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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 이응

  • 작성일 2023-05-04
  • 조회수 7,058

   이응 이응


김멜라


   할머니와 나는 그 나무를 잘생긴 나무라고 불렀다. 우리는 나뭇잎 모양이나 열매를 보며 나무의 진짜 이름을 알려고 애쓰지 않았다. 이름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을까. 어떤 이름이든 나무 스스로 지은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그 나무는 회색 수피가 매끄러웠고 잔가지 없이 하나로 곧게 뻗은 기둥 끝에 우산 살처럼 둥글게 휜 나뭇가지가 느긋하게 자라 있었다. 보리차차는 꼭 그 나무 밑동에 대고 오줌을 쌌다. 보리차차가 나무를 돌며 꼼꼼하게 냄새를 맡았기에 우리는 그 곁에 서서 나무의 잘생긴 풍모를 봤다. 시간이 흐른 뒤 나 혼자 그 공원에 갔을 때 나무는 잎을 다 떨군 채 잿빛 기둥으로 쉬고 있었다. 갈색 깃털의 새가 악보의 음표처럼 나뭇가지를 오르내렸다. 나는 근처의 흙이나 돌멩이에 보리차차의 흔적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잘생긴 나무와 그 나무가 뿌리 내린 땅, 할머니와 내가 보리차차를 앞세우며 걷던 공원의 오솔길, 그 풍경 어딘가에 보리차차의 오줌이 스며든 자국이 남아 있을 것 같았다. 똥은 없겠지. 똥은 늘 우리가 배변 봉투에 싸서 가져갔으니까. 하지만 고불거리는 털 오라기나 콧방울에서 나오는 숨, 담홍색 젤리 같은 혓바닥에서 떨어진 침방울, 높고 빠르게 짖는 소리······ 그게 무엇이든 보리차차의 일부가 산의 한 부분이 되어 여전히 내 곁에 머무는 것 같았다. 부르면 의심 없이 달려오는 보리차차. 나는 땅에 떨어진 솔방울을 밟아 으스러뜨렸다. 잘생긴 나무가 있는 산의 저지대에서 클럽하우스가 있는 중턱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올라갔다. 내구성이 좀 더 강한 신발을 신어야 했다고 후회한 건 검은 바위가 솟아 있는 비탈길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길이 나지 않은 오르막에 낙엽과 마른 솔잎, 잔가지들이 우부룩하게 쌓여 있었다. 땅 위로 튀어나온 나무뿌리에 걸려 나는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가장자리에 살얼음이 맺힌 진창에 발을 잘못 디뎌 흰색 스니커즈가 발등 부근까지 진흙투성이가 되었고 바람결에 따라 머리카락이 헝클어졌다. 이번에도 내가 쏜 화살을 찾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잃어버린 화살을 찾으려면 같은 방향으로 한 번 더 활을 쏴야 했다. 할머니는 오래 고민할 것도 없다고 했다.

   “그 짓이 맞나 틀리나 긴가민가할 땐 똑같은 짓을 한 번 더 해봐.”

   그때 할머니는 부엌 바닥에 앉아 오미자를 우려낸 물을 유리병에 담고 있었다. 나는 벽에 기대어 주둥이가 좁은 유리병에 빨갛고 맑은 오미자물이 채워지는 걸 바라봤다. 할머니는 병 밖으로 흐른 오미자물을 행주로 닦아내다가 손가락에 묻은 액체를 슙 하고 빨았다.

   “더럽게.”

   “얼레?”

   할머니는 보란 듯이 한 번 더 자기 검지에 키스했다. 슙. 그러자 무슨 일인가 하고 보리차차가 할머니에게 다가와 콧등을 들이밀었다. 나를 보며 타각, 할머니를 보며 타각. 어서 둘 중 한 명이 자기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라는 듯 타각 타각 타각 발톱으로 장판 바닥을 두들기며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나는 보리차차에게 손을 뻗어 귀와 턱 아래를 긁어 주었다.

   “착하지, 할머니한테 가자고 해.”

   할머니가 보리차차를 향해 웃는 입 모양을 하며 말했다.

   “할머니는 느림보라 싫지? 언니랑 가는 게 좋지?”

   할머니는 무릎을 세우고 앉아 또 다른 유리병 위로 주전자를 높이 들었다. 꾸루루 꽐꽐 꾸루루 꽐꽐 병 안에서 멧비둘기 우는 소리가 났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비워낸 할머니가 젖은 행주를 들고 일어섰다. 할머니는 개수대에서 주전자를 헹구며 화살 얘기를 꺼냈다. 때가 묻고 좀 더러워져야 씻을 맛도 나는 거라고, 너도 알다시피 잘못 쏜 화살은 한 번 더 같은 방향으로 쏘면 그만이라고 했다. 쏠 때 어디로 날아가는지 화살 끝을 째려봤다가 얼른 가서 뒤져 보라고. 그 말은 셰익스피어가 쓴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구절이었다. 할머니는 젊은 시절 소규모 출판사에서 일하며 어린이나 십대 미성년이 읽을 만한 명작 모음집을 만들었다. 자문위원인 어느 교수가 전체 내용을 반의 반의 반으로 축약한 줄거리에 삽화를 채워 넣은 시리즈였는데, 그 요약본에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구절이 대부분 삭제되었다고 했다.

   “그거 있지? 카뮈 팬티, 그 얘기도 싫어하더라.”

   할머니는 닦아도 물때가 지워지지 않는 주전자를 건조대에 올려놓았다. 

   “교수가?”

   “아니, 학부모들이.” 

   할머니는 젖은 손을 바지춤에 닦으며 식탁으로 갔다. 양푼에 담긴 고사리 두 줄기를 들고서 나를 불렀다.

   “짧은 거 뽑는 사람이 데리고 나가기.”

   할머니가 고사리를 쥔 손을 내밀었다. 내가 뽑은 줄기가 더 길었다. 할머니는 손에 남은 고사리를 양푼으로 던지더니 보리차차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오라질, 갑시다, 똥 누러.”


*


   신발과 청바지 끝단이 흙투성이가 되고 지지대 삼아 붙잡은 삭정이가 부러져 엉덩방아를 찧은 다음에야 나는 초대 메시지에서 본 통나무집에 다다랐다. 캐러멜색 스웨터를 입은 레인코트가 앞뜰에 나와 있었다. 레인코트도 나처럼 낙엽비를 맞아 어깨와 팔, 발목까지 올라온 워커에 갈색 잎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레인코트가 밤색 모자를 벗자 좁은 챙에서 가느다란 솔잎들이 떨어졌다. 도깨비바늘이 붙은 개의 등덜미를 털어 주듯 레인코트는 자기의 긴 머리카락 사이에 손을 넣어 헤집었다. 비스듬히 고개를 꺾고 팔을 휘저을 때마다 레인코트의 주변으로 시원한 공기가 퍼지는 것 같았다. 

   “반가워요. 이쪽은 우유수염, 그리고 이쪽은······.”

   레인코트가 나와 다른 신입 회원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시든 이파리에 점령당한 우리와 다르게 또 다른 회원은 잔꽃 무늬 원피스를 입은 옷매무새가 말끔했다. 우유수염, 좋은 닉네임이었다. 뽀얗고 매끄러운 피부를 가진 이름의 주인과도 잘 어울렸다. 클럽의 멤버들은 실제 이름 대신 닉네임을 썼는데, 색이 떠오르는 네 글자로 짓는 게 규칙이었다. 클럽 메이팅에 소개된 크루의 이름들도 모두 네 글자였다. 레인코트, 마호가니, 플라밍고, 블루제이 등등. 네 글자 이름을 발음하면 어렴풋하게 그 단어가 품고 있는 색이 그려졌다. 그런데 레인코트는 무슨 색일까. 

   나는 수박주스와 자몽크림 따위를 떠올리다 마지막엔 가장 익숙한 것을 골랐다.

   “오미자물 좋아해요?”

   우유수염이 내게 물었다. 짧은 곱슬머리의 우유수염은 까만 눈동자를 빛내며 웃었다. 이 사람은 어떤 걸 보고 어떤 생각을 하길래 저렇게 눈동자가 반짝일까. 나는 착한 강아지가 떠오르는 그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위옹의 멤버들에게 좋은 인상을 줘야 했지만 서툴게 시선을 피하느라 우유수염의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다른 이와 포옹을 나눌 만큼 믿음직한 사람이 못 되는 것 같았다. 

   위옹은 ‘우리(We)의 포옹’이란 뜻의 합성어로 클럽에 가입하려면 아래의 항목에 동의해야 했다.


      □ 우리의 포옹은 가슴을 맞대고 두 팔로 상대를 감싸는 신체 활동입니다. 

      □ 우리의 포옹은 인류애나 공감을 뜻하는 은유가 아닙니다.

      □ 우리의 포옹은 사회개선이나 진실 추구와 무관합니다.

      □ 당신은 클럽 회원들의 피부 경계선을 존중합니까?


   화살을 쏘고 하나 더 쏘는 심정으로 나는 사각형 박스를 클릭해 체크 표시했다. 클럽의 회원과 파트너 관계를 시도하지 않을 거라는 다짐과 포옹의 행위에 로맨틱한 감정을 섞지 않을 거라는 약속에도 동의했다. 불법 다단계나 사이비 교주가 이끄는 명상 모임이 아닐까 의심했지만, 나는 할머니의 화살 쏘기를 떠올리며 최종 가입 버튼을 눌렀다. 첫 모임을 기다리며 움츠린 등과 어깨를 펴기 위해 방 문턱 위에 설치한 철봉에 매달렸다. 가까스로 턱걸이 반개에 성공할 정도로 팔 힘도 길렀다. 누군가를 끌어안고 뱅그르르 돌 수 있을 만큼 힘이 세지고 싶었다. 

   “온통 나무네요.”

   우유수염이 통나무집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도 우유수염을 따라 칠 없는 지붕의 들보를 올려다봤다. 나무벽을 타고 내려오는 빗물받이통에는 마른 가랑잎이 쌓여 있었고, 널찍한 뜰에도 색색의 낙엽이 덮여 있었다. 특별히 누가 쓸거나 정돈하지 않아도 떨어진 그대로 아름다웠다. 심을 때부터 열매나 나뭇잎의 낙하를 생각하고 조경한 것 같았다. 나는 안으로 들어서기 전 현관 앞에 놓인 회색 깔개에 신발 밑창을 문질렀다. 경칩의 쇳소리와 함께 두꺼운 나무문이 열렸다. 

   “우리 왔어요.”

   안에 있는 누군가에게 인사하듯 레인코트가 말했다. 그다음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빛이 내 앞에 펼쳐졌다. 주황빛 광택제를 바른 첼로의 울림통 안으로 들어선 기분이랄까. 결과 빛깔이 다른 목재들이 실내를 아늑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삼각형의 꼭짓점처럼 서 있는 기둥은 약간 붉은빛이 돌았고, 복도 끝에 있는 계단 목재는 사막의 모래처럼 옅은 황색이었다. 서늘한 공기에서 나무향과 풀 냄새가 났다. 나는 유리창에서 비치는 햇살이 마룻바닥에 물결무늬를 만드는 걸 내려다보다가 체리색 나무로 만든 흔들의자를 무릎으로 건드려봤다. 안락의자와 천 소파에는 녹색 담요가 가지런히 포개져 있었다. 낮은 바닥 턱을 따라 보드라운 카펫이 깔려 있었고, 창과 문손잡이는 오래된 금반지처럼 누르스름하게 빛났다. 집이 아니라 누군가의 품으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레인코트는 편한 곳에 앉으라고 말하고서 벽돌로 틀을 세운 난로 앞으로 갔다. 우유수염이 레인코트를 따라가 원피스의 밑단을 오므리지도 않은 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우유수염은 자기 무릎에 턱을 괴고서 레인코트가 뭔가를 할 때마다 탄성을 내질렀다. 장작더미에서 나무토막을 집어 난로 안에 넣을 때, 접이식 칼로 당근 껍질을 깎듯 장작을 얇게 벗겨낼 때, 그렇게 만든 나무껍질 위에 검지만 한 은색 막대를 세우고 칼을 내리그어 불을 피울 때, 우유수염은 방금 그 광경을 봤느냐는 듯 나를 돌아보며 입술을 벌렸다. 선홍빛 젤리 같은 혀를 조금 내밀기도 했다. 레인코트는 칼자루를 짧게 쥐고서 부싯돌 역할을 하는 스틱에 칼날을 내리그었다. 불꽃이 일며 불이 붙자 난로 안에 짚불을 던지고는 가슴이 닿을 정도로 바닥에 엎드려 후후 불씨에 바람을 일으켰다. 나무 타는 냄새가 퍼지며 난로의 열기가 서서히 공간을 채웠다. 

   “골라 봐요.”

   레인코트가 나에게 다가와 가슴을 숙이며 말했다. 주변의 공기가 일시에 바뀌는 느낌이었다. 레인코트의 몸이 천장의 빛을 가리며 내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레인코트의 어깨는 섬세한 펜촉으로 단번에 그린 언덕의 능선처럼 대칭을 이루며 완만하게 펼쳐져 있었다. 나는 그 어깨에 시선이 붙들린 채 레인코트가 건네는 코팅된 종이를 받아들었다. 하나의 지형 같은 어깨와 그 아래로 이어지는 가슴. 저 품에 안기면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귀밑에서 맥박이 크게 뛰면서 재채기가 날 것처럼 코가 간지러웠다. 우유수염은 내 옆에 붙어 앉아 하나하나 음료 이름을 소리 내 읽었다. 풍족한 곳에 초대받았다는 걸 만끽하는 듯 높은 톤으로 허브차와 커피의 원두를 낭독하더니 자신의 닉네임과 어울리지 않는 주류 쪽으로 넘어갔다. 내가 오미자차를 고르고, 레인코트가 원목으로 된 바로 걸어가 물을 끓일 때까지 우유수염은 뭘 마실지 몰라 고민했다. 나중에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발을 동동거렸다. 타각 타각 타각 초콜릿색 구두 굽으로 바닥을 두들겼다.

   “나는 하이볼.”

   레인코트가 유리잔에 얼음을 넣으며 말했다. 우유수염은 그 말을 추천의 의미로 알아듣고서 자신도 같은 걸 마시겠다고 했다. 우리는 원탁 테이블에 모여 앉아 난롯불을 쬐었다. 탁탁 잔가지를 분지르며 불길이 타올랐다. 붉은 세모꼴 날개가 위로 펄럭였다가 옆으로 나부끼며 불꽃의 넓이를 키워 갔다. 

   “안고 싶은 마음이 참을 수 없을 때 있잖아요?”

   정적을 깨고 우유수염이 말했다. 술은 거의 마시지 않았는데도 연거푸 두 잔을 비운 사람처럼 목소리가 높고 떨렸다. 누구도 왜 클럽에 가입했느냐고 묻지 않았지만, 우유수염은 자신이 위옹에 들어온 이유를 말했다. 나는 우유수염의 수다가 고마웠다. 나이나 직업, 실제 이름을 말하지 않으면서 처음 마주한 사람과 대화를 이어 가기란 쉽지 않았다. 우유수염은 자연스럽고 공평한 태도로 나와 레인코트에게 시선을 건넸고, 속마음을 털어놓듯 어깨를 약간 비틀며 앞으로의 포옹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반면에 나는 레인코트의 스웨터 목주름이나 타닥거리는 장작불, 바 천장 랙에 거꾸로 걸린 와인 잔으로 눈길을 돌리며 제대로 말을 끝맺지 못했다. 

   “이를테면, 느슨한 S자 곡선을 그리는 거죠.”

   레인코트는 ‘이를테면’이란 말로 얘기를 시작했다. 그 문어체 말투에 묘한 반감이 들면서도 이 사람은 어떤 걸 보고 어떤 생각을 하길래 그런 단어를 쓸까, 호기심이 일었다. 서로 포옹하는 데 너무 많은 절차와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니냐고 우유수염이 묻자 레인코트는 옥수수의 예를 들며 말했다. 이를테면, 옥수수가 자라는 것 같다고. 겉으로는 옥수수가 성장을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폭발하듯 열매가 생장한다고 했다. 그러다 또 잠잠해지고 다시 폭발하듯 자라나고. 레인코트는 허공에 천천히 S를 그렸다. 그러면서 위옹의 친밀함도 그 옥수수가 여무는 속도와 비슷하다고 했다. 검지로 곡선을 그리는 레인코트에게서 어떤 위엄이 느껴졌다. 위옹의 다른 모든 크루를 포함해 레인코트가 이 클럽의 중심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컴퍼스로 그린 원의 중심이랄까. 종이 위에 송곳으로 찍은 자국. 레인코트가 바로 그 중심이었고, 어쩌면 나는 그 원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레인코트가 내 앞에 앉거나 일어설 때 반듯한 어깨와 널찍한 가슴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졌다. 나는 눈앞에서 오래된 흙벽이 무너지는 것처럼, 차가운 천이 이마를 덮는 것처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으면서 마치 관 속에 누워 내 위로 흙이 뿌려지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깊은 곳으로 내려가 어둠에 잠기는 것 같았다. 

   “제 말이 너무 빠르지 않나요?”

   우유수염이 피아노를 치듯 호두나무 테이블을 두들기며 묻자 레인코트가 말했다. 

   “말은 항상 느리죠. 생각에 비하면 언제나 느려요.”

   그러니 마음 놓고 말하라며 우유수염의 팔에 닿을 듯 말 듯 손을 올렸다. 우유수염의 표정에서 S자 곡선이 그려지는 듯했다. 우유수염은 달아오르는 열기를 식히듯 뺨에 손등을 댔고 초조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레인코트는 우유수염이 무엇을 찾는지 알아챘다.

   “혹시 이응을 찾는 거라면.”

   레인코트의 말에 우유수염의 얼굴이 밝아졌다. 레인코트는 2층 발코니에 이응이 있지만 새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작동을 멈춰 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랑하는 기색 없이 이곳에서 하는 이응의 탁월함을 말했다. 풀과 흙냄새를 맡으며 개울물 소리와 함께 이응을 하면 발가벗고 빗속에 서 있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도시의 폐쇄된 이응과는 자극의 차원이 달라서 한 번 하고 나면 한동안 이응 생각이 안 날 만큼 에너지가 충전된다고.

   “당연하죠. 좋은 이응은 이응 생각을 잊게 해요.”

   우유수염이 화답했다. 레인코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재채기가 터져 나왔다. 평생 그렇게 큰 소리로 재채기를 한 건 처음이었다. 두 사람의 다정한 대화에 방해를 놓기로 작정한 것처럼 침과 콧물을 뿜어냈다.

   “추워요? 덮을 것 좀 가져다줄까요?”

   가까이 오려는 레인코트에게 손을 뻗으며 나는 구석으로 갔다. 장작더미 앞에서 혼자 분비물을 수습하고 있는 사이 우유수염은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제가 나서서 이응을 심었죠. 학생 복지를 위해서요.”

   우유수염은 학교 기숙사에 이응이 없어서 자신이 친구들과 의견을 모아 최신 버전의 이응을 들여놓았다고 했다. 한창 컨디션이 좋을 땐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기숙사로 달려가 이응을 한 다음 책상 앞에 돌아와 앉아도 5분이 남았다고 했다. 


*


   내가 처음 이응을 본 곳은 할머니가 데리고 간 공중 사우나였다. 그날 나는 할머니의 흰 털이 난 아래와 이응의 캡슐을 봤다. ‘응’의 동그라미가 빨간 열매 모양으로 디자인된 베타 버전의 이응이었다. 벌거벗은 할머니는 기저귀 같은 두툼한 팬티만 입고서 이응의 지문 인식기에 엄지를 댔다. 가로선을 중심으로 뚜껑이 열리자 할머니가 캡슐 안으로 들어갔고, 곧이어 이응 전체에 선명한 빨간색 조명이 켜졌다. 나는 그 앞에 앉아 세제 냄새가 나는 목욕탕 수건으로 종이배를 접었다. 안과 밖의 면을 뒤집는 부분에서 자꾸 실패해 나중에는 수건을 망토처럼 어깨에 두른 채 이응의 불빛이 꺼지길 기다렸다. 사람들은 목욕을 마치고 라커 앞에서 옷을 입고 있었다. 젖과 궁둥이가 큰 사람이 마법 모자에 토끼 엉덩이를 쑤셔 넣듯 브래지어 캡에 한 쪽씩 가슴을 욱여넣었다. 그 옆에 서 있는 한 아이가 자기의 고추를 손으로 들어올린 채 팬티를 입었다. 마치 코를 막고 가루약을 삼키는 것처럼.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애가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 말했다. 

   이래야 안 움직여. 

   그러면서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 고추를 고정해 팬티를 입는 동작을 처음부터 다시 반복했다. 위치를 잘 조절한 다음에야 편안해진 얼굴. 그 애는 뒤늦게 부끄러움이 몰려온 듯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말리는 자기 엄마에게 뛰어갔다. 잠시 후 할머니가 “호” 하는 소리를 내며 이응에서 나왔다. 나는 할머니를 따라 온탕에 몸을 담갔다. 

   “거기에서 뭐 했어?”

   나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는 새로 나온 팬티를 입어 봤다고 했다. 입고서 간지러운 데도 긁고 쑤신 데도 문질렀다고. 

   “어디가 간지러운데?”

   내가 묻자 할머니는 장난스러운 얼굴로 다가와 내 옆구리를 간질였다. 나는 발등으로 물장구를 치며 물속에 손을 넣고 할머니의 배를 간지럽혔다. 그때 할머니는 처음으로 내게 카뮈의 팬티 얘기를 해주었다. 카뮈가 쓴 『이방인』이란 책에 나오는 뫼르소의 말이었다. 팬티를 갈아입는 인간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말. 뫼르소는 사형 집행을 앞두고 자신에게 그런 판결을 내린 자들이 팬티를 갈아입는 인간이란 사실에 치를 떤다고 했다. 

   “왜? 팬티 입는 게 나빠?”

   나는 땀인지 물인지 모를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할머니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사형 집행이나 판결이란 말은 잘 몰랐지만, 아주 아주 억울한 마음과 외톨이가 된 기분은 알 것 같았다.

   “나쁘고 안 나쁘고를 떠나서 그게 사람이란 거야. 그게 이응이야.”

   할머니가 손으로 물살을 일으켜 물 위에 뜬 때를 밀어냈다. 그 뒤로 나는 이응을 볼 때마다 뫼르소의 팬티와 이응에서 나오는 할머니의 소리가 떠올랐다.

   호.

몇 년 후 목욕탕이나 마사지샵에서만 볼 수 있던 이응은 미술관이나 도서관에도 들어섰다. 정식으로 출시된 이응은 센서가 달린 특수 속옷을 입는 대신 손오공의 머리띠처럼 생긴 은색 왕관을 머리에 써야 했다. 할머니는 동네 도서관에 이응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서 나를 데리고 도서관에 갔다. 그곳의 이응은 거대한 물방울처럼 생긴 하얀 캡슐이었다. 캡슐의 환한 빛이 꺼지고 안에 있던 사람이 나오자 할머니가 이응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앞에 있는 천 소파에 앉아 선반에 꽂혀 있던 작은 책자를 읽었다. 

   “호.”

   얼마 후 할머니가 개운한 얼굴로 이응에서 나왔다. 나는 손에 든 책을 펼치며 할머니에게 물었다. 

   “파시니 소체가 뭐야?”

   나는 ‘이응의 비전’이라는 책의 한 부분을 소리 내 읽었다.

   “클리토리스의 파시니 소체는 페니스의 귀두보다 두 배 많은 신경으로 이뤄졌습니다.”

   내가 또박또박 글자를 읽자 할머니가 책을 들어 코앞으로 가져갔다. 할머니는 활자를 멀리 봤다가 가까이 봤다가 하더니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짬지에 있는 건가?” 

   내가 이응에 관해 물으면 할머니는 숨기지 않고 말해 주었다. 할머니뿐 아니라 사람들 대부분이 이응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이응은 도시 곳곳에 있는 공중화장실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화장실처럼 단순하고 확실한 쓸모로 만들어졌으며 때가 되면 누구나 거기에 들어가 이응이 제공하는 감각을 체험했다. 이응의 유익함이 퍼져 나가자 얼마 안 가 주민센터나 병원에도 파란색 이응의 캡슐이 생겼다. 사람들은 ‘응’ 모양으로 된 둥근 캡슐을 열매라고 불렀는데, 술집이나 클럽의 열매는 조약돌처럼 까맸고, 마트나 쇼핑몰의 열매는 새싹처럼 밝은 연둣빛이었다. 새 버전의 캡슐이 나올 때마다 이응의 현자들이 언론에 나와 이응은 신의 축복이자 인지과학 발달이 선사하는 혜택이라고 말했다. 이제 돈으로 사람의 육체를 사고파는 매춘이나 원치 않는 임신, 온갖 질병의 위험에서 벗어나 청결하고 합법적인 공간에서 건강하게 욕구를 해결하자고 말했다.

   성욕을 풀려고 연애하고 결혼하는 열등한 짓은 그만둡시다!

   이응의 현자는 바야흐로 새로운 로맨틱의 시대가 열렸다고 말했다. 번식과 성욕, 사유 재산이 만들어낸 오랜 통치술의 사슬을 끊어내고, 진실로 사랑의 의미를 깨우친 이들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관계를 맺는 반려의 르네상스가 도래했다고 말했다. 한 명의 아기는 단지 우연과 충동이 만들어낸 성욕의 부산물이 아니라 계획하고 합심해 사회와 인류가 함께 양육하는 지구 공동체의 선택받은 구성원이라고 했다. 실제로 이응이 설치된 뒤 성폭력 범죄율이 감소했고, 그와 동시에 혼인율도 줄어들었다. 몇몇 지방 자치 기관은 쪼그라드는 지역의 신생아 수를 걱정하며 이응의 설치를 반대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집계한 국가의 출생률은 느슨한 S자 곡선을 그리며 상승했다. 이응이 있는 교도소의 수감자들은 낮은 재범률을 보였고, 임상실험을 통해 병원의 이응 설치가 환자의 회복률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법원에서는 사법부의 판결이 아닌 상호간의 화해로 종결되는 사건이 늘어났다. 어린 나는 그런 사회적인 변화까진 몰랐다. 다만 거리에서 마주치는 어른들의 얼굴이 어느 때부턴가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인다는 걸 알아챘는데, 이응을 하고 나온 할머니의 얼굴은 이응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확실히 달랐다. 속쓰림 위장약 광고의 복용 전과 후의 표정처럼. 

   언젠가 나는 할머니와 함께 보리차차의 배변 산책을 나갔다가 이응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시위를 보았다. 그들은 작게 만든 이응의 캡슐 모형을 한데 모아 기름을 붓고 불을 붙였다. 성의 비인간화와 시험관 아기의 무분별한 확산을 막아야 한다고 소리쳤다.

   “시험관 아기가 뭐야?”

   나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는 숨김없이 대답해 주었다. 

   “고추 대신 주사기로 정자를 쏘는 거.”

   그걸 왜 반대하느냐고 내가 묻자 할머니는 어른이 되어도 주사를 맞는 건 무섭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어렸지만, 그 말이 대충 꾸며낸 장난이란 것쯤은 눈치 챌 수 있었다. 주사를 맞기 싫다고 저렇게 화를 낸다고? 게다가 거기에 몰려 있는 사람들은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나이 든 남자들이었다.

   이응은 왜 이응일까. 나는 잘생긴 나무 아래를 천천히 코로 더듬는 보리차차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시위대에서 들었던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이응이 더러운 섹스토이라고 했다. 섹스 앞에 ‘더러운’이란 표현이 붙은 말을 들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응이 눈이야?”

   나는 배변 봉투를 꺼내며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시위대의 전단지를 꺼냈다. 이응의 ‘응’이 옆으로 돌아가 무서운 눈 모양을 하고 있었다. 

   ○ㅣ○ 

   시위대는 그 기계 눈동자가 인간을 세뇌해 머지않아 인류의 생로병사를 완전히 통제할 거라고 했다. 할머니가 보리차차의 따끈한 똥을 봉투에 담으며 전단지 그림을 흘깃 봤다. 

   “못생기게도 그렸네.”

   할머니는 푸른색 봉투를 빙글빙글 돌려 매듭을 묶었다. 그러고선 검지에 흙을 조금 묻혀 ○ㅣ○ 아래 방긋 웃는 입 모양을 그렸다. 할머니는 이응의 이름이 이응인 이유를 말해 주었다. 그건 세종대왕의 한글 사랑을 기리는 마음이라고 했다. 이응을 자세히 보면 동그라미 위에 꼭지가 달려 있는데, 그게 훈민정음에 있던 ‘옛이응’이라고 했다. 지금은 사라진 그 발음을 다시 살려내서 ㅇ과 ㅎ 사이의 소리를 사람들에게 찾아 준 거라고. 

   “호.”

   할머니가 입술을 동그랗게 모아 소리 냈다. 그냥 들으면 ‘호’ 같지만, 실은 ‘오’를 발음하며 약간 가래가 끓듯 목에 힘을 줘서 내는 소리라고 했다. 무거운 돌덩이를 내려놓은 홀가분한 목소리. 이응을 하고 나온 사람들을 잘 보면 사라졌던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할머니는 거실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이응의 컬러볼을 불빛에 비춰 봤다. 빛을 반사하는 각도에 따라 프리즘이 생기는 컬러볼은 이응의 캡슐을 작은 사이즈로 만든 액세서리 용품이었다. 실제로 이응 안에서 컬러볼 모양의 프리즘을 움직여 원하는 감각과 이미지를 고르기도 했다. 장신구로 나온 컬러볼은 표면이 유리구슬처럼 매끄러웠고 바닥에 던지면 고무공처럼 튀어 올랐다. 사람들은 여러 개의 컬러볼을 모아 가방이나 자동차 룸미러에 달고 다녔다. 컬러볼의 디자인을 딴 옷이나 모자도 흔했다. 할머니도 고리가 달린 컬러볼을 사서 보리차차의 보행줄에 걸어 주었다. 보리차차가 물고 흔드는 장난감도 천으로 만든 컬러볼이었다. 할머니는 이응을 할 만큼 세상이 성숙해져서 좋다고 했다. 하지만 갈수록 이응이 복잡해져 공부하지 않으면 따라잡을 수 없다고 했다. 이응의 컬러볼은 점점 더 스펙트럼이 다양해졌고 사람들은 컬러볼을 문지르며 자신이 원하는 정체성과 쾌감의 종류를 선택했다. 할머니는 뭘 고를지 모르겠을 땐 추천 코스가 제일 좋다고 했다. 나는 이응의 최신 프리즘을 공부하는 할머니와 손톱을 깎으면 휴지에 잘 싸서 버리라는 할머니 사이에서 어느 모습이 진짜 할머니인지 헷갈렸다. 문지방에 올라서면 재수 없다고 말하는 할머니, 손발톱을 아무데나 버리면 쥐가 먹고 사람으로 둔갑할지 모른다고 겁을 주는 할머니. 만약 쥐가 할머니의 발톱을 먹고 사람으로 변해 나와 같이 사는 거라면 나는 어떻게 그 할머니가 가짜인 걸 알아챌까?

   다초점 렌즈의 안경을 썼다가 벗었다가 눈을 비비고 깜박거려도 이응의 스펙트럼을 분간하기 어려워졌을 때쯤, 할머니는 이응에서 졸업할 때가 왔다고 했다. 나날이 변해 가는 이응의 컬러볼을 따라잡기 힘들다고 했다. 성별 정체성이랑 성 표현 정체성이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다며, 억지로 느끼려고 하는 건 이응의 정신이 아니라고 했다. 

   “하이고, 재미나게들 산다.”

   졸업생이 되고도 할머니는 보리차차와 산책할 때면 흔들 그네에 앉아 이응을 구경했다. 우리가 가는 공원에도 이응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응 주변에 모여 장기를 두거나 요구르트를 나눠 마시고 배드민턴을 쳤다. 이응 앞이라 그런지 이응 얘길 하는 사람도 많았다. 

   “내가 인생 후반전에 이 재미를 알아서······.”

   어떤 여자는 어찌나 입을 크게 벌리며 웃는지 목젖이 보일 것 같았다. 

   “압박 단계를 높여 봐. 그게 제대로야.”

   그 여자는 누군가와 통화하며 이응으로 들어갔고, 나와서도 다급히 전화를 받았다.

   “김치냉장고에 이면수 있으니까 꺼내서 데워 먹어.”

   또 어느 날엔 내 또래의 아이 둘이 걸어가며 말했다.

   “중간에 마스터 체인지를 해.”

   “중간에?”

   “응, 처음엔 여성을 고르고 그다음 남성으로 바꿔. 자극 세기는 숫자로 코딩하고.”

   “알려줘.”

   교복 바지를 입은 여자애들이 어떤 스펙트럼이 좋은지 컬러볼 설정을 공유했다. 어떨 땐 요리 레시피 같아서 듣고 있으면 이응 얘기인지 파스타 만드는 방법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끼얹고 곁들이고 버무리고······. 할머니는 컬러볼 설정을 공유하는 여자애들의 얘기를 곰곰이 들었다.

   “호.”

   그중 한 명은 십대를 위한 컬러볼을 폰 케이스에 달고 있었다. 컬러볼에 오렌지 형광이 섞인 버전이었다. 만 열다섯 이상이면 누구나 자유롭게 이응을 즐길 수 있게 하는 법이 통과된 뒤부터 청소년들은 자신을 온전한 감각 주체로 여기는 이응 수업을 들었다. 주머니에 숨긴 칼처럼 억눌린 성욕 때문에 더는 고통 받지 말고, 정해진 시간에 급식을 먹듯 공개적으로 이응을 즐기라고 교육받았다. 학교에서 이응은 체육이자 음악 시간이었고 아이들은 이응 안에서 땀을 흘리고 자기의 감각을 연주했다. 어떤 아이는 낮잠을 자듯 누워 고요하게 이응을 즐긴다고 했고, 어떤 아이는 저마다 다른 소리가 터져 나오는 자극 부위를 한꺼번에 문질러 오케스트라처럼 합주한다고 했다. 저마다 이응의 설정과 에피소드를 거리낌 없이 얘기했다. 성에 관한 이야기는 이응을 중심으로 다시 만들어졌고 연애나 결혼도 이응을 기준으로 재배치되었다. 연애/이응, 결혼/이응/출산이 각각 안전거리를 두고서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응을 대단하게 여기는 건 아니었다. 단지 식욕이나 수면욕처럼 바이오리듬에 따라 몸이 원할 때 채워 줘야 하는 신체적인 욕구일 뿐이었다.

   나 역시 생리 주기가 되면 이응이 생각났지만, 굳이 그 캡슐 안에 들어가 뇌파 자극 띠를 두르고 싶진 않았다. 이응이 어떤지는 어릴 때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근육의 수축과 경련 그리고 이완. 오감을 채워 주는 이미지에 둘러싸여 양극과 음극의 전기 자극에 따라 맥박과 혈압이 높아지고 나중에는 모든 긴장이 풀리며 상쾌해진다. 무의식 상태로 들어서는 델타파부터 휴식과 이완을 주는 알파파까지. 이응은 단계별로 우리의 뇌파를 유도해 우리의 몸과 의식을 열린 상태로 만들어 준다고 했다. 그러고 나면? 그 열린 틈으로 뭐가 들어올지 어떻게 알지? 위생이나 보안이 걱정되는 건 아니었다. 이응의 청결과 개인 기록은 무인 자동 시스템으로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으니까. 단지 나는 그런 욕구쯤은 참을 만했다. 그건 정말 식욕은 아니니까. 어떤 사람은 식욕보다 강하다고 했지만, 이응이야말로 그런 맹목적인 욕구를 희석해 주는 중화제였다. 나는 정해진 단계에 따라 쾌감을 체험하고 싶지 않았다. 내 몸이나 감각에 몰두하고 싶지도 않았다. 오히려 나를 잊게 해주는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느리고 모호한 쾌감을 느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아무도 찾지 않는 고전문학 서가에 앉아 책을 통해 누군가의 느낌이나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글로 쓰고, 종이에 인쇄된 인간의 욕구가 나에게는 위협적이지 않을 만큼만 생생했고, 그렇기에 안전하게 나를 열 수 있었다. 

   서가에 기대앉아 책을 읽다 보면 운동장에서 육상부 코치의 목소리가 들렸다. 

   “호흡, 시선! 호흡, 시선!”

   근육질 몸에 달라붙는 티셔츠를 입은 육상부 코치는 늘 같은 시간에 손뼉을 치며 외쳤다.

   “마지막 한 바퀴! 전 속력으로 뛰어 이응으로 간다!”

   창밖을 내다보지 않아도 나는 이응으로 몰려가는 육상부의 모습이 그려졌다. 멀리서 가죽 공을 차거나 억억대며 몸싸움하는 소리도 마지막에는 이응으로 가서 뭉친 근육을 풀자는 대화로 끝났다. 그런 소란스러움에서 한 걸음 물러나 나는 할머니가 말한 『이방인』을 읽었다. 책 속의 정확한 표현은 ‘속옷을 갈아입는 인간’이었다. 속옷을 갈아입는 인간이 내린 결정을 신뢰할 수 없다는 말. 나는 그 페이지의 모서리를 작게 접었다. 그 뒤로 읽고 있던 책에서 속옷이나 팬티라는 단어가 나오면 종이 끝을 세모나게 접었다. 등장인물이 슬퍼하거나 우는 장면이 나올 때면 할머니에게 그 구절을 보여주고 싶었다. 

   할머니, 이 사람은 슬퍼할 자격이 있어? 울어도 돼?

   할머니는 팬티를 갈아입는 인간이란 함부로 슬퍼하거나 눈물을 흘릴 자격이 없는 사람이란 뜻이라고 했다. 그래서 뫼르소는 자기 엄마가 죽었을 때 울지 않고 카페오레를 마신 거라고.

   나는 카페오레 대신 오미자물을 마셨다. 엄마가 보고 싶어 우는 대신 빵빵해진 아랫배로 변기에 앉아 소변을 봤다. 할머니는 내가 울음을 터뜨리려고 하면 오미자물을 주면서 달랬다. 다 울어버리지 말고 울고 싶은 마음에서 한 걸음 물러나 울고 싶은 자신을 바라보라고 했다. 그런 복잡한 설명을 들으면서 차갑고 새콤한 오미자물을 마시면 내 슬픔은 어리둥절한 눈을 한 채 나에게서 멀어졌다. 할머니는 나를 욕실로 데려가 울고 싶지만 울음이 떠나간 내 얼굴을 닦아 주었다.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손에 물을 묻힌 다음 슬퍼서 흘러내릴 것 같은 내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흥, 흥! 나는 수건을 목에 두르고 앉아 내 콧방울을 움켜쥔 할머니의 손가락에 콧물을 풀었다. 향긋한 로션을 바르고서 할머니의 배에 귀를 대고 누우면 꾸루루 꽐꽐 꾸루루 꽐꽐 비둘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줄줄 나는 거야. 하나도 안 아프고 하나도 안 슬퍼.”

   내게 오미자물을 주며 울지 말라던 할머니는 녹내장 증상으로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주전자의 주둥이와 유리병 입구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서 오미자물을 바닥에 흘렸고, 그렇게 흘린 물도 알아채지 못했다. 보리차차도 눈가에 눈물 자국이 생겼다. 송곳니가 흔들려 딱딱한 음식은 잘 먹지 못했고 개도 먹을 수 있는 우유를 주면 코코아빛 입가에 우유수염을 만들었다. 강아지 때부터 교육했는데도 성견이 되고 노견이 될 때까지 흥분하면 오줌을 지렸다. 나는 오줌이 고인 바닥을 손으로 치며 보리차차를 혼냈다. 그러면 할머니는 팔을 올려 품안에 보리차차를 숨겨 주었다.

   “오래 살아라. 보리야, 오래 살아.”

   할머니는 이응이 발달하는 만큼 의학 기술도 좋아져 개의 수명이 늘어날 거라고 했다. 할머니는 뭐든 다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좋아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니 기다려 줘야 한다고. 차차 가리겠지. 차차 배우겠지. 너무 몰아붙이지 마라. 

   하지만 보리차차는 차차 좋아지거나 나아질 수 없었다. 세상은 그렇게 S자 곡선을 그릴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 법이니까.


*


   우유수염의 명랑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옅은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반사신경과도 같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약속 장소로 뛰어오는 우유수염을 보고서 나도 모르게 벤치에서 일어나 옆자리를 권했다. 우유수염은 입술을 벌리며 나에게 달려와 내 허벅지에 손을 올리며 의자에 앉았다. 이건 순서를 어기는 게 아닐까. 위옹의 클럽 규칙에 따르면 서두르지 않고 서로의 피부 경계선을 탐색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처음에는 눈 맞춤과 대화, 그다음엔 나란히 발걸음을 맞춰 산책. 그날은 같이 숲길을 걸으며 서로의 보행 리듬을 맞춰 보는 시간이었다. 내가 슬그머니 다리를 오므리며 손을 피하자 우유수염이 캉 하고 짖듯이 소리쳤다.

   “오미자물!”

   우유수염은 서운함을 감출 수 없다는 표정으로 뺨을 씰룩였다. 그러더니 나에게 왜 이응을 믿지 않느냐고 물었다.

   “쾌감을 느끼는 게 두렵나요? 죽는 게 무서워요? 삶과 죽음, 그 모든 것이 컬러볼 안에서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걸 믿지 못하는 거예요?”

   우유수염은 이응의 현자처럼 말했다. 아니, 말한다기보다 나를 향해 짖는 것 같았다. 나의 방어적인 태도를 비난하듯이, 반짝이는 두 눈에 원망을 가득 담고서. 나는 왜 갑자기 이응 얘기를 꺼내는지 알 수 없었지만 자율신경이 반응하듯 대답이 흘러나왔다.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내가 말하자 우유수염이 까만 눈을 크게 떴다. 내 안의 비밀을 탐지하는 듯 지그시 나를 바라보며 콧방울을 조금 벌름거렸다. 

   “좋아요. 잘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의 욕망을 따라 하지 않는 게 이응의 철학이에요.” 

   우유수염은 흥분을 가라앉히듯 심호흡했다. 그렇게 해도 따끔거리는 상처의 통증은 가시지 않는지 목소리가 떨렸다.

   “난 오르가슴이란 말이 싫어요. 애써 올라가야 할 것 같잖아요.”

   우유수염은 이응의 좋은 점은 ‘이응’이란 말을 만들어낸 것이라 했다. 섹스란 말은 이미 낡고 헐어서 덧대어 쓸 수도 없을 만큼 초라해졌다고 했다. 그 말은 우리의 자연스러운 욕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고.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어린 백성이 니르고저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실어 펴지 못하던 서글픈 시절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무슨 말씀이요?”

   나는 되물었지만, 우유수염은 자기가 하는 말에 빠져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뜬 채 허공을 보며 말했다.

   “그거 알아요? 인간은 기계 앞에서 제일 솔직해요.”

   포기를 모르는 성격인지, 아니면 마음의 행로에 따라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건지, 우유수염이 내 허벅지에 또 손을 올렸다. 우유수염은 전 세계인의 쾌감 정보를 모은 이응이 앞으로 더 멋진 컬러볼을 개발해 낼 거라고 믿었다. 그러니 누구든 자기가 느끼고 원하는 걸 이응 안에서 표현해야 한다고, 그렇게 자기 기쁨을 만끽하는 게 지구별의 푸름에 공헌하는 길이라고 했다.

   “나는······.”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떠올렸다. 나도 뭔가를 만지고 싶을 때가 있었다. 이응이나 인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나 자신을 위해. 하지만 겨우 입을 열고서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다른 인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를테면, 뺨을 맞대거나 포옹하거나, 어쩌면 반가운 사람이 상대를 안아서 들어올릴 수도 있겠죠. 너무 반가우니까. 반갑고 좋으면 개는 오줌을 싸잖아요. 물론 인간은 팬티를 입지만. 이를테면 반가운 마음에 상대를 안고서 빙글빙글 돌면······.”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었는데도 매일 그런 상상을 하고 또 한 것처럼 나는 어떤 자세가 좋은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우유수염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죠. 외음부가 자극되겠네요.” 

   우유수염이 벤치에서 일어나 누군가를 안아 올리듯 두 팔을 뻗었다. 

   “이렇게 상대한테 높이 안겨서 돌아가면 자연스럽게 여기가 눌리잖아요.”

   우유수염이 자기의 아랫배에 손을 얹었다. 나는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 바람을 직접 몸으로 실현하는 우유수염을 보고 있자니 정말 그런 게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다. 만지거나 닿고 싶은 마음을 성적 쾌감과 완전하게 분리할 수 있을까.

   “나, 클럽 회원을 따로 만났어요.”

   우유수염이 말했다. 나는 놀랐지만, 놀라지 않은 표정을 지으려고 애쓰다가 뺨을 씰룩거렸다.

   “같이 이응을 했어요. 2인용 이응이 없어서 둘이 찾아다녔죠.”

   포옹하기도 전에 이응을 하다니. 아니, 포옹과 이응은 전혀 다른 것이지만, 그건 섹스와 임신만큼 분리된 거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레인코트가 우유수염과 같이 그걸 했다니. 우유수염은 하이볼을 세 잔 마신 목소리로 그날의 이응을 묘사했다. 마주 보며 이응을 할 수 있는 캡슐을 찾아갔고 각자 빗소리 테마로 자극받은 다음 서로의 성 표현 정체성을 바꿔 즐겼다고 했다. 

   호.

   나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열린 창문으로 흙탕물이 들이쳐 흠뻑 젖은 기분이었다. 멀리서 레인코트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레인코트의 품에는 보리차차의 어릴 때 모습을 닮은 갈색 푸들이 안겨 있었다. 개와 함께 산책하기. 공원에서 만난 고양이에게 간식 주기. 그날 우리가 해야 할 미션들이 나에게는 위선처럼 느껴졌다. 나는 나를 부르는 우유수염을 돌아보지 않은 채 레인코트를 지나쳐 뛰어갔다. 그렇게 모른 척 뛰어가는 게 레인코트에게 어떤 상처라도 입히는 것처럼. 

   곧장 내려가면 할머니와 걷던 오솔길이 나왔다. 리기디소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그 흙길은 보리차차가 좋아하던 산책 코스였다. 개를 따라 걸으면 개의 엉덩이와 꼬리에서 그 기쁨이 전해졌다. 공기에 떠도는 냄새를 한껏 들이마시고 나무마다 멈춰 서서 동족의 흔적을 찾던 보리차차.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코를 벌름거리던 카페오레색 털의 개. 

   “한 번 만져 줘요. 얘가 그래야 가요.”

   보리차차가 멈춰 서면 할머니가 보리차차 대신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는 아무나 보면 만져 달라며 올려다보는 보리차차가 창피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보리차차에겐 가리고 숨길 게 없으니 부끄러운 것도 죄스러운 것도 없다고 했다. 보리색 털을 가진 개의 원래 이름은 ‘보리’였지만, 할머니는 마음대로 바꿔 불렀다. 보리보리! 보리차! 보리차차! 어떻게 불러도 보리차차는 할머니의 목소리에 귀를 움찔했다. 의심 없이 우리에게 안겨 우리의 팔에 턱을 기댔다. 

   “흰 털이 났네. 흰 게 많아졌어.”

   할머니는 보리차차의 다리 관절을 하나하나 주무르며 개의 남은 수명을 헤아렸다. 할머니와 개, 둘 다 늙어 가고 있었지만 할머니는 보리차차에게 살날이 더 많이 남았다고 믿었다. 나에게 장담했다. 오래 살 거야. 병이 나도 고칠 수 있을 거야. 

   나는 혼자 걷고 있었지만, 네 발로 걷는 개가 함께 있는 것처럼 가다가 멈춰 서고 가다가 나무 아래를 살폈다. 어떻게 이 땅이 보리차차가 아닐 수 있을까. 내 눈에는 흙이 된 보리차차의 귀와 나무뿌리가 된 보리차차의 다리가 보였다. 보리차차는 발이 네 개였으니 인간보다 더 많이 땅에 닿았고, 그렇기에 더 쉽게 숨결이나 체액이 이 산으로 스며들었을 것이다. 봄이면 보라색 제비꽃이 피는 풀밭은 보리차차가 온몸을 떨며 집중해 냄새 맡던 곳이었다. 엉거주춤 뒷발을 들고 앉아 김이 나는 진흙색 똥을 누던 개. 작은 카펫 같은 귀를 열면 보이는 연분홍색 솜털, 그 안에서 풍겨 오는 퀴퀴한 동굴 냄새, 참새 떼가 날아오르면 놀라서 뒷걸음치다가 뒤늦게 검은 입술을 말아 올리며 허공에 대고 화풀이하던 표정, 타각 타각 타각 걸을 때 장판에 부딪히는 검은 발톱. 할머니가 잠들면 보리차차는 할머니의 팔에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할머니의 팔이 자기의 등을 감쌀 수 있게. 내가 외출하면 돌아올 때까지 문 앞에 엎드려 있었고, 돌아오면 노란 오줌을 바닥에 지렸다. 오줌을 닦으며 내가 혼을 내면 할머니가 보리차차 편을 들어 주었다. 반가워서 그런 거니 봐줘라. 차차, 배우겠지. 차차, 가리겠지. 나는 다시는 위옹 모임에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누군가를 힘껏 끌어안아도 이 열린 창문은 닫을 수 없을 테니까. 죽은 개는 더 이상 만질 수 없으니까. 살아 있던 개도 날 안아 준 적은 없었다. 개는 자기 가랑이를 핥던 혀로 내 손을 핥았다. 할머니는 개의 엉덩이를 두들긴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개나 나나 할머니에겐 죄다 강아지였다. 강아지, 라고 할머니가 부르면 보리차차와 내가 같이 할머니를 봤다.

   “강아지! 우리 나갔다 온다!”

   그날은 가을비가 내렸고 할머니는 보리차차에게 모자가 달린 우비를 입혀 주었다. 속옷은 안 입어도 비옷은 입는 보리차차. 할머니는 한 손에는 개의 보행줄을, 다른 손에는 우산을 들었다. 빗길을 지나가는 자동차의 속도와 관절염을 앓는 개와 할머니의 완보. 갈색 푸들과 우산이 뒤집혀 비 맞는 할머니. 할머니에게도 비옷이 필요했는데, 시야를 가리는 우산 대신 난간을 붙잡으며 안전하게 걸을 수 있게. 잘생긴 나무 앞은 빗물이 고여 진창이 되었고 도로와 이어진 나무 데크는 빗물에 미끄러웠다. 젖은 낙엽이 가득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어떤 이야기는 너무 비참하게 끝난다는 것이었다.


   셋팅된 코스가 있으십니까? 


   나는 공원의 이응으로 들어갔다. 이응의 내부는 오래된 악기의 울림통처럼 잔잔한 어둠에 싸여 있었다. 내가 지문 인식기에 엄지를 대자 풍경소리가 들리며 바닥부터 천장까지 희미한 빛이 켜졌다. 나는 하나하나 내 욕구를 코디했다. 처음은 내가 어떤 성별로 즐길 건지 고르는 것이었다. 여성/남성/그 이상. 각각의 개별 유형에도 프리즘이 있어서 정체성의 명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프리즘의 모양도 선택했다. 양방향 화살표와 삼각틀, 사방으로 뻗어갈 수 있는 입체 볼. 

   나는 삼각틀을 눌렀다. 손이 떨려 한 번에 화면을 터치할 수 없었다. 첫 단계를 넘기기도 전에 손과 겨드랑이가 땀으로 축축했다. 얼음 위에 선 것처럼 발끝이 시리면서 은색 띠를 두른 이마와 뒤통수가 조여 왔다. 나는 내 욕구를 설계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세상에는 어떻게 그 많은 불행이 계획되어 있는 걸까.

   성적 끌림 대상과 정서적 끌림 대상. 나는 삼각틀을 움직였다. 내 검지를 따라 프리즘의 색이 바뀌고 명암이 짙어졌다. 삼각틀 아래 끌림의 크기가 숫자로 표시됐다. 나는 몇 단계를 건너뛰어 자극 부위에 멈췄다. 벌거벗은 사람의 이미지가 나와 자기 몸을 색칠해 달라는 듯 부드럽게 팔다리를 움직였다.

   받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곳.

   나는 ‘하고’와 ‘받고’를 모두 선택하고, 어깨와 가슴 부위를 색칠했다. 특정 부위를 터치하면 이미지가 확대되어 입체로 눈앞에 펼쳐졌다. 뺨과 목덜미, 유두와 배꼽, 옆구리부터 허벅지, 놀랍도록 세밀하게 그려진 질과 외음부, 엉덩이, 발가락······. 

   패스, 패스, 패스. 

   그 뒤로도 선택은 끝나지 않았다. 물리적 자극에는 누르고 문지르는 방식이 세세하게 구분돼 있었다. 기울기는 몇 도, 자극의 세기는 얼마, 진동의 유지 시간과 회전 방향 그리고 우유수염이 즐겼다는 빗소리 테마까지. 

   호.

   할머니는 내게 말했다. 

   “이제 목욕탕에서 가랑이를 찜질하는 여자는 없잖니.”

   왜 목소리에는 주름이 있을까. 내 얼굴에 닿는 할머니의 손과 그 감촉. 하도 떠올리다 보니 맛도 느껴졌다. 칼칼한 고춧가루 향, 물엿처럼 달고 끈적거리는 온기, 고사리나물처럼 쓴맛이 맴도는 할머니의 당부. 보리야, 아프지 마라, 아프지 마. 

   나는 화살표 버튼을 빠르게 눌러 선택지를 패스하고 마지막 단계인 기억 유도 기능으로 갔다.


   스토리텔링 코스를 적용하시겠습니까?


*


   “좋을 거야. 저거랑은 비교도 안 되게 좋을 거야.”

   할머니는 무서워할 거 없다고 했다. 건포도처럼 주름진 눈으로 날 보며 말했다. 

   “난 하나도 안 무섭다? 그러니까 너도 할머니가 언제 어떻게 가든 겁낼 거 없어.” 

   할머니는 죽는 것도 이응 같은 거라고 했다. 이응처럼 코스를 선택할 순 없지만 이응의 컬러볼처럼 삶에서 죽음으로 굴러가는 거라고. 이 색에서 저 색으로 바뀌는 것뿐이라고. 이응을 하는 것처럼 억눌려 있던 게 풀리면서 기분 좋게 흩어지는 거라고 했다. 아마 자신은 묵은똥을 싼 것처럼 가뿐할 것 같은데, 몸뚱이를 갖고 사는 게 늘 조금은 힘겨웠으니 거기에서 풀려나면 얼마나 시원하겠느냐고 했다. 

   “몸이 똥이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할머니는 뭉쳐 있고 고여 있던 게 다시 흘러 넓은 데로 갈 거라고 했다.

   “꽉 쥐고 있던 걸 펼치는 거야.”

   할머니는 검버섯이 피고 핏줄이 불거져 나온 손등을 천천히 오므렸다가 펼쳤다. 풀리고 풀리고 그렇게 다 풀리고 나면 어쩌다 팬티에 못 볼 꼴을 보일 수도 있지만, 그건 남은 사람이 처리해야 할 일이지, 자기는 홀가분할 거라고 했다. 

   “좋을 거야. 너랑 보리랑 사는 것도 좋았으니 가는 것도 좋을 거야. 재밌고 아찔해서 웃음이 실실 날걸?” 

   할머니가 보리차차의 곱슬곱슬한 털 속에 손을 넣어 쓰다듬었다. 나도 보리차차의 털 속에 다섯 손가락을 넣었다. 장갑을 낀 것처럼 손등이 포근했다. 우리가 앉은 흔들 그네 앞에서 이응의 캡슐이 빛나고 있었다.


*


   걷다 보면 나는 네 발로 뛰는 개가 된 것처럼 눈높이가 낮아졌다. 하늘로 뻗은 나무와 자동차, 그 사이를 오가는 직립하는 인간. 그들은 모두 나보다 커서 나는 그들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없었다. 보리차차도 그랬을까. 인간의 기분에는 언제나 알 수 없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서 그게 보리차차를 불안하게 했을까. 더 많이, 나에게 안기고 싶었을까.

   나는 땅에 떨어진 솔방울을 밟아 부서뜨렸다. 흰 반점이 난 나무껍질을 뜯어 손안에서 으스러뜨렸다. 분명 보리차차와 산책하던 잘생긴 나무로 간다고 생각했는데, 길의 풍경이 달라졌다. 클럽하우스로 가는 산중턱 길이었다. 가파른 언덕길은 겹겹이 쌓인 낙엽으로 더 뚱뚱해졌고, 나뭇가지들은 생선뼈처럼 앙상했다. 거센 바람이 머리카락을 헝클였다. 나는 지난번 빠졌던 진창에 똑같이 발을 헛디뎠다. 허리를 구부려 운동화에 묻은 진흙을 바위에 긁어내고 있는데, 육중한 체구의 남자가 산길을 뛰어 내려왔다. 육상부 코치를 닮은 그 남자가 날 보며 소리쳤다. 모두 전 속력으로 뛰어 이응으로 간다!

   통나무집의 문을 열자 짙은 오렌지빛이 펼쳐졌다. 레인코트가 한쪽 무릎을 꿇고서 난로에 불을 피우고 있었다. 나는 소리 없이 레인코트를 불렀다. 

   할머니.

   레인코트가 나를 돌아봤다. 턱에 주름을 만들며 조용히 웃고는 무릎에 대고 나뭇가지를 분질렀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혀를 길게 내빼고서 엉덩이를 힘차게 흔들고 싶었다. 간절히 꼬리를 바랐다. 

   “착하지, 이리 와요.”

   금색 발이 쳐진 안쪽 공간에서 우유수염의 목소리가 들렸다. 발을 열고 들어가자 고무보트처럼 커다랗고 둥근 쿠션이 보였다. 우유수염은 거기에 반쯤 기대어 누워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쳤다. 

   “이리 와, 얼른!”

   액체처럼 흘러 가슴에 고이는 목소리. 내가 무릎을 구부리며 앉자 쿠션이 물컹 흔들렸다. 우유수염이 기특하다는 듯 내 정수리를 손끝으로 긁어 주었다. 레인코트가 쿠션에 발 도장을 푹푹 찍으며 들어섰다. 물과 공기가 반씩 담긴 거대한 풍선처럼 환한 자줏빛 쿠션이 구불텅하게 솟아올랐다. 

   같이 눕기.

   이번 우리의 미션은 같이 눕는 것이었다. 세 사람이 누워 서로의 피부 경계선을 조금씩 뭉개 보는 것. 나는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유리로 된 천장을 보았다. 황갈색 깃털의 새가 유리 위를 두 발로 뛰어다녔다. 

   “시작할까요?”

   레인코트가 말했다. 레인코트는 나와 우유수염 사이에 누워 팔을 뻗었다. 엎드려 있던 우유수염은 불편한 무언가를 바로잡듯 가랑이 사이에 손을 넣고 움직였다. 이래야 안 움직여.

   우유수염이 양손을 가슴에 모은 채 옆으로 굴렀다. 시계방향으로 굴러가 레인코트의 가슴에 머리를 댔다. 으어, 이어, 하는 소리가 들리며 쿠션이 출렁였다. 두 사람이 키들키들 웃으며 몸을 비틀었다. 그래, 이렇게 옥수수가 자라는 거지. 

   우유수염이 레인코트의 몸에서 내려와 내 쪽으로 굴러왔다. 나는 눈을 감았다. 내 차례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옆으로 쿠션의 천이 높이 올라가 우유수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상황을 살피려 고개를 들었을 때 내 발밑에서 큰 그림자 하나가 일어섰다. 천천히 그림자가 나를 향해 내려왔다. 한 번도, 누군가와 그런 자세를 해보지 않았지만, 나는 다리를 벌리고 눈을 감은 채 턱을 들었다. 레인코트는 내 다리 사이로 부드럽게 무릎을 밀어 넣는 동시에 내 어깨 옆으로 손을 뻗어 자신의 몸을 지탱했다. 레인코트의 산등성이 어깨가 내 얼굴 위를 덮었다. 안 돼, 재채기는 안 돼. 숨이 멎을 듯 귓속이 먹먹해지면서 몸이 떨렸다. 이가 맞부딪힐 만큼 떨리고 코끝이 아려 왔다. 레인코트는 잠든 아이에게 베개를 받쳐 주듯 내 목 뒤로 손을 넣었다. 

   호.

   내 코와 뺨이 레인코트의 가슴에 뭉개졌다. 이마와 콧등, 입술 사이사이로 레인코트의 온기가 밀려들었다. 흙더미처럼 쏟아지는 살결. 나라는 사람과 나의 얼굴과 그 얼굴로 지어야 했던 모든 표정이 레인코트의 품에서 지워지는 것 같았다. 왜 이제야 알았을까. 누군가에게 안길 때마다 내 안에서 할머니의 늙은 손이 되살아날 거란 걸. 할머니는 어린 나를 욕실 의자에 앉히고서 물이 담긴 세숫대야에 손을 넣었다. 툭툭 물기를 털고서 뺨을 쉭, 귓바퀴를 쓱, 콧방울을 움켜잡고 흥. 할머니는 턱받이처럼 두른 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아 주었다. 얼굴이 맑게 다시 생겨나는 기분. 그리고 나의 애처로운 강아지 보리차차는 아무리 내가 잘 말려 줘도 털에 스민 물기를 세차게 흔들어 털어냈다. 머리, 몸통, 꼬리를 세 방향으로 비틀어 몸을 말렸다. 그러고선 날듯이 네 발로 점프해 자기의 방석으로 몸을 던졌다.

   내가 잃어버린 화살은 모두 내 안에 있었다. 나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몸을 떨었다. 레인코트가 두 팔로 내 등을 감쌌다. 끝없이 애정을 갈망하는 강아지처럼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이응 안에서 오래 포옹했다. 속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몸으로 다른 몸에게 안겼다. 레인코트, 당신의 이름은 무슨 색이죠? 나는 묻고 싶었지만, 입속의 말들이 소리로 나오지 않았다. 옛이응의 ‘호’가 아닌 지금 나를 가득 채우는 이 느낌을 표현할 새로운 언어가 필요했다. 더 깊은 품으로 스며들고 싶었다.

   우리의 스토리가 마음에 드셨습니까? 

   흙색 깃털의 새가 콕콕 부리로 천장 유리를 찍었다. 나는 그 새가 나의 개라는 걸 알았다. 보리차차, 이제 뛰지 않고 나는 거야? 날개로 나는 법을 배운 거야? 

   나는 울고 있었지만, 비옷을 입고 빗속을 걷는 것처럼 두 뺨은 눈물 자국 없이 보송했다.






   * 글 속의 느슨한 S자 곡선에 관한 내용은 『랩걸』(호프 자런, 김희정 옮김, 알마, 2017)의 299쪽을 참고했다.

   * 파시니 소체에 관한 내용은 『여자들의 섹스북』(한채윤, 이매진, 2019)의 29쪽과 79쪽을 참고했다.

   * 이응의 스펙트럼에 관한 내용은 『LGBT+ 첫걸음』(애슐리 마델, 팀 이르다 옮김, 봄알람, 2017)의 ‘젠더 유니콘 그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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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고관리자
  • 202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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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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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고관리자
  • 202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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