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사고하지 마라, 반응하라. 창조하지 마라, 연결하라 - 두번째

  • 작성일 2010-12-25
  • 조회수 1,164


[연재 에세이]

사고하지 마라, 반응하라
창조하지 마라, 연결하라



- 두번째 -



함성호
 



(그림_1) (그림_2)


위 그림은 전 회에 얘기한 모두율의 효율적인 사용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서로 떨어져 있는 경기장 관람석은 하나의 모두율입니다. 오른쪽 그림은 이 모두율을 확대한 것입니다. 이 모두율이 합쳐져 거대한 경기장을 이루지요. 경기장을 만드는 사람들은 마치 콘베이어벨트를 미끄러져 가는 것처럼 경기장을 조립만 하면 됩니다. 생산의 효율성, 그것이 지금 이처럼 거대한 설득력을 가진 것은 아마 거기에도 이런 아름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일 겁니다. 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 평원의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이 경기장은 아름답습니다. 자연과 어우러진 수학적 모두율이 우리에게 미적 쾌감을 줍니다.

 (그림_3)


이것은 천지창조를 하는 신의 모습입니다. 신이 콤파스를 들고 우주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우주의 건축가로서의 신. 이 신의 건축을 우리가 리모델링하고 있는 거지요. 근대 건축은 “신은 죽었다”는 외침을 “신의 건축은 낡았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온실가스와 오존층에 뚫린 구멍,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 리모델링이 과연 신의 건축보다 위대한지는 의문입니다.




(그림_4)

 (그림_5)


표지판은 스피드 95마일 이하가 최소 속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리가 끊겼습니다. 모더니즘이란 시스템을 믿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시스템이 파괴되면 어떻게 될까요? 오른쪽 그림은 성수대교가 무너진 모습인데요, 다리가 끊긴 이 때 모든 신호는 파란색을 띠고 있었습니다. 시스템이 다리가 무너진 것을 몰라서 신호를 주었고, 당시의 CCTV를 보면 하얀색 자동차가 끊어진 다리 위로 질주하다가 그대로 추락해 승객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근대가 믿고 있는 시스템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가를 분명히 보여주는 비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 디스토피아가 우리가 원한 유토피아였다니, 믿고 싶지 않습니다.



   (그림_6)

    (그림_7)


이것은 거의 방사형 도로와 광장으로 점철된 서양의 유토피아입니다. 뒤에 나오지만 동양의 유토피아는 언제나 자연에 있습니다. 자연 자체가 신이란 걸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지요. 법가, 유가, 묵가에서도 공통적인 현상입니다. 오른쪽은 1930년경 서울의 실제 사진입니다. 서양의 유토피아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여주지요. 근대라는 것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왼쪽-그림_8)

그러나 서양의 근대를 추구하면서 우리도 변했습니다. 왼쪽은 서울의 풍경인데, 이런 풍경은 획일화되어 이제 어디서나 볼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원주면 원주, 속초면 속초, 강릉이면 강릉 그 지역마다 다른 특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나 같지요.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표지판이 아니면 도시들은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런 것들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동의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근대의 건축가들, 구제주의 건축가들은 전 세계의 풍경을 이렇게 변화시켜 버렸습니다. 중국의 상하이, 베이징, 한국의 서울, 원주, 심지어 유럽의 도시들까지 이런 풍경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림_9)

거기에 흠집을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계획되고 획일화되어 깨끗한 도시 벽면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이 사람들이야말로 근대를 흔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티피는 근대에 대한 낙서지요. 


(그림_10)

이것은 제가 그린 이미지인데요, 개발은 모든 것을 이처럼 산꼭대기까지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산을 다 깎아 버리고 저런 고층빌딩, 아파트들이 옛날 숲과 옹달샘이 있던 자리에 들어서는 것이지요. 그리고 나무는 최소한의 도시 녹지 비율을 위해 산꼭대기에 변발처럼 아주 조금만 남아 있습니다. 산은 예부터 한국인들에게 신령스러운 곳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풍수지리설에 의해 높은 집을 짓지 않았습니다. 조선은 산이 많아 국토를 양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음양의 조화를 맞추기 위해 높은 집을 짓지 않았지요. 높고 낮은 산을 배경으로 야트막하게 깔려 있는 집과 마을의 풍경이 우리가 추구하던 경관이었습니다.


 

 

(그림_11)

롱샹 성당입니다. 르코르뷔지에가 말년에 설계한 집인데, 앞서 제가 보여드린 아파트 같은 것과는 상당히 다르지요. 개과천선을 한 겁니다. 르코르뷔지에는 나이가 들자 자신이 앞서 만든 모든 작업을 부정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유기적인 형태와 무작위하게 나 있는 창, 둥글게 말려 올라간 처마. 내부는 빛과 어둠의 은밀한 조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여기 어디에도 그가 추구한 근대 건축의 원칙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건물은 대량생산 체제의 산업사회에는 부적격합니다.


(그림_12)

이것이 바로 미니멀리즘의 전형을 보여주는 건물입니다. 자에라 폴라라는 건축가가 설계한 집입니다. 아주 반듯한 정형적인 하얀, 순백의 순결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집기를 없애고, 조각 같은 나무 한 그루만 딱 있습니다. 여기에서 뭘 연상할 수 있냐 하면,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아시지요? 그 살육을 저지른 사람들은 무식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프랑스 유학을 한 엘리트들로 공산주의로 캄보디아를 개혁하려 했습니다. 조국을 위해 조국을 새로운 정신으로 개혁하려 했지요. 그런데 조국의 인민들은 너무나 시대에 동떨어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생각했지요. 이대로는 안 된다. 마치 이광수가 친일로 조선민족을 개조해야 한다고 했던 것처럼, 이들도 캄보디아의 인민들을 개조하지 않으면 부강한 조국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 거지요. 이 사람들을 새로운 사회주의 사상에 맞는 인간으로 개조시켜 버리자는 생각으로,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깨끗한 백지상태에서 새로 시작하자는 것이 바로 킬링필드였습니다. 사진을 보면 모든 것이 깨끗합니다. 주부들은 아시겠지만, 저렇게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려면 엄청 힘이 듭니다. 계속 쓸고 닦아야 합니다. 저기서는 자면서 침도 못 흘립니다. 침을 흘리는 것은 죄악입니다. 그래서 근대 건축의 명언 중 '장식은 죄악이다'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이 명언은 아직도 통용되고 있습니다. 먼지 하나 없는 집과 폴포트가 꿈꿨던 반동이 없는 사회는 어쩌면 같은 선상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림_13)

몬드리안의 유명한 작업입니다. 몬드리안의 작업을 보면 근대의 단아함과 정결함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은데, 사실 색상과 까만 선이 분할되는 것을 보면 색과 색의 겹침에서 일어나는 어떤 착시 과정을 표현한 것도 많습니다. 몬드리안의 검은 선은 면과 면을 단지 분할하는 것이 아니라 면과 면이 부딪치는 경계의 폭이 얼마나 다양한지 보여주는 선일 수도 있습니다. 근대는 이 선을 긋고 있지만 이 선이 이렇게 경계의 폭으로 확장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저는 몬드리안의 작업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이지는 않을까, 하는. 말하자면 우리에게 돌아갈 길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를 긍정하면 저런 경계를 확장하는 것이 가장 최선이 아닐까…… 뭐 그런 복잡한 생각이 들게 하는 작가입니다.

 

(그림_14)

식민지 수탈을 당한 수많은 아시아 국가들은 서양이라는 거대한 그림자에 아직도 휩싸여있습니다. 아직도 서구는 아시아가 추구해야 할 대상입니다. 도시가 그 대표적인 경우죠. 그래서 저 위가 바로 우리가 바라는 도시, 우리가 바라는 근대였습니다. 아시아는 야곱의 사다리 같은 것을 놓고 저 위로 올라가려고 아등바등대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래서 아시아가 지금 서구 건축가들의 각축장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네 땅에서는 더 이상 신축을 할 수 없기 때문이죠. 유럽이나 미주는 도시의 풍경을 보존하고 있거든요. 그러나 아시아는 지금도 맨해튼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서유럽의 건축가들이 그 시장을 노리고 아시아로 몰려드는 것이지요. <계속>

《문장웹진 1월호》

추천 콘텐츠

일상의 닻을 내리다 - 아바나에서 살아가기_2

꿈꾸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 ─ 쿠바와 남미의 나날들 #3 일상의 닻을 내리다 ─ 아바나에서 살아가기_2 김성중(소설가) 3. 문화생활 1) 출판기념회 집주인 아나의 친구가 책을 내서 출판기념회를 한다고 한다. 쿠바에서는 출판기념회를 어떻게 할까 궁금했는데 결론적으로 매우 소박했다. 강당이 있는 건물(간판이 없어 아직도 그곳이 학교인지 뭔지 모르겠다)에 사람을 모아 놓고 몇 마디 축사와 저자의 말을 들은 후 콜라를 탄 럼주를 나눠 마신다. 그럼 글쓴이가 무명씨냐, 그렇지 않다. 60대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마르타는 쿠바와 칠레와 미국에서 공부했다. 이 자리에는 미국 대사를 비롯해 국제관계를 가르치는 교수님, 또 무슨무슨 교수님, 기타 ‘선생님들의 선생님’들로 그득하고, 기자도 두어 명 와 있다. 책 표지에는 바지와 높은 하이힐을 신은 여자의 뒷모습, 그 뒤로 작게 표현된 남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제목은 『Yo Sola(나는 혼자다)』. 표지 분위기가 작가 연보에서 겨우 건져낸 소수의 단어로 추측컨대 페미니즘에 관한 내용인 것 같다. 강연 후에는 책을 사고 줄을 서서 사인을 받았다. ‘이곳에서 산 최초의 책이 여성 사회학자의 책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는데 기자가 와서 찰칵, 나를 찍어 간다. 동양인이 있으니 신기해서 찍는 것이다. 난 읽을 수 없는 책을 펼치고 맹꽁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데……. 쿠바는 노년층일수록 영어도 잘 쓰고 지식인이 많은 것 같다. 그때는 지금보다 덜 궁핍했고, 혁명세대라는 자부심도 강할 테니까. 반면 젊은이들은 어디에나 그렇듯 유행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크게 틀어 놓고 따라하는 청년들을 여기저기서 많이 봤다. 2) 영화 12월 둘째 주가 되자 중남미 국제영화제가 열린다. 집 근처에 극장이 세 개나 있어서 나도 가보았다. 관람료는 우리 돈 백 원 정도? 거저나 다름없다. 그 앞에서 파는 팝콘이 관람료의 2.5배인데 말이지. 사회주의 국가라는 게 이럴 때 빛을 발한다. 쿠바의 의자들은 유달리 딱딱하고 불편하다. 일단 쿠션 있는 의자가 많지 않고 각도는 대체로 90도다. 극장 의자도 예상대로 작고 불편했다. 첫날 본 영화가 하필이면 세 시간짜리라서 벌서듯 본 다음부터 나는 극장에 갈 때마다 쿠션을 가져갔다. 그랬더니 한결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어차피 여기서 영화를 볼 때마다 반은 자버리니까. 근데도 영화관에서 여러 명 사이에 끼어서 자면 달콤하단 말이지. 이상한 꿈도 꾸고……. 3) 파티 아스뚜르발 아저씨의 생일이다. 저녁부터 손님들이 모여들었다. ‘깜짝 파티라더니 그건 아닌가 보네?’라고 생각한 순간 커다란 초코 케이크가 나온다. ‘옳지, 저게 비밀이었구나.’ 얼음을 사오라고 일부러 내보낸 아저씨가 집으로 들어온 순간, 불을 끄고 기다리다가 일제히

  • 웹관리자
  • 2012-12-31
일상의 닻을 내리다 - 아바나에서 살아가기_1

꿈꾸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 ─ 쿠바와 남미의 나날들 #2 일상의 닻을 내리다 ─ 아바나에서 살아가기 김성중(소설가)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 혼자 떨어지니, 내 행동은 다른 영역에 끼어든 동물과 유사해진다. 우선 안전한 주거지를 확보하고, 근거리에 화장실을 눈여겨봐 둔 후(문짝이 없는 화장실도 더러 있기에), 식사를 해결할 식당과 노점을 물색한다. 그 다음엔 반경 2킬로미터 내의 골목을 살살 다니며 지형지물을 눈에 익히기 시작한다. 가만히 보니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생활에 틀이 생긴다. 오전에는 아바나 대학 도서관에 가서 작업을 하고, 오후에는 하릴없이 쏘다니며 사진을 찍거나 영화관에 간다. 주말에는 한국 사람을 만나거나 올드 아바나에 가서 중국 음식을 먹고 온다. 이곳에 오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상품과 미디어를 호흡하며 살았는지 알겠다. 쿠바에 와서 쿠바에 대해 알아 간다기보다 그동안의 내 생활에 대해 거꾸로 깨닫게 되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이를테면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산다’라는 문장은 굉장히 자본주의적이다. 여긴 마트가 없다. 없진 않지만 차를 타고 나가야 드물게 나온다. 그리고 물건이 없다. 있긴 한데 가짓수가 적을뿐더러 사고 싶은 상품은 거의 없다. 일례로 나는 이곳 가정집에서 ‘책상’을 본 적이 없다. 가구도 귀하고 케첩도 귀하고 모든 물자가 다 귀하다. 미국의 경제봉쇄 때문이지만 배급으로 생존은 가능하기 때문에 상업이 발달하지 않는 탓도 있으리라. 돈 쓸 일도 없고, 인터넷도 없고, 핸드폰(하나 만들었다)에 걸려오는 전화도 거의 없으니 달리 ‘욕망’할 무언가가 없다. 이국에서의 망망대해 같은 하루하루는 금세 일상이 된다. 1. 먹는 일 ‘꼬히마르’는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되는 멋진 바닷가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방문자들이 소설의 무대를 둘러보기 위해 온다. 그러나 내게는 이 해변이 ‘세계에서 삼겹살 구워먹기에 가장 좋은 곳’쯤으로 입력되고 말았다. 첫 주 주말에 나는 한국 교민의 초대를 받았다. 코트라 부관장 내외와 쿠바에서 7년간 지내 온 경화 언니네 부부다. 마을 건너편 해변에 차를 대고 숯을 피워 삼겹살을 굽고 소주를 마셨다. 소주와 삼겹살은 한국에 있을 때 내가 거들떠도 보지 않는 것들이다. 그러나 꼬히마르에 온 나는, 헤밍웨이고 뭐고 바다를 등지고 앉아 고기와 김치와 파채(채소는 경화 언니가 직접 농사지은 것이다. 언니는 심지어 동치미까지 담갔다)를 정신없이 먹었다. 쿠바에 온 첫 일주일은 굶주림의 시간이었다. 숙소에서 주는 아침은 먹자마자 배가 꺼지는 거친 빵에 과일 약간이 전부. 심지어 달걀도 없다. 달걀은 한 달에 성인 한 명당 열 개씩 배급받는데, 그나마 태풍 샌디의 영향으로 피해지역으로 모두 보내졌다고 한다. 쿠바 사람들의 한 달 월급은 40만 원 수준인데 이 돈으로 모자라는 달걀도

  • 웹관리자
  • 2012-12-26
바벨의 침묵

사유의 드로잉_제5회 바벨의 침묵 강수미 (미학,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술연구 교수) “신이 듣기를 원하는 유일한 인간의 언어, 라틴어를 상실한 비극적인 양들의 무리인 우리는 메에 하고 우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1) 논쟁과 관련해서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내게는 몇 있다. 그중에 특히 내가 사회적으로 발언할 권리가 더 많아지고, 내 주장에 힘이 더 실리면 실릴수록 더 씁쓸하게 되살아나고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는 기억이 있다. 그것은 요컨대 논쟁 당시에는 꽤 유창한 언변과 분명한 논리를 펴 논쟁 상대로부터 동의 내지는 항복을 받아냈으나, 결국 그 사람과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나중에 예상치 못하게 비판의 부메랑을 맞은 기억이다. 대체로 그런 기억 속에서 상대방은 내 의견에 반박하거나 항변하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듣고 있다가 자신의 입장이나 생각을 드러내지 않은 채 자리를 마무리했을 뿐이다. 그래서 당시 나는 안일하게도 내 주장이 설득력 있게 그 사람에게 전달됐거니 생각했고, 나아가 어리석게도 서로 잠깐 불편하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더 좋은 쪽으로 우리가 함께 가게 됐다고 기뻐했던 것 같다. 그것이 착각이자 오만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실제로 그 사람은 논쟁의 순간 정작 침묵함으로써 나를 공박했을 뿐만 아니라 아마도 가장 실리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생 굽이굽이에서 깨달았다. 이를테면 침묵은 논쟁의 기술 중 매우 은밀한 힘을 가진 공격 무기였던 것이다.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며칠이 지난 2012년 12월 말 현재, 대한민국의 대중 미디어는 물론 개인 사용자를 기반으로 한 SNS에서 말들이 넘쳐난다. 그 말들의 양은 선거를 치르기 전 상태를 압도하지만, 내용은 그보다는 훨씬 단조롭다. 예컨대 당선자가 된 후보의 소감에서 시작해 당선 후 국민에게 보내는 첫 ‘메시지’, 유력 인사들의 축하 인사말과 당선자의 답사 등이 속속들이 전달되고 있다. 또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과 선거 성공담이 거듭거듭 매체를 통해 회자되고, 대한민국의 새 통치권자가 될 당선자에 대한 각계의 바람과 조언이 줄을 잇고 있다. 동시에 대통령 당선자를 둘러싼 그런 정치적인 말들과 비등한 양을 차지하는 말은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 담론이다. 최종 투표율 75.8%로 1987년 직선제 시행 이후 계속 하락 추세를 보였던 투표율이 처음 반등했다는 사실에서부터, 투표율이 70%가 넘으면 야당에 유리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관성적 예측을 깨고 어떻게 여당 후보가 당선될 수 있었는가에 대한 분석에 이르기까지 범주상 비슷한 말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담론 중 특히 의미심장하고 주목할 자료가 있다. ‘방송 3사 출구조사’를 기초로 전체 유권자 중 투표에 참여한 75.8%를 지역·세대·직업·학력·소득 등

  • 웹관리자
  • 2012-12-26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