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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만 매우 낯선, 그들의 소설

  • 작성일 2010-09-23
  • 조회수 1,628


[작가가 읽은 책]


익숙하지만 매우 낯선, 그들의 소설


박성원


김언수의 『설계자들』은 익숙하지만 새롭다. 조준경이 달린 7?26구경 소총으로 암살을 하고, 홍콩 무협영화에 나오는 자객들처럼 식칼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미국 영화에 나오는 특수부대원처럼 전투용 대검을 휘두른다. 우리나라 현실에선 보긴 힘든 ‘킬러’에 대한 이야기인데도 익숙하게 보이는 까닭은 언제부터인가 우리들 일상에 킬러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수많은 영화를 통해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새롭다.
 

“웃기고 자빠졌네. 그런 건 요즘엔 만화영화에도 안 나와.”

 

(『설계자들』, p.299)


 
이 문장은 주인공 ‘래생’과 설계자인 ‘미토’가 나누는 대화다. 그렇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문학이 늘 새로운 이유는 익숙함이라고 할 수 있는 클리셰(Cliché)를 벗어나 ‘낯설게 하기’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익숙함은 문학의 적일 뿐만 아니라 만화영화에조차 나오지 않는다. 김언수의 『설계자들』이 지닌 낯섦은 먼저 출간된 임성순의 『컨설턴트』(제6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와 많이 닮아 있다. 『설계자들』과 『컨설턴트』는 마치 한 작가가 쓴 연작소설처럼 보이기까지 하다.
『컨설턴트』는 우리들이 영화를 통해 익숙하게 보아 왔던 ‘킬러’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암살을 배후에서 설계하고 계획하는 ‘설계자’에 관한 이야기다.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미안할 지경이다. 재밌는 킬러가 아니라서. 하루 종일 회사의 책상머리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당신이 하루에 여덟 시간은 컴퓨터 앞에 앉아 보내는 킬러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을 것이다.

 

(『컨설턴트』, p.106)


 
역설적으로 『컨설턴트』의 킬러는 평범한 사무직 노동자 같다.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다가가서 암살자의 목을 가르지도 않고, 망원렌즈로 심장을 겨눠 총을 쏘지도 않는다. 우리들이 익히 보아 온 암살자의 모습이 아니라 술 먹고 동창과 싸우기까지 하는 평범한 모습 그 자체다.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는 평범한 주부가 스파이가 되는 이야기다. 거북이에게 모이를 주는 일 외에는 아무런 할 일도 없는 주부는 어느 날 스파이 모집 공고를 본다.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해 스파이가 되지만 스파이 활동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평범하게 지내는 것이다. 특이하면 다른 사람들 눈에 띄게 되고 그렇게 되면 스파이로 잠복활동을 하는 데 지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해 스파이가 되지만 오히려 일상과 평범함을 더욱 유지해야 한다. 이 같은 발상은 독자나 관객의 예상을 뒤집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스파이 혹은 킬러들이 지닌 관습화된 클리셰들을 우리들은 이미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컨설턴트』나 『설계자들』의 경우 관습화된 도식을 뒤집어, 특별한 존재를 일상으로 끌고 들어왔다는 점에서 오히려 낯설어지는 것이다.
일종의 패러디로 ‘낯설게 하기’에 성공한 작품들은 수없이 많다. 오현종의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에서는 집에 퇴근한 007과 그의 아내가 된 전직 ‘본드걸’의 모습이 매우 낯설게 보여진다. 퇴근한 007은 소파에 누운 채 허벅지를 긁으며 홈쇼핑 채널에 나오는 러시아 미녀들의 속옷 광고를 넋 잃고 바라본다. 007이 저녁식사로 먹을 만둣국을 만드는 전직 본드걸의 모습에서 우리는 ‘말도 안 돼’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007과 본드걸이 아닌 한국의 전형적인 남편과 아내의 일상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과 아내 대신에 007과 본드걸을 집어넣으면 전형적인 모습도 매우 낯설어 보인다. 이지월의 『변두리 괴수전』 역시 마찬가지다.
팽이를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 시절부터 학창 시절까지의 성장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은 무협의 언어들을 아이와 소년들에게 입혀 줌으로 해서 매우 낯설다. 무협작가 좌백이 중원에서 있을 법한 공간들을 도시 한가운데로 끌고 와 낯설게 하기에 성공했다면 이지월의 『변두리 괴수전』은 성장소설에 무협의 옷을 입힘으로 해서 패러디와 함께 낯설게 하기에 성공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언수의 첫 번째 소설인 『캐비닛』은 시대와 국경을 넘나들면서 있을 법하지만 실제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소설에서는 킬러라는, 이제는 ‘만화영화에서조차 나오지 않을 법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해 매우 낯선 이야기들을 잔뜩 꾸려 나가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소설에는 독특한 작가의 사유가 소설 곳곳에 펼쳐지고 있는데, 예를 들면 이러한 것들이다. “이 세상에는 누구도 방전된 일회용 건전지를 소중하게 보관하지 않는다.”거나 “우리가 이 역겨운 땅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그 역겨움이 익숙하기 때문이다.”와 같은.
이 같은 사유는 이 소설이 읽는 즐거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학 본연의 임무를 일깨워 준다. 빼어난 이야기꾼임과 동시에 좋은 작가임을 보여준 『설계자들』은 앞서 나왔던 소설들과 함께 혼종성이 강화된 문학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는 징표를 보여준다. 익숙하지만 매우 낯선, 그런 소설들이 있어 풍성하고 더욱 행복하다.  《문장웹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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