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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 한국 시

  • 작성일 2010-05-28

일본 소설, 한국 시


한성례


한국에서 일본소설의 베스트셀러 현상

한류바람이 뜨겁게 일본 열도를 달구기 시작한 2000년 이후부터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해왔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많은 작가가 나올 정도로 한국은 일본소설 홍수 시대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일본소설가들조차도 왜 일본소설이 한국에서 그렇게나 많이 팔리는지 몹시 궁금해 한다. 이에 대한 일본 신문의 인터뷰나 원고의뢰가 있을 적마다 나는 현재 한국에서의 한국시에 비유해서 설명을 한다.


이전에도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종종 많이 팔렸다. 70년대 중반에 첫 출간된 무라카미 류(村上龍)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해적판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출판금지서임에도 안 읽은 사람이 없을 만큼, 문학이나 예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필독서이고 바이블이었다. 1999년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어 커버에 비닐을 씌워 19세 미만 구독불가로서 출간된 후에도 쇄를 거듭하며 읽히는 소설이다. 또한 1989년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란 이름으로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소설은 당시 크게 각광을 받았고 지금도 계속해서 읽힌다. 당시 한국은 민주화 쟁취와 맞물려 자의식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향하던 시기였다.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상태여서 사회,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했고, 급변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감, 고독, 상실감 등이 당시 한국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과 겹쳐지면서 이 소설에 크게 공감했다. 더욱이 하루키의 가독성 높은 문장은 금방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한편으로 문학의 구도자 같은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의 소설도 여러 편 번역 소개되었는데, 이는 주로 문학 창작자들이 마니아였다.

하지만 일본소설의 인기는 단편적일 뿐 전반적인 경향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구소설이 중심을 이뤘다.
그러던 것이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쓰지 히토나리, 히라노 게이치로, 요시다 슈이치 등 젊은 작가와 미야베 미유키, 스즈키 코지,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미스터리 소설과 나오키 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 수상작이 2000년 이후에 대거 한국에 번역 소개되었고, 대형서점에는 코너가 별도로 마련될 만큼 일본소설은 인기를 끌고 있다.


왜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일본소설은 재미있다.
독자를 의식하고 소설을 썼다는 게 금방 느껴진다. 말하자면 자신의 상품을 사줄 소비자의 위치에서 창작을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비현실적인 주인공을 통해 현실에서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의 일탈을 꿈꾸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일본소설의 주인공 젊은이들은 특별한 목표도 없고, 무기력하며 수동적이고, 나약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과 기존 질서에 따르지도 않고, 세상을 약간은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보편적인 부와 명예, 사회적인 안정 등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독특한 상상력과 가독성 높은 문장도 한 몫 한다.
최근 일본과 한국에서 밀리언셀러 판매 기록을 갱신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의 주인공들 또한 이와 비슷하다. 하루키의 소설은 신파 같지만 결코 신파가 흉내 낼 수 없는 감수성이 가미되어 더욱 인기를 끈다.
미국적 팝 컬러에, 무국적 냄새가 풍기는 주인공, 사회적 환경이나 등장인물 등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동질감을 느낀다. 또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서브컬처가 중첩되어 나타나며, 같은 서브컬처 구조를 가진 독자들이 공명하고 반응하기 쉬운 작품 구조여서 누구나 친근감을 갖게 된다.
이러한 일본소설은 소소한 것이 삶을 즐겁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또한 국적을 막론하고 공감대를 가질 만한 소재가 소설에 깊이 빠져들게 한다. 당연히 주제가 무거운 리얼리즘 소설보다는 쉽게 접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판타지적이고 비현실적 요소가 만화에 친근감을 갖는 청소년층까지도 일본소설을 읽게 만든다.     
이처럼 일본소설은 한국의 젊은 세대를 매료시키는 감각적이고 세련된 감성이 있다. 또한 새로운 소재를 계속 발굴하면서도 내용이 현대인의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지지를 받는데, 그 거리가 ‘현실에서 딱 한 발짝만’ 앞서 있다.
이로 인해 젊은이들은 일본소설의 세계를 흉내 내어 새로운 트랜드를 만들어 가기도 하며, 일본소설을 읽지 않고서는 동세대의 대화에 끼지 못한다고 여길 정도이다. 그 만큼 일본소설은 흡인력이 있다.


한국인의 시적인 감수성

일본소설의 인기에 견줄 만큼, 한국은 시가 성한 나라다. 한국인은 시적인 감수성을 지녔다. 시가 영상에 밀려 쇠퇴일로라고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아직도 한국은 시의 나라임에 틀림없다.
일본의 현대자유시는 일본제국주의가 전쟁 중에 행한 전체주의 등을 외면하고 시 창작을 핑계 삼아 도피했다는 점 등을 처절하게 참회하고 반성하다 보니 개인주의의 입장을 관철하게 되었다. 표현은 암유를 중시했다. 그 때문에 시가 몹시 난해해져버렸다. 현재의 모더니즘은 훨씬 더 난해해졌다. 표현은 언어 중심이 되었고, 시인 자신이 쌓은 울타리 속에 파묻혀 사회적 발언력도 없어졌다. 이것이 일본 현대시가 일반대중에게서 멀어진 가장 큰 원인이다.
그 과정에서 일본의 현대자유시는 대중적으로 전통시에 밀린다. 물론 대중에게 인기가 없다고 해서 시의 수준이 낮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중을 의식하지 않고 쓰는 시여서 오히려 시의 정수를 지닌 뛰어난 시가 많다.
일제 강점기에는 많은 조선의 문인들이 일본에 유학가서 문학 활동도 하고 일본어로 문집도 냈다. 그러다 보니 당시 한국과 일본의 문예사조는 거의 비슷했다. 광복 후에도 양국의 문학이 크게 다르지 않다가 1970년대 군부 독재시대부터 나뉘기 시작한다. 군사정권 하에서 문학의 큰 갈래였던 반체제 문학을 한국에서는 ‘참여문학’ ‘대중문학’이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사회파문학’이라고 하는데, 양상도 사뭇 달랐다.
한국에서는 오랜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시가 민주화의 선두에서 일반 대중을 이끌었고, 김지하(金芝河), 고은(高銀) 등, 반체제 시인들이 군사정권의 독재에 저항해 싸웠다. 80년대에는 이를 이어받은 전후세대 시인들이 민중의 앞에 섰다. 저항시는 이미 일제 강점기 윤동주(尹東柱), 이육사(李陸士) 등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사회변혁에 큰 힘을 발휘했다. 시인은 오피니언 리더의 역할을 이어가며 맡게 되었고, 이것을 받아들이는 강한 역사의식이 젊은 세대에도 있었다.
당시는 누구나 시집을 사서 읽었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 전반기까지 서적 베스트셀러 1위에서 5위까지 대부분 시집이 차지할 정도였다.     
일본인들은 “왜 한국에서는 시집이 많이 팔리고 베스트셀러가 되며, 시인이 존경 받는가.” 라고 묻는다.
그럴 때면 “한국시는 사회성이 강하고, 인간의 보편성을 노래하는 시가 많아서, 시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이해하기 쉽고, 가슴에 스며들기 때문”이라고 나는 대답한다. 현재 한국의 현대자유시는 일본에서 하이쿠, 와카, 단카, 센류 등, 전통시를 모두 합한 것과 같은 위치이다.
한국이 시의 나라임을 일본시에 견주어 정리해본다.
(1)한국은 과거제도에서 시를 중시한 역사가 있어서 시에 문화적 권위가 있다. (2)윤동주, 이육사 등 저항시인의 전통이 있어서 시인이 오피니언 리더의 역할을 한다. (3)그것을 수용하는 강한 역사의식이 젊은 세대에도 존재한다. (4)일본의 단카(短歌), 하이쿠(俳句), 와카(和歌) 등에 해당하는 한국의 ‘시조(時調)’ ‘한시(漢詩)’등의 정형시가 쇠퇴해서 시가의 주류는 자유시이다. (5)시집의 판매가격도 일본의 3분의 1정도로 싸다. (6)국어교육에서도 시를 중시한다. (7)1000회 이상의 수많은 침략을 겪으면서 유전인자 속에 슬픔과 한이 각인되어 시적 감수성으로 나타난다.


한국소설의 보완, 한국시의 강한 뿌리

그동안 일본소설을 한국어로 번역해오면서 느낀 점은 일본작가들의 소재의 다양성과 상상력의 자유로움이다. 앞에서도 거론했지만 독자의 입장에 서서 독자가 즐기는 소설을 쓴다는 점, 무국적 작가라 할 만큼 대부분의 일본작가가 세계 사람들이 공유할만한 소재와 주제, 스토리 구조를 가졌다는 점이다.


번역자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소설이 세계로 뻗어나가려면 하루키 소설처럼 국경을 넘어 모두가 공감하는 세계, 난해하지 않은 단어나 문장이면서도 세련되어야 하고, 번역하기 쉬운 문체를 개발해서 언어가 달라도 누구나 공감하는 소설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은 시인께서 최근 몇 년간 줄곧 노벨문학상에 노미네이트되곤 하는데, 발표일이 가까워지면 일본 매스컴에서도 큰 관심을 갖는다. 이왕 출발했으니, 시의 나라인 한국에서 시로서 노벨문학상이 나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한국시가 세계로 알려지는 일에 돌 하나를 더 얹는다는 마음으로 지금껏 일본의 여러 시문학지에 한국시를 번역 소개해오고 있지만, 일반 대중들이 한국시에서 멀어지지 않는 풍토를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일반 대중에게 변함없이 시적 감성을 이입시켜온 한국의 인기 시인들, 즉 김용택, 정호승, 도종환, 안도현, 최영미 등은 한국시에서 일반대중과 시단을 잇는 중요한 징검다리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시인들만이 즐기는 난해한 시라든가 대중과 동떨어진 시가 중심을 이룬다면 앞으로 일본시단과 별반 다르지 않게 변해갈 것이다. 구태의연하지 않은 새로운 시세계나 다양성의 시세계가 존재해야 하지만, 일반 대중에게서 사랑받는 시가 주류였으면 한다. 지금까지 잘 이어온 한국시의 토양을 앞으로도 민중과 함께 잘 정착시켜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장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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