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삼도노인회 제주여행기

  • 작성일 2007-05-31
  • 조회수 3,633

 

삼도노인회 제주여행기



한창훈




이번에 삼도(三島)청년회장 김역만이 삼도노인회 회원들을 모시고 여행을 다녀왔는데 온 뒤로는 서로 말을 잘 안 하고 있답니다. 왜 그럴까요. 우선 노인회가 여행을 가게 된 이유는 이렇습니다.

 


 

삼도는 남쪽 바다 어디어디에 있는 섬인데 다른 곳처럼 젊은이 떠나고 늙은이만 남아 평균연령이 상당히 높은 곳입니다. 떠난 이들은 도시 생활에 익숙해졌고 남은 이들은 섬 생활을 버릴 수 없으니 가족이 모이는 것은 명절이나 초상 때 정도입니다.

섬 노인들은 밭으로, 바다로 나가 무어든 캐고 다듬고 하여 돈 만드는 버릇이 몸에 배어 있는  데다 어쨌든 자식들이 얼굴 대신 돈이라도 보내오는 탓에 가히 궁색하지는 않게 살고 있습죠. 하여 그들이 노상 전화로 듣는 말이 ‘엄니,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는디 인자는 따뜻한 방에서 좀 편안히 쉬시오, 제발 보일러 좀 팍팍 돌리고.’와 ‘아부지, 날도 차거운디 또 삼치 낚으러 가셨소? 인자 그만 하고 쉬시오.’이런 것이고 대답이라 하는 것도 ‘놀면 뭐하냐? 내일쯤 택배로 반찬거리 보낼랑게 잘 받어라.’입니다.

고단하더라도 섬을 버리고 자식들에게 가는 게 멀쩡한 배에 구멍 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예전에 도시로 나갔던 이들은 아침에 심심하고, 점심 때 적막하고, 저녁 때 쓸쓸하고, 밤에는 잠 또한 오지 않아 시름시름 앓는 병 얻었는데 의료서비스 훌륭한 병실에 누워서도 저 먼 남쪽 바다를 바라보며 ‘오매 오매 내 삼도야.’ 소리만 내놓다가 끝내 세상 뜨고 말았다는 것을 종종 풍문으로 들어오기도 했고요.

‘오매 오매 내 삼도야.’ 이 말은, 눈에 익은 고샅길과 이웃들과 마음대로 손 내밀 수 있는 텃밭과 내 노력이면 뭐든지 한 소쿠리씩 수확물을 챙길 수 있는 바다에 대한 그리움의 눈물겨운 표현이죠.    

그러니까 떠날 수 없는 세대와, 어떡해서든 떠나야 하는 세대가 완충 세대 없이 맞붙어 버린 경우인데, 하긴, 험한 바다 일은 죽어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다짐하여 별로 내켜하지 않던 아들딸 육지의 학교로, 학원으로 올려 보낸 게 자신들이기도 하니 딱히 누구를 탓하기도, 세상을 한탄하기도 뭐합니다.

 

어쨌든 삼도노인회 회원들은 섬을 떠나보자고 맘을 먹게 되었습니다. 자식들이 해마다 계 부어온 돈이 얼추 찬 데다가 그들 또한 나름대로 쌈짓돈을 모아왔기에 우리도 죽기 전에 단체여행 한번 가보자, 는 공론이 돌았고 돌자마자 낙찰되었고 낙찰되자마자 추진되었던 것이죠. 때는 쑥 뜯는 철도 지나고 삼치 낚시도 끝물인 사월이었습니다. 

여행은 쉬 결정되었으나 장소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최근 들어 죽을 맛인 청년회장 역만이 가두리 양식장으로 갈 때 경로당에서는 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참돔과 우럭 양식을 하는데 근자에 병이 들었지 뭡니까. 한 달 전쯤 병이 찾아왔는데 최근에는 죽은 것 퍼내는 것만으로도 하루 일과가 꽉 찰 정도였습니다. 이러면 몇 년 동안 쏟은 자금과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게 뻔하죠.

그가 무더기로 죽어 떠 있는 참돔, 우럭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쉴 때 경로당에서는 불국사나 설악산이 등장과 동시에 한 대 맞고 퇴장했고 뜰채로 죽은 것들을 떠내며 시료 채취해 간 수산청은 뭐하고 자빠졌냐, 네미랄, 무슨 병인지 모르면 모른다고 연락이나 주지, 고시랑거릴 때 서울 63빌딩이나 여기저기 놀이공원, 무슨 랜드 따위도 얻어터져 쓰러졌고 죽은 고기 배에 옮겨 싣느라 땀 뻘뻘 흘리는 동안 동남아를 두루 읊어보기 시작했으며 사정이 이런데도 도무지 가두리 일은 도우려 하지 않는 아내가 야속해 저 멀리 산비탈 아래 밭을 째려보는 동안 여권 문제 때문에, 금강산은 통일 이후로 미뤄지고 일본은 울며 돌아섰고 대만은 저요 저요 손만 들다 포기하고 태국은 손수건 뒤집어쓰고 뒷걸음질을 쳤다고 합니다.

역만이 가두리에서 돌아왔을 때 마침 아내가 밭에서 걸어오고 있었죠. 역만은 내내 부글거리던 속이 터져 그깟 밭이 중요해? 한 마디 했고 그러자 가두리의 가, 자만 들어도 심장이 뛰는 아내 쪽에서도 벼르고 있던 차라 그럼, 저 잘난 가두리에서 뭐 나온다고 내가 그 일을 해? 크로스카운터를 먹였습니다.

“일 좀 도와달라니께. 힘들어 죽겄구만.”

“나는 놀고?”

“그 코떽지만한 쑥밭에서 돈이 나오면 얼마나 나온다고, 니미.”

“그럼, 가두리에서는 돈 나왔어?”

“병이 왔잖어. 병이.”

“글쎄 병이 온 것을 가지고 왜 나한테 부애를 내냔 말이야. 나는 당신이 저것 하겄다고 고집 부렸을 때 눈치 봐가며 친정 돈 끌어준 죄밖에 읎어.”

“또 그 소리. 누구 돈이든, 부부 합심해서 함을 쏟아도 부족할 판에.”

“고기한테 병이 들믄 병 고칠 생각부터 해야지 왜 만만한 나한테 그래? 내가 전염시켰어?”

“포르말린하고 마이신을 갖다 부어도 안 잡히는 것을 어쩌라고.”

“욕심 부려서 치어를 너무 많이 집어넣더니 결국 떼 초상만 치룬 것 보라지, 거기 일 도와주러 가서 속 뒤집어지느니 착실히 쑥이라도 캐 다만 몇 푼 현금을 쥐는 게 훨씬 낫어.”

“으이그, 속 터져,”

“누가 할 소리.”

둘은 그렇게 싸웠고 시끄러웠죠. 대꾸가 궁한 역만이 아내 반, 담벼락 반 이렇게 나눠 노려보고 있을 때 노인회 집행부가 찾아왔고 그는 그게 다행이었습니다. 

노인회에서 최종 채택한 곳은 지리산과 제주도였습니다. 회원들 의견이 남녀로 갈린 것이죠. 평생 바다일로 살아온 남자들은 산을 원했습니다. 물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사람은 깊은 산을 본능적으로 찾게 되는 법이거든요.

여자 회원들은 제주도를 원했다고 합니다. 삼도에서는 제주가 보이죠. 남자들은 어장 나갔다가 들르기도 하고 심지어는 기관 고장으로 표류해서 가보기도 했지만 여자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미국은 안 보이고 달은 보이잖습니까? 하여 미국보다 더 먼 곳에 있는 달이 이웃처럼 친숙하듯 제주가 그랬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관광지 일번지인데 그것을 빤히 보이는 곳에 두고서 못 가 본다는 것은 확실히 억울한 데가 있습죠. 아끼다가 똥 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래서 합의를 본 게 지리산 들러 제주 가는 거죠. 그들은 역만에게 리더 겸 가이드를 부탁했습니다. 

“우리끼리 가자니 세상 물정 어두운 게 어디 한 두 가지여야지. 여차 하믄 바가지 쓰기 딱이니께 똑똑하고 야문 우리 청년회장이 같이 가면 좋겄어서 부탁하러 왔네.”

역만은 똑똑하고 야물다는 말을 참 오랜만에 들었습니다. 아내가 달랑 불알 두 쪽밖에 없는 그에게 시집 온 이유가 ‘똑똑하고 야물어서’였거든요. 요즘은 일생일대의 판단 착오로 굳어졌기는 했습니다만. 물론 그는 으레 하는 칭찬 정도로 마음이 흔들렸던 것은 아닙니다. 칠순 노인네들을 열댓 명이나 인솔하고 어디를 다녀온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지만 뛰쳐나가버리고 싶은 충동이 있었고 최근에 들었던 정보에 의하면, 제주에서는 새로운 개념의 양식장이 시범적으로, 그리고 훌륭하게 성공하고 있다고 하니 한번 찾아보고 싶은 판단도 있었습니다. 비용도 공짜인 데다가 이런 경우 마을의 장년 하나가 동행하여 편의 제공을 해온 전통도 있습니다. 젊은 청년이 드물어 마흔에 억지로 맡았습니다만 어쨌든 청년회장 아닙니까.

그는, 그렇다면, 하는 얼굴로 말했습니다. 

“안 그래도 제주도에 한번 갈 일이 있었는디.”

노인회 집행부는 고마워하며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것의 예약과 확인을 부탁하고 돌아갔고 그는 졸지에 바빠졌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내가 흔들렸습니다.

“어디 간다고?”

“들었잖어. 어르신들이 저렇게 부탁을 하는디.”

“당신 아니면 갈 사람 없을까봐? 이장도 있고 어촌계장도 있잖어. 일이 저 지경인디 가긴 어딜 가. 정신이 있는 거여, 없는 거여?”

“이 기회에 제주도에서 하는 양식장을 한번 둘러보고 와야겄구먼. 아예 바다 속에서 고기를 키운다는디 병이 없다대. 가두리는 이장에게 부탁해 놀 테니께 걱정 말고.”

“이 기회? 나 몰라라 하고 놀러갈 기회? 가기만 해봐. 확 나도 나가 버릴 테니께.”

“어디 갈 건데?”

“묻지 마. 갈 거야.”

“묻지마 관광이다 그 말인가?”

역만은 애써 웃었습니다.  

“그래, 묻지마 관광 갈 거여.”

“아따 참말로 왜 이래?”

“우리 아부지 퇴직금 몽땅 들어간 것이 저 가두린디 저 상태로 그냥 두고 어디를 가겄다는 거여?”

“공무잖어, 공무.”

“집안 망하는 판국에 공무 같은 소리하시네. 하여튼 한 발짝만 나가봐.”

“당신 이렇게 나오믄 니미, 일부러라도 나가야 쓰겄어.”


어쨌든 복잡한 주말 피해 아껴둔 한복 차려입은 할머니들과 장롱 깊숙이에서 모자 꺼내 쓴 영감님들은 여객선 타고 항구로, 버스로 지리산까지 이동했습니다. 막상 집 떠나니 시원하다거나, 출발할 때까지 골이 나 있는 아내가 마음에 걸린다던가, 역만은 그런 한가로운 생각을 할 틈이 없었습니다. 버스 대절, 각종 식당과 숙소 예약 및 확인, 눈 몇 번 감았다 뜨면 되풀이해야하는 사람 수 세기, 툭하면 앞서 걷고 뒤처지고, 어디 가고, 가서 잠시 아니 오고, 하는 것 챙기고 덥다, 춥다, 목마르다, 체한 것 같다, 좀 쉬자, 걷자, 신발이 안 보인다, 안 묵을란다, 국이 짜다, 전화 좀 걸어 달라, 차멀미 난다, 일일이 들어주고 답하느라 정신이 핑핑 돌 지경이었습니다. 

그렇게 일행은 선암사 잠시 들른 다음 매화마을과 악양 최 참판 댁 거쳐 지리산 쌍계사 근처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산은 푸르고 계곡은 깊고 절은 아늑했죠. 여기까지 무사고로 오는 것만으로도 역만은 진이 빠졌습니다. 지친 몸 풍경소리 의지해 눕고만 싶었습니다. 그러나 일행은 오래지않아 숙소 변경에 부닥쳐야 했습니다. 일행 중에 비교적 젊은 편인 집사 할머니가 있었는데 그녀가 따진 것이죠.

“절 한 군데 갔으믄 됐지, 잠도 절 젙에서 자는 것은 뭔가.”

역만은 대답했습니다.

“물 좋고 경치 좋고 한데 싫으시오? 여기 예약 하느라 고생했는디.”

“내 마음 속의 하나님이 이곳을 피하라고 분부를 하시네.”

그러자 불교 신자인 보살 할머니가 나섰습니다. 

“명승대찰은 사람들을 편하게 쉬게 해주는 곳인디 어째 자네 하느님은 그런 것도 못하게 하신단가?”

“우상 옆에서 어찌 마음이 편하겄소. 옮깁시다. 그리고 성님, 하느님이 아니고 하나님이시요이.”

이 좋은 곳을 두고 또 어디로 간단 말이요. 노인회 회장도 한마디 했죠. 집사 할머니는 못 들은 척했습니다.

“그렇다믄 우리 둘만이라도 온천으로 데려다 줘.”

또 한 사람은 기역자 허리가 펴지지 않는 노 할머니로 몇 년 전 집사 할머니에게 전도를 받은 바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요. 두 분만 어떻게 따로 가신단 말이요.”

“우리는 여기서는 못 자네.”

온천은 아침 식사 뒤 들를 곳으로 정해놓은 곳이었죠. 

“진행은 저한테 맡겨 놓는다고 하신 것 잊었습니까?”

“그것은 이거랑 틀려. 우리는 다른 것은 다 양보해도 종교는 양보 못하네.”

역만 하나로는 견디기 힘들어 일행이 왜? 꼭? 정말? 진심으로? 기어코? 달려들었지만 둘만이라도 꼭 가겠다고 버스에 오르지 뭡니까. 버스 속에 똬리 틀고 앉아 귀 닫고 기도까지 올렸습니다. 개신교 입장에서 보면 굳은 신심에 표창이라도 하겠지만 역만도, 버스 기사도, 남은 일행도 아주 난감했습니다.

쌍계사에서 지리산 온천까지는 근 백리 길입니다. 한 명 한 명이 물가에 내놓은 어린이만 같은데 어떻게 둘만 보낼 수 있겠습니까. 결국 역만은 위약금 물어 취소하고 이동을 했습니다. 모두 침묵하고 역만 혼자서 온천 쪽 여관 섭외하느라 입이 말랐습니다. 절정의 꽃 시절은 지났기에 그나마 빈방이 한둘씩 있는 게 다행이기는 했습니다만 네 군데로 쪼개 여관을 잡았기에 저녁 내내 역만은 바빴습니다. 뭐 그 정도에서 첫날밤은 정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다음날 아침 열댓 명 줄줄이 누고 씻고 바르고 먹고 챙기고 하는 것 살피느라 또다시 네 군데 여관을 뛰어다녔던 역만은 여수공항에 내리자 벌써 하루 다 보낸 것처럼 맥이 풀렸습니다. 그는 전화를 걸었고 울릴 것 다 울린 다음에야 아내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당신 어디야. 어디긴 어디야, 여기지. 글쎄 어디냐고. 묻지 마. 삼도에 있지? 몰라. 당신 정말 묻지마 그것 간 거 아니지? 묻지 마. 나는 ‘제발 물어봐줘 관광’ 가는데 당신은 묻지마 가면 어떡하자는 거여. 묻지 말라니까. 환장하겠네, 정말 이렇게 나올 거야? 이렇게 나온 것은 당신이야. 가두리 좀 나가봤어? 몰라, 나 바빠, 끊어.

아내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죠.

저 속에서 주먹 같은 게 올라왔습니다.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뜨고 나서도 그것은 가라앉지 않았죠. 오메, 뜨네. 쐿덩어리가 뜬다등만, 진짜 뜨네이. 어이, 배도 쐰디 물에 뜨잖어, 하늘인들 못 뜨겄능가. 근디 왜 이리 흔들린다냐. 멀미 나겄네. 휴게소는 언지 들린단가, 우동 한 그릇 묵었으믄 좋겄는디. 가시내들이 뭘 주는디? 커피나 콜라 이런 거여. 커피 한잔 묵었으믄 좋겄다. 여기서는 월매나 할까? 비싸겄지? 공짜여 공짜, 예전에 태국 갈 때 보니께 술도 주고 밥도 주고 그러등만.

역만은 일행들 말 듣는 것도 귀찮아 모자 푹 눌러 쓰고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보고 싶지 않은 게 있으면 눈 감으면 되는데 귀는 꺼풀이 없잖습니까. 그것도 불만이었습니다. 눈처럼 귀도 감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여행 온 게 후회되기도 합니다. 집에서는 바깥이 유혹이었는데 나와 보니 자꾸 마음이 집으로만 갔습니다. 여행이라면 혼자서 훌훌 돌아다녀야 하는데 소풍 나간 유치원 교사가 그렇듯 일도 보통 일이 아닌 거죠. 이 고생 하고 있는 것을 아내가 좀 봤으면 싶기도 하고요.

“섬이 쬐깐하게 보인다요.”

“우리 삼도도 어디 있겄다.”

“어디쯤 가믄 보인다고 그러등만.”

“저것 같네. 긴 것 같구만.”

“오메 누가 우리 밭에다가 물 좀 줬는지 모르겄다.”

“메느리 없소?”

“있기야 있지.”

“우리 염소는 잘 있는지 몰르겄다.”

집 떠나는 순간부터 집 걱정이 일인 할머니들답기는 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여수공항에서 제주공항까지 가다보면 삼도 상공을 지나치게 됩니다. 그들은 집 떠난 지 만 하루 만에 고향마을 위를 지나게 되는 셈인데 걱정이 크기로는 역만이 더 했죠.

할 수만 있다면 기장 찾아가, 좀 거시기해서 그런데, 잠시 집에 좀 들렀다 갑시다, 했을 겁니다. 마을 옆 방파제에 잠깐 비행기 착륙시키고 그 사이 손님들 오줌이라도 좀 누라 해놓고 얼른 뛰어가 아내가 잘 붙어 있나, 가두리는 어떤가, 확인 좀 했으면 좋겠는 거죠. 그러자니, 그럼 잘 댕여오시요이. 그렇게 낙하산 메고 뛰어내려버리고 싶기까지 했습니다.

“오메, 벌써 제주도여? 빠르기는 비호처럼 빠르구만이.”

비행기는 역만의 속하고는 상관없이 제주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제주는 같은 섬이래도 땅이 넓고 숲이 울창한 데다가 높은 한라산이 있어 섬의 느낌은 전혀 나지 않습니다. 풍습이나 환경이 삼도와 달라 한마디로 낯선 대륙이죠. 할머니들은 당장의 높다란 종려나무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뭔 파인애플이 이렇게 크다냐.”

그러나 여자들에게는 이곳이 낯선 곳이 되겠지만 사내들에게는 그렇지가 않죠. 일찍이 뱃사람으로 평생 살아온 이가 남자 회원들 여섯 명 중에 다섯 명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저런 배를 타고 동서남해안 곳곳을 다녔으니 제준들 눈에 익지 않을 수 없었죠. 물론 관광을 하지는 않았지만 누구네 집 몇 번만 가 봐도 그 뒷산이 낯설지 않는 것처럼요. 그 중 사람과 땅의 대면에 감회가 유난한 이가 있었으니 신 노인이었습니다.

점심 먹으러 간 식당에서 그랬습니다. 

“사우나 하시고 곧바로 비행기 타고 오시느라 고생들 하셨습니다요. 식사 후 일정은 아까 공항에서 말씀드렸고, 아시다시피 삼리 바깥만 나가도 내 집과는 다른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혹시 마음에 안 드시는 것이 있어도 제주도의 특성이려니 생각하시고 맛있게 잡수십시오. 지금 나오는 음식은 오분자기탕입니다요.”

오분자기, 오분자기 하등만 버버리 전복이구만 그래. 이것은 베말 아니여? 여기서도 베말로 반찬을 만드네이.

할머니들 또한 아홉 명 중에 여섯 명이 해녀 출신이라 그쪽 세계는 빠삭했죠. 그렇게 궁시렁거리며 식사는 진행 중이었고 그 사이 모서리에 보일 듯 말 듯 걸터앉은 신 노인의 술도 진행 중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술을 스스로 멈추지 못할 정도가 되어버린 지 여러 해 되어서 요주의 인물이었는데 아차 하는 순간 이미 한 병 가까이 들어가 버린 것이죠. 역만은 119 신고 받은 소방관처럼 긴급 투입되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묵어분 걸 어떡한단 말인가.”

그의 아내 칠반댁이 변명했습니다. 그 정도 양이면 변신, 은 충분하죠. 역시나 눈빛이 풀려 있었습니다. 그는 역만이 슬그머니 든 잔을 억세게 그러쥐어 되찾아갔습니다.

“내가 말이여, 여러 동무들하고 같이 여행을 하니껜 말이여, 술을 조심해야 쓰겄다, 이렇게 다짐도 하고 맹세도 하고 그랬는디 말이여, 막상 제주도에 와서 보니께, 예전 생각이 나서 말이여, 한 잔 안 할 수가 없네 그려.”

역만은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 해 전, 신 노인은 장어 낚으러 갔다가 밤안개에 길을 잃고, 늙은 배 낡은 엔진마저 고장이 나 바다를 표류했는데, 사흘 동안 바다에 둥둥 떠밀렸다가 하늘의 도움으로 이 제주도에 도착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생사를 넘나들었던 기억에 어찌 술 한 잔 아니 마실 수 있겠는가 그 말이죠. 신 노인 눈가에 언뜻 물기도 비쳤습니다. 그러니 술병을 뺏을 수도 없었습니다. 사람들 밥숟가락 뜨는 만치 신 노인은 술잔을 착실히 들었습니다.  

아따 그만 좀 자시시오. 허참, 비행기로는 삼십 분도 안 걸리는 거리를 나는 사흘 동안…… 이보게 내가 그때 바다에서 말일세. 예 어르신. 그만 좀 자시라고 안 하요. 칠반댁의 목소리는 점점 올라가고 신 노인 눈은 붉어지고 그만큼 일행의 침묵 또한 깊어졌습니다. 그 정도 자시고 남은 술은 이따가 저랑 같이 한잔 합시다요. 그때 바다에 둥둥 떠서 죽을 시간만 기다리고 있는디 말이여. 또 따르요? 그만 좀 묵으랑게. 칠반댁 입에서는 드디어 새된 소리까지 튀어나오고 나무관셈보살, 보살 할매는 낮게 읊조리고 신 노인은 역만의 손을 꾹 쥐고는 말을 이었습니다. 그때 내가 가장 보고 싶은 얼굴이 말이여, 이 사람이었어. 그는 아내를 턱으로 가리켰죠. 이렇게 마귀할멈 같은 것을 가장 보고 싶었당게.

칠반댁은 남편 말이 애정인지 비아냥인지 구분이 되지 않아 허참, 소리만 냈습니다. 결국 신노인은 두 병을 다 채우고서 쓰러졌습니다. 역만이 들쳐 업은 그는 살아 있는 고무줄 같았습니다.

식당에서의 고난은 저녁에도 되풀이되었습니다. (기껏 찾아간 중산간 지대 목장에서 아녀, 난 높은디 올라가믄 심장이 떨려서 원. 아이고 싫어. 무서워. 이렇게 다들 말 타기를 싫어했죠. 말 끌고 온 주인 보기가 민망해서 어쩔 수 없이 역만이 탔습니다. 일행은 심심하게 흩어져 있고 신 노인은 차에서 코를 골고 그는 멋쩍게 풀밭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여행사에서 정해 준 저녁 식당은 자리돔 구이집이었습니다. 자리돔 구이야 삼도에서도 시시때때 안 먹고 지나가면 서운한 것이죠. 화덕에 굵은 소금 뿌린 자리돔이 놓였는데 너무 잘 아는 게 탈인 경우가 왕왕 있잖습니까. 노인회 부회장이 말했습니다.

“근디 어째 이상하다. 이것 비늘 안 벗긴 것 같네.”

그러자, 그때까지 건성으로 보다말다 하고 있는 이들도 각자 젓가락 들고 건드려 보았죠.

“오메, 진짜네.”

“이것도 그러네이. 이것도 그러고.”

부회장은 종업원을 불렀죠.

“이봐, 아가씨. 이 재리(자리돔을 삼도에서 부르는 말)가 좀 이상하구만. 비늘이 그대로 있어.”

바쁜 와중에 불려나온 종업원은 그래서 어쨌냐는 얼굴을 했습니다. 

“예, 비늘 안 벗겼어요.”

“아 글쎄, 비늘이 안 벗겨졌다고.”

“맞아요. 안 벗겼어요.”

“나 말이 그 말이여. 왜 안 벗겼냐고.”

“원래 안 벗겨요.”

“허참. 그래서 어떻게 묵어?”

“익으면요, 이렇게 껍질을 한꺼번에 벗겨내고 드시면 돼요.”

“껍질은 또 왜 벗겨?”

“껍질을 벗겨야 드시죠.”

잠시 화장실 다녀온 역만은 그제야 저도 젓가락으로 자리돔을 건드려 보고 나서 이게 어떻게 된 것인지 혼란스러웠죠. 아마 제주도에서는 자리돔 구이를 비늘 채 구운 다음 껍질 벗겨 먹거나 또는 이 식당만의 특징인 모양인데 그게 좀 그렇습니다. 전통 음식점 코스라는 말만 듣고 식단을 다 검토하지 않은 게 문제이긴 하지만, 자리돔 구울 때 껍질 벗기는지 안 벗기는지, 그런 것까지 어떻게 확인하겠습니까. 

“제주도까지 와서 재리 구어 밥 묵는 것두 거시기 한디 비늘도 안 벗긴 것을 워치게 묵으라고.”

역만이 나섰습니다.

“아마 제주도에서는 비늘 채 구운 다음 벗겨내고 먹는 모양입니다. 말씀 디렸죠? 삼리 밖에만 나와도 우리 집과는 다른 풍습이 있다고.”

“아, 니미. 풍습도 풍습 나름이지. 고기를 비늘도 안 벗기고 묵는 게 무슨 풍습이여? 상쾡이나 하는 짓이지.”

상쾡이는 돌고래 일종입니다. 종업원은 이제 그만, 하는 얼굴로 말을 이었습니다.

“저희 집은 내내 그렇게 했어요. 그러니 조금 있다가 껍질을 통째로 벗겨서 드세요. 이젠 됐죠?”

“되기는.”

부회장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얼굴을 했습니다.

“생선맛 통 모르는구만. 껍데기가 얼마나 맛있는디. 이렇게 간을 하믄 간도 잘 안 배고 껍데기도 못 먹잖어.”

“껍데기를 왜 먹어요? 살 드시면 됐지.”

“이 처자가 외국에서 살다 왔나.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고긴 말이여, 간 밴 껍데기가 진미여.”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살이 맛있죠. 껍데기가 뭐가 맛있어요?”

종업원도 지지 않습니다. 부회장은 말을 이었습니다.

“어이, 아가씨. 만약에 아가씨하고 나하고 연애를 한다고 해.”

“제가 왜 영감님하고 연애를 해요?”

“내 말 들어봐. 그런다고 치자, 이 말이여.”

“치기는 뭘 쳐요. 나 참 기가 차서.”

그는 내처 이어나갔습니다.

“그래, 그러면 아가씨가 젊은 총각하고 연애를 하는데 있어서 말이여, 서로 상대방의 간뎅이나 창자나 속 뼈따구가 이뻐서 사랑하겄어? 다 껍데기가 좋아서 사랑하는 거여.”

“도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영감님.”

“지금 말이 하는 말이여. 서로가 좋아서 쓰다듬고 입술로 빨고 하는 것도 다 껍데기지 살이 아니다, 이 말이여.”

“영감님, 지금 저한테 성희롱하는 거예요. 신고합니다.”

역만은 순간 그 무엇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었습니다. 성희롱. 얼마나 무서운 단어입니까. 부회장과 함께 경찰서에 앉아 있는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지나갔죠. 그는 몸을 날려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습니다.

“뭔 소리여? 신고라니. 신고라니.”

“연애니, 입술로 빠니, 다 성희롱이에요.”

“아니여. 난 다만 껍데기 무시하지 마란 말을 알아듣기 쉽게 한 것이여. 젊은 것이 사람 무시하고 있어.”

부회장은 부아를 버럭 냈습니다. 말인즉슨 맞는데 비유가 오해 받기 딱 좋았죠. 부회장은 부회장대로, 종업원 아가씨는 아가씨대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죠. 당장이라도 전화 걸듯이 노려보는 종업원에게 역만은 이것만이 살 길이다 싶어 사과하고 또 사과했습니다.

그럭저럭 사태는 정리되었지만 다들 얼굴이 말이 아니었죠. 기대했던 저녁 밥상이 아주 엉망이구나,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역만은 급히 사장과 상의했죠. 급한 대로 불만을 꺼야 했으니까요. 사장이 나서서 이른바 좋게, 좋게 말했습니다.

“서로의 오해는 이 정도에서 풀기로 하시고요, 삼도에서 오셨다니까, 제가 제주도 특산품 일등 회를 하나 올리겠습니다. 바로 다금바리입니다. 값이 좀 비싸기는 하지만 대신 자리돔 값은 안 받겠습니다. 그냥 드시기 바랍니다.”  

다금바리? 말 들어봤네. 텔레비전에서도 자주 나오등만. 그것이 능세(능성어) 종류같이 생겼등만 그래. 능세랑은 다르고. 그럼 이볼락인가? 같다는 사람도 있고 틀리다는 사람도 있고 일행은 다시 말을 뱉기 시작했습니다. 

오래지 않아 사장은 칠팔 킬로 정도 되는 대형 다금바리를 직접 들고 왔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다금바리입니다.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르는 맛입니다. 잠깐 식사하시면서 기다리시면 잽싸게 회를 준비하겠습니다.”

펄떡대는 다금바리 따라 몸 흔들리며 직접 설명하는 것은 보기에 나쁘지 않은 풍경이었죠. 그런데.

“가만, 다금바리 다금바리, 그래서 뭔가 했등만 그것이 허천뱅이 고기 아니여?”

역만은 불에 댄 듯 말 나온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동안 별말 없이 조용히 앉아 있던 편이던 김 노인이었습니다. 그도 삼치, 농어, 장어, 참돔잡이, 하여튼 뱃일과 어부로만 평생 살아온 이였죠.

사장은, 그것은 어떤 말씀이신지, 하는 표정을 했습니다. 

“나가 저 고기를 잘 알어. 딱 허천뱅이 고기구만.”

“우리 다금바리에게 다른 이름이 있었다는 것을 잘 몰랐네요. 허천뱅이, 하여간 그 이름은 무슨 뜻입니까, 어르신?”

“뭐 알라고 그래.”

“하하. 말씀을 해 주셔야 저도 다른 손님들께 설명을 해 주죠.”

“말 그대로 허천뱅이여. 허천뱅이란 말 모르셔? 닥치는 대로 묵어 조지는 것을 허천뱅이라고 하잖어. 걸신들린 것처럼 말이여.”

“아, 예. 다금바리가 워낙 포식성이 강해서 잘 먹는다고 저도 들었습니다.”

“그냥 잘 묵가니?”

“그럼……”

김 노인은 마을회관에 앉아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주변 동료들에게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예전에 고기 잡으러 갔다가 똥 누믄 말이여, 아, 이거 식사시간에 이런 말을 하게 되서 좀 그렇지만, 똥을 누믄 저것들이 달라들어 서로 쌈을 하믄서 똥을 빨아먹었당게. 그래서 허천뱅이 물고기라고 우리가 불렀어. 어이 생각 안 나? 자네하고 나하고 삼부도 돔 낚으로 갔다가 자네도 똥 눴잖어. 그때도 저것들이 달라붙어서 똥 갖고 개 싸우듯이 쌈을 하면서 우당탕, 서로 묵을라고 그랬잖어.”

“맞어, 그랬어. 그게 저 고기였나?”

지목당한 노인이 동조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 고기가 잽혀도 안 묵고 땡겨부렀당게(버렸다). 나는 제주도 사람들이 다금바리, 다금바리, 그래서 뭔가 했등만 똥 묵은 허천뱅이였구만 그래.”

사장은 들어가지도 못하고 나가지도 못하고 그저 그곳에 서서 요동치는 다금바리만 빤히 내려다보았습니다. 역만도 마찬가지로 회를 쳐 달라, 도 못하고 하지 맙시다, 도 못했죠. 결국 식사는 회 없이 그저 그렇게 마쳤고 역만은 서둘러 일행을 여관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독주(毒酒)라도 있으면 몇 사발 퍼마시고 싶은 심정이었죠. 아내는 아예 전화를 꺼두었습니다. 

“허, 이 먼 곳까지 와서.”

“글쎄, 말이여.”

“허참, 허.”

남자 회원들은 여관 입구에 서서 담배 물고 한 마디씩 했습니다. 밥도 시원찮고 노는 것도 그렇고, 한 마디로 재미없다는 것이죠. 이 좋은 곳까지 왔는데 말입니다. 객고도 쌓였다는 소리고요. 듣자니, 대도시 사람 중에는 지하철이나 마을버스만 타도 객고(客苦)가 쌓이는 이들이 많아, 그들을 위해 그렇게 많은 러브호텔이 들어섰다고도 하지 않던가요. 도시사람, 섬사람 씨종자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물론, 연세가 연세라 뭐 거창하거나 분명하거나 그런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죠.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사내란, 젊어서는 몸은 부드럽고 딱 한 군데만 단단하다가 나이 들고 나면 몸은 딱딱해지고 딱 한 군데만 부드러워진다고 하지 않던가요. 그러니 그들은 고향 떠나 먼 곳에 왔다는 기분 같은 것, 나중에 이야깃거리 될 만한 그 무엇 정도를 원하는 것이겠습죠.

뭐 인간적으로 이해 못할 것은 없겠지만 역만은 만사 귀찮았습니다. 누군가 목에 칼을 들이대면 그냥 목으로 칼을 푸욱 눌러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죠. 못 들은 척 자신의 숙소로 들어갔습니다. 

둘째 날은 그렇게 저물고 셋째 날이 밝았습니다.  

회원들은 확실히 볼이 부어 있었습니다. 역만도 잠이 오지 않아 다된 새벽에 슬그머니 편의점에서 소주 사다 마신 탓에 숙취가 심했죠. 응답 없는 전화만 열댓 번 눌렀을 겁니다. 

아침밥은 뭐냐. 곰탕 같은 거였으면 좋겄다, 세상에 제주도까지 와서 재리 꿔서 밥 묵을 줄은 누가 알었냐. 회도 못 묵었잖어. 회야 우리도 노상 묵는디. 여기 돼지국밥이 유명하다등만. 접때 누가 여기 와서 묵었다는디 터럭이 끄멓게 붙었다 그러등만, 돼지 냄새도 많이 나고. 어이 거시기 어메, 내 칫솔 봤소? 거기 칫솔을 내가 어치게 알어, 누가 수건 쓰고 이렇게 해놨다냐. 아따, 담배는 나가서 좀 피시오.

다시 말들은 시작되었습니다. 역만은 나는 바보다,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아무것도 안 들린다, 되뇌며 예약해 둔 인근 식당으로 일행을 데리고 가는 것으로 또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이날 하루도 길었습니다. 

삼일포 가서 유채밭을 만나니 그나마 조용해졌고, 거기서는 사진도 좀 찍고 했는데 꽃이 주는 영향이랄까, 회원들은 잠시나마 즐거워했습니다. 역만은 그때까지 가두리 견학을 못했죠. 다음날이면 돌아가야 하는데 말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일행과 잠시 헤어졌습니다. 

얼른 택시 타고 다녀오겠다고 나섰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되겠어요. 자그마한 삼도에서도 왔다갔다 하다보면 하루해가 설핏인데, 이 대륙 같은 곳에서야. 가두리 담당자 만나기까지만도 착실히 시간 잡아먹고 심지어는 일전에 전화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데에도 시간이 좀 걸리고, 그 사람 따라 이곳저곳 다니다 보니 오후 해가 벌써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마치 젖먹이 자식 놀이동산 보낸 것처럼 자꾸 맘에 걸리고 눈에 밟혀 집중할 수 없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야 없죠. 당장, 아내에게 무슨 소리를 듣겠습니까.

신개념 양식이란 수심 30미터 정도에 그물을 고정하고 관을 통해 먹이를 공급하는 것인데, 관리는 다이버들이 한다고 합니다. 단지, 시설 투자에 어마어마한 돈이 든다는 것만 귀에 박혔는데, 하긴 포기도 견학과 학습의 결과물이기는 하겠습니다.

그렇게 발품 팔다가 허겁지겁 돌아오니 이미 어두워졌습니다. 헤어지면 보고 싶고 보고 나면 이 갈린다는 말이 있죠. 뭐 보고 싶기까지야 했겠습니까만 일행 수 확인하고 나니 안도감도 들고 한편으로는 잠시 자유로웠던 몸이 다시 묶이는 것 같아 암담하기도 했습니다. 일행은 박물관 견학도 포기하고 아주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무료함에 지친 몰골이었죠.

그러니까 오후 내내 여자 회원들은 방에 들어가 티비를 보다가 공원 어슬렁거리는 것을 되풀이하고 남자 회원들은 허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심심하게. 허참. 그런 소리나 하며 담배만 뻑뻑 피웠답니다. 겉으로는 말을 안 해도 우리를 팽개치고 어디를 갔었냐, 이런 불만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죠.

딱히 뭐라고 하기도 뭐하고 해서 역만도 불편하게 입맛만 다셨습니다. 그때, 

‘삐오오옹, 팡.’

갑자기 불꽃놀이 축포가 터진 것입니다. 꼬리 늘어뜨린 불덩어리가 하늘로 올라가더니 수천 개 불꽃으로 부서지며 떨어져 내렸습니다. 방바닥에 허리 붙이고 있던 일행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역만은 버스 기사에게 얼핏 들었던 것을 떠올렸는데 어디어디 국빈이 찾아와 축하 행사를 한다는 거였습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삼도노인회 제주 방문 기념 축하행사일 리는 없지만 어쨌든, 생일상은 주인공이 아니어도 기분 좋은 법 아니겠습니까. 그는 내친 김에 한 마디 했습니다.

“잘 보시오. 내가 왜 늦은지 아시오? 아까 도청에 가서 우리 삼도노인회 회원 분들이 친히 방문을 하셨으니 돈 아끼지 말고 불꽃포를 팡팡 좀 쏴달라고 도지사한테 일르고 왔소.”

믿고 안 믿고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죠. 역만은 그 말 해놓고 혼자서 낄낄 웃었습니다. 그렇게 웃기라도 안 하면 어떻게 돼버릴 것 같았죠. 회원들은 옹기종기 앉아서 불꽃을 바라보았습니다. 빙글빙글 도는 놈도 있고 그냥 한 번에 산산이 부서지는 놈도 있고 미련이 많아 오래도록 타고 내려오는 놈도 있고, 이렇게 하늘에 그려지는 그림도 여러 가지였습니다. 

느닷없는 풍경에 다들 탄성을 지르는데 집사 할머니 옆에 딱 붙어 있던 노 할머니의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역만은 너무나도 경건한 그녀의 기도에 웃음을 멈췄죠. 두 눈 꼭 감은 채  두 손 빈틈없이 부여잡고 뭐라고 중얼중얼했고 쓔우웅 퍼엉, 한 번씩 불꽃이 작렬하고 나면 고개 숙이며 다시금 이어졌습니다.  

너무나도 절박한 자세라 집사 할머니도 따라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기도 덕분에 일행은 다시금 침묵해야 했습니다. 둘은 나지막이 찬송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뜨악하기는 했지만 종교의 자유는 국가가 나서 보장해주는 것이니 삼도청년회장이 나선다고 막아지겠습니까, 어디. 한동안의 불꽃놀이 동안 그들의 예배는 계속 되었습니다.

불꽃놀이가 끝나고 마침내 아멘, 소리가 났습니다.

“성님, 무슨 기도를 그렇게 길게 드렸소? 성님이 하도 신심 있게 기도를 드려서 나도 자연스럽게 따라 했소.”

집사 할머니가 물었고 노 할머니는 주름 가득한 눈을 들어 가느다랗게 입을 열었습니다. 

“겁이 나서.”

“믿는 사람이 겁이 다 뭔 말이요. 뭐가 그리 겁납디여?”

“하늘에다가 불질을 해댄디……”

“……”

“우리 하나님 놀라실까봐.”

“예?”

“생각해보소. 저렇게 하늘에다가 대포를 쏴분디, 얼마나 놀라시겄는가. 더군다나 우리 왔다고 불질을 한단디.”

그동안 불꽃놀이를 본 적이 없으신가, 보살 할머니가 물었고 처음 본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허참, 불꽃놀이 처음 보신다니께 그럴 수도 있겄지만, 무슨 하느님이 저 정도 불꽃놀이에 놀라시는 양반이요?”

“그, 그런가?”

“우리 부처님은 저런 것 수만 발을 한꺼번에 쏴도 눈 하나 끔쩍 안 하시는디.”

역만은 마을에 불난 것처럼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어떡해서든지 종교끼리의 마찰을 막아야 했지요. 근데 딱히 입안에 괴는 말이 없었습니다. 집사 할머니는 마귀를 만났을 때 아마 저런 얼굴이 되겠구나, 싶은 표정으로 보살 할머니를 깊숙이 쏘아보았습니다.

“순 돌덩어리 우상이 그럼 뭔지 알어서 눈이나 깜빡 한다요?”

“어이 동생,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우리 부처님이 어쪈다고?”

그 사이 일행은 한걸음씩 멀어지기 시작했고 역만은 제발, 소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뭔가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기만 했습니다.

“엊그저께, 절에서도 말을 함부로 한 것 참았는디, 오늘은 증말 못 참게 하는구만.”

“성님이 먼저 우리 하나님을 욕 뵜잖소.”

“내가 무슨 욕을 뵈. 저 성님이 그렇게 생각했다고 하니께 하느님 정도라믄 불꽃 정도에 놀란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이 말이었지.”

“하느님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니께.”

삼도청년회장 의무에 종교분쟁 조정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강제조정 권리는 없는 게 확실했죠.

“어이, 나가 아무래도 신심이 약해서 잘 못 생각했는갑네.”

노 할머니의 겁먹은 목소리는 더욱 가늘어졌습니다. 집사 할머니는 화살을 보살 할머니에게서 노 할머니에게로 돌렸습니다.

“성님 잘못이기는 하요. 우리 하나님이 워떤 분이신디 저런 가짜 대포에 놀라신단 말이요? 그러니께 우상종교한테서 그런 소리나 듣지.”

역만은 말보다 손을 뻗어 보살 할머니 팔을 붙들었고 제발, 제발, 제발, 이런 단어가 손을 통해 그쪽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그러지? 내가 잘못한 거지?”

“맞소. 하나님 무시죄요. 다시 기도합시다. 성님이 먼저 기도를 올리시오.”

둘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기도를 시작했죠. 보살 할머니는 역만에게 팔을 잡혀 있어서 그러기도 하지만, 갑자기 땅바닥으로 상대가 꺼져버린 탓에 딱히 받아치기도 뭐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우리 주님을 나가 (내가) 잘 몰라보고…… 저런 불질에도 놀라신다고 해서…… 이런 기도와, 화를 누르기 위한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소리가 그런대로 어울리는 불협화음을 만들었죠.

그렇다면 나머지 일행은 어땠을까요. 다들 저만치 떨어진 채 짐 보따리를 하나씩 짊어지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잔뜩 시달린 얼굴이었죠. 보건복지부 노인문제 담당자가 보았다면 역만은 당장 구속감이었습니다. 그는 아이를 낳듯 끄응 이를 물었죠. 택시 타고 오다가 보았던 것이 번쩍, 떠올랐고 일을 저질러버리고 싶은 충동이 순간 생긴 것이죠. 아무렴요.   

기도 끝나기를 기다린 그는 마지막 결전을 알리는 장수처럼 일행을 불러 모았습니다. 흥을 잃어버린 일행은 다시 한번 모이는 데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일인당 삼만 원씩 무조건 내시오. 그리고 나를 따라오시오. 인자부터는 오직 내 말만 들으시요이. 약속하신 대로.”

일행은 별 대꾸 없이 주섬주섬 쌈짓돈을 꺼냈죠. 그가 일행을 데리고 간 곳이 어디일까요. 바로 극장식 나이트클럽이었습니다.

여기가 뭐 한 데냐, 극장이냐? 술집이냐? 역만은 화난 사람처럼 무조건 내 말 듣기로 했잖소, 입을 틀어막았고 남자들은 무표정으로 기대감을 감추었습니다.

이제 막 문을 연 시간이라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역만은 일행을 맨 앞자리 테이블 쪽으로 길게 학익진을 짜듯이 배치했죠. 일행이 앉은 좌석 코앞에는 넓은 스테이지가 자리하고 있고 그 위 무대에는 밴드 노래하는 무대, 한 켠에는 음악 틀어주는 디제이 자리, 그리고 그 사이사이 유리박스가 위치했는데 휘황찬란한 조명이 그것들을 한꺼번에 뒤덮고 있었습니다. 

삼도노인회 회원들은 그래서 붉고 푸른 조명을 받아 평소와 다른 얼굴이 되었죠. 할머니들은 업소의 위용과 화려함에 눌렸는지 제비새끼처럼 늘씬하게 차려입은 젊은 웨이터들이 맥주와 안주를 가져다 놓아도 다들 말없이 앉아 있기만 했습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동안 역만은 일행 앞에 서서, 오늘이 여행 마지막 밤, 피로와 여독, 여기는 관광특구, 노래와 술, 단합과 즐거움 따위의 단어를 적절히 배합하여 멘트를 했습니다. 그리고 팁 찔러준 보람이 제대로 나서, 멀리 바다 건너 삼도에서 이곳 제주를 방문하신 노인회 회원 일행 여러분을 가슴 열고 뜨겁게 맞이한다는 디제이 멘트 또한 제때 나와 주었죠. 일어서서 인사하는 회원들도 여럿이었고요.

그리고 오래지 않아 관광특구답게 사람들이 몰아닥쳤고, 제주의 깊고 뜨거운 밤은 시작되었습니다. 귀청을 찢어놓을 것 같은 음악이 쉬지를 않고 그리고 마침내 무대 위로 무희들이 등장했습니다. 붉은 머리, 노랑머리, 갈색머리, 검정머리를 한 미녀들이 무대와 유리박스로 걸어가더니 늘씬하고 풍만한 몸을 드러내며 흔들기 시작한 것이죠. 옷인들 제대로 입었겠습니까. 좀 굵은 끈으로 민망한 곳을 가리는 표시만 했죠. 가슴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오려고 출렁거리고 엉덩이와 엉덩이 사이 속으로 들어간 끈은 머잖아 끊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옴마야.”

“에잉?”

“뭐, 뭐시여 시방.”

“오메, 지금 뭐 한다냐.”

할머니들의 반응은 이랬죠. 한마디로 놀라 자빠질 정도였습니다. 남자 회원들은 아무 말 없이 지그시 바라보고만 있었고요.

“저것들이 입은 거여, 벗은 거여?”

“백주대낮에 뭔 짓이여, 시방.”

“뭘 보요?”

전면에 등장한 반라의 댄서들과 가장 앞자리의 할머니들은 아무래도 뒤섞이기 힘든 성질의 것이죠. 눈이 민망하고 늙은 남편 멍하니 바라보는 것도 괴로운 할머니들은 세상 못 볼 것을 봤다는 투로 분연히 일어섰습니다. 역만이 비장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지금 나가믄 벌금 백만 원을 내야 하요.”

“에잉?”

“오메, 백만 원?”

“뭔 소리여.”

“그것이 여기 법이요. 아까침에 특구라고 말씀드렸잖소. 벌금 안 낼라믄 얼른 앉으시오.”

벌금 소리에 그들은 화들짝 놀라 앉았습니다. 그렇지만 어디 똑바로 뜨고 쳐다보겠습니까? 눈 감은 이도 있고 돌리는 이도 있고 탁자만 바라보는 이도 있고 그랬죠. 역만은 한소리 더 했습니다.

“저거 안 보믄 저 아가씨들한테 십만 원씩 돈을 물어줘야 하요이. 돈 더 내실라요?”

“에잉?”

“저 뒤에 벌금 걷는 사람들 서 있잖어요.”

할머니들은 고개를 똑바로 했습니다.

“아주 좋아 죽네, 죽어.”

“어이 안 보믄 벌금 내야 된다고 안 한가.”

“눈깔 튀어나오겄소.”

“난들 보고 싶어서 보겄는가. 당신도 벌금 안 낼라믄 잘 보소.”

부부쌍은 아무래도 이런 말이 오고가지 않을 수 없었죠. 그렇게 해서 가장 적극적인 관객이 되었다고 합니다. 역만은 씨익 웃으며 테이블에 놓인 맥주 하나 끌어당겨 시원하게 한잔 했습니다. 제주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흘러갔다고 합니다.《문장 웹진/ 2007년 6월》


한창훈

추천 콘텐츠

빨간 집에 사는 소녀

빨간 집에 사는 소녀1) 김숨 1 내 방엔 거울이 있어. 빛— 빨간색. 세상의 모든 빛— “지금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2 지금, 지금, 그리고 지금, “난 다른 곳에 있고 싶어.” 3 딱딱하게, 딱딱하게, “내 사랑을 받아 주세요.” 다른 곳에선 똑같은 노래가 다르게 흘러, 다르게 슬프게, 다르게 쓸쓸하게, 다르게 외롭게. 다른 곳의 다른 나. 난 나를, 난 나를, 딱딱하게, 딱딱하게, 빨갛게, “난 설레고 싶어.” 4 다섯 살 때 처음 빛을 봤어. 네 곁에, 내 곁에, 빛은 환한 어떤 것. 아, 난 날······. 다섯 살 때 처음 빨간색을 봤어. 엄마가 빨간색을 가져다 내 얼굴에서 45도 사선 밑에 놓았어. 빨간색을 나는 외우고 외웠어. 내가 빨간색을 외우자 엄마가 빨간색을 치우고 노란색을 놓았어. 나는 노란색을 외우고 외웠어. 그리고 파란색, 흰색, 검은색. 세상은 다섯 가지 색깔로 만들어졌어. 세상은 다섯 가지 색깔로 만족해. 다섯 색깔 무지개, 다섯 색깔 도마뱀. 분홍색은 꽃에게. 초록색은 달에게. 내 얼굴에서 45도 사선 밑에 놓여 있는 빨간색만 나는 볼 수 있어. 내 방 거울은 흐르지 않아······. 5 딱딱한 벽에 딱딱하게 거울이 걸려 있어. 거울이 날 봐. 거울은 날 봐. 거울은 엄마 몰래 울고 있는 날 봐. 난 날 안 봐. 음, 흐른다는 건······. 생각하고 싶지 않아. 내가 생각하고 싶은 건 오직 하나. 6 빨간색 크레파스를 선물 받고 난 흥분해 소리 질렀어. “엄마, 난 화가가 될 거야!” 빨간색 크레파스가 흰 도화지 위를 신나게 날아다녔어. (그녀의 엄마) 뭘 그리는 거야? (그녀) 집! 빨갛게, 빨갛게, (그녀의 엄마) 뭘 그린 거야? (그녀) 집! 엄마, 난 집을 그렸어! (그녀의 엄마) 네가 그린 집을 만져 보렴. 엄마가 내 손을 내가 그린 집으로 데려갔어. (그녀의 엄마) 집에 창문이 없네. (그녀의 엄마) 집에 문이 없네. (그녀의 엄마) 집에 지붕이 없네. 난 창문을 본 적 없어, 난 문을 본 적 없어, 난 지붕을 본 적 없어. (그녀의 엄마) 집에 나무도 없네. 7 집에 나무가 있어야 해? 세상에 나무가 있어야

  • 관리자
  • 2024-05-01
원경

원경 성혜령 건강검진을 12월 마지막 주까지 미루는 사람이 자기 말고도 이렇게 많으리라고 신오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기실의 긴 좌석 중간중간 빈자리가 있긴 했지만, 신오는 한구석에 서 있기로 했다. 초음파 검사실 앞 복도는 자기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며 서성이고 있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헐렁한 가운에 느슨한 고무줄 바지를 입고 핸드폰을 보며 기다림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신오는 이들 중 내년에는 따뜻한 휴양지에서 연말을 보낼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 궁금했다. 혹은, 오늘 치명적인 암이나 뇌동맥류 같은 것들을 발견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인생을 살게 될 사람들은? 그런 일들은 언제나 일어나고 있었다. 직장 생활을 10년 정도 하니 주위에 아픈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전 직장 동료는 출근길에 쓰러진 뒤 안면마비를 얻었다. 한쪽 입꼬리가 위로 당겨 올라갔는데 그는 멀쩡한 다른 쪽 입꼬리도 끌어올려 웃는 얼굴을 만들곤 했다. 병가에서 돌아온 뒤 매일 웃는 얼굴로 제일 먼저 출근하는 동료를 보면서 신오는 이직을 결심했다. 신오는 모든 일이 가능하지만 대개 나쁜 일들이 더 자주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되도록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꾸준히 하려고 했다. 불행은 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오히려 쉽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도 있었다. 복부 초음파를 보던 의사가 “어랏?” 하고 실없는 소리를 내며 배꼽 부근을 세게 눌렀을 때도 신오는 방귀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뿐이었다. 의사가 차가운 젤을 다시 묻히고 초음파 단말기를 문지르다가 복막에 종양이 보인다는 말을 했을 때는, 그래서 요새 변비가 심했나, 라는 생각이 먼저 났다. 대형 병원에 가서 생검과 CT, MRI 검사를 마치고 소화기내과 교수의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도 신오는 회사 메신저를 보고 있었다. 몇십 억 단위 공공사업의 수주가 걸린 입찰 제안서의 마무리를 앞둔 시점이었다. 병원 검사로 연차를 낸다고 했을 때 팀원들은 모두 별일 없을 거라고, 하루 푹 쉬고 오라고 말했지만 메시지를 보내면서 신오를 계속 태그했다. 신오는 그날 마지막으로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는 젊고 피곤해 보였다. 예약을 가장 빨리할 수 있었던 의사였으니 어쩔 수 없지, 신오는 생각했다. 의사는 신오가 자리에 앉자 간단한 인사도 없이 모니터 화면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마우스 커서로 신오는 잘 알아볼 수 없는 흐릿한 음영을 짚었다. 여기예요, 여기. 의사는 약간의 승리감마저 느껴지는 말투로 말했다. 복막의 종양은 전이 암이고, 여기가 원발 암이라고. “이게 숨어 있어서 찾기 어려웠거든요.” 의사는 다시 한번 마우스 커서를 움직였다. 췌장하고 담도 사이인데 위치나 크기가 좋지 않다고. 오늘이 금요일이니 당장 다음 주부터 항암치료로 크기를 줄여 보고 수술을 잡아 보자고. 신오의 핸드폰이 또 진동했다. 신오는 치료를 이주만 미뤄도 되냐고 물었다. 프로젝트가 있어서요. 이주 후에 마감이라. 의사는 처음으로 웃어 보

  • 관리자
  • 2024-05-01
야생 식물원

야생 식물원 하가람 식물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다이아몬드 모양의 철골로 둘러싸인 거대한 유리 온실에는 열대와 지중해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이국적인 식물이 자란다고 했다. 한 달 전 나는 식물원 근처에 있는 여러 호텔을 찾아 은규에게 링크를 보냈다. 보통 때의 그라면 어디든 좋다고 했을 것이다. 레스토랑도, 카페도, 동네의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조차도 모조리 내 선택에 맡기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날 은규는 이미 예약한 곳이 있다고 하여 나를 놀라게 했다. 은규가 보내 준 링크를 열어 보았다. 넓은 통유리 창 너머로 식물원과 공원이 내다보이는 스위트룸이었다. 나는 조금 들뜬 채 답장했다. — 우리가 만난 지 곧 1년이래. 믿어져? 1년이라는 시간은 내게 유별났고 은규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는 것이었다. 그가 전에 사귄 여자친구는 단 두 명인데 각각 4년, 5년을 만났다고 했다. 매번 석 달도 채 넘기지 못하는 나와는 달랐다. 이따금 은규에게 이전 연인들에 대해 물었다. 그들이 어떤 성향의 사람이었고 어떤 외양을 가졌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응응, 하며 대꾸해 주던 은규는 내가 그녀들의 음악 취향이나 살던 동네처럼 구체적인 정보까지 캐묻자 태도를 바꾸었다. 기억 안 나. 그는 말했다. 다 옛날이야기라고. 그 후로는 이전에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그녀들을 생각했다. 눈, 손톱, 말투, 그리고 신발. 나와 닮았을지, 닮았다면 얼마나 닮았고 다르다면 무엇이 다를지도. 상상을 이어 가다 보면 늘 한 가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은규는 한 번도 애인과 잠자리를 가진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여자와 밤을 보내는 일이 오늘 그에게는 처음이었다. 서른을 넘긴 남성에게서 보기 드문 경우였지만 그가 처음인 게 좋았다. 그 점이 무엇보다도 나와 그녀들을 구분 지어 주는 것만 같았다. 차창에 머리를 기대었다. 햇볕에 데워진 창문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인터넷으로 보았던 화려한 꽃과 기다란 나무들을 떠올렸다. 노랗고 푸르고 분홍빛이 맴도는 공간을. 여름 휴가철이었고 도로는 차들로 빽빽했다. 졸음 껌을 씹는 은규를 보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운전하고 싶었는데.” “다음에. 너 힘들어.” 은규가 말했지만 나는 안다.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그는 내게 차를 맡기지 않을 것이다. “보면 놀랄걸? 너무 잘해서?” 나는 허리를 세운 채 한 손으로 반원을 그려 보았다. 휙휙. 입으로 소리 내며 운전대를 쥔 그를 따라 했다. 그가 웃었다. 머릿속으로 주행하기. 그것은 나만의 놀이였다. 캠퍼스 변두리에 있는 H관 1층, 5평 남짓한 주차관리실에서 상상력을 충족시켜 줄 만한 것은 많지 않았다. 먼지 쌓인 커피믹스와 낡은 소파, 책상 위에 시간별로 놓여 있는 분홍색, 파란색, 노란색 주차권들. 지겨운 서류, 서류, 서류. 드물게 실장이 자리를 지키는 날이 아니면 대체로 혼자 그곳에서 일했다. 사람들이 찾아와 주차권을 사거나 정기 등록을 마친 후 돌아가면 나는 모니터에

  • 관리자
  • 2024-05-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