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나의 힘
- 작성일 2024-09-01
- 좋아요 0
- 댓글수 0
- 조회수 867
슬픔은 나의 힘
문진영
침대에서 겨우 빠져나와 커튼을 걷자 어슴푸레한 빛이 방 안에 드리운다.
고양이가 천천히 기지개를 켜고는 사뿐히 침대 아래로 뛰어내린다. 나는 거실로 나가 이번에는 소파에 드러눕는다. 고양이는 곧바로 내 가슴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고 엎드리더니 골골거리기 시작한다.
소리들이 들려온다. 근처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아이들의 새된 목소리. 아랫집 세탁기가 웅, 웅, 하고 돌아가는 소리.
지금 나는 평화로운가. 권태로운가.
판단하지 못하겠다.
주영은 두 달째 부재중이다.
어젯밤 주영의 책상 앞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한구석에 놓인 일력이 주영이 떠난 날짜에 그대로 멈춰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매일의 날짜와 요일, 그리고 문장 하나가 적혀 있는 일력이었다.
나는 그것을 한 장 한 장 뜯어내기 시작했다. 거기 적힌 문장을 읽고, 종이를 구겨 곧바로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그러다 구기지 못하고 한참 동안 들여다본 문장은 바로 이것이었다: 사람의 탄생은 슬픔의 탄생이다.
장자의 말이라는,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덩그러니 놓여 있던 그 문장에 나는 온 마음으로 동의했다. 과연, 나는 한 시절을 사람의 모양을 한 슬픔과 함께 살았으니까. 그렇다면 잔디는?
한때 우리 — 주영과 나 — 는 잔디가 고양이의 몸을 가진 기쁨 그 자체라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아니었다. 잔디도 슬픔이었다.
잔디는 함부로 만지는 걸 싫어했다. 여간해선 울지 않았고 골골거리지도 않았다.
말이 쓸데없이 많고, 내가 움직일 때마다 다리에 몸을 비비고, 시도 때도 없이 꾹꾹이를 하는 이 작은 얼룩 고양이는 아직 이름이 없다.
나는 천천히 녀석을 쓰다듬는다. 따뜻하고, 부드럽다.
너도 슬픔이구나.
너를 슬픔이라고 부를까.
*
엄청 웃기는 꿈을 꿨어.
그날 아침 샤워 부스에서 나온 주영이 수건으로 머리를 틀어 올리며 말했다.
그래? 뭐가 웃겼는데?
내 물음에 주영이 기억 안 나, 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꿈속에서 깔깔 웃다가 잠에서 깼는데, 실제로도 소리 내서 웃고 있었다고 주영은 말했다. 그렇다는 걸 깨닫는 순간 섬뜩했고 기분이 나빴는데, 언제인지도 모르게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고. 그런데 막상 아침에 일어나 보니 불쾌한 기분보다는 그 꿈이 정말로 웃겼다는 것,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정말 진심으로 깔깔 웃었다는 느낌만 남아 있다고 했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음. 내 생각엔 일종의 방어기제 같은데. 네 뇌가 너를 보호······ 주영은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헤어드라이어의 전원을 켰다. 내 말끝은 드라이어의 소음 속으로 순식간에 휘말려 들어갔다. 듣기 싫다는 뜻. 주영은 내가 그냥 그렇구나, 하면 되는 일에 꼭 의견을 덧붙이고 가르치려 든다고 힐난하곤 했다. 나도 그게 좋지 않은 버릇이라는 걸 알았지만 잘 고쳐지지 않았다.
나는 아무 꿈도 꾸지 않았다. 그렇게 황홀한 잠은 근 몇 년 만에 처음이었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인간의 뇌란 굉장하구나. 나의 뇌는 밤새 두꺼비집을 내려버린 거고, 주영이 뇌는 주영을 향해 엔돌핀을 퍼부은 게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주영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을 때 나는 모르는 사람의 집에 있었다. 모르는 사람의 부엌에서 타일을 붙이고 있었다. 지난해 가을부터 친한 형님에게서 타일과 도배 기술을 배우고 있었다. 평일에는 직장에 출근했고, 주말에 현장이 있으면 따라갔다.
이직을 생각하고 있었다. 13년째 같은 직장에서, 같은 업무를 하고 있었다. 식사를 대접하며 일을 한번 배워 보고 싶다고 부탁하는 내게, 형님은 현재 나의 연봉이 얼마냐고 물었다. 내 대답에 형님은 놀란 기색을 재빨리 감추더니, 말없이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나도 나의 연봉이 낮은 수준이라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우리는 맞벌이였고, 2인분의 살림을 꾸려가기에는 그리 부족하지 않았다. 돈 때문에 이직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는데, 갑작스러운 위로를 받고 보니 돈 때문에라도 이직을 해야겠다 싶었다.
선뜻 퇴사할 용기는 없었다. 가능한 날에만 출근하면서 기술을 배운다는 것은 형님의 배려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주영은 내가 토요일까지 일하는 것을 걱정했지만, 나는 사실 그 시간이 즐거웠다. 몸을 움직이고 땀 흘려 일하는 것이 주는 만족감이 있었다.
처음 전화벨이 울렸을 때는 괜히 눈치가 보여 얼른 소리를 껐다. 문하생 처지에 일당까지 받고 있는데 한가롭게 전화 통화나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재차 벨이 울리자 형님이 누구냐고 물었다. 주영이라고 대답하자 형님은 급한 일인가 보다고 얼른 받아 보라고 했다.
나는 그제야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더 빨리 받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주영은 담담한 말투로 집에 불이 났으며, 소방차가 여러 대 와 있다고 이야기했다. 소방관들이 호스를 들고 4층으로 뛰어 올라갔고, 자신은 1층에 내려와 있어 지금 불이 얼마나 커졌는지 혹은 꺼졌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주영이 워낙 침착하기도 했고 좀처럼 현실감 있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나 역시 이상할 정도로 차분했다. 나는 주영에게 어딘가를 다치지 않았는지 물었다. 주영은 대답이 없었지만 나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고 있는 주영의 모습이 그려졌다. 대신 주영은 이렇게 말했다.
잔디를 못 데리고 나왔어.
주영이 그 말을 할 때까지, 나는 잔디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
불은 서재 구석의 낡은 멀티탭에서 시작되었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새벽녘에 잠든 주영은 침대에 누워 있었고, 뭔가가 타는 냄새에 잠에서 깼다. 늘 착용하고 잠드는 안대와 귀마개를 빼자, 화재경보기에서 화재 발생, 화재 발생, 하는 여자의 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영이 비몽사몽 옆방으로 뛰어갔을 때 불은 이미 벽지에 옮겨 붙어 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벽지에서 커튼으로. 커튼에서 책장으로. 그 방은 주영의 작업실이었다.
주영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 일단 현관에 있는 소화기를 가져왔다. 소화기를 직접 사용해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림으로만 익혔던 소화기 사용법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일단 안전핀을 뽑았다. 호스를 붙잡지 않은 채 손잡이를 눌러버렸다. 소화액이 뿜어져 나오는 힘 때문에 호스가 미꾸라지처럼 날뛰었다. 허연 분말을 뒤집어쓴 채, 주영은 호스를 겨우 다시 붙잡아 불쪽으로 가져다 댔다. 그런데 몇 초 지나지 않아 분사가 멈추고 말았다. 사용하기 전에 소화기를 충분히 흔들어 줘야 한다는 것을 잊었던 것이다. 소화기는 수년째 현관 구석에 방치되어 있었다.
주영은 곧바로 119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잔디를 애타게 불렀다. 잔디는 냉장고 뒤, 자신만의 아지트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불은 점점 커져서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삼켜 가고 있었고, 연기는 검고 독해졌다. 주영은 다시 한 번 잔디를 소리쳐 불렀다. 빨래건조대에 걸려 있던 수건을 물에 적셔 코를 막은 뒤, 한 손으로 냉장고를 있는 힘껏 끌어당겨 보려고 했다. 미동도 없었다.
소방차 사이렌이 울리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주영은 생각을 고쳤다. 애타게 부를수록 잔디는 오히려 겁에 질려 몸을 웅크릴 것이 분명했다. 주영은 계단을 뛰어 내려가면서 집집마다 문을 두드려 불이 났다고 소리쳤다. 곧 도착한 소방대원들에게 주영은 거듭 부탁했다.
고양이가 있어요. 냉장고 뒤에 고양이 좀 구해 주세요.
경찰서에서, 소방서에서, 구청과 주민센터에서 나온 사람들이 주영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질문들을 퍼부었다. 대피한 이웃들은 옆 동 건물이 만들어내는 그늘 밑에 모여 우리 집을 올려다보며 서성거리고 있었다. 누군가 땡볕 아래 주저앉아 있던 주영을 그늘 밑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주영은 비로소 내게 전화를 걸었다.
여기까지가 주영이 홀로 겪은 이야기.
주영의 전화를 받고 나서 나는 현장에서 빠져나와 택시를 탔다. 택시 안에서 양가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는데, 뭐라고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동네 골목으로 접어들자 소방차들이 줄지어 서 있는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택시로 집 가까이 진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차에서 내려 언덕을 뛰어 올라갔다. 구겨진 종이처럼 바닥에 놓여 있던 주영. 소화기 분말 때문이었지만 머리카락이 전부 새어버린 것 같았다. 그다음엔 주영을 끌어안고 있는 내 모습. 슬라이드 필름이 넘어가듯 기억은 딸깍, 딸깍 하고 끊어진다. 이후로는 순서조차 마구 뒤섞여 있다.
주민센터에서 나온 누군가가 연락처를 준 것. 며칠 뒤 경찰서에 출석할 것을 요청받은 것. 어느 순간 처형이 와 있었고······ 보험회사와의 통화. 처형이 건네는 청심환을 마셨던 것. 소방 조사관이 언제쯤 결과가 나온다고 말해 준 것. 건물 하수구가 막혀 4층부터 흘러내린 소방수가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했고, 그래서 사람을 불러 하수구를 뚫었던 것. 처형이 건네는 이온 음료를 마셨던 것. 어머니와 통화. 엉망이 된 계단을 청소하기 위해 사람을 불렀던 것. 장인 장모님이 오셨고······ 땀으로 완전히 젖어 있던 처형의 푸른색 셔츠.
그리고 소방관 한 분이 다가와 잔디를 구하지 못했다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잔디는 불이 미처 삼키지 못한 침실 구석에서 발견되었으며 질식사한 것 같다고 했다.
3층 계단참에서 처형과 내가 먼저 잔디를 만났다. 주영은 차마 보지 못할 것 같다고 한 층 아래 머물러 있었다. 나는 잔디의 몸을 만져 보았다. 화마의 열기 때문일까, 따뜻했다. 하지만 한없이 보드랍던 털이 뻣뻣했다.
아. 살아 있지 않구나.
그건 너무나도 분명한 실감이어서 부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때 처형이 계단 아래쪽을 향해 말했다.
주영아, 잔디 꼭 잠든 것 같아. 그래도 인사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언니의 말에 주영은 멍한 얼굴을 하고 계단을 올라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영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주영은 상자 앞에 쪼그려 앉아, 손을 내밀어 잔디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폭발하듯이 울었다. 주영이 그렇게 우는 건 처음 보았다. 곧 처형도 울음이 터졌고, 자매는 서로 껴안고 한참을 울었다. 나는 그런 두 사람 뒤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 순간부터 뭔가 어긋나 버린 게 아닐까.
주영과 껴안고 울어야 했던 사람은 처형이 아니라 나였다.
*
잔디는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주영의 부모님은 잔디를 정원 한구석에, 라일락 나무 밑에다 묻어 주겠다고 했다. 잔디의 장례에 관해 차분히,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테지만 너도나도 경황이 없었다. 당시에는 모두가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였다.
주영에게는 휴대폰과 휴대폰 케이스에 넣어 둔 카드 한 장이 달랑 있었고, 나 역시 휴대폰과 지갑만 가지고 있었다. 주민센터에서 임시 숙소를 제공해 주었다. 홍대 한복판에 있는 호텔이었다.
그곳에 체크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으로 돌아갔던 처형이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다시 나타났다. 캐리어 안에는 기본적인 세면도구와 옷가지, 양말, 수건, 주영이 신을 운동화(주영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등이 들어 있었다.
저녁에는 안경점에 들러 주영의 안경을 새로 맞췄다. 마트에 가서 몇 가지 필요한 물건들을 샀고, 거기서 파는 잔치국수를 사 먹었다. 홍대 거리를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쳐 걷는 동안, 아무 예고 없이 낯선 세계에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 밤 침대에서 주영은 한참 동안 울었다.
내가 충분히 애쓰지 않은 것 같아. 뭔가 더 해볼 수 있었을 것 같아. 주영은 계속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아니라고,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주영을 달랬다. 그리고 주영을 꼭 안아 주었는데, 주영의 울음이 그쳤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잠이 들어버렸다.
무척 피곤했다.
형님과 잘 아는 인테리어 업체 사장님이 철거 및 리모델링 전체를 맡기로 했다. 우리는 며칠 후 숙소를 나와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묵을 오피스텔을 구했다.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건질 만한 물건이 없는지 살펴보기 위해 나 홀로 화재 현장으로 돌아갔다.
냄새가 지독했다. 마스크를 쓴 채 그을음으로 뒤덮인 물건들을 뒤졌다. 사용하지도 처분하지도 않은 채 벽장 안에 처박아 둔 쓸모없는 물건들만 멀쩡하게 발견되었다. 추억이라며 버리지 않았던 군복과 군번줄, 20년 된 거대한 노트북과 고장 난 필름카메라, 정체 모를 각종 케이블까지.
쓸 만한 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머지않아 양가로부터 반찬과 소소한 집기들이 담긴 택배가 도착했고, 소식을 들은 지인들이 그릇 세트나 주방세제 따위의 생활에 필요한 이런저런 물건들을 보내 주었다.
나는 휴직계를 냈고,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주영은 노트북을 샀다. 작업을 하던 파일들을 클라우드에 저장해 두어 다행이라고 주영은 말했다. 가능하면 주영도 조금 쉬면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를 바랐지만 주영은 공사를 우리가 하는 것도 아닌데 놀아서 무엇 하겠냐고 했다. 그래서 나도 평일에 현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자 빌트인 테이블 위에 꽃이 한아름 꽂힌 커다란 꽃병이 놓여 있었다.
웬 거야?
내가 물었더니 주영이 낮에 세진 언니를 만나고 왔다고 말했다. 그녀가 준 선물이라고. 당장 밥 먹을 젓가락조차 없는 사람들한테 그렇게나 무용한 것을 선물하다니,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주영의 기분이 좋아 보였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진 언니는 주영이 무척 아끼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결혼하기 전 세진 언니의 남편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주영이 한동안 그 집에 가서 함께 지내기까지 했다고 들었다. 막상 꽃이 놓여 있으니 전부 새하얀 빌트인 가구로 둘러싸인 원룸 안이 덜 삭막해 보이는 것도 같았다.
생활은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오피스텔 지하에는 세탁실과 헬스장이 있었고, 주영이 작업을 하기 적당한 북카페도 있었다. 항상 빌라 4층까지 계단으로 오르내리곤 했기 때문에 우리는 엘리베이터가 얼마나 편리한 문물인지 새삼스럽게 감탄했고, 알 수 없는 해방감이 느껴진다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인가 싶었다.
엔돌핀은 고통을 덜기 위해 작용하는 호르몬이다. 우리는 호르몬의 작용에 저항하지 않고 몸을 내맡겼다. 한밤에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질주했으며 예능 프로를 보며 맥주를 마셨고, 쉽게 깔깔댔다. 우리는 오히려 전에 없이 많이 웃었다.
그런데 어느 저녁, 밥을 먹다 말고 주영이 무심하게 말했다.
피클을 못 먹었네.
피클?
응, 오이 피클.
그러고 보니 불이 나기 얼마 전, 주영의 부모님이 텃밭에서 수확한 오이를 잔뜩 보내 주셨다. 그걸 어떻게 다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주영은 피클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유리로 된 밀폐 용기와 커다란 식초 두 통, 향을 더할 피클링 스파이스까지 샀다.
그날 내가 출근한 동안 주영은 반나절 걸려 피클을 여러 병 만들었다. 오이를 썰고, 유리병을 소독하고, 촛물을 끓이고······. 퇴근해 돌아와 보니 아일랜드 식탁 위에 거꾸로 뒤집어 세워 둔 피클 병이 다섯 개쯤 되었던가. 그래, 그랬지. 다음날인 토요일, 내가 현장에 나갔을 때 주영은 그것들을 냉장고 안으로 옮겼고······ 다시 보지 못했다.
주영이 갑자기 피클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러게, 정말이네, 하고 대꾸하긴 했지만, 사고 이후 주영은 예전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클은커녕 잔디의 이름조차 입에 올리지 않았다. 마치 잔디가 처음부터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전혀 울지도 않았다.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내가 잠든 사이에 울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주영이 잔디의 이름을 입 밖에 내지 않는 것이 나는 이해가 되었다. 나 역시 주영에게 금동이 얘기를 한 적 없었다. 하고 싶지 않았다.
주영은 마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새로운 시리즈의 번역 작업에 착수했고, 지하에 있는 카페에서 온종일 일하다가 내가 집으로 돌아올 즈음 함께 퇴근했다.
*
여름이 끝나 갈 무렵, 공사가 거의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틈틈이 집으로 가서 진척 상황을 살폈지만 주영은 단 한 번도 따라가지 않았다. 벽지를 무슨 색으로 할지, 바닥은 어떻게 할지 아무 의견도 내지 않았고 그저 알아서 하라고만 했다. 그래서 새집은 무난한 회백색 벽지, 무난한 나무 무늬의 강화마루로 덮였다.
결혼할 때 신혼집으로 서울 외곽에 있는 오래된 빌라를 한 채 샀다. 부모님이 돈을 보태 주셨고 일부 대출도 받았다. 빌라 가격은 구입했던 당시보다 떨어졌지만 괜찮았다. 딱히 이사할 생각이 없었을뿐더러 주영이 그 집에 무척 만족했기 때문이었다. 집주인 눈치 보면서 계약 기간이 끝날 때마다 이사하는 게 너무 귀찮다고 했다.
주영은 방 두 칸짜리 낡은 빌라를 시간을 들이고 취향을 담아 아름답게 꾸몄다.
그건 ‘우리 집’이었다.
화재를 겪고 나니 누군가의 집에 세 들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감사했다. 화재보험 덕분에 그래도 공사비 일부를 보상받을 수 있었다. 집을 고친 후에 그곳을 세놓고 우리도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게 맞지 않나 생각했다. 모든 게 물거품이 된 그 공간을 주영이 어떻게 느낄지, 무엇보다 잔디와 함께 살던 공간으로 돌아가는 게 주영에게 괜찮을지, 그게 나의 걱정이었다.
하지만 깡통 전세 사건이 뉴스를 도배하는 중이었고 대출이자는 어마어마하게 뛰었다. 이사를 하자는 나의 제안에 주영은 고개를 젓고는, 일단 리모델링한 집에 한번 가본 후 결정하겠다고 했다.
사고 후 처음으로 주영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집은 전혀 다른 곳이 되어 있었다. 미닫이문으로 가로막혀 있던 한쪽 방을 완전히 텄고, 창고처럼 쓰던 조그만 베란다까지 사라져 집이 훨씬 밝고 넓어 보였다. 낡은 섀시도 모두 삼중창으로 바뀌어 아늑하고 조용했다.
잔디의 흔적은 물론 우리가 살던 흔적까지 하나도 없었다.
주영은 그래서인지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새로 이사를 한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냐고.
다시 시작하자고.
얼마 뒤 나는 드디어 회사를 그만두었다. 퇴직금으로 대출금 일부를 갚고, 각종 가전제품과 필요한 가구들을 샀다. 현장 일은 힘들기는 했지만 꽤 즐거웠다. 주영은 주영대로 집을 다시 아늑하게 꾸미는 데 심취해 있었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일요일, 진공청소기를 돌리던 주영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문 뒤에 잔디의 털이 없다고 했다.
잔디는 닫힌 문을 참지 못했다. 문이 다시 열릴 때까지 울어대는 통에 주영은 늘 작업실 문을 열어 둔 채 도어 홀더로 고정해 두었다. 주말에 대청소를 할 때면 홀더를 치우고 문 뒤에 잔뜩 쌓인 잔디의 털 뭉치를 청소기로 빨아들이곤 했다. 그런데 털이 없었다.
주영은 그때야 비로소 실감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고삐가 풀린 것처럼 주영은 자주 울었다.
검은색 옷을 입을 때, 동네에서 다른 길고양이와 마주칠 때, 마트 애완동물 코너에서. 그런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라면을 먹다가도 갑자기 울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노래를 듣다가 또 갑자기 울었다. 무엇이 주영에게 잔디의 부재를 상기시킨 것인지 알 수 없었고,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도 알 수 없어 막막했다.
주영은 가끔 울다 말고 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곤 했다.
너는 왜 울지 않느냐는 듯이. 슬프기는 하냐는 듯이.
주영의 눈빛은 내가 잔디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 같았다.
그날 내가 잔디의 존재를 까맣게 잊었다는 사실은 나만 아는 비밀이었다. 왜냐하면 내게는 주영이 살아 있다는 사실, 오직 그것만이 중요했으니까. 그게 주영에 대한 나의 사랑이었다.
나는 잔디보다 주영을 더 사랑했던 것이지 잔디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주영이 언니랑 껴안고 울 때 나도 뒤에서 울었는데 주영은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날 밤 호텔 방의 어둠 속에서 주영을 껴안고 나도 눈물을 흘렸는데 주영은 모르는 것 같았다.
*
주영과 나는 같은 직장에서 만났다. 나는 영상 번역 회사의 영업 및 관리 부서에서 일했고, 주영은 8년 전 자막 번역과 제작을 위한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첫눈에 반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나와 모든 게 정반대인 주영이 신기했고 점차 끌렸다. 주영은 잘 웃고, 또 잘 우는 사람. 큰 소리로 깔깔 웃었고 하고 싶은 말을 참지 않았다. 싫은 걸 견디지 않았다.
주영 곁에 있으면 나도 조금은 솔직하고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는 일 년 정도 연애하고 결혼했다.
몇 년 전부터 회사는 자막 제작 직원들을 하나둘씩 내보내기 시작했고 새로 뽑지 않았다. 4대 보험이며 퇴직금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프리랜서 외주 번역자들에게 모든 작업을 맡기기 시작했다.
주영은 계약 종료 후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주영은 자신이 나보다 일하는 시간이 적으므로 살림을 도맡아 하겠노라고 했다. 나는 주영이 잘 해낼 거라고 생각했다. 나와는 달리 야무지고 계획적이었으니까.
한동안은 괜찮았다.
퇴근해서 돌아오면 계단에서부터 쌀 냄새가 풍겼다. 간소하지만 정갈하게 차려진 저녁 밥상 앞에서 맥주잔을 부딪치며 서로의 일과에 대해 대화를 나누곤 했다. 결혼생활이 서서히 질서를 찾아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안정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이미 한참 전부터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 이직이 아니라 아예 퇴사를 하고 다른 커리어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두려웠고, 주영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못했다.
억지로 다니는 회사 생활이 즐거울 리 없었다. 직함은 과장이지만 더 올라갈 자리가 없었다. 호봉이 늘어날수록 사장님이 자꾸 술을 마시자고 불러내 신세타령을 했다.
주영은 주영대로 힘들어했다. 집은 엄청난 언덕배기에 있었고, 주변에 편의시설이랄 만한 것이 별로 없어서 편의점에 한번 가려 해도 언덕을 한참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했다. 한겨울에도 땀이 날 정도였다. 주영은 자신이 라푼젤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고 따로 작업실을 구하자니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주영은 조금씩 무기력해졌다. 퇴근하고 돌아와도 음식 냄새가 나지 않았고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다. 서로에게 짜증이 늘어 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잔디가 우리에게 온 것이다.
잔디의 고향은 양평.
주영의 부모님은 이른 은퇴 후 전원주택을 짓고 커다란 정원을 꾸미며 사는 것이 꿈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살고 계셨다. 이따금 쥐들이 출몰하는 탓에 끈끈이 덫을 마당 한구석에 놓아두었는데, 어느 날 쥐가 아니라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거기 붙어 있었다. 부모님은 녀석을 조심조심 쥐덫에서 떼어내어 깨끗이 씻겼다. 손바닥만 한 몸으로 꼼짝도 못 하면서 하악질을 어찌나 심하게 하는지, 쉽지 않았다.
시루떡처럼 몸 전체가 흰데 등 한가운데 콩처럼 검은 점이 하나 박혀 있어 시루가 되었다.
콩시루.
하지만 시루는 집고양이가 되지 못했다. 인간에게 좀처럼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고, 손을 내밀면 냥펀치를 날렸지만 일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는 배를 내놓고 뒹굴거리기도 했다. 시루는 자유롭게 동네를 돌아다니며 자유연애를 일삼고 부모님 집에 와서 출산을 했다.
임신과 출산이 끝없이 반복되면서, 시루의 건강이 나빠지는 게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몸이 앙상했고 털이 푸석푸석했다. 부모님은 중성화 수술을 하는 것이 시루를 위해 좋겠다고 판단했다.
잔디는 시루가 중절 수술을 하기 전 마지막으로 낳은 자식 중 하나였다. 엄마를 닮아 흰색 털이 많았지만, 등에 말줄임표처럼 생긴 오종종한 점이 있었다. ‘잔디’는 주영의 부모님이 붙인 이름이었다.
3년 전 어느 날, 주영이 친정에 갔다가 나와 상의도 없이 덜컥 잔디를 데려왔다. 상의를 하면 내가 반대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냥 데려왔다고 주영은 말했고, 우리는 조금 다퉜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동물을 키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고양이라는 존재와 함께 살아 보니 개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주영이 생기를 찾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나도 기뻤다. 잔디 덕분에 자주 웃었다.
잔디가 아니었다면 그때 우리는 서로에게 지쳐 헤어지고 말았을지도 모를 일. 그런데 지금은······ 잔디가 없었다. 나는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눈물의 시대가 가고, 잠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
임시 숙소에서조차 열심히 일했던 주영은 마감 하나를 마친 후 새로 일을 받지 않았다. 고된 현장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내가 저녁밥을 차려 놓으면, 주영은 몇 술 뜨고는 또다시 침대로 가서 누웠다. 개수대에는 설거지거리가 쌓여 있었고, 빨래건조대에 같은 빨래가 일주일 동안 그대로 걸려 있었다.
그만 좀 하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았다. 그러면서도 내가 한다는 사랑이 겨우 이 정도인가 싶어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
어느 날 처형이 주영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내게 연락했다.
요즘 주영이가 메시지도 하루가 지나서야 확인할 때가 많고, 통화를 해도 뭔가가 다 빠져나가 버린 사람처럼 흐릿한 느낌이던데, 정말 괜찮은 게 맞냐고. 나는 처형에게 주영의 상태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병원을 좀 가봤으면 좋겠는데, 그런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고.
주말에 처형이 집으로 찾아왔다.
주영은 며칠째 씻지 않아 꾀죄죄한 몰골로 언니를 맞았다. 나는 처형에게 차를 한 잔 내주고, 주영의 작업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처형은 주영을 위로하지 않았다. 오히려 차가울 정도로 단호하게 말했다.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솔직히, 미성숙해 보여.
너한테 잔디가 소중했던 거 알아. 근데 우리 다 소중한 것들과 헤어지면서 살잖아. 그게 당연한 거잖아. 슬퍼도 내가 이만큼 슬프다, 슬퍼서 못 살겠다, 그렇게 티 내지 않아. 그런 생각 해도 숨기고 삼키고 감당하면서 사는 거지.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거지.
잔디의 죽음에 네가 책임이 있어? 그건 사고였잖아. 네가 네 생활 다 망가뜨리고 못 자고 못 먹는 게 무엇을 위해서야? 그게 세상을 바꾸니? 하물며 너 자신에게는 도움이 되니?
네 슬픔이 하찮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넌 나아지려고 노력을 안 하잖아. 피해만 주잖아. 제부는 어떨 것 같아? 네 모습 보면서 기성 씨는 안 힘들 거 같아? 왜 노력을 안 해? 너 자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해야지. 그게 성숙한 거지.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주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근데 슬퍼하는 데도 정해진 속도나 분량이 있는 거야?
주영이 말했다.
나도 노력해.
나는 충분히 슬퍼하고 싶어.
처형이 돌아간 뒤 주영이 내게 말했다. 언니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안다고, 언니의 사랑을 잘 안다고. 나도 알았다. 언덕 아래 편의점까지, 약국까지 몇 번이고 뛰어 오르내리느라 흠뻑 젖어 있던 처형의 파란색 셔츠를, 기억했다.
그날 이후로 주영은 조금씩 나아지는 듯했다.
밥 먹는 양이 늘었고, 우리는 저녁마다 자주 함께 산책을 나갔다. 옆 빌라 주차장에 사는 고양이 가족과 자주 마주쳤다. 엄마 고양이와 세 마리 새끼 고양이. 그중 잔디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새끼 한 마리가 있었다.
쟤는 잔디랑 진짜 닮았네.
주영이 먼저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주영이 제법 쾌활해 보여 나는 안도했다.
며칠 뒤 조금 늦은 퇴근길이었다.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가 주차해 둔 차 밑을 들여다보았다. 잔디와 비슷하게 생긴 그 녀석이 차 밑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비에 젖어 꼴이 말이 아니었고, 어째서인지 엄마와 형제들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가만히 손을 내밀자 녀석은 울면서 다가와 내 손에다 머리를 비볐다.
그 순간, 나는 갑자기 이 녀석을 데려가면 주영이가 다시 웃을지도 모른다는, 이 녀석이 주영의 마음속에 뻥 뚫린 잔디 모양의 구멍을 채워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희망에 사로잡혔다.
나는 녀석을 들어올려 품에 안았다.
언덕을 마저 오르고, 계단을 오르고, 현관문을 열었다.
왔어, 하며 침실에서 나오던 주영의 얼굴이, 내 품에 있는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한순간에 굳어버렸다. 주영이 식탁 의자에 걸터앉더니, 나를 바라보지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 때문에 많이······ 불행해?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화장실 문을 열고 고양이를 내려놓은 뒤 문을 닫았다. 그리고 주영에게 되물었다.
너는, 너는 어떤데.
주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행복이나 불행을 말하지 않고······ 이 시간을 건너갈 수는 없을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나는 대답했다.
근데 언제까지······ 언제까지일까?
주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러게, 그걸 모르겠네, 하고 말했다.
그러고는 산책을 하고 오겠다며 휴대폰과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서더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
결혼하고 신혼집에서 맞은 첫 겨울, 작업실로 쓰던 작은 방에 결로가 생겼다. 결로를 방지한다며 ‘방한 벽지’라는 것을 사다가 주영과 둘이서 으쌰으쌰 붙였다. 그게 일반 벽지보다 불에 취약하다는 것을 몰랐다.
우리의 노력이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것. 최선이라 믿었던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밝혀지기도 한다는 것. 사랑인 줄 알았던 것이 실은 그런 모양을 한, 날것 같고 수치스러운 감정들이 한데 뒤엉킨 끈적한 덩어리일 뿐이라는 것.
나는 원치 않는 것들을 깨달아 가고 있었다.
평화롭지도, 권태롭지도 않았다.
그저 무력했다.
주영은 당분간 세진 언니네 집에 있을 거라고 문자를 보내더니, 그 뒤로는 연락하지 않았다. 이 주일쯤 지났을 때,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자신이 세진 언니이며, 주영은 잘 지내고 있다는 메시지.
나는 하루가 지나서야 답장을 했다. 물어 보고 싶은 것을 묻기가 두려웠기 때문에.
주영이 언제까지 거기 있겠다는 것인지. 나와 헤어지기를 원하는 것인지.
그건 제가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에요, 하고 답이 돌아왔다. 그러고는 자신이 주영과 이야기를 잘 해볼 테니 조만간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나눠 보라고 했다.
과연 며칠 후 주영에게서 연락이 왔다. 일요일에 지하철역 앞에서 나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수원행 열차를 탔다. 하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주영이 아니라 세진 씨였다. 나는 그녀를 따라 근처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이 사람이 세진 언니구나.
화장기 없는 얼굴에 짧게 자른 단발머리, 눈매와 입가에 부드러운 주름이 있었다. 세진 씨는 다시 한 번 주영의 안부를 전하고는, 그날 울고 있는 주영에게 아랫집 아주머니가 이런 위로를 건넸다고 말했다: 고양이 한 마리 새로 사면 되지.
주영의 친구들은 주영에게 이런 말들을 했다: 빨리 포기하고 나와서 다행이야. 내가 너라면 정신 못 차릴 것 같은데(너는 괜찮네).
······왜 저한테는 그런 얘길 안 했을까요?
그렇게 묻는 동시에 나는 답을 알았다. 내가 들은 이야기들도 비슷했으니까.
불나면 부자 된다더라. 액땜했다고 생각해.
얼른 일상을 회복해야지. 아직 젊은데 걱정할 것 하나도 없어.
내가 그 말들을 주영에게 전하지 않았듯, 같은 이유로 주영도 내게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영이도 곧 알게 될 거예요. 쉬운 말들에 난파당하지 않는 방법을······ 그리고 극복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몸속 어딘가가 아팠다.
금동이의 자리가.
형제도 없고, 친구도 잘 사귀지 못하던 내게 금동이는 둘도 없는 친구였다.
우리는 함께 동네를 휘젓고 돌아다녔고, 맛있는 건 무엇이든지 나눠 먹었다.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금동이한테 했다. 금동이가 배를 내놓고 팔다리를 뻗은 채 내 앞에 무방비하게 잠들어 있는 걸 볼 때면, 웃음이 나는 동시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그 감정이 사랑이라는 걸 배웠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금동이가 없었다.
엄마가 말했다. 아빠가 녀석을 개장수에게 팔아버렸다고. 나는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울었지만, 곧 괜찮아졌다. 가끔 슬펐지만, 대부분 잊고 지냈다.
그러다 열두 살 때, 그제야 비로소 ‘개장수한테 개를 팔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친구가 내게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금동이는 개고기가 된 거라고. 그런 거라고.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방물장수 트럭이 방물을 팔고 아이스크림 트럭이 아이스크림을 팔듯, 개장수도 개를 사다가 다른 사람에게 파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니까 다른 누군가가 금동이의 새 주인이 되었으며, 금동이는 행복하게 살고 있을 거라 내 마음 편한 대로 생각했던 것이다.
직접 본 적은 없어도 복날이면 동네에 개를 잡아먹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고, 길을 걷다가 털이 타들어가는 누린내를 맡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금동이의 부재를 그 장면들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친구가 그 말을 뱉은 순간, 몸속 장기 하나가 끊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 통증을 느껴 본 것은 처음이었다.
이후로 시도 때도 없이 도살의 풍경이 쳐들어왔다. 생각하지 않으려 애쓸수록 더 생각났다. 그때마다 정확히 위치를 알 수 없는 몸속 어딘가가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아팠다.
인간들은 자기 심장이 뛰는 것도 모른 채로 산다. 팔이 어떻게 붙어 있는지 다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살다가, 문득 신체 어딘가가 아프면 비로소 깨닫는다. 내게 그것이 있었다는 걸.
금동이를 잊고 싶지 않았지만, 그 고통을 통과하지 않고 금동이를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고들 말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어떤 슬픔은 절대로 나눌 수 없으니까.
나는 주영이 통과하고 있는 시간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지만, 주영을 위해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는 몰랐다. 나는 세진 씨에게 다시 물었다.
······저도 알게 될까요? 슬퍼하는 사람 옆에 있어 주는 방법을요.
그러자 세진 씨가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그걸 주영이한테 배웠는걸요.
주영이가 그때 저한테 그랬어요. 제 남편이 떠났을 때······ 언니, 우리 집에 와 있어. 같이 있자고요. 저는 가지 못했죠. 그랬더니 주영이가 온 거예요. 제가 먹든 먹지 않든 밥을 차려 주고, 같이 드라마도 보고요. 별말 없이 산책도 하고.
세진 씨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렇다고 그만 슬퍼지지는 않았어요. 똑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어요. 근데 주영이 덕분에 저도 모르게 방향을 튼 거예요. 뭐랄까······ 햇볕 드는 쪽으로요.
나는 세진 씨에게 투정 부리듯 하소연했다. 나도 노력했다고. 주영을 위로하고, 밥을 차려 주고,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애썼다고. 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고.
전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진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알고 있는 것 같은데요.
네? 뭘요?
모른다는 걸요.
세진 씨가 씩 웃더니 말했다.
우린 정말 모르잖아요.
*
주영은 지하철역 입구에 놓여 있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스스로를 감싸 안듯 양손을 겨드랑이에 넣은 채로 생각에 잠긴 것처럼 바닥의 어느 한 곳을 골똘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주영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기다렸지, 내 말에 주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는 행궁을 향해 걸었다. 주영이 예전에 세진 언니를 보러 수원에 다녀온 후, 행궁과 그 주변이 아주 좋더라며 같이 가자고 얘기했는데 여태 와보지 못했다.
멀리 동그란 열기구가 떠오르는 게 보였다.
저런 게 다 있네.
한참 줄 서서 기다려야 된대, 주영이 말했다.
타볼래?
내 말에 주영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대신 우리는 행궁 입장권을 두 장 끊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이것 좀 봐, 하고 주영이 한쪽을 가리켰다. 입구 근처에 울타리로 둘러싸인 기묘하게 생긴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몸통 안은 뻥 뚫려 있고 죽은 나무처럼 보이는데, 몸통 중앙에서부터 커다란 가지 하나가 크게 뻗어 나간 채 잎이 돋아 있었다. 나무 옆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그것이 600년 된 느티나무이며, 불의의 화재를 겪고 살아남아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우리는 그 나무를 한참 동안 올려다보았다. 문득 주영이 물었다.
고양이는 잘 있어?
응, 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뭐야?
이름이······ 아직 없어.
주영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왜?
부를 일이 없었어.
주영이 의심의 눈길로 나를 보았다.
안 불러도 만날 옆에 와서 껌딱지처럼 붙어 있어. 말도 엄청 많고, 되게 웃겨.
그래? 하고 주영이 웃었다. 주영의 웃는 얼굴을 아주 오랜만에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나무는 무려 600년을 살았는데, 우린 겨우 6년을 함께 살았을 뿐. 나무의 마음으로 보면 행복이나 불행도, 기다림도 그저 한순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슬픔은 나눌 수 없다고 하더라도 각자의 몫을 껴안고 함께 있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게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주영에게 하고 싶었던 건 그 얘기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나란히 걷기만 했다.
행궁을 한 바퀴 돈 후 성곽길을 따라 계속 걸었더니 커다란 정자가 나왔다.
거기 자리를 잡고 앉자 연꽃으로 가득한 작은 연못이 내려다보였다. 사람들이 다양한 모양으로 연못가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루프탑 옥상을 수놓은 알전구들. 멀리 바람에 몸을 흔드는 수양버들. 주영은 그런 풍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내게 말했다.
나무는 참 좋네.
응?
이렇게 보고 있으면 마음이 시원해져.
그러고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초록이 어때? 그 녀석 이름.
초록, 좋네, 나는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눈이 초록색이야. 엄청 초록이야.
내 말에 주영이 푸르게 우거진 잎처럼 시원하게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너무 늦지 않을게.
추천 콘텐츠
욕조 안의 볼드모트 권혜영 내가 아홉 살이고 동생이 여섯 살이던 무렵, 우리 가족은 매일 밤 차를 타고 항아리 바위가 있는 계곡에 갔다. 집에서 차로 20분은 달려야 나오는 곳이었다. 산마루의 고갯길을 여러 번 넘으며 비포장 도로 옆으로 끊어질 듯 이어지는 실개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계곡 주변 바위의 형질이 급변하는 지점이 나타났다. 세차게 흐르는 물 사이로 솟은 기암괴석들에는 하나같이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걸 지리학 전문 용어로는 포트홀이라고 하지만 이 동네 사람들은 항아리의 입구처럼 홈이 패었다고 해서 항아리 바위라고 불렀다. 바위 가운데에 물이 고인 구멍에는 올챙이나 송사리가 서식했고, 물이 마른 구멍에는 이끼 낀 자갈돌들이 쌓여 있었다. 우리 집의 볼드모트는 항아리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았다. 볼드모트와 벨라트릭스는 나와 동생이 어렸을 때 해리포터 시리즈를 열심히 챙겨보다가 붙이게 된 아빠와 엄마의 별명이었다. 물론 우리끼리 뒤에서 남몰래 부르는 호칭이긴 했지만. 어쨌든 볼드모트는 민물고기를 잡는 행위로 돈을 번 것은 아니었다. 볼드모트는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농사를 짓는 영농후계자였다. 그런데 농사일엔 소홀하고 밤마다 물고기를 잡는 데만 혈안이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아도 단순한 취미생활이라기에는 어딘가 병적으로 집착한 구석이 있었다. 한밤중에. 집 앞 냇가도 아닌. 자동차로 20분을 달려야 나오는 산골짜기를 밤마다 출근했던 것이다. 볼드모트는 그렇게 매일 거센 물살을 헤치고 수심이 허리까지 올라오는 곳으로 향했다. 볼드모트가 양동이 한가득 물고기를 잡아오는 동안, 벨라트릭스와 나와 동생은 자동차 문을 잠그고 계곡 입구에서 기다렸다. 벨라트릭스는 앞좌석에 앉아 ‘Now’와 ‘Max’ 같은 빌보드 최신 팝송 믹스 테이프를 듣곤 했다. 어린 동생은 내 옆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나는 가져온 책을 읽고 싶어서 조명을 켜달라고 졸랐지만 벨라트릭스는 허락해 주지 않았다. 인적이 드문 깜깜한 도로 위에서 불을 켜면 아이들이 위험에 노출될까 걱정되어 그러는 건 아니었고, 자동차의 배터리가 방전될까 봐 그러는 거였다. 나는 할일 없이 벨라트릭스가 틀어 놓은 2000년대 초반 히트 팝송을 들으면서 시커먼 계곡 아래를 멍하니 쳐다봤다. 그러다 가끔씩 차들이 고갯길 사이에서 어둠을 뚫고 나타날 때마다 묘한 긴장과 흥분을 했다. 테이프가 A면을 훑은 다음 까드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B면으로 뒤집힐 즈음이면 볼드모트가 돌아왔다. 볼드모트가 손전등을 들고 물가 멀리서부터 걸어오면 희미했던 불빛이 점점 커지다가 계곡 입구의 갓길을 환히 밝혔다. 그때마다 눈뽕을 당한 나는 팔을 들고 이마에 차양막을 쳤다. 볼드모트는 양동이 속 자신이 잡아온 물고기들을 한 마리씩 비추며 자랑했다. 동자개, 꺽지, 쏘가리, 모래무지, 메기. 기억력이 별로인 내가 지금껏 그때 잡혔던 어종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기억하는 건 볼드모트가 하도 우쭐거리며 말했기 때문에 세뇌당한 탓이 크다.
- 관리자
- 2024-09-01
행복한 소설가 임현 1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소설을 쓰지 못하는 소설가의 이야기가 제일 많다는 것이었다.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경우까지 더하면 거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근대 문학의 출발이 무엇이냐? 자기 고백 아니냐? 그러므로 그것은 핍진성과 진정성의 문제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수많은 소설가들이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있다는 개연성 때문이라고도 했다. 생각해 보면, 살면서 소설이 잘 써진다고 말하는 소설가를 나는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었다. 있다면 분명 주변에 부러움을 살 만한 재능이었는데도 아무도 그런 자랑을 하지 않았다. 대신에 소설이 써지지 않을 만한 이유는 도처에 널려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행복한 소설가는 대개가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불행한 소설가는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할 수밖에 없다, 라고 말한 인물은 러시아의 대문호가 아니라 어느 늦은 밤 만취한 대한민국 출신의 선배 소설가였다. 결과적으로 무언가를 계속 쓰려 한다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그 괴로움에 대해 토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더구나 아이러니하게도 아무것도 써지지 않는다고 징징대는 동안 기어코 완성하게 되는 것도 다름 아닌 소설이라는 점이었다. 종로구 세종로 소재지의 조도가 낮은 호프집이었고 지하실에서나 날 법한 냄새가 유독 심했던 곳으로 기억한다. 안주 메뉴로 한치를 굽고 쥐포도 굽고 제육볶음과 어묵탕 등을 조리하는데도 좀처럼 그 눅눅하고 고린 냄새만큼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가, 무얼 씹고 삼켜도 다 비슷비슷한 맛이 나는 것도 같았다. 일간지에서 주관하는 문학상 뒤풀이 자리가 줄곧 이어지던 것이었으나, 정작 축하를 받아야 할 사람은 이미 가고 없었다. 마지막 지하철 운행 시간은 한참 지났고 오히려 첫차를 기다리는 편이 더 가까운 시각이었다. 그런 탓에 주로 경기도에 거주하는 사람들만 남았는데, 무엇보다 함께 자리한 여남은 사람들 중 그 이야기에 호응해 주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원고 마감할 시간에 이러고 있으니까 못 쓰는 거잖아요. 근데요, 형. 많이 취했어요? 그거 먹는 거 아니에요.” 주문한 먹태 대신 자꾸 나무젓가락을 씹으려는 선배를 말리며, 나는 나름대로 이 불쾌한 냄새의 발원지를 추적해 보기도 했었다. 고정식으로 설치된 의자와 테이블은 혼자 앉기에는 넉넉하고, 둘이 앉기에는 비좁았는데 어떻게 앉아도 허리가 불편했다. 닦는다고 말끔하게 닦이진 않을 것 같은 지용성 얼룩이 벽마다 눈에 띄었고, 주방의 내부 구조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상태가 어떨지는 대강이나마 예상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런 곳마다 오래 밴 냄새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환풍기 탓인가. 주기적으로 세척을 해주지 않으면 화재의 위험이 크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불이 나도 벌써 여러 번은 났을 만큼 먼지투성이였다. 그러니까 당시에는 뭐랄까, 그런 뜬생각이라도 하지 않으면 술만 마시면 진지해지는 선배의 주정을 가만 듣고 있기가
- 관리자
- 2024-09-01
등에 쓴 글자 천운영 그녀는 발가락 스트레칭을 시작으로 하루를 연다. 발바닥 오목한 아치 부분에 저릿한 느낌이 올 때까지 발가락을 꽉 오므렸다가 활짝 펴기. 몸의 좋은 기운은 바로 그 오목한 곳에 모였다가 나간다고 그녀는 믿고 있다. 스트레칭으로 잠기운을 지우고 나면 맞추어 놓은 알람이 울린다. 오전 일곱 시. 그녀를 깨우기 위해 알람이 있는 게 아니라, 알람을 끄기 위해 그녀가 일어나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두유 만들기. 전날 불려 놓은 검은콩에 호두, 아몬드, 단백질 분말, 오트 우유와 물 한 컵을 넣고 돌리면 두 잔 분량이 나오는데, 한 잔은 아침에 먹고 남은 한 잔은 저녁 식후에 마신다. 콩 불린 물은 따로 담아 머리 감을 때 헹굼 물로 쓴다. 두유가 완성되기까지 15분. 아침상을 차리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식사는 가볍게. 한 끼 분량으로 담아 놓은 채소 스틱과 아보카도 반 개, 달걀 두 개. 채소는 색과 식감을 고려해 조화롭게 구성하고, 달걀은 현미유를 사용해 프라이를 하거나 수란으로 먹는다. 입안에서 완전히 가루가 되고 곤죽이 될 때까지 적어도 오십 번 이상 씹어 넘긴다. 의식적인 행동이라기보다는 소화기가 약해 생긴 오랜 습관이다. 배변은 하루 한 번 아침 식후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물 내리기 전에 꼭 변 상태를 확인하는데, 색이나 냄새 단단한 정도가 아주 좋으며, 가끔은 그녀가 먹는 양보다 배출되는 변의 양이 더 많아 보일 때도 있다. 체중계에 올라가 보지 않아도 몸무게는 이십 년째 변함이 없다. 건강보조제는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진 것들로 두어 가지 유행을 따라가지만, 단백질만큼은 꼭 산양유 초유 단백질로 넉넉히 쟁여 두고 먹는다. 간단한 집안일을 하고 외출 준비를 마치면 열 시 반. 집에서 노인복지관까지는 걸어서 십오 분 거리. 수업은 11시부터 시작된다. 월요일 수요일은 줌바댄스와 밴드 스트레칭. 화요일 목요일은 노래교실. 수강생은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선정하는데, 다섯 강좌 지원에 셋 성공했으니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실버 줌바댄스는 40명 선발에 지원자가 123명이었다. 점심은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먹는다. 일반 5천 원, 65세 이상 4천 원, 기초생활수급자 무료. 그녀가 천 원 할인을 받은 지는 삼 년 남짓이다. 저렴한 가격에 비해 반찬 구성이 다양하고 맛도 좋아 인근 주민들에게 인기가 좋다. 특히 막 무친 겉절이가 그녀의 입맛에 맞는다. 주 고객층은 70세 이상 남성들로 일찌감치 몰려와 줄을 서는데, 그들을 가리켜 ‘집에서 밥도 못 얻어먹고, 혼자서는 해먹을 줄도 모르는 불쌍한 노친네들’이라고 빈정거린 사람은 노래교실 선생이다. 그날 배운 노래의 흥으로 남은 하루도 즐겁게 보내시라는 말로 수업을 마무리하는데, 그녀는 그날 배운 노래는 그 시간에 바로 잊어버린다. 노래를 부른다고 흥이 나는 것도 아니고, 흥을 내려고 춤을 배우는 것도 아니다. 특별한 약속이 없는 오후에는 아쿠아리움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 짧
- 관리자
- 2024-08-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