것을 본 김동희가 기다렸다는 듯 그 말을 남기며 돌아섰고 보고 있던 제자 유정미는 스승의 너스레에 웃음이 터졌다. 스승님은 여순옥에게 아마 끝까지 이야기를 안 해줄 거다. 여순옥이 누군가. 조선의 아름다운 여자들의 특정 부위 사진만 악의적으로 도드라지게 만들어 잡지를 팔아먹는 친일파 친미파가 아닌가. 사진을 사랑하는 김동희가 가장 경멸하는 한 부류였다. 여자 팔아 돈 버는 놈들. 김동희는 그런 잡지사 앞으론 걸음도 안 했다. 웬일로 여순옥을 상대해 주나 했더니 역시 무복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아 좀 이야기해 줘요. 아니면, 나한테만 그 주인공 어딨는지 알려줘요. 실제 있는 일이에요? 내가 좀 파보자. 응? 사진사님은 관계없잖아요.
관계가, 정말 없을까? 유정미는 말없이 김동희에게 무복을 받아 안으로 들어간다. 옷장을 열어 무복을 잘 걸어 두던 유정미는 잠시 주춤거리며 밖을 살피다 서랍의 가장 안쪽의 상자를 조심스레 열어 본다. 점사 복장을 한 여인과 세습무 복장을 한 여인이 각각 방울과 부채를 들고 있는 사진. 그리고 상자를 하나 더 열었을 때 피로 물든 무복을 입은 여인의 사진들이 쏟아져 나온다. 춤추는 무당과 춤추지 않는 무당. 학살의 현장 속에 있던 조선과 오키나와의 여인. 그 사진을 찍은, 어린 사진사 김동희. 유정미는 그때 김동희의 모습을 기억한다. 김동희는 그 무대를 기록하는 사진사였다. 권번 식모의 딸인 유정미는 그날 펜과 노트를 챙겨갔기에 더욱더 그날을 기억한다. 오키나와 영매 유타의 칼끝이 미군을 겨누기도 전 남원 가재골 3대 당골 이심이 먼저 칼을 들었고 쏟아지던 총알 속에서 유타는 이심의 앞을 막아섰다. 김동희는 그 빗발치던 총알 속에서 끝까지 셔터를 눌렀던 사람, 김동희는 쓰러진 유타 곁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사진사님! 사진이라도요! 유정미는 자신이 어떤 정신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김동희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카메라를 품에 안았고 그러나 이내 돌아와서 유정미와 함께 뛰었다는 것밖에는. 그런데 살아남은 이심이 어떻게 되었다고 했지? 모진 고문 끝에도 살아남았다던 가재골 3대 당골 만신 홍이심은······ 그런데 김동희는 정말, 복수할 생각일까. 유타와 이심의 뒤를 이어. 그 실패를 계승할까.
나 원, 여순옥을 이리 홀대해서야!
여순옥은 부러 들으라는 듯 말하지만 김동희는 사진을 찍느라 돌아보지 않는다. 스승님 괜찮을까요? 유정미의 말에도 김동희는 그저 웃는다.
순옥 님께서 그리 궁금해 한다니 제가 한 말씀 드리지요. 이 이야기는 사실 소설입니다. 제가 한 구절 읽은 거지요.
김동희의 말에 여순옥이 다시 반색하며 뒤돈다. 어머, 맞아. 요즘 문학소녀들이 대세잖아요. 여자도 배워야지, 어디 만날 얼굴 꾸밈이나 해야겠어? 그래, 대체 어디서 나온 책이래요?
곧 후속편이 나온다고 하더군요.
여순옥의 눈썹이 위로 간다. 이거 돈이네, 돈이야. 여순옥도 다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다. 밤에는 여자 사진 팔아서 돈 벌었으니 멀쩡한 대낮에 자기 평판 바꿔 줄 뭔가가 필요한 참이니까. 문학소녀들이 그리 책에 돈을 잘 쓴다지? 그래, 나 여순옥도 애쓰며 살았다. 저런 소설가 딱 잡아서 시위하는 소설가들마냥 옳은 목소리 깨나 내는 척 좀 할 차례지. 뭐가 나쁜가? 가난한 소설가들 돈 좀 쥐어 주고 우리 문학소녀들 심장에 불 좀 지르겠다는데. 여순옥이 보기엔 사실 춤추러 다니는 자유부인들이나 많이 배웠던들 시집이나 가라고 윽박지르는 현실이 아닌 문학에서 꿈을 찾는 문학소녀들이나 매한가지였다. 그러게, 내가 조선은 여자한테 영 아니라고 했지 않던가. 잘나 봤자 시집이나 가라 하는 년놈들 천지판이다. 그건 세상의 주인이 일본이든 미군이든 미군에 영혼 판 대통령의 대한민국이든 똑같았다. 여순옥은 금세 방금 보았던 여인들은 까맣게 잊었다. 사진사님, 제가 이 소설 사서 좀 팔아야겠어요. 이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해서 어찌 기다린담. 근데, 그 소설 제목이 뭐라고요?
그것은 사랑 없이는 깰 수 없는 유일한 꿈이었다.
김동희의 말에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아보았다. 군복을 입었지만 화장을 섬세하게 다듬고 싶다던 미군도, 그의 옆에서 그가 가져온 소설책에 정신이 잠깐 팔려 있던 유정미도, 여순옥과 미군의 옷차림새와 화장을 살피던 여성들도, 그리고 그렇게 소설 제목을 알려달라 닦달하던 여순옥마저도.
그것은 진정 사랑 없이는 깰 수 없던 유일한 꿈이었으니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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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만순, 「한국전쟁기 청원군에서의 민간인학살」, 한국제노사이드연구회
노영기, 「기획2 : 전쟁기 민간인 학살과 국가의 책임]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에 관한 자료 실태와 연구현황」, The Organization Of Korean Histor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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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생로랑 낭떠러지 김엄지 1 E는 걸으면서 여자 친구를 떠올린다. 오늘은 그녀의 생일이다. 지갑을 선물하리라. 메탈릭 컬러의. E는 결정했다. 메탈릭 컬러가 여자 친구의 취향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거리에 눈발이 날리고, 때늦게 웬 눈인가. 인도로 걸어야 하는데 보도블록을 까뒤집어 놓은 날이다. 찬바람에 흙먼지가, 눈보라가 휘날린다. 이런 날씨에 무슨 공사를. 보도블록과 공원 터 여기저기 파헤쳐져 있다. 중장비 두 대가 덩그러니 멈춰 있다. E는 카페로 가는 또 다른 길, 크게 우회하여 걷는 경로를 떠올린다. E는 천변으로 내려가 물을 따라 걷기로 한다. 2 축복이라는 건 그저 그런 상황에서 주시는 게 아니야. 핑크빛, 막 그런, 좋고, 그런 게 아니라. 코너로 몰아. 사람을 몰고 몰아서. 상황 중에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것, 보증된 건 천국이라는 자리뿐이라는 걸 깨닫게 해 주는 거. 여기서의 생활이 너무 괴로우니까. 갈등이, 사람을 끝까지 몰아가는 일들이 너무 많으니까. 얼마 전에 급식 봉사하는 분 간증을 들었어. 오늘 밥 열심히 나눠 주고, 내일 밥할 돈을 또 구해야 하는 게 너무 큰 고난인 거야. 밤새 기도를 한대. 내일 밥값이 없습니다. 내일 밥값이 없습니다. 그럼 신기하게 다음날 딱 급식할 밥값만 입금되어 있대. 넉넉하게 편안하게 안 해 주는 거야. 하루만 딱. 항상 하시는 일이 그거인 거야. 딱 그거. 하루치. 너무 신기한 거야. 신기한 가운데 이틀치 주시면 안 되나요, 싶은 거지.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실 때는 사용할 그만큼만 하시는 거야. 하나님 음성 듣는다고 행복하고 그런 게 아니라니까. 그리고 하나님은 결코 내가 열성분자가 되기를 원하시지 않아. 내가 교회를 못 갈 일이 생기면, 오늘은 교회에 오지 말고 모임에 나가라, 하신다고. 내가 하나님 모를 때는 팝송도 듣고, 이거저거 다 들었는데, 하나님 알고 나서는 찬송가만 들었어. 그랬더니 어느 날 하나님이 네가 듣고 싶은 것 들어라, 하시는 거야. 그래서 알게 됐지. 아 하나님은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시는구나. 하나님이 너무 응답해 주시니까 신학대학에 가려고 했거든. 신학대학 가기 전에 히브리어 띠고 가는 게 좋다고 해서, 히브리어 시작하려는데 그때 또 들렸어. 그 길은 네 길이 아니다, 음성이 들리더라고. 그래서 신학대학원은 안 가기로 했어. 하나님 왜 그러시냐고 물을 때는 답이 없으셔. 사람은 모르는 거야. 하나님만 아시는 정확한 때에. 정확한 방법으로 딱 그만큼만 알려 주시는 거야. 내가 구한다고 해서 그때마다 알려 주시고, 들려주시는 게 아니야. 성령이 임한다고 마냥 핑크빛이 아닌 거야. 하나님이 작정하시면 내 몸으로 보여 주셔. 물집이 똑 떨어지고 그 자리에 반점이 생기는 거야. 나 심장도 멈춰 봤어. 심장이 멈추고, 호흡이 멈추면 얼마나 편안한지 몰라. 나를 그렇게 움켜쥐고 있던 게 내 숨이었던 거야. E는 카페에 앉아
- 관리자
- 2025-04-01
성한 입 이현석 아기 앓는 소리에 눈을 떴다. 박명이었고 아직 분유 먹일 시간은 아니었다. 어두운 잠귀를 이유로 밤 당번을 자처한 것은 나였으나 의지와 달리 본성은 강했다. 아내가 자리끼 컵을 산산조각 냈을 때도 세상모르고 코만 곯았다는데 율이와 둘이 잔 뒤로는 아이가 내는 작은 소리에도 눈이 금방 뜨였다. 바닥에 깔아 둔 매트리스에서 몸을 일으킨 나는 아기 침대를 내려다보았다. 율이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두 눈을 꼭 감은 채 입을 오물거렸다. ‘아빠가 또 속았네.’ 잠은 설쳤어도 흐뭇했다. 이 작은 목숨이 간밤을 또 무사히 넘겼구나. 그 마음을 얹고 도로 몸을 뉘었는데 다시 잠에 들지는 못했다. 아기방 창문에 맺힌 물방울이 거슬렸다. 창문은 밤새 돌린 가열식 가습기 탓에 부러 흩뿌린 것처럼 흥건했다. 문득 재건축 조합 단톡방에서 보았던 잡담이 떠올랐다. 유명 로펌을 다니느라 바쁜 딸과 얼마 전 개원한 의사 사위를 대신해 손주 둘을 보느라 겨우내 가습기를 틀었더니 옷장 안에서부터 피어난 검은 곰팡이가 벽면 한쪽을 잡아먹었다는 이야기였다. 시황 따라 일이 억은 우습게 에누리하는 아파트에서 곰팡이 걱정이라니. 직면한 현실과 지난봄 우리 부부가 치른 비현실적인 가격 사이의 뚜렷한 차이에 헛웃음이 나왔다. 물론 현실만 따지면 놀랍지 않았다. 아파트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박정희 정권이 삼화토건 회장 도예종, 매일신문 기자 서도원, 경북대학교 총학생회장 여정남 등 여덟 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예비음모 등으로 사형을 선고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형을 집행했던 바로 그해에, 여의도의 다른 구축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박정희의 명령으로 완공됐다. 반세기가 넘은 건물이었다.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곰팡이는 당연했다. 화장실에서 바퀴벌레를 보아도 놀랄 것이 없었고, 개수대에서 썩은 내가 올라와도 그러려니 했다. 아내와 함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여름밤에는 통통하니 살이 오른 쥐가 아파트 복도 반대편으로 내달리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기함할 듯 놀란 나와 달리 아내는 대수롭지 않아 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오빠, 견뎌. 이게 실거주 투자의 현실이야.” 아내는 평소처럼 장난스럽게 말했으나 나는 그 말을 묵직이 받아들였는데 싱글일 때부터 정석대로 자산을 늘려 온 아내의 투자 이력을 알아서였다. 현관문을 잽싸게 닫은 나는 만삭이 된 아내의 배를 쓰다듬으면서 “충성충성”이라고 촐싹댔다. 사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만 해도 실감하지 못했다. 벌레나 쥐가 부르는 본능적인 혐오도 자산 증식이라는 대명제 앞에선 한낱 농담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곰팡이조차 농담일 수 없었다. 집에는 율이가 있었다. 가습기를 끈 나는 전날 벗어 둔 티셔츠를 집어 들었다. 율이가 깨지 않게 까치발로 창문에 다가갔다. 물기를 닦고서 창문을 미세하게 열었다. 서늘한 외풍이 실낱처럼 들어왔다. 재건축 단톡방에 상주하는 어르신들은 아침에 잠깐씩 이렇게 해 두면 곰팡이도 예방하고 아이
- 관리자
- 2025-04-01
흰옷 빨래의 날 안담 오늘은 마지의 기일이니까 흰옷을 모아 빨래를 한다. 마지가 유니폼처럼 자주 입던 크림색 티셔츠도 잊지 않고 꺼내서 빤다. 아마도 처음 살 때는 흰옷이었을 거다. 내가 애용하는 독일 브랜드의 캡슐 세제는 성능이 뛰어나다. 이 티셔츠에서는 마지의 냄새가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는 나도 마지의 냄새를 잘 떠올릴 수가 없다. 꽤 강한 냄새였는데, 그런 냄새가 잊히기도 한다는 게 신기하다. 가끔 그 냄새를 다시 기억해 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4년 전 마지와 내가 처음 만났던 장소인 모둠 전집에 간다. 전을 굽는 작업대가 가게 밖으로 툭 튀어나와 있어서 포장 손님도 많은, 반은 노점인 그런 가게. 튀는 기름을 막기 위해 조리대 틈새와 철판 모서리에 은색 호일이 덧대어져 있고, 그럼에도 철판 가장자리나 작업대 위 처마에 쌓이는 기름때를 막을 수는 없다. 조용히 질색하며 지나치는 행인들, 저 시커먼 데서 맛이 나오는가 보다고 농담하는 손님들, 그런 사람들 사이에 섞여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기름 냄새를 맡는다. 이 냄새와 비슷했던 것 같아. 열과 기름과 사람이 합쳐서 내는 냄새. 전혀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 냄새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기억만큼은 선명하다. 내 동거인의 냄새, 홍제천 스리룸의 주방 맞은 편 작은 방의 냄새, 마지의 냄새. 앞으로는 누구와 같이 살 생각이 없다. * 윤석열 나이로 스물아홉이 되던 2021년 겨울, 나는 당근마켓을 통해 홍제역 인근 스리룸의 하우스메이트를 구하고 있었다. 마지는 그 글을 보고 연락한 세 번째 사람이었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좋은 집으로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백련산과 홍제천이 코앞이고 인왕산이나 북한산도 비교적 멀지 않다는 점을 제외하면 인프라랄 게 없는 집. 인적 드문 가파른 언덕에 있고 북향이라 볕이 잘 들지는 않으며 어떤 역에서든 멀었다. 낡은 건물인데 월세는 70만 원으로 센 편이었다. 월세를 제외하면 그 집의 여러 요소는 내게는 장점이었다. 크고 힘 좋은 내 개와 오를 산이 있고 사람은 만나기 힘들다는 게. 스리룸에 방들이 크고, 연식이 오래된 집의 컨디션을 의식한 집주인이 못 박기를 포함해 여러 변화를 허용해 준다는 점도 좋았다. 나부터가 담배를 피우기 때문에 흡연자도 좋았다. 내가 대형견과 산다는 사실은 누군가에게는 극단적인 장점이고 누군가에게는 극단적인 단점이었을 테다. 내 개는 순하다 못해 맹한 편이었지만, 글에는 남자나 키 큰 사람에게는 경계심을 보인다고 적었다. SNS로 하메를 구하는 여자에게 피곤한 사람이 얼마나 꼬이는 줄 아냐고 으름장을 놓은 지인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인 소개가 낫지 않냐는 조언도 숱하게 들었지만, 지인의 지인이 길거리에 다니는 아무개보다 더 좋은 사람일 거라는 전제에 동의가 잘 안되었거니와, 하우스메이트가 맘에 안 들었을 때 소개해 준 지인의 체면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의 구인 글은 짧아졌다 길어졌다를 반복하다가 이런 형태가 되었다. ‘홍제역 인근 스리룸 하메 구합니
- 관리자
- 2025-04-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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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재밌게 잘읽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어나 내용이 생소하고 사람 이름과 전개가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챕터를 거듭해 읽어나갈수록 내용과 줄거리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런 내용구성을 옴니버스식이라고 부르는가요. 우리들의 블루스 드라마를 참 재밌게 보았었는데, 이 소설도 챕터와 챕터가 내용이 얽혀서 인물들의 과거를 파악해나가고 점차 시점이 현재로 같이 흘러가는 것이 책의 제목과 윤슬을 점점 더 명확하게 만들어주었던것 같아요. 많은 참고문헌들을 다 공부하시고 이렇게 깊은 글을 쓰신것이 대단하게만 느껴지네요. 단숨에 몰입해서 읽도록 빨아들였어요. 윤슬과 같이 빛나지만 꿈결처럼 덧없는 사랑이 느껴졌어요. 써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