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책방곡곡] 수원 낯설여관(제3회)

  • 작성일 2023-10-01
  • 조회수 962


《문장 웹진》 책방곡곡 수원 낯설여관(제3회)

사회, 원고정리 : 지혜
참여자 : 다정, 셔터맨, 숑숑, 한쑤

책 : 장류진 『연수』(창비, 2023)

2023년 9월 6일 일요일



지혜 :

안녕하세요, 여러분. 잘 지내셨나요? 드디어 마지막 3회 차 모임이에요. 오늘은 장류진 작가님의 소설집 『연수』에 대해 이야기 나눌 건데요. 단편집이다 보니 소설 하나하나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 같아요.

한쑤 :

부담 없이 읽었어요. 전체적으로 작품이 너무 강하거나 무겁지 않고, 휙휙 책장을 넘기면서 웃기도 하고 공감도 하면서 재미있게 봤습니다. 아주 깔끔한 소설이었어요.

다정 : 

저는 여행 갈 때마다 책을 한두 권 들고 가요. 바쁜 업무 마치고 휴가 떠날 때 어떤 책을 가져가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이 책을 챙겼거든요.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이야기도 아니고, 가벼워서 그냥 흘러가는 내용도 아닌, 마음에 남기도 했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은 책이었어요. 굉장히 재미있게 보고 돌아왔어요.

숑숑 : 

장류진 작가님의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고 SNS에 올렸던 게 생각났어요. ‘작가님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나도 분명히 알고 있다. 내 곁에 있는 누군가 이름 붙일 수 있는 어떤 사람이 생각난다.’라고 썼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던 것 같아요.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너무 어둡진 않지만 이건 누구 얘기 같고 저건 누구 이야기 같아, 이렇게 이름 붙여 줄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점에서 예전 소설집들이랑 맥을 같이하는 느낌이었어요.

셔터맨 : 

저는 진짜 오랜만에 소설집을 읽었어요. 마지막에 읽은 소설은 『기차와 생맥주』예요. 책 안에 소설파트도 있으니까. (웃음) 최근에는 실용서 또는 논픽션 위주의 책을 많이 읽었어요. 이 책도 사실 실제 이야기나 다름없는 스토리지만, 소설은 정말 오랜만에 읽었는데도 이질감이나 불편함이 없었어요. 제가 한번 책을 펴면 오래 읽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읽다가 자야지 하고 책장을 덮는데 (웃음) 한 꼭지를 다 읽고 시계를 보니까 30분이 흘러간 거예요. 대단한 책이라고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지혜 :

단편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이야기 나눠 볼게요. 일단 이 책의 제목이자 처음 수록된 단편소설 ⌜연수⌟는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셔터맨 : 

우리 모두 운전면허증을 가졌잖아요. 혹은 운전하고 있는 누군가의 차에 타본 경험이 있을 테니까 공감 가는 주제 같아요. 저는 이 책에 대해 아무 정보가 없을 때 ⌜연수⌟가 주인공 이름인 줄 알았어요. (웃음) 근데 책을 먼저 읽은 지혜 님이 ⌜연수⌟가 운전 연수의 '연수'라고 해서 더 읽고 싶더라고요. 운전하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운전부심이 있잖아요. 소설 속에서는 어떤 운전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해 하며 흥미롭게 읽었어요.

다정 : 

저는 사회복지학과를 나와 사회복지사가 되려고 면허를 땄어요. 스타렉스를 운전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근데 졸업하고 어린이집 교사가 되면서 잠자는 면허가 됐어요. 1종이지만 10년째 장롱면허입니다. (웃음)

한쑤 : 

저는 작년에 회사 입사하면서 면허를 급하게 땄어요. 출장이 많은 업무를 맡다 보니 회사 다니면서 운전을 조금씩 연습하게 됐고요. 주변에서 운전 잘한다고 칭찬해 주셔서 가족들이랑 연습하고 친구들이랑 놀러 갈 때 차 빌려서 운전하기도 했어요.

다정 : 

저는 이 소설을  『2020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처음 봤어요. 여기 나오는 사람 중 누구도 다정한 사람이 없어요. 엄청 다정하거나 착한 사람은 없는데 그렇다고 서로가 서로에게 벽치는 존재도 아니에요.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기꺼이 성장할 수 있게끔 만드는 사람들이 늘 등장해요. 이 소설도 그렇고요. 그런 사람이 곁에 있으면 나도 장롱 속 면허를 꺼내 다시 운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운전을 못 하는 건 차가 없어서기도 하지만 다시 한 번 운전했을 때 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해요. 이렇게 누군가에게 교육을 받아야 다시 시작하는데, 이전에 운전면허장 강사들은 대부분 소리 지르면서 구박하잖아요. (웃음) 중간에 좀 불편한 질문을 할 때도 있지만, 내가 잘할 수 있도록 밀어 주는 이런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다시 운전해 보고 싶다는 상상을 했어요.

숑숑 : 

저도 소설집 중 ⌜연수⌟가 제일 좋았어요. 장류진 작가의 소설에 아주 악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늘 다 너무 착하고 선해서 남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지도 않고요. 그냥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이야기죠. 처음에는 '이 아줌마 뭐지? 별론데?' 싶었는데 나중에는 '이 정도의 어른만 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특히 마지막에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로 끝나잖아요. 저는 이때 좀 찡했어요. 사실 주인공은 엄마한테 의지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잖아요. 대신 운전 연수를 통해 나의 두려운 마음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엄마뻘 아주머니를 만나요. 엄마와 아주머니가 비교되는 부분이 제일 인상적이었어요. 아주머니한테 더 의지하고 싶은 마음을 내비치니 단호하게 너는 이미 충분하니까 나는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다고 말하잖아요. 대신에 네가 혼자 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제가 최근까지 생각의 화두로 삼고 있던 것 중 하나가 그거거든요. 앞서서 걸어 준 사람. ⌜연수⌟뿐만 아니라 책에 전반적으로 무언가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등을 보이면서 걸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큰 힘이 돼요. 그리고 ⌜연수⌟가 소설 한 편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이 책을 통틀어 봤을 때 우리가 연수하거나 배우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무언가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한쑤 : 

저도 마지막에 "내가 뒤에서 막아 줄 테니까, 그때 오른쪽으로 차선 하나 옮겨요. 알겠지?" 이 문장 보고 왈칵했어요. 운전을 알려주는 상황이 자세하게 묘사되잖아요. 그걸 보면서 제가 배우는 것처럼 감정 이입이 되더라고요. 처음에는 별로인 아주머니한테 점점 정이 들면서 마지막에 이 아주머니 완전 짱이다! 그랬거든요. (웃음) 그래, 저런 분이 선생님이고 이끌어 주는 분이고 선배님의 모습이라면 든든하겠다 싶었어요. 두려워도 해낼 수 있는 용기가 생길 것 같더라고요. 저까지 응원 받는 느낌으로 끝나서 잘하고 있다는 말이 되게 따뜻했어요.

지혜 : 

혹시 또 기억나는 장면이나 인상 깊은 구절이 있나요?

한쑤 : 

전에 다니던 회사 차장님이 혈액형 맹신자예요. 요즘 유행하는 MBTI는 16가지 유형이라 더 다양하다고 말씀드려도 무조건 혈액형만 따지시더라고요. (웃음) 그분이 저한테 A형이냐고 물어 보시는 거예요. 그래서 B형이라고 하니까 A형인 줄 알았다면서 아쉬워하세요. 부장님 과장님은 다 A형인데 저만 B형이라면서 어쩐지 성격이 어쩌고저쩌고 그러는 거예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혈액형으로 평가하는 걸 보고 어리둥절했어요. 소설 속 아주머니도 혈액형으로 사람을 판단하잖아요. 웃기면서도 약간 놀랐어요.

다정 : 

맘카페가 맘을 위한 카페라고 하지만 사실 그 지역에서 가장 핫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잖아요. 준서맘을 통해서 운전 연수해 주는 사람 정보를 얻기 위해 댓글 달고 게시물 업로드해서 카페 등급을 올리는 과정이 최근에 제가 정보를 얻기 위해 한 경험과 흡사해서 놀랐어요. 이 작가는 소설 쓸 때 이런 걸 따로 적어 놨다가 활용하나? 궁금했어요. 또 아이들이 입던 팬티를 누군가는 팔고 누군가는 사잖아요. 그런 내용도 너무 현실적이어서 남 이야기 같지 않더라고요. 가장 좋았던 부분은, 중간에 아주머니가 숲길을 안내해 주잖아요. 그 길을 운전하면서 자신의 실력이 늘었다는 걸 느끼기도 하고, 아침에 산뜻한 풍경을 보면서 위로받는 장면에 감동했어요. 이 숲길을 묘사한 책 표지가 따로 있더라고요. 저는 그 버전이 더 마음에 들었어요.

숑숑 : 

좋기만 한 사람도 없고 나쁘기만 한 사람도 없고,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저 사람 왜 저래' 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반면에 직장에서는 '저 정도면 진짜 괜찮지' 하는 모습도 있어요. 아주머니의 경우 일을 꽤 잘하는 능력자인데, 혈액형을 물어 본다거나 결혼은 했니 등 사적인 질문을 할 때 우리는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어요. 나와 사적인 관계가 아닌 공적인 관계일 경우 이 정도면 충분히 존경하면서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반대로 사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면 이 사람의 운전 실력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전제하에 '이 아주머니를 정말 좋아할 수 있었을까? 아닐 것 같다.'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셔터맨 : 

주차를 알려주는 장면에서 주차 순서를 굉장히 디테일하게 묘사하잖아요. 저도 면허 딴 지 오래됐는데 생각해 보면 그때는 매뉴얼 방식으로 운전을 알려줬어요. 지금은 운전하거나 주차할 때 감으로 하거든요. 이 챕터를 읽고 과거에 배웠던 것들과 도로에서의 경험이 오버랩되더라고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운전하는 도로 위에는 이렇게 연수 중인 차들이 많겠죠. 그들 중 누군가는 손에 장갑을 끼고 굉장히 긴장하면서 운전하고, 차 뒤에 초보라고 크게 글씨를 써 붙이기도 하고요. 저 또한 그런 경험이 있고 매뉴얼 내용을 달달 외워서 운전했는데도 그 차들을 보면 답답해하는 모습에서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사람도 지금 연수 과정일 텐데, 저 사람도 나중에 감이 생기고 경험이 생기면 잘할 텐데’ 하면서 넘어가야 하는데 너무 답답해하는 거죠. 그래서 '나 되게 못났다'라는 생각을 좀 했어요. 운전대를 잡으면 성격이 바뀐다고 하잖아요. 매일 왔다 갔다 하는 출퇴근길에서 운전 못 하는 사람을 보면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왜 저렇게 운전을 못 할까? (웃음) 아는 것과 나의 과거 경험과는 상관없이 이 도로 위에서는 정말 제3의 자아가 발현되는구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어요.

숑숑 : 

이건 딜레마 같아요. 다들 아시겠지만 출근 시간은 굉장히 급박하거든요. 여기에서 1분 늦는 게 저 끝에 가면 10분이 되기도 하고 15분이 되기도 하고 심하면 30분이 되기도 해요. 근데 이 사람은 나름대로 긴급 상황에서 연수를 받지 않으면 여기에 적응할 수 없잖아요. 이 상황에 들어와서 도로를 방해해야 자기 실력이 늘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판단을 못 내렸어요.

셔터맨 : 

판단의 영역이라기엔 제가 이미 빵! 을 하고 있기 때문에 (웃음) 이미 그걸로 판단을 한 게 아닌가 해요.

숑숑 : 

방해하는 자가 나쁜 거냐, 이해하지 못한 자가 나쁜 거냐.

한쑤 : 

양쪽 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혜 : 

어휴, 어려운 문제네요.

셔터맨 : 

그들을 향해 잘하고 있다고 말해 줘야 하는데.

지혜 : 

궁금한 점이 있는데 여러분에게 여쭤 보고 싶어요. 38페이지 39페이지에 아주머니가 주인공에게 회사에 여직원 많냐고 물어 보잖아요. 실제로는 여직원이 많지 않고 또 나이가 많은 여성도 없는데 그냥 많다고 대답해요. 주인공은 왜 이렇게 대답했을까? 이 말을 할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계속 궁금했어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한쑤 : 

맞아요, 저도 궁금했어요.

셔터맨 : 

주인공 입장에서 아주머니의 캐릭터가 아직 파악 안 된 상태고 소위 말하는 꼰대일 수도 있기 때문에, 내가 다니는 회사에 대해 안 좋게 얘기하면 말이 길어질 것 같아 나이스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이 사람과 대화를 길게 끌고 가고 싶지 않은 마음 아니었을까요?

한쑤 : 

아주머니가 50대잖아요. 문득 이분의 과거 혹은 현재가 궁금해지더라고요. 아주머니도 젊었을 때 직장을 다녔고 이후에 경력 단절이 됐을 수도 있지 않을까. 직장을 계속 다니거나 일을 했다면 본인도 지금 나이일 때 회사에서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의 위치까지 도달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으로 물어 본 것 아닐까요.

숑숑 : 

어떤 생각이든 할 수 있도록 열어 둔 것 아닐까요? 사실 이 책 읽으면서 최근에 민음사에서 나온 『가부장 자본주의』라는 책을 같이 읽었거든요. 그런 관점에서 보니까 결국 여성이 사회에 서는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그런 것 같아요. 어떤 회사든 여자가 깰 수 없는 유리 천장이 굉장히 두텁잖아요. 그래서 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내가 거기에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요즘은 보편적인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다정 : 

저는 이 질문을 봤을 때 그냥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수를 받는 것도 내가 효율적으로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밟는 과정이잖아요. 나의 더 좋은 미래를 생각하면서 이 과정을 거치는 중이니까 누군가에게 이 질문을 받으면 부정하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이 상황에 나의 긍정적인 미래를 그리면서 대답했다고 생각해서 이 부분은 자연스럽게 넘어갔던 것 같아요.

지혜 : 

한 가지 장면으로도 다양한 해석이 나와서 흥미롭네요. 그럼 다음 작품 ⌜펀펀 페스티벌⌟로 넘어가 볼까요?

한쑤 : 

이런 면접이 있다니! 세상에, 정말 치열하다! (웃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찬휘가 진짜 꼴 보기 싫었어요. 너무 얄미운 캐릭터더라고요. (웃음) 편곡할 때 자신은 악기를 다루지 못하면서 뻔뻔하게 내가 편곡했다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은근슬쩍 말 놓는 걸 보면서 이 과제 빨리 끝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대에 오르기 전에 주인공한테 쪼가 있다고 얘기하잖아요. 근데 그런 말을 조심스럽게 하지 않고 무대 오르기 바로 직전에 이야기해서 너무 계획적인 인간이 아닌가 싶었어요. 경쟁자를 떨어뜨리려고 고도의 심리전을 하는가 싶었어요.

다정 : 

저도 엄청 웃으면서 봤어요. 그중 좋았던 건 이찬휘라는 인물이 잘생겼다는 거예요. (웃음)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이 못생기면 더 얄미웠을 텐데 그나마 잘생겨서 미웠지만 외적으로 끌린다고 말하잖아요. 그런 요소도 재밌었던 것 같아요. 있을 법한 이야기여서요. 면접장에 이렇게 스마트하고 사람들도 잘 이끌고 주도적인데 자꾸 사람들을 가스라이팅하는 사람. (웃음)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성격까지 있을 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숑숑 : 

저도 잘생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웃음) 저는 화자한테 감정 이입을 하면서 읽었어요. 연말 파티에 가는 화자의 행동에 '이 호구야! 도대체 너는 거기를 왜 따라가니?' 싶었어요. 사실 별 관계 아니고 충분히 거절할 수 있었잖아요. 3만 원 내고 팬 사인회 갔으면 ‘그래, 엄청 싸게 갔다’ 생각했어요. 팬 사인회 한 번 가려면 거의 백만 원 내야 하거든요. 비싸지만 거기 가면 기분이 좋겠죠, 팬 서비스를 해주니까. 눈도 맞춰 주고 이름도 기억해 준대요. 어느 날 애들이 엄청 바빠서 나중에 알고 보니 인터넷 사이트에 앨범이 풀린 거예요. 빨리 구매해야 하니까 모아 둔 돈 다 털어서 사기도 하거든요. 그런 거 생각하면 가성비 면에서 3만 원이면 저렴하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셔터맨 : 

아주 재밌게 읽었습니다. 저는 첫 사회생활 할 때 공채 입사자들끼리 계열사 통합 연수를 했는데 그 경험과 비슷했어요. 실제로 입사한 친구들끼리 그룹 회장의 일대기를 스토리로 한 그림자극 공연도 했는데 나중에 그걸로 점수를 매기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끼리 노는 분위기지만 평가받고 있으니까 서로 연극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많이 이입하면서 봤고요. 저는 돈이 되는 일이 아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에 대한 관점으로 책을 읽었는데, 이 주인공에게는 노래가 좋아서 하는 일 같아요. 배워 본 적은 없지만 '나 노래 좀 하니까'라는 자신감을 가졌는데 보기 좋게 까인 거죠. 마지막 장면에 노래방에 혼자 가서 문제의 노래를 또 부르잖아요, 자기 쪼대로. 그 쪼대로 한다는 의미가 내가 이걸로 돈을 벌지 않겠다는 상징 같은 메시지라고 봤어요. 프로가 돼서 다른 사람한테 인정받는 게 아니라 '나는 이게 진짜 좋아'의 표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주인공이 쪼대로 계속 노래를 부른다는 건 여전히 노래에 대한 애착이 있고, 이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의미로 다가왔어요. 물론 이찬휘가 가사도 모르고 마음대로 공연하는 모습을 보면서 동경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 많이 감정 이입하면서 읽었습니다.

지혜 : 

진짜 장류진 작가님 소설은 현실과 깊이 맞닿아 있어서, 소설인데 실제 있었던 일 같아요.

한쑤 : 

작가님이 실제로 경험한 게 어디까지일까? 직장생활을 해보셨을까? 이런 생각 하면서 읽었어요.

지혜 : 

56페이지 중간에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나는 노래를 좀 하는 편이었다." 이 문장이랑 ⌜연수⌟ 10페이지에 “운전은 내게 거의 유일한 실패의 경험이다.”라는 문장이 나와요. 이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신감이 저에게는 약간 결여된 부분이라 부럽더라고요. '내가 이거 좀 하지!'라는 말이나 생각이 누군가한테는 어려운 일일 수도 있잖아요. 나는 자신감 있게 어떤 걸 잘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고민해 봤는데 잘 모르겠더라고요. 이렇게 여성 캐릭터의 심리가 자신감 있게 표현된 게 인상 깊었습니다.

셔터맨 : 

속마음 아닐까요?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해도 '아니에요, 저 좀 그래요.' 이렇게 겸손하게 말하잖아요. 속으로는 '사실 나 좀 하는데.' 하며 굉장한 자부심이 있을 수도 있지만요. 특히 남성 사회, 군대 같은 데서 '저 그림 좀 그릴 줄 압니다.' 말하면 하루 종일 벽에 페인트칠하는 (웃음) 그런 경험이 있어서 어디 가서 잘한다고 얘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지 않나 싶어요. 근데 지금은 자기 증명의 시대잖아요. SNS를 봐도 그렇고 스스로 잘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까, 그런 불안감 때문에 더 자신을 어필하려는 것 같아요. 내가 얘기해도 여전히 봐주지 않지만 계속해서 그런 욕망과 싸우는 것 같아요.

숑숑 : 

맞아요. 요즘 애들 진짜 꼴 같지 않거든요. (웃음) 정말 못 하는 애가 있어요. 근데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고 확신에 차서 잘한다고 말해요. 요즘 애들이 노래나 춤뿐만 아니라 자기는 다 잘할 수 있고 잘한다고 말해서 정말 놀랄 때가 많아요. 그게 자신감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게 다 보이거든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아서 파악이 안 됐는데, 들여다보려고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그런 방식으로 본 아이들은 오히려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을 회피하고 싶어 해요. 왜냐하면 진짜 나를 알면 얼마나 실망할까 이런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지혜 : 

숑숑 님은 학교에 계시니까 과거 고등학생과 요즘 친구들이 얼마나 다른지 눈에 보이겠어요.

숑숑 : 

옛날에는 셔터맨 님 말씀처럼 '아니에요. 더 잘해야죠. 더 배워야 해요.'였어요.

한쑤 : 

저는 장류진 작가님 글을 처음 읽었는데, 작가님이 쓰시는 스타일이나 표현을 보면서 제가 이전에 읽은 소설보다 더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화자가 노래를 부르다가 삑사리가 났는데 “어떡해? 정말 어떻게 하지? 방금 그 삑사리 어떡해? 지금 이 분위기 어떡해? 내일 임원 면접 어떡해? 아… 내 인생 어떡해?” 마치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막 넣듯이 표현하셔서 저도 '그래, 얘 어떻게 해!' 하며 웃으면서 봤어요.

셔터맨 : 

작은 실수 하나 했는데 인생 망한 것 같고, 저는 그런 경험 너무 많아요.

다정 : 

무대에서 스탠드를 뽑아서 앞으로 나가잖아요. 저는 이 장면이 너무 시원했어요. 연습 과정에서 계속 이찬휘한테 눌려서 뭔가 하고 싶어도 못 하다가 중간에 자기가 해보고 싶은 거 한 번쯤 팡 터뜨리고 시원하게 나왔다는 기분이 들어서 즐거웠어요. 『일의 기쁨과 슬픔』이 드라마로 나왔는데 ⌜펀펀 페스티벌⌟도 드라마화 된다면 이 장면이 엄청 즐겁게 묘사될 것 같아요. 

지혜 : 

단편소설이지만 단막극같이 한 회차 드라마, 영상물로 만들기 좋을 것 같아요.

셔터맨 : 

골반을 튕기고 나서 합격했으면 어땠을까요? (웃음)

다정 : 

합격했으면 너무 현실적이지 않았을 것 같아요. 면접의 룰을 봤을 때 너무 튀는 것보다 퍼포먼스를 깔끔하게 하는 사람이 더 점수치가 높을 거잖아요.

셔터맨 : 

설령 합격해도 ‘쟤 그 골반 튕긴 애 아니야?’라는 말을 계속 들었을 것 같아요. (웃음) 

숑숑 : 

맞아, 더 오래 후회할 수도 있어.

지혜 : 

이제 ⌜공모⌟로 넘어갈까요?

다정 : 

이 제목에 이런 글이 나올 거라곤 생각을 못 했어요. 공모가 뜻하는 게 뭘까 궁금해 하면서 읽었어요. 천 사장이 아닌 다른 인물이 등장하면서 현 부장이랑 천 사장의 딸이 공모한다는 이야기잖아요. 제목과 상상했던 내용이 달라서 새롭고 좋았어요. 앞서서 남자들이 이 술집을 먹여 살려 키웠다는 공모와 다르게, 정말 일 잘하는 여자 두 사람이 만나서 잘해 보겠다는 공모가 비교되는 부분도 있고, 엄청 응원하고 싶었어요. 앞서서 놓쳤던 후배들 이야기가 나올 땐 울컥하더라고요. 좋은 사람과 오랫동안 잘 살아남았으면 좋겠어요. 이 두 사람의 공모가 나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두 사람이 길게 함께 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응원하게 돼요.

셔터맨 : 

제가 아까 다 읽고 나니까 30분이나 흘렀다고 한 게 ⌜공모⌟예요. 쉬지 않고 쭉 읽었어요. 장류진 작가님 글은 현실 반영이 잘 돼 있어서 과거에 있던 일들을 많이 끼워 맞추게 되더라고요. 지금 여기에 남자가 저밖에 없는데, 군 생활 2년을 보내는 흐름이 이 주인공과 비슷했거든요. 처음에 입대하면 수많은 선임들이 있어요. 그중에는 닮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만나니까, 내 밑으로 들어오는 후임들은 정말 잘 챙겨 주고 쓰레기 짓 하지 말아야지 결심해요. 하지만 상병 되고 병장 되면 처음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돼요. 그래서 쓰레기까지는 아니지만 쓰레기 직전까지의 것들을 할 수밖에 없는, 스스로 자기 합리화하면서 내가 정해 놓은 선은 절대 넘지 말자고 말했던 시간들이 떠오르더라고요. 아까 숑숑 님 말씀처럼 절대적으로 선한 사람은 없잖아요. 주인공도 나름대로 그 조직 안에서 악이 되지 않고 건강한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애써 보려고 했지만 후반부에서는 그런 원칙들이 조금 무너지고 흔들리잖아요. 어쩌면 이게 사람 사는 모습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절대 선이 되어야지, 나는 진짜 온전해져야지.’ 이럴 수 없고 마음먹으면 오히려 내가 너무 힘들게 살 수밖에 없겠구나 싶은 과거 딜레마들이 많이 떠올라서 조금 숙연하게 읽었습니다.

숑숑 : 

저는 이런 방식으로 둘이 만나서 너무 아쉽다는 생각을 했어요. 여기에도 나오잖아요. “그냥 몰래 인재풀에 넣어 놨으면 이 이력서를 골라 연락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고… 이내 김 상무가 원망스러워졌다. 모르고 봤으면 이건 인사 청탁이 아닐 수도 있었다. 어쩌면 정상적인 경로로도 충분히 채용될 수 있었다. 전략도 없는 새끼. 멍청한 새끼.” 그래서 그것 때문에 고민하잖아요. 주인공처럼 저도 김 상무의 방식이 너무 아쉬웠어요. 그리고 여자 후배들에 대해 이야기하잖아요. 저도 4, 5년 이런 과정을 먼저 밟는 선배가 없다는 것과 비슷하게 저의 4, 5년 뒤에 그런 점을 같이 이야기 나누면서 데리고 갈 후배가 없다는 것, 이게 제 직종의 가장 큰 아쉬움인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장 큰 이유는 출산과 육아예요. 결혼하고 출산하면서 일을 쉬게 되고, 돌아온 다음에도 우선순위가 수업이나 교육적 전문성보다 아이 기르는 데 맞춰지잖아요. 안 그래도 이런 점이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비슷한 결의 이야기들이 나와서 깊이 다가왔어요. 그리고 저는 천 사장이 사실은 보이지 않는 숨은 권력자처럼 느껴졌어요. 그 여성이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은 앞에 나서는 양지가 아니라 가장 음지예요. 왜 이런 말 있잖아요. '남자가 천하를 호령하고 그 남자를 호령하는 것은 여자다.' 집안에서 남자를 통해 힘을 발휘하는 여성의 모습도 생각해 봤어요. 너무 멀리 갔죠? (웃음) 

한쑤 : 

저는 마지막 장면이 잘 이해가 안 갔어요. 저게 무슨 상황이지? 김 상무는 왜 울고 있을까?

숑숑 : 

결국 '이건 청탁이었구나.'로 읽었어요. 김 상무가 울고 있었던 건 개인적인 어려움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러니까 그런 모종의 관계가 둘 사이에 있었다는 거예요. 그게 반드시 침대여야 할 필요 없이,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가능한 거죠.

한쑤 : 

저도 퇴사를 하거나 다른 곳으로 간 여자 후배 스토리에 감정 이입이 됐어요. 저는 직장생활을 굉장히 짧게 해서 경험이 많지 않지만, 내가 그만둔다고 했을 때 저런 마음이었겠구나 싶어서 공감 갔어요. 제가 다녔던 조직과 일했던 지질이라는 직무가 굉장히 남초고 권위적인 데다 회사도 딱딱해요. 그 와중에 그걸 뚫고 지금보다 더 기회가 적었을 과거에 여자 선배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일해서 본사까지 올라갔을까 싶어요. 제가 회사 그만둔다고 하니까 같은 부서 사람들은 물론 본사 여자 선배들도 계속 연락하면서 무척 아쉬워하셨거든요. 여직원으로서 남초 회사에 다니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고 공감해 주시고,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 나누기도 했어요. 다음에 올 후배들을 위해서 같이 바꿔 나가면서 일해 보자고 많이 붙잡아 주셨어요. 145페이지에 나온 후배 중 마지막 사람이 수능을 다시 본다고 했는데 저는 이분처럼 공부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인생을 리셋하고 싶을 정도로 이곳이 싫었거든요. 그래서 너무 공감이 가더라고요. 고3 때쯤 이 전공으로 방향을 잡고 29살까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것만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고3 때 이걸 선택한 저 자신이 너무 싫어졌어요. 그런 감정이라서 '맞아, 내가 이 심정이었구나.' 공감도 되고, 현 부장이 안타까워하고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니 선배 입장에서 얼마나 속상했을까 왈칵했습니다.

지혜 : 

한쑤 님이 남초 직장에서 일한 걸 알고 있어서 이 글 읽으며 한쑤 님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121페이지에 "내일부터는, 내가 팀장이야." 이 문장에서 쾌감을 느꼈어요.

한쑤 : 

저도요!

지혜 : 

여기서부터 상황을 바꾸잖아요. 팀장이 되기까지 정말 힘든 시간이 있었겠지만 이제 내가 뭔가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가짐이 느껴져 저도 감정 이입됐어요. 

숑숑 : 

결과적으로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 여자가 팀장이 될 수 있었던 거잖아요. 그런 것들이 없었다면 팀장이 될 수 없었을 거예요. 늘 날을 세우면서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는 게 슬퍼요.

한쑤 : 

117페이지에 따로 불러서 이야기하다가 “난 현 차장, 여자라고 생각 안 해."라고 했을 때 ‘왜 말을 이렇게 하지?’ 싶었어요. 이런 사람들이 일이 잘 풀릴 땐 별말 없다가도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성별로 후려치지 않을까 아이러니를 느꼈어요. 여성이 버티고 버텨서 기회를 얻었을 때, 내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남초 세계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얘기할 법하잖아요. 그건 굉장한 능력이고 자부심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후배들 입장에서도 롤 모델이 되는 거죠. 근데 이 사람이 ‘능력으로 해야지, 네가 일 잘해서 그러는 거야.’라고 교묘하게 성별을 덮는 것 같아서 마음이 복잡했어요. 그리고 남초들의 문화를 보면서 끔찍했어요. 남자들의 회식 문화, 천의 얼굴에서 자기들끼리 음담패설 하듯이 내뱉는 말들이 끔찍했는데 아직도 바뀌지 않는 것 같아요.

숑숑 : 

그리고 거기 모여 있는 사람들이 중요한 결정을 하죠.

한쑤 : 

맞아요, 맞아요.

지혜 : 

그런 거 생각하면 씁쓸하게 읽을 수밖에 없는 소설이에요. 그러면 분위기를 바꿔서 ⌜라이딩 크루⌟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라이딩 크루⌟는 남자가 화자예요. 그래서 유일한 남성인 셔터맨 님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셔터맨 : 

소설 속에 긴 머리 남자 나오잖아요. 감정 이입할 뻔하다가 잘생겼다고 해서 '에이, 아니구나.' 했고요. (웃음) 청소년기를 겪으며 느꼈던 열등감 같은 것들이 떠올랐어요. 어쩌면 자전거도 좋아서 하는 대표적인 취미 중 하나잖아요. 겨루거나 경쟁하기보다는 자전거 타는 자체가 즐거운 거죠. 제가 라이딩은 잘 모르지만 분명히 자전거 타는 세계에도 쪼가 있을 것 같아요. 자기만의 라이딩 습관 같은 것들? 그래서 ‘니가 잘났니 내가 잘났니’ 하는 이야기가 커지면 여기에 나오는 두 남자처럼 못 볼 꼴 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좋아서 하는 일의 여러 가지 모습을 다룬 것 같아서, 저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얼마나 즐기면서 하는지 생각하면서 읽었고요. 여성 크루에게 잘 보이고 싶고 마음을 얻기 위한 수컷의 본능적인 마음을 표현하잖아요. 특히 거기에 많이 공감했어요. 내게도 그런 본능이 있을 텐데 생각하며 씁쓸하게 읽었습니다.

한쑤 : 

심리묘사가 자세하잖아요. 크루를 꾸리는 것, 여자 크루와 남자 크루에 대한 주인공의 생각과 접근이 자세히 묘사돼 작가님은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 쓰시지? 놀랐어요. (웃음) 처음에는 여자 크루와의 관계가 잘 유지되는 것처럼 표현하다가 새로운 라이벌이 나오니까 점점 그 사람을 의식하고 위기감을 느끼는 흐름이 재미있었어요. 읽다 보니 주인공이 너무 짠하다 싶은 구석도 있었고요.

숑숑 : 

저는 이 단편의 구성이 너무 재밌었어요. 처음에는 여자들이 등장하잖아요, 그러고 나서 바로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고. 결과적으로 바보 같은 두 사람이 홀딱 벗는단 말이죠. (웃음) 근데 이게 남성 화자니까 가능한 설정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게 여자들 싸움이었으면 이런 방식으로 여기까지 가진 않았을 것 같아요. (웃음) 이렇게까지 안 가, 그렇잖아요. 역시 남자들은 알 수 없다, 생각했어요. 이런 것들에 대해 셔터맨 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셔터맨 : 

충분히 가능합니다. (웃음)

숑숑 : 

분위기가 이렇게 흐르면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라 충분히 이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자들의 기본값인 것 같아요. 이 공동체를 만들 때 본인 입맛에 맞게 사람을 만나고 싶은 욕망이 투영됐잖아요. 근데 본인 생각에 맞지 않는 사람이 들어왔을 때 '이건 내 공동체인데, 내 건데.'라는 생각이 드니까 기분 나쁜 거죠. 실제로도 이런 일이 흔하게 벌어지는데, 저는 배드민턴을 쳐요. 지금은 별로 없는데 30대 초반만 해도 그 안에서 이런 암투들이 있었어요. 뉴 페이스가 나타나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스캔하고, 어떤 무리와 밥을 먹을 것인가부터 시작해서 결국 누구와 정분이 났다는 소문이 돌아요. 그런데 전부 미혼 남녀니까 이 정도면 건전하잖아요,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으니까요. 친한 여자 체육 교사가 있어서 겨울에 스키나 보드 동호회에 간 적 있는데 거의 야생의 세계예요. (웃음) 나 같은 사람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다 싶었어요.

한쑤 : 

제가 그런 경험이 많지 않아서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만연한 일이군요. 

셔터맨 : 

요즘 자만추는 불가능할 것 같아요. 특히 20대 넘어가면서부터 살벌한 것 같아요.

숑숑 : 

근데 이 정도면 자만추 아닐까요? 특정한 남성과 특정한 여성을 1대 1로 매칭하는 시스템은 아니니까요. 풀이 넓은 광장 같은 장소에 목적을 가지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맞는 사람을 찾잖아요. 소개팅이나 결혼정보업체에서 만들어 준 상황이 아니니까요. 모임에서 만나기 위해서 교회 나가는 청년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한쑤 : 

그렇군요. 큰 교회.

셔터맨 : 

요즘 예능 <나는 솔로>의 예능이 아닌 버전, 현실 버전 같아요. 이제는 그게 너무 흔한 문화라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그렇게 옛날 사람은 아닌데 새삼 놀랍습니다.

다정 : 

숑숑 님이 이야기하신 것처럼 시작이 너무 재밌었어요. 이 사람은 산뜻한 모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하지만 사실 모임 안에 노림수가 있었잖아요. 안이슬이라는 사람한테 잘 보이고 싶었고, 다른 사람들한테 크루장이라는 것을 계속 인정받고 싶었던 거죠. 긴 생머리 여성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남자였던 사람의 존재가 본인보다 더 주목받게 되니까 그 사람의 본색이 드러났잖아요. 이 사람도 결국 그전 모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임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 된 게 아닐까 싶어요.

한쑤 : 

라이딩은 취미생활이잖아요. 주인공도 처음에는 건전하게 하려고 시작했는데 여자한테 잘 보이려는 상황 묘사를 읽으면서 아차 싶었어요. 저는 이런 상황에 굉장히 회의감이 들거든요. 순수하게 취미생활하고 친구를 만나고 싶어서 모임에 들어가도 이렇게 치근대거나 관심을 표현하는 걸 보면 '모이면 이렇게밖에 안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속한 모임도 아닌데 진절머리 난다고 할까요? 결국 짝짓기 하는 것 같은 이 상황이 섬뜩했어요.

셔터맨 : 

이런 맥락에서 보면 여자 풋살은 안전한 모임이라고 볼 수 있잖아요. 서로 취미 이외에 이슈가 발생할 일이 크지 않으니까요. 이렇게 남자들끼리 모이는 안전한 모임이 있나 싶어요.

숑숑 : 

조기 축구 있잖아요, 아주 오래 전부터. 그리고 주말마다 야구하는 클럽도 있고요.

셔터맨 : 

아, 그렇군요. 이렇게 생각해 보니 특정 성별로 모인 분들은 순수하고 낭만적인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 취미만을 위해서 활동하니까요.

한쑤 : 

저는 작년부터 풋살을 하는데 몸을 움직이다 보면 동지애가 생기거든요. 그런데 만약남녀가 섞였다면 지금 같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숑숑 : 

개인적인 기술이 아니라 팀 경기라 더 그런 것 같아요.

지혜 : 

남자 주인공 둘이 엄청 싸우잖아요. 그게 너무 웃기고 유치했어요. (웃음)

다정 : 

『일의 기쁨과 슬픔』 에도 남자가 화자인 소설이 딱 한 편 있어요. 처음엔 멋진 꿈과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묘사하는데 사실은 오해였다는 이야기예요. 여기도 비슷한 흐름으로 가는데 왜 단편소설집에 한 편 정도는 남자를 화자로 등장시키는지 궁금했어요.

숑숑 : 

제가 성별이 여자라서 그런지 여성 화자인 작품들은 짠하다는 느낌을 받는데 남성의 이야기는 찌질하다고 해야 하나? (웃음) 저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요? (웃음)

한쑤 : 

셔터맨 님이 지금 엄청 씁쓸한 표정을 지으시는데. (웃음)

셔터맨 : 

저는 짠했어요. (일동 탄식)

일동 : 

아, 그렇구나! (웃음)

셔터맨 :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아마 많은 남자들의 마음속에 이런 게 있을 거예요. 그걸 끄집어내 준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연민이 생긴달까? 왜냐면 나 같아도 그럴 것 같거든요. 눈이 돌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재밌게만 읽히지 않는 거예요, 약간 짠해지더라고요.

숑숑 : 

우리가 성별이 다르다는 걸 지금 처음 깨달았어요. (웃음)

한쑤 : 

사실 저는 ⌜라이딩 크루⌟ 화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다른 성별의 사람과 이렇게 얘기해 보니까 좋아요.

지혜 :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진짜.

셔터맨 : 

좀 외롭네요. (웃음)

숑숑 : 

다른 독서 모임을 하지만 여성 비율이 워낙 높으니까 다 그쪽으로만 읽게 돼요. 근데 이런 남성 독자의 이야기, 진짜 필요한 것 같아요.

지혜 : 

그럼 ⌜동계올림픽⌟으로 넘어가 볼게요.

다정 : 

너무 슬펐어요.

한쑤 : 

맞아요.

셔터맨 : 

여성 화자고 사회초년생의 이야기로 읽히지만, 후반부에 우연히 만난 부부의 선행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부모와 과거 이야기도 이어지잖아요. 나고 자란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그런 방식으로 읽으니까 어떤 의미에서 재밌었어요. 왜냐하면 힘든 환경에서 나고 자란 자녀들은 '네가 하고 싶은 거 해봐라!' 응원받기보다는 부모들이 거침없이 표출하는 자신들의 욕망을 그대로 받잖아요. 그런 맥락에서 주인공이 짠하게 느껴졌고요. 사회초년생 시절의 경험도 많이 생각났습니다.

숑숑 : 

저도 그게 제일 많이 보였던 것 같아요. 나고 자란 환경이 만들어 놓은 자기 정체성이라는 껍질을 벗고 새로운 사람으로 산다는 게 사실은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화자가 다른 사람한테 막 대함을 당하잖아요. 나는 조금 불리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게 저는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정환경에서 나온 판단이라고도 생각해요. 아주 어린아이가 본능적으로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처럼,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내가 저 사람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것과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누구나 다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화자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라든가 아우라 때문에 그런 사람으로 생각되는 건 아닌가 싶어서 속상하고 슬펐어요. 제가 아는 많은 아이들이 여기에 투영되기도 했고요. 그 친구들에게 그것을 이겨내고 너 나름의 자아를 만들어서 살아야 한다고 말해요. 실제로 본인은 아이에게 해준 것도 없는데 무모한 요청을 하는 부모님들이 많아요. 엄마아빠가 대학을 못 보내 주겠다고 하면 '큰맘 먹고 지금부터 아르바이트를 해. 1년 정도 돈을 바짝 모아서 집을 빨리 벗어나. 그리고 나한테 연락해.' 이렇게 얘기하거든요. 그렇게 이야기한 친구들이 많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뒷부분에 자기 딸의 패딩을 선뜻 준 부모님을 보면서 그들의 딸은 이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었을까 싶고, 반면에 이 친구는 상대적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갖지 못한 채로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는가 마음이 많이 어려웠던 소설이에요.

한쑤 : 

저는 쇼트트랙 선수의 집안 분위기와 인턴인 화자의 집안 분위기를 나란히 놓고 생각해 봤어요. 쇼트트랙 선수 어머니가 계속 집이 좁다면서 방문한 기자들한테 미안해하니까 아버지가 말 한마디 없다가 갑자기 큰 소리를 냈잖아요. “야! 니는 집 좁다는 얘길 멫번을 하나!" 하는 말이 경상도 사투리로 음성 지원 되더라고요. 이 어머니는 얼마나 오랜 세월 저 아버지의 고함이나 무시하는 말을 들으며 사셨을까 감정 이입이 됐어요. 화자가 가족들이랑 통화하는 장면에서 어머니가 딸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동생 숙제 도와주는 걸 당연하게 말하는 모습에서 케이 장녀가 떠올랐어요. 얼마나 고된 환경에서 자랐을까 싶고, 힘들다는 얘기를 부모님한테 못 한 채 어딘가에 기대지도 못해 얼마나 힘들까 싶었어요. 이 두 장면이 제일 안타깝고 슬프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다정 : 

저는 이렇게 고된 인턴 생활은 아니지만 실습을 해본 적이 있어요. 실습하면 정말 많은 사람의 눈치를 봐야 하거든요. 분위기를 잘 파악해야 하고 주어진 과제도 수행해야 하잖아요. 나한테 처음 주어진 미션들을 잘 수행하고 싶다는 마음에 눈치 보고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하고, 하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누군가한테 민폐도 주는 이 상황이 저의 경험과 겹쳐서 짠한 마음이 들었어요. “요즘 자주 하는 종류의 생각이 있는데 또 그 생각을 하게 된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말하자면 이런 것들. 어떤 착한 사람이 나를 납치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혹은 큰길을 건널 때 작고 귀여운 노란색 폭스바겐 비틀이 나를 경쾌하게 탁, 치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래서 살짝만 다쳤으면. 이를테면 팔만 똑, 다리만 똑. 예쁘게 실금만 갔으면. 그래서 다시 예쁘게 붙을 때까지 딱 두 달만 깁스하고 누워 있으면서 누군가 날 먹여 주고 재워 주고 닦아 주면 좋겠다는 생각.” 너무 힘든 일을 겪었을 때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상상을 하잖아요. 저도 안 해본 게 아니니까 이 문장들을 읽어 내려갈 때 감정이 좀 격해졌던 것 같아요.

한쑤 : 

다들 살면서 비슷하게 생각하거나 힘들었던 경험이 있으니까 더 공감되어서 이 주인공이 짠했나 봐요.

지혜 : 

⌜동계 올림픽⌟이랑 ⌜미라와 라라⌟가 톤이 살짝 다운된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뒤에 배치한 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이제 마지막 작품인 ⌜미라와 라라⌟에 대해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다정 : 

이것도 있을 법한 얘기 같아요. 누군가 나보다 잘했을 때 질투 나는 마음과 응원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저 사람이 실패했을 때 질투했지만 위로하고 싶다는 여러 마음이 섞이면서 관계를 만들어 가는, 현실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어요. “소설 같은 거, 아무도 안 봐요. 어차피 우리밖에 안 봐요. 여기서 한 발짝만 나가면, 아무도 소설 따위 관심 없다고요.”라고 말하는 마음과 관계의 이야기들이 짠했어요. 대체로 이 소설집을 읽으면 웃기기도 한데 짠하기도 하고 현실 같다는 생각이 계속 겹치는 것 같아요.

셔터맨 : 

첫 소설 ⌜연수⌟ 에서 "잘하고 있어.”라고 하는 말이 어쩌면 주인공이 언니에게 해주고 싶은 말 아니었을까요. 물론 그렇게 직접적이지 않은, 다른 방식으로 말하겠지만요. 나중에는 연민을 품으며 안타까워하고, 그녀가 계속 소설을 썼으면 하는 마음을 품잖아요. 그런 거 보면 결국은 저 사람이 미래의 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을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이라는 관점에서 계속 망작이 나오는 한이 있더라도, 저 사람이 글을 써서 돈을 못 벌더라도 계속 좋아하는 일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잘하고 있으니까 계속하라는 응원의 메시지로 끝난 게 아니었을까 해요. 누구나 내가 진짜 좋아하기 때문에 계속하고 싶은 게 하나쯤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마음들을 향한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숑숑 : 

라라 언니는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버리고 새로 시작했잖아요. 아까 ⌜공모⌟에서 수능을 다시 보겠다는 사람이랑 다를 게 없죠. 인생을 리셋하겠다는 마음. 그게 돈이 많아서 가능한 것 같기도 한데,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대학교 1학년 때 여덟 살 많은 언니가 저희랑 같은 기수로 들어왔어요. 그 언니도 다른 걸 한참 하다가 다시 1학년부터 시작한 거죠. 저는 국어를 전공했고 그 언니는 음악을 전공했는데 대학원을 국어로 온 거예요. 음악 전공이지만 국어를 하고 싶어서. 물론 소설적인 설정이 많지만 자신이 하던 것과 전혀 상관없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아주 드물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언가 다시 선택한다고 했을 때 나는 그럴 용기가 있나? 나는 하고 싶은 게 있나? 그다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가지 못하고 있는 걸까? 이런 질문이 계속 떠오르고 주변 사람들 생각도 많이 났어요.

한쑤 : 

미라 언니가 학교에 입학하고 동기들이랑 같이 지낼 때는 쾌활하게 그려지잖아요. 그런데 중간에 친구의 남자친구가 미라 언니랑 같은 회사에 다녔다면서 그때 회사에서의 모습이 지금과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게 되고요. 동기들은 편한 길을 마다하고 왜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글 쓰는 일을 쉽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근데 회사 다닐 때 이야기를 듣고 자기도 엄청 치열하게 준비하고 정말 글을 쓰고 싶어서 고민을 많이 했겠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서 보이는 게 다가 아니구나 싶었어요.

지혜 : 

셔터맨 님이 말하신 것처럼 주인공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담겨 있잖아요. 그래서 나는 무엇을 좋아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고민해 보게 됐어요. 좋아하는 것이 꼭 업이 되지 않더라도 즐겁고 재미나게 해나갈 힘을 길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잘하고 있다는 응원을 해주고 싶은 작가님의 마음이 이 책에 담겨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렇게 3회 차 독서 모임이 마무리됐는데 다들 어떠셨는지 한마디씩 부탁드려요.

한쑤 : 

저는 소설을 주로 읽어서 장르적인 편독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이번에 소설집을 읽게 돼서 무척 반가웠고요. 처음 읽어 보는 작가님의 작품이고, 어렵지 않게 웃으면서 볼 수 있어서 더 좋았어요. 작가님의 다른 작품도 읽어 봐야겠어요. 이 책에 직장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많잖아요. 지금 제 상황과 맞닿은 지점이 많아서 공감이 많이 됐고요. 앞으로 다른 일을 하게 됐을 때 어떤 걸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 어떤 방향으로 갈지 떠올리며 좋아하는 걸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해줘서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다정 : 

소설을 재밌게 읽으면 같이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 사실 이걸 어떤 언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어려운 것 같아요. 두루뭉술했거든요. 그런데 오늘 얘기 나누면서 어떤 감정은 서로 교차했고, 내가 두루뭉술하게 표현했던 말들을 누군가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느꼈구나 생각할 수 있었어요. 그 언어들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숑숑 : 

짧다면 짧은 세 번의 만남 동안 그림책, 여행 에세이, 소설 등 다양한 갈래의 글들을 읽어 볼 수 있어서 좋았고요. 이번 계기를 통해 이 모임이 계속 이어지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아요. 나중에 이 순간을 돌아봤을 때 '내가 그때 서점에서 이렇게 저렇게 해서 몇 년 동안 모임을 했잖아.' (웃음) 이렇게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셔터맨 : 

오늘 모임 내내 제가 ‘돈은 안 되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란 표현을 했는데요. 이 공간을 운영하면서 책이야말로 돈이 안 되지만 좋아서 하는 행위의 대표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공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결국 결이 비슷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책을 매개로 만나서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 격려해 주고 책에서 말한 것처럼 잘하고 있다고, 대단하다고 말하는 게 의미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 유튜브에서 예민한 사람에 관한 영상을 봤는데,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안전지대가 필요하대요. 내가 어떤 것을 해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존재 혹은 공간이 필요한데, 저에게는 이 세 번의 만남과 이 공간이 안전지대가 되어 주지 않았을까 싶어요. 제가 아무 말이나 해도 경청하고 고개를 끄덕여 주시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즐거움과 기쁨을 주셨다, 그래서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참여자>


사회, 원고정리 / 지혜

책을 고르고 이웃을 만나고 환경을 생각하는 낯설여관 책방지기


참여자 / 다정

경험한 일로부터 관심이 무럭무럭 자란다.

좋아하는 것은 명확히 좋아하고 나머지는 궁금해 한다.


참여자 / 셔터맨

동네에서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타인의 얼굴을 뷰파인더로 들여다보듯 스스로를 정성껏 살피며 살고 싶습니다.


참여자 / 숑숑

읽기와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가끔 비관적이지만 자주 낙관적인 사람입니다.


참여자 / 한쑤

사람과 대화, 활동적인 것을 좋아해 주말마다 바쁘게 살고 있는 ESFJ입니다.


추천 콘텐츠

책쾌의 여정

[에세이] 책쾌의 여정 우당탕탕 독립출판 북페어 기획자 도전기 임주아 뜻밖의 부재중 이름이 폰에 떠 있었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S 팀장이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일로 만난 공무원이 퇴근 시간을 넘어 전화 문자 콤보로 연락했다는 건 모종의 긴급 상황 아닌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딘가 다급해보이는 목소리였다. “헉 제가요?” 요지는 전주에서 처음 독립출판박람회를 여는데 내가 총괄 기획을 맡아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시기는 6~7월이라 했다. “오늘이 벌써 3월 7일인······” 기간도 기간이지만 독립출판 전문가도 아닌 내가 총대를 메는 게 맞는지 주제 파악에 나섰다. 그러자 팀장은 전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동료와 팀을 꾸리면 어떻겠냐며 인건비도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눈에 광이 돌았다. 단기간에 아이디어를 짜고 사람 모으고 경주마처럼 내달리는 일은 내 주특기 아니던가. 그렇게 살아온 임시변통스러운 삶에 드디어 어떤 보상이 따르려나. 함께할 내 기쁜 동료는 누구인가. 기획자 동료 구하기 첫 타깃은 전주에서 10년 가까이 독립출판 전문책방을 운영중인 뚝심의 M이었다. 그의 책방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는 ‘기성으로 출간된 도서는 입고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단호하게 적혀 있다. 설사 혈육이 역사에 남을 명저를 썼다 하더라도 독립출판이 아니면 가차 없이 거절 메일을 전송하고야 말 꼿꼿함이었다. 그런 M의 책방에는 개인이 스스로 쓰고 만든 각양각색의 독립출판물이 대거 진열되어 있는데 그 큐레이션된 목록에는 웰메이드 작품인 ‘책방을 꾸리는 중입니다’라는 에세이도 있다. 화학공학과를 나온 공대생이 어쩌다 모교 대학로의 한 건물 지하에서 책방을 시작해 지금 모습에 이르게 됐다는 애환 서사가 담긴 책이다. 그는 그 책을 들고 전국을 쏘다니며 독자를 만났다. 주6일 책방 문을 여는 그가 문 닫는 날엔 어김없이 북페어 현장에 가 있었으니까. 캐리어를 끌고 고속버스를 타고 기꺼이 책 보부상으로 분해온 그는 힘들다 힘들다 해도 매년 매회 출전을 멈추지 않았다. 전주에서 오로지 독립출판만을 다루는 책방 주인은 M이 유일해서 대표성도 남다른 터다. 때문에 함께 하자는 내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그의 눈높이도 짐작이 간다. 일찍이 S 팀장이 독립출판박람회 관련 자문을 구하고 싶다고 여러 번 M의 책방을 찾았으나 그는 ‘박람회’라는 명칭부터 맞지 않다고 생각해 소통에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특히 독립출판 행사는 스스로 책을 낸 제작자나 책방 운영자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해 열리는데 전주에선 도서‘관’ 주도로 만들어질 행사라 생각하니 최대한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나는 M이 적극적으로 합류해 의견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되면 그가 책방 꾸리는 일에도 전환점이 올 거라

  • 관리자
  • 2024-05-01
도깨비 이야기

[에세이] 도깨비 이야기 한정현 최근 친구의 부탁으로 점집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사실 무속에 대해선 알면 알수록 이건 민속 문화의 하나이지,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무속 때문에 큰 피해를 본 경우도 있어서 나같은 경우는 사실 이제 거의 점괘를 안 믿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친구가 갓 신내림 받은 애동이라기에 나 또한 어디 구경이나 한 번 해보자 하는 생각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문화로서의 무속은 여전히 관심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옆에서 들어보니 그 영검하다던 무속인의 점사는 무척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어깨가 아프지 않느냐’ ‘밤에 늦게 자지 않느냐’ ‘두통이 가끔 오지 않느냐’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친구의 직업상 대부분 추측 가능한 증상이었다. 게다가 친구는 불면증도 없고 두통도 없다는 거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친구는 자신이 혹시 두통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치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그 말에 순간 따라가고 있더란다. 하긴 나도 그 당사자가 되면 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할 것 같다. 말 그대로 이런 걸 보고 도깨비에 홀린다고 하나 보다. 다행히 친구는 도깨비에 홀려 도깨비가 되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후 나는 왜인지 내내 도깨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살면서 도깨비 만나기 사실 어렵지 않군, 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사실 어릴 땐 도깨비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큰 산을 끼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온갖 민간 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인 것 같다. 흔히 도깨비와 저승사자는 이길 수 없고 오로지 속일 수만 있다고들 한다. 그들이 그만큼 무서운 존재라는 것인데 특히 도깨비에 대해서는······. 얼마 전 영화 〈파묘〉에서도 나왔지만, 도깨비들은 주로 안 쓰는 물건에 혼이 깃들어 만들어지는 귀신이다. 이후엔 도깨비가 그 사물을 대신하여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일반적인 혼령하고는 아주 다른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한데 찾아보니 이 험상궂은 도깨비는 사실 일제강점기 이후 도입된 ‘일본식 도깨비’ 이야기가 일부 섞여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혹부리 영감이 그러한데, 우리가 알고 있는 혹부리 영감에서는 영감이 부러 도깨비를 속여 혹을 떼지만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원래 한국 전래동화에서는 도깨비가 그리 나쁜 존재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영감과 같이 어울려 놀던 도깨비들이 서로의 교감을 통해 친밀해진 후 먼저 나서서 영감의 혹을 떼준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혼령이 물건에 깃들어 만들어진 것이 도깨비라고 한다면 무슨 혼령이냐에 따라 좋은 도깨비가 될 수도 있고 나쁜 도깨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십 년 가까이 이고지고 다니

  • 관리자
  • 2024-05-01
어떤 기준

[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1건

  • 뀨라뀨
    훈훈해요

    집 근처에 이렇게 멋진 곳이 있는 줄 몰랐네요.

    • 2023-10-12 09:45:07
    뀨라뀨
    훈훈해요
    0 / 1500
    • 0 /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