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그동안의 정의

  • 작성일 2024-07-01
  • 조회수 1,339

   그동안의 정의


최예솔


   작정하고 사라진 사람은 작정하고 찾아야만 한다. 나는 윤정수를 작정하고 찾지 않았다. 보통의 남매 사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윤정수와 나를 그냥 보통 남매, 라고 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윤정수는 나보다 4년 먼저 태어났다. 그리 적지도, 그리 많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 차이 덕분에 윤정수와 나는 딱히 친해지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정수는 중학교에 갔고,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윤정수는 고등학교에 갔다. 물론 윤정수와 내가 영 친해지지 못한 건 우리의 나이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윤정수는 내게 없는 사람에 가까웠다. 말수도 없고 센스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공부머리도 없고 돈도 없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나? 아무튼 남매 사이에 정이라도 있었다면 걱정이라도 했을 텐데 그럴 이유조차 없었다. 쥐뿔도 없는 윤정수니까. 특이사항이라곤 개그맨 윤정수와 동명이인이라는 것 정도밖에 없는. 그러니 윤정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갔다고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었지. 뭐 내가 찾는다고 윤정수가 나타났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나는 막연히, 어련히 때 되면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윤정수는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죽은 것은 아니다. 윤정수가 죽었다. 내 나이가 이제 서른이니까, 윤정수는 서른넷에 죽었다. 이제 내게 남은 혈육은 없다······ 아닌가?

   고모.

   그렇게 부르지 마.

   왜요.

   낯설어.

   저도 고모가 낯설어요.

   윤현수는 맹랑하다. 윤정수와 장현아의 딸이라고 해서 윤현수. 그거 좀 유치하지 않니? 물었을 때 윤현수는 뭐 어때요 엄마아빠말곤 모르는데, 하고 대답했다. 이제 나도 아는데? 하니까 이젠 고모도 모르는 척해 달라고 했다. 참 나 어디서 이런 게 굴러왔는지.

   현수야.

   네.

   네 엄마 입국 날이 언제라고 했지?

   다음 주 토요일이요.

   아직 한참 남았네.

   고모도 고모 할일을 해요. 시간 금방 갈걸요.

   알겠다 그래.

   윤현수를 데리고 온 사람은 장현아다. 이제는 나흘쯤 됐으려나. 아침부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서 나가 봤더니 장현아가 윤현수의 손을 붙잡고 서 있었다. 장현아는 다짜고짜 윤정수를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오랜만에 듣는 윤정수의 이름에 잠깐 벙쪘다가 네, 저희 오빠네요, 하고 대답했다.

   조카입니다.

   그날 장현아의 대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건 도저히 내가 아는 사람이 뱉을 만한 말이 아니어서 대사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겠다. 아직도 문득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윤현수가 정말 나의 조카가 맞고 장현아가 정말 나의 새언니가 맞을까. 가족관계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되는 거라면 이제까지 윤정수와 나는, 또 윤정수와 나와 우리의 부모는, 왜 이렇게 흩어지거나 죽거나 혼자 남을 수밖에 없었을까. 그래도 장현아가 보여준 사진 속의 윤정수는 누구보다 윤정수다웠고, 장현아도 장현아가 맞았으며, 윤현수도 그냥 윤현수였다. 그러니까 그 셋의 가족사진. 윤정수는 조금 한산해 보이는 공원에서 제 가족들과 벤치에 나란히 앉아 웃고 있었다. 치사하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사진을 보자마자 치사하다, 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러니까 제가 윤정수의 처고요.

   아아. 그래요.

   장현아라고 합니다.

   그리고 장현아가 윤정수의 부고를 알렸다. 저희 남편이 사망해서요. 그 말은 앞이나 뒤가 잘린 것처럼 어딘가 애매하게 들렸는데, 그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는 윤정수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궁금하지 않았고, 윤정수의 사망으로 장현아와 윤현수가 얼마나 슬펐는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어쩌면 슬프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아무튼 그날 만난 장현아의 얼굴은 상실이라든가 분노, 우울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장현아는 예뻤다. 이목구비가 반듯했고 얼굴에 쓰잘 데 없이 남는 공간이 하나도 없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몰라도 짐머만 스타일의 원피스를 입었으며 긴 생머리는 관리가 잘 되어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반질반질 윤이 났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이 너무 예쁘다고, 툭 튀어나오려는 말을 참느라고 고생했다. 귀엽거나 예쁘거나 멋진 것에 대한 감상은 본능에 가까운 것이지만 사람이 본능적으로만 살면 안 되는 거겠지. 그렇게만 살았다가는 제일 먼저 도태되는 것이 나 같은 인간일 것이다. 혹은 윤정수······ 그런데 장현아가 윤정수의 처라. 나는 그것부터 영 적응이 안 됐다.

   그리고 윤현수. 장현아가 윤현수를 데리고 나를 찾아온 이유는 너무나 상식적이었다. 해외 출장 일정이 생겼는데 인사평가를 멀쩡하게 받으려면 도저히 뺄 수 없다.

   남편이 죽었는데도요?

   나는 내가 먼저 물어 놓고도 너무 남 일처럼 얘기했나, 싶어서 아차했는데,

   남편이 죽었으니까 더 열심히 벌어야죠.

   장현아도 별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 하고 말았다. 장현아는 보육원 출신으로 윤현수를 대신 맡아 줄 친정 부모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달리 믿음직한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문득 시댁 식구를 떠올렸다고 했다. 윤정수가 딱 한 번 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아무튼 처음 만난 사이에 윤정수가 제 얘기는 왜 했을까요, 그러게요 그래도 가족이라고 애틋함이 있었을까요, 그럴 리는 없는데 도대체 뭐라고 하던가요, 하는 대화를 나눌 것도 아니고 나는 그저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고 말했다.

   그럴 틈이 없어요.

   없다고요.

   네. 출장이 내일이라.

   이렇게 급하게 오시면 어떡해요.

   고민하는 데 시간을 다 써버렸어요.

   아무튼 내가 그날 장현아와 윤현수를 눈앞에 두고 확신할 수 있었던 건 장현아가 무척 예쁘다는 사실과 윤현수가 그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점. 그래서 이 아이가 윤정수의 딸이라거나 나의 조카라는 사실이 조금은 그럴싸하다는 점. 첫째 딸은 아빠를 닮는다고 하던데 윤현수가 윤정수를 닮았느냐, 그건 조금 애매했다. 차라리 윤현수는 나를 더 닮았고 나는 그 사실이 조금 소름 끼쳤다. 윤현수의 얇은 눈매와 축 처져서 울적해 보이는 입 꼬리는 완벽하게 나의 그것들과 닮았는데······ 나름의 장점이 있다면 내가 윤현수를 데리러 유치원에 갔을 때, 아무도 내가 수상한 사람이라고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

   현수야. 가자.

   어머, 오늘은 현수 어머님이 바쁘신가 봐요.

   네.

   잘 가 현수야.

   윤현수가 다니는 구립 유치원 선생님의 미소는 화사했다. 처음에는 윤현수의 조그만 손을 붙들고 집까지 걸어오는 게 영 어색했지만 그것도 며칠 지나니까 그럭저럭 할만했다. 

   현수야.

   네.

   사탕 먹어라.

   당류가 높은 건 몸에 좋지 않아요.

   그래서 오늘은 유치원까지 오는 길에 여유롭게 편의점에 들러 이따 마실 맥주를 한 캔 사면서 윤현수가 좋아할 만한, 유니콘 그림이 그려진 사탕을 하나 같이 샀는데 무슨. 당류가 뭐 어째.


   윤현수는 올해로 일곱 살, 취미는 바둑이다. 나는 윤현수에게 바둑을 처음 배웠다. 요즘 유치원생이라면 아이패드로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게 제일 재미있는 일일 줄 알았는데, 처음 우리 집에서 저녁을 먹던 날 뜬금없이 바둑판이 가지고 싶다고 했다. 조카한테 근사한 장난감 하나 사주는 거야 그럴싸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바둑판이라. 그건 좀 예상 밖의 일이었다.

   포켓몬 인형말고?

   네.

   마법 항아리도말고?

   네.

   슬라임 같은 것도 싫고?

   네. 저는 바둑이 좋아요.

   바둑판은 종류도 참 다양했다. 일 센티 정도 되는 두께의 얇은 바둑판도 있었고 반으로 접어 보관할 수 있도록 만든 바둑판도 있었으며 거의 밥상만큼 높고 두꺼운 바둑판도 있었다. 윤현수는 내가 네이버에 검색해 둔 바둑판의 종류를 쭉 훑어보더니 동그란 다리가 달린 두꺼운 원목 바둑판이 제일 좋다고 했다.

   너 엄마 오면 이거 들고 가야 되잖아.

   네.

   무거울걸.

   엄마가 들어 줄 거예요.

   나는 별수 없이 다리 달린 바둑판을 주문했다. 가격대는 8만 원부터 100만 원 넘는 것까지 다양했는데 적당히 15만 원 정도 되는 걸로 골랐다. 그날 저녁부터 윤현수는 나에게 바둑을 가르쳤다. 사놓고 몇 번 쓰지 않은 아이패드가 바둑 두는 데 쓰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만 뭐, 이렇게라도 쓰이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바둑이라면 이세돌과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 정도. 이세돌이 바둑은 예술이라고, 그런데 알파고는 예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서 괴로웠다고, 말하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물론 윤현수가 두는 바둑은 이세돌의 바둑과는 다를 것이다. 내가 아무리 바둑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해도, 윤현수가 그리 특출 나게 바둑에 재능이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는데······ 그거야 모를 일이다.

   윤현수가 나에게 알려준 바둑의 룰은 간단하다. 흑돌과 백돌이 번갈아 바둑판 위에 자리를 잡는다. 바둑돌을 둘 수 있는 자리는 바둑판의 격자무늬가 서로 겹치는 부분이다. 상대의 돌이 내 돌을 완벽히 둘러싸면 잡아먹힌다. 그렇게 먹은 돌이 더 많은 사람이 이긴다. 바둑처럼 역사가 긴 게임이 이렇게 엉성한 룰로 돌아가는 게 맞나, 싶어도 윤현수와 반나절 잘 놀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한 이틀 아이패드로 바둑을 두고 나니 주문했던 바둑판이 도착했다. 라탄 바구니에 담긴 바둑알까지 서비스로 딸려 와서 윤현수와 나는 곧장 새 바둑판에다 바둑을 둘 수 있었다. 바닥에 내려둘 때마다 퉁, 퉁 소리가 울리는 묵직한 바둑판으로 바둑을 둔 지는 이제 사흘째다.

   30분까지만 두고 저녁 먹을 거야.

   오늘 저녁은 뭐 먹어요?

   햄버거.

   저는 새우버거가 좋은데요.

   그럼 내일 새우버거 먹자. 오늘은 이미 불고기버거 시켰어.

   그래요.

   어디선가 듣기로 일곱 살이 제일 얄미운 나이라던데 윤현수는 달리 얄미운 구석도, 그렇다고 귀여운 구석도 없었다. 나는 상당히 덩치가 작은 나를 돌보는 기분으로 윤현수를 돌봤다. 해가 뜨면 깔끔하게 씻겨서 유치원에 데려갔고 하원 시간이 가까워 오면 저녁 메뉴를 고민하면서 거실 소파 앞에다 바둑판을 펼쳤다. 장현아도 내가 이렇게 시간이 많은 백수인 줄 미리 알고 윤현수를 데려오진 않았을 텐데, 아무튼 나에게는 달리 윤현수를 맡을 이유가 없었던 것처럼 맡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아무래도 백수니까. 지난달까지는 버스를 타고 다섯 정거장 가면 있는 아메리칸 차이니즈 레스토랑에서 홀 직원으로 일했는데, 술을 많이 마시고 온 내 또래의 손님과 시비가 붙어서 잘렸다.

   그냥 사과하면 된다잖아.

   매니저가 그렇게 얘기했는데 나는 도무지 그냥 사과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제가 일을 그만할게요. 그리고 똑같은 손님 입장이 되어서 그 손님과 머리채를 붙들고 싸웠다. 그렇게까지 싸울 일이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했다. 그랬던 일들이 많다. 결국 매니저가 경찰을 불렀고 나는 적당한 합의금을 받게 되었다. 상대는 올해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첫 발령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술에 취해서 난동을 부린 손님이 탈 없이 교사가 되는 데 삼백만 원 정도면 아주 적당하지 않았을까. 삼백만 원. 이 정도면 한 달 일을 쉬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윤현수와 장현아가 우리 집 앞으로 찾아오기 일주일 전의 일이다.

   오늘은 내가 흑돌이고 윤현수가 백돌이다. 윤현수는 꼭 바둑판 구석부터 돌을 올렸다. 뭘 하느냐고 물어 보면 순진하게 집을 짓는 거라고 곧이곧대로 대답했다. 집 지어서 뭐 하는데? 고모가 갈 길을 막아요. 내 갈 길을 왜 막는데? 제가 이기려고요. 내가 좀 매정한 탓인지 윤현수가 순진한 탓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한 번도 윤현수의 집 안에 갇힌 적 없다. 윤현수의 집은 게임이 끝나기 전까지 완성된 적 없기 때문이다. 게임은 내가 끝이라고 말하면 끝났다. 늦기 전에 저녁을 먹어야 하고, 저녁을 먹은 다음에는 윤현수의 학습지를 같이 풀어야 한다. 수학과 영어 학습지를 매일 밤 한 페이지씩 푸는 것은 장현아가 유일하게 거듭 강조해 가며 부탁한 일이다. 한글은 이미 다 뗐으니 수학과 영어만 잘 챙기면 된다나.

   넌 커서 뭐 될 거니?

   이세돌이요.

   알파고가 이겼는데?

   제가 알파고가 될 수는 없잖아요.

   내 생각에 윤현수는 수학과 영어를 좀 못 하더라도 사는 데 하등 문제가 없을 애다. 사람이 똑똑하고 못 하고를 단순히 몇 과목의 성취도로만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세돌은 될 수 있지만 알파고는 될 수 없다고 믿는 7세 윤현수. 당연히 이세돌이 될 수는 없겠지만 이세돌 비슷한 무언가가 될 수는 있을지도.


   보통 일곱 살의 학습 수준이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윤현수는 내가 기대하던 것보다 영어에 능통했다. 기본적인 알파벳과 발음은 모두 알고 있었고 간단한 단어들을 읽고 쓸 줄 알았다. 이제는 간단한 문장들을 연습하는 단계다. 나는 윤현수가 푸는 학습지를 들여다보면서 윤현수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두 유 라이크 아이스크림.

   예스, 아이 라이크 아이스크림.

   네가 좋아하는 음식이 또 뭐가 있지?

   고구마요.

   윤현수는 고구마를 좋아한다. 어제는 날씨를 말하는 문장들을 배웠는데, 윤현수는 바람이 부는 날씨를 좋아한다. 왜냐고 물었더니 바람에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들이 시원하다고 했다. 무슨 어린애가 바람소리를 다 듣고 다니니, 그렇게 물을 수는 없어서 그냥 그렇구나 멋지네, 하고 얘기해 줬다. 그래도 어떻게 어린애가 그런 소릴 다 듣고 다니는지. 이런 얘기를 누군가와 시시콜콜 나눌 수 없는 건 조금 아쉬운 일이다. 이름도 생소한 슬로바키아로 출장을 가 있는 장현아에게 이런 일로 카톡을 보낼 수도 없고. 그전에 장현아와 내가 이런 이야기를 나눌 만한 사이인가······ 그것부터가 난센스다.

   고구마는 영어로 스윗 포테이토야. 두 유 라이크 스윗 포테이토?

   예스, 아이 라이크 스윗 포테이토.

   물론 윤현수가 혼자서 영어 퀴즈나 수학 문제를 푸는 동안 내가 하는 일은 난센스가 아니냐.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런 것도 아니지만 쏠쏠한 용돈 벌이는 된다. 서울에 있는 유명한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석사까지 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치사하리만치 적거나 너무할 정도로 무궁무진했다. 나의 경우는 내 취업보다 남의 취업 돕기가 좀 더 적성에 맞았다. 이를테면 공기업이나 대기업 취업을 위한 자기소개서 첨삭 같은 것. 누구보다 하고자 하는 일에 열정이 넘치지만 냉철한 판단력도 갖추고 있으며 단점마저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먼치킨 캐릭터······ 는 다른 어떤 문학보다 실용적이며 편리하다.

   고모.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그럼 뭐라고 불러요.

   그러게. 그냥 고모라고 불러라.

   저 두 장 다 풀었어요. 윤현수가 식탁 위로 학습지 두 개를 올려 뒀다. 영어 문장은 두 번씩 말했어? 아까 고모랑 했잖아요. 뺄셈은 어려운 거 없었어? 네. 저녁도 다 먹고 학습지도 다 푼 윤현수는 이제 자유 시간을 갖는다. 장현아가 시간표를 짜주고 간 건 아니지만, 윤현수가 말했듯이 나도 내 할일을 해야 하니까. 아메리칸 차이니즈 레스토랑 같은 직장에는 되도록 늦게 돌아가고 싶다.

   처음 나에게 자기소개서 첨삭 아르바이트를 소개한 사람은 강홍민이다. 제가 아는 국문과 사람 중에 누나가 글을 제일 잘 써요. 내가 쓰는 건 소설인데? 그게 그거죠. 강홍민이 나를 선택한 이유는 몹시 단순했다. 시작은 강홍민의 낚시 동아리 후배였다. 낚시가 곧 인생이라는 지루한 소리를 늘어놓던 여자애였는데 지원하겠다는 기업들은 영 낚시와 거리가 멀었다. 물론 먹고사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같을 필요는 없다. 나도 딱히 남의 자기소개를 대신하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누나 그렇게 살지 마요.

   그래도 내가 이런 소릴 들을 만큼 잘못 살았나. 나는 대학원을 졸업하고도 한동안은 학교 도서관에 가서 자기소개서나 면접 모범 답안 따위를 정리하고 프린트했다. 졸업 학기 초에 충전해 둔 복사카드 금액이 반이나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런 내 삶의 태도에 강홍민이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다. 복사카드에 돈이 남은 게 문제인지 도서관 이용 자체가 문제인지는 몰라도.

   내가 뭘 했는데 개새끼야.

   나는 몹시 조용한 도서관 한가운데서 강홍민에게 욕을 했다. 그걸 그렇게까지 욕할 일이었는지······ 는 역시 잘 모르겠다. 강홍민이 그랬던 것처럼 내게도 모르는 일이 많다. 몰라서 헤아릴 수조차 없다. 그런데 강홍민은 저도 똑같이 모르면서, 어떻게 그런 소릴 나한테 할 수 있었지. 내가 뭘 했냐는 질문도 그렇지만 세상에는 답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의문문이 많다. 어쩌면 그냥 강홍민을 욕하고 싶었을지도.

   고모.

   응.

   내일은 토요일인데요.

   그러네.

   토요일은 외출하는 날이에요.

   외출?

   네.

   외식이 아니라?

   외식도 하면 좋죠.

   윤현수가 다시 바둑판 앞에 앉았다. 나는 아직 고쳐야 할 자기소개서가 몇 장 남아 있어서 유튜브로 바둑 방송을 틀어 주었다. 그동안 윤현수와 바둑을 두면서 어느 정도는 이해도가 생기지 않았나, 생각했는데 바둑 방송에서 하는 소리는 여전히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윤현수는 알아듣나 싶어 얼굴을 쳐다보면 표정은 잘 모르겠고 방송에 나오는 대로 돌은 얼추 비슷하게 두는 것 같다. 창작의 어머니가 모방이라더니 바둑도 창작이라고 봐야 하는 건가. 역시 바둑은 예술······ 나는 이세돌의 동그란 콧방울을 떠올리면서 눈앞의 자기소개서를 모난 구석 없이 고친다. 고친다기보다는 깎아낸다. 쓸 데 없는 소리들을.

   현수야.

   네.

   내일 어디 가고 싶은데?

   대학교요.

   대학교?

   아빠가 우리 가족 중에 대학 나온 사람은 고모밖에 없다고 했어요.

   그래?

   네.

   그렇구나.

   네. 그래서 가보고 싶어요.

   윤정수가 윤현수에게, 그리고 장현아에게 나에 대해 무슨 소리를 했는지 나는 모른다. 마찬가지로 윤정수도 지금 내가 윤현수에게, 혹은 장현아에게 본인에 대해서 어떤 말을 덧붙일지 영영 알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을 그들이 몰라야만 했는가······ 딱히 그렇지는 않다. 나는 아직도 세상에 대해 알 만한 것들보다 모르는 것들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윤현수가 아직 불고기버거 한 개도 다 못 먹을 정도로 작은 인간이라는 사실.

   나는 티브이나 인터넷에서 육아에 대해 보고 들은 대로 윤현수라는 독립적인 개체를 존중해 주고자 했으나 실패한 것들이 많다. 저녁 메뉴 선정부터 치약의 종류나 양말 사이즈, 편하다고 생각하는 베개의 높이 같은 것. 괜히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데서 어린이 메뉴를 파는 게 아니고 키즈 카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구나. 내게는 동생이 있었던 것도 아니거니와 내가 윤현수 나이였던 때는 꽤나 오래된 일이라서 딱히 기억에 남은 것이 없다. 물론 그때는 어린이 메뉴나 키즈 카페 따위가 흔한 것도 아니었겠지만. 나는 오늘의 불고기버거를 포함해 요 며칠간 윤현수가 남긴 음식을 해치우느라 매번 1.5인분의 저녁식사를 했다. 이러다 장현아가 돌아와서 백수라더니 팔자 좋게 살이나 뒤룩뒤룩 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몰라. 물론 지금의 내가 팔자가 나쁜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그랬다면 그날 윤정수에게 부러 말을 걸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윤정수를 만난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학교 근처 호프집에서 개강 총회가 있었는데 나는 그날이 공강이라 종일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다가 30분쯤 늦게 호프집에 도착했다. 그 호프집은 식당이나 술집이 빽빽하게 늘어선 골목 중간쯤의 건물 2층에 있었는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서는 항상 누군가 노가리를 굽고 있었다. 가격이나 시설 따위를 따져 봤을 때 대단히 경쟁력 있는 술집은 아니었지만 노가리만큼은 어느 호프보다 맛있다, 고 국문과 사이에서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데 그 노가리를 윤정수가 굽고 있었을 줄이야. 개강 총회고 종강 총회고 신입생 환영회고를 따지지 않고 과 모임은 무조건 그 호프에서 해왔는데 도대체 윤정수는 언제부터 거기서 노가리를 굽고 있었을까. 어쩌면 내가 처음으로 노가리를 먹었던 날부터 윤정수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피어오르는 연기를 맞으면서 열심히 노가리를 뒤집는 윤정수를 지나쳐 호프집 계단을 올랐다. 윤정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노가리만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나를 보지도 못했고 내가 제 동생이라는 걸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뒤늦게 도착한 개강 총회 자리에는 당연하게도 테이블마다 노가리가 한 접시씩 올라가 있었다. 나는 적당히 고소하고 적당히 탄 맛이 올라오는 노가리를, 마요네즈와 간장과 청양고추가 절묘한 비율로 섞여 있는 소스에 푹푹 찍어먹으면서 생맥주 500cc를 두 잔이나 마셨다. 아무튼 여기 노가리가 진짜 맛있다니까. 누구보다 열심히 노가리를 찢어 먹는 나를 보고 어떤 동기가 그렇게 말했던 것도 같다. 그러게 그게······ 우리 오빠가 구워서 그런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중얼중얼거리면서 노가리를 우물우물 씹었는데 동기가 뭐라는 거냐고, 잘 안 들린다고 재차 물었지만 대답은 않고 담배만 한 개비 빌려 나왔다.

   나는 윤정수가 가출한 뒤로도 딱히 윤정수를 그리워하거나, 나를 두고 혼자서만 집을 나갔다고 서운해 하거나 뾰로통하지도 않았다. 당연히 집 나간 윤정수는 뭘 하고 살지 궁금했던 적도 없는데 그날은 왜 그다지도 추운 날씨에 목장갑을 끼고 노가리를 뒤집는 윤정수가 눈에 밟혔는지 모를 일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뭐 그런 건가······. 나는 취기에 조금 멍한 상태로 계단 난간에 기대어 윤정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윤정수는 여전히 나한테는 관심도 없이 노가리 세 마리를 마저 굽더니 접시에 곱게 올려 두고 담배를 피웠다. 나는 아까 동기에게서 하나 얻어 온 담배를 물고 윤정수에게 라이터를 빌렸다.

   사람들 지나다니니까 내려와서 피우세요.

   윤정수가 고분고분한 말투로 그렇게 얘기했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윤정수에게,

   나 이 앞에 대학교 다닌다.

   하고 얘기했다. 이건 몹시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제야 윤정수가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얼핏 웃었다. 피식 웃은 것도 아니고 비죽 웃은 것도 아니고 그 중간의 애매한 웃음이었다.

   성공했네.

   윤정수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 피운 담배를 바닥에 비벼 껐다. 그러고는 아까 구운 노가리 접시를 들고 호프집 계단을 성큼성큼 올랐다가 금방 다시 돌아와 또 새로운 노가리를 구웠다. 고소한 냄새가 찬 공기 사이로 폴폴 퍼졌다.

   아직도 그 집에 살아?

   윤정수가 석쇠를 쥔 손을 쥐었다 풀었다 하면서 물었다.

   응. 거기 이제 내 집이야. 엄마 죽었대.

   그렇구나.

   잘 됐네. 윤정수가 그렇게 덧붙였다. 뭐가 잘 된 일인지 딱히 묻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다 피운 담배를 손톱으로 털어 계단 너머로 던진 다음 개강 총회 테이블로 돌아가 남은 소주와 노가리와 골뱅이 무침에 파전까지 열심히 집어먹었다. 다음날에는 숙취로 하루 종일 화장실 변기를 붙들고 토하고 누웠다가 또 토하고······ 그 후로는 한 번도 그 호프집에 다시 간 적 없다. 나 이제 노가리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아. 그 말에는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그날 나는 왜 그렇게까지 취해서 윤정수에게 말을 걸어야만 했을까. 그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도 도저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지만······ 그 덕에 윤현수와 대학교 나들이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인 일인가. 결국 잘 된 일인가. 아무튼 성공한 것일까?


   저기가 고모가 공부했던 건물.

   유치원 등하원을 제외하고 윤현수와 손을 붙들고 걷는 일은 처음이다. 나는 인문학관 앞에 서서 여전한 시멘트색 건물을 가리켰고 윤현수는 우와, 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렇게 보니 딱 일곱 살 꼬마애 같기도 하고.

   저건 뭐예요?

   윤현수가 인문학관 앞에 세워진 정체불명의 조각상을 보고 물었다. 호랑이도 아니고 사자도 아니지만 눈빛이나 이빨을 보면 아무튼 맹수와 비슷한 어떤 것. 나는 모르겠는데, 하면서도 잠자코 윤현수를 그 앞에다 세워 두고 사진을 찍었다. 여기 봐 현수야. 브이. 윤현수는 착실히 내가 시키는 대로 브이를 그리거나 두 손으로 작은 하트를 만들었다. 학교 다니는 동안은 한 번도 여기서 사진 찍을 생각은 못 해봤는데 아무튼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생각하는 사이 윤현수가 내 핸드폰을 가져가더니 찍힌 사진을 보고 흐흐 웃었다.

   맘에 드냐.

   네.

   다행이네.

   아무튼 대학교에 가보는 게 소원이라던 윤현수는 그 꿈을 이룬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너도 커서 가라 대학교. 어젯밤에는 윤현수를 침대에 눕혀 놓고 그렇게 얘기해 주기도 했는데 윤현수는, 글쎄요 갈 수 있을까요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하던데······ 중얼거리다 까무룩 잠들었다. 어디 가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얘기해 주고 싶었는데 윤현수가 말한 쉽고 어렵고의 기준이 딱히 대학의 수준은 아닐 수도 있겠다 싶어서 구태여 깨우지 않았다.

   안에도 들어갈 수 있어요?

   글쎄. 외부인이라 될지 모르겠다.

   학생처럼 보일 수도 있잖아요.

   나는 몰라도 대학에 일곱 살짜리가 다니진 않으니까.

   아하.

   윤현수와 나는 건물 안에 들어가는 대신에 화단 벤치에 앉아 아침에 싸온 김밥을 먹었다. 윤현수는 단무지를 싫어했고 나는 네 아빠 닮았네, 하면서 단무지 대신 햄만 두 줄을 넣었다. 윤현수도 나도 김밥을 직접 싸보는 건 처음이라 내용물이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썰린 크기가 제멋대로거나 옆구리가 터지거나 아무튼 꼴이 평범하진 못했지만 맛은 무난했다.

   나중에 엄마 오면 고모랑 소풍도 가고 좋았다고 그래라.

   네.

   김밥도 싸줬다고 해.

   알겠어요.

   나는 김밥을 먹다 말고 벤치에서 일어나 무릎 위에 도시락을 얹고 있는 윤현수의 사진을 또 몇 장 찍었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장현아가 없는 동안 최선을 다해 윤현수를 돌보고 있었고 조카 사진이 핸드폰에 남는다는 게 좀 어색하긴 해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어쩌면 좋은 쪽에 더 가깝지 않을까. 윤현수가 한 손에 김밥 한 조각을 들고 손을 쭉 뻗었다. 그래, 지금 아주 좋아, 말하는 사이 뒤에서 누가 어깨를 툭 쳤다.

   깜짝이야.

   누나 결혼했어요?

   강홍민이었다.

   조카야. 오빠 딸.

   누나한테 오빠가 있어요?

   있었어.

   있었다고요? 강홍민이 되물었는데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다시 윤현수를 챙겼다. 이거 봐 사진 잘 나왔지. 네. 윤현수는 강홍민의 눈치를 살피더니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강홍민은 허, 하고 기가 찬 웃음소리를 내더니 안녕, 너 고모랑 많이 닮았네, 하고 윤현수와 악수를 했다.

   무슨 유치원생이랑 악수를 해.

   요즘은 애들도 애 취급하면 싫어한댔어요.

   강홍민은 석사 과정을 하면서 조교로 일하고 있다고 묻지도 않은 설명을 붙여 가며 내가 싸온 김밥을 잘도 집어먹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잘 됐다면서. 대학 구경을 왔다는 윤현수의 말에는 앞장서서 건물 안까지 구석구석 구경시켜 주기도 했다. 인문학관은 강의실부터 과실, 연구실 문짝까지 여전했다. 아무튼 미래보단 과거 보존이 더 가치 있는 과잖아요 우리 과가. 강홍민은 조교실의 낡은 패브릭 소파에 우리를 앉혀 두고는 농담이랍시고 허무맹랑한 소리나 지껄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강홍민에게 욕을 했던 게 마음에 걸려서 그래 그렇지, 하고 말았다.

   한 병밖에 없으니까 조카한테 양보하시죠.

   강홍민이 냉장고를 뒤지더니 비타500 한 병을 꺼내서 윤현수에게 건넸다. 윤현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거기 비타민보다 설탕이 더 많이 들어간댔어요.

   그래, 고모가 먹을게 고모가.

   나는 강홍민의 손에 들린 비타500을 빼앗듯이 집어 들었다. 강홍민은 뭐가 그리 웃기는지 키득키득 웃었다. 윤현수와 나와 강홍민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비타500 대신 어제 학부생 누구가 교수님과 면담을 하느라 사왔다는 마카롱 세 알을 나눠먹었다. 강홍민은 점심시간이 다 끝날 때가 되어서야 소파에서 일어나 제자리의 서랍을 뒤지더니 이건 그저께 휴학계를 내러 온 누구가 사온 쿠키라고, 빵켓팅이라고 들어는 봤냐면서 아주 귀한 거라고 몇 개를 쥐어 줬다.

   맛있게 먹어라.

   강홍민이 윤현수의 납작한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애 취급 하는 거 싫어한다면서 웃겨. 중얼거렸더니 그래도 귀엽잖아요, 하고 하하 웃었다. 마지막으로는 귀한 손님이라도 배웅하는 것마냥 조교실 문까지 직접 열어 주었다.

   누나.

   왜.

   소설 계속 써요.

   싫어.

   꼭 써요 꼭.

   그러고는 잽싸게 문을 닫아버렸다. 나는 양손에 한 움큼 쥔 쿠키를 가방에 대충 집어넣고 윤현수의 손을 붙잡았다. 윤현수는 약간 졸려 보였다.

   피곤하니?

   아니요.

   집에 갈까?

   더 놀고 싶은데요.

   아무튼 강홍민도 윤현수도 무지하게 맹랑하다.


   윤현수와는 캠퍼스를 빠져나와 대학가를 천천히 걸었다. 도심의 대학가란 곧 번화가이기도 해서 놀러 나온 젊은이들 사이를 윤현수와 같이 걷고 있자니 이게 잘하는 짓인가, 싶기도 했지만 윤현수는 또 그럭저럭 팬시점이나 옷가게 따위를 구경하면서 잘만 돌아다녔다. 작은 인간의 체력은 무한하다더니. 어쩌면 피곤한 쪽은 나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면서도 좌판 앞에 잠시 서서 윤현수에게 웃는 표정의 꽃 모양 인형을 하나 사줬다. 고모는 이미 바둑판을 사줬잖아요. 윤현수가 그렇게 말했는데 주말의 나들이란 원래 이런 재미가 있는 거라고, 대꾸해 주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누구에게나 미안한 일들이 하나씩은 생각나는 법인데 그걸 이제 와서 각자에게 다 갚아 줄 수는 없으니까 윤현수에게 몰아서 갚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달리 말하자면 윤현수에게는 아쉽거나 미안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 물론 이유는 모른다.

   한 손에 꽃 인형을 든 윤현수와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골목들을 좀 더 돌았다. 언젠가 윤정수와 마주쳤던 호프집이 있는 골목도 지났는데, 그 호프집은 없어지고 만화 카페가 들어와 있었다. 보통 업장이 바뀌어도 비슷한 업종으로 바뀌지 않나. 여전히 낡아 보이는 벽돌 건물의 2층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윤현수가 이제는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업어 줄까?

   제가 그 정도로 아기는 아니에요.

   그러냐.

   네.

   나는 윤현수를 잠시 계단에 앉혔다. 2층으로 가는 계단은 여전히 건물 외부로 노출되어 있었다. 골목은 여전하기도 했고 여전하지 않기도 했으며, 정돈이 되어 있기도 했고 듬성듬성 굴러다니는 쓰레기가 조금 더럽기도 했다. 아무튼 일곱 살과 어울리는 공간은 아니다. 그렇지만 대학 투어도 딱히 일곱 살에 어울려서 했던 것은 아니지. 나는 윤현수를 잠깐 안아들고 만화 카페로 올라가서 3시간 이용권을 끊었다. 보일러가 들어와서 따끈따끈한 평상에 윤현수를 앉혀 놓고 카운터에서 담요를 얻어 와 덮어 주기까지 했다. 이쯤 되면 꽤 괜찮은 고모가 아닌가······ 생각하는 사이 윤현수가 어느새 옆에 붙어 같이 만화를 고르고 있었다.

   좋아하는 만화 있어?

   아니요. 저는 웹툰밖에 본 적 없어요.

   사실 나도 만화에는 딱히 취미가 없었다. 대학가에 키즈 카페가 있을 리는 없고 대충 만화 카페라도 같이 오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올라오긴 했지만 막상 만화를 고르려니 무한히 늘어서 있는 서가 앞에서 하염없이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윤현수와 서가를 빙글빙글 돌다가 문득 본 적은 없어도 이름은 들어 본 유명한 만화 하나가 생각났다.

   그럼 바둑 만화 볼래?

   바둑 만화도 있어요?

   있지 당연히.

   나는 고스트바둑왕을 대충 3권까지 챙겨서 자리로 돌아와 담요를 덮고 엎드렸다. 아무튼 소설이든 만화든 영화든 드라마든 제목이란 솔직한 법이라서 고스트바둑왕이 바둑 만화인 건 분명했는데 진짜 고스트가 나오는 만화인 줄은 몰랐기 때문에 잠깐 놀랐다. 바둑 귀신이라니 유치원생이 이걸 받아들일 수 있나. 그래도 윤현수는 별 말 없이 집중해서 만화를 보고 있었다. 나는 윤현수가 한 페이지를 전부 읽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 읽었어요, 하고 얘기하면 페이지를 넘겨주었다.

   고모.

   응.

   의식이 뭐예요?

   의식? 어떤 의식?

   여기요. 얘가 의식 속에 있어요, 하고 말하잖아요.

   아. 그 의식.

   역시 일곱 살에게 귀신의 존재란 이해하기 힘든 것일 수도 있겠다. 나는 바둑 귀신인 사이가 주인공 히카루의 의식 속에 들어가 제 존재를 열심히 어필하는 장면을 보면서,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의식이라. 사전적 정의를 말해 준다고 윤현수가 알아들을 수 있으려나.

   지금부터 엄마를 생각하지 말아 봐. 

   생각하지 말라고 하니까 더 생각나잖아요. 

   그런 게 의식이야. 네가 엄마를 의식해서 그래.

   엄마는 귀신이 아닌데요?

   그럼 아빠?

   음.

   윤현수는 작은 머리통을 열심히 굴리는 것 같은 표정을 했다. 그러더니 곧 알겠어요, 하더니 다시 만화책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나는 그 후로도 윤현수가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나 바둑 용어 따위를 네이버와 구글 검색의 힘을 빌려 열심히 설명했고, 윤현수는 알겠다고도 모르겠다고도 했지만 그럭저럭 만화는 잘 봤다.

   카페 이용권 3시간은 2권도 다 보지 못하고 끝났지만 그동안 내가 알게 된 건 윤현수가 또래답지 않게 어휘력이 뛰어나긴 하지만 또 그 또래답게 어려워하는 것도 많다는 것. 그리고 바둑은 윤현수가 나에게 설명해 준 것처럼 그리 호락호락한 게임이 아니라는 것. 고스트바둑왕은 바둑 만화답게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바둑 룰이나 용어에 대해 설명하는 페이지가 있는데 그건 내가 아무리 검색을 열심히 해도 당장 깨우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윤현수의 희망대로 토요일 외출을 하고 돌아와서는 둘 다 기절하듯 잠들었다. 윤현수를 먼저 씻겨서 안방에 눕혀 놓고 샤워를 하고 나왔더니 윤현수가 그릉그릉 코를 골면서 자고 있었다. 애들도 피곤하면 코를 다 고는구나. 아무튼 작은 인간도 인간은 인간, 생각하다가 기억도 없이 잠들었다. 그러다 무언가 나를, 혹은 내 옆에 누워 있을 윤현수를 골똘히 바라보는 기척에 문득 눈이 떠졌는데 아니나 다를까 침대 머리맡에 윤정수가 서 있었다. 오래전의 어느 날처럼. 한 손에는 까만색 짐 가방을 들고 덩그러니 서 있는 모양으로.

   귀신이냐.

   그럴 수도.

   윤정수가 애매하게 웃었다. 나는 윤정수가 집을 나가던 날 어딜 가느냐고, 왜 가느냐고 묻지 않았던 것처럼 오늘 역시 왜 왔느냐고, 뭘 하러 왔느냐고 묻지 않았다. 다만 윤현수를 조용히 내려다보는 윤정수의 얼굴을 잠자코 들여다보기만 했다. 그건 분명 내가 아는 얼굴이었지만 동시에 낯선 얼굴이기도 했는데······ 뭐 그만큼 오래 못 만났으니까. 우리는 앞으로도 오래······ 이제까지 못 만난 만큼보다 훨씬 더 오래······ 못 보고 살 것이다. 물론 윤정수는 이미 죽었으니까 나만.

   조심히 가.

   그래.

   윤정수가 그렇게 말하고 진짜로 금방 떠났는지는 모를 일이다. 당연히 나는 잠들었으니까. 다시 눈을 떴을 때 윤정수는 가고 없었다. 대신 장현아에게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현수 소원이 대학 가는 거랬는데 감사합니다.

   윤현수와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는 같이 사진을 골라서 장현아에게 보내 뒀다. 그걸 이제 확인한 모양이다. 장현아의 문장은 단출하지만 명확했다. 무슨 어린애 소원이 벌써 대학에 가는 거냐고······ 답장을 보내려다 말았다. 이 시간에 잠을 깨운 걸 알면 미안해할지도 모른다. 아닌가. 그럴 사람이라면 윤현수를 맡기지도 않았으려나. 나는 장현아의 카톡과 윤현수의 사진을 한참 번갈아 보다가 잠이 다 깼다. 이참에 밀린 자기소개서 첨삭이나 더 해두면 일요일 하루도 윤현수와 팽팽 놀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처음 자기소개서를 써준 낚시 동아리 여자애는 인생에서 겪은 갈등과 그 해결 과정에 낚시를 쓰겠다고 부득부득 우기더니 결국 그 얘기로 그럴싸하게 최종 면접을 봤다고 했다. 최종 면접까지 간 건 그걸로 세 번째였는데, 취업 성공은 처음이었다. 여자애는 취업 기념으로 학교 근처의 꽤나 고급인 일식집에서 밥을 샀다.

   제가 낚시에는 인생이 담겼다고 했잖아요. 근데 선배가 그건 제 인생이 낚시에 담긴 거지 남들 인생까지 다 낚시에 담겨 있는 건 아니라면서요.

   내가 그런 얘길 했나.

   네. 그래서 이번 면접에서는 그렇게 얘기해 봤거든요.

   그래서 붙었을까요?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애초에 나는 그 질문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으니까. 아무튼 취업을 했으면 된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여자애는 기분이라며 비싼 사케까지 시켜서 마시더니 거하게 취했다. 걸음도 제대로 못 걸으면서 계산은 신용카드를 턱 내밀면서 잘도 하기에 괜찮은가 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집까지 걸어서 가겠다느니 버스를 타면 멀미가 난다느니 지하철은 너무 길어서 정신이 없다느니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내가 택시를 불렀다.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여자애는 웅얼거리는 발음으로 그럼 선배 인생은 소설에 담겨 있나요 선배는 소설을 계속 쓰실 건가요 그러려고 취업도 안 하시나요······ 하고 실없는 질문을 끊임없이 늘어놓았는데, 나는 어차피 내일이면 기억도 못 하겠지 싶어서 묻는 말에 꼬박꼬박 대답해 주었다. 어차피 사람들은 남의 인생에 관심도 없고 이미 세상에는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는 이제 소설 같은 거 쓰지 않을 거고 돈은 나 혼자 먹고살 만큼만 벌면 그만이다. 당연히 여자애는 내 얘기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차도와 인도 사이에 걸터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그래서 좋았다. 그래서 좋았는데, 도착한 택시에 비틀비틀 올라타다 말고 어차피 선배도 제가 낚시하는 거에 관심 없잖아요······ 하더니 뒷좌석에 풀썩 쓰러졌다.

   그 후로는 나에게 자기소개서를 맡기면서도 내 소설이 어쩌니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나도 그때 했던 말대로 다시는 소설을 쓰지도 않았고 소설에 대해서 생각하지도 않았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소설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인생은 낚시나 소설 같은 것보다 자기소개서에 더 유의미하게 담기고 있지 않나. 미국 음식도 중국 음식도 아닌 미국식 중국 음식을 서빙하면서 좋아하지도 않는 볶음면 같은 걸로도 끼니만 때울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러다 가끔은 오늘처럼 빵켓팅까지 요구하는 귀한 쿠키를 먹기도 하고.

   나는 자기소개서를 넘겨 보다 말고 강홍민이 준 쿠키를 뜯었다. 쿠키에서는 정말로 귀한 맛이 났다. 버터와 캐러멜의 풍미가 완벽하게 조화로워서 이건 당류고 뭐고 윤현수도 꼭 먹어 보라고 해야지, 다짐하고 있는데 윤현수가 깼다.

   고모.

   아이고.

   윤현수가 안방 문을 붙들고 식탁에 앉은 나를 졸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잠도 덜 깬 주제에 고개를 휘휘 젓더니 혀까지 찼다.

   이 시간에 그런 거 먹으면 안 돼요.

   맛있는데.

   당뇨력이 있댔어요. 아빠 쪽에.

   나도 너네 아빠 쪽인데.

   그러니까 고모도 조심하세요.

   이걸 걱정을 해줘서 감동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여전히 나를 닮은 윤현수의 눈매를 잠깐 쳐다보다가 알겠다 자라, 하고 남은 쿠키를 식탁 구석으로 슬쩍 치웠다. 어차피 윤현수가 다시 잠들고 나면 내가 쿠키를 마저 먹었는지 말았는지 알지도 못하겠지만 그래도 작은 인간 앞에 큰 인간 된 도리로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게 좋겠지. 어린애들은 하루하루 크는 게 눈에 보인다던데 며칠 전 처음 본 윤현수와 지금의 윤현수는 아직 거기서 거기다. 나는 구태여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제의 강홍민처럼 윤현수의 납작한 뒤통수를 몇 번 쓰다듬으면서 도로 침대에 눕히려고 했는데,

   안 졸려요.

   또 실패하고 말았다. 아무튼 육아란 게 어디서 보고 들은 대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지만 결론은 쉽지 않은 일, 이라는 데는 그럭저럭 동의가 됐다. 지금보다 더 작은 윤현수는 더 어려웠으려나. 장현아가 돌아오는 날에는 그런 걸 물어 보고 싶기도 하다.

   지금 안 자면 내일 늦잠 잔다.

   이건 일찍 일어난 건데요.

   흠.

   아무튼 윤현수가 윤정수보다 말주변이 좋다는 건 확실하다. 아니면 장현아가 말을 잘했던가, 떠올려 보려고 했는데 사실 그렇게 긴 얘길 했던 것도 아니라서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나는 억지로 윤현수를 재우는 대신 거실 가운데 바둑판을 펼쳐 두었다. 이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바둑 방송을 틀어 줄 수도 있겠고 전자책 구독 어플로 고스트바둑왕 전권을 빌려다가 보여줄 수도 있겠다. 윤현수와 내가 같이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한정적이지만 마냥 단순하지는 않다.


   내가 내 할일을 하는 동안 윤현수도 윤현수의 할일을 한다. 나는 윤현수가 당연히 바둑을 둘 줄 알았는데 어스름히 해가 뜨는 거실 가운데 엎드려서 노트에다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윤현수와 윤현수가 적고 있는 글씨는 역광 때문에 실루엣만 겨우 보이는 수준이었는데, 나는 도대체 뭘 쓰고 있는 건지 궁금해서 하던 일은 일단 두고 윤현수 곁에 가서 앉았다. 덜 뜬 해는 아주 절묘하게 노트를 분간할 정도로만 밝았다. 윤현수가 끄적거린 건 단지 글씨만이 아니고 그림도 함께 있는 그림 일기였다. 

   너 일기도 쓰니? 

   가끔요. 

   매일 아니고? 

   일기는 쓰고 싶은 게 있는 날만 써도 된댔어요. 

   누가 그랬는데? 

   아빠가요. 

   그건 잘 배웠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윤현수가 어설프게 그려 놓은, 아마도 인문학관 앞의 조각상처럼 보이는 무언가와 정체 모를 인간 셋······ 을 내려다봤다. 세 명 모두 얼굴에는 눈코입이 달려 있고 팔다리도 멀쩡했지만 윤현수는 바둑보다 그림에 더 재능이 없었다. 대충 작은 건 윤현수, 긴 머리는 나, 짧은 머리는 강홍민인가, 하고 물어 봤더니 아니란다. 윤현수는 맞았는데 긴 머리는 장현아고 짧은 머리는 윤정수. 나는 처음 셋의 가족사진을 봤던 날보다 조금 더 토라졌다.

   같이 간 건 난데 왜 엄마랑 아빠만 그려 주냐.

   아직 덜 그렸어요. 고모도 그릴 거예요.

   예쁘게 그려 줘.

   고모는 안 예쁜데요.

   어쩌면 이런 게 미운 일곱 살. 나는 부러 입술을 비죽 내밀고 너무하다, 너무해, 하고 바둑판도 사주고 꽃도 사줬는데 너무하다고 징징 우는 소리를 냈다. 윤현수는 그게 재미있는지 흐흐 웃었다. 그사이 해가 좀 더 떴다. 윤현수가 엎드린 거실 바닥이 흐리게 빛났다. 너는 나 닮았는데 어떡하냐······ 그런 소리는 구태여 하지 않기로 했다. 윤현수는 구석부터 바둑돌을 올리는 것처럼 인간도 발부터 그렸다. 하기사 인간을 어디부터 그리라고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니까. 일곱 살이 저 정도 그리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 아닌가. 애들은 잘 자라면 그만이다. 윤정수와 내가 돌봐주는 이 없이 알아서 잘 자란 것처럼······ 아닌가? 아무튼 장성한 윤정수는 장현아와 함께 윤현수를 만들었고 나는 그런 윤현수를 돌본다.

   나는 내 그림이 완성되는 걸 보다 말고 느릿하게 뜨는 해를 향해 천천히 누웠다. 아직도 해가 완전히 뜬 건 아니어서 눈이 부시지는 않았고 하늘이 조금 허여멀건하기만 했다. 옆에서는 윤현수가 연필을 움직이는 소리와 윤현수의 숨소리와 이따금씩 종이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이제 와서 윤정수가 죽어버린 게 조금 안타까워졌다. 이런 윤현수를 두고 죽어버리다니. 윤정수가 알려준 대로 이렇게 일기도 잘 쓰는데. 그래도 별수 있나. 이미 죽은 걸.

   고모.

   왜.

   고모 이름은 뭐예요?

   내 이름을 몰라?

   아무도 안 알려줬으니까요.

   나는 다시 몸을 뒤집어 윤현수 곁에 같이 엎드렸다. 윤현수는 그려 놓은 네 명의 인물 아래에 각각 이름을 써놓고 있었다.

   이름은 왜 써.

   누군지 모르겠다면서요.

   누가.

   아까 고모가 그랬잖아요.

   맞네.

   나는 괜히 윤현수의 그림을 비난해 버린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해졌다. 누가 누군지 못 알아봤을 뿐이지만 아무튼 윤현수가 열심히 그린 그림인데. 

   고모 이름은 윤정의. 

   윤현수는 내가 불러 주는 대로 곧 잘 받아썼다. 영어도 쓸 줄 아는데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다 쓴 이름을 보니 윤정의가 아니라 윤정이였다.

   아니, 정이 아니고. 정의.

   의?

   그래. 의식할 때 의.

   윤현수가 이 밑에다 작대기를 하나 더 그었다. 조금 삐뚤지만 윤정의. 어쩌면 저렇게 엉성한 모양새가 윤현수의 그림에는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윤현수는 바둑을 잘 두는 것도 아니고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예술에는 영 재능이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윤현수는 바둑이나 그림 같은 것말고도 잘하는 게 많으니까. 무엇보다 내가 모르는 것들을 많이 알고 있고 또 알게 될 테니까. 언젠가는 소원이라는 대학에도 갈 수 있을 테지만 그건 아주 먼 미래의 일일 것이고······ 그동안 나는 윤정수에 대해서 적어 보려고 한다.

추천 콘텐츠

좋아하는 마음 없이

좋아하는 마음 없이 김지연 안지는 이른 결혼을 했는데 실패로 끝났다. 아니, 그걸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이혼을 한 건 사실이었지만 안지는 자신의 인생 여정에서 그때 이혼한 일을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더 행복해졌다고 할 수는 없을지언정 조금 더 자기 자신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늘 그에 대해 변호하고 싶은 여러 말들이 떠오르곤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결혼 같은 건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때문에 이혼했다는 사실은 안지의 비밀은 아니었지만 먼저 나서서 밝히지도 않았다. 어릴 때 안지는 무척 전형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그런 표현을 떠올리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이 속해야 하는 집단에서 튀지 않는 사람, 아주 평균적인 사람이고 싶었고 그런 사람이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했다. 찬반투표를 할 때면 눈치를 보다가 다수의 의견에 따라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친구가 좋아하는 가수를 따라서 좋아하고 친구의 것과 비슷한 브랜드의 신발을 사서 신었다. 친구들이 싫어하는 선생을 따라서 싫어했다. 사실 안지는 그 선생에게 남몰래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다가 술술 흘러나온 그 선생에 대한 욕을 듣고 재빨리 노선을 바꿔 함께 욕을 했다. 한동안 안지는 수학 시간마다 왜 애들은 저 선생을 싫어할까? 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서 더 열심히 선생의 행동거지를 살폈다. 수학을 가르친다는 점만 빼면 딱히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었다. 학생이 쉽게 답할 수 없는 내용을 골리듯 물어보지 않았고 무엇보다 학생들한테 사과를 할 줄 알았다. 뭔가 잘못 알고 섣불리 화를 냈을 때, 그러다 결국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다른 선생들은 그러게 헷갈릴 만한 짓을 왜 하고 다니느냐고 도리어 짜증을 부렸는데 그 선생은 재빨리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 알았어. 미안해. 가끔 안지는 머릿속으로 그 목소리를 재생해 보곤 했다. 그 때문에 선생이 더 좋아졌지만 여전히 싫어하기 위해 애썼다. 누구나 다 그런 식으로 청소년기를 보내지 않나? 내가 아닌 사람이 되어 보려고 노력하면서? 안지는 대학에 갔고 연애를 했고 졸업을 했고 취직을 했다. 결혼도 했다. 아주 평균적인 삶이었다. 조금씩 빠르기도 했다. 조바심이 나 있었으므로. 자신도 남들처럼 지극히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빨리 증명해 보이고 싶었으므로. 어느 정도 성공적인 것 같기도 했다. 남편이 바람이 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식도 올리기 전 임신을 해 낳은 아이가 막 돌을 지난 참이었다. 임신이 아니었으면 결혼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남편은 계속 후회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낙태를 밀어붙이지 않은 것을, 시간을 끌다가 영영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만 것을, 어떤 결단력을 가지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뼈저리게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새로운 여자가 생겼을 때는 안지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혼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겨우 육 개월을 만났을 뿐

  • 관리자
  • 2024-07-01
소금 샹들리에

소금 샹들리에 정한아 호주에 사는 김이 오랜만에 귀국해서 친구들이 다 같이 모이기로 했다. 4명이 만나는 건 대략 7년여 만이었다. 방을 잡고 밤새 보자고 해서 오기 직전까지 망설였는데, 남편이 등을 밀었다. 정민이와 자신에게도 내가 없는 날이 필요하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정말 밤새 전화 한 통 없었다. 친구들과는 대학 동기였다. 전공은 문예 창작이었는데, 나는 2학년까지 다니고 학교를 그만뒀다. 그렇지만 정작 작가가 된 사람은 나뿐이라고 친구들이 투덜거렸다. 나는 작가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십 수 년 전 내가 낸 단 한 권의 책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세 명 모두 미혼이었고,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예전 그대로인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철 지난 옷차림에 좀처럼 대화에도 섞이지 못했지만,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다.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에 술자리도 즐거웠다. 좋은 친구들이었다. 7년 전 정민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 그들은 자신의 일처럼 울어 줬고, 이후에도 종종 아이의 간식과 선물을 집으로 보내 줬다. 서서히 연락을 거둔 것은 내 쪽이었다. 애써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힘에 부쳤을 뿐, 그들에게 섭섭한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집이 아닌 곳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었다. 다들 술에 취해서 침대로 간 뒤에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 cctv 속 거실은 엉망이었다. 엎어진 식판, 사방에 흩어진 블록 조각, 길게 늘어진 옷가지들. 남편은 불도 끄지 않고 아이를 재우러 방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나는 정지화면 같은 그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해 뜰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맛집마다 대기가 길어 종로의 좁은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앞장서 구글 맵을 보며 걷던 김이 갑자기 작은 서점 앞에서 멈춰 서더니 책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지난 이사 때 내 책을 분실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책을 다시 보내 주겠다고 김을 달랬다. 다섯 평도 안 되어 보이는 그 작은 서점에 내 책이 있을 리는 만무했기 때문이다. 김은 막무가내로 서점에 들어갔다. 할 수 없이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가 전면 책장에 전시된 내 책을 발견했다. 죽은 친구를 만났다고 해도 그처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애 씨!” 그곳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우아한 노부인이었다. 린넨 바지에 화이트 셔츠, 큼지막한 호른 목걸이를 한 여자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반장님?” 나는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여자는 성큼성큼 내 앞에 다가와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안은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오래전 나와 함께 공부했던 문우였다. H 백화점 문화센터 소설 창작 교실의 반장. 친구들이 책을 구경하는 사이 나는 그녀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ldqu

  • 관리자
  • 2024-07-01
용서

용서 장진영 박정상이 과일 바구니를 들고 찾아왔다. 병문안하는 사람처럼. 교복 차림으로 미루어 보건대 박정상은 고등학생이었다. 과일 바구니도 무리해서 샀을 것이었다. 인디핑크 색깔의 광택 없는 종이로 고급스럽게 포장된 과일 바구니 안에 애플망고가 대여섯 개 담겨 있었다. 마치 크고 탐스러운 알 같아서 사람이 태어나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박정상은 마르고 키가 컸으며 자신의 기다란 팔다리를 어떻게 가눠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처럼 움직였다. 큰 키 탓에 눈을 내리깔았는데 거만함보다는 주눅 든 모습에 가까웠다. 과일 바구니를 든 오른손은 안정적으로 허벅지 부근에 떨구어졌고 아무것도 들지 않은 왼손은 불안스레 허공을 맴돌았다. 기타를 치는지 오른손만 손톱이 길었다. 처음에 부모님은 박정상이 누군지 몰랐다. 떨떠름하게 현관문을 열었을 뿐이었다. 문을 연 사람은 아빠였다. 잡상인이거나 종교인이겠거니 싶었다. 그럼에도 문을 열었는데, 이전에는 한 번도 없었던 일이기에 스스로 놀랐다. 심지어 안전고리도 걸지 않았다. 앞으로 아빠는 그 이유에 대해 자주 생각할 것이었다. 박정상이 “안녕하세요. 저는 박정상입니다.”라고 말하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거울을 보고 여러 차례 연습한 것 같은 동작이었다. 아빠는 박정상이 누군지 몰랐다. 초면이었고 이름을 들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누군지 알 것도 같았는데, 아슬아슬하게 참아 내는 재채기처럼 그 앎을 흘려보냈다. 아주 잠깐의 평화를 위한 안간힘이었다. 박정상이 자신을 박태섭의 아들이라고 소개하자 아빠는 기절했다. 허물어지듯 넘어진 게 아니라 만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통나무 모양으로 뒤로 쓰러졌다. 퍽, 하고 전구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부엌에 있던 엄마가 달려와 비명을 질렀다. 박정상은 움찔했지만 정면을 바라본 채 꼿꼿이 서 있었다. 처분을 기다리는 듯했다. 엄마는 식칼을 들고 있었다. 기절했던 아빠가 금세 정신을 차렸다. 몸은 그대로였지만 눈은 번쩍 뜨였다. 자신과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본능에서 비롯된 초인적인 힘 때문이었다. 아니면 그저 장하나가 아빠의 가슴팍을 밟고 지나갔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장하나는 외부인인 박정상의 발 냄새를 곰곰이 맡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아직 쓰러져 있는 아빠의 손바닥에 엉덩이를 가져다 댔다. 때려 달라는 뜻이었다. 장하나의 동생 장하다는 스탠드형 에어컨 위에서 식빵 자세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아닐 수도 있었다. 장하다는 사시였다. 아빠는 자신이 왜 현관 바닥에 큰대자로 뻗어 있는지 알아차리느라 한참 헤맸다. 그러던 중에 식칼을 든 엄마를 발견했다. 아빠는 엄마와 박정상을 번갈아 응시하더니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달려들다시피 엄마를 끌어안았다. 혹시라도 엄마가 저지를지 모르는 일을 막기 위함이었다. 기절하지 않은 사람 입장에서는 다소 뜬금없는 행동이었다. 엄마가 “왜 이래!” 소리치며 몸을 마구 흔들어 댔다. “놔! 아니니까 놓으라고!” 몸싸움이 격해

  • 관리자
  • 2024-06-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