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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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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은
개수대의 뚜껑 아래에 언제 생긴 것인지 모를 초파리 알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 틈에 손톱만 한 자두 조각이 껴 있었다. 규민이 엊그제 저녁에 마트에서 특가 세일로 산 것이었다.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알을 제거한 후 과탄산소다를 섞은 뜨거운 물을 부었다. 초파리가 생긴 것은 무더위와 습기, 자두 조각 때문이었지만 관리를 소홀히 한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규민에게 초파리 알이 가득한 개수대 사진을 보내려다 그만두었다. 이런 모습까지 공유하고 싶진 않았다. 내친김에 흐트러진 이불과 베개를 정리하고 아무렇게나 널린 옷가지들을 고이 개켜 두었다. 밀린 빨래를 하고 분리수거를 한 다음, 창틀 먼지를 닦고 화장실 청소까지 했다. 오 평 남짓한 원룸은 금방 깨끗해졌다.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분주히 움직였건만 고작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선풍기를 켜고 창문을 열었다. 후텁지근한 바람이 불었다. 책상 서랍에 넣어 두었던 전자 담배를 꺼냈다. 인위적인 복숭아 향이 콧속을 간질였다.
거리의 소녀, 사회의 품으로.
워드 파일 속 굵은 글씨체로 적힌 글귀가 떠올랐다. 정 선생님께서 전달해 준 것이었다. 그는 가출 청소년을 심층 취재하고자 쉼터를 드나드는 기자에게 내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했다. 나는 가출 청소년 중에서도 우수한 사례에 속했다. 유년기의 상처와 중학교 시절부터 지속된 방황, 쉼터의 도움을 받아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치르고 재수 끝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기까지의 과정은 사회에서 소외된 청소년이 기관의 관심과 도움으로 자기 삶을 개척할 수 있게 된 훌륭한 결과였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쉼터의 사정을 모르지 않는 터라 외면하기 어려웠다. 가출 청소년 ‘이후’의 스토리가 담긴 긍정적인 기사가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었다. 적어도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세금이 적절하게 활용되고 있음을 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어쩐지 손이 잘 가지 않았다. 파일을 받은 지 이 주가 지났음에도 간단한 답변 하나 작성하지 못했다. 이런 나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규민은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되지 않을까, 라고 말하다가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라고 덧붙였다. 방송 PD를 꿈꾸며 프리랜서로 영상 편집 일을 하는 규민은 솔직함, 날것, 진정성 같은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그런 것이 있기나 할까. 나는 선풍기의 바람 세기를 더 높였다. 복숭아 향이 빠르게 흩어졌다.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으니 무슨 말이라도 답변을 해야 했다.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 화면에 띄운 워드 파일 속 커서를 응시했다. 커서가 점멸등처럼 깜빡였다.
질문은 열두 개였다. 간단한 자기소개부터 가출하게 된 계기, 가출하는 동안 겪었던 사건이나 어려웠던 점, 기억에 남는 일화, 가출을 후회했던 적, 지금 상태에 대한 만족도, 대학 졸업 후 구체적인 진로 계획, 쉼터에서 받은 도움 등등이었다. 그러나 거리의 소녀, 그 문장이 가시처럼 목에 걸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문장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어떤 것부터 말해야 할지 몰랐다. 알코올중독 어머니와 도박 중독 아버지 밑에서 어떻게 자랐는지 상세히 열거해야 할 필요는 없었지만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었다. 거리에서 겪었던 일들, 쉼터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어느덧 매미소리가 잦아들었다. 붉은 주황빛이 창을 물들였다. 서서히 가라앉는 해를 바라보며 나는 내가 줄곧 현지에 대해 생각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년 여름날, 그때로부터 말이다.
무더위가 절정에 달한 날이었다. 나는 마트에서 할인하는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이스크림이 녹을까 봐 괜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정민? 정민이 맞지?”
어느 편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 현지가 서 있었다. 현지의 행색은, 행색이란 표현도 모자랄 정도로 엉성하고 이상한 차림새였다. 화장기 없는 얼굴과 뒤로 질끈 묶은 머리, 회색 반팔 티셔츠와 검정 기모 바지, 단화와 어깨에 멘 알록달록한 천 가방은 묘하게 계절 감각을 비켜 가 있었다. 옷차림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언제나 머릿속에 유령처럼 떠돌아다녔던, 냄새나 공기처럼 무색의 어떤 것으로 맴돌던 현지가 평일 대낮 길거리에서 불쑥 튀어나왔다는 것이 생경할 따름이었다. 현지가 나를 와락 껴안았다. 약간의 열기와 땀이 느껴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와 현지를 쳐다보았다.
“너도 이 동네에 살아?”
현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현지의 뒤편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깔끔한 복장의 남성이었다. 그는 팸플릿 뭉치를 쥐고서 나와 현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누군지 궁금해 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경계하는 것 같기도 했다.
“전화번호는 그대로지?”
인기척을 느낀 현지가 서둘러 전화번호를 묻고는 곧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현지는 남자와 함께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남자가 현지에게 무어라 말하는 듯했고 현지 또한 무어라 대답하는 듯했지만 남자가 좀 더 앞서 걸어서 그런지 친밀해 보이진 않았다. 그 와중에도 현지는 뒤를 돌아보며 나를 향해 살짝 손을 흔들었다. 골목길을 돌아 완전히 모습을 감출 때까지 몇 번이고 그랬다.
집으로 돌아오니 가방에 넣어 둔 아이스크림은 이미 녹아 있었다. 냉장고에 넣었지만 녹았다가 다시 어는 바람에 모양이 이상했고 바닐라 맛과 쿰쿰한 냄새가 뒤섞여 맛있지도 않았다. 남은 아이스크림들을 모두 개수대에 집어넣었다. 뜨거운 물을 틀어 아이스크림이 형체도 없이 녹아내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현지에게선 금방 연락이 왔다. 일정이 있어서 급히 이동하느라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 못해 아쉽다는 내용의 메시지였다. 나는 현지의 프로필 사진을 확대했다. 와이셔츠를 입은 그 남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와 비슷한 풍채에 비슷한 옷차림을 한 남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서 찍은 사진이었다. 어느 돌계단 앞이었는데 정확히 장소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나이 차이가 꽤 있어 보였기에 처음에는 삼촌이나 가족 중 한 명이지 싶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네 번째 손가락에는 나란히 같은 반지가 껴 있었다.
이후로 나와 현지는 종종 동네에서 만나 점심을 먹거나 커피를 마셨다. 뒤늦은 결혼 축하 인사를 건네는 내게 현지는 약간 당황한 듯 얼굴을 붉혔다. 그러면서도 고맙다고 말했다. 신혼 여행지나 신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나갈 줄 알았지만 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물어 보는 쪽이 민망할 정도였다. 대화 화제를 바꿔 요즘 재밌게 보는 영상이나 드라마에 대해 말하자 금방 수다스러워졌다. 현지는 직접 만든 로션이나 뜨개질한 손가방을 선물하거나 냉동 새우, 두부, 샐러드, 과일 등 식재료를 나눠주기도 했다.
“자취하면 이런 거 다 돈이잖아.”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는 내게 오이와 미니 단호박이 담긴 봉투를 주며 현지가 말했다. 부담스럽긴 했지만 요긴하게 쓰였다. 애호박볶음이나 냉동 새우를 넣은 샐러드 파스타, 두부를 넣고 끓인 된장찌개를 완성할 때면 사진을 찍어 현지에게 전송했다. 잘 먹을게. 내 메시지에 현지는 언제나 웃는 이모티콘으로 답했다. 나도 현지에게 무언가 보답을 해야 하나 싶어 커피 쿠폰이나 핸드크림 같은 작은 선물을 했다.
“둘이 연애해?”
언젠가 규민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현지에게 답례로 무엇을 주어야 할지 고민하던 때였다. 친구 사이에 뭘 그렇게 주고받느냐고 했다.
“그래도 받았으니 뭐라도 줘야지.”
“네가 달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
“마음이 고맙잖아.”
“그럼 마음만 받겠다고 해.”
그러나 나는 규민처럼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현지를 만난 것도 있겠지만 사람을 대하는 법 자체가 어려웠다. 친근한 관계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움 같은 것이 태생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규민과 연애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가끔은 어리둥절했다. 규민은 같은 학과라는 공통분모를 제외하고선 어쩌면 평생 만나지 못할 부류에 속했다. 연애 초반에 나를 상대로 사회 실험 같은 거 하는 것 아니냐며, 나는 네 리포트의 주제가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혹시라도 청소년기의 방황이라든가 유년기의 상처 같은 주제에 관심이 있어서 접근하는 것이라면 관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규민은 배를 잡고 웃었다.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부류니 어쩌니 하는 말은 좀 웃긴다고 했다. 사람을 나누는 건 내 쪽이 아니라 네 쪽인 것 같은데. 한껏 낮아진 규민의 목소리에 당황스러우면서도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 관계가 아니라는 것. 시소처럼 위아래로 왔다 갔다 하면서, 내가 아래면 네가 위로, 네가 아래면 내가 위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그런 관계. 규민과 함께 있을 때면 재미있는 시소 타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우물쭈물하자 규민이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근데 그 친구 결혼했다고 하지 않았어? 우리도 졸업하자마자 결혼이나 할까?”라며 짓궂게 말했다. 그날은 치킨을 먹으며 노트북으로 시리즈물을 봤고 보다가 잠이 들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규민이 말한 친구라는 단어를 되새겼다. 나와 현지는······. 나는 현지와 내가 각각의 점으로, 그것도 아주 희미한 점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잇는 선이 있다면 무어라 불러야 할지. 친구나 지인 같은 단어를 쓸 수는 있겠지만 꼭 들어맞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나와 현지는 가출 청소년이었다.
중학 시절의 현지, 아니, 학교를 가지 않았으니 열여섯의 현지라 할 수 있겠다. 소위 가출팸이라 불리는 무리에서 열여섯의 현지를 만났다. 나보다 한 달 먼저 팸에 들어왔고 동갑이었기에 무리 생활에 필요한 규칙을 알려주었다. 무리에 적응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술과 담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것쯤은 거뜬히 해내야 했다. 그러나 다 같은 처지라고 해서 뜻이 잘 통하는 것은 아니었다. 팸을 드나드는 아이들이 많았다. 쉽게 만나고 쉽게 떠났다. 피 터지도록 싸울 때가 있었고 서열이 다시 세워졌다. 그에 맞춰 규칙도 달라졌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돈이었다. 돈이 없으면 무리 생활을 이어 나갈 수가 없었다. 나와 현지는 술에 취해 잠든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뒤지거나 터미널 근처에서 차표가 부족하다며 현금을 받아내기도 했다. 누군가는 차나 가게를 털거나 소매치기를 하기도 했다. 경찰에 잡혀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도심에서 시간을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매서운 추위와 칼바람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지하철 역사와 터미널, 공중화장실이나 룸카페, 무인 스티커샵 같은 곳을 기웃거렸다. 현지는 아무리 추워도 미니스커트에 맨다리를 고집했고 합성 복숭아 향이 나는 스프레이를 소중하게 여겼다.
현지에겐 열아홉 살의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토바이도 몰고 다녔다. 찜질방도 피시방도 현지의 남자친구와 함께라면 어렵지 않게 오갈 수 있었다. 나는 아주 가끔 집에 다녀오기도 했다.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갈아입을 옷이 필요하거나 씻고 싶을 때, 푼돈이나 되팔 만한 물건이 있는지 뒤져 볼 때였다. 현지와 함께 간 적도 있었다. 남자친구의 아르바이트가 늦어져서 마땅히 있을 곳이 없던 참이었다. 나는 현지의 남자친구 덕분에 숙식에 대한 고민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지만 항상 겉돌았고 눈치가 보였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애정행각을 못 본 척해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 장난치듯 입맞춤을 하고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허리를 감싸 안는 것에서 두 사람만의 친밀감이 형성되었고 그것이 나를 자꾸만 외따로 두었다. 그래서 현지가 집에 같이 가자고 했을 땐 괜히 부아가 치밀었다. 현지는 그런 내게 팔짱을 껴왔다.
“같이 가자. 응?”
현지가 내 얼굴에 자기 얼굴을 들이대며 웃었고 나는 그것을 피하느라 몸부림을 쳤다. 그래도 현지와 팔짱을 꼭 낀 채로 걸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혼자였기에,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는 것 자체가 생소했다. 현지의 걸음에는 어떤 리듬이 있었는데 어떤 땐 폴짝폴짝 뛰기도 했고 어떤 땐 슬로 모션처럼 어기적대기도 했다. 우리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왈츠를 추듯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그 바람에 내 걸음걸이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아마 누군가가 본다면 나와 현지가 술에 취해 비틀거린다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네 집은 어디야?”
문득 궁금해졌다. 가출팸 아이들끼리는 집이나 부모님과 관련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다. 우습게도 우리 집이 반지하라고 무시당하지 않을까, 일을 나간 엄마가 와 있다거나 정돈되지 않은 거실을 보게 된다면 어떻게 하나 따위의 걱정이 앞섰다.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느라 머리가 아픈 찰나, 현지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난 집이 세 개야. 하나는 아빠 집, 하나는 엄마 집, 그리고 할머니 집. 할머니 집에서 지내다가 잔소리를 하도 해서 나와 버렸어. 아빠네랑 엄마네는 둘 다 날 안 받아 줘. 집은 세 개나 있지만 갈 곳이 없지.”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현지는 빨리 결혼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누구랑? 그 오빠랑?”
“그냥 집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나만의 공간 같은 거. 근데 혼자 살 자신은 없어. 심심하잖아.”
꽤 진지하게 말을 이어 가던 현지가 팔짱을 더 세게 끌어당겼다.
“나 그냥 너랑 살래! 나 정도면 훌륭한 룸메이트지! 그렇지?”
현지의 말에 내가 장난스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무어라 대답했던가. 같이 살자고 했던가. 어쨌든 집으로 가는 길이 처음으로 싫지 않았던 것은 분명했다. 나와 현지는 온 집 안을 뒤져 삼천 원 정도를 손에 쥘 수 있었다. 허기가 졌다. 근처 포장마차인 똑순이네로 향했다. 학교 다닐 때 자주 가던 곳이었다. 똑순이네 아줌마가 나를 보더니 왜 이렇게 오랜만이냐고 물었다. 갑작스러운 인사말에 어안이 벙벙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떡볶이와 순대를 순식간에 해치우고도 배가 고파 어묵 국물을 다섯 번이나 컵에 가득 따라 마셨다. 추위 때문에 조금 더 앉아 있고 싶었지만 늘 그렇듯 떠나야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니 똑순이네 아줌마가 나를 불러 세웠다. 마감 시간인데 떡볶이가 남았으니 좀 챙겨가라는 것이었다.
“얼른 집에 들어가렴.”
내가 머뭇거리자 현지가 잽싸게 비닐봉지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현지가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현지와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배가 부르니 추위가 조금 가셨다. 현지는 똑순이네 아줌마에겐 딸이 있는 게 분명하다고, 그 딸을 똑순이라고 부를 것이라 했다.
“똑순이가 뭐야, 촌스럽게.”
투덜대는 말투 속엔 부러움이 서려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떡볶이가 담긴 비닐봉지는 따뜻했다. 떡과 소스의 뭉근하고 말랑한 촉감이 고양이나 강아지를 안고 있는 것도 같았다. 나와 현지는 돌아가며 그것을 품에 안았다. 혀끝에 남은 고춧가루 때문인지 추위 때문인지 목울대가 따가웠다. 현지와 나는 지그재그로 걸으며 나중에 돈이 생기면 똑순이네에 또 가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현지와 함께 그곳을 다시 찾는 일은 없었다. 그해 겨울이 가기 전, 현지와 내가 속한 가출팸 아이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절도였다. 아이들은 여러 번 이곳에 드나든 듯 익숙해 보였다. 경찰은 내게 청소년 쉼터를 알려주었다.
“저런 것들이랑 어울리지 마라.”
갱생의 여지, 첫 가출, 그런 말을 하며 경찰은 쉼터 주소와 번호가 적힌 전단을 주었다. 나는 전단을 구겨서 점퍼 주머니에 넣었다. 경찰서를 나와 공원 벤치로 향했다. 현지는 남자친구와 헤어졌으며 다른 팸에 들어갈 것이라 했다. 같이 가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도 쉼터에 갈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현지와 나 사이에‘저런 것들’이라는 말이 가로놓였다. 현지가 담배를 피웠다. 몇몇 노인들이 쳐다보았다. 나는 현지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현지는 절반도 태우지 않은 담배를 바닥에 버리더니 발로 짓이겼다. 해가 지고 있었다. 그 풍경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현지와의 십여 년 만의 재회는 그다지 나쁠 것도 없었다. 결혼하고 살림꾼이 된 현지를 보다 보면 한때 일찍 결혼하고 싶다고 했던 열여섯의 현지의 말이 아주 어린 생각만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중학교나 고등학교 동창이 없는 내게 나름대로 나의 십 대 시절을 환기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현지와 나는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금기시까지는 아니지만 그 시절에 관해서 특별히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다 지나간 일을 입에 올려서 좋을 것도 없었다. 현지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규민이 동네에 수상한 사람들이 오간다고 말했던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규민이와 나는 동네에 미디어 아트와 분수 쇼가 열린다고 해서 산책 겸 구경을 나섰다. 여느 때처럼 공원과 개천을 잇는 산책로를 걷던 규민이 분수 광장을 가리켰다.
“저것 봐.”
흰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들과 검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팸플릿을 나눠주고 있었다. 팸플릿에는 이단을 조심하라, 우상 숭배를 금지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수상하지? 딱 봐도 사이비야.”
규민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얼마 전 카페에서 영상 작업을 하던 도중 남녀 혼성 무리를 만났는데 처음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다가 그들이 나누는 수상한 대화에 저절로 귀를 기울였다고 했다.
“실적이니 뭐니 하길래 어디 영업부에서 나온 줄 알았어. 근데 자매님, 형제님, 이렇게 부르더라. 자매님, 형제님, 꼬박꼬박 부르면서 실적이니 뭐니 하니까 너무 이상한 거지.”
심지어 그들에게 팸플릿도 받았다고 했다. 거기엔 지구 멸망과 천국과 지옥에 대해 적혀 있었다.
“저런 걸 왜 믿나 몰라. 요즘 세상에.”
규민이 혀를 찼다. 나는 규민의 설명을 들으며 현지의 뒤편에 서 있던 남자의 인상착의를 떠올렸다. 규민과 나는 분수 광장에 마련된 스탠드 계단에 앉았다. 곧 쇼가 펼쳐졌다. 음악에 맞춰 물줄기가 춤을 추듯 이리저리 움직였다.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오르고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졌다. 규민 또한 입을 벌리며 탄성을 내질렀다. 나도 따라 박수를 쳤다. 얼마간의 분수 쇼가 끝나고 나와 규민은 손을 잡은 채 거리를 걸었다. 규민은 야식으로 치킨을 먹을지 노가리를 먹을지 고민했다. 나는 노가리가 더 좋다고 했다. 나와 규민은 호프집으로 향했다. 생맥주 두 잔과 노가리를 주문한 후 이 기나긴 열대야가 언제 끝날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르바이트를 더 늘려야 할지, 어떤 자격증을 따야 하는지, 졸업 후에 어떻게 할지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얼굴에 마스크팩을 붙였다. 나와 규민은 서로에게 비스듬히 기댄 채 SF 괴수 영화를 보았다. 주인공은 우주선에서 실험용으로 쓰이던 괴수와 사투를 벌이다 끝내 괴수를 죽이는 것에 성공한다. 그는 괴수에게 죽임을 당한 동료들의 시체를 정리해 우주선 바깥으로 밀어낸다. 흰 천에 감싸인 동료들의 시체는 검은 우주 속을 떠다닌다. 조종석에 앉은 그는 지구로 귀환하기로 마음먹는다. It's time to go home. 내레이션과 함께 영화는 끝난다. 나는 잠든 규민 옆에 누웠다. 규민이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잇츠 타임 투 고 홈. 그 말을 중얼거렸다. 우주만큼이나 깊은 어둠 속으로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분수대의 붉고 푸른 조명들이 일렁였다. 현지와 우연히 마주쳤던 날, 뒤편에 서 있던 남자가 자꾸만 떠올랐다. 어깨를 나란히 하지만 그다지 친밀해 보이지 않던 현지와 남자. 두 번째 만남에서 현지는 단정한 원피스를 입고 나타났다. 모임을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세 번째도, 네 번째도 비슷한 원피스 차림이었다. 현지와 남자는 그 무리 속에 섞여 있었을까? 휴대전화기를 켜고 메신저 어플 속 현지의 프로필을 검색했다. 지난번과 달리 현지의 프로필 사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돌계단 앞에서 찍은 사진도 삭제된 상태였다. 현지와 나누었던 메시지들을 정독했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현지와 내가 이렇게 문자를 주고받는 것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현지는 그 시절을 어떻게 기억할까. 나와 함께 거리를 떠돌던 그 시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나에게 그 시간은 끈덕지게 남아 있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언제나 넘칠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출렁였다. 외로움과 고독의 냄새를 풍기며 꿈틀거렸다. 제발 사라져 달라고 애원하고 사정해 보아도 소용없었다. 화를 내고 짓밟고 욕을 내뱉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것은 나였으므로. 나는 나에게서 달아나는 법도 나를 향해 인사하는 법도 나를 죽이는 법도 모른다. 내가 나라는 사실이, 내가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고 함께할 수도 없다는 진실이, 그러니까 내가 나여서 문제라는 것이 문제였다.
동네를 오갈 때마다 괜히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규민이 말한 무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거나 팸플릿을 나눠주었다. 그런 모습이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지하철역 근처나 번화가에서 광고 전단을 나눠주는 사람들이나 잡지 구독과 우유, 학습지 판촉 매대와 다를 바 없었다. 확성기를 틀고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는 것도 아니고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이런저런 설교를 길게 하는 것도 아니었다.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간혹 현지 옆에 있던 그 남자처럼 사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이십 대 초중반이었다. 그들은 서로 농담을 주고받는지 웃고 떠들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와 산뜻한 목소리로 지나가는 이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호기심을 보이는 노인들도 있었다. 대화를 하며 팸플릿을 들춰 보기도 했다. 둥그런 벤치에 비둘기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는 노인들과 그들 곁에 서서 함께 웃고 떠드는 젊은 사람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활기찬 풍경이었다. 내 시선은 계속해서 현지를 찾아다녔다.
그런 내가 현지를 우연히 보게 된 곳은 술집과 카페가 즐비한 번화가였다. 현지는 흰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와 함께 있었다. 흰 와이셔츠를 입었다는 것을 빼고는 현지와 처음 마주쳤을 때 본 남자는 아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볼캡 모자를 쓰고 긴 머리칼을 늘어뜨린 여자애가 있었다. 어깨를 웅크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현지와 남자, 그리고 여자애의 뒷모습을 쫓았다. 그들은 계속해서 거리를 활보했다. 목적 없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목적 같았다. 나는 현지에게서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까. 현지와 나 사이를 잇는 무언가를 친구라고 부르고 싶었던 것일까. 혹은 그 반대였을까. 어쩌면 나는 현지보다 그 여자애를 더 신경 썼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척을 했을 때 현지는 당황한 듯 어색하게 대꾸했다. 남자는 한 발 뒤로 물러섰고 여자애 또한 더욱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했다. 요즘 통 연락이 없다는 둥 남편이랑은 잘 지내고 있냐는 둥 실없는 소리를 늘어놓았고 그들에게 쉼터의 명함을 나눠주었다. 훗날 이를 두고 규민은 위험한 짓을 했다며 보복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고 화를 냈다. 그러나 그땐 위험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정 선생님처럼 사회복지사로서의 의무나 소외된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라는 거창한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여자애가 눈에 밟혔을 뿐이었다.
두 시간 정도 지나 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카페에서 만난 현지는 상기된 얼굴이었다.
“무슨 짓이야?”
현지는 내게 틈도 주지 않고 물었다.
“나 미행했니? 언제부터? 네 계획이 뭐야?”
쏟아지는 질문은 나에 대한 의심과 질타로 가득했다. 언제나 반가워하고 사소한 것들을 챙겨 주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계산대에서 아르바이트생이 우리를 흘끔거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 두 잔을 주문했다. 음료는 곧바로 나왔다. 나는 현지 앞에 커피를 두었다. 현지는 그런 내 행동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네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잘 모르겠는데.”
나는 그저 우연히 길거리에서 너를 보았고 네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럼 너는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고 물었다. 그 남자는 누구이며 여자애는 누구인지. 왜 세 사람이 대낮의 길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지. 그러나 현지는 알 필요 없다며 딱 잘라 말했다. 화를 삼키려는 듯 커피 잔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나 커피 못 마셔.”
현지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임신했거든.”
아까와 다르게 언뜻 웃는 빛이 현지의 입가를 스쳤다.
“얘는 뜻이 있는 자의 아이야.”
현지는 아이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만큼은 그 의미를 숨기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뿌듯해했다.
“이 세상 모든 아이와 달라. 단 하나뿐이지.”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나에겐 이 아이를 지켜야 할 소명이 있어.”
현지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야 죄를 벗을 수 있어. 내가 지은 죄를 씻을 수 있단 말이야.”
현지는 죄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속이 거북했다.
“나는 네가 회개하길 바라. 진심으로.”
나를 바라보는 현지의 눈동자는 어떤 확신으로 가득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내 말에 현지가 내 손을 잡았다. 서늘하면서도 축축했다.
“이것 봐. 너는 아직도 네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잖아. 넌 깨닫지 못했어.”
나는 현지에게서 내 손을 빼내고 싶었지만 어쩐지 온몸이 굳어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현지의 말과 눈빛이 사슬처럼 내 팔과 다리와 목을 감아올렸다. 귓가에 울릴 정도로 심장이 빠른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현지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난 지금이 진심으로 감사하고 소중해. 너도 알잖아. 우리가 얼마나 방황했는지.”
내 손을 잡은 현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열여섯의 현지는 우리가 자주 가던 공원 근처에 있는 고층 상가 건물의 비상구 계단에서 보자고 했다. 그때 나는 쉼터에 들어오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온종일 쉼터에 마련된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낯설었다. 현지의 연락에 짐이랄 것도 없지만 혹시 모르니 쉼터에서 사용했던 양치 도구를 챙겼다.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현지를 보고 있자니 괜히 조마조마했다. 심각한 일이 생긴 듯했다.
“나 생리를 안 해.”
현지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우리는 달력을 보며 날짜를 셌다. 인터넷에서 본 생리 주기 계산법이었다. 그러나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생리 예정일이라든가 배란기라든가 하는 말들은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안 할 수도 있대. 삼 개월이 넘도록 안 한 사람도 있어.”
얼핏 인터넷에서 본 것을 이야기하자 현지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임신 테스트기를 살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두렵다고 했다.
“나 좀 도와줘. 너밖에 없어. 다른 애들이 알면 안 돼.”
다른 애들은 지금 속해 있는 팸의 아이들을 뜻했다. 현지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나는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스무 계단이 넘었다. 현지는 엑스자로 겹친 양팔을 가슴팍에 꽉 붙이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현지의 어깨를 밀었다. 현지는 순식간에 아래로 고꾸라져 굴러 떨어졌다. 나는 재빠르게 현지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현지의 배를 밟았다. 현지가 울기 시작했다.
이후의 기억은 선명하지 않다. 현지를 부축해서 상가 내부에 있는 화장실로 향했던 것도 같다. 그곳에서 현지는 한참 동안 얼굴을 씻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현지의 모자를 주웠다.
“이제 어디로 가?”
나는 현지에게 물었다. 현지는 창백한 얼굴로 세면대에 침을 뱉었다.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오빠가 온댔어.”
애써 태연한 말투였다. 현지는 바지 주머니에서 체리 색 립밤을 꺼내 입술에 발랐다. 내게 연락하겠다거나 쉼터에서 잘 지내라는 상투적인 인사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쉼터로 돌아온 나는 현지를 미워하고 증오했다. 시간이 흘러서는 열여섯의 현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해 보고자 했다. 유약했던 아이의 생존방식이었을 것이라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만약 나를 친구로 여겼다면 그런 삶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서는 열여섯의 우리가 임신이라 여겼던 그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생리가 밀리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임신 테스트기를 사용해 본 것도 아니었으므로. 게다가 그런 방식으로 유산이 백 퍼센트 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다시 만났을 때는 현지와 내가 조금이나마 달라졌다고, 어른이 되었다고 여겼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깨닫고 회개하라.
그것이 현지의 논리였다. 나는 현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말들을 잠자코 듣기만 했다. 현지는 어떤 반박도 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보고 안심한 듯했다. 날이 서 있던 눈빛이 점점 수그러들었다. 나는 단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현지의 커피 잔을 들여다보며 배 속에 있다는 아이를 그려 보았다. 임신했다는 현지의 말은 거짓말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현지가 자신의 아이를 하늘의 아이라고 믿고 죄를 씻어 줄 유일한 구원자이며 무엇보다 사랑하고 있음을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그 아이는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부모가 자신을 왜 낳았는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하늘의 아이이자 구원자이며 사랑받는 자식으로 살아갈지도 몰랐다.
정말 그럴까.
현지의 설교가 멈추었다. 어딘가 지쳐 보였다. 한순간에 늙어버린 것도 같았다. 나는 열여섯의 현지가 지금껏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무엇이든 믿고 싶어 하는, 믿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는 어떤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개소리 하지 말라고 소리칠 수도 있었다. 회개니 죄니 하는 말로 수작 부리지 말라고, 정신 차리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가끔 나도 기도를 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현지가 치켜뜬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너를 위해 기도할게.”
“뭘?”
“뭐든.”
카페를 나섰다. 오후인데도 대낮처럼 환했다. 여름날의 해는 길었다.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열여섯의 현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입가에서 웃음이 흘렀다. 나는 내가 현지를 밟을 때, 현지의 몸을 차고 누르면서 자꾸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이가 꽉 깨물어지는 것을 느꼈다. 밟을수록 더 세게 밟고 싶어졌다. 더 세게. 더 세게. 더러운 벌레를 죽이듯. 썩은 과일을 뭉개듯. 뼈 마디마디를 으스러뜨리고 싶었다. 비밀은 그런 것이었다.
Q. 열여섯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시간을 확인하니 반나절이 훌쩍 지나 있었다. 허기가 몰려왔다. 규민에게서 온 메시지가 있었다. 편집 작업이 늦어지니 먼저 저녁을 먹으라는 내용이었다. 알겠노라고 답장을 보냈다. 집 밖을 나오니 어디선가 맵고 달큼한 냄새가 풍겼다. 작은 트럭 한 대가 떡볶이와 어묵, 순대를 팔고 있었다. 나는 떡볶이를 주문했다. 말랑하고 따뜻한 떡볶이를 한 점 집었다. 국자로 어묵 국물도 한 컵 따라 마셨다. 작은 트럭이기 때문에 가게 상호는 따로 보이지 않았다. 아주머니의 얼굴을 살폈지만 다른 사람 같았다. 똑순이네 아줌마는 훨씬 더 늙었을 것이다. 지나가던 여자 아이가 나를 보더니 제 엄마에게 떡볶이를 사달라고 보챘다. 엄마는 아이의 손을 꽉 잡으며 다음에 먹자고 했다. 그러나 아이는 계속 칭얼거렸고 결국 엄마와 아이가 트럭에 가까이 다가왔다. 두 사람이 더 왔을 뿐인데도 트럭 내부가 좁아서 좀 더 구석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엄마와 아이는 떡볶이와 어묵 한 개를 주문했다. 엄마는 아이에게 어묵 꼬치 한 개를 쥐여 주며 뜨거우니 조심하라고 말했다. 아이는 호호 불면서 어묵을 한 입 먹었다. 입이 작아서 한 입이라고 해봤자 아주 조금 베어 문 것 정도였다. 아이는 맛있게 먹었다. 엄마도 떡볶이를 먹었다. 엄마는 휴지로 아이의 입을 닦아 주었다. 나는 떡볶이를 입에 마구 집어넣었다. 계산을 치른 후 천천히 걸었다. 분수 광장을 지나, 호프집을 지나, 카페와 술집이 즐비한 번화가를 지났다. 나는 내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이후로 현지를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신혼집이 정확히 어디인지, 정말로 이 동네에 사는 것은 맞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휴대전화 번호도 바뀌었는지 언젠가부터 전혀 다른 사람의 프로필 사진과 상태메시지가 떠있었다. 어쩌면 그 여름날 길거리에서 만난 것조차 우연이 아닐 지도 몰랐다. 규민은 가끔 이 일을 장난스럽게 입에 올렸고 나도 따라서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럼에도 길을 걷거나 술에 취하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혼자 남겨졌을 때, 열여섯의 현지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열여섯의 나를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후텁지근한 바람이 불었다. 올해는 작년보다 무더우며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내후년은 내년보다 더 더워질 것이었다. 이제 길고 긴 여름과 겨울만이 남을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계속해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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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4-12-01
흑건(黑鍵) 임희강 요셉이 정수용을 만난 건 약 두 달 전의 일이다. 요셉은 좁은 골목의 치킨 가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치킨집 바로 오른쪽에는 50년 전통의 순두부 가게가 있었다. 치킨집의 왼쪽엔 50년 전통의 순두부 가게 사장의 아들이 운영하는 아구찜 가게가 있었다. 그 외에도 갈비찜, 감자탕, 굴보쌈과 족발을 파는 가게가 차곡차곡 잘 맞춘 블록처럼 쌓여 있는 골목이었다. 두 사람이 지나기도 빠듯한 골목에는 서로 다른 음식에서 사용한 간마늘과 참기름 냄새가 진동을 했다. 예스럽고 한국 음식의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지만 누가 봐도 서양의 클래식 음악과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요셉은 가진 옷 중 가장 깔끔한 재킷을 챙겨 입고 치킨 가게로 출근했다. 치킨 가게 사장은 바로 요셉의 이모부였다. 가게를 인수할 때 내부에 있던 낡은 업라이트 피아노 한 대를 보고 이모부는 놀고 있던 요셉을 불러 연주를 부탁했다. 요셉이 가장 좋아하는 연주곡은 〈흑건〉이었다. 〈흑건〉은 쇼팽의 에튀드 G Major. Op.10 No.5를 말한다. 백건반이 아닌 흑건반으로만 주요 선율이 이뤄져 있어서 ‘흑건’이란 별칭이 붙었다. 어느 대만 영화에 메인 테마곡으로 등장해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곡이었다. 〈흑건〉의 박자는 비바체였다. 대단히 빠르지만 급한 티를 내면 안 된다는 점에서 프레스토 박자와 구분된다. 프레스토를 사용하는 곡으로는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Flying of bumblebee)〉이 있다. 요셉이 생각하기에 그 곡은 손가락 훈련 곡에 지나지 않았다. 우아함을 따지자면 〈흑건〉이 훨씬 우세하다. 요셉은 품격을 잃지 않는 선에서 경쾌하게 연주를 이어나갔다. 건반에 묻어 있던 기름때가 손에 묻으며 쩍쩍 소리가 났다. 연주자만 들을 수 있는 소리라는 점에서 요셉에겐 특권처럼 여겨졌다. “제대로 밟을 줄 아는군요.” 연주가 끝났을 때 정수용이 다가와 말했다. 페달을 다루는 스킬을 알아봐 주는 손님은 드물었다. 그럼에도 요셉은 그가 말을 걸어온 게 반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가게에서 말을 거는 사람은 십중팔구 취객이었다. 요셉은 처음 연주를 했을 때 60대 남성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그는 이미 옆 가게에서 지인들과 굴보쌈에 소주 6병을 해치우고 넘어온 상태였다. 등산복 차림에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반갑진 않았지만 연주를 알아봐 준 것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요셉이 인사를 하려고 그의 곁에 다가갔을 때 남성은 몸을 휘청거렸고 그대로 바닥에 뒹굴었다. 요셉은 이후 손님과 대화를 삼갔다. “시끄럽지 않으셨다니 다행이에요.” 요셉이 수용에게 말하곤 카운터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 가게는 피아노 연주를 듣기 위해 찾는 곳은 아니다. 요셉이 소리가 증폭되는 뎀퍼 페달 대신 소리를 줄이는 시프트 페달을 밟은 이유다. 손님들은 치킨 가게에서 피아노 연주를 해 준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생각했지만 소리가 너무 커
- 관리자
- 2024-12-01
다른 겨울 최유안 음습한 바람이 무리의 발소리를 갑작스레 가뒀다. 육중한 무게가 계단을 수시로 눌러 내리는 탓인지 천장에 붙은 낡은 철제 안내판 한쪽이 불규칙하게 덜컹댔다. 거, 애도 있는데 앞으로 자꾸 밀지 마시고. 신경질적인 영어에 앞쪽 무리에 끼어 있던 몇이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남녀 한 쌍이 눈치를 보며 그의 주위를 빙 돌더니,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들이 빠져나가는 지하철 입구를 올려다봤다. 나 말고도 작은 소요에 신경 쓴 사람이 더 있었는지 고개를 튼 방향에 시선이 여럿 뒤섞여 있었다. 출구 끄트머리 너머 작은 간판이 눈에 띄었다. 남자가 안정을 찾은 목소리로 말했다. 츄러스 먹을까? 남자의 품에 안겨 있는 여자아이가 신이 나는지 까르륵 소리를 냈다. 빨간 털모자가 단번에 눈을 사로잡았다. 두 돌 정도 되어 보였다. 아이 소리에 힘이 난 남자가 끙 소리를 내며 큰 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같은 줄에 서서 걷는 남자와 내 뒤로, 수십 명이 굴리는 발걸음이 코뿔소 떼처럼 광광거렸다. 계단참에 짧은 치마 차림의 여자가 카메라를 들고 멈춰 섰다. 사람들이 그를 피해 둥글게 호를 그리며 밖으로 빠져나가거나, 혹은 같은 자리에서 비슷한 구도로 앵글을 잡았다. 한데 몰려 있던 찬바람이 안쪽으로 거세게 밀려 들어왔다. 지하철 입구가 아랑곳없이 사람들을 쏟아냈다. 단어들이 하얗게 내뿜는 입김을 타고 구슬처럼 흘러나와 공기 중에 분사됐다. 북적이는 관광객 틈에는 한국인도 여럿 섞여 있었다. 깔깔거리는 소리에 익숙한 단어들이 튀어나와 저마다의 파동으로 멀어져 갔다. 누군가는 여행을 오기 전에 유럽에서 동양인 경멸이나 무시가 빈번하다는 조언을 들었다고 했고, 여긴 그나마 괜찮아, 하는 자조 섞인 말도 들렸다. 게다가 지금이 연초보다 더 멋질 게 분명해, 하고 아직 마주하지 않은 새해 풍경을 확신하기도 했다. 불안을 기만하는 방식으로 불가해한 미래를 정당화하는, 인간은 오만하다. * 간간이 부는 시린 바람 사이로 빵 굽는 냄새가 옅게 났다. 멀리 성당 종소리가 아득했다. 걷는 행위에 극심한 피로를 토로하는 나를 배려해 희용과 혜미는 속도를 조절하며 앞장섰다. 희용은 오른편에, 혜미는 왼편에 있었다. 오가는 사람이 많은 탓에 희용은 약간 비틀린 채 서서 인도와 차로를 번갈아 걸었다. 한 아이가 다가와 거칠게 희용의 옆구리를 밀치며 지나갔다. 앞서간 아이를 멈춰 서 바라보는 희용의 곧게 선 뒤통수가 홧홧해 보였다. 희용을 치고 지나간 아이 뒤로 비슷한 또래의 아이 둘이 장난치며 뛰었다. 뒤따라 어른 몸집만 한 아이가 달려들더니 희용의 어깨를 치고 지났다. 희용의 귀에서 에어팟이 빠져나와 바닥에 내리꽂혔다. 아, 씨. 희용은 포장된 도로 위를 굴러가는 에어팟을 주워 올리며 멀리 아이들을 바라봤다. 벌써 저만치 뛰어가는 중이었다. 얼굴을 구긴 희용은 낯선 사람들 사이에 끼어 걷던 내 옆으로 다가왔다. 괜찮아? 내가 물었고 희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보는 목소리가 걱정스러웠는지, 에어팟
- 관리자
- 202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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