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노래를 찾아 다시 나선 길

  • 작성일 2005-10-28
  • 조회수 2,324

 

한동헌(‘노래를 찾는 사람들’ 대표)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을 재건해 보겠다고 나선 지 오 년이 넘은 것 같다. 무슨 생각에서 이렇게 무모한 일에 나섰는지 그때의 심정을 정확하게 되살릴 수는 없어도, 한국에 돌아와서 몇 년간의 대기업 생활을 마감하고 음악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던 그때의 의욕 과잉 상태는 기억한다. 지금은 그때보다는 조금 느슨해진 느낌이지만…….


어찌되었든 2004년부터 조금씩 재건의 움직임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8일 이대 대강당에서의 공연을 통해 노찾사의 새 출발을 공식화한 셈이다. 이번 공연의 홍보 과정을 통해서 노찾사의 유산이 만만치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그만큼 그동안 잠자고 있던 노찾사라는 사회적 존재를 다시 세상에 끄집어낸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던가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제는 세상에 떠벌린 죄를 수습하기 시작해야 할 때,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번에 각종 미디어와 인터뷰하면서 어쩌면 이렇게 궁금해하는 점들이 비슷할까라고 느끼게 만들었던, 어떻게 보면 판에 박은 듯한 질문들이 있었다. 이 글에서도 그 부분에 대한 일정한 언급없이 넘어가서는 안 될 듯싶다.


노찾사의 의미 혹은 역할에 대한 정리를 예외없이 주문받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노찾사의 탄생과 운영에 깊숙이 관련되어 있는 성공회대 김창남 교수와 재발매한 노찾사 2*3집에 해설문을 써준 신현준 박사에게 의존한 바가 크다. 즉, 노찾사라는 존재는 1980년대 한국 사회의 역사와 떼어놓을 수 없는 1980년대의 시대적 산물이었다는 것, 군사정권의 폭력에 맞서 가장 투쟁적이었고 급진적이었던 세대이자 “자신의 삶을 사회와 역사라는 프리즘을 통해 들여다볼 줄 아는 마지막 세대”의 음악을 대변하는 집단이었다는 것, 노찾사의 노래는 그 시대정신을 담긴 했지만 운동성에 함몰되지 않고 심미성을 추구했으며 나름대로 성과를 냈다는 것 등이 내 답변의 요지였다.


이번 공연의 배경이나 동기로는 2002년 노무현 바람 이후 사회적 흐름과 노찾사 동문들의 음악에 대한 갈증 혹은 열정,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노찾사의 재출발을 공식화해야겠다는 필자의 전략적 판단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현재 우리 대중음악계가 드러내고 있는 문화적 불모성과 무방향성에 대한 또 하나의 안티도우트(antidote)로서 노찾사라는 유산을 되새겨봐야 한다는 문제의식과 비록 전통을 운위하기에는 시기적으로 오래되지 않은 무엇이지만 노찾사가 추구했던 예술적 지향성에 대한 재조명, 미완으로 그친 예술적 시도의 창조적 계승이 우리 음악문화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이 이 모든 노력의 기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공연에 대한 다양한 반응들은 나로 하여금 노찾사 앞에 놓인 과제의 무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음향이나 조명, 영상 등 기술적인 부분에서의 미비한 점들은 차치하고라도 노찾사의 음악을 익히 알고 있던 관객층과 그렇지 않던 (아마도) 소수 관객층 사이의 반응 차이는 흥미로운 것이었다. 대개는 젊은 그 소수의 관객들에게 노찾사의 노래들은 오히려 신선하게 들렸던 것 같다. 음악 스타일이나 가사가 자신들에게 친숙한 요사이 노래들과는 또 다른 경계를 느끼게 해준 모양이었다. 그래서 좋았다는 반응이었으니까.


물론 착각하지는 않는다. 많은 관객들에게 이번 공연에서 불렸던 노찾사의 이전 노래들이 비록 새로운 편곡의 옷을 입었을망정, 아니 바로 그것 때문에 예전의 감동이나 울림을 주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명심하고자 한다. 이제 삶과 세상에 대해서 다르게 느끼고 있을 그들에게 어떻게 다시 아름다움과 희망을 원하게 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가 강요받고 있는 자본주의적 삶과는 다른 삶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과거의 혁명적 낭만주의가 아니더라도 노래에는 그런 힘이 있는데…….


노찾사는 앞으로도, 신현준의 용어를 따르자면 ‘정치적 올바름’과 ‘심미성’ 혹은 ‘미학적 완결성’ 추구라는 어려운 지향점을 음악적 정체성의 중심에 두고자 한다. 이런 예는 한국 사회에서도 김민기와 문승현이라는 탁월한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찾을 수 있지만, 소위 월드뮤직이라고 뭉뚱그려 일컬어지는 비영어권 음악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카에타누 벨로주(Caetano Veloso), 질베르투 질(Gilberto Gil), 빅터 하라(Victor Jara), 비올레타 파라(Violetta Parra), 킬라파윤(Quilapayun), 아타우알파 유팡키(Atahualpa Yupanqui),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와 같은 브라질 MPB(musica popular Brasileira), 칠레의 누에바 칸시온(nueva cancion), 아르헨티나의 누에보 칸시오네로(nuevo cancionero)라는 새로운 흐름을 각각 만들어내고 이끈 대표적 아티스트들의 음악이 부러운 사례들로 여겨진다. 문학적인 가사, 서구 팝과 클래식 음악의 분방한 혹은 섬세하고 세련된 느낌, 또 자신들 전통 민속음악의 진솔함을 성공적으로 결합했기 때문이다. (소사는 창작자는 아니지만 작품의 탁월한 해석자로서) 그들은 공히, 그러나 물론 각자의 방식으로 노래에 있어 민중적이며, 또 미국과 유럽 음악에 대비해서 자신들 음악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탐구한 성과를 훌륭한 작품들로 보여준 성공적인 예술가들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사회를 억압한 독재정권에 맞서 저항했던 용기와 연대 정신의 소유자들이기도 했다. 유럽의 경우 이탈리아의 좌파 음유시인 파브리치오 데 앙드레(Fabrizio de Andre), 세계적인 수준의 클래식 및 영화음악 작곡가이면서도 자기 나라의 민속음악을 탐구하고 대중음악의 경계를 넘나든, 그리고 군부독재에 저항했던 현대 그리스 음악의 두 거장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와 마노스 하지다키스(Manos Hadjidakis)가 있다. 아프리카, 아랍권, 팔레스타인, 미국, 캐나다, 그리고 아시아에도 우리가 참고할 사례는 많다.


한국 사회에서 노찾사만이 노래를 찾는 존재는 물론 아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우리보다 앞서 간 이들과 전세계적 차원에서 교류하며 배워 나가고자 한다. 앞으로 노찾사의 성패는 대중예술로서의 음악 영역에서 당대 한국 사회의 삶과 그 현실을 진실하고 깊이 있게 담아내는 지성(知性)과 영혼(靈魂)의 울림을 가진 노래를 여하히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나는 본다. 물론 오락거리로서의 노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그 오락으로서의 노래조차도 우리의 귀와 눈을 난타하는 작금의 노래들보다는 좀더 재미있고 멋질 수는 없을까 하는 불만은 품고 있지만). 노래의 개념, 아름다움의 개념이 고정불변인 것이 아님은 음악사나 예술사를 통해서 거듭 입증된다. 이제 노찾사는 노래와 아름다움의 또 다른 지평을 찾아서 끝없는 탐구와 창조의 험난한 길을 다시 떠난다.《문장 웹진/2005.11》


추천 콘텐츠

소년, 지구 종말의 날까지 분열하라

소년, 지구 종말의 날까지 분열하라 김지선 1 지구처럼 돌아가는 월세, 지구처럼 냄새나는 음식물 쓰레기, 지구처럼 막히는 싱크대, 곧 멸망할 작은 행성을 뒤로 하고 우주를 향해 눈꺼풀을 밟고 고래는 푸른 등을 돌린다 푸른등돌고래는 갈 곳 없는 포유류가 되어 강물에 몸을 담근다 위험한 가정에 등을 돌리지 못하는 고래 한 마리 브래지어에 너를 매단다 언젠가는 멸종하겠지만 고래는 그런 것이고 너는 흐를 것이다 ― 「고래를 잡는 아이를 위한 안내서」 중 세상은 결국 파국을 향해 간다. 당연하게 멸망은 예정되어 있고, 우리는 흐를 것이다. 정규와 비정규, 주류와 비주류, 일류와 삼류가 뚜렷하게 구분된 세상 속에서 혁명은 무력하고 광장은 추억이 되었다. 우리는 가면을 쓰고, 환상을 내면화하며 지겨운 시간을 견딘다. 종말을 향한 불안한 예감, 불길한 전조 속에서 우리에게 가능한 일이란 지루하게 화석화되고 무기력하게 시간을 죽이는 것뿐. 그밖에 선택이란 없어 보인다. 서효인 시의 화자들은 대부분 그렇게 무기력하다. 세계의 불합리와 부조리를 체득한 자의 무미건조한 발성이 시집을 가득 채운다. 찢기고 구워져 마요네즈에 찍힌 오징어처럼 아스팔트에 구워져 바퀴에 깔리는 환경미화원의 최후(「목격자」), 구운 토스트가 된 채 이틀간 방치된 할망구의 죽음(「냄새나는 사람」)을 읊조리는 목소리는 연민조차 거세되어 냉소를 자아낸다. 냉소란 본래 자조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시에서 삼류 인생들이 사물로 환치되는 것은 자본의 부조리한 체제가 뼛속까지 내면화된 수동성에 대한 적절한 은유다. 그렇지만 서효인 시를 읽는 즐거움은 이런 날카로운 비판적 사회학을 발견하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의 어떤 시들은 의외의 전개로 상황을 밀고 나가는 미성숙한 도발을 그려낸다. 시를 읽어 가다 번쩍 눈이 뜨이는 순간은 바로 그런 똘끼를 발견하게 됐을 때다. 그것은 지루한 시간을 이탈시키는 경쾌한 해방감이며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한다. 서효인의 시가 전하는 즐거움은 시집의 정교한 배열을 주시할 때 더욱 강렬해진다. 시집은 , , , 의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에 따라 아이에서 성인으로 변화하는 시적 페르소나는 그의 시를 성장문학의 하나로 읽게 만든다. 상처의 시간을 딛고 견고해지며 어른으로 자라나는 통과의례는 성장문학이 거치는 당연한 수순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시선이 성장문학에 대한 여타의 방식을 뒤집는다는 것이다. 시에서 어설픈 미성숙의 시간이야말로 존재감이 최고조로 고양된 순간으로 격상된다. 2장의 시선을 확보한 뒤에 다시 읽는 1장의 반항적 소년기는 청년이 되어 버린 시적 자아가 취해야 할 행동 지침을 제시하지 않는가. 3장의 성인이 된 아이의 무기력을 거쳐, 4장 연작은 성인이 된 후에도 우리에게 남은 미성숙의 페르소나를 다시 한 번 이끌어낸다. 이런 서사적 배치는 강렬한 메시지를 내재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혹 우리가 감지하는 것 이상으로 서효인의 시는 불온한 전복의 수사학으로 무장된 건 아닐까? 막연한 의혹을 해결하기 위해 그의 시에 천천히

  • wikisoft
  • 2010-07-30
시 쓰고 자빠졌네

시 쓰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누군가에게 자주 두들겨 맞았고, 누군가에게 가끔 린치를 가하던 시절이었다. 이웃 여고 문예부 아이들이 어쩐지 예쁠 거 같아서 문예부실을 전전했다. 그리고 백일장에 나가곤 했다. 물론 남달리 예쁜 아이는 없었지만, 어쨌든 17세 남녀가 교복을 입은 채로 노래방에서 듀스나 룰라, 혹은 투투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모습은 남달리 아름다웠다. 되도록 빨리 노래방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사바사바, 시를 썼다. 빨리 써야 했다. 시는 최초의 노래였으므로. 엉덩이를 두드리듯, 천사를 찾아. 발라드를 부르며 감정 과잉에 빠지는 철수에게 영희는 이렇게 말한다. 시 쓰냐? 그때 우리는 원고지를 눕히던 누런 잔디에서, 어두운 노래방에서, 혹은 밀도가 높은 교실에서 어떤 감정 속에 놓여 있었을까. 난 누군지 또 여기는 어딘지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분노에 가득 차 교복을 줄이고 담배를 숨기고 몰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수채화 대신에 야간 자율 학습 감독을 주로 하던 미술 선생은 또 말했다. 또, 또 시 쓰냐? 시화전 제출 작품에서 피 흘리는 고등어를 그려 놓고 ?어느 고딩의 죽음?이라 제목을 붙이며 나는 전위를 담당한 듯 당당했다. 부끄러움이 없는 남자였다. 미술 선생에게 욕을 먹을 때에도, 맞을 때에도 나는 부끄러움을 몰랐다. 대한민국 학교 다 족구하라 그래. 시 쓰고 자빠졌다, 정말. 정말이란 말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본다. 오래 생각하는 버릇은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최대한 짧고 단순하게 사고한 것으로 보이는 일들이 생각보다 빠르고 무식하게 벌어지고 있다. 정말? 시집을 묶어내던 중에 바위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 그 부엉이는 정말 새였을까. 도심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었다. 그 망루는 정말 구름이었을까. 모두 정말이냐고 정색하며 물어 볼 만한 일들이었다. 분노가 치민다. 지금 나와 싸우자는 건가? 그런데 싸우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아니다. 싸움은 끝났다고, 이제 싸움이 아닌 경쟁의 시대라고 배웠다. 나는 그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화가 났다. 사실 싸움보다 훨씬 경쟁이 무서웠다. 사건은 이미지가 되는 순간 거짓말이 된다. 이 모든 게 차라리 멋진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지만, 이것은 너무나 끔찍한 거짓말. 난삽한 이미지.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 그러므로 차라리 보이는 게 진실이라고 믿어 본다. 이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진실이 시의 배후가 되어 시에 맘껏 개입해도 나는 좋다. 시가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기꺼이 네가 그렇게 하라. 가져간 나의 반쪽! 때문인가. 이제 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리얼리스트 되자. 모던한 리얼리스트가 되자. 모더니스트가 되자. 리얼한 모더니스트가 되자. 장난하느냐고? 그렇다면, 불길한 장나니스트라고 해 두지 뭐. 꼴에 시랍시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시가 좋다. 그리고 시가 밉다. 사랑하고 미워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처음 증상을 보일 때는 이렇게 데뷔를 하고 시를 쓰리라 짐작하지 못했

  • wikisoft
  • 2010-07-15
일본 소설, 한국 시

일본 소설, 한국 시 한성례 한국에서 일본소설의 베스트셀러 현상 한류바람이 뜨겁게 일본 열도를 달구기 시작한 2000년 이후부터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해왔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많은 작가가 나올 정도로 한국은 일본소설 홍수 시대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일본소설가들조차도 왜 일본소설이 한국에서 그렇게나 많이 팔리는지 몹시 궁금해 한다. 이에 대한 일본 신문의 인터뷰나 원고의뢰가 있을 적마다 나는 현재 한국에서의 한국시에 비유해서 설명을 한다. 이전에도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종종 많이 팔렸다. 70년대 중반에 첫 출간된 무라카미 류(村上龍)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해적판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출판금지서임에도 안 읽은 사람이 없을 만큼, 문학이나 예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필독서이고 바이블이었다. 1999년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어 커버에 비닐을 씌워 19세 미만 구독불가로서 출간된 후에도 쇄를 거듭하며 읽히는 소설이다. 또한 1989년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란 이름으로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소설은 당시 크게 각광을 받았고 지금도 계속해서 읽힌다. 당시 한국은 민주화 쟁취와 맞물려 자의식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향하던 시기였다.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상태여서 사회,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했고, 급변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감, 고독, 상실감 등이 당시 한국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과 겹쳐지면서 이 소설에 크게 공감했다. 더욱이 하루키의 가독성 높은 문장은 금방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한편으로 문학의 구도자 같은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의 소설도 여러 편 번역 소개되었는데, 이는 주로 문학 창작자들이 마니아였다. 하지만 일본소설의 인기는 단편적일 뿐 전반적인 경향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구소설이 중심을 이뤘다.그러던 것이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쓰지 히토나리, 히라노 게이치로, 요시다 슈이치 등 젊은 작가와 미야베 미유키, 스즈키 코지,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미스터리 소설과 나오키 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 수상작이 2000년 이후에 대거 한국에 번역 소개되었고, 대형서점에는 코너가 별도로 마련될 만큼 일본소설은 인기를 끌고 있다. 왜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일본소설은 재미있다. 독자를 의식하고 소설을 썼다는 게 금방 느껴진다. 말하자면 자신의 상품을 사줄 소비자의 위치에서 창작을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비현실적인 주인공을 통해 현실에서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의 일탈을 꿈꾸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일본소설의 주인공 젊은이들은 특별한 목표도 없고, 무기력하며 수동적이고, 나약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과 기존 질서에 따르지도 않고, 세상을 약간은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보편적인 부와 명예, 사회적인 안정 등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독특한 상상력과 가독성 높은 문장도 한 몫 한다. 최근 일본과 한국에서 밀리언셀러 판매 기록을 갱신하는 무

  • wikisoft
  • 2010-05-28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