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것들의 목록
- 작성일 202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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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두고 온 것들의 목록
송진권
아, 참 세월 빠르다. 엊그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더이 벌써 나뭇잎이 우거지고 버찌가 익어 떨어지기 시작한다. 옛 시인이 읊었던 아침에 삼단 같던 머리가 저녁이 되니 눈빛이구나 [조여청사 모성설(朝如靑絲 暮成雪)]이 실감이 나게 내 머리에도 벌써 이팝꽃이 만발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서 삐삐에서 시티폰으로 스마트폰으로 바뀌고 이젠 인공지능에 메타버스까지 점입가경으로 돌아간다. 그럼에도 아직 나는 흐르는 물 위에 표시를 해놓고 칼을 구하고자 하니 미련퉁이고 그야말로 어리석은 사람이로구나. 아침이면 잠결에 들려오는 나뭇가지 뚝뚝 꺾어 가마솥에 불 넣는 소리, 가마니 짜는 소리, 침을 뱉어 가며 아버지가 새끼줄 꼬는 소리, 와르르릉 가마솥 뚜껑 여는 소리, 콩나물시루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 아랫목에 묻어 둔 담북장 냄새와 메주 띄우는 냄새, 쥐가 뚫어 놓은 구멍으로 스며들던 냇내와 고구마 통가리에서 나는 흙냄새가 엊그제처럼 새삼 다시 생각나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내가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고 보니 그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알게도 되었는지 모르겠고 아침이면 학교 간다고 나서며 돈 달라고 손 벌리는 자식들 무서워 뒤꼍에 숨었다던 어머니의 마음 언저리에나 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이 글에서는 나와 함께 살다가 어른이 되거나 도시로 나오면서 두고 온 것들의 목록을 하나씩 적어 보려고 한다. 어릴 적 친구를 만나듯이 아니면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인형이나 장난감을 다락이나 창고에서 우연히 발견하듯 읽어 주면 좋겠다.
전북 장수군 신무산 뜬봉샘에서 시작된 강물은 물뿌렝이 마을을 지나고 무주 진안을 지나고 충북 영동을 거치며 내가 사는 마을 앞을 지나가면서부터 제법 큰 강물의 태가 나기 시작한다. 각지에서 나온 도랑과 시냇물이 합수되면서 나루를 만들고 철길과 다리를 만들면서 수레와 차가 다니고 물가에 사람 사는 마을까지 만들어 까치집처럼 둥둥산이로 지붕을 잇대어 집 짓고 돌담을 쌓고 사람들이 모여 산다. 곳곳이 산이라 앞을 봐도 답답하고 뒤를 봐도 첩첩한 산골 벽지 내륙의 한가운데 그나마 밭이라고 있는 것은 소도 쟁기를 끌다 구른다는 비탈이고 논이라고는 손바닥만 한 하늘바라기 천수답뿐인 궁벽한 곳에서 나는 태어났다. 이 척박한 땅에서 굶어죽지 않고 살아 보려고 내 부모님은 눈만 뜨면 풀방구리 쥐 드나들 듯 뭐라도 물어들여야 살지 밥 먹는 입들 무섭다고 해 뜨기 전부터 해지고 난 뒤까지 몸뚱이 가루가 되도록 일을 했다. 어떻게든 새끼들만은 무골충이로 살지 말라고 한 몸 거름 되어 새끼들 밑으로 고스란히 밀어 넣고도 모자라 대대로 이어 온 전답까지 팔아 새끼들 밑에 거름으로 넣었다. 지금이야 태생이 뭐 그리 중요하진 않으나 시골에 눌러앉은 나는 곳곳의 자연부락들과 무슨 무슨 ‘골’이나 ‘티’, ‘미’로 끝나는 이름을 가진 자연부락들의 내력을 굳이 일러주지 않아도 알고 있으니 여기 토박이라 하겠다. 다들 사는 형편이 비슷비슷했고 살아온 환경이 같았으니 가난이라는 게 뭐라는 것도 잘 몰랐다. 여름이면 강가에서 다슬기 잡고 물고기를 잡으며 눈만 하얗도록 검게 그을리며 놀고 겨울이면 온 산을 헤매 다니며 토끼나 노루를 쫓으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강물과 가깝고 산속에서 어린 뼈를 키워 왔으니 지금 돌아보면 복된 유년을 누렸다고 할 수 있다. 농경사회의 끄트머리에서 나는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마을은 충북 옥천과 영동의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마을을 휘감으며 금강이 흘러갔다. 강물에 갇힌 마을이라 버스는 아직 다니기 전이었고 강물 위로는 높다랗게 붉은 철교가 놓여 경부선 기차가 다녔다. 아직 전기가 들어오기 전이라 호롱불이나 호야로 밤이면 불을 밝혔다. 겨울날 아침이면 아버지가 쇠죽솥에 불을 넣느라고 뚝뚝 나무를 꺾어 불을 넣는 소리를 듣거나 와르르릉 솥뚜껑 여는 소리를 듣곤 했다. 냉골이던 아랫목이 따뜻해지면 혼곤히 잠이 다시 들었다. 어머니의 학교 늦는다는 소리에 늦게 일어나 나를 데리러 온 이웃 친구들과 학교에 갔다. 아침마다 기차로 통학하는 형들과 대전으로 나물 팔러 나가는 아주머니들이 통근차를 타려고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서 나왔다. 기차말고는 다른 교통수단이 없어서 기차를 놓치면 가까운 장을 보러 가려 해도 배를 타고 강을 건너 한참을 걸어 나가야 했다. 누나는 중학교 겨우 마치고 구미 공단으로 떠났고 머리가 좋았던 형은 청주로 고등학교를 진학해서 집을 떠났다. 어머니가 몸이 아파서 안 나려다가 늦게사 들어서는 바람에 낳았다는 나는 손위 형과 일곱 살이나 터울이 져서 혼자 지낼 때가 많았다. 겨울방학이면 내려온 형의 가방에서 나온 지난 교과서들과 누나가 할부로 들여온 세계문학전집을 읽으며 방학을 보내곤 했다. 마을 아래 커다란 저수지가 있어 못골이라고 했다. 저수지는 깊고 푸르둥둥한 빛을 띠고 있었으며 말풀이 드문드문 자라고 있었다. 저수지 아래도 마을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에 전기가 들어왔다. 지금도 동년배들이나 손위 어른들에게 이런 소리를 하면 새삼 다시 돌아본다. 당신 나이에 그런 곳이 있고 그런 데서 어떻게 살았냐면서 웃기도 한다. 마치 전설의 고향에나 나오는 이야기인 듯 놀라기도 하고 내 글을 보고는 연배가 본인들보다 한참 높거나 비슷한 나이의 어른이 쓴 글이라고 생각했다며 웃는 이들도 있다.
여름이면 우리는 방죽이나 산에다 소를 풀어 놓고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이 나오는 만화영화를 보았고 『어깨동무』와 『보물섬』, 길창덕과 허영만, 이상무의 만화를 읽었으며 얼기설기 뗏목을 엮어 저수지에 띄우기도 했다. 저수지 물속엔 자라가 살았고 붕어며 잉어도 살았으며 얕은 데로는 피라미 떼가 헤엄쳐 다녔다. 가끔 물 위에 둥둥 떠서 숨을 쉬는 자라를 볼 수도 있었다. 저물녘이면 저수지 이쪽에서 저쪽으로 빗방울이 떨어지듯 피라미들이 뛰어올랐다. 피라미가 뛰어오른 자리마다 둥근 파문이 겹치고 포개지며 저수지가 일렁였다. 퍼런 인광이 날아다니고 뱀들이 대가리만 내밀고 건너편으로 헤엄쳐 건너가고 말풀 같은 머리카락을 풀고 일어서는 물귀신의 기척도 들리는 듯했다.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얘야, 물귀신은 저 있던 자리에 꼭 다른 사람을 데려다 놓아야 저승으로 간단다. 자라는 용왕님의 화신이란다.”
해마다 저수지 같은 자리에서 익사 사고가 났다. 그중에는 도시로 돈벌이 나갔다가 배가 불러 돌아온 누나들도 있었고 동갑내기 친구도 있었으며 물에 빠진 동생을 구하고 죽은 친구네 형도 있었다. 죽은 자식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던 그 아주머니의 울음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히 들리는 거 같다. 해토머리면 얼어붙었던 저수지 얼음장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피이이이잉 피잉― 그 소리는 물에 빠져죽은 사람들의 울음소리 같기도 해서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프기도 했다. 좀 머리가 굵으면 우리는 헤엄쳐 저수지를 건넜다. 그 무렵 또래들 가운데 저수지 건너기가 통과의례처럼 되어 있어서 저수지를 헤엄쳐 건너갔다 오지 않으면 겁쟁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저수지 가운데쯤에서 힘이 빠지면 나는 온몸에 힘을 빼고 드러누웠다. 송장헤엄이라고 했는데 배영처럼 드러누워 발만 천천히 저으면 부력으로 몸이 떠올라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었다. 발목이며 등을 스치는 말풀들이며 푸른 하늘과 물소리, 내가 내쉬는 숨소리까지 들으며 나는 저수지를 건넜다. 저수지 건너가 모새방이었다. 흙이 곱고 부드러워서 모새방이라고 불렀는데 버드나무들이며 왕골이 드문드문 자라고 버드나무 가지엔 물이 불었을 때 걸렸을 비닐이며 옷들이 너풀거렸다. 모새방에서 흙장난을 하고 놀다가 다시 힘이 나면 저수지를 건너 다시 돌아왔다.
쇠풀을 뜯기러 집에서 나올 때마다 엄마는 해가 저기 달이산 꼭대기를 넘어가면 집에 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쇠고삐를 뿔에 감아 산에다 풀어 놓고 저수지 방죽에 엎드려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었다. 채 뿔이 돋지 않은 송아지는 사람 손이 타서 강아지처럼 나를 따랐다. 송아지에게 풀을 뜯어 먹이고 뜸베질 장난을 해도 해는 도무지 안 기울어, 심심해진 나는 거미줄에 쇠파리를 잡아 던지면 거미가 재빨리 거미줄을 풀어 쇠파리를 옭아맸다. 메뚜기도 잡아 거미줄에 던지다가 잠자리 시집보내기며 바랭이로 우산 만들기를 해보기도 하고 강아지풀로 수염을 만들어도 보았다. 여름 해는 얼마나 긴가. 소의 배는 얼마나 큰가. 소는 먹어도 먹어도 계속 풀을 뜯었고 여름 해는 기울 줄을 몰랐다.
여름 해는 뜨겁고 길다지만
우리 소 배 속보다는 훨씬 작아
쇠풀 뜯기러 갈 때마다 엄마는
해가 저만치 달이산 넘어가면 집에 오랬는데
해는 져서 어두워졌는데도
우리 소는 아직 풀을 뜯어
(졸시 「여름 해는 얼마나 긴가」 ― 전문)
어둑발이 내리는 저수지 소롯길에서 나는 반딧불이 날아오르는 물 위에 대가리를 드러낸 채 헤엄치는 뱀과 후드득 이켠에서 저켠까지 뛰어오르는 피라미 떼의 군무를 보았다. 달빛을 깨며 일렁이는 물결들이 겹쳐지고 포개지면 사뭇 가슴이 들떠서 송아지를 데린 어미 소를 끌고 집까지 뛰어가기도 했다. 저수지 방죽 위에 올라서서 보면 멀리 우리 학교가 보이고 기차가 지나가는 것이 보이고 더 아래로는 금강이 구불구불 흘러가는 것이 보였다. 노을 진 황금빛 저수지 위로 뛰어오르는 피라미 떼가 만들어내는 작은 포물선, 소용돌이의 겹침과 번짐, 이윽고 떠오르는 달빛의 일렁이는 풍경들은 어린 마음에도 참 아련하니 아름답기도 해서 언젠가는 꼭 이 장면을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해 보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저수지 물을 터놓아 논에 물 대는 철이면 논 사이사이로 봇도랑물이 흘렀다. 논 가운데 학교가 있었다. 집에서 학교 교문 앞까지 봇도랑이 흘렀다. 봇도랑 물에 우리는 소나무 껍질로 만든 배를 띄우며 누구 배가 학교 앞까지 더 빨리 가나 내기를 했다. 군데군데 풀줄기에도 걸리고 어두운 수로도 건너서 우리 배는 학교 앞 개울에 닿았다. 몇몇 놓쳐버린 배들은 강으로 흘러가기도 했다.
아이들은 학교 갈 때 배 하나씩을 가지고 갔습니다 독새풀 욱은 논을 갈아엎고 모를 낼 즈음엔 봇도랑물이 학교 가는 길 행상집거리 너른 들을 굼실굼실 적시며 흘렀습니다 책가방 속에 숨겨 놓은 소나무 껍질 배에 이름을 써서 띄우며 학교까지 어느 배가 더 빨리 가나 내기를 했습니다. (···) 배가 학교에 닿을 즈음 교문을 지나친 물은 우리들 이름이 적힌 배를 데리고 오백거리 가린여울 쪽으로 흘러가곤 했습니다 그때 우리가 띄워 보낸 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우리 속에서 찰랑대던 물결은 말라서 다 어디로 갔을까요
(졸시 ― 「가린여울 사시는 유병욱 선생님께」 부분)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나는 시골에서 지냈다. 공부 같은 건 물론 하지 않았다. 지긋지긋하던 가난이었지만 친구들도 다들 비슷한 형편이었으므로 가난한 줄도 잘 몰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바로 시작했다. 주방기구회사의 창고장, 이삿짐센터 용역, 노동현장의 잡부, 공장의 시다 등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지금 직장에 자릴 잡았다. 사는 건 참 힘들었고 고됐다. 몇 번이나 무너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는지 모른다. 여기서 내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밤에 몰래 고향에 가기도 했다.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강변에서 먼발치로 바라보던 우리 집과 고향은 내 가슴을 다독이며 위로해 주었다. 집 앞 강물에 얼굴을 씻으며 나는 새로운 힘을 얻었다. 뒤돌아보면 참 힘들었다로 줄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무너지지 않게 나를 지탱해 주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 소를 몰고 돌아오던 늦여름의 저수지 풍경들이나 산마루 위로 돋아나던 달별 같은 것들, 재잘대며 흐르던 강물과 여울, 그리고 내 소박하던 피붙이들과 이웃들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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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5-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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