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두고 온 것들의 목록

  • 작성일 2024-06-01
  • 조회수 645

[에세이]


   두고 온 것들의 목록


송진권

  

   아, 참 세월 빠르다. 엊그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더이 벌써 나뭇잎이 우거지고 버찌가 익어 떨어지기 시작한다. 옛 시인이 읊었던 아침에 삼단 같던 머리가 저녁이 되니 눈빛이구나 [조여청사 모성설(朝如靑絲 暮成雪)]이 실감이 나게 내 머리에도 벌써 이팝꽃이 만발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서 삐삐에서 시티폰으로 스마트폰으로 바뀌고 이젠 인공지능에 메타버스까지 점입가경으로 돌아간다. 그럼에도 아직 나는 흐르는 물 위에 표시를 해놓고 칼을 구하고자 하니 미련퉁이고 그야말로 어리석은 사람이로구나. 아침이면 잠결에 들려오는 나뭇가지 뚝뚝 꺾어 가마솥에 불 넣는 소리, 가마니 짜는 소리, 침을 뱉어 가며 아버지가 새끼줄 꼬는 소리, 와르르릉 가마솥 뚜껑 여는 소리, 콩나물시루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 아랫목에 묻어 둔 담북장 냄새와 메주 띄우는 냄새, 쥐가 뚫어 놓은 구멍으로 스며들던 냇내와 고구마 통가리에서 나는 흙냄새가 엊그제처럼 새삼 다시 생각나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내가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고 보니 그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알게도 되었는지 모르겠고 아침이면 학교 간다고 나서며 돈 달라고 손 벌리는 자식들 무서워 뒤꼍에 숨었다던 어머니의 마음 언저리에나 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이 글에서는 나와 함께 살다가 어른이 되거나 도시로 나오면서 두고 온 것들의 목록을 하나씩 적어 보려고 한다. 어릴 적 친구를 만나듯이 아니면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인형이나 장난감을 다락이나 창고에서 우연히 발견하듯 읽어 주면 좋겠다.


   전북 장수군 신무산 뜬봉샘에서 시작된 강물은 물뿌렝이 마을을 지나고 무주 진안을 지나고 충북 영동을 거치며 내가 사는 마을 앞을 지나가면서부터 제법 큰 강물의 태가 나기 시작한다. 각지에서 나온 도랑과 시냇물이 합수되면서 나루를 만들고 철길과 다리를 만들면서 수레와 차가 다니고 물가에 사람 사는 마을까지 만들어 까치집처럼 둥둥산이로 지붕을 잇대어 집 짓고 돌담을 쌓고 사람들이 모여 산다. 곳곳이 산이라 앞을 봐도 답답하고 뒤를 봐도 첩첩한 산골 벽지 내륙의 한가운데 그나마 밭이라고 있는 것은 소도 쟁기를 끌다 구른다는 비탈이고 논이라고는 손바닥만 한 하늘바라기 천수답뿐인 궁벽한 곳에서 나는 태어났다. 이 척박한 땅에서 굶어죽지 않고 살아 보려고 내 부모님은 눈만 뜨면 풀방구리 쥐 드나들 듯 뭐라도 물어들여야 살지 밥 먹는 입들 무섭다고 해 뜨기 전부터 해지고 난 뒤까지 몸뚱이 가루가 되도록 일을 했다. 어떻게든 새끼들만은 무골충이로 살지 말라고 한 몸 거름 되어 새끼들 밑으로 고스란히 밀어 넣고도 모자라 대대로 이어 온 전답까지 팔아 새끼들 밑에 거름으로 넣었다. 지금이야 태생이 뭐 그리 중요하진 않으나 시골에 눌러앉은 나는 곳곳의 자연부락들과 무슨 무슨 ‘골’이나 ‘티’, ‘미’로 끝나는 이름을 가진 자연부락들의 내력을 굳이 일러주지 않아도 알고 있으니 여기 토박이라 하겠다. 다들 사는 형편이 비슷비슷했고 살아온 환경이 같았으니 가난이라는 게 뭐라는 것도 잘 몰랐다. 여름이면 강가에서 다슬기 잡고 물고기를 잡으며 눈만 하얗도록 검게 그을리며 놀고 겨울이면 온 산을 헤매 다니며 토끼나 노루를 쫓으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강물과 가깝고 산속에서 어린 뼈를 키워 왔으니 지금 돌아보면 복된 유년을 누렸다고 할 수 있다. 농경사회의 끄트머리에서 나는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마을은 충북 옥천과 영동의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마을을 휘감으며 금강이 흘러갔다. 강물에 갇힌 마을이라 버스는 아직 다니기 전이었고 강물 위로는 높다랗게 붉은 철교가 놓여 경부선 기차가 다녔다. 아직 전기가 들어오기 전이라 호롱불이나 호야로 밤이면 불을 밝혔다. 겨울날 아침이면 아버지가 쇠죽솥에 불을 넣느라고 뚝뚝 나무를 꺾어 불을 넣는 소리를 듣거나 와르르릉 솥뚜껑 여는 소리를 듣곤 했다. 냉골이던 아랫목이 따뜻해지면 혼곤히 잠이 다시 들었다. 어머니의 학교 늦는다는 소리에 늦게 일어나 나를 데리러 온 이웃 친구들과 학교에 갔다. 아침마다 기차로 통학하는 형들과 대전으로 나물 팔러 나가는 아주머니들이 통근차를 타려고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서 나왔다. 기차말고는 다른 교통수단이 없어서 기차를 놓치면 가까운 장을 보러 가려 해도 배를 타고 강을 건너 한참을 걸어 나가야 했다. 누나는 중학교 겨우 마치고 구미 공단으로 떠났고 머리가 좋았던 형은 청주로 고등학교를 진학해서 집을 떠났다. 어머니가 몸이 아파서 안 나려다가 늦게사 들어서는 바람에 낳았다는 나는 손위 형과 일곱 살이나 터울이 져서 혼자 지낼 때가 많았다. 겨울방학이면 내려온 형의 가방에서 나온 지난 교과서들과 누나가 할부로 들여온 세계문학전집을 읽으며 방학을 보내곤 했다. 마을 아래 커다란 저수지가 있어 못골이라고 했다. 저수지는 깊고 푸르둥둥한 빛을 띠고 있었으며 말풀이 드문드문 자라고 있었다. 저수지 아래도 마을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에 전기가 들어왔다. 지금도 동년배들이나 손위 어른들에게 이런 소리를 하면 새삼 다시 돌아본다. 당신 나이에 그런 곳이 있고 그런 데서 어떻게 살았냐면서 웃기도 한다. 마치 전설의 고향에나 나오는 이야기인 듯 놀라기도 하고 내 글을 보고는 연배가 본인들보다 한참 높거나 비슷한 나이의 어른이 쓴 글이라고 생각했다며 웃는 이들도 있다.


   여름이면 우리는 방죽이나 산에다 소를 풀어 놓고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이 나오는 만화영화를 보았고 『어깨동무』와 『보물섬』, 길창덕과 허영만, 이상무의 만화를 읽었으며 얼기설기 뗏목을 엮어 저수지에 띄우기도 했다. 저수지 물속엔 자라가 살았고 붕어며 잉어도 살았으며 얕은 데로는 피라미 떼가 헤엄쳐 다녔다. 가끔 물 위에 둥둥 떠서 숨을 쉬는 자라를 볼 수도 있었다. 저물녘이면 저수지 이쪽에서 저쪽으로 빗방울이 떨어지듯 피라미들이 뛰어올랐다. 피라미가 뛰어오른 자리마다 둥근 파문이 겹치고 포개지며 저수지가 일렁였다. 퍼런 인광이 날아다니고 뱀들이 대가리만 내밀고 건너편으로 헤엄쳐 건너가고 말풀 같은 머리카락을 풀고 일어서는 물귀신의 기척도 들리는 듯했다.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얘야, 물귀신은 저 있던 자리에 꼭 다른 사람을 데려다 놓아야 저승으로 간단다. 자라는 용왕님의 화신이란다.”  


   해마다 저수지 같은 자리에서 익사 사고가 났다. 그중에는 도시로 돈벌이 나갔다가 배가 불러 돌아온 누나들도 있었고 동갑내기 친구도 있었으며 물에 빠진 동생을 구하고 죽은 친구네 형도 있었다. 죽은 자식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던 그 아주머니의 울음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히 들리는 거 같다. 해토머리면 얼어붙었던 저수지 얼음장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피이이이잉 피잉― 그 소리는 물에 빠져죽은 사람들의 울음소리 같기도 해서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프기도 했다. 좀 머리가 굵으면 우리는 헤엄쳐 저수지를 건넜다. 그 무렵 또래들 가운데 저수지 건너기가 통과의례처럼 되어 있어서 저수지를 헤엄쳐 건너갔다 오지 않으면 겁쟁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저수지 가운데쯤에서 힘이 빠지면 나는 온몸에 힘을 빼고 드러누웠다. 송장헤엄이라고 했는데 배영처럼 드러누워 발만 천천히 저으면 부력으로 몸이 떠올라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었다. 발목이며 등을 스치는 말풀들이며 푸른 하늘과 물소리, 내가 내쉬는 숨소리까지 들으며 나는 저수지를 건넜다. 저수지 건너가 모새방이었다. 흙이 곱고 부드러워서 모새방이라고 불렀는데 버드나무들이며 왕골이 드문드문 자라고 버드나무 가지엔 물이 불었을 때 걸렸을 비닐이며 옷들이 너풀거렸다. 모새방에서 흙장난을 하고 놀다가 다시 힘이 나면 저수지를 건너 다시 돌아왔다.  


   쇠풀을 뜯기러 집에서 나올 때마다 엄마는 해가 저기 달이산 꼭대기를 넘어가면 집에 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쇠고삐를 뿔에 감아 산에다 풀어 놓고 저수지 방죽에 엎드려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었다. 채 뿔이 돋지 않은 송아지는 사람 손이 타서 강아지처럼 나를 따랐다. 송아지에게 풀을 뜯어 먹이고 뜸베질 장난을 해도 해는 도무지 안 기울어, 심심해진 나는 거미줄에 쇠파리를 잡아 던지면 거미가 재빨리 거미줄을 풀어 쇠파리를 옭아맸다. 메뚜기도 잡아 거미줄에 던지다가 잠자리 시집보내기며 바랭이로 우산 만들기를 해보기도 하고 강아지풀로 수염을 만들어도 보았다. 여름 해는 얼마나 긴가. 소의 배는 얼마나 큰가. 소는 먹어도 먹어도 계속 풀을 뜯었고 여름 해는 기울 줄을 몰랐다. 


   여름 해는 뜨겁고 길다지만

   우리 소 배 속보다는 훨씬 작아


   쇠풀 뜯기러 갈 때마다 엄마는

   해가 저만치 달이산 넘어가면 집에 오랬는데


   해는 져서 어두워졌는데도

   우리 소는 아직 풀을 뜯어

   (졸시 「여름 해는 얼마나 긴가」 ― 전문)


   어둑발이 내리는 저수지 소롯길에서 나는 반딧불이 날아오르는 물 위에 대가리를 드러낸 채 헤엄치는 뱀과 후드득 이켠에서 저켠까지 뛰어오르는 피라미 떼의 군무를 보았다. 달빛을 깨며 일렁이는 물결들이 겹쳐지고 포개지면 사뭇 가슴이 들떠서 송아지를 데린 어미 소를 끌고 집까지 뛰어가기도 했다. 저수지 방죽 위에 올라서서 보면 멀리 우리 학교가 보이고 기차가 지나가는 것이 보이고 더 아래로는 금강이 구불구불 흘러가는 것이 보였다. 노을 진 황금빛 저수지 위로 뛰어오르는 피라미 떼가 만들어내는 작은 포물선, 소용돌이의 겹침과 번짐, 이윽고 떠오르는 달빛의 일렁이는 풍경들은 어린 마음에도 참 아련하니 아름답기도 해서 언젠가는 꼭 이 장면을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해 보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저수지 물을 터놓아 논에 물 대는 철이면 논 사이사이로 봇도랑물이 흘렀다. 논 가운데 학교가 있었다. 집에서 학교 교문 앞까지 봇도랑이 흘렀다. 봇도랑 물에 우리는 소나무 껍질로 만든 배를 띄우며 누구 배가 학교 앞까지 더 빨리 가나 내기를 했다. 군데군데 풀줄기에도 걸리고 어두운 수로도 건너서 우리 배는 학교 앞 개울에 닿았다. 몇몇 놓쳐버린 배들은 강으로 흘러가기도 했다. 


   아이들은 학교 갈 때 배 하나씩을 가지고 갔습니다 독새풀 욱은 논을 갈아엎고 모를 낼 즈음엔 봇도랑물이 학교 가는 길 행상집거리 너른 들을 굼실굼실 적시며 흘렀습니다 책가방 속에 숨겨 놓은 소나무 껍질 배에 이름을 써서 띄우며 학교까지 어느 배가 더 빨리 가나 내기를 했습니다. (···) 배가 학교에 닿을 즈음 교문을 지나친 물은 우리들 이름이 적힌 배를 데리고 오백거리 가린여울 쪽으로 흘러가곤 했습니다 그때 우리가 띄워 보낸 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우리 속에서 찰랑대던 물결은 말라서 다 어디로 갔을까요

   (졸시 ― 「가린여울 사시는 유병욱 선생님께」 부분)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나는 시골에서 지냈다. 공부 같은 건 물론 하지 않았다. 지긋지긋하던 가난이었지만 친구들도 다들 비슷한 형편이었으므로 가난한 줄도 잘 몰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바로 시작했다. 주방기구회사의 창고장, 이삿짐센터 용역, 노동현장의 잡부, 공장의 시다 등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지금 직장에 자릴 잡았다. 사는 건 참 힘들었고 고됐다. 몇 번이나 무너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는지 모른다. 여기서 내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밤에 몰래 고향에 가기도 했다.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강변에서 먼발치로 바라보던 우리 집과 고향은 내 가슴을 다독이며 위로해 주었다. 집 앞 강물에 얼굴을 씻으며 나는 새로운 힘을 얻었다. 뒤돌아보면 참 힘들었다로 줄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무너지지 않게 나를 지탱해 주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 소를 몰고 돌아오던 늦여름의 저수지 풍경들이나 산마루 위로 돋아나던 달별 같은 것들, 재잘대며 흐르던 강물과 여울, 그리고 내 소박하던 피붙이들과 이웃들이 아니었을까.

추천 콘텐츠

행복한 문학여행을 떠나요 - 노벨문학상과 한강 그리고 ‘문장의소리’

행복한 문학여행을 떠나요 - 노벨문학상과 한강 그리고 ‘문장의소리’ 최창근 지난해 12월 10일 광주광역시청에서 열렸던 ‘2024 광주에서 온 편지’ 행사에 다녀왔다. 한국 시간으로 그날 자정 스웨덴에서 시작되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시상식을 생중계로 보면서 광주시민들이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는 자리였다. 작가가 부른 노래도 흘러나왔고 작가의 작품으로 만든 시극도 공연되었다. 작품과 연계된 문학 강연도 풍성하게 열려서 시국은 비록 어수선했지만 그 와중에도 국민들에게 유일하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축제였다. 운명의 날이었던 10월 10일 작가의 수상 소식을 처음 접한 건 평소에 친분이 있었던 안무가가 연출한 춤 공연을 보러 청주에 내려가 있을 때였다. 작가의 여고 동창이기도 한 극작가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다. “한강 노벨상!!” 처음엔 어안이 벙벙하고 정말 믿기지 않았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현실감각이 돌아오자 마치 나 자신이 상을 받은 것처럼 너무나 기뻤고 마음이 참 뿌듯했다. 작년 가을은 그 일로 내내 가슴이 설렜다.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영예이기도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세계문학의 변방에 머물렀던 한국문학 전체가 상을 받은 것 같아서였다. 그렇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실감이 안 나는 건 매한가지다. 작가가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후 지인들 사이에서는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한강 작가가 가장 가까울 거라는 얘기를 주고받기도 했지만 그 시기는 먼 훗날의 일이었고 이렇게 일찍 갑자기 받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작가와는 작은 인연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5년 5월 한국문화예술위원에서 그 당시에도 요즘과 마찬가지로 얘기되던 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고 헤쳐 나가려는 방안의 하나로 사이버공간에 문학 종합 포털사이트인 ‘문장’을 창안했다. 문장 안에는 다양한 콘텐츠가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인터넷 문학라디오였고 나는 훗날 ‘문장의소리-행복한 문학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인 그 문학라디오를 책임지고 이끌어 가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작가를 겸한 피디였다. 한강 작가는 ‘문장의소리’ 첫 방송의 초대 손님이었고 그 후로 진행까지 맡아 2005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9개월을 서울 합정동에 있는 작은 스튜디오에서 함께 일하게 됐다. 한 작가가 진행을 맡았을 때 프로그램 기획이 세계 여러 나라의 문학을 돌아가며 소개하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을 포함해서 그 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낭독해서 들려주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한강 작가와 떠나는 세계문학여행’이었던 셈이다. 그때 우리는 서로 협업해서 이미 노벨 문학 방송을 제작했던 건 아닐까. 그로부터 20년 후에 그 문학 방송의 진행자가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은 천지의 기운이 도운 하늘의 뜻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노벨문학상 수상

  • 관리자
  • 2025-01-06
신년 기획좌담 1차 〈책장 업고 튀어〉

신년 기획좌담 1차 〈책장 업고 튀어〉 2025년 1월호부터 3월호 사이에 총 3회의 좌담회 내용이 순차적으로 발표될 예정입니다. ㅇ 회차별 구성 - 1차 : 책장 업고 튀어 - 2차 : 연재 작가의 기쁨과 슬픔 - 3차 : 플랫폼 시대의 문예창작(학) ㅇ 회의명 : 《문장웹진》 2025년 신년 기획좌담 1차 〈책장 업고 튀어〉 ㅇ 일 시 : 2024년 11월 28일(목) 13:00~14:30 ㅇ 장 소 : 예술가의집 라운지룸(서울 종로구 동숭길 3 한국문화예술위원회) ㅇ 참여자 - 사회자 : 이소(문학평론가,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 참여자 : 곽선희(‘위즈덤하우스’ 편집자), 김은혜(문학웹진 ‘림’ 편집자), 이유리(소설가), 한영원(시인) 〈개회〉 이소: 반갑습니다. 저는 평론을 쓰는 이소입니다. 《문학과사회》라는 잡지를 만들고 있어요. 다들 어떤 책을 만드시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유리: 저는 소설 쓰는 이유리입니다. 최근에 『비눗방울 퐁』이라는 소설집이 나왔습니다. 곽선희: 저는 ‘위즈덤하우스’ 출판사에서 ‘위픽’ 시리즈를 만들고 있는 곽선희 편집자라고 합니다. ‘위픽’ 시리즈는 단편소설 한 편이 책 한 권으로 만들어지는 기획이어서 오늘 종이책의 무게라든가 부피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싶고요. 오늘 자리에서는 좌담에 앞서 문구 덕후이자 전자책 편애자로 소개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영원: 저는 시 쓰는 한영원입니다. 『코다크롬』이라고 하는 시집을 썼습니다. 김은혜: 안녕하세요. 저는 열림원 문학웹진 ‘림’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김은혜입니다. 어제 마감이 끝났습니다. 조만간 림 문학상 수상작품집이 나올 예정이고, 전시를 기획하는 중이기도 합니다. 이소: 어떤 전시를 하시나요? 김은혜: 문학상 시상식과 전시를 접목시키는 기획을 하고 있는데요. 전시 기획은 처음이라 조금 떨리기도 합니다. 이소: 제가 미리 질문지를 드리긴 했는데, 꼭 해당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만 한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른 질문에 대한 대답도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첫 질문은 ‘책과 공간’에 관한 것입니다. 책이라는 것이 부피가 크기도 하고 공간과 큰 연관이 있잖아요. 카페 같은 곳에서는 예쁜 책이나 시집을 인테리어 용도로 쓰고 있기도 하고요. 우리에게는 일과 관련된 것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취향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부피가 크다 보니 어떤 공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책을 모으시는지, 어떻게 관리하시는지 전부 다를 것 같아 궁금합니다. ‘집에 책이 얼마나 있는지?’ 그리고 ‘집에서 취향의 영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만큼인지?’에 대한 물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면 좋겠습니다. 물론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

  • 관리자
  • 2025-01-01
이상수 - 북유럽 도서관 탐방기 ② - 노르웨이 미래숲도서관

[기획 : 문장웹진×문학기반시설상주작가] 〈2023 도서관 상주작가 지원사업〉에 선정된 우수도서관 담당자, 상주작가의 역량강화를 위하여 독서 강국인 북유럽(스웨덴&노르웨이) 탐방과 도서관 운영 우수사례를 경험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2024년 9월 24일부터 30일까지 이어진 5박 7일간의 이야기를 문장웹진에서 만나보세요. 북유럽 도서관 탐방기 ② - 노르웨이 미래숲도서관 양정작은도서관 이상수 노르웨이 미래숲도서관을 방문한 날, 공기는 서늘했다. 우리 일행은 언덕을 오르내리며 천천히 푸른 서가를 거닐었다. 숲을 도서관으로 만들겠다는 최초의 발상은 어떻게 하게 된 것일까. 스코틀랜드 예술가 케이티 패터슨은 한 세기 동안의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세계적으로 엄선된 백 명의 작가에게 일 년에 한 명씩 원고를 제출케 하고, 백 년 후 종이책으로 출판하는 것이었다. 여기엔 나무를 심고 키우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 외곽의 ‘노르마카’에 미래도서관 숲을 조성한 후, 가문비나무 1,000여 그루를 심었다. 선정된 작품의 원고는 한 세기 동안 읽히지 않은 채, 오슬로의 공공도서관 ‘침묵의 방’에 각각 보관된다. 2114년이 되면 모든 원고의 봉인을 풀고 이 나무들을 베어 책으로 펴낸다. 2018년에는 한강 작가가 그 주인공이 되었다. 오슬로에서 숲으로 가는 길, 홀멘콜렌 스키 점프대가 한 마리 독수리처럼 날개를 펴고 비상을 꿈꾸고 있었다. 근처 호수에서 신을 벗고 발을 담그니, 한겨울 살얼음이 낀 동치미를 먹은 듯 청량감이 느껴졌다. 피오르 해안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고 트래킹을 시작했다. 길섶엔 갈색빛의 버섯들이 오글오글 모여 있어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촌락 같았다. 개미들이 가문비 나뭇잎을 끌어모아 고층 집을 지어 놓았다. 잘 익은 블루베리와 라즈베리가 장식처럼 붉었다. 퇴고하지 않은 초고의 숲은 뿌리가 땅 위로 자라고, 이끼가 그 위를 덮어, 또 다른 문장을 쓰고 있었다. 한국의 가을 하늘이 새파랗게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노르웨이의 하늘도 그에 못지않았다. 잘 뻗은 가문비나무가 입구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숲에는 곳곳에 두 가지 색이 칠해져 있었는데, 붉은색은 스키 길을, 하늘색은 트래킹 길을 의미한다고 했다. 수문장 나무에 두 색이 함께 칠해진 걸 보니, 여기는 누구든 출입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로 뻗어 오르는 가지는 내 어깨와 키를 맞추기도 했지만, 머리 위로 쑥 솟아오르기도 했다. 쑥쑥 자라 질 좋은 펄프를 생산할 것 같았다. 노르웨이에서 크리스마스트리는 반드시 가문비나무를 쓴다. 이 나무는 최대 오십 미터까지 자라며 수명은 수백 년이나 된다. 작년에는 칠십 년 된 이십 미터짜리를 런던시에 선물하기도 했다. 바이올린의 공명판으로는 그 나무가 최고라고 한다. 추위 속에서 고요히 자라는, 단단한 나이테 덕분이라고 한다. 장 지오노의 소설

  • 관리자
  • 2024-12-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