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숲에 머무를 수 없다면
- 작성일 2024-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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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숲에 머무를 수 없다면
이소
1.
십 년 전, 한국 문학은 세월호의 침몰을 ‘실재’이자 ‘사건’이자 ‘외상’으로 받아들였다. 잘 짜인 듯 보였던 상징질서가 찢기며 드러난 ‘실재’의 속살이자, 그 이전의 주체와 그 이후의 주체가 도저히 같을 수 없는 압도적인 ‘사건’이자,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외상’. 글을 쓰는 자라면 누구라도 사태의 ‘재현 불가능성’을 수용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고, ‘세월호 이후의 문학’을 한다는 것은 애도의 윤리에 복종하는 동시에 끝내 ‘애도 불가능성’을 증언해야 하는 이중의 난제가 되었다. 다른 글에서도 말한 적 있지만, “나는 이 무렵의 문학 비평이 출구 없는 폐허 위에 무릎을 꿇고 써내려간 ‘실재의 윤리’에 대해 어떠한 불만도 품은 바가 없다.”1) 다만, 실재를 향하라는 부정성의 요구가 언제까지나 생생할 순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고 믿기에, 이제 그간 암묵적으로 금기시되다시피 했던 작업들을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따름이다.
그러나 아마도 같은 이유에서 출발했을, 얼마만큼의 반성과 얼마만큼의 결심을 담아 정성스럽게 쓰였을, 십 년 만에 도착한 한 평론가의 글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실재의 윤리’를 이야기하던 평론가의 반전 앞에서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당혹스러움이지만, 만약 그의 결론이 어떤 필연적인 경로 끝에 형성된 것이라면 이에 관해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독을 막기 위해 그 글의 마지막 단락을 중략 없이 길게 인용한다.
십 년 전의 나는 몰랐던 것 하나를 이제는 알고 있다. 세상엔 쓰일 수 없는 문장이 있다는 것. ‘아이가 죽었다’라는 문장은 불가능하다. 한번 태어난 아이들은 계속 산다. 계속 살아간다는 것은 어딘가에서 산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살아갈 장소가 필요하고 우리는 그곳을 마련한다. 아이들을 우리의 기억 속에 살게 하자는 말은 뻔한 말이다. 그런 말이 아니다. 기억을 창조해야 한다는 말이고, 그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공식 기억’과는 다른 ‘대항-기억’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지만, 이제 나는 ‘인공 기억artificial-memory’의 불가피함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예술로 생성되는 인공 기억을 ‘art-ificial memory’라고 부르면 되겠다고도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의 기억은 매우 허술해서 우리의 뇌 속엔 “기억의 진실성을 확인하는 메커니즘”이 없다는 말, “생생한 감각적 심상과 강력한 감정이 동반되면 (······)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없다”라는 말에 깊이 안도한다. 그러니까 앞으로 마지막 한 줄은 쓰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들은 계속 사는 것이다.2)
그의 말과 달리, 나는 “기억의 진실성을 확인하는 메커니즘이 없다”는 사실이나 생생함과 강력함이 동반되면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없다”는 사실에 “깊이 안도”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여기서 하진 않을 것이다. 저 글에 대한 가장 정확한 반박은 십 년도 훨씬 전에 그가 이미 써두었으므로.
‘억압된 총체성’이라 해도 좋다. 문학은 구축하는 초자아의 총체성이 아니라 배제되는 무의식의 총체성이기 때문이다. 그곳에 치명적인 진실이 있으니, 이 기형을 대면하고 돌파하는 일은 윤리적이다. 정신분석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윤리가 문제되는 자리는 ‘선(善)’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것이다. 선의 윤리학과 진실의 윤리학이 있다. 선의 윤리는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방호벽이다. 그것은 치명적인 진실의 바이러스를 선의 이름으로 퇴치한다. 반면 진실의 윤리는 시스템을 다시 부팅하는 리셋 버튼이다. 그것은 때로 선이라는 이름의 하드디스크가 말소될 것을 각오한 채 감행되는 벼랑 끝에서의 한 걸음이다.3)
‘선의 윤리’와 ‘진실의 윤리’ 중 단호하게 ‘진실’의 편을 선택했던 이가 ‘인공 기억’의 존재에 안도하는 ‘선’의 편으로 돌아서기까지, 필요한 건 단지 세월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생각이 달라지는 것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이유가 알 수 없는 비율로 섞여 들어간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우리는 주어진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고, 그 선택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결코 한 평론가의 개인적 결단에 좌우되지 않는다. 그러니 조금 멀리 돌아갈 필요가 있다. 나 역시 영원히 ‘실재의 윤리’에 고착될 순 없다고 생각하고, 그런 생각을 나만 할 리도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지금 우리의 손에 쥐어진 선택지들 그러나 어쩌면 오래 전부터 존재했을 그 선택지들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2.
본래 트라우마는 외력에 의한 신체적 손상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의미가 확장되어 육체적 외상뿐 아니라 심리적 타격이나 정신적 상해와 같은 비육체적 외상까지 아우르는 말이 되었고, 도리어 이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더 빈번해졌다. 검색창에 ‘트라우마’를 입력하면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에 관련된 자료들이 나오지만 ‘trauma’를 입력하면 ‘중증외상센터’ 같은 외과적 영역의 자료들이 나오는 것처럼, 한국 사회에서 트라우마라는 개념이 번역되고 상용되는 과정에는 트라우마의 의미가 변화해 온 흔적이 남아 있다.
이언 해킹은 이처럼 트라우마가 심리화 되는 과정을 추적하기 위해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흔히 트라우마 연구가 시작되는 기점을 제1차 세계대전의 셸쇼크나 프로이트의 등장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미 프로이트가 샤르코의 문하생이 되기 위해 파리에 도착한 1885년에는 심리화 된 트라우마 개념이 널리 퍼져 있었다. 해킹이 트라우마 개념의 심리화 과정에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꼽는 것은 철도사고다. 철도사고는 최초의 ‘현대적 사고’라 부를 만큼, 산업화 이전 시대에는 찾아볼 수 없던 새로운 형태의 재난이었다. 국가와 산업이 뒤얽힌 대형 사건은 불법과 합법의 범위, 법적 책임, 보상 규약 등 ‘현대적 사고’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문제를 등장시켰고, 신체적 부상 외에도 지속적인 심리적 고통과 불안을 호소하는 피해자 대중을 가시화했다. 의학자들은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사회적·의학적 제도에서 활발히 활동했고, 그중 트라우마 치료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성과를 보여준 두 사람이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피에르 자네였다.
흥미롭게도 두 사람은 정반대의 방향에서 트라우마를 해석하고 치료했다. 프로이트에게 트라우마는 개인의 내밀한 행위와 연결되어 있었고, 그러므로 그가 할일은 환자가 자신의 기억을 재구성하도록 돕는 일이었다. 치료의 목표는 환자의 고통을 줄여 주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진실을 수용하도록 하는 것이었고, 때때로 그 일은 환자를 더 괴롭게 만들었다. 그 역시 이론의 형태를 한 단 하나의 진실을 찾길 원했고, 다양한 사례를 통해 거대한 이론을 구축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반면 자네에게 트라우마는 비개인적인 것, 단지 외부적 요인으로 빚어진 상태나 상황에 불과했기 때문에, 프로이트처럼 성공 여부도 불확실한 데다 긴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자유연상법은 선호하지 않았다. 그 대신 당장의 통증을 줄여 주는 데 효과적인 암시와 최면 요법을 즐겨 사용했고, 환자가 더 이상 고통스러워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환자가 원하는 거짓 기억을 말해 주는 것쯤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그에게 진리는 절대적 가치가 아니었다. 프로이트에게는 진리가 절대적이었다.”
어쩌면 완고한 프로이트보다 실용적인 자네 쪽이 그 시대 많은 이들의 평판대로 ‘존경받을 만한 치유자’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선량함이 철저히 “빅토리아 시대의 미덕을 준수하는 사람”이 지닌 측은지심이었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언제나 ‘존경’에는 역설적인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고통 받는 환자들을 안타깝게 여기고 충실히 보살폈지만, 환자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진실을 대면할 수 있는 존재라고는 믿지 않았다. 그의 눈에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은 진리가 아닌 치유를 원하는 가엾은 자들이었고, 그들에게 암시와 최면을 거는 일은 의심할 바 없이 자비로운 일이었다. 자네는 자신의 행위가 기만이나 거짓은 아닌지 의문을 품을 필요가 없었다. 그에게는 “자기가 속한 전문직 사회의 명예로운 동료들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고, “흔히 여자이고 가난한 자신의 환자들에게 거짓을 믿게 함으로써 도움을 주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추상적 진리는 자네에게 중요하지 않았고, 환자가 진실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해킹의 말처럼, 기억과 진실을 둘러싼 논쟁에서 우리는 높은 확률로 “프로이트와 자네의 후계자들”일 것이다. 물론 프로이트의 계보가 부단히 가지를 뻗어 가는 과정에서, 정신의학과 생물학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발전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문제는 고도로 세분화되고 복잡하게 변주되었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고뇌와 자네의 위로”4) 중 무엇을 택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중요한 윤리적 결단으로 남아 있다. 어쩌면 한 명의 평론가에게 ‘선의 윤리’와 ‘진실의 윤리’가 논리적으로는 대립하는 동시에 현실적으로는 교차하여 등장한 것은, 그가 프로이트의 후계자이자 자네의 후계자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과거의 그는 프로이트의 후계자에 가까웠고, 지금의 그는 자네의 후계자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이 대립이 ‘진짜’ 문제인지에 관해서는 조금 더 따져 볼 필요가 있다.
3.
신형철 평론가가 말한 ‘인공 기억’이 자네의 최면이나 암시처럼 사실과 다른 기억을 주입하자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인간에게 기억의 진실성을 보증하는 능력 따위는 없으므로,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기보다 “생생한 감각적 심상과 강력한 감정”을 얻길 원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기억을 매만지는 기술은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으로 발전할 것이고, 심리적 고통을 겪는 당사자가 자신의 기억을 바꾸길 요구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는 질문도 등장할 것이다. 이럴 때, 자신의 기억은 ‘자신이 소유한 기억’을 의미하므로 소유물의 유지와 폐기에 관한 권리가 소유자에게 있다고 믿는다면 그는 자유주의자일 것이고, 행위의 정당성은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에 달려 있으므로 타인에게 ‘무해함’을 증명하면 자신의 기억을 수정해도 무방하다고 믿는다면 그는 공리주의자일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정책과 제도는 대충 여기 어디쯤에서 합의를 이룬다. 그러니 다수의 사람이 ‘성형 기억’을 주문하고 생산하고 소비하길 원할 때, 그것의 ‘무해함’과 ‘소유’의 증명서를 확인하고도 이에 반대한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오늘날의 시대정신을 훌쩍 초과할 용기가 필요하다.
‘성형 기억’이 SF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좀 더 현실적으로 ‘서사의 권리’와 연결해 볼 수도 있다. 한 사람이 아닌 한 집단이 공동으로 ‘성형 기억’을 가지면, 우리는 그것을 역사가 아닌 서사라고 부른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소수자 서사나 당사자 서사든, 20세기 학살의 역사를 부정하는 역사수정주의자의 서사든 모두 서사라는 이름을 붙이고 유통된다. 우파 정치인들, 아니 이제는 좌파 정치인들까지 가세하여 주장하는 ‘대안적 사실’은 전통적인 이념의 좌표계로는 파악할 수 없을 만큼 편집증적이고 음모론적인 서사를 구성한다. 탈진실 시대에는 진실이 가졌던 권리가 서사에게 주어진다. 국가든 민족이든 이념이든 더는 어떠한 주인기표도 군림하지 않는 포스트모던한 세계에서 ‘서사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을 도리는 없어 보인다. 타인의 취향을 향해 그러하듯, 다른 이의 ‘세계관’에 대해서도 존중하거나 무시하는 것 외에 딱히 대응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슬라보예 지젝에 따르면, 이와 같은 ‘서사의 권리’는 얼핏 상반되어 보이는 ‘실재에의 고착’과 함께 ‘홀로코스트 산업’을 지탱한다. ‘서사의 권리’를 지향하는 포스트모던적 담론이 홀로코스트에 한해서는 그것을 차마 서사화할 수 없는 “지고한 형이상학적 ‘악’”이자 “신성한 ‘실재’”로 격상시키고,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수정주의자들은 이 틈을 타고 온갖 자료를 재조합하며 창의적인 서사화 능력을 과시한다. 홀로코스트를 여타의 사건과 동일한 테이블 위에 올려놓길 거부하는 윤리적인 사람들과 자료를 놓고 숫자를 따져 보면 얼마든지 홀로코스트가 부풀려진 해프닝에 불과함을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대립 방식은 우리나라에서도 그리 보기 드물지 않다. 다양한 소수자의 서사를 존중하는 이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5·18, 세월호와 같은 사건에 한해서는 그것을 유일무이한 ‘실재’로 남겨 두려 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실재의 구멍을 따라 온갖 외설적인 서사가 과잉 생성된다.
지젝은 처음부터 “‘서사의 권리’를 지향하는 문화적 상대주의 속에 그 자체의 대립물로 보이는 것이 포함되어 있”고, 그 “대립물이란 서사화에 저항하는 어떤 외상이라는 ‘실재’에의 고착”5)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말이 옳다면, ‘실재에의 고착’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사의 권리’를 선택하는 것은 ‘진짜’ 선택이라 할 수 없다. 마치 서로 다른 선택지처럼 보이지만 처음부터 한 선택지의 앞뒷면이었던 것처럼, ‘서사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실재에의 고착’을 전제로 한 가짜 선택지일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프로이트(라기보다 그의 후계자인 라캉에 더 가깝지만)의 고뇌와 자네의 위로는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트라우마를 우리 삶의 실재이자 사건이자 핵심으로 신성시하는 뒷면에는, 그러니 그건 그대로 남겨 두고 각자에게 위안이 되는 서사를 발굴하여 모두 승인하자는 무력하고 선량한 실천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진짜’ 선택이란 무엇인가. 주어진 가짜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지 사이를 돌파하는 진짜 선택이란.
4.
고작 ‘서사의 권리’에 머무르는 대신 “진리로 나아갈 권리를 주장”6)하라는 지젝의 말에서 그 사이의 길을 가늠해 볼 수도 있다. 지젝은 홀로코스트의 유일무이함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그것을 다른 유사한 사건들과 비교하고, 그 비교 끝에 도달한 ‘비교의 한계’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 재현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고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이해 불가능한 사건에 대해 비교와 입증의 작업을 수행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계속 “비교 금지를 고수한다면 끈질기게 의심이 우리 뒤통수를 잡아당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일 홀로코스트를 다른 비슷한 범죄들과 비교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그 유일무이한 면이 사라질지도 몰라······.”7) 하나의 사건이 한쪽에서는 재현 불가능한 실재로 격상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부정되거나 혐오의 대상이 되는 극단적인 대치 상황에서, ‘실재에의 고착’과 ‘서사의 권리’는 어디로도 나아가지 않은 채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효능감’을 얻으며 고여 있다. 진리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정치의 길은 이 교착 상태를 돌파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어쩌면 지젝의 과격한 말에 선뜻 동의할 수 없는 온건한 사람일지라도, “이해하려면 비교해야 한다”8)는 말 정도는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비교 없이는 이해도 없는, 그런 정도의 이해력을 지닌 사람이다. 부디 애도가 가능하길, 재현이 가능하길, 이해가 가능하길 바라 마지않지만, 그러기 위해서라도 비교의 과정을 생략할 수 없다고 믿고 있다. 애도와 재현과 이해의 범위 역시 다양한 요인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 차이를 향해 각자의 서사라는 이름을 붙이고 아무것도 묻지 않을 알리바이를 얻는 대신 차이를 생성하는 다양한 요인을 분류하고 비교하는 방법론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정된 하나의 진리는 존재하지 않지만 ‘진리로 나아갈 권리’는 존재한다. 여기서 진리만큼 중요한 것은 ‘나아감’이고, 진짜 선택이란 정지된 고착이나 평행의 승인 같은 스칼라가 아닌, 방향을 설정하고 방법을 모색하며 타인을 설득하는 벡터의 모습을 하고 있다.
5.
브루노 라투르는 숲과 토양을 조사하는 과학자들을 따라 아마존 밀림에 들어가 그들의 연구 과정을 면밀히 관찰한다. 그가 보기에 과학자들이 복잡다단한 숲을 한 편의 논문으로 변환하는 과정에는 놀라운 데가 있었다. 그들은 ‘일치’를 추구하는 철학적 방법론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반대의 방식이 아닌 비껴 나가는 방식으로 이 모든 과정을 수행했다. 특히 토양학자 르네가 숲에서 흙을 추출하여 실험실 테이블로 옮기고 다시 그 테이블에서 이루어진 관찰을 과학의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은 진리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30년 동안 그는 딱딱한 페이지로 이루어진 작은 공책, 즉 먼셀 코드를 들고 다니며 세계의 열대 토양들에 관해 작업해 왔다. 이 작은 책자의 각 페이지에는 매우 비슷한 색조의 색상이 함께 모여 있다. (······) 표준화된 색상과 토양 표본 사이의 유사성이 성립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페이지에 구멍을 뚫음으로써 우리가 선명하고 균일한 표준의 표면과 토양 덩어리의 거친 표면을 함께 정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르네는 너무 풍부하거나 너무 복잡한 토양을 포기하면서 그의 흙덩어리를 추출해 왔다. 그 구멍은, 결국 흙덩어리의 부피와 질감을 무시함으로써 흙덩어리를 추출하고 색상을 선택하는 것을 허용한다. 그러고 나서 작고 납작한 직사각형의 색상은 색상으로서 요약된 흙과 대응하는 색조 아래에 기록된 번호 사이의 중개물로 사용된다. 우리가 직사각형의 색상에 집중하기 위해 표본의 부피를 무시할 수 있는 것처럼, 곧 우리는 참조 번호만을 보존하기 위해서 색상을 무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9)
거칠게 말해, 철학은 주체가 사물에 직접 가 닿을 수 있는지 그 가부를 둘러싸고 두 갈래로 나뉜다. 가 닿을 수 있다고 믿는 실재론자라면 현상을 통해 실재에 접할 수 있도록 날카롭게 감각을 벼리는 가운데 그 경험을 서술하기 위한 언어를 유려하게 구사할 것이고, 가 닿을 수 없다고 믿는 유명론자라면 현상의 너머를 포기한 채 언어로 현실을 창조하며 사물과 언어 사이의 간극에 대해 고민할 것이다. 결국, 두 입장 모두 언어와 세계를 연결하기 위한 부단한 시도로 수렴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사물과 현상, 현상과 주체 사이의 ‘일치’를 암시하는 ‘유사성’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속성이자 방법이자 가치가 될 것이다.
그러나 토양학자 르네가 숲에서 추출한 흙 표본을 색상표에 따라 비교 정렬하여 실험실 테이블로 옮기는 과정에서, 다시 테이블에 놓인 정렬된 흙 표본을 2차원 다이어그램으로 정리하고 변환하는 과정에서, 그 다이어그램들을 대조하고 중첩하여 학문장에서 인용과 소통이 가능한 논문으로 결합하는 과정에서, 유사성은 결코 특권적인 속성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인용문에서처럼, 유사성에 의존하는 일은 초기 단계에서 단 한 번 이루어진다. 이후 이어지는 수많은 단계에서 유사성은 오히려 희생되거나 다른 속성으로 전환된다. 르네의 연구는 단계마다 ‘환원’과 ‘증폭’이 교차되는 대각선을 그린다. “국소성, 특수성, 물질성, 다의성, 연속성을 잃고” 대신 그만큼의 “양립 가능성, 표준성, 텍스트, 계산, 순환, 그리고 상대적 보편성을 얻”10)는다. 아마존의 숲이 확장되고 있는지 축소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이 프로젝트는 단기간에 숲에서 완료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그러나 지극히 당연하게도 생생한 “숲을 잃으면서 우리는 그에 대한 지식을 획득한다”. 11)
문학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재현의 한계’를 복수의 변환으로 우회하는 르네의 작업은 흥미로운 면이 있다. 추출하고 비교하고 치환하는 단계마다 간극이 발생하지만, 그 간극에서 다시 다음 단계가 이어진다. 토양학자에게 ‘안다는 것’은 “당신이 막 표시해 온 통로를 따르면서, 당신 자신의 발걸음 위로 당신이 되돌아가는 길을 만들 수 있는 것”12)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되돌아가는 길을 잃는다면, 한때 찰나의 도약을 했지만 가역적으로 되풀이할 수 없다면, 그저 앎에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라투르가 토양학자의 곁에서 발견한 ‘진리로 나아가는 길’은 실체와 본질을 찾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실재를 포기하거나 각자의 서사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물을 기호화하고, 다시 그 기호를 분류하고, 분류한 것을 비교하여 배치하는 방식으로 작동시키는 회로와 같고, 진리는 “이 회로가 방해받지 않는 한 전선을 통하는 전류처럼 순환”13)하는 것이다.
6.
라투르의 평평한flat 진리와 지젝의 당파적 진리가 같은 것을 지시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주장하는 탈신성화된 진리에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방향을 명시하고 비교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영원히 숲에 머무를 수 없다면, 그렇다고 자기만의 숲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안도할 수 없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우리의 보잘것없는 손으로 숲을 들어 테이블 위에 올려 두어야 한다.
이 테이블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해서는 다음 글에서 이어 가려 한다.
1) 이소, 「종언 앞에서 부활하기, 멸종 앞에서 사물 되기-21세기 문학비평의 지형도」, 『쓺』, 2023년 하권, 117쪽.
2) 신형철, 「그리고 마지막 한 줄은 쓰지 않기」, 『문학동네』 2023년 봄호, 101~102쪽.
3)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21세기 문학 사용법」, 『몰락의 에티카』, 문학동네, 2008, 18~19쪽.
4) 이언 해킹, 최보문 역, 『영혼 다시 쓰기-다중인격과 기억의 과학들』, 바다출판사, 2024, 318~319쪽.
5) 슬라보예 지젝, 정영목 역, 『레닌의 유산: 진리로 나아갈 권리』, 생각의힘, 2017, 40쪽.
6) 같은 책, 39쪽.
7) 같은 책, 41~42쪽.
8) 밀란 쿤데라, 박성창 역, 『커튼』, 민음사, 2012, 121쪽.
9) 브루노 라투르, 장하원·홍성욱 역, 「순환하는 지시체」, 『판도라의 희망』, 휴머니스트, 2018, 109~111쪽.
10) 같은 책, 125쪽.
11) 같은 책, 82쪽.
12) 같은 책, 131쪽.
13) 같은 책, 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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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반대하며 ―고통과 쟁론 입론 박동억 1. 고통으로 향하기 코소보가 세르비아로부터 분리 독립을 선언하고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 것은 1998년 초의 일이었다. 이 무렵 시인 허수경(許秀卿; 1964~2018)은 독일에 머물고 있었다. 뮌스터 대학에서 근동 고고학을 전공하며 석사논문을 준비하던 차였다. 그해 말 NATO가 전쟁에 개입했고 공군을 동원하여 세르비아에 폭격을 개시했다. 허수경은 매스컴 보도를 보며 전쟁의 참혹함에 경악했고 두 나라의 고통받는 민간인을 위해 무엇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을 끔찍하게 여겼다. 그의 석사논문 주제는 기원전 6,800년에 세워진 중동의 작은 도시 초가 미쉬(Choghā Mīsh)였다. 그는 반만년 전의 멸망한 유적지를 오가며 “도대체, 이런 아카데미의 고상한 놀이가 지금의 전쟁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는 물음에 잠겼다.1) 다행인 것은 그가 시인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2001년 발표한 세 번째 시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에서 전쟁의 참상을 고발할 수 있었다. 군인들은 팔다리를 잃었고, 아이와 여자들은 고향을 잃었다. 그러나 이 사실은 언어로 열거할 때 단조로운 사실이 되어 버렸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실감할 수 있도록 허수경은 시적인 상상력을 활용했다. 그의 시집에는 전쟁의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스스로 목을 자르는 극적인 사건이나 난민이 된 여자들이 짐승 우리로 피난했다가 짐승과 교접하는 일화가 나타난다. 이 그로테스크한 상상은 언어화할 수 없는 전쟁의 잔인성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독일에 거주하는 한국인에게 코소보 전쟁은 그저 먼 나라의 사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인에게는 아니었다. 허수경은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장갑차에 아이들의 썩어 가는 시체를 싣고 가는 군인의 나날에도 춤을 춘다 그러니까 내 영혼은 내 것이고 아이의 것이고”라고 썼다. 이러한 애도가 무색하게 2003년에는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고 이에 시인은 2005년 네 번째 시집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의 서문에서 아예 자신의 시를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한 인간이 쓰는 반(反)전쟁에 대한 노래’라고 선언했다. 이처럼 시인에게 시 쓰기는 그의 영혼이 저 먼 타인의 고통에 접경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어떻게 그는 먼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영혼 곁으로 이끌어 올 수 있었을까. 어떤 의미로 그것은 그가 자임한 윤리의식이 역사적 복잡성이나 정치적 알력을 멀리한 채 성립된 간명한 문제의식에 기초했기 때문이다. 누가 가해자인가. 허수경은 전쟁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전쟁을 일으킨 자, 폭력을 수행하는 자를 고발했다. 누가 피해자인가. 그는 여성과 아이들이 겪는 고통을 묘사하는 데 주력했다. 따라서 그의 사상은 전쟁을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평화주의나 남성중심주의에 기초한 문명을 비판하는 에코페미니즘으로 일컬어졌다. 나, 태어났어 추워, 라고 말하면 정말 추워서 이 세상을 떠도는 모든 먼지들을
- 관리자
- 2025-07-01
경계가 지워지는 사이 -비/인간과 타자 김웅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김수영, 「달나라의 장난」1) 1 비인간이 가진 속도가 빨라질수록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감응하기 위해 우리가 경유하는 코뮨적 신체는 그러나 공통된 목소리를 요청하진 않는다. 인간 존재에 내재되어 있는 ‘선(善)’이라는 보편성은 오늘날 신자유주의 체제의 총체적 시간 속에서 하나로 모아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선(線)’을 만들고 있음을 주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같은 관점에서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의 의미를 재삼 곱씹게 된다. 2000년대 시적 주체는 한국 사회―넓게는 인간 사회가 구축해 놓은 알고리즘을 본격적으로 거부하는 타자의 자리에 자신을 노정 시킴으로써 “자기 존재의 근원을 확인하거나 보장받을 수 없음을 인지하고 실감하는 존재”2)로 변모하였다. 이를 통해 사회체의 최소 단위인 ‘가족’이라는 중심점에서부터 시작된 시적 사유는 단순히 생리적으로 결속된 하나의 사회체에 불과할 뿐 윤리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는 관계를 방증한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아이-화자는 시적 주체를 “‘부모-자식’이라는 수직적 차원에서 불화하는 관계”로써 “윤리적 모험”3)을 나서는 존재로 거듭나게 한다. 이 아이-화자는 2010년대를 거치면서 ‘시민적 트라우마’를 흡습한 시적 주체로 전성되었다. 어떤 방식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애도의 총량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실존의 차원에서 마주치게 되는 ‘무능력’”의 테제가 되고 그 무능력이 곧 “‘내면적 성찰’과 동전의 앞·뒷면 같은 관계를”4) 희망하는 고무적인 발화자로 시인을 이끄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 복무해야 하는 ‘세계’와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또 하나의 책무이자 윤리로 자리 잡는다. 이 같은 관점은 시민적 트라우마를 통감하는 주체로서 몸이 갖는 일종의 생활론적 윤리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5) 그런데 2020년대의 시적 주체에게 윤리적 책무감은 역설적으로 더 일반적이고 보편화된 ‘고독감’을 불러왔다. 시민적 영웅이 되지 못한 인간, 소박한 일상조차 꿈꾸지 못하는 인간, 죽지 못해 살아 내는 몸의 형상은 시민적 트라우마 앞에서 내색할 수 없는 존재로 내세워졌다. 이것은 “개인주의의 안온한 고립을 거부”하거나 “낮이라는 다스려진 영역을 다루는 임무 가운데 의연한 관계를 유지하는”6) 숭고한 고독과는 거리가 먼 고독감이다. 그것은 자칫하면 개인주의
- 관리자
- 2025-07-01
새로움의 경제 2(3) - 문학적 사용에 관한 비체계적 단상1) 강동호 1. 예술과 상품의 새로움을 구별할 수 있는 원리를 탐색하는 데 있어 ‘유용성’이라는 가치에 주목하는 것은 여전히 유의미한 출발점으로 보일 수 있다. 유용성의 관점에서 예술과 상품이 식별될 수 있다면, 양자의 새로움이 발휘하는 효과 또한 서로 다른 원리로 해명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상품 경제에서 새로움은 도구성과 결부된 차별적 정보 가치로 통용된다. 새로운 상품은 대개 기능적 유용성(사용가치)의 측면에서 과거의 상품과 구별되며, 뚜렷한 비교 우위의 원리에 따라 그 가치가 측정되기 마련이다. 이때 새로운 상품에 부여되는 더 높은 가격이라는 차이적 가치(교환가치)는, 한층 개선된 사용가치의 우월성을 통해 정당화될 수 있다. 반면 예술 작품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예술의 새로움 역시 과거와의 차이를 전제로 한 비교적 가치라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그 가치를 정당화하는 비교 우위의 척도(사용가치의 명시적 우월성)가 설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새로운 예술 작품은 과거의 것보다 한층 매력적으로 인식될 수 있고, 동시대의 감각에 보다 적합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가 과거 작품에 대한 일방적 우위를 뜻하지는 않는다. 이른바 유용성처럼 명확히 우열을 판별하는 기준이 부재한다는 사실은 예술에서의 새로움을 더욱 복잡한 가치로 만드는 주요 원인일 것이다. 2 예술의 자율적 가치를 정당화하고자 했던 전통적 이론들은 대체로 유용성의 결여 또는 그로부터의 자유를 예술의 핵심 본질 중 하나로 파악해 왔다. 유용하지 않다는 점, 즉 그 어떤 실용적 목적이나 기능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사실이야말로 예술이 예술로서 존재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때 유용성의 부재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공통 척도의 결여를 통해 부각되는 교환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거부이다. 주지하듯, 이러한 사유의 계보에서 가장 중요한 이론적 전환점을 제공한 인물은 칸트이다. 『판단력 비판』에서 그가 제시한 ‘목적 없는 합목적성’(purposeless purpose)이나 ‘무관심성’(disinterestedness)과 같은 개념은, 예술을 시장적 가치 평가와 경제적 교환의 논리로부터 구분하는 철학적 근거에 해당한다. 칸트에 따르면, 예술가는 그 어떤 외적인 목적에 의해 지배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품을 생산해야 하며, 감상자는 이해득실과 무관한 순수한 향유를 통해 작품의 아름다움을 경험해야만 한다. 이처럼 예술의 자율성은 어떤 보상이나 대가에도 편향되지 않는 행위의 독립성과 무관심성에 깊이 맞닿아 있다. 이를테면 수공업적 기예는 임금이라는 대가를 전제하는 강제적 노동이지만, 예술은 그 어떤 보상도 요구하지 않기에 전적으로 자유로운 행위로 간주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는 이익과 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경제적 주체(호모 이코노미쿠스)와 동일시할 수 없으며, 무용성은 이와 같은 비환원성,
- 관리자
- 2025-06-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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