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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마술사 코니 킴의 생애

  • 작성일 2011-02-26
  • 조회수 1,751

 

탈출마술사 코니 킴의 생애

 

하창수

 

 

 
 



 

 

배우가 문으로 들어오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창문으로 들어오면 하나의 상황이 된다.

- 빌리 와일더

 

 

 


 

사람은 누구나 처음 무엇이 되려 할 때 그 되려는 것에 대해 지극한 환상을 갖게 마련이다. 법률가나 정치가가 되려는 꼬마들은 정의의 실현에 대해 끔찍할 정도로 맹렬한 환상을 갖고 있으며, 배우가 되려는 소녀는 화면 속에 재생되는 삶이 가짜라는 것을 알지 못하며, 소설가가 되고 싶은 아이는 만들어낸 이야기야말로 진실이라는 ‘소설교(小說敎)’의 사이비 강령을 철저하게 신봉하는 어린 광신도다. 그러나 정작 맹렬히 갈망했던 그 무엇이 되었을 때, 그들은 더 이상 환상의 노예로 남아 있지는 않는다. 이미 환상의 노예가 아닌 상태에서 그 무엇이 되었는지, 아니면 그 무엇이 되고 난 뒤에 환상의 노예 상태에서 풀려난 것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들은 충분히, 잘, 여실히, 명백히, 그리고 완전히 알고 있다. 정의의 실현은 법률가나 정치가가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화면에 펼쳐지는 삶의 거짓을 철저하게 깨우치지 못한 명배우는 없으며, 진실이나 사실과 멀리 떨어진 이야기일수록 열광하는 ‘신도’들을 비웃으면서도 그들에게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지 않는 훌륭한 소설가는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환상의 바다에 몸을 던졌다가 익사 직전에 그 바다를 헤엄쳐 모래언덕으로 걸어 나온 그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맹렬하게 욕망했던, 더 이상 환상이 아닌 ‘그 무엇’이 된 것이다. 변호사, 의사, 정치가, 배우, 모텔 주인, 교사, 시인, 파일럿, 첼리스트, 중국집 주방장, 혹은 마술사 같은 것.

 

아버지가 억병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중국 공연을 마치고 포토맥 강변의 아파트로 돌아온 4월의 어느 날 밤 자정부터였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아버지는 당신의 서른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한 최초의 순간에 잭 다니엘의 회색 뚜껑을 벗기고는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람이 물을 켜듯 위스키 병을 목구멍에 꽂고는 문자 그대로 들이부었다. 공교롭게도 11년 11개월 11일의 생을 살아가고 있던 나는 그 낯선 광경을 별다른 감흥 없이 (혹은 그 모양이 명확하게 무얼 의미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럴만한 앞뒤 정황을 파악해야 한다는 의식조차 없이 거의 선험적으로) 층계참에 쪼그리고 앉은 채 묵묵히 지켜보았다. 어떤 점에서 그것은 그다지 신기할 것도 없는 간단한 마술을 보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목구멍이 술병의 압박으로부터 놓여난 것은 한참이나 지난 뒤였다. 한 번도 멈추지 않고 1리터짜리 술병의 반을 목구멍 너머로 부어버린 아버지는 아주 부드럽게 마룻바닥으로 주저앉았는데, 그건 마치 까마득한 지붕 위에서 뛰어내리지만 전혀 다치지 않는 고양이의 훌륭한 낙법을 닮아 있었다. (생애 처음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술에 취했다고 해서 몸을 다치기라도 한다면 그건 마술사로서 체면 문제였을지 몰랐다. 어쨌든, 그런 다음에 무슨 말인가 하려는 듯한 몸짓을 하며 아버지는 간신히 술병을 쥔 손을 나를 향해 뻗었지만, 그 때 무슨 말을 했었는지는 내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어쩌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고꾸라져 잠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 외에 어렴풋이 기억나는 장면은 고린내가 진동하는 당신의 양말을 벌레를 다루듯 손가락 끝으로 집어서는 세탁기에다 넣은 뒤 소파에 놓여 있던 담요를 가져다가 당신의 몸을 덮어 주었다는 정도다. 그리곤 아버지의 친구라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 왔던 기억도, 어쩐 일인지 비교적 또렷하게 남아 있다. 아마도 그 기억이 또렷한 이유는 칼 뮬리건 때문일 것이다. 물론 전화를 걸어 온 그 사람이 《스타 트리뷴》이라는 그렇고 그런 신문에 대중문화와 관련된 허접한 칼럼들을 쓰고 있던 칼 뮬리건과 동일인물이라는 보장은 없다. 목소리나 말투는 분명히 그였지만, 그는 결코 아버지의 친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전화를 걸어 온 것은 분명히 아버지의 ‘친구’였다. 하지만 “아빠 바꿔, 난 네 아빠의 둘도 없는 친구니까”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친구’는 오히려 ‘적’과 동의어일 가능성이 농후한데, 물론 그런 데까지 생각이 미칠 수 있는 능력이 그 때의 내게 있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어쨌든 전화를 걸어 온 아버지의 ‘친구’는, 내가 스타카토처럼 딱딱 끊어지는 말투로, 세계 최고의 탈출마술사 어니스트 셰필드 씨는 이미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하고 말하자 마치 아버지에게 말하듯 내게 아버지의 중국 공연에 대해 떠들어대기 시작했는데, 시종일관 만약 아버지가 들으셨다면 다음 날 오후쯤 아버지와 내가 텔레비전이나 전축 중 하나를 사러 전자대리점을 방문해야만 했을 그런 말들이었다. 질투와 질투, 그리고 질투로 점철된 비열한 문장의 나열, 그 자체였다. 순간적으로 나는 차라리 아버지를 깨워 전화를 바꿀까도 생각했었다. 그랬다면 다음 날 우리는 명백하고도 분명히 전자대리점으로 갔을 것이고, 전자대리점에서 돌아올 때쯤이면 이미 넝마주이 대장인 피터 아저씨가 우리 집 쓰레기통을 뒤진 뒤일 것이고, 부서진 텔레비전이나 전축 때문에 아버지가 나를 닦달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덕분에 집으로 돌아오는 내 손에는 소니 캠코더가 당당하게 쥐어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버지의 중국 공연은 대성공이었고,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지만, 당신의 지갑은 쓰이지 못해 안달이 난 백 달러짜리 지폐로 가득 차 있었을 테니까. 아마도 바로 그 사실이 칼 뮬리건인지 아닌지 알 길 없는 어떤 남자로 하여금 밤중에 전화질을 하게 만들 정도로 질투심을 자극했던 모양인데, 일단,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당시의 나는 알 길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날 이후로 아버지가 단 하루도 술병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때때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신비로운 일이긴 하지만, 다들 그렇게 하면 살지 못할 거라고 우려와 걱정을 가득 담아 말하는 그런 형태의 삶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오히려 신비가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투 미 잇 심즈 댓, 유쓰 이즈 라잌 스프링, 언 오버프레이즛 시즌, 디라잇플 잎 잇 해픈 투 비 어 페이브드 원, 벗 인 프랙티스 베리 래얼리 페이브드 앤 모 리마커블, 애즈 어 제너럴 룰, 포 바이링 이스트 윈즈 댄 제니얼 브리지즈.” 1)

알코올에 절은 아버지의 저음은 매력적이었다. 그것은 어린 아들에게 새뮤얼 버틀러가 펼쳐 놓은 ‘인간의 모든 길’을 향해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도록 만들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음성이었다. 아버지의 그 치명적일 정도로 사람의 가슴을 도려내는 저음은 “젊음은 봄과 같다”는 벽을 굴삭기의 팔이 육중한 무게감으로 툭하고 건드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벽은 “지나치게 찬양받는 봄은 실은 혜택을 받는 것보다는 살을 물어뜯는 동풍이 더 눈에 띄는 계절”이 되어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아버지의 음주는 낭독의 또 다른 경지를 이루어냈다. 그건 어쩌면 아버지의 돌연한 술추렴이 가져다준 거의 유일한 혜택이었을 것이다.

“이봐 젊은 손튼바움, 자넨 무엇이 되고 싶은 거야?”

시리얼 봉지를 우유가 담긴 대접에 쏟아 부으며 나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나 내 눈길이 이내 다다른 곳은 아버지가 앉아 있는 은장식이 달린 높은 등받이의 단풍나무 의자 뒤편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수십 병의 잭 다니엘이었다. 아버지의 주량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설마 제 이름을 잊어버릴 정도로 취하신 건 아니죠?”

물론 그건 농담이었다. 사실 나는 아버지에게만큼은 원래 이름인 캐빈보다는 손튼바움, 혹은 손튼(물론 그냥 손튼이 아니라 젊은, 혹은 어린 손튼)이라는 이름으로 훨씬 많이 불렸다. 하지만 그 때는 정말 아버지가 알코올성 치매라도 걸린 것 같은 기분 나쁜 생각이 내 머리에 꽉 차 있었다는 점에서 완전히 농담인 것만은 아니었다.

“이봐, 자넨 나의 영원한 사랑, 손튼바움이야. 캐빈 따윈 지옥에나 던져버려!”

아버지가 당신의 아들을 친구처럼 여겼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나를 캐빈이 아닌 손튼바움이라고 부를 때만큼 자신의 아들을 친구로 절실히 대하는 때는 달리 없었다. 손튼바움 - 그는 아버지에겐 친구 이상의, 좀 심하게 과장을 하면 신과 같은 존재였다. 물론 아버지에게 있어서만큼은, 그건 과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그를 언급할 때 쓰는 여러 가지 지칭어 가운데 하나였거니와 가장 조심스럽기는 했지만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지칭어였다.

“사람들은 그를 신의 마술을 행하는 자라고 했지만, 그건 그에 대한 최악의 과소평가야. 그는 바로 마술의 신이었어!”

손튼바움의 마술에 대해 아버지로부터 전해 듣거나 필름을 통해 본 것들은 대체로 내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는 미녀를 상자 속에 넣어 놓고 열다섯 개의 칼을 상하좌우로 찔러 넣거나 최면을 걸어 공중에 띄어 올리는 따위, 여전히 신기하긴 했지만 너무도 많은 마술사들이 했기 때문에 다소 식상한 그런 종류의 마술은 행하지 않았다. 그가 행한 마술은 뚜껑을 벗긴 통에다 물을 가득 담아 놓고 그 통들을 마치 뚜껑을 덮어 놓은 것처럼 밟고 지나가는데 발이 전혀 빠지지 않는다거나, 유리 상자 속에 불을 붙여 놓고 안으로 들어가서는 불을 모두 끄고 난 뒤에 다시 그 상자로부터 기어나오는 마술 같은 것들이었다. 혹은 자신의 사지를 종이처럼 접어서 공중으로 날리거나, 망치의 자루를 바닥에 대고 쇠 부분을 잡은 채 한 손으로 물구나무를 서 있다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망치의 위아래를 바꾸어 놓거나, 객석에서 관객을 다섯 명쯤 불러내서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들을 순식간에 모두 서로 다른 사람의 것으로 바꾸어버리는 마술 같은 것들이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배꼽을 잡고 공연장 천장이 내려앉을 듯 웃어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두려움을 이기기 위한, 혹은 감추기 위한 수법에 지나지 않았다고 아버지는 그 매력적인 저음으로 말씀하셨다.

“물론 손튼바움도 남들이 다 하는 유령담배 같은 마술을 하기는 했었지.”

아버지는 그렇게 말을 해놓고는 술이 흘러넘칠 것 같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는 나를 꽤 오래 노려보았다.

“캐빈, 뭔지 모르겠다는 그 표정은 뭐지? 설마 그 뻔한 마술을 모른다는 말이니? 아니면, 손튼바움 같은 마술의 신이 유령담배 같은 하찮은 마술을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거니?”

아버지의 뭉툭한 코와 꼬리가 치켜 올라간 눈, 넙대대하고 누르죽죽한 동양인 특유의 얼굴이 그날따라 왜 그렇게 부각되어 보였는지 이유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자랑스러운 아버지의 얼굴이었고, 알코올에 절어 있긴 했지만 여전히 신비로운 세계 최고의 탈출마술사 코니 킴의 얼굴이었다. 더구나 유령담배 같은 간단한 마술을 내가 모를 리도 없었고, 손튼바움이 행했다면 뭔가 달라도 달랐으리란 걸 짐작하지 못하는 바도 아니었다. 단지 문제는 아버지가 너무 취했다는 거였다. 단 한 모금의 맥주나 포도주만으로도 지독하게 짝사랑하던 소녀 앞에 선 숙맥의 소년처럼 발갛게 변하던 아버지가 며칠 사이에 주정 40도의 위스키를 하루 저녁에 두 병이나 비워버린다는 사실은 이해 불능의 사태임에 틀림없었다.

“담배 한 개비와 빈 성냥갑만 있으면 저도 할 수 있는 마술이에요, 아버지.”

나의 아버지 어니스트 셰필드 씨는 끝내 손튼바움의 진정한 위대함이 깃든, 누구도 흉내낼 수 없다는 단서를 붙이고서야 조심스럽게 그 비밀을 들려 주던 놀랍고 신비로운 그만의 탈출마술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못한 채, 고개만 그저 몇 번 끄덕거리고는 남은 잭 다니엘을 말끔히 비워낸 뒤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대성공이라고 대서특필되었던 중국 공연을 마치고 포토맥 강변의 고급 아파트로 돌아온 지 꼭 한 달이 지난, 맑은 봄날의 꽃향기 흩날리던 아름다운 밤이었다.

 

손튼바움이 아버지로부터 ‘마술의 신’이라는 극진한 찬사를 받은 건 사실이었지만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아버지가 가장 존경한 마술사는 우제프라는 러시아 마술사였다. 다만 아버지의 스크랩북에서 우제프에 대한 기사를 보고 지나가듯 그 사람에 대해 내가 물었을 때 아버지는 쉽사리 입을 열지 않으셨다. 그것은 손튼바움의 경우와는 완전히 상반된 것으로, 찬사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극진한 무엇이었다. 가령 존경, 혹은 경외의 대상이라는.

“우제프는 번뇌의 사슬을 끊어낸 사람이었지. 사람은 누구나 번뇌의 사슬에 얽혀 있고, 그래서 인간에게 있어 마지막 구원은 그 번뇌의 사슬을 끊는 것이거든.”

나로 하여금 심리학자가 되고 싶게 만들었던 몇 개의 문장 중의 하나인 우제프에 대한 아버지의 짤막한 논평이다. 사실, 자의 반 타의 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손에 가장 빈번하게,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쥐어져 있던 책은 마술사 구스타프 우제프의 자서전이었다. 러시아 왕궁에 고용된 마술사였던 그가 혁명세력에 붙들려 처형되기 직전 감옥을 탈출해 우랄 산맥을 넘어 터키로 피신하기까지의 긴장감 넘치는 대목을 나는 적어도 백 번은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책 안에는, 기이하게도 러시아어가 아니라 터키어로 쓴 그리 길지 않은 그의 일기가 망망대해의 섬처럼 따로 떨어져 기록되어 있는데 거기에 바로 아버지가 사용했던 ‘번뇌의 사슬’이라는 표현과 비슷한 것이 등장한다.

 

인간은 누구나 덫에 걸려 있다. 그 덫은 신발과 같아서 침대에 들어갈 때만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침대에서 내려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때면 어김없이 다시 그 신발을 꿰어 차야 하는데, 그렇다면 그 덫은 이미 인생 자체의 반려자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밀림에 사는 원시부족이 아니라면, 그러니까 현대인이라면, 신발은 반려자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데도 인간은 여전히, 아니 죽을 때까지 그 덫을 덫으로만 인식할 뿐이다. 마치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으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고, 멀리하려 하고, 다가서고 싶어 하지 않지만, 결국 그의 품에 안길 수밖에 없으면서도 말이다.

 

아무리 어린 소년이라도 어떤 것을 백 번쯤 읽게 된다면 ‘번뇌의 사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 사슬에서 벗어나는 것과 마술, 특히 탈출마술이 어떤 연관성을 지닌 것인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게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신이 가진 탈출마술의 비법을 동원해 우크라이나의 감옥에서 탈출한 뒤 눈 덮인 고봉들을 넘어 터키로 잠입한 구스타프 우제프의 마지막 모습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는 완벽한 탈출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탈출마술사로서의 삶에도 성공했으며, ‘번뇌의 사슬’을 완벽하게 끊어냈다는 점에서 인간의 삶에도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질투의 화신인 칼 뮬리건조차 우제프에 필적하는 탈출마술사라고 추켜세웠던 나의 아버지 어니스트 셰필드 씨가 그를 경모(敬慕)한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번뇌의 사슬’을 끊어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그 사슬에 자신의 손목과 발목을, 온몸을 묶어 두려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이것은 행복에 대한 사람들의 어떤 태도와 관련되어 있다.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경직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지 알지 못하거니와, 그들 대부분은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월등하게 낫다는 공상을 굳건한 현실로 받아들인다. 가령 한국의 전쟁고아였던 아버지를 셰필드가에 입양시키는 데 지대하게 공헌했던 워싱턴의 한 초중학교 역사 교사였으며 나의 할아버지 윌리엄 셰필드 씨의 둘도 없이 절친한 동무이기도 했던 마이클 메이플이라는 노인은 평생 동안 자신은 한 가지 신념을 갖고 있었으며 그것은 바로 “인간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고백한 바 있었다. 내게는 신념이기보다는 강박관념처럼 보였던 마이클 메이플 씨의 그것은 바로 구스타프 우제프가 말한 ‘경직된 사고방식’과 일치했다. 마이클 메이플 씨의 발목을 잡고 있던 것은, 그러니까 덫은, 바로 행복이었던 것이다. 그는 타인으로 하여금, 특히 행복을 누릴 확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 전쟁고아 같은 -  사람에게 행복을 누리게 해주는 것은 당연히 자신의 행복을 실현시켜 주는 일이라고 굳게 믿었으며, 그런 사람이 전쟁으로 피폐해진 극동의 한 나라로부터 코흘리개 소년을 입양하는 일에 발 벗고 나선다는 건 당연하고도 당연한 일이었다. 마이클 메이플 노인은 바로 그 소년이 훗날 코니 킴이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불리긴 하지만 어쨌든 세계 최고의 마술사가 되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역설이나 마찬가지인 신념에 찬, 혹은 강박관념으로 똘똘 뭉쳐진 빛나는 눈동자로 그 코니 킴의 아들이며 동양인과는 영 딴판으로 생긴 어린아이를 응시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던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때 나는 표지가 해지도록 구스타프 우제프의 자서전을 읽고 또 읽은 뒤였다. 딱히 우제프의 자서전을 탐독한 결과이기보다는 내 외양이 아버지인 코니 킴보다는 마이클 메이플 노인과 더 닮았다는 사실은 이미 나로 하여금 국가니 민족이니 혈통이니 하는 것에 얽혀들지 않도록 만들었고,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구스타프 우제프가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존재라는 감옥으로부터의 탈출, 즉 ‘번뇌의 사슬’을 끊고 자유로워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고민하게 만들어 주었으며, 그 비밀을 알만큼은 알고 있다고 확신하게 만들었으므로, 메이플 씨가 주먹을 불끈 쥐든 말든 내 의식을 흔들 수는 없었다. 물론 나는 노인의 깊은 주름을 응시하며 무언의 동정을 보냈고, 다시는 그가 자신의 무릎 위에 나를 올려놓을 수 없도록 체중을 키워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나는 결코 인생에서 행복이 나를 포획할 수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만약 일이 여의치 못해 포획당하고 만다면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탈출뿐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히 탈출마술을 익혀야 한다는 사실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어땠을까.

내가 아는 한 아버지는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냉소가 가득 흐르는 당신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역설적이게도, 분명하고 섬뜩하게, 행복한 삶에 대한 당신의 주장을 읽을 수 있었다. 행복해야만 한다, 행복하지 않은 삶이란 무가치할 뿐이다,라는 목소리는 비록 내 귀청을 울리지 않았지만 분명히 내 마음에 닿았다. 나는 지금 그것이 불행한 일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불행이기는커녕 오히려 크나큰 행운이었다. 이해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아버지 역시 우제프가 그랬듯 언젠가는 ‘번뇌의 사슬’을 끊고 존재의 감옥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아버지의 행복에 대한 생각이 신념이든 집착이든 강박관념이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하지만 아버지의 그 냉소가 흐르는 얼굴로부터 행복에 대한 신념을 읽어낸 나는 어쩐 일인지, 아니면 비로소, 언젠가는 아버지가 ‘탈출’을 감행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게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었지만, 그 탈출이 하루에 두 병의 잭 다니엘을 비워내는 것과는 다를 것이며, 단지 위스키에 쓰러지기 전에 그 탈출이 성공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난 더 이상 아시아에는 가지 않을 거야.”

어느 날 밤, 아버지는 일본 신주쿠 호텔에서 보내온 공연 팸플릿을 잘못 찍힌 사진을 보듯 흘낏 넘겨보고는 아무렇게나 집어던져 버리며 그렇게 말했다.

“더 이상은 노랑 원숭이들 앞에서 물 위를 걷는 따위는 보여주지 않을 거라고. 차라리 피터를 데리고 가서 놈들의 쓰레기통을 뒤지게 하는 게 낫지. 피터에게 적선을 해줬다고 거들먹거리게 말이야. 도대체 날 불러서 어쩌겠다는 거야! 자기들하고 똑같이 생긴 노랑 원숭이의 손목과 발목에 자물쇠를 채우고 온몸에 쇠사슬을 감아 놓고 낄낄거리다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천장에 매달린 밧줄을 타고 내려오는 걸 보고 길길이 날뛰어서 어쩌겠다는 말이냐고!”

아버지는 잭 다니엘로 나발을 불었고, 나는 얼핏, 환상처럼 아버지의 그 끝이 찢겨 올라간 조그만 눈에서 눈물이 수증기처럼 휘발되어 날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 때 나는 비로소 확신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중국 공연이 거둔 대성공 뒤에 석연치 않은 뭔가가 단단히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을.

나는 그것을 알아내야 했다. 하지만 적당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궁리 끝에 일단 아버지를 놀라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미끼로 쓸 생각을 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걸 까맣게 모를 터였다. 물론 오랫동안 오직 나만 알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넝마주이 피터도 알고 있었던 그 사실을.

나는 잭 다니엘을 비우기 시작하는 초저녁이 오기 전에 아버지에게로 갔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였을 것이다. 비스듬히 해가 기울고 있었던 걸 보면 학교에서 돌아와서 아버지에게로 갈 때까지 꽤 고민을 했었는지도 몰랐다.

“아버지.”

나는 궁금증을 유발하기 위해 적당히 뜸을 들이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그렇게 하고 있으니 우스꽝스러워서 얼굴을 살짝 붉히고 말았다. 나는 얼굴빛이 원래의 파리한 색으로 빨리 되돌아오기를 기도하며 아버지를 정면으로 쏘아보았다. 아버지는 아랫입술을 삐죽이 내밀며 책을 읽고 있었는데, 『장자』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걸 읽고 있는 중이었다면 얘기는 뻔했다. 진전은 되지 않고 구름 잡아 먹는 소리만, 혹은 반성에 반성을 거듭하는 얘기만 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버지는 알베르트 슈바이처를 읽고 있었다. 아버지의 가느다란 왼손 중지와 검지 사이에 그 이름이 보였고, 그 위에 큼지막하게 ‘내 인생과 사상으로부터’라는 제목이 위압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나는 잠깐, 번뇌의 사슬을 끊어내는 데 어느 책이 더 유용할지 생각했다. 뜬구름 잡는 얘기가 좋을까, 치열한 고뇌가 좋을까.

“언제까지 아버지가 제 눈치를 보시면서 사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버지는 코웃음부터 흘렸다. 다시 책을 펼쳐들려는 순간, 나는 그 책을 낚아채듯 한방 날렸다.

“저더러 이 집에서 나가라고 해도 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구요.”

그것은 일종의 마술이었다. 사람들은 마술이 단순한 속임수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굳이 그렇게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 물론 마술에 여전히 매혹되어 있는 사람들은 ‘어쨌든 내가 모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 괴상한 방식의 자위는 마술사에게 고스란히 전이되어서 비록 마술사로 하여금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말지만 희한하게도 그것만큼 마술사의 입에 풀칠을 해주는 것도 달리 없다. 그러나, 그러나 한 가지 꼭 알아 두어야 할 게 있다. 당신이 보는 마술이 어떤 속임수인지, 당신은, 분명히, 결코,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마술이 가진 속임수의 비법에 통달한 사람이었다.

“네게 엄마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으로 족했다. 우리의 우정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일단 우리는 여전히 견고한 우정으로 맺어져 있었다. 그 중심에 어머니가 있다는 건 자명했다. 어머니는 마술사의 손가락 사이에서 하나씩 빠져나가던 여덟 개의 푸른 구슬들 중 맨 마지막 구슬처럼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 모든 피날레가 그렇듯 마지막 구슬은 마술사의 손가락 사이가 아니라 허공에서, 까마득한 높이보다 더 까마득하고 심연보다 더 깊은 곳에서 드라마틱하게 사라지는 법이다. 아버지는 어머니라는 푸른 구슬을 가볍게 허공으로 던졌고, 아버지의 손가락 사이로 돌아오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스쿨버스에서 내렸을 때 나를 맞은 건 어머니의 환한 미소가 아니었다. 긴장할 때면 더욱 푸르게 빛나던, 마이클 메이플 노인의 주름이 자글자글한 눈웃음이었다. 그 천사의 가면을 쓴 악마 같은 노인네는 “엄마가 돌아가신 거예요?”라고 내가 물을 때까지 천연덕스럽게 아버지의 입양에 얽힌 너무도 뻔하고 재미없는 얘기를 긴박감 넘치는 스릴러처럼 늘어놓았다. 그러곤 느닷없는 내 물음이 그가 노리고 있던 반전이라도 되는 양 비열함을 교묘히 감춘 약간 떨리는 음성으로 “아임 소리, 벗……” 하고 말끝을 흐렸다. 내 입에 고여 있던 침을 나는 힘차게 삼켰다. 그리곤 노인의 무르팍에서 훌쩍 뛰어내려 내 방으로 올라가 서랍을 열어 빛이 많이 바래긴 했지만 할란 타벨2)의 서명이 또렷하게 적혀 있는 상자를 꺼내 푸른 구슬 여덟 개를 손가락 사이사이에 끼워넣었다. 그리곤 하나씩 손가락에서 사라지게 했고, 마지막 푸른 구슬을 허공으로 가볍게 던져 날려 보냈다. 그것은 세계 최고의 탈출마술사의 아들이 아니면 행할 수 없는 훌륭한 이별 의식이었다. 그리고 나는 침대에 엎드려 다섯 시간을 울었다. 병원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내 등에 손을 얹고 매력적인 저음으로 기도문 비슷한 것을 읊조리고 난 뒤 내게 하는 말을 나는 들었다. “친구, 이제 세상엔 우리 둘밖에 없다네. 그러니 자네 혼자 우는 건 삼가 주게. 울 거면 같이 울어야 한단 말일세.” 아마도 그것이 우리들 사이에 부자의 정보다 우정이 더 깊다는 사실을 내가 깨닫게 된 첫 순간이었을 것이다.

“중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나는 주저하지 않고 물었다. 혼자서 칼을 들고 적진을 향해 달려드는 사람의 심정을 나는 그 때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버지는 내 칼을 온몸으로 받아버린 가여운 적장이었다. 왠지 용감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용감했다면 내 뺨을 세차게 후려쳤을 것이다.

“이보게 친구, 뭘 듣고 싶은 건가?”

“제가 알고 싶은 건 하나밖에 없어요, 아빠.”

“중국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예. 대체 중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엄청난 성공이었다는 얘기로 미루어본다면 아빠가 실수를 하신 것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느닷없이 알코올 중독자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아빠를 괴롭힌 게 무언지, 그걸 알고 싶은 건 자식이라면 당연한 일이지 않겠어요? 그걸 말씀해 주시지 않는다면 더 이상 아버지와 저 사이에 함께 나누어야 할 우정이 남아 있다고 생각할 수가 없어요. 아빠가 입을 다무시겠다면 지금 당장 집을 떠나겠어요.”

아버지는 픽 웃었다. 그러곤 금방 정색을 하며 웃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물론 아버지로서는 열한 살짜리 아들의 입에서 튀어나온 가출이라는 단어가 여간 가소롭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물론 그것이 어줍은 엄포에 불과하다는 것도 충분히 알았을 것이다. 어쨌든 가소롭고도 어줍은 엄포나 늘어놓는 열한 살짜리 소년을 어니스트 셰필드 씨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당신으로서는 정말 하기 싫었을 어떤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그 말을 온전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여기에 옮겨 놓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물론 짐작은 간다. 그런 때가 있질 않는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를 가진 것인지는 충분하고도 여실하고도 명백히 아는. 아버지의 말은 바로 그런 것이었고, 백인의 용모와 사고방식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던 나로서는 그 정도만으로도 기특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한.

 

이제 나의 아버지 코니 킴에 대해 조금쯤 더 깊이 얘기할 때가 된 것 같다. 우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나의 아버지는 결코 코니 킴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코니 킴은, 빌어먹을 한국인 목사가 “코니 힐에서 오셨으니 코니 킴이라고 부르면 좋겠군” 하고, 한국인들이 미국에만 오면 깡그리 잊어먹는 자신들의 고귀한 문화유산 중 하나라는 존댓말을 깡그리 망각한 채로 던졌던 한 마디로부터, 그러니까 정말이지 빌어먹을 우연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건 명백히 말해 이름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양부였으며 내게는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하고 멋진 할아버지였던 선량한 미국인 윌리엄 셰필드의 성을 물려받은 미국 시민권자, 어니스트 셰필드였다. 코니 킴 같은 우스꽝스런 이름 따위는 결코 아버지의 이름이 될 수 없었다. 코니? 이 따위 이름을 가진 미국인은 내가 아는 한 단 한 명도 없다. 나는 아버지에게 우스꽝스런 이름을 붙여 준 한국인 목사를 아버지가 나중에라도 왜 가만히 두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사실, 종종보다 더 자주 있다. 그런 식이라면, 코니아일랜드에서 태어난 남자들은 한결같이 코니였을 것이다. 더구나 빌어먹을 킴이라는 성은 또 무언가! 전쟁고아였던 시절의 아버지의 성은 파크(박)였다.

그러나 어쨌든, 아버지는 코니 킴이었다. 누구나 그렇게 불렀고, 그렇게 부르기를 좋아했다. 산타클로스보다 더 선량한 윌리엄 할아버지조차 가끔은 아버지를 그렇게 부르곤 하셨으니 내가 아무리 그 이름을 이름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소용이 없다. 그래, 아버지는 코니 킴이었다. 아버지가 세계 제일의 탈출마술사였듯, 당신은 코니 킴이었다. 아버지를 어니스트 셰필드라고 부르는 사람은 많았지만, 마술사 어니스트라고 부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코니 킴! 코니 킴! 코니, 오, 나의 사랑 코니!”라는 외침은 “야, 이 노랑 원숭이 새끼야, 이번만은 폭탄과 함께 지옥으로 가버려!”라는 불가능한 기도 소리만큼이나 강렬하고 절실했다. 어쩌면 어느 날 아버지가 내가 가진 마술 상자를 몽땅 마당에 내다놓고 불을 질러버린 것도 그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사실 그 장면은 나를 무시무시하게 만들기보다는 서글프게 만든다. 그날 아버지는 내게 고백했었다.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당신의 아들인 내가 갑자기 마술사가 되겠다고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서 눈물을 질질 짜는 장면을 목도하게 되는 거라고. 그 때의 그 섬뜩한 고백이 얼마나 내 뇌리에 깊이 박혔던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고 나는 결심하고 결심하고, 또 결심했다. 물론 나는 마술사가 되고 싶었다. 얼마나 강렬한 열망이었나 하면 아버지를 깜짝 놀라게 할 마술을 아버지 앞에서 행함으로써, 굳이 무릎을 꿇고 눈물을 질질 짤 필요도 없이 아버지가 도리어 내 앞에서 그런 모양을 하기를 바랐을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끝내, 성공적으로, 하지만 내 가슴 한구석을 시꺼멓게 썩이고 나서야 나 자신의 그 치열한 갈망을 주저앉힐 수 있었다. 그것은 다른 또 하나의 성공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내 삶의 한 실패였다. 나는 마술사가 되고 싶다는 어떤 열망도 가지지 않은, 그렇다고 마술사인 아버지를 경멸하는 것도 아닌, 지독하게 냉혹하고 다정다감한, 즉 똑똑한 소년이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 비열한 연기는 내 삶의 가장 치명적인 실패의 한 장면이다. 차라리 나는 연극배우가 되려는 꿈을 가졌어야 했던 것이다. 혹은 법률가가 되려 했든가, 소설가가 되려고 했어야 했다.

아버지가 가진 마술이나 마술사에 대한 지나친 인색함은 자신의 일에 대해 흔히 가지게 되는 도덕적 강파름과는 좀 달랐다.

“‘재빠른 손’이라고 불리던 마술사가 있었지. 우린 마술사라고 부르지 않고 그저 사람이라고 했었지만.”

‘우리’라는 건 아버지를 무척이나 따랐던 홍콩 출신의 류 아저씨나 잉크를 물로 변하게 하는 이른바 과학 마술을 개발하는 데 심취해 있던 토머스 씨, 동전을 사라지게 하거나 탁구공을 떠다니게 하는 마술에 능했던 미치 이모를 말하는 게 분명할 것이다. 아버지는 술병에서 입을 떼고는 트림을 하면서 한쪽 눈을 찌그러뜨린 채 남은 술을 가늠해 보더니 말했다.

“초짜들은 다들 그를 흠모했지. 그에게 배우고 싶어 했고, 그와 친해지고 싶어 했고, 그를 열심히 모사했지. 하지만 그들은 간과한 게 하나 있었어. 물론, 그걸 알아채기에 너무 이른 나이들이긴 했지만.”

나는 침을 꿀꺽 삼키는 걸로 관심을 대신했고 아버지는 얼마 남지 않은 술을 아쉬워하며 말을 이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재빠른 손에 갇혀 있었을 뿐이었어. 마술사에게 손은 무척 중요하지. 재빠른 손은 더욱. 하지만 손에 갇힌다면 결국 손을 감출 수는 없는 일이거든.”

“손을 감춘다고요?”

“그래. 손을. 손에 갇혀 있는 한 손을 감추는 마술은 절대로 할 수 없단 말이야. 손을 감추기 위해선 그 손을 감추어야 할 또 다른 손이 필요한데, 불행하게도 사람에겐 두 개의 손밖에 없거든.”

술을 마실 때는 절대로 마술을 하지 않던 아버지가 어쩐 일인지 그날은 내 앞에서 마술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바로 손을 감추는 마술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보는 앞에서 (누구나 그렇듯) 단 두 개밖에 없는 당신의 손을 완전히 잘라내 버렸던 것이다. 나는 세계 최고 마술사의 아들답지 않게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는 마치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일본의 가라데 사범이 했듯 말끔히 비워낸 잭 다니엘 병을 공중으로 던지더니 양쪽 손을 쫙 편 채로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던 그 병을 두 손으로 싹둑 잘라내 버렸고, 날카로운 칼에 무가 잘라지듯 위스키 병이 잘려 나간 그 순간 아버지의 두 손마저 싹둑 잘라져 버렸던 것이다! 그것은 분명 ‘재빠른 손’인지 뭔지 하는 사람이 도저히 할 수 없는 극단의 마술이었다. 그가 바로 코니 킴이었다.

 

* * *

 

언젠가 나는 아버지의 과거에 대해, 그러니까 마술사의 손가락 사이에서 하나씩 빠져나가 마침내 모두 사라져 버리는 푸른색 유리구슬처럼 전쟁고아가 된 아버지의 여덟 형제들이 뿔뿔이 흘어지게 된 가슴 아픈 사연을 알게 될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 그 때가 되면 내 생각이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버지가 왜 그토록 탈출마술에 집착했었는지, 그러다 자신의 아내를 사라지게 하는 데 만족하지 못하고 마침내 왜 당신 자신을 우리들로부터 완전히 감추어버려야 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어쨌든 아직 그날은 오지 않았고, 그날이 오지 않았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미안하게도 여기까지다. 다만, 혹시 나의 아버지 어니스트 셰필드 씨, 아니 마술사 코니 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몰라 그에게는 마지막이 되고 만 공연에 대해 짤막하게나마 전해 드릴까 한다.

 

그날의 공연은 확실히 이상한 데가 있었다. 무대는 시종일관 대낮처럼 밝아서 붉게 일어선 흰자위의 실핏줄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그 무대에서 아버지는 어두워야만 가능한 모든 마술을 감쪽같이 해치웠다. 사람들은 쉰두 장의 카드가 쉰두 송이의 장미로 변하는 걸 보고 감탄을 터뜨렸고, 쉰두 송이의 장미가 쉰두 개비의 담배가 되어 허공에 걸린 대형 담뱃갑 속으로 차곡차곡 들어가는 것을 보았을 때는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그러곤 아버지는 당신의 사진이 커다랗게 실린 《스타 트리뷴》 1면에 불을 붙인 뒤 완전히 재로 변해버린 신문지 속에서 어찌된 일인지 불에 타지 않은 사진을 조심스럽게 꺼낸 다음 가슴 속에 고이 품고는 두 손과 두 발에 수갑과 족쇄를 채웠고 온몸을 보통 때의 두 배나 되는 쇠사슬로 칭칭 감고 나서 드디어 견고한 성처럼 생긴, 어른 두 사람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상자 속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그 상자 역시 보통 아버지가 탈출마술을 공연할 때 사용하던 것과는 달리 거의 투명에 가까웠고, 그래서 수갑과 쇠사슬을 풀기 위해 온몸을 비트는 모양이 거의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적막에 휩싸인 객석에서는 간간이 참아내기 힘든 신음이 비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던 마지막 순간, 문자 그대로 눈 깜박할 동안의 짧은 순간, 요란한 폭음과 함께 무대의 모든 불이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났다. 무대 위의 반투명한 상자는 산산조각이 났고, 코니 킴은 거기에 없었다. 모두가 예상했던 것처럼(물론, 16년이 지난 지금까지 모습을 나타내지 않을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겠지만……).

 

 

 

1) To me it seems that youth is like spring, an overpraised season - delightful if to happen to be a favoured one, but in practice very rarely favoured and more remarkable, as a general rule, for biting east winds than genial breezes.(청춘이란 봄과 같은 것이어서, 지나치게 찬양받는 계절 - 즉, 혜택을 많이 받는 계절이 된다면 즐겁겠지만, 실제로는 혜택을 받는 건 거의 없이 대개는 기분 좋은 산들바람보다는 살을 에는 동풍이 더 눈에 띄는 계절인 것으로 내게는 느껴졌다.) 새뮤얼 버틀러(Samuel Butler)의 소설 「만인의 길(The Way of All Flesh)」에 나오는 한 부분.

 

2) Harlan Tarbell(1890~1960) 20세기 초에 활약한 미국의 뛰어난 무대 마술사.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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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01
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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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야생 식물원

야생 식물원 하가람 식물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다이아몬드 모양의 철골로 둘러싸인 거대한 유리 온실에는 열대와 지중해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이국적인 식물이 자란다고 했다. 한 달 전 나는 식물원 근처에 있는 여러 호텔을 찾아 은규에게 링크를 보냈다. 보통 때의 그라면 어디든 좋다고 했을 것이다. 레스토랑도, 카페도, 동네의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조차도 모조리 내 선택에 맡기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날 은규는 이미 예약한 곳이 있다고 하여 나를 놀라게 했다. 은규가 보내 준 링크를 열어 보았다. 넓은 통유리 창 너머로 식물원과 공원이 내다보이는 스위트룸이었다. 나는 조금 들뜬 채 답장했다. — 우리가 만난 지 곧 1년이래. 믿어져? 1년이라는 시간은 내게 유별났고 은규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는 것이었다. 그가 전에 사귄 여자친구는 단 두 명인데 각각 4년, 5년을 만났다고 했다. 매번 석 달도 채 넘기지 못하는 나와는 달랐다. 이따금 은규에게 이전 연인들에 대해 물었다. 그들이 어떤 성향의 사람이었고 어떤 외양을 가졌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응응, 하며 대꾸해 주던 은규는 내가 그녀들의 음악 취향이나 살던 동네처럼 구체적인 정보까지 캐묻자 태도를 바꾸었다. 기억 안 나. 그는 말했다. 다 옛날이야기라고. 그 후로는 이전에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그녀들을 생각했다. 눈, 손톱, 말투, 그리고 신발. 나와 닮았을지, 닮았다면 얼마나 닮았고 다르다면 무엇이 다를지도. 상상을 이어 가다 보면 늘 한 가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은규는 한 번도 애인과 잠자리를 가진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여자와 밤을 보내는 일이 오늘 그에게는 처음이었다. 서른을 넘긴 남성에게서 보기 드문 경우였지만 그가 처음인 게 좋았다. 그 점이 무엇보다도 나와 그녀들을 구분 지어 주는 것만 같았다. 차창에 머리를 기대었다. 햇볕에 데워진 창문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인터넷으로 보았던 화려한 꽃과 기다란 나무들을 떠올렸다. 노랗고 푸르고 분홍빛이 맴도는 공간을. 여름 휴가철이었고 도로는 차들로 빽빽했다. 졸음 껌을 씹는 은규를 보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운전하고 싶었는데.” “다음에. 너 힘들어.” 은규가 말했지만 나는 안다.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그는 내게 차를 맡기지 않을 것이다. “보면 놀랄걸? 너무 잘해서?” 나는 허리를 세운 채 한 손으로 반원을 그려 보았다. 휙휙. 입으로 소리 내며 운전대를 쥔 그를 따라 했다. 그가 웃었다. 머릿속으로 주행하기. 그것은 나만의 놀이였다. 캠퍼스 변두리에 있는 H관 1층, 5평 남짓한 주차관리실에서 상상력을 충족시켜 줄 만한 것은 많지 않았다. 먼지 쌓인 커피믹스와 낡은 소파, 책상 위에 시간별로 놓여 있는 분홍색, 파란색, 노란색 주차권들. 지겨운 서류, 서류, 서류. 드물게 실장이 자리를 지키는 날이 아니면 대체로 혼자 그곳에서 일했다. 사람들이 찾아와 주차권을 사거나 정기 등록을 마친 후 돌아가면 나는 모니터에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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