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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의 역사

  • 작성일 2011-02-26
  • 조회수 1,727

 

약의 역사

 

오현종

 

 





 






나는 공항 출국장에서 비행기가 뜨길 기다릴 때마다 을 샀다. 비타민제, 프로폴리스, 오메가3, 홍삼 같은 것들을. 무료해서이기도 했고 필요에 의해서이기도 했으며, 어쩌면 여행 마지막 날의 피로를 풀어 줄 거란 기대에서 시작된 습관일지도 몰랐다. 색조 화장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다른 여자들처럼 화장품 코너에서 환율을 따져 보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의 종류가 다양하고 저렴한 홍콩 첵랍콕 공항을 경유할 때는 비타민제는 물론이고, 파스며 연고며 백화유까지 비닐 백 가득 담아 가지고 탑승을 했다. 나는 기내용 캐리어 지퍼를 열고 약병을 챙겨 넣을 때 느끼는 안도감 같은 것을 좋아했다. 당분이 높은 초콜릿 박스를 집어들 때 느낄 죄책감보다는 분명 나았다.

 

*

 

내가 태어나 가장 처음 먹은 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두 살 무렵 자라를 끓여먹었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다. 푹 고아낸 자라의 등딱지를 떼어낸 다음 흐물흐물해진 살을 발라먹은 게 아니라 국물만 쪽 빨아마셨다고 한다. 숟가락질도 잘 못하는 아기가 맛있다고 냠냠 먹었을 리는 없고, 으로 먹었다. , 혹은 보양식.

어머니는 내가 어른이 된 후에도 몇 번 들통에 넣어 끓인 자라 이야기를 했다. 자고 나면 베개 위에 머리 모양으로 동그랗게 젖은 자국이 찍혀 있을 만큼 땀을 흘렸는데, 외할머니가 좋다는 말을 듣고 어디서 구해 온 자라 덕에 나았다고. 도대체 자라를 몇 마리나 사온 거냐고 물은 적이 있지만, 그 때마다 어머니도 외할머니도 말꼬리를 흐렸다.

“정말 몸이 약했어. 타고난 거지. 오죽했으면 작명소에서 이름에 이을 승(承) 자를 넣으라고 했겠니. 지금은 간신히 사람 꼴이 된 거지.”

자라가 컸냐고 물었더니 어머니는 왜 그런 걸 묻느냐는 표정으로 “작았어” 하고 작게 대답했다.

“그럼 새끼자라였나? 국물 말고 건더기는 어떻게 했어요? 삶은 자라.”

“응? 모르지. 그런 걸 누가 먹겠니.”

그런 걸 누가 먹느냐니. 그럼 건더기가 아닌 국물을 다 마신 두 살배기는 뭐란 말인가. 들통 속의 자라들은 제 몸을 쥐어짜 국물을 내고, 땀을 국물처럼 흘리던 아기는 땀을 멈춘다. 몸이 보송보송해진 건 다행이나 어쩐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이라고 해도 하필이면 자라라니. 옛날에 죄인을 솥에 삶는 팽살(烹殺)이란 형벌이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일 년 반이 넘도록 석사논문을 붙잡고 있긴 하지만 엄연히 사학을 전공한 수료생이니까. 한편으론 끓는 물에 오래 삶아져 기가 쪽 빠져나간 자라를 아버지가 먹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초등학교 때였던가, 아버지가 친척들과 어울려 사슴 농장에 다녀온 휴일 오후를 드문드문 기억하고 있었다. 사이다 회사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길쭉한 유리컵과 코카콜라 병, 그리고 “사슴 피는 콜라에 타 마시는 거야”라는 큰아버지인지 누구인지 가늠할 수 없는 남자 목소리. 그날 연둣빛 잔디가 깔린 앞마당은 동네 여자들이 모여 앉아 빈대떡을 부치는 시골 잔칫집처럼 시끄러웠고, 녹용, 보약, 생피 같은 단어들이 웃음 소리에 비벼졌다. 이상하게도 사슴 피가 얼마나 빨갰는지는 떠오르지 않고 기대감에 잔뜩 흥분한 남자들의 목소리만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마치 소매에 묻어 오래 지워지지 않는 작은 핏자국처럼.

식탁 앞에 마주앉아 마늘을 편으로 썰던 어머니는 가스레인지 앞으로 옮겨갔다. 천장에 매달린 백열등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 부엌 안이 어두웠다. 들창 밖으론 2월의 해가 저문 지 오래였다. 전등을 갈지 않고 내버려 두면 숨이 넘어가는 노인처럼 곧 깜박깜박 점멸할 거였다.

“쉬는 날, 오빠에게 등을 갈아 달라고 해야겠어요.”

“바쁜 사람한테 뭘. 등만 사오면 내가 갈지.”·

어머니는 조리대의 보조등을 켰다. 프라이팬 위에 마늘과 양송이버섯을 올려 올리브오일로 볶자, 독한 마늘 냄새와 기름내가 실내를 떠돌았다.

몇 해 전 환갑을 넘긴 어머니는 대학병원에서 경미한 당뇨와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폐경이 온 뒤론 달맞이꽃 종자유로 만든 알을 백화점 지하 매장에서 사오는 모양이었다. 아버지 역시 고혈압과 관절염으로 을 먹었다. 철마다 보신으로 소꼬리와 사골을 보름씩 고아 먹던 아버지는 언젠가부터 기름진 반찬은 냄새 맡기도 싫다고 말했다. 내가 먹으려고 식용유에 부쳐 놓은 햄 덩어리를 보면 젓가락으로 접시를 밀어 놓았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구제역이며 조류독감이며 한참 시끄러웠던 후로는 아예 채식주의자가 되어버렸다. 아버지는 회사를 오빠에게 맡긴 채 반쯤 뒤로 물러나고부터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고, 식탁 위에 올라오는 음식에 더욱 까다롭게 굴었다. 밥상에는 자연스럽게 유기농 먹거리를 유통하는 조합에서 구입한 채소와 버섯류 등으로 조리한 반찬이 올라왔다. 냉장고 도어 칸에는 흑마늘 진액, 돌미나리즙, 석류액, 홍삼 절편이 꽂혀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제 그런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나이일 것이다. 식탁 소금통 옆에도, 낡은 텔레비전이 놓인 수납장 서랍에도, 안방 화장대 위에도 각종 통과 연고들이 굴러다녔다. 개중엔 제조일이 오래된 것도 적지 않았다.

언젠가 들은 바로는 노인성 질환으로 인한 은 한번 먹기 시작한 이상 끊을 수 없다고 했다. 의사의 처방에 따라 의 복용량을 조절하면서 생(生)이 끝나기 전날까지 먹게 될 것이다. 최근 아버지가 먹는 알만 해도 비타민제까지 포함해 하루 열 알 정도다. 하루에 열 알이면 일 년에 삼천육백오십 알. 십 년이면 삼만 육천오백 알이다.

알록달록한 삼만 육천오백 개의 알을 쏟으면 욕조를 가득 채울 수 있을까? 수도꼭지로 온수를 틀어버리면 알들은 각설탕처럼 천천히 천천히 녹아내리겠지.

나는 물끄러미 어머니의 마른 등을 바라보다가 막 페퍼밀로 갈아 놓은 후추를 건넸다. 후추 때문에 마늘과 버섯을 태우면 곤란하다. 탄 것을 많이 먹으면 암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고, 아버지는 누누이 말했다. 후추 탓인지 기름 냄새 탓인지 한동안 멎었던 기침이 목구멍 안쪽에서 터져 나왔다.

콜록 콜록 컹 컹 커엉 컹 컹.

기침이 반복될수록 개가 짖는 것 같은 괴상한 소리가 났다. 몸이 아프면 온몸의 감각이 더듬이처럼 예민해졌다. 커피를 사마시고 전동차를 갈아타는 도시인이란 느낌보다 콩팥과 대장과 티눈이 달린 동물이란 느낌이 앞서곤 했다.

컹 컹 커엉. 점점 개가 되는 기분이었다.

“오늘은 저녁상이 늦었네. 넌 기침하지 말고 들어가 누워.”

가스레인지 후드의 환풍기를 틀자 위이이잉 하는 소음이 기침 소리와 음식 냄새를 한데 집어삼켰다.

“괜찮아요. 보름도 넘었는데 곧 낫겠죠.”

나는 식탁 위에 놓인 화장지를 뽑아 코를 풀었다. 코를 풀고 보니 콧물에 빨간 피가 엉겨있었다.

“검사는 다 받아 본 거니?”

“그냥 감기, 기관지염이래요. 신종플루는 아니고.”

“뭐든 간에 쉬어야 낫지. 감기가 오래가도 너무 오래가네. 은 제대로 먹고 있지?”

“먹어요.”

먹고 좀 자.”

나는 뜸 들이는 압력밥솥에서 밥 냄새가 새어나오자 누구에게 쫓겨나기라도 하듯 부엌 밖으로 나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고 진밥을 해먹기 때문에 나는 따로 소형 전기밥솥에 고들고들한 된밥을 해먹었다. 원래 밥상을 같이 차리는 경우도 드물지만, 내가 기침을 심하게 하기 시작한 뒤로 아버지는 식사시간 외엔 안방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거실 소파에 앉아 조간신문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일도 없었다. 삐걱삐걱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막 밟을 때 안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틀이 낡아서 아래로 조금 주저앉은 문짝이 문지방을 거칠게 긁어내는 소음은 여전히 귀에 거슬렸다.

 

*

 

안방에 침대 대신 장을 들여놓은 사람을 본 건 섭이 처음이었다. 어머니를 따라 침을 맞거나 보약을 지으러 간 한의원에서나 본 한장이 섭의 자취집에 놓여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서랍이 주머니처럼 달린, 미송으로 짠 커다란 장이었다. 아직 한의사는 아니지만 몇 해 지나면 섭도 한의사가 될 예정이니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마스크 대신 털목도리로 목덜미부터 코밑까지 둘둘 감고 반 발짝쯤 뒤에서 섭을 따라가고 있을 때,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그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의 학교 앞이고, 섭을 “형”이라 부르는 것으로 보아 과 후배들이거나 동기들인 눈치였다. 섭은 삼수 끝에 생물학과를 다니다가 군에 갔다와서 다시 수능시험을 쳤고, 남들보다 늦게 한의대에 입학했다. 한의대에는 한참 직장생활을 하다가 다시 대학으로 돌아온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대개의 동기들보단 나이가 많을 거였다.

길을 건너온 뿔테안경 남학생은 몇 발자국 떨어져 서 있는 나를 흘끔 쳐다보곤 섭에게 어디 가는 길이냐고 물었다. 방학인데 요즘 뭘 하고 사냐고도 물었다.

“고향 친구가 상을 당해서 다녀오는 길이야.”

“상갓집이요?”

“어.”

“그럼 오늘은 지으면 안 되겠네요.”

“그렇지.”

“누구……?”

뿔테안경이 내 쪽을 다시 쳐다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어, 친한 후배. 감기 지어 놓은 게 있어서 좀 가져가라고.”

그들이 해장국집 입간판 옆에 서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벙어리장갑만 맞비볐다. 이제 곧 3월이라지만 옷 틈으로 파고드는 바람은 쉽게 기가 죽지 않았다. 떨어질 듯 떨어질 듯 떨어지지 않는 질긴 감기를 닮았다. 지구는 점점 온난해지는 게 아니라 수명이 다해 몸이 식어 가는 것 같았다. 나는 장갑 낀 손바닥으로 입을 막고 컹 컹 커엉 컹 컹 기침을 했다.

“진짜 감기신가 봐요?”

뿔테안경 너머의 작은 눈동자와 눈길이 마주쳤다.

그럼 감기가 진짜 감기지 가짜 감기도 있냐? 나는 속으로 미친놈, 너 때문에 추워 죽을 지경인 거 안 보여, 하고 중얼거렸다. 나 지금 열이 오르고 있다고.

섭은 남학생에게 개강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개강하면 애들이랑 술 한잔 하자며 어깨를 두드렸다. 그는 방학 동안 강남의 유명한 한의원에서 일을 거들며 원장 노인에게 짓는 법을 배우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았다. 남학생은 가볍게 손을 흔들고 건너편 일행 쪽으로 뛰어갔다.

“장례식 갔다오면 한 못 지어?”

나는 해장국집 탁자 앞에 앉아 콩나물해장국이 나오길 기다리다 심심해서 물었다. 밥보다 먼저 나온 오징어젓갈을 한 젓가락 맨입에 넣었더니 짰다.

“어, 원래 그래.”

“무슨 부정타? 젊은 사람들이 미신을 믿어?”

“뭐가 미신이야?”

섭이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빨간 깍두기를 으드득 베물었다. 알지도 못하는 인간이 대한민국 한의대생의 자존심과 권위를 깎아내리기라도 했다는 듯.

나는 아니 뭐 사고방식이 고리타분한 건 사실이잖아, 그리고 아직 이 년밖에 공부하지 않았으면서 왜 벌써 을 지어서 팔고 그래, 선생님한테 물어 봐서 지었다면 다야, 학생한테서 을 사먹는 사람들은 또 뭐야……등등의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그가 지어 놓았다는 감기을 안 받아갈 생각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공짜 을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동안 그에게서 얻어간 만 해도 체질개선용 탕, 소화제용 환, 오빠가 먹어버린 경옥고 등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를 알게 된 뒤로도 나는 늘 어딘가 아팠고, 그래서 섭이, 아니 이 필요했다. 물론, 먹어서 확실한 효과를 본 적은 없었다. 돌팔이가 지어 준 이라 듣지 않는 건 아닐 테고, 무슨 을 먹으나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아무 도 먹지 않는 편보단 나았다. 나는 그것으로 족했다.

식당 아주머니가 “조심하세요” 하며 호들갑스럽게 김이 풀풀 올라오는 뜨거운 뚝배기를 내려놓았다. 섭의 얼굴이 순간 순해졌다. 그는 뚝배기를 내 앞으로 바짝 밀어 놓았다.

“얼른 먹어. 먹는 게 이야.”

 

*

 

외할머니의 잠자리 머리맡에는 언제나 납작한 종잇갑이 놓여 있었다. 외할머니는 한 달에 두세 번 초코파이와 종합선물세트를 사 가지고 우리 집에 왔는데, 그 때마다 이층 내 방에서 요를 펴고 같이 잤다. 외할머니 옆에서 이불을 덮고 누워 있다가 바스락 소리에 눈을 떠보면 컴컴한 어둠 속에서 종잇갑 안에 든 뭔가를 꺼내 먹고 있었다. 나는 외할머니가 웅크리고 앉아 뭘 먹었을까, 뭘 혼자만 먹었을까 오래도록 궁금해하다 잠이 들었다. 그런 밤이면 이불 밖으로 손도 발도 나오지 않게 꽁꽁 싸매고 자는 바람에 나쁜 꿈을 꾸었다. 〈전설의 고향〉에서 사람 간을 빼먹는 늙은 여우가 내 발을 잡아당기지 못하게 땀이 졸졸 흘러도 이불 가장자리를 단단히 봉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가갸거겨. 엄마. 아빠. 우리 집. 유치원에 들어가 글자를 익히기 시작하면서 나는 종잇갑 위에 씌어진 붉은 글씨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뇌신.

나는 “백. 설. 공. 주” 하고 어른 앞에서 동화책 표지를 읽어 보이듯 또박또박 소리 냈다.

뇌. 신.

뇌신은 왠지 별, 달, 구름, 솜사탕 같은 말과 다른 말인 것 같았다. 어른들의 말인 것 같았다.

나는 조그만 손을 오물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살색 종잇갑 뚜껑을 열어 보았다. 겁이 나서 속에 든 것을 바로 꺼내 볼 수는 없었다. 상자에 그려진 사람 머리 모양이 무서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머리 모양은 “애들은 일찍 자는 거다”, “애들은 어른 말에 말대꾸하지 않는 거다”라고 말할 때의 아버지 같았다.

나는 종잇갑을 한참 만지작거리다 손가락을 넣어 안에 든 것을 끄집어냈다. 작은 비닐 안에 흰 종이 접은 게 가득 들어 있었다. 비닐을 열고 납작하게 접힌 종이를 한 개 꺼내 보았다. 동네 소아과 병원에서 타먹은 가루 봉지와 같은 모양이었다. 내가 콧물 흘릴 때, 배 아플 때마다 먹는 과 똑같은 거라니. 갑자기 시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를 살짝 펼쳐 보았더니 역시 하얀 가루가 들어 있었다.

나는 가루를 들여다본 다음 원래 접혀 있던 대로 종이를 색종이 접듯 접었다. 한번 잘못 접어서 다시 펼친 뒤 접다 보니 노란 장판 위에 흰 가루가 설탕처럼 떨어져 있었다. 집게손가락에 침을 묻혀 방바닥 위에 떨어진 가루를 찍어먹어 봤다. 혓바닥이 썼다. 아주 썼다.

“그래서 그 때, 외할머니도 매일 어지럽고 배가 아픈 건가 궁금했지.”

나는 섭에게 말했다. 그는 안방 장 앞에 길게 엎드리고, 나는 그 반대편 벽 쪽에 담요를 덮고 반듯이 누워 있었다. 웃풍이 심한 방이라 왼쪽 뺨으로 한기가 느껴졌다. 내가 천장 벽지의 꽃무늬를 하나하나 눈으로 훑으며 이야기하는 동안 섭은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른 누구보다 그에게 이야기하는 게 편했다.

“귤 사다 논 거 있는데, 먹을래?”

그의 말에 나는 머리를 오른편으로 돌렸다. 엎드려 있던 섭이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그래, 한 개만.”

섭은 마루로 나가 귤이 든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들어왔다. 모로 누운 내 머리맡에 귤 세 알을 내려놓고, 장에 기대앉아 귤껍질을 깠다.

나는 귤이 터지지 않게 조심스레 껍질을 까고 있는 섭의 손가락을 쳐다보았다. 그의 손 안쪽은 차가울까 뜨거울까. 담요를 코밑까지 끌어당겼다. 담요에서 나는 약간 퀴퀴한 동물성 냄새를 맡으며 이게 섭의 냄새인가, 하고 생각했다.

섭은 팔을 길게 뻗어 껍질 깐 귤 두 알 중 한 알을 내밀었다. 나도 담요를 들추고 몸을 일으켜 오른팔을 내밀었다. 손바닥 위로 그의 손 안에서 찬기가 조금 가신 귤 알맹이가 놓였다. 문득 저녁에 길에서 만난 남학생에게 그가 한 말이 떠올랐다. 친한 후배,라고.

“귤이 얼었다 녹았나 봐.”

섭이 말했다.

나는 껍질 벗긴 귤을 한 조각 입에 넣었다.

“상관없어. 단데.”

“달아? 난 좀 밍밍한데.”

“이 정도면 달지.”

친한 후배,라는 말이 잘못된 건 결코 아니었다. 그가 나보다 두 살 많으니 친구라고 부를 수도 없고, 사귄다고 말하기도 곤란한 사이였다. 나는 그의 대학 후배도 과 후배도 아니었지만, “친한 후배”라거나 “아는 후배”라는 말이 가장 부담스럽지 않게 들렸다. 우리는 오랜 동안 각자의 가족에 대해, 읽고 있는 책에 대해, 그리고 어린 시절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서로의 손을 잡아 본 적은 없었다.

섭은 장에 기대어, 나는 웃풍이 센 벽에 등을 대고 귤을 먹었다. 나는 이것이 그와 나의 영원히 좁혀지지 않을 거리,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걸 또 한번 확인하는 느낌이 쓸쓸하면서도 편안했다. 나는 어느 누구의 손도 잡고 싶지 않았다.

벽의 찬 기운이 등으로 올라앉자 기침이 났다. 외할머니 이야기를 한참 해서 목에 무리가 왔는지도 모른다.

컹 컹 커엉. 커어엉.

목 안쪽이 아니라 몸 깊숙한 곳에서 곪아 터진 것이 치받쳐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나 이러다 죽는 거 아닐까?”

“죽기는. 너 같은 사람이 더 오래 살아. 쭈그렁밤송이 삼 년 간다는 말도 몰라?”

“그건 또 뭐야? 매일 영감 같은 소리.”

섭이 뜨거운 차를 마시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커엉 컹 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마루에서 달각달각 찻물을 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나는 늘 이런 식이었다. 내가 아프다고 말하면 그가 을 지어 주고, 그가 을 지어 주면 나는 그것을 받아먹었다. 나는 이런 관계가 좋았다. 그가 소양인이고 내가 소음인이라 서로 잘 맞는다고 섭이 말한 적이 있었다. 그의 말이 아주 틀리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아프지 않다면, 이 필요하지 않다면, 어떤 이유로 그를 만나게 될까.

어느 날 밤, 섭은 장 앞에 앉아 작두로 재를 썰고, 나는 벽에 기대앉아 꽁꽁 언 아이스크림을 혓바닥으로 핥아먹었다. 섭이 내 체질에 아이스크림이 맞지 않다고 말해서, 내가 나쁜 것만 먹고 빨리 죽어버릴 거야,라고 부러 성질을 부렸던가. 아무래도 그날이 섭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던 밤인 것 같다. 중학생이 되자마자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지낸 자취방과 그 곳에서 우연히 엿본 일들과, 그 때 느꼈던 두려움 비슷한 것에 대해.

“하지만 남자들은 다 그런 걸 좋아하잖아. 좋아 죽잖아. 싫어하는 건 정상이 아니지.”

“싫다는 말이 아냐.”

“그럼 뭔데?”

“안 싫어. 그런 얘기가 아냐. 난 아주 건강한 남자야. 아무 이상 없다고. 그냥…… 좀 부정적인 감정을 가졌었다는 것뿐이야, 옛날에.”

내가 섭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자, 그는 짐짓 장난스런 말투로 대꾸를 했다.

“왜, 우리 야동이라도 볼까?”

섭은 자기가 말하고 자기가 웃었다. 그리고 컴퓨터 전원을 켜 록뮤직을 틀었다. 컴퓨터에 연결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전자기타 음은 섭이 작두질하는 소리까지 탐욕스럽게 삼켜버렸다. 그는 컬렉티브 소울(Collective Soul)의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부르며 감초인지 당귀인지 알 수 없는 약재를 썰었다, 또각또각 또각.

그날 나는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집으로 돌아가면서 많은 것을 떠올렸다. 어릴 적 동네미용실에 머리를 자르러 갈 때마다 훔쳐보았던 두툼한 여성잡지 뒤쪽의 질문과 답변들. 어린 섭이 느꼈을 흥분과 공포를 내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그 역시 그것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Q 1. 직장 상사가 저녁을 먹자고 했는데…… 병원에 가보았더니 임신이라고 합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Q 2. 남자친구와 만날 때마다 페팅을 하고 있어요…… 순결을 지키고 싶기 때문에 관계를 갖지는 않았지만…….

Q 3. 대학생 과외 선생님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이 제 가슴을 만졌어요…….

갱지로 눈 코 입을 가린, 갱지 너머에 숨어서 몰래 관제엽서를 적는 익명의 Q/A들.

어머니는 언제나 “학생에겐 단발머리가 제일 깔끔해”라고 말했고, 그래서 나는 미용실에 자주 들렀다. Q/A의 눈물겨운 고민들은 단발머리 여중생의 납작한 뱃속에서 뼈와 살이 붙어 ‘남자 어른=짐승’이란 공식으로 잉태되었다. 직장 상사의 자가용을 얻어 타거나 저녁을 함께 먹으면 강간을 당한다. 과외 선생님과 집 안에 단둘이 있으면 강간을 당한다. 남자가 술을 먹자고 해서 주는 대로 마시면 강간을 당한다. 오빠 친구가 상냥하게 군다고 해서 따르면 강간을 당한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밤에 돌아다니면 강간을 당한다. 임신을 했다고 애인에게 말하면 버림을 받는다. 첫날밤 과거가 있냐고 넌지시 물어서 그렇다고 고백하면 버림을 받는다. 고문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유혹당하지 않는 독립투사처럼, 그런 일은 절대 없노라고 단언해야 한다.

어머니는 내가 미용실에 갔다가 현관으로 들어설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어디 한번 돌아 보렴. 뒤로 돌아 봐. 거 봐, 머리를 자르니 깔끔하잖니. 그런데 바지가 너무 끼는 거 아니니?”

이런 기억들을 만약 섭에게 들려 주면 뭐라고 말을 할까.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핀잔준 것처럼 조금 이상한 일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섭에게도, 누구에게도 이야기를 들려 주지 않을 테니까. 나는 아주아주 오래 전, 그 모든 일을 매끄러운 알 캡슐에 넣어 꿀꺽 삼켜버렸다.

또한 나는 섭의 손을 잡아 본 일이 없는 것처럼, 아버지의 손을 잡아 본 기억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을 작정이다.

 

*

 

외할머니는 동물 모양의 씹어 먹는 비타민을 오빠와 내 입 안에 넣어 주고 동네 놀이터에 데리고 갔다. 외할머니는 비타민을 줄 때마다 그걸 먹으면 앞으로 감기에 걸리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하면 〈구심〉이란 쥐똥 같은 알을 입에 넣어 줬고, 배가 아프다면 안방 상자에서 〈훼스탈〉이나 〈정로환〉을 꺼내 줬다. 종아리가 아픈 날은 〈안티프라민〉을, 넘어져서 무릎에서 피가 날 때는 ‘아까찡기’, 혹은 ‘빨간 ’이라 부르는 〈머큐로크롬〉을 발라 주었다. 나는 일곱 살이 되어서도 놀이터에 나갈 때마다 넘어져서 종종 무릎보호대를 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부엌에서 반찬을 만들며 애가 다리에 힘이 없어 자꾸 넘어지는가 보다고 수군댔다. 용도 먹일 만큼 먹였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용하다는 한의원이 있는데 거기라도 한번 데려가 볼까,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네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 외할머니가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날이 휴일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외할머니가 집에 없었다. 늘 그랬었다.

오빠는 또래의 남자아이 하나와 멀찍이서 딱지치기를 하고 있었다. 날씨는 맑고 따뜻했던 것 같다. 아니, 사실 그런 것까지는 분명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떠오르는 건 내가 그네에 앉아 있었다는 것, 그리고 역시 내 또래의 여자아이를 데리고 온 여자와 외할머니가 그네 옆쪽에 앉아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뿐이다.

애들 엄마가 죽고 싶대요…… 그런데 애들 때문에 죽지 못하고 산답니다…… 네, 애들이 너무 예쁘지요…….

나는 그네를 타지 않고 발판에 가만히 앉아 모래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모래 틈에서 작고 반짝이는 유리조각이 눈에 띄었다. 색으로 봐선 깨진 사이다병 조각 같았다. 외할머니는 낯선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누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다. 나는 운동화 바닥을 땅에 댄 채 엉덩이를 움직여 보았다. 발판이 움직이자 그네를 묶어 놓은 낡은 쇠사슬이 끼익끼익 듣기 싫은 소리를 냈다. 외할머니는 그네를 탈 때 아주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발판을 너무 세게 구르면 그네가 높이 놀라가 몸이 뚝 떨어질 수 있다고. 나는 발판을 구를 때마다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그네를 상상했다. 어김없이, 발판에서 땅 위로 굴러 떨어지는 내 모습도. 그러나 나는 발을 살살 굴렀기에 실제로 그네에서 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이도 어린 계집아이가 아주 맹랑한 거예요…… 그럼요, 자식이 있으니 어떡하든 살아야하지 않겠어요.

“할머니…….”

외할머니는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네에서 내려와 모래 위에 쪼그려 앉았다. 평평하고 부드러운 땅바닥을 돌멩이로 파자 모래 밑에서 검은 흙이 나왔다. 나는 돌멩이로 흙을 계속 팠다. 흙은 너무 검어서 아주 써 보였다.

외할머니는 늘상 은 써야 낫는 거라고 말했었다. 내가 콧물을 흘릴 때마다 설탕물을 밥숟가락으로 떠서 병원에서 받아온 가루을 살살 타 먹여 주었다. 탄 물을 입에 물고 울려고 하면 쓰지 않은 건 이 아니라면서 땅콩 부스러기가 박힌 알사탕을 까주곤 했다.

삼키면 할머니가 맛있는 거 주지.”

나는 집게손가락에 침을 묻혀 새카만 흙을 찍어먹어 보았다. 쓰고, 살짝 시큼한 맛이 났다. 흙을 조금 집어 손바닥에 올려놓고 들여다보다가 가루처럼 입 안에 털어넣었다. 나도 모르게 어헝, 울음이 터졌다. 울음 소리를 들은 외할머니가 급하게 뛰어와 안아 주었다.

그날 저녁, 나는 계속 오줌이 마려워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오줌은 나오지 않는데 이상하게 자꾸 오줌이 마려워 죽을 것 같았다. 양변기 위에 앉아 외할머니에게 말했더니 애들은 자라느라고 그런 거랬다. 곧 나을 거니까 괜찮다고. 어른에게서 자라느라 그런 거라는 말을 듣자 마음이 놓였다.

나는 쫄쫄이 바지를 치켜올리고 이층 방으로 올라와 겨울 내복을 넣어 둔 서랍을 열었다. 옆으로 기다란 서랍 오른편에서는 오래 전에 숨겨 둔 귤과 소보로 빵과 마른 오징어 대가리가 괴상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것들을 방바닥에 죄다 꺼내 놓고 서랍 안 깊숙이 손을 넣었다. 사촌언니가 집에 놀러왔을 때 접어 준 종이학 두 마리와 밀크캐러멜 한 상자가 손에 잡혔다. 나는 노란 캐러멜 상자 안에서 종이학처럼 착착 접혀 있는 종이를 꺼내 펼쳐 보았다. 외할머니의 상자에는 이 너무 많이 들어서 내가 훔쳐 먹은 것을 알지 못할 거였다. 네모난 종이 위의 보드라운 가루를 침 묻은 손가락으로 콕 찍어먹었다.

나도 외할머니처럼 곧 낫게 될 거라 믿었다.

 

*

 

나는 아직 서른 살도 되지 않았지만, 벌써 오래전에 늙어버린 기분이라고 말했다.

“잠깐 나올래? 저녁 아직 못 먹었는데. 김치찌개 잘하는 집 발견했어. 돼지고기가 진짜 수북해.”

섭은 내가 한 말에 대해선 대꾸도 없이 딴소리만 했다.

“나 아직 기침이 안 났어. 낫기는커녕 더 심해지는 것 같아. 머리도 멍하고. 이번 겨울엔 논문 마쳐야 하는데 이게 뭐야. 다 개판이야. 지겨워 죽겠어.”

불쑥 전화를 걸어 해장국, 생선구이백반, 돼지껍데기, 곱창전골 같은 것만 나눠 먹는 사이는 이제 지겨웠다. 그러나 떨어지지 않는 감기보다 그게 더 지겹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송화기 저편에서 건너오는 건조하고 느린 목소리를 들으며, 미리 예약을 잡아 놓은 식당에서 누군가와 마주앉아 스테이크와 와인을 나누어 먹는 저녁을 상상해 봤다. 자라 국물이나 뇌신, 티눈고, 멀미 따위는 절대 입에 올리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말만 골라 조곤조곤 들려 주는 사이를.

그런 저녁, 내 건너편 의자에 앉아 있을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아무래도 섭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 얼굴이 분명하게 그려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눈썹도 코도 입도 없이, 뜨거운 물에 삶아 까놓은 하얀 달걀 같은 얼굴이었다.

컹, 컹, 커엉, 커엉. 커어어엉.

내가 기침을 반복하는데도 섭은 좀처럼 전화를 끊지 않았다. 배가 고프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조금 있다가 저녁을 먹어도 된다고 대답했다.

“내가 준 은 먹고 있니?”

먹어도 소용없어. 을 너무 많이 먹어서 듣지도 않아.”

섭은 전화를 끊기 전에 고향에 살고 있는 부모님과 통화를 했다고 전했다. 나는 그가 전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잘된 일이잖아, 안 좋게 생각할 게 뭐 있어, 어머니 말씀처럼 잘 생각해 봐 봐, 하고 말했다.

“그런 건가. 난 잘 모르겠어. 머리가 아프다.”

전화를 끊고 두툼한 누비이불을 덮었다. 몸을 똑바로 눕히자마자 기침이 났다. 나는 몸을 모로 눕혀 잔뜩 웅크린 채 그에게서 방금 들은 말을 복기하듯 한 마디 한 마디 떠올려 봤다. 섭의 어머니가 다니는 교회의 신실한 여대생. 집장사를 한다는 여대생의 아버지. 한의원을 차릴 현금 이 억. 섭을 향한 그의 어머니의 기도.

섭이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낸다 해도 나는 “잘된 일이야”라는 말밖에 할 수 없을 거였다. 그는 기대를 저버리지 못할 사람이니까. 앞으로도 그에겐 나쁜 일보다 좋은 일이 더 많이 일어날 거였다.

기침이 좀처럼 멎지 않아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섭이 빈 비타민 통에 덜어 준 결명자라도 주전자로 우려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 결명자차를 마시고, 독한 을 삼키면 기침이 잠시 멎을지도 모른다.

컹컹 커엉 커어어어어엉.

기침과 함께 목구멍에서 무언가 덩어리가 울컥 넘어오는 느낌에 급히 화장지를 서너 장 뽑았다. 순간, 밭은기침이 딱 멈췄다. 화장지를 펼쳐 턱 밑에 대고 입안의 것을 퉤퉤 뱉어냈다. 목 안쪽에서 넘어온 것이 뭔지 알 수 없어 하얀 화장지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축축하게 침에 엉긴 거무죽죽한 것을 집게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이상했다.

흙, 그것은 검은 흙이었다.

나는 화장지로 싼 흙을 휴지통에 던져넣고, 을 넣어 둔 옷장 서랍을 열었다. 옆으로 기다란 서랍 안에는 감기, 종합비타민제, 칼슘보충제, 홍삼 환, 일회용 밴드, 우황청심환, 알레르기용 연고, 비염 스프레이, 인공눈물, 마이신, 호랑이 연고, 〈아스피린〉, 〈훼스탈〉, 〈타이레놀〉, 〈지르텍〉 등등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가스활명수〉 뚜껑을 따서 이물감이 남아 있는 입안을 헹구었다. 그 다음 무슨 을 먹으면 좋을지 생각해 보았지만, 알 수가 없었다. 옛날에 외할머니의 머리맡 상자에 들어 있던 가루을 삼킨다면 분명히 나을 것 같은데, 그것만은 서랍 안에 없었다. 내가 전화를 걸어 죽어 가고 있다는 말을 하면 섭은 뭐라고 대답할까. 서랍에서 마이신 네 알을 꺼내 병에 반쯤 남은 소화제와 함께 입안에 털어넣었다. 그동안 삼킨 것보다 더 독한, 다른 이 필요했다.

“여보세요…… 나야…….”

섭은 전화를 바로 받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전화를 받지 않으면 죽어버리려 했다는,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의사라서 그런지 아프다고 말하지 않아도 내가 아프다는 걸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나는 건너편까지 다다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나, 이 필요해, .”

내가 한 말을 들은 건지 못 들은 건지 건너편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거기 있어? 내 말 듣고 있는 거야?라고 다그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섭은 왠지 전화를 끊지도 말하지도 않고 가만 가만히 내 울음 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울어도 될 것 같았다.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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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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