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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곡곡] 수원 낯설여관(제1회)

  • 작성일 2023-08-01
  • 조회수 1,089

《문장 웹진》 책방곡곡 수원 낯설여관(제1회)

사회, 원고정리 : 지혜
참여자 : 다정, 셔터맨, 숑숑, 한쑤
책 : 안수민 지음, 이지현 그림 『플라스틱 인간』(국민서관, 2022)

2023년 7월 2일 일요일



지혜 :

안녕하세요, 여러분. 독서 모임 첫 책은 그림책 『플라스틱 인간』입니다. 혹시 이 책을 알고 있었거나 읽어 보신 분 계세요? 없군요. 오히려 더 좋아요. 책 읽은 소감을 가볍게 이야기하며 모임을 시작하면 어떨까요.

한쑤 :

처음 제목이랑 표지만 봤을 때, '그림책을 읽어 본 게 얼마 만인가' 싶어 약간 흥미로웠어요. 보통 텍스트만 있는 소설이나 산문만 봤는데 그림이랑 같이 있는 책이 선정되어서 재밌다고 생각했고요. 표지만 봐도 어떤 내용일지 알 것 같아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이라고 생각하고 읽었어요. 읽다 보니까 우리가 섭취한 미세 플라스틱이 새로운 생명체로 탄생하게 되는 스토리잖아요. 이런 아이디어를 어떻게 냈을까 궁금하다가도 책장을 넘기기가 점점 두려웠어요. 약간 기괴하기도 하고 엄청난 상상력에 감탄하다가도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잔혹동화를 보는 느낌이에요. 실제로 일어날 일은 아니지만 우리가 얼마나 플라스틱 소비를 많이 하는지, 폐기물이 얼마나 나오는지 약간 소름 끼칠 정도로 피부에 와 닿아서 진짜 무섭게 느껴졌어요. 그림과 짧은 글이 이렇게 큰 임팩트를 주는구나 생각하니 책 선정을 너무 잘한 것 같아요.

다정 :

저는 책을 읽기 전에 저자와 그린이를 먼저 보거든요. 근데 그림 작가가 참여한 『수영장』이라는 그림책을 본 적이 있어서 반가웠고요. 주인공 이름이 제임스라 외국인 작가의 작품인가 했어요. 근데 저자 두 분 다 한국인이어서 왜 이름을 제임스라고 했을까 궁금했어요. 한국 이름을 쓰면 너무 현실 같은 이야기들로 받아들이게 될 것 같아서 일부러 가상의 세계로 이입하라고 그런 설정을 한 건가, 이런 궁금증도 생겼어요. 대부분 플라스틱에 대한 경각심을 주는 것들은 나중에, 2050년이 되면 플라스틱을 가득 먹은 물고기 같은 개체를 우리가 먹게 된다는 흐름이거잖아요. 그런데 플라스틱이 가득 쌓인 몸에서 새로운 플라스틱이 나온다는 연결이 새로웠어요. 내 몸에 플라스틱이 가득 쌓여 있다는 사실로 끝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생명체로 태어나고 자라서 나랑 동등한 입장 이상으로 더 세력화되고 인간을 누를 수 있다는 걸 지금의 현실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쓰레기 산이나 주변에 플라스틱이 가득 쌓여서 인간의 공간이 사라지는 현재를 떠올리니 현실과 가상의 세계가 오버랩 되기도 했어요. 어른이 봤을 때는 현실적인 모습이 떠오르고, 아이들에게는 상상력의 세계를 더 무궁무진하게 만드는 그림책 같아요.

숑숑 :

저는 이 책을 즐겁게 봤는데요. 내용이 즐거웠다기보다는 이런 시도, 이런 의도가 되게 재미있었어요. 첫 장을 넘기면 보이는 첫 문장이 덜컥 마음에 걸렸어요. "그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그곳에 있었어." 지금 나타나는 어떤 일이 아니라는 의미잖아요. 제 기억에는 오래전 집집마다 나일론실이라는 게 있었어요. 끊어지지 않는 실인데, 나일론이 플라스틱 소재로 만든 거잖아요. 그래서 그런 어린 시절의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플라스틱도 플라스틱이지만 인간 군상의 모습을 잘 묘사했다고 느꼈어요. 제일 처음에 플라스틱 인간이 나타났을 때 "손가락 두 마디보다도 작고 인간을 닮은 그것"이라는 표현이 나와요. 어떤 낯설고 신기한 것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이 제일 처음 갖는 태도가 혐오 아니면 환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플라스틱 인간은 후자라고 생각해요. 인간들이 그것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호응하고 각종 SNS를 활용해서 인기몰이하다가 어느 순간 그것을 부담스럽게 느끼는 모습이 나오잖아요. 새로운 이슈를 발견했을 때마다 우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굉장히 유사하게 느껴져서 플라스틱이라고 하는 환경문제뿐만 아니라 인간들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흥미로웠어요. 2~3년 전에 플라스틱 쓰레기를 조사할 일이 있었어요. 그렇게 찾은 자료들은 적나라한 사진과 객관적인 수치를 통해 우리에게 경각심을 준다면, 이 그림책은 허구적인 스토리 라인이잖아요.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가 어쩌면 우리한테 더 임팩트 있게 다가오지 않나, 더 큰 두려움과 공포감을 전달해 주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한쑤 :

저도 숑숑 님 말씀에 공감해요. 플라스틱 인간을 낳는 사람이 하나둘 생기고 그걸 귀여운 존재로 인식하니까 예쁘게 꾸며서 SNS에 사진을 올리고 좋아요 누르는 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장면이더라고요. 저는 처음에 플라스틱 인간이 배꼽에서 나오니까 좀 경악스러웠거든요. 당연히 상상이지만 내 몸에서 만약 움직이는 뭔가가 나왔다고 생각하면, 마치 SF 영화에서 외계인이 나오는 것처럼 징그러울 것 같은데 "꽤 귀여웠지"라는 문장을 보고, 그림이 귀엽긴 한데, 이걸 귀엽다고 인식해도 되는 건가? 의문이 들었어요. 숑숑 님 말씀을 듣다 보니까 인간의 모습을 닮은 게 포인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르게 생기거나 다른 모습을 하면 배척하고 혐오했을 텐데 나랑 비슷한 점이 있으면 일단 경계심을 풀잖아요. 인간이 나와 다른 존재를 받아들일 때 어떻게 인식하는지, 이런 부분도 연결 지을 수 있겠다 싶어요.

셔터맨 :

첫 장을 넘기면 작가님들의 코멘트를 볼 수 있잖아요. 저는 두 번째 읽을 때 이 부분이 눈에 들어왔어요. 인간이 플라스틱 인간을 몸에서 만들어냈다는 관점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자연 세계 안에서는 우리가 플라스틱 인간인거죠. 그렇게 입장을 바꿔서 책을 다시 읽으니까 새롭게 읽을 수 있었고요. 이렇게 입장을 바꿔 보는 게 이 시대에 인간들이 가져야 할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좋은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쑤 :

얼마 전 생수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는 논문 발표 소식을 들었어요. 우리가 사 먹는 물에도 플라스틱이 있다는 걸 보고 우리가 돈을 주고 플라스틱을 먹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우리처럼 관심 갖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경각심을 가지면 좋겠어요.

지혜 :

저도 일회용 마스크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됐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깜짝 놀랐어요. 물론 저는 대체로 삼베 마스크를 쓰지만 코로나 때문에 모두 의심 없이 일회용 마스크를 썼잖아요. 그걸 떠올리니까 너무 소름 돋더라고요. 공기 중에도 미세 플라스틱이 떠다닌다고 하고, 점점 우리 생활 곳곳에 침투하고 있는 플라스틱을 떠올리니 이러다 정말 내 배꼽에서 플라스틱 인간이 나오는 거 아닌가 하는 상상도 하게 되더라고요.

숑숑 :

근데 왜 플라스틱 인간이 배꼽에서 나왔을까요?

한쑤 :

그림을 보면 플라스틱 인간이 탯줄에 연결되어 있잖아요. 인간을 "낳았다"라는 표현을 보면서 인간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우리가 쓰고 먹은 것들이 플라스틱 인간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들인 거죠.

다정 :

배꼽에서 나왔다는 게 '태어났다'는 것의 상징적인 의미인 것 같아요. 콧구멍에서 나왔다면 그냥 이물질로 버려졌을 수도 있고, 나와 연결된 개체라기보다는 그냥 배출되고 사라지고 빨리 지워야 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배꼽은 좀 다른거죠. 이게 진짜 실제 일어난 일이라면, 거대한 플라스틱 인간들이 가득 찬 세상에서 쫓겨난 조그마한 인간들은 어떻게 됐을까? 플라스틱 인간들이 다시 또 본인들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또 다른 누군가를 탄생시키진 않을까? 이런 궁금증도 있었어요. 그림책의 결말을 보면 인간은 결국 사라지면서 쫓겨나는 세상이 되니까요.

숑숑 :

저는 왜 이 플라스틱 인간에게 '집'이라고 하는 공간을 주고 싶어 했을까 궁금했어요. 이미 한 공간에서 살고 있는데 이 플라스틱 인간에게 멋진 플라스틱 집을 '선물했다'고 표현하잖아요. "분홍색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난감 집이었어." 이걸 보면 플라스틱 인간을 그냥 장난감처럼 생각한 건가 싶어요. 그런데 결국에는 이 집을 플라스틱 인간이 먹어버리는데, 왜 집을 선물했을까? 이런 것들이 궁금해요.

셔터맨 :

제임스 씨가 플라스틱 인간을 통해 큰돈을 벌었잖아요. 제임스 씨가 포함된 세계를 자연과 세계, 플라스틱 인간을 인류라고 생각해 볼게요. 플라스틱이 처음 발명되고 등장했을 때는 인류의 엄청난 발명품이고 우리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만한 혁명 같은 존재였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흘러 입장이 바뀌고 우리가 지금 '노 플라스틱'을 외치는 게 플라스틱 입장에서 어쩌면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싶어요. 처음에 플라스틱이 태어났을 때는 인간에게 집도 주고 큰돈을 벌게 해줬는데, 플라스틱의 덩치가 커지고 필요 없어지니까 '노 플라스틱' 하면서 거부하는 거잖아요. 처음에는 그렇게 좋아했으면서 이제 와서 필요 없다고 하는 태도에 화가 나지 않았을까요. 인류가 플라스틱의 발명으로 돈을 많이 벌고 편리해진 건 사실이니까요. 그러니까 집을 지어 줄 만큼의 마음과 태도들이 여기에 담겨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다정 :

저는 집을 사주는 이런 행위가 굉장히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어요. 뭐든지 나에게 소중한 게 생기면 그 소중한 존재가 존재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잖아요. 반려동물에게 집이나 잠잘 공간을 챙겨 주듯이. 플라스틱 인간에게도 그만큼의 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집을 마련하는 게 순차적인 흐름이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집 사줬구나! 근데 먹었네? 싶었어요.

숑숑 :

저는 플라스틱 인간이 말을 하지 못하는 존재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왜 하필 수어로 소통하게 됐을까? 이런 것들도 다른 분들은 어떻게 보셨을지 궁금해요. 얘가 작았을 때는 그럴 수 있죠. 근데 인간처럼 성장하는 캐릭터잖아요. 그러면 당연히 언어도 발달하고 충분히 인간하고 의사소통하면서 대화하는 존재로 설정했을 수도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몸은 자라지만 말은 하지 못하는 존재잖아요. 그래서 마지막에 폰트의 크기, 그림과 손짓이 더 크고 깊게 다가오는 느낌도 있었지만 그 안에 또 다른 것이 있는 건 아닐까 궁금했어요.

셔터맨 :

저는 계속 입장을 바꿔 보고 있는데, 자연 입장에서는 인간들과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 같아요. 인간은 우리의 언어로 대화하지만, 자연과 동식물도 그들만의 언어, 비언어적인 방법으로 대화를 나누잖아요. 인간들끼리는 언어로 소통하고 이게 맞다고 합리화시키면서 자연을 개발하고 파괴하고 있는데, 자연 입장에서는 지금 뭐 하는 거야? 무슨 말 하는 거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어요. 이렇게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니까 숑숑 님의 질문에 어느 정도 답이 될 것 같아요. 지금 자연과 인간은 불통의 상태인 거죠.

숑숑 :

방금 그 말씀을 들으니까 이 존재가 의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에는 인간을 해치워버리고 내가 이 집의 주인이 되겠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니까요. 그런 방식으로 읽는다면 자연이랑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인간 중심적으로 자연을 이렇게 사용하는 게, 인간은 굉장히 의뭉스럽고 나쁜 존재네요.

한쑤 :

저는 그림책 속 연구진들이 연구를 했지만 어떻게 생명을 얻게 됐는지 알아내지 못하잖아요. 플라스틱 인간은 플라스틱을 먹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으니까 소리를 낼 수 있는 기관이 없지 않을까? 그냥 플라스틱 덩어리라 소리를 낼 수 없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책의 마지막 페이지는 연출도 그림도 진짜 스릴러 같아요. 마치 음식물을 먹듯 플라스틱을 게걸스럽게 먹은 것처럼 표현했는데, 공포나 스릴러 영화에서 쌔하게 웃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숑숑 :

제일 마지막 페이지를 보면 제임스 씨가 작은 인간과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있는데, 저는 이걸 보면서 문득 도대체 이 관계는 누가 먼저 깬 걸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것의 시작은 제임스 씨일까 아니면 플라스틱 인간일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결국 인간은 당한 거겠죠.

한쑤 :

여기에 나온 인간이 비극적인 결말로 흘러간 게 한편으로는 약간 쌤통이다, 통쾌하다고 생각했어요. "플라스틱 인간은 갈수록 많은 양의 플라스틱을 먹어댔지만 별 문제는 없었어. 집에서 더 많은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왔거든."이란 문구가 인상적이었어요. 플라스틱 사용에 대해 경각심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괜찮은 상황인 걸로 흘러가다가, 걷잡을 수 없게 되니 상황을 컨트롤해 보려고 하지만 이미 늦은 거죠. 제임스 씨가 자초한 결말이 아닌가 싶고 여기에 남은 사람들 모두 쌤통이다 싶었어요. 정신도 차렸으면 좋겠고요.

셔터맨 :

자초했다는 표현이 적당한 것 같아요. 요새 많이 쓰는 말 중에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처럼 OO가 낳은 XX라는 표현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낳았다는 것 자체는 결국 그 원인이 그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의미인데 낳았다는 것이 주는 상징성이 되게 큰 것 같아요. 절대 무관하지 않다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는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갑자기 플라스틱 아이가 생겨났어'라고 핑계 댈 수도 없는 거죠. '낳았다'라는 상징성을 부여한 것도 결국 플라스틱과 인간은 절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게 아닐까 싶어요. 아이들이 이 동화책을 읽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 정말 궁금해요.

지혜 :

안 그래도 단골 투숙객에게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어 보고 반응을 알려달라고 요청했어요. 10살과 7살, 두 명의 아이들이었고요. 둘 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해요. 특히 동생은 친구와 함께 읽고 싶어 했대요. 우리 추측대로 아이들 모두 플라스틱 인간이 배에서 태어나는 부분을 귀엽다며 좋아했고요. 동생에게 우리가 플라스틱 인간을 키워 보면 어떨까? 물어 보니 귀엽긴 하지만 키우긴 싫다고 했대요. 아마 마지막에 집을 뺏은 결말이 충격적이었던 것 같아요. 반면 오빠는 키워 보고 싶다고 했대요. 플라스틱 인간이 너무 많이 커져서 책 마지막처럼 다 먹어버리고 우리 집을 뺏으면 어떻게 하냐고 물어 보니 동물원에 있는 동물처럼 가둬 두고 키우면 되지 않겠냐고 말했대요. 어쨌든 플라스틱을 먹어치워 주니 고맙지 않냐며 플라스틱 인간과 상생의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대요. 역시 그림책의 결말은 조금 무섭게 흘렀지만 어른과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감정은 두려움과 무서움보다는 호기심이 큰 것 같아요.

다정 :

어른들은 이런 책을 읽을 때 많은 서사와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을 대입해서 감정이입을 하고 때론 불편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반면 아이들은 그림책 속 이야기에 서사를 부여하지 않잖아요. 나쁘다 혹은 안 좋다 가름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상상 속 이야기 안에서 '이럴 수도 있겠구나' 하며 현실과 이야기를 동일시하지 않는 관점이 있기 때문에 어른들과 시각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셔터맨 :

어렸을 때 읽은 이야기들이 쌓이고 쌓여 각자의 서사와 스토리들이 더해졌을 때, 내재되어 있던 무의식의 기억들이 또 하나의 깨달음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된다면 이런 책들은 분명히 의미가 있고 많이 읽을 만하다 싶어요. 설령 읽는 순간에는 자극적이고 재미로만 읽힌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설명이 덧붙여지고 자기 시간이 층층이 쌓인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가능성 정도만 생각해도 좋을 것 같아요. 이 책이 많은 어린이와 어른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숑숑 :

다른 독서 모임 멤버 중 과학을 전공하는 분이 계시는데요. 그분은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져서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거라며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더라고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도 어떤 사회학자는 인간의 인류가 이만큼 진행돼 온 역사 안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대가 바로 지금, 현대라고 이야기해요. 하지만 저는 지금도 많은 위협과 늘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어떤 방향으로 바라보는가의 문제일까 싶기도 하고, 정말 방향성과 바라보는 관점만의 문제일까 싶기도 하고, 늘 어려워요. 저까지는 늙어서 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진짜 다음 세대한테 미안해 죽겠어요.

셔터맨 :

플라스틱이 처음 나왔을 때, 얼마나 좋았을까요? 마약을 하면 뇌에서 엄청난 도파민이 순식간에 분출돼서 그 후에는 어떤 사소한 즐거움에도 그만큼의 쾌감을 못 느끼기 때문에 계속 중독되는 것처럼, 저는 플라스틱도 이미 우리 생활에 어느 정도의 도파민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다시 우리가 플라스틱을 대체할 대안을 제시해도 엄청나게 불만을 가지고 불평하면서 살지 않을까 싶어요.

한쑤 :

인류세라는 말이 있잖아요. 중생대를 대표하는 화석은 공룡인 것처럼 인류세의 화석은 플라스틱과 비닐 쓰레기라고 해요. 나중에 시간이 지나도 썩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을 플라스틱과 비닐 쓰레기가 우리를 대표하는 화석이 될 거라는 말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어떤 비닐 쓰레기 산 사진을 봤어요. 예전부터 계속 쓰레기를 매립해 온 엄청난 규모였는데요. 깊게 몇 미터 정도 떠보니까 그 밑에 썩지 않은 1950년대 60년대 옛날 디자인의 라면 봉지가 나오더라고요. 그걸 보니까 진짜 심각하다 싶더라고요.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지구에서 인간의 존재가 살았다는 걸 확인하는 게 플라스틱 비닐 쓰레기라는 사실이 너무 처참하게 느껴졌어요.

셔터맨 :

작년까지 열심히 작은 지구(수원 환경 모임) 활동하셨던 다정 님은 활동하면서 어떤 마음이었는지, 지금은 잠깐 쉬고 있지만 지금 이 시대 상황에 대해 낙관적인지 비관적인지 궁금해요.

다정 :

저는 되게 비관적인 편이긴 한데, 비관이 답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비관만 하면 가만히 있는 것밖에 할 게 없거든요. 근데 가만히 있는다고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다들 잘 아시잖아요. 그래서 좀 더 낙관하려고 노력하면서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하려고 해요. 낙관의 방향으로 바라보면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한테 좀 더 시선을 주고 그 사람들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어요. 예전에는 그렇게 만난 사람들의 손을 꽉 잡고서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려고 했었는데, 지금은 시간이 부족해서 그렇게까진 못 하지만 계속해서 나만의 방식으로 사람들한테 제스처를 취하는 것 같아요.

지혜 :

올해가 제로 웨이스트 숍 3년차인데, 저도 다정 님이랑 비슷한 마음으로 일하고 있어요. 뭘 얼마나 바꾸겠다고? 하며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면 지금 내가 하는 일 자체가 너무 무의미한 거예요. 작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을 하고, 같은 마음으로 매장을 방문하는 분들한테 작게나마 도움을 드리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한다는 마음을 느낄 수 있게 이런 활동을 꾸준히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제로 웨이스트'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정말 문자 그대로 '제로 웨이스트' 하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잖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쓰레기를 하나라도 더 줄이는 삶을 살아내고, 꾸준히 지속하는 힘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정 :

작은 지구 활동했을 때도 쓰레기, 제로 웨이스트라는 이슈를 가지고 많이 말했지만 사실 사람들과 해보고 싶었던 건 쓰레기를 없애고 쓰레기가 문제라는 얘기만은 아니에요.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하고 싶었어요. 지금 잠시 작은 지구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 질문이 멈춰지는 건 아니니까 다른 방향으로 질문하고 있고요. 지금은 먹는 것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하고 있어요.

셔터맨 :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하기에 우리는 너무 지쳐 있잖아요. 저는 여기에 있으면 그런 분들을 많이 만나니까 희망을 봐요. 굉장히 낙관적이죠. 오늘 낮에 잠깐 나갔다 왔는데, 문밖 세상은 너무 비관적인 거예요. 유아차를 끌고 걸어가는 부부의 손에 일회용 컵이 하나씩 들려 있는 모습을 봤어요. 근데 그들이 너무 피곤해 보이는 거예요. 텀블러에 커피를 들고 다니면 플라스틱 하나를 줄일 수 있지만 아이와 같이 놀아 주는 그 모습들이 너무 지쳐 있는 거죠. 그들에게 '꾸준히 하셔야 해요, 하나라도 하셔야죠!'라는 말을 못 해요. 그래서 그런 무기력함을 극복하고 하나라도 할 수 있는 걸 해보자고 오신 분들과는 손을 꽉 잡고 같이 가면 좋겠는데, 이미 지쳐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함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들 손에 들려 있는 그 플라스틱 컵이 납득이 가면 안 되는데 너무 납득이 되니까요. 과연 그들에게 그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과 고민을 하게 돼요.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자체가 정말 너무 멋진 생각이고 멋진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연대하고 손 내밀 방법들을 계속 고민해야 할 텐데, 나부터 피곤하거나 지치지 말아야겠다 싶어요.

지혜 :

오늘 정말 다채롭고 풍성한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짧게 한마디씩 하고 마무리할까요?

다정 :

지혜 님이 그림책을 가지고 독서 모임을 한다고 했을 때, 책이 얇아서 부담 없지만 내용이 짧으니까 이 책으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싶었어요. 그런데 숑숑 님이 좋은 질문들을 던져 주시고 그 안에서 여러 이야기와 관심사들을 자유롭게 펼치니까 내일을 살아가는 어떤 질문들이 생긴 것 같아서 되게 좋았어요. 그래서 독서 모임을 하나 봐요. 혼자 읽는 게 아니라 같이 읽는다는 게 너무 재미있는 것 같아요.

숑숑 :

그림책 하나로 여러 가지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눠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책을 같이 읽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 다정 님이 말씀해 주셨는데,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랑 같이 읽어서 더 좋아요. 저는 저랑 같은 일을 하는 분들이나 유사성을 기반으로 한 독서 모임을 하고 있어요. 그건 또 나름대로 더 깊이 읽을 수 있는 어떤 지점이 있지만, 이렇게 각자 다른 일터에서 다른 것들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함께 같은 책을 읽으니까 새로운 시각을 많이 얻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래서 앞으로 읽을 책들도 기대됩니다.

셔터맨 :

얼마 전 이 공간에서 함께 영화도 봤지만, 이렇게 책을 매개로 하는 모임은 사실 처음이에요. 좋은 영화란 보고 나서 질문을 던져 주는 영화라고 생각하는데요. 질문을 던져 주는 멤버도 계시고, 스스로 좋은 질문이 막 끓어오르기도 하고, 어떤 이야기에 또 다른 질문을 얹어 주는 이 분위기가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못지않게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영화는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흐름을 따라가는 거라면, 우리는 이 안에 동참하면서 같이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우리의 주고받음을 돌아보며 말씀하신 대로 이래서 독서 모임을 하나 보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쑤 :

이전에 독서 모임 할 때도 책 하나를 선정해 오프라인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눴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온라인으로 바뀌었어요. 오랜만에 오프라인 모임의 즐거움을 느껴서 반갑고 좋았고요. 분량이 많지 않은 그림책인데도 아주 오랜 시간 이야기 나눴잖아요. 남은 두 번의 모임에서는 어떤 책을 읽게 될지, 얼마나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을지 기대감이 생겨서 '책 열심히 읽고 와야지!' 다짐하게 됐어요. 오늘 모임을 하면서 여러 번 생각이 트이고 많이 공감했던 것 같아요. 정말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지혜 :

모두에게 '좋다'라는 말로는 조금 부족할 정도로, 사실 이 책이 그다지 유쾌한 내용은 아니지만 굉장히 즐겁게 이야기 나눈 시간이었습니다. 역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라서 좋은 에너지를 만든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의 첫 번째 모임은 이렇게 마무리하고 다음 시간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여자>


사회, 원고정리 / 지혜

책을 고르고 이웃을 만나고 환경을 생각하는 낯설여관 책방지기


참여자 / 다정

경험한 일로부터 관심이 무럭무럭 자란다.

좋아하는 것은 명확히 좋아하고 나머지는 궁금해 한다.


참여자 / 셔터맨

동네에서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타인의 얼굴을 뷰파인더로 들여다보듯 스스로를 정성껏 살피며 살고 싶습니다.


참여자 / 숑숑

읽기와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가끔 비관적이지만 자주 낙관적인 사람입니다.


참여자 / 한쑤

사람과 대화, 활동적인 것을 좋아해 주말마다 바쁘게 살고 있는 ESFJ입니다.


추천 콘텐츠

책쾌의 여정

[에세이] 책쾌의 여정 우당탕탕 독립출판 북페어 기획자 도전기 임주아 뜻밖의 부재중 이름이 폰에 떠 있었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S 팀장이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일로 만난 공무원이 퇴근 시간을 넘어 전화 문자 콤보로 연락했다는 건 모종의 긴급 상황 아닌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딘가 다급해보이는 목소리였다. “헉 제가요?” 요지는 전주에서 처음 독립출판박람회를 여는데 내가 총괄 기획을 맡아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시기는 6~7월이라 했다. “오늘이 벌써 3월 7일인······” 기간도 기간이지만 독립출판 전문가도 아닌 내가 총대를 메는 게 맞는지 주제 파악에 나섰다. 그러자 팀장은 전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동료와 팀을 꾸리면 어떻겠냐며 인건비도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눈에 광이 돌았다. 단기간에 아이디어를 짜고 사람 모으고 경주마처럼 내달리는 일은 내 주특기 아니던가. 그렇게 살아온 임시변통스러운 삶에 드디어 어떤 보상이 따르려나. 함께할 내 기쁜 동료는 누구인가. 기획자 동료 구하기 첫 타깃은 전주에서 10년 가까이 독립출판 전문책방을 운영중인 뚝심의 M이었다. 그의 책방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는 ‘기성으로 출간된 도서는 입고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단호하게 적혀 있다. 설사 혈육이 역사에 남을 명저를 썼다 하더라도 독립출판이 아니면 가차 없이 거절 메일을 전송하고야 말 꼿꼿함이었다. 그런 M의 책방에는 개인이 스스로 쓰고 만든 각양각색의 독립출판물이 대거 진열되어 있는데 그 큐레이션된 목록에는 웰메이드 작품인 ‘책방을 꾸리는 중입니다’라는 에세이도 있다. 화학공학과를 나온 공대생이 어쩌다 모교 대학로의 한 건물 지하에서 책방을 시작해 지금 모습에 이르게 됐다는 애환 서사가 담긴 책이다. 그는 그 책을 들고 전국을 쏘다니며 독자를 만났다. 주6일 책방 문을 여는 그가 문 닫는 날엔 어김없이 북페어 현장에 가 있었으니까. 캐리어를 끌고 고속버스를 타고 기꺼이 책 보부상으로 분해온 그는 힘들다 힘들다 해도 매년 매회 출전을 멈추지 않았다. 전주에서 오로지 독립출판만을 다루는 책방 주인은 M이 유일해서 대표성도 남다른 터다. 때문에 함께 하자는 내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그의 눈높이도 짐작이 간다. 일찍이 S 팀장이 독립출판박람회 관련 자문을 구하고 싶다고 여러 번 M의 책방을 찾았으나 그는 ‘박람회’라는 명칭부터 맞지 않다고 생각해 소통에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특히 독립출판 행사는 스스로 책을 낸 제작자나 책방 운영자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해 열리는데 전주에선 도서‘관’ 주도로 만들어질 행사라 생각하니 최대한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나는 M이 적극적으로 합류해 의견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되면 그가 책방 꾸리는 일에도 전환점이 올 거라

  • 관리자
  • 2024-05-01
도깨비 이야기

[에세이] 도깨비 이야기 한정현 최근 친구의 부탁으로 점집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사실 무속에 대해선 알면 알수록 이건 민속 문화의 하나이지,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무속 때문에 큰 피해를 본 경우도 있어서 나같은 경우는 사실 이제 거의 점괘를 안 믿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친구가 갓 신내림 받은 애동이라기에 나 또한 어디 구경이나 한 번 해보자 하는 생각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문화로서의 무속은 여전히 관심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옆에서 들어보니 그 영검하다던 무속인의 점사는 무척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어깨가 아프지 않느냐’ ‘밤에 늦게 자지 않느냐’ ‘두통이 가끔 오지 않느냐’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친구의 직업상 대부분 추측 가능한 증상이었다. 게다가 친구는 불면증도 없고 두통도 없다는 거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친구는 자신이 혹시 두통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치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그 말에 순간 따라가고 있더란다. 하긴 나도 그 당사자가 되면 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할 것 같다. 말 그대로 이런 걸 보고 도깨비에 홀린다고 하나 보다. 다행히 친구는 도깨비에 홀려 도깨비가 되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후 나는 왜인지 내내 도깨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살면서 도깨비 만나기 사실 어렵지 않군, 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사실 어릴 땐 도깨비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큰 산을 끼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온갖 민간 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인 것 같다. 흔히 도깨비와 저승사자는 이길 수 없고 오로지 속일 수만 있다고들 한다. 그들이 그만큼 무서운 존재라는 것인데 특히 도깨비에 대해서는······. 얼마 전 영화 〈파묘〉에서도 나왔지만, 도깨비들은 주로 안 쓰는 물건에 혼이 깃들어 만들어지는 귀신이다. 이후엔 도깨비가 그 사물을 대신하여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일반적인 혼령하고는 아주 다른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한데 찾아보니 이 험상궂은 도깨비는 사실 일제강점기 이후 도입된 ‘일본식 도깨비’ 이야기가 일부 섞여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혹부리 영감이 그러한데, 우리가 알고 있는 혹부리 영감에서는 영감이 부러 도깨비를 속여 혹을 떼지만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원래 한국 전래동화에서는 도깨비가 그리 나쁜 존재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영감과 같이 어울려 놀던 도깨비들이 서로의 교감을 통해 친밀해진 후 먼저 나서서 영감의 혹을 떼준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혼령이 물건에 깃들어 만들어진 것이 도깨비라고 한다면 무슨 혼령이냐에 따라 좋은 도깨비가 될 수도 있고 나쁜 도깨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십 년 가까이 이고지고 다니

  • 관리자
  • 2024-05-01
어떤 기준

[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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