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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지마 죽지마 부활할 거야

  • 작성일 2008-01-02
  • 조회수 3,510

 

쫄지마 죽지마 부활할 거야

? 한국문학 2007년 결산, 2008년 전망


                             

고봉준




1. 시간의 얼굴들


2007년, 우리 시대 문학의 행방에 대한 음울한 진단과, 그 음울한 현실 위에서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는 작가들의 고군분투가 묘한 불협화음을 연주하면서 한국문학을 이끌어 왔다. 평단을 뜨겁게 달구었던 비평적 화제들이 있었고, 몇몇 작가들의 작품집이 독자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는가 하면,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상상력과 실험적인 작품들이 평단과 매스컴의 관심사로 떠오르기도 했다. 2007년은 젊은 작가들의 약진이 돋보이고, 1990년대 작가들의 신작이 출간되고, 중견 작가들이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이면서 문학적 다양성을 확인시켜 준 해였다. 물론, 어느 시대에나 그 시대의 문학적 방향성을 규정하는 경향성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포스트 IMF 시대의 음울한 내면과, 불행한 실존 상황에 처해 있는 현대인의 운명을 형상화한 작품들에 집중되어 있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문학에서 일방향이란 ‘유행’과 ‘아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2007년 한국문학이 보여준 상상력의 다양성은 오래도록 기억될 만하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문학의 시장성을 염려하고, 시장에서의 선전을 강조한다. 또 외국문학의 성장을 염려한다. 물론, 문학이 ‘독자’와의 접촉면을 넓혀 간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대중적인 영향력이 곧 문학의 바로미터는 아니며, 마찬가지로 매스컴의 관심이 문학의 완성도를 보증하는 것도 아니다. 문학이 대중과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문학’의 성취가 ‘대중’이나 ‘매스컴’의 반응으로 환원되어선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또한, 문학이 반드시 국적으로 규정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외국문학이 아니라 질 낮은 외국문학의 무분별한 수입이다. 외국문학의 대중적 확산과 번역물의 급증은 문학의 시선으로 본다면 재앙보다는 축복에 가까운 일이다. 중요한 것은, 문학의 다양성, 즉 사유의 깊이를 담보한 다양성이다. 좋은 문학은 ‘위로’ 대신 ‘사유’를 강제한다.



2. 팩션과 장편, 그리고 비루하거나 공포스럽거나


2007년, 한국소설의 화두는 ‘팩션(Faction)’과 ‘장편’이었다. 1990년대, 한국문학이 문예지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소설은 단편의 르네상스를 구가했었다. 개인의 윤리에 의지하여 현실의 시간을 견뎌야 했던 1990년대의 작가들에게는 경험을 시간으로, 장편의 호흡으로 표출할 여유가 없었다. 여전히 신춘문예나 문예지의 공모 제도가 ‘단편’에 편중되어 있지만, 지난 시대가 당연하게 여겨 왔던 이 문학적 통념은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서서히 변하고 있다. 물론 ‘장편 대망론’이 문학적 완결성이 아니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통해서 증명되었듯이, 한국문학의 국제적 위상이나 시장성에 의해서 정당화된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최근의 출판시장에서 몇몇 작가의 장편이 대중적인 약진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대중적인 성공이 ‘장편’의 결과인지, ‘문명(文名)’의 결과인지는 재론의 여지가 있다.

팩션에 대한 관심은 최근 ‘역사소설’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졌다. ‘팩션’과 ‘장편’의 만남은 ‘역사소설’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낳았다. 독서시장의 뜨거운 반응이 말해주듯이 역사소설은 2007년 한국소설의 중요한 징후이기도 하다. 김훈의 『남한산성』, 신경숙의 『리진』, 김경욱의 『천년의 왕국』, 김별아의 『논개』, 한승원의 『추사』 등은 ‘역사’를 목적론의 바깥으로 견인하고, 역사적 장면 속에서 인간적 진실을 읽어냄으로써 한국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김훈의 『남한산성』은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삼전도의 굴욕’이라고 명명되는 47일을 배경으로 주전파와 주화파의 논쟁을, 그 ‘명분’과 ‘치욕’의 갈등을 소설화했다. 신경숙의 『리진』은 조선 말기 궁중무희였던 ‘리진’이 프랑스 공사와 결혼하여 프랑스로 건너갔다가 다시 조선에 돌아와 자살로 비극적인 삶을 마감하는 과정을 그렸다. 김훈이 ‘명분’과 ‘치욕’이라는 정치적이고 남성적인 시선으로 ‘역사’에 접근한다면, 신경숙은 ‘역사’라는 남성적 세계에서 배제된 한 여인이 ‘근대’의 폭력 앞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극화함으로써 ‘여성’을 역사의 역동적 주체로 포착한다. 그러나 최근 평단에서는 역사소설의 급증이라는 현상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근의 역사소설이 역사를 단순한 소재와 흥밋거리로 삼음으로써 소재주의에 함몰되고 있다는 것, 역사소설이 갖춰야 할 ‘역사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 등이 비판적 목소리의 논점이다. 그러나 최근의 역사소설들이 내셔널 히스토리를 의식하지 않기에 근대적인 역사소설의 연속선에서 보지 말고 이야기의 확장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옹호론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역사소설을 둘러싼 평단의 논란은 2008년에 접어들어 본격화될 전망이다.

역사소설과는 별개로 황석영의 『바리데기』,  박완서의 『친절한 복희씨』,  공지영의 『즐거운 나의 집』 등도 주목할 작품들이다. 바리공주 설화를 소설적으로 변용시켜 신자유주의라는 세계사적 현실을 조명한 황석영의 『바리데기』는 평범한 북한 가정의 막내딸 ‘바리’와 그의 가족들이 북한사회에 불어 닥친 식량난으로 인해서 흩어지게 되고, 중국에서 발 안마 기술을 습득한 그녀가 영국으로 밀항하여 파키스탄 2세 알리와 결혼하는 과정을 세계사적인 시각으로 그려낸다. 9?11 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사태까지를 포괄하고 있는 『바리데기』는 전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주자에 대한 폭력을 고발하는 한편, 폭력에 물들어 있는 세계의 현실에서 ‘생명’과 ‘비폭력’의 참다운 가치를 일깨운다.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같은 분쟁 지역의 현실을 담은 오수연의 『황금 지붕』, 베트남전의 상처, 팔레스타인의 분쟁 등을 소재로 채택하고 있는 김남일의 『산을 내려가는 법』도 신자유주의의 지구적 확산과 재편에 대한 소설적 응전의 문제를 포착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문학 페스티벌 같은 행사가 증명하듯이 연대, 이동, 이주 같은 전지구적 현상에 대한 소설적 관심은 내년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올 한 해 중견 작가들의 소설은 독자 대중의 꾸준한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평단의 긍정적인 호응을 이끌어낸 것은 정작 중견 작가들이 아니라 젊은 작가들이었다. 그들은 비록 시장에서의 성공을 보장받진 못했지만 대신 일정한 독자층을 확보함과 동시에 비평가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어냈다. 시장은 중견을, 평단은 젊은 작가들을 선택했다면 지나칠까. 주지하듯이,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는 포스트 IMF 시대의 상상력과 감수성이 짙게 투영되어 있다. 오늘날 젊은 소설은 연애하지 않는다. 그들의 소설은 삶의 비루함을 타전하지만, 결코 자신들의 상처를 과장하거나 섣부른 화해를 예언하지도 않는다.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는 ‘방’이라는 자아의 공간을 잃어 버리고 ‘여인숙’과 ‘반지하방’을 전전하는 가난한 젊은이들의 출구 없는 삶을 덤덤하게 그려낸다. 김미월의 『서울 동굴 가이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편의점’과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원룸에서 혼자 살아간다. 그리고 최근 발표된 황정은의 「오뚝이와 지빠귀」에는 실업으로 인해 난쟁이가 된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물론 젊은 소설이 IMF 이후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가난’과 ‘실업’의 문제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편혜영, 백가흠, 김태용의 소설은 ‘일상’이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위험과 공포의 맨얼굴을 드러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편혜영의 첫 번째 소설집 『아오이 가든』이 피 냄새를 풍기는 시체들의 세계를 보여 주었다면, 2007년에 출간된 『사육장 쪽으로』는 ‘일상’에 스며든 ‘공포’의 흔적들을 예리하게 포착함으로써 ‘공포’와 ‘일상’이 분리될 수 없음을 환기하고 있다. 동물원, 택배, 전원주택, 회사원처럼 우리가 ‘일상’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대부분 익숙함의 가치로 인식되지만, 작가는 일상의 평온함이 한 순간 공포로 돌변할 수 있는 위험을 외면함으로써만 가능하다는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냄으로써 ‘희망’과 ‘불행’의 거리에 대해 통념을 뒤흔들어 놓는다. 백가흠의 소설집 『조대리의 트렁크』는 유아 유기와 영아 매매, 노숙자와 가출 청소년 등처럼 ‘가족’이라는 전통적 집단의 바깥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비루한 삶을, 그리고 우리 사회가 애써 외면하려 하는 삶의 비극적인 순간들을 철저하게 파고 들어간다. 김태용의 『풀밭 위의 돼지』는 해체를 향해 치닫는 가족의 형상을 통해서 상징계의 외부를 드러낸다. 가령 「오른쪽에서 세 번째 집」에는 가부장적인 절대 권력을 휘두르다가 어처구니없이 죽는 아버지의 형상이 등장하는데, 포스트 IMF적인 상상력에 근거하고 있는 젊은 소설들과 달리 김태용은 ‘가족’을 억압적이면서도 무용한, 동시에 끝끝내 떨쳐 버릴 수 없는 상징계의 권력으로 의미화한다. 이들의 작품 외에도 현대인의 내면적 상처와 고독을 특유의 소설적 문법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윤이형의 『셋을 위한 왈츠』, 전통적인 소설 문법의 바깥에서 서사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는 천명관의 『유쾌한 하녀 마리사』, 상처받은 인간들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면서 고통의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윤성희의 『감기』, 사회의 변방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냉소적 시선을 전면화하고 있는 권여선의 『분홍 리본의 시절』 등은 주목할 만한 성과이다.

중견과 젊은 사이에 끼여 있는 작가들이 있다. 2007년은, ‘새롭다’는 수식이 썩 어울리지는 않는, 동시에 출생연도로 작품의 경향을 환원시키기도 어려운 이들의 작품 활동이 두드러졌던 한 해였다. 김연수, 은희경, 윤대녕, 한강, 조경란, 공선옥이 그들이다. 김연수와 한강은 같은 1970년대 생이지만 문학적 출발점은 사뭇 다르다. 김연수의 장편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그의 문학적 원적(原籍)인 1991년을 출발점으로 삼는 한편, 1990년대를 주변부에서 살았던 다양한 인물들의 내면을 겹쳐 놓음으로써 개인과 역사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모색을 시도한다. 한편 한강의 소설집 『채식주의자』는 식물성의 윤리와 여성성의 결합을 바탕으로 세계의 모든 폭력이 동물성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식물성의 철학적?윤리적 가능성을 일깨워 주었다. 1990년대의 대표 작가인 은희경, 공선옥, 조경란, 윤대녕의 신작 출간도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특히 현대인의 고독과 분열을 특유의 섬세한 언어로 묘파한 은희경의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내면의 독백을 통해서 요리와 욕망의 관능성을, ‘혀’와 ‘음식’이라는 감각적 소재를 통해서 굶주림과 갈망의 순간성을 보여 주는 조경란의 장편 『혀』는 그들의 소설이 1990년대와는 사뭇 다른 지반 위에서 다시 출발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읽혔다.



3. 미래파의 여진, 그리고 서정시의 새로운 표정들


2005?2006년의 시단(詩壇)은 ‘미래파’의 열기로 뜨거웠다. 전통서정시의 동일성 문법에 대한 젊은 시인들의 반발과 시적 실험은, 옹호와 비판의 입장을 떠나서, 새삼 시(詩)의 실정성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비평계는 이들의 시적 실험에 ‘환상’ ‘뉴웨이브’ ‘다른 서정’ 등의 논쟁적인 언어로 화답했고, 시 양식에 대한 이들의 실험은, 최근의 문예지 공모작들이 보여 주듯이, 유사한 경향들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작용했다. ‘미래파’ 논쟁은 비평적 자의식이라는 매우 역설적인 문제로 귀결되고 말았지만, 2000년대 한국시의 한 단면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현상이었다. 

2007년, 시(詩)의 화두는 ‘미래파’의 두 번째 시집이었다. 첫 시집으로 평단과 시단의 시선을 한꺼번에 받았던 김행숙과 황병승이 두 번째 시집을 출간했다. 전통적인 서정의 문법이 ‘나’라는 기원에서 출발하는 내면적 자아의 서사, 즉 동일성의 세계를 지향한다면 김행숙의 『이별의 능력』은 견고한 자아, 즉 ‘나’의 고유성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포기함으로써 오히려 ‘변형’의 가능성에 스스로를 열어 놓는다. 그의 시에서 엘리스의 세계, 패러독스의 세계, 동화의 세계 등으로 변주되는 ‘기체의 형상’은 견고한 고체의 세계를 해체하고 변이의 능력을 긍정함으로써 독자들을 검은 구멍의 세계로 인도한다. 첫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로 독자와 평단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황병승은 『트랙과 들판의 별』에서 일상적 어법은 물론 전통적인 시의 문법마저 부정하면서 하위문화와 퀴어적인 상상력을 동원한 ‘시코쿠’의 변주곡들을 들려 준다. 김행숙의 시가 견고한 ‘세계’의 형상을 갖추고 있어 ‘믿음’ 없이 접근하기가 어렵다면, 황병승의 시는 “줄 줄 줄 써 버리는 시”라는 구절처럼 ‘의미’의 바깥에서 ‘놀이’로서의 시를 펼쳐 보인다. 

2007년의 시단(詩壇)은 미래파의 여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007년에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젊은 시인들의 시집 출간이 두드러졌다. 그 중에서 주목할 만한 몇 권의 시집을 살펴 보자. 김경인의 『한밤의 퀼트』는 ‘퀼트(Quilt)’라는 시어가 암시하듯이, 통일성만을 기반으로 삼는 호모토피아(Homotopia)가 아니라 여러 장의 옷감들을 엮어서 만드는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의 세계를 ‘그림자’ ‘물’ ‘거울’의 이미지로 변주한다. ‘나’라는 주체를 분열과 해체의 대상으로 삼는, 동시에 스스로를 어떤 소리와 이미지의 매개체로 설정하는 이 낯선 익숙함이야말로 젊은 시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대표적인 경향이다. 사물과 타자를 ‘나’에 복속시키는 서정의 권위를 거부하고, 흑백으로 나뉘는 이분법을 벗어나, 내면의 웅얼거림이 펼쳐지는 장으로서 스스로를 개방하는 그의 시적 태도는 근대적인 인간 주체에 대한 새로운 반성을 요청한다. 박연준의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은 모성과 생명의 성스러움을 추앙해 온 여성시의 전통 바깥에서, 가부장적인 가족의 상징인 ‘집’의 바깥에서 새로운 여성시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그의 시에는 생명의 탄생에 대한 외경(畏敬)이 없다. 그녀는 모성의 산도(産道)를 ‘문란한 질’이라고 부른다. ‘음탕’과 ‘가난’이라는 화두로 자신의 출생을 정의하는 그녀의 시세계에서 성장은 곧 ‘늙음’이다. 그녀의 시는 이 우울함의 세계를 “이제 나는 남자와 자고 나서 홀로 걷는 새벽길/여린 풀잎들, 기울어지는 고개를 마주하고도 울지 않아요”처럼 견고한 고독과 명랑성으로 견딘다. 이원의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는 몸의 안과 밖을, 거울의 안과 밖을 넘나들면서 시를 이미지의 실험실로 바꿔 놓는다. 그의 시에서 ‘몸(신체)’은 ‘기관’들의 집합이 아니라 출렁거리는 ‘살’로 포착된다. ‘언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포착하려는 최근의 젊은 시인들과 달리 그는 ‘이미지’와 그것의 변태(變態)에서 새로운 시적 문법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의 시에서 ‘이미지’는, “제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의 시선은 안으로 향해 있다”라는 구절처럼, 객관적인 응시의 대상이 아니라 시인의 내면과 뒤섞이는 어떤 것이다. 언어-기호의 한계를 포착하고 그것 너머에서 시적 언어를 발견하려는 그의 시적 태도는 잔혹하지만 여전히 흥미롭다. 그 외에도 송승환의 『드라이아이스』, 조연호의 『저녁의 기원』, 최하연의 『피아노』, 김중일의 『국경꽃집』, 장이지의 『안국동울음상점』, 안시아의 『수상한 꽃』, 김이듬의 『명랑하라 팜 파탈』 등은 올해에 출간된 주목할 만한 성과들이다.

젊은 시인들의 시적 실험이 평단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반면, ‘문학상’으로 상징되는 문단과 대중의 평가는 전통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 시인들에게 집중되었다. 김선우, 신용목, 최금진, 김신용, 박성우의 시집이 여기에 해당한다. 김선우의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는 ‘모성’과 ‘자연’이라는 여성-서정시의 통념적 인식에서 한 걸음 나아가 지구적 현실에 대한 윤리적 성찰을 보여준다. 그의 시는 ‘사랑’이라는 상투적인 시어를 세상의 모든 상처 받은 것들을 향해, 지상의 가장 아프고 낮은 곳을 향해 뻗는 촉수로 사유한다. 신용목의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는 ‘문명’의 화려함을 한 줌의 재로 만들어 버리는 ‘바람’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근원을 향한 허기와 근대적 삶에 관한 성찰의 언어를 보여 준다. 그의 시에서 ‘바람’은 모든 언어의 출발점이자 인간이 끝끝내 돌아가 누워야 하는 근원적 자연의 세계를 상징한다. 김신용의 『도장골 시편』은 ‘부빔’과 ‘관계’의 윤리적 태도를 통해서 서정의 새로운 영토를 제시한다. 김신용의 시에서 ‘부빔’은 두 개체의 정체성을 전제하는 주고받음이 아니다. 그것은 “무게가 무게에게 짐 지우지 않는” 몸과 몸의 부딪힘이다. ‘나’라는 공화국의 주권을 해체하고 타자에게 스며드는 자연의 운동 상태에서 출발하는 시인의 시적 인식은 무관심에서 심리적 안정을 찾는 도시적 감각과 뚜렷하게 대비되면서 ‘문명’에 대한 성찰을 요청하고 있다. 최금진의 『새들의 역사』는 ‘가난’과 ‘궁핍’을 통해서 신자유주의 하에서 살아가는 주변적인 삶들의 절망적 현실을 시적 언어로 포착한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자연’을 문제 삼지도 않고 도시적 감각을 수긍하지도 않는 그의 투박하고 거친 언어들은 잘 만들어진(well-made) 시들이 보여 주는 안정감에 비해 커다란 감정의 울림을 갖는다. 소통 부재의 비정한 현실과 주변적 삶의 가난을 연결시켜 자본주의적 현실의 우울함을 극대화시킨 「지상의 방 한 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의 운명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한편 고비사막 여행 체험에서 자본주의적인 욕망의 무의미함을 발견하는 최승호의 『고비』, 자연 풍경과 내면의 공명 체험을 바탕으로 ‘변화’를 삶의 존재방식으로 인식하는 조용미의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에서 출발하여 알래스카의 극지(極地)와 몽골의 초원, 백두산을 거쳐 지리산에 이어지는 긴 여정에 관한 기록을 담고 있는 신대철의 『바이칼 키스』, 글쓰기에 대한 자의식과 도시적 삶에 성찰적 시선을 겹쳐 놓은 문정희의 『나는 문이다』, 신자유주의 노동 정책 하에서 발생하는 이주 노동자의 문제와 우리 안에서 ‘타자’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아시아 여성들의 삶을 형상화한 하종오의 『국경 없는 공장』과 『아시아계 한국인들』, 억압적인 현실 속에서 기형과 불안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내면을 그린 길상호의 『모르는 척』 등도 2007년 한국시가 얻은 커다란 성과들이다. 이들의 시가 보여 주는 다양한 상상력과 인식의 넓이야말로 ‘새로움’ 이상으로 한국시를 견인하는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4. 쫄지마 죽지마 부활할 거야


언제부턴가 작품집을 읽을 때, 작가의 출생연도를 먼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작가의 문학적 성향이 출생연도로 해명될 수야 없겠지만, 2000년대 문학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이해가 세대 구분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 준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소설은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상상력에 힘입어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다.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상상력은 문학과 사회의 접점, 문학의 사회적 위치를 알려 주는 바로미터로 평가되어 왔다. 그들의 상상력은 한국문학의 ‘변곡점’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이들의 문학적 실험, 그리고 그 실험에 대한 평단의 응답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그리고 그 지속의 길이만큼 그들, 혹은 우리의 고전(苦戰)도 이어질 것이다. 외국문학의 강세를 알리는 암울한 전언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그러나 문학의 진정성은 어설픈 ‘위로’가 아니라 세계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촉발시키는 데에 있다. 문학은 결코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다. 2008년, 읽히지 않는, 팔리지 않는, 우리 시대 문학에 부탁하고 싶다. “쫄지마 죽지마 부활할 거야.”《문장 웹진/200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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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30
시 쓰고 자빠졌네

시 쓰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누군가에게 자주 두들겨 맞았고, 누군가에게 가끔 린치를 가하던 시절이었다. 이웃 여고 문예부 아이들이 어쩐지 예쁠 거 같아서 문예부실을 전전했다. 그리고 백일장에 나가곤 했다. 물론 남달리 예쁜 아이는 없었지만, 어쨌든 17세 남녀가 교복을 입은 채로 노래방에서 듀스나 룰라, 혹은 투투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모습은 남달리 아름다웠다. 되도록 빨리 노래방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사바사바, 시를 썼다. 빨리 써야 했다. 시는 최초의 노래였으므로. 엉덩이를 두드리듯, 천사를 찾아. 발라드를 부르며 감정 과잉에 빠지는 철수에게 영희는 이렇게 말한다. 시 쓰냐? 그때 우리는 원고지를 눕히던 누런 잔디에서, 어두운 노래방에서, 혹은 밀도가 높은 교실에서 어떤 감정 속에 놓여 있었을까. 난 누군지 또 여기는 어딘지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분노에 가득 차 교복을 줄이고 담배를 숨기고 몰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수채화 대신에 야간 자율 학습 감독을 주로 하던 미술 선생은 또 말했다. 또, 또 시 쓰냐? 시화전 제출 작품에서 피 흘리는 고등어를 그려 놓고 ?어느 고딩의 죽음?이라 제목을 붙이며 나는 전위를 담당한 듯 당당했다. 부끄러움이 없는 남자였다. 미술 선생에게 욕을 먹을 때에도, 맞을 때에도 나는 부끄러움을 몰랐다. 대한민국 학교 다 족구하라 그래. 시 쓰고 자빠졌다, 정말. 정말이란 말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본다. 오래 생각하는 버릇은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최대한 짧고 단순하게 사고한 것으로 보이는 일들이 생각보다 빠르고 무식하게 벌어지고 있다. 정말? 시집을 묶어내던 중에 바위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 그 부엉이는 정말 새였을까. 도심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었다. 그 망루는 정말 구름이었을까. 모두 정말이냐고 정색하며 물어 볼 만한 일들이었다. 분노가 치민다. 지금 나와 싸우자는 건가? 그런데 싸우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아니다. 싸움은 끝났다고, 이제 싸움이 아닌 경쟁의 시대라고 배웠다. 나는 그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화가 났다. 사실 싸움보다 훨씬 경쟁이 무서웠다. 사건은 이미지가 되는 순간 거짓말이 된다. 이 모든 게 차라리 멋진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지만, 이것은 너무나 끔찍한 거짓말. 난삽한 이미지.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 그러므로 차라리 보이는 게 진실이라고 믿어 본다. 이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진실이 시의 배후가 되어 시에 맘껏 개입해도 나는 좋다. 시가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기꺼이 네가 그렇게 하라. 가져간 나의 반쪽! 때문인가. 이제 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리얼리스트 되자. 모던한 리얼리스트가 되자. 모더니스트가 되자. 리얼한 모더니스트가 되자. 장난하느냐고? 그렇다면, 불길한 장나니스트라고 해 두지 뭐. 꼴에 시랍시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시가 좋다. 그리고 시가 밉다. 사랑하고 미워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처음 증상을 보일 때는 이렇게 데뷔를 하고 시를 쓰리라 짐작하지 못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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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15
일본 소설, 한국 시

일본 소설, 한국 시 한성례 한국에서 일본소설의 베스트셀러 현상 한류바람이 뜨겁게 일본 열도를 달구기 시작한 2000년 이후부터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해왔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많은 작가가 나올 정도로 한국은 일본소설 홍수 시대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일본소설가들조차도 왜 일본소설이 한국에서 그렇게나 많이 팔리는지 몹시 궁금해 한다. 이에 대한 일본 신문의 인터뷰나 원고의뢰가 있을 적마다 나는 현재 한국에서의 한국시에 비유해서 설명을 한다. 이전에도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종종 많이 팔렸다. 70년대 중반에 첫 출간된 무라카미 류(村上龍)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해적판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출판금지서임에도 안 읽은 사람이 없을 만큼, 문학이나 예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필독서이고 바이블이었다. 1999년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어 커버에 비닐을 씌워 19세 미만 구독불가로서 출간된 후에도 쇄를 거듭하며 읽히는 소설이다. 또한 1989년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란 이름으로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소설은 당시 크게 각광을 받았고 지금도 계속해서 읽힌다. 당시 한국은 민주화 쟁취와 맞물려 자의식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향하던 시기였다.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상태여서 사회,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했고, 급변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감, 고독, 상실감 등이 당시 한국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과 겹쳐지면서 이 소설에 크게 공감했다. 더욱이 하루키의 가독성 높은 문장은 금방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한편으로 문학의 구도자 같은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의 소설도 여러 편 번역 소개되었는데, 이는 주로 문학 창작자들이 마니아였다. 하지만 일본소설의 인기는 단편적일 뿐 전반적인 경향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구소설이 중심을 이뤘다.그러던 것이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쓰지 히토나리, 히라노 게이치로, 요시다 슈이치 등 젊은 작가와 미야베 미유키, 스즈키 코지,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미스터리 소설과 나오키 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 수상작이 2000년 이후에 대거 한국에 번역 소개되었고, 대형서점에는 코너가 별도로 마련될 만큼 일본소설은 인기를 끌고 있다. 왜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일본소설은 재미있다. 독자를 의식하고 소설을 썼다는 게 금방 느껴진다. 말하자면 자신의 상품을 사줄 소비자의 위치에서 창작을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비현실적인 주인공을 통해 현실에서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의 일탈을 꿈꾸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일본소설의 주인공 젊은이들은 특별한 목표도 없고, 무기력하며 수동적이고, 나약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과 기존 질서에 따르지도 않고, 세상을 약간은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보편적인 부와 명예, 사회적인 안정 등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독특한 상상력과 가독성 높은 문장도 한 몫 한다. 최근 일본과 한국에서 밀리언셀러 판매 기록을 갱신하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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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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