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 작성일 2022-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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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두 사람의 역사는 길다.
이백 년 전 프로이센에서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태어난 두 사람이 있었다. 둘은 풍성한 수염을 길렀고 오래도록 남을 선언문을 런던에서 발표했다. 추종자들은 이십여 년 후 파리의 일부를 점거하고 혁명을 선포했다. 바리케이드 안쪽 술집에서 한 철도공이 기분에 취해 몇 줄의 가사를 썼다. 혁명 정부는 백일이 되기 전 진압 당했지만 가사는 남았고 한 가구공이 멜로디를 붙였다. 그때 상당수의 조선인들은 먹고살 길을 찾아 연해주로 떠났다. 러일 전쟁과 한일 병합을 거치며 더 많은 조선인들이 두만강을 건넜다. 일부는 1차 대전에 러시아군으로 참전했다. 페트로그라드에서 혁명이 일어났고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수립되었다. 일제의 확장 정책이 가시화됐을 때 연방의 지도자는 연해주의 조선인들을 믿지 않았다. 그는 십칠만여 명의 조선인들을 기차에 태워 육천 킬로미터 떨어진 중앙아시아로 보냈다. 기차에서 각자의 가족을 잃은 뒤 손을 꼭 잡고 내린 두 사람이 있었다. 둘 중 한 사람은 2차 대전에서 전사했다. 남은 한 사람은 붉은 광장의 승전 기념식에 초대받지 못했지만 작은 집에서 아기와 함께 평화를 반겼다.
수십 년 뒤, 미국을 대표하는 두 팝스타는 아프리카를 돕기 위해 다음과 같은 노래를 공동 작곡했다.
We Are The World.
노래는 전 세계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고 당시에만 1400만 장가량 팔렸다. 6년 뒤에 소비에트 연방은 해체되었다.
두 명의 스탠퍼드 대학원생이 기숙사에서 ‘구글’이라는 검색 엔진을 만들고 있을 때 서울의 한 부부는 외환위기의 여파 속에서 서로의 무능을 탓하며 악다구니를 썼다. 그들은 손에 잡히는 대로 가재도구를 집어 던졌는데 바닥에는 아기가 기고 있었다. 그보다 조금 이른 시기 한낮의 모스크바에서 다른 부부는 흰 빵과 당근을 사갖고 귀가하고 있었다. 변두리의 골목을 돌아선 둘은 빡빡머리 백인우월주의자 여섯 명과 마주쳤다. 남편이 아내를 등 뒤로 숨겼다. 아내가 만삭의 배를 두 팔로 감쌌다. 가장 어려 보이는 빡빡머리가 잭나이프를 겨누고 말했다.
“배를 …기 전에 너네 나라로 꺼져 원숭이들아.”
21세기. 평양에서 두 정상은 악수를 나누었다. 컨츄리꼬꼬가 예능계를 정복하는 동안 다이나믹듀오는 핸들이 고장 난 에잇톤 트럭이 되었고 유노윤호는 지상파 무대 위에서 최강창민의 생일을 축하했다.
그리고 서울 동북부의 한 중학교로부터 서로를 기억하는 두 사람이 있다.
교문에 들어서서 걷는 길에는 흰 꽃이 피는 나무들이 있었다. 나무의 이름을 안 적은 없으나 때가 되면 바람에 흩날리는 희고 풍성한 꽃잎들은 기억에 남았다. 그런 따뜻한 봄날의 오후였다. 두 사람은 교무실에 나란히 섰다. 3학년이 되어 처음 같은 반에 배정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담임교사는 두 사람에게 각자의 이름이 적힌 흰 봉투를 하나씩 줬다. 그 교사는 세심한 사람은 아니었다.
“행정실에서 준 건데 뭔지는 나도 몰라. 부모님께 그대로 전해 드려.”
대개의 애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런 봉투를 받을 일이 없었다. 두 사람은 매년 한두 번은 받았다. 보통은 담임으로부터 은밀하게 일대일로, “요즘 학교생활 어떠니” 같은 부담스러운 친절과 함께 전해지는 봉투였다. 늘 밀봉되어 있었지만 두 사람은 어떤 것이 들어 있을지 잘 알았다. 대개는 내야 할 어떤 돈을 내지 않았다는 안내문이었다.
그날 봉투 안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단지 그 교무실에서 한 번은 눈이 마주쳤다는 기억.
‘너도 봉투 받는 애구나.’
여자애라거나 남자애라거나, 귀엽다거나 못 생겼다거나, 공부를 잘한다거나 못 한다거나 이전에 권진주와 김니콜라이는 서로를 그렇게 알아봤다. 그리고 교무실 창밖의 햇살. 창문 너머에서 빗자루로 꽃잎을 쓸던 애들이 저희끼리 장난을 치며 웃는 소리. 담임이 회전의자를 빙글 돌리며 덧붙인 말.
“둘이 친하게 지내.”
가나다순에 따라 앞뒤로 앉을 때가 많았지만 두 사람은 전혀 친해지지 않았다.
남자애들은 유행어를 시끄럽게 주고받으며 조르고 밀치고 뛰었다. 그러다 누가 니콜라이를 이렇게 도발하곤 했다.
“나 러시아어 할 줄 앎. 쓰바씨바! 앙 니콜라이띠!”
앙 기모띠, 앙 급식띠, 앙 회오리감자띠 같은 말을 외치고 다녀서 별명이 앙맨이었던 녀석이었다. 니콜라이가 앙맨에게 “씨바 디졌다 너” 하면서 우당탕 추격전이 시작됐다.
“왜 저래.”
여자애들은 거울 앞에 모여서 재잘거렸다. 엄마가 사줬다며 누가 매끈하고 영롱한 틴트를 꺼냈다. 입생로랑이라고 했다. 그 애는 너그럽게 모두의 입술에 발라 줬다. 역시 비싼 게 좋다는 사실에 다들 동의했다. 진주는 잠시 후 교무실에 갈 일이 있다며 손사래를 쳤다. 틴트일 뿐이라도 빚지기는 싫었다.
반별 합창대회의 곡 선정을 두고 학급회의가 지지부진하자 맨 뒷자리에서 하품하던 담임이 말했다.
“강남스타일이나 하지 그래?”
센스 좋은 반장은 짧은 안무도 넣자고 제안했다. 오, 오오오, 오빤 강남스타일, 하며 말춤을 출 네 명의 남학생과 헤에에이 섹시레이디에서 웨이브를 할 네 명의 여학생이 필요했다. 진주와 니콜라이는 자원하지 않았으며 누가 둘을 추천하지도 않았다. 교육적인 합창에 지쳐 있던 중학생들은 강남스타일을 떼창했고 학급은 인기상을 수상했다. 반장은 부상인 매점 상품권으로 포도맛 폴라포를 사왔다. 두 사람도 먹었다. 달콤하고 시원했다.
종은 매일 같은 시각에 울렸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일은 없었다. 흰 봉투를 또 받았는데 이번엔 각자였다. 집으로 가는 길에 ‘걔도 받았나?’라고 잠깐 궁금해 했다. 진주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봉투를 뜯었고 안내문을 폰으로 찍어서 엄마에게 보냈다. 답장은 덜 마른 체육복에 드라이어를 쏘이다 이불을 펴고 누운 늦은 밤에 왔다. 니콜라이의 부모는 안내문을 더듬더듬 읽었고 단어의 뜻을 니콜라이에게 묻기도 했다. 그들의 한국어는 잘 늘지 않았다. 니콜라이는 자기가 러시아어를 공부하는 게 낫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지만 아무래도 노는 게 더 좋았다.
언젠가는 흰 봉투 안에서 정말 무서운 것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낙엽이 지는 때. 작문 시간에 두 사람은 진로나 꿈 같은 단어가 포함된 상투적인 에세이를 제출했다. 맺는 문장은 똑같았다.
“…니까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니콜라이는 취업률이 높다고 알려진 한 공업계열 특성화고에 지원해 합격했다. 진주는 대입 준비를 엄격하게 시킨다는 인근의 여고를 1지망으로 써서 배정받았다. 중학교 졸업식. 웃음과 박수와 꽃다발 속에서 니콜라이는 “너네 부모님 완전 한국 사람처럼 생겼다”는 말을, 진주는 “부모님은 안 오셨어?”라는 말을 들을까 봐 서둘러 돌아갔다. 두 사람이 한 끝과 한 끝에 서 있는 단체 사진만이 졸업 앨범의 한 페이지에 남았다.
진주가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동안 니콜라이는 자격증 대비반에서 쇠를 깎았다.
진주는 고교 1학년 때 만난 담임교사를 신뢰했다. 애들은 비즈니스 담임이라며 욕했지만, 그녀는 진주의 가정사정이 법적으로 어떻게 규정되어 있는지를 정확하게 인지했고 국내 최고의 대기업이 매년 벌이는 장학 사업에 연결해 주었다. 월 20만 원씩 나오는 학업 장려금을 모아 진주는 인터넷 강의를 들을 수 있는 노트북을 샀다. 빚이라 여기니 불편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일단 열심히 공부하고 나중에 어떻게든 갚고 싶었다. 담임은 ‘기회균형’이나 ‘사회적배려대상자’ 전형도 알려주었다.
“열심히 해서 2등급 정도만 받으면 넌 훨씬 유리해.”
진주는 1등급이 되어 그녀를 놀라게 만들고 싶었지만 3년 내내 간신히 3등급을 유지하였다. 그녀가 강조했던 교내 활동을 꾸준히 한 덕분에 서울 변경의 4년제 대학 행정학과에 기회균형 전형으로 합격하였다. 대학을 다니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계획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진주는 그녀를 찾아가 롤케이크를 내밀었고 감사 인사를 떠올리며 쭈뼛거렸다. 그녀는 진주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고 덕담 몇 마디 끝에 이렇게 말했다.
“부모님 밖에서 기다리시겠다. 얼른 가봐.”
니콜라이는 기능반에서 전국대회 준비를 할 정도로 재주가 좋진 않았지만 수업을 성실히 들었다. 한 고위 공직자의 자녀 문제로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시끄럽던 사이 조용히 재외동포법이 개정되었다. 4세대들도 장기 체류가 가능해졌다는 사실이 니콜라이의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두 번 낙방했지만 2학년을 마칠 때쯤에는 선반기능사와 밀링기능사, 컴퓨터활용능력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기능사 자격증은 작은 수첩 같은 모양이었는데, 표지에 ‘대한민국 REPUBLIC OF KOREA’라고 금박으로 새겨져 있었다. 니콜라이와 같은 특성화고에 진학해 같은 반에서 가끔 우당탕하던 앙맨이 지갑에서 매끈한 주민등록증을 꺼내며 말했다.
“앙 주민등록증 받았띠!”
니콜라이는 외국국적동포 국내거소신고증만 갖고 있었다. 기능사 자격증을 받은 날 엄마 아빠와 또래오래 갈릭반핫양념반 치킨을 시켜 먹었다. 엄마도 아빠도 니콜라이도 가장 좋아하는 치킨이었다. 니콜라이는 다리를 집으려다가 부모에게 귀화 생각은 안 해봤냐고 물었다. 아빠가 여전한 억양으로 말했다.
“우리 좀 늦었어. 우리 너무 바빠. 니콜라이 할 수 있어.”
현장 실습은 어째서인지 냉동 만두 공장이었다. 만두 봉지를 스티로폼 보냉 박스에 넣고 테이핑을 한 뒤 팔레트에 올리는 게 일이었다. 그걸 사백 번쯤 하면 하루가 갔다. 팔레트를 지게차로 옮기는 형은 기능사 같은 건 자기도 네 개나 있다며 차라리 지게차 면허가 쓸모 있다고 했다. 지게차 형과 구내식당에서 시계를 흘깃거리며 점심을 욱여넣고 공장 마당의 볕 좋은 곳에서 잠깐씩 다리를 뻗었다. 형이 어디서 비타민 음료를 가져와 건네며 말했다.
“그래도 여긴 실습생한테 죽을 일은 안 시켜.”
실습이 끝나고 니콜라이가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으로 시작하는 근로계약서를 읽으며 ‘통상 임금’과 ‘기본급’, ‘고정적 수당’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할 때, 진주는 모니터에 얼굴을 붙이고 국가장학금 홈페이지를 살펴보고 있었다. ‘소득 평가액에 재산의 소득 환산액을 더한 뒤…… 기준중위소득 대비 비율에 따라……’ 두 사람의 스무 살은 낯선 단어들을 마주하면서 시작되었다.
5년이 지나는 동안 둘은 다양한 사람을 만났으나 그보다 많은 수의 사람과 헤어졌고 몇 명은 다시는 안 볼 사이가 되었다. 볼빨간사춘기를 들으며 각자 인천과 강릉 바닷가로 여행을 갔고 오사카나 보라카이 여행 경비를 계산해 본 적이 있었다. 무리해서 최신형 스마트폰을 한 번 구매했고 어느 밤에 야심차게 인스타그램에 가입했다. 별로 올릴 만한 사진도 없고 재미도 없어서 한 달쯤 지나자 시들해졌다. 대신 버스에서 이런저런 커뮤니티 게시판을 스크롤하며 킥킥거렸다. 검성 고길동이 양아치 둘리를 베어버리는 만화는 진짜 웃겼다. 여윳돈이 없어서 암호화폐를 사지 못했고 ‘떡락’ 하는 차트를 본 이병헌이 “으악 안 돼!”라고 외치는 영상을 보며 웃었다. 니콜라이는 서울 생활을 접고 광주의 고려인 마을로 가겠다는 부모를 따르지 않았다. 러시아어를 쓰는 젊은 애들과 사귀고 어울리다 보면 평생 거기서만 살게 될 것 같았다. 진주는 집에서 엄마의 새 애인과 두 번쯤 어색하게 마주쳤다. 어차피 생활비를 낼 거면 시원하게 집을 나가서 살고 싶어졌다. 볼빨간사춘기가 1인 그룹이 되는 사이 맥도날드와 김밥천국으로부터 홍콩반점과 할매순댓국으로 혼자 갈 수 있는 음식점이 늘어났다. ‘그 돈이면 뜨끈한 국밥이 삼천 그릇이지’ 같은 댓글에 추천을 눌렀다. 한번쯤은 ‘네가 선택했잖아’라는 말을 들었고 그건 그렇다고 끄덕거렸다.
그리고 아무 연고도 없으며 중학생 때는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경기도 동남부의 한 도시에 도착했다.
주민센터는 고만고만한 다세대 주택과 빌라들 사이 골목에 있었다. 진주는 번호표를 뽑았다. 한낮의 주민센터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대개 늙고 아파 보였다. 비어 있는 소파를 찾아 머리를 짧게 자른 젊은 남자 옆에 나란히 앉았다. 꾸깃꾸깃한 종이를 들고 창구 앞에 서 있는 할머니는 말귀가 어두운 것 같았다. 공무원은 인내심을 잃어 가고 있었다. ‘더 친절했으면 좋겠다, 나한테는…….’이라고 진주가 생각할 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젊은 남자가 말을 걸었다. 니콜라이였다.
두 사람이 그 도시에서 처음 보는 아는 얼굴이었다.
중학교 이름이 소환되었고 “너 여기 살아?”라거나 “뭐 좀 신청하러” 같은 말이 오고 갔다. 연락처를 교환할 때 진주는 정말 연락을 할 일이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두 시간 뒤에 니콜라이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커다란 눈이 튀어나온 초록색 개구리가 하얀 이가 보이도록 씨익 웃으며 엄지를 치켜든 이미지. 진주도 아는 개구리였다. 때로 침울한 표정으로 밧줄을 목에 걸고, 때로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춤을 추는 개구리. 진주는 삼 년 전에 구입한 펭수 이모티콘을 골라 답장을 보냈다.
육천 원에 너무 맵지 않은 제육볶음과 뜨끈한 우거지 된장국, 푸릇한 쌈야채를 주는 백반집이 있었다. 가성비는 떨어져도 종종 햄버거와 감자튀김, 콜라가 먹고 싶었다. 맥도날드나 버거킹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롯데리아에 갔다. 사거리에 있는 중국집에서는 현금으로 계산을 하면 탕볶밥이 칠천 원이었다. 반은 탕수육, 반은 볶음밥. 밥 위에는 짜장을 얹어줬고 작은 짬뽕 국물도 따로 나왔으므로 네 가지 맛을 즐길 수 있었다. 드물게는 치킨이나 떡볶이를 배달시켜 이틀에 걸쳐 먹었다. 가끔은 식탁 위에서 지글지글이나 보글보글하는 음식들을 먹고 싶었다.
구내식당에서는 밥을 가득 먹어도 배가 빨리 꺼졌다.
니콜라이는 냉동 만두와 선풍기, 피부과에서 쓴다는 의료기기 부품 공장을 거쳐 자동차 전조등 생산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2차 하청이었지만 굴지의 대기업과 연결되어 있어서 그런지 일해 본 공장 중에서는 가장 나았다. 벨트에서 하우징을 내려 작업대에 고정시킨다. 할로겐 벌브를 삽입하고 핸드드릴을 끌어내려 볼트 1번부터 4번까지 체결한다. 캡을 덮고 다시 하우징을 벨트에 올려놓는다. 12시간 동안 반경 1미터 공간 내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면 그만이었다. 2시간을 일하면 쉬는 시간 10분이 주어졌다. 그마저 못 쉬는 공장을 니콜라이는 많이 알고 있었다.
저녁 잔업을 마치고 확인하니 진주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솥뚜껑삼겹살 먹을래? 롯데리아 옆집.”
늘 맛있는 냄새가 나는 집이었다. 실제로 가보니 과연 맛집이었다. 기름칠이 잘 된 솥뚜껑의 열기. 삼겹살이 노르스름하게 익어 가며 내는 소리. “이거 뒤집어야겠다”, “김치 올려?” 같은 말을 주고받았고 “소주는 못 참지” 하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소주 한 병과 하얀 쌀밥 한 공기를 나누어 먹었고 두서없는 근황을 나누었다.
진주는 마트에서 일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쏜살배송으로 주문한 물건을 매장에서 찾아 담는 사람이 나야.”
진주는 대학 생활 내내 편의점과 생과일주스 가게와 무한으로 즐기는 돼지갈비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졸업을 하고는 두 군데 사무실에 취업한 적도 있었다. 수당 없는 초과 근무와 급여 지연, 갑질과 성희롱. 차라리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대형마트가 깔끔했다. 주 5일 35시간 근무. 최저임금보다 천 원 많은 시급을 칼같이 계산해서 정확한 날에 입금해 줬다. 에어컨으로 상시 유지되는 실내 온도처럼 상쾌하고 규칙적이었다. 머슴질도 부잣집에서 하라는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스태프용 어플리케이션은 어디서 무슨 물건을 얼마나 가져와야 하는지 알려줬다. 스마트폰을 팔뚝에 차고 어떤 날은 라면이나 레토르트 식품 코너를, 어떤 날은 청과나 수산 코너를 왔다 갔다 했다. 생수나 주류 코너가 제일 싫었다. 목에 건 리더기로 바코드를 스캔한 뒤 번호가 붙어 있는 바구니에 주문량만큼 나누어 담았다. 어플리케이션이 동선을 최적화해서 알려줬지만 하루에 이만 보쯤은 걸어야 했다. 니콜라이가 그걸 사람이 하는 거였냐고 물었을 때 진주는 답했다.
“그럼 사람이 하지 누가 해?”
니콜라이는 그건 그렇다며 수긍했다. 공장에도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진주는 오래 할일은 아니라며, 지방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미 두 번 떨어졌고 7급에서 9급으로 목표를 바꿨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가 먹자고 했으니까 내가 살게.”
진주가 계산을 한 뒤 두 사람은 세상에는 역시 배달로 먹을 수 없는 맛이 있다고 재잘거리며 삼겹살집을 나섰다. 고급 스포츠 세단이 육중한 배기음을 내며 지나갔다. 니콜라이는 저기 박힌 전조등을 자기가 만든다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두 사람은 백여 미터를 함께 걸었고 횡단보도 앞에서 헤어졌다. 진주는 돈은 꽤 써버렸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운 식사였다고 느꼈다. 같은 동네에 지글지글 보글보글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쯤 있다는 것도 괜찮은 일인 듯했다. 니콜라이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다음에는 내가 삼.”
타짜의 곽철용이 손가락을 치켜들며 ‘묻고 더블로 가!’라고 외치는 이미지도 함께 날아왔다. 진주는 잔망 루피가 ‘군침이 싹 도노’라며 짓궂게 웃는 이미지로 답했다.
이주일 뒤 두 사람은 보글보글 끓는 감자탕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1인용 뼈해장국에는 감자를 안 넣어 준다는 ‘국룰’을 함께 규탄하였다. 다시 이주일 뒤 중국집에서는 볶음밥과 짬뽕과 탕수육 소짜를 시켰다. 온전한 메뉴는 그동안 먹었던 반반 메뉴보다 맛이 더 좋았다. 니콜라이는 3조 2교대로 일했으므로 주말이 휴일이 아닌 때가 많았고, 진주는 근무 시간을 제외하고는 시험 준비에 매진했지만 두 사람은 이주나 삼주에 한 번 정도는 만났다. 즉석 떡볶이집 주인아저씨는 커플 세트를 권했다. 둘은 푸하하 웃었지만 커플 세트가 저렴하긴 했다.
“우리 무슨 맛집 동아리 같다. 그치?”
두 사람은 반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고 페퍼로니 피자와 코다리갈비찜과 치즈김치전을 먹으러 다녔다. 한번은 맥주를 시켰는데 종업원이 신분증을 요구했다. 진주가 “아직 살아 있네” 하며 헤헤 웃었는데 니콜라이가 거소신고증을 꺼냈다.
“나 외국인 노동자인 거 몰랐냐? 헤헤.”
지금 공장은 내국인이랑 돈을 똑같이 주고 보험도 다 가입해 줘서 좋다고 덧붙였다. 귀화할 수 없냐고 진주가 물었다. 그건 니콜라이조차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복잡한 과정이었다. 사회통합프로그램 이수나 필기시험이나 면접 따위를 따져 보기 전에 일단 귀화 신청 자격을 갖추려면 영주권을 취득해야 했다. 물론 영주권을 받는 데도 여러 조건이 있었다.
“소득 기준이 있다고?”
니콜라이는 전년도 한국인 평균 이상을 벌어야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으며, 그건 연봉 3500만 원 정도라고 설명했다. 진주는 자신이 마트에서 받는 월급에 열둘을 곱해 봤다. 공무원 시험에 붙는다고 해도 금방은 어려운 돈이었다.
“한국인 엄청나네. 나도 못 하겠네.”
니콜라이가 눈가에 손을 가져가 우는 시늉을 했다.
“따흐흑……!”
휴일을 앞둔 밤이었고 맥주가 시원했다. 강남스타일은 진짜 에바 아니었냐. 담임이 잘못, 아니 싸이가 잘못했다. 맞다 맞아. 사과해라 싸이. 슬픈 개구리짤은 대체 몇 장이나 갖고 있는 거야. 웃기셔. 네가 닮았겠지. 주민센터에 그 하얀 안경테 씨는 너무 불친절해. 나는 친절한 사람 돼야지. 공장에서 일하더니 팔뚝 보게. 오 오오오 오빤 공장스타일. 따라와라 외노자. 웰컴 투 코리아니까 2차는 누나가 쏜다. 이 날씨엔 야장 갬성이지. 사실 영주권 쉽게 받는 방법이 있어. 한국인이랑 결혼하면 돼. 푸하하. 야야 만약 서른다섯…… 아니 마흔까지…….
다음날 아침 두 사람은 눈을 뜨자마자 몸을 벌떡 일으켰다.
각자의 좁은 방이었다.
다시 베개에 얼굴을 묻으며 다행이라고, 어젯밤은 위험했다고 생각했다. 잠시 따져 보니 위험할 건 또 뭐지 싶었다. 두어 시간 뒤 일어나 살아 있냐는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대충 이런 말로 정리했다.
“……여름이었다.”
수백억을 두고 목숨을 건 게임을 한다는 줄거리의 한국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어느 새부터 힙합은 안 멋졌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으며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니콜라이에게는 투표권이 없었다. 진주에게는 투표권이 있었지만 어떤 쓸모가 있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나도 차라리 투표하지 말까?”
진주는 여전히 마트를 걸으며 다른 사람이 주문한 물건들을 담았다.
라면 다섯 봉지와 계란 여섯 알. 조미김 한 팩과 인스턴트 건조 미역국을 주문하는 사람. 그것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비싼 캐나다산 개 사료를 한 번에 다섯 봉지씩 주문하는 사람. 5만 2천 원짜리 스페인산 올리브유 아홉 병을 한 번에 사는 사람은 무엇을 요리해서 먹는지, 13만 9천 원짜리 이탈리아산 소가죽 벨트를 쏜살배송으로 주문하는 사람의 생활은 어떤지 궁금했다. 진주 자신도 즉석밥이나 생수 따위를 종종 주문했는데, 그 점에 비춰 보면 그들도 단지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일 거라고, 그래서 자기가 시급을 받고 시간을 팔 수 있는 거라고 진주는 생각했다. 그럼 그들은 아낀 시간으로 무엇을 할까. 마트에 와서 물건을 담는 귀찮은 과정을 생략하고 오직 그 물건들이 주는 행복의 알맹이만을 누리고 있을까. 아니면 그 물건들을 사기 위해 자기처럼 또 다른 누군가에게 시간을 팔고 있을까.
정말 여유로운 사람들은 마트에 직접 오는 사람들일지도 몰랐다. 산책의 속도로 마트에서 카트를 밀며 하얀 빵과 푸른 야채와 붉은 고기, 체크무늬 냅킨과 다른 나라의 탄산수를 사는 사람들. 촉감이 좋아 보이는 원피스를 입은 여자들과 그 뒤를 따르는 머리를 잘 빗은 남자들. 부드럽게 굴러가는 유아차 속에서 손가락을 빨던 아기가 이따금 진주를 보고 까륵 웃었다. 그 웃음이 귀엽다고 느끼기 전에 아기의 미래가 부러워질 때 진주는 자기 자신이 싫어졌다. 그런 가족의 집에는 식탁이라는 물건이 있을 것 같았다. 진주의 방에는 한쪽 벽면에 붙은 옷장과 싱크대 사이에 작은 붙박이 책상이 있을 뿐이었다. 그건 책상이자 밥상이자 화장대이자 선반이었다. 레토르트 음식에 불만은 없었지만 입에 밥알이나 국물을 떠 넣고 고개를 들면 벽이 보였다. 시험 일정이나 과목별 진도표, 언젠가 괜히 옮겨 적은 동기 부여 문구들이 듬성듬성 붙어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트는 스태프를 1년 이상은 연속해서 쓰지 않았다. 계약이 끝나 가고 있었다. 이번엔 공무원 시험에 붙어야 했다. 오후 네 시에 근무가 끝나면 커피숍으로 갔다. 마트 계열사라 스태프는 30퍼센트 할인을 받을 수 있었고 커피가 맛있었다. 스티커를 예쁘게 붙인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작업하거나 서로 볼을 꼬집는 연인들 사이에 있으면 자신도 그럭저럭 평범한 20대로 살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런 기분을 누리려고 번 돈을 다시 주는 게 억울해진 뒤부터 20분을 걸어서 공립도서관에 갔다. 공립도서관 열람실은 세련되지도 쾌적하지도 않았고 한낮의 주민센터처럼 어딘가 침울했으나 살림살이 사이에서 벽을 보고 공부하는 것보단 나았다.
니콜라이는 파견 계약을 연장했다. 정규직으로 전환되리라는 기대는 옅어졌다. 극히 드문 일이었고 외국인에게는 더 어려웠다. 오히려 인력을 내보낼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공장에 오래 다닌 아저씨들은 새 정권이 주 52시간 근로제를 손보면 다시 2조 2교대 시절로 돌아갈지도 모른다고 수군거렸다. 5년 전만 해도 어지간한 공장은 다 주야 2조 2교대였다고, 그 정도는 해야 돈을 번다고 하는 아저씨들도 있었다. 니콜라이도 셈을 해봤다. 주당 72시간을 근무한다고 치면 연 3500만 원을 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옆 라인에서 일하는 흰 머리 아저씨는 구내식당에서 무슨 메뉴가 나오든지 다 비빔밥으로 만들어 먹었다. 제육볶음도 두부조림도 오징어숙회무침도 다 비볐다. 줄 서는 시간을 포함해 15분 만에 석식을 먹고 라인으로 돌아오는 길에 니콜라이는 그에게 슬쩍 물었다. 사람이 12시간씩 주 6일 일해도 몸이 괜찮으냐고.
“할 수 있지. 할 수는 있어.”
라인 가동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아저씨가 장갑을 끼면서 덧붙였다.
“몰라서 그렇지, 지금도 어디서는 실컷 하고 있을걸.”
다른 공장 분위기는 어떤지 연락이 되는 고등학교 동창 몇에게 메시지를 보내 봤다. 한두 명이 먼 지방의 공장에 가 있었고 어떤 친구들은 신발 가게나 홀덤펍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 앙맨의 소식을 전했다. 앙맨은 작년에 충북의 한 금형 공장에서 일하다가 손가락 하나를 날렸고 서울의 부모님 댁으로 돌아왔는데 집 밖에 잘 안 나온다고 했다. 니콜라이는 며칠 뒤 앙맨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진주는 또 필기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한 문제 차이였지만 아쉽다는 말은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마트에 새로 들어온 스태프 중에 젊은 여자애가 있었다. 스물한 살이랬나 두 살이랬나. 근처 대학의 휴학생이라고 했다. 단발에 동그란 눈. 귀엽고 붙임성이 좋은 아이였다. 그 애는 ‘힝구’라고 불렸는데 걔가 ‘힝구의 알바로그’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구독자 천 명이 안 되지만 알고리즘을 타면 날아오를 거라며 파이팅이 넘쳤다. 힝구가 “언니 언니” 하며 업무에 대해 물어 올 때마다 진주는 친절하게 답해 주었지만 그 애가 들고 있는 카메라에 자기 얼굴이 걸릴까 봐 신경 쓰였다. 힝구는 네 달만 일하고, 번 돈으로 아이슬란드 여행을 가서 겸사겸사 콘텐츠도 찍어올 거라고 말했다. 힝구가 진주에게 계약 끝나면 모은 돈으로 뭘 할 거냐고 물었을 때, 진주는 손질된 고등어 여덟 팩의 바코드를 스캔하며 말했다.
“하긴 뭘 해. 난 그냥 살려고 일해. 그만 찍고 좀 옮겨.”
힝구가 카메라를 끄고 고등어를 옮겼다. 진주는 후회했다. 그렇게 날카롭게 대답할 필요는 없었는데. 힝구도 필요한 돈을 벌러 왔을 뿐인데. 퇴근 직전에 진주는 힝구에게 떡볶이를 먹으러 가지 않겠냐고 슬쩍 말을 걸었다. 힝구는 다이어트 중이라며 거절했다.
낙엽이 다 떨어지는 동안 진주와 니콜라이는 서로의 방에 몇 번 갔다.
다를 것도 없는 방이었다. 자취생들이 애용한다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낮은 가격 순으로 검색해서 고른 가구들. 다이소에서 산 생활용품들. 당장이라도 상자 두어 개에 쑤셔 넣을 수 있으며 일부는 실제로 상자에 담긴 채 방치된 것들. 집이라기보다는 이사와 이사 사이에 잠시 머무르는 방. 난데없는 에펠탑 엽서라거나 포켓몬 봉제인형, 배드민턴채 세트 같은 것들만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일요일 오후. 함께 몸과 시간을 탕진하고 매트리스 위에 누워 있으면 발가락 위로 햇살이 떨어졌다. 조금 열어 둔 창틈으로 가을바람이 들어와 기분 좋게 땀을 식혔다. 창밖에서 동네 꼬마들이 노는 소리가 들렸다.
“요즘 애들은 어쩔티비 저쩔티비 그런 말을 한대.”
진주도 들어 본 말이었다.
“뒤에 다른 걸 막 붙이는 거지. 어쩔시크릿쥬쥬리미티드에디션, 어쩔엘지트롬스타일러, 어쩔다이슨V15디텍…… 아 씨 이건 뭔지도 모르겠다. 어쩔메르세데스벤츠에스클래스내돈내산…….”
“뒤에 더 비싼 걸 붙이면 이기는 거야?”
그런 방식은 아닌 것 같았지만 더 알고 싶지도 않았다. 두 사람은 누운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요즘 애들이란…….”
니콜라이는 진주의 왼쪽 어깨로부터 날개뼈로 이어지는 손가락 두 마디 길이의 흉터를 발견했다.
“내가 아주 아기였을 때, 엄마랑 아빠랑 싸우면서 뭘 막 던졌대.”
“이거 아직 아프냐?”
니콜라이가 엄지손가락 끝으로 흉터를 지우듯이 살살 쓸었다. 기억나지도 않는 때 생긴 흉터였다. 아프다기보다는 간지러웠다. 둘 중에 누가 던진 것이든 아빠는 사라졌고 엄마는 남았다. 진주는 엄마도 가끔 이런 시간이 필요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섹스는 공짜라서 다행이야.”
니콜라이가 몸을 일으켰다.
“방금 이상하게 물건 취급 받은 느낌적인 느낌.”
“아니지. 물건은 돈 주고 사야 되잖아.”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해서 니콜라이가 벙쪄 있을 때 진주가 덧붙였다.
“섹스가 공짜가 아닌 게 더 이상하지 않아?”
니콜라이는 다시 누우며 말했다.
“그건 그렇네.”
잠들지도 않고 이야기를 하지도 않고 그저 누운 채로 숨을 쉬다 보면 방 안으로 노을이 스며들었다.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사라진 뒤 조용히 일렁거리는 커튼을 보고 있으면 세상이 남 얘기 같았다. 예쁘고 멋있고 촉감 좋은 물건들이 꼭 필요한 건 아니라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자아실현 같은 건 모르겠지만 견딜 만한 일을 하고, 지글지글 보글보글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삶. 가끔은 나란히 누워서 햇볕을 쬘 사람이 있는 삶. 이 정도면 괜찮다고 여기면서도 어두운 골목을 걸어 다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면 불안해졌다. 어느 날 흰 봉투가 날아와 계약 종료 통지서나 처음 들어 보는 병명의 진단서 같은 걸 덜컥 내놓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걸까.
결석하지 않고 학교도 잘 다녔다. 법을 어긴 적도 없었다. 하루에 삼분의 일에서 이분의 일을 일터에서 성실히 보냈고 공과금도 기한 내에 냈다. 그럼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살았으니까 이만큼이라도 산다고 만족해야 할까. ‘스물일곱 살 인생 평가 좀’ 같은 제목의 글에 사람들이 쏟아 놓는 댓글을 보면 가끔 뭘 잘못한 것 같기도 했다. 더 잘살고 싶었다면 공부를 더 잘했어야 한다고. 솥뚜껑삼겹살도 즉석떡볶이도 먹지 말고 맥주도 마시지 말고 섹스도 하지 말고 닥치고 공부해서 시험에 붙든 돈을 모으든 했어야 한다고. 남들 다 자리를 잡을 때 어리버리하고 게을렀던 우리가 ‘빡대가리’라고. 두 사람은 이런 질문에 도달했다.
“우리가 그렇게 잘못 살았냐?”
빨간 모자를 쓴 해병 병장은 네가 선택한 길이니 악으로 깡으로 버티라 했고 김정은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추노꾼 장혁이 오열하며 삶은 계란을 씹었고 개구리도 눈물을 줄줄 흘렸다. 물에 젖고 물만 맞는 여기는 아마존. 안 젖을 수 없는 여기는 아마아마 아마존. 쿨하고 펀하고 섹시한 미소를 짓는 옆 나라의 정치인. 인생이란 역시,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끄덕). 둘리가 답했다. 아이 싯팔.
그 사이로 점점 자주 니콜라이의 눈에 띄는 문장이 있었다.
어디서 유래하였으며 무엇이 웃음 포인트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꼭 한두 명쯤은 홀연히 그 문장을 댓글로 남겼다. 언젠가부터는 그 문장을 담은 이모티콘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충 손으로, 보통은 발로 그렸다고 표현할 만한 이모티콘. 금발을 양 갈래로 땋은 소녀가 꼿꼿하게 서서 앙칼진 표정으로 그 문장을 외치고 있었다.
“기립하시오 당신도!”
어느 주말 진주가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방에 누워 있다고 답장했을 때, 니콜라이는 ‘이불을 덮은 개구리’와 ‘격렬하고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고양이’ 이미지를 고르려다가 그 꼿꼿이 선 소녀를 택했다.
“기립하시오 당신도!”
진주는 그 엉성한 손그림이 귀여웠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쁜 농담이 많았으므로 구글에서 유래를 검색해 보았다. 위키는 그 문장이 베르톨트 브레히트라는 독일 사람의 시에서 유래한 밈이라 알려주었다.
'16세의 봉제공 엠마 리스가 체르노비치의 예심판사 앞에 섰을 때 그녀는 추궁 받았다. 왜 혁명을 선동하는 삐라를 뿌렸냐고. 그 이유를 대라고. 그녀는 일어서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판사가 제지하자 그녀는 더욱 매섭게 외쳤다. 기립하시오! 기립하시오 당신도! 이것이 인터내셔널이오!’
위키는 이 시가 정작 독일에서는 유명하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운동권’들이 ‘인터내셔널가’를 부르기 전에 선창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진주는 이불을 덮은 채로 링크를 눌렀다. ‘인터내셔널가는 국제주의와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민중가요로…… 최초의 프랑스어 가사는 철도 노동자였던 외젠 포티에에 의해 1871년 파리 코뮌 시기에 쓰였고…… 가구 세공인이었던 피에르 드제테르가 1888년에 곡을…… 해체 직전까지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의 전당대회에서……’까지만 읽었다. 페이지는 길었고 수십 개 언어의 인터내셔널가가 하나하나 링크되어 있었다.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이런 옛날이야기를 다 찾아서 기록해 놓는 사람들이 누군지 궁금했다. 움직여야지, 나도 움직여야지, 하며 진주는 이불을 걷고 기지개를 켰다. 퇴직금이 입금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정확하고 깔끔한 자본주의의 맛. 마트를 운영하는 대기업 회장은 소셜미디어에 이런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난 공산당이 싫어요.”
16세의 봉제공 엠마 리스는 여전히 현장실습생과 제빵사, 택배기사와 대학청소노동자 등에 관한 게시글에 나타났다. 무시당하거나 위협받거나 쫓겨나거나 심지어 죽은 이들을 조롱하는 댓글 속에서도 엠마는 늘 같은 표정으로 같은 말을 외쳤다. 때로는 한국 치킨으로 신세계를 맛본 영국인이나 데드리프트가 3대 운동 중 최고인 이유, 다이어트할 때 기립성 저혈압 조심해 같은 제목의 게시물에도 끼어들었다. 금발의 양 갈래 소녀는 인터넷 세계를 떠돌며 가끔 길을 잃기도 하는 꼬마 유령처럼 보였다. 또는 태엽이 풀릴 때까지 아장아장 걷다가 오직 한 문장만 되풀이하는 인형.
“기립하시오 당신도!”
어쨌든 태엽을 감아 주는 사람들은 계속 있었다. 진주와 니콜라이가 인터내셔널가의 작고 뾰족한 재생 버튼을 눌러 본 것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밤이었다. 그리고 알고리즘은 진주와 니콜라이의 검색어를 기억했다.
두 사람은 나름대로 살았다.
각자의 궁색한 사정으로 거처를 한 번씩 옮겼다. 진주는 잠깐 엄마 집에서 지냈는데 엄마가 새 애인을 소개해 줬다. 첫 만남은 양념게장과 사라다를 반찬으로 주는 돼지갈비 식당이었다. 그 아저씨는 생긴 건 착해 보였는데 갈비를 너무 진지하게 굽느라 대화하는 건 잊은 듯했다. 아저씨가 집게로 고기 한 점을 들어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리며 진주의 앞접시에 내려놨다. 달콤 짭조름한 양념 맛과 부드럽고 촉촉한 육질이 살아 있네. 진주는 고개를 끄덕거리려다가 참았고 엄마의 맥주잔을 채워 줬다. 니콜라이의 엄마는 대단지 공장의 구내식당 주방에서 국통을 들다가 허리를 다쳤다. 파스가 잘 붙도록 쓱쓱 문지르며 니콜라이는 엄마에게 인터내셔널가를 아냐고 물었다. 엄마는 엎드린 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빠가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솔랸카를 저으며 함께 흥얼거렸다. 니콜라이는 맨 앞 단어인 “Вставай……”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빠가 밥상을 펼치고 엄마를 일으키며 말했다.
“우리는 소련에서 태어났어. 러시아에서 결혼했고 한국에서 널 키웠지.”
진주와 니콜라이는 다른 동네에 살면서도 웃기는 사진이나 영상을 서로에게 보내줬다.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유니폼이나 형편없는 구내식당 메뉴, 덥고 춥고 좁은 휴게실 따위에 대해 소식을 전하며 “이거는 기립이네, 기립해야겠네” 같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여기 빨갱이가 있네”하면서 손전등을 비추는 포돌이를 보내면 “내가 바로 뇌빨간사춘기다”라고 받아치며 킥킥거렸다. 각각 다른 사람과 한 번 혹은 한 번 반 정도 연애를 했으나 오래는 아니었다. 니콜라이는 산업기사 자격증을 딸 수 있고 취업 알선을 잘해 주는 전문대를 알아봤고 모아 놓은 돈과 등록금을 비교해 보았다. 진주는 주택공사 홈페이지를 드나들며 청년전세자금 대출 공고를 부지런히 살폈고,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날로 떨어지고 있다는 기사를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두 사람은 생활비를 아낄 방법을 다각도로 궁리했다. 공장과 마트는 어디에나 있었으나 3500만 원을 벌지는 못했다.
두 사람은 경기도 서남부의 한 도시에 함께 도착했고 같이 살아 보기로 결정했으며 그것에 대하여 누구의 허락도 구하지 않았다.
마을버스도 올라오지 않는 가파른 언덕. 민트색이라기보다는 치약색 페인트가 칠해진 낡은 빌라. 4층까지 계단을 오르다 보면 복도에서는 낯선 향신료 냄새가 났고 가끔 반쯤 열려 있는 문 안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떠드는 더운 나라의 언어가 들렸다. 교회 스티커 자국이 남아 있는 철문을 열면 두 사람의 집이었다. 방 하나는 진주가, 다른 하나는 니콜라이가 쓰기로 했다. 방과 방 사이 거실은 무척 좁아서 사실상 반쯤은 주방이고 반쯤은 현관이었다. 텔레비전과 소파를 둘 순 없었지만 그 공용 공간은 두 사람에게 유용했다. 방문 바깥이 아주 바깥은 아니라는 것이 기뻤다.
이사 첫날. 유튜브가 추천한 4시간 51분 분량의 95개국 인터내셔널가 모음을 되는대로 틀어놓고 짐을 정리했다. 기운찬 떼창이 노동요로 제법 어울렸다. 진주는 파란색 칫솔. 니콜라이는 보라색 칫솔. 두 사람 다 치약 따위에 취향은 없어서 아무거나 싼 것을 사서 함께 쓰기로 했다. 대충 청소가 끝난 건 밤 9시였고 앞집인지 아랫집인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연주하는 리코더 소리가 들렸다. 공짜 라이브 음악 오히려 좋아, 하면서 의자야 각자 가져온 것을 쓰더라도 인간적으로 식탁은 사서 놓자는 데 합의하였다. 오픈마켓을 검색해서 3만 9천 원이라는 가격에 비해 괜찮아 보이는 작은 식탁을 찾아냈다. 짙은 갈색의 목재 상판에 검은 철제 다리 네 개가 달린 평범한 디자인이었다.
나흘 뒤 늦은 밤에 귀가했을 때 현관 앞에 묵직한 택배 상자가 놓여 있었다. 배가 고팠고 식탁에서 첫 번째로 먹을 음식을 논의하며 상자를 뜯었다. 진주는 피자가, 니콜라이는 치킨이 먹고 싶었다. 이렇게 싸움이 시작되나 싶었지만 세상에는 ‘피자나라 치킨공주’라는 선택지도 있었다.
“피자나라 치킨나라도 아니고, 피자왕자 치킨공주도 아니고, 왜 피자나라 치킨공주인 거야?”
살다 보니 이상한 곳에 도착한 치킨공주의 기분으로 두 사람은 유쾌해졌다. 피자와 치킨 세트의 도착 예정 시각은 50분 뒤였다. 식탁을 조립하고 걸레질을 하고 컵과 젓가락까지 놓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다.
“여기에 볼트 자리가 있어야 하는데.”
니콜라이가 옆으로 눕힌 식탁 앞에 쪼그려 앉아 중얼거렸다. 다리 세 개는 상판에 조립하였지만 나머지 하나가 문제였다. 볼트를 체결할 수 있도록 탭이 있어야 할 자리가 막혀 있었다. 손바닥만 한 조립 도면은 실제 식탁의 생김새와 미묘하게 달랐고 몇 줄 없는 설명은 중국어로 되어 있었다. 니콜라이는 남은 다리 하나를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바닥에 털썩 앉았다.
“대체 왜 없지.”
처음으로 함께 산 가구였다. 음식이 오고 있었다. ‘메이드 인 차이나’는 역시…… 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대륙의 저편에 있는 금형 공장과 달아오른 기계, 기름때가 묻은 러닝셔츠를 입은 중국인 혹은 중국인이 아닌 누군가, 그가 점심으로 건져 올리는 이름 모를 하얀 국수가 떠올랐다. 젓가락을 쥔 손가락들을 상상하니 어쩐지 탓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진주도 니콜라이 뒤에 쪼그려 앉았다. 짧은 머리털이 까슬까슬 돋아난 목덜미가 꼭 중학생처럼 보였다. 니콜라이가 공장에서 탭 드릴을 빌릴 수 있을 거라고, 내일 출근해서 알아봐야겠다고 중얼거렸다. 깔끔하게는 타공이 안 될 수도 있지만 교환보다는 빠를 거라는 이야기였다. 진주가 니콜라이의 등짝을 팡팡 치며 말했다.
“오늘은 바닥에서 먹으면 되지.”
두 사람은 일어났다.
“혹시.”
옆으로 누워 있던 식탁을 함께 들어서 세워 봤다. 세 다리로 서는 듯…… 하다가 이내 한쪽으로 기울었고 그러면서도 쓰러지진 않았다. 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고 푸하하 웃었다. 종이 상자와 포장 비닐로 어질러진 바닥. 기울어진 식탁 옆에서 드라이버와 손걸레를 손에 쥔 채 껴안은 두 사람.
침대에 누워서가 아니라 일어서서 안은 건 처음이었다. 낯설고 새롭고 따뜻했다. 두 사람은 오래 미뤄 둔 질문을 떠올렸다.
때로는 시시하고 때로는 끔찍했으며 결국에는 죄다 망해버린 연애들이 있었다. 초라하게 사라진 나라들조차 폐허 어딘가에는 영광을 남기는 것처럼 그 연애들에도 부정할 수 없는 순간은 있었다. 연애가 망하더라도 사랑은 망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저렴한 각본으로 사랑하느니 차라리 다른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어차피 첫 단추부터 이상했으니까. 차라리 이것은…… 딩동. 음식 도착을 알리는 초인종이 울렸다. 두 사람이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우리는 친한 사이야.”
그 말은 두 사람만의 농담이 되었다. 즉석밥과 계란, 반창고와 감기약, 섬유유연제와 블루투스 스피커 등을 ‘친한 사이’ 해버렸고, ‘도망가면 안 친한 사이’라며 대청소 날을 정해 손가락을 걸었다. 니콜라이는 누구도 근황을 모르는 앙맨에게 ‘앙 맥주띠?’로 끝나는 메시지를 남겼고, 진주는 일 년 넘게 업데이트가 없는 힝구의 채널에 ‘힝구야 안녕’으로 시작하는 댓글을 달았다. 둘 다 답장은 받지 못했지만 ‘좋은 친한 사이 시도’였다며 서로 칭찬했다. 정전을 계기로 앞집 부부와 배드민턴을 쳤다. 부부가 대접한 더운 나라의 음식이 입에 맞진 않았지만 접시를 비웠고, 그 집 꼬마가 리코더 연주를 뽐냈을 때 박수를 쳤다. 집에 돌아와 ‘우리 오늘 이웃이랑 친한 사이 해버림’이라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미래는 여전히 닫힌 봉투 안에 있었고 몇몇 퇴근길에는 사는 게 형벌 같았다. 미미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워 담았고 그게 도움이 안 될 때는 불확실하지만 원대한 행복을 상상했다. 보일러를 아껴 트는 겨울. 설거지를 하고 식탁을 닦는 서로의 등을 보면 봄날의 교무실이 떠올랐다. 어떤 예언은 엉뚱한 형태로 전해지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실현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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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2022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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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브라다니오 이수정 수돗물 소리에 가려 자경은 영수가 하는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용케, 도배란 단어는 건질 수 있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작은 방을 도배할 때가 됐다고 말했을 터였다. 자경은 대꾸 없이 싱크대 한쪽으로 가 요리책 사이에 낀 상가 전화번호부를 꺼내 들었다. - 마음에 안 드는군. 돌아서 가는 영수의 등에서 바람이 이는 것 같았다. 마음에 안 들어 하는 주체가 누군지 바로 짚이지 않았다. 자경일 리 없었다. 로라가 쓸 방의 도배를 새로 하자고 한 사람도 자경이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랬다고···. 이 말도 했다. 열세 살 아이를 놓고 쓸 비유는 아니었다고 금방 후회는 했다. 도배한 지 얼마 안 된 방에 도배를 또 하게 생겼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자경은 불만이 없었다. 아주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긴 했다. 같은 말을 되뇌고 또 되뇌는···. 땀 찬 고무장갑을 힘겹게 벗으며 자경은 그 말을 또 중얼거렸다.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그 말은 늘 존댓말로 나왔다. 별일 아니에요. 아기가 시간을 뛰어넘어 열세 살이 되어 나타나는 것뿐이에요. 출근하고 오전 내내 문자 한 줄 없다가 영수는 점심나절에 이메일을 하나 보내왔다. 문자로 말하기엔 긴 내용이란 뜻이어서 이메일을 열 때 자경은 숨이 한번 깊게 쉬어졌다. 다행히, 도배에 관한 내용은 아니었다. 이제 물잡이만 끝나면 되니 당신도 하나 골라 봐. 베타, 몰리, 비파, 보티아, 네온테트라, 프리스텔라···. 적도 가까이에 있는 이국의 여자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름이었다. 그 속에서 얼핏 ‘로라’를 본 것 같아 자경은 저도 모르게 눈을 모니터에 바짝 댔다. 맨 끝의 ‘엔젤피쉬’ 덕분에 그게 다 물고기 이름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영수는 자경에게 물고기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건 영수가 로라하고만 나누는 이야기였다. 정말 어쩌다 자경더러 할 때도, 로라 엄마와 이혼하기 전에 길렀던 구피 이름을 로라가 알더라는 식으로, 여지없이 로라가 등장했다. 고작 두 해 같이 산 부녀의 취미가 희한하게도 같다고 말할 때면 참는데 안 된다는 듯 영수의 입꼬리가 비대칭으로 올라갔다. 일요일 저녁마다 부녀가 나누는 화상통화에서 영상으로만 보는 로라가 자경은 가끔 가상의 인물처럼 느껴졌다. 로라가 곧 이 집에 살러 들어온다는 사실이 실감 안 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로라는 물고기를 골랐을까···. 티브이 옆에 들인 수조는 영수가 로라를 위해 준비한 환영 선물이었다. 수조가 차지하고 앉은 자리에는 원래 장식장이 있었다. 삼 년 전, 신혼집을 꾸밀 때 영수가 고른 소파는 사방 각이 분명해 자경이 점찍은 고풍스러운 장식장과 어울리지 않았다. 드물게 길었던 대화 끝에 두 사람은 각자 원하는
- 관리자
- 2024-12-01
흑건(黑鍵) 임희강 요셉이 정수용을 만난 건 약 두 달 전의 일이다. 요셉은 좁은 골목의 치킨 가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치킨집 바로 오른쪽에는 50년 전통의 순두부 가게가 있었다. 치킨집의 왼쪽엔 50년 전통의 순두부 가게 사장의 아들이 운영하는 아구찜 가게가 있었다. 그 외에도 갈비찜, 감자탕, 굴보쌈과 족발을 파는 가게가 차곡차곡 잘 맞춘 블록처럼 쌓여 있는 골목이었다. 두 사람이 지나기도 빠듯한 골목에는 서로 다른 음식에서 사용한 간마늘과 참기름 냄새가 진동을 했다. 예스럽고 한국 음식의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지만 누가 봐도 서양의 클래식 음악과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요셉은 가진 옷 중 가장 깔끔한 재킷을 챙겨 입고 치킨 가게로 출근했다. 치킨 가게 사장은 바로 요셉의 이모부였다. 가게를 인수할 때 내부에 있던 낡은 업라이트 피아노 한 대를 보고 이모부는 놀고 있던 요셉을 불러 연주를 부탁했다. 요셉이 가장 좋아하는 연주곡은 〈흑건〉이었다. 〈흑건〉은 쇼팽의 에튀드 G Major. Op.10 No.5를 말한다. 백건반이 아닌 흑건반으로만 주요 선율이 이뤄져 있어서 ‘흑건’이란 별칭이 붙었다. 어느 대만 영화에 메인 테마곡으로 등장해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곡이었다. 〈흑건〉의 박자는 비바체였다. 대단히 빠르지만 급한 티를 내면 안 된다는 점에서 프레스토 박자와 구분된다. 프레스토를 사용하는 곡으로는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Flying of bumblebee)〉이 있다. 요셉이 생각하기에 그 곡은 손가락 훈련 곡에 지나지 않았다. 우아함을 따지자면 〈흑건〉이 훨씬 우세하다. 요셉은 품격을 잃지 않는 선에서 경쾌하게 연주를 이어나갔다. 건반에 묻어 있던 기름때가 손에 묻으며 쩍쩍 소리가 났다. 연주자만 들을 수 있는 소리라는 점에서 요셉에겐 특권처럼 여겨졌다. “제대로 밟을 줄 아는군요.” 연주가 끝났을 때 정수용이 다가와 말했다. 페달을 다루는 스킬을 알아봐 주는 손님은 드물었다. 그럼에도 요셉은 그가 말을 걸어온 게 반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가게에서 말을 거는 사람은 십중팔구 취객이었다. 요셉은 처음 연주를 했을 때 60대 남성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그는 이미 옆 가게에서 지인들과 굴보쌈에 소주 6병을 해치우고 넘어온 상태였다. 등산복 차림에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반갑진 않았지만 연주를 알아봐 준 것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요셉이 인사를 하려고 그의 곁에 다가갔을 때 남성은 몸을 휘청거렸고 그대로 바닥에 뒹굴었다. 요셉은 이후 손님과 대화를 삼갔다. “시끄럽지 않으셨다니 다행이에요.” 요셉이 수용에게 말하곤 카운터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 가게는 피아노 연주를 듣기 위해 찾는 곳은 아니다. 요셉이 소리가 증폭되는 뎀퍼 페달 대신 소리를 줄이는 시프트 페달을 밟은 이유다. 손님들은 치킨 가게에서 피아노 연주를 해 준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생각했지만 소리가 너무 커
- 관리자
- 2024-12-01
다른 겨울 최유안 음습한 바람이 무리의 발소리를 갑작스레 가뒀다. 육중한 무게가 계단을 수시로 눌러 내리는 탓인지 천장에 붙은 낡은 철제 안내판 한쪽이 불규칙하게 덜컹댔다. 거, 애도 있는데 앞으로 자꾸 밀지 마시고. 신경질적인 영어에 앞쪽 무리에 끼어 있던 몇이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남녀 한 쌍이 눈치를 보며 그의 주위를 빙 돌더니,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들이 빠져나가는 지하철 입구를 올려다봤다. 나 말고도 작은 소요에 신경 쓴 사람이 더 있었는지 고개를 튼 방향에 시선이 여럿 뒤섞여 있었다. 출구 끄트머리 너머 작은 간판이 눈에 띄었다. 남자가 안정을 찾은 목소리로 말했다. 츄러스 먹을까? 남자의 품에 안겨 있는 여자아이가 신이 나는지 까르륵 소리를 냈다. 빨간 털모자가 단번에 눈을 사로잡았다. 두 돌 정도 되어 보였다. 아이 소리에 힘이 난 남자가 끙 소리를 내며 큰 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같은 줄에 서서 걷는 남자와 내 뒤로, 수십 명이 굴리는 발걸음이 코뿔소 떼처럼 광광거렸다. 계단참에 짧은 치마 차림의 여자가 카메라를 들고 멈춰 섰다. 사람들이 그를 피해 둥글게 호를 그리며 밖으로 빠져나가거나, 혹은 같은 자리에서 비슷한 구도로 앵글을 잡았다. 한데 몰려 있던 찬바람이 안쪽으로 거세게 밀려 들어왔다. 지하철 입구가 아랑곳없이 사람들을 쏟아냈다. 단어들이 하얗게 내뿜는 입김을 타고 구슬처럼 흘러나와 공기 중에 분사됐다. 북적이는 관광객 틈에는 한국인도 여럿 섞여 있었다. 깔깔거리는 소리에 익숙한 단어들이 튀어나와 저마다의 파동으로 멀어져 갔다. 누군가는 여행을 오기 전에 유럽에서 동양인 경멸이나 무시가 빈번하다는 조언을 들었다고 했고, 여긴 그나마 괜찮아, 하는 자조 섞인 말도 들렸다. 게다가 지금이 연초보다 더 멋질 게 분명해, 하고 아직 마주하지 않은 새해 풍경을 확신하기도 했다. 불안을 기만하는 방식으로 불가해한 미래를 정당화하는, 인간은 오만하다. * 간간이 부는 시린 바람 사이로 빵 굽는 냄새가 옅게 났다. 멀리 성당 종소리가 아득했다. 걷는 행위에 극심한 피로를 토로하는 나를 배려해 희용과 혜미는 속도를 조절하며 앞장섰다. 희용은 오른편에, 혜미는 왼편에 있었다. 오가는 사람이 많은 탓에 희용은 약간 비틀린 채 서서 인도와 차로를 번갈아 걸었다. 한 아이가 다가와 거칠게 희용의 옆구리를 밀치며 지나갔다. 앞서간 아이를 멈춰 서 바라보는 희용의 곧게 선 뒤통수가 홧홧해 보였다. 희용을 치고 지나간 아이 뒤로 비슷한 또래의 아이 둘이 장난치며 뛰었다. 뒤따라 어른 몸집만 한 아이가 달려들더니 희용의 어깨를 치고 지났다. 희용의 귀에서 에어팟이 빠져나와 바닥에 내리꽂혔다. 아, 씨. 희용은 포장된 도로 위를 굴러가는 에어팟을 주워 올리며 멀리 아이들을 바라봤다. 벌써 저만치 뛰어가는 중이었다. 얼굴을 구긴 희용은 낯선 사람들 사이에 끼어 걷던 내 옆으로 다가왔다. 괜찮아? 내가 물었고 희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보는 목소리가 걱정스러웠는지, 에어팟
- 관리자
- 2024-12-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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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7건
일단 저는 기립했습니다.. 당신도 기립하시오
기립하시오 당신도! 이것은 인터내셔널이오!남한 동시대 단편들 중 가장 울림을 주는 한 편이었습니다. 평 남기려고 가입도 했어요.
정말 감동적이에요. 고단하고 복잡할 법한 맥락을 담담하고 깔끔하고 위트있게 서술하니 오히려 마음에 더 오래 남는 듯 합니다. 진주와 니콜라이가 살아가는 모습과 만나서 친해지는 모습, 마지막에 서술된 것처럼 몇몇의 힘든 순간을 견디면서도 확실한 행복을 챙기고 좋은 친해지기 시도를 하는 모습들이 너무 인상적이고 좋네요. 그저 두 인물이 살아가는 모습을 서술했을 뿐인데 읽은 뒤에 따듯한 마음이 남아요.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오늘 힘든 하루였는데 위로가 됐어요 ㅠㅠ
알바처를 뒤지다 읽어서 더 먹먹한 글이었습니다. 너무 유쾌해서 오히려 슬프고 감동적으로 느껴졌어요.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이거 댓글 남기려고 회원가입까지 했어요. 밈은 농담할때나 쓰는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엮어두니 하이퍼리얼 현대사가 되네요. 진주와 니콜라이에겐 인터내셔널 또한 밈으로 소비되지만 ‘이거는 기립이네’같은 말을 하는 순간순간마다 작은 자각들이 있었겠지요. 진주도 니콜라이도 앙맨과 힝구도 쭉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