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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요일에 전하는 안부인사

  • 작성일 2013-06-01
  • 조회수 2,876

 

 

  어떤 일요일에 전하는 안부인사

 

 


  김서령

 


 

 

 

 06삽화-어떤일요일에

 

  그러니까 Q는 처음부터 내 말본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다. J가 하하하, 공연한 웃음을 몇 번 터뜨리면서 분위기를 바꿔 보려 애를 썼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다. 카페 안에는 손님이 몇 없었고 아르바이트생 혼자 커피를 내리고 베이글 굽는 일 정도는 충분히 해낼 수 있는데도 Q는 주방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얇은 입술인데 골이 앙다문 입술은 더욱 얇아 보였다. 카페 주인으로서는 그리 좋지 않은 인상이다.
   처음에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몰랐다. 만년필을 만드는 회사에서 14년을 꼬박 일한 Q가 북카페를 개업했다는 소식은 우리까지도 설레게 했다. 찻집에 앉아 두 시간을 떠들면 그중 한 시간 반은 “다 때려치우고 카페나 해볼까?” 하는 이야기였고 정종집에 앉아 세 시간을 떠들면 그중 두 시간을 “카페는 아무나 하나. 다들 망하는 세상인데.” 하면서 아직 열지도 않은 카페의 도산을 미리 걱정했다. Q의 카페에는 모두 열한 개의 테이블이 있었다. 네 명짜리 테이블과 두 명짜리 테이블이 섞여 모두 손님으로 채운다면 36명까지 가능했다. 물론 굳이 자리에 앉지 않고 커피를 사들고 나가는 이들도 있을 테니 최대 손님은 그보다 더 많을 수 있다.
   “커피값이 싸네. 서울에 비한다면.”
   내 말에 Q가 빙긋이 웃었다. 가볍고 흰 리넨셔츠의 단추는 세 개가 풀려 있었고 아주 살짝 그녀의 가슴골이 드러났다. 폭 좁은 감색 A라인 스커트는 발목까지 내려왔고 조그맣게 두른 회색 앞치마가 언뜻 그녀를 우아하게 보이게도 했다. 연출된 느낌이 과해 J와 나는 아주 살짝, 그녀가 눈치 채지 않게끔 웃기는 했지만 말이다. 오후 두 시까지는 모든 커피가 2천 5백 원이었다. 이후의 시간에는 4천 원. Q가 웃음기를 거둔 건, 내가 눈으로 테이블 수를 세고 있을 때였다. 함부로 매출액을 어림짐작하고 있는 내가 불쾌했는지 Q는 이 말 저 말 딴청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 때문에 테이블 수를 자꾸 잘못 세었지만 나도 참 어지간해서 결국은 열한 개의 테이블, 서른여섯 개의 의자까지 다 세고 만 거다. 운이 좋아 테이블을 세 번 회전시킨다 해도 108잔의 커피, 할인커피는 젖혀 두고 4천 원으로 계산하면 40만 원 조금 넘고…… 하지만 테이블 3회전이라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잖아. J와 내가 이곳에 들어온 지 두 시간이 훌쩍 넘었는데 우리를 제외한 손님이라곤 지금까지 서너 명. 계산은 빤했다. 적어도 1년 안에 Q는 두 손 반짝 들고 부동산중개업자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넣을 것이다. 아직 사려는 사람이 없나요, 하고 말이다.
   무엇보다 북카페라고 하기엔 정말이지 형편없는 책들이 거슬렸는데 지나도 너무 지난 자기계발서와 에세이집, 달달한 핑크커버 소설 들은 아무래도 서울의 제 집 책꽂이에 있는 것들을 그냥 쓸어온 듯했다. 아니면 폐업한 도서대여점 물건들을 인수했거나. 한쪽 벽면을 책꽂이로 만들었지만 다 채우지도 못해 책 한 칸, 화분 한 칸, 잡지 세 칸, 그림액자 한 칸, 이런 식이었다. J는 행여 내 입에서 책이 어쩌고, 하는 말이 나올까 봐 조마조마해 하고 있었다.
   “걱정 마. 내가 바보야? 그딴 소리로 친구 기분을 다 잡치게?”
   내가 J를 안심시키려 들자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넌 이미 쟤 기분을 다 망쳐 놨거든.”
   나는 조금 억울했다. 조언을 해주었을 뿐이었다. 예를 들자면 노트북 어댑터를 꽂기 위한 콘센트의 위치라든가(테이블과 멀찍멀찍 떨어진 콘센트 때문에 손님들은 고무줄 넘듯 어댑터 선을 건너뛰어야 했다), 책을 읽기에는 턱없이 낮은 조도(내가 보기에는 차라리 북카페라는 간판을 떼는 편이 나았다), 직접 굽기까지야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싸구려 티는 나지 말아야 하는 쿠키(몇 달 전 아무 공장에서나 막 떼어온 것 같았다!) 등등에 관한 조언 말이다. Q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나에게 답변을 했다. 노트북을 들고 와서 온종일 뭉갤 손님은 오지 않는 편이 낫다, 마른 귤처럼 모공이 숭숭 벌어진 얼굴을 남자 친구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카페가 너무 밝아서는 안 된다, 쿠키는 구색을 맞추려고 갖다 놓은 것이지 팔아 봐야 얼마 남지도 않는다, 그런 되지도 않을 소리였다. Q는 나의 어떤 말에도 동의하지 않을 각오를 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Q의 개업을 축하하기 위해 세 시간 넘게 운전해 온 터였다. 이러다간 저녁도 못 얻어먹겠다며 J가 눈을 흘겼다.

 

  주유비도 들인 데다 J와 나는 봉투도 준비했다. 게다가 하룻밤 묵을 호텔까지. 그러니 괜한 참견으로 분위기를 망치면 안 되는 거였다. 나는 입을 꼭 다물기로 마음먹고 저녁 메뉴나 고르기로 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돼지막창 먹어야지. 소주 한 잔이랑.”
   J와 내가 우우, 설레발을 쳤지만 여태 부아가 덜 풀린 Q는 시큰둥했다.
   “글쎄…… 괜찮은 데가 있을까. 막창집은 나도 잘 몰라서.”
   내가 또 알은체를 했다.
   “여기서 몇 블록 지나면 자갈마당이지? 그 동네 근처에 맛있는 집 있어.”
   Q가 나를 쳐다보았다.
   “자갈마당이 뭐야?”
   나는 Q가 정말 몰라서 그러는지, 알면서 모르는 척을 하는지 알 수 없어 잠깐 머뭇거렸다. J도 내 대답을 기다리며 빤히 바라보았기 때문에 대답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거…… 유곽.”
   둘 다 갸우뚱한다. ‘유곽’이라는 표현이 낯설어서 그런가 싶어 더 쉽게 설명했다.
   “창녀촌.”
   Q와 J의 표정이 뜨악해졌다.
   “몰랐어? 이 동네, 진짜 그걸로 유명한 덴데.”
   둘의 표정이 몹시 착잡해져서 나는 부랴부랴 설명을 길게 덧붙였다.
   “우리 학교 때도 배웠잖아. 황석영, 삼포 가는 길. 거기 나오는 백화가 얘기도 하는데. 이거 왜 이래? 나 백화는 이래봬도 인천 노랑집, 대구 자갈마당, 포항 중앙대학, 진해…… 거긴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어쨌거나 나 백화는 그런 데 다 거친 년이다, 뭐 그런 대목. 기억 안 나? 거기 나오는 자갈마당 유곽이 바로 이 동넨데. 진짜 몰랐어?”
   말을 잘못 꺼낸 것 같았다.
   “이 동네가 창녀촌이라고?”
   Q는 모욕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내가, 창녀촌 동네에다가 가게를 낸 거라고?”

 

  나는 바쁘게 변명을 했다. 유곽 있는 동네라는 게 나쁘단 뜻은 아니었다, 그렇고 그런 여자들이 북카페에 드나들 리도 없고, 아니, 또 드나들면 어떠냐, 그 여자들은 커피도 못 마시고 책도 못 읽냐, 내 말은 두서없었다. Q도 없는 돼지막창집에서 나는 J만 앞에 앉혀 두고 구구절절 변명을 했다. 자갈마당 유곽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고 돼지막창은 질겼다. 예전에, 그러니까 십 년 전쯤,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되었겠지만 아무튼 그때는 참 고소하고 맛있었는데. 그때 1인분에 4천 원이던 돼지막창은 이제 8천 원이 되었다. 두 배는 맛있어져야 할 막창은 그저 그랬고 J와 나는 맥주와 소주를 섞어마셨다. 뾰로통하던 J는 내가 섞어주는 폭탄주가 제일이라며 금방 마음을 풀고 헤벌쭉 웃었다. 심하게 토라진 Q가 걱정되었지만 오히려 J가 나를 위로했다.
   “걔가 좀 발끈거리잖아. 내일 가서 냉면 사주면 돼. 금방 풀 거야.”
   속도 없이 나도 끄덕끄덕하며 맥주 두 병을 더 주문했다. 막창은 불판 위에서 까맣게 그을었다. 말간 콩나물국만 떠먹으며 우리는 술을 잘도 마셨다. Q의 카페와는 달리 막창집에는 손님이 많았다.
   자갈마당에 대해 아는 척을 하기는 했지만 나도 사실 그 골목 안으로 들어가 본 건 아니었다. 동네 모퉁이에 차를 세우고 그를 내려 준 것뿐이었다. J와 호텔방 침대에 누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그의 이름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큼직한 눈과 까무잡잡했던 피부, 그리고 땅땅하고 굵은 팔뚝도 선명하게 떠오르는데, 이름은 도무지 모르겠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자갈마당에 드나들던 사람이었다. 항상 술을 마신 이후여서 자주색 스쿠터를 몰고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의 월급날이면 내가 직접 그곳에 데려다 주었다.
   “잘 다녀오세요, 부장님.”
   차에서 내리는 그에게 그렇게 인사를 했다. 히죽 웃으며 내리던 남자. 그를 부장님, 이라고 불렀던 일도 나는 침대에 누워서야 기억해 냈다. 그럴 만도 하다. 오래되었으니까. Q의 카페가 이 근처가 아니었다면 한참은 더 잊고 있었을 일이었다. 요사이는 이상하게도, 지나간 이들이 까닭 없이 떠오를 때가 많았다. 그립지도 않은데 말이다.

 

  그때 나는 K에게 매일매일 사랑을 고백했다. K도 나에게 그러기는 마찬가지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들어간 무슨무슨 연극협회에서는 월급을 40만 원씩 받았다. 나는 내 월급 액수가 믿기지 않았지만 협회의 모든 사람은 당연하게 여겼다. 1년 반을 버티다가 두 번째로 들어간 영화사에서는 아예 돈을 주지 않았다. 그때는 억울한 줄도 몰랐다. 영화가 자꾸 엎어지니 영화사는 돈을 못 벌 것이고 그러니 내가 월급을 못 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되었다. 프로듀서 하나가 분연히 독립을 하면서 나를 데려갔다. 세 번째 직장이었다. 그는 돈도 안 주는 영화사 사장이란 그것만으로도 교도소에 가야 할 만큼 비열한 작자라며, 예술을 할 가치도 없는 인간이라 통렬히 비판했다. 감동을 받은 나는 그가 설사 한 달에 20만 원만 주더라도 평생을 함께 일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사장이 된 프로듀서는 서너 달에 한 번 20만 원씩 주었다. 엄마는 계좌로 월세를 보내 주는 일을 거르지 않았지만 대신 욕설도 빠뜨리지 않았다. 엄마가 월세를 보내 주지 않으면 살 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얌전히 다 들었다. 때로는 정말 서러워져 쿨쩍쿨쩍 눈물을 떨어뜨린 날도 많았다. 대학동기 중 나만큼 인생을 허비하는 친구도 없는 것 같았다. 나보다 학점이 훨씬 낮았던 J도 대기업 비서실에 입사했고 규모는 크지 않은 회사지만 Q도 만년필 회사에서 그럭저럭 월급을 받고 있었던 거다. 대학 2학년 때 만난 연극과 녀석이 화근이었다. 그 녀석을 만나면서 연극과 영화에 홀랑 빠져버린 것이 나를 그 지경으로 만든 거였다. 그 녀석은 여태 단역배우다. 가끔 드라마나 영화 꽁지머리에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그를 볼 때면 아직도 부아가 치밀곤 했다.

 

   그런 와중에 K를 만난 건 나에게 구원 같은 일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졸랑졸랑 나를 따라다니던 개구쟁이 K는 아주 멀끔한 청년으로 자라 있었다. 그에게도 내가 구원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볼 것 없는 삼류 지방대를, 거기다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K는 의경으로 막 제대를 한 참이었다. 스물여덟 살이었지만 취업은 요원했다. 어릴 적부터 잘 알던 K의 어머니는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기함을 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스물여덟 살, 키 크고 잘생기기만 한 아들이 그렇게까지 미워질 줄 몰랐던 거다. 그래서 우리는 열렬히 사랑만 하기로 했다. 사랑 이외의 것들은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으므로 우리의 선택은 어쩌면 당연했다. 나는 서울에, 그는 자갈마당이 있던 도시에 살고 있었지만 그런 것은 문제되지 않았다. 서너 달에 20만 원씩 쥐어주는 영화사 따위 미련 없이 던져버렸다.

 

  결혼을 하겠다고, 그러니 돈을 내놓으라고 말짱한 얼굴로 이야기하는 두 백수를 두고 양쪽 어머니들은 처음에 말을 잇지 못했다. 영화사 제작부 생활만 3년을 한 나는 프리젠테이션 준비라면 이골이 나 있었다. 선명하게 컬러 출력을 한 프리젠테이션 파일을 나는 엄마에게 내밀었다. K도 내가 만든 파일을 제 어머니에게 내놓았다. 보증금 2천만 원에 월세 60만 원짜리 카페를 얻겠다는 야무진 사업계획서였다. 권리금 3천만 원은 우리가 보기에도 좀 과한 금액이었지만 대학가의 해 잘 드는 2층 점포라는 것, 아래층이 그 동네에서 가장 손님이 많은 갈비집이라는 것을 부각시키며 어머니들을 설득했다. 아주 무모한 시도는 아니었다. 우리의 아버지들도 동갑내기여서 막 55세 정년퇴직을 한 때였다. 같은 회사, 같은 직급, 같은 근속연수를 가진 아버지들의 퇴직금 통장에서 각각 2천 5백만 원씩 갹출하기까지 시간은 제법 걸렸다. 대신 집값이나 혼수 같은 가욋비용은 일체 받지 않겠다는 약속을 걸고서였다. 미안한 일이지만 우리는 가게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이후에 각각 천만 원씩 더 얻어내야 했다. 조금만 손보면 될 것 같았던 인테리어 비용도 슬슬 부풀었고 성능이 딸리는 에어컨도 새로 사야 했기 때문이었다. 간판도 바꾸고 커피잔을 들이고 재료들도 사야 했다. 양쪽 집이 말도 안 되는 그런 강탈을 눈감아 준 건 맏딸, 맏아들이 백수인 채로 결혼을 하는 끔찍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경제적 지원의 전제조건, 결혼을 당장 할 수는 없었다. 집도 없고 혼수비용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돈을 번 다음에 하기로, K와 나는 마냥 신이 나서 그렇게 미루었다.
   낡은 건물 외벽은 흰 나무 패널로 덧대고 조명을 달았다. 오렌지색 소파와 테이블을 들이고 액자를 걸고 코너마다 작은 모니터를 달았다. 케이블 TV 음악방송에서는 하루 종일 뮤직비디오를 틀어 주어서 음악을 따로 선곡할 필요도 없었다. 여대 앞이었다. 앙증맞고 귀여운 소품들을 잔뜩 사들였다. 그때 커피값을 얼마로 정해 두었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지만 커피 손님들에게 내어갈 바게트를 따로 준비했던 일은 선명하다. 작은 접시에 어슷 썬 바게트 한 쪽 놓고 생크림을 짰다. 식품 도매상에는 희한한 것들이 많았다. 초콜릿칩을 커다란 봉지 가득 사도 얼마 하지 않았다. 생크림과 초콜릿칩을 얹은 바게트 빵을 서비스로 내어가는 카페는 우리뿐이었다. 개업선물로 나누어줄 마스크팩을 주문하고 유리잔과 머그컵들을 윤이 나게 반들반들 닦아 두며 K가 문득 물었다.
   “원두커피 내릴 줄 알아?”
   나는 말가니 K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 할 줄 몰라?”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라고는 중학생들 과외 몇 번 뛴 것이 다였다. K도 마찬가지여서 우리는 커피숍 서빙조차 해본 적 없는 한심한 카페 주인이었던 거다. 커피가루를 얼마나 떠넣어야 하는지, 물은 어디로 부어야 하는지 K와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커피메이커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몇 번 물이 넘쳐 바를 온통 엉망으로 만든 이후에야 대충 커피 빛깔을 낼 수 있었다.
   “토마토주스를 만드는데 왜 얼음도 같이 갈아야 해?”
   마음이 급해진 K는 카페를 한다는 선배네에 가서 레시피를 받아 적어 왔다. 딸기스무디와 팥빙수, 피나콜라다와 레모네이드, 복숭아 아이스티를 만드는 방법이 수첩에 빽빽이 적혀 있었다. 도저히 욀 수가 없어 한 장 한 장 뜯어 바 아래에 붙여 놓았다. 토마토주스에 얼음이 세 개가 들어가는지 네 개가 들어가는지 자꾸 헛갈려 나는 바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 얼음 개수에 빨간 동그라미를 쳐두었다. 싸구려 믹서기는 얼음을 몇 번 갈고 나니 날이 망가졌다. 오픈도 하기 전에 음료 만드는 연습을 하느라 비싼 유리잔도 몇 개 깨고 깜박 잊고 냉장고에 넣어 두지 않은 빙수용 팥에는 곰팡이가 앉아버렸다. K는 양손에 솔을 들고 바닥 타일 사이에 낀 묵은때를 지우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나는 파인애플을 아낌없이 넣은 피나콜라다를 만들어 K의 어깨 너머로 건넸다. 상인연합회 회장이라는, 맞은편 카페 사장이 오픈 전날 찾아왔다. 우리는 고개를 꾸벅 숙여 공손히 인사를 했다.
   “모니터 뮤직비디오는 소리를 죽여 버려요. 음악은 따로 틀어야죠. 아니면 애들이 뮤직비디오 들여다보느라 일어나질 않아. 그냥 화면만 틀어 놓아야 해요.”
   K와 나는 그렇게 중요한 팁을 나누어준 상인연합회 회장이 고마워서, 델몬트 바나나를 세 송이나 선물로 쥐어주었다.
   “바나나는 우리 가게에도 많은데.”
   옆구리에 바나나를 끼고 나가며 그는 웃었다. 잠시 후에는 근처 은행 직원이 햇볕에 빨갛게 탄 얼굴을 하고 들어왔다. 박카스 한 상자를 들고서였다. 하루하루 은행에 들를 필요 없이 매일 오후 시간에 자신에게 돈을 건네주면 절로 입금이 된다고 했다. 하루 매출이 얼마나 될지 짐작을 하지 못해 망설이는 우리에게 그가 씩씩한 소리로 말했다.
   “액수는 상관없어요. 만 원 벌면 만 원만, 백만 원 벌면 백만 원만. 제가 여기다가 액수 쓰고 도장 찍어 드리거든요!”
   꼭 통장처럼 생긴 기록장이었다. 액수를 쓰고 도장을 찍을 수 있도록 빡빡하게 칸이 나뉘어 있었다. 빨갛고 작은 도장이 숱하게 찍힐 기록장을 보며 마음이 벌써 설렜다. K와 나는 흔쾌히 계좌를 만들었다. 여대 앞이었으므로 깨끔하게 생긴 남자 아르바이트생도 둘이나 구한 후였다. 카페가 잘 되지 않을 이유는 하나도 없어 보였다. 연극협회니 영화사를 전전하며 날려버린 청춘이 억울해 죽을 지경이었다. 꽁꽁 언 아이스크림을 스쿱으로 동그랗고 예쁘게 푸는 일은 아직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런 것쯤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오픈 전야 파티를 할 참이었지만 녹초가 된 우리는 각자의 원룸으로 돌아가 그대로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J는 미니바에서 맥주를 두 캔 꺼냈다. 분명 트윈침대를 예약했는데 프런트에서는 더블침대밖에 남지 않았다며 미안한 얼굴을 했다. 오랜 시간 누군가와 침대를 나누어 본 적 없는 나와 J는 깊이 잠들기 어려웠다.
   “그때 내가 결국 그 카페엘 가보지 못했지?”
   곧 갈게, 라는 약속을 스무 번도 더 했지만 J는 오지 못했다. 대리로 막 진급한 J는 몹시 바빴고 즐거웠고 도도했다. 엄마를 졸라 얻어낸 돈으로 오픈한 친구의 카페가 그리 궁금하지 않았던 걸 테다. J가 한 번도 와보지 않은 그 카페에 대한 이야기를 그녀와 자주 나눌 일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그 일을 꽤나 빨리 잊었다. 어떤 일들은 예상보다 더 빨리 잊혔다.
   “내일 서울 가기 전에 한번 들러 볼까?”
   J의 말에 가슴이 콩,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없어졌을 텐데, 뭐. 대학가 카페란 게 오래 남거나 하지 않잖아.”
   보고 싶지 않다. 마냥 낡고 때탄 채로 남아 있다면 나는 올칵 눈물이 날지도 몰랐다. 비껴간 시간은 그냥 두자 싶다. 맥주는 시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호텔 근처의 편의점에서 몇 캔 사올 것을. 내일 아침 체크아웃을 하면 턱도 없이 비싼 맥주값에 투덜거리게 될 것이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대학가의    카페들은 어디나 점심 메뉴를 팔았다. 고추장불고기덮밥, 돈가스, 치킨도리아, 오징어덮밥, 또…… 어쨌거나 어디나 같은 메뉴였다. K와 나는 초조해졌다. 여대생들은 커피와 소다수가 밥값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굳이 차만 마시려 들지 않았다. 별수 없이 주방아주머니를 구해야 했다. 뚱뚱하고 손이 느린 첫 번째 아주머니는 양배추를 다듬다가 주방이 좁아서 도저히 일을 못 하겠다며 두 시간 만에 가버렸다. 두 번째 아주머니도 다를 바 없었다. 테이블 여덟 개의 작은 카페에서 두 시간 동안 백여 그릇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걸 미처 생각지 못한 거였다. 두 구짜리 가스레인지 한쪽의 기름솥에서 거뭇거뭇 탄 돈가스를 꺼내고 다른 쪽 프라이팬에서 오징어를 볶다가 신경질이 잔뜩 올라 주방 옆 카운터에 앉은 나를 내내 초조하게 했다. 사흘째 되던 날 출근시간이 되었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재잘재잘 몰려든 여대생들을 돌려보낼 수 없어 구운 베이글과 우유 한 잔을 그냥 돌렸다. 주방아주머니는 전화를 걸어와 계좌번호를 알려주었다.
   “이봐요, 젊은 사장. 내 한 마디 충고하겠는데 거기선 누구도 일 못 해. 좁아서 재료도 못 쌓아 놔. 둘을 쓴다 해도 주방에 설 자리도 없어. 그냥 커피나 팔아요.”
   K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인력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주방을 넓힐 도리도 없었고 이러다간 여대 앞 카페들 중 꼴찌 매출을 기록하게 될지도 몰랐다. 그때 나타   난 사람이 조부장이었다.
   “프라이팬 제일 큰 걸로 다섯 개 사놓고. 칼도 이거 바꿔야 해. 이런 걸론 아무것도 못 썰어.”
   그는 새로 사야 할 물건들과 각종 음식 재료들을 종이에 쭉 적어 내려가더니 전화번호 하나를 건네주었다.
   “여기다 전화해서 조부장이 쓸 물건이라고 하쇼.”
   부장님, 이라고 불러야 하는 거구나. 적당한 호칭을 찾아내 K와 나는 안도했다. 짧게 깎은 머리와 단단해 보이는 근육, 그리고 붉고 검은 피부를 가진 남자였다. 그리고 서른세 살이었다. 다음날부터 출근을 약속한 그는 스쿠터 키를 들고 나가며 한 마디 했다.
   “주방이 좁아. 일하기가 쉽지 않아. 월급은 20만 원 올려 줘야 해. 대신 나는 안 쉬어.”
   K가 먼저, 그리고 곧이어 내가 얼떨결에 끄덕였다. 거절할 형편이 아니었다.

 

   지금 와 돌이켜보건대 카페가 잘 굴러간 데는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첫 번째는 담배였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변기 뒤쪽의 선반 혹은 문틀 위에서 피우다 만 담뱃갑을 발견했다. 그것은 마치 일부러 숨겨 둔 것처럼 얌전하게 놓여 있었는데, 제 방 화장실도 아닌 카페의 화장실에 담배를 숨겨 둘 리는 없다고 생각해서 나는 내 멋대로 그것들을 유실물로 여겨버렸다. 그러니까 보이는 대로 들고 나와 내가 피워버렸다는 이야기다. 한 달쯤 지나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는데 나는 문득 깨달았다. 카페가 있던 도시는 유독 보수적인 곳이었다. 여대생들이 카페에서도 쉽게 담배를 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거였다. 여대생들은 친구들도 눈치 채지 못하게 화장실에서 몰래 피우고 담뱃갑을 화장실 여기저기에 숨겨 놓았던 거다. 유실물이 아니었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대생들 사이에 소문이 났다.
   “거기 카페언니, 담배 피워.”
   나는 아무데서나 담배를 물었고 그래서 우리 카페에 오는 여대생들은 테이블 위에 잘도 담뱃갑을 올려놓았다. 나는 담뱃갑에 이름을 적어 맡아 주기 시작했다. 유아교육학과 2학년 조 아무개, 간호학과 3학년 박 아무개, 비서학과 1학년 정 아무개. 이름이 쓰인 담뱃갑들이 카운터 아래 선반에 차곡차곡 쌓였다. 화장실 곳곳에 숨겨 놓았다가 잃어버린 적 있는 여대생들은 그토록 합리적인 보관 방식을 기뻐했고 나는 웬만한 여대생들의 이름을 다 외는 카페언니가 되었다.
   두 번째 요인은 조부장이었다.
   나는 아직도 놀랍다. 어떻게 그 좁은 주방에서 순식간에, 맥락도 없이 가짓수만 숱한 음식들을, 주문한 순서도 뒤섞이지 않고, 그렇게 맛깔나게 만들 수 있었는지 말이다. 그는 점심시간이 되기 한 시간 전쯤 출근해 각종 채소를 채썰고 기름솥을 달구었다. 그러고는 첫 주문을 받을 때 소주병을 땄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가격을 안다면 차마 입에 넣기도 망설여질 만큼 값싼 돼지 뒷다리살과 몇 달은 냉동실에서 얼어 있었을 오징어, 하도 두들겨 그저 얄팍하기만 한 중국산 돈가스였다. 성분표시도 되어 있지 않은 치킨스톡을 한 스푼 떠 넣은 그라탕에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고소한 닭고기 향이 났고, 정말 딸기가 들기는 했는지 알 수도 없는 싸구려 딸기원액을 마요네즈에 섞었을 뿐인데도 샐러드는 말도 못 하게 상큼하고 신선했다. 한 손으로 기름솥에서 자글자글 끓는 돈가스를 꺼내고 한 손으로 프라이팬을 흔들어 오므라이스를 잘 덮고, 또 어디선가 나타난 한 손으로 그는 소주잔을 채워 입에 털었다. 두 시간 동안 그는 백 그릇을 만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백오십 그릇을, 또 이백 그릇을 만들었다. 소주는 딱 두 병으로 끝을 냈다. 마지막 메뉴가 나가고 나면 그는 자그마한 목욕탕 의자를 끌어 놓고 잠시 쉬었는데, 그럴 때면 가뜩이나 붉은 얼굴에 열기가 올라 그의 얼굴은 터질 것만 같았다. 주방 입구에서 그를 말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이유도 없이 코끝이 찡해지곤 했다. 정말 이유는 없었다.

 

   “정말이야. 그렇게 맛있는 고추장불고기는 먹어 본 적이 없다니까.”
   나는 아사히 맥주를 한 캔 더 땄다. 그가 해주는 고추장불고기를 옆에 두고 소주 한 잔 딱 하고 싶었다.
   “배우지 그랬어. 혹시 자기 비법이라고 막 감추고 그러나?”
   J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휴무는 필요 없다고 했지만 조부장은 종종 멋대로 결근을 했다. 그래서 K와 나에게 틈날 때마다 조리 방법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가 미리 양념해 놓은 고기로 음식을 해도 우리 손에서는 그 맛이 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그건 그가 불 위에서 프라이팬을 젖히는 각도, 재료가 주걱에 닿는 빈도, 그리고 다 익은 음식이 차가운 접시에 담기는 속도, 그런 것의 영향이었을지도 모른다. 일테면 따라할 수 없는 조부장의 리듬감 같은 것 말이다. 아까 돼지막창을 남긴 건 잘못한 일이다. 뒤늦은 허기에 나는 맥주만 꿀꺽꿀꺽 들이켰다.
   “이 맥주 도대체 얼마야?”
   J가 미니바 부근을 뒤져 가격 리스트를 찾아냈다. 그녀의 표정이 잔뜩 구겨졌다. 나는 못 본 척했다.

 

  점심시간이 끝나면 조부장의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아 다음날 쓸 재료를 주문하고 채소들을 다듬으면 그만이었다. 오후 서너 시면 그는 퇴근을 해도 되었지만 아마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을 것이다. 얌전하기만 한 아르바이트생을 앉혀 놓고 끝도 없는 잔소리를 늘어놓거나 혼자 열이 올라 쥐어박았다. 삼선당 가루를 잔뜩 뿌린 깍두기를 담그기도 하고 부추김치를 담그기도 했다. 냉동 홍합살 몇 알과 오징어 다리를 썰어 넣고 끓인 라면을 먹을 때면 어김없이 깍두기와 부추김치를 한 접시씩 내와 국물까지 싹싹 비웠다. 그의 달큼한 김치 양념은 카페 문을 닫고 몇 년이 지나도록 늘 내 혀를 간질였다. 그는 생과일주스를 내기 위해 사온 유리잔에 소주를 부어 테이블에 앉았다. 쫀득하게 노가리도 잘 구울 줄 알아서 나는 종종 그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 낮술에 함빡 취했다. 어린 단골손님들에게 농지거리도 던지면서 그는 느물느물 밤 열한 시, 카페 문을 닫을 시간까지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손님이 많건 적건 카페 일은 사실 지루했다. 다 합해 보아야 스무 장도 되지 않는 음악 시디를 돌려듣는 일도, 신내와 단내를 번갈아 풍기는 음료를 만들어내는 일도. 별것도 아닌 일로 수선을 떠는 유치한 여자 아이들을 쳐다보는 일도 싱거워졌다. K는 그래서 문을 닫고 나면 근처의 안동찜닭집에 가거나 가끔은 이 도시에서 가장 큰 시장으로 나를 데려갔다. 상인들이 좌판을 거둔 밤마다 붉은 포장을 치고 장어를 팔거나 해삼과 멍게를 팔았다. 조그만 플라스틱 의자를 깔고 앉아 소주 한 잔씩 마실 수 있었다. 조부장은 스쿠터를 카페 앞에 세워 놓고 우리를 따라나섰다. 해삼 한 마리와 멍게 두 마리를 썰어주는 주인에게 조부장이 꽥 소리를 한 번 지르면 멍게 한 마리가 더 올라왔다. 그는 물이 좋네 안 좋네 투덜거리며 홍합탕 정도는 마음대로 한 대접씩 퍼왔다. 창피하기도 했지만 K와 나는 조부장이 마음껏 으스대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래야만 다음날 제 시간에 출근을 했고 일을 할 때 짜증을 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부장님은 결혼 안 하세요?”
   내가 물으면,
   “누가 나 같은 놈하고 결혼을 해줘. 집이 있어, 돈이 있어, 그렇다고 배운 게 있기를 해.”
   무심하게도 툭툭 뱉었다. 그럴 때면 그의 짙은 눈썹이 경련처럼 짧게 흔들리곤 했는데 하긴, 이런 남자는 무서워서라도 같이 살기 힘들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조부장은 손버릇이 나빴다.
   몸매가 호리호리한 남자 아르바이트생은 손님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접시를 내려놓다 보면 메모지를 아르바이트생의 손에 슬그머니 쥐어주는 여자 아이들이 많았다. 콧대 높은 아르바이트생은 주방으로 들어와 픽 코웃음을 치면서도 절대 메모지를 무시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게 다 사장님을 위한 거라고요. 제가 이런 거 잘 받아 줘야 장사도 잘 되죠.”
   그래서 K는 아르바이트생의 생일날 보너스도 두둑히 챙겨 주었다. 그런 녀석의 머리통을, 조부장이 어느 날 내리쳐 버렸다. 주문받은 순서대로 제대로 서빙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말릴 틈도 없이 조부장은 주방에서 달려 나와 프라이팬으로 퉁, 가격했다. 녀석은 여자 아이들이 다 쳐다보는 앞에서 기절했다. 아아. 그날 마무리를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앰뷸런스까지 부르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아르바이트생에게 가장 큰 관심을 보였던 주근깨쟁이 유아교육과 여자애가 비명을 지르며 울었던 건 생각이 난다. 우리는 조부장도 필요했고 잘생긴 아르바이트생도 필요해서 늘 조마조마했다. 뒤통수에 주먹만 한 혹을 단 아르바이트생에게 기분 풀라며 아마 몇 만 원 찔러줬을 것이다.
   조부장은 월급날이면 자갈마당에 갔다. 때가 되어 목욕탕에 가는 사람처럼 그는 덤덤하게 일어났다.
   “갔다 올게. 가게 문 잘 닫고 가라.”
   K와 나는 점심 손님들이 들이칠 시간까지도 출근하지 않는 조부장을 데리러 그의 집을 몇 번 찾아간 적이 있었다. 엇비슷한 골목길을 돌고 돌면 그의 자주색 스쿠터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방으로 들어가는 조그만 은색 쪽문은 벽에 붙은 달력종이 같았다. 탕탕탕, 몇 번 두들기면 황소개구리 울음 같은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수도꼭지 달랑 하나 달린 부엌이 있고 그의 방이었다. 여자를 데려온 적 없는 십오 만 원짜리 월세방. 술이 덜 깨어 눈도 겨우 뜬 그를 달래 데리고 나오곤 했다.
   “부장님. 같이 나가요. 모셔다 드릴게요.”
   “뭐. 그러든지.”
   막상 자갈마당 근처에 오면 그는 차를 세웠다.
   “그만. 여기까지만. 걸어갈란다.”
   유곽을 한 번도 가까이서 본 적 없는 나는 내심 골목까지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건 왠지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의 말대로 차를 세우고 K와 나는 돌아갔다. 그는 허정허정 걸어 사라졌다. 희한하게도 그가 사라지는 풍경은, 무지근했다.

 

   나는 자꾸 지루했고 해 잘 드는 자리에 노트북을 펼쳐 놓고 프리셀 카드놀이를 했다. 어쩌면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지레 겁먹은 것인지도 몰랐다. K도 나에게 고백한 적은 없으나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도 나처럼 어렸으니까 말이다. 양쪽 부모님들은 볼 때마다 재촉을 했다. 결혼을 전제로 돈을 내어준 것인데 둘 다 모른 척하고 앉았으니 울화가 치미는 것도 당연했다.
   조부장은 쉴 새 없이 사고를 쳤다. 에어컨 필터를 털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을 이유도 없이 뒤에서 걷어찼다가 화가 폭발한 녀석과 싸움이 붙었고 엎치락뒤치락하던 끝에 옆에 세워 둔 남의 차를 부숴버렸다. 둘 다 파출소에 붙잡혀 갔고 나와 K는 박카스 한 박스를 들고 찾아갔다. 피가 철철 흐르는 얼굴을 하고 있던 아르바이트생은 우리를 보자마자 그만 울음을 터트렸다. 그동안 어지간히도 참았던 모양이었다. 결국 녀석이 그만두고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들어왔을 때는 또 어쩌자고 자꾸만 엉덩이를 만지려 들었다.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신고를 하겠다며 몇 번이나 전화기를 들어서 그걸 말리느라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 급기야 그녀의 아버지가 찾아와 카운터의 금고를 바닥에 메다꽂았고 조부장의 턱을 두어 번 갈겼다. 나는 전자레인지에 넣어 따뜻하게 데운 수건을 조부장의 턱에 대주었다.
   “그래도 파출소에 간 것보단 낫잖아요.”
   “맞아. 파출소 순경들이 부장님을 이제 다 알아요.”
민망했는지 조부장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K는 망치로 찌그러진 금고를 두들겼지만 쉽게 펴지지 않았다. 금고 서랍은 이후로 열 때마다 요란하게 삐걱거렸다.

 

   Q는 삐죽이기는 했지만 금세 마음을 풀었다. 나는 설거지물 같은 평양냉면을 정말 싫어했지만 Q를 위해서 기꺼이 함께 먹었다. 녹두전도 수육도 작은 걸로 하나 주문했다.
   “오래오래 북카페 잘해. 자주 놀러올게.”
   그녀 옆에서 나는 헤벌쭉 헤벌쭉 웃었다. Q가 밉지 않게 눈을 흘겼다. 냉면 그릇을 들고 육수를 훌훌 마신 그녀가 말했다.
   “난 있잖아. 잘살 거야. 그래야 해.”
   “그럼. 그래야지.”
   J가 냉면 가닥을 앞니로 끊으며 대답했다.
   “내가 이제껏 한 일이라고는 만년필 회사를 14년 다닌 거랑 결혼을 한 것밖에 없어. 그런데 이제 둘 다 쫑났잖아. 그러니 나는 아무것도 안 한 여자란 말이야.”
   반박을 해주어야 하는데, 그런 게 아니라고 말을 해주어야 하는데 J와 나는 선뜻 그러지 못했다. 어버버버, 할 말을 찾는 사이 Q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난, 뭐라도 해야 해. 그것도 잘.”
   J와 나는 그저 끄덕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를 때 상대가 더 많은 말을 해주면 그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Q를 북카페에 도로 데려다주고 우리는 차를 돌렸다. 주말이라 서두르지 않으면 고속도로가 꽁꽁 막힐 거였다. 내비게이션에 서울 주소를 입력하고 나는 핸들을 잡았다. 꼭 그러고 싶었던 것은 아닌데, 나는 일부러 길을 잘못 들었다. 조금만 돌아가면 그 카페가 보일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가까이서 들여다볼 생각은 없고 그냥 잠시, 스쳐가는 것은 괜찮을 것 같았다. 내비게이션은 길을 잘못 들었다고 시끌시끌 떠들었지만 J는 다행히도 개의치 않았다.

 

   월급날이 되려면 한참 남았는데 조부장이 멋쩍은 얼굴로 말을 꺼냈다.
   “나, 가불 좀 해주지.”
   “얼마나요?”
목을 큼큼 가다듬고 조부장이 짧게 대답했다.
   “60만 원.”
   화들짝 놀랐다. 다른 주방장들보다 월급은 많은데 도통 쓸 일이 없다며 단골 여자 아이들에게 추근대던 사람이 가불을 60만 원이나 해달라니, 큰일이라도 생긴 건가 싶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조부장이 그답지 않게 우물쭈물했다. K도 바짝 다가앉았다.
   그러니까 그는 사랑에 빠진 거였다. 자갈마당 유곽에서 만난 여자에게 말이다. 놀이동산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녀를 꼭 데려가 주겠다고 약속을 했단다. 그녀를 하루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비용이 60만 원이라고 했다. K와 나는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저기 부장님…… 그건 별로 좋은 일이 아닌 것 같구요.”
   그는 K의 말을 잘랐다.
   “응. 좋은 일 아닌 거 안다.”
   이번에는 내가 말했다.
   “제가요, 20만 원을 가불해 드릴게요. 그걸로 클럽엘 가는 거야. 옷도 쫙 빼입고.”
   나는 K의 옆구리를 쿡쿡 쳤다.
   “네가 같이 가줘. 가서 여자애들을 막 후리고 오는 거야.”
   “그래요, 부장님. 그렇게 해요. 제가 물 좋은 데로 같이 가드릴게요.”
   조부장은 말이 없었다.
   “미안한데, 60만 원 꼭 해주라. 내가 꼭 그래야겠다.”
   조부장이 일어났고 나는 그의 등 뒤에다 대고 우물우물했다.
   “차라리 결혼정보회사 등록을 하시든가…….”
   나는 월급의 절반에 가까운 돈을 단 하루 유곽의 여자를 위해 쓸 거라는 사실이 하도 아까워 애를 태웠다. K는 그런 조부장을 이해할 것 같다고 하다가 몇 분 지나지 않아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그럴 순 없다고 분개했고 또 풀 죽은 그를 보는 일이 안타까워 고민을 했다. 끝내 60만 원을 우리는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처음으로 하루 휴가를 냈다. K는 제일 비싼 셔츠와 구두를 조부장에게 빌려주었다.

 

   조부장과 그녀의 짧은 사랑이 끝난 연유에 대해서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얘기를 들었지만 이제 잊은 것일 수도 있고 그가 입을 다문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래된 일이다. 카페는 꼭 일 년 만에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권리금도 나쁘지 않게 받을 수 있었다. 결혼은 조금 더 생각해 보아야겠다는 우리의 말에 양쪽 부모님은 긴 한숨을 쉬었다. K나 나나 등짝깨나 맞았을 것이다. 우리는 처분한 돈을 정확하게 반으로 나누었다. 조부장은 술에 취한 채 월세방으로 돌아가던 길에, 싸움질을 하는 고등학생들을 만났다. 고등학생들은 혀가 꼬인 채로 잔소리를 하는 그가 마음에 들 리 없었고 금세 그들은 뒤엉켜 바닥을 굴렀다. 고등학생 무리는 네 명이었던가, 다섯 명이었던가. 수세에 몰린 조부장은 손에 들고 있던 검은 비닐봉지 속 소주병을 꺼내 한 녀석의 머리통을 깨버렸다. K와 내가 파출   소에 간 건 아마 그때가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우리 이거, 너무 자주 만나는 거 아닙니까?”
   우리는 배시시 웃으며 박카스 상자를 열어 한 병씩 순경들에게 나누었다. 남은 박카스를 얌전히 테이블에 올려 두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때쯤 그런 일은 몸에 익었다. 나는 서울로 돌아와 다시 영화사에 들어갔다.

 

   J가 눈치 채지 못하게 나는 천천히 대학가 근처로 차를 몰았다. 한 골목만 더 돌면 카페 자리가 보일 것이었다. 이제 사십대 중반이 되었을 조부장은 결혼을 했을까. K도 몇 년 전 아기아빠가 되었다던데. K와 내가 헤어지는 과정은 우리가 얼토당토않게 사랑에 빠졌던 일처럼 자연스러웠다. 사랑에 빠지는 일이 우리를 구원했던 것처럼 다시 구원받기 위해서는 이별도 필요했다. 조부장의 소식은 이후 한 번도 들은 적 없다. 스쿠터는 더 타지 않겠고, 복잡한 골목길 월세방도 이제는 벗어났겠지. 자갈마당은 사라졌다. 조부장의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골목 앞에서 나는 망설였다. 다시 산뜻한 새 카페로 변신해 있다 해도 서운할 것이고 낡고 지쳐 있다면 더 서운할 것이었다. 산다는 일에 어쩐지 눈이 끔벅끔벅해지는 일이 잦은 요즘으로서는 그냥 지나치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스물여덟 살의 그때처럼 온갖 일에 호기심이 만발하지도 않으니 나는 그 골목을 쳐다보지 않기로 한다. 이름도 참 촌스러웠던 ‘카페 별’은 스물여덟 살 그 시절에 그냥 두기로 한다. 어쩌면 그것이 나름대로, 한 시절에게 안부를 전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음악 좀 틀어 봐.”
   내 말에 J는 살풋 웃으며 묻는다.
   “뭘로 들을래?”

 

 

 

   《문장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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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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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야생 식물원

야생 식물원 하가람 식물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다이아몬드 모양의 철골로 둘러싸인 거대한 유리 온실에는 열대와 지중해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이국적인 식물이 자란다고 했다. 한 달 전 나는 식물원 근처에 있는 여러 호텔을 찾아 은규에게 링크를 보냈다. 보통 때의 그라면 어디든 좋다고 했을 것이다. 레스토랑도, 카페도, 동네의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조차도 모조리 내 선택에 맡기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날 은규는 이미 예약한 곳이 있다고 하여 나를 놀라게 했다. 은규가 보내 준 링크를 열어 보았다. 넓은 통유리 창 너머로 식물원과 공원이 내다보이는 스위트룸이었다. 나는 조금 들뜬 채 답장했다. — 우리가 만난 지 곧 1년이래. 믿어져? 1년이라는 시간은 내게 유별났고 은규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는 것이었다. 그가 전에 사귄 여자친구는 단 두 명인데 각각 4년, 5년을 만났다고 했다. 매번 석 달도 채 넘기지 못하는 나와는 달랐다. 이따금 은규에게 이전 연인들에 대해 물었다. 그들이 어떤 성향의 사람이었고 어떤 외양을 가졌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응응, 하며 대꾸해 주던 은규는 내가 그녀들의 음악 취향이나 살던 동네처럼 구체적인 정보까지 캐묻자 태도를 바꾸었다. 기억 안 나. 그는 말했다. 다 옛날이야기라고. 그 후로는 이전에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그녀들을 생각했다. 눈, 손톱, 말투, 그리고 신발. 나와 닮았을지, 닮았다면 얼마나 닮았고 다르다면 무엇이 다를지도. 상상을 이어 가다 보면 늘 한 가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은규는 한 번도 애인과 잠자리를 가진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여자와 밤을 보내는 일이 오늘 그에게는 처음이었다. 서른을 넘긴 남성에게서 보기 드문 경우였지만 그가 처음인 게 좋았다. 그 점이 무엇보다도 나와 그녀들을 구분 지어 주는 것만 같았다. 차창에 머리를 기대었다. 햇볕에 데워진 창문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인터넷으로 보았던 화려한 꽃과 기다란 나무들을 떠올렸다. 노랗고 푸르고 분홍빛이 맴도는 공간을. 여름 휴가철이었고 도로는 차들로 빽빽했다. 졸음 껌을 씹는 은규를 보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운전하고 싶었는데.” “다음에. 너 힘들어.” 은규가 말했지만 나는 안다.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그는 내게 차를 맡기지 않을 것이다. “보면 놀랄걸? 너무 잘해서?” 나는 허리를 세운 채 한 손으로 반원을 그려 보았다. 휙휙. 입으로 소리 내며 운전대를 쥔 그를 따라 했다. 그가 웃었다. 머릿속으로 주행하기. 그것은 나만의 놀이였다. 캠퍼스 변두리에 있는 H관 1층, 5평 남짓한 주차관리실에서 상상력을 충족시켜 줄 만한 것은 많지 않았다. 먼지 쌓인 커피믹스와 낡은 소파, 책상 위에 시간별로 놓여 있는 분홍색, 파란색, 노란색 주차권들. 지겨운 서류, 서류, 서류. 드물게 실장이 자리를 지키는 날이 아니면 대체로 혼자 그곳에서 일했다. 사람들이 찾아와 주차권을 사거나 정기 등록을 마친 후 돌아가면 나는 모니터에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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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건

  • 익명

    정말 재미있는 글이네요.. 오랜만에 소설에 정말 빠졌습니다. 작가님 팬 될래요 ㅋㅋ 멋진 글 감사합니다!!

    • 2013-06-08 02:28:43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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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편안히 읽혔던 것 같습니다. 피끓는 청춘에 겪을 수 있는 흔한 일이지요. 그들의 불타는 열정을 발휘했던 것을 후회하면서 시간이 아깝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후회 없는 인생이란 없다고 말하는 거겠지요. 후회를 해봐야 나중에는 그 시절과 이별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 시절을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줄 수도 있으니까요. 어쨌든 '나'의 인생은 파란만장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보편적인 청춘들의 예시인 셈이지요. 가끔은 그 시절에 미련을 갖기도 하고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그 시절을 되찾으러 가기도 하지요. 그게 추억이면서 경험이 되는 것인가요? 김서령 작가님의 소설을 읽고 나니 작가님의 청춘을 후회하면서 보냈던 흔적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이 그저 그렇지 않은 것은 허비하지 않았다는 의미와 상통하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청춘, 의미있는 청춘!

    • 2014-01-11 02:25:04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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