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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학의 이전과 이후 - 2000년대 이전과 이후의 우리시

  • 작성일 2010-01-16
  • 조회수 6,233


문장 좌담회

 

  

  

사회 : 조강석(평론가)

패널 : 진은영(시인), 조연정(평론가), 김춘식(평론가), 서동욱(시인, 평론가)

 

 

  

  

조강석(사회) : 반갑습니다. 연말이라 바쁘실 텐데 이렇게 좌담을 위해서 자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자리는 2000년대에 나타난 다양한 문학현상에 대해서, 특별히는 주로 시문학과 관련된 여러 현상들에 대해서 선생님들의 고견을 듣고 논의해보는 자리입니다. 사실 10년 단위마다 구획을 지어서 정리하는 습관도 조금 작위적이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 시단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큰 틀에서 세 가지 정도 범주를 정하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논의를 이끌어가고자 합니다. 우선, 우리 시단에 그 이전에 비해 지난 10여년 동안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지 듣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혹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서정이라는 개념 자체를 흔드는 지각변동에 비견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더불어서 특히 올해 2009년에 여러 가지 사회적, 문화적 조건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태된 물음 즉, 시와 현실의 관계 양상 등에 대해서도 말씀을 나눠볼까 합니다. 우선 첫 번째 주제인 2000년대 시단의 특징적 문학 현상에 대해 말씀을 나눠볼까요?

 

김춘식 : 먼저 2000년대 이전과 이후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이 실마리가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평론활동을 92년부터 했으니까 2000년대 이전의 현장비평 8년과 2000년대 이후 약 9년간의 현장경험에서 느낀 바를 한 번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92년 당시 평론활동을 시작할 때 80년대와 90년대의 분기점, 차이에 관한 논의가 한참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80년대 문학은 거대담론이었고 90년대 문학이 일상성과 작은 담론의 문학이다”라는 지금은 다소 상식적인 담론으로 논의를 시작 했었죠. 하지만 실질적으로 90년대 문학이 자기 나름의 특징을 갖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반이 아니라 90년대 후반 무렵, 그러니까 96, 7년이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보통 2000년 이전 이후를 편의적으로 나누지만 실제로 90년대적인 문학현상에서 2000년대적인 문학현상을 구분할 수 있는 시점은 2004, 5년이 지나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90년대 문학도 9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나름의 정체성과 모습을 갖추었듯이 2000년대 이후 문학도 중반기를 넘어가면서 뚜렷한 특징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합니다.

특히 서정의 문제에 대해 주로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90년대 후반기부터의 문학이 일상성의 문제를 건드리면서도 개인서정에 초점을 맞추었고. 2000년을 넘어오면서부터는 급격하게 자연서정이라는 경향으로 기울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2005년을 전후로 해서는 그런 현상에 대해서 반동적인 움직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개인서정이나 자연서정에 대해서 한국시의 주류론이 너무 한 쪽으로 기울었다는 비판이 있었고, 그런 비판을 받을만한 혐의가 실제로 없었던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2005년을 전후로 젊은 시인들이 대거 등장하고 90년대 세대의 시인과는 다른 감수성을 드러낸 것은 문단의 주목을 끌만한 중요한 사건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2000년대 전과 이후를 나누면서 문학개념의 범주와 가치관 자체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대적인 감수성의 조류가 한쪽으로 흘러갔다가 한쪽으로 흘러오는 과정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이 양자 간의 뚜렷한 차별점이나 차이점을 구별하기보다는 한국문학의 흐름의 방향이 어떻게 왔고 어떻게 나갈 것인가를 돌아보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경향의 문제나, 성향 한국문학의 가치관의 문제가 변화에 직면한 한 순간을 그대도 보여 준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고, 어느 정도는 과장된 평가에 의해 부풀려진 것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 부분을 좀 더 세부적으로 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조연정 : 김춘식 선생님께서 92년에 등단했다고 하셨는데, 저는 2006년에 등단을 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2000년대 시단의 특징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자리인데 그런 점에서 저에게 현장 경험은 많이 부족합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제가 등단했던 때가 바로 평단에서 ‘미래파’ 논쟁이 한창이던 때였어요, 등단 이후 몇 년 동안을 뒤돌아보면, 저에게는 그 시간들이 시단의 ‘새로움’이라고 하는 것을 충분히 흡수하기 위해 애썼던 시간이었던 듯합니다. 부끄러운 말이 될 수도 있지만 ‘새로움’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내보이는 평자이기보다는 새로움 자체를 흥미와 애정을 갖고 지켜봐온 독자의 한 사람이었다고나 할까요. 등단연도를 말씀드리면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2000년대 시단을 바라보는 저의 시선이 어느 정도 주관적이고 근시안적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2000년대 시단의 변모, 정확하게 말하면 2000년대 중반 이후의 시단의 변모에 대해 포괄적인 이야기를 먼저 해보려고 합니다. 좌담을 준비하며 여기 계신 선생님들의 글을 찾아 읽어보았는데요, 이번 계절에 발표된 조강석 선생님의 글(「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2)」, 『문학동네』, 2009 겨울)과 서동욱?김행숙 선생님의 글(「현대 시와 함께 하는 이동식 목축」, 『세계의 문학』, 2009 겨울)이 2000년대 시단의 지형도를 폭넓고 세밀하게 그려주셔서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그 구체적인 양상들에 대해서는 뒤에 이야기될 테니, 우선 저는 2000년대 시단의 변화를 ‘수용’의 관점에서 한 번 짚어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독자와 관련된 이야기일 텐데요, 이렇게 정리될 수 있겠죠. 잃은 것은 ‘독자의 양’이고, 얻은 것은 ‘독자의 질’이라고요. 2000년대 우리 시가 독자를 매우 ‘폭넓게’ 잃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원인이 이미 제출되었습니다. 인문학의 위기나 경제 불황에 따른 출판의 위기 등이 이야기되었고 (소설에 한정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문학의 종언’에 관한 담론도 지속적으로 반복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간 우리 시가 잃은 것이 독자이며 더 정확하게는 독자의 ‘공감’이라고 한다면 문단을 둘러싼 구조적인 변화보다는 작품 자체의 변모와 관련해서 생각해봐야 문제인 것 같습니다. 시와 독자가 더 이상 ‘공감’의 형태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이 2000년대 시의 새로운 변모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태를 견디지 못한 독자는 떠났고, 그 사태가 흥미로운 독자는 남았습니다. 남은 독자들이 일종의 ‘매니아’ 층을 형성하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죠. 앞서 2000년대 우리 시가 얻은 것이 ‘독자의 질’이라고 했는데, 이 말에 오해의 소지가 없지 않지만, 새로운 시에 대해 애정과 열정을 지닌 소수의 독자가 남게 되었다는 점에서 해본 말입니다.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최근 들어 작품과 독자의 친밀도가 더 높아졌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독자의 수가 절대적으로 줄어들었지만, 작품을 대하는 독자의 태도가 달라지고 그들이 작품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달라졌다는 점이 2000년대 시단의 새로운 변모인 것 같습니다.

더불어 이렇게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새삼 고민하게 되었다는 점이 2000년대 시가 얻은 것이고, 반면 ‘좋은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소홀하게 되었다는 점이 잃은 것이라고요. 김춘식 선생님께서 2000년대 중반 이후의 변화들을 결국 익숙한 것의 재출현이라고 보시는 듯한데, 지난 몇 년간의 새로움이 과연 전면적이며 근본적인 것인가에 대해서는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려운 듯합니다. 그러나 그 ‘강도’에있어서만큼은 2000년대 중반 이후의 변화가 분명히 문제적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조강석 선생님께서도 최근의 글에서 말씀하셨듯이,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은 시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 즉 ‘이것이 시인가’ 혹은 ‘이것도 시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도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새로움’의 정체가 분명해지기도 전에, 은연중 ‘새로운 시=젊은 시=좋은 시’라는 도식이 성립된 것은 아닌지, 그래서 이러한 도식의 폭력이 시단의 스펙트럼을 오히려 축소시킨 문제를 야기한 것은 아닌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몇 년처럼 문단에서의 새로운 시도들이 이처럼 열렬하게 ‘동시대적으로’ 각광을 받았던 적은 없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젊은 시인에 한해서 말씀드리면 우리 시대에는 ‘저주받은 걸작’도 별로 없는 듯합니다. 요컨대 새로움이라는 것이 좋은 시에 대한 기준을 축소시킨 것은 아닌지, 결론적으로 좋은 시를 판별할 수 있는 다양한 미학적 기준들을 상실토록 한 것은 아닌지도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2000년대 우리 시단이 얻은 것이 ‘시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라면, 잃은 것은 ‘좋은 시란 무엇인가’라는 미학적인 질문이 아닐까요. 더불어 이런 얘기도 가능할 듯합니다. 2000년대 우리 시는 다양한 담론을 내장하고 있는 시를 얻었습니다. 젊은 시들은 분명 여러 가지 철학적 담론의 도움으로 ‘깊이’를 지니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더불어 분명 시를 대하는 태도, 그러니까 시에 대한 감상법도 달라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은영 : 저는 2000년에 등단을 했는데요. 등단을 준비하면서 과연 제가 등단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90년대 후반의 등단작들, 또 많이 읽히는 작품들을 보면서 저의 시와는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고민 끝에 그래도 조금은 수용의 폭이 넓을 것이라고 생각한 잡지에 투고를 했어요. 등단 후에 보니까 그 즈음에 어떤 면에서 저와 비슷한 경향을 가진 시인들이 등단을 했고, 그 친구들이 2003~4년쯤에 시집을 내고 활동의 범위를 넓혀 가면서, 김춘식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문단에 큰 변화를 주는 흐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미래파 논쟁을 통해서도 이야기가 됐지만 그 시인들의 작품들 중에는 기존 시의 문법에서 보면 유기적인 구성을 탈피하는 것들이 많았지요. 비유하자면, 팔이 8개쯤 달리고 발이 10개쯤 달린, 기괴한 느낌을 주는 과잉과 초과의 시들이었어요. 사실 시인들으로서는 자신의 감각에 충실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시를 써나가는 수밖에 없었지만 두려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비평가들이 미래파라는 이름이 부정확하고 또 비평적 생산성이 크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을 자주 들었어요. 시인들의 경우, 자신들이 미래파로 불리는 것에 대해서 불평하기도 하고 부담스러워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어떤 부드러운 보호막으로 작용했다는 느낌을 가졌던 것도 같아요. 미래파 논쟁이 있으면서 미래파 시인들이 주류가 됐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 실제로 미래파 시인들이 느끼기에는 자유롭게 상상하고 쓸 권리에 대한 최소한의 인정을 받았다는 안도감 정도였지요. 미래파로 묶인 시인들을 보면 각자 저마다의 성향과 독특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권혁웅 평론가도 그 이름으로 강력한 비평적 규정력을 행사하려고 의도했다기보다는 그 자신이 시인으로서 지닌 모성적인 감수성을 발휘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시인들의 새로운 상상력이 충분히 성장하고 펼쳐질 수 있도록 그들을 보호해야겠다는 다정한 배려와 관심이 있었던 거죠. 그리고 그런 관심 속에서 비유기적이라고 비난받았던 상상력들을 충분히 밀어붙여볼 수 있었다는 점이 시인들에게는 창작의 소중한 힘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등단시절을 이야기하니까 문득 떠오르는 게 한 가지 있어요. 다소 엉뚱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신원주의적 환원의 위험이 있기도 하지만요. 보통 등단 사실을 알리면서 시인에게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으시잖아요. 그때 저는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고 말하고는 좀 후회했어요. 그 무렵 제 머리 속에서 시인이란 장정일 시인이나 최승자 시인처럼 학교를 어린 시절에 그만 두거나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들이고 학력이 높다는 건 왠지 시인으로서 자격미달이라는 생각을 하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냥 대학만 졸업했다고 말할 걸... 이렇게까지 생각을 했어요.(웃음) 그런데 나중에 보니 꽤나 많은 시인들이 박사시인이어서 좀 놀랐어요. 딜런 토마스가 당대의 다른 시인들과는 차별화된 독특한 시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당시 시인들은 아카데미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딜런 토마스만이 매우 다른 삶의 이력을 가지고 활동한 시인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2000년대 작품들 속에서 매우 상이한 여러 종류의 텍스트가 시에 기입되는 것이라든가, 또는 현실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 보이는 분위기들을 갖는 이유를 그 시적 주체들의 집합적 특성이나 주체들이 형성된 특수한 사회적 환경과 연관 속에서 이야기해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조강석 : 세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미래파에 대한 이야기도 참 많이 됐습니다. 한편에서는 미래파라는 것이 특정 유파나 경향을 지칭한다기보다는 우리 시의 새로운 가능성과 관련하여 그 기투적 차원을 높이 사는가 하면 일군에서는 오히려 미래파라고 불렸던 젊은 시인들이 세대론적 인정투쟁을 통해서 일종의 새로운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진은영 시인이 얘기하신 것처럼 기존의 시에 만족하지 않는 작가들이 자신들의 세계를 개진시킬 수 있도록 기존의 양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를 쓰려는 태도의 진정성이겠지요. 또 하나, 지금 말씀 중에 흥미로운 것은 자연인으로서 시인 자신의 신분과 지위 등이 많이 변화했다는 것이겠지요. 여기 전문적으로 철학하는 시인도 두 분 계시지만, 소위 박사시인이라는 표현도 참 흥미롭습니다. 문제는 이런 지위와 신분의 변화가 시의 발화법 혹은 발성법의 변화와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이루는가 하는 것일 수 있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분명히 2000년대 이후에 등단한 시인들에 대한 분석을 더 세밀하게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서동욱 : 조강석 선생님 말씀하신 발화문제나 주체―이것은 발화의 현실적 지점이지요―등과 관련해서 약간 구체적인 맥락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미 모든 선생님들께서 시대적 징후와 관련해 문학적 현상에 대한 전반적인 지적을 잘 해주셨으니 그것을 제가 또 반복할 필요는 없을 듯해서 말이죠……. 제 생각에 이런 좌담은 인위적으로 10년을 잘라서 그 기간의 특성을 밝히려고 마련되는 것이죠. 늘 10년 마다, 5년마다, 1년 마다 그래왔으며, 달력에 따라 문학의 전개를 체크해 보자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실 문학은 달력과는 늘 어긋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달력의 주기라는 얼마간 농경시대적으로 보이는 발상과 다소 다르게 2000년대를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80년대, 90년대, 2000년대로 이어지며, 2000년대가 다른 시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어떤 하나의 배타적인 10년의 개성을 수립하고 있다기 보다도 현대적 삶의 양식을 완성하는 시기로 볼 수 있는 측면내지 징후를 얼마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물론 그 특징은 시(詩)안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삶의 양식 자체에서 물어야겠죠. 그게 나중에 우리 좌담에서 주제로 설정돼 있는 ‘문학과 정치’라는 영역과 연동되어서 문제를 제기하게끔 하는 측면이 있을 것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2000년대 시가 현대적 삶의 양식을 완성했다고 할 때 그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물론 시 안에서는, 말씀하신 것처럼, 가장 먼저 발화의 주체와 관련하여 표현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강조점을 주고 싶은 것은 ‘주체’라는 개념인데요, 이 개념은 이미 우리 논제로 설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좌담 전에 주제로 제안된 ‘서정적 주체의 변화’라는 테마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이지요. 이 측면에서 제 나름 미리 답부터 말하자면 우리 시와 관련해 주체의 자리를 대신해 솟아나오는 것이 ‘익명성’, 익명적 화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현대시를 익명성의 관점에서 분석한 「익명의 밤―최근 시 읽기」(『세계의 문학』, 2007, 가을호)라는 글을 쓴 적도 있는데요. 아까 조연정 선생님께서는 2000년대 시의 새로움을 말씀해주셨고, 진은영 선생님께서는 새로움의 한 국면으로 기존의 유기성에 대한 배타적인 특성을 지적해주셨는데, 어느 경우든 최근 우리시에서 ‘기존시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것이 읽혀진다면, 발화된 것의 차원에서 그런 일이 진행되기 전에 그 발화의 지점인 주체의 차원에서 이미 뭔가 변화가 있었을 것이고, 그게 발화된 것의 차원에 표현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한국시의 오랜 전통중의 하나였던 ‘정체성 찾기’, 청동거울을 닦던 청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거울 앞에선 누님으로 나타나기도 했던, 거울이라는 기제를 통해 익명성에 매몰되지 않는 자신의 본모습을 알아보려는 정체성 찾기의 작업에서 적극적으로 일탈하는 일이 한국시에서 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구체적인 작품으로 예를 든다면 황성희 시집 『앨리스네 집』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제목이 「거울과 자화상 그리고 거대한 뿌리」인데 제목 자체가 한국시의 중요한 국면들을 암시적으로 표적삼아 겨냥하고 있지요. 그러면서 “거울 속 얼굴에 미련을 가지지 마”라고 거울을 통한 정체성 찾기를 중단할 것을 촉구합니다. 정체성을 비추어줄 기재가 없다는 것은, 가령 정재학에서는 이렇게 극단적으로 표현되기도 하지요. “i가 죽었어. 거울이 비어 있다며 자살했어”(『광대 소녀의 거꾸로 도는 지구』, 43쪽). 또 하나의 예를 들면 “더 이상 깨질 것 없구나. 거울을 버린 자는 중얼거린다”(김경인, 『한밤의 퀼트』, 92쪽) 같은 구절 역시 거울을 통한 정체성 찾기에 대한 거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이런 싯구절들이 알려주듯 자기와의 대면을 통해 정체성을 찾는 것에서 극단적으로 일탈하는 작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러한 작업의 성과로서 출현하는 것이 익명적인 것들입니다. 가령 이런 익명성은 황병승 같은 경우는 “죽을 때까지 어떠한 이름으로도 불려지지 않으리”(『여장남장 시코쿠』, 61쪽) 같은 표현 속에서, 김행숙 같은 경우는 “우리는 이곳까지 달려오면서 많은 이름들을 붙였다, 뗐다, 붙였다, 투명 테이프처럼. 안녕”(『이별의 능력』, 93쪽) 같은 표현 속에서, 아니면 보다 최근의 김지녀 같은 경우는 “이름 없이도 따뜻한 입김으로/나무는 하루에 수천 번 다르게 빛나는 잎을 틔우고”(『시소의 감정』, 42쪽) 같은 이름을 부정하는 구절 속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런 시구들은 고정된 자기정체성을 확립하는 주체로부터 벗어나는 익명적인 것의 출현이 핵심적인 사안임을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정체성 없는’ 익명적인 것은 여러 가지로 변주되는 듯한데, 계통발생적으로 포착할 수 없는 괴물들도 예가 되겠지요. 김근의 이런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말입니다. “늙은 소녀와 내가 아기를 낳으면/뱀이기도 하고 소년이기도 한/할미이기도 하고 소녀이기도 한/아기가 태어날지 궁금했다구”(『뱀소년의 외출』, 32쪽). 물론 이러한 정체성의 파괴와 관련해서, 사회적 질서에 따라 부과되던 성적 정체성의 와해 양상으로서 동성애가 적극적으로 시의 표면에 떠오르게 된 점 역시 간과할 수 없겠습니다(가령 황병승의 작품들과 더불어).

문학 안에서 표현되는 익명성, 정체성 없음, 주체의 와해 등등이 현대적 삶을 완성하는 것으로 제가 고려하는 까닭은, 오늘 날 정치적 사안들과 관련해 핵심적으로 부각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기존의 정체성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에 대한 모색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얘기가 나올 것 같은데, 랑시에르가 문학의 정치적 역할과 관련하여, 기존의 감각적인 분배를 정지시키고 새로운 분배방식을 이야기하는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말 나온 김에 잠깐 더 이야기하자면, 감각적인 것을 기존의 정체성, 기존의 질서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전략은 이미 들뢰즈한테서 발견되는 것인데, 그는 정체성으로부터 벗어난 것을 가리켜 “4인칭 단수”, “비인칭” 등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아감벤 같은 경우는 혁명적 주체와 관련해서 사도 바울의 텍스트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주체에 대해 전제된 동일성이나 그에 따른 주체의 속성들에 관한 논의 전부를 단번에 잠재운다”라는 말을 쓰기도 했는데, 역시 주체의 ‘전제된 동일성’을 벗어나는 익명적인 것에서 정치적 실천의 길을 모색하려는 한 가지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우리 시대가 정치적으로 나갈 바의 지표로 삼는 바와 발화된 하나의 형태로서의 시가 공유하는, 즉 양자를 연결시키는 것이 ‘익명성’이라는 점에서, 우리 시가 보여주는 기존의 것에서 일탈하는 정체성 없음의 화두는 매우 적극적으로 조명할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강석 : 네, 2000년대 시문학의 변화 양상에 대해 큰 틀에서 말씀해 주십사 했더니 네 분 모두 다 한꺼번에 다양한 말씀을 해주십니다(웃음). 김춘식 선생님은 시단 환경의 변화에 대해 말씀해주셨고 조연정 선생님께서는 시의 생산과 수용 양상의 변화에 대해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진은영 선생님께서는 시인이셔서 그런지 시를 쓰고자 할 때 더욱 절실해진 것이 무엇인가와 시인들의 실존적 환경의 변화로부터 이야기를 푸셨습니다. 끝으로 서동욱 선생님께서는 시적 성취 여부와는 별도로 2000년대 우리 시단의 문학현상을 진단하는 키워드의 하나로 익명성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김춘식 : 층위가 다르게 이야기가 진행된 것은 이 토론이 미리 일정한 주제 아래 의도된 바가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들어보니까 서동욱 선생께서 익명성이나 발화주체의 문제 등 좀더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셨어요. 처음에 2000년대 분기점에서의 변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체험적인 얘기에 대해 여러분이 거론해 주셨어요. 그러다가 상당히 구체적인 얘기로 전환해서 2000년대 이후 시의 특징 중의 하나를 익명성과 주체의 발화 형태의 변화로 보자. 과거에 있었던, 2000년대 이전의 시가 가지고 있었던 한국문학사의 고질적인 전통성이라고 불리어지던 정체성에 대한 콤플렉스를 2000년 이후의 시들이 깬 것이 아니겠느냐는 얘기로 받아주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얘기를 좀 더 깊이 전개할 수 있는 상황으로 온 것 같아요. 제가 처음에 포괄적인 이야기를 시작했고 뒤에 분들이 거기에 대한 체험적인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마지막 논의는 독자가 많다거나 적다거나 문단적으로 어느 쪽에 더 많은 관심이 기울어졌는가 이런 것이 아니라, 문학의 질적인 차원에서 과연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하는 것을 말씀해주셨기 때문에 이 두 얘기는 서로 분리해서 이야기를 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조연정씨가 얘기한 것 중에 잃은 것과 얻은 것에 대한 얘기와 비슷한 생각을 저도 해본 적이 있어요. 새로움이나 젊음이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도식화된 문단의 흐름이 생겨날 수 있다는 우려를 해본 적이 있어요.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얻은 반면 “좋은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상대적으로 간과돼 왔다는 생각도 좋은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은영 씨도 ‘미래파’라는 명칭을 예로 들어, 2000년대 이후의 문단의 변화를 젊은 시인, 특히 2005년 이후 미래파로 분류되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정리를 해주셔서 주의 깊게 잘 들었습니다. 그리고 발화법으로 넘어갔는데 이 점은 문단 담론과 비평적인 포커스에 관한 문제로 서로 구별됩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문단적인 현상이라는 것은 저널리즘과도 관계가 있고, 시집을 내는 출판사의 입장과도 관계가 있는 문제라 뒤에 나온 비평적인 포커스에 대한 논의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출판사 입장에서 보면 시집이 많이 팔려야 좋다는 상식적인 이득의 문제보다는 하나의 시집이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갖는가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과거에는 출판사의 경제상황이 튼실하지 않다보니 영향력을 획득하기 위해서 판매에 큰 투자를 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문단적 영향력이라는 상징적 이윤을 갖기 위해서 큰 출판사들이 경쟁적으로 시집 출간에 자본을 투자하는 상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시집 발행 종수가 많아졌다는 것에서 확인이 되는데,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유행적 경향, 트렌드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문단 자체가 의미 있는 시, 좋은 시, 시가 나갈 방향을 논의하는 것과 출판시장에서 영향력의 확대를 위해 트렌드를 산출하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가 앞에서 거론이 된 것 같아요. 제 개인적으로는 2000년대 이후 출판시장의 영향력이라는 것과 관련해서 여러 출판사가 미래파나 젊은 시인들에게 초점을 맞추었다고 봅니다. 또한 그것이 시장에서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확보하는 중요한 방법이라는 적극적인 판단도 있었다고 봐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새로움이라고 하는 코드는 “실제로 얼마나 많은 독자를 갖느냐” 보다는 “독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정서적인 환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 또는 “접근이 가능한 유의미한 것인가”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아요. 반면에 중견시인이나 앞선 시대를 겪어온 선배시인들은 이런 상황에 대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낀 것 같아요. 자기 작품에 대한 신뢰나 자신감의 부족이라기보다는 자기 작품이 새로운 감수성으로부터는 좀 떨어진 것이 아닌가, 낡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 같은 것이 자의식에 가미가 되고 다른 한편으론 ‘영향력’이라는 측면에 대한 위기감이나 결핍감 같은 것이 결합돼 상대적인 위축감을 느낀 것이 2000년대 중반 이후 시단의 상황이지 않나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시단 내부에서 “어떤 시가 바람직하고 어떤 시로 나아갈 것이고 앞으로 우리 시가 해결할 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특정한 경향과 상관없이 공통적인 과제였던 것 같아요. 이런 공통적인 과제를 논의하기 이전에 어떤 트렌드가 ‘지금, 여기’에 적절하고 시기적으로 유의미한가를 말하는 것은 핵심을 비켜간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조강석 : 네, 말씀하신 것처럼 크게 보아 2000년대 시문학을 둘러싼 전반적 문학 환경의 변화에 대한 얘기와 주체와 발화의 문제와 같은 작품내적인 문제로 나누어 논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환경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좀 더 이어가 보겠습니다. 아까 김춘식 선생님께서 문단 상황과 관련된 이런저런 변화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2000년대 중반 이후 젊은 시인들의 시세계가 관심을 받게 된 것에는 나름의 이유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그것이 소위 ‘혁명적 변화’ 운운에 값하는 것은 아니다. 일종의 조류의 변화쯤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느냐, 젊은 시인들의 새로운 경향에 대해 너무 과장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느냐 하는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이것은 일종의 세대론적 전략과 출판 환경 문제의 관련성에 대한 얘기로도 들립니다만….

 

김춘식 : 2000년대 이후 ‘연령으로 보아 젊은 시인이다, 나이가 든 시인이다’ 이런 구분은 다소 의미가 적고 등단 시기 시적 경향 등 여러 가지 조건이 결부되어 신인, 중견, 젊은 시인 등의 분류가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등단연도, 실제나이, 감수성의 특징, 문학적 교류 집단의 부류 등이 알게 모르게 저절로 어떤 구분을 낳고 그것이 문단에서 나는 어느 쪽이야, 시 스타일로 봐도 그런 것 같아 하는 식으로 ‘구별짓기’가 가능해집니다. 실제로 문학장의 작동원리 중에 이런 것이 있고 따라서 일정한 경향, 미적 아비투스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문학적 다양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결국 각각 다 모두 논의의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은 시인들이 ‘다름의 문제’를 문학을 통해 ‘의미의 문제’로 바꾸는 과정 속에서 실질적으로 자기 작품이 독자에게 많이 읽히느냐 적게 읽히느냐,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냉정하게 판단하기 이전에 문학적 유행에 대한 어떤 선입견이나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2005년 이후 ‘미래파’와 같은 논의의 쟁점에 떠오르는 경향이나 범주에 자기가 관계되느냐, 아니냐를 먼저 견주거나, 농담처럼 하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자기가 주류에 들어가는 시인인가 아닌가를 되묻는 방식 같은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시적 경력으로 중견이고 어느 정도 인정받는 문학적 세계를 구축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시인이 문단의 흐름이나 비평적 논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것이 어떤 ‘트렌드’에 초점이 맞추어졌다고 판단한 뒤에 갑자기 자신의 시적경향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보면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온 문학적 세계와 시적 자의식을 고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가 그렇게 대중적인 장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떤 경향이나 트렌드에 어느 정도 따르지 않으면 결국 소외될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을 떨치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이런 정황을 말한 표현이지만 그것이 문학적인 평가의 엄정한 잣대로 현재 평가를 좌우한다는 의미로 말한 것은 아닙니다. 출판이라는 시장의 조건에서 발생하는 현상과 문단의 자율성이 충돌하면서 시인들이 어떤 생각의 분열과 혼란을 느낄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한 것입니다.

 

서동욱 : 본질적으로 새로움이라든가 기존의 것으로부터 일탈하는 것이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출판사의 지원 같은 것 때문에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싶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조명을 받는다라면 뭔가 그 안에 긍정적인 것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시 자체에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작품과 더불어 구체적인 논의가 되어야만 이 새로움의 허와 실이 밝혀질 것 같아서 제가 좀 이른 감이 있었지만 다소 세부적일 수 있는 화자문제 같은 것과 더불어 이야기를 풀었었습니다. 김춘식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선생님 나름대로 잘 정리해주신 문단에 대한 묘사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와 관련된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꼭 집어서 접근하는 것은 다소 어려운 일이지 않은가 싶습니다. 사실 새로운 시적 경향이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유행에 답하는 형태로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고 그 가운데 일정부분 문단의 긴장을 형성해서 문단을 살아있게 하는 역할도 했던 것 같은데……. 김선생님 지적하신 문제들을 어떻게 좀 더 구체적으로 규명할 수 있을까요? 말씀하셨던 박탈감의 문제 같은 것을.

 

 

조강석 : 두 분의 얘기를 듣고 세대간의 격절감이 있다면 그것이 단순히 소통이 되고 아니고의 문제라든가 시가 어렵고 쉽고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더 굳어집니다. 결국은 역시 이 문제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2000년대의 시인들이 보여준 바가 미학적으로 어떤 성취를 보여주고 문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하는 얘기로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아까 김춘식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어쨌든 젊은 시인들이 새롭게 보여준 시세계는 중진시인들에게도 스스로의 시세계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들 시의 미학적 핵심이 무엇일까에 대해 짚어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김춘식 선생님은 서두에 일종의 감수성의 조류의 변화라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말씀하셨고, 진은영 시인은 비유기적인 양식이라는 표현을 쓰셨습니다. 서동욱 선생님 같은 경우 익명성의 표출, 그러니까 서정적 화자나 자아의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익명적인 주체의 출현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규정들을 2000년대 중반부터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문학현상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삼을 수 있는 것인지, 이런 특징들을 결정적으로 그 이전의 문학현상과의 차이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파악할 이유가 있는지, 아니면 이것 역시도 문단 내에서 트렌드의 변화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조금씩 판단이 다르신 것 같습니다. 진은영 선생님, 시를 쓰시는 입장에서 볼 때, 시쓰기와 관련하여 미래파 시인들 혹은 그냥 젊은 시인들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여하튼 이들에게 어떤 새로움이 있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김춘식 : 어려운 이야기인 것 같은데… 일단 작품의 발화형태나 주체의 의식의 변화라든가 구체적으로 들어간다면 여러 작품을 비교분석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역동적인 문학장의 변화를 찾아낼 수 있다고 봅니다. 문단이라는 것만 해도 크고 이질적인 집단이 섞여 있는 장소잖아요. 저는 논문에서 ‘문학장’이라는 말을 썼는데, 문학장이라는 큰 틀을 분석할 수 있는 척도나 데이터가 있다면 좀더 쉬울 것 같은데, 우리에게는 아직 그런 구체적인 경험이 없는 듯합니다. 실제 그렇게 해 본 적이 없고… (보통) 잡지 등의 좌담과 특집에서 논자들 각각의 입장이나 문학적 아비투스에 근거해서 주관적으로 현상을 분류하고 나누는 방식을 가장 많이 해왔죠. 과거 90년대 이전에는 그것을 진영 또는 섹트주의라고 했고. 최근에는 진영이나 섹트의 문제라기보다는 작품을 쓰고 있는 시인들의 자신의 경향에 대한 ‘에꼴’이라고 할까 좀 더 개인적인 문학적 취향에 기준을 두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과거와 달리 자기의 시적경향은 ‘무엇이다’라고 하는 자의식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점은 상당히 긍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평이든 창작이든 자신의 문학적 취향을 ‘에꼴’이라는 형태로 의식화 하면서 자기의 작품세계를 자의식화해 가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변화고 한국문학의 다양성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경향들이 분명히 2000년 이후에 많아 졌기 때문에 “얻었다면 얻은 것이고, 또 긍정적인 것입니다.” 즉, 다양성은 90년대 이후 최근에 이르는 가장 발전적인 성취입니다. 두 번째는 앞서 말한 것처럼, 이런 점을 출판이나 문단의 상황과 결부시켜 보면, 시인들이 지닌 ‘에꼴’로서의 자의식과 출판시장, 독자와의 관계 속에서 밖으로부터 규정되는 ‘경향’ 사이에 존재하는 갭(gap)을 아직 명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여러분이 말한 것처럼 ‘미래파’라는 명칭이 각각의 세계나 성향이 다른 시인들을 하나로 묶었는데도 막상 또 이렇게 묶어보면 묶여질 수 있다는 생각과 서로가 다르다는 자의식을 주장하고 싶은 생각이 공존하는 것을 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 과연 미래파라는 명칭은 무엇인가, 엄밀한 비평적 명칭은 아니지만 세대론적이든, 2000년대 이후의 문학적 경향의 특색을 설명해주는 데 분명 유의미한 코드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결국, 그게 유의미하다면 미래파라는 명칭 안의 이질성이라고 하는 문제는 본질적인 논의의 지점에 이르렀고, 특히 2000년대 이후의 ‘에꼴’이라는 문제, 발화의 주체에 대한 의식과 관련해서 분명한 다양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갭(gap), 차이나 간극으로 굳이 말하자면, ‘미래파’로 묶으면 묶이지만 그 안에서 여전히 ‘차이’을 느끼고 발화한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갭(gap)이거든요. 시인들이 나름대로 자의식을 치밀하게 가지려고 노력함으로써 과거보다 세밀화 되고 정밀화된 상황인식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묶어서 설명하는데 익숙하지 세부적으로 분할해서 설명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 과정 속에서 아까처럼 미래파라는 명칭이 본질적 목적은 없는 공허한 명칭임에도 불구하고, 출판이나 문단상황과 결부된 임시적인 정체성을 허구적으로 생산하거나 일시적인 집단성을 만들어주는 명칭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문제는 어느 정도는 앞서 말한 출판의 문제나 출판사, 잡지의 문단적 영향력 경쟁과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진은영 : 저는 김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미래파 시인들의 에꼴로서의 의식이란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봤어요. 그것은 아마도 특정한 방식의 재현 강박을 억압으로 느끼고 또 그런 재현 강박을 파괴해야 한다는 공감대일 거예요. 이 재현 강박은 예전의 순수/참여 논쟁의 대립각으로 포착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요. 미래파 시인들의 시를 우려하는 분들의 문학적 경향을 보면 특별히 리얼리즘, 모더니즘 구분이 있지 않은 듯 했어요. 그 우려들을 접하면서 다소 정도 차이는 있지만 조화로운 시적 구조나 의미의 투명성을 담보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여기고들 계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미래파 논쟁 이후에는 이런 특정한 종류의 재현 방식에 대한 강요는 확실히 사라진 것 같아요. 그러나 이것이 미래파 시인이 이전에는 결코 발견할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주었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제가 무척 좋아했던 박상순 시인이나 최승자 시인의 작품들에 이미 기계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상상력, 잔혹성이 나타나고 있고, 또 다른 선배 시인들의 시에 극단적 산문성이나 실험정신, 과잉과 초과의 비유들이 나타나고 있어 젊은 시인들이 지닌 상상력의 뿌리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지요. 다만 미래파의 경우 그 특징들이 그저 한 시인의 독특성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 상상력의 형태를 띠고 나타나면서 여전히 확고하던 전통적 재현 방식의 우월성을 심각하게 파괴해버린 것 같아요. 논쟁이 벌어지면서 이 집단적 상상력의 현시를 노골화하고 더욱 의식하게 만드는 상황에 이르렀구요.

 

서동욱 : 메를로-퐁티가 그림과 관련해서 이런 취지의 얘기를 합니다. 가시적인 것에 대한 단 하나의 마스터 키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의 가시화 방식은 무한하다. 정답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거든요. 재연하는 방식에 대한 강요 또는 재현강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특정한 시대의 일부 특정한 시가 아니라, 모든 개성적 시의 특징이 아닐까요? 기존의 재연하는 방식으로부터의 탈피는 모든 좋은 시를 선별해 내는 일반적 척도 같은 게 아닐런지요…….

 

진은영 : 물론 그렇지요. 서동욱 선생님이 「시와 비진리」라는 평론에서 예술작품은 개념의 힘을 무화시키는 이미지라고 표현하신 걸 보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는 모든 예술 작품들은 지성적 개념의 지배 아래서 상상력을 규정하는 ‘재현’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또 다른 한편으로 재현 개념을, 인식을 중지시키고 비대상적으로 이미지화하는 표현 활동으로 넓게 이해할 수도 있구요. 제가 말씀드린 것은 특정한 방식의 이미지화만을 좋은 재현이라고 하고 미학적으로 규범화하는 방식을 거절했다는 점에서, 특정한 미학적 방식으로만 재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강박을 깼다는 의미예요.

 

서동욱 : 저는 어느 시대나 그것은 깨져있었던 것이 아닌가 라는 취지에서 말씀드린 건데…….

 

진은영 : 그렇죠. 김춘식 선생님께서 전통 서정시를 쓰는 분들의 박탈감을 말씀하시면서 지적하신 부분이 그 특정한 재현 방식이 파괴된 것에 대한 당혹감 아닌가요?

 

김춘식 : 약간 차이는 있는데, 그런 박탈감을 갖게 되는 것은 그 사람 스스로는 자기 나름의 재현의 방식을 쓰고 있지만 그에 대한 평가의 문제는 철저히 권력관계에 따른다는 생각 때문이죠. “이런 재현은 좋고 저런 재현은 나쁘다”라고 하는 평가가 어느 정도는 사회적인 제도 속에서 “이리 몰려오고 저리 몰려가는 변덕스러운 과정”으로 보이면, 그것이 시적 주체에게는 하나의 억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반대적인 의미로 말한 것이에요. 아까 진 선생님께서는 이전에는 그런 억압이 젊은 시인들에게 있었는데, 지금은 ‘미래파’라는 명칭의 보호 아래서 그런 선입견을 어느 정도 깰 수 있었다고 얘기를 하셨지요. 그것과 마찬가지 의심이나 불안이 중견 시인에게도 나타난다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재현이라는 것은 틀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맞는 말이라고 봅니다. 예술의 원칙에 따르면 재현에 어떤 틀이 있을 수 없는 것인데, 현실 속에서는 엄연히 그런 틀을 강요하고 규제하는 억압이 존재합니다. 문단 상황으로 보면 그런 틀이 한국문학의 과거와 현재를 지배하고 또 어떤 트렌드를 만들기도 합니다. 진 선생님도 그런 뜻에서 재현강박을 얘기한 것 같아요. 엄밀하게 말하자면, 재현강박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것이며, ‘예술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알게 모르게 만들고 있고, 결핍감이나 상대적인 박탈감도 그런 재현강박과 비슷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죠. 젊은 시인들에게 재현강박이 있었다면, 반대로 ‘미래파나 새로움의 미적 경향’을 대세로 느꼈을 때 그렇지 않은 시를 썼던 사람들은 또 다른 재현강박을 느낄 수도 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서동욱 : 부담스럽고 어려운 문제일지 몰라서 말씀드리기 죄송스러운 면도 있는데, 이런 의문들이 듭니다. 상황을 정리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정도의 질문이라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첫째, 말씀하시는 그 권력관계라는 것의 정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 다음에 권력관계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 어떤 특정 시인들만 보호하고 선호하는가, 세 번째, 진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시인들은, 설령 소위 현금의 새로움이라고 하는 것과 거리가 있다할지라도 왜 부각되지 못하는가, 마지막으로 진짜 좋은 작품이 있는데도 부각이 되지 못한다면 이는 비평가들의 책임을 추궁해야될 사안인가. 이렇게 질문을 세분화해서 다룬다면 지금의 문단상황이 보다 잘 정리 되지 않을런지요?

 

김춘식 : 굉장히 부담이 되는데요. 같이 좀 이야기를 하시죠. 사실은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보면 꼭 집어서 나는 어떤 시가 좋은데 이런 경우는 어떻다고 이야기하는 상황까지 갈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더라, 이렇더라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지 아는데도 좌담에서는 꼭 집어서 얘기하는 것이 쉽지는 않죠. 또 오히려 지나치게 단정적이고 일반화된 말을 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최대한 노력은 해보겠지만.

다소 거칠고 무모하게 말하면 재현 방식의 다양성과 내적 가치에 대한 확신을 많은 평론가들이 아직 지니지 못한 점에도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시인들만큼 비평가들의 미적 취향과 신념, 에꼴 의식이 명확하거나 확실하지 않다고 할까요. 또 문학장의 자율성과 출판, 잡지의 문학제도가 어떤 긴장 관계에 있는가를 들여다본다면 ‘미적 평가’의 문제는 좀더 명확해 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조강석 : 네, 지금 보셨듯이 재현 방식이라는 말 역시 논자들에 따라 사용되는 층위가 미묘하게 다르고 다양한 재현방식에 대한 평가 역시 다릅니다. 아까 진은영 시인께서 재현에 대한 강박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다고 했는데. 단도직입적으로 묻자면 시가 작품 외부의 현실이나 사실에 대해 진술하는 언어가 아니어도 되지 않겠냐는 의미였던가요?

 

진은영 : 대상이나 세계를 표현하거나 묘사해야 한다는 식의 시적 문법들을 깼다는 의미에서 사용했던 것입니다. 저는 젊은 시인들이 현실이나 사실에 대해 진술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기존의 재현 방식과 다른 방식의 예술적 재현을 택할 뿐이죠. 재현 개념은 철학적으로는 더 미묘한 함축들을 가지고 있어서, 좀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지만 일단은 논의의 맥락상 재현을 거부한다는 표현보다는 서동욱 선생님이 쓰고 있는 대로 존재의 예술적 가시화를 ‘무한한 재현 가능성’으로 표현하는 것에 동의하겠습니다.

 

조강석 : 네, 알겠습니다. 지금 조금 난상토론이 된 감이 없지 않습니다만, 2000년대 시문학의 문법이 그 이전과 의미있는 변별을 이루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연속선상에서 파악해야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으로는 포괄되고 있습니다. 더 이야기를 이어가보죠.

 

서동욱 : 조연정 선생님과 조강석 선생님 말씀을 듣고 싶어서 두 분께 질문 하나씩 할게요. 조연정 선생님께서 이 좌담 자리에서 보여주실 수 있는 강점내지 개성은 이런 것 같아요. 2006년에 등단하셨다고 했죠? 그 이전에도 문학공부를 하셨으니까 문학에 대한 아주 전문적인 독자셨다가 2006년을 기점으로 문단에 들어오셨잖아요? 2000년대를 반으로 가르며 문단 안과 밖에 다 위치해 보면서 문단을 살핀 경험이 있는 강점을 가지신 것인데, 조연정 선생님 같은 젊은 세대의 문학연구자내지 부지런한 시문학 독자들이 문단의 경계에 서서 요즘 새롭다고 하는 시에 어떤 긍정성과 부정성을 가지고 반응하는지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조강석 선생님께서는 자꾸 새로움에 대한 강박관념에 떠밀려서 서정성을 새롭게 규정하려는 것에 대해서 비판적인 글을 쓰신 적이 있지요. 「‘서정’이라는 ‘마지막 어휘’」(『세계의 문학』, 2009, 봄호)말입니다. 지금 시에서 새로움이란 것을 서정에 대한 정확한 정의와의 거리 가늠을 통해 살펴본다면, 그것이 진짜 새로운 것인지 아닌지 어느 정도 정체가 드러날 것 같은데요. 이에 대한 글도 쓰셨으니까 말씀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조연정 : 선생님께서 질문을 하셔서 하는 말인데 제가 학교에서 시에 관한 수업을 하면 학생들에게 최근에 나온 시집들을 열심히 읽히는 편인데요. 시에 대해 어느 정도의 안목을 지녔다고 생각되는 국문과 고학년 학생들도 굉장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때가 있어요. 일례를 들자면 황병승 시집을 읽었던 어떤 학생이 하는 말이, “이제는 시에서 무엇을 보더라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점만이 이 시집에서 얻은 점이다”라는 것이었는데, 매우 냉소적인 뉘앙스로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그런 학생들에게 2000년대 시단의 새로움이 지닌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도록 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불편함’이 여러모로 2000년대의 젊은 시에 대한 가장 적절한 감상이기는 하겠지만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것인데요. ‘젊다’라는 것이 생물학적 나이보다도 감수성의 차원을 염두에 두는 것이라면, 2000년대 젊은 시를 논함에 있어 시인들에게나 독자들에게나 일종의 세대적 동질성을 부여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든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시에 대한 감상과 평가는 세대와 상관없이 개인의 취향이나 개인의 미적 판단의 문제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요.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라는 것도 세대의 영향을 받는 것이겠지만, 김소월이 편한 사람이 있는 반면 이상이 편한 사람이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새로운 시에 대해 어떤 세대적 동질성을 부여할 수 있다면, 서동욱 선생님 말씀처럼 넓게는 ‘현대적 삶의 양식’과 관련하여 생각해볼 수도 있겠고, 문학사적으로는 이제껏 우리 시가 구축해왔던 ‘정체성’의 해체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생각해볼 수도 있겠는데요. 좀더 현실적으로, 아니 구체적으로 말해보면 최근의 시들에 나타나는 분명한 특징이라는 것이 바로 다양한 담론을 내장하고 있다는 바로 그 점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진은영 선생님께서 ‘박사시인’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셨고, 서동욱 선생님께서 ‘익명성’이나 ‘비인칭’이라는 들뢰즈의 용어를 2000년대 시단의 키워드로 제시하셨고, 예전에 신형철 평론가가 김행숙 시집의 해설을 쓰면서 이미 들뢰즈의 ‘4인칭 단수’라는 표현을 빌려오기도 했는데, 해체적 담론의 ‘구현’이라는 바로 그 사실이 2000년대 시의 새로운 특징이라고 짚어볼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저를 비롯한 ‘젊은 세대’들이 2000년대의 젊은 시에 대해 어떤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많은 부분 독서체험의 유사성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요. 새로운 시에 대해서 젊은 세대가 보이는 최초의 반응도 정서적 불편함일 수 있을 텐데, 그러한 불편함이 이론적 친근함으로 상쇄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최근의 시에서 발화법이 달라진 것을 주체의 변화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그 주체의 변화라는 것이 아주 더디고 불분명하게 진행되는 것이라면, 최근의 시가 보여준 폭발적인 새로움은 많은 부분 이론의 도움을 받아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서동욱 선생님께서 ‘익명성’이라는 키워드를 설명하시기 위해 최근의 시에서 많은 전거들을 끌어오셨는데, 다양한 시인들에게서 나타나는 그 유사한 구절들이 어쩐지 ‘익명적’이고 ‘비인칭적’인 주체의 모습을 ‘진술’하는 듯 보이기도 하거든요. 그렇다면 주체의 변화가 발화법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진단할 때, 그 주체의 변화라는 게 과연 무엇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될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젊은 세대라 하더라도 최근의 시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현하고 마는 학생들이 있는 것을 보면, 2000년대 젊은 시에 대해 친근함을 느끼고 긍정적 평가를 보내는 쪽에게는 자신이 학습한 것을 시로써 확인하는 희열도 어느 정도는 있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들어요.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은 진은영 선생님께서는 미래파라는 명명이 최소한의 인정이라는 말씀도 하셨고 김춘식 선생님께서는 그러한 명명이 ‘젊지 않은’ 시인들, 그러니까 미래파라는 테두리로 묶이지 않은 시인들에게는 어떤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이 부담은 젊은 시인들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비평의 역할이 더 커지는데요. 비평의 특성상 새로운 징후를 찾아내서 의미부여하고, 다양한 시인들을 묶는 일이 불가피할 텐데, 이러한 작업은 많이 이루어졌으니 이제는 묶어 놓았던 시인들의 미학적 개성을 적극적으로 발견하고 이들이 각자의 개성을 살릴 수 있도록 독려하는 일에 한 동안 몰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서동욱 : 딴 것은 차차 논의 될 테니 일단 이것 하나만 말씀을 드릴게요. 앞서 제시했던 시구들이 일종의 문학론적 성격을 지니는 구절들이라는 것 같은데, 그렇게 볼 수 있을지 의문이고요, 아울러 전혀 학습된 차원 안에서 고려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이런 구절들도 있어요. “누굴까, 빨간 눈 솟은 귀 바로 나라는 네발짐승의”(황병승, 『여장남장 시코쿠』, 171쪽). 이렇게 ‘정체성을 확인할 수 없는 것’의 출현이 있지요. 또 강정의 『키스』가 많은 예들을 제공합니다. 가령 이런 구절. “잘 뒤섞여 반죽된 어떤/사생아 같은 걸 낳은 모양인데,/……/누런 달빛으로 박아놓은 짐승이/우리가 낳은 그 異物인지는/깨닫지 못했네”(『키스』, 117쪽). 시쓰기에 대한 학습된 자의식의 소산으로 볼 수는 없는 이런 구절들과 더불어, 정체파악이 안된 대상, 익명적인 것에 접근하는 시들이 확실히 두드러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조강석 : 익명성과 다중화자의 문제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어떤 시에는 익명성, 그러니까 누가 발화하는지, 어떤 위치에 있는 자가 발화하는지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있고, 어떤 시에는 여러 화자들이 동시에 나와서 발화하면서 일정한 효과를 만드는 데 성공하기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익명성과 다중화자의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서동욱 : 익명성의 한 가지 형식적 구현이 다중화자겠죠. 화자의 자리가 여러 차원으로 옮겨다닐 수 있는 까닭은 기본적으로는 기원적 ‘나’가 부재하기 때문이리라 생각됩니다. 다중적 발화는 기원적 나의 부재, 즉 익명성의 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이 자리에서 길게 다룰 수는 없겠지만…….

 

조강석 : 네, 아까 제게 물어보신 것에 대답하는 것을 미루려고 덧붙여 질문한 것은 아니구요…….(웃음) 죄송하지만, 그것에 대해 대답하기 전에 진은영 시인에게도 한 가지 질문을 더 드려볼까 합니다. 계속 그 표현이 마음에 남아서 묻습니다만 시인들이 일정정도 재현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았느냐 하셨는데. 그렇다면 재현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어떤 표현이 가능해질까요. 시를 직접 쓰시니까 쓰시는 입장에서 볼 때 재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어떤 표현, 어떤 발화가 가능해지는지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겠습니다.

 

진은영 : 사물에 대한 단정한 묘사로부터 멀어지게 되지요. 그리고 독자들이 익숙한 리듬 같은 것이 있잖아요. 이 리듬이나 호흡을 독자가 편하게 느끼도록 쉽게 끊어주거나 편한 방식으로 구사하는 것이 시인에게는 어떤 정동을 만들어내는 방해 요소가 되기도 해요. 그럴 때는 그 익숙한 감각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지요. 또 은유의 연쇄도 어느 수준에서는 자연스럽지만 일반적 수용력을 넘어서면 많이 부담스러워지거든요. 그런데 그 불편함이야말로 감각이 세계나 대상들에 대한 고정관념의 수준으로 흘러가버리는 틈을 막아버리는 거죠.

 

조강석 : 어떤 이들은 그렇게 되다보면 지나치게 자기 내면에 있는 것들만 이미지화해서 산출하게 되지 않느냐 즉, 시인의 내면에 갇힌 이미지들만 표출되는 양상도 있지 않느냐. 자기 개인의 의식 속에만 씨 뿌려 놓은 것으로 만족하는 시가 나올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비판도 합니다만…….

 

진은영 : 서동욱 선생님이 어느 글에서 감정교육이란 표현을 쓰셨는데 사실 저도 감정교육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상상력의 최대치를 무작정 실험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실험을 하기 때문에 더욱 긴장하면서 독자의 존재를 더욱 의식해요. 그러니까 이건 읽는 사람을 평가절하하면서 미적 전문가로서 시인이 고차원적인 감각적 경험을 전수해주겠다는 발상과는 무관해요. 오히려 우리들 모두의 감각적 능력의 평등성을 믿는 것이죠. 우리는 얼마든지 함께 더 멀리 나갈 수 있고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공유할 수 있을 뿐더러 서로를 전염시킬 수 있다는 아주 깊은 신뢰에서 비롯된 거예요. 시인이 자기의식에 갇히는 것은 시의 기법상의 문제라기보다는 시인이 살고 있는 삶의 문제인 것 같아요. 물론 감각적 실험이라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아서 실패하는 경우도 종종 있고, 그러다보면 표면적으로 자폐적인 듯이 비춰질 수 있겠지요.

 

조강석 : 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최근 젊은 시인들이 부쩍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저는 이것을 ‘감성적 취미연대를 통한 낮은 결사의 공동체’라는 말로 설명해보기도 했습니다만…….

 

서동욱 : 지금 말씀하신 것들과 관련해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마땅히 존재하는 답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라, 물음의 구조 자체가 아포리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답 못하는 물음도 있습니다. 우리 삶 자체에 귀속하는 것으로서 이 아포리아는 이해를 해야지, 아포리아 때문에 애초에 답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적절한 대답을 못 찾았다고 서로 자책하고 미워할 문제는 아니죠. 진은영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감성의 교육학’내지 ‘감정교육’이 필요하고 그래서 이에 대해 쓴 적도 있었습니다. 감정교육의 차원에서 새로움이 시와 더불어서 부각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와 더불어 고려하기를 종용하는 것은 이런 불만을 표시하는 질문들입니다. 새로운 시들―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에서 뭐가 진짜 아름답냐, 아름다움의 정체를 규명 해야하는 게 아니냐? 이 질문은 감성적 질서내지 미적 질서를 주관하는 ‘이상적이며 모형적인 질서’가 무엇인지 대답할 것을 종용하는 물음이지요. 요컨대, ‘감정교육’이라는 표현으로 대표되는 감성의 변혁, 새로운 것의 추구는 그런 고정된 모형을 파괴하거나 그런 것은 없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다면, 다른 한편에 있는 저 질문은 원형적인 감성적 질서가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두 개의 전혀 다른 층의 질문과 과제가 존재하며, 이 두 가지가 아포리아적으로 오늘 날 시의 비밀을 규명하는 많은 논의들에 끼어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아포리아는 게을러서 대답을 못하는 질문이기보다는 오히려 근본적인 상황을 노출시키는 기재이지요.

 

조강석 : 네, 아포리아는 저 역시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만……(웃음) 지금 얘기하신 게 아까 제게 물어보신 바로 그 「‘서정’이라는 ‘마지막 어휘’」에 대한 얘기와도 관계가 있는데요,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냐를 규정하고, 실체로서 아름다운 것이 어떠어떠한 속성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그것에 부합하는가 여부를 기준으로 아름다움을 판별하는 방식의 판단, 서정의 문제로 좀 물으셨으니까 말을 바꾸자면 소위 이 시가 서정적이라거나 아니라거나, 혹은 이 시에서 서정이 재편됐다거나 조금 더 넓어졌다거나 서정의 외연이 확장됐다는 식의 진술방식이 고집하는 것은 실체로서의 서정이라는 틀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저는 새로운 시의 현상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서정이라는 말 자체를 규범적으로 규정하는 것보다는 그 내용 자체가 기술적으로 채워져야 할 것이며 그때 미적 판단은 여러 작품들이 벌여져 놓였을 때 나타나는 양상에 따라 관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미 규범적으로 개념을 설정하고 그 개념의 외연을 넓혀간다고 말하는 방식의 언술들은 설령, 그 탄성이 아무리 높은 것이라 하더라도 서정이라는 개념을 실체화하고 이에 속성을 부여해서 거기에 부합하는 것들에 대해서만 가치평가와 ‘성취도평가’를 하려는 시도를 반복하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이 시인의 시는 서정을 재편했다’ ‘서정의 외연을 넓혔다’는 접근보다는 항상 개별적인 방식으로 그 시인 고유의 미학에 대해 규명하고 다른 작품과의 관계 양상 속에서 성취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쪽이고요. 서정이라는, 언제나 의지가 되는 ‘마지막 어휘’를 가지고 그런 시들에 대해서 진단하고 판단하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동의하지 않는 편입니다. 저는 경험적이거나 기술적인 방식으로 서정 혹은 시에 대한 내용이 채워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제기를 본격적으로 낳은 계기가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2000년대 중반 젊은 시들의 출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서동욱 : 마지막에 “서정 혹은 시”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원형 또는 모범의 관점에서 ‘서정’ 개념에 대해 논의하는 일을 버리면, 동일한 문제가 ‘시’ 개념을 규명하는 자리로 옮겨가잖아요? ‘시’에 대해서도 ‘서정’에 대해 말씀하신 바와 동일한 생각을 갖고 계시는 것이겠죠?

 

조강석 : 예.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또 다른 논의, 그러니까 소위 시 장르론과 관계된 논의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자리에서 『문심조룡』의 기술적· 관계적 문체 분류법과 관련하여 말한 바 있습니다만 오늘은 제가 거기까지 가는 자리는 아닌 것 같구요, 큰 틀에서는 지금 질문에 대해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춘식 : 저는 생각이 좀 다르긴 해요. 2000년대 이후의 한국시를 '서정'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설명하려는 강박 자체가 문제라는 데에는 동의를 해요. 하지만 서정이라는 개념을 유보하고 제켜놓았을 때 더 간명하고 설명하기 수월해지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학생들에게 시론을 가르치다보면 ‘시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것이 제일 앞에 나와요. 가장 적합한 답은 “시에 관한 정의는 시에 관한 정의의 역사다”라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각 시대별로 시를 계속 써 왔고 여러 시 장르가 있었지만 그것들이 서로 동일한 양식은 아니었고 하나의 양식으로 통일된 적도 없었습니다. 시에 대한 개념이나 본질에 대한 사고 역시 같았던 적은 없었어요. 결국 시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많은 역사성을 거치는 과정 속에서 계속 변해왔고, 그 본질을 뭐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상태로 지금까지 내려온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명칭에 우리는 종종 시, 서정시와 같은 공통의 명칭을 편의적으로 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서정시의 정의는 뭔가, 시의 정의는 뭔가 하고 생각해 보면 그 대답이 너무 많아서 놀랍니다. 그래서 저는 시나 서정시를 정의 속에 가둬 놓으려고 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2000년대 시를 규정하면서 마치 이전의 모든 시와 차별화된 새로운 시가 나온 것처럼 ‘서정’과 ‘시’를 지금까지와 다르게 규정하거나 개념을 폐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이런 방식은 다분히 세대론적이고 전략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서정이나 시를 규정하는 기존의 어떤 개념을 버리면 비평적으로 시가 좀 더 자유로워질까요. 개념을 버려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개념의 강박에 너무 매여서 새로운 것을 보지 못하고 새로운 것을 평가절하 하는 것에 문제가 있었다고 봅니다. 기존의 개념에 맞지 않는 것이 있다면 ‘정말 새로운 것’이라고 규정을 하면 돼요. 어떤 면에서는 이전에 있었던 지식이나 정의를 새로운 것을 인식하는 장애물이나 도그마로 보는 것은 모든 비평이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모든 비평이 이론이나 지식에 대한 도그마에 빠졌을 때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우리가 가지고 있던 시에 대한 관념이나 지식을 도그마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기존의 개념 속에서도 충분히 현재의 ‘시’나 ‘시의 새로움’을 논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조연정 : ‘서정’ 혹은 ‘시’라는 개념이 규범적으로 규정되어서는 안 되며 경험적이거나 기술적인 방식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조강석 선생님의 말씀이나, ‘서정’ 혹은 ‘시’와 관계된 기존의 어떤 개념도 ‘도그마’가 될 수는 없다는 김춘식 선생님의 말씀에 상통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새로움이란 발견되는 것이며 그것을 위해서는 감성교육이 필요하다는 서동욱 선생님과 진은영 선생님의 말씀에도 깊이 공감하고요. 선생님들께서는 ‘시란 무엇인가’ 혹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관련해서 ‘서정’이라는 말을 ‘시’의 동의어로 쓰고 계시고 있는데요, 큰 차이는 없을지 몰라도 2000년대 젊은 시를 다루며 평단에서는 ‘서정’이라는 말을 주체와 세계가 관계 맺는 방식과 관련하여 다소 부정적인 어휘로 활용을 했던 것 같아요. ‘서정적 권위의 해체’라는 말이 새로운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를 넘어 일종의 당위적 뉘앙스를 풍기는 말로 쓰이기도 한 것 같은데요. 주체와 세계의 관계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서정이냐, 탈서정이냐의 문제는 당위적 선택의 문제는 아니겠죠. 그렇다면 서정도, 탈서정도 당위로 강요되기보다는 이제 하나의 경향으로 존중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고 있다는 점에서 2000년대에 이르러 시의 다양성이 폭넓게 확보되고 있다고 분명히 말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의 젊은 시를 다룰 때 ‘감성적 새로움’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감성적 아름다움’이라는 측면에 대해서는 논의가 다소 소홀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면 조강석 선생님의 말씀처럼 이제 개별 작품의 미학적 성과를 다른 작품과의 관계 속에서 적극적으로 발견하는 본격적인 작업이 좀 더 섬세하게 진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춘식 : 서정의 개념을 넓힌다, 좁힌다는 개념은 부적절한 것 같고요. 서정이라는 개념을 정의내리는 것 자체를 개별 시론가나 이론가들이 각각 다르게 해왔던 것 같아요. 낭만주의 시론가인 워즈워드와 주지주의 시론을 주장한 엘리어트 등도 서로 달랐고…. 그러니까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서 각각 다른 정의를 내린 것이기 때문에, 서로 마주 보면서 협의하여 서정의 개념을 넓히자고 하면 넓혀지는 게 아니라 논자마다 각각의 미적 취향, 신념, 생각에 따라 다른 지점을 말한 총합이 서정이거든요. 그 얘기는 시를 쓰는 사람은 ‘내가 본 것이 이것이야’라고 쓰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볼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 점에서 시적인 소통은 상당히 주관적인 문제고, 자기 기억이나 체험을 어떻게 떠올리느냐와 관련돼 있기도 하고 상당히 심리학적이고 복합적인 문제인데 그 자체를 어떤 개념의 틀에 맞춰서 이렇게 저렇게 하자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서정을 사용하는 방식을 개념적으로 쓸 게 아니라 실제 비평적인 작품을 놓으면서 묘사해 보거나 기술적으로 얘기를 하면서 쓰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것에는 저도 동의를 해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기존에 있는 개념이 이런 설이 있고, 저런 설이 있는데 그 자체가 무의미하거나 단순히 안 맞으니까 넓혀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예를 들면, 아까 ‘서정이 진화한다’는 말을 했는데 2000년 초반만 해도 ‘진화한다’는 얘기를 할 때, 거기에는 뭔가 강박이 있었다고 봐요. 당시 상황에서 무엇보다도 ‘자연서정’을 서정의 핵심에 놓고 얘기했고 자연적인 서정이나 교감의 바깥에 있는 문제는 마치 지금까지 서정에서 취급하지 않았던 것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서정의 개념을 넓히자, 서정이 확장됐다, 새로운 징후다 이렇게 얘기를 한 건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보거든요. 서정에는 ‘자연서정’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또 근대 이후에 주체성에 기초하는 서정이 나왔지 근대 이전에 주체의 강박이 강한 ‘서정’이 주류였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거든요. 시의 역사는 근대보다 오래 되었기 때문에 ‘현대시의 완성’이 시의 완성일 수는 없다고 봅니다. 특히, 서정적 주체를 포기하면, ‘현대의 완성’ 혹은 ‘탈현대’가 달성되는 듯 과장된 수사를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서정이라는 개념을 습관적으로 ‘근대성’과 연관해서 사용해왔고, 근대시라는 정체성 안에서 ‘서정’이라는 개념을 특화하여 사용해왔는데 그것도 1백년이 안 되는 한국 현대시 역사의 특수성일 뿐입니다. 1920년대에 한국 근대시가 출발해서 80, 90년대를 거쳐 오는 동안 한국시를 설명할 수 있는 규범으로서의 서정만 서정의 개념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설명하려는 강박을 가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생각하는 서정은 한국 근대시의 범주 내에서의 개념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조강석 : 네, 잘 알겠습니다. 그럼, 변화를 바라보는 문제틀을 조금 바꿔서 이야기를 더 이어가보죠. 아까 서동욱 선생님 말씀 중에 지금 논의되고 있는 여러 변화 양상들이 단순히 스타일의 변화라거나 기법의 변화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현대적 삶의 양식을 완수하는 형태의 문제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예술의 양식과 삶의 경험 양상이 서로를 보증할 적실한 방식을 얻어가는 과정이라고까지 의미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얘기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문학과 현실, 시와 현실의 상관관계 문제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것 같습니다. 서동욱 선생님은 이게 발화 형식의 문제뿐만이 아니고, 새로운 경험에 대해서 적실한 형식을 찾는 과정으로 얘기하시는 거죠?

 

서동욱 : 김춘식 선생님 말씀하셨던 것 중에 이런 취지의 이야기도 나왔던 것 같아요. 비주체적인 면모를 가지는 시가 반드시 근대 이후에만 나타난 것은 아니다, 또는 근대 이전에는 주체적인 것이 주류적인 것이 아니었다, 다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개념이나 사유가 회귀하는 방식은 페스트균과 비슷한 것 같아요. 늘 상존하지만 특정 조건하에서만 현실화돼서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이지요.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개념들도 현대인들이 전적으로 고유하게 발명한 것은 없다고 이해해도 무리가 없겠지요. 다 고대 이래 예전의 것들이 반복된다는 점에는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어떤 좌표에로 그것이 회귀해서 현실화하느냐가 관건이겠지요. 이런 맥락에서, 근대적 주체에 대해 적대적 관계를 수립하는 위치를 점한다는 점에서 현금의 익명적인 것의 범람은 매우 주목할 만한 것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제가 현대시와 관련하여 그것이 어떤 점에서 현대적인 삶을 완성했다고 말씀 드렸을 때, 여기서 말하는 현대적 삶은 특별한 방식으로 규정되어야 합니다. 우리 정치적 삶의 가능한 형태와 시적 발화가 공유하는 지점에 익명성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한 말이었죠. 가령 『앙띠 오이디푸스』같은 경우는 우리에게 정체성을 부여하는 방식 안에서 정치적 억압을 읽어내고 그로부터의 해방을 모색한 작품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정체성을 부여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오이디푸스죠. 더 일반화시켜 말하면 (부성적) 법에 매개시키는 방식으로 주체가 되게 하는 것이지요. 이로부터 벗어나 대척점에서 구현할 수 있는 것이 소위 ‘n개 욕망’이라는 익명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아까도 쭉 말했듯이 현실 정치 안에서 각종 억압적 기재를 피해 우리가 적극적으로 찾아야할 지점들과 발화 양식에서 구현되는 익명성이 상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날 문학의 정치성이란 논의가 뭔가 생산적인 성과를 내놓을 수 있다면, 아마도 익명적 발화를 구현하는 시적 성과들의 지지를 받고서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김춘식 : 익명성에 대한 문제는 2000년대 이후 시인들의 의식 속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점과 관련해서 젊은 시인들은 새로움을 대변하는 목소리이기 때문에 더욱 징후적인 의미를 많이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세대적으로 나이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정시 계열을 쓰고 있는 시인 중에도 익명성이라는 비슷한 시각을 가지고 시를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유종인 시인의 시 「아호(雅號)」중에서 깨져서 으깨진 두부를 보고, ‘초당’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가 깨져서 으깨져 죽었다는 얘기를 하면서 이름에 대한 의미를 부여했는데, 그 내용에는 결국 이름이라는 것이 참 덧없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어요. 2000년 이후의 시인 중에 발화법이나 화법의 문제에 대한 익명성, 자기 스스로 주체에 대해 호명 받는다거나 또는 이름이 불려 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저는 그래서 좀더 범위를 확장해서 본다면 시의 스타일이나 발화의 문제뿐만 아니라 의식의 차원에서의 불안감이나 우리가 생각하는 세계에서의 견고한 실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시적 화두로서 익명성에 대한 시적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경향의 시적 발화에서 보이는 익명성뿐만 아니라 다른 주체에 대한 문제의식에 대해 좀더 보편적인 논의가 가능하지 않을까 해요. 시적 발화 방식의 변화에 초점을 맞출 경우, 전통적인 시 형식의 발화를 고수하는 것 같으면서도 의식의 차원에서는 근대적인 주체에 대한 생각 자체를 전복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이 부분도 논의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조연정 : 서동욱 선생님께서는 얼마 전에 쓰신 「시와 비진리-이미지의 논리」(『세계의문학』, 2009여름)라는 글에서 최근 시에 나타나는 발화법상의 특징을 현실과의 관련 속에서 사유하고 계신데요, 그 글의 연장선상에서 오늘 여러 말씀들을 해주고 계신 듯합니다. 이미지로서 존재하는 시와 현실 사이의 상동성을 염두에 두시면서 시가 “시대의 실존 방식의 무의식적 교본”이 되고 있다고도 말씀하셨는데, 그 글을 읽으면서 그리고 오늘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조금 의문이 생기는데요. 최근 문단에서 ‘정치’의 문제, 그리고 문학과 현실의 관계 문제가 제기된 바탕에는 현실에 관한 매우 구체적인 고민들이 놓여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최근의 새로운 시들이 “시대의 실존 방식의 무의식적 교본”이 되고 “현대적 삶의 양식의 완성”한다고 할 때의 그 ‘시대’ 혹은 ‘현실’이란 어떤 형태의 시대와 현실을 의미하는지, 시와 현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접합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진은영 : 저는 서동욱 선생님이 이야기한 익명성을 더 강조하고, 더 많이 발명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성적 주체의 익명성을 말씀하셨잖아요. 젊은 시인들의 시 속에서 이성애 남자 혹은 이성애 여자라는 다수자의 이름을 거부하는 탈정체화의 주체가 나타났다는 점에서 익명성 개념을 가지고 오시는 것 같아요. 현실과의 구조적 상동을 따지자면 성적 소수자 운동의 활성화를 말할 수 있겠지요. 예컨대 만화나 영화 속에서 이 소수자 운동에 대한 인식이 드러나기도 하고, 그것이 그 매체들을 통해 더 일반화되거나 지각 가능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지요. 문학에서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 발견됩니다. 탈정체화라는 익명적 주체화의 과정이 시적인 텍스트 속에서 발명되어 현실에 영향을 미치든, 아니면 현실에서 발생하는 익명적인 정치적 주체화의 과정이 시 속으로 들어가든, 말과 행위의 양 차원 모두에서 기성 주체로 표현되지 않는 주체적인 삶의 양식들이 발명되고 있고 더 많이 발명되어야 한다는 점에 많이들 공감하시는 것 같아요.

 

조강석 : 그러니까 서동욱 선생님은 지금 악명성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작품 안으로 들어와서 다시 이 키워드를 통해 작품 바깥까지 내다보게 하는 어떤 중요한 개념, 일종의 마스터키로 보고 계신거죠? 어떤 의미에서는 제일 바람직한 방식일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문학 안에서, 내재적인 차원에서 정치현실과 맞닿아 있는 특징이 드러나는 방식이니까요. 형식은 침전된 내용이다라는 혹자의 이야기도 생각이 납니다만 안에서 밖을 내다보면서 시와 현실의 관계에 대해 사유하는 한 방식이 아닐까 합니다. 최근 들어서 여러 잡지에서 문학과 정치, 문학과 현실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거기에도 여러 가지 수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문학이 혹은 예술이 사회와 어떤 방식의 관계에 놓여있는지, 혹은 놓여야 하는 것인지 대해서 논의가 활발합니다. 대단히 오래된 그러나 언제나 새롭게 물어야할 질문을 또 한 번 드려볼까 합니다.

 

진은영 :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 잠시 몇 구절을 인용할까 합니다. 『창작과 비평』 2009년 가을호에서 한 비평가가 쓴 평론을 봤어요. 젊은 시인들의 시를 인용하면서 기성의 문법을 사용하지 않는 시인들에 대한 섬세한 애정을 표현해서 즐거워하며 읽었어요. 그런데 아울러 이런 언급도 있었어요.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시 혹은 파시즘을 숭배하는 시를 부정해야 하는 근거와 인권을 직접적으로 옹호하는 시가 그 정치적 올바름에도 불구하고 미적일 수 없는 이유는 단순히 아름답지 않아서도 아니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기법의 부재 때문도 아니다.” 그러면서 정치적 내용을 노골적으로 담은 시들의 문제점은 “삶을 특정 부면에 집착하게 함으로써 자기 형식 자체의 운동성을 잃어버린 그런 불변의 정치적 텍스트로 고착화되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 진술은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미묘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어요. “인권을 직접적으로 옹호하는 시가 그 정치적 올바름에도 불구하고 미적일 수 없는 이유”가 있다고 단언을 하시는데, 어떤 시가 정치적 올바름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 시가 무조건 미학적인 것은 아니다 라는 뜻으로 쓰신 것이겠지요. 물론 그렇지요. 그런데 이 진술에서 어떤 사람들은 또 다른 뉘앙스를 읽어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즉 이 진술에 의거해서 혹자는 ‘시가 정치적 문제를 다룬다면 그것은 이미 그것이 쓰여지기도 전에 미학적으로 무조건 실패한 것’이라는 주장을 할 수 있겠다는 것이죠. 이 뉘앙스의 미묘한 차이에 대한 선생님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서동욱 : 시작을 잘 열어주신 것 같아요. 어떤 정치적 내용을 담았다는 사실 자체가 미학적이지 않다는 것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라는 거죠?

 

진은영 : 네. 만일 이 평론가의 진술에 그런 함축이 있다고 누군가 주장한다면 그 주장에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어요. 용산참사, 철거민들,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쓰면서 시에는 어떤 정치적 견해가 기입될 수 있지요. 그런데 시의 정치적 노골성에 대한 부정이 정치적으로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물들에 대해 쓰는 것에 대한 부정까지를 의미하게 된다면 그런 의미에서는 용산이나 이주노동자에 대해 쓴다는 것만으로도 미학적으로 실패한 것이 된다는 결론이 나오잖아요. 저는 이런 식의 결론은 정치적이거나 사회적 소재를 다루었다는 것만으로 미학적으로 성공했다고 보는 단순한 견해와 정확히 평행한다고 생각해요. 그건 정치적인 사물을 다루었다는 것만으로 비미학적이라고 말하는 단순성을 반복하는 셈이니까요.

 

서동욱 : ‘시민’과 ‘시인’의 차이에서부터 논의를 해보면 어떨까 합니다(‘시민’이 오늘날 어떤 이의 정치적 지위와 위력을 표현하기엔 부족한 개념이긴 하지만요). 한 사람이 시민으로서는 각종 서문, 선언서에서 말을 할 수 있는데 그 말은 ‘인식’을 표현하며, 궁극적으로 명제의 형태를 갖춥니다. 그러나 시인으로서는 그렇지 않겠지요. 만약에 시가 ‘명제상관적인’ 시인의 ‘의도’의 소산이라면 시는 하나의 기만이 될 텐데, 왜냐하면 시는 최단거리로 명제를 제시할 수 있음에도 낭비를 초래하는 우회로를 선택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이런 관점은 시에 대해 모욕을 쏟아 붇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시를 단순하고 경제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명제를 치장하는 수사적인 포장지로 격하시키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시는 어디에서 존립하는 것인가 하면 시인의 의향상관적인 명제, 지식에서 존립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것들에 대해서 잉여적인 영역에서 성립할 것입니다. 의미―궁극적으론 명제 안에 담기는―로 번역되지 않는 것으로서요.

그렇다면 물어야 할 관건은, 하나의 시 안에 정치적 메시지와 미적이며 잉여적인 것이 뒤섞여 있건 어쨌건 간에, 시민으로서의 의도나 명제가 아닌 영역 속에서 시가 어떻게 정치성을 가질 수 있느냐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시가 자신의 고유성 안에서 정치성을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를 해명하는 물음이 아닐까 합니다. 제 뜻이 잘 전달이 됐나요? 시적인 것이 명제를 포장하는 수사적인 장치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명제로, 의향으로, 의미로 환원되지 않는 시의 고유한 부분이 수립되어 있다면, 시의 정치적 가능성을 묻는 일은 바로 시의 고유한 그 부분이 정치적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느냐를 따지는 일이 되지 않는가하는 거죠(시인이 시민으로 활동할 경우나, 아니면 시 안에 어떤 명제를 집어넣을 경우에서가 아니라 말이죠).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접근해야지만, 시로서가 아니라 다른 것으로서 시의 정치성을 이야기하는 일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춘식 : ‘시적 이성’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는 얘기가 있어요. 시의 본질적인 정치성이라는 것은 다른 영역에서의 정치성이 아니라 시적 자유성, 자율적 영역 내에서 정치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묻고 그것이 어떻게 발현되는가를 묻는 것이 시에 관한 정치성을 묻는 방식의 기본이라는 것이죠?

 

서동욱 : 예.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김춘식 : 시 자체의 정치성이라는 것이 그 영역 내에 들어 있느냐 없느냐 그 내용도 물어야 한다라고 얼핏 들은 것 같아서 확인을 해보려고 물어본 것입니다.

 

조연정 : 그렇다면 선생님께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우선, 선생님께서는 시인의 의도와는 무관한 지점, 그러니까 명제로, 의향으로, 의미로 환원되지 않는 시의 고유한 부분, 즉 잉여지대로부터 시의 정치성을 논해야 된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그 ‘잉여지대의 정치성’이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시의 정치성이란 이처럼 오로지 사후적인 해석의 차원에서만 논의되어야 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더불어 이런 의문도 떠오르는데요. 앞서 진은영 선생님께서 읽어주신 글에도 나왔듯이, 시인들이 시를 쓸 때 굉장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사안들을 고려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신자유주의나 용산참사 같은 매우 구체적이고 분명한 문제들이요. 시의 정치성이 시인의 의도와는 무관한 잉여의 지대로부터, 사후적인 해석으로서만 찾아지는 것이라면, 시인들의 구체적인 고민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시의 정치성이란 매우 모호한 형태로서만, 언제나 사후적으로만 논의될 수 있는 것일까요?

 

서동욱 :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일단 왜 우리가 거기서 시의 정치성을 찾아야 하는가하는 것은 시의 존재 방식 자체와 관련이 있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예술작품은 용도가 없잖아요? 용도성에 상응하는 것은 장인의 머릿속에서 의도하고 있는 설계도겠지요. 그렇다면 기능이 없다는 말의 의미는 예술작품은 본질적으로 장인의 의향과 독립해서 성립돼 있다는 것이겠지요. 이 점은 시인이 자기 작품을 해석하는 바보 같은 일을 안 하는 데서 가장 쉽게 알 수 있기도 합니다. 작품은 장인의 의향에서 독립해 있기 때문에 장인은 성립되어 있는 작품에 대해 간섭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이렇게 의향상관적인 것은 명제고, 명제는 작품의 본질을 이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작품의 고유한 정치적 가능성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문제이지요. 그렇기에 역사적으로 보면, 사르트르처럼 쉬운 해결책을 선택하는 경우도 나오는 것입니다. 사르트르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다음과 같이 극단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의미의 세계 속으로 들어서면 누구도 거기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법이다. 설사 말들이 자유롭게 결합되게 내버려둔다 하더라도, 그 말들은 역시 문장을 만들 것이며, 문장 하나하나는 언어 활동 전체를 내포하고 세계 전체로 지향(指向)할 것이다”(사르트르, 정명환 옮김, 『문학이란 무엇인가』, 민음사, 1998, 34쪽). 의미에 매개되지 않는 글들―가령 시들―은 여기 들어설 자리가 없지요. 그는 문학을 명제와 의미에 매개하고자 했는데, 바로 정치적 발언은 명제와 의미 속에 자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물론 그는 ‘시의 참여’에 대해서도 매우 재미있는 논의를 하고 있는데, 이는 여러 번 다른 자리에서 다루었고 이 좌담과 직접 관련이 없으므로 여기서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자, 이런 식과 달리 명제와 의미로 환원되지 않는 고유성을 문학에서 발견하고, 그 고유성으로부터 정치성을 발견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 어떻게 그 정치성을 측량할 것인가? 이와 관련해 예전에 어떤 좌담에서 제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잠깐 그것을 인용해보죠. “시의 정치성이란 한마디로 어떻게 발화가 정치적일 수 있느냐는 것이겠지요. 발화는 당연하게도 욕망의 표현입니다. 따라서 발화의 정치성은 욕망이 차지하고 있는 지점이 정치적이라는 것을 확인하는데서 확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욕망이 차지하고 있는 전복적인 정치적 지점을 확인하는 일은 공적 영역에서 용인되는 현금의 감성적 분할 방식이 욕망에 위배된다는 것을 인지하는데서 달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현금의 감성적 질서 안에서 욕망이 부정적으로 나타나는 방식들, 가령 불만과 죄의식 등등을 인지하는데서 달성될 수 있겠지요. 이런 식으로 욕망이 점유하고 있는 정치적 지점이 확인되고 나면, 욕망에 원천을 두는 시적 발화의 정치성도 확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심보선?서동욱?김행숙?신형철 좌담, 「감각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이에서」, 『문학동네』, 2009, 봄호, 389쪽). 이것과 이어서 조연정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해석’의 문제 역시 평가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석의 문제는 긍정적인 해결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요. 해석의 문제는 다르게 얘기하면 비평의 문제지요. 사실, 발화 자체가 그것의 뿌리에 있는 욕망이 제도적인 것들과 불화하는 지점을 가리켜 보인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는, 정치적 가능성을 지닌 문학텍스트를 다른 발화와 구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그것만의 자율성을 확보하기가 어렵습니다. 한 가지 예와 더불어 설명하겠습니다. 부르통은 「초현실주의 제2선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가장 단순한 초현실주의적 행위는 권총을 움켜잡고 거리로 내려가서 군중을 향해 마구 쏘아대는 것이다.” 이런 무모한 일탈은 문학이 촉발할 수 있는, 정치적 장에서의 일탈과 ‘구분’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한 구분―이것이 문학 텍스트의 자율성을 수립하는데―은 그때그때의 정치적 장이라는 컨텍스트를 ‘인식’하는 ‘비평’―비평가들 뿐 아니라 독자들의 몫에도 속하는―에 의해서 전망해볼 수 있는 것이겠죠.

 

김춘식 : 일반인들이 행위하는 것이 원초적으로는 자유로울 수 있지만 또한 그 자체가 정치적일 수 있는 것처럼 시인들이 글을 쓰는 행위 자체는 처음부터 정치적인 것을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그 자체로 이미 정치적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는 것에 전제를 두고 있는 거죠?

 

서동욱 : 발화가 욕망의 표현이고, 그 표현이 현금의 제도 안에서 허용되는 감성적 분할과 부조화한다면 이 때 이미 여기서 정치적인 사건이 발생한다는 것이죠.

 

김춘식 : 이해는 되는데요. 발화하는 것 자체가 늘 현실적인 틀 또는 구조에 위배되는 경우만 정치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될 여지도 있잖아요.

 

서동욱 : 그런 것보다도, 모든 발화 중 최소한의 것이 그런 제도적으로 허용되는 것에 대한 위배내지 불화를 가시화시키고 있다면 이미 그것은 정치적 문맥을 성립시키는 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지요.

 

김춘식 : 어쨌든 발화 자체가 욕망에서 충동된 것이라고 본다면, 욕망에서 충동된 발화는 최소한 정치적일 수 있다는 전제 내에서 말하는 것이군요.

 

서동욱 : 어떤 욕망의 표현으로서 발화가 현실적으로 허용되는 이런저런 욕망을 구현하는 방식과 충돌한다면, 이미 ‘최소한의’ 정치적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것이죠. 그 발화로 인해서.

 

조강석 : 그렇다면 사실 모든 발화 자체가 정치성을 내포할 수 있는 것이잖아요. 유독 시에 대해서, 시적 발화에 대해서 정치성을 물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 얘기하신 감각적인 분할 또는 재편이라면 특히 시가 그 부분과 중요한 관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서동욱 : 우리의 처음 문제제기가 무엇인가 하면, 발화된 것 또는 외적으로 나타나는 형태 가운데 명제나 의미 상관적인 지향성 또는 의도에 매개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면 어떻게 그것들의 정치성을 다뤄야 하는가 였고, 그것들의 외연을 이루는 것이 시였던 거죠. 명제상관적인 의도 없이 이루어지는 발화를 정치성과 관련된 논의에서 제쳐두고자 하지 않는다면, 시의 정치성과 관련된 논의들은 중요해지지 않을 수가 없으며 바로 그래서 시적 발화의 정치성을 해명하려고 해왔던 것입니다. 사실 시적인 것 말고 아주 경제적인 방식으로 정치에 관여할 수 있는 발화는―우리가 늘 해오듯―당연히 아주 많으며, 그런 정치적 명제 지향적인 발화의 정치성을 해명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습니다. 거기선 지향하는 정치적 명제의 제시 자체가 이미 정치에 속하는 것이니까요.

 

김춘식 : 아까 그 비평가의 문제를 거론하신 것은 욕망의 수사학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하는 게 비평의 본질적인 책무에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를 포함해서 하신 것입니까?

 

서동욱 : 아까 「초현실주의 제2선언」에서 읽었던 구절과 관련해서 보았듯, 그렇게 무모한 반항과, 그와 구별되는, 현금의 제도에 의해 지배받는 감성의 장을 정치적으로 재편성‘할 수 있게’하는 일탈이 있다면, 그것을 컨텍스트에 따라 판정해 낼 수 있는 것은 비평을 통해서라고 말씀드렸었습니다.

 

조연정 : 시인의 의도와 독자(혹은 비평가)의 해석이 완벽히 만날 수도, 또 만나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이겠지만, 시의 정치성을 논하는 것이 오로지 비평의 영역이라는 설명은, 텍스트는 시인의 의도와 분리된다는 명제만큼 허망하다는 생각도 한편으로 드는데요. 텍스트는 분명 작가가 품었던 고민의 소산이겠고, 그 텍스트는 사회 현실 안에 놓이게 되고, 텍스트는 일종의 매개가 되니까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잉여의 지대’에서 발견되는 최소한의 정치적 상황이란 게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의미가 있지만 그 구체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쉽게 말하기 힘들 것 같아요. 기존의 감성적 분할과 조화되지 못하는 시적 발화가 야기하는 ‘정치적 사건’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그 최소한의 정치성 상황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더 설명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서동욱 : 일단 앞부분에 제기한 문제부터 살피지요. 과연 허망한 일일까요? 시의 정치성은 오로지 비평의 영역이다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작품―우리 맥락에선 정치적 맥락에서 자율성을 지닌―의 수립에는 비평이 개입한다라는 표현이 보다 적절할 듯 합니다. 헤겔이 작품을 쓰는 작가들을 염두에 둔 페이지들에서 이 점을 매우 훌륭하게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헤겔의 다음 인용에서 ‘사태 자체’나 ‘사회적 존재’ 또는 ‘정신적 존재’라는 개념은 ‘작품’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사태자체는 개개인의 행위이기도 하도 만인의 행위이기도 한 사회적 존재임으로 해서 그의 행위 역시 타인을 위한 것도 되는 사회적 행위이며 만인 각자의 행위도 되는 사태라는 것이 깨우쳐진다. 그야말로 온갖 것이 다 함께 어우러져 있는 그런 존재가 바로 정신적 존재인 것이다”(G. W. F. 헤겔, 임석진 옮김, 『정신현상학』, 1권, 한길사, 2005, 432쪽). 쉽게 말해 나의 행위이자 타인의 행위의 소산이 작품이라는 것, 타인과 내가 함께 어우러져 수립하는 것이 바로 작품이라는 것이죠.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비평 또는 제삼자의 개입은 작품이 고립적으로 성립된 뒤에 부가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자체를 성립시키는 요소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르트르는 헤겔의 이 텍스트에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글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하지요. “모든 것은 결코 미리부터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 스스로가 씌어진 것을 부단히 초월하면서 발명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미적(美的) 대상이 출현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는 책에도 없고(책에는 다만 그 출현에 대한 요청이 있을 뿐이다), 또한 작가의 마음에도 없다.……예술 작품의 출현은 그 이전의 여건으로서는 ‘설명될 수 없는’ 하나의 새로운 사건이다.……이렇듯 작가는 독자의 자유에 호소하여 그의 작품의 산출에 협력하기를 바라는 것이다”(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66-68쪽). 이렇게 보자면, 비평은 이미 완결적으로 성립된 작품을 납치하듯 다루는 자, 독단적으로 작품 안에 정치를 주입하는 자가 아니라, 정치 속에서 작품의 자율성이 비로소 성립하도록 해주는 자인 것 같군요.

뒤에 말씀해주신 내용은 ‘구체성’과 관련된 아까의 질문을 다른 용어로 다시 해주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질문으로 보입니다. 아까도 매우 중요한 질문을 하셨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지금 답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용어상 일부 오해 없도록 조율할 것이 있지만 일단 접어두고,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보죠. 바디우가 이런 취지의 이야기했어요. 어깨에 두른 띠를 통해서 그들의 욕망을 보란 듯이 주장했던 1968년의 수염이 덥수룩한 참가자들은 비인격적인 힘들, 즉 익명적 힘들과는 다른 것이라고. 이것이 뜻하는 바는 68혁명 때 바리케이트 앞에 서 있었던 것은 어떤 익명적인 욕망이 아니라, 어깨에 두른 띠에 구체적인 자신의 요구 사안을 적고 있는, 구체적인 관심사를 지향하는 ‘인간들’이라는 것이지요. 여기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정치적 행위라는 것은 현실적인 정치적 상황이 초래하는 ‘구체적인 이익관계’를 둘러싸고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구체적인 정치적 표상들이 주어졌을 때 이 표상들에 어떤 판정을 내리고, 그 표상들을 바리케이트 이쪽과 저쪽으로 가르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모든 표상 배후에 있는, 그런 점에서 (‘자아’라는 표상에도 앞서 있을 것이므로) 익명적이고 비인격적인 욕망이 이미 현금의 정치 제도 전반과 관련하여 혁명적인 위치를 점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어떤 구체적인 권리 주체인 인격체의 표상과 그 인격체가 마주하는 표상들(정치적 현안을 인지하게 해주는)이 혁명적인 관점에서 배치되고 작동하도록 해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쪽엔 이름을 가진 세계가 있습니다. 제도로서 정치는 익명적인 세계보다도 이러저러한 특별한 표상들과 관련해 이루어지는 것이잖아요? 구체적인 정체성과 관련해서. 그런데 이 표상들이 운동할 수 있게 해주고, 억압적인 기재와 맞서도록 해주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억압적인 표상에 매개될 수 없는 익명적인 욕망이 다른 한쪽에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죠. 그렇지 않다면 정치적 장을 이루는 표상들은 그것들을 작동하게 하는 활력 없이 멈추어 있는 이름표들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익명적 욕망은 그 자체로 고려되었을 때는 추상적으로 보일 수 있을지 모르나, 모든 구체적인 정치적 표상들 배후에서 그것들을 작동시키는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연정 : 어떤 구체적 행위의 출발점으로서의 혁명적 욕망이 발화되는 곳이 텍스트라는 설명이시죠? 제가 항상 의문이 드는 것이 작가들에게는 구체적인 고민이 있는 것이잖아요.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것은 구체적인 정치성의 전제로서 시의 최소한의 정치성일 텐데, 그것도 굉장히 의미 있는 것이겠지만, 이게 뭔가 계속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간단히 말하자면, 미학적인 측면을 고려하면서 ‘시와 정치를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라는 시인의 문제제기와, ‘시는 의도와 무관한 잉여의 지대에서 정치적이다’라는 결론 사이에서 ‘정치’라는 기표의 의미변화가 너무 가파르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서동욱 : 그 구체적인 고민이라는 것이 창작상의 고민인가요, 시민으로서의 고민을 말하시는 건가요?

 

조연정 : 창작자로서도 사회인으로서도 여러 가지 고민이 있을 텐데, 그 두 고민이 만나는 지점, 그러니까 어떤 시인이 매우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를 염두에 두면서 시를 쓰고자 할 때의 그 고민을 말하는 것입니다.

 

진은영 : 그 부분에 대한 제 생각은 서동욱 선생님과 좀 다른데요. 물론 시의 본질은 명제의 전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명제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점, 즉 의향상관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지난 해에 저는 다른 시인들과 함께 별이나 연애에 관한 릴레이 시도 쓰고, 시인 김수영에 대한 시도 썼어요. 그런데 저는 별이나 사랑, 다른 시인을 노래할 때는 명제적이거나 의향상관적이지 않은 시를 쓸 수 있는데 네팔 이주노동자 미누나 용산 참사에 대해서 쓸 때는 의향상관적인 시를 쓰게 된다는 가정에는 어폐가 있다고 봐요. 별과 사랑, 다른 시인에 대해서는 자극받고 시적 감흥을 일으킬 수 있는데 특정 사물과 사태에 대해서는 유독 의향상관적인 표현만 가능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거죠. 별, 사랑, 시에 대해 명제적인 발화가 존재할 수 있듯이 용산이나 이방인에 대해서도 비의향적이거나 비의도적인 발화가 가능할 수 있지요. 정치적인 것이든 아니든 상투적인 수준의 인식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시는 좋은 시는 아니잖아요. 또 우리가 정치적 현실이나 정치적 사물들에 대한 통찰이 그렇게 자명한 것일까요? 용산만 봐도 그렇지 않지요. 시인은 항상 모든 사물에 충만하게 열려있는 상태에 있고 용산의 불타버린 망루에 대해서 자극을 받으면 그것이 시로 표현되는 거죠. 나는 올바른 시민이니까 이번 기회에 이 문제를 시로 써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쓰지는 않아요. 그런 점에서 모든 주제는 시인에게 평등한 것이고 그런 평등의 차원에서 정치성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서동욱 : 굉장히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되는데요. 마지막에 주제들은 서로 평등하다고 말씀하셨죠. 저는 거기서 얼마간 위험성을 느낍니다. 용산은 용산이어야만 해요. 용산에 대해서 사람은 그것의 의미에 대한 의향을 가지고 있어야지요. 시인으로서 그것을 다룰 수 있고 없고의 문제를 떠나서. 그게 평등한 다른 주제들 속에 매몰되면 시인은 너무 천진난만하게 돼 버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김춘식 : 진은영씨가 얘기한 것은 그런 의도는 아니었던 것 같고. 두 분이 말씀하신 것과 관련해서 이런 말이 있지요. 소재나 주제는 씌어지기 이전의 문제이다. 시라는 것은 이미 씌어진 양식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비평가나 해설가는 씌어진 작품만을 놓고 이야기하잖아요. 만약에 문학의 정치성을 판가름한다면 씌어진 작품을 놓고 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어떤 소재를 다루는 데 있어 정치적인가 아닌가 하는 태도의 문제가 완성된 작품까지 연속되는가 하는 것은 단정 지을 수 없는, 가능성만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진은영 선생이 이야기한 대로 “어떤 소재나 주재도 시인에게는 균질적인 것으로 다가올 수 있다. 단 씌어진 작품 속에서 어떤 정치적인 발화가 나타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라고 봐요. 실제 시인과 시 안에 들어있는 화자를 분리시키는 것이 현대시의 방식인데 “똑같은 문제에 대한 정치적인 의도와 성향도 하나의 양식으로 구성될 때는 양식적 상상력에 의해서 달라진다”는 것이죠. 어떠한 양식적 상상력으로 발화되었느냐하는 문제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물론 그 양식적 상상력이 하나의 규범이나 모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죠. 하나의 모델이나 규범이 강요되고 있다면 양식적 상상력에 대해 정치성 혹은 정치적 억압이 이미 개입된 것이라고 볼 수 있고, 결국 재연의 방식을 달리하고 발화의 방식을 변형시키고 어떤 시적인 창작의 스타일에 변화를 주는 것은 ‘양식적 상상력’을 둘러싼 투쟁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 점에서 본다면 소재나 주재를 어떻게 양식화시키는가 하는 차원에서 이미 양식적 상상력에 대한 정치적 함의는 작동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씌어지고 난 후에 어떻게 전달되고 해석되느냐, 비평가가 어떠한 정치적 무의식을 읽어내느냐 하는 문제 역시 양식적 상상력이나 미학의 ‘정치성’과 관련됩니다. 어쨌든 시인이 구성하고 있는 양식적 상상력의 ‘정치성’ 부분이든 비평가가 시 속의 정치적 욕망을 해석하는 부분이든, 씌어진 작품의 양식이, 이전의 다른 작품들의 양식 층위와 다르다고 얘기해서 그 ‘양식적 상상력’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층위가 다르긴 하지만 소재 차원에서도 일종의 정치적 의도가 있을 수 있고 그 소재가 양식화의 과정을 거쳐 시인이 의도했던 만큼 효과적으로 독자에게 전달되느냐의 부분에 관련된 정치성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기대지평’이라는 개념이 적용될 여지도 있겠죠. 그 문제는 아까 진은영 선생이 이야기한대로 소재나 주제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는 시인 한 개인이 선택하는 취사의 문제가 아니라면 평균적일 수 있다고 봅니다. 단 그것이 작품으로 창작된 이후에는 다르다고 봐요. 그 작품이 비평적인 대상이 되는 것이고 정치적인 함의가 해석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문제도 ‘정치성’의 평가에 중요한 부분이 되기 때문입니다.

 

서동욱 : 제가 염려하는 것은 이런 것이에요. 시인에 대한 소설―일종의 시인론이죠―중에 밀란 쿤데라의 『생은 다른 곳에』가 있는데 거기에 체코 시인 프란티제크 할라스의 상황이 나옵니다. 그는 소위 참여시를 쓰고 싶어 했는데, 그 상황을 쿤데라는 이렇게 기술합니다. “그는 그의 노래를 저주로 바꾸는데에도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오히려 그의 저주가 계속해서 노래로 바뀌었다”(밀란 쿤데라, 안정효 옮김, 『생은 다른 곳에』, 까치, 1988, 185쪽). 제가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 구절과 같은 상황입니다. 저주, 즉 정치적 효과를 지니길 의도한 발화가 그저 노래가 되는 것. 진짜 정치적인 함축을 지닌 발화가 수립되어야 할 때 그것이 ‘자꾸 노래로 바뀌어서 탈정치화 되는 최악의 상황’이 도래할까봐 염려되는 것이죠.

 

김춘식 : 의도는 저도 이해는 되는데, 그 부분은 그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양식적인 상상력에 포함되는 것 같아요.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강렬하게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라고 썼는데 노래가 되어버렸다면 실패한 양식적 결과죠. 잘못 씌어진 것이죠. 비평이라는 영역 내에서 이야기할 때 시인이 어떤 의도로 썼는지 그 의도가 성공적인지 아니었는지 판가름하기는 어려운 일이잖아요.

 

서동욱 : 우리가 계속 해온 이야기는 시의 정치성을 이야기할 때 ‘의도’를 논외로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인데…….

 

조강석 : 시와 정치에 대한 논의 자체가 층위가 여러 층위에요. 지금 두 분의 얘기가 소위, 요소적인 차원에서의 무의미와 비유적인 층위에서의 시의 정치성이 관계맺는 방식에 대한 해명은 되겠으나 자칫 여백을 지닌 모든 시에서 보편적으로 정치성은 이렇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어떤 특정 국면에서 특정한 지향을 가지고 발화된 언술이 미학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측면은 없겠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특히 시를 쓰는 시인의 입장에서는 그런 문제에 대한 고민이 더 깊겠죠.

 

서동욱 : 그때 시가 수사학으로 강등되지 않고, 시적인 것이 유지되면서 동시에 그것이 정치적일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겠지요.

 

조강석 : 네, 결국은 구체적인 성취에 대한 문제가 되겠고 그렇게 되면 시인의 고민이 더 깊어지겠죠. 선생님 얘기는 그렇게 되면 시가 구호가 되는 길을 어떻게 피해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관건이 된다는 것이잖아요. 아까 선생님이 양식 얘기를 하셨는데 김수영이 시에서 폼의 개혁은 종래의 부르조아 사회의 미 관념에 대한 부단한 부인과 전복이라고 언급하면서 저 부르조아 사회의 미를 아무런 주저없이 곧바로 부르조아 사회의 쾌락이라고 풀어쓴 대목이 생각납니다. 결국 시에서 폼의 개혁은 그저 한가로운 일이 아니라 한 사회의 욕망의 방식과 결부되는 것이겠죠. 시민과 시인은 이 지점에서 만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한 사회의 조그만 시민으로 살아가기도 힘들게 자신을 자극하는 것들이 많은 사회에서 폼의 차원 이전에 쾌락의 차원에서 욕망을 조련시키려는 것들에 대해 항거하는 발화가 생겨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시민으로서의 시인이라는 말을 욕망으로서의 폼이라는 말로 바꾸어서 생각해보면서 이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이즈음에 하고 있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정치성을 논의하는 것이 자칫 잘못하면 모든 것을 보편화시켜버리는 것이다라는 비판도 가능합니다만 욕망과 폼이 조우하는 구체적 현장을 적시해주는 것이 또 시민으로서의 비평가의 일이니까요……. 지금 선생님이 마련하신 틀에서 볼 때 2000년대 우리 시의 정치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판단을 하고 계십니까. 기존의 욕망의 틀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가 이 문제를 바라보게 하는 언어가 개진돼 있기 때문에 우리 시의 정치성의 영역이 넓어졌다고 판단하고 계시는 것인지요?

 

서동욱 : 시의 정치성 문제가 시 일반에 대한 우리 성찰의 확장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측면만 일단 이야기하지요. 시는 ‘인식’과 상관없다고 말했었죠. 이것이 뜻하는 바는 정치에 대한 자의식―이게 ‘인식’의 문제죠―을 발전시키는 것은 시가 가질 수 있는 정치적 가능성의 폭을 넓히는 일과는 별로 상관이 없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적 인식에 도달했을 땐 어쩌면 시인임을 잊고서 그것을 간명한 명제와 행동으로 표현하면 되지 시라는 영역을 매개로 해야 할 필연성은 없을 듯합니다. 시 대신, 의도한 효과를 높이기 위한 경제적 방편으로 수사적 기재를 발전시킬 수는 있겠지요.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정황이 알려주는 것은 시가 비정치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시는 정치적 명제에 흡수되지 않고 고유성을 유지하면서도 정치성을 회득해야하는 과제를 끌어안는 도정에 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도정의 열림 자체가 시의 정치적 가능성의 영역을 넓힌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김춘식 : 처음에 서동욱씨가 이야기했던 발화의 익명성부터 해서 욕망이라는 문제와 결부해서 시의 정치성이 어떻게 규정될 것인가라는 문제를 대화주제로 끌고 왔고, 그 과정 속에서 시 안에서의 정치성, 일상적인 시민으로서의 정치성이 아니라 시인으로서의 정치성을 시에 담는 것은 가능한지 또 그것이 비평가에게 눈에 띄고 발견되고 의미가 재해석될 수 있는지 하는 문제를 논의한 것 같아요. 그 방향으로 논의하다 보니까 저는 또 다른 방향의 논의가 생각이 나는데, 2000년대 이후에 시의 텍스트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비평의 역량이라고 하는 부분과 다양한 발화 형태, 양식과 굳이 결부시키자면 하나의 다른 양식이 출현했을 때 그 다른 양식을 통해서 정치적 징후를 읽어나가는 것이 한국문학이 정치성을 감지하고 현재까지 나름대로 문학적인 성과를 낳은 동력이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는 그 이전에 정치성을 논하던 방식과 지금 정치성을 논의하는 방식과의 차이를 가지고도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이런 방식으로 정치성을 논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린 현실 정치에서 80년대, 90년대, 2000년대를 겪어오면서 끊임없이 문학에게 물어봤거든요. 80년대에는 현실 정치적인 힘에 의해 시민의 발화가 억압된 상태에서 시민의 발화가 문학을 통해 이루어 졌죠. 인정도 받았고요. 90년대에 다시 문학의 정치성을 물었을 때, 문학이 비판받았던 것은 “과거의 거대담론보다 지극히 사소한 주체로 떨어졌다. 시민적 주체의 진취적 발언이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것으로 추락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정치 자체가 거대담론이 아니라 미시적인 일상성, 일상 정치에서 더 중요한 문제점을 지닌다는 생각의 전환을 통해서 90년대 문학은 다시 ‘일상의 정치’를 문학으로 흡수했습니다. 2000년대에 이르러 다시 생각해보면 이제는 “시라는 것의 발화형태 내에서, 즉 시민이나 다른 영역, 문학이 아닌 외부의 영역에서의 정치적 발화가 아니라, 시의 본질적인 발화의 양식으로 정치를 논할 수 있다. 그 방향에서 2005년 이후에 다양한 양식적인 변화가 그것을 현실화시켰다”고 평가하는 방식으로 문학의 정치성을 논의합니다. 어느 정도는 동의를 하지만, 시가 본질적인 자기영역으로 들어와서 다른 것으로부터 떨어져서 정치적인 얘기를 했다는 것만으로 과연 모든 게 만족스러운가 하는 문제는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과연 정치적인 문제를 얘기한다면 왜 시로 얘기하는 것이 유용할 수 있는가. 시에서 정치를 얘기하는 가치가 시민으로서나 일상적인 담화에서 하는 것보다 더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그게 더 가치가 없는 것이라면 시는 왜 정치적 발화를 계속 담아야 하는가.” 이런 문제가 여전히 남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조연정 : 시인의 의도를 고려하며 시의 정치성을 추정해낼 수 없다는 것, 결국 시의 정치성이란 해석의 차원에서 이야기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수긍해야만 하는 결론이겠죠. 그러니까 우리가 시의 정치성을 말하고자 한다면 아주 가까스로 말할 수밖에 없겠죠. 시는 분명 ‘무용함’이라는 존재론적 운명에 처해있는 것인데, 김춘식 선생님 말씀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가 왜 정치적 발화를 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분명 남는 듯합니다. 시만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일이 무엇인지 계속 생각해보고 싶어요. 2000년대 우리 시가 내용이나 소재의 측면에서, 그리고 발화법의 측면에서 더 이상의 금기가 없을 정도로 그 외연을 많이 확장했지만, 구조적인 측면에서 생각해볼 때 문학의 역할이 확연히 줄어든 것은 사실이잖아요. 이럴 때일수록 시의 존재의의 뿐만 아니라 그 구체적인 역할에 대해서도 더 고민해봐야 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강석 선생님께서 「‘서정’이라는 ‘마지막 어휘’」(『세계의문학』, 2009봄)에서 “두루 고해진 고통이 고통의 연대를 낳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라면 (…) 직접 머리띠를 다시 묶는 것이 훨씬 더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시를 쓰거나 읽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훨씬 더 직접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일들이 있겠지만, 저 말은 시가, 혹은 시의 정치성이 의미 없다는 주장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시만이 가장 의미 있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욕망의 틀을 새롭게 재편하는 것이 시의 핵심적인 정치성일 수 있겠지만, 이것 역시 이제는 다른 분야를 통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취해지는 정치성일 수도 있으니까요.

 

진은영 : 저는 시만이 정치적일 수 있다는 게 아니라 시는 정치성을 가질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한 불편함을 계속 말씀드린 것이에요. 조금 전에 사르트르에 대해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의 참여문학론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사르트르 식으로 시의 자동사성을 강조하면서 시의 정치성은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에는 시인으로서 동의하기 힘들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랑시에르도 사르트르가 시의 자동사성을 부각시키고 참여문학적 성격은 모두 산문에 부여했다는 점을 비판하면서 일부러 플로베르의 소설을 시라고 부르죠. 플로베르의 소설은 지시체적 기능을 상실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산문이 아니라 시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랑시에르는 이 시적인 플로베르의 문장이 충분히 민주주의적 정치성을 가졌다는 점을 보여줘요. 저는 2000년대 후반의 시인들이 새로운 익명성을 발견해내고 그것을 시에 가져옴으로써 정치성을 획득해가고 있다는 서동욱 선생님의 입장에 반대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그런 정치성이 굳이 통상적인 의미의 정치 영역, 자명한 치안적 논리들이 새겨진 삶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뻗어나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지요. 만일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전복적인 욕망이 유독 그 부분에 가닿지 않아서가 아니라 실제로 어떤 금지 메커니즘이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생긴다는 거예요. 거창한 금지는 아니지만, 이런 민감한 정치적 풍경을 그려내면 독자들이 피로해하지 않을까, 이런 것을 표현하면 문예지로부터 어떤 식의 제재가 오지 않을까, 이러다가 내가 동료들이나 평론가들로부터 참여시인 소리를 듣는 것은 아닐까, 다루어 본 적 없는 낯선 풍경인데 시적 형상화에 실패하지 않을까 등등의 여러 종류의 사소하고 미묘한 금지들이 작동하죠. 그 금지들을 시인들이 의식적으로 용감하게 깨버리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의미에서 서동욱 선생님이 말씀하신 익명성의 문학적 발명은 정치적, 사회적 지대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고 2010년대에는 이런 시도들이 폭발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서동욱 선생님이 언급하신 들뢰즈에게서도 익명성이나 비인칭성의 정치학은 치안에 대한 비판이나 탈주를 통해 발명되는 정치적 실존과 무관한 것이 아니고요. 랑시에르도 치안의 논리에 입각해서 타자가 부과하는 객관적 이름을 파괴하는 정치학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것도 이른바 익명성의 정치학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더욱 그런 희망이 생깁니다.

 

조강석 : 네, 잘 알겠습니다. 역시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좀 더 논의가 필요하겠습니다만 큰 틀에서는 선생님들이 문학과 현실의 관계양상에 대해 바라보는 태도랄까 하는 것들이 어느 정도는 그려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앞으로 여러 지면을 통해 이 논의를 좀 더 심화시켜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끝으로 2000년대 문학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못 다한 이야기나 덧붙이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으면 하시고 아니면 우리 문학 전반에 대한 선생님의 바람이 있으시면 한 말씀씩 해주시고 정리하겠습니다.

 

조연정 : 우선, 오늘 선생님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다는 점이 개인적으로는 무척 기쁩니다. 정리 삼아 몇 마디 덧붙이겠습니다. 2000년대 우리 시단에서 가장 빈번히 제출된 단어는 아마도 ‘새로움’일 것입니다. 새로운 시도들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만 난무하는 새로움 속에서도 진정 사건으로 남을 만한 새로움을 가려낼 수 있는 안목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다짐이기도 하고요. 또한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이 ‘새로움’이라는 기준이 시를 읽는 유일한 잣대가 될 수 없다는 사실도 거듭 강조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새로움이라는 잣대를 마구 휘두를수록 가장 불행해지는 것은 아마도 소중한 텍스트들이겠죠.

시를 쓰는 일도 읽는 일도 굉장히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러한 개인적인 작업들은 텍스트를 매개로 분명 어떤 ‘만남’을 이루어내고 있습니다. 사르트르가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말했듯 한 편의 시는 시인과 독자의 공모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니까요. 시의 정치성을 논할 때, 즉 시와 현실이 어떻게 접합될 수 있는가를 논할 때에, 이 같은 소박한 전제를 잊지 않는다면 2000년대의 많은 시들이 자유로운 발화를 통해 시도한 정치성의 현실적 효과 같은 것도 어렴풋이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시라는 장르 자체가 지닌 정치성을 이론적으로 구명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개별 텍스트의 미학적, 정치적 의미를 섬세하게 찾아보는 작업도 충실히 진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서동욱 : 아주 거칠고 크게 이야기하면, 2000년대 전반에서 중반에 걸쳐 현대시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차게 새로운 시의 가능성을 모색해 왔었던 듯 합니다. 2000년대 후반에는 사상 유래 없는 급속도의 정치적 보수화와 맞닥뜨려 문학의 정치적 가능성에 관한 논의가 출현했습니다. 오늘 돌아볼 때, 양자는 서로를 위해 뭔가를 준비해 온 것 같습니다. 시적 성취는 기존의 시적 형식으로부터의 일탈 뿐 아니라, 주체가 부재하는 익명적 발화까지 노리고 있습니다. 시가 이러한 고도의 내적 성취를 달성했다는 사실은, 사회과학적 명제를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방식으로 정치에 쉽게 편승할 수 있었고 대중들의 호응조차 얻었던 과거의 시들과 달리, 정치적 사안 앞에서 시가 고민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게 해 줍니다. 아울러 옛날처럼 ‘순수문학’이란 쉬운 도피처 안에 머물기에는 현대시의 발화방식은 우리 문화 곳곳에 개입해서 기존의 문화를 위협하는 일종의 ‘참여’를 이미 저지르고 있습니다. 현대시는 정치적 명제를 전파하는 쉬운 길을 선택해 자신의 정치성을 확정짓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화 안에만 머무르면서’ 자신의 극단적 파격을 자랑하는데 그치지도 않으리라 믿습니다. 오늘 이야기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길들을 현대시가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의 잔여물 정도겠지요…….

 

진은영 : 최근 들어 시인으로서 제가 갸우뚱하게 되는 순간은 시가 특별히 다른 행위나 언어활동과 비교해 특별히 정치적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는데 왜 굳이 시의 영역에서 정치적이려고 하느냐는 반문들에 직면했을 때에요. 저는 시를 ‘언어의 일요일’같은 걸로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건 모든 언어들이 노동하는데 시만은 무작정 순진하고 행복한 채로 남아 있어 달라는 주문같이 들리거든요. 예전에 함께 시 쓰던 친구가 있었는데 칠남매의 막내였어요. 그 친구가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가족은 가난했고 부모님, 모든 언니, 오빠는 돈을 벌어야 했는데 나만 늘 풍족하고 안전하고 자유로웠어. 나는 우리 가족의 일요일이었어.” 많은 평론들이 2000년대 시에 등장하는 소년?소녀 화자들을 보며 미성년성의 전복성을 읽어내곤 했지요. 저는 우리 젊은 시인들이 정치? 사회 영역에서 무수히 날아오는 시적 자극을 지나치게 두려워한다면 미래파의 전복성이라고 불렸던 것이 사실은 언어 남매들의 막내동생이 누리는 천진난만한 일요일에 불과했음을 고백하는 것이 될까봐 좀 무서워 질 때가 있어요. 그렇지만 자기 긴장과 진지함 속에서 2010년대를 맞이하고 있을 우리 젊은 시인들의 가능성을 깊이 신뢰합니다.

 

조강석 : 우리 시가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나 오래 ‘언어의 금금금’이라는 과로에 시달려 왔음도 사실이지만 또한 그렇다고 해서 곧장 ‘언어의 일요일’로 직행할 수도 없다는 것이 바로 오늘 현재 시인들의 딜레마이자 가능성일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렇기에 저 간극은 피로로도 웅숭거림으로도 읽힙니다. 딜레마를 언제든 가능성으로 보고 싶은 마음을 덧붙이며 오늘 자리를 접겠습니다, 여러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문장웹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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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책쾌의 여정 우당탕탕 독립출판 북페어 기획자 도전기 임주아 뜻밖의 부재중 이름이 폰에 떠 있었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S 팀장이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일로 만난 공무원이 퇴근 시간을 넘어 전화 문자 콤보로 연락했다는 건 모종의 긴급 상황 아닌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딘가 다급해보이는 목소리였다. “헉 제가요?” 요지는 전주에서 처음 독립출판박람회를 여는데 내가 총괄 기획을 맡아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시기는 6~7월이라 했다. “오늘이 벌써 3월 7일인······” 기간도 기간이지만 독립출판 전문가도 아닌 내가 총대를 메는 게 맞는지 주제 파악에 나섰다. 그러자 팀장은 전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동료와 팀을 꾸리면 어떻겠냐며 인건비도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눈에 광이 돌았다. 단기간에 아이디어를 짜고 사람 모으고 경주마처럼 내달리는 일은 내 주특기 아니던가. 그렇게 살아온 임시변통스러운 삶에 드디어 어떤 보상이 따르려나. 함께할 내 기쁜 동료는 누구인가. 기획자 동료 구하기 첫 타깃은 전주에서 10년 가까이 독립출판 전문책방을 운영중인 뚝심의 M이었다. 그의 책방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는 ‘기성으로 출간된 도서는 입고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단호하게 적혀 있다. 설사 혈육이 역사에 남을 명저를 썼다 하더라도 독립출판이 아니면 가차 없이 거절 메일을 전송하고야 말 꼿꼿함이었다. 그런 M의 책방에는 개인이 스스로 쓰고 만든 각양각색의 독립출판물이 대거 진열되어 있는데 그 큐레이션된 목록에는 웰메이드 작품인 ‘책방을 꾸리는 중입니다’라는 에세이도 있다. 화학공학과를 나온 공대생이 어쩌다 모교 대학로의 한 건물 지하에서 책방을 시작해 지금 모습에 이르게 됐다는 애환 서사가 담긴 책이다. 그는 그 책을 들고 전국을 쏘다니며 독자를 만났다. 주6일 책방 문을 여는 그가 문 닫는 날엔 어김없이 북페어 현장에 가 있었으니까. 캐리어를 끌고 고속버스를 타고 기꺼이 책 보부상으로 분해온 그는 힘들다 힘들다 해도 매년 매회 출전을 멈추지 않았다. 전주에서 오로지 독립출판만을 다루는 책방 주인은 M이 유일해서 대표성도 남다른 터다. 때문에 함께 하자는 내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그의 눈높이도 짐작이 간다. 일찍이 S 팀장이 독립출판박람회 관련 자문을 구하고 싶다고 여러 번 M의 책방을 찾았으나 그는 ‘박람회’라는 명칭부터 맞지 않다고 생각해 소통에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특히 독립출판 행사는 스스로 책을 낸 제작자나 책방 운영자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해 열리는데 전주에선 도서‘관’ 주도로 만들어질 행사라 생각하니 최대한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나는 M이 적극적으로 합류해 의견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되면 그가 책방 꾸리는 일에도 전환점이 올 거라

  • 관리자
  • 2024-05-01
도깨비 이야기

[에세이] 도깨비 이야기 한정현 최근 친구의 부탁으로 점집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사실 무속에 대해선 알면 알수록 이건 민속 문화의 하나이지,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무속 때문에 큰 피해를 본 경우도 있어서 나같은 경우는 사실 이제 거의 점괘를 안 믿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친구가 갓 신내림 받은 애동이라기에 나 또한 어디 구경이나 한 번 해보자 하는 생각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문화로서의 무속은 여전히 관심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옆에서 들어보니 그 영검하다던 무속인의 점사는 무척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어깨가 아프지 않느냐’ ‘밤에 늦게 자지 않느냐’ ‘두통이 가끔 오지 않느냐’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친구의 직업상 대부분 추측 가능한 증상이었다. 게다가 친구는 불면증도 없고 두통도 없다는 거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친구는 자신이 혹시 두통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치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그 말에 순간 따라가고 있더란다. 하긴 나도 그 당사자가 되면 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할 것 같다. 말 그대로 이런 걸 보고 도깨비에 홀린다고 하나 보다. 다행히 친구는 도깨비에 홀려 도깨비가 되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후 나는 왜인지 내내 도깨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살면서 도깨비 만나기 사실 어렵지 않군, 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사실 어릴 땐 도깨비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큰 산을 끼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온갖 민간 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인 것 같다. 흔히 도깨비와 저승사자는 이길 수 없고 오로지 속일 수만 있다고들 한다. 그들이 그만큼 무서운 존재라는 것인데 특히 도깨비에 대해서는······. 얼마 전 영화 〈파묘〉에서도 나왔지만, 도깨비들은 주로 안 쓰는 물건에 혼이 깃들어 만들어지는 귀신이다. 이후엔 도깨비가 그 사물을 대신하여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일반적인 혼령하고는 아주 다른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한데 찾아보니 이 험상궂은 도깨비는 사실 일제강점기 이후 도입된 ‘일본식 도깨비’ 이야기가 일부 섞여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혹부리 영감이 그러한데, 우리가 알고 있는 혹부리 영감에서는 영감이 부러 도깨비를 속여 혹을 떼지만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원래 한국 전래동화에서는 도깨비가 그리 나쁜 존재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영감과 같이 어울려 놀던 도깨비들이 서로의 교감을 통해 친밀해진 후 먼저 나서서 영감의 혹을 떼준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혼령이 물건에 깃들어 만들어진 것이 도깨비라고 한다면 무슨 혼령이냐에 따라 좋은 도깨비가 될 수도 있고 나쁜 도깨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십 년 가까이 이고지고 다니

  • 관리자
  • 2024-05-01
어떤 기준

[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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